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종교와 나

법화경 5-1~2 화성유품-오백제자수기품

應觀 2013. 1. 30. 05:42

 

 

묘법연화경 강좌 제5강-1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9. 08 -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諸佛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 我弟子等 講論三藏 唯願三寶

爲作證明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是我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隅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意

법화경화성유품. 지난 시간에 이어서 십육사미가 법화경을 설하다 라고 하는 제목입니다. 대통지승불이 계시고, 또 대통지승불의 열여섯 아들이 있었고, 그들이 다 아버지가 성불 했다는 소리를 듣고 모두 출가해서 보살사미가 되고, 그래서 법화경을 공부하고, 그래서 성불하는데 그 최후 열여섯 번째 왕자. 열여섯 번째 사미는 바로 다름 아닌 석가모니부처님이다. 이야기는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석가모니부처님의 길고 긴, 그러면서 영원한 마음의 역사. 석가모니부처님의 마음의 역사가, 그 연원이 그렇게 오래다 하는 것이고, 바로 그 마음의 역사를 이어 받은 우리는 법화경라고 하는 인연을 통해서 역시 그 마음을 계승하고 있고, 계승한다는 그런 형식으로는 되어있으나 사실 알고 보면 하나인 것이지요.

대통지승불이나 석가모니나 그리고 우리나, 그 마음은 결국 하나로 연결 돼있고, 뭐 떨어진 것을 연결 했다고 해서 연결되어 졌다는 뜻이 아니고, 본래 하나인 것이다. 이렇게 이해해야니다. 우리 궁극적 차원은, 우리마음의 역사는 말하자면 영원한 것이고,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이든 대통지승불이든 또 그 보다도 더 오랜 그 누가 있다 하더라도 역시 그 마음까지도 우리마음이 다 있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그러한 것을 一念卽是無量劫(일념즉시무량겁) 그러지요? 우리의 현재 한 순간의 마음이 무량한 과거와 무량한 미래에 전부 뻗쳐있다. 연결 돼있다. 알고 보면 하나다 하는 것입니다. 사실 좀 더 우리가 엄밀하게 따져보자면 지금 이 순간이 있음으로 해서 무한한 과거도 있고, 또한 무한한 미래가 있습니다.

이 순간이 없으면 그런 것이 있을 수가 없지요. 또 그런 과거나 미래가 전부 또 내 현재 이 순간에 전부 섭입 되어있습니다. 전부 예속 되어있는 것이지요. 그런 것으로써 어떤 정신세계의 영원함을 우리가 이런데서 읽을 할 수가 있습니다. 십육사미가 법화경을 설하다 라고 했는데요.

8 십육사미가 법화경을 설하다

是時十六菩薩沙彌(시시십육보살사미)가 知佛入室(지불입실)하야

寂然禪定(적연선정)하고 各陞法座(각승법좌)하야

亦於八萬四千劫(역어팔만사천겁)에 爲四部衆(위사부중)하야

廣說分別妙法華經(광설분별묘법화경)하사

一一皆度六百萬億那由他恒河沙等衆生(일일개도육백만억나유타

항하사등중생)하야 示敎利喜(시교리희)하야

令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영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하니라

大通智勝佛(대통지승불)이 過八萬四千劫已(과팔만사천겁이)하고

從三昧起(종삼매기)하사 往詣法座(왕예법좌)하야

安詳而坐(안상이좌)하시고 普告大衆(보고대중)하사대

是十六菩薩沙彌(시십육보살사미)는 甚爲希有(심위희유)라

諸根通利(제근통리)하야 智慧明了(지혜명료)하며

已曾供養無量千萬億數諸佛(이증공양무량천만억수제불)하사

於諸佛所(어제불소)에 常修梵行(상수범행)하야

受持佛智(수지불지)하며 開示衆生(개시중생)하야

令入其中(영입기중)하니

汝等皆當數數親近(여등개당삭삭친근)하야

而供養之(이공양지)니라 所以者何(소이자하)오

若聲聞辟支佛(약성문벽지불)과 及諸菩薩(급제보살)이

能信是十六菩薩所說經法(능신시십육보살소설경법)하고

受持不毁者(수지불훼자)는

是人皆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시인개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와 如來之慧(여래지혜)하리라 佛告諸比丘(불고제비구)하사대

是十六菩薩(시십육보살)이

常樂說是妙法蓮華經(상락설시묘법연화경)하야

一一菩薩所化(일일보살소화)는

六百萬億那由他恒河沙等衆生(육백만억나유타항하사등중생)이라

世世所生(세세소생)에 與菩薩俱(여보살구)하야

從其聞法(종기문법)하고 悉皆信解(실개신해)할새

以此因緣(이차인연)으로

得値四萬億諸佛世尊(득치사만억제불세존)하야

于今不盡(우금부진)하니라

是時十六菩薩沙彌(시시십육보살사미)가, 그 때에 16보살사미가

知佛入室(지불입실)하야 寂然禪定(적연선정)하고, 부처님이 방에 들어가서 寂然히 선정에 든 것을 알고, 그러니까 대통지승불이 선정에 들었어요.

그리고 16보살사미. 결국은 아들들이지요?

各陞法座(각승법좌)하야, 그들은 각각법좌에 올라서

亦於八萬四千劫(역어팔만사천겁)에 爲四部衆(위사부중)하야 廣說分別妙法華經(광설분별묘법화경)하사, 또한 八萬四千劫동안 사부대중을 위해서 묘법화경을 널리 설하고 분별하사, 그랬어요.

널리 설하고 분별하사 방에 들어가서 선정에 들어 있는 시간도 八萬四千劫이요, 여기에 또 16보살사미들이 법좌에 올라서 법화경을 널리 설하는 세월도 역시 八萬四千劫이고 그렇습니다. 인도에서 무한한 세월ㆍ무한한 시간은 흔히 8만4천이라고 표현을 하지요. 그래서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것도 역시 그런 데서 온 것이고, 또 8만4천가지 번뇌ㆍ8만가지 번뇌. 이런 것들도 많다는, 무한하다는, 끝이 없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가장 많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하늘 땅 만큼” 이런 표현도 하지요?

그들이 법화경을 널리 설해서 분별하는데 一一皆度六百萬億那由他恒河沙等衆生(일일개도육백만억나유타항하사등중생)하야, 한사람, 한사람마다 다 六百萬億 那由他 恒河沙等衆生들을 제도해서, 그랬어요. 이 숫자가 얼마인가 하면, 항하강의 모래 숫자를 말하는 것인데, 그 한 항하강의 모래수가 얼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600만억 항하강의 모래 숫자” 이 말입니다. 참 엔간히 많기도 하지요. 그와 같이 많은 중생들을 示敎利喜(시교리희). 줄그어야 돼요.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각자 아는 대로 누구를 위해서 불교를 설명하는데, 보여줘야 돼요. “불교는 이런 것이다.” 하고 몸소 보여주것입니다.

그리고 가르쳐줘야 돼요. “아, 우리는 이렇게 염불하니 좋다.” 또 “이렇게 참선하니 좋다.” “이렇게 경전 공부하니 좋다.” 하고,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요. 그것이 이익이 돌아가야 돼요. 정신적으로든 무엇으로든 이익이 돌아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기뻐 됩니다. 그래서 示敎利喜. 이것은 공부하는데 있어서의 어떤 절차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돌아오는 이익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令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영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하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게 하니라.

大通智勝佛(대통지승불)이 過八萬四千劫已(과팔만사천겁이)하고,

八萬四千劫을 지나고 나서 從三昧起(종삼매기)하사, 삼매로부터 일어나가지고서 往詣法座(왕예법좌)하야, 法座에 나아가서 安詳而坐(안상이좌)라. 저~기 삼매에서 安詳而起라고 하는 말이 처음에 있었지요?

여기는 安詳而坐입니다. 편안하게, 정말 편안하고 그리고 섬세하고 자세하게 아주 전혀 움직이지 않는 듯한 그런 어떤 움직임. 그것을 이라고 그래요. 그런 어떤 자세로 앉는다 이 겁니다. 이것이 수행하는 사람들의 몸 거동은 일어날 때나 앉을 때나 安詳이 해야 됩니다. 무슨 격투기 하는 사람들처럼 막 그냥 벌떡 일어나고 벌떡 앉고 그 행동이 거칠고 그러면 모양이 아니지요. 그것은 수행자로서의 모양이 아닙니다.

그래서 安詳이라는 말이 그렇게 좋은 낱말입니다.

우리가 執放에 要須安詳(집방요수안상)이라. 제가 말씀드렸지요?

큰 방에서 대중들과 더불어 공양할 때,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무엇을 “어떻게 옮겨라.” 이것이 아니고, 모든 자세에 “安詳이 해라.”발우대를 잡고 놓고, 숟가락을 잡고 놓고 하는데 모두 安詳그런 정신으로 하라. 하는 그런 말이 있잖습니까?

安詳이 앉아가지고서 普告大衆(보고대중)하사대, 널리 대중들에게 고하사대 是十六菩薩沙彌(시십육보살사미)는, 여기에 있는 16보살사미는

甚爲希有(심위희유)라. 매우 희유하다.

諸根通利(제근통리)야. 모든 근이, 六根이 아주 총명해. 그리고

智慧가 明了(지혜명료)해. 지혜가 아주 밝아요. 그러면서

已曾供養無量千萬億數諸佛(이증공양무량천만억수제불)하사, 이미 일찍이 無量 千萬億부처님들에게 공양했다. 그리고 於諸佛所(어제불소)에,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常修梵行(상수범행)해서 受持佛智(수지불지). 부처님 지혜를 受持. 받아가지며 開示衆生(개시중생)하야, 중생들에 그것을 또 열어 보여서 令入其中(영입기중)하니, 그 가운데 들어가게 하나니,

-법화경을 가르치니까요. 16보살사미가 법화경을 가르치니까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汝等은 皆當數數親近(여등개당삭삭친근)해서, 이제 나는 열반에 들 것이고, 여기 16보살사미들에게 의지해서 이들을 자주자주 친견해서 而供養之(이공양지)니라. 공양할지니라. 所以者何(소이자하)오? 까닭이 무엇인가 하니 若聲聞辟支佛(약성문벽지불)과 及諸菩薩(급제보살)이, 만약에 聲聞과 辟支佛과 그리고 보살들이 受持不毁者(수지불훼자)는 能信是十六菩薩所說經法(능신시십육보살소설경법)하고 능히 이 16보살들이 설하는 바 經法을 믿고 수지해서 헐지 않는 사람은, 헐뜯지 아니하는 사람은 是人皆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시인개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 사람들은 다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如來의 之慧(여래지혜)를 얻게 되리라. 그랬습니다. 최상의 깨달음과 여래의 지혜를 얻으리라.

佛告諸比丘(불고제비구)하사대, 부처님이 또 여러 비구에게 고하사대

是十六菩薩(시십육보살)이, -이제 사미라는 말이 떨어져 나가 버렸어요.

16보살이 常樂說是妙法蓮華經(상락설시묘법연화경)하야, 항상 즐겁게 妙法蓮華經을 설해서 一一菩薩所化(일일보살소화)는, 낱낱 보살들이 교화하는 바는 六百萬億那由他恒河沙等衆生(육백만억나유타항하사등중생)이라. 그렇게 많은 중생들을 교화했다 하는 것입니다.

저 앞에도 금방 있었었지요?

世世所生(세세소생)에, 세세토록 태어남에

與菩薩俱(여보살구)하야. 보살들로 더불어 함께해서

從其聞法(종기문법)하고, 그로조차 법을 듣고

悉皆信解(실개신해)할새. 다 모두 믿고 이해할세.

以此因緣(이차인연)으로써 得値四萬億諸佛世尊(득치사만억제불세존). 四萬億 諸佛을 得値. 모두 만나서 于今不盡(우금부진)이라.

지금에까지 그 4만억 제불 세존을 만나는데 지금도 아직 다하지 못하고 계속이 중이다 이런 말입니다. 결국 이 한편의 글 속에도 人佛思想(인불사상).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법화경이라고 하는 것은, 이 책으로 된 경전은 법화경 해설서입니다.

그럼 진짜 법화경은 뭐냐?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 사실입니다. 그 사실. 사람이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 사실이 법화경이고, 그런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이 책입니다.

이 책은 사실은 안내서입니다. 설명서고요. 예를 들어서 조계사를 설명한다고 하면 조계사에 대한 설명서가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설명서 책이지, 조계사는 아니거든요. 조계사는 따로 있다고요. 마치 그와 같은 것입니다. 경전을 이해할 때 그렇게 이해해야 됩니다. 금강경도 금강경 안에도 끊임없이 금강경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것이 금강경 같으면 금강경이야기가 나올 까닭이 없지요.

금강경은 따로 있으니까 금강경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조계사를 설명하는 안내서에는 조계사는, 조계사는 하고 여러 수십 번 거론 될 겁니다. 조계사는 말이 없어요. 실지로 조계사는 말이 없어요.

금강경은 말이 없어요. 그런데 금강경안내서이니까 금강경은, 금강경은,

금강경을 읽으면 어떻고, 금강경의 공덕은 어떻다는데 그 책이 금강경이 아니지요. 법화경도 마찬 가지입니다. 법화경도 이 책은 법화경안내서입니다. 그럼 진짜 법화경은 뭡니까? 사람이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 사실이 법화경입니다. 그것은 언어로 표현 할 수도 없는 겁니다. 표현 해봤자 그것은 설명서에 불과한 것이고 진짜는 아니지요. 이것 아주 중요한말입니다. 이해가 안 되면 메모해 놨다가, 한 번 심사숙고 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도 부처님을 만나는 일에 다하지 못하고 있다.

于今. 지금에 이르도록 다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결국은 人佛思想. 사람이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 정신ㆍ그 삶은ㆍ그 사상은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계속하는 겁니다. 처음도 그것이고ㆍ중간도 그것이고ㆍ끝도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 무수한 숫자의 보살들과 또 사람들을 제도 했다고 하는 그런 것들의 모두가, 따지고 보면 人佛思想이 근거가 돼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하나의 열쇠입니다.

여기 십육사미의 고금인연을 밝히다 라고 했습니다.

9 십육사미의 고금인연을 밝히다

諸比丘(제비구)야 我今語汝(아금어여)호리라

彼佛弟子十六沙彌(피불제자십육사미)는

今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금개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사

於十方國土(어시방국토)에 現在說法(현재설법)하사대

有無量百千萬億菩薩聲聞(유무량백천만억보살성문)이

以爲眷屬(이위권속)이라 其二沙彌(기이사미)은

東方作佛(동방작불)하시니 一名阿閦(일명아촉)이라

在歡喜國(재환희국)하고 二名須彌頂(이명수미정)이니라

東南方二佛(동남방이불)은 一名師子音(일명사자음)이요

二名師子相(이명사자상)이며

南方二佛(남방이불)은 一名虛空住(일명허공주)요

二名常滅(이명상멸)이며

西南方二佛(서남방이불)은 一名帝相(일명제상)이요

二名梵相(이명범상)이며

西方二佛(서방이불)은 一名阿彌陀(일명아미타)요

二名度一切世間苦惱(이명도일체세간고뇌)며

西北方二佛(서북방이불)은

一名多摩羅跋栴檀香神通(일명다마라발전단향신통)이요

二名須彌相(이명수미상)이며

北方二佛(북방이불)은 一名雲自在(일명운자재)요

二名雲自在王(이명운자재왕)이며

東北方佛名(동북방불명)은 壞一切世間怖畏(괴일체세간포외)며

第十六(제십육)은 我釋迦牟尼佛(아석가모니불)이

於娑婆國土(어사바국토)에

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諸比丘(제비구)야, 여러 비구들이여

我今語汝(아금어여)호리라. 내가 지금 그대들에게 말하리라.

彼佛弟子十六沙彌(피불제자십육사미)는, 저 부처님 제자 十六沙彌는,

-“내가 지금 그대들에게 말하리라.” 하는 여기서 “나는” 석가모니부처님입니다. 과거 대통지승불과 그의 열여섯 사미. 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그대들에게 말하리라. 저 부처님. 대통지승불의 제자지요?

그 16사미는 다 今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금개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사, 삼먁삼보리를 얻어가지고서 於十方國土(어시방국토)에서 現在說法(현재설법)하사대, 시방국토에서 현재 설법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有無量 百千萬億 菩薩ㆍ聲聞(유무량백천만억보살성문)이 以爲眷屬(이위권속)이라. 그들의 권속이 돼있음이라.

其二沙彌(기이사미)는, 그 두 사미는

東方에 作佛(동방작불)하니 一名은 阿閦(일명아촉)이요,

在歡喜國(재환희국)에 있고, 二名須彌頂(이명수미정)이니라.

또 한 사람은 須彌頂이다. 그 다음에

東南方二佛(동남방이불)은, 동남방에 두 부처님은

一名師子音(일명사자음)이요, 한 분은 이름이 師子音이고,

二名師子相(이명사자상)이며, 두 번째는 이름이 師子相이다.

南方二佛(남방이불)은 남방에 두 부처님은

一名은 虛空住(일명허공주)요 二名은 常滅(이명상멸)이다.

西南方二佛(서남방이불)은, 서남방에 두 부처님은

一名帝相(일명제상)이요, 한 사람은 帝相이고

二名梵相(이명범상)이며, 두 번째는 梵相이다.

西方二佛(서방이불)은, 서방에 두 부처님은

一名阿彌陀(일명아미타)요, 한 사람은 당연히 阿彌陀고,

二名度一切世間苦惱(이명도일체세간고뇌)며, 두 번째는 度一切世間苦惱다. 그 다음에

西北方二佛(서북방이불)은, 서북방에 두 부처님은

一名多摩羅跋栴檀香神通(일명다마라발전단향신통)이요, 한 사람은 이름이 多摩羅跋栴檀香神通이고, 二名須彌相(이명수미상)이며,

두 번째는 須彌相이다. 앞에서는 須彌頂있었어요. 여기는 須彌相이라고 그랬습니다.

北方二佛(북방이불)은, 북방에 두 부처님은

一名雲自在(일명운자재)요 二名은 雲自在王(이명운자재왕)이다.

東北方佛名(동북방불명)은 壞一切世間怖畏(괴일체세간포외)며

第十六(제십육)은 我釋迦牟尼佛(아석가모니불)이 於娑婆國土(어사바국토)에서 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뤘다. 이렇게 그 연원을, 그 석가모니부처님의 길고 긴 연원을 이렇게, 대통지승불이라고 하는 분에서부터 이렇게 밟아온 것이고, 그 다음에 우리는 석가모니불을 인연으로 해서 오늘 이 순간까지, 2600여 년 동안 이렇게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결국은 전부 연결 된 그 마음이 그 마음입니다. 한 마음인겁니다.

우리마음은 이것이 내 혼자의 마음이 아니고, 이렇게 석가모니부처님의 마음과 연결 돼 있다. 그렇게 이해 할 수가 있습니다.

10 제자들의 고금인연을 밝히다

諸比丘(제비구)야 我等爲沙彌時(아등위사미시)에

各各敎化無量百千萬億恒河沙等衆生(각각교화무량백천만억항하사

등중생)하야 從我聞法(종아문법)하고

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위아뇩다라삼먁삼보리)어든

此諸衆生(차제중생)이 于今有住聲聞地者(우금유주성문지자)를

我常敎化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상교화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노

니 是諸人等(시제인등)이 應以是法(응이시법)으로

漸入佛道(점입불도)니라 所以者何(소이자하)오

如來智慧(여래지혜)는 難信難解(난신난해)니라

爾時所化無量恒河沙等衆生者(이시소화무량항하사등중생자)는

汝等諸比丘(여등제비구)와

及我滅度後未來世中(급아멸도후미래세중)에

聲聞弟子是也(성문제자시야)니라 我滅度後(아멸도후)에

復有弟子(부유제자)가 不聞是經(불문시경)하고

不知不覺菩薩所行(부지불각보살소행)하며

自於所得功德(자어소득공덕)에 生滅度想(생멸도상)하야

當入涅槃(당입열반)하면 我於餘國作佛(아어여국작불)하야

更有異名(갱유이명)하리니

是人雖生滅度之想(시인수생멸도지상)하야

入於涅槃(입어열반)이나 而於彼土(이어피토)에

求佛智慧(구불지혜)하야 得聞是經(득문시경)하리니

唯以佛乘(유이불승)으로 而得滅度(이득멸도)요

更無餘乘(갱무여승)이니 除諸如來(제제여래)가

方便說法(방편설법)이니라

諸比丘(제비구)야 我等이 爲沙彌時(아등위사미시)에,

이것이 과거 이야기를 다 했으니까, 석가모니불 당신 이야기까지 됐으니까, 내가 우리들이 사미가 되었을 때에 各各敎化無量百千萬億恒河沙等衆生(각각교화무량백천만억항하사등중생)하야, 각각 무량 100천만 억 항하사 등 중생들을 교화해서 從我聞法(종아문법)하고, 나에게 법을 듣고 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위아뇩다라삼먁삼보리)어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거든,

此諸衆生(차제중생)이, 이 모든 중생들이

于今有住聲聞地者(우금유주성문지자)를, 지금 聲聞地에 머물러 있는 자를 문 사람들을 我常敎化(아상교화). 내가 항상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써 교화하노니, 是諸人等(시제인등)이 應以是法(응이시법)으로, 응당히 이 법으로써 漸入佛道(점입불도)니라.

점점 불도에 들어간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如來智慧(여래지혜)는 難信難解(난신난해)니라. 如來智慧는 難信難解. 보통사람들이 부처님의 정말 그 높은 지혜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이지요.

爾時所化無量恒河沙等衆生者(이시소화무량항하사등중생자)는,

그 때에 교화한 바 無量恒河沙等衆生이라는 것은

汝等諸比丘(여등제비구)와, 내 앞에 지금 있는 너희들 여러 비구와

-그 때 내가 얼마나 많은 중생을 교화했다고 했느냐? 그 때 교화했다고 하는 그 사람들은, 바로 여러분이다 이 말입니다.

汝等諸比丘와 及我滅度後未來世中(급아멸도후미래세중)에,

그리고 내가 멸도한 후 미래세 중에 聲聞弟子가 是也(성문제자시야)라. 우리가 바로 그 사람들이라것입니다.

과거에 대통지승불 당시 때 16왕자가 각각 한 사람이 몇 명씩 가르쳤다고요? 어마어마한 숫자의 중생들을 낱낱이 六百萬億 那由他 恒河沙等衆生, 600만억 나유타와 같은 항하강에 있는 그 모래숫자. 한 항하강의 모래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겠습니까? 100항하 천 항하 만항하가 아니고, 六百萬億 那由他 항하강에 있는 모래숫자와 같은 많은 중생들, 하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전부 여기에 다 포함됩니다, 그렇게 되면... 한 사람이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한 사람이... 16명 중에서 한 사람이 교화한 것이 그렇다고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에 그걸로 보면 이것이 이런 것들은 화엄경의 인드라 망 경계같이 모든 존재는 전부 하나로 다 연결 되어있고, 낱낱이 서로서로 相卽相入(상즉상입)하는 그런 관계 속에 있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액면대로라면 그래요. 전부 현재 내 앞에 있는 그런 제자들과 그리고 未來世聲聞弟子. 성문제자가 뭡니까? 바로 우리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제 삼자를 통해서 듣거나, 경전을 통해서 읽고 공부하거나, 법문을 통해서 듣거나하는 이것이 모두 성문제자거든요. 소리를 듣는 제자.

未來世에 聲聞弟子라 하니까 이것은 딱 우리입니다. 이것은 뭐 빼도 박도 못해요. 도망 가려해도 도망 갈 수 없는 그런 처지입니다.

석가모니가 16왕자 때 그 많고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는데, 그들이 우리다 이 것이지요. 우리가 그 중에 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我滅度後(아멸도후)에 復有弟子(부유제자)가, 다시 제자가 있어서

不聞是經(불문시경)하고, 이 경전을 듣지 못하고 不知不覺菩薩所行(부지불각보살소행)이라. 菩薩 所行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며,

自於所得功德(자어소득공덕)에, 스스로 所得功德에 生滅度想(생멸도상)하야, 滅度想을 내어서, 자기가 조금 공부하고 菩薩 所行은 알지도 못해요. 이것이 중요한 말이거든요. 不知不覺菩薩所行. 보살이 행할 바는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스스로 자기가 조금 공부한 것이 있어요.

거기에서 滅度想. ‘제도를 얻었다.’ 하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이만하면 됐다. 공부 어지간히 ’ 이만하면 내가 불교 만나서, 또는 중이 돼서 부처님과 인연을 맺은 보람이 이 정도면 됐다. 라고 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조그마한 것 가지고요.

그것이 열반이라고 하더라도요? 여기는 當入涅槃(당입열반)이라고 그랬지요? 마땅히 열반에 든다. 그러니까 ‘번뇌가 사라져서 내 한 몸 편안하게 됐다.’ 라고 하는데 들어갔다 이겁니다. 그렇게 생각할 것 같으면, 여길 것 같으면 我於餘國作佛(아어여국작불)하야, 내가 다른 나라에서 부처가 지어가지고서, 更有異名(갱유이명)하리니, 다시 다른 이름이 있을 것이니 是人은 雖生滅度之想(시인수생멸도지상)하야, 이 사람들은 비록 滅度. 제도 되었다고 하는 생각을 내어서 入於涅槃(입어열반)이나,

열반에 들기는 들었으나,

而於彼土(이어피토)에, 저 국토에서

求佛智慧(구불지혜)하야, 佛智慧를 구해가지고서

得聞是經(득문시경)하리니, 이 경을 얻어 들으리니

唯以佛乘(유이불승)으로써 而得滅度(이득멸도)요, 오직 佛乘으로써 滅度를 얻을 것이요, 更無餘乘(갱무여승)이니, 더 이상 다른 가르침은 없음이니 除諸如來(제제여래)가 方便說法(방편설법)이니라.

모든 여래가 방편으로 설법한 것은 제외한다. 이것이 중요한 말입니다.

정말 佛乘으로써, 그러니까 법화경은 一佛乘이잖아요. 그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會三歸一(회삼귀일)이라고 했기 때문에, 우리가 설사 성문이 되고ㆍ연각이 되고ㆍ보살이 되고ㆍ큰스님이 되고ㆍ도인이 되고ㆍ뭐가 됐다 하더라도, 十信十住十行十廻向十地等覺妙覺(십신십주십행십회향십지등각묘각)이 됐다 하더라도 그것은 방편이고, 정말 唯以佛乘(유이불승)으로. 오직 佛乘. 부처의 삶으로 만이 그것이 제도 된 것이다.

而得滅度(이득멸도)입니다. 更無餘乘(갱무여승). 더 이상은 다른 가르침은 없다. 다른 乘은 없다. 佛乘입니다. 모든 인간은 오직 佛乘뿐이다.

부처로써 말하자면 방편상 성문이 되든지 부처로써 연각이 되든지,

처로써 보살행을 하든지 그것은 가능 하지요. 하지만 부처라고 하는 것을 밑에 깔지 않고 하는 것은 전부 무효라것입니다. 이것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경지에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오르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저 불교 만나서 조금 어느 정도 뭔가 소득이 있다고 해가지고, ‘아! 이것으로써 나는 제도 받았다.’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기서 꾸짖는 겁니다. 그래 결국은 화성유, 화성의 비유. 마법의 성이 왜 존재 하는가 하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사전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11 열반에 이르러 법화경을 설하다

諸比丘(제비구)야 若如來(약여래)가

自知涅槃時到(자지열반시도)하고 衆又淸淨(중우청정)하야

信解堅固(신해견고)하며 了達空法(요달공법)하야

深入禪定(심입선정)하면 便集諸菩薩(변집제보살)과

及聲聞衆(급성문중)하야 爲說是經(위설시경)하리니

世間無有二乘(세간무유이승)이 而得滅度(이득멸도)요

唯一佛乘(유일불승)이라사 得滅度耳(득멸도이)니라

比丘當知(비구당지)하라 如來方便(여래방편)으로

深入衆生之性(심입중생지성)하사

知其志樂小法(지기지락소법)하야 深著五欲(심착오욕)일새

爲是等故(위시등고)로 說於涅槃(설어열반)하나니

是人若聞(시인약문)이면 則便信受(즉변신수)니라

열반에 이르러 법화경을 설하다 이것도 일불승 사상이, 사람이 부처님이라고 하는 이 일불승 사상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표현하는 대목입니다. 열반에 이르러 법화경을 설하다 했어요. 일찍이 설하지 않고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눈을 감으면서 설한 것으로 되어있다는 것.

그것이 일불승의 가르침이 최정상에 있는 것이고, 불교의 끝이고, 마지막 가르침이다 이런 뜻이지요.

諸比丘(제비구)야, 여러 비구들이여

若如來(약여래)가, 만약에 여래가 自知涅槃時到(자지열반시도)하고,

스스로 열반할 때에 이름을 알고, -여기는 정말 눈 감는 것이지요.

열반할 때에 이름을 알고 衆又淸淨(중우청정)하야, 대중들도 또한 淸淨해서, 훌륭해졌고, -부처님께 여러 해 공부 했으니까요. 열반할 때가 이르면 그럴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信解堅固(신해견고)하며, 믿고 이해하는 것이 견고하며, 了達空法(요달공법)이라. 공의 이치를 잘 깨달아서

深入禪定(심입선정)하면, 깊이 선정에 들어가면

便集諸菩薩(변집제보살)과, 곧 여러 보살과

及聲聞衆(급성문중)하야, 그리고 성문대중을 모아놓고 그때야 비로소

爲說是經(위설시경)하리니, 이 경을 설한다 그랬습니다.

부처님이 열반할 때에 이르고, 그리고 대중들도 수준이 아주 높아졌어요. 信解가 아주 堅固해요. 그리고 공의 이치는, 空法은 벌써 알아버렸어요.

空法은 벌써 알아요. 禪定들어가려면 얼마든지 들어가요.

그러니까 공은 이것이 중간 교리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화엄경을 설해서 못 알아들으니까 수준을 팍 낮춰가지고 아함부 경전, 소승경전부터 설해가지고 그 다음에 방등부 경전까지 20년 설하고 나서 비로소 설한 것이 기껏해야 二十一年談般若(이십일년담반야)라고 해서 空道理(공도리)ㆍ緣起(연기)道理ㆍ無我(무아)道理. 그것을 21년간 설한 겁니다.

거기서 한 차원 달리한 것이 말하자면 법화경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了達空法이라고 하는 말이 그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법화경의 입장에서 볼 때,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이나 내지 반야600부라고 하는 그 많고 많은 경전은 전부 법화경의 저 蛾類(아류)에 속하는 것이지요. 그 수준이 그렇습니다. 그런 상태가 된 뒤에, 다시 말해서 금강경의 가르침 그런 空道理ㆍ緣起道理ㆍ無我의 道理. 이런 것은 벌써 다 마스터한 사람들 모아놓고 그때야 법화경을 설한다. 그입니다.

世間에 無有二乘(세간무유이승)이 而得滅度(이득멸도)요.

세상에 어떤 두 가지 가르침이 있어가지고 滅度를 얻는 것이 아니다.

唯一佛乘(유일불승)이라사 得滅度耳(득멸도이)니라. 耳 = 뿐이다.

오직 一佛乘이라야 滅度를 = 제도를 얻을 따름이다.

그러니까 부처의 가르침이라야 불교공부 끝이다. 이 말입니다.

一佛乘의 가르침이라야 불교공부 끝이다. 그 전에는 불교공부 끝이 아니다. 것이지요. 世間에 無有二乘이 而得滅度요. 세간에 두 가지의 가르침.

두 가지의 어떤 단계가 멸도를 얻는 것이 아니요. 오직 一佛乘이라야 비로소 멸도를 얻을 따름이다.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은요? 부처님교설의 완성입니다. 完 成!

그 외에는 완성단계에 이른 가르침이 없습니다. 법화경에 와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완성단계에 이른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교설의 완성은 법화경이다. 그러면서 불교의 총론이다. 왜냐하면 전반적인, 불교 모든 경전의 가르침의 전반적인 것을 여기 전부 아우르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다 이야기를 해요. 성문의 가르침도 이야기를 하고, 연각의 가르침도 이야기 하고, 그러면서 전부 아울러서 말하자면 一佛乘으로 회통을 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불교의 총론이 되고, 그리고 불교의 완성인 가르침이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법화경을 알고부터는 제가 끊임없이 법화경ㆍ법화경 하는 겁니다. 법화경에 멀미가 나도록 법화경ㆍ법화경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比丘當知(비구당지)하라. 비구야 마땅히 알아라.

如來가 方便(여래방편)으로써 深入衆生之性(심입중생지성)하사,

중생들의 성품에 깊이 들어가사, 知其志樂小法(지기지락소법)이라.

그들의 뜻에 小法좋아하는 것을 알아서, 그렇지요. 중생들은 그렇지 않습니까? 일불승이 어떻고, 견성성불이 어떻고 그것이 어디 크게 취미 있나요? 深著五欲(심착오욕)이라. 五欲에만 깊이 집착을 했을 세.

五欲이 在ㆍ色ㆍ身ㆍ名ㆍ壽(재색신명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儒敎(유교)에서 또는 일반 사회에서 하는 소리이고, 불교에서는 眼身(안이비설신)까지가 五欲입니다.

五欲에 깊이 집착을 했을 세. 爲是等故(위시등고)로, 이러한 이들을 위한 까닭으로 說於涅槃(설어열반)하나니, 涅槃. 중간 기착지를 설했다. 是人이 若聞(시인약문)하면 則便信受(즉변신수)니라. 이 사람들이, 小法좋아하는 사람들이 내가 열반이야기 해놓으면 ‘아 그거 그 정도는 우리가 공부 할 수 있겠구나.’ 그러면 거기 가서 끓어오르는 욕망도, 그리고 온갖 貪ㆍ嗔ㆍ痴(탐진치)삼독도, 在ㆍ色ㆍ身ㆍ名ㆍ壽. 세속적인 그런 어떤 욕망. 이런 것도 잠재우고 아~ 그 골치 아프단 말입니다. 왜 번뇌는 그렇게 자꾸 일어나는지? 그런 것을 조용히 잠재우는 그런 길을 일단은 가르친 겁니다.

그것이 열반이지요. 여기서 말 하는 열반입니다.

是人이 若聞하면, 이 사람들이, 小法좋아하는 정말 소인배 중생들이 이런 설명을 들을 것 같으면 則便信受여, 곧 바로 믿고 받아들인다 이 말입니다. ‘아 그거는 우리가 조금만 공부하면 될 수 있겠다.’ 이러는 겁니다.

그것이 중간 기착지입니다. 중간 기착지고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화성. 마법의 성을, 없는 성을 요술로, 마술로 부처님이 만들어놓고 거기 까지 가서 잠깐 쉬게 하고, 거기서 한숨 돌린 뒤에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그것이 화성. 마법의 성이지요. 이것이 아주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짜여진 경전입니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요.

우리중생들의 심리와 그리고 불교 전체적으로 쭉~ 이렇게 걸어온 길.

그리고 이것을 현실에서 연결시켜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우리가 각자 그릇대로ㆍ또 자기 취향대로ㆍ성품대로 다 불교 안에서 좋아 하는 것이 있어요. 좋아 하는 것 전부 이것은 마법의 성입니다. 중간 기착지입니다.

그것이 최종 도달점은 아니거든요. 최종 도달점은 아니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여기서 지금 이 페이지, 제자들의 고금인연을 밝히다라고 한 것하고 열반에 이르러 법화경을 설하다라고 하는 이 두 제목에서 아주 소상하게 이야기가 잘 되어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사실은 그렇게만 이야기하고 그만 둬도 돼요.

그런데 비유로써 한 번 더 우리에게 확인 시켜주는 그런 내용이 화성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포교 일선에 있는 분들. 예를 들어서 포교하고 법문 할 때 이런 것이 참 좋은 자료입니다. 얼마나 좋은 소재인지 모릅니다.

어떤 조건에 맞춰서, 다시 말해서 절 운영이라고 하는 그 상황에 맞춰서 법문하려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만, 만약에 그것이 아니고 여러분이 아는 대로만 한껏 한다면 이런 것은 아주 기가 막힌 소재가 됩니다.

법사로 다녀보면 주지스님이 주문을 해요. “오늘은 법문을 이러이런 것을 이야기 해주세요.” 한다든지, 또 “무엇 무엇은 이야기 하지마세요.” 한다든지, 그리고 또 어떤 법사들은 주지스님한테 미리 묻습니다. “여기는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한다든지, 그러니까 그런 상황과 그런 조건. 거기에 걸려가지고 하고 싶은 소리. 지 알고 있는 불교, 아는 불교도 사실은 몇 푼어치 안 되는데, 그나마 못하는 겁니다. 그나마 아는 불교도 제대로 못해요. 우리나라 상황이 지금 그렇게 됐다고요.

예를 들어서 사찰운영, 당연히 해야 될 것 아닙니까? 뻔 하다고요.

불사. 벌려놓은 불사 어떻해요? 하긴 해야 돼요. 해야 되는데 공사는 벌여져 있고, 돈은 안 들어오고 어떻게 할 겁니까? 거기다가 깨놓고 이런 소리 할 수 없지요. 할 수 없다고요. 제가 주지라 해도 그렇게는 안 돼요. 그래서 주지한테는 불교공부 제대로 들을 수가 없고, 방편으로만 이야기할 수가 없으니까요. 차 장사 하는 사람한테 차 설명 제대로 들을 수 없다. 왜냐? 팔기 위해서 결국은 팔 것을 좋다고만 선전하니까요. 자기가 빨리 팔아야 될 것만 가지고 자꾸 좋은 차라고 선전해야 하니까 차 공부는 거기서는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차 가게에나 차 장사 하는 사람한테 차 공부 거기서 하면 안 돼요. 그것은 절대...

차라리 전혀 모르는 아마추어한테 해야지요. 주지한테는 불교공부 할 수가 없어요. 하하하하 하 이런 이야기해도 되나 모르겠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제가 주지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깨놓고 이야기 못할 것 같아요. 그래도 참 이런 이야기해도 이런 불교, 서울 하고도 불교 강당에서니까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계속 방편이야기만 할 수 밖에 없어요. 그것 참 딱 하지요. 상황이 딱하다 이 겁니다. 그렇게 아니하고도, 그렇게 아니하고도 신도들이 시주를 해서 불사도할 수 있게 하고, 다른 것 얼마든지 절유지도, 절운영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한국 신도들의 수준이 그쯤 되어야 되는데, 이게 안 되니까 방편을 쓸 수밖에 없는 겁니다. 불상창고를 짓는 겁니다.

법당에 부처님 한 분만 모셔도 되는데 천 불, 만 불을 모셔갖고 전부 불상창고입니다. 불상창고... 져다보기가 참 딱 해요.

내일도 저는 저~ 어디 불상창고가가지고 설법해야 되는데 참 져다보기 참 딱 해요. 도대체가 이렇게 해야 되는가?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고, 창고를 지어놓고 이렇게 불상을 쌓아야 겨우 운영이 되는가?

그래도 이런 소리 저가 되니까 하지 누가 하나요? 어디...

눈치 보다가 볼일 다 보고요. 주지한테 뺨 맞을까봐 겁이 나서 못하고 그렇지요. 욕이라도 하고, 그래 니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욕이라도 퍼부어 버리면 듣는 사람은 서운하니까 겁이 나서 노장들은 잘 못해요. 한 마디로 의식도 없고요. 그런대 대한 어떤 비판 의식이 없고요 첫째.

二 화성(化城)의 비유

譬如五百由旬(비여오백유순)에 險難惡道(험난악도)의

曠絶無人怖畏之處(광절무인포외지처)에 若有多衆(약유다중)이

欲過此道(욕과차도)하야 至珍寶處(지진보처)니라

有一導師(유일도사)하대 聰慧明達(총혜명달)하야

善知險道通塞之相(선지험도통색지상)하고

將導衆人(장도중인)하야 欲過此難(욕과차난)하니

所將人衆(소장인중)이 中路懈退(중로해퇴)할새

白導師言(백도사언)하대 我等疲極(아등피극)하고

而復怖畏(이부포외)하야 不能復進(불능부진)하고

前路猶遠(전로유원)하야 今欲退還(금욕퇴환)하노라

導師多諸方便(도사다제방편)이라 而作是念(이작시념)하대

此等可愍(차등가민)이로다 云何捨大珍寶(운하사대진보)하고

而欲退還(이욕퇴환)가 作是念已(작시념이)에

以方便力(이방편력)으로 於險道中(어험도중)에

過三百由旬(과삼백유순)하야 化作一城(화작일성)하고

告衆人言(고중인언)하대 汝等勿怖(여등물포)하고

莫得退還(막득퇴환)하라 今此大城(금차대성)에

可於中止(가어중지)하야 隨意所作(수의소작)이니

若入是城(약입시성)이면 快得安穩(쾌득안온)이요

若能前至寶所(약능전지보소)라도 亦可得去(역가득거)리라

是時疲極之衆(시시피극지중)이 心大歡喜(심대환희)하야

歎未曾有(탄미증유)하대 我等今者(아등금자)에

免斯惡道(면사악도)하고 快得安穩(쾌득안온)이로다

於是衆人(어시중인)이 前入化城(전입화성)하야

生已度想(생이도상)하며 生安隱想(생안은상)커늘

爾時導師(이시도사)가 知此人衆(지차인중)이

旣得止息(기득지식)하야 無復疲倦(무부피권)하고

卽滅化城(즉멸화성)하고 語衆人言(어중인언)하대

汝等去來(여등거래)어다 寶處在近(보처재근)호라

向者大城(향자대성)은 我所化作(아소화작)이니

爲止息耳(위지식이)라하니라

譬如五百由旬(비여오백유순)에, 비유하자면 저 五百由旬에,

-500유순이라면 예를 들어서 한 500리쯤 된다고 합시다 그냥.

500리쯤 되는 그런 險難한 惡道(험난악도)에, 아주, 아주 험난한 길이라 이 말입니다. 그런데 曠絶無人怖畏之處(광절무인포외지처)라. 아무리 가도 사람이 없어요. 사람이 안 나타나니까 마을도 없고 사람도 없으니까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런 상황에 若有多衆(약유다중)이, 많은 사람들이 欲過此道(욕과차도)하야, 이 길을 지나가가지고

至珍寶處(지진보처). 보물이 잔뜩 쌓여있는 그 산에 이르려고 한이 말입니다. 그런 험난한 곳을 지나가야 보물이 있는 곳에 이른이 말이지요.

그런데 거기에 인솔자가 있어요. 리더가 있어요. 有一導師(유일도사).가이드가 하나 있는데 聰慧明達(총혜명달)이야.

聰慧明達이 아주 뛰어나요, 그래서 善知險道通塞之相(선지험도통색지상)이라. 잘 알아요. 善知.험한 길인데도 불구하고 뚫린 곳과 막힌 곳을 잘 알아요. 그래서 將導衆人(장도중인)이라. 여러 사람들을 인도해서, 이끌고 인도해가지고서 欲過此難(욕과차난)이라. 이 어려운 곳을 지나가고자 한다. 그래서 所將人衆(소장인중)이, 거느리고 가는 사람들이 中路懈退(중로해퇴)야. 사람도 없고 길은 험하고 또 피로에 지쳤고, 먹을 것도 떨어졌고 목도 마르고요. 그래서 中路에. 가는 중간에 그만 게으름이 날 수밖에...

懈退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白導師言(백도사언)하대, 인솔자에게 고해 말하기를 我等疲極(아등피극)이야, 우리들은 피로가 극에 달했어요.

而復怖畏(이부포외)하야, 거기다가 또 너무 겁나요. 마을도 없고 사람도 없고 무슨 자동차가 지나간 흔적도 하나도 없고요. 그래서

不能復進(불능부진)이여.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그리고

前路猶遠(전로유원)이여. 가야할 앞길은 더욱 더 멀어요. 그래서

今欲退還(금욕퇴환)하노라. 지금 우리는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런 말입니다. 그런 말을 했어요. 그러니까

導師가 多諸方便(도사다제방편)이라. 인솔자는 지혜가 아주 뛰어난 분입니다. 그리니 방편도 많아요. 而作是念(이작시념)하대, 이런 생각을 하대 此等可愍(차등가민)이로다. 이 사람들 불쌍하다. 연민심이 생겨버렸어요. 云何捨大珍寶(운하사대진보). 어찌하여, 이제 한 3분의 2는 왔는데 3분의 1만 더 가면 큰 보석. 大珍寶. 큰 보물 덩어리를 만나게 될 텐데 그것을 왜 버리려고 하는가? 그리고 而欲退還(이욕퇴환)가? 버리고서 물러가려고 하는가? 作是念已(작시념이)에, 이러한 생각을 하고나서는

以方便力(이방편력)으로써 於險道中(어험도중)에, 험한 길 가운데에

過三百由旬(과삼백유순)하야, 三百由旬쯤 지났을 때입니다. 그래서

化作一城(화작일성)라, 그러니까 五百由旬에서 三百由旬왔으니까 반은 훨씬 더 왔네요. 化作一城입니다. 한 성을 화해서 지었다. 마법의 성이지요. 그러니까 요술로써 한 마을을, 도시를 하나 떡~ 만들어놓고

告衆人言(고중인언)하대 여러 대중들. 인솔해가는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고해 말하되, 汝等勿怖(여등물포)하고, 그대들은 두려워하지도 말고, 또

莫得退還(막득퇴환)하라. 물러가지도 말라.

今此大城(금차대성)이, 저기 봐라. 저기 큰 마을이 하나 있지 않느냐? 저기 지금 큰 마을이 하나 있는데, 可於中止(가어중지)라. 거기 가서 쉬는 것이 옳을 것이다. 隨意所作(수의소작)이니, 가서 마음대로 잘 사람은 자고, 먹을 사람은 먹고, 놀 사람은 놀고 그래라. 若入是城(약입시성)이면, 만약에 그 성. 그 마을에 들어갈 것 같으면 快得安穩(쾌득안온)이야.

아주 유쾌하게 아주 편안한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술집도 있고 빠도 있고 온갖 것 다 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若能前至寶所(약능전지보소)라도, 만약에 능히 앞에 寶所에 이를지라도 亦可得去(역가득거)라. 거기 가서 우리가 실컷 놀다보면, 나중에 정말 무궁무진한 보물 다이아몬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거기에 가는 것도 그 때는 아주 쉬워. 그 때는 별거 아니야. 亦可得去야. 또한 가히 얻을 수가 있다.

是時疲極之衆(시시피극지중)이, 그 때에 피로가 극에 달한 대중들이

心大歡喜(심대환희)하야, 마음이 크게 환희해서

歎未曾有(탄미증유)라. 야~ 이런 마을이 있는 줄 우리가 몰랐다고, 어찌 여기에 와서 이렇게 아주 호화판 마을이 있는가? 하고 未曾有를 찬탄하되,

我等今者(아등금자)에, 우리들이 지금에

免斯惡道(면사악도)하고, 이 악한 길을 다 면해버리고

快得安穩(쾌득안온)이라. 아주 즐겁고 편안하게 됐다 말입니다.

於是衆人(어시중인)이, 그럴 때에 대중들이

前入化城(전입화성)이라. 앞에 있는 화성으로 들어가서

生已度想(생이도상)이라. 아 이제 우리는 다 왔다. 이렇게 휘황찬란하고 호화로운 도시에 왔으니까 아 우리는 이 정도면 됐다. 生已度想. 이미 제도되었다고, 이르렀다고 하는 그런 생각을 내며, 生安穩想(생안온상)이라. 편안하다 하는 생각을 내거늘, -그렇지요. 들어가 가지고 먹고 마시고 몇 날 며칠 잘 쉬었으니까 ‘아이고 됐다.’ 이런 생각을 내거늘,

爾時導師(이시도사)가, 그 때에 인솔하는 사람이

知此人衆(지차인중)이, 이 대중들이 旣得止息(기득지식)이라.

이미 止息함을, 충분히 쉬었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됐어. 그래

無復疲倦(무부피권)이여. 피로도 싹~ 가셨어. 이제 뭐 혈기가 넘치고 힘이 그냥 넘쳐, 생기가 넘쳐, 無疲倦이여, 피곤이 전혀 없어. 그래서

卽滅化城(즉멸화성)하고, 요술로써 만든 마법의 성이니까 ‘휙’ 해가지고 싹 그 도시를 없애버렸어요. 卽滅化城하고 語衆人言(어중인언)하대,

여러 대중들에게 말하되,

汝等去來(여등거래)어다. 그대들은 갈지어다, 앞으로 가자.

寶處在近(보처재근)이라. 내가 말한 보배의 장소가 바로 가까이 있다.

이제 얼마 안 가면 된다. 向者大城(향자대성)은, 금방 있었던 큰 성, 큰 마을 그것은 我所化作(아소화작)이니, 내가 化作한 바여. 요술로 만든거야. 없는 것을 요술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너희들이 爲止息耳(위지식이)니라. 잠깐 쉬도록 했을 따름이다. -또 귀 자 있네요. 그대들이 止息. 잠깐 쉬게 하기 위했을 따름이다. 이 말입니다. 이것이 비유전체지요.

아~ 기가 막힌 비유입니다. 우리는 참... 인생이라는 것이 뭡니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성불 했다고 한들 그것이 어디 끝입니까? 그때야 말로 비로소 준비가 다 되었으니까, 중생 교화할 준비가 충분히 되었으니까 더 용맹정진을 해야지요. 중생 교화에 아주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돈을 갖지 못했을 때는 열심히 돈을 버는데 노력을 했지만,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면 그 때는 돈을 아주 유익하게, 제대로 쓰는데 노력을 해야 되거든요. 열심히 잘 써야 되는 겁니다.

 

 

묘법연화경 강좌 제5강-2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9. 08 -

비유에서 법을 밝히다라고 배대를 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三 비유에서 법을 밝히다

諸比丘(제비구)야 如來亦復如是(여래역부여시)하야

今爲汝等(금위여등)하야 作大導師(작대도사)할새

知諸生死(지제생사)의

煩惱惡道險難長遠(번뇌악도험난장원)하고

應去應度(응거응도)하대 若衆生(약중생)이

但聞一佛乘者(단문일불승자)면 則不欲見佛(즉불욕견불)하고

不欲親近(불욕친근)하며 便作是念(변작시념)하대

佛道長遠(불도장원)이라 久受勤苦(구수근고)라사

乃可得成(내가득성)이라하나니 佛知是心(불지시심)의

怯弱下劣(겁약하열)하사 以方便力(이방편력)으로

而於中道(이어중도)에 爲止息故(위지식고)로

說二涅槃(설이열반)호니 若衆生(약중생)이

住於二地(주어이지)하니 如來爾時(여래이시)에

卽便爲說(즉변위설)하대 汝等所作未辦(여등소작미판)이요

汝所住地(여소주지)는 近於佛慧(근어불혜)니

當觀察籌量(당관찰주량)하대 所得涅槃(소득열반)이

非眞實也(비진실야)니라 但是如來(단시여래)가

方便之力(방편지력)으로 於一佛乘(어일불승)에

分別說三(분별설삼)이니라 如彼導師(여피도사)가

爲止息故(위지식고)로 化作大城(화작대성)이라가

旣知息已(기지식이)에 而告之言(이고지언)하대

寶處在近(보처재근)이라 此城非實(차성비실)이니

我化作耳(아화작이)니라

諸比丘(제비구)야, 모든 비구들이여, 如來도 亦復如是(여래역부여시)하야 今爲汝等(금위여등). 지금 그대들을 위해서

作大導師(작대도사)일새, 큰 인도하는 리더, 가이드 노릇을 했을새.

知諸生死(지제생사)의, 生死.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에 煩惱ㆍ惡道ㆍ險難ㆍ長遠(번뇌악도험난장원)하고, 번뇌의 악한 길은 험난해요. 그리고 길고 길어요. 법구경에도 있듯이 인생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 그런 말이 있지요? 應去應度(응거응도)하야, 응당히 버릴 것은 버리고, 응당히 제도 할 것은 제도하되,

若衆生(약중생)이, 만약 중생이

但聞一佛乘者(단문일불승자)면, 다만 처음부터, 처음부터 一佛乘.

“너희들 부처야, 부처인줄 알라.” 다만 이런 소리만 딱 들었을 것 같으면 어떻게 됩니까? 則不欲見佛(즉불욕견불)하고, 부처를 보려고도 하지 아니해. 不欲親近(불욕친근)해. 친근 하려고도 하지 아니해. 그러면서

便作是念(변작시념)하대, 곧 이런 생각을 하되,

佛道長遠(불도장원)이라. 부처님 멀고멀어 언제 석가모니부처님같이 되겠어? 어림도 없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久受勤苦(구수근고)라사, 오래 동안 아주 부지런히 고통스러움을 받아야, 乃可得成(내가득성)이라하나니, -久受勤苦라고 하는 것이, 삼아승지겁이라고 하는 세월, 三阿僧祗劫論(삼아승지겁론)입니다. 성불을 하는데 삼아승지겁이 걸려야 된다 라고 하는 그런 엉터리 같은 가르침이 있다고요. 그것은 방편입니다. 엉터리 가르침은 방편이라고요. 그래야

삼아승지겁이 걸려야 乃可得成이라, 이에 가히 성불 할 수 있다 라고 그렇게 하나니, 佛知是心(불지시심)의 怯弱下劣(겁약하열)하사,

부처님은 이 사람들 마음이 怯弱하고, 겁내고 약하고 下劣한 것을 다 알아. 그래서 以方便力(이방편력)으로써 而於中道(이어중도)에 爲止息故(위지식고)로 중간에 잠깐 쉬도록 하기 위한 까닭으로 說二涅槃(설이열반)을 설했다. 두 가지 열반을 설했다. 엉터리열반... 엉터리열반을 설했다. 여기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문이나 연각들이 공의 이치를 알아 가지고, 우리의 그 부글부글 끓는 망상. 괴로운 망상이 다 쉬는 그 자리가 불교공부 다 된 자리ㆍ성불한자리ㆍ견성한자리인 줄로 그렇게 일단은 가르쳐 놓는 겁니다.

그것 엉터리 가르침인데, -거기에라도 와서 잠깐 쉬게 하기 위해서 二涅槃을 설한 겁니다. 엉터리열반을 설해서 그것이 “열반이다라고 이렇게 한다 말입니다.

若衆生(약중생)이, 만약에 중생이

住於二地(주어이지)하나니, 두 번째 경지. 첫 번째 경지가 끝인데, 저 앞에 있는 첫 경지가... 여기는 말하자면 제 2의 경지라고 해서 이것은 자니. 二涅槃이니 二地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진짜가 아닌”그런 말입니다. 진짜가 아닌... 二地에 머물게 하나니 如來爾時(여래이시)에,

여래가 그때에 卽便爲說(즉변위설)하야, 곧바로 그들을 위해서 설해서, 汝等所作未辦(여등소작미판)이요, 그대들이 지은 바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어 未辦. 아직도 마련되지 않았어. 열반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야.

제도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야. 제대로 성공한 인생이 아니야.

汝所住地(여소주지)는, 그대들이 머무는 그 땅은

近於佛慧(근어불혜)니, 부처님의 지혜에 그저 가까울 뿐이야.

當觀察籌量(당관찰주량)하면, 마땅히 잘 觀察하고 헤아려보라.

所得涅槃(소득열반)이 非眞實也(비진실야)니라. 그대들이 얻었다고 하는 그 열반은 진실이 아니다. 잠깐 쉬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그냥 열반이라고 그렇게 설정해놓고, 성문이니 연각이니 보살이니 그렇게 말을 만들어 놨지,

그리고 더 심하게는 十信十住十行十廻向十地等覺妙覺. 이런 52단계를 그냥 쭉~ 이렇게 나열해놓고 그래 너는 1단계에 올랐어. 너는 2단계에 올랐어. 너는 3단계에 올랐어. 이런 엉터리ㆍ속임수장난을 쳤이 말입니다. 그런 고백을 여기서, 법화경에서는 다 하는 것입니다.

전부속임수로 내가 그렇게 했이 말입니다. 非眞實이야. 所得涅槃이 非眞實이라고 했잖아요. 내가 임시로 만든 것이다 이 겁니다.

但是如來(단시여래)가, 다만 이 여래가 方便之力(방편지력)으로,

방편의 힘으로써 於一佛乘(어일불승)에서, 하나의 부처의 삶에서

分別說三(분별설삼)이니라. 분별해서 셋을 설했다. 分別說三. 三乘을 설한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삼승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고, 그 三乘은 一乘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말하자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부처님은 처음에 三乘이라고 하는 세 가지 방편만 열어놨는데, 2600년이 지난 지금엔 얼마나 많은 방편을 우리마음대로 만들어 놨는지 말도 못해요.

무슨 칠성단에 실 갖다 얹어 놓으면 수명 길어진다는 것, 도대체 누가 만든 방편입니까? 출처가 어디입니까? 법당에 불 켜면 지혜가 밝아진다는 것은 누가 만든 방편입니까? 그것 전부 방편입니다. 법당에 형광등 하나 켜면 되는데 왜 그 1촉짜리 2촉짜리 조그마한 불나기 쉽게 그런 것을 해요? 전부 그것이 말하자면... 물론 그런 것을 좋아할 근기가 있어요.

그런 근기를 불교로, 제대로 된 불교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입니다.

방편인줄 알고 해야 되고, 또 그것을 어느 정도 하면, “이제 그만 하세요 보살님. 이제 그 정도로 공부했고 그 정도로 차원이 높아졌으니까 이제는 정말 제대로 된 공부하라.이렇게 인도를 해줘야 되는 겁니다.

그것 돈 된다고 그냥 10년이고 20년이고 100년이고 다 끊임없이 하고 있어요. 그것 전부 방편 아닙니까? 칠성단에 실 갖다 놓으면 어째서 그것이 명이 길어져요? 그것 우리 어릴 때 참 많이 봤어요. 칠성단에 실 갖다 놓고, 산신각에 실 갖다 놓고... 등등 해가지고 지금도 무수한 방편이...

제가 일일이 꼬집지 못해서 그렇지, 그나마 밥 못 얻어 먹을까봐 겁이 나서 제가 말을 제대로 못해서 그렇지 방편이 참 너무 많아요. 그래 우리가 방편이라고 하는 미명하에 마음대로 만드는 겁니다.

방편을 마음대로 막 만들어 가지고... 방편은 예를 들어서 뗏목처럼 생각하라고 금강경에는 그리 되었지 않습니까? 뗏목은 어떻습니까?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는 것이 목적이지요.

그런데 강을 건너야 할 텐데 뗏목 타고는 그냥 강 놀이 하다가 또 제자리에 돌아오는 겁니다. 뗏목 타고 계속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또 제자리에 내려놓는 식이지요. 방편으로써 뗏목을 탔으면 저 쪽 건너, 저 언덕으로 건너가야 됩니다. 그리고 가차 없이 버리고 돌아보지도 말고 더 나아가야 되는 것이 우리의 갈 길입니다. 할 일이고요. 그런데 그 놈의 방편을 수 십 가지가지고 계속 가지고 노는 겁니다. 평생가지고 노는 겁니다.

이것을 이끌어 가는 사람도 그렇고 이끌려 오는 사람도 그렇고요.

수요가 있으니까 공급이 있다고 해서 신도들은 수준이 그만 하니까, 다 껌뻑 넘어가니까 장사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계속 장사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수준이 비슷해져 버렸어요.

장사가 되니까요. 수요가 있으니까 자꾸 방편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방편을 만들어 내사람도 잘못이고, 또 그 놈의 되도 않는 방편을 끊임없이 쫓아다니는 신도도 문제입니다. 이것이 똑 같이 책임이 있는 겁니다. 법화경에서는 이런 소리해야 됩니다. 법화경에서는요.

다른 경에서는 방편설이니까 이런 소리 못하지만, 법화경은 그런 방편을 전부 이해하고 정말 일불승으로써, 於一佛乘에 分別說三이라. 분별해서 三乘을 설했다. 3승이 지금은 3천승도 넘는다니까요. 3천승, 3만승도 넘어요. 또 일본에는 보면 무슨 지장보살, 주먹만 한 지장보살 모시는 것이라든지,

점쳐가지고 정초에 나무에다가 걸어놓고 어떻게 하면 좋다고 하는 그런 것 하며, 미신적인 것이 더 많아요. 그것 다 방편으로 한 것인데, 작년에 하면 금년에는 좀 줄어들든지 그래야 할 텐데 그렇지도 않다고요.

如彼導師(여피도사)가, 예컨대 저 導師가

爲止息故(위지식고)로, 止息하기 위한고로, 잠깐 쉬하기 위한고로

化作大城(화작대성)하야, 큰 마을을, 大城을 요술로 만들어 가지고서

旣知息已(기지식이)이어늘, 이미 쉰 줄 알고 나서는

而告之言(이고지언)하대, 그들에게 告해 말하되

寶處在近(보처재근)이라. 보배가 있는 곳은 가까이 있다.

此城非實(차성비실)이니, 이라고 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야. 이것 전부 가짜야. 거짓이라고... 我化作耳(아화작이)니라. 내가 요술로 만들었을 뿐이다. 요술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 불교가 교양대학 많이 생기고, 또 법회 많고, 또 이런 공부 하는 기회가 많은 것은 어느 나라 불교보다도 더 많은 것 같아요.

이것은 근래에 와서 참 아주 좋은 현상입니다. 우리 어릴 때는 법회라는 것이 없었어요. 신도들 법회도 없고 스님들 법회도 없고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근래 한2 30년 사이에 법회가 그렇게 많이 생기고, 교양대학도 많이 생겨가지고 뭔가 알도록... 알고 믿도록... 바로 알고ㆍ바로 믿고ㆍ바로 行하자. 그것이 대개 불교대학이 주장하는 말입니다.

바로 알고ㆍ바로 믿고ㆍ바로 行하자라고 하는 것. 바로 알 필요가 있지요.

四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1 대통지승불의 성도

爾時世尊(이시세존)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大通智勝佛(대통지승불)十劫坐道場(십겁좌도량)하대

佛法不現前(불법불현전)일새 不得成佛道(부득성불도)어늘

諸天神龍王(제천신용왕)阿修羅衆等(아수라중등)

常雨於天華(상우어천화)하야 以供養彼佛(이공양피불)하며

諸天擊天鼓(제천격천고)하고 幷作衆伎樂(병작중기악)하며

香風吹萎華(향풍취위화)하야 更雨新好者(갱우신호자)러니

過十小劫已(과십소겁이)乃得成佛道(내득성불도)

諸天及世人(제천급세인)心皆懷踊躍(심개회용약)하니라

彼佛十六子피불십육자()皆與其眷屬(개여기권속)

千萬億圍繞(천만억위요)하사 俱行至佛所(구행지불소)하야

頭面禮佛足(두면예불족)하고 而請轉法輪(이청전법륜)하대

聖師子法雨(성사자법우)充我及一切(충아급일체)하시니

世尊甚難値(세존심난치)久遠時一現(구원시일현)이로다

爲覺悟羣生(위각오군생)하야 震動於一切(진동어일체)로다

2 시방범천이 법을 청하다

東方諸世界(동방제세계) 五百萬億國(오백만억국)

梵宮殿光曜(범궁전광요)하대 昔所未曾有(석소미증유)라

諸梵見此相(제범견차상)하고 尋來至佛所(심래지불소)하야

散華以供養(산화이공양)하대 幷奉上宮殿(병봉상궁전)하고

請佛轉法輪(청불전법륜)하며 以偈而讚歎(이게이찬탄)커늘

佛知時未至(불지시미지)하시고 受請黙然坐(수청묵연좌)러니

三方及四維( 삼방급사유)와 上下亦復爾(상하역부이)하야

散華奉宮殿(산화봉궁전)하고 請佛轉法輪(청불전법륜)하사대

世尊甚難値(세존심난치)라 願以本慈悲(원이본자비)로

廣開甘露門(광개감로문)하사 轉無上法輪(전무상법륜)하소서하니라

3 이승(二乘)의 법을 설하다

無量慧世尊(무량혜세존)이 受彼衆人請(수피중인청)하사

爲宣種種法(위선종종법)인 四諦十二緣(사제십이연)하대

無明至老死(무명지노사)히 皆從生緣有(개종생연유)라

如是衆過患(여시중과환)을 汝等應當知(여등응당지)니라

宣暢是法時(선창시법시)에 六百萬億孩(육백만억해)가

得盡諸苦際(득진제고제)하고 皆成阿羅漢(개성아라한)하며

第二說法時(제이설법시)에 千萬恒沙衆(천만항사중)이

於諸法不受(어제법불수)하고 亦得阿羅漢(역득아라한)하며

從是後得道(종시후득도)도 其數無有量(기수무유량)이라

萬億劫算數(만억겁산수)로 不能得其邊(불능득기변)이니라

4 대승법을 설하다

時十六王子(시십육왕자)가 出家作沙彌(출가작사미)하야

皆共請彼佛(개공청피불)하대 演說大乘法(연설대승법)하소서

我等及營從(아등급영종)이 皆當成佛道(개당성불도)호리니

願得如世尊(원득여세존)의 慧眼第一淨(혜안제일정)하노이다

佛知童子心(불지동자심)의 宿世之所行(숙세지소행)하고

以無量因緣(이무량인연)과 種種諸譬喩( 종종제비유)로

說六波羅蜜(설육바라밀)과 及諸神通事(급제신통사)하시며

分別眞實法(분별진실법)의 菩薩所行道(보살소행도)하야

說是法華經(설시법화경)의 如恒河沙偈(여항하사게)하시니

彼佛說經已(피불설경이)에 靜室入禪定(정실입선정)하사

一心一處坐(일심일처좌) 八萬四千劫(팔만사천겁)이니라

5 십육사미의 인연

是諸沙彌等(시제사미등)知佛禪未出(지불선미출)하사

爲無量億衆(위무량억중)하야 說佛無上慧(설불무상혜)할새

各各坐法座(각각좌법좌)하야 說是大乘經(설시대승경)하며

於佛宴寂後(어불연적후)宣揚助法化(선양조법화)하대

一一沙彌等(일일사미등)所度諸衆生(소도제중생)

有六百萬億(유육백만억) 恒河沙等衆(항하사등중)이러라

彼佛滅度後(피불멸도후)是諸聞法者(시제문법자)

在在諸佛土(재재제불토)常與師俱生(상여사구생)이라

是十六沙彌(시십육사미)具足行佛道(구족행불도)하며

今現在十方(금현재시방)하야 各得成正覺(각득성정각)하고

爾時聞法者(이시문법자)各在諸佛所(각재제불소)하며

其有住聲聞(기유주성문)漸敎以佛道(점교이불도)

我在十六數(아재십육수)하야 曾亦爲汝說(증역위여설)호니

是故以方便(시고이방편)으로 引汝趣佛慧(인여취불혜)니라

爾時本因緣(이시본인연)으로 今說法華經(금설법화경)하야

令汝入佛道(영여입불도)호니 愼勿懷驚懼(신물회경구)니라

6 화성의 비유

譬如險惡道(비여험악도)에 逈絶多毒獸(형절다독수)하고

又復無水草(우부무수초)하야 人所怖畏處(인소포외처)에

無數千萬衆(무수천만중)이 欲過此險道(욕과차험도)하대

其路甚廣遠(기로심광원)하야 經五百由旬(경오백유순)이라

時有一導師(시유일도사)하대 强識有智慧(강식유지혜)하며

明了心決定(명료심결정)하야 在險濟衆難(재험제중난)터니

衆人皆疲倦( 중인개피권)하야 而白導師言(이백도사언)하대

我等今頓乏(아등금돈핍)이라 於此欲退還(어차욕퇴환)이니다

導師作是念(도사작시념)하대 此輩甚可愍(차배심가민)이라

如何欲退還(여하욕퇴환)하야 而失大珍寶(이실대진보)어뇨

尋時思方便(심시사방편)하대 當設神通力(당설신통력)하야

化作大城郭(화작대성곽)하대 莊嚴諸舍宅(장엄제사택)에

周匝有園林(주잡유원림)하며 渠流及浴池(거류급욕지)와

重門高樓閣(중문고루각)에 男女皆充滿(남여개충만)케하고

卽作是化已(즉작시화이)에 慰衆言勿懼( 위중언물구)어다

汝等入此城(여등입차성)하면 各可隨所樂(각가수소락)하리라

諸人旣入城(제인기입성)에 心皆大歡喜(심개대환희)하야

皆生安隱想(개생안은상)하며 自謂已得度(자위이득도)어늘

導師知息已(도사지식이)하고 集衆而告言(집중이고언)하사대

汝等當前進( 여등당전진)이니 此是化城耳(차시화성이)라

我見汝疲極(아견여피극)하야 中路欲退還(중로욕퇴환)일새

故以方便力(고이방편력)으로 權化作此城(권화작차성)호니

汝今勤精進(여금근정진)하야 當共至寶所(당공지보소)니라

化城喩品.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대통지승불 이야기도 조금 장황하지만, 끝에 와서 정말 3승과 1승의 관계를 법으로써 잘 나타냈고, 그것을 비유로써 깔끔하게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중송이니까 그냥 넘어가고요. 화성유품은 이것으로써 마치겠습니다.

제8 오백제자 수기품. 목차를 잠깐 볼까요?

一 부루나 수기장이 있고, 그 다음에 저 밑에 가면

二 천이백 아라한과 오백아라한의 수기가 있고요. 그 다음에

三 게송으로 거듭 설하고, 四 의주의 비유 해가지고 여기도 비유가 하나 나오지요. 옷에 수 억만금이 가는 구슬을 하나 넣어줬는데, 그만 그것을 모르고 가지고 다니면서도 거지 노릇을 오랜 세월 했었다. 이렇게 까지 아주 비유를, 겹겹이 비유를 넣어가면서 우리들의 지극히 고귀한 인간의 本性. 本來人. 인간의 궁극적 차원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입니다. 의주의 비유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화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성도요. 그 동안 우리가 사람이 이런 수준에 살면 그것으로 끝인 줄 알지만 그것이 아니다. 우리 궁극적 차원의 삶이 있 말입니다.

일불승 이라는 말이 그런 말입니다.

제8 오백제자 수기품(五百弟子授記品)

一 부루나 수기장(授記章)

1 부루나는 설법제일

爾時富樓那彌多羅尼子(이시부루나미다라니자)가

從佛聞是智慧方便隨宜說法(종불문시지혜방편수의설법)하며

又聞授諸大弟子(우문수제대제자)의

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하며

復聞宿世因緣之事(부문숙세인연지사)하며 復聞諸佛(부문제불)이

有大自在神通之力(유대자재신통지력)하니라

得未曾有(득미증유)하며 心淨踊躍(심정용약)하야

卽從座起(즉종좌기)하야 到於佛前(도어불전)하야

頭面禮足(두면예족)하고 却住一面(각주일면)하야

瞻仰尊顔(첨앙존안)하고 目不暫捨(목불잠사)러라

而作是念(이작시념)하대 世尊甚奇特(세존심기특)하사

所爲希有(소위희유)라 隨順世間若干種性(수순세간약간종성)하사

以方便知見(이방편지견)으로 而爲說法(이위설법)하야

拔出衆生(발출중생)의 處處貪著(처처탐착)하시니

我等於佛功德(아등어불공덕)에 言不能宣(언불능선)이라

唯佛世尊(유불세존)이 能知我等(능지아등)의

深心本願(심심본원)이리라하니라

爾時佛告諸比丘(이시불고제비구)하사대

汝等見是富樓那彌多羅尼子不(여등견시부루나미다라니자부)아

我常稱其於說法人中(아상칭기어설법인중)에

最爲第一(최위제일)이며

亦常歎其種種功德(역상탄기종종공덕)하대

精勤護持(정근호지)하야 助宣我法(조선아법)하며

能於四衆(능어사중)에 示敎利喜(시교이희)하며

具足解釋佛之正法(구족해석불지정법)하야

而大饒益同梵行者(이대요익동범행자)라호니

自捨如來(자사여래)하고

無能盡其言論之辯(무능진기언론지변)이니라

여기 부루나 수기장이 나오네요. 다 잘 아시는 대로 부루나는 설법제일입니다. 부처님이 하신 사업은 전법입니다. 전법 사업이에요.

법을 전하는 사업인데, 그 부처님이 하시는 전법사업 중에서 제일 공로자는 부루나입니다. 그래서 부루나를 여기서 상당한 량을 할애를 해가지고 부루나의 공덕을 드러냈습니다. 정말 순교자이지요. 아시는 대로 서쪽 수루나국 이라고 아주 무지막지 하고 예의도덕도 없고 아~ 풍기가 형편없는 그런 아주 험악한 나라에 말하자면 교화를 떠나려고 하니까 부처님이 만류를 하지요.

“그 나라는 아주 험한 나라다. 험한 사람들이 살아가지고 인정사정없다.

불교고 뭐고 예의도덕이고 뭐고 무슨 그런 것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인데 가면 네가 큰일 난다. 네 보고 욕을 사정없이 하고 비난을 많이 할 것이다. 그래도 갈래?”하니까, “부처님이시여, 욕하는 것이야 어떻습니까? 때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 사람들 참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생각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있다가 “그래? 욕만 하고 때리지 않는다고? 천만에, 가차 없이 돌을 던지고 몽둥이질도 하고, 그 사람들은 그런 것 뭐 그냥 눈도 하나 깜짝 아니하고 한다. 아무 죄가 있고 없고 상관없이 그냥 선량한 사람일수록 더 때리고 더 구타를 한다. 그래도 갈래?”그러니까,

부루나가 있다가 부처님이시여, 그런들 어떻습니까? 부처님 법을 전하기 위해서 가서 전법활동 하다가 아, 그것 좀 맞는 것이야 보통 일이지요. 얼마든지 감내하고 법을 전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또 있다가

그래? 아마 몽둥이나 돌로 때리는데 끝나지 않고, 심한 경우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어떻게 할래? 그래도 갈래?”그러니까,

부처님이시여, 이 거치적거리는 몸뚱이. 내 스스로도 없앨 수 있는데 그 사람들이 내 몸을 없애 주니까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이렇게 까지 나는 생각하렵니다.”그러니까 그것은 이미 부처님이 벌써 알고 암시를 한 것입니다. 부루나의 미래를 알고 그런 말을 했던 입니다.

그러니까그래? 너의 각오가, 전법에 대한 각오가 그 정도라면 그래 가도 좋다.”그래서 수루나국에 가서 전법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결국은 그 무지막지하고 험한 사람들한테 맞아 죽었어요. 그래서 불교는 폈고 사람도 많이 교화를 했는데 끝내 죽고 말았어요. 순교를 했지요.

설법제일이라고 해서 물론 말도 잘 했겠지만, 그러나 말 잘 했다고 해서 설법제일 부루나라고 하지 않습니다. 법을 위해서 순교를 했기 때문에, 이 한 목숨 그냥 초개같이 버릴 수 있는 그런 위대한 전법정신. 전법의지 때문에 그래서 설법제일 부루나ㆍ부루나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뒤편에 와서도 이렇게 많은 말로써 부루나를 칭찬을 하게 됩니다.

부처님사업에 제일 공로자라니까요. 부처님사업에...

그 덕에 우리한테 까지 이렇게 법이 전해졌다고도 할 수가 있지요.

이런 순교자. 우리나라로 치면 이차돈 선사 같은 이들이 순교자 아닙니까?

자고로 순교자들이 그렇게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아까운 것이 목숨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법을 위해서 목숨은 고사하고 정말 무엇을 얼마나 희생했는가? 목숨은 그만 놔두더라도 법을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희생했는가? 진정 부처님 법을 전하기 위해서... 이런 것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봐야 됩니다. 여기 부루나 수기장을 보면서 우리가 그런 것을 한번 되 뇌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爾時富樓那彌多羅尼子(이시부루나미다라니자)가, 그 때에 부루나 미다라니자가 從佛聞是(종불문시), 부처님으로부터 들었다. 무엇을 들었는가 하니 智慧方便隨宜說法(지혜방편수의설법). 지혜와 방편으로써 편의를 따라서 설법하는 것을... 부처님은 참~~, 사람에 따라서ㆍ상황따라서ㆍ풍속따라서ㆍ적절하게 이야기를 잘 해요.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그런 것도 듣고, 又聞(우문). 또 들었다. 무엇을?

授諸大弟子(수제대제자)의 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 여러 큰 제자들에게 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 주는 것을 들었다.

復聞(부문). 또 들었다. 무엇을?

宿世因緣之事(숙세인연지사). 이것은 대통지승불 이야기지요. 그것도 들었고, 그 다음에 復聞(부문). 또 들었어요.

諸佛(제불)이 有大自在神通之力(유대자재신통지력)하니라.

모든 부처님이 크고 자재한 그런 신통의 힘이 있다고 하는 사실또 들었다. 그래서 得未曾有(득미증유). 未曾有를 얻으며

心淨踊躍(심정용약)이라. 마음이 청정해서 뛸 듯이 기뻐해. 그래서

卽從座起(즉종좌기)하야 到於佛前(도어불전)이라. 하~ 그 동안 이야기를, 화성유품까지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벌떡 일어나가지고 부처님 앞에 턱~ 나아가서 頭面禮足(두면예족). 부처님한테 절 하고 싶은데 어쩔 겁니까?

頭面禮足하고 却住一面(각주일면)이라. 절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 할 일이 없는가? 옆에 턱~ 앉아가지고 부처님을 瞻仰尊顔(첨앙존안)하는데 目不暫捨(목불잠사)야. 잠깐도 눈을 떼지 않고 넋을 잃은 듯이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而作是念(이작시념)하대, 이런 생각을 하되

世尊甚奇特(세존심기특)이라. ‘야~ 세존은 참 보면 볼수록 훌륭한 분이다.’ 所爲希有(소위희유)라. 하시는 바가 참 希有하다.

隨順世間若干種性(수순세간약간종성)하사, 세간의 별의별 種性들. 종족과 성품을 隨順해서 以方便知見(이방편지견)으로 而爲說法(이위설법)하사, 그들을 위해서 설법해서 拔出衆生(발출중생)의 處處貪著(처처탐착)하시니, 중생들이 곳곳에 이것 보면 여기에 탐착, 저것 보면 저기에 탐착. 그저 탐착 하는 대로 부처님은 다 가서 뽑아내줘요.

我等於佛功德(아등어불공덕)에, 우리들은 그래서 부처님공덕에

言不能宣(언불능선)이라. 부처님공덕을 말로써 능히 펼 수가 없다.

도저히 부처님의 그 위대함과 부처님의 그 능력과 부처님의 그 큰 공덕은 도저히 말로써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唯佛世尊(유불세존)이 能知我等(능지아등). 그런데 오직 부처님세존은 또 우리를 잘 알고 있이 말입니다. 能知我等. 우리는 부처님을 모르는데 부처님은 우리를 잘 알고 있다.

能知我等의 深心本願(심심본원). 우리들의 저 깊은 속에 본래 가지고 있는 소원을 능히 아신다. 라고 하니라.

爾時佛告諸比丘(이시불고제비구)하사대, 그 때에 부처님이 여러 비구들에게 하사대, 汝等見是富樓那彌多羅尼子不(여등견시부루나미다라니자부)아? 너희들이 見. 보느냐? 이 富樓那彌多羅尼子를 보느냐?

我常稱其於說法人中(아상칭기어설법인중)에, 나는 항상 칭송하기를, 그를 칭송하기를 說法人中에 最爲第一(최위제일). (여기 第一이라는 것 몇 번이나 나오나 동그라미 쳐보세요.) 설법하는 사람 가운데 最爲第一이다. 한번 나왔지요? 亦常歎其種種功德(역상탄기종종공덕)하대, 또한 항상 찬탄한다. 그 사람의 種種功德을 찬탄하되 그 사람은 精勤護持(정근호지). 아주 열심히 정근해. 부지런하다. 이 말입니다.

자는 아주 섬세하고 미세하이 말입니다. 거칠게 부지런한 것이 아니고, 부지런해도 별 성과 없이 거칠게 부지런한 사람 있잖아요.

그런데 아주 섬세하고 미세하게 부지런해야 그것이 성과가 많은 겁니다.

그것이 精勤입니다. 우리는 법당에 올라가서 목탁 치면 그것이 精勤인줄 알지요? 그것은... 물론 精勤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하기 싫은 것 시간 때우려고 그전에 제가 하듯이... 그 놈의 향이 왜 그리 안탑니까?

옛날엔 우리는 기도할 때 향을 꽂아놓고 했거든요. 비온 날 같으면 습기가 있어서 이것 두 배로 늘어나요. 옛날 그 안 좋은 향, 시퍼런 향 있지요?

4ㆍ50년 전에는 그런 향뿐이었어요. 잘 안탔어요.

왜 그렇게 안타고 오래도 타는지... 그래도 시간은 때워야 하니까 할 수없이... 그런 것은 축원이지 정근이 아닙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겁니다. 그리고 꼭 서서 해야 되는 줄 알고는 꼭 서서 합니다.

발을 옮겨도 안 되는 줄 알고... 돌아다니면서 해도 되고ㆍ앉아서 해도 되고ㆍ누워서 해도 되고ㆍ마음대로 해도 되는데 소견이 안 돌아가니까 꼭 서서하다가는 그냥 완전히 질려버린 것이지요. 질려버리고 기도라고 하면 다시는 안 한다고요. 그것은 전부 축원입니다. 그것은 아무 소득이 없어요.

몸만 고생시키는 것이지... 속에는 망상 부글부글 끓고 언제 끝나나, 언제 끝나나 향 다 타기만 기다리고요. 어쩌다가 가을 날 바람 선선하게 불면 아주 빨리 타니까 기분 좋아요. 향 그것 하나 다 타면 되니까요.

이 사람은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精勤입니다. 그야말로 정미롭게요.

아주 미세하고 섬세하고 아주 정미롭게 부지런히 하고, 불법을 다 보호해 가져서 助宣我法(조선아법)이라. 나의 법을 助宣해. 펴는데 도와준다.

“도와서 펴준다.” 이 말입니다. 부처님 법을 펴는데 역시 거들어서, 거들어서 펴준다. 하~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이 助宣我法이라.

우리도 부처님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 보다 더 성공한 인생은 없어요. 부처님이 하시는 사업을, 천하의 부처님 아닙니까?

그러면 그 부처님이 하시는 사업을 내가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다고 하는 것. 이것은 최고의 출세고 최고의 성공한 인생입니다. 다른 것 아니에요.

총무원장 천번 만번 하는 것보다도, 정말 부처님 법을 도와서 우리가 펼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한 삶이고 보람 있는 삶이고 뜻있는 삶이지요.

助宣我法이라. 나의 법을 펴는데 도와줬 말입니다.

能於四衆(능어사중)에, 능히 사부대중에게 示敎利喜(시교이희).

보여주고ㆍ가르쳐주고ㆍ이익되게 해주고ㆍ기쁘게 해줬어. 그래서 뭐라고요? 具足解釋佛之正法(구족해석불지정법)이라. 부처님의 바른 법을 具足하게 해석해 줬어. 제대로 해석한 말입니다. 부루나가 정말 제대로 해석했겠지요. 그러나 해석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지만, 부처님 법을 펴기 위해서 이 목숨 하나 초개같이 버리고,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그렇게 전법했다고 하는 이 참 문물 겨운 사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구절구절 찬탄하는 겁니다.

부처님의 正法을 具足히 解釋했다. 제대로 해석했다 이 겁니다.

而大饒益同梵行者(이대요익동범행자)라, 같이 梵行 닦는 사람을 크게 饒益하게, 이익하게 했다하니 自捨如來(자사여래)하고, 스스로 여래를 버리고는 無能盡其言論之辯(무능진기언론지변)이라. 그 언론의 변론. 그 言論을 당할 사람이 없다. 나를 제외하고는 부루나 같은 사람 없다 말입니다. 야~ 세상에 이런 칭찬이 있어요? 이런 칭찬... 여래를 제외 하고는 부루나 같은 사람 없다 말입니다. 참 아주 극찬 입니다 極讚(극찬).

부처님이 이렇게 한 인간을, 자기 제자를 이렇게 칭찬한 예는 없습니다. 문수보살도 이렇게 아니했습니다. 관세음도 이렇게 칭찬 아니했습니다.

아란존자ㆍ가섭존자ㆍ사리불도 지혜제일이지만 이렇게 칭찬 아니했습니다.

한번 비교해 보세요. 앞에 있으니까요.

자기 사업을 위해서, 부처님 당신사업, 전법 사업을 위해서 목숨을 버렸말입니다. 목숨을... 이것은 실질적으로 인도역사에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칭찬 아니 하고 배기나요? 석가모니도 부루나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 겁니다. 칭찬 아니 하고 그냥 있을 수가 없어요.

자기 사업을 위해서 대신 가서 목숨을 바쳤으니까요. 다시 말해서 부처님이 가서 죽어야할 자리에 부루나가 가서 죽은 겁니다.

2 부루나의 과거인연

汝等(여등)은 勿謂富樓那(물위부루나)가

但能護持助宣我法(단능호지조선아법)이니

亦於過去九十億諸佛所(역어과거구십억제불소)에

護持助宣佛之正法(호지조선불지정법)하대

於彼說法人中(어피설법인중)에 亦最第一(역최제일)이며

又於諸佛所說空法(우어제불소설공법)에 明了通達(명료통달)하며

得四無礙智(득사무애지)하야 常能審諦(상능심제)하며

淸淨說法(청정설법)하대 無有疑惑(무유의혹)하며

具足菩薩神通之力(구족보살신통지력)하며

隨其壽命(수기수명)하야 常修梵行(상수범행)일새

彼佛世人(피불세인)이

咸皆謂之實是聲聞(함개위지실시성문)이라하나니

而富樓那(이부루나)가 以斯方便(이사방편)으로

饒益無量百千衆生(요익무량백천중생)하며

又化無量阿僧祗人(우화무량아승지인)하야

令立阿耨多羅三藐三菩提(영립아뇩다라삼먁삼보리)언만은

爲淨佛土故(위정불토고)로 常作佛事(상작불사)하야

敎化衆生(교화중생)하나니라

諸比丘(제비구)야 富樓那(부루나)는

亦於七佛說法人中(역어칠불설법인중)에 而得第一(이득제일)이며

今於我所說法人中(금어아소설법인중)에 亦爲第一(역위제일)이며

於賢劫中(어현겁중)과 當來諸佛說法人中(당래제불설법인중)에

亦復第一(역부제일)하야

而皆護持助宣佛法(이개호지조선불법)하며 亦於未來(역어미래)에

護持助宣無量無邊諸佛之法(호지조선무량무변제불지법)하사

敎化饒益無量衆生(교화요익무량중생)하야

令立阿耨多羅三藐三菩提(영립아뇩다라삼먁삼보리)언만은

爲淨佛土故(위정불토고)로 常勤精進(상근정진)하야

敎化衆生(교화중생)하나니라

汝等(여등)은 勿謂富樓那(물위부루나)가, 말하지 말라. 그렇게 여기지 말라. 勿謂. 여기지 마라. 무엇을요? 부루나가 但能護持助宣我法(단능호지조선아법). 다만 능히나의 법만 펴는데 도와줬다고, 護持하고 도와서 폈다고 말하지 말라. 여기지 말지니, 그럼 뭐가 또 있나요?

亦於過去(역어과거), 또한 과거 九十億諸佛所(구십억제불소)에서 護持助宣佛之正法(호지조선불지정법)이라. 부처님의 정법을 護持하고, 보호해 지키고 그리고 도와서 폈다. 내 법만 아니라 過去 九十億 모든 부처님의 법도 그렇게 했다 말입니다.

於彼說法人中(어피설법인중)에, 그래서 그 부처님들에게서 설법인 중에서도 亦最第一(역최제일)이라. (제일. 또 나왔지요?) 또한 最第一이며

又於(우어), 諸佛所說空法(제불소설공법)에, 모든 부처님이 설하신 바 空法에, 明了通達(명료통달)이라. 제일 잘 깨달았어. 그러니까 이 몸 하나 공한데 뭐 그까짓 것. 부처님 법 펴다가 공한 이 육신. 그것 뭐 죽은들 무슨 상관입니까? 마치 저~기 칼로 봄바람에 머리를 갖다 대니까,

봄바람에 머리를 칼 앞에 갖다 대니까 칼로 봄바람을 베는 것과 같더라.

승조법사의 아주 유명한 五蘊은 本來空(오온본래공)이요, 아주 유명한 말이 있지요. 空法을 제대로 이해하면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得四無礙智(득사무애지)하야, 四無礙智를 얻어서 常能審諦(상능심제)하며, 항상 능히 깊이 깨달아 알며 淸淨說法(청정설법)하대,

훌륭하게 법을 설하되 無有疑惑(무유의혹)이라. 의혹이 없으며

具足菩薩神通之力(구족보살신통지력)하며, 보살의 신통지력을 구족하며

隨其壽命(수기수명)하야, 그 수명을 따라서 常修梵行(상수범행)일새. 항상 범행을 닦았을 세. 彼佛世人(피불세인)이, 그 부처님세상 사람들이

咸皆謂之(함개위지). 다 다 모두들 말하기를 實是聲聞(실시성문)이다.

“야~ 저 사람이야 말로 진짜 성문이다. 정말 부처님제자다.” 그렇게 했으니

而富樓那(이부루나)가 以斯方便(이사방편)으로, 부루나가 이러한 방편으로써 饒益無量百千衆生(요익무량백천중생)하며, 무량백천중생들을 饒益하게 했으며 又化無量阿僧祗人(우화무량아승지인)하야, 또 무량아승지인들을 교화해서 令立阿耨多羅三藐三菩提(영립아뇩다라삼먁삼보리)언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우뚝 서게 했건만, 爲淨佛土故(위정불토고)로,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서, 이런 뜻입니다.

爲淨佛土. 불토를 청정하기 위한 까닭으로 라고 하는 말이, 정말 세상을 교화하려고, 佛土라고 하는 것이 그냥 세상입니다 세계. 세상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까닭으로 常作佛事(상작불사)하야, 항상 불사를 지어서 敎化衆生(교화중생)하나니라.

諸比丘(제비구)야, 모든 비구야 富樓那(부루나)는

亦於七佛說法人中(역어칠불설법인중)에, 또한 七佛. 과거 7불이지요?

七佛說法人中에서도 而得第一(이득제일)이야. (제일. 또 나왔지요? 제일이라는 말 이렇게 여러 번 붙입니다.) 제일을 얻었으며,

今於我所說法人中(금어아소설법인중)에 亦爲第一(역위제일)이다.

(또 제일이네요.) 내 설법인중에서도 또한 제일이다.

於賢劫中(어현겁중)과, 현겁 가운데 當來諸佛說法人中(당래제불설법인중)에 亦復第一(역부제일)이라. 앞으로 미륵부처님이 출현한다 하더라도 그 때도 說法人中에 역시 제일일 것이다. 그래서

而皆護持助宣佛法(이개호지조선불법)이라. 불법을 도와서 펼 것이다.

亦於未來(역어미래)에, 또한 미래에 護持助宣無量無邊諸佛之法(호지조선무량무변제불지법)하사, 역시 미래에 諸佛之法도 護持ㆍ助宣이야. 보호해 가지고 그리고 도와서 펴서 敎化饒益無量衆生(교화요익무량중생)하야, 무량중생들을 교화하고 饒益케해서 令立阿耨多羅三藐三菩提(영립아뇩다라삼먁삼보리)언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우뚝 서게 하건만, 爲淨佛土故(위정불토고)로, 佛土를, 세상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까닭으로常勤精進(상근정진)하야, 항상 부지런히 精進해서 敎化衆生(교화중생)하나니라. 중생을 교화하나니라.

참 아주 대단한 찬사지요. 찬사 중에 제일 찬사입니다.

어느 경전에도 당신 제자를 이렇게까지 찬탄한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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