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종교와 나

법화경 3-3,4 /신해품

應觀 2013. 2. 7. 06:56

 

 

묘법연화경 강좌 제3강-3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9. 01 -

제四 신해품(信解品)

목차 한번 잠깐 살펴볼까요? 성문대중의 환희. 그 다음에

궁자의 비유. 유명한 궁자비유있습니다. 궁자비유의 의미 있고 그 다음에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신해품은 간단하네요.

一 사대성문의 환희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제자들을 등급 아닌 등급을 매겨놨어요.

爾時慧命須菩提(이시혜명수보리)와 摩訶迦旃延(마하가전연)과

摩訶迦葉(마하가섭)과 摩訶目犍連(마하목건련)이

從佛所聞未曾有法(종불소문미증유법)과

世尊(세존)이 授舍利弗(수사리불)의

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하고

發希有心(발희유심)하야 歡喜踊躍(환희용약)하며

卽從座起(즉종좌기)하야 整衣服(정의복)하야

偏袒右肩(편단우견)하고 右膝著地(우슬착지)하며

一心合掌(일심합장)하고 曲躬恭敬(곡궁공경)하며

瞻仰尊顔(첨앙존안)하고 而白佛言(이백불언)하사대

我等居僧之首(아등거승지수)하야 年幷朽邁(연병후매)하며

自謂已得涅槃(자위이득열반)이라하야 無所堪任(무소감임)하고

不復進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불부진구아뇩다라삼먁삼보리)러이다

世尊往昔(세존왕석)에 說法旣久(설법기구)일새

我時在座(아시재좌)하대 身體疲懈(신체피해)하야

但念空無相無作(단념공무상무작)하고 於菩薩法(어보살법)인

遊戲神通(유희신통)과 淨佛國土(정불국토)와

成就衆生(성취중생)에 心不喜樂(심불희락)이니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世尊令我等(세존영아등)으로

出於三界(출어삼계)하사 得涅槃證(득열반증)이라하며

又今我等(우금아등)이 年已朽邁(연이후매)할새

於佛敎化菩薩(어불교화보살)이신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먁막삼보리)에는

不生一念好樂之心(불생일념호락지심)이니다

我等今於佛前(아등금어불전)에

聞授聲聞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문수성문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

하사옵고 心甚歡喜(심심환희)하야 得未曾有(득미증유)니다

不謂於今(불위어금)에 忽然得聞希有之法(홀연득문희유지법)하

옵고 深自慶幸(심자경행)하야 獲大善利(획대선리)니다

제일등급을 사리불. 상근기라고 해서 사리불을 앞에서 혼자 다뤘고, 그 다음에 중근기라고 해서 爾時에 혜명수보리ㆍ마하가전연ㆍ마하가섭ㆍ마하목건련. 이렇게 네 사람을 “중근기”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선불교에서는 마하가섭을 대단한 인물로 칩니다만, 여기서는 사리불보다 밑에서... 사실 여러 경전을 다 종합해서 보면, 부처님제자 중에서는 사리불이 제일인자입니다. 이 법화경에서도 물론 그렇게 했지만 다른 경전에서도 보면 역시 사리불이... 한 사람만을 뽑아서 뭐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사실 사리불이 제자들 중에는 제일인자입니다.

 

법화경은 분명히 수보리ㆍ가전연ㆍ가섭ㆍ마하목건련. 이렇게 네 사람을 중근기로 사리불보다 딱 이렇게 한 급 낮춰서 취급하고 있습니.

그들이 從佛所聞未曾有法(종불소문미증유법). 부처님으로부터 일찍이 있지 않던 그런 법과 그리고 또 世尊(세존)이 授舍利弗(수사리불), 사리불에게 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하고,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수기 주는 것을 듣고 發希有心(발희유심)하야, 希有한 마음을 내가 지고서 歡喜踊躍(환희용약)하며 卽從座起(즉종좌기)해서 整衣服(정의복)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偏袒右肩(편단우견).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지요. 우리 袈裟도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지 않습니까?

偏袒右肩하고 右膝著地(우슬착지). 一心合掌(일심합장). 이것은 偏袒右肩이 첫 의미하는 바가 진실을 드러내는 인도의 예법입니다.

누구에게 말할 때 오른쪽 어깨를 밖으로 드러내고 말하는 것은 ‘나는 목숨을 걸고 진실만을 말하노라.’ 하는 뜻이랍니다. 혀를 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혀를 내는 것도 저~기 어디 더운 지방의 무슨 종족들도 혀를 내고 말할 때가 있지요. 그것도 진실만을 말한다는 뜻이랍니다.

右膝著地하고 一心合掌하고 曲躬恭敬(곡궁공경)하며 瞻仰尊顔(첨앙

존안)하고 而白佛言(이백불언)하사대 我等居僧之首(아등거승지수)

하야, 우리들은 스님들 중에서 우두머리에 해서 年幷朽邁(연병후매)라.

나이도 아울러서 늙어서, 朽邁는 늙음입니다.

나이도 늙었으며 自謂已得涅槃(자위이득열반)이라. 그리고 스스로 말하기를 “이미 열반을 얻었습니다.” 라고,

이미 얻어서 無所堪任(무소감임)이라. ‘더 이상 공부할 것이 없다.’ 이렇게 여기는 겁니다. 그래서 不復進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불부진구아뇩다라삼먁삼보리). 더 이상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進求하지를 않아요.

世尊이 往昔(세존왕석)에 說法旣久(설법기구)일새. 설법 하신 지가 예날 벌써 40여년의 세월이 흘렀으니까요. 오래 되었을 세.

我時在座(아시재좌)하야, 우리들이 그 때마다 자리에 있어서

身體疲懈(신체피해)하야, 몸은 피곤하고 게을러서

但念空無相無作(단념공무상무작). 다만 생각하는 것이(중요합니다.) 空ㆍ無相ㆍ無作. 이것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동안 소위 소승불교라고 할까? 일반불교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이치입니다.

모든 것은 공하다. 반야심경의 전체가 그 얘기 아닙니까? 또

凡所有相 皆是虛妄 그러잖아요. 無相. 범소유상 개시허망이 무상입니다. 형상은 무상. 형상이 없다고 보는 겁니다. 공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 것이 없다.’ ‘지을 것이 없다.’ 이 말입니다. 여기다 하나 더 보태면 無願이 있어요. 그러니까 空ㆍ無相ㆍ無作ㆍ無願. 솔직하게 아주 소극적이지요. 불교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스스로 게으름도 나고, 나이도 들었고, 솔직하게 한 40년 동안 공부도 했고 그래서 늘 생각하기를 空도리ㆍ無相한 도리ㆍ無作의 도리ㆍ이런 것만 생각을 하고, 於菩薩法(어보살법)인 遊戲神通(유희신통)淨佛國土(정불국토)成就衆生(성취중생). 이 세 구절 줄그어야 돼요.

遊戲神通淨佛國土成就衆生. 이것이 말하자면 우리 불교가 세상에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보살법이라고 했지요.

菩薩法인 遊戲神通. 遊戲神通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 역시 불법을 홍포하는 입니다. 불법을 홍포하는 일. 무슨 신통을 부린다는 뜻이 아니고, 불법을 홍포하고 그래서 淨佛國土. 세상을 정화하는 것. 세상에 회향하는 것. 그래서 불교가 이 땅에 있어서 세상이 뭔가 좀 달라지는 것. 도덕이 달라지고 질서가 달라지고 정직성이 달라지고 성실성이 달라지는 것. 이것이 淨佛國土입니다.

그리고 또 궁극적으로는 모든 중생들을 전부 성취시키는 것.

솔직하게 그런 보살행에 있어서는 心不喜樂(심불희락)이니다.

별로 제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불교의 승려들의 대다수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자기만을 위한 자기공부는 30년 40년 50년 60년 잘합니다. 그런데 정말 성취중생이라든지 淨佛國土. 세상에 어떻게 회향할 것인가? 내가 세상에 어떤 보탬이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데 대해서는 별 관심 없어요. 그러니까 기독교에 계속 밀리는 겁니다. 종교편향, 종교편향하고 떠들어 봤자 소용없는 짓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 동안 成就衆生淨佛國土遊戲神通에 대해서 아주 열심히 했어요. 불과 200년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6ㆍ25때 전쟁고아들 그 사람들이 다 거뒀어요.

불교에서 거둬들인 고아들, 불과 몇 명 안 된다고요. 100분의 1도 될까 말까입니다. 나머지는 기독교 단체에서 전부 거둬들인 겁니다.

의료사업ㆍ교육사업 이런 것, 초기에 전부 그 사람들이 다 한 겁니다.

불교논리 대로 이야기하면 그 사람들이 복을 많이 지었어요.

우리 손 발 묶고 空ㆍ無相ㆍ無作. 자기 공부, 소승적인 자기 공부만 하고 있는 동안에 그 사람들은 아주 야트막한 교리, 정말 교리라고 할 것도 없는 그런 천박한 교리들 가지고 대사회적인 활동을 그렇게 크게 한 겁니다. 솔직하게 복을 많이 지었어요. 교리는 형편없지만 복을 많이 지은 겁니다.

전쟁 고아들. 먹고 살기도 힘든데 그 사람들 고아원 차려가지고, 새치기도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이 전쟁고아를 다 거둬들인 것 아닙니까? 우리불교는 솔직하게 몇 명이나 거둬들였어요? 그것 얼마나 복이 됐겠습니까? 그러니까 오늘 날 큰 소리 치는 겁니다. 저 위에서부터 저 말단 직원에 이르기 까지 전부 기독교인입니다. 복을 많이 지었으니까요. 이것이 불교논리입니다. 저는 순전히 불교논리입니다. 복을 많이 지었으니까 그 사람들의 천국이 된 겁니다. 교리야 뭐 별것 없지요. 교리야 그것이 무슨 교리입니까? 솔직하게...

있지도 않은 하나님이야기나 하고...

지금도 기독교방송 틀어보면 끊임없이 하나님이야기입니다.

세상에 저것이 통하다니, 저것이 통하다니 통탄할 일입니다.

이런 대명천지 밝은 이 시대에 어떻게 저런 이이야기가 통할까? 불가사의입니다. 불가사의. 그런데 왜 거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우리보다 10배, 100배 1000배로 모이거든요. 조계사 법당에 불과 몇 명모여요? 여의도 순 복음 교회하고 숫자 한 번 대보세요. 몇 분의 1이나 되는가? 게임이 안 되잖아요. 게임이... 왜 그러냐? 그 사람들은 복을 많이 지어요. 곳곳에 복을 지어요. 어린이들, 학생들, 우리학생포교 합니까? 학생포교하면 돈 안준다고, 귀찮다고 내보내거든요. 안 한다고...

돈 가져오는 사람들이나 상대하지 돈 안 되는 학생포교 어린이포교 안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전부 돈 다 대가지고, 어른들이 내놓은 들어온 돈 가지고 전부 어린이포교 학생포교, 그냥 무한정 투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자라가지고 오늘 날 정부 요직에 싹 다 깔려있는 것이지요. 언론계 무슨 공무원계 싹 다 깔려가지고 그 사람들이 전부 좌지우지하잖아요. 우리는 어린이포교 하나도 안 했잖아요. 거기에 돈 얼마나 댔어요? 그 사람들은요. 들어온 돈 전부 어린이, 학생, 청년들에게 투자다 합니다. 종교편향, 저 라도 편향하게 되어있어요. 한 것이 있어야지요. 게임이 안 됩니다. 복을 못 지었으니까요. 복을 안 지었는데 어떻게 해요?

복 지은대로 가는 겁니다. 복 지은대로... 세상은, 물은 낮은 데로 흐르게 되어있어요. 이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종교편향 한다고 자꾸 아등바등 떠들어봐야 ‘되개 지랄하네.’ 속으로 그런다고요. ‘네가 뭐 한 것이 있어서...’ ‘네가 뭐가 한 것이 있어서 그렇게 떠들어 대느냐?’고 속으로는 그래요. 겉으로는 할 수 없이 그냥 대해주지 속으로는 그래요. 떠들어봐야 대접 더 못 받습니다.

더 못 받아... 그나마 가만히 있는 것이 차라리 나아요. 사실 솔직하니... 저도 작년 이때 기념행사 한다고, 세미나 한다고 야단해서 작년 이때 그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 광장에 와서 참석 했어요.

현장을 목격해놔야 되겠다고 아이고 억지로, 억지로 올라와서 참석을 하긴 했지만, 그러나 그렇게 떠들어 될 일이 아닌 겁니다. 지금이라도 복을 지어야 돼요. 지금이라도 세상에 복을 지어야 돼요. 불자의 이름으로 복을 많이 지어야 돼요. 이것이 불교논리 아닙니까? 무슨 딴 논리 아닙니다. 이것은 불교논리입니다. 복 지은 데로 가는 겁니다. 사실은 교리야 게임이 됩니까? 그것 이야기가 안 되는 것이지요.

기독교 T V네 개. 천주교 T V하나. 불교 T V하나 그렇거든요. 틀어보면 전부 계속 사람들 T V 나오는 것 아닙니까? 불교 T V는 광고 T V이고, 그 사람들은 설교 T V 라. 그럼 들으면 들을 것이 있다고요. 뭔 이야기하는가? 저는 참 많이 듣거든요.

많이 들어보면 정말 말도 아닌 이야기인데 통해요. 왜냐? 복을 지으니까요. 그 많은 사람들에게 전부 배려하고 복을 지으니까 그것이 통하는 것이지요. 교리 좋아서 그렇게 오는 것 아닙니다. 교리 밥 먹여 주는 것 아닙니다. 밥이 밥 먹여 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도 소승적인 그런 어떤 불교를 비판하이야기입니다.

空이니ㆍ無相이니ㆍ無作이니 하는 것, 공 도리만이야기 해요. 眞空妙有가 어떻고,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어떻고, 그래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어쨌다는 겁니까?

그래서 이 사람들도 솔직하게 보살이 행하는 법인 遊戲神通과 淨佛國土. 세상을 정화하는 겁니다. 세상에 보탬이 되는 것을 淨佛國土라고 그래요. 成就衆生이나 心不喜樂(심불희락)이니다. 마음에 즐거워하는 바가 없었습니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까닭이 무엇인가?

世尊令我等(세존영아등)으로, 世尊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出於三界(출어삼계)하사, 삼계에서 벗어나서

得涅槃證(득열반증)이라하며, 열반의 깨달음을 얻었다하며

又今我等(우금아등)이, 또 지금 我等이 年已朽邁(연이후매)여, 나이가 이미 들었어요.

於佛敎化菩薩(어불교화보살)이신, 그래서 부처님이 보살들을 교화하는데 있어서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먁막삼보리)에는

不生一念好樂之心(불생일념호락지심). 최상의 깨달음. 부처의 삶으로 살아가는 거기에 대해서는 一念好樂之心도 내지를 않았다. 한 생각도 좋아하고 즐겨하는 마음을 내지 않았습니다. 보살행은 말할 것도 없고, 부처의 경지는 더 말할 것도 없이 一念도, 한 순간도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않았다.

솔직하게 고백 하는 겁니다. 사대성문인 가전연ㆍ마하가섭ㆍ목건련ㆍ수보리 같은 이런 사람들이...

我等今於佛前(아등금어불전)에, 我等이 지금 부처님 앞에서

聞授聲聞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문수성문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

성문으로서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수기 주는 것을 듣고

心甚歡喜(심심환희)하야, 마음이 매우 환희해서

得未曾有(득미증유)니다. 未曾有를 얻었습니다.

不謂於今(불위어금)에, 지금에 있어서 忽然히 得聞希有之法(홀연득문희유지법)하사옵고, 希有한 法을 듣고는 深自慶幸(심자경행)하야,

깊이 스스로 아주 경사스럽고 다행하게 여겨서 獲大善利(획대선리)니다.

大善利를 얻은 것입니다.

얻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은 옛날에도 그런 법문을 했었는데 그것을 귀담아 듣지를 않았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살행. 부처의 삶. 처음 듣나요? 처음 듣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마음 깊이 귀담아 들어지지가 않는 겁니다. 心不喜樂입니다.

관심 없어요. 뭐 어떻게 되든지, 종교편향이 왜 그리 되는 건지 전혀 그저...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만 계산하고 회재비 타령이나 하고, 대중공양 타령이나 하고 그저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 겁니다. 그 많고 많은 인력. 그 건강하고 혈기왕성하고 무슨 일이라도 나가서 아주 잘 할 수 있는 그 젊고 혈기왕성하고 건강한 힘과 체력을 그렇게 사장 시키는 겁니다. 참 너무 아깝지요. 차라리 어디 가서 땅이라도 파든지,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간혹 대만의 증엄 스님 얘기를 하는데요.

그 스님의 선지식은 수녀입니다. 수녀하고 교리문답을 하다가 “그 좋은 교리가지고 세상에 무슨 보탬이 됐습니까?”이러더라는 겁니다.

세상에 무슨 보탬이 됐습니까?” 불교교리 들어보면 천주교에서는 듣지도 못했던 그런 교리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不殺生” 하면, 저 곤충 미물 파리모기 한 마리도 우리는 죽이지 않는 그런 大慈大悲를 부처님은 가르쳤다. 그리고 교리가 얼마나 심오하고 고준합니까?

그 수녀들이 마지막 일어나면서 “그 좋은 가르침가지고 세상에 한 일이 무엇입니까?” 이러더래요.

그 사람들은 의료사업하고 복지사업하고 그 다음에 교육사업 하고 온갖 사회활동을 많이 벌이는 겁니다. 그야말로 천창으로 가슴을 찌르는 것 같은 그런 아픔을 느낀 겁니다. 그래서 원력을 세워가지고 오늘 날 최고, 이 시대에 제일 救苦救難. 그냥 이 세계에서 제일 큰 구호활동 단체를 만든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 동국대교 일산병원 같은 종합병원을 6개나 세워놓고, 저~기 인도네시아 거기는 회교국가 거든요. 거기다가 불교 T V를 세워줬어요. 대만에 그 단체에서 하는 불교 T V가 두 개나 있어요. 광고 하나도 안 받아요. 그리고 어느 정도 자비냐?

기독교인을 위해서 교회를 세워준 사람입니다.

어느 나라에 기독교인들이 교회가 없어서 보통 저런 공원에서, 그냥 밖에 모여서 예배를 보는 겁니다. 하도 가슴이 아파서 교회를 세워준 겁니다. 기독교인을 위해서 교회를 세워줄 수 있는 이것이 불교자비입니다. 그래서 그 스님이 그렇게까지 성인이 되어 있는 겁니다.

수녀들에게 그 말 한 마디 듣고는... “그 좋은 교리가지고 사회에 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그 말 듣고는 창으로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60개국에 500만 회원이 있어요. 자제공덕회. 다 알지요? 여러분 다 가 봤지요? 저는 못가 봐도 다 가 봤지요?

저는 인터넷을 통해서 거의 매일 한 번 증엄 스님 법문 듣고 있습니다. 그 스님 딱 10분간 법문하는데, 사람들 모아놓고 법문 안 해요, 혼자하지...

그 스님은 법회가 없어요. 대중 법회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지금은 방송을 통해서 하루에 딱 10분씩 하는데 꼭 혼자 합니다 혼자... 혼자하고 救苦救難하는 활동 보조만 사이사이에 내보내고, 당신은 10분 중에서 한 1~2분이 얼굴 나오고 나머지는 전부 그 회에서 활동하는 것만 보여줍니다. 大愛 T V입니다. 대자대비를 대애라고 하지요.

大愛電視라고 해서 쳐서 들어가면 인터넷으로 다 볼 수 있어요.

사실은 그것이 불교입니다. 불교가 할 일은 그런 일입니다.

그런 것을 사대성문이 여기서 고백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궁자의 비유 이것이 유명한 비유입니다. 부자가 서로 헤어짐 이것도 제가 이야기로 하겠습니다.

二 궁자(窮子)의 비유

1 부자가 서로 헤어짐

無量珍寶(무량진보)를 不求自得(불구자득)이니 世尊(세존)하

我等今者(아등금자)에 樂說譬喩(요설비유)하야

以明斯義(이명사의)호리다 譬若有人(비약유인)이

年旣幼稚(연기유치)에 捨父逃逝(사부도서)하야

久住他國(구주타국)하대 或十二十(혹십이십)으로

至五十歲(지오십세)러니 年旣長大(연기장대)하야는

加復窮困(가부궁곤)하야 馳騁四方(치빙사방)하야

以求衣食(이구의식)할새 漸漸遊行(점점유행)하야

遇向本國(우향본국)이러이다 其父先來(기부선래)에

求子不得(구자부득)하고 中止一城(중지일성)이러니

其家大富(기가대부)라 財寶無量(재보무량)하며

金銀瑠璃珊瑚琥珀玻瓈珠等(금은류리산호호박파려주등)이

其諸倉庫(기제창고)에 悉皆盈溢(실개영일)하며

多有僮僕(다유동복)과 臣佐吏民(신좌리민)하며

象馬車乘(상마거승)과 牛羊無數(우양무수)하며

出入息利(출입식리)가 乃徧他國(내변타국)하고

商估賈客(상고고객)도 亦甚衆多(역심중다)러니

時貧窮子(시빈궁子)가 遊諸聚落(유제취락)하며

經歷國邑(경력국읍)하야

遂到其父所止之城(수도기부소지지성)이러이다

父每念子(부매념자)하대 與子離別(여자이별)이

五十餘年(오십여년)이로대 而未曾向人(이미증향인)하야

說如此事(설여차사)하고 但自思惟(단자사유)에

心懷悔恨(심회회한)하며 自念老朽(자념노후)하고

多有財物(다유재물)하야 金銀珍寶(금은진보)가

倉庫盈溢(창고영일)이나 無有子息(무유자식)하니

一旦終沒(일단종몰)이면 財物散失(재물산실)이라

無所委付(무소위부)라하야 是以慇懃(시이은근)히

每憶其子(매억기자)하며 復作是念(부작시념)하대

我若得子(아약득자)하야 委付財物(위부재물)하면

坦然快樂(탄연쾌락)하야 無復憂慮(무부우려)라하더이다

 

옛날에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하나 뒀는데, 아들이 아주 어릴 때 한 두 세 살 됐을 때 집을 나갔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 찾으러 돌아다니며 찾다, 찾다 못 찾고 어느 도시에 아버지는 정착을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거부장자가 되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거부장자가 되면 뭐합니까? 그 재산을 물려줄 아들이 없는데... 그래도 그 아들을 오늘이나 만날까 내일이나 만날까하고 곳곳에 소문을 내가지고 찾아도 못 찾은 겁니다.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렸어요. 그런데 이 아들은 노숙자가 돼가지고 이 거리 저 거리로 헤매면서 그저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또 혹 똥이나 거름이나 이런 날품팔이, 최하급 일을 하면서 일당을 받아서 겨우겨우 연명해가는 그런 삶을 살았더라.

그것이 뭡니까? 우리다 이 겁니다 우리...

공연히 우리의 본성. 정말 지극히 고귀한 그런 우리의 본성을 등져버리고 현상으로만 돌아다니는 그래서 거지생활을 하고 있다 이 뜻입니다.

그러다가 부자가 서로 만남 그랬어요. 아들이 아버지를 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그렇게 아들을 뒀는데 아들은 도망가고, 그 다음에 아버지는 부자가 되서 ‘오늘이나 내일이나 아들을 찾을까’ 라고 하고 있었다. 거기까지입니다.

2 부자가 서로 만남

(1) 아들이 아버지를 보다

世尊(세존)하 爾時窮子(이시궁자)가 傭賃展轉(용임전전)하며

遇到父舍(우도부사)하야 住立門側(주립문측)이라가

遙見其父(요견기부)호니 踞師子牀(거사자상)에

寶几承足(보궤승족)하고 諸婆羅門(제바라문)과

刹利居士(찰리거사)가 皆恭敬圍繞(개공경위요)하며

以眞珠瓔珞(이진주영락)의 價値千萬(가치천만)으로

莊嚴其身(장엄기신)하며 吏民僮僕(이민동복)이

手執白拂(수집백불)하고 侍立左右(시립좌우)하며

覆以寶帳(부이보장)하고 垂諸華幡(수제화번)하며

香水灑地(향수쇄지)하고 散衆名華(산중명화)하며

羅列寶物(나열보물)하야 出內取與(출내취여)하며

有如是等種種嚴飾(유여시등종종엄식)하야

威德特尊(위덕특존)이라

窮子見父有大力勢(궁자견부유대력세)하고

卽懷恐怖(즉회공포)하야 悔來至此(회래지차)로다

竊作是念(절작시념)하대 此或是王(차혹시왕)이며

或是王等(혹시왕등)이니

非我傭力得物之處(비아용력득물지처)라

不如往至貧里(불여왕지빈리)하야 肆力有地(사력유지)하고

衣食易得(의식이득)이라 若久住此(약구주차)라가

或見逼迫(혹견핍박)하야 强使我作(강사아작)이로다

作是念已(작시념이)하고 疾走而去(질주이거)러이다

世尊(세존)하 爾時窮子(이시궁자)가, 그 때에 궁자가

傭賃展轉(용임전전)이라. 품팔이 하려고 展轉하고 있어요. 그래서

遇到父舍(우도부사)야, 우연히 아버지의 집에 이르게 됐다.

住立門側(주립문측)이야, 저~기 대문 저~ 끄트머리에서, - 워낙 으리으리한 부잣집이 있으니까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고개만 삐죽이 내가지고 안으로 빠끔히 쳐다보는 겁니다. 遙見其父(요견기부)라. 멀리서 그 아버지를 보니 踞師子牀(거사자상)에, 師子牀같은 그런 데에 턱~ 의지하고 寶几로 承足(보궤승족)이여. 보배 책상으로써 떡~ 발을 받들고, - 그리고 거기에는 돈이 제일입니다.

인도에는 4성 계급 중에 바라문이 최고잖아요. 諸婆羅門(제바라문)과 刹利居士(찰리거사)가, 바라문과ㆍ찰제리ㆍ거사가

皆恭敬圍繞(개공경위요)여, 돈 많으면 그냥 바라문이고 뭐고 다 거기 와서 굽실거린다 하는, 그러니까 이것이 말하자면 법화경이 상업이 아주 왕성하게 일어나던 그런 도시. 그런 시대에 편집이 됐다, 결집이 됐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고요. 이것 부처님당시 때는 어림도 없습니다.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부잣집 출신이 뭔데요? 바라문이 이렇게 와서 하지를 않는 것이지요. 그런데 바라문과 刹利居士. 刹利는 왕족이나 군인들 아닙니까? 이런 이들이 와가지고, 그 부자한테 와가지고 恭敬圍繞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以眞珠瓔珞(이진주영락)과 價値千萬(가치천만)이 나가는 그런 것으로서 莊嚴其身(장엄기신)하고, 그 몸을 장엄하고

吏民僮僕(이민동복)이 手執白拂(수집백불)하고, 거기 종들이라든지 사무보는 사람들이라든지 이런 이들이 흰 拂子를 척~ 들고는, 혹시 먼지가 낄 새라 혹시 벌레가 나비나 개미가 올새라 계속 옆에서 털어주고, 털어주고 부채질을 해주고 侍立左右(시립좌우)여. 좌우에 侍立하고있어요. 覆以寶帳(부이보장)으로써, 보배 장막으로써

垂諸華幡(수제화번)이여. 곳곳에다 화려한 꽃으로 놓여진 幡을 드리우고 香水로써 灑地(향수쇄지)여. 향수가 얼마나 많은지 땅에다 그냥 뿌리고 있어요.

散衆名華(산중명화)여. 그리고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들을 곳곳에다 뿌려놓고 있고 羅列寶物(나열보물)이여, 곳곳에 고려청자 이조백자 온갖 보물들을 다 羅列해 놨어요. 出內取與(출내취여). 이것은 돈을 빌려갔던 것. 무슨 땅을 부치고 세금 들어온 것들이 전부 주고받고 하는 이런 것을 계속 계산하고 있는 겁니다.

有如是等種種嚴飾(유여시등종종엄식)해서 威德이 特尊(위덕특존)이라. 위엄과 덕이 아주 특별히 높아 보여요.

窮子가 見父有大力勢(궁자견부유대력세). 窮子 = 못난 자식이 見 = 보았다. 父有大力勢 = 아버지가 큰 세력이 있는 것을 -아버지인줄 몰라요 아직은. 그런데 실지로 아버지니까요. 大力勢이 있는 것을 보고

卽懷恐怖(즉회공포)하야,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든 겁니다.

‘야 이거 잘못하다 큰일 나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悔來至此(회래지차). 여기 온 것을 후회해요. 그래서

竊作是念(절작시념)하대, 가만히 생각하기를 此或是王(차혹시왕)이며, 저 분은 왕이거나 아니면 或是王等(혹시왕등)이니, 왕하고 똑 같은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非我傭力得物之處(비아용력득물지처)라. 내가 여기와서 품팔이 할 곳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한 겁니다. 그래서 아이고 저 가난한 동네, 이 사람은 품팔이도 가난한 동네에 가서 품팔이 하는 겁니다. 그래 지질이 아주 못난 품팔이꾼입니다.

그야말로 불가촉천민 정도나 아마 된 모양입니다.

不如往至貧里(불여왕지빈리)하야 肆力有地(사력유지)하고,

‘거기에 가난한 동네에 가서 품팔이 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떠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衣食易得(의식이득)이라. 의식을 쉽게 얻는 것이 낫겠다.

若久住此(약구주차). 만약에 오래 동안 여기에 머물다가는

或見逼迫(혹견핍박)하야 强使我作(강사아작)이로다. 아마 저 사람들한테 붙잡혀가지고서 강제로, 강제노동에 아마 사용될지도 모른다.

作是念已(작시념이)하고는 疾走而去(질주이거)라.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에라 모르겠다.’ 하고 냅다 도망을 가는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을 보다.

(2) 아버지가 아들을 보다

時富長者(시부장자)가 於師子座(어사자좌)에서

見子便識(견자변식)하고 心大歡喜(심대환희)하야

卽作是念(즉작시념)하대 我財物庫藏(아재물고장)을

今有所付(금유소부)로다 我常思念此子(아상사념차자)하대

無由見之(무유견지)러니 而忽自來(이홀자래)하니

甚適我願(심적아원)이로다 我雖年朽(아수년후)나

猶故貪惜(유고탐석)이라하니라

時富長者(시부장자)가, 그 때 장자가 於師子座(어사자좌)에서, 돈 받고 내주고 이런 것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저~기 대문 밖에서 고개를 내밀고 엿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것이 아들입니다.

見子便識(견자변식). 아버지는 50년이 되었어도 그 아들을 알아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心大歡喜(심대환희)하야, 마음이 크게 환희해서

卽作是念(즉작시념)하대 我財物庫藏(아재물고장).

내가 이렇게 평생 동안 쌓아놓은 재물과 창고들을 今有所付(금유소부)로다. 지금 줄 데가 생겼다. 아 그것을 누굴 주고 눈을 감나? 계속 그것 걱정만 했는데 이제 그것을 줄 사람이 생겼구나. 내 아들이 저기서 나타났으니 그 놈에게 주면 되겠다. 今有所付야. 지금 줄 때가 됐다.

我常思念此子(아상사념차자)하대, 내가 항상 이 아들을 생각했으되

無由見之(무유견지)러니, 볼 이유가 없더니, 볼 까닭이 없었어요. 찾아도 도대체 못 찾았다 이것이지요.

而忽自來(이홀자래)라. 그런데 홀연히 저절로 들어왔다, 저절로 들어왔다. 그래서 甚適我願(심적아원)이로다. 마침내 내 원에 딱 들어맞는다. 我雖年朽(아수년후)나, 내가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猶故貪惜(유고탐석)이라. 그동안 오히려 짐짓 아끼고 있었다.

나이는 들었어도 언제나 아들에게 물려줄까, 물려줄까하고 그 재산을 함부로 쓰지 않고 아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저 아들에게 몽땅 다 물려줬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그동안 불교라고 해서 많은 가르침을 폈지만, 정작 다 물려주지는 않았다. 법화경에 와서 내가 다 물려주게 되었다. 그 뜻입니다. 그래서 전번에 써 줬지만, 아함경을 설할 때가 어느 때고, 이 비유, 궁자의 비유하고 부처님일대교설하고 딱 맞춰가지고 배대를 해 놨어요. 이제 넘어가면서 제가 말씀드리지요.

(3) 아들이 기절하다

卽遣傍人(즉견방인)하야 急追將還(급추장환)하고

爾時使者(이시사자)가 疾走往捉(질주왕착)한대

窮子驚愕(궁자경악)하야 稱怨大喚(칭원대환)하대

我不相犯(아불상범)이어늘 何爲見捉(하위견착)이어뇨

使者執之逾急(사자집지유급)하야 强牽將還(강견장환)이어늘

于時窮子(우시궁자)가 自念無罪(자념무죄)하대

而被囚執(이피수집)하니 此必定死(차필정사)라하고

轉更惶怖(전갱황포)하야 悶絶躄地(민절벽지)러라

父遙見之(부요견지)하고 而語使言(이어사언)하대

不須此人(불수차인)이니 勿强將來(물강장래)요

以冷水灑面(이냉수쇄면)하야 令得醒寤(영득성오)하고

莫復與語(막부여어)하라 所以者何(소이자하)오

父知其子志意下劣(부지기자지의하열)하고

自知豪貴(자지호귀)는 爲子所難(위자소난)이라하야

審知是子(심지시자)하고 而以方便(이이방편)으로

不語他人云是我子(불어타인운시아자)라하고

使者語之(사자어지)하대 我今放汝(아금방여)하노니

隨意所趣(수의소취)하라 窮子歡喜(궁자환희)하야

得未曾有(득미증유)하며 從地而起(종지이기)하야

往至貧里(왕지빈리)하야 以求衣食(이구의식)이러라

卽遣傍人(즉견방인)하야, 옆의 사람을 곧 보내가지고

急追將還(급추장환)하고, 그 사람을 데려 오너라.

爾時에 使者(이시사자)가 疾走往捉(질주왕착)이야, 빨리 달려 가가지고 그 놈을 딱 잡았어요. 窮子驚愕(궁자경악)하야, 아들이 驚愕이예요. 그리고 稱怨大喚(칭원대환)이여, 왜 나를 붙드느냐고,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하고 크게 부르짖는 겁니다.

我不相犯(아불상범)이어늘, 나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何爲見捉(하위견착)고? 무엇 때문에 나를 잡느냐?

使者가 執之逾急(사자집지유급)이야, 주인이 너를 잡아 오라고 했는데, - 놓치면 또 심부름꾼으로서 의무를 다 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더 강하게 잡는 겁니다. 그래갖고 억지로

强牽將還(강견장환)이야, 억지로 끌고 오는 겁니다.

于時에 窮子(우시궁자)가 自念無罪(자념무죄)하야,

스스로 죄가 없는 것을 생각하고는 而被囚執(이피수집)하니, 내가 만약에 잡혀서 가두어 질것 같으면 此必定死(차필정사)라. 나는 죽었다 틀림없이 죽었다.

그리고는 더욱 더 두려운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아 이 놈들은 와서 끌고 가지, 나는 아무 죄가 없지 야 큰일났다 싶거든요. 그러니 생각할수록 겁이 나는 겁니다. 轉更惶怖(전갱황포)해서 悶絶躄地(민절벽지)야.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기절하고 말았다. 이것이 窮子驚愕華嚴時.

 

부처님이 화엄경을 설할 때. 말하자면 아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최초화엄 3ㆍ7일. 깨닫고 나서 부처님이 깨달음의 경지를 아무런 방편 없이 그대로 드러내 보인 것이 화엄경이다. 그러잖아요. 그럼 여기에 못난 아들이 말하자면 아버지의 심부름꾼이 데리러 왔을 때 놀래가지고 그만 기절해 버리는 것.

우리가 화엄경 같은 그런 높은 경전을 처음 대하면 ‘이것이 도대체 무슨 소린가?’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그와 똑 같은 것이다. 여기다 배대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할 수 없이,

父遙見之(부요견지)하고, 아버지가 멀리서 그 자식을 보고는

而語使言(이어사언)하대, 심부꾼에게 말하기를不須此人(불수차인)이니, 이 사람은 필요 없다. 잘못 알고 데려오라고 했는데 “그 사람은 필요 없다.”勿强將來(물강장래). 억지로 데려오려고 하지 말라. 그리고 以冷水灑面(이냉수쇄면). 냉수를 얼굴에 뿌려가지고 令得醒寤(영득성오)하라. 깨어나게 해라. 아예 기절해 쓰러졌으니까요.

莫復與語(막부여어)하라. 더 이상 그 한테 얘기하지 말라.

所以者何(소이자하)오? 父知其子志意下劣(부지기자지의하열)이라.

아버지는 안다 말입니다. 그 아들이 뜻과 생각이 下劣해. 너무 궁하게 살고, 거지 노릇만 평생을 했으니까 생각이 너무 쪼그라들었어요. 그래서 自知豪貴(자지호귀)는, 스스로 부호와 귀한 것은 爲子所難(위자소난)이라. 아들이 아주 어려워하는 바라. 저 부잣집에 한 번도 근처도 어르대지 않은 그 세상에 가난뱅이, 정말 못난 사람으로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審知是子(심지시자)하고, 이 아들의 사정을 알고는

而以方便(이이방편)으로써 不語他人云是我子(불어타인운시아자)라.

저 사람이 내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아들이라고 하면 문제가 생기니까요. 그 집 재산을 노리는 사람은 아들이 나타났다 하면 어떻게 해서 아들을 해쳐 버릴런지... 아직 그 아버지는 자식이 없다는 것을 세상이 다 알지요. 재산은 많지, 집사들이 여럿인데 자기에게 돌아올지 누구에게 돌아갈지 그것만 지금 눈이 벌겋게 해가지고 있는데, 아들이 문득 생겼다 하면 그것 큰일 나지요. 그래서 아들이라는 말 아니했어요.

使者語之(사자어지)하대, 심부름꾼에게 말하기를

我今放汝(아금방여). 내가 너를 놓아준다.(심부름꾼에게 시킨 것이지요.) 隨意所趣(수의소취)하라. 네 가고 싶은 데로 가라.

그러니까 窮子歡喜(궁자환희)하야, 궁자가 그 때야 깨어나 가지고서, 歡喜해가지고 得未曾有(득미증유)라. 아~ 기분 좋다고 해가지고서

從地而起(종지이기)라. 자리에서 일어나가지고

往至貧里(왕지빈리)하야, 가난한 동네에 가서

以求衣食(이구의식)이러라. 의식을 구하는 겁니다. 그 전 처럼요.

세상에 참, 그 아버지, 천하에 제일가는 아버지를 만나고도 아버지를 보는 눈이 없어서 그렇게 됐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정이지요. 우리의 처음 불교에 대해서 정말 부처님의 법은 정말 훌륭한 법이 있는데, 어디 가서 저기, 대웅전에도 안 와요.

저~ 산신각에 가서 그저 겨우, 대웅전 겁이 나거든요. 산신각에 가서 겨우 절 석 자리하고는 그냥 가는 겁니다. 칠성각에나 가서 절 석 자리하고 그냥 가버려요. 지금 그와 같은 처지입니다.

 

묘법연화경 강좌 제3강-4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9. 01 -

(4) 사람을 시켜 유인하다

爾時長者(이시장자)가 將欲誘引其子(장욕유인기자)하야

而設方便(이설방편)할새 密遣二人(밀견이인)의

形色憔悴(형색초췌)한 無威德者(무위덕자)하대

汝可詣彼(여가예피)하야 徐語窮子(서어궁자)하대

此有作處(차유작처)하니 倍與汝直(배여여직)이라하야

窮子若許(궁자약허)어든 將來使作(장래사작)하고

若言欲何所作(약언욕하소작)이어든 便可語之(편가어지)하대

雇汝除糞(고여제분)이요 我等二人(아등이인)도

亦共汝作(역공여작)이라하라 時二使人(시이사인)이

卽求窮子(즉구궁자)하야 旣已得之(기이득지)하고

具陣上事(구진상사)한대 爾時窮子(이시궁자)가

先取其價(선취기가)하고 尋與除糞(심여제분)이러니

其父見子(기부견자)하고 愍而怪之(민이괴지)러라

爾時長者(이시장자)가 將欲誘引其子(장욕유인기자)하야,

而設方便(이설방편)할새 密遣二人(밀견이인)의, 사람을 시켜서 유인하는데요. 두 사람을 보냅니다. 形色이 아주 憔悴(형색초췌)한 無威德者(무위덕자). 아주 꼴이 형편없어요. 애꾸눈이라든지 앉은뱅이. 이런 등등 그 사람보다 아주 더 못나 보이는 그런 사람을 보냈어요.

汝可詣彼(여가예피)하야, 너는 가가지고서

徐語窮子(서어궁자)하대, 저 궁자에게 천천히 말하되

此有作處(차유작처)라. “저기 어디 한 곳에 일할 곳이 있다.

倍與汝直(배여여직)이라하야, 그런데 마침 품삯을 배로 준다.

그러니까 너도 거기 가서 같이 일하지 않을래?”그렇게 꼬아라.

그렇게 꼬아가지고 거기서 일하도록 해라. 배로 준다니까 예를 들어서 일당을 만원 주는 것 2만원 준다고 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그러니까 평생 그런 날품팔이만 하고 사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窮子若許(궁자약허)어든 將來使作(장래사작)하고 若言欲何所作(약언욕하소작)이어든, 무슨 일을 하느냐고 하거든, 便可語之(편가어지)하대, 곧 말하기를 雇汝除糞(고여제분). 除糞, 잘 알아두세요.

除糞定價阿含時. 그러는 거에요. 3강-3에서 驚愕라고 하는 것에 동그라미 쳐놓고 窮子驚愕華嚴時그래요. 除糞. 똥을 치는 일이다. 제일 더러운 일이지요. 我等二人(아등이인)도 亦共汝作(역공여작)이라하라.

우리도 그 일을 같이 할꺼야.

時二使人(시이사인)이, 그 때에 두 심부름꾼이

卽求窮子(즉구궁자)하야, 궁자를 구해서

旣已得之(기이득지)하고 具陳上事(구진상사)한대, 그 사람하고 같이 그런 일을 다 이야기한 것이지요. 爾時窮子(이시궁자)가, 그 때에 궁자가 先取其價(선취기가)하고, 또 이 사람 혹시 못 받을까봐 - 의심은 많아가지고, 그 품삯을 먼저 받네요 또. 先取其價여, 먼저 취하고는,

尋與除糞(심여제분). 곧 가서 제분 했다. 除糞定價. 똥을 쳤다.

其父見子(기부견자)하고 愍而怪之(민이괴지)라.

아버지가 아들의 그런 몰골을 보고는 참~ 불쌍하기도 하고, 참 괴이쩍기도 하고, 저게 어찌 내 자식일까? 참 한편 생각하니 너무 불쌍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부처님이 우리를 볼 때, 우리를 볼 때 기껏 그 작은 인간적인 욕망 거기에만, 정말부처로서 당당하게 사는 길을 제시 해놨음에도 불구하고 똑 같이, 불교를 만나지 않은 것 하고 똑 같이 살아가는 인간적인 그런 삶에만 급급하고, 거기에만 관심이 있으니까 부처님이 기가 막힐 것 아닙니까? 愍而怪之입니다. 정말 불쌍하기도 하고, 괴이쩍기도 해요.

어찌 부처님의 제자가 돼가지고 그런 속된, 아주 저급한, 저질적인 그런데 관심을 그렇게 가지고 편승하느냐 이 겁니다. 출가 수행자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출가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되면 이것은 더 불쌍한 문제입니다.

이십년을 분뇨만 나르다 그래 놨네요.

이렇게 해서 20년 세월 동안, 그러니까 阿含12. 方等8 그러잖아요?

아함경 12년간 설하고, 그 다음에 방등경을 8년간 설했으니까요.

그걸 합하면 20년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함경은 순전히 똥치는 일이고, 그 다음에 또 청소도 하다 보니까 出入自在方等時입니다.

그 집에 출입을 여기 저기 할 수밖에 없지요. 거름치고 똥 치려면 화장실 있는데 가야되고, 청소할 데 다 가야 되니까 출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입을 자유롭게 하는 때가 방등경을 설할 때입니다.

그래서 그런 세월을 이렇게 계속 보내는 겁니다.

(5) 이십년을 분뇨만 나르다

又以他日於窓牖中(우이타일어창유중)에 遙見子身(요견자신)이

羸廋憔悴(이수초췌)하고 糞土塵坌(분토진분)이

汚穢不淨(오예부정)하고는

卽脫瓔珞細輭上服嚴飾之具(즉탈영락세연상복엄식지구)하고

更著麤弊垢膩之衣(갱착추폐구이지의)하대

塵土坌身(진토분신)하며

右手執持除糞之器(우수집지제분지기)하고

狀有所畏(장유소외)하야 語諸作人(어제작인)하대

汝等勤作(여등근작)하야 勿得懈息(물득해식)이라하고

以方便故(이방편고)로 得近其子(득근기자)하고

後復告言(후부고언)하대 咄男子(돌남자)야

汝常此作(여상차작)하고 勿復餘去(물부여거)면

當加汝價(당가여가)요 諸有所須(제유소수)에

盆器米麪鹽醋之屬(분기미면염초지속)을 莫自疑難(막자의난)하라

亦有老弊使人(역유노폐사인)하야 須者相給(수자상급)하리니

好自安意(호자안의)하라 我如汝父(아여여부)하니

勿復憂慮(물부우려)니라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我年老大(아년노대)하고 而汝少壯(이여소장)하니

汝常作時(여상작시)에 無有欺怠瞋恨怨言(무유기태진한원언)이니

都不見汝(도불견여)의 有此諸惡(유차제악)을

如餘作人(여여작인)하며 自今已後(자금이후)로

如所生子(여소생자)라하고 卽時長者(즉시장자)가

更與作字(갱여작자)하야 名之爲兒(명지위아)러이다

爾時窮子(이시궁자)가 雖欣此遇(수흔차우)나

猶故自謂客作賤人(유고자위객작천인)이라하야

由是之故(유시지고)로 於二十年中(어이십년중)에

常令除糞(상령제분)하니라

於二十年中(어이십년중)에 常令除糞(상령제분)하니라,

항상 하여금 除糞. 똥만 쳤느니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아함경이나 방등경은 똥치는 일입니다. 그것도 남의 집에서가 아니고, 자기 아버지 집에서요. 그 거부장자, 이 사람은 글로벌 기업입니다. 전 세계에 어디 회사가 안 나가 있는 데가 없고, 어느 산, 어느 땅 없는 데가 없고, 이 사람 재력은 저 삼성이나 현대 100합쳐 놓은 거나 비슷해요. 그런데도 그 집에서 똥을 치는 일을 했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저급한 어떤 그 속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이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참 통탄할 일 아닙니까? 그 다음에

아버지가 재산을 알려주다 그랬어요.

물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알려주는 겁니다. 그것은 뭔가 하니

令知寶物般若時. 그래요. 그 집안의 재산상황ㆍ보물 상황ㆍ논밭전지ㆍ또 회사가 어디어디 얼마나 있고 하는 것. 이런 것들을 전부 알려주는 때가 뭔가 하니 반야심경ㆍ금강경ㆍ반야600권ㆍ그것을 설하던 때다 그렇게 됩니다. 그것은 21년간 걸렸어요. 21년간... 아버지가 재산상황을 알려주는 시기. 그러니까 재산이 어디 어떻게 있고, 어떻게 있고 그것을 아는데 불과한 겁니다. ‘아 이거는 저 사람의 재산이다.’그 정도로 아는데 불과한 겁니다. 그래도 상당하지요.

(6) 아버지가 재산을 알려주다

過是已後(과시이후)에 心相體信(심상체신)하야

入出無難(입출무난)이나 然其所止(연기소지)는

猶在本處(유재본처)러이다

世尊(세존)하 爾時長者有疾(이시장자유질)하야

自知將死不久(자지장사불구)하고 語窮子言(어궁자언)하대

我今多有金銀珍寶(아금다유금은진보)하야

倉庫盈溢(창고영일)하니 其中多少(기중다소)와

所應取與(소응취여)를 汝悉知之(여실지지)하라

我心如是(아심여시)하니 當體此意(당체차의)니라

所以者何(소이자하)오 今我與汝(금아여여)로

便爲不異(변위불이)니 宜加用心(의가용심)하야

無令漏失(무령루실)하라 爾時窮子(이시궁자)가

卽受敎勅(즉수교칙)하사 領知衆物(영지중물)인

金銀珍寶(금은진보)와 及諸庫藏(급제고장)이나

而無希取一餐之意(이무희취일찬지의)하고 然其所止(연기소지)는

故在本處(고재본처)하며 下劣之心(하열지심)은

亦未能捨(역미능사)러니 復經少時(부경소시)하고

父知子意(부지자의)가 漸已通泰(점이통태)하야

成就大志(성취대지)에 自鄙先心(자비선심)하니라

그러니까 금강경도 상당한 겁니다. 왜냐? 부처님의 재산이 어떻다 하는 것을 아는 정도는 되니까요. 물려받는 건 아닙니다. 물려받는 건 아니지만 아는 정도는 되니까요. 그래서 過是已後(과시이후)에, 그런 세월을 지낸 뒤에야 心相體信(심상체신)하고, 마음에 서로 믿게 되고,

- 시간을 내서 자세한 비유를 보세요. 번역을 구해서 보든지요.

(문수선원 법화경녹취 보시앞. ←글쓴이) 우리들의 신세가 참 처참하고 그래요.

 

入出無難(입출무난)이라. 출입하는데 어려움이 없고

然其所止(연기소지)는, 그러나 그가 머무는 바는

猶在本處(유재본처)여. 저~ 밑에 일꾼들 집. 본집 근처도 아니고 저~ 멀리 일꾼들만... 요즘 어느 절에는 방이 없어서 콘테이너 박스를 저~기 밭에다가 놓고 거기서 일꾼들 재우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猶在本處 라는 것이 그 말입니다. 아직도 일꾼들 집. 그러니까 이것도 전부 우리가 불교적인 어떤 공부의 상황과, 우리 심성이 불교에 젖어 들어가는, 진정한 불교에 젖어 들어가는 그런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아무리 평생 경전에 종사 했다 해도 세속적인 가치ㆍ세속적인 욕망. 아직도 거기에 허덕인다면, 그것은 아직도 똥치는 사람밖에 안됩니다.

아직도 똥치는 사람이라고요. 평생불교 공부 했다고 하고, 경력이 아주 화려하고 해도, 어떤 명예라든지ㆍ무슨 권속 문제라든지ㆍ절[寺]하나 더 하려고 한다든지ㆍ내 상좌 절하나 더 하려고 한다든지ㆍ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직도 똥치는 정도에 불과한 겁니다. 그것은 평생불교 모르는 사람이지요. 평생 절에 몸담고 있어도요? 그것은 불교 아는 것 아닙니다. 그것은 절대 불교 아는 것 아닙니다. 전혀 사실은 불교교리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마음 상태가, 마음 상태가 그런 어떤 속된 어떤 문제에 초연할 수 있고, 그런 건 뭐... 정말 하찮은 일이고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아주 대범하게 그렇게 소견이 됐다면, 그 사람은 부처님정신에 상당히 가까운 사람이지요. 상당히 가까운 사람이라고요.

世尊(세존)하 爾時長者가 有疾(이시장자유질)하야, 병이 있어서

自知將死不久(자지장사불구)하고, 머지않아서 죽게 될 것을 스스로 알고서 語窮子言(어궁자언)하대, 못난 자식에게 말하되

我今多有金銀珍寶(아금다유금은진보)라. 나에게는 金 銀 珍寶가 너무너무 많다. 倉庫盈溢(창고영일)하니, 창고에 막 넘쳐난다.

其中多少(기중다소)와 所應取與(소응취여). 당연히 취할 것 줄 것.

- 그러니까 받아 내야 할 것, 그리고 또 돌려줘야 할 것. 이런 것을

汝悉知之(여실지지)라. 네가 다 알아야 된다. 누구에게 얼마 빌려줬고, 누가 내 땅을 부치고, 누가 내 산을 관리하고 누가 내 아파트를 관리하고 이런 것을 전부 네가 알고 있어야 된다. 이렇게 말한 겁니다.

我心如是(아심여시)하니, 내 마음은 이와 같으니

當體此意(당체차의)니라. 이 뜻을 마땅히, 體. “체 받아라.”이런 뜻인데요, “체험하라.”“네가 꼭 너의 것으로 생각을 해라.” 이런 입니다. 정말 “잘 알아야 된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왜 그러냐? 今我與汝(금아여여)로, 지금 내가 그대로 더불어

便爲不異(변위불이)다. 곧 다르지 않다. 슬슬 이렇게 암시를 주는 겁니다. 宜加用心(의가용심)하야, 마땅히 마음 쓰는 것을 더해서

無令漏失(무령루실)하라. 하여금 漏失하지 않도록 하라.

爾時窮子(이시궁자)가, 그 때에 궁자가

卽受敎勅(즉수교칙)하고, 바로 그 가르침 받고

領知衆物(영지중물)인 金銀珍寶(금은진보)와 그리고 及諸庫藏(급제고장). 모든 庫藏에 이런 것들을 전부 알긴 알았으나, 전부 알아요. 이제 재산상황을 환히 다 파악을 했어요 이 사람이. 그러나 뭐라고요?

而無希取一餐之意(이무희취일찬지의)라. 한 끼의 밥 먹을 값 되는 정도도 취할 생각은 없었다. ‘아 그것은 부처님일이고, 나는 중생이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만다 이 겁니다. ‘저것은 주인 돈이지 내가 뭐 10원이라도 취할 까닭이 없다.’ 아 그것 욕심한 번 내면 어때서 그래요?

그렇게 그 집 재산 관리를 다 하면 한 번쯤 욕심 낼만도 한데, 이 사람은 욕심이 없어요. 불법에는 욕심이 있어야 돼요. 욕심이 많아 됩니다.

누가 욕심 버리라 그래요? 그것은 방편불교. 아니면 저급한 불교.

유치원생 불교에게 욕심 버리라는 겁니다. 진짜 불교하고 보통 저급한 불교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차원이 그렇게 다른 겁니다.

재산이 그렇게 많으면, 그 재산상황을 다 알고 있으면 한 번쯤 어디 가서 다이아몬드 하나라도 슬쩍 주머니에 넣고 싶은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뭐라고요? 밥 한 끼 먹을 가치 정도 되는 것도 가지려고 안 했다 이 겁니다. 사실은 그 재산을 어떻게 하면 내 재산으로 만들까 하는 생각을 내야 옳은 겁니다. 그런 욕심이 있어야 옳은 겁니다.

然其所止(연기소지)는, 그러면서 그가 머무는 바는

故在本處(고재본처). 본래 살던 저 일꾼들, 아주 더러운 일꾼들 방. 거기 그대로 있었다. 下劣之心(하열지심)은, 하열한 그 마음은

亦未能捨(역미능사)라. 또한 능히 버리지를 못했으니

復經少時(부경소시)하고, 다시 시간이 조금 지나고서는

父知子意(부지자의)가, 아버지는 아들의 생각이

漸已通泰(점이통태)라. 점점 通泰라. 조금씩, 조금씩 그래도, 그 집의 워낙 큰 재산을 많이 알고 있으니까 조금씩, 조금씩 커지기는 커져요. 通泰. 조금씩, 조금씩 커지는 것을 알아요.

成就大志(성취대지)에 自鄙先心(자비선심)이니라. 그렇지만 큰 뜻을 성취하기는 이직도 부족하다 이 말입니다. 그 다음에

아버지가 가업을 물려주다. 이것이 진짜 법화경을 설할 때다 이 말입니다. 傳付家業法華時. 그러는 겁니다. 가업을, “그 집 모든 재산을 아들에게 전부 다 물려주는 때가 법화경을 설하는 때다.”이렇게 비유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천태지자선사가 신해품의 이 궁자비유에다가 부처님의 일대시교를 전부 교판을 한 겁니다.

배대를 겁니다. 그럼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겁니다.

(7) 아버지가 가업을 물려주다

臨欲終時(임욕종시)하야 而命其子(이명기자)하야

幷會親族(병회친족)하며 國王大臣(국왕대신)과

刹利居士(찰리거사)를 皆悉已集(개실이집)케하고

卽自宣言(즉자선언)하대 諸君當知(제군당지)하라

此是我子(차시아자)니 我之所生(아지소생)이라

於某城中(어모성중)에 捨吾逃走(사오도주)하야

竛竮辛苦(병명신고)가 五十餘年(오십여년)이라

其本字某(기본자모)요 我名某甲(아명모갑)이니

昔在本城(석재본성)하야 懷憂推覓(회우추멱)하다가

忽於此間(홀어차간)에 遇會得之(우회득지)호니

此實我子(차실아자)요 我實其父(아실기부)니라

今我所有(금아소유)인 一切財物(일체재물)은

皆是子有(개시자유)며 先所出內(선소출내)이

是子所知(시자소지)니다

世尊(세존)하 是時窮子(시시궁자)가 聞父此言(문부차언)하고

卽大歡喜(즉대환희)하야 得未曾有(득미증유)하야

而作是念(이작시념)하대 我本無心有所希求(아본무심유소희구)나

今此寶藏(금차보장)이 自然而至(자연이지)다

臨欲終時(임욕종시)에, 목숨이 마칠 때에 이르러서

而命其子(이명기자)하야, 그 아들에게 명해서 幷會親族(병회친족).

아울러 친족과 國王大臣(국왕대신)과 刹利居士(찰리거사)를 전부 모이라고 하는 겁니다. 국왕도 오라. 대신들도 오너라. 군인들도 오너라. 뭐 온갖 바라문도 오너라. 皆悉已集(개실이집)케하고, 다 모아놓고

卽自宣言(즉자선언)하대, 선언을 하기를

諸君當知(제군당지)하라. 여러분 마땅히 아십시오.

此是我子(차시아자)라. 옆에 있는 이 사람은 나의 아들입니다.

我之所生(아지소생)이다. 나의 소생. 내가 낳았다 말입니다.

내가 낳았습니다.

於某城中(어모성중)에, 저~ 어느 어느 도시에서

捨吾逃走(사오도주)라. 나를 버리고 어려서 도주 했었습니다. 그래가지고는 찾아오지도 못하고 집을 잃고, 竛竮辛苦(병명신고). 아주 어리버리 고생하고 고생한 것이 五十餘年(오십여년)이라. 50년이 흘렀습니다. 其本字某(기본자모)는, 그의 본래의 는 뭐고

我名某甲(아명모갑)이니, 내 이름은 뭐입니다.

昔在本城(석재본성)하야, 옛날의 본래의 도시에 있어서

懷憂推覓(회우추멱)이라가, 아주 근심하고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이아들을 찾으려고 찾고, 찾고 찾았지만, 그러다가

忽於此間(홀어차간)에, 홀연히 여기에서, 바로 우리 집에서

遇會得之(우회득지)라. 우연히 저 놈을 만나가지고 얻게 되었습니다.

此實我子(차실아자)요, 이 사람은 실로 나의 자식이요,

我實其父(아실기부)다. 나는 실로 그의 아버지입니다

今我所有(금아소유)인, 지금 나에게 소속 되어 있는 모든

一切財物(일체재물)을 皆是子有(개시자유)여. 一切財物은 다 아들의 소유입니다. (너희들 손도 대하지 말라.)

所出內(선소출내)이 是子所知(시자소지)다. 전부 누구 얼마나 빌려줬고, 누구에게 얼마 받을 것이 있고, 어느 땅은 누가 부치고, 어느 산은 누가 관리하고, 어느 나라에는 내 회사가 얼마나 나가 있고, 이런 것을 아들이 다 안다. 是子所知여. 너희들 까딱도 하지 말라 이제. 아들이 다 알고, 다 이미 파악해놨어. 그런 말입니다. 是子所知니라.

世尊(세존)하 是時窮子(시시궁자)가, 그 때에 못난 아들이

聞父此言(문부차언)하고, 아버지의 이 말을 듣고

卽大歡喜(즉대환희)하야, 곧 크게 歡喜해서

得未曾有(득미증유)하야, 未曾有를 얻었습니다.

而作是念(이작시념)하대, 곧 이런 생각을 하대,

我本無心有所希求(아본무심유소희구)나, 나는 본래 이집 재산을 가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여덟째

今此寶藏(금차보장)이 自然而至(자연이지)다. 지금 이 보물 덩어리. 이 많고 많은 재산. 현대나 삼성의 100배 1000배도 더 넘는 그런 큰 재산이 저절로 나한테 이르러왔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니 법화경의 가르침을 통해서 부처라고 하는,

- 우리는 아주 업장 많고ㆍ죄업 많고ㆍ못 나고ㆍ삐뚤어지고ㆍ생각은 편협하고ㆍ온갖 탐진치 삼독도 많고ㆍ8만4천 번뇌로 뒤끓고ㆍ정말 이리 살펴봐도 못났고ㆍ저리 살펴봐도 중생이고한 그러한 존재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알고 보니까 아니에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무결한 부처다 이 말입니다. 완전무결한 부처다. 今此寶藏이 自然而至라. 저절로...

내가 무슨 그 재산 어떻게 노력해서 얻어온 것이 아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自然而至라고 하는 말은 부처의 경지ㆍ궁극적인 경지ㆍ우리본래 부처라고 하는 그 자리는 수행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닦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요. 그래서 無漸次佛입니다. 점차적으로 된 부처는 이 세상에 없다. 無修證佛입니다. 닦아 증득하는 부처는 이 세상에 없다.

본래부처에 눈 뜨지 아니하면 부처는 영원히 못 본다 이 말입니다.

만들어서 되는 부처가 아니라고요. 아무리 오랜 세월 고생하면서 수행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본래 그 자리. 본래 그 자리를 아는데 불과한 것이지,

무슨 보태고 더하고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이 보십시오. 自然而至잖아요. 저절로 온다.

3강-1에서 제가 양무제하고 달마스님하고의 이야기를 했듯이 우리는 기존의 것. 이미 가지고 있는 본래의 부처인 자리. 그것이 진정 무량대복이고ㆍ무량공덕이고ㆍ不生不滅의 영원한 생명이지 그 외에 달리 다듬어서 되거나 수행해서 되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냥 우리가 업장을 소멸 한다ㆍ참회를 한다ㆍ참선을 한다ㆍ기도를 한다하는 것은 그냥 하나의 그런 삶이 좋고, 그런 수행의 그 생활이 취미가 있고, 그것이 좋아서 그냥 할 뿐입니다. 그것을 해서 뭐가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전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그것을 해서 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 생활이 좋으니까...

‘나는 법당에서 기도하는 것이 좋아. 그래서 나는 기도해.’ ‘선방에서 좌선하는 것이 좋아, 그래서 좌선하고 있어.’ 부처는 본래 부처인데 무슨 뭐... 이 생활이 그냥 취미가 있고ㆍ이 생활이 좋고청정아주 조촐하고無慾하고욕심 없고ㆍ아무 것도 가지는 바 없이 아주 조촐하고소박하고ㆍ담백하고아주 단순하고아주 동양화 그림 같고그냥 그런 삶이 좋아서 하는 겁니다. 그 외에는 달리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달리 다른 것 기대하면 안 되는 겁니다. 기대하면 괜히 말하자면 마음만 급하고ㆍ돌아오는 것은 없고ㆍ그냥 상기만 오르고괜히 궁해 보이기만 하고 늘 그래요. 궁자비유의 의미는 제가 비유 속에서 다 이야기가 됐습니다.

三 궁자비유의 의미

世尊(세존)하 大富長者(대부장자)는 則是如來(즉시여래)시고

我等皆似佛子(아등개사불자)니

如來常說我等爲子(여래상설아등위자)니다

世尊(세존)하 我等(아등)이 以三苦故(이삼고고)로

於生死中(어생사중)에 受諸熱惱(수제열뇌)하야

迷惑無知(미혹무지)하야 樂著小法(낙착소법)이니다

今日世尊(금일세존)이 令我等(영아등)으로

思惟蠲除諸法戲論之糞(사유견제제법희론지분)케하시니

我等於中(아등어중)에 勤加精進(근가정진)하야

得至涅槃一日之價(득지열반일일지가)니다

旣得此已(기득차이)에 心大歡喜(심대환희)하야

自以爲足(자이위족)하고 便自謂言(편자위언)하대

於佛法中(어불법중)에 勤精進故(근정진고)로

所得弘多(소득홍다)로이다

然世尊(연세존)이 先知我等(선지아등)의

心著弊欲(심착폐욕)하야 樂於小法(낙어소법)하시고

便見縱捨(편견종사)하사 不爲分別汝等(불위분별여등)이

當有如來知見寶藏之分(당유여래지견보장지분)이라하시고

世尊以方便力(세존이방편력)으로說如來智慧(설여래지혜)어늘

我等從佛(아등종불)하야 得涅槃一日之價(득열반일일지가)하고

以爲大得(이위대득)이라하야 於此大乘(어차대승)에

無有志求(무유지구)니다 我等(아등)이

又因如來智慧(우인여래지혜)로 爲諸菩薩(위제보살)하야

開示演說(개시연설)하대 而自於此(이자어차)에

無有志願(무유지원)호니 所以者何(소이자하)오

佛知我等(불지아등)의 心樂小法(심락소법)하시고

以方便力(이방편력)으로 隨我等說(수아등설)이언만은

而我等不知眞是佛子(이아등부지진시불자)로이다

今我等(금아등)은 方知世尊(방지세존)이 於佛智慧(어불지혜)에

無所恡惜(무소린석)이니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我等昔來(아등석래)로

眞是佛子(진시불자)어늘 而但樂小法(이단락소법)이로다

若我等(약아등)이 有樂大之心(유낙대지심)이런들

佛則爲我(불즉위아)하사 說大乘法(설대승법)일러이다

於此經中(어차경중)에 唯說一乘(유설일승)이어늘

而昔於菩薩前(이석어보살전)어 毁呰聲聞(훼자성문)의

樂小法者(낙소법자)나 然(연)이나

佛實以大乘敎化(불실이대승교화)니다 是故我等(시고아등)이

說本無心有所希求(설본무심유소희구)이나

今法王大寶(금법왕대보)가 自然而至(자연이지)로소니

如佛子(여불자)의 所應得者(소응득자)를

皆已得之(개이득지)니다

世尊(세존)하 大富長者(대부장자)는 則是如來(즉시여래)시고,

여래라고 했잖아요. 我等은 皆似佛子(아등개사불자)니, 우리들은 다 부처님의 아들과 같은 것이니 如來常說我等爲子(여래상설아등위자)니다.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우리들을 자식이라고 한다.

佛子, 불자 그러잖아요. 부처님자식이다. 부처님자식이라고 항상 말을 했다. 그래서 우리들이 三苦와 生死中에, 여러 가지 어려움과 그런 것을 받고 살아온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왜 우리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가?

사실은 우리 인간의 궁극적 차원인 지고한 가치. 그 지고한 가치에 눈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눈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게송으로써 거듭 궁자 비유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똑 같아요.

四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1 사대성문이 환희하다

爾時摩訶迦葉(이시마가가섭)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야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我等今日(아등금일) 聞佛音敎(문불음교)하옵고

歡喜踊躍(환희용약)하야 得未曾有(득미증유)니다

佛說聲聞(불설성문) 當得作佛(당득작불)이라하시니

無上寶聚(무상보취) 不求自得(불구자득)

2 궁자의 비유

(1) 부자가 서로 헤어짐

譬如童子(비여동자) 幼稚無識(유치무식)일새

捨父逃逝(사부도서)하야 遠到他土(원도타토)하야

周流諸國(주류제국) 五十餘年(오십여년)커늘

其父憂念(기부우념)하야 四方推求(사방추구)러니

求之旣疲(구지기피) 頓止一城(돈지일성)하야

造立舍宅(조립사택)하고 五欲自娛(오욕자오)할새

其家巨富(기가거부) 多諸金銀(다제금은)

硨磲瑪瑙(차거마노) 眞珠琉璃(진주유리)

象馬牛羊(상마우양) 輦輿車乘(연여거승)

田業僮僕(전업동복)하며 人民衆多(인민중다)하고

出入息利(출입식리) 乃徧他國(내변타국)하며

商估賈人(상고고인) 無處不有(무처불유)하고

千萬億衆(천만억중) 圍繞恭敬(위요공경)하며

常爲王者(상위왕자) 之所愛念(지소애념)하고

群臣豪族(군신호족) 皆共宗重(개공종중)하며

以諸緣故(이제연고) 往來者衆(왕래자중)이라

豪富如是(호부여시)하야 有大力勢(유대력세)

而年朽邁(이년후매)하야 益憂念子(익우념자)

夙夜惟念(숙야유념)하대 死時將至(사시장지)어늘

癡子捨我(치자사아) 五十餘年(오십여년)하니

庫藏諸物(고장제물) 當如之何(당여지하)리요

爾時窮子(이시궁자) 求索衣食(구색의식)하야

從邑至邑(종읍지읍)하며 從國至國(종국지국)하대

或有所得(혹유소득)하며 或無所得(혹무소득)이라

飢餓羸瘦(기아리수)하야 體生瘡癬(체생창선)하니라

(2) 부자가 서로 만남

漸次經歷(점차경력)하야 到父住城(도부주성)하야는

傭賃展轉(용임전전)하야 遂至父舍(수지부사)러라

爾時長者(이시장자)가 於其門內(어기문내)에

施大寶帳(시대보장)하고 處師子座(처사자좌)하야

眷屬圍繞(권속위요)하고 諸人侍衛(제인시위)하며

或有計算(혹유계산) 金銀寶物(금은보물)하고

出內財産(출내재산)을 注記券疏(주기권소)러라

窮子見父(궁자견부)의 豪貴尊嚴(호귀존엄)하고

謂是國王(위시국왕)이거나 若國王等(약국왕등)이라하야

驚怖自怪(경포자괴)하대 何故至此(하고지차)

覆自念言(부자념언)하대 我若久住(아약구주)

或見逼迫(혹견핍박)커나 强驅使作(강구사작)이리라

思惟是已(사유시이)하고는 馳走而去(치주이거)하야

借問貧里차문빈리()하야 欲往傭作(욕왕용작)터니

長者是時(장자시시)에 在師子座(재사자좌)타가

遙見其子(요견기자)하고는 黙而識之(묵이식지)하니라

(3) 사람을 시켜 유인하다

卽勅使者(즉칙사자)하야 追捉將來(추착장래)러니

窮子驚喚(궁자경환)하야 迷悶躄地(미민벽지)하며

是人執我(시인집아)는 必當見殺(필당견살)이라

何用衣食(하용의식)하야 使我至此(사아지차)어뇨

長者知子(장자지자)의 愚癡狹劣(우치협열)하야

不信我言(불신아언)하며 不信是父(불신시부)하고

卽以方便(즉이방편)으로 更遣餘人(갱견여인)

眇目矬陋(묘목좌누)인 無威德者(무위덕자)하대

汝可語之(여가어지)하야 云當相雇(운당상고)니

除諸糞穢(제제분예)하면 倍與汝價(배여여가)호리라

窮子聞之(궁자문지)하고 歡喜隨來(환희수래)하야

爲除糞穢(위제분예)하며 淨諸房舍(정제방사)러라

長者於牖(장자어유)에 常見其子(상견기자)하고

念子愚劣(염자우열)로 樂爲鄙事(락위비사)하고는

於是長者(어시장자)가 著弊垢衣(착폐구의)하며

執除糞器(집제분기)하고 往到子所(왕도자소)할새

方便附近(방편부근)하야 語令勤作(어령근작)케하고

旣益汝價(기익여가)와 幷塗足油(병도족유)하며

飮食充足(음식충족)하고 薦席厚暖(천석후난)하며

如是苦言(여시고언)하대 汝當勤作(여당근작)하라

又以輭語(우이연어)하대 若如我子(약여아자)로라

(4) 재산을 알려주고 가업을 물려주다

長者有智(장자유지)하야 漸令入出(점령입출)

經二十年(경이십년)토록 執作家事(집작가사)하며

示其金銀(시기금은)과 眞珠玻瓈(진주파려)인

諸物出入(제물출입)하야 皆使令知(개사령지)하대

猶處門外(유처문외)하야 止宿草庵(지숙초암)하고

自念貧事(자념빈사)하야 我無此物(아무차물)이러니

父知子心(부지자심)이 漸已曠大(점이광대)하고

欲與財物(욕여재물)하야 卽聚親族(즉취친족)

國王大臣(국왕대신)과 刹利居士(찰리거사)하고

於此大衆(어차대중)에 說是我子(설시아자)로서

捨我他行(사아타행)을 經五十歲(경오십세)러니

自見子來(자견자래)로 已二十年(이이십년)이라

昔於某城(석어모성)에 而失是子(이실시자)하고

周行求索(주행구색)타가 遂來至此(수래지차)호니

凡我所有(범아소유)인 舍宅人民(사택인민)을

悉已付之(실이부지)하야 恣其所用(자기소용)케호리라

子念昔貧(자념석빈)하야 志意下劣(지의하열)터니

今於父所(금어부소)에 大獲珍寶(대획진보)와

幷及舍宅(병급사택)과 一切財物(일체재물)하고

甚大歡喜(심대환희)하야 得未曾有(득미증유)러라

 

3 궁자비유의 의미

佛亦如是(불역여시)하야 知我樂小(지아낙소)하사

未曾說言(미증설언) 汝等作佛(여등작불)하시고

而說我等(이설아등)이 得諸無漏(득제무루)라하사

成就小乘(성취소승)인 聲聞弟子(성문제자)이니다

佛勅我等(불칙아등)하사 說最上道(설최상도)하사대

修習此者(수습차자)는 當得成佛(당득성불)이라하시어늘

我承佛敎(아승불교)하고 爲大菩薩(위대보살)하야

以諸因緣(이제인연)과 種種譬喩(종종비유)와

若干言辭(약간언사)로 說無上道(설무상도)호니

諸佛子等(제불자등)이 從我聞法(종아문법)하고

日夜思惟(일야사유)하야 精勤修習(정근수습)이어늘

是時諸佛(시시제불)이 卽授其記(즉수기기)하사대

汝於來世(여어래세)에 當得作佛(당득작불)이라하시니

一切諸佛(일체제불)의 秘藏之法(비장지법)을

但爲菩薩(단위보살)하사 演其實事(연기실사)하시고

而不爲我(이불위아)하야 說斯眞要(설사진요)호니

如彼窮子(여피궁자)가 得近其父(득근기부)하야

雖知諸物(수지제물)이나 心不希取(심불희취)일새

我等雖說(아등수설) 佛法寶藏(불법보장)하나

自無志願(자무지원)도 亦復如是(역부여시)니다

我等內滅(아등내멸)하고는 自謂爲足(자위위족)하야

唯了此事(유료차사)하고 更無餘事(갱무여사)니다

我等若聞(아등약문) 淨佛國土(정불국토)

敎化衆生(교화중생)에는 都無欣樂(도무흔락)호니

所以者何(소이자하)오 一切諸法(일체제법)이

皆悉空寂(개실공적)하야 無生無滅(무생무멸)하며

無大無小(무대무소)하며 無漏無爲(무루무위)라하야

如是思惟(여시사유)하고는 不生喜樂(불생희락)이니다

我等長夜(아등장야)를 於佛智慧(어불지혜)에

無貪無著(무탐무착)하며 無復志願(무부지원)하고

而自於法(이자어법)에 謂是究竟(위시구경)이라하노이다

我等長夜(아등장야)에 修習空法(수습공법)하야

得脫三界(득탈삼계) 苦惱之患(고뇌지환)하고

住最後身(주최후신)인 有餘涅槃(유여열반)하야

佛所敎化(불소교화)에 得道不虛(득도불허)라

則爲已得(즉위이득) 報佛之恩(보불지은)이라호니

我等雖爲(아등수위) 諸佛子等(제불자등)하야

說菩薩法(설보살법)하야 以求佛道(이구불도)

而於是法(이어시법)에 永無願樂(영무원락)이니다

導師見捨(도사견사)하사 觀我心故(관아심고)

初不勸進(초불권진)하사 說有實利(설유실리)하시니

如富長者(여부장자)가 知子志劣(지자지열)하야

以方便力(이방편력)으로 柔伏其心(유복기심)하고

然後乃付(연후내부) 一切財物(일체재물)이라

佛亦如是(불역여시)하야 現希有事(현희유사)하사

知樂小者(지요소자)하시고 以方便力(이방편력)으로

調伏其心(조복기심)하고는 乃敎大智(내교대지)니다

我等今日(아등금일)에사 得未曾有(득미증유)호니

非先所望(비선소망)을 而今自得(이금자득)이라

如彼窮子(여피궁자)가 得無量寶(득무량보)니다

世尊我今(세존아금)에 得道得果(득도득과)하며

於無漏法(어무루법)에 得淸淨眼(득청정안)이니다

我等長夜(아등장야)에 持佛淨戒(지불정계)나

始於今日(시어금일)에 得其果報(득기과보)이니다

法王法中(법왕법중)에 久修梵行(구수범행)하다가

今得無漏(금득무루)인 無上大果(무상대과)이니다

我等今者(아등금자)에 眞是聲聞(진시성문)이라

以佛道聲(이불도성)으로 令一切聞(영일체문)이니다

我等今者(아등금자)에 眞阿羅漢(진아라한)이라

於諸世間(어제세간)과 天人魔梵(천인마범)인

普於其中(보어기중)에 應受供養(응수공양)이니다

4 세존의 은혜를 찬탄하다

世尊大恩(세존대은)이시여 以希有事(이희유사)

憐愍敎化(연민교화)하야 利益我等(이익아등)하시니

無量億劫(무량억겁)에 誰能報者(수능보자)리요

手足供給(수족공급)하고 頭頂禮敬(두정예경)하며

一切供養(일체공양)이라도 皆不能報(개불능보)하며

若以頂戴(약이정대)하고 兩肩荷負(양견하부)하야

於恒沙劫(어항사겁) 盡心恭敬(진심공경)하며

又以美膳(우이미선) 無量寶衣(무량보의)

及諸臥具(급제와구) 種種湯藥(종종탕약)이며

牛頭栴檀(우두전단) 及諸珍寶(급제진보)

以起塔廟(이기탑묘)하고 寶衣布地(보의포지)하야

如斯等事(여사등사) 以用供養(이용공양)

於恒沙劫(어항사겁)이라도 亦不能報(역불능보)니다

諸佛希有(제불희유)하사 無量無邊(무량무변)

不可思議(불가사의)이신 大神通力(대신통력)

無漏無爲(무루무위)이신 諸法之王(제법지왕)으로

能爲下劣(능위하열)하사 忍于斯事(인우사사)하시고

取相凡夫(취상범부) 隨宜而說(수의이설)하시니

諸佛於法(제불어법)에 得最自在(득최자재)하사

知諸衆生(지제중생) 種種欲樂(종종욕락)

及其志力(급기지력) 隨所堪任(수소감임)하사

以無量喩(이무량유)로 而爲說法(이위설법)하시며

隨諸衆生(수제중생) 宿世善根(숙세선근)하며

又知成熟(우지성숙) 未成熟者(미성숙자)하야

種種籌量(종종주량)하사 分別知已(분별지이)하시고

於一乘道(어일승도)에 隨宜說三(수의설삼)이로소이다

妙法蓮華經 第四 信解品 終

제가 신해품을 아주 좋아하는데 이 궁자 비유의 과정이 우리가 불교에 들어와 가지고, 처음에 “성불” 큰스님이 법상에서 계속 “성불” “견성” 이 이야기를 했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슨 소린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뭐 솔직하게 관심도 없고요. 어떻게 하면 그 어린 행자시절에, 말하자면 ‘잠을 좀 더 잘 수 있을까?'‘어떻게 좀 더 일을 적게 할 수 있을까?’ 그저 ‘한 순간이라도 잠 더 잤으면...’ 예불할 때 절한다고 머리 숙이잖아요? 그 새에 잠드는 겁니다. 그게 기껏해야 1초 밖에 안 되는 사이에 잠이 팍 오는 겁니다. 여러분 그런 경험 해봤어요? 요즘 늦게 출가한 사람들은 잘 모르지요. 그 새에 잠이 온다니까요. 그리고는 일어나면 또 같이 일어나요. 그럼 내려 올 때는 빨리 내려와요. 조금이라도 1초라도 더 자려고요. 그런 심정 모를 겁니다.

그것이 견성이 뭐 어떻고 성불이 뭐 어떻고 먹혀들겠어요?

먹혀들지 않아요. 정말 그것은 구름 잡는 소리 밖에 안 되는 겁니다.

여기 그대로 그런 이야기를 그냥 해놨어요. 사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세월이 가고, 경을 공부하고, 철이 좀 들고,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게 되고,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거기에 사나 저기에 사나 인생이란 건 이런 것이다 하는, 인생의 한계도 느끼게 되고, 그러면서 차츰차츰 눈을 뜨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 정말 불교에는, 정말 아주 차원을 달리한 그런 삶이 분명히 있다.’

정말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롭게, 뭐 그렇게 덕이 많아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끌 수 있는 정도의 어떤 법력이 있다든지 그런 것은 못 된다 하더라도 그래도 그 마음 하나는 그 도리에 뭔가 계합하는 바가 있어서, 상당한 그 어떤 자유를 누리고 사는 것. 그것이 세월이 가면서, 여기에 궁자가 처음에 아버지를 만나서 아무 것도 몰랐어요.

잡으러 가니까 그냥 놀라요. ‘나를 죽이러 오는 갚다.’ 하고, 그야말로 잠깐이라도, 1초라도 잠 한 번 더 잤으면 싶은 그런 심정이지만, 그것이 나중에 차츰차츰 불교가 뭐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알게 되지만 그래도 그 차원이 상당하잖아요.

궁극적으로 법화경에 와서는 결국은 ‘아 이것이 정말 한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그 최고의 재산을 다~ 내가 물려받고,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가지고 있었다.’라고 하는 것. 바로 그런 입장까지 이르게 되는 것. 그것이 말하자면 법화경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은 법화경이전에 법화경 없고, 법화경이후에 법화경 없어요. 법화경은 불교의 완성작입니다. 완성품. 불교의 완성품.

부처님 교설의 완성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부처님 교설의 완성이다.” 이 보다 더 완전한 경전은 없어요. 다 부족하지요.

조금씩, 조금씩 다 부족한데 법화경은 정말 이 세상에서 단 한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서슴없이 법화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 정도의 위대한 경전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아주 그야말로 구절구절 마다 다이아몬드가 꽉 꽉 박혀있는데 그것을 낱낱이 드러내가지고 우리가 음미하고ㆍ살펴보고ㆍ즐기고ㆍ또 그것을 이리저리 굴려보기도 하는 그런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또 시간의 제약도 있고 하니까요. 그렇게 아시고 일단 ‘아 법화경은 정말 훌륭한 경전이구나!’조끔, 이거 사실 100분의 1이나 맛을 볼까 말까한 정도거든요.

우리가 30시간을 한다 하더라도 100분의 1이나 맛을 볼까 말까한 정도이지만, 조끔 맛을 본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깊은 의미가 있구나.’ 이런 신심만 여러분이 가지고 있어도, 좀 더 법화경을 깊이 공부하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그런 인연은 충분히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오늘 信解品까지 공부 했습니다.

'공부 > 종교와 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화경 1-1,2  (0) 2013.02.08
법화경 2-1,2  (0) 2013.02.08
법화경 3-1,2 /비유품  (0) 2013.02.07
법화경 4-3,4 화성유품  (0) 2013.02.03
법화경 4-1(약초유품),2(수기품)  (0) 2013.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