공부/종교와 나

법화경 2-1,2

應觀 2013. 2. 8. 23:45

 

 

묘법연화경 강좌 제2강-1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8. 26 -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諸佛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 我弟子等 講論三藏

唯願三寶 爲作證明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是我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隅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意

오늘 그 조그마한 소책자. 한 권씩 보시를 했는데요.

저를 태워다 주고 태우고 가는 기사 보살님이 법화경공부 하는데 딱 좋은 참고 자료가 돼서 책을 그렇게 한 권씩 보시를 했습니다.

[사람이 부처님이다.] 주제가 법화경 이야기입니다.

제가 그 전에 불교신문에 제가 연재했던 것인데요. 법화경을 구체적으로 다 쓰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것만 짚어가면서 법화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그런 내용들을 실었습니다. 읽어보시면 상당히 참고가 될 줄 믿습니다.

불교에는 보시 정신이 있어서 좋은 책이 있으면 책을 보시하는 것을 우리가 법공양 이라고 그렇게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법공양은 그렇지요. 책을 보시하는 것. 그 다음에 법을 설 하는 곳에 안내해서 같이 가서 듣게 하는 것. 그 다음에 또 가능하면 공부를 좀 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들려드리는 것. 설명해드리는 것. 불교에서 깨달으신 그 이치가 얼마나 위대합니까? 정말 깨닫지 못하면 모를 그런 내용들이 경전에는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공부해서 사람들에게 세상과 인생의 이치를 깨우쳐 준다면, 그 보다 더 좋은 보시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평생을 다른 보시를 하신 것은 없지요. 오직 그저 법 보시. 중생들에게 법공양하는 것으로써 당신의 필생의 사업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법화경에 약왕보살 본사품이라고 하는 품이 있는데, 거기는 법 보시· 또는 법공양. 법을 전하는데 대한 아주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 다음에

묘음보살품· 관세음보살보문품은 법화경에서 들려주고자 하는 그 정신이 자기 인격화가 잘 됐을 때, 救苦救難. 어떤 어려움과 어떤 고난에서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가서 그 어려움을 건져준다고 하는 그런 법화행자의 실천 본보기가 바로 약왕보살· 묘음보살· 관세음보살입니다. 관세음보살에게 매달리고, 조르고 또 부르고 애원하고 해서 뭘 타내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잘 몰라서 그래요.

그래서 보문품을 우리가 새로 해석해야 되는데, 애원해서 타내자는 것으로 언뜻 읽으면 그렇게 되어있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니고,

관세음보살처럼 주변에 어려운 사람. 힘든 사람.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직접 몸소 가서 건져주고 도와주자고 하는 그런 정말 불교로 무장된 사람은 사회에, 또는 이웃에, 우리 주변에 그런 힘들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가서 도와 줘야 된다고 하는 그런 도와주는 사람의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 관세음보살입니다. 관세음보살에게 매달려서 뭘 타내자고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불교의 이론은, 불교의 이론은 모든 것이 인과 관계 잖습니까?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듯이, 우리가 어떤 과보를 얻으려면, 결과를 얻으려면 지어야 되지 않습니까? 짓지도 아니하고 성인에게 빌기만 하면 되도록 되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은 것을 우리가 얻어내는 것. 지은 대로 우리가 결과를 얻는 것. 이것이 불교의 이론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아주 순리고요. 그것이 인과의 법칙이고요. 그런데 지어 놓지도 않고 관세음보살에게 그렇게 달라고 조르는 것. 맡겨 놓은 적도 없으면서 달라고 조르는 것은, 그것은 사실은 이치에 안 맞습니다. 그것은 아주 저급한 불교 상식이지요.

사실은 관세음보살처럼 우리가 불교로 무장 되었을 때, 불교 정신으로 무장 되었을 때 어려운 이웃을, 몸소 가서 불에 타는 사람은 구제해내고, 물에 빠진 사람은 건져내고, 또 아주 어려운 고난에 처해 있는 사람은 가서 구제한다는 그야말로 救苦ㆍ救難. 고통에 있거나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을 구제해내는 그런 불자의 보살행. 또는 사회에 회향하는 그런 본보기를 보여준 것이 관세음보살입니다. 그것이 우리도 그렇게 하자 하는 그런 뜻이지요. 그런데 지어놓지도 않고 무한정 그저 조르고, 애원하고 하는 그런 뜻으로만 이해하고 있는데요. 그런 것도 현대에 와서는 바르게 이해되어야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석가의 미래와 동일하다.

부처님께서 祥瑞(상서)를 놓았지요. 상서를 보였습니다.

대중들이 상서를 궁금해 하는데 미륵보살이 이 상서를 누구에게 물어서 해결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마도 문수보살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해서, 그래서 문수보살에게 물었는데 문수보살은 경험이 많아서, 당신이 과거에 보았던 그런 이야기를 쭉~ 설명하는데 일월등명부처님의 과거의 예와 똑 같더라. 그러면서 하나, 하나 맞추어 가는 것이지요.

앞에서는 석가의 현재와 동일하다. 라고 했고, 또

석가의 과거와 동일하다. 라고 했고, 그 다음에

석가의 미래와 동일하다. 무엇을 따져보더라도 오늘 날 석가모니부처님이 하시는 일은 과거의 일월등명부처님이 하신 일과 너무나도 동일하다. 그러기 때문에 틀림없이, 일월등명부처님이 그랬듯이 석가모니부처님도 역시 묘법연화경. 지상에서 최고의 가르침. 수 억만 책 중에서 단 한 권을 선택하라면 기꺼이 법화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 위대한 가르침을 설하려고 하는 것이다. 문수보살이 그렇게 증거를 대면서 석가모니의 미래에도 일월등명불의 미래와 같을 것이다.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3> 석가의 미래와 동일함

時有菩薩(시유보살)하니 名曰妙光(명왈묘광)이라

有八百弟子(유팔백제자)러니

是時日月燈明佛(시시일월등명불)이 從三昧起(종삼매기)하사

因妙光菩薩(인묘광보살)하야 說大乘經(설대승경)하시니

名妙法蓮華(명묘법연화)라 敎菩薩法(교보살법)이며

佛所護念(불소호념)이니라 六十小劫(육십소겁)을

不起于座(불기우좌)하며 時會聽者(시회청자)도

亦坐一處(역좌일처)하야 六十小劫(육십소겁)을

身心不動(신심부동)하고 聽佛所說(청불소설)을

謂如食頃(위여식경)하대 是時衆中(시시중중)에

無有一人(무유일인)도 若身若心(약신약심)에

而生懈倦(이생해권)일러라 日月燈明佛(일월등명불)이

於六十小劫(어육십소겁)에 說是經已(설시경이)하시고

卽於梵魔(즉어범마)와 沙門婆羅門(사문바라문)과

及天人阿修羅衆中(급천인아수라중중)에

而宣此言(이선차언)하사대 如來於今日中夜(여래어금일중야)에

當入無餘涅槃(당입무여열반)하리라하시니라

時有菩薩(시유보살)하니 名曰德藏(명왈덕장)이라

日月燈明佛(일월등명불)이 卽授其記(즉수기기)하사

告諸比丘(고제비구)하사대 是德藏菩薩(시덕장보살)이

次當作佛(차당작불)하리니

號曰淨身多陀阿伽度阿羅訶三藐三佛陀(호왈정신다타아가도아

라가삼먁삼불타)리라 佛授記已(불수기이)하시고

便於中夜(변어중야)에 入無餘涅槃(입무여열반)하시니라

佛滅度後(불멸도후)에 妙光菩薩(묘광보살)이

持妙法蓮華經(지묘법연화경)하대 滿八十小劫(만팔십소겁)을

爲人演說(위인연설)이러니 日月燈明佛八子(일월등명불팔자)가

皆師妙光(개사묘광)하니 妙光敎化(묘광교화)하야

令其堅固阿耨多羅三藐三菩提(영기견고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

시니 是諸王子(시제왕자)가

供養無量百千萬億佛已(공양무량백천만억불이)에

皆成佛道(개성불도)하고 其最後成佛者(기최후성불자)는

名曰然燈(명왈연등)이니라

 

時有菩薩(시유보살)은 그 때에 한 보살이 있었으니,

名曰妙光(명왈묘광)이라 이름이 묘광이라. 미묘할 자. 아름다울 자. 빛 자. 빛은 뭐라고요? 지혜를 상징하는 것이다. 문수보살의 전신입니다. 有八百弟子(유팔백제자). 800제자가 있었다.

是時日月燈明佛(시시일월등명불)이 從三昧起(종삼매기)하사,

그때 일월등명부처님이 삼매로 쫓아 일어나서 因妙光菩薩(인묘광보살)하야 說大乘經(설대승경)하시니, 묘광보살을 인해서 대승경을 설했다.

名妙法蓮華(명묘법연화)라. 이름이 뭐라고요? 묘법연화다.

敎菩薩法(교보살법)이며 佛所護念(불소호념)이다.

여러 번 나오니까... 앞에서도 나왔지요?

 

六十小劫(육십소겁)동안 不起于座(불기우좌)라.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時會聽者(시회청자)도 亦坐一處(역좌일처)라. 설하는 사람도 60소겁 동안 자리 있고, 듣는 사람도 또한 한 곳 에 앉아서 六十小劫(육십소겁)동안 身心不動(신심부동)이야.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 하고 턱~~ 아주 일심으로 聽佛所說(청불소설)이라. 부처님이 설하신 바를 듣는데 마치 그 느낌이 謂如(위여식경)이다. 우리 잠깐 쉬는 시간에 간식하는 시간.

食頃. 식사하는 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더라.

배고플 때 식사하는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끼 먹잖아요. 마치 60소겁 동안 법화경을 설하는 사람도, 법화경을 듣는 사람도 그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한 끼 밥 먹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런 표현입니다.

이런 것도요. 이 시대에 좀 해이해진 우리들의 정신하고는 참 차이가 많지요?

是時衆中(시시중중)에, 그때 대중 가운데서 無有一人(무유일인)도 若身若心(약신약심)이라. 어떤 한 사람도 몸과 마음에 而生懈倦(이생해권). 게으르거나 해태하는 사람이 없었다.

日月燈明佛(일월등명불)이 일월등명부처님이 於六十小劫(어육십소겁)에 說是經已(설시경이)하시고, 이 경전을 설해 마치고,

卽於梵魔(즉어범마)와 범천과ㆍ마와ㆍ沙門과ㆍ婆羅門(사문바라문)과

그리고 及天ㆍ人ㆍ阿修羅ㆍ衆中(급천인아수라중중). 대중 가운데

而宣此言(이선차언)하사대, 이러한 말을 했다. 무슨 말인가 하니

如來於今日中夜(여래어금일중야). 여래가 今日中에, 오늘 한 밤중에

當入無餘涅槃(당입무여열반)하리라하시니라. 無餘涅槃하면 남음이 없는 열반. 그래서 “완전한 寂滅(적멸)” 이런 뜻이지요. 죽음에...

쉽게 표현해서 “열반에 들겠다.” 그런 뜻입니다. 법화경을 다 설하고 나서 말하자면 한 밤중에 열반에 든다. 이런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언을 그렇게 한 겁니다. 마찬가지로 석가모니 부처님도 법화경 설하고 열반에 든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時有菩薩(시유보살)하니 名曰德藏(명왈덕장)이라. 이름이 덕장이라. 日月燈明佛(일월등명불)이 일월등명부처님이 卽授其記(즉수기기)라. 그 사람. 마지막으로 덕장이라 하는 보살에게 수기를 주었지요.

告諸比丘(고제비구)하사대 是德藏菩薩(시덕장보살)이 次當作佛(차당작불)하리니 덕장보살이 다음에 마땅히 부처를 지으리니,

號曰淨身多陀阿伽度阿羅訶三藐三佛陀(호왈정신다타아가도아라하삼먁삼불타)라하리라.

佛授記已(불수기이)하시고, 부처님이 수기해 마치시고,

便於中夜(변어중야)에 入無餘涅槃(입무여열반)하시니라.

中夜에, 한 밤중에 무여열반에 들었다.

佛滅度後(불멸도후)에 부처님이 멸도한 뒤에 妙光菩薩(묘광보살)이

持妙法蓮華經(지묘법연화경)하대, 妙法蓮華經을 가지되,

滿八十小劫(만팔십소겁)을 80소겁이 차도록 爲人演說(위인연설). 남을 위해서 연설했다. 그러니 일월등명부처님이 열반에 들고, 그 다음에 묘광보살이라는 보살이 있었는데, 그 보살은 80소겁 동안 妙法蓮華經을 설했다 하는 것입니다.

日月燈明佛八子(일월등명불팔자)가, 일월등명불의 여덟 아들이

皆師妙光(개사묘광)하니, 그러니까 일월등명불의 여덟 아들이 있었는데, 전부 묘광보살을 스승으로 여기고 거기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妙光敎化(묘광교화)하야, 묘광보살이 교화해서

令其堅固阿耨多羅三藐三菩提(영기견고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시니,

그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堅固하게 했다. 아주 딱 굳혀가지고 더 이상 퇴전하지 않도록 그렇게 했다.

是諸王子(시제왕자)가 供養無量百千萬億佛已(공양무량백천만억불이)에, 無量百千萬億 부처님께 공양하고 나서,

皆成佛道(개성불도)하고 다 불도를 이루고는 其最後成佛者(기최후성불자)는 名曰然燈(명왈연등)이니라. 그 최후 부처님이,

성불한 사람의 이름이 연등이었다.

연등부처님은 또 금강경에 의하면 석가모니부처님께 수기를 한, 석가모니부처님의 과거 스승이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然燈이 뭡니까? 밝힐 자. 등불 자. “등불을 밝히다.”

그렇습니다. “등불을 밝히다.” 그래서 말하자면 성불합시다. 지혜를 밝힙시다. 지혜의 등불을 밝힙시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더욱 박차를 가해서 우리 마음을“지혜의 등불을 밝힙시다.라고 하는 운동이 등불을 다는 겁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신라 때부터 팔관회라든지 연등축제라든지 하는 것이 그 뜻입니다. 그 뜻이 쭉~~ 전승 되어와 가지고... 근래의 우리나라의 연등축제는 정말 세계적인 축제가 되었지요. “연등”할 때 꼭 이 태울 자를 써야합니다. 연꽃 蓮(연)자 등불 燈자 아닙니다. 많은 등불 가운데 아주 극소수가 그저 연꽃등불일 뿐인데,

그것을 “lotus lantern festival” 이렇게 영어로 번역해 놓으면...

그래가지고 여기(불교전문) 연등축제 기획팀들하고 얼마나 다투었는데도 그것이 안 고쳐지는 겁니다.

그냥 “lantern festival”해도 세계에서 다 통해요.

그냥 “등불을 밝히다.” 해도 아무 이상이 없는데 언제 누가 뭣도 모르고는 “lotus lantern festival” 이렇게 영어로 번역해 놓으니까 그만 한번 그렇게 해서 팜플렛이라든지 안내문에 나가 놓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계속 그렇게 연꽃등축제로 계속 외국에 소개 되는 겁니다. 이런 것들도 스님들이 앞으로 바로 잡아야 돼요. 고쳐야 된다고요. 그냥 등불을 밝히는 축제입니다.

거기에는 연꽃등도 있고ㆍ용등도 있고ㆍ요즘 서트라이트도 있고ㆍ별의별등이 다 있지 않습니까? 등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합니까? 그런데 연꽃등축제라고 하면 말도 아니지요. 그런 것들도 꼭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언젠가 바로 잡아질 겁니다. 별것이 아니지만, 별것이 아니라면 아니지만 외국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그것이 잘못 소개된 것이거든요.

연등회라고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얼마나 성대하게 했다고요.

그 때 燃燈會(연등회)라고 썼지 무슨 연꽃등이라고 썼나요? 바로 우리 마음에 지혜의 등불을 밝히자.하는, 그것이 일종의 운동입니다.

보다 더 용맹정진해서, 보다 더 정진에 박차를 가해서 우리 마음에 지혜의 등불을 밝히자.는 운동입니다. 그것이 등불을 다는 겁니다.

그래 부처님오신 날 등을 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좀 더 크게 한 번 되살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잊어버렸으니까 다시 재 기억을 해서 본래의 우리 불교 정신을 되살립시다 하는 그런 뜻에서 우리가 등불을 달지요.

<4> 구명(求名)보살과 묘광(妙光)보살

八百弟子中(팔백제자중)에 有一人(유일인)하니

號曰求名(호왈구명)이라 貪着利養(탐착이양)하야

雖復讀誦衆經(수부독송중경)이나 而不通利(이불통리)하고

多所忘失(다소망실)일새 故號求名(고호구명)이라

是人(시인)이 亦以種諸善根因緣故(역이종제선근인연고)로

得値無量百千萬億諸佛(득치무량백천만억제불)하야

供養恭敬(공양공경)하고 尊重讚歎(존중찬탄)일러니라

彌勒當知(미륵당지)하라 爾時妙光菩薩(이시묘광보살)이

豈異人乎(기이인호)아 我身是也(아신시야)며

求名菩薩(구명보살)은 汝身是也(여신시야)니라

今見此瑞(금견차서)하니 與本無異(여본무이)라

是故惟忖(시고유촌)컨댄 今日如來(금일여래)가

當說大乘經(당설대승경)하시리니 名妙法蓮華(명묘법연화)라

敎菩薩法(교보살법)이며 佛所護念(불소호념)이니라

八百弟子中(팔백제자중)에 8백 제자 가운데 有一人(유일인)하니,

한 사람이 있었는데 號曰求名(호왈구명). 이름이 구명이라. 이름이 아주 찝찝하지요? 구할 자, 명예라는 입니다. 이 사람은

貪着利養(탐착이양)이라. 利養. 이로운 것. 좋은 것을 전부 탐착하고, 또

雖復讀誦衆經(수부독송중경)이나 여러 가지 경전을 비록 독송하기는 해요. 그렇지만 뜻을 통달을 못해요. 而不通利(이불통리)여. 통달하지를 못하고, 多所忘失(다소망실)이여. 우리들처럼 그저 들은 것 다 까먹어 버리고, 어쩌다 외워 놓으면 다 까먹어 버리고, 이 사람이 그랬다 이 말입니다.

왜냐? 관심이 이익과 명예와 세속적인 가치에 관심이 가 있으니까 어쩌다가 경을 외워도 이거 뭐 남아 있지 않는 겁니다.

오로지 경에, 어제 나왔던 낱말, 純一無雜(순일무잡). 경전 공부하는데 정신이 純一無雜해놓으면 이거 몇 번 안 봐도 다 외워요. 안 잊어버린다고요. 그런데 구명이라는 이 친구처럼 늘 利養만 貪着하고 뭐 명예가 없나? 어디 벼슬이나 안 주나? 어디 주지나 얻을까? 어디 돈 많은 신도나 보질 않나? 이러고 있어 놓으면 어쩌다가 공부해 봐야 다 까먹어 버린다고요. 허허허 그래서 故號왈 求名(고호구명)이라. 호를 구명이라고 했다. 명예를 구하는 사람.

是人(시인)은, 경전에 좋은 사람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亦以(역이) 또한 種諸善根因緣故(종제선근인연고)로 여러 가지 선근인연을 심은 까닭으로, 善根因緣은 그래도 많이 심었어요. 절 집안에 사니까 아무래도 좋은 일 많이 할 것 아닙니까? 설사 그런 세속적인 관심은 다 떨쳐버리진 못했다 하더라도...

 

得値無量百千萬億諸佛(득치무량백천만억제불)하야 供養ㆍ恭敬(공양공경)하고 尊重ㆍ讚歎(존중찬탄)일러니라.

彌勒當知(미륵당지)하라 미륵 마땅히 알아라.

爾時妙光菩薩(이시묘광보살)이, 그 때 묘광보살이 豈異人乎(기이인호)아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我身是也(아신시야)며 내가 몸이 곧 그다. 여기는 지금 문수보살의 말이거든요. 내가 그 때 묘광보살이었다.

求名菩薩(구명보살)은 汝身이 是也(여신시야)니라.

그 때 구명보살은, 농땡이지 기사람은 바로 너야. 이것이 이런 장면입니다. 汝身이 是也니라.

今見此瑞(금견차서)하니 지금에 이 상서를 보니, 與本無異(여본무이)라. 근본으로 더불어, 옛날 본래 우리가 만났던 그 일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是故로 惟忖(시고유촌)컨댄, 한 번 깊이깊이 생각해 보건대,

今日如來(금일여래)가 當說大乘經(당설대승경)하시리니,

금일여래가 마땅히 대승경전을 설할 것이니,

名妙法蓮華(명묘법연화)라. 그것은 敎菩薩法(교보살법).

아주 수준 높은, 이것은 보살들을 가르치는 법이야, 법화경은...

저 성문ㆍ연각들은 해당 안 된다고요.

佛所護念(불소호념)이다. 부처님이 아주 마음속에 간직해 두었던 그런 가르침이다. 佛所護念이다. 그랬습니다.

그 다음에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했는데, 이것을 重頌이라고 그래요. 중송은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조금 부연하거나, 조금 새로운 말이 있거나 그런 정도지 앞에 산문으로 이야기한 것 보다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생략을 하고 넘어 가겠습니다.

4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1) 최초의 일불

爾時文殊師利(이시문수사리)於大衆中(어대중중)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我念過去世(아념과거세) 無量無數劫(무량무수겁)

有佛人中尊(유불인중존)하사 號日月燈明(호일월등명)이시라

世尊演說法(세존연설법)하사 度無量衆生(도무량중생)

無數億菩薩(무수억보살)하사 令入佛智慧(영입불지혜)하니라

(2) 최후의 일불

<1> 석가의 과거와 동일함

佛未出家時(불미출가시) 所生八王子(소생팔왕자)

見大聖出家(견대성출가)하고 亦隨修梵行(역수수범행)하며

<2> 석가의 현재와 동일함

時佛說大乘(시불설대승)하시니 經名無量義(경명무량의)

於諸大衆中(어제대중중) 而爲廣分別(이위광분별)하시니라

佛說此經已(불설차경이)하시고 卽於法座上(즉어법좌상)

跏趺坐三昧(가부좌삼매)하시니 名無量義處(명무량의처)

天雨曼陀華(천우만다화)하고 天鼓自然鳴(천고자연명)하며

諸天龍鬼神(제천용귀신)이 供養人中尊(공양인중존)하며

一切諸佛土(일체제불토)가 卽時大震動(즉시대진동)이라

佛放眉間光(불방미간광)하사 現諸希有事(현제희유사)하시며

此光照東方(차광조동방) 萬八千佛土(만팔천불토)하사

示一切衆生(시일체중생) 生死業報處(생사업보처)하사대

有見諸佛土(유견제불토) 以衆寶莊嚴(이중보장엄)하대

琉璃玻瓈色(유리파려색)이라 斯由佛光照(사유불광조)시며

及見諸天人(급견제천인)과 龍神夜叉衆(용신야차중)과

乾闥緊那羅(건달긴나라) 各供養其佛(각공양기불)하며

又見諸如來(우견제여래) 自然成佛道(자연성불도)하사

身色如金山(신색여금산)하사 端嚴甚微妙(단엄심미묘)하대

如淨琉璃中(여정유리중) 內現眞金像(내현진금상)하며

世尊在大衆(세존재대중)하사 敷演深法義(부연심법의)하시니

一一諸佛土(일일제불토) 聲聞衆無數(성문중무수)어든

因佛光所照(인불광소조)하야 悉見彼大衆(실견피대중)하며

或有諸比丘(혹유제비구) 在於山林中(재어산림중)하야

精進持淨戒(정진지정계)하대 猶如護明珠(유여호명주)하며

又見諸菩薩(우견제보살) 行施忍辱等(행시인욕등)하대

其數如恒沙(기수여항사) 斯由佛光照(사유불광조)

又見諸菩薩(우견제보살) 深入諸禪定(심입제선정)하대

身心寂不動(신심적부동)하야 以求無上道(이구무상도)하며

又見諸菩薩(우견제보살)은 知法寂滅相(지법적멸상)하야

各於其國土(각어기국토) 說法求佛道(설법구불도)하며

爾時四部衆(이시사부중) 見日月燈佛(견일월등불)

現大神通力(현대신통력)하고 其心皆歡喜(기심개환희)하야

各各自相問(각각자상문)하대 是事何因緣(시사하인연)인가하니라

<3> 석가의 미래와 동일함

天人所奉尊(천인소봉존) 適從三昧起(적종삼매기)하야

讚妙光菩薩(찬묘광보살)하사대 汝爲世間眼(여위세간안)하야

一切所歸信(일체소귀신)이라 能奉持法藏(능봉지법장)하대

如我所說法(여아소설법) 唯汝能證知(유여능증지)니라

世尊旣讚歎(세존기찬탄)하사 令妙光歡喜(영묘광환희)케하시고

說是法華經(설시법화경) 滿六十所劫(만육십소겁)토록

不起於此座(불기어차좌)하시고 所說上妙法(소설상묘법)을

是妙光法師(시묘광법사) 悉皆能受持(실개능수지)하니라

佛說是法華(불설시법화)하사 令衆歡喜已(영중환희이)하시고

尋卽於是日(심즉어시일) 告於天人衆(고어천인중)하사대

諸法實相義(제법실상의)를 已爲汝等說(이위여등설)일새

我今於中夜(아금어중야)에 當入於涅槃(당입어열반)하리라

汝一心精進(여일심정진)하야 當離於放逸(당리어방일)이니

諸佛甚難値(제불심난치) 億劫時一遇(억겁시일우)니라

世尊諸子等(세존제자등) 聞佛入涅槃(문불입열반)하고

各各懷悲惱(각각회비뇌)하대 佛滅一何速(불멸일하속)가하니라

聖主法之王(성주법지왕) 安慰無量衆(안위무량중)하대

我若滅度時(아약멸도시) 汝等勿憂怖(여등물우포)니라

是德藏菩薩(시덕장보살) 於無漏實相(어무루실상)

心已得通達(심이득통달)하야 其次當作佛(기차당작불)하리니

號曰爲淨身(호왈위정신)이라 亦度無量衆(역도무량중)하리라하시고

佛此夜滅度(불차야멸도)하사대 如薪盡火滅(여신진화멸)이어늘

分布諸舍利(분포제사리)하사 而起無量塔(이기무량탑)하며

比丘比丘尼(비구비구니) 其數如恒沙(기수여항사)

倍復加精進(배부가정진)하야 以求無上道(이구무상도)니라

是妙光法師(시묘광법사) 奉持佛法藏(봉지불법장)하사

八十所劫中(팔십소겁중) 廣宣法華經(광선법화경)이어늘

是諸八王子(시제팔왕자) 妙光所開化(묘광소개화)

堅固無上道(견고무상도)하야 當見無數佛(당견무수불)하고

供養諸佛已(공양제불이)하고 隨順行大道(수순행대도)하야

相繼得成佛(상계득성불)하사 轉次而授記(전차이수기)하시며

最後天中天(최후천중천)은 號曰燃燈佛(호왈연등불)이라

諸仙之導師(제선지도사)로 度脫無量衆(도탈무량중)하시니라

是妙光法師(시묘광법사) 時有一弟子(시유일제자)하니

心常懷懈怠(심상회해태)하야 貪着於名利(탐착어명리)하며

求名利無厭(구명리무염)하야 多遊族姓家(다유족성가)하며

棄捨所習誦(기사소습송)하야 廢忘不通利(폐망불통리)일새

以是因緣故(이시인연고) 號之爲求名(호지위구명)이라

亦行衆善業(역행중선업)하야 得見無數佛(득견무수불)하고

供養於諸佛(공양어제불)하야 隨順行大道(수순행대도)하며

具六波羅密(구육바라밀)일새 今見釋師子(금견석사자)하고

其後當作佛(기후당작불)하리니 號名曰彌勒(호명왈미륵)이라

廣度諸衆生(광도제중생)하대 其數無有量(기수무유량)하리라

彼佛滅度後(피불멸도후) 懈怠者汝是(해태자여시)

妙光法師者(묘광법사자) 今則我身是(금즉아신시)니라

我見燈明佛(아견등명불) 本光瑞如此(본광서여차)일새

以是知今佛(이시지금불) 欲說法華經(욕설법화경)이니라

今相如本瑞(금상여본서) 是諸佛方便(시제불방편)이시라

今佛放光明(금불방광명)하사 助發實相義(조발실상의)하시니

諸人今當知(제인금당지)하고 合掌一心待(합장일심대)어다

佛當雨法雨(불당우법우)하사 充足求道者(충족구도자)하시리니

諸求三乘人(제구삼승인) 若有疑悔者(약유의회자)

佛當爲除斷(불당위제단)하야 令盡無有餘(영진무유여)하리라

정리하면 序品이 끝났어요. 서품은 그야말로 서문이고 서론입니다.

해서, 요는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아서 상서를 보였고, 그 상서는 왜 보였을까? 그것을 미륵보살과 문수보살이 규명해 내는데 문수보살이,

과거 인연을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것이 서막이에요.

그 다음에 방편품을 보겠습니다. 이 법화경 前 14품, 後 14품은 말하자면 迹門과 本門. 이런 표현을 했지요? 그 중에서도 前 14품은 방편품을 하나의 눈으로 칩니다. 그 다음에 後 14품은 여래수량품을 눈으로 봐요. “두 개의 눈이 있다.” 그러면 前 14품의 방편품과, 後 14품의 여래수량품을 좌 우 양쪽 눈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봅니다.

序品 終

방편품에는 보면 一 부처님의 지혜를 찬탄하다 그렇게 됐어요.

우리가 “불교” 하면 뭐겠는가? “부처님의 깨달음의 지혜.” 그 지혜에 의한 가르침. 이것을 불교라고 합니다. 법화경에서 표현할 수 있는 내용 껏 여기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二 삼승을 열어 일불승을 보이다 법화경이 어제 보였듯이,

會三歸一(회삼귀일) =삼승을 (여기서는 열어 라고 했는데,) 모아가지고 일불승으로써 부처의 삶으로 모두 會歸시키는 그런 가르침이다.” 크게 나누면 그렇게 두 가지 과목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방편품은 상당히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一 부처님의 지혜를 찬탄하다

1 제불의 지혜를 찬탄하다 2 석가의 지혜를 찬탄하다

왜 이런 과목이 등장 했는가? 석가모니가 아무리 6년 고행을 하고 깨달았다 하더라도, 저것이 과연 믿을만한 지혜인가? 그것도 우리가 의혹을 품으려면 품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니야, 석가모니의 지혜만 출중한 것이 아니라, 그 지혜는 과거 부처님의 지혜하고 동일해.’ 그래서 증거가 된 겁니다. ‘증명이 된 석가모니의 지혜이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 놓고 믿어도 된다.’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과거불 장ㆍ현재불 장ㆍ미래불 장ㆍ제불 장ㆍ석가모니불 장. 오불 장(五佛 章)이라고 하는 것도 나옵니다.

제2 방편품(方便品)

一 부처님의 지혜를 찬탄하다

1 제불의 지혜를 찬탄하다

爾時世尊(이시세존)이 從三昧安詳而起(종삼매안상이기)하사

告舍利弗(고사리불)하사대 諸佛智慧(제불지혜)

甚深無量(심심무량)이시고 其智慧門(기지혜문)

難解難入(난해난입)이라 一切聲聞辟支佛(일체성문벽지불)

所不能知(소불능지)니라 所以者何(소이자하)

佛曾親近百千萬億無數諸佛(불증친근백천만억무수제불)하사

盡行諸佛無量道法(진행제불무량도법)하야

勇猛精進(용맹정진)하야 名稱普聞(명칭보문)하며

成就甚深未曾有法(성취심심미증유법)하야

隨宜所說(수의소설)이 意趣難解(의취난해)니라

爾時世尊(이시세존)이 그 때 세존이 從三昧(종삼매), 삼매로 조차

安詳而起(안상이기)하사 아~~ 좋은 말 나왔습니다. 安詳而起.

삼매로 부터 安詳히 일어났다. 초발심자경문에 “요수안상” 그랬지요?

執放(집방)에 要須安詳(요수안상)하라. 우리가 발우대를 잡고 놓고, 숟가락 젓가락을 잡고 놓고 할 때 어떤 자세로 해야 되는가? 安詳히 하라.

아주 이것이 우리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어요. 편안하게, 그리고 아주 섬세하게, 자세 詳자는 아주 미세하게, 0점 1미리도 불필요한 동작은 하지 않아야 되는 것이 詳자입니다.

그래 우리가 죽비 칠 때도요. 손을 높이 올려들고, 선방에서 입선 죽비를 칠 때, 손을 높이 올려들고 치는 것이 아주 불필요한 동작입니다.

딱 들만치 들고, 1미리도 더 들 필요가 없으면 안 들어야 돼요.

딱 들만치 들고는 딱. 아주 간결한 동작. 가장 간결한 동작.

이것이 安詳입니다. 보기도 아주 거북해 보이게 거추장스러운 그런 동작을 하는 것은 어떤 불교정신에 맞지 않고, 특히 선의 간결 소박한 정신에 맞지 않는 동작입니다. 비록 죽비 하나치는 것 까지도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장삼을 걸고 가사를 걸고 신발을 놓고 하는 이것이 전부 하나하나가 선의 정신에 입각한 배열이라야 되는 겁니다. 선의 정신에 입각한 배열...

그래 그런 것들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安詳입니다.

삼매에서 깨어나는데 무슨 죽비 소리가 있겠습니까? 무슨 자리에 앉았다 후닥닥 일어나겠습니까? 그런 일은 전혀 없거든요.

그저 부처님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삼매에서 깨어났을 뿐이지, 밖으로는 전혀 표시가 없습니다. 安詳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 거대한 삼매로부터 깨어났다 하는 그런 뜻이지요. 아주 참 좋은 말입니다.

그리고는 告舍利弗(고사리불)하사대, 부처님말씀은 처음이지요.

저 앞에는 그야말로 서론이기 때문에 어떤 배경설명만 했습니다.

諸佛智慧(제불지혜)는, 사리불에게 고 하사대,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甚深無量(심심무량)이시고, 찬탄부터 하는 겁니다. 甚深無量입니다.

하~~ 매우 깊고 한량이 없다. 其智慧門(기지혜문)은 그 지혜의 문은

難解難入(난해난입)이라. 이해하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렵다.

一切聲聞과 辟支佛(일체성문벽지불)의 所不能知(소불능지)다.

성문ㆍ벽지불. 이 사람들은 알 까닭이 없는 그런 경지입니다.

성문은 뭐지요? 사제팔정도를 닦는 수행자지요?

그 다음에 연각은, 성문은 인연 도리. 12인연을 또는 연기 도리를 수행하는 수행자가 벽지불입니다. 그러니까 이 법화경에는 그것을 그렇게 장려하지를 아니해요. 사제팔정도나 12인연이나 연기나 空 같은 것. 크게 장려하지를 않습니다. 공에 대한 이야기는 가끔 한 마디 씩 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저~ 연각들이 닦는 겁니다. 空도리는요.

所不能知라. 그들은, 그런 공부를 한 사람으로서는 능히 알 수가 없는 경지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까닭이 무엇인가?

佛曾親近(불증친근) 부처님은 일찍이 百千萬億無數諸佛(백천만억무수제불)을 친근해서 盡行諸佛無量道法(진행제불무량도법)이라.

모든 부처님의 무량한 도법을 모두모두 다 행했다.

그래서 勇猛精進(용맹정진)해서 名稱普聞(명칭보문)이여.

그 소문이 널리 퍼졌어요. 그리고 成就甚深未曾有法(성취심심미증유법), 심심미증유법을 성취해서 隨宜所說(수의소설)이 意趣難解(의취난해)니라. 또 그들의 편의를 따라서 마땅함을 따라서 설하는 바.

그런데 아이들에게 예를 들어서, 아이들이 우니까 “문밖에 호랑이가 왔다.” 라고 하는 그 말을 아이들은 못 알아들어요. 어른들은 알아들어요. 아이들에게 밖에 호랑이가 왔다. 하는 것이 隨宜所說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말하자면 상대의 근기에 맞춰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것을 아이들이 어떻게 알 겁니까? 모르는 겁니다. 意趣難解입니다.

그래서 경전에 부처님이 이러고저러고 설명해 놓은 이것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또 어떤 수준에 맞춰서 이렇게 이런 말씀을 했는가?

이것은 우리가 잘 몰라요.

그러니까 우리가 불교 전체를 아주 깊이 있게 연구를 하면, ‘아 그건 이러이러한 대상을 염두에 두고 설한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대강은 짐작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8만4천 법문은 8만 4천 종류의 병에 맞춘 약 방문이다. 처방전이다. 이렇게 표현하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意趣難解니라. 이렇게 칭찬을 했습니다. 불 지혜에 대해서요. 그 다음에

2 석가의 지혜를 찬탄함

舍利弗(사리불)吾從成佛已來(오종성불이래)

種種因緣(종종인연)種種譬喩(종종비유)

廣演言敎無數方便(광연언교무수방편)하야

引導衆生(인도중생)하야 令離諸著(영리제착)하노니

所以者何(소이자하)오

如來(여래)方便知見波羅密(방편지견바라밀)

皆已具足(개이구족)이니라

舍利弗(사리불)아 如來知見(여래지견)은

廣大深遠(광대심원)하사 無量無礙(무량무애)와

力無所畏(역무소외)와 禪定解脫三昧(선정해탈삼매)에

深入無際(심입무제)하사

成就一切未曾有法(성취일체미증유법)하니라

舍利弗(사리불)아 如來(여래)가 能種種分別(능종종분별)하사

巧說諸法(교설제법)하시니 言辭柔輭(언사유연)하야

悅可衆心(열가중심)이니라

舍利弗(사리불)取要言之(취요언지)컨댄

無量無邊未曾有法(무량무변미증유법)佛悉成就(불실성취)니라

舍利弗(사리불)아 吾從成佛已來(오종성불이래)로, 나도, (저 앞에는 제불 지혜지만,) 나도 성불한 이래로 種種因緣(종종인연)과 種種譬喩(종종비유)로써 廣演言敎無數方便(광연언교무수방편)하야, 廣演言敎. 言敎와 무수한 방편으로써 널리 연설해 가지고서 引導衆生(인도중생)

중생들을 인도해令離諸著(영리제착)이라. 모든 집착을 떠나도록 했노니, 所以者何(소이자하)오. 까닭이 무엇인가?

如來(여래)는 方便와 知見의 波羅密(방편지견바라밀).

방편과 지혜. 지견이라면 지혜나 마찬가지에요. 방편과 지견으로써 저 언덕에 이르게 하는 그 방법을 皆已具足(개이구족)이니라. 이미 다 갖추고 있다.

 

舍利弗(사리불)아 如來의 知見(여래지견)은 廣大深遠(광대심원)해서

無量無礙(무량무애)야. 한량이 없고 걸림이 없어, 力無所畏(역무소외).

十力ㆍ四無所畏. 禪定ㆍ解脫ㆍ三昧(선정해탈삼매). ←이것이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능력인데요. 거기에 深入無際(심입무제). 끝없이 깊이깊이 들어갔다. 사무량도 그렇고요. 사무애ㆍ십력ㆍ사무소외ㆍ선정ㆍ해탈. 해탈도 8해탈이 있습니다. 이런 법수는 여기서 구태여 낱낱이 해석할 겨를이습니다. 그것은 사전으로 참고 하시기 바라고요.

삼매도 3삼매라는 것도 있고요. 그런 모든 부처님이 갖춘 경지에 深入無際라. 끝없이 깊이 들어갔다. 그래서 成就一切未曾有法(성취일체미증유법)라. 일체 미증유법을 성취했다.

舍利弗(사리불)아 如來(여래)가 能種種分別(능종종분별)하사,

능히 가지가지로 分別해서 巧說諸法(교설제법)하시니 여러 가지 법을 아주 잘 설명하시니, 言辭도 柔輭(언사유연)해. 말이 아주 부드럽고 음성도 좋아요. 마이크도 필요 없어요. 悅可衆心(열가중심)이라. 대중들의 마음을 아주 기쁘게 했어요. 이럴 때는 자도 기쁠 可자입니다. 아주 기쁘고 기쁘게 했다. 음성만 들어도, 그 뜻은 모르고 음성만 들어도 그만 기분이 좋은 겁니다. 더 듣고 싶은 겁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그 음성 더 듣고 싶은 그런 능력을 갖춘 부처님입니다.

舍利弗(사리불)아 取要言之(취요언지)컨댄, 요점만 들어서 한 번 말해 본다면, 無量ㆍ無邊ㆍ未曾有法(무량무변미증유법)을 佛悉成就(불실성취)다. 량없고 가없는 未曾有한 法을 부처님은 다 다 성취했다.

이렇게 요약해서 말할 수가 있다 이겁니다. 이것도 설법하는데 아주 중요한 기술입니다. 쭉~ 이렇게 자세히, 장황하게 설명해놓고, 마지막에 아주 간단한 말로써 한 마디로 딱 표현해 주는 것. 이 보십시오.

아주 오래된 경전인데도 표현 방법이 아주 뛰어납니다. 앞에서 길게 설명해놓고, 사리불아, 요점만 들어서 내가 말한다면 無量ㆍ無邊ㆍ未曾有法을 佛悉成就다. 부처가 다 성취했다. 이렇게 칭찬해놓고,

아주 그 어느 경전에도 볼 수 없는 소위 삼지삼청장이 나옵니다.

“에이 그만 두자. 내가 제지혜도 찬탄했고, 내 지혜도 찬탄했다만 그만 두자. 이 이야기한들 누가 알아듣겠나?” 이 말입니다.

자가 그만두자 하는 뜻입니다. 그칠 지.

3 삼지삼청장(三止三請章)

(1) 제일지(第一止)

止(지)하라 舍利弗(사리불)아 不須復說(불수부설)이니

所以者何(소이자하)오

佛所成就第一希有難解之法(불소성취제일희유난해지법)은

唯佛與佛(유불여불)이라사

乃能究盡諸法實相(내능구진제법실상)하나니라

止(지)하라 舍利弗(사리불)아, 그만두자 사리불아,

不須復說(불수부설)이니,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佛所成就第一希有難解之法(불소성취제일희유

난해지법)은, 부처님이 성취한 제일가고 희유하고 난해한 그 법은

唯佛與佛(유불여불)이어라. 부처와 부처 끼리만이 乃能究盡諸法實相(내능구진제법실상)이라. 諸法實相을 능히 알 수가 있지, 그 외의 저 쫄 떼기 성문ㆍ연각 이까짓 것 상대 않는다 이겁니다. 그 사람들 못 알아듣는다. “에이 그만 두자. 내가 괜히 말 꺼냈다.” 고...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또 덧붙여서

(2) 십여시장(十如是章)

所謂諸法(소위제법)에 如是相(여시상)이며 如是性(여시성)이며

如是體(여시체)며 如是力(여시력)이며 如是作(여시작)이며

如是因(여시인)이며 如是緣(여시연)며 如是果(여시과)며

如是報(여시보)며 如是本末究竟等(여시본말구경등)이니라

所謂諸法(소위제법)이라는 것은, 諸法 = 모든 존재.

“모든 존재” 하면, 말소리에서부터 보이는 것ㆍ보이지 않는 것ㆍ유형ㆍ무형ㆍ모든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諸法. 이렇게 합니다.

如是相(여시상). 그 나름대로 와 같은 모양이 있어요. “연필”하면 연필의 모양이 있어요.

如是性(여시성). 연필은 연필로써의 성질있어요. 사람도 똑 같습니다. 여기서 예를 들어서 “갑이라고 하는 사람.”하면 똑 같아요.

갑이라고 하는 사람은 독특한 모양을 가지고 있어요. 또 독특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요.

如是體(여시체). 독특한 체질을 가지고 있어요. 연필도 마찬가지입니다.

 

如是力(여시력).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연필은 연필의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모든 사람 다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하나의 능력에 힘이 좀 못 미친다고 해서 그 사람 모든 능력이 다 안 되느냐? 그것이 아닙니다. 다른 데는 나보다 열배 스무 배 나은 면이 있고, 또 내가 사람보다 열배 스무 배 나은 면이 있고요. 서로가 다 장ㆍ단점이 있는 것이지, 한 가지 뭐 자기 기준에, 말하자면 능력이 되느니 안 되느니 절대 사람을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如是力. 그 나름대로 다 능력이 있다.

 

如是作(여시작). 연필은 연필대로의 작용있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如是因(여시인). 말하자면 그 나름대로 다 원인있고,

如是緣(여시연). 직접 원인을 이라고 그러고 간원인을 이라고 그러지요. 또 거기에 따라서는

如是果(여시과). 결과가 있습니다. 연필로 뭘 썼다 하면 그 쓴 결과는 글씨가 아니겠습니까? 그림일 수도 있고요. 또 거기에 대한

如是報(여시보). 과보. 그것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보가 있고요.

如是本末究竟等(여시본말구경등)이니라. 처음과 끝이 모두 한결같은 그러한 성질을 모든 존재는, 소위 諸法은 가지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칭찬만 떡 해놓습니다. 諸法에 대한 이야기. 이런 것을 네가 어떻게 알겠느냐? “에이 그만 두자.” 이런 뜻이지요. 그 다음에 게송으로 거듭 설하지요.

그러니까 孤起頌(고기송)이 있고, 重頌(중송)이 있지요.

고기송은 법구경 같이 오로지 게송으로만 되어있는 것을 孤起頌. 그래요.

중송은 앞에 산문이 있고 그것을 반복해서 또는 좀 더 부연하기 위해서 설하는 것을 重頌. 거듭 重자. 게송 頌자. 그래서 거듭 설하다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이것은 또 생략을 하겠습니다.

(3)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爾時世尊(이시세존)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世雄不可量(세웅불가량)이라 諸天及世人(제천급세인)

一切衆生類(일체중생류) 無能知佛者(무능지불자)니라

佛力無所畏(불력무소외) 解脫諸三昧(해탈제삼매)

及佛諸餘法(급불제여법) 無能測量者(무능측량자)니라

本從無數佛(본종무수불) 具足行諸道(구족행제도)이신

甚深微妙法(심심미묘법) 難見難可了( 난견난가료)니라

於無量億劫(어무량억겁) 行此諸道已(행차제도이)하시고

道場得成果(도량득성과)를 我已悉知見(아이실지견)호라

如是大果報(여시대과보) 種種性相義(종종성상의)

我及十方佛(아급시방불) 乃能知是事(내능지시사)니라

是法不可示(시법불가시) 言辭相寂滅(언사상적멸)이니라

諸餘衆生類(제여중생류) 無有能得解(무유능득해)

除諸菩薩衆(제제보살중) 信力堅固者(신력견고자)하고

諸佛弟子衆(제불제자중) 曾供養諸佛(증공양제불)하고

一切漏已盡(일체루이진)하야 住是最後身(주시최후신)

如是諸人等(여시제인등) 其力所不堪(기력소불감)이니라

假使滿世間(가사만세간) 皆如舍利弗(개여사리불)하야

盡思共度量(진사공탁량)이라도 不能測佛智(불능측불지)하며

正使滿十方(정사만시방) 皆如舍利弗(개여사리불)하며

及餘諸弟子(급여제제자) 亦滿十方刹(역만시방찰)하야

盡思共度量(진사공탁량)이라도 亦復不能知(역부불능지)하며

辟支佛利智(벽지불이지) 無漏最後身(무루최후신)

亦滿十方界(역만시방계)하야 其數如竹林(기수여죽림)하니

斯等共一心(사등공일심)으로 於億無量劫(어억무량겁)

欲思佛實智(욕사불실지)라도 莫能知少分(막능지소분)하며

新發意菩薩(신발의보살) 供養無數佛(공양무수불)하야

了達諸義趣(요달제의취)하며 又能善說法(우능선설법)하는이가

如稻麻竹葦(여도마죽위)하야 充滿十方刹(충만시방찰)하야

一心以妙智(일심이묘지) 於恒河沙劫(어항하사겁)

咸皆共思量(함개공사량)하야도 不能知佛智(불능지불지)하며

不退諸菩薩(불퇴제보살) 其數如恒沙(기수여항사)하야

一心共思求(일심공사구)라도 亦復不能知(역부불능지)니라

又告舍利弗(우고사리불)하노니 無漏不思議(무루부사의)

甚深微妙法(심심미묘법) 我今已具得(아금이구득)하니

唯我知是相(유아지시상)하고 十方佛亦然(시방불역연)이니라

舍利弗當知(사리불당지)하라 諸佛語無異(제불어무이)

於佛所說法(어불소설법) 當生大信力(당생대신력)이라

世尊法久後(세존법구후) 要當說眞實(요당설진실)이니라

告諸聲聞衆(고제성문중) 及求緣覺乘(급구연각승)

我令脫苦縛(아령탈고박)하야 逮得涅槃者(체득열반자)하노니

佛以方便力(불이방편력)으로 示以三乘敎(시이삼승교)

衆生處處著(중생처처착)일새 引之令得出(인지령득출)하노라

(4) 대중들의 의문

爾時大衆中(이시대중중)에

有諸聲聞漏盡阿羅漢(유제성문누진아라한)인

阿若憍陳如等千二百人(아야교진여등천이백인)과

及發聲聞辟支佛心(급발성문벽지불심)인

比丘比丘尼(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가

各作是念(각작시념)하대 今者世尊(금자세존)이

何故慇懃稱歎方便(하고은근칭탄방편)하시고

而作是言(이작시언)하사대 佛所得法(불소득법)은

甚深難解(심심난해)하야 有所言說(유소언설)을

意趣難知(의취난지)라 一切聲聞辟支佛(일체성문벽지불)의

所不能及(소불능급)이라하시는가

佛說一解脫義(불설일해탈의)하시면

我等亦得此法(아등역득차법)하야 到於涅槃(도어열반)이어늘

而今不知是義所趣(이금부지시의소취)로다하니라

爾時大衆中(이시대중중)에, 그 때에 대중 가운데서

有諸(유제). 모든 聲聞ㆍ漏盡ㆍ阿羅漢성문누진아라한)인, 루가 다한,

번뇌가 다한 아라한인 阿若憍陳如等千二百人(아야교진여등천이백인)과, 금강경에 나오는 사람들이지요. 1200명. 1250인데 큰스님들만 들었네요. 그 다음에 及發聲聞辟支佛心(급발성문벽지불심)인 성문의 마음. 또는 벽지불의 마음을 낸 比丘ㆍ比丘尼(비구비구니)와 優婆塞ㆍ優婆夷(우바새우바이)가 各作是念(각작시념)하대, 각각 이러한 생각을 했어요.

1200명과 지금 막 발심을 한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각각 이런 생각을 하기를,

今者世尊(금자세존)이 何故慇懃稱歎方便(하고은근칭탄방편)하시고,

지금 세존께서 어쩌려고 은근하게 방편을 찬탄하시고,

而作是言(이작시언)하사대, 이런 말씀을 하시대,

佛所得法(불소득법)은, 부처님이 얻은바 법은,

甚深難解(심심난해). 매우 깊어서 난해하다.

有所言說(유소언설)을 意趣難知(의취난지)라. 그리고 부처님이 설사 설명한다 하더라도 그 뜻을 難知. 알기가 어렵다라고 하는가?

一切聲聞辟支佛(일체성문벽지불)의 所不能及(소불능급).

성문이나 벽지불. “너희는 상대할 바가 못 된다.” 라고 아, 이렇게 이야기하시는가? 아, 그동안은 우리를 잘도 가르치더니, 오늘 와서 어찌 저런 말씀을 하시는가? 佛說一解脫義(불설일해탈의)하시면, 부처님께서 하나의 해탈에 대한 이치를 설명하실 것 같으면 我等亦得此法(아등역득차법)하야,

아 우리도 충분히 다 이해한다 이겁니다. 해탈 그까짓 것 못 알아들을 턱이 있겠는가? 그래서 到於涅槃(도어열반)이어늘,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 말입니다.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는데, 而今不知是義所趣(이금부지시의소취)로다. 그런데 도대체 부처님이 어쩌려고 이제 저런 말씀을 하시느냐?

우리도 그 동안 충분히 공부 많이 했고, 열반 정도야 우리도 다 터득했고, 해탈 이야기 하면 그것 다 알아 듣는데 아 어떻게 해서 “그만 두자” 라고

하시는가? 알 길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에이 부처님이 저렇게 입을 뗐는데 우리보고 좀 더 청하라는 뜻이겠지.’ ‘한 번 빼는 거겠지.’ ‘가 버리려고 하는 거겠지.’ 이런 정도로 우리가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 일 청법(第一請法)이라. 사리불이 누굽니까? 부처님의 그야말로 A급제자 아닙니까?

그래서 사리불이 청법을 합니다. 그 사리불이 인도사회에서 최고 지성인이거든요. 그리고 아주 영리하고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나고요.

이 사람은요. 理에나 事에나 제일 뛰어난 머리를 가진 분이 사리불입니다. 사리불은 지혜도 뛰어나지만 事에도 아주 능합니다.

불교역사상 제일 훌륭한 사찰. 기원정사지요.

기수급고독원이라고 하는 금강경의 무대인 기원정사를 전부 설계하고,

자재구입도 하고 감리하고, 일체건축총책임을 맡았던 이가 사리불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에도, 건축업에도 보통 뛰어난 분아닙니다.

그런데 사리불앞에서 부처님이 삭~ 무시해버리니까 사리불이 그냥 있을 수가 없지요.

(5) 제일청법(第一請法)

爾時舍利弗(이시사리불)이 知四衆心疑(지사중심의)하며

自亦未了(자역미료)하야 而白佛言(이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하 何因何緣(하인하연)으로

慇懃稱歎諸佛第一方便(은근칭탄제불제일방편)이

甚深微妙(심심미묘)하야 難解之法(난해지법)하시닛고

我自昔來(아자석래)로

未曾從佛聞如是說(미증종불문여시설)이니다

今者四衆(금자사중)이 咸皆有疑(함개유의)하오니

惟願世尊(유원세존)은 敷演斯事(부연사사)하소서

世尊何故(세존하고)로

慇懃稱歎甚深微妙難解之法(은근칭탄심심미묘난해지법)하시닛고

爾時舍利弗(이시사리불)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야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慧日大聖尊(혜일대성존)이 久乃說是法(구내설시법)이로다

自說得如是(자설득여시) 力無畏三昧(역무외삼매)

禪定解脫等(선정해탈등) 不可思議法(불가사의법)이라하시며

道場所得法(도량소득법) 無能發問者(무능발문자)하며

我意難可測(아의난가측)하야 亦無能問者(역무능문자)라하시며

無問而自說(무문이자설)하사 稱歎所行道(칭탄소행도)하사대

智慧甚微妙(지혜심미묘)하야 諸佛之所得(제불지소득)이라하시니

無漏諸羅漢(무루제나한) 及求涅槃者(급구열반자)

今皆墮疑網(금개타의망)이어늘 佛何故說是(불하고설시)닛고

其求緣覺者(기구연각자) 比丘比丘尼(비구비구니)

諸天龍鬼神(제천용귀신) 及乾闥婆等(급건달바등)

相視懷猶豫(상시회유예)하야 瞻仰兩足尊(첨앙양족존)하노이다

是事爲云何(시사위운하)닛고 願佛爲解說(원불위해설)하소서

於諸聲聞衆(어제성문중)에 佛說我第一(불설아제일)이나

我今自於智(아금자어지) 疑惑不能了(의혹불능료)니다

爲是究竟法(위시구경법)이닛고 爲是所行道(위시소행도)닛가

佛口所生子(불구소생자) 合掌瞻仰待(합장첨앙대)하니

願出微妙音(원출미묘음)하사 時爲如實說(시위여실설)하소서

諸天龍神衆(제천용신중) 其數如恒沙(기수여항사)하며

求佛諸菩薩(구불제보살) 大數有八萬(대수유팔만)이며

又諸萬億國(우제만억국) 轉輪聖王至(전륜성왕지)하야

合掌以敬心(합장이경심)으로 欲聞具足道(욕문구족도)하노이다

爾時舍利弗(이시사리불)이, 그 때 사리불이 知四衆心疑(지사중심의)하며 또 自亦未了(자역미료)라. 사부대중이 의심하는 것 하고, 또 자기 자신도 궁금해요. 그것을 생각을 해서 而白佛言(이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하, 세존이시여, 何因何緣(하인하연)으로 무슨 因, 무슨 으로, 무슨 인연으로 慇懃稱歎諸佛第一方便(은근칭탄제불제일방편).

은근히 諸佛의 第一方便이 甚深微妙(심심미묘)라고 찬탄만 해서,

難解之法(난해지법)이라고 그렇게 합니까?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법이라고 찬탄하십니까?

我自昔來(아자석래)로 제가 옛날로 부터 일찍이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우리를 삭~ 무시하고, 괜히 말씀을 꺼내다가 “에~ 이, 그만두자.” 하고, 이렇게 하는 예는 未曾從佛聞如是說(미증종불문여시설)이니다. 아직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今者四衆(금자사중)이, 지금 사부대중이 咸皆有疑(함개유의)하오니,

다 모두 의심하고 있습니다. 惟願世尊(유원세존)은, 오직 원하옵노니 세존께서는 敷演斯事(부연사사). 이 일에 대해서 부연해서 설명해주십시오. 이왕 말 꺼냈으니까...

世尊은 何故(세존하고)로 慇懃稱歎甚深微妙難解之法(은근칭탄심

심미묘난해지법)하시닛고? 爾時舍利弗(이시사리불)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이것은 게송으로써, 산문으로써 청하고, 그 다음에 또 게송으로 청하그런 내용입니다. 게송으로써 청하는... 모두 각자 게송내용도 곰곰이 훑어보고 읽어 보십시오. 읽어 보면 산문에서 없었던 그런 내용도 많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인 뜻은 산문의 내용하고 똑 같습니다.

그 다음에 제 이 지(第二止). 두 번째도 “그만 두자” 이런 뜻이지요.

(6) 제이지(第二止).

爾時(이시)에 佛告舍利弗(불고사리불)하사대 止止(지지)하라

不須復說(불수부설)이니 若說是事(약설시사)하면

一切世間(일체세간)에 諸天及人(제천급인)이

皆當驚疑(개당경의)하리라

爾時(이시)에, 그 때에 佛告舍利弗(불고사리불)하사대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고하사대, 止止(지지)하라.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不須復說(불수부설)이니, 다시 더 이상 설할 것이 없다.

若說是事(약설시사)하면, 만약에 이 이야기를 한다면,

一切世間(일체세간)에 諸天及人(제천급인)이 皆當驚疑(개당경의)하

리라. 내가 이 이야기를 하기로 하면 一切世間과 그리고 모든 천상사람.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皆當驚疑. 모두들 다 놀라고 의심할 것이다.

나를 의심할 꺼야. ‘저 부처님이 맞나?’ ‘진짜 부처님인가?’ 하고 나 까지도 의심할 꺼야. 아니면 아주 놀라거나...

그런 아주 엄청난 법이 이야기 되려고 한다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법화경이요? 아주 정말 이 세상에 있는 그 많고 많은 책 중에서 최고가는 한 권의 책이라고 제가 표현을 했는데요.

그럴만한 내용이 담겨 있고요. 또 여기에 벌써 글을 엮어가는, 경을 설해가는 구성이 벌써 충분히 그럴만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묘법연화경 강좌 제2강-2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8. 26) -

사리불이 또 그냥 안 있습니다.

(7) 제이청법(第二請法)

舍利弗(사리불)이 重白佛言(중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하

惟願說之(유원설지)하시며 惟願說之(유원설지)하소서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是會無數百千萬億阿僧祗衆生(시회무수백천만억아승지중생)이

曾見諸佛(증견제불)하야 諸根猛利(제근맹리)하며

智慧明了(지혜명료)하야 聞佛所說(문불소설)하면

則能敬信(즉능경신)하리다

爾時舍利弗(이시사리불)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法王無上尊(법왕무상존)이시여 惟說願勿慮(유설원물려)하소서

是會無量衆(시회무량중)이 有能敬信者(유능경신자)리다

舍利弗(사리불)이 重白佛言(중백불언)하사대 거듭 부처님께 고해 말씀하사대, 世尊(세존)하, 세존이시여 惟願說之(유원설지)하시며 惟願說之(유원설지)하소서.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是會無數百千萬億阿僧祗衆生(시회무수백천만억아승지중생)들이 曾見諸佛(증견제불)하야 일찍이 여러 부처님을 친견했습니다. 그리고 諸根이 猛利(제근맹리)여,

眼ㆍ耳ㆍ鼻ㆍ舌ㆍ身ㆍ意가 다 또록또록하고, 아주 총명합니다.

智慧도 明了(지혜명료)해요. 聞佛所說(문불소설)하면 부처님이 설하신 바를 듣기만하면 則能敬信(즉능경신)하리다. 충분히 공경하고 믿을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확신을 주는 것이지요.

爾時舍利弗(이시사리불)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

言(이설게언)하니라. 또 게송으로써, 그냥 산문으로 이렇게 말해가지고 안 되니까, 산문으로 말씀 하시고 또 시 형식을 빌려서 또 말하는 겁니다. 한 줄이니까 한 번 볼까요?

 

法王無上尊(법왕무상존)이시여 惟說願勿慮(유설원물려)하소서.

오직 설 하시고, 원컨대 염려하지 마소서.

是會無量衆(시회무량중)이, 한량없는 대중들이 有能敬信者(유능경신자)리다. 능히 공경하고 믿을 자가 있을 것입니다.

(8) 제삼지(第三止)

佛復止(불부지)하사대 舍利弗(사리불)아 若說是事(약설시사)면

一切世間天人阿脩羅(일체세간천인아수라)가

皆當驚疑(개당경의)하며 增上慢比丘(증상만비구)는

將墜於大坑(장추어대갱)하리라 爾時世尊(이시세존)이

重說偈言(중설게언)하사대

止止不須說(지지불수설)이니 我法妙難思(아법묘난사)

諸增上慢者(제증상만자)는 聞必不敬信(문필불경신)하리라

그래도 부처님은 또 佛復止(불부지)하사대, 부처님이 다시 또 “그만 둬라” “그만 둬라” 이렇게... 舍利弗(사리불)아 若說是事(약설시사)면,

만약에 이 이야기를 한다면 一切世間ㆍ天人ㆍ阿脩羅(일체세간천인아수라)가 皆當驚疑(개당경의)하며, 모두들 놀라 자빠지고 의심할 것이며,

增上慢比丘(증상만비구)는, 잘난 체하는 비구. 또 공부깨나 했다고 하는 비구. 그런 사람들은 將墜於大坑(장추어대갱)하리라. 큰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將墜. 장차 큰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 공부를 적게 했거나 아니한 사람은, 적게하고 아니했다는 생각 때문에 그냥 수그러들지만, 공부 좀 했다는 사람이 문제거든요. 그것이 아만이 남아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증상만 비구. 공부 좀 했다고 하는 잘난 체하는 비구는 틀림없이 큰 구렁텅이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爾時世尊(이시세존)도 重說偈言(중설게언). 거듭거듭 게송으로 말하네요. 止止不須說(지지불수설). “그만두어라.” “그만두라.”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느니라. 我法妙難思(아법묘난사)라. 나의 법은 미묘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諸增上慢者(제증상만자)는, 모든 增上慢. 잘난 체하는 사람들은 聞必不敬信(문필불경신). 듣고는 반드시 공경하고 믿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니까 사리불이 또 고집이 있는 사람이고, 그야말로 자존심도 있고 하니까 이왕 내킨 김에 ‘누가 이기나 보자.’하고 또 청합니다.

(9) 제삼청법(第三請法)

爾時舍利弗(이시사리불)이 重白佛言(중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하 惟願說之(유원설지)하시며

惟願說之(유원설지)하소서 今此會中(금차회중)에

如我等比百千萬億(여아등비백천만억)은

世世已曾從佛受化(세세이증종불수화)호니

如此人等(여차인등)은 必能敬信(필능경신)하고

長夜安隱(장야안온)하야 多所饒益(다소요익)하리다

爾時舍利弗(시사리불)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無上兩足尊(무상양족존)이시여 願說第一法(원설제일법)하소서

我爲佛長子(아위불장자)호니 惟垂分別說(유수분별설)하소서

是會無量衆(시회무량중)이 能敬信此法(능경신차법)하리다

佛已曾世世(불이증세세)에 敎化如是等(교화여시등)일새

皆一心合掌(개일심합장)하야 欲聽受佛語(욕청수불어)하노이다

我等千二百(아등천이백)과 及餘求佛者(급여구불자)는

願爲此衆故(원위차중고)로 惟垂分別說(유수분별설)하소서

是等聞此法(시등문차법)하면 則生大歡喜(즉생대환희)리다

爾時舍利弗(이시사리불)이 그 때 사리불이, 아 이것 참, 이 법화경은 연극으로 꾸며도 아주 재미있게 되어있어요.

舍利弗이 重白佛言(중백불언)하사대 거듭거듭 白佛言하사대,

世尊(세존)하 세존이시여, 惟願說之(유원설지)하시며 惟願說之하소

서. “제발, 제발 오직 원하노니 설하십시오. 오직 원하노니 설하십시오.” 하면서 막 그냥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숙이고 눈에 선하지 않습니까?

今此會中(금차회중)에, 지금 우리 회상에는 如我等比百千萬億(여아등비백천만억). 우리와 같은 무리들, (比 = 이럴 때는 무리 비자입니다.)

저와 같은 무리들이 백 천 만억이 있습니다.

世世已曾從佛受化(세세이증종불수화)여, 세세 동안 이미 일찍이 부처님으로부터 교화를 받았습니다.

如此人等(여차인등)은, 이와 같은 사람들은 必能敬信(필능경신)하고,

모두 다 敬信. 공경하고 믿게 될 것이고, 長夜에 安隱(장야안온)이라.

길고 긴 우리의 어두운 인생길에 있어서도 법문 듣고는 아주 편안 할 것입니다. 多所饒益(다소요익)하리다. 큰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爾時舍利弗(시사리불)이, 그 때 사리불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사대, 게송은 또 생략하겠습니다.

부처님하고 사리불이 그렇게까지 씨름을 하는 겁니다.

또 사리불은 대중의 대표이다 보니까 안 할 수가 없어요.

부처님 한 분이 지는 것이 낫지 사리불을 대표한 전 대중이 질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사리불이 이렇게 총대를 맨 겁니다.

경전을 읽다, 읽다 이런 경은 처음 보지요? 무슨 부처님하고 사리불하고 꼭 자존심 싸움 하는 것 같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참, 이 법화경은 살아 있어요. 들여다보면 아주 분위기가 첫 째 아주 활발발하게 살아있습니다.

二 삼승을 열어 일불승을 보임

1 오천퇴석장(五千退席章) 이것은 불교역사상 경전에 있는 이야기든, 실지로 있었던 이야기든 관계없이 불교역사상 정말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5000명이나 되는 공부깨나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전부 자리를 박차고 부처님 앞에서 나갑니다. 아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여기서 공부하다가 한 사람만 나가도 저는 기분이 아주 나빠요.

그런데 부처님 앞에서 무려 5000명이 일어나서 나갔다 이겁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뜸을 이렇게 들이는가?

믿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믿기 어렵다.’

지금 이대로 우리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뭐, 속에는 탐욕이 많고 嗔心도 많고 어제까지 하~ 잘못한 일도 많고, 생각 해놓고 뒤돌아보면 그저 허물이고 잘못한 일이고, 남 몰래 참 부끄러운 짓도 많이 했고, 설사 그렇더라도 “그 모습 그대로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이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 동안 불교. 여러분이 알아온 그 불교로서는 늘 그렇잖아요. 우리는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 경지가 저~ 천리만리 하늘 높이 있는 것으로 그렇게 이해하고 있잖아요. 그 동안 불교는 그렇게 가르쳤어요. 그렇게 가르친 불교는 답을 못 찾았습니다. 한 사람도 그런 조건을 갖추어서 부처 된 사람 없습니다. 누가 있습니까? 없어요.

그저 조건만 나열해놓고, 하~ 그냥 참회하고 뭐 죄업소멸하고 탐 진 치 삼독 없애고 어쩌고저쩌고 이런 조건을 한없이, 한없이 나열만 해놨지 그 조건을 충족시킨 뒤에, 그 조건에 맞는 성불한 사람 없습니다.

아무도 없어요. 그러면 그것은 전부가 방편설입니다. 법화경에 와서 진실을 이야기 한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이 부처님이 눈 감기 전에 진실을 이야기하고 가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5000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아 그동안, 이것이 부처님이 70세 넘어서 마지막 8년에 설하신 것이니까, 최소한도 72ㆍ3세 됐을 때 설한 것이고, 또 곧 돌아가신다고 하니까 거의 80에 가까워서 설하신 것으로 되어있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정말 유언처럼, 최후로 가슴에 묻어 두었던 한 마디 말. 그동안 전부 방편으로 이야기했다가 나중에 “아니야, 그것은 내가 그냥 방편으로 한 말이야. 진실은 이것이야.” 라고 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요. 그렇게 오랫동안, 수십 년 동안 부처님 앞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무슨 뜸을 그렇게 들이느냐고 뭐 그만 두려면 그만 둬라. 우리도 그만 두련다 하고 일어난 사람이 5000명입니다. ‘아 부처님, 그만 두려면 그만 두세요. 사리불은 뭐하려고 그렇게 청하냐? 기분 나쁘게... 우리도 그동안 공부할 만치 했다 말이야, 우리 일어나자. 부처님한테 더 이상 배울 것이 뭐 있어?’ 하고 일어난 사람이 5000명이라고요. 아이 세상에 이럴 수가 있어요? 하늘같은 부처님 앞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요? 이런 것들도 법화경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 가슴 속에 아주 깊이 심어주고자 하는 하나의 트릭이라고 할까요? 경전에서는 트릭을 쓰는 겁니다. 신기하잖아요. 경전은 이것 파고 들어가 보면 아주 재미있어요.

二 삼승을 열어 일불승을 보임

1 오천퇴석장(五千退席章)

爾時世尊(이시세존)이 告舍利弗(고사리불)하사대

汝已慇懃三請(여이은근삼청)하니 豈得不說(기득불설)이리요

汝今諦聽(여금체청)하야 善思念之(선사념지)하라

吾當爲汝(오당위여)하야 分別解說(분별해설)하리라

說此語時(설차어시)에 會中(회중)에

有比丘比丘尼(유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五千人等(우바새우바이오천인등)이

卽從座起(즉종좌기)하야 禮佛而退(예불이퇴)하니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此輩罪根深重(차배죄근심중)하고

及增上慢(급증상만)일새 未得謂得(미득위득)하고

未證謂證(미증위증)하야 有如此失(유여차실)이라

是以不住(시이부주)어늘 世尊黙然(세존묵연)하사

而不制止(이불제지)하시니라

爾時佛告舍利弗(이시불고사리불)하사대 我今此衆(아금차중)은

無復枝葉(무복지엽)이고 純有貞實(순유정실)하니

舍利弗(사리불)아 如是增上慢人(여시증상만인)은

退亦佳矣(퇴역가의)라

汝今善聽(여금선청)하라 當爲汝說(당위여설)호리라

舍利弗言(사리불언)하사대 唯然世尊(유연세존)하

願樂欲聞(원요욕문)하노이다

爾時世尊(이시세존)이, 그 때에 세존이 告舍利弗(고사리불)하사대

汝已慇懃三請(여이은근삼청)하니, 그대가 은근히 (아주 신중하게, 이런 뜻입니다.) 아주 신중하게 세 번이나 청하니 豈得不說(기득불설)이리요. 어찌 내가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汝今諦聽(여금체청)하라. 그대는 자세히, 자세히 신중하게 들으라. 그리고 善思念之(선사념지)하라. 깊이깊이 사유하고 또 사유하라. 善思念之.

들은 것을 깊이 사유해야 돼요. 명상하고요.

吾當爲汝(오당위여)하야, 내가 마땅히 그대를 위해서 分別解說(분별해설)하겠다. 說此語時(설차어시)에,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막 (사리불이 그렇게 세 번이나 청하니까 부처님도 못 이기는 척 하고, 그럼 이야기 해주겠다.) 라고 하는데, 會中(회중)에서 그 때에 회중에서 有比丘比丘尼(유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 五千人等(우바새우바이오천인등)이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5000명이 卽從座起(즉종좌기)하야

곧 자리에서부터 일어나서 禮佛而退(예불이퇴)라. 그래도 부처님한테 예는 올리고 나가네요. 예불하고 물러갔다 이겁니다.

이것이 불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마지막 있는 일입니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까닭이 무엇인가?

此輩는 罪根이 深重(차배죄근심중)이여, 이러한 무리들, 저 무리들은

罪根. 죄의 뿌리가 너무 깊고 무겁다. 죄라는 것이 무슨 나쁜 짓한 죄가 절대 아닙니다. 불교에서 善惡이라고 하는 말은 말하자면 선근이 있느냐 없느냐 라고 하는 말은 도덕적으로 그 사람이 착 하냐 악 하냐 하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정말 열려있는 마음. 열려있는 소견으로 이러한 높은 이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받아들일 수 없는가? 하는 그걸 가지고 선악을 따집니다. 그것이 달라요. 우리 도덕적으로, 세속적으로 선악의 문제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선악하 그것이 달라요.

罪根이 深重하고 及增上慢(급증상만)일새. 增上慢. 잘 난 체하는 아만. 높고 높은 아만.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未得謂得(미득위득)이라.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여기고, 未證謂證(미증위증).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고 여겨서, 有如此失(유여차실)이라. 이와 같은 손실이 있다. 허물이 있다. 是以不住(시이부주)어늘 그래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나갔다. 그래서 世尊은 黙然(세존묵연)하사 而不制止(이불제지)여. 나가니까, 5000명이나 나가도 부처님은 制止하지를 않았어요. “야, 왜 나가느냐? 내말 좀 듣고 나가라” 이렇게 절대 안 하고 나가게 내버려 뒀다.

爾時(이시)그 때에 佛告舍利弗(불고사리불)하사대, 我今此衆(아금차중)은, 이것이 중요해요. 잘 들으세요. 우리들, 지금 여기에 앉아있는 대중들은 無復枝葉(무복지엽)이여. 가지와 잎은 하나도 없어. 그리고

純有貞實(순유정실)이라. 貞實만 남아있다. 순수하게 貞實만 남아있다.

이것은 알맹이만 남아있다. 이런 뜻입니다. 가지나 잎은 다 떨어지고 알맹이만 남아있다. 舍利弗(사리불)아 如是增上慢人(여시증상만인)은,

우리는 비로소 이제 알맹이가 된 겁니다. 그 많고 많은 세월 거치다가 이제야 알맹이가 된 겁니다. 이것을 만날 때 까지가 지엽적인 불교공부를 했다면, 지금부터 알맹이 공부하는 셈입니다.

舍利弗아 如是增上慢人은, 이와 같은 增上慢人은 退亦佳矣(퇴역가의)니라. 물러가도 좋다. 잘 난 체하는 저 사람들은 여기 앉아서 내 이야기 듣는다고 해도, 소화도 못 시킬 것이고 들어가지도 않을 거야. 그러니까 물러가는 것도 좋다. 汝今善聽(여금선청)하라. 그대는 지금 잘 들어라.

當爲汝說(당위여설)호리라. 마땅히 그대를 위해서 이야기하겠다.

舍利弗言(사리불언)하사대, 사리불이 말씀하사대,

唯然世尊(유연세존)하 願樂欲聞(원요욕문)하노이다. 예예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듣고자 합니다. 즐겨 듣고자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설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것 참, 5000명이 저렇게 물러나갔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법화경의 시종일관 된 내용은 一佛乘 思想ㆍ人佛 思想. 사람이 그대로, 아무리 허물이 많고 업장이 두텁더라도 허물이 있는 그대로ㆍ업장이 있는 그대로ㆍ남자면 남자그대로ㆍ여자면 여자그대로ㆍ비구는 비구그대로ㆍ비구니는 비구니그대로ㆍ우바새는 우바새그대로ㆍ우바이는 우바이그대로ㆍ병이 있으면 병이 있는 그대로ㆍ탐 진 치 삼독과 8만4천 번뇌가 있으면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손색없는 부처님이라고 하는 이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려운겁니다. 이것이 안 받아 들여지는 겁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말하는 저도 사실은 철두철미한 그런 확신이 있느냐 하면 자신 있게 대답 못할 정도거든요. 이것을 제가 수억만 번 이야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아주 추호의 의혹도 없는가? 먼지만한 의혹도 없는가? 하면 제가

“예 그렇습니다. 라고 그렇게 대답하지 못할 정도거든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런 이치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참으로 어렵다 라고 하는 그런 뜻을 나타내려고 五千退席. 5000명이 물러갔다 하는 이런 내용을 앞에 깔고 있습니다. 제불 증명장이 있고ㆍ과거불 증명장ㆍ미래불 증명장ㆍ현재불 증명장ㆍ석가불 증명장. 이렇게 있어요. 이것은 이 진리는 지금부터 설명하려고 하는 이 진리의 말씀은, 석가불 혼자 깨달아서 혼자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요, 또 현재 모든 부처님도 공히 말한 것이고,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공히 말할 것이고, 과거 모든 부처님도 공히 말했고, 그리고 모든 부처님이 다 공히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이 뜻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화경에서 설하신 이 진리의 말씀. 이것은 엄청난 진리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오불 증명장 앞에 이렇게 설정이 되어있습니다. 안 그러면 ‘부처님이 어쩌다가 실수한 것이 아닌가?

석가모니가 혹시 실수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의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오불장 이 있습니다.

제불증명장ㆍ과거불ㆍ현재불ㆍ미래불ㆍ석가불. 틀림없는 진리의 말씀이다. 그러니까 못을 치고, 치고 또 치고 요지부동으로 만들어 놓는 겁니다.

그러니까 꼭 믿어라. 그대로 알아라. 눈을 확 떠서 그것이 마음에 계합이 딱 되면 더 이상 필요 없지만, 그렇지 않고는 우리가 늘 귀로 듣고, 눈으로 글을 보고, 그래서 사고를 하고, 그래서 생각을 하다가 ‘아~ 진짜 그럴까?’ ‘그럴까?’하고 또 의심도 하게 되고, 또 보니까 그렇게 되어있는데 또 거기에 대해서 또 약간의 의심을 하게 되고, 중생들의 그런 속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장치를 해놓은 겁니다. 의심하지 말라는 장치...

2 오불 증명장(五佛證明章)

(1) 제불 증명장

佛告舍利弗(불고사리불)하사대 如是妙法(여시묘법)을

諸佛如來(제불여래)가 時乃說之(시내설지)하시니

如優曇鉢華時一現耳(여우담발화시일현이)니라

舍利弗(사리불)아 汝等當信佛之所說(여등당신불지소설)이니

言不虛妄(언불허망)이니라

舍利弗(사리불)아

諸佛隨宜說法(제불수의설법)意趣難解(의취난해)니라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我以無數方便(아이무수방편)과

種種因緣(종종인연)과 譬喩言辭(비유언사)로

演說諸法(연설제법)호니 是法(시법)은

非思量分別之所能解(비사량분별지소능해)요

唯有諸佛(유유제불)이라사 乃能知之(내능지지)니라

所以者何(소이자하)오 諸佛世尊(제불세존)이

唯以一大事因緣故(유이일대사인연고)로

出現於世(출현어세)하시니라

舍利弗(사리불)아 云何名諸佛世尊(운하명제불세존)이

唯以一大事因緣故(유이일대사인연고)로 出現於世(출현어세)오

諸佛世尊(제불세존)이 欲令衆生(욕영중생)으로

開佛知見(개불지견)하사 使得凊淨故(사득청정고)로

出現於世(출현어세)하시며

欲示衆生(욕시중생)의 佛之知見故(불지지견고)로

出現於世(출현어세)하시며

欲令衆生(욕영중생)으로 悟佛知見故(오불지견고)로

出現於世(출현어세)하시며

欲令衆生(욕영중생)으로 入佛知見道故(입불지견도고)로

出現於世(출현어세)하시니라

舍利弗(사리불)아 是爲諸佛(시위제불)이

唯以一大事因緣故(유이일대사인연고)로

出現於世(출현어세)하시니라

佛告舍利弗(사리불)하사대 諸佛如來(제불여래)가

但敎化菩薩(단교화보살)하사 諸有所作(제유소작)이

常爲一事(상위일사)시니 唯以佛之知見(유이불지지견)으로

示悟衆生(시오중생)이니라

舍利弗(사리불)아 如來但以一佛乘故(여래단이일불승고)로

爲衆生說法(위중생설법)이요 無有餘乘(무유여승)이

若二若三(약이약삼)이니라 舍利弗(사리불)아

一切十方諸佛(일체시방제불)도 法亦如是(법역여시)니라

佛告舍利弗(불고사리불)하사대 如是妙法(여시묘법)은, 이와 같은 미묘한, 아름다운 법은

諸佛如來(제불여래)가 時乃說之(시내설지)시니, 이에 다 설해서

如優曇鉢華時一現耳(여우담발화시일현이)니라. 마치 우담바라 꽃이 때에 맞추어서 한 번 나타난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물잠자리 알 슬어 놓은 것 가지고 하는 소리 아닙니다. 진짜 우담바라 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잠자리 알 가지고 사기 치는 그것 절대 아닙니다.

제발 그것 우리 자꾸 아니라고 큰 소리 쳐야 사기 치는 사람들이 좀 수그러들 텐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가지고 ‘저것 물잠자리 알 가지고 저렇게 선전 하는데...’ 속으로 하며 가만히 있는 겁니다. 좀 아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큰 소리 치고 그래야 “아 스님 거 물잠자리 알 가지고 왜 그렇게 우담바라 꽃이라고 사기 치느냐고 이렇게 당당하게 좀 이야기를 해야 찔끔해가지고 고치고 할 텐데, 그렇게 아니 하니까 이놈의 正法이, 정법이 도대체가 빛을 볼 날이 없는 겁니다. 아이 당당하게 할 소리 좀하지 뭐가 겁나서 못해요? 이런 데에 우담바라 이렇게 해놓으니까 이걸 가지고... 공교롭게 그 물잠자리 알의 學名이 우담바라입니다. 사전 찾아보니까 학명이 우담바라입니다. 이것하고는 다른데 그 음이 같은 겁니다. 사기 치기 딱 좋게 되어있지요.

경전에 나오는 우담바라 꽃은 최소한도 저기 관악산에 올려져있는 하얀 것. 기상관측 하는 그 정도만큼 거든요. 여기서 봐도 환하게 밝은 날은 다 보이잖아요. 그 정도만한데 현미경 들이대도 보일까 말까하는 그놈 물잠자리 알 슬어 놓은 것 가지고 우담바라라고요?

제발 스님들 그것 바로 잡도록... 스님들이야 그런 사람 없겠지만, 여기에 아니온 다른 사람들 말입니다.

舍利弗(사리불)아 汝等當信佛之所說(여등당신불지소설)이니,

그대들은 마땅히 부처님이 설하신 바를 믿을지니, 言不虛妄(언불허망).

말이 허망하지 않다. 舍利弗(사리불)아 諸佛隨宜說法(제불수의설법)은,

모든 부처님이 편의를 따라서, 편리함을, 근기에 맞춘 설법을 隨宜說法 그래요. 隨宜說法은 意趣難解(의취난해)다. 예를 들어서 어린 아이에게 “밖에 호랑이가 왔다.” 하면 그만 곧이곧대로 듣고 울음을 뚝 그치는 겁니다. 어린 아이가 그 부모의 속을 어떻게 알아요? 意趣難解지요.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我以無數方便(아이무수방편)과 나는 無數한 方便과 種種因緣(종종인연)과 譬喩와 言辭(비유언사)로서 演說諸法(연설제법)호니, 제법을 연설하니, 是法(시법)은, 이 법은,

非思量分別之所能解(비사량분별지소능해)라. 사량 분별로써 능히 이해할 바가 아니다. 唯有諸佛(유유제불)이라사, 오직 제불이라야

乃能知之(내능지지)다. 이에 능히 알 수 있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諸佛世尊(제불세존)이 唯以一大事因緣故(유이일대사인연고)로 出現於世(출현어세)하시니라.

이제 一大事因緣나오네요. 부처님이 이 땅에 왜 왔느냐? 초파일 날,

부처님오신 날 봉축 행사할 때 으레 나오는 소리. 一大事因緣.

오직 一大事因緣으로써 이 세상에 출현했다.

舍利弗(사리불)아 云何名諸佛世尊(운하명제불세존)이 唯以一大事因緣故(유이일대사인연고)로 出現於世(출현어세)오?

무엇을 가지고 一大事因緣. 이것을 우리말로 정확하게 바꾸면요.

하나의 큰 사연이 있어서 이렇게 하면 돼요.

부처님이 이 땅에 온 것은 하나의 큰 사연이 있어서 이 세상에 왔다. 그 사연이 뭔가? 우리 모두 사연이 있어서 여기 공부하러 왔듯이 부처님도 이 땅에 온 것이 큰 사연이 있어요.

뭐냐? 諸佛世尊(제불세존)이, 여기서부터, 唯以一大事因緣부터 계속 줄그어야 될 판이네요. 諸佛世尊이 欲令衆生(욕영중생)으로, 중생으로 하여금 開佛知見(개불지견) 줄긋고요. 자에다 동그라미 치고요.

佛知見을 열어, 부처님의 지견, 부처님의 지혜를 열어 가지고서

使得凊淨故(사득청정고)여, 거기에 청정함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부처님의 지견을 중생들에게 얻도록 하기 위해서, 그 훌륭함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出現於世(출현어세). 세상에 출현했고, 또 欲示衆生(욕시중생)의

佛之知見故(불지지견고)로 보일 자에 동그라미 해요.

입니다. 중생들에게 佛知見을 보여 주고자 하기 위해서, 중생들에게 부처의 지혜를 보여 주기 위해서 부처님은 出現於世(출현어세)야. 부처님은 세상에 출현했어요. 그 다음에

欲令衆生(욕영중생)으로 悟佛知見故(오불지견고)로, 깨달을 자에 동그라미요. 개 시 오. 부처님의 지견을 깨닫게 해주려고 出現於世라. 세상에 출현했다. 그 다음에 欲令衆生(욕영중생)으로 入佛知見道故(입불지견도고)로 出現於世라하시니라. 자에 동그라미요. 그래서

佛之知見. 생략을 해서 그래요.

佛知見 = 開佛之知見.

갈 之자를 하나 더 넣기도 하고 그럽니다.

佛知見道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出現於世. 세상에 출현했다.

그럼 佛知見이라는 것이 뭐냐? 도대체 불지견이 뭐기에 열어주고 보여 주고 깨닫게 해주고 그 속에 들어가서 살도록 하려고 부처님이 이 땅에 왔느냐?

舍利弗(사리불)아 是爲諸佛(시위제불)이 이 모든 부처님이

唯以一大事因緣故(유이일대사인연고)로 오직 一大事因緣때문에 出現於世세상에 출현하시니라.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까...

옛날에 어떤 사람이 길을 가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어린 아이를 업고, 어린 아이를 달래면서 계속 “야야, 너희 아버지만 같아라.” “너의 아버지만 같아라.” 하고 자꾸 어린 아이에게 그러더래요.

‘쟤들 아버지가 뭘 하기에 저렇게 어머니가 너희 아버지 같아라. 하고 저렇게 하는가?’ 하고 하도 궁금해서 물어보니까 그 동네 반장이더래요.

자기 사는 동네에 반장을 하는데, 반장이면 반에서 제일이잖아요.

그러니까 너희 아버지만 같아도 큰 출세했다 이 것이지요.

부처님은 당신이 깨달으신 그 내용을 중생들에게 당신과 똑 같이 깨닫고 수용하도록 하는 것이 당신의 원입니다. 부처님의 원이에요.

부처님 소원은 그 겁니다. 저도 소원이 또 있어요. 법화경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법화경을 아주, 아주 깊이 공부해가지고, 이것을 혼신의 힘을 다해서 세상에 널리 좀 전하는 법화행자ㆍ법화수행자ㆍ법화경법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부처님은 당신이 깨달은 것. 전부 그렇습니다. 당신이 깨달은 것을 중생들에게 깨닫도록 해주는 것. 이것이 부처님소원입니다. 저는 법화경에 미처 있는 사람이니까 모든 사람들이 법화경공부를 많이 해가지고, 법화경가지고 세상을 평화롭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했으면, 모두가 법화경법사가 됐으면 하는 그런 소원이 있어요.

어떤 아주머니는 아들에게 자기 아버지가 그 동네 반장인데, 반장만 됐으면, 반장만 됐으면 하듯이, 어쨌든 각자 나름대로, 자기 그릇만치, 자기 안목만치, 자기 올라간 만치 자기 제자들, 자기하고 인연 있는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 이것이 인간의 정말 보통 마음입니다.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부처이길 바라고요. 그렇습니다.

그것 참, 당연한 것이지요. 그것이 佛知見입니다.

이것 때문에 부처님은 이 세상에 오셨다.

 

佛告舍利弗(불고사리불)하사대 諸佛如來(제불여래)가 但敎化菩薩(단교화보살)하야, 다만 보살을 교화하사 諸有所作(제유소작)이 모든 하는 바 들이 常爲一事(상위일사)시니 항상 하나의 일. 한 가지 일. 부처님은 한 가지 일 뿐이다 이겁니다. 한 가지 일 뿐입니다.

唯以佛之知見(유이불지지견)으로 示悟衆生(시오중생)이니라.

오직 佛知見.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지견으로써 중생들에게 보여주고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줄인 것이지요.

示悟衆生이다.

 

舍利弗(사리불)아 如來는 但以一佛乘故(여래단이일불승고)로,

다만 일불승, 하나의 불승. 一佛乘. 이것이 부처의 삶. 一佛乘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부처의 삶... 일불승을 위한 까닭으로 爲衆生說法(위중생설법)이라. 중생들을 위해서 설법하는 것이고, 無有餘乘(무유여승)의 若二若三(약이약삼)이니라. 나머지 乘. 나머지가르침. 자는 가르침입니다. 이 자가 해석이 좀 어렵지요. 나머지가르침. 2승이나 3승.

若二若三. 2승이나 3승은 없다. 성문ㆍ연각ㆍ보살 없다 말입니다.

2승은 성문ㆍ연각이고, 3승하면 거기다 보살까지 합하는 겁니다.

성문ㆍ연각ㆍ보살은 없다. 모든 사람이 전부가 부처다. 一佛乘이다.

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먹혀들겠습니까?

그러니까 아직도 남방불교, 소승 불교에는 보살이라는 말도 없고,

또 부처라는 말도 없어요. 부처님은 오직 석가모니 한 분 뿐입니다.

그런데 대승 불교에 와서 비로소 모든 사람들의 궁극적 차원.

본래인. 어제 본문 이야기했지요? 궁극적 차원인 그 본래인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부처님입니다. 부처 아닌 사람이 없다고요.

그런데 남방불교에서는 그런 소리 못해요. 그런 가르침 없어요.

보살이라는 것도 석가모니의 과거생에 보살행을 했다 하는 그 이야기뿐이지, 보살행을 하는, 일반대중을 보살이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는 없습니다.

미개한 불교입니다. 원시불교라는 표현을 했는데 그야말로 사실 원시불교라는 표현이 맞아요. 원시적인 불교라고요. 그래서 불교가 차츰차츰 발달해서 500년에 이르러서 비로소 불교의 꽃이 활짝 핀 겁니다.

법화경불교에 와서요. 금강경도 부족합니다. 어제도 이야기했지만, 대중이 보살이 없잖아요, 거기 청중에... 그것만 보더라도 많이 부족하지요.

그래서 이번에 제가 금강경은 소의경전으로써 부족하다. 이런 소리 공공연하게 해서 신문에 많이 나있습니다만, 사실은 금강경 같은 것은 법화경하고 비교하면 게임이 안 됩니다.

그래서 성문이니ㆍ연각이니ㆍ보살이니 하는 온갖 방편의 중간 과정을 다 이야기 해놓기는 해놨어요. 경전에 많이 해놨습니다. 중간 과정을요.

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으로 유혹하기 위해서, 혹시 너무 높은 걸 바라보고, 아~ 저 높은 산 어떻게 올라가나 하고 뒤로 물러서는 그런 중생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그래 아니야, 요거 조그마한 10미터만 올라가면 동산인 제일 높은 데가 있어” 라고 이렇게 까지 달래가면서, 달래가면서 한 중생도 놓치지 않으려고, 끌어들이려고 하다 보니까 그래서 성문이니ㆍ연각이니ㆍ보살이니ㆍ부처니 하는 온갖 방편설이 있는 겁니다.

그래 요즘은 그 방편이 하도 많이 늘어가지고, 예를 들어서 인등을 켜면 수명이 길어진다. 칠성당에 실 갖다 놓으면 수명이 길어진다.

인등을 켜면 지혜가 밝아진다. 별별 방편을 우리가 만드는 겁니다.

재주도 좋지, 별별 방편 다 만들어 가지고, 경전에도 없는 방편을 만들어 가지고 중생들을 제도하는 겁니다. 일단 그 방편으로 들어오게 한 것 까지는 좋은 겁니다. 그 다음에 거기서 끌어올려 줘야 됩니다.

그 차원을 끌어올려 줘야 되는데 계속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이건 주지스님 잘못입니다. 그렇게 이끌어오는 것 까지는 좋아요. 일단 그것으로써 들어오게 하는 인연을 맺어주는 것은 참 좋은 방편을 썼어요.

그래서 몇 년 지난 뒤에는 그 사람들을 수준이 높도록 살 살 가르쳐 줘 됩니다. 거기에 우리 불교 발전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 부처님은 보살승까지도 방편이다.

성문ㆍ연각. 그러니까 성문은 四諦. 苦集滅道 사제와 그리고 八正道. 그것을 대단하다고 가르치고 있지요. 떠들지요. 그것 아주 차원 낮은 유치원생 교설입니다. 그 다음에 十二因緣. 그것은 연각에 해당되는 것 아닙니까? 12인연. 그것은 또 緣起의 이야기고요. 연기를 말하면 空을 이야기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이고요. 十二因緣. 또는 緣起. 空. 이것은 연각에 해당되는 겁니다. 연각의 교과서라고요. 법화경에서 보면 아주 낮은 겁니다.

그 다음에 뭐라고요? 육바라밀은 보살들의 교과서다.

보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육바라밀을 가르친다. 그것이 딱 나와 있지 않습니까? 여기도 계속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성문은 사제 팔정도고요. 연각은 십이인연과 공과 연기고요. 그 다음에 보살은 육바라밀이다. 이것은 철칙이에요, 이것은 불교의 A B C입니다.

그런데 법화경은 최 상승. 불교가 최고조로 발달 했을 때 나온 경전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불교의 종합서 입니다. 그 모든 것을 아우르고, 그리고 최종결론을 내려놓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부처의 삶. 그래서 그 동안 공부했던 5000명이 더 들을 것이 없다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뭐 더 들을 것이 있느냐?’ 그러니까 조금 공부했다고 그것이 참 허물이 되는 것이지요.

舍利弗(사리불)아 一切十方諸佛(일체시방제불)도 法亦如是(법

역여시)니라. 一切十方 모든 부처님도 또한 그와 같다. 다른 가르침 없다. 無有餘乘 若二若三. 나머지의 가르침 없다. 그리고 2승이니 3승이니 하는 것도 없다. 이것은 一切十方諸佛이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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