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종교와 나

법화경 4-1(약초유품),2(수기품)

應觀 2013. 2. 2. 20:54

 

 

묘법연화경 강좌 제4강-1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9. 02 -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諸佛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 我弟子等 講論三藏 唯願三寶

爲作證明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是我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隅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意

법화경 제5 藥草喩品(약초유품)할 차례입니다.

앞서 譬喩품이 있었고, 그 다음 신해품에서 또 궁자譬喩있었고,

여기 또 약초譬. 품 이름이 아예 藥草喩라고 하는, 약초의 비유라고 하는 그런 뜻으로 되어있습니다. 제목을 잠깐 볼까요?

一 가섭을 찬탄하고 여래지혜를 드러내다.

二 약초의 비유 - 1 차별이 있는 비유. 2 차별이 없는 비유.

三 비유의 의미. 四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이런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약초는 三草二木이라고 해서 비는 一相一味로 내리지만,

비는 한결같이 똑 같이 내리지만 그 비를 맞는 산천초목들은 각양각색이다. 아주 다종다양하지만 삼초이목을 대개 이야기합니다.

세 가지 풀과 두 가지 나무. 큰 풀ㆍ중간 풀ㆍ작은 풀.

나무도 큰 나무ㆍ작은 나무. 이런 식으로 대충 다섯 종류로...

중생들의 근기가 각각 차별함을 그렇게 표현하고, 또 부처님께서는 설법하시는 그 내용이, 하나의 모습이고 하나의 맛이다. 一相一味다.

여기 부처님설법을 비 내리는데 비유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부처님 법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은 소질과 인연과 근기가 다 각각 다르니까 여러 가지 초목에다가 비유를 하는 것입니다. 간단하지요. 그런데 법화경이 문학적으로도 아주 우수 하다고 하는 그런 평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또 이 약초유품이 문학성이 뛰어난 일면이 있다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제五 약초유품(藥草喩品)

一 가섭을 찬탄하고 여래지혜를 드러내다

爾時世尊(이시세존)이 告摩訶迦葉(고마하가섭)과

及諸大弟子(급제대제자)하사대 善哉善哉(선재선재)라

迦葉(가섭)아 善說如來(선설여래)가 眞實功德(진실공덕)하나니

誠如所言(성여소언)이니라 如來(여래)는

復有無量無邊阿僧祗功德(부유무량무변아승지공덕)하나니

汝等(여등)은 若於無量億劫(약어무량억겁)에

說不能盡(설불능진)이니라 迦葉當知(가섭당지)하라

如來是諸法之王(여래시제법지왕)이니 若有所說(약유소설)은

皆不虛也(개불허야)니라 於一切法(어일체법)에

以智方便(이지방편)으로 而演說之(이연설지)어든

其所說法(기소설법)이 皆悉到於一切智地(개실도어일체지지)니라

如來觀知一切諸法之所歸趣(여래관지일체제법지소귀취)하며

亦知一切衆生(역지일체중생)의 深心所行(심심소행)하야

通達無礙(통달무애)하며 又於諸法(우어제법)에

究盡明了(구진명료)하야 示諸衆生(시제중생)에

一切智慧(일체지혜)니라

가섭을 찬탄하고 여래지혜를 드러내다. 저 앞에서, 신해품에서 가섭을 대표로 해서 수보리ㆍ가전연ㆍ목건련. 이렇게 사대성문, 비록 중근기에 해당되는 사대성문이지만 이들이 그 동안 공부해온 것. 처음에 부처님을 만났었지만 부처님의 올곧은 근본정신에는 어림없이 미치지 못하는 그런 입장으로 제자 노릇을 했었다. 그러다가 차츰차츰 근기가 성숙해서 비로소 부처님그 근기에 맞는 최상의 법을 설하고, 또 제자들도 최상의 법을 받아들이는 그런 입장까지 이르렀다. 그것이 법화경을 설하게 된 경지에까지 이르게 됐다. 또 법화경의 이치를 받아들이는 입장이 되었다. 이런 것을 비유를 하는데, 우리가 불교를 만나서 지금까지 말하자면 우리가 걸어온 그 길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래서 신해품은 그런 점이 참 뛰어나고요. 오늘 약초유품은 비가 내리고 거기서 산천초목이 모두 비에 흠뻑 젖어서 저마다, 말하자면 한껏 生長을 해가는 그런 모습. 아주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한 그런 경문입니다.

爾時世尊(이시세존)이, 그 때에 세존이

告摩訶迦葉(고마하가섭)과 及諸大弟子(급제대제자)하사대,

마하가섭과 여러 큰 제자들에게 하사대 善哉善哉(선재선재)라

迦葉(가섭)이여 善說如來(선설여래). 여래가 眞實功德(진실공덕)을

善說하나니, 誠如所言(성여소언)이니라. 진실로 말한바와 같다.

여래의 공덕을 이야기하는데, 설명했다 이런 말이지요.

如來(여래)는 그런 가운데서도 復有無量無邊阿僧祗功德(부유무량무변아승지공덕)하나니, 다시 無量無邊 阿僧祗功德이 있다.

汝等(여등)은 若於無量億劫(약어무량억겁)에, 그대들은 만약 무량억겁에 說不能盡(설불능진)이니라. 설한다 하더라도 능히 말할 수가 없느니라. 迦葉當知(가섭당지)하라. 가섭아, 마땅히 알아라.

如來是諸法之王(여래시제법지왕)이다. 여래는 諸法의 王이다.

모든 진리의 왕이다. 그랬어요. 그리고

若有所說(약유소설)은, 예컨대 만약에 무엇을 설명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皆不虛也(개불허야). 결코 거짓이 없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皆不虛다. 허망하지 않다하는 것입니다.

於一切法(어일체법)에서 以智方便(이지방편)으로,

지혜의 방편으로써 而演說之(이연설지)어든, 연설하거든

其所說法(기소설법)이, 그 설하신바 법이

皆悉到於一切智地(개실도어일체지지)니라. 모두가 부처님이 설하신 것은 일체지혜의 경지. 一切智地라는 것은, 일체지혜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근기 따라서 여러 가지 차원의 교리를 말씀은 하시지만,

궁극적으로 부처님이 우리들에게 바라는 바는 一切智地.

일체 것을 다 꿰뚫어 아는 그런 지혜의 위치. 지혜의 땅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부처님 욕심이라고요. 부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바입니다.

그러니까 一切智地라고 하는 것은 결국 부처님이 이르신 그 경지입니다.

부처님이 가지신 지혜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우리에게 바라기를 당신같이 되도록, 당신이 터득한 그 경지까지 이르게 하도록 하는 것이 말하자면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그것을 여기서 표현하는 것이지요.

 

如來는 觀知一切諸法之所歸趣(여래관지일체제법지소귀취)며.

여래는 일체제법이 돌아갈 바의 그 취지를 다 관찰해서 안다 이 말입니다. 부처님은 예를 들어서 一切의 智地에 이르렀으니까, 일체를 꿰뚫어 아는 지혜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은 모든 존재, 모든 존재가 돌아갈 바의 어떤 그 경지. 그러니까 바르고 참된 이치. 진리지요? 바르고 참된 이치를 다 관찰해서 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어서 살아가는데 모두 이치를 모르고 살다보니까 이런 저런 문제가 많지요. 사실은 이치만 알고 살면, 그대로 하나도 잘못될 것이 없고, 또 내가 이익하든 손해를 보든 간에 그것은 이치가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에, 하등의 누구를 원망하거나 그렇게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통해서 이치를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느냐 못 이루어지느냐? 뭐 가난하게 사느냐 부자로 사느냐? 무슨 공부가 잘 되느냐 못되느냐? 이런 모든 것들도 전부 그 나름의 이치가 있습니다. 이치에 맞추어 보면 못하는 사람은 못하게 되어있고, 잘하는 사람은 잘하게 되어있어요 이치가...

그러면 잘 할 수 있도록 어떤 그 처음부터 이치에 맞는 행위를 하면 누구나 다 잘 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런 것이지 불교가 뭐 어떤 새로운 것을 갖다 주거나 무슨 얼토당토 않는 그런 횡재수를 기다리거나 하는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亦知(역지). 또 안다. 무엇을요?

一切衆生(일체중생)의 深心所行(심심소행). 모든 중생들에게 저 깊은 속에 있는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우리들 저 속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바를 다 알아요. 우리 자신은 몰라요. 우리들의 저 심층의식. 또는 잠재의식 속에서 어떻게 내 마음이 요동치고 움직이는가를 우리 자신은 잘 모르는데, 부처님은 그것을 다 꿰뚫어 알고 있다. 深心所行.

그래서 通達無礙(통달무애)여. 통달해서 아무 것도 걸림이 없으며, 또

又於諸法(우어제법)에 究盡明了(구진명료)라. 그리고 모든 존재의 이치. 諸法. 모든 존재의 이치. 유형무형의 모든 존재. 그런 것에 대해서

究盡明了라. 환하게 끝까지 다 밝혀 알아서

示諸衆生(시제중생)에 一切智慧(일체지혜)니라. 모든 중생들에게

一切智慧를 보이는 것이다.

세존께서 이렇게 가섭존자를, 앞의 신해품에서 사대성문이 당신의 공부를 피력한데 대해서 부처님이 찬탄 하면서 덧 붙여서 여래의 지혜에 대해서 또 여래의 소임. 부처님이 해야 할 소임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이렇게 부연해서 말씀하고 계시지요. 그러면서 그것을 예컨대 비유를 들어서 다시 한 번 환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앞에서의 내용은 대체적인 뜻이고,

차별이 있는 비유 하고, 그 다음에 차별이 없는 비유 그랬어요.

차별이 있다 하는 것은 중생들의 근기의 차별이고, 차별이 없다 하는 것은 부처님의 법문은 아주 차별 없이 내린다. 설 해진다 이 겁니다.

지금 제가 여기서 법화경가지고 저 나름대로 설명을 하는데요.

이것은 설명하는 입장은 차별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각자의 경험과 각자의 지식과 각자가 지금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것은 각각 달라요. 다 다릅니다.

이것은 차별이 있는 겁니다. 이것은 차별이 있는 것이고, 제 말은 一相一味입니다. 한 맛이고 한 모습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이것이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二 약초(藥草)의 비유

1 차별이 있는 비유

迦葉(가섭)아 譬如三千大千世界(비여삼천대천세계)의

山川谿谷(산천계곡)에 土地所生(토지소생)인

卉木叢林(훼목총림)과 及諸藥草(급제약초)의

種類若干(종류약간)이며 名色各異(명색각이)어든

密雲彌布(밀운미포)하야

徧覆三千大千世界(변부삼천대천세계)하야

一時等澍(일시등주)에 其澤普洽(기택보흡)하면

卉木叢林(훼목총림)과 及諸藥草(급제약초)의

小根小莖(소근소경)에 小枝小葉(소지소엽)과

中根中莖(중근중경)에 中枝中葉(중지중엽)과

大根大莖(대근대경)에 大枝大葉(대지대엽)이며

諸樹大小(제수대소)가 隨上中下(수상중하)하야

各有所受(각유소수)어든 一雲所雨(일운소우)에

稱其種性(칭기종성)하야 而得生長(이득생장)하며

華果敷實(화과부실)하니

2 차별이 없는 비유

雖一地所生(수일지소생)이며 一雨所潤(일우소윤)이나

而諸草木(이제초목)이 各有差別(각유차별)하니라

迦葉(가섭)아 譬如三千大千世界(비여삼천대천세계)의,

가섭아 비유하건대, 저 三千大千世界의 山川과 谿谷(산천계곡)에

土地에서 所生(토지소생)인 卉木叢林(훼목총림), 풀과 나무와 온갖 숲. 그리고 及諸藥草(급제약초), 여러 가지 약초가 있어서

種類若干(종류약간)이며, 종류가 若干이며, 아주 많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若干이라는 것은요. 종류가 아주 많으며,

名色各異(명색각이)여, 이름과 색깔이 각각 다르거든, 그런데

密雲이 彌布(밀운미포)여, 아주 빽빽한 구름이, 여름날 두꺼운 구름이 깔려서 徧覆三千大千世界(변부삼천대천세계). 온 세상을 그냥 가득히 덮어 버려요. 그리고

一時에 等澍(일시등주)라. 일시에 평등하게 비를 뿌려요.

其澤普洽(기택보흡)하면, 그 윤택함이 널리 흡족하게 할 것 같으면, 그렇지요. 예를 들어서 여름날 아주 오랫동안 가물었다가 갑자기 구름이 많이 아주 두껍게 끼어가지고 비를 막 쏟아 붓는 것을 우리가 상상하면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지요?

卉木과 叢林(훼목총림)과 及諸藥草(급제약초). 그리고 온갖 약초들이 있는데,

小根小莖(소근소경). 작은 뿌리 작은 줄기. 그 작은 뿌리 작은 줄기는 가지도 작아요. 小枝小葉(소지소엽). 작은 가지 작은 잎. 그리고

中根中莖(중근중경). 중간의 뿌리와 중간의 줄기에

中枝中葉(중지중엽).중간의 가지와 중간의 잎이 열리지요. 그 다음에

大根大莖(대근대경)입니다. 뿌리가 크면 줄기도 크고, 그리고

大枝大葉(대지대엽). 가지도 크고 잎도 크다. 그래서

諸樹大小(제수대소)가, 온갖 나무의 크고 작은 것이

隨上中下(수상중하)하야, 상ㆍ중ㆍ하를 따라서

各有所受(각유소수)어든, 각각 받아들이는 바가 있어요.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감나무는 감나무대로, 밤나무는 밤나무대로, 또 풀은 풀대로, 풀도 큰 풀 작은 풀 그 나름대로 다~, 산에 가면 산천초목이 전부 각각 다르지요.

얼마나 다양합니까? 그와 같이 우리 사람들의 성향과 소질과 또 인연과 취향이 그와 같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거든

一雲所雨(일운소우)에, 하나의 구름에서 비 내리는 바에

稱其種性(칭기종성). 種性에 종류와 성품에 稱아. 맞추어서

而得生長(이득생장)이라. 그런 대로 다 맞는 겁니다. 큰 나무든 작은 나무든, 큰 풀이든 작은 풀이든, 아무튼 비를 받아들이는 것은 전부 똑 같이 자기의 그릇만치 받아들인다. 그래서 生長함을 얻어서

華果도 敷實(화과부실)하니라. 꽃과 열매가 펼쳐지고 열매가 맺히나니라.

그런데 차별이 없는 비유

雖一地所生(수일지소생)이며, 비록 한 땅에서 난 것이고, 또

一雨所潤(일우소윤). 하나의 비로서 윤택하게 한다. 그것이 차별이 없다는 뜻이지요. 그렇지만 而諸草木(이제초목)이, 모든 초목이

各有差別(각유차별)이다. 차별이 없는 가운데서 이렇게 각각 차별이 있다. 그거예요. 그 다음에 비유의 의미가 무엇인가?

三 비유의 의미

1 차별이 있는 비유의 의미

迦葉當知(가섭당지)하라 如來亦復如是(여래역부여시)하야

出現於世(출현어세)는 如大雲起(여대운기)요

以大音聲(이대음성)으로 普徧世界(보변세계)의

天人阿修羅(천인아수라)는 如彼大雲(여피대운)이

徧覆三千大千國土(변부삼천대천국토)하나니라

於大衆中(어대중중)에 而唱是言(이창시언)하대

我是如來應供正徧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佛

世尊(아시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

인사불세존)이라 未度者令度(미도자영도)하고

未解者令解(미해자영해)하며 未安者令安(미안자영안)하고

未涅槃者令得涅槃(미열반자영득열반)하며

今世後世(금세후세)를 如實知之(여실지지)로니

我是一切知者(아시일체지자)며 一切見者(일체견자)며

知道者(지도자)며 開道者(개도자)며 說道者(설도자)라

汝等天人阿修羅衆(여등천인아수라중)은 皆應到此(개응도차)니

爲聽法故(위청법고)니라

爾時無數千萬億種衆生(이시무수천만억종중생)이

來至佛所(내지불소)하야 而聽法(이청법)이러니

如來于時(여래우시)에 觀是衆生(관시중생)의

諸根利鈍(제근이둔)과 精進懈怠(정진해태)하사

隨其所堪(수기소감)하여 而爲說法(이위설법)하야

種種無量(종종무량)하사 皆令歡喜(개령환희)하야

快得善利(쾌득선리)어든 是諸衆生(시제중생)이

聞是法已(문시법이)에 現世安穩(현세안온)하고

後生善處(후생선처)하며 以道受樂(이도수락)하고

亦得聞法(역득문법)하며 旣聞法已(기문법이)에

離諸障礙(이제장애)하고 於諸法中(어제법중)에

任力所能(임력소능)하야 漸得入道(점득입도)는

如彼大雲(여피대운)이 雨於一切卉木叢林(우어일체훼목총림)과

及諸藥草(급제약초)어든 如其種性(여기종성)하야

具足蒙潤(구족몽윤)하야 各得生長(각득생장)하나니라

迦葉當知(가섭당지)하라. 가섭아 마땅히 알아라.

如來亦復如是(여래역부여시)하야, 여래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出現於世(출현어세)는 如大雲起(여대운기)요. 세상에 출현해서 큰 구름을 일으킨 것과 같고,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큰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以大音聲(이대음성)으로써, 큰 음성으로써

普徧世界(보변세계)의, 세계에 두루두루 天ㆍ人ㆍ阿修羅(천인아수라)에게, 널리 덮는 것은, 두루하게 하는 것은 如彼大雲(여피대운)이 徧覆三千大千國土(변부삼천대천국토)하나니라. 마치 저 큰 구름이 三千大千國土를 두루두루 덮는 것과 같나니라.

 

於大衆中(어대중중)에, 대중 가운데서

而唱是言(이창시언)하대, 이러한 말을 하되 我是(아시), 나는, 뭐라고요? 如來ㆍ應供ㆍ正徧知ㆍ明行足ㆍ善逝ㆍ世間解ㆍ無上士ㆍ調御丈夫ㆍ

天人師ㆍ佛世尊(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

천인사불세존)이라. 그 다음부터 줄그어요.

未度者로 令度(미도자영도)하고, 제도하지 못한 자로 하여금 제도하게 하고, 未解者로 令解(미해자영해)하며,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해하게 하며, 未安者로 令安(미안자영안)하고, 편안하지 못한 자로 하여금 편안하게 하고, 未涅槃者로 令得涅槃(미열반자영득열반)하며, 열반을 얻지 못한 자로 하여금 열반을 얻게 하며,

今世와 後世(금세후세)를 如實히 知之(여실지지)러니.

다 안다 이 겁니다. 사실과 똑 같이 다 이 겁니다.

참~ 세상에 태어났다가 한 번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되는데... 未度者로 令度하고ㆍ未解者로 令解하고ㆍ편안하지 못한 사람 편안하게 하고ㆍ열반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는 열반을 얻게 하고ㆍ今世와 後世를 꿰뚫어 안다 말입니다. 我是一切知者(아시일체지자)며 一切見者(일체견자)며 知道者(지도자)며 開道者(개도자)며 說道者(설도자)라.

여기까지입니다. 여기까지 줄그어야 돼요.

나는 一切知者여.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다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라 말입니다.

一切見者며.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다. 또

知道者여. 도를 아는 사람이고 開道者여. 도를 열어 보이는 사람이야. 그리고 도를 설하는 사람이다. 說道者다. 참 당당하지요?

남아로서 세상에 태어났다가 이쯤 한 번 큰 소리 칠 수 있어야 되는데...

거짓말로 하는 것 말고 진실로... 정말 자기 自信이 있어서,

자기 所信으로써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참 얼마나 근사할까 싶습니다.

정말부럽지요. 다른 어떤 것에 부러워하지 말고, 이런 부처님에게 부러워해야 돼요. 이와 같이 당당한 사람에게 부러워해야 한다고요.

누가 뭐 큰 아파트 가졌다고 부러워하고, 좋은 절 가졌다고 부러워하고,

“야~ 니는 왜 이렇게 텔레비전이 크냐?” 그것 부러워할 것 없어요 그 까짓것. 이런 것을 부러워할 줄 알아야 돼요 이런 것을요. 아~ 얼마나 근사합니까?

제도하지 못하는 사람을 제도하는 사람이다.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을 나는 모두 이해시켜주는 사람이다.

편안하지 못한 사람을 내가모두 편안하게 한다.

열반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는 모두 열반을 얻게 한다.

今世나 後世를 如實하게 안다.

나는 一切見者며 知道者며 開道者며 說道者다. 참 정말 근사하지요.

汝等天人阿修羅衆(여등천인아수라중)은 皆應到此(개응도차)하니,

응당히 여기에 오너라. 내게 전부 오너라. 그래서

爲聽法故(위청법고)니라. 왜 오라고 하느냐? 법을 듣기 위함이다.

진리의 말씀을 듣기 위함이다. 爲 聽法故니라. 그래서 모두 나에게 오라고 한다. 爾時無數千萬億種衆生(이시무수천만억종중생)이,

그 때에 無數千萬億種衆生들이 來至佛所(내지불소)하야, 모두 부처님 계시는 곳에, 佛所에 이르러서 而聽法(이청법)이러니, 법을 듣더니

如來于時(여래우시)에, 여래가 그 때에 觀是衆生(관시중생). 중생의

諸根利鈍(제근이둔)과 하사, 모든 근기가 영리한 사람ㆍ둔한사람. 또

精進懈怠(정진해태). 정진을 열심히 하는 사람ㆍ해태한 사람을 전부 관찰하사 隨其所堪(수기소감)하야, 그들이 감당할 바를 전부 따라가지고,

而爲說法(이위설법)이여.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에 맞추어서 그들을 위해서 설법해서

種種으로 無量(종종무량), 한량없이 하사

皆令歡喜(개령환희)하야, 모두모두 환희케 해서

快得善利(쾌득선리)라. 아주 기분 좋게, 좋은 이득을 얻게 한다.

善利. 아주 좋은 이득을 얻게 한다. 善利 얻게 한다. 그러니까 이익도요? 惡利도 있어요. 악리도 많아요. 정말 나에게 웬 횡재냐 하고 자기에게 돌아온다고 덥석 물지 말고, 이것이 善利인가? 惡利인가? 정말 나에게 좋은 이익인가? 아니면 나를 해치는 이익인가? 이런 것들도 살펴 볼 수 있어야지요.

是諸衆生(시제중생)이 聞是法已(문시법이)에, 그럴 때에 모든 중생들이 이러한 이치를 듣고 나서, 現世는 安穩(현세안온)하고. 결과입니다. 우리가 불교를 믿고, 불교를 따르는 사람으로서의 결과입니다.

현세에 편안해 됩니다. 다음 생에 극락가고 어쩌고 그거 따질 것 없다고요. 일단 현세에 일단 편안해 됩니다. 이치에 맞게 편안해 됩니다.

이치에 맞게 現世安穩입니다. 그리고

後生善處(후생선처)입니다. 뒤에는 善處에 태어납니다.

좋은 곳에 태어나야지요. 以道受樂(이도수락)이여. 로써, 진리로써 즐거움을 받고, 다른 것 뭐 세속적인 이익과 명예로써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半苦半樂이니까요. 로써, 진리로써 受樂해야 됩니다. 낙을 받아야 됩니다. 또 그것으로써 亦得聞法(역득문법)하며,

또한 법을 들음을 얻으며, 旣聞法已(기문법이)에 이미 법을 듣고 남에

離諸障礙(이제장애)라. 모든 장애를 다 떠난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온갖 장애를 다 떠나고, 於諸法中(어제법중)에, 모든 법 가운데서

任力所能(임력소능)이야. 자기의 힘에 맞게, 힘이 능한 바에 맞겨서,

漸得入道(점득입도)는, 점점 도에 들어가는 것은

如彼大雲(여피대운)이니, 예컨대 저 큰 구름이

雨於一切卉木叢林(우어일체훼목총림)과, 一切卉木.

一切卉木과 叢林과 그리고 及諸藥草(급제약초)어든, 모든 약초에 비를 내리거든如其種性(여기종성)하야, 種性과 같이 해서 具足하게

蒙潤(구족몽윤). 윤택함을 입어서 各得生長(각득생장)한다.

각각 生長함을 얻는 것과 같다. 그렇지요. 부처님 법을 통해서, 불교를 통해서 우리가 그 나름대로 現世에 安穩하고, 또 다음 생에 좋은데 태어나고,

로써, 다른 어떤 세속적인 가치로써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로써, 즐거움을 누리는 그런 어떤 새로운 가치관이 전개 된다것입니다.

그것을 비유로써 이렇게 잘 표현했지요.

2 차별이 없는 비유의 의미

如來說法(여래설법)은 一相一味(일상일미)니

所謂解脫相(소위해탈상)이며 離相滅相(이상멸상)이라

究竟至於一切種智(구경지어일체종지)하나니

其有衆生(기유중생)이 聞如來法(문여래법)하고

若持讀誦(약지독송)커나 如說修行(여설수행)하면

所得功德(소득공덕)은 不自覺知(부자각지)니라

所以者何(소이자하)오 唯有如來(유유여래)가

知此衆生(지차중생)의 種相體性(종상체성)하대

念何事(염하사)와 思何事(사하사)와 修何事(수하사)며

云何念(운하념)과 云何思(운하사)와 云何修(운하수)며

以何法念(이하법념)과 以何法思(이하법사)와

以何法修(이하법수)며 以何法得何法(이하법득하법)이니라

衆生(중생)이 住於種種之地(주어종종지지)를

唯有如來(유유여래)가 如實見之(여실견지)하야

明了無礙(명료무애)하대 如彼卉木叢林(여피훼목총림)과

諸藥草等(제약초등)이

而不自知上中下性(이부자지상중하성)이니라

如來知是一相一味之法(여래지시일상일미지법)하나니

所謂解脫相(소위해탈상)이며 離相滅相(이상멸상)이며

究竟涅槃(구경열반)인 常寂滅相(상적멸상)이라

終歸於空(종귀어공)하나니 佛知是已(불지시이)하시고

觀衆生心欲(관중생심욕)하사 而將護之(이장호지)일새

是故不卽爲說一切種智(시고부즉위설일체종지)니라

汝等迦葉(여등가섭)이 甚爲希有(심위희유)하야

能知如來(능지여래)가 隨宜說法(수의설법)하야

能信能受(능신능수)하나니 所以者何(소이자하)오

諸佛世尊(제불세존)의 隨宜說法(수의설법)은

難解難知(난해난지)니라

如來의 說法(여래설법)은 一相一味(일상일미)니, 그렇지요.

如來의 說法은 一相一味라. 하나의 모양이고 하나의 맛이라.

所謂解脫相(소위해탈상)이며, 그것을 解脫相이라고 그래요. 모든 장애로부터 벗어난 모습이다 이 겁니다. 물론 生死解脫도 해당 됩니다만,

우리가 가장 먼저 해탈해야 할 것은 자기가 그 동안 그 알량한 삶의 작은 경험과 지식으로 자기가 만들어 놓은 틀. 틀이 있어요.

각자 기준이 있고 틀이 있고요. 아, 이건 이래야 된다. 저건 이래야 된다. 그것을 소위 우리는 고정관념이라고 참 허망한 것이 고정관념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그 동안 살아온 경험과 자기가 쌓은 지식. 그것가지고, 기껏 그것가지고 하나의 틀을 만들거든요. 거기에서부터 벗어날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는 것이 불교입니다.

변화를 추구하려면 말하자면 기존의 어떤 고정관념에서부터 벗어나야 됩니다. 이것이 解脫相입니다.

離相이며 滅相(이상멸상)이라. 떠나는 모습이다. 기존의 어떤 가치관과, 기존의 어떤 자기가 쌓은 그 무엇에서부터 늘 떠나야 됩니다.

끊임없이 떠나야 됩니다. 왜냐? 끊임없이 변화하니까요.

내 마음도 변화하고 세상도 변화하고 나도 성장해야 되고, 내 영혼도 끊임없이 발전해야 되니까요. 발전하려면 기존에서부터 떠나야 되는 겁니다. 그것이 離相입니다. 그래 滅相이라. 그것 무시해야 됩니다.

究竟至於一切種智(구경지어일체종지)니라. 究竟에는 一切種智에 이른다. 부처님이 터득한 지혜. 그 지혜에 이르나니 其有衆生(기유중생)이

聞如來法(문여래법)하고, 여래의 법을 듣고

能持讀誦(능지독송)커나, 능히 가지고 읽고 외우거나 또

如說修行(여설수행)하면, 설한대로 수행할 것 같으

所得功德(소득공덕)은 不自覺知(부자각지)니라. 스스로 그것을 覺知.

깨달아 알지 못 한다. 왜냐? 그냥 하다보니까 어느 정도에 오르게 된 것이고 알게 된 것이지, 뭐 자기가 하는데 대해서 ‘내가 이만치 올랐다. 얼마 공부 됐다.’ 그것이 일일이 표현이 되는 것도 아니지요. 그래서

 

所以者何(소이자하)오? 까닭이 무엇인가?

唯有如來(유유여래)가, 오직 여래께서 知此衆生(지차중생)의, 이 중생들의 種相體性(종상체성)하며, 종류와 모습과 體와 性을안다. 아는데 이제 念何事(염하사), 무슨 일을 생각하고 있는지 다 알아요. 은 기억입니다 사실은... 기억하고 있는 것을 알고,

思何事(사하사), 무슨 일을 사유하고 있는지를 알고, 또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 또 修何事(수하사), 무슨 일에 매진하는가? 수행이라고, 닦는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일을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가? 그것을 안다. 또

云何念(운하념), 어떻게 생각하는 것.

云何思(운하사), 어떻게 사유하는 것. 또

云何修(운하수), 어떻게 닦는 것. 이런 것도 다 알아요. 또

以何法念(이하법념)과, 무슨 방법으로써 생각하는 것과, 또

以何法思(이하법사), 어떤 방법, 무슨 법으로써 사유하는 것, 또

以何法修(이하법수), 무슨 법으로써 닦는 것. 이런 것들도 다 알아요. 또 以何法得何法(이하법득하법), 무슨 법으로써, 무슨 법을 얻는 것까지도 다 아나니라. 우리는 몰라요. 모르지만 여래는 唯有如來라고 했잖아요.

唯有如來가 知 = 안다. 무엇을요? 이중생들의 種相ㆍ體性ㆍ念何事해가지고 끝에까지 以何法으로 得何法하는 것까지 다 안다.

衆生(중생)이 住於種種之地(주어종종지지)를, 가지가지 지위에 머무는 것을 唯有如來(유유여래)가, 오직 여래가 있어서

如實히 見之(여실견지)해서, 여실하게 그것을 보아서

明了無礙(명료무애)하대, 明了. 아주 환하게 요달해서 걸림이 없되,

如彼卉木叢林(여피훼목총림)과, 예컨대 저~ 卉木叢林과 그리고 여러

諸藥草等(제약초등)이 而不自知上中下性(이부자지상중하성)이니라.

스스로는 내가 큰지? 아니면 중간인지? 아니면 작은지? 이것을 몰라요.

작으면 작을 뿐이고, 중간이면 중간일 뿐이지 그것은 사람이 보고 크다 작다 중간이다 이런 것을 나누는 것이지요. 그 당사자. 초목이나ㆍ총림이나ㆍ나무나ㆍ숲이나ㆍ약초나 그것을 모르지요.

如來가 知是一相一味之法(여래지시일상일미지법)하나니,

그런데 여래는 一相一味의 法을 아나니,

所謂解脫相(소위해탈상)이며 離相이며 滅相(이상멸상)이며

究竟涅槃(구경열반)인 常寂滅相(상적멸상)이라. 저 앞에 있었지요?

終歸於空(종귀어공)하나니, 마침내 空으로 돌아가나니

佛知是已(불지시이)하시고, 부처님이 이러한 사실을 아시고

觀衆生의 心欲(관중생심욕)과, 마음에 하고자 하는 것을 觀하사,

而將護之(이장호지)할새. 장차 그들을 보호하고자 할세.

是故로 不卽爲說一切種智(시고부즉위설일체종지)니라.

바로, 곧 바로一切種智를 설하지 아니했어. 중생들 마음을 환히 꿰뚫어보니까 一切種智를 바로 이야기해가지고는 될 일이 아니에요 이것이...

그래서 근기에 맞춰가지고, 온갖 방편의 교설을 설하게 되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汝等迦葉(여등가섭)이 甚爲希有(심위희유)하사, 매우 희유하사 能知如來(능지여래)가, 능히 여래가 隨宜說法(수의설법)해서,

편의를 따라서 설법한다. 그러니까 근기 맞춰서 설법하는 것을 隨宜說法 이렇게 말합니다. 隨宜說法해서 能信能受(능신능수). 능히 믿고 능히 받아들임을 아나니,

所以者何(소이자하)오? 까닭이 무엇이냐?

諸佛世尊(제불세존)의 隨宜說法(수의설법)은 難解難知(난해난지)

니라. 諸佛世尊께서 편의를 따라서, 중생들의 근기를 환히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설법했는데, 중생들은 그것이 다 인줄 아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부처님 속을 難解難知입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 이 겁니다. 말하자면 어른들이 아이가 울면 “호랑이가 왔다.” 라고 거짓말을 하는데 호랑이가 왔는지, 호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이들은 모르는 겁니다. 무조건 그것은 울음을 그쳐야 되는 줄 아는 겁니다. 그리고는 무조건 울음을 그쳐야 되는 줄 알고, 울음을 딱 그치는 겁니다.

그 어른 속을 모르는 것이지요. 아이들은 어른 속을 모르는 겁니다.

그와 같이 정말 제대로 깨달은 부처님의 속을 우리는 모르고, 또 우리에게 이런저런 별별 설명을 했어요. 그러니까 경전이 그렇게 많지요.

그 많고 많은 경전이 우리는 거기에 그냥 매달려가지고 그것이 다 인줄 그렇게 아겁니다. 반야심경을 외울 때는 반야심경이 다이고, 천수경을 읽을 때는 천수경이 다이고, 늘 그렇지요. 그런데 그 설한 사람은 그 속셈이 있어요. 속셈이 다 있다고요. 속셈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도 지금 따라가기 바빠요.

천수경도 그 내용을 알기가 바쁘니까 무슨 그 속셈이...

천수경 왜 그렇게 설했는가? 그 속셈을 알 겨를이 없어요.

호랑이 왔다면 무조건 울음 그쳐야지요. 울음 안 그치면 주먹이 날아가는데 어떻해요? 울음 그치기 바쁜 것이지요. 그렇게 보면 정말 우리는 무수히 깨달아 가고, 무수히 증득해 가고, 그래서 여래의 경지에 오르는 그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게송으로 거듭 설하는데요. 내용은 산문의 내용하고 같습니다. 문학적으로 시 형식을 통해서 좀 더 부연했습니다.

四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1 방편과 진실

爾時世尊(이시세존)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破有法王(파유법왕)이 出現世間(출현세간)하야

隨衆生欲(수중생욕)하야 種種說法(종종설법)하나니라

如來尊重(여래존중)하며 智慧深遠(지혜심원)하야

久黙斯要(구묵사요)하고 不務速說(불무속설)하나니

有智若聞(유지약문)하면 則能信解(즉능신해)하고

無智疑悔(무지의회)하야 則爲永失(즉위영실)이라

是故迦葉(시고가섭)아 隨力爲說(수력위설)하야

以種種緣(이종종연)으로 令得正見(영득정견)케하나니라

2 약초의 비유

(1) 차별이 있는 비유

迦葉當知(가섭당지)하라 譬如大雲(비여대운)

起於世間(기어세간)하야 徧覆一切(변부일체)어든

慧雲含潤(혜운함윤)하고 電光晃曜(전광황요)하며

雷聲遠震(뇌성원진)하야 令衆悅豫(영중열예)하며

日光掩蔽(일광엄폐)하고 地上淸凉(지상청량)하며

靉靆垂布(애체수포)하대 如可承攬(여가승람)하며

其雨普等(기우보등)하야 四方俱下(사방구하)하며

流澍無量(유주무량)하야 率土充洽(솔토충흡)할새

山川險谷(산천험곡)에 幽邃所生(유수소생)인

卉木藥草(훼목약초)와 大小諸樹(대소제수)와

百穀苗稼(백곡묘가)와 甘蔗葡萄(감자포도)가

雨之所潤(우지소윤) 에 無不豐足(무불풍족)하며

乾地普洽(건지보흡)하야 藥木並茂(약목병무)하며

其雲所出(기운소출) 一味之水(일미지수)

草木叢林(초목총림)이 隨分受潤(수분수윤)하며

一切諸樹(일체제수)에 上中下等(상중하등)이

稱其大小(칭기대소)하야 各得生長(각득생장)하며

根莖枝葉(근경지엽)과 華果光色(화과광색)하야

一雨所及(일우소급)에 皆得鮮澤(개득선택)하니라

(2) 차별이 없는 비유

如其體相(여기체상)하야 性分大小(성분대소)

所潤是一(소윤시일)이라 而各滋茂(이각자무)하니라

3 약초비유의 의미

(1) 차별이 있는 비유의 의미

佛亦如是(불역여시)하야 出現於世(출현어세)

譬如大雲(비여대운)이 普覆一切(보부일체)요

旣出于世(기출우세)에 爲諸衆生(위제중생)하야

分別演說(분별연설) 諸法之實(제법지실)하나니

大聖世尊(대성세존) 於諸天人(어제천인)

一切衆中(일체중중) 而宣是言(이선시언)호되

我爲如來(아위여래) 兩足之尊(양족지존)이라

出于世間(출우세간) 猶如大雲(유여대운)

充潤一切(충윤일체)어든 枯槁衆生(고고중생)

皆令離苦(개령이고)하고 得安隱樂(득안은락)

世間之樂(세간지락) 及涅槃樂(급열반락)이니

諸天人衆(제천인중) 一心善聽(일심선청)하며

皆應到此(개응도차)하야 覲無上尊(근무상존)이니라

我爲世尊( 아위세존)하야 無能及者(무능급자)니

安隱衆生( 안은중생)호려 故現於世(고현어세)하야

爲大衆說(위대중설) 甘露淨法(감로정법)호니

其法一味(기법일미) 解脫涅槃(해탈열반)이라

以一妙音( 이일묘음)으로 演暢斯義(연창사의)하며

常爲大乘(상위대승)하야 而作因緣(이작인연)호라

我觀一切(아관일체)하대 普皆平等(보개평등)하야

無有彼此(무유피차) 愛憎之心(애증지심)하며

我無貪著(아무탐착)하고 亦無限礙(역무한애)

恒爲一切(항위일체)하야 平等說法(평등설법)하대

如爲一人(여위일인)하야 衆多亦然(중다역연)하며

常演說法(상연설법)하고 曾無他事(증무타사)하며

去來坐立(거래좌립)終不疲厭(종불피염)하며

充足世間(충족세간)하대 如雨普潤(여우보윤)하야

貴賤上下(귀천상하)와 持戒毁戒(지계훼계)와

威儀具足(위의구족)及不具足(급불구족)

正見邪見(정견사견) 利根鈍根(이근둔근)

等雨法雨(등우법우)하야 而無懈倦(이무해권)호니

(2) 삼초이목의 의미. 여기에 三草二木이 나옵니다.

작은 풀과 중간 풀과 큰 풀. 그 다음에 큰 나무와 작은 나무. 이렇게 이야기가 나오는데 역시 근기의 차별을 말하는 것이지, 그 이상의 다른 이야기는 아닙니다.

一切衆生(일체중생) 聞我法者(문아법자)

隨力所受(수력소수)하야 住於諸地(주어제지)하대

或處人天(혹처인천)轉輪聖王(전륜성왕)

釋梵諸王(석범제왕)하나니 是小藥草(시소약초)요

知無漏法(지무루법)하야 能得涅槃(능득열반)하며

起六神通(기육신통)하야 及得三明(급득삼명)하며

獨處山林(독처산림)하야 常行禪定(상행선정)하야

得緣覺證(득연각증)하나니 是中藥草(시중약초)요

求世尊處(구세존처)하대 我當作佛아당작불()이라하야

行精進定(행정진정)하나니 是上藥草(시상약초)니라

又諸佛子(우제불자)專心佛道(전심불도)하야

常行慈悲(상행자비)하며 自知作佛( 자지작불)하야

決定無疑(결정무의)하나니 是名小樹(시명소수)요

安住神通(안주신통)하야 轉不退輪(전불퇴륜)하며

度無量億(도무량억) 百千衆生(백천중생)하나니

如是菩薩(여시보살) 名爲大樹(명위대수)니라

佛平等說(불평등설)은 如一味雨(여일미우)라

隨衆生性(수중생성)하야 所受不同(소수부동)이니

如彼草木(여피초목) 所稟各異(소품각이)니라

佛以此喩(불이차유) 方便開示(방편개시)하시며

種種言辭(종종언사) 演說一法(연설일법)하시나

於佛智慧(어불지혜)에는 如海一滴(여해일적)이니라

 

(3) 초목이 성장의 의미

我雨法雨(아우법우)하야 充滿世間(충만세간)호니

一味之法(일미지법)隨力修行(수력수행)

如彼叢林(여피총림)藥草諸樹(약초제수)

隨其大小(수기대소)하야 漸增茂好(점증무호)니라

諸佛之法(제불지법) 常以一味(상이일미)

令諸世間(영제세간)으로 普得具足(보득구족)하며

漸次修行(점차수행)하야 皆得道果(개득도과)호라

聲聞緣覺(성문연각) 處於山林(처어산림)하대

住最後身(주최후신)하야 聞法得果(문법득과)

是名藥草(시명약초)가 各得增長(각득증장)이요

若諸菩薩(약제보살) 智慧堅固(지혜견고)하며

了達三界(요달삼계)하야 求最上乘(구최상승)

是名小樹(시명소수)가 而得增長(이득증장)이요

復有住禪(부유주선)하야 得神通力(득신통력)하며

聞諸法空(문제법공)하고 心大歡喜(심대환희)하며

放無數光(방무수광)하야 度諸衆生(도제중생)하니는

是名大樹(시명대수)가 而得增長(이득증장)이니라

我雨法雨(아우법우)하야, 내가 법의 비를 비 내려서

充滿世間(충만세간)호니, 세간에 充滿하니

一味之法(일미지법)에, 한 맛의 법에

隨力修行(수력수행)이, 힘을 따라서 수행하는 것이

如彼叢林(여피총림)과, 저 총림과 그리고 藥草諸樹(약초제수)가,

여러 나무가 隨其大小(수기대소)하야, 크고 작은 것을 따라서

漸增茂好(점증무호)니라. 차츰차츰 무성해지고 아주 좋아지는 것과 같다.

諸佛之法(제불지법)은 常以一味(상이일미)라. 항상 한 맛이라.

令諸世間(영제세간)으로, 모든 세상으로 하여금

普得具足(보득구족)이여, 널리 구족해서 부족함이 없게 하며

漸次修行(점차수행)해서 皆得道果(개득도과)호라. 道果를 얻는다.

聲聞과 緣覺(성문연각)이 處於山林(처어산림)하대, 산림에 처하되

住最後身(주최후신)하야, 최후 身에 머물러서

聞法得果(문법득과)는, 법을 듣고 과를 얻는 것은

是名藥草(시명약초)가, 이름 해서 약초가 各得增長(각득증장)이요.

약초가 각각 차츰차츰 자라는 것과 같고, 우리가 지금 하루하루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약초가 차츰차츰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또

若諸菩薩(약제보살)이, 만약에 모든 보살들이

智慧가 堅固(지혜견고)하며 了達三界(요달삼계). 三界를 了達해서

求最上乘(구최상승)은, 最上乘을 구하는 것은

是名小樹(시명소수)가, 이것은 이름이 小樹가, 작은 나무가

而得增長(이득증장)이요. 그 보살은 나무에 해당되니까요.

나무가 增長하는 것과 같고, 그 다음에

復有住禪(부유주선)하야, 다시 에, 선정에 머물러서

得神通力(득신통력)하며, 神通力을 얻으며

聞諸法空(문제법공)하고, 諸法이 하다고 하는 사실을 듣고는

心大歡喜(심대환희)해서, 마음이 크게 환희해서

放無數光(방무수광)하야, 무수한 광명을 놓아가지고서

度諸衆生(도제중생)하니는,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은

是名大樹(시명대수)가 而得增長(이득증장)이니라. 이것은 이름이 큰 나무가 增長을 것과 같다.

이런 식으로 세세하게 이렇게 배대를 해 놨는데, 그렇지요. 예를 들어서 법화경을 저 나름대로 이야기하지만, 여러분은 여러분의 그 어떤 밑바탕이 되어 있는 어떤 경험과 지식과 또 신심에 따라서 각자 이렇게 성하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까? 신심이라든지 불교에 대한 지식이라든지 또는 안목이라든지 이런 것이 각각 성하는 것이 다르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4) 차별이 없는 비유의 의미

如是迦葉(여시가섭)佛所說法(불소설법)

譬如大雲(비여대운)以一味雨(이일미우)

潤於人華(윤어인화)하야 各得成實(각득성실)하나니라

迦葉當知(가섭당지)하라 以諸因緣(이제인연)과

種種譬喩(종종비유) 開示佛道(개시불도)호니

是我方便(시아방편)이라 諸佛亦然(제불역연)이니라

今爲汝等(금위여등)하야 說最實事(설최실사)호니

諸聲聞衆(제성문중) 皆非滅度(개비멸도)니라

汝等所行(여등소행) 是菩薩道(시보살도)

漸漸修學(점점수학)하면 悉當成佛(실당성불)하리라

如是迦葉(여시가섭)아, 이와 같이 가섭아

佛所說法(불소설법)은, 부처님이 설법하신 것은

譬如大雲(비여대운)이 以一味雨(이일미우)로, 비유하건대 큰 구름이 한맛의 비로써 潤於人華(윤어인화)하야, 사람에게나 또는 꽃에다가 윤택하게 해서 各得成實(각득성실)하나니라. 각각 열매를 이루는 것과 같나니라.

迦葉當知(가섭당지)하라. 가섭아, 마땅히 알아라.

以諸因緣(이제인연)과 種種譬喩(종종비유)로, 모든 인연과 種種譬喩로써 開示佛道(개시불도)호니, 불도를 開示하니

是我方便(시아방편)이라. 이것은 나의 방편이라,

諸佛亦然(제불역연)이니라. 나만 그런 방편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처님도 또한 그러해. 今爲汝等(금위여등)하야, 지금 그대들을 위해서

說最實事(설최실사). 가장 실다운 일을 설하노니

諸聲聞衆(제성문중)은, 성문 대중들은 皆非滅度(개비멸도)니라.

다 진짜 멸도 한 것이. 제도를 얻은 것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汝等所行(여등소행)이, 그대들의 소행이 是菩薩道(시보살도)니, 이것은 菩薩道야. 기껏해야 이제 보살도로 이르러가는 것이지 진짜 제도를 얻은 것이 아니다. 漸漸修學(점점수학)해서 悉當成佛(실당성불)하리라.

차츰차츰 수학할 것 같으면 다 마땅히 성불하리라.

이것은 일반적인 불교 상식에서 비를 맞고, 다시 말해서 부처님의 법의 비를 맞고 우리들의 영혼이 차츰차츰 자라나는 것과 같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약초유품그래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불교 수행을 하고, 불교공부를 하는데, 우리들이 각각 다른 근기지만, 우리들의 심성이 차츰차츰 이렇게 변화와 발전을 가져오는 그런 모습을 아주 참 깨끗하게 문학적으로, 또 눈에 선명히 보이도록, 여름 날 비가 와서 초목이 생장하는 그런 모습으로 그려 놨는데 참 아주 글이 멋있습니다. 내용이 아주...

뜻이야 그렇게 깊은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하나.

그러나 받아들이는 중생들의 근기는 각양각색. 그러나 그 나름대로 작은 풀도 큰 풀도, 작은 나무도 큰 나무도, 다 그 물을 빨아들여서 그 나름대로 키가 크고 꽃을 맺고, 또 열매를 맺는 것은 각각 성향 따라서, 근기 따라서 다르다 하는 그런 내용이지요. 이런 정도의 내용은 아주 쉽고, 뜻이 아주 선명합니다.

 

묘법연화경 강좌 제4강-2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9. 02 -

앞에 신해품에서 사실은 중근기라고 해서 사대성문들이 쭉 자기표현을 하고, 그리고 자기가 평생 동안 부처님 밑에서 공부해온 그런 어떤 공부의 변화 과정을 쭉 털어 놨지요. 그렇게 털어놓고 그것도 또 근사한 비유를 들었어요. 궁자의 비유. 나는 정말 못난 자식이었습니다.

부처님 품안에 왔었어도 이렇게 못난 짓을 하고 살았습니다.

거부 장자인 자기 아버지 밑에 와 가지고서 그 집에서 똥을 치고 하루의 일당을 받아가는 정도로 그런 못난 자식 생활을 했다고 하는 그런 어쩌면 참 부끄러운 짓인데도 그것을 다 토로 했습니다.

그렇게 아주 멋진 비유로써 자기들의 어떤 공부과정을 소개를 하고, 그리고 나선 약간 뜸을 들이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약초유품이 중간에 살짝 끼어 있으면서 이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모두 이러한 각양각색의 소득을 얻게 된다. 참 아주 좋은 품입니다.

그렇게 하고는 그 다음에 한숨 돌려서 여기 보면 수기품이 나오는데,

一 가섭 수기장. 二 삼인이 수기를 청하고. 三 수보리 수기장.

四 가전연 수기장. 五 대목건련 수기장. 그래서 사대성문이 여기서 수기를 다 받게 되는 그런 품이 수기품입니다. 가섭만 수기를 주고 또 한참 뜸을 들였어요. 그러니까 사대성문으로 알려져 있는 세 사람이 “아, 그 가섭 줄 바엔 우리도 좀 주십시오.” 이런 식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인간 심리를 아주 재미있게 묘사를 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제六 수기품(授記品)

一 가섭 수기장(授記章)

1 장문으로 설하다

爾時世尊(이시세존)이 說是偈已(설시게이)하시고

告諸大衆(고제대중)하사 唱如是言(창여시언)하사대

我此弟子(아차제자)의 摩訶迦葉(마하가섭)은

於未來世(어미래세)에

當得奉覲三百萬億諸佛世尊(당득봉근삼백만억제불세존)하사

供養恭敬(공양공경)하고 尊重讚歎(존중찬탄)하며

廣宣諸佛(광선제불)의 無量大法(무량대법)하고

於最後身(어최후신)에 得成爲佛(득성위불)하리니

名曰光明如來應供正徧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

佛世尊(명왈광명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

천인사불세존)이라 國名光德(국명광덕)이요

劫名大莊嚴(겁명대장엄)이며 佛壽十二小劫(불수십이소겁)이요

正法住世二十小劫(정법주세이십소겁)이며

像法亦住二十小劫(상법역주이십소겁)이라

國界嚴飾(국계엄식)하야 無諸穢惡(무제예악)인

瓦礫荊棘(와력형극)과 便利不淨(변리부정)하며

其土平正(기토평정)하야 無有高下(무유고하)인

坑坎堆阜(갱감퇴부)하며 瑠璃爲地(유리위지)하고

寶樹行列(보수항렬)하며 黃金爲繩(황금위승)하야

以界道側(이계도측)하고 散諸寶華(산제보화)하야

周徧淸淨(주변청정)하며 其國菩薩(기국보살)은

無量千億(무량천억)이며 諸聲聞衆(제성문중)도

亦復無數(역부무수)하고 無有魔事(무유마사)하며

雖有魔及魔民(수유마급마민)이라도 皆護佛法(개호불법)이니라

爾時世尊(이시세존)이, 그 때 세존이

說是偈已(설시게이)하시고, 이 게송을 설해 마치시고,(약초유품 게송입니다.) 약초유품의 게송을 설해 마치고

告諸大衆(고제대중)하사, 여러 대중들에게 하사대 唱如是言(창여시언)하사대, 이와 같은 말씀을 부르짖으사대

我此弟子(아차제자)의, 바로 여기 나의 제자 摩訶迦葉(마하가섭)은

於未來世(어미래세)에 當得奉覲三百萬億諸佛世尊(당득봉근삼백만억제불세존). 마땅히 받들어 친근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부처님을요?

三百萬億諸佛世尊받들어 친근해서

供養恭敬(공양공경)하고 尊重讚歎(존중찬탄)하며, 이것 중요한 말입니다. 공양하고 공경해야 되고, 존중하고 찬탄해야 됩니다. 이 네 가지는 아주 필수 조건입니다. “아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여러분 주지 사시는 스님들 많지요? 신도들이 만약에 “아이 스님, 대단하십니다. 대단하십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공양 좀 하라고 하세요. 이것 보세요. 供養하고 恭敬하고 尊重하고 讚歎하고... 이렇게 딱 네 가지 조건을 갖춰야 그것이 진짜로 주지스님을 존경한다든지 하는 일이지, 말로만 “아이고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하는 그것은 안 되는 겁니다. 그것이 말로만 이라고 하는 것이 요즘에 우리나라에서 생긴 말이지만, 경전에 벌써 2600년 전에 벌써 이렇게 나와 있어요.

廣宣諸佛(광선제불)의 無量大法(무량대법)하고, 諸佛의 無量. 한량없는 큰 법을 널리 선전하고 또 於最後身(어최후신)에서 得成爲佛(득성위불)하리니, 부처를 이루게 될 것이니, 名曰(명왈) 이름을 가로되 뭐라고요? 光明如來ㆍ應供ㆍ正徧知ㆍ明行足ㆍ善逝ㆍ世間解ㆍ無上士ㆍ調御丈夫ㆍ天人師ㆍ佛世尊(광명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國名光德(국명광덕)이요. 나라 이름은 光德이요 劫名大莊嚴(겁명대장엄)이며, 겁의 이름은 大莊嚴이며

佛壽十二小劫(불수십이소겁)이요, 부처님의 수명은 12소겁이며,

正法住世二十小劫(정법주세이십소겁)이며, 정법 주세는 20소겁이고,

像法亦住二十小劫(상법역주이십소겁)이라. 상법도 또한 20소겁을 머물게 될 것이다.

 

國界가 嚴飾(국계엄식)이야, 나라의 경계가 아주 잘 꾸며져 있어. 그리고 無諸穢惡(무제예악)이여, 여러 가지 더러운 것. 악한 것. 그런 것은

瓦礫荊棘(와력형극) 便利不淨(변리부정). 이런 것이 없고,

其土는 平正(기토평정)해. 땅은 아주 平正하고 無有高下(무유고하)여. 坑坎堆阜(갱감퇴부)하며, 高下ㆍ구렁텅이ㆍ낭떠러지ㆍ언덕배기 이런 것이 없다 이 말입니다. 사실 그런 것이 있어야 운치가 있고 좋은데 아마 이 법화경이 편집되던 그 지역이 아주 박토고, 말하자면 험한 지역이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땅 좀 편편하고 옥토로 곡식도 잘 자라는 그런 곳을 원했을 런지 모릅니다.

瑠璃爲地(유리위지)하고, 유리로 땅이 되고

寶樹行列(보수항렬)하며, 보배 나무가 가로수로 펼쳐져 있고,

黃金爲繩(황금위승)하야, 황금으로 노끈이 돼서

以界道側(이계도측)이라. 길가에 경계를 삼았고,

散諸寶華(산제보화)하야, 여러 가지 보배 꽃을 흩어서

周徧淸淨(주변청정)이라. 두루두루 청정하며

其國菩薩(기국보살)은, 그 나라의 보살들은 無量千億(무량천억)이며,

諸聲聞衆(제성문중)도, 여러 성문대중들도 亦復無數(역부무수)라.

또한 다시 無數해. 無有魔事(무유마사)여. 마군이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없어. 雖有魔及魔民(수유마급마민)이라도, 혹 마군이와 의 백성이 있다하더라도, 전부 그 사람들은 皆護佛法(개호불법)이야.

다 불법을 보호하는 마군이들이다 이 말입니다. 참 이렇게 되어야 되거든요.

여기도 가섭존자가 두 번째 수기를 받는 이야기지만, 저 앞에 사리불 보다는 사실은 많이 생략이 되었어요. 그 글 양으로 보더라도요. 내용도 그렇지만 글 양으로 보더라도 이미 생략이 이렇게 되었어요. 가면 갈수록 생략 되어갑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어요. 그래서 차츰차츰 우리의 충격을 줄여갑니다. 사실은 맨 처음 방편품에서 말한, 손 한 번만 들어도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라고 하는 이 정신. 人佛思想. 사람이 그대로 부처라고 하는 이 인불사상을 딱 등장시켜놓고, 그리고는 우리들의 보통 상식에 딱 맞추어가지고, 사리불에게 앞으로, 앞으로 이렇게, 이렇게 할 것 같으면 성불해서 이렇게 부처노릇을 할 것이다.

그 다음에 가섭에게 와서는 그것이 많이 생략이 되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三百萬億부처님을 받들고 나서 부처가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보통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상식에 ‘뭐 그 정도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우리도 모르는 여가에 싹 싹 이렇게 그 내용이 생략이 되어갑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500명을 한꺼번에 “보명여래가 되리라.” 아주 싸구려 수기. 엉터리 수기를 내리게 됩니다. 그래도 그 때는 벌써 ‘아 수기라고 하는 의미가 이런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어지간히 알기 때문에 그 때는 충격을 안 받지요.

참~ 그 경전의 글의 안배라고 할까? 치밀한 계산 하에 경전이 편찬 되었다고 하는 것. 아주 정말 뛰어난 경전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공부를 해도 얼마나 깊이 있고 치밀한 경전인가 법화경의 그 속을 다 모른다니까요. 그래 이것은 우리가 평생을 두고 계속 읽고 쓰고 연구하고,

또 다른 사람한테 가르쳐도 보고, 가르치면 몰랐던 것이 자꾸 개발이 됩니다.

그것 참 신기하지요. 혼자 공부할 때 보다... 저는 그래서 가르쳐 달라 하면 크게 사양하지 않고 하는 것이 내 공부가 첫째 많이 돼요.

가르치려면 또 봐야 되니까요. 그리고 또 강의하다보면 생각지도 않던 그런 내용들도 떠오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여기서, 불교학당에서 공부하신 분들은 모두모두 법화경 강사가 돼가지고, 법화경하나를 가지고 평생 가르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하는 그런 소의경전으로 삼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2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爾時世尊(이시세존)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告諸比丘(고제비구)하노니 我以佛眼(아이불안)으로

見是迦葉(견시가섭)컨대 於未來世(어미래세)에

過無數劫(과무수겁)하야 當得作佛(당득작불)이라

而於來世(이어래세)에 供養奉覲(공양봉근)

三百萬億(삼백만억)이신 諸佛世尊(제불세존)하사

爲佛智慧(위불지혜)하야 淨修梵行(정수범행)하며

供養最上(공양최상) 二足尊已(이족존이)하고

修習一切(수습일체) 無上之慧(무상지혜)하야

於最後身(어최후신) 得成爲佛(득성위불)하대

其土淸淨(기토청정)하야 瑠璃爲地(유리위지)하고

多諸寶樹(다제보수)하야 行列道側(항열도측)하고

金繩界道(금승계도)어든 見者歡喜(견자환희)하며

常出好香(상출호향)하고 散衆名華(산중명화)하며

種種奇妙(종종기묘) 以爲莊嚴(이위장엄)하며

其地平正(기지평정)하야 無有丘坑(무유구갱)하며

諸菩薩衆(제보살중) 不可稱計(불가칭계)

其心調柔(기심조유)하야 逮大神通(체대신통)하며

奉持諸佛(봉지제불)의 大乘經典(대승경전)하며

諸聲聞衆(제성문중)의 無漏後身(무루후신)인

法王之子(법왕지자)도 亦不可計(역불가계)라

乃以天眼(내이천안)으로 不能數知(불능수지)하며

其佛當壽(기불당수)는 二十小劫(십이소겁)이요

正法住世(정법주세)는 二十小劫(이십소겁)이며

像法亦住(상법역주) 二十小劫(이십소겁)이라

光明世尊(광명세존)의 其事如是(기사여시)니라

二 삼인(三人)이 수기를 청하다

爾時大目犍連(이시대목건련)과 須菩提(수보리)와

摩訶迦旃延等(마하가전연등)이 皆悉悚慄(개실송율)하야

一心合掌(일심합장)하고 瞻仰尊顔(첨앙존안)하와

目不暫捨(목불잠사)하며 卽共同聲(즉공동성)으로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大雄猛世尊(대웅맹세존)諸釋之法王(제석지법왕)이시라

哀愍我等故(애민아등고)而賜佛音聲(이사불음성)이로다

若知我深心(약지아심심)하야 見爲授記者(견위수기자)면

如以甘露灑(여이감로쇄)하야 除熱得淸凉(제열득청량)이니다

如從飢國來(여종기국래)하야 忽遇大王饍(홀우대왕선)하야도

心猶懷疑懼(심유회의구)하야 未敢卽便食(미감즉변식)인닷호니

若復得王敎(약부득왕교)라사 然後乃敢食(연후내감식)이니다

我等亦如是(아등역여시)하야 每惟小乘過(매유소승과)하고

不知當云何(부지당운하)라사 得佛無上慧(득불무상혜)어뇨이니다

雖聞佛音聲(수문불음성)으로 言我等作佛(언아등작불)하사오니

心尙懷憂懼(심상회우구)하와 如未敢便食(여미감변식)이라

若蒙佛授記(약몽불수기)爾乃快安樂(이내쾌안락)이니다

大雄猛世尊(대웅맹세존)常欲安世間(상욕안세간)하시니

願賜我等記(원사아등기)하시면 如飢須敎食(여기수교식)이니다

三人이 수기를 청하다 그랬습니다. 세 사람이 수기를 청하는 겁니다. 저 앞에 신해품에서 네 성문이, 네 사람이 딱 등장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그 중에 가섭존자는 수기를 줬어요.

爾時(이시), 그 때에 大目犍連(대목건련)과 須菩提(수보리)와 摩訶迦旃延等(마하가전연등)이 皆悉悚慄(개실송율)이야, 悚慄이라고 하는 말은 아주 송구스럽고 또 오싹하기도 하고요. 어떻게 몸 둘 바를 모르는 그런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왜냐? 사리불 혼자 수기줄 때까지는 참았다 이 겁니다. 사실 사리불도 참을 수가 없지요. 거기 거긴데요.

그런데 사리불은 워낙 뛰어난 분이니까 그렇다 손치고, ‘아니 저 늙은 가섭은 수기주면서 우리는 수기를 안줘? 뭘 보더라도 저 늙은 가섭보다야 우리가 났지.’ 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가섭은 떡~ 수기를 주고, 이 사람들은 안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 사람들이 너무 황송 한 니다. 황송하기도 하고, ‘우리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되는가?’ 정말 인생을, 부처님한테 와가지고 수행한다고 정말 올인 했는데 아 이렇게 푸대접 받아서 되느냐? 체면도 없고요. 또 거기는 그 나름대로 사자들이 많고, 또 제자들이 많은데 도대체 이것은 체면 안서는 일이지요. 그런 모든 심리적인 것을 한 마디로 悚慄이라. 皆悉悚慄. 모두모두 悚慄했다. 사전에서 찾아서 悚慄이라는 뜻이 뭔가를 밝혀보십시오.

그리고는 一心合掌(일심합장)하고 瞻仰尊顔(첨앙존안)이여.

尊顔. 부처님의 얼굴을 딱~ 뚫어지라고 막 쳐다보는 니다.

目不暫捨(목불잠사)여. 그야말로 쳐다보는지 째려보는지 하여튼 딱~ 그냥 바라보면서 잠깐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는 합창으로

卽共同聲(즉공동성)으로. 합창으로써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다음은 게송입니다.

大雄猛世尊(대웅맹세존)은, 大雄猛. 큰 영웅이시고 또 용맹하시고 세상의 어른이신 세존은 諸釋之法王(제석지법왕)이라. 모든 석씨들 중에서 왕이다 이 말입니다. 이 자가 중요한 석자입니다. 우리스님들은 무조건 석 뭐라고 써야 돼요. 불명 앞에는 꼭 석자를 써야지 속인 성은 어떤 행정적으로 필요한 서류상에만 속인 성. 김씨 이씨 박씨를 쓰되 보통 우리가 써야할 이름 앞에는 꼭 석자를 써야 됩니다. 이것이 옛날부터 정해진 법칙입니다.

옛날에 우리나라 어떤 큰스님이...

세계 불교도 대회가 마침 대만에서 열렸어요. 거기 갔을 때 명함을

이 아무개라고, 제가 실명은 거론 못하겠어요. 제가 성만 말하지요.

이 아무개라고 된 그런 명함을 떡 꺼내니까, -아주 거창하게 승복을 차려 입었어요. 가사 장삼까지 다 입고 머리 빡빡 깎고 주장자 딱~ 짚고 그랬는데, 명함을 보더니 이 아무개거든요. 아, 속인이 이런 승려 모습을 했구나 하고 저기 밑에 속인자리에 앉혔다는 겁니다.

지금 그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 전부 전 세계는 승려들 이름은 석씨로 앞에다 성을 달아 됩니다. 일반 불자들도 불명을 쓸 때는 석씨라고 해야 돼요. 수경심이라면 “석수경심” 이렇게 써야 된다고요. 반야행이라면 “석반야행” 이렇게 써야 되고요.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것 알아야 됩니다.

틱낫한 = 석일행입니다. 베트남 발음으로하니까 틱낫한이지 그 석자가 입니다. “석일행” 몰랐지요? 한 一자, 행할 行자. 한결같이 행할 길만 탁~ 가잖아요 그 스님은...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석일행” 베트남 스님들도 다 석자 쓴다니까요. 달라이라마도 석달라이라마인가? 그것은 알 수가 없네요. 하하하하 諸釋之法王이라고 했잖아요. 모든 석씨. 이것은 諸釋이라는 것은 모든 부처님제자들. 부처님권속들. 이 말입니다. 모든 부처님권속들 중에서 법의 왕이다. 진리의 왕이다. 참 잔뜩 추어주지요? 뭐 좀 얻어내려면 일단은 이렇게 추어주어 야지요.

哀愍我等故(애민아등고)로, 우리들을 불쌍히 여긴 까닭으로

而賜佛音聲(이사불음성)이로다. 부처님의 음성을 而賜. 우리에게 이렇게 하사한다. 자가 이것이 또 깊은 뜻이 있지요. 하사한다. 우리에게 그냥 설한다 정도가 아닙니다. 이때는 뭘 얻어내려고 하는지 수보리ㆍ가전련ㆍ목건련 이 사람들이요. 大雄猛世尊. 諸釋之法王. 哀愍我等 또 而賜佛音聲. 부처님의 음성을 우리에게 하사해 준다. 경전을 자꾸 읽다보면요? 글자 하나가 놓인 것도 그냥 놓인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보통은 부처님이 우리에게 설법해 준다. 이렇게 표현해도 좋잖아요. 하사한다. 내려준다.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려준다는 뜻으로 자를 많이 쓰잖습니까?

若知我深心(약지아심심)하야, 만약에 우리들의 깊은 마음. 깊은 속을 알아서 見爲授記者(견위수기자)면, 수기 받음을 보여준다면, 자는 수기 받게 됨을 입게 해준다. 당하게 해준다. 이런 뜻입니다. 이런 때의 자는 입을 被하고, 입을 蒙하고 같은 뜻입니다. 수기 받음을 입게 해준다.

우리에게 수기를 주신다면 如以甘露灑(여이감로쇄)하야, 예컨대 저 감로수를 우리에게 뿌린 것과 같아서 除熱得淸凉(제열득청량). 뜨거운 번뇌의 열기를 다 제거하고 시원함을 얻은 것과 같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如從飢國來(여종기국래)하야, 예컨대 저 아주 굶주리고 배고픈 동네에서 와가지고서 忽遇大王饍(홀우대왕선). 홀연히 대왕이 먹는 饍. 반찬을, 음식을 만난 것과 같다. 수기를 준다면 우리가 마치 그와 같은,

그 동안 지지리 못 먹고 배고프고 그랬는데, 대왕이 먹는 음식을 우리에게 내려 주는 것과 같다. 그래서

心猶懷疑懼(심유회의구)하야, 마음은 오히려 의구심을 품어서

未敢卽便食(미감즉변식)이라. 감히 곧 그 음식을 먹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것 죽이려고 왕이 음식을 주는가? 도대체 떠 보려고 주는가? 왜 주는가?’ 그런 마음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거기다가

若復得王敎(약부득왕교). 만약에 다시 왕의 가르침을 얻어서, 그러니까 왕이 “먹어라. 괜찮다. 네가 배고파서 내가 주는 것이니까 먹어라.”라고 하는 그런 가르침을 얻게 된다면, 然後乃敢食(연후내감식)이니다.

그런 연후에 어떻게요? 감히 먹게 된다 말입니다. 그 때는 먹어야지요.

사약이라 하더라도 그 때는 먹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 연후에 감히 먹는 것과 같습니다.

我等亦如是(아등역여시)하야, 우리들도 또한 그와 같아서

每惟小乘過(매유소승과)하고, 매양매양, 늘 소승의 허물을 생각하고,

不知當云何(부지당운하)하야,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소승이라고 하는 그 허물을 알긴 알아요.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대승적인 삶을 살지 거기에 대해서 모른다.

得佛無上慧(득불무상혜)니다. 부처님의 無上慧를 얻을 줄을 알지 못합니다. 마땅히 어떻게 해야 부처님의 최상의 지혜를 얻을까?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 無上이라든지, 無上甚深微妙法이라고 할 때 항상 “가장 높은” 이라고 해석을 해야 됩니다. “위없는”이라고 해석해 놓으면 이건 틀린 소립니다. “가장 높은” 이라고 해야 됩니다. “가장 높고 미묘한 법” 그런데 꼭 “위없는 미묘한 법” 이러는데 위없다면 그것이 무슨 소리입니까? 머리가 없다는 법인가요? 그것을 위없다고 하려면 구체적으로 “이 법보다 더 위에 가는 법이 없는” 이런 뜻이거든요. “이 법보다 더 위에 가는 법이 없는” 이렇게 글을 길게 써야 되는데요. 짧게 쓰려면 “최상”또는 “가장 높은” 이렇게 해석을 해야 옳습니다.

그 참, 해석 잘못 해가지고 이상하게 표현되는 데가 많지요.

최상의 지혜를 얻을 줄을 알지 못합니다.

雖聞佛音聲(수문불음성)으로, 비록 부처님의 음성으로

言我等作佛(언아등작불)하사옵고, 우리들이 부처를 이룰 것이라고 하는 말을 부처님의 음성으로써 듣기는 들어요. 그러나

心尙懷憂懼(심상회우구)여. 마음으로는 항상 염려하고 두렵고 근심되고 하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한결같이 “사람이 본래로 부처다” 라고 해도 우리는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무덤덤하고 조금 생각이 있는 사람은 ‘야, 정말 그럴까?’ 의혹을 품기도 하고, 천차만별이지요. 여러 가지 현상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如未敢便食(여미감변식)이라. 예컨대 왕의 음식을 왕이 먹으라고 내줘도 감히 곧 먹지 못하는 것과 같다. “너도 부처야” 라고 해도, 수없이 사실 그렇게 이야길 했어요. 했는데도 그것이 선뜻 마음이 다가서지 않는 것은 왕이 음식을 내줬는데도 ‘이것 날 죽이려고 하는가? 약을 타서 주는가? 나를 떠보려고 하는가?’ 그래 함부로 못 먹는 겁니다. 그 중에서도 거지가 왕이 음식을 내주면 함부로 못 먹는 것과 같은 겁니다.

우리의 심리를 참 잘 그렸지요. 우리가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다. 당신은 부처님. 당신은 부처님. 하고 무수히 이야기 하지만 그것이 마음에 썩 다가서지 않는 것은 그와 같다 이 겁니다.

왕이, 거지 앞에 왕의 음식을 내놔 봐요. 거지가 무슨 배짱으로 함부로 먹수 있겠어요? 저 앞에(3강-4) 있었지요? 우리가 마음이 通泰(통태)해졌다. 커졌다. 자꾸 커져야 돼요. 커질 수 있는 소질은 우리가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若蒙佛授記(약몽불수기)면, 만약에, 만약에 부처님께서 수기 주심을 입을 것 같으면, 부처님이 우리에게 수기를 주시기만 한다면

爾乃快安樂(이내쾌안락)이니다. 이에 아주 유쾌하고 안락할 것입니다. 아주 정말 안락할 것입니다.

大雄猛世尊(대웅맹세존)이 常欲安世間(상욕안세간)하시니,

大雄猛世尊이 항상 세상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하지 않습니까?

부처님의 임무. 소임이 바로 그것 아닙니까?

願賜我等記(원사아등기)하시면, 원컨대 우리들에게 수기를 하사 하실 것 같으면 如飢須敎食(여기수교식)이니다. 예컨대 임금께서 주린 거지에게 모름지기 “먹으라 이 밥은 내가 너를 위해서 주는 것이니까 먹으라.” 라고 하는 것과 똑 같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 사람이 수기를 간절하게 청하는데 그 비유도 아주 참 근사하지요. 왕과 거지와의 관계. 또 우리 못난 중생과 부처님과의 관계.

그래서 부처님이 우리 못난 중생에게 “너도 부처님이야. “너도 부처님이야. 떨지 마. 왕이 먹는 음식 네도 먹어도 돼. 동등 해” 얼마나 명확하게 그려 놨습니까? 참 기가 막히게 그려 놨지요. 이런 처지입니다.

사실은 석가모니부처님도 따지고 보면 사람일 뿐이고, 그저 어느 날 눈을 떠서 부처되었고,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알았지요.

부처가 된 것이 아니라 이미 부처인데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알았지요. 인간은 참으로 위대한 존재다 라고 하는 사실을 알았어요.

달라진 것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그것을 확실히 안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그 어떤 행동거지할까 자신감이라고 할까 삶의 표현이 전혀 다르지요. 그래서 스님들은 항상 자고 일어나서 머리를 만져보라 그랬잖아요. 머리를 만져보니까 깎아졌거든요. ‘아 나는 중이구나.’그래 중이라고 하는 생각을 딱 하면 그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머리 딱 만져보고‘아 나는 중이다.’딱 입력을 해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놓으면 하루 종일 중으로 표현이 되듯이... 처음에 중 되었을 때는 잊어버린다고요. 내가 중인가 뭔가 잘 모르거든요. 그러니까 ㅎㅎㅎ 부처님이 머리 만져보라 그랬어요 유교경 같은데서요. 그래서 기억을 하라. 엔간히 둔한 ㅎㅎㅎ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가 중이 되었는데도 ㅎㅎㅎㅎㅎㅎ 중 된 줄도 모르고 ㅎㅎㅎㅎ 사는 사람이 아마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사이사이에 이렇게 주옥같이 끼워져 있기 때문에 법화경은 참 위대한 경전이고, 아주 소중한 경전입니다. 이것을 왜 강원에도 교과서로 채택이 안 되었고...옛날에는 강원에서 수의과에 [전등 염송 법화경] 이렇게 해서 저희가 있을 때만 해도 수의과가 있어서 법화경을 봤어요. 그 때는 보는 것이지 배우는 것은 아니지요. 그랬는데 어느 날, 강원에도 수의과가 없어져버리고 법화경 그냥 보는 사람이 없어지고 그렇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여기 처음에 교육원을 설립해서는 ‘강원에서 공부하는 그것을 그대로 답습해서 일단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해서 했는데요. 하도 올라와서 해달라고, 해달라고 해서 아픈 몸이 오늘이나 나을까 내일이나 나을까 하고 미루고, 미루고 기다려도 쉽게 안 나아가지고... 그러면 거기다가 법화경 끼워 넣으라. 법화경은 가서 해주겠다.

이렇게 해서 여기 이번 회에부터 법화경이 들어 있는 겁니다.

시간을 많이 늘리면 좀 더 자세하게 하는데, 처음이다 보니까 10회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상당한 것이지요.

이 법화경이 반드시 끼워 있어 됩니다. 이것 최고의 교재입니다.

이보다 더 훌륭한 교재가 없습니다. 이 안에는 小乘敎理ㆍ무슨 四聖諦ㆍ八正道ㆍ十二緣起 다 있고, 그 다음에 大乘敎理 다 있고 그러니까요.

三 수보리 수기장(授記章)

1 장문으로 설하다

爾時世尊(이시세존)이 知諸大弟子(지제대제자)의

心之所念(심지소념)하시고 告諸比丘(고제비구)하사대

是須菩提(시수보리)는 於當來世(어당래세)에

奉覲三百萬億那由他佛(봉근삼백만억나유타불)하사

供養恭敬(공양공경)하며 尊重讚歎(존중찬탄)하고

常修梵行(상수범행)하야 具菩薩道(구보살도)라가

於最後身(어최후신)에 得成爲佛(득성위불)하면

號曰名相如來應供正徧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

佛世尊(호왈명상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

천인사불세존)이라 劫名有寶(겁명유보)요

國名寶生(국명보생)이며 其土平正(기토평정)하야

玻瓈爲地(파려위지)하고 寶樹莊嚴(보수장엄)하며

無諸丘坑(무제구갱)과 沙礫荊棘(사력형극)과

便利之穢(변리지예)하고 寶華覆地(보화부지)하야

周徧淸淨(주변청정)하며 其土人民(기토인민)은

皆處寶臺(개처보대)와 珍妙樓閣(진묘루각)하고

聲聞弟子(성문제자)는 無量無邊(무량무변)하야

算數譬喩(산수비유)의 所不能知(소불능지)며

諸菩薩衆(제보살중)도 無數千萬億那由他(무수천만억나유타)라

佛壽十二小劫(불수십이소겁)이요

正法住世二十小劫(정법주세이십소겁)이며

像法亦住二十小劫(상법역주이십소겁)이라

其佛常處虛空(기불상처허공)하야 爲衆說法(위중설법)하야

度脫無量菩薩(도탈무량보살)과 及聲聞衆(급성문중)하나니라

수보리가 드디어 수기를 받습니다. 이렇게 간청을 했는데 부처님이 무슨 부처님이라고 어떻게 수기를 안 줄 수 있습니까?

爾時世尊(이시세존)이, 그 때에 부처님이 知諸大弟子(지제대제자)의

心之所念(심지소념)하시고, 여러 큰제자들이 마음에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 告諸比丘(고제비구)하사대 是須菩提(시수보리)는, 여기에 있는 수보리는 於當來世(어당래세)에 奉覲三百萬億那由他佛(봉근삼백만억나유타불)하사, 奉覲. 받들고 친근할 것이다 그 말입니다.

300만억那由他 부처님을 친근 하사 供養恭敬(공양공경) 尊重讚歎(존중찬탄)하고,

常修梵行(상수범행)하야, 항상 梵行을 닦아서

具菩薩道(구보살도)라가, 보살도를 갖췄다가

於最後身(어최후신)에 得成爲佛(득성위불)하면, 최후신에 가서 성불할 것 같으면 號曰名相如來ㆍ應供ㆍ正徧知ㆍ明行足ㆍ善逝ㆍ世間解ㆍ

無上士ㆍ調御丈夫ㆍ天人師ㆍ佛世尊(호왈명상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

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劫名有寶(겁명유보)요, 劫의 이름은 有寶요, 國名寶生(국명보생)이며, 나라 이름은 寶生이며, 其土平正(기토평정)하야, 그 국토는 평정해서

玻瓈爲地(파려위지)하고 寶樹莊嚴(보수장엄)하며,

玻瓈로써 땅이 되고 보배 나무로써 莊嚴했으며,

無諸丘坑(무제구갱)과, 모든 언덕과 구릉과 沙礫荊棘(사력형극)과,

모래와 자갈. 그리고 가시덤불. 便利之穢(변리지예)하고, 대소 변리 같은 이런 더러운 것이 없고, 寶華覆地(보화부지)야. 보배 꽃으로써 땅을 덮고,周徧淸淨(주변청정)하며 其土人民(기토인민)은 皆處寶臺(개처보

대)하야 보배로 된 누대와 珍妙樓閣(진묘루각) 처해서,

聲聞弟子(성문제자)들은 無量無邊(무량무변)하야, 聲聞弟子들은 전부 공부만 하는 입니다. 지금 여러분 같이 강의하는 말소리를 듣고 공부하는 사람들입니다. “학습 주의자”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無量無邊해요. 제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 많은 우리스님들도 그렇고, 불자들도 그렇고요. 전부 그냥 무식꾼으로 만들어 놔요. 하~~ 아까운 시간. 시간을 얼마나 많이 투자합니까? 돈은 또 절에 얼마나 많이 갖다 줍니까? 그러면서 그저 관세음보살 하나 부르든지 아니면 무슨 절만 하든지 아니면 아무 것도 모르는 무식꾼들 앉혀놓고 떡~ 눈감고 앉아가지고 뭐 하자는 겁니까? 그것.

온갖 오만 잡다한 생각 머릿속에 다 가지고 있으면서... 그만 시간만 낭비해 버리는 겁니다. 그래 전부 무식꾼 만드는 겁니다.

우리 불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서 자랑할 만 한 것이 뭔데요?

8만대장경. 공부해야할 꺼리가 많다는 것 아닙니까? 공부할 꺼리가...

공부할 꺼리가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된 심판인지 전부 무식꾼 만드는 겁니다. 그 많은 시간을 소비해가면서... 이것을 우리가 빨리 개선해야 불교가 살아남지 불교는 불교의 장점을 살려 됩니다.

보살행 잘 못하잖아요. 말로만 보살행, 보살행하지 다른 종교에 비해서 보살행 못합니다. 어림도 없어요. 100분의 1도 못하고 있거든요.

한편 보살행 잘 하면서 사실은 우리의 강점인 공부를 시켜 됩니다.

스님들도 열심히 경전ㆍ어록공부하고, 딴 공부하면 안 돼요.

불교공부 해야지요. 다른 것 지금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뒤따라가다 볼일 다 보는 겁니다. 뒤따라가다가 못 따라가니까 쳐져버리고 말아요.

스님들 절대 딴 공부하려고 하지 마세요. 자기 강한 것을 더욱 강하게 해야 빛이 납니다. 대개 사람들은 그런 생각합니다. 내부족한 것을 보충 하려고 해요. 내부족한 것. 아 나는 영어도 못하고 사회지식도 부족하고... 못하는 것을 보충 하려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맞지요. 맞는 것 같지요? 천만에요. 그거는 못 써요. 평생 못씁니다.

부족한 것 지금 보충해가지고 어쩌잔 말입니까? 강한 것을 더욱 강하게 해야 됩니다. 염불 잘하고 불교경전 잘 공부하고 그래서 경전이나 어록 같은 것. 법화경은 세상에, 무비 스님이든 누구는 법화경은 나 따라 올 사람 없다. 내가 최고야. 이런 강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됩니다.

금강경하면 내가 최고야. 뭐 어디 6조 스님, 나보다도 못해.

6조 스님 현대적으로 당신 강의 할 수 있어? 못해. 내가 더 잘해. 이런 정도로 한 가지 그 어떤 경전이나 어록에 강점을 가지고 있어됩니다. 포교사들도 마찬가지고요. 다른 것 세속인들이 잘 하는 것 그것, 지금 따라가면서 해 봐야 계속 뒤따라가다 나중에는 그것도 못 미쳐가지고 나중에는 탈락하고 말아버려요. 전부 그래요. 선배 스님들 살아가는 것 보면 뻔 하잖아요. 강한 것을 더욱 강하게 해야 그것이 그래도 빛을 보는 겁니다. 그것을 꼭 알아야 되는데 모두 부족한 것을 보충하려고 합니다. 부족한 것이 어디 한 두 가진가요? 부족한 것이 한두 가지 아닙니다.

한 가지만 확실하게 해놓으면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예를 들어서 금강경하면, 금강경참고서는 내가 제일 많이 가지고 있고, 금강경에 대해서는 내가 제일 잘 알아. 6조 스님도 나한테는 못 따라와. 현대적으로 금강경을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이런 정도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천수경 하나만 해도 좋아요. 반야심경 하나만 해도 좋아요. 그렇게 해야 되는데 자기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 얼른 생각하면 그것이 맞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래서 허송세월 많이 했어요.

허송세월 많이 했지만... 그래서 일어니 중국어니 영어니 하는 것 50년 동안 계속 입문서만 보는 겁니다. 하하하 하하하 하 50년 동안 계속 입문서... 왜냐? 한참 해 놓으면 또 까먹고 처음부터 또 보고...

한참 해 놓으면 또 싫증나면 또 까먹고 또 처음부터 보고...

그것 소용없어요.

저는 이제 근래에 임제록이나 법화경 같은 것을, 이런 데에 아주 막 그냥 큰 소리 치고 다니면서 강의를 하잖아요. 여러분은 지금 딱 좋지요. 젊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우리 신도님들도 그렇고 스님들도 그렇고, 불교의 강점은 유식입니다 有識. 유식한 겁니다.

공부할 꺼리가 많으니까 우리가 공부해서 스님들도 유식해야 되고, 신도들도 유식해야 돼요. 그래야지 그 많은 시간들 멍청하게 그렇게 세월 보내가지고 나중에 공부하려니까 손에 잡히나요? 이것이 업이 안 되면 안 되는 겁니다. 업이 된 사람도 나이 들면 힘 드는데 업이 안 된 사람은 공부하기 참 어려워요.

러니까 그 아까운 많은 시간들, 그 많은 사람들 많은 시간들을 그렇게 멍청이로 만들어 놓고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 전부 사찰에서도 신도들을 기초교리라든지 불교입문서라든지 경전이라든지, 한문으로 된 경전. 하나씩, 하나씩 가르치면 그것 10년 절에 다니니까 휘딱 지나가잖아요.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 봐요. 10년이면 이것 다 꿰뚫고도 남아요.

聲聞弟子(성문제자)는 無量無邊(무량무변)이라. 聲聞弟子는 공부하는 제자들이다. “학습 주의자다.” 이 뜻입니다.

無量無邊해서 算數譬喩(산수비유)로 所不能知(소불능지)라.

算數譬喩로써도 아무리 알려고 해도 모를 정도로 숫자가 많다 이런 말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공부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 이 뜻입니다.

이것도 사실은 제가 지금 중언부언 이야기했지만, 이 경문하고 아주 관계가 깊은 이야기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무수하다 이 말입니다.

諸菩薩衆(제보살중)도 無數千萬億那由他(무수천만억나유타)라.

佛壽十二小劫(불수십이소겁)이요, 부처님수명은 12소겁이고,

正法住世는 二十小劫(정법주세이십소겁)이고, 像法亦住二十小劫(상법역주이십소겁)이다. 상법 주세도 20소겁이다.

其佛常處虛空(기불상처허공)하야, 부처님은 항상 虛空에 처해요.

허공에 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爲衆說法(위중설법)이야, 허공에서 법을 설한다. 그래서 度脫無量菩薩(도탈무량보살)과 及聲聞衆(급성문중)하나니라. 무량보살과 그리고 성문대중들을 해탈시킨다. 제도한다. 度脫 한다.

2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爾時世尊(이시세존)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諸比丘衆(제비구중)今告汝等(금고여등)하노니

皆當一心(개당일심)으로 聽我所說(청아소설)하라

我大弟子( 아대제자)須菩提者(수보리자)

當得作佛(당득작불)하대 號曰名相(호왈명상)이라

當供無數(당공무수) 萬億諸佛(만억제불)하고

隨佛所行(수불소행)하야 漸具大道(점구대도)타가

最後身得(최후신득) 三十二相(삼십이상)하면

端正殊妙(단정수묘) 猶如寶山(유여보산)하며

其佛國土(기불국토) 嚴淨第一(엄정제일)이라

衆生見者(중생견자) 無不愛樂(무불애락)하니

佛於其中(불어기중) 度無量衆(도무량중)하리라

其佛法中(기불법중) 多諸菩薩(다제보살)하대

皆悉利根(개실이근)으로 轉不退輪(전불퇴륜)하며

彼國常以(피국상이) 菩薩莊嚴(보살장엄)하고

諸聲聞衆(제성문중) 不可稱數(불가칭수)

皆得三明(개득삼명)하고 具六神通(구육신통)하며

住八解脫(주팔해탈)하야 有大威德(유대위덕)하나니라

其佛說法(기불설법)하사 現於無量(현어무량)

神通變化(신통변화) 不可思議(불가사의)어든

諸天人民(제천인민) 數如恒沙(수여항사)

皆共合掌(개공합장)하야 聽受佛語(청수불어)하리라

其佛當壽(기불당수) 十二小劫(십이소겁)이요

正法住世(정법주세) 二十小劫(이십소겁)이며

像法亦住(상법역주) 二十小劫(이십소겁)하나니라

四 가전연 수기장(授記章)

1 장문으로 설하다

爾時世尊(이시세존)이 復告諸比丘衆(부고제비구중)하사대

我今語汝(아금어여)하노니 是大迦旃延(시대가전연)은

於當來世(어당래세)에 以諸供具(이제공구)로

供養奉事八千億佛(공양봉사팔천억불)하야

恭敬尊重(공경존중)하며 諸佛滅後(제불멸후)에

各起塔廟(각기탑묘)하대 高千由旬(고천유순)이며

縱廣正等五百由旬(종광정등오백유순)이라

以金銀琉璃硨磲瑪瑙眞珠玫瑰七寶合成(이금은유리자거마노진주

매괴칠보합성)하며 衆華瓔珞(중화영락)과

塗香抹香燒香(도향말향소향)과 繒蓋幢幡(증개당번)으로

供養塔廟(공양탑묘)하고 過是已後(과시이후)에

當復供養二萬億佛(당부공양이만억불)하대

亦復如是(역부여시)하며 供養是諸佛已(공양시제불이)하야는

具菩薩道(구보살도)하야 當得作佛(당득작불)하리니

號曰閻浮那提金光如來應供正徧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

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호왈염부나제금광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

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其土平正(기토평정)하야 玻瓈爲地(파려위지)하며

寶樹莊嚴(보수장엄)하고 黃金爲繩(황금위승)하야

以界道側(이계도측)하며 妙華覆地(묘화부지)하야

周徧淸淨(주변청정)하니 見者歡喜(견자환희)하며

無四惡道(무사악도)인

地獄餓鬼畜生阿脩羅道(지옥아귀축생아수라도)하고

多有天人(다유천인)과 諸聲聞衆(제성문중)과

及諸菩薩(급제보살)의 無量萬億(무량만억)하야

莊嚴其國(장엄기국)하며 佛壽十二小劫(불수십이소겁)이요

正法住世二十小劫(정법주세이십소겁)이며

像法亦住二十小劫(상법역주이십소겁)하나니라

爾時世尊(이시세존)이, 그 때에 세존이 復告諸比丘衆(부고제비구중)하사대 我今語汝(아금어여)하노니 是大迦旃延(시대가전연)은

於當來世(어당래세)에 以諸供具(이제공구)로, 여러 가지 공양구로서

供養奉事八千億佛(공양봉사팔천억불)하야, 8천억 부처님에게 공양하고 봉사해서 恭敬尊重(공경존중)하며 諸佛滅後(제불멸후)에, 부처님이 열반한 뒤에 各起塔廟(각기탑묘)하대, 각각 塔廟를 일으켜, 세워서

高千由旬(고천유순)이며, 높이를 千由旬같이 하고 縱廣正等五百由旬(종광정등오백유순)이라. 縱廣이 正等하게 가로세로입니다. 5백 유순이다.

以金ㆍ銀ㆍ琉璃ㆍ硨磲ㆍ瑪瑙ㆍ眞珠ㆍ玫瑰ㆍ七寶로 合成(이금은

유리자거마노진주매괴칠보합성)했으며, 衆華瓔珞(중화영락). 온갖 꽃과 瓔珞과 그리고 塗香ㆍ抹香ㆍ燒香(도향말향소향)과 繒蓋ㆍ幢幡(증개당번)으로 供養塔廟(공양탑묘)에. 탑 에다가 공양하고

過是已後(과시이후)에, 이러한 일을 지낸 뒤에는 또

當復供養二萬億佛(당부공양이만억불)하대, 마땅히 다시 二萬億 부처님께 또 공양하되, 亦復如是(역부여시)하며 供養是諸佛已(공양시제불이)하야는, 제불에게 공양하고 나서는 具菩薩道(구보살도)하야, 보살도를 갖추어서 當得作佛(당득작불)하리니, 마땅히 부처를 지으리니

 

號曰閻浮那提金光如來ㆍ應供ㆍ正徧知ㆍ明行足ㆍ善逝ㆍ世間解ㆍ

無上士ㆍ調御丈夫ㆍ天人師ㆍ佛世尊(호왈염부나제금광여래응공

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其土平正(기토평정)하야, 그 국토는 平正하고

玻瓈爲地(파려위지)하며, 玻瓈로써 땅이 되고

寶樹莊嚴(보수장엄)하고, 보배나무로써 莊嚴하고

黃金爲繩(황금위승)하야 以界道側(이계도측)하며, 황금으로 노끈을 만들어서 길가에다가 쳤으며, 妙華覆地(묘화부지). 아름다운 꽃으로써 땅을 덮었으며,

 

周徧淸淨(주변청정)하니 見者歡喜(견자환희)라. 보는 사람마다 다 환희하며, 無四(무사악도)인, 네 가지 惡道地獄ㆍ餓鬼ㆍ畜生ㆍ阿脩羅道(지옥아귀축생아수라도)가 없고, 多有天人(다유천인)과 그리고

諸聲聞衆(제성문중)과 及諸菩薩(급제보살)이, 온갖 성문대중과 보살대중이 無量萬億(무량만억)이라. 莊嚴其國(장엄기국)하며, 그들이 그 나라를 莊嚴하며 佛壽十二小劫(불수십이소겁)이요, 부처님 수명은 十二小劫이고 正法住世는 二十小劫(정법주세이십소겁)이고 像法亦住二十小劫(상법역주이십소겁)이니라. 상법 주세도 二十小劫이니라.

 

2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爾時世尊(이시세존)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諸比丘衆(제비구중)은 皆一心聽(개일심청)하라

如我所說(여아소설)眞實無異(진실무이)하나니라

是迦旃延(시가전연) 當以種種(당이종종)

妙好供具(묘호공구)供養諸佛(공양제불)하고

諸佛滅後(제불멸후)起七寶塔(기칠보탑)하대

亦以華香(역이화향)으로 供養舍利(공양사리)하며

其最後身(기최후신)得佛智慧(득불지혜)하야

成等正覺(성등정각)이어든 國土淸淨(국토청정)하며

度脫無量(도탈무량) 萬億衆生(만억중생)하야

皆爲十方(개위시방) 之所供養(지소공양)하며

佛之光明(불지광명)無能勝者(무능승자)리라

其佛號曰(기불호왈) 閻浮金光(염부금광)이라

菩薩聲聞(보살성문)斷一切有(단일체유)

無量無數(무량무수)로 莊嚴其國(장엄기국)하나니라

이렇게 해서 가전연 수기가 끝났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대목건련 수기장.

五 대목건련 수기장(授記章)

1 장문으로 설하다

爾時世尊(이시세존)이 復告大衆(부고대중)하사대

我今語汝(아금어여)하노니 是大目犍連(시대목건련)은

當以種種供具(당이종종공구)로

供養八千諸佛(공양팔천제불)하야 恭敬尊重(공경존중)하고

諸佛滅後(제불멸후)에 各起塔廟(각기탑묘)하대

高千由旬(고천유순)이며 縱廣正等(종광정등)은

五百由旬(오백유순)이라

以金銀琉璃硨磲瑪瑙眞珠玫瑰七寶合成(이금은유리차거마노진주

매괴칠보합성)하며 衆華瓔珞(중화영락)과

塗香抹香燒香(도향말향소향)과 繒蓋幢幡(증개당번)으로

以用供養(이용공양)하고 過是已後(과시이후)에

當復供養二百萬億諸佛(당부공양이백만억제불)하대

亦復如是(역부여시)하고 當得成佛(당득성불)하면

號曰多摩羅跋栴檀香如來應供正徧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

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호왈다마라발전단향여래응공정변지

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劫名喜滿(겁명희만)이요 國名意樂(국명의락)이며

其土平正(기토평정)하야 玻瓈爲地(파려위지)하고

寶樹莊嚴(보수장엄)하며 散眞珠華(산진주화)하야

周徧淸淨(주변청정)하니 見者歡喜(견자환희)하며

多諸天人(다제천인)과 菩薩聲聞(보살성문)하대

其數無量(기수무량)이라 佛壽二十四小劫(불수이십사소겁)이요

正法住世四十小劫(정법주세사십소겁)이며

像法亦住四十小劫(상법역주사십소겁)하리라

爾時世尊(이시세존)이 復告大衆(부고대중)하사대, 그 때에 세존이 다시 대중에게 하사대, 我今語汝(아금어여)하노니, 내가 지금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是大目犍連(시대목건련)은, 여기에 있는 大目犍連은 當以種種供具(당이종종공구)로, 마땅히 가지가지 공양구로써

供養八千諸佛(공양팔천제불)하야, 8천 제불에게 공양해서 恭敬尊重(공경존중)하고 諸佛滅後(제불멸후)에, 제불이 열반한 뒤에는 各起塔廟(각기탑묘)하대, 塔廟를 일으켜 세워서 高千由旬(고천유순)이며, 높이는 千由旬이나 되게 하고, 縱廣正等(종광정등)은 五百由旬(오백유순)이라.

그러니까 여기 탑의 균형도 잘 맞잖아요. 높이는 千由旬.

예를 들어서 1000미터라 합시다. 그러면 가로세로는 500이다 말입니다. 그러면 한번 그려보세요. 얼마나 모양이, 균형이 잡힙니까?

이것도 착~ 균형이 잡힙니다. 그래 갖고 이렇게 한번 만들어 보면 균형이 아주 잘 잡힙니다. 가로세로가 500이라면 높이 1000이라 말입니다.

그럼 모양이 아주 근사할 것이지요.

 

以金ㆍ銀ㆍ琉璃ㆍ硨磲ㆍ瑪瑙ㆍ眞珠ㆍ玫瑰ㆍ七寶로 合成(이금은

유리차거마노진주매괴칠보합성)했으며, 衆華瓔珞(중화영락)과 塗香ㆍ抹香ㆍ燒香(도향말향소향)과 繒蓋ㆍ幢幡(증개당번)으로

以用供養(이용공양)하고 공양하고, 말하자면 탑을 꾸미는 것이지요.

사리탑을 착~~ 근사하게 꾸미는데, 온갖 향을 뿌리고 거기다 번을 달고 깃발을 세우고 하는 그런 내용들이지요. 過是已後(과시이후)에, 이러한 일을 지낸 뒤에는 當復供養二百萬億諸佛(당부공양이백만억제불)하대, 다시 200만억 諸佛에게 공양하되,

亦復如是(역부여시)하고 當得成佛(당득성불)하면,

마땅히 성불할 것 같으면 號曰多摩羅跋栴檀香如來ㆍ應供ㆍ正徧知ㆍ

明行足ㆍ善逝ㆍ世間解ㆍ無上士ㆍ調御丈夫ㆍ天人師ㆍ佛世尊(호왈

다마라발전단향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

천인사불세존)이라하리라. 劫名喜滿(겁명희만)이요, 겁의 이름은 喜滿이요, 國名은 意樂(국명의락)이며, 其土는 平正(기토평정)해서

玻瓈爲地(파려위지)하고, 파리로써 땅이 되고,

寶樹로써 莊嚴(보수장엄)돼서 散眞珠華(산진주화)하야, 진주로 된 꽃을 뿌려서 周徧이 淸淨(주변청정)해, 두루두루 청정해서

 

見者歡喜(견자환희)하며, 보는 사람이 다 환희하며,

多諸天人(다제천인)과, 훌륭한 사람들과

菩薩聲聞(보살성문)하대, 보살과 성문이 많아요.

其數無量(기수무량)이라. 그 수가 한량이 없어요.

佛壽二十四小劫(불수이십사소겁)이요, 부처님수명은 二十四小劫이요.

正法住世는 四十小劫(정법주세사십소겁)이고, 像法(상법)도 亦住四十所劫(역주사십소겁)하리라. 또한 四十小劫이나 될 것이다.

2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爾時世尊(이시세존)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我此弟子(아차제자)大目犍連(대목건련)

捨是身已(사시신이)하고 得見八千(득견팔천)

二百萬億(이백만억) 諸佛世尊(제불세존)하야

爲佛道故(위불도고) 供養恭敬(공양공경)하며

於諸佛所(어제불소) 常修梵行(상수범행)하고

於無量劫(어무량겁) 奉持佛法(봉지불법)하며

諸佛滅後(제불멸후) 起七寶塔(기칠보탑)하대

長表金刹(장표금찰)하며 華香伎樂(화향기악)으로

而以供養(이이공양) 諸佛塔廟(제불탑묘)하고

漸漸具足(점점구족) 菩薩道已(보살도이)에는

於意樂國(어의락국) 而得作佛(이득작불)하면

號多摩羅(호다마라) 栴檀之香(전단지향)이라

其佛壽命(기불수명) 二十四劫(이십사겁)이며

常爲天人(상위천인)하야 演說佛道(연설불도)하며

聲聞無量(성문무량) 如恒河沙(여항하사)하대

三明六通(삼명육통)으로 有大威德(유대위덕)하며

菩薩無數(보살무수)하대 志固精進(지고정진)하야

於佛智慧(어불지혜) 皆不退轉(개불퇴전)이며

佛滅度後(불멸도후) 正法當住(정법당주)

四十小劫(사십소겁)이요 像法亦爾(상법역이)하니라

我諸弟子(아제제자)의 威德具足(위덕구족)이

其數五百(기수오백)이라 皆當授記(개당수기)하대

於未來世(어미래세)에 咸得成佛(함득성불)하리라

我及汝等(아급여등) 宿世因緣(숙세인연)

吾今當說(오금당설)하노니 汝等善聽(여등선청)하라

妙法蓮華經 授記品 終

이렇게 해서 대목건련에게 하는 수기까지, 4대 성문을 수기하는 수기품이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