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종교와 나

법화경 4-3,4 화성유품

應觀 2013. 2. 3. 10:36

 

 

묘법연화경 강좌 제4강-3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9. 02 -

자~ 이제 化城喩品(화성유품). 화성의 비유. 비유경이라고 할만하게 좀전에 약초의 비유를 봤는데, 여기는 화성의 비유입니다.

화성은 “변화하여 만든 도시” 그런 뜻인데요. 요즘 말로 하면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고, 또 마법의 성이기도 하고 化成이지요. 요즘 말로 하면 마법의 성이라.

그것이 아주 좋지요. 화성의 비유가 나오기 이전에 대통지승불이라고 하는 아주 길고 긴 우리 마음의 연원을 밝히는 그런 대통지승불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정말 너무나도 오랜 세월 이전에, 이러이러한 부처님이 계셨다. 그래서 그것이 결국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 하면 우리들의 마음의 역사다. 이런 뜻으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고 긴 마음의 역사에서 하나의 깨달음의 눈을 얻었을 때, 그 다음에 세상은 우리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나는 또 세상을 어떻길고긴 마음의 역사를 내가 더듬어 가는데 있어서 중간 기착지가 있고, 마법의 성이다. 그리고 결국 나아가야할 보배의 장소. 그것을 寶城. 그렇게 하는데, 보배의 장소는 우리가 최종적으로 이뤄야할 一佛乘의 경지다. 이렇게 스토리가 되어있습니다. 일단 대통지승불에 대한 이야기를 보도록 하지요. 역시 장문과 게송, 장문과 게송 이런 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제7 화성유품(化城喩品)

一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

1 대통지승불의 이야기

(1) 장문으로 설하다

佛告諸比丘(불고제비구)하사대

乃往過去無量無邊不可思議阿僧祗劫(내왕과거무량무변불가사의

아승지겁)에 爾時有佛(이시유불)하시니

名大通智勝如來應供正徧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

天人師佛世尊(명대통지승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

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其國名好城(기국명호성)이요

劫名大相(겁명대상)이라

諸比丘(제비구)야 彼佛滅度已來(피불멸도이래)가

甚大久遠(심대구원)이니 譬如三千大千世界(비여삼천대천세계)의

所有地種(소유지종)을 假使有人(가사유인)이

磨以爲墨(마이위묵)하야 過於東方千國土(과어동방천국토)하야

乃下一點(내하일점)을 大如微塵(대여미진)하며

又過千國土(우과천국토)하야 復下一點(부하일점)하대

如是展轉(여시전전)히 盡地種墨(진지종묵)이면

於汝等意云何(어여등의운하)오 是諸國土(시제국토)를

若算師(약산사)어나 若算師弟子(약산사제자)가

能得邊際(능득변제)하야 知其數不(지기수부)아

不也世尊(불야세존)하 諸比丘(제비구)야

是人所經國土(시인소경국토)의 若點不點(약점부점)을

盡抹爲塵(진말위진)하야 一塵一劫(일진일겁)이어든

彼佛滅度已來(피불멸도이래)는 復過是數(부과시수)하대

無量無邊百千萬億阿僧祗劫(무량무변백천만억아승지겁)이니

我以如來知見力故(아이여래지견력고)로

觀彼久遠(관피구원)하대 猶若今日(유약금일)하니라

佛告諸比丘(불고제비구)하사대, 부처님이 여러 비구들에게 고하사대,

乃往過去無量無邊不可思議阿僧祗劫(내왕과거무량무변불가사의

아승지겁)에, 과거 無量ㆍ無邊ㆍ不可思議ㆍ阿僧祗劫전에 爾時有佛(이시유불)하시니, 그 때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이름이

大通智勝如來ㆍ應供ㆍ正徧知ㆍ明行足ㆍ善逝ㆍ世間解ㆍ無上士ㆍ

調御丈夫ㆍ天人師ㆍ佛世尊(명대통지승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

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었다.

大ㆍ通ㆍ智ㆍ勝. 큰 大자. 통할 通자. 지혜라는 智자하고, 그 다음에 뛰어나다 할 勝자. 수승하다 하는 勝자지요. 벌써 우리 마음의 근본을 상징하고 있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大ㆍ通ㆍ智ㆍ勝. 크게 통해서 지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 하는 것이 우리 마음자리 밖에 달리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其國名好城(기국명호성)이요, 그 나라 이름은 好城이요,

劫名大相(겁명대상)이라. 겁의 이름은 大相이라.

諸比丘(제비구)야, 여러 비구야, 彼佛滅度已來(피불멸도이래)가, 그 부처님이 滅度이래가 甚大久遠(심대구원)하니, 매우 크고 오래니,

譬如(비여). 비유컨대 三千大千世界(삼천대천세계)의 所有地種(소유지종)을, 땅을 이 말입니다. 三千大千世界를 이 지구라고 합시다. 이 지구에 있는 땅을 假使有人(가사유인)이, 가사 어떤 사람이

磨以爲墨(마이위묵)하야, 그것을 갈아서 먹을 만들어서, 먹을 만들어가지고 過於東方千國土(과어동방천국토)하야, 東方으로 千國土를 지나면서

乃下一點(내하일점)이라. 한 방울을 딱 떨어뜨리는 겁니다. 千國土를 지나서요.

그런데 큰 먹 덩어리 같으면 빨리 소비가 되겠지만,

大如微塵(대여미진)이라. 크기가 아주 작은 먼지만한 먹물 방울을 떨어뜨린다 말입니다. 又過千國土(우과천국토)하야 復下一點(부하일점)하대, 千國土를 지나가지고 그런 먼지만한 작은 먹물 방울을 하나 딱 떨어뜨려요. 如是展轉(여시전전)히, 이와 같이 계속, 계속 해서 盡地種墨(진지종묵).땅을 갈아서 먹을 만든 그 먹물 방울이 다할 때 까지 할 것 같으면,

於汝等意云何(어여등의운하)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是諸國土(시제국토)를, 이 모든 국토를 若算師(약산사) 만약에 算師.

수학을 전공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算師弟子(약산사제자)가, 수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제자가 能得邊際(능득변제)하야, 그 숫자의 그 끝을 다 알아서 知其數不(지기수부)아? 숫자의 끝을 알 수 있겠는가?

不也니다 世尊(불야세존)하,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諸比丘(제비구)야 만약에 비구가 是人所經國土(시인소경국토)의, 이 사람이 지나가는 국토의 若點 약不點(약점부점)을, 한 방울 떨어진 곳이거나 떨어지지 않은 곳을 盡抹爲塵(진말위진)하야, 다시 또 그것을 다 갈아서, -千國土를 지나서 한 방울 떨어뜨린다고 했지요? 여기는 두 번째는 그 떨어진 국토나 떨어지지 않은 국토. 그 모든 또 다 갈아서 먼지를 만들어서 一塵一劫(일진일겁). 그 먼지 하나를 1겁으로 친다 하자.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彼佛滅度已來(피불멸도이래)는, 저 부처님이 열반한 세월은,

復過是數(부과시수)어라. 이 숫자보다도 더 지나간다. 얼마나 더 지나가는가? 無量ㆍ無邊ㆍ百千萬億阿僧祗劫(무량무변백천만억아승지겁)더 지나간다.

我以如來知見力故(아이여래지견력고)로, 내가 如來의 知見을 쓴 까닭으로 觀彼久遠(관피구원)하대, 더 멀고 오랜 세월을 관하되, 그런데 如來의 知見의 입장에 있어서는 猶若今日(유약금일)이라. 마치 今日과 같다. 오늘일 같이 그렇게 본다. 그렇지요. 時空을 초월한 경지니까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경지니까 아무리 오랜 세월이라 하더라도 뭐라고요?

一 念 卽 時 無 量 劫. 無 量 遠 劫 卽 一 念(일념즉무량겁. 무량원겁즉일념) 이니까요. 말하자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우리 마음의 역사에 있어서는 그 까짓 것. 이것보다 또 더 억만 배 오랜 세월이라 하더라도 역시 한 순간입니다. 이것을 중송으로, 게송으로 거듭 설하는 것은 생략을 하고요.

(2)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爾時世尊(이시세존)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我念過去世(아념과거세) 無量無邊劫(무량무변겁)

有佛兩足尊(유불양족존)하시니 名大通智勝(명대통지승)이라

如人以力磨(여인이력마) 三千大千土(삼천대천토)하대

盡此諸地種(진차제지종)히 皆悉以爲墨(개실이위묵)하대

過於千國土(과어천국토)하야 乃下一塵點(내하일진점)하고

如是展轉點(여시전전점)하야 盡此諸塵墨(진차제진묵)하대

如是諸國土(여시제국토)에 點與不點等(점여부점등)을

復盡抹爲塵(부진말위진)하야 一塵爲一劫(일진위일겁)이어든

此諸微塵數(차제미진수)에 其劫復過是(기겁부과시)라

彼佛滅度來(피불멸도래)는 如是無量劫(여시무량겁)이어든

如來無礙智(여래무애지)로 知彼佛滅度(지피불멸도)와

及聲聞菩薩(급성문보살)하대 如見今滅度(여견금멸도)호라

諸比丘當知(제비구당지)하라 佛智淨微妙(불지정미묘)하야

無漏無所礙(무루무소애)일새 通達無量劫(통달무량겁)이니라

2 대통지승불의 성도(成道)

佛告諸比丘(불고제비구)하사대 大通智勝佛壽(대통지승불수)는

五百四十萬億那由他劫(오백사십만억나유타겁)이니라

其佛本坐道場(기불본좌도장)하사 破魔軍已(파마군이)에

垂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대

而諸佛法(이제불법)이 不現在前(불현재전)이라

如是一小劫(여시일소겁)으로 乃至十小劫(내지십소겁)을

結跏趺坐(결가부좌)하고 身心不動(신심부동)하대

而諸佛法(이제불법)이 猶不在前(유부재전)이라

爾時忉利諸天(이시도리제천)이 先爲彼佛(선위피불)하사

於菩提樹下(어보리수하)에 敷師子座(부사자좌)하대

高一由旬(고일유순)이라 佛於此坐(불어차좌)하사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시니라

適坐此座(적좌차좌)러니 時諸梵天王(시제범천왕)이

雨衆天華(우중천화)하야 面百由旬(면백유순)에

香風時來(향풍시래)하야 吹去萎華(취거위화)하고

更雨新者(갱우신자)하야 如是不絶(여시부절)을

滿十小劫(만십소겁)토록 供養於佛(공양어불)하대

乃至滅度(내지멸도)히 常雨此華(상우차화)하며

四王諸天(사왕제천)은 爲供養佛(위공양불)하야

常擊天鼓(상격천고)하고 其餘諸天(기여제천)은

作天伎樂(작천기악)하야 滿十小劫(만십소겁)하며

至于滅度(지우멸도)히 亦復如是(역부여시)하니라

諸比丘(제비구)야 大通智勝佛(대통지승불)이

過十小劫(과십소겁)하야사 諸佛之法(제불지법)이

乃現在前(내현재전)하야

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시니라

대통지승불이 성도하는 이야기를 여기서 하고 있습니다.

佛告諸比丘(불고제비구)하사대, 부처님이 여러 비구에게 하사되,

大通智勝佛壽(대통지승불수)는, 대통지승불의 부처님의 수명은

五百四十萬億那由他劫(오백사십만억나유타겁)이다. 부처님수명이요.

其佛本坐道場(기불본좌도장)하사, 그 부처님이 본래 도량에 앉아서,

破魔軍已(파마군이)에, 마군을 파한 후에,

垂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드리워 얻되, 而諸佛法(이제불법)이 모든 불법이 不現在前(불현재전)이라. 제불의 법이 앞에 나타나지 아니했다 이 말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540만억 나유타겁을 도량에 앉아서 마군들을 파하고 삼먁삼보리를 얻으려고 했다. 垂得이라고 하는 말은 얻으려고 했다. 그런 뜻이네요. 그런데 諸佛法이 不現在前이여. 如是一小劫(여시일소겁)으로 乃至十小劫(내지십소겁)동안 結跏趺坐(결가부좌)하고

身心不動(신심부동)하대 而諸佛法(이제불법)이 猶不在前(유부재전)이라. 오히려 앞에 나타나지 아니했다. 이것은 禪家에서도 이 문제를 가지고 禪道理로도 이야기를 합니다.

大通智勝佛이냐? 왜 十劫坐道場이냐? 왜 佛法不現前이냐?

이런 세 개의 항목을 가지고 거론하는 하는 그런 선사들도 있었어요.

본래 불법이 나타나고 자시고 할 것이 뭐 있나? 그대로 불법인데요.

따로 무슨 특별한 법이 있으면 나타날지 모르지만... 그렇게도 선문답을 하기도 하고 그럽니다. 爾時忉利諸天(이시도리제천)이, 그 때에 忉利諸天이

先爲彼佛(선위피불)하사, 먼저 저 부처님을 위하사

於菩提樹下(어보리수하)에서 敷師子座(부사자좌)하야,

師子座를 펼쳐 놨어요. 그런데 그 사자좌의 高一由旬(고일유순)이라.

높이는 一由旬이라.

佛於此坐(불어차좌)하사, 부처님이 여기에 앉아서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시니라.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라고 하느니라.

適坐此座(적좌차좌)러니, 마침 이 자리에 앉으니

時諸梵天王(시제범천왕)들이 雨衆天華(우중천화)라. 하늘에서 온갖 꽃들을 비 내려서, 面百由旬(면백유순)에, 말하자면 그 면적이 100유순이나 된다.

香風時來(향풍시래)하야, 香風은 때에 맞추어서 불어와서,

吹去萎華(취거위화)하고, 시든 꽃은 다 불어서 보내버리고,

更雨新者(갱우신자)하야, 다시 새로운 꽃을 또 비 내리듯 내려서,

如是不絶(여시부절)을, 이와 같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를

滿十小劫(만십소겁)토록, 十小劫이 차토록 그렇게 했다.

供養於佛(공양어불)하대, 그러면서 부처님께 공양하되

乃至滅度(내지멸도)에 이르기까지 常雨此華(상우차화)라.

항상 이 꽃을 비 내렸다.

꽃이라고 하는 것은, 예를 들어 묘법연화경도 연화의 이치와 같은 아주 깊고 오묘하고 또 아름다운 그런 진리의 가르침이다 하는 그런 뜻이지만,

꽃을 비 내린다하는 것도, 부처님이 성도하려고 앉아 있는데 하늘에서 꽃이 비 내린다 하는 것도, 말하자면 꽃과 같이 아름다운 진리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행복하고 평화롭게 만든다 하는 그런 의미들이 깔려 있습니다.

四王諸天(사왕제천)이 爲供養佛(위공양불)하야, 부처님께 공양해서

常擊天鼓(상격천고). 항상 天鼓. 하늘의 북을 울리고, 또

其餘諸天(기여제천)은, 그 나머지 모든 하늘들은

作天伎樂(작천기악)하야, 하늘의 伎樂을 연주해서,

滿十小劫(만십소겁)하며, 十小劫이 차며, 그런 뒤에야

至于滅度(지우멸도). 滅度에 이르도록 亦復如是(역부여시)하니라.

이와 같이 계속 음악연주를 했다. 諸比丘(제비구)야, 모든 비구야

大通智勝佛(대통지승불)이 過十小劫(과십소겁)하야사, 10소겁이 지난 뒤에야 諸佛之法(제불지법)이, 제불의 법이 乃現在前(내현재전)이라.

그 때야 비로소 앞에 나타났다. 그래서 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3 권속들이 수희하다

其佛未出家時(기불미출가시)에 有十六子(유십육자)하대

其第一者(기제일자)는 名曰智積(명왈지적)이라

諸子(제자)가 各有種種珍異玩好之具(각유종종진이완호지구)러니

聞父得成(문부득성)가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막먁삼보리)하야는

皆捨所珍(개사소진)하고 往詣佛所(왕예불소)어늘

諸母涕泣(제모체읍)하고 而隨送之(이수송지)러라

其祖轉輪聖王(기조전륜성왕)이 與一百大臣(여일백대신)과

及餘百千萬億人民(급여백천만억인민)으로

皆共圍繞(개공위요)하고 隨至道場(수지도량)하야

咸欲親近大通智勝如來(함욕친근대통지승여래)하야

供養恭敬(공양공경)하고 尊重讚歎(존중찬탄)하야

到已頭面禮足(도이두면예족)하고 繞佛畢已(요불필이)에

一心合掌(일심합장)하고 瞻仰世尊(첨앙세존)하와

以偈頌曰(이게송왈)

大威德世尊(대위덕세존)爲度衆生故(위도중생고)

於無量億歲(어무량억세)에 爾乃得成佛(이내득성불)하시니

諸願已具足(제원이구족)이라 善哉吉無上(선재길무상)이로다

世尊甚希有(세존심희유)하사 一坐十小劫(일좌십소겁)토록

身體及手足(신체급수족)을 靜然安不動(정연안부동)하며

其心常澹泊(기심상담박)하야 未曾有散亂(미증유산란)하고

究竟永寂滅(구경영적멸)하야 安住無漏法(안주무루법)하며

今者見世尊(금자견세존)이 安隱成佛道(안은성불도)호니

我等得善利(아등득선리)하야 稱慶大歡喜(칭경대환희)하노이다

衆生常苦惱(중생상고뇌)하야 盲暝無導師(맹명무도사)라

不識苦盡道(불식고진도)하며 不知求解脫(부지구해탈)하고

長夜增惡趣(장야증악취)하야 減損諸天衆(감손제천중)하며

從冥入於冥(종명입어명)하야 永不聞佛名(영불문불명)이더니

今佛得最上(금불득최상) 安穩無漏道(안온무루도)하시니

我等及天人(아등급천인)이 爲得最大利(위득최대리)라

是故咸稽首(시고함계수)하야 歸命無上尊(귀명무상존)이니다

其佛未出家時(기불미출가시)에, 그 부처님이 未出家時에, 출가하기 이전에 有十六子(유십육자)하야, 16왕자가 있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말하자면 왕의 지위를 이어받을 입장에서 출가를 했잖아요. 그래서 왕이 출가한 것으로 그렇게도 칩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이 모델이 되고, 그 뒤에 경전에 나오는 온갖 부처님의 이야기는 석가모니처럼 왕의 출신으로, 또는 왕자의 출신으로 출가해서 성불한다 하는 그런 이야기로 늘 꾸며져 있어요. 아무튼 확실한 것은 석가모니부처님입니다.

그 외의 이야기는 전부 부처님이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얼마나 됐습니까? 솔직하게... 여기에 나오는 햇수라고 하는 것은, 이 지구가 생기기보다도 훨씬 더 오랜 세월입니다. 경전에 기재되어 있는 시간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요. 그러니까 아주 길고긴 그런 세월. 그것은 곧 아주 깊고 깊은 마음의 깊이. 끝 모를 마음의 깊이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이해를 해야지, 지구역사 뻔한데요 뭐... 사람의 역사는 기껏해야 아무리 오래 됐다고 4ㆍ5만년 밖에 안 되고, 생물의 역사는 기껏해야 40억년 밖에 안 되고요. 지구가 식은 것이 기껏해야... 생물의 역사는 60억년? 기껏해야 그 정도 밖에 안 되거든요. 그래 여기서 이야기하는 숫자하고는 게임이 안 될 정도로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우리가 뻔히 눈을 뜨고서 그냥 얼버무려 넘길 일이 아닙니다. 그럼 그것을 합리적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상식에 맞게 해석이 되어져야 됩니다. 또 해석해야 되고요. 얼마든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억지 해석이 아니고, 아주 합리적인 그런 해석이 가능합니다.

-늦게라도 오시는 분 얼마나 고맙습니까. 아무튼 성문이 많아 됩니다.

일단은 학습주의자가 많아 됩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16왕자가 있었다. 其第一者(기제일자)는, 第一子는 名曰智積(명왈지적)이다. 지혜 智자 쌓을 積자. 여기 지적인데 저~기 또 뒤에 품에 지적이라고 하는 보살이, 다보여래를 따라온 보살중의 한 사람이 또 지적보살이 있다고요. 지혜가 쌓여 있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지혜제일 문수보살하고 말하자면 한게임 붙는 그런 장면이 뒤에 나옵니다. 문수보살하고 어떻게 붙는가? ㅎㅎㅎ 그것을 살펴보면 좋지요.

諸子(제자)가, 여러 아들들이 各有種種珍異玩好之具(각유종종진이완호지구)러니, 온갖 아주 장난감. 그 장난감이 뭐겠습니까? 돈이요 명예요 권한이요. 그런 것입니다. 무슨 그야말로 아이들 장난감을 가지고하는 소리는 아니겠지요.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가 聞父得成(문부득성). 들었다 말입니다. 무엇을? 아버지가 깨달음을 얻었다.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막먁삼보리).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하는 소리를 듣고는, 皆捨所珍(개사소진)이여. 각각 아주 귀중하게 여기던, 보물로 여기던 온갖 재산ㆍ명예ㆍ온갖 사람ㆍ권한권세이런 것을 다 버리고, 往詣佛所(왕예불소)어늘, 모두 부처님 처소에 나아갔다.

그래요. 참 깨달음의 경지. 이 세상에서는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여기, 이것을 알고는 여기에 모두 반해가지고 그 동안 좋아했던 것도 다 버리고 거기에 심취하고 거기에 매진해야 하겠는데, 어찌 다시 세속적인 어떤 가치에 끄달리고 거기에 빠진다면 이것이 앞뒤가 안 맞는 것이지요.

여기 보십시오. 자기들은 아주 온갖 세속의 가치로서 정말 멋진 것을 많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다 버려버리고 往詣佛所어늘, 부처님 처소에 나아갔다. 이 겁니다. 그러니까 아들들이 다 가니까 어떻해요? 諸母涕泣(제모체읍)하고, 어머니들은 그냥 울고불고 야단이지요. 涕泣하고 而隨送之(이수송지)라. 할 수 없이 보내주는 것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아들들 출가한다면 어머니는 ‘가나~’ 하고 그냥 이렇게 바라볼 뿐입니다. 그리고

其祖轉輪聖王(기조전륜성왕)이, 할아버지 전륜성왕이

與一百大臣(여일백대신)과 그리고 그 나머지 及餘百千萬億人民(급여백천만억인민)으로 더불어 皆共圍繞(개공위요)하고, 그러니까 할아버지인 전륜성왕. 온 천하를 통솔하는 천자가 있고, 또 그 밑에 아버지가 있고, 그 밑에 16왕자가 있었다. 이렇게 되겠지요. 3대가 지금 있것입니다. 그러니까 중간의 왕노릇을 하던 아들이 출가를 해서 성도를 했는데, 손자들도 다 가 버렸고 그러니까, 할아버지도 할 수 없이 一百大臣과 나머지 百千萬億人民을 데리고 隨至道場(수지도량). 따라서 도량에 이르렀다.

道場은 항상 깨달음의 장소. 그렇습니다.

이 도량이라고 하는 의미를 우리가 잘 살려야 돼요. 사찰을 도량이라 하지요. 어디든지 道場. 참 좋은 말입니다. 깨달음의 장소. 깨달음이 지상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장소. 도량이라는 것이 이런 뜻입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절을 도량이라고 한다.

거기 사는 사람은 깨달음을 지상 최고의 가치로, 그리고 최고의 목표로 두고 산다 이러지요.

도량에 이르러서 咸欲親近大通智勝如來(함욕친근대통지승여래)하야,

모두들 大通智勝如來를 다 친근하고자 해서, 供養恭敬(공양공경)하고 尊重讚歎(존중찬탄)해서 到已頭面禮足(도이두면예족)이라. 다 거기에 와가지고는 머리와 얼굴로서 발에다 예배했다. 우리가 머리를 딱~ 땅에 대고 손을 이렇게 약간 올리는 것은, 발을 받드는 그런 의미잖아요.

그러니까 머리로써 발을 이렇게 받드는 것이 최고의 예다.

경전에 이렇게 頭面禮足이라고 탁 나와 있습니다. 頭面으로써 발에다 예배한다. 복 달라고 이렇게 올리는 것이 아니지요.

繞佛畢已(요불필이)하고, 부처님을 빙빙 도는 것도 하나의 예법입니다. 그런 일을 마치고 一心合掌(일심합장)하고 瞻仰世尊(첨앙세존)하와,

以偈頌曰(이게송왈), 게송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大威德世尊(대위덕세존)이 爲度衆生故(위도중생고)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於無量億歲(어무량억세)에 爾乃得成佛(이내득성불)하시니, 이에 불도를 이루게 됐다. 성불을 하게 됐다.

諸願已具足(제원이구족)이라. 여러 가지 이 이미 다 具足했다.

善哉라 吉無上(선재길무상)이로다. 아주 훌륭하고 길하다. 그리고 가장 높다. 世尊甚希有(세존심희유)어라. 세존은 매우, 매우 희유한 분이다.

一坐十小劫(일좌십소겁)하야. 한 번 앉아서 十小劫 을 지내.

身體及手足(신체급수족)을 靜然安不動(정연안부동)이라.

고요해서 편안히 움직이지 아니하며,

其心常澹泊(기심상담박)하야, 그 마음은 항상 澹泊하여 아주 깨끗하고 조촐하다. 未曾有散亂(미증유산란)이여, 일찍이 산란한 바가 없어.

究竟永寂滅(구경영적멸)하야, 끝내 길이 적멸해서 安住無漏法(안주무루법)하며, 無漏法에, 샘이 없는 법에 安住 하며,

今者見世尊(금자견세존)이, 지금 보니 세존께서

安隱成佛道(안은성불도)호니, 편안하게 불도 이룬 것을 보니

我等得善利(아등득선리)라. 우리들은 善利. 좋은 이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稱慶大歡喜(칭경대환희)하사오니, 정말 경사스럽고 큰 환희라고 말합니다.

衆生常苦惱(중생상고뇌)하야, 중생들이 항상 고뇌해서,

盲暝無導師(맹명무도사)라. 어둡고 어두워서 우리를 인도해 주는 스승이 없었는데, 그래서 不識苦盡道(불식고진도)하고, 苦가 다하는 그 길을, 고를 다 없앨 수 있는 그런 길을 알지 못하며, 또 不知求解脫(부지구해탈)하고, 解脫을 구하는 길도 알지 못하고, 長夜增惡趣(장야증악취)하야,

인생의 그 길고 긴 밤에 악한길만, 나쁜 길만 더욱 더 불어나서

減損諸天衆(감손제천중)하며, 온갖 훌륭한 대중들은 차츰차츰 감해지고, 從冥入於冥(종명입어명)이라. 어두운 데로부터 또 어두운 데로 들어간다.

이것이 부처님이 없으니까, 불교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세상사는 일이, 어떻게 살지를 모르는 겁니다. 그나마 부처님이 없는 세상에서도 그나마, 聖人이라고 하는 분들이 여기 저기, 좀 부족한 성인이라 하더라도 그런 분들이 세상에 나타나서 사람들을 잘 인도하고 해서, 그나마 세상이 이만치 된 것이지요. 부처님이라고 하는 분은 그 가운데서도 더욱 확실한 그런 성인입니다. 진짜성인과 좀 부족한 성인의 차이점은 그거에요.

모든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볼 줄 아느냐? 모르느냐? 이것이 성인과 좀 부족한 사람의 차이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모든 존재의 실상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느냐? 못하느냐? 여기에 진짜성인이냐? 아니면 좀 부족한 성인이냐? 하는 그런 차이점을 우리가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을 죄업 많은 중생이라고 한다든지, 아니면 무슨 어떤 존재의 종이라고 본다든지 하는 것은, 이것은 올바른 인간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성인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혹 방편으로 그런 말을 잠깐 하면 몰라도, 인간에 대한 실상을 정말 제대로 꿰뚫어 본다면 인간은 정말 훌륭한 존재이고, 지극히 고귀한 존재이다 라고 이렇게 이해해야 됩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그렇게 못 보잖아요. 불교에서도 다른 저급한 불교에서는 그렇게 못 보는 겁니다. 인간을 아주 죄업 많고 업장 많고 그래서 T V틀면 끊임없이 참회. 웬 죄가 그리 많아서 참회를 그리 많이 하는가요? 그것 할 것도 없어요. 사실은 참회 할 것 별로 없어요.

그것은 인간의 허물만 보는 겁니다. 못난 면만 자꾸 보고 하는 겁니다. 왜 못난 면을 봅니까? 잘난 면을 봐도 다 못 보는데요? 우리에게는 아주 뛰어난 면이 있는데요. 그 뛰어난 면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것을 자꾸 드러내고 그것을 보려고 하고, 그것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려고 해야지, 아주 부족하고 못나고 잘 못하고 하는 그것만 초점을 딱 맞춰놓고 하려니까 계속 참회해야 되는 겁니다. 그것이 참회한다고 되는 일도 아닙니다.

그것 참 불교를 잘 모르니까 그런 일들이 많이 생기는데 결코 그런 참회하는 것. 물론 자기 허물을 뉘우치는 일은 좋아요. 그렇지만 그것이 결국은 우리 인간을 자꾸 왜소하게 만들고, 업장 많은 중생으로 만들고 위축 되게 만들고, 사람을, 인간을 자꾸 위축 시키는 겁니다.

그러잖아도 다른 종교에 비해서, 또는 세상에 비해서 위축되고 그러는데 아, 불교자체에서 자꾸 위축 시키는 겁니다. 그래 어디 가서 고개 못 들게 만들고요. 그것이 뭐하는 짓입니까? 당당하게 만들어야지요 당당하게...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을 “너는 못 났다. 너는 고개 숙이고 살아라.”항상 “어디 가서 말도 하지 말아라. 너는 너무 못난 놈 아니냐?” 이렇게 가르치는 부모가 어디 있어요? 그런 부모는 세상에 없어요. 아무리 못났어도 용기를 주고 격려해주고,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진짜 성인의 가르침은요. 모든 인간을 그렇게 격려해주고 당당하게, 또 그런 면이 아주 충분히 있으니까요. 너무너무 확실하게 우리 마음자리에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점을 자꾸 들추어가지고... 그저 눈에 안 보이면 몰라도 보이는데 그 점을 들추어서 “그것이 너의 본 모습이다.” 라고 이렇게 일깨워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훌륭한 성인이고 진짜 좋은 성인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뭐 “죄업 많다. 참회해야 된다.” 자꾸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그것은 무슨 저의가 있는 그런 종교에서 하는 일입니다. 무슨 속셈이 있어가지고 그런 식으로 사람을 이끌고 가는, 그런데서 하는 것이지요.

衆生常苦惱니, 어두운 데서 또 어두운 데로 들어가서

永不聞佛名(영불문불명)이라. 영원히 부처의 이름을 듣지 못하고, 그동안 세상이 그랬다 하는 겁니다. 우리가 불교를 잘 모르면, 또 안다 하더라도 어름하게 엉터리로 알고 있으면 자꾸 인간을 그렇게 어두운 데서 어두운 데로 들어가게 하는 그런 식으로 가르치고 하는 것이지요.

영원히 부처라고 하는 이름을 듣지 못했더니, 今佛得最上(금불득최상) 安穩無漏道(안온무루도)하나니, 지금 부처님께서 最上. 그리고 편안한,

安穩한 無漏의 道를 얻었으니, -대통지승불이 성불했다 이 말이지요.

我等及天人(아등급천인)이, 우리와 그리고 天人들이

爲得最大利(위득최대리)라. 가장 큰 이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是故로 咸稽首(시고함계수)하야, 그런 까닭에 다 머리를 조아려서

歸命無上尊(귀명무상존)하나이다. 無上尊. 최상의 높은 어른에게 歸命하나이다. 대통지승불이 성불하니까 권속들이 隨喜하며, 따라 기뻐하면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지요.

4 십육왕자가 법을 청하다

爾時十六王子(이시십육왕자)가 偈讚佛已(게찬불이)하고

勸請世尊(권청세존)하야 轉於法輪(전어법륜)할새

咸作是言(함작시언)하대 世尊說法(세존설법)이

多所安穩(다소안온)하사

憐愍饒益諸天人民(련민요익제천인민)이라하고

重說偈言(중설게언)하니라

世雄無等倫(세웅무등륜)하사 百福自莊嚴(백복자장엄)하시고

得無上智慧(득무상지혜)삿다 願爲世間說(원위세간설)하사

度脫於我等(도탈어아등)과 及諸衆生類(급제중생류)하시며

爲分別顯示(위분별현시)하사 令得是智慧(영득시지혜)케하소서

若我等得佛(약아등득불)이면 衆生亦復然(중생역부연)이라

世尊知衆生(세존지중생)深心之所念(심심지소념)하시며

亦知所行道(역지소행도)하고 又知智慧力(우지지혜력)

欲樂及修福(욕락급수복)宿命所行業(숙명소행업)이라

世尊悉知已(세존실지이)시니 當轉無上輪(당전무상륜)하소서

爾時十六王子(이시십육왕자)가, 그 때에 16왕자가

偈讚佛已(게찬불이)하고, 부처님을 게송으로 찬탄하고 나서

勸請世尊(권청세존)하야, 세존을 권청해서

轉於法輪(전어법륜)할새, 法輪을 굴리기를 청할세.

咸作是言(함작시언)하대, 世尊說法(세존설법)이 多所安穩(다소안온)이라. 부처님의 설법은 편안하게 한다 말입니다.

安心法門이라고 해서 사람을 편안하게 해줘 됩니다.

불안하게 해주면 안 된다고요. 막 그냥 죄업 많은 중생. 업장 많은 중생.

막 윽박질러가지고 불안하게 하면 그것은 제대로 된 종교가 아닙니다.

이것 봐요. 多所安穩이라. 世尊說法이 多所安穩이라. 그랬잖아요.

많이 안온한 바가 있으니 憐愍饒益諸天人民(련민요익제천인민)하사,

諸天人民들을 불쌍히 여기고, 또 그래서 饒益하게, 아주 유익하게 또는 이익하게 한다 하고 重說偈言(중설게언)하니라.

世雄無等倫(세웅무등륜)하사, 세존에 짝할 이가 없다.

百福自莊嚴(백복자장엄)이라. 100가지 복으로써, 온갖 복으로써 저절로 장엄되었다. 得無上智慧(득무상지혜)얻으셨다.

願爲世間說(원위세간설)하사, 원컨대, 世間을 위해서 설하십시오. 그래서

度脫於我等(도탈어아등)과, 우리들과

及諸衆生類(급제중생류)하시며, 그리고 모든 중생류를 제도해 주시며,

그리고 爲分別顯示(위분별현시)하사, 분별해서 顯示하사

令得是智慧(영득시지혜). 이 지혜를 얻게 좀 해주십시오.

若我等得佛(약아등득불)이면, 만약에 우리들이 부처님을 얻게 된다면,

衆生亦復然(중생역부연)이라. 중생들도 또한. 다른 중생들도 또한 행복할 것입니다. 이 말입니다.

世尊知衆生(세존지중생)의 深心之所念(심심지소념)이라. 중생들의 저 깊은 마음에서 생각하는 바를 세존이 잘 아시사,

亦知所行道(역지소행도)하고, 또한 행할 바의 도를 알고,

又知智慧力(우지지혜력)과 그리고 欲樂及修福(욕락급수복).

중생들이 뭘 좋아 하는지ㆍ뭘 즐기는지ㆍ욕심은 뭔지 그리고 복은 또 얼마나 닦고 있는지 宿命所行業(숙명소행업). 과거 생에 어떤 행업을 닦았는지ㆍ무슨 짓을 했는지 이런 것을 전부 다 알고 있다.

世尊悉知已(세존실지이)하시니, 세존께서 다~, 다 알고 계시니

當轉無上輪(당전무상륜)하소서. 마땅히 無上, 최상의 법륜을 굴리소서.

 

묘법연화경 강좌 제4강-4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9. 02 -

시방의 범천들이 법을 청하다.

여기 보리를 얻음에 광명이 비치다. 그랬습니다. 그 다음에

동방의 범천이 법을 청하고 그 다음에 각 방 범천이 법을 청하는 내용인데요. (1)보리를 얻음에, 깨달음을 얻음에 광명이 비치다.

이것 유의해서 좀 봐야 돼요.

5 시방의 범천들이 법을 청하다

(1) 보리를 얻음에 광명이 비치다

佛告諸比丘(불고제비구)하사대 大通智勝佛(대통지승불)이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시)에

十方(시방)으로 各五百萬億諸佛世界(각오백만억제불세계)가

六種震動(육종진동)하고 其國中間幽冥之處(기국중간유명지처)에

日月威光(일월위광)의 所不能照(소불능조)도

而皆大明(이개대명)하야 其中衆生(기중중생)이

各得相見(각득상견)하고 咸作是言(함작시언)하대

此中云何忽生衆生(차중운하홀생중생)가하며

又其國界(우기국계)에 諸天宮殿(제천궁전)과

乃至梵宮(내지범궁)히 六種震動(육종진동)하고

大光普照(대광보조)하야 徧滿世界(변만세계)하대

勝諸天光(승제천광)이러라

佛告諸比丘(불고제비구)하사대 大通智勝佛(대통지승불)이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시)를 얻었을 때에

十方(시방)으로 各五百萬億諸佛世界(각오백만억제불세계)가

六種震動(육종진동)하고, 眼ㆍ耳ㆍ鼻ㆍ舌ㆍ身ㆍ意(안이비설신의)가 전율하고, 이 말입니다.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其國中間幽冥之處(기국중간유명지처)에, 그 나라 중간 幽冥之處. 아주 어둡고 어두운 곳. 우리 인간, 불교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전율해야 돼요. 몸과 마음이 뒤떨려야 돼요. 불교를 만나서 진동하듯이 떨려야 돼요.

불교에 환희하면서 우리는 놀라야 돼요.

그 나라 어두운 곳. 우리 마음속의 이치를 모르고 어둡고 어두운 그 곳에

日月威光(일월위광)의 所不能照(소불능조)도, 달빛도 햇빛도 그 어떤 빛도 비치지 아니한 그 곳도 而皆大明(이개대명)이라. 모두모두 다 밝아졌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동안 어떤 성인의 가르침ㆍ어떤 철학의 가르침ㆍ어떤 세속의 가르침ㆍ어떤 어른의 가르침. 그런 것을 우리가 다 배웠지만, 그것은 다 이치를 모르는, 진리를 모르는 어두움에 불과한 것이고,

바로 불교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 마음이 다 밝아졌다.

其中衆生(기중중생)이, 그 가운데 있는 중생이

各得相見(각득상견)이라. 각각 뭐라고요? 相見함을 얻었다. 서로 보게 되었다. 불교라고 하는 지혜의 안목을 통해서 서로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咸作是言(함작시언)하대, 다 같이 이러한 말을 하되,

此中에 云何忽生衆生(차중운하홀생중생)인가? 여기에 어째 중생이 홀연히 금방 이렇게 생겼는가? 이런 말을 했다것입니다.

此中云何忽生衆生가 하며, 이것 줄그어야 돼요.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부처님의 깨달음을 광명으로 표현했고, 그것은, 불교는 지혜의 빛이라고 하는 것이고, 지혜의 빛을 통해서, 불교를 통해서 나 아닌 다른 사람도 인식하게 되었다. 그 뜻입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도...

그러니까 그 동안 나만 생각하고 살았어요. 나만 생각하고 전혀 다른 사람 배려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에 대한 고통도 살펴볼 줄 모르고, 남이야 뭐 죽든지 말든지, 굶든지 먹든지 전혀 관심 쓰지 아니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불교라고 하는 지혜의 가르침을 통해서 비로소 옆에 사람이 있고, 사하천에 굶는지 먹는지도 살펴보게 되고, 먼저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절 가까운 주변부터 보살필 줄 알아야 돼요. 이것이 그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이 도를 이루니까 그것이 빛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이겁니다.

그리고 그 빛을 통해서 우리는 六種震動입니다. 眼ㆍ耳ㆍ鼻ㆍ舌ㆍ身ㆍ意 六根이 그만 전율을 일으킬 정도로 그렇게 놀라운 감격을 받았다.

그것이 불교입니다. 부처님이 성불했다는 것은 우리 불교를 통해서 그렇게 되었고요. 불교라고 하는 가르침을 통해서 이웃을 살필 줄 알게 되었다. 어째서 옆에 홀연히 중생이 생겼는가? 있었어요. 본래 있었습니다.

지금 금방 생긴 것이 아닙니다. 본래 있었는데 우리 눈에 비로소, 불교라고 하는 가르침을 통해서, 자비의 가르침을 통해서 봉사와 희생이라고 하는 가르침을 통해서 비로소 옆의 사람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의 고통도 이해하게 되었고, 그리고 힘닿는데 까지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는 이 구절이 참~~, ‘아~! 부처님의 성도의 의미를 이렇게 간단하게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정말 이것은 명언 중의 명언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도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각양각색으로 설명할 수가 있는데요. 여기는 뭐라고요?

云何忽生衆生(운하홀생중생)이뇨? 어째서 옆에 사람이 있는가?

‘아~! 참, 대단하잖아요. 특히나 이것은 이 시대에 한국 불교에 있어서 더욱 필요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을 못 지어가지고 그 위대한 가르침을 가지고도 종교편향의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겁니다.

복을 못 지어가지고 옆의 사람을 살펴볼 줄 몰랐다 하는 것입니다.

又其國界(우기국계)에, 또 나라의 경계에

諸天宮殿(제천궁전)과 乃至梵宮(내지범궁)에 이르기 까지 모두 다

六種震動(육종진동)이여, 전부 아주 놀라울 정도로, 불교를 통해서 전기에 감전 된 듯한 그런 전율을 느낀다. 정말 불교 때문에요?

좋은 직장 다 버리고, 좋은 공부하던 것 다 버리고 불교에 심취한 그런 사람들 실지로 많습니다.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 많아요. 무슨 판검사 하던 사람들도, 훌륭한 학교 나와 가지고 의사로서 재직하고 있다가 불교공부 하니까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것이 없거든요.

‘내가 왜 의사노릇 하는가? 내가 왜 판검사노릇 하는가? 그 시시한 것.’

그리고는 그냥 불교에 심취해가지고 불교공부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六種震動입니다. 몸에 전율이 오는 겁니다. 그 동안 세속적인 것만 알고, 세속적인 어떤 가치관에 몰입해 있다가 아~ 정말 불교의 이런 위대한 가르침을 보니까 그만 그 좋은 직장, 좋은 직업 다 팽개쳐 버리고 불교에만 그만 심취하는 겁니다.

그것 뭐 굶으면 어때서... 뭐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지 하는 이런 주의가 돼버려요. 야~, 정말 부럽잖아요.

그런데 우리 스님들은 전문가ㆍ프로가 돼가지고 열심히 안 한다면 도대체 이것은 말도 아닙니다. 六種震動이란 그런 것입니다.

여기 뭡니까? 諸天宮殿과 梵宮이라는 것이 니까?

아주 좋은 직업ㆍ아주 고위층, 아주 상류계급 이것 아닙니까? 저 하늘이 뭘 어쨌다는 겁니까? 하늘 아닙니다. 그런 삶을 살던 사람들도 정말 불교를 제대로 만나니까 전율을 느낄 정도로 六種震動했다. 우리가 해석의 문제입니다. 解 釋. 해석을 잘 해야 돼요. 해석을 잘하면 이 고리타분한 옛날 경전이 아니고, 늘 아주 새로운 빛을 발하는 그런 경전입니다.

大光普照(대광보조)하야, 큰 광명이 널리 비춰서

徧滿世界(변만세계)해서, 온 세계에 두루 차서

勝諸天光(승제천광)하더라. 저~ 하늘의 빛보다도 훨씬 뛰어나더라. 그랬어요. 삶의 가치가 아무리 고위층에서 아주 부유하게, 그야말로 현대의 아주 최 명문가 귀족으로 살더라도 불교를 알고 보니까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더라 이겁니다. 그런 명문가 귀족으로써 삶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대단한 줄 알았는데, 불교를 공부하다 보니까 그것은 정말 시시한 겁니다.

그래서 스스로 먹물 옷 같은 것 척~ 아무거나 걸치고, 머리야 길든지 옷이야 떨어지든지 신발이야 이렇든지 저렇든지 저~기 토굴이나 산에나 아니면 시민선방에 들어 가가지고 척~ 참구하고 있는 모습들. 대단하잖아요.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인간의 가치관이 달라지면... 가치관이 달라지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것이 니까? 大光普照. 깨달음의 광명이 널리 비춰서 세계를 가득히 채우니까 모든 하늘의 광명보다 훨씬 우수하더라. 뛰어나더라. 그렇지요. 깨달음의 광명! 불교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도 더 우수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불교다. 이 뜻입니다.

간단하잖아요. 딱 들어맞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 이상 달리 어떻게 해석해요?

음악에서 제가 좋아하는 말 한 마디가 해석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예를 들어서 누구는, 유명한 어떤 음악가는 베토벤의 무슨 곡을 가장 잘 해석했다. 그것이 지휘자가 됐든 연주자가 됐든 간에, 연주하는 사람이든 지휘하는 사람이든, 그 곡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이 시대 사람들의 성향에 맞게 새롭게 해석해 낸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거든요. 그 해석이라는 말이 저는 제일 음악에서 참 취할만한 일이고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서 작가들은 그 어떤 글로써 해석해 내기도 하고요.

지휘자는 지휘로써 해석해 내고요. 연주자는 연주로써 해석해 내고 그렇지요. 그것도 전부 해석입니다.

곡을 뭐라고 콩나물로 이렇게 해놨다고 해서 똑 같이 그렇게 그 음악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이해한 대로 그것이 나오는 것이지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여러분 불러 봐요. 100명이면 100명 다 달리 부르는 겁니다. 물론 부르는 솜씨도 다르지만, 그 애국가를 어떻게 해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 부르는 맛이 다른 것이지요.

그래서 누구는 어떤 곡을 아주 멋지게 가장 잘 해석했다. 이런 말이 그 음악에 대한 책을 읽어보면 곳곳에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휘자들 이야기라든지 연주자들 이야기를 읽어보면 전부 그런 말이나옵니다.

누구는 무슨 곡을 가장 잘 해석했다. 표현이 있어요. 경전도 마치 지휘자와 같아서 잘 해하고 잘 해석해 내는 것. 그것도 오늘 이 순간 이 시대에, 또 이 사람들에게 맞는 런 해석. 그것이 중요한 겁니다.

그 다음에 동방의 범천이 법을 청하다. 이것이 전부 법을 청하는 겁니다. 법 청하는데 그래도 동방범천만 한 번 보겠습니다.

법 청하는 것이 아주 많아요. 동방의 범천살펴본다면,

(2) 동방의 범천이 법을 청하다

爾時東方(이시동방)으로 五百萬億(오백만억)인

諸國土中梵天宮殿(제국토중범천궁전)에 光明照曜(광명조요)하대

倍於常明(배어상명)이라 諸梵天王(제범천왕)이

各作是念(각작시념)하대 今者宮殿光明(금자궁전광명)은

昔所未有(석소미유)라 以何因緣(이하인연)으로

而現此相(이현차상)가하니라

是時諸梵天王(시시제범천왕)이 卽各相詣(즉각상예)하야

共議此事(공의차사)러니 時彼衆中(시피중중)에

有一大梵天王(유일대범천왕)하니 名救一切(명구일체)라

爲諸梵衆(위제범중)하야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我等諸宮殿(아등제궁전)에 光明昔未有(광명석미유)라

此是何因緣(차시하인연)가 宜各共求之(의각공구지)로다

爲大德天生(위대덕천생)인가 爲佛出世間(위불출세간)인가

而此大光明(이차대광명)이 徧照於十方(변조어시방)가하니라

 

爾時五百萬億國土(이시오백만억국토)에 諸梵天王(제범천왕)이

與宮殿俱(여궁전구)하사 各以衣襋(각이의극)으로

盛諸天華(성제천화)하야 共詣西方(공예서방)하야

推尋是相(추심시상)타가 見大通智勝如來(견대통지승여래)가

處于道場菩提樹下(처우도량보리수하)하사

坐師子座(좌사자좌)하시니 諸天龍王(제천룡왕)과

乾闥婆緊那羅(건달바긴나라)와

摩睺羅伽人非人等(마후라가인비인등)이

恭敬圍繞(공경위요)하며 及見十六王子(급견십육왕자)가

請佛轉法輪(청불전법륜)하고 卽時諸梵天王(즉시제범천왕)이

頭面禮佛(두면예불)하야 繞百千匝(요백천잡)하고

卽以天華(즉이천화)로 而散佛上(이산불상)하니

其所散華(기소산화)가 如須彌山(여수미산)이라

幷以供養佛菩提樹(병이공양불보리수)하니

其菩提樹(기보리수)의 高十由旬(고십유순)이라

華供養已(화공양이)에 各以宮殿(각이궁전)으로

奉上彼佛(봉상피불)하고 而作是言(이작시언)하대

唯見哀愍(유견애민)하사 饒益我等(요익아등)하시며

所獻宮殿(소헌궁전)을 願垂納處(원수납처)하소서

時諸梵天王(시제범천왕)이 卽於佛前(즉어불전)에

一心同聲(일심동성)으로 以偈頌曰(이게송왈)

世尊甚希有(세존심희유)하사 難可得値遇(난가득치우)라

具無量功德(구무량공덕)하사 能救護一切(능구호일체)하시며

天人之大師(천인지대사)로 哀愍於世間(애민어세간)하시니

十方諸衆生(시방제중생)이 普皆蒙饒益(보개몽요익)이라

我等所從來(아등소종래)는 五百萬億國(오백만억국)이니

捨深禪定樂(사심선정락)은 爲供養佛故(위공양불고)니다

我等先世福(아등선세복)으로 宮殿甚嚴飾(궁전심엄식)이라

今以奉世尊(금이봉세존)하노 唯願哀納受(유원애납수)하소서

爾時諸梵天王(이시제범천왕)이 偈讚佛已(게찬불이)하고

各作是言(각작시언)하대 唯願世尊(유원세존)은

轉於法輪(전어법륜)하사 度脫衆生(도탈중생)하야

開涅槃道(개열반도)케하소서 時諸梵天王(시제범천왕)이

一心同聲(일심동성)으로 而說偈言(이설게언)하사대

世雄兩足尊(세웅양족존)은 唯願演說法(유원연설법)하사

以大慈悲力(이대자비력)으로 度苦惱衆生(도고뇌중생)하소서

爾時大通智勝如來(이시대통지승여래)가

黙然許之(묵연허지)하시니

爾時東方(이시동방)으로, 그 때에 동방으로 五百萬億(오백만억)인

諸國土中梵天宮殿(제국토중범천궁전)에 光明이 照曜(광명조요)라.

동쪽으로 500만억이나 되는 모든 국토 중에 梵天宮殿에 光明이 환히 비쳐오는 겁니다. 평소의 광명보다 倍於常明(배어상명)이라 그러잖아요.

평소의 광명보다 배나 밝아 버려요. 그러니까 諸梵天王(제범천왕)이 各作是念(각작시념)하대, 각각 이런 생각을 하되, 今者宮殿光明(금자궁전광명)은, 지금 비치고 있는 궁전에 光明은 昔所未有(석소미유)라.

옛날에 없던 바더라. 以何因緣(이하인연)으로 而現此相(이현차상)가하니라. 무슨 인연으로 이런 상서가,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하니라.

불교는 그것이 아주 너무 추상적인 것이잖아요. 깨달음이라 해도 추상적인 것이고, 불교라 해도 추상적인 것이고, 뭐 손에 잡히는 것이 없잖아요.

무슨 경전으로 불교라 할 겁니까? 불상으로 불교라 할 겁니까?

절로 불교라 할 거요? 뭘 로 할 겁니까? 목탁으로 할 겁니까?

죽비로 할 겁니까? 불교라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닙니다. 아주 추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것으로써 불교를 라고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이 빛입니다. 광명입니다.

그래서 경전 곳곳에 광명ㆍ광명ㆍ빛ㆍ빛ㆍ빛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초파일에 등을 밝히는 것도 물론 불교를 상징 하는 것이고요.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 하는 것이고요. 우리가 법당에 인등을 켜는 것도 불교를 상징 하는 것이고요. 부처님을 상징 하는 것이고요.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 하는 것이고요. 촛불 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형광등하나 밝혀버리면, 인등 1촉짜리ㆍ2촉짜리 100개 200개보다도 훨씬 더 밝은데, 밝은 형광등하나 켜지 뭐하려고 그것 켭니까? 1촉짜리ㆍ2촉짜리 왜 그것 켜요? 그 모두가 불교는 빛으로 상징한다. 그 교훈을 잊지 말라 하는 뜻입니다. 항상 그렇게 생각하 하는 뜻이지요.

그래 여기 광명으로 잘 표현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평소의 광명보다 배나 더 밝더라. 무슨 인연으로 이런 광명이 나타나느냐? 是時諸梵天王(시시제범천왕)이, 그때에 諸梵天王이 卽各相詣(즉각상예)하야, 각각 서로 나아가서, 두런두런 소리를 내면서 전부 각자, 방에서 나온다든지 왕궁에서 모두 길 거리로 나오는 겁니다.

그래갖고 저절로 모여가지고 共議此事(공의차사)러니, 이 일을 의논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갑자기 무슨 빛이 환하게 비친다든지, 아니면 우레 소리가 크게 친다든지 그러면 아파트에서 전부 다 쫓아 나와 가지고,

“아 이것 도대체 왜 이러냐?” “왜 이러냐?” 하고 상의할 것 아닙니까?

共議此事. 입니다.

時彼衆中(시피중중)에, 그 때에 대중 가운데서

有一大梵天王(유일대범천왕)하니, 한 대범천왕이 있었어. 이름은

名救一切(명구일체)라. 일체 사람들을 구호하는 사람이라.

爲諸梵衆(위제범중)하야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諸梵衆을 위해서 이런 게송을 설한다.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참 근사하지요?

여러 범천들이 수런수런수런수런 하면서 빛이 왜 이리 비치는가? 왜 이리 비치는가? 하고 전부 밖으로, 골목으로 나왔다 이겁니다.

그런데 어떤 救一切라고 하는 범천왕이 있다가 척~ 나와서 혼자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한 마디 척~ 부르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我等諸宮殿(아등제궁전)에, 우리들의 모든 궁전에

光明昔未有(광명석미유)라. 옛날에 비치지 않던 것이다.

此是何因緣(차시하인연)가? 이것이 무슨 인연인가?

宜各共求之(의각공구지)로다. 마땅히 각각 함께 다 그 뜻을 구해 볼지로다. 爲大德天生(위대덕천생)인가? 大德天이 태어났는가? 아니면

爲佛出世間(위불출세간)인가?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했는가?

而此大光明(이차대광명)이 徧照於十方(변조어시방)이라.

시방에 두루두루 비치는구나. 라고 노래를 간단하게 한 번 불렀습니다.

爾時五百萬億國土(이시오백만억국토)에, 그 때에 500만억국토의

諸梵天王(제범천왕)이 與宮殿俱(여궁전구)하야, 전부 궁전을 들고 오는 겁니다. 또 各以衣襋(각이의극)으로, 衣襋이라고 하는 것은 옷 바구니입니다. 옷을 담는 바구니. 거기에다가 盛諸天華(성제천화)하야, 옷 바구니에다가 궁전하고 하늘 꽃을 가득히 담았어요. 그리고서는

共詣西方(공예서방)이라. 왜 서방이냐? 동방 범천이니까 서쪽으로 가야지요. 각각 서방으로 나아가서 推尋是相(추심시상)타가.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냐?” 하고 推尋는 것이지요. 찾다가,

見大通智勝如來(견대통지승여래)가 處于道場菩提樹下(처우도량보

리수하)하야, 대통지승여래가 도량 보리수하

坐師子座(좌사자좌)하시니, 사자좌에 앉아서 諸天龍王(제천룡왕)과ㆍ乾闥婆ㆍ緊那羅(건달바긴나라)ㆍ摩睺羅伽ㆍ人非人等(마후라가인비인등)恭敬圍繞(공경위요)하며 그리고 及見十六王子(급견십육왕자)가, 아까 16王子가 따라 왔다고 했지요? 자기 아버지가 성불했다는 소리를 듣고요. 請佛轉法輪(청불전법륜)하고, 16王子가 부처님께 법륜청하는 것을 보고,

卽時에 諸梵天王(즉시제범천왕)이, 즉시에 모든 범천왕들이

頭面禮佛(두면예불)이라. 머리로써 부처님께 예배하고,

繞百千匝(요백천잡)이여, 백 바퀴 천 바퀴 그냥 끝도 없이 부처님을 돌아요. 그저 환희심 나고 기쁠 때에 그를 도는 겁니다.

卽以天華(즉이천화)로, 그리고는 곧 하늘 꽃으로써

而散佛上(이산불상)하니, 부처님위에다가 흩으니

其所散華(기소산화)가, 흩어진바 꽃들이 如須彌山(여수미산)이라.

얼마나 꽃을 많이 뿌렸는지 수미산처럼 높더라. 그리고서 또

幷以供養佛菩提樹(병이공양불보리수)하니, 아울러 보리수에도 공양을 올려요. 其菩提樹(기보리수)의 高十由旬(고십유순)이라.

그 보리수의 높이는 十由旬이더라. 인도에서 말하는 1유순이, 요즘 미터로 14.4미터다 하는 것을 제가 사전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華供養已(화공양이)에, 꽃으로써 공양하고 나서

各以宮殿(각이궁전)으로, 각각 궁전으로써 奉上彼佛(봉상피불)이라. 부처님께 받들어 올려요. “이 궁전가지고 포교당으로 하든지, 법당으로 하든지, 절로 하든지 마음대로 쓰십시오.” 그러니까 누가 도통했다 하면, 신도들은 무조건 그 스님한테 절 지어줘야 돼요. 포교당지어주고요. 법당 만들어주고요. 여기 해놨잖아요. 그렇게 해놨어요. 각각 궁전으로써 奉上彼佛입니다. 남는 집 땅, 남는 절 있거든 그 스님들에게 모두 내놔요.

남는 집하고요. 남는 것만... 허허허 총무원장스님한테 서울에 남는 절 있으면 달라고 하려니까 도대체 만날 길이 있어야 그 말을 하지요.

누가 좀 전에도 서울에 남는 절하나 있으면 내놓으라고 하더라고요.

各以宮殿으로 奉上彼佛하고 而作是言(이작시언)하대, 이런 말을 합니다. 唯見哀愍(유견애민)하사, 오직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饒益我等(요익아등)하시며, 우리들을 饒益케, 이익하게 하시며

所獻宮殿(소헌궁전)을, 우리가 받들어 올리는 이 궁전을 願垂納處(원수납처)하소서, 제발 좀 받아주십시오. 궁전이면 얼마나 잘 지었겠습니까?

법당으로 쓰거나 포교당으로 쓰면 얼마나 근사하겠습니까?

그것을 제발 좀 받아달라고 이렇게 간청 하는 겁니다.

時諸梵天王(시제범천왕)이 卽於佛前(즉어불전)에 一心同聲(일심동

성)으로 以偈頌曰(이게송왈). 그 때 범천왕들이 부처님 앞에서 一心同聲으로써 게송으로써 읊었다.

그래서 죽림정사라든지 기원정사라든지 기타 많은 精舍. 사찰들이 부처님이 성도해가지고, 또 제자들이 많이 따르지, 그러니까 설법도 하시고 전법 하고 제자들이 수행도 하고 하라고 신도들이 그렇게 전부 지어준 것 아닙니까? 순리가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전부 거기에 맞추어서 이야기 된 것입니다. 이것이 전혀 다른 소리가 아니지요. 그대로 딱딱 맞추면 맞아 떨어지도록 되어있습니다. 출가한 스님들이 무슨 땡전 한 닢 있나요? 전부 시주들의 돈이지요. 시주들이 이렇게, 이렇게 해줘야 포교당 하나라도 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世尊甚히 希有(세존심희유)하사, 세존께서 매우 희유하사

難可得値遇(난가득치우)라.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분이다.

具無量功德(구무량공덕)하사, 한량없는 공덕을 갖추사

能救護一切(능구호일체)라. 一切중생들을 능히 구호하신다.

天人之大師(천인지대사)로, 천인의 큰 스승으로서, 하늘과 사람의 큰 스승으로서 哀愍於世間(애민어세간)하시니, 세상을 哀愍히 여기사

十方諸衆生(시방제중생)이, 十方 모든 중생이

普皆蒙饒益(보개몽요익)이라. 모두모두 다 널리 다 이익을 얻는다.

我等所從來(아등소종래)는, 우리가 여기에 좇아온 바는

五百萬億國(오백만억국)이니 捨深禪定樂(사심선정락)은, 깊은 선정의 즐거움을 버린 것은 爲供養佛故(위공양불고)니다. 부처님께 좇아와서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我等先世福(아등선세복)으로, 우리는 과거세의 복으로써 宮殿甚嚴飾(궁전심엄식)이라. 우리가 살고 있는 궁전이 이렇게 좋습니다. 하지만 今以奉世尊(금이봉세존)하노니, 지금 그것을 세존께 바치노니, 唯願哀納受(유원애납수)하소서. 오직 원하옵노니 그것을 좀 어여삐 여기시고 받아주소서. 받아달라고 간청, 간청 하는 겁니다.

爾時諸梵天王(이시제범천왕)이, 그 때에 제범천왕이

偈讚佛已(게찬불이)하고, 부처님을 게송으로 찬탄하고 나서

各作是言(각작시언)하대 唯願世尊(유원세존)은 轉於法輪(전어법륜)

하사, 法輪을 굴리사 度脫衆生(도탈중생)하야 開涅槃道(개열반도)케하소서. 열반의 길을 열어주소서. 時諸梵天王(시제범천왕)이 一心同聲(일심동성)으로 而說偈言(이설게언)하사대 世雄兩足尊(세웅양족존)은, 세상의 영웅이신 兩足尊은 唯願演說法(유원연설법)하사 오직 원하옵노니 법을 연설하사, 以大慈悲力(이대자비력)으로, 대자비의 힘으로써

度苦惱衆生(도고뇌중생)하소서. 苦惱의 衆生을 부디 제도해 주소서.

爾時大通智勝如來(이시대통지승여래)가, 그 때에 뭐라고요?

대통지승여래가 黙然許之(묵연허지)하시니라. 묵묵히 허락 하시니라.

이렇게 됐습니다. 이것이 동방의 범천이 이렇게 법을 청했는데 전부가 이런 식입니다. 그 다음에 동남방의 범천이 법을 청하다 이것은 생략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또 남방의 범천이 법을 청하다 이것도 넘기고요.

그 다음에 상방의 범천이 법을 청하다 역시 말이 조금씩 달라서 그렇지 거의 비슷합니다. 그래서 이 속에는 시방이 다 포함 됩니다.

상방ㆍ하방 다 포함 됩니다. 그러니까 6번에 가서 대통지승불이 법을 설하다 그랬어요.

(3) 동남방의 범천이 법을 청하다

又諸比丘(우제비구)야

東南方五百萬億國土(동남방오백만억국토)에

諸大梵王(제대범왕)이 各自見宮殿(각자견궁전)에

光明照耀(광명조요)하대 昔所未有(석소미유)하고

歡喜踊躍(환희용약)하며 生希有心(생희유심)하야

卽各相詣(즉각상예)하야 共議此事(공의차사)러니

時彼衆中(시피중중)에 有一大梵天王(유일대범천왕)하니

名曰大悲(명왈대비)라 爲諸梵衆(위제범중)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사대

是事何因緣(시사하인연)으로 而現如此相(이현여차상)인가

我等諸宮殿(아등제궁전)光明昔未有(광명석미유)

爲大德天生(위대덕천생)인가 爲佛出世間(위불출세간)인가

未曾見此相(미증견차상)일새 當共一心求(당공일심구)호리라

過千萬億土(과천만억토)하야 尋光共推之(심광공추지)로다

多是佛出世(다시불출세)하야 度脫苦衆生(도탈고중생)이로다

爾時五百萬億諸梵天王(이시오백만억제범천왕)이

與宮殿俱(여궁전구)하사 各以衣襋(각이의극)으로

盛諸天華(성제천화)하고 共詣西北方(공예서북방)하야

推尋是相(추심시상)타가 見大通智勝如來(견대통지승여래)이

處于道場菩提樹下(처우도량보리수하)하사

坐師子座(좌사자좌)하시니 諸天龍王(제천룡왕)과

乾闥婆緊那羅(건달바긴나라)와

摩睺羅伽人非人等(마후라가인비인등)이

恭敬圍繞(공경위요)하며 及見十六王子(급견십육왕자)가

請佛轉法輪(청불전법륜)하고 時諸梵天王(시제범천왕)이

頭面禮佛(두면예불)하사 繞百千帀(요백천잡)하며

卽以天華(즉이천화)로 而散佛上(이산불상)하니

所散之華(소산지화)가 如須彌山(여수미산)이라

竝以供養佛菩提樹(병이공양불보리수)하며

華供養已(화공양이)에 各以宮殿(각이궁전)으로

奉上彼佛(봉상피불)하고 而作是言(이작시언)하사대

唯見哀愍(유견애민)하사 饒益我等(요익아등)하시며

所獻宮殿(소헌궁전)을 願垂納受(원수납수)하소서

爾時諸梵天王(이시제범천왕)이 卽於佛前(즉어불전)에

一心同聲(일심동성)으로 以偈頌曰(이게송왈)

聖主天中天(성주천중천)이 迦陵頻伽聲(가릉빈가성)으로

哀愍衆生者(애민중생자)시라 我等今敬禮(아등금경례)이니다

世尊甚希有(세존심희유)하사 久遠乃一現(구원내일현)이로다

一百八十劫(일백팔십겁)을 空過無有佛(공과무유불)호니

三惡道充滿(삼악도충만)하고 諸天衆減少(제천중감소)리니

今佛出於世(금불출어세)하사 爲衆生作眼(위중생작안)하시니

世間所歸趣(세간소귀취)라 救護於一切(구호어일체)삿다

爲衆生之父(위중생지부)하사 哀愍饒益者(애민요익자)시니

我等宿福慶(아등숙복경)으로 今得値世尊(금득치세존)이니다

爾時諸梵天王(이시제범천왕)이 偈讚佛已(게찬불이)하고

各作是言(각작시언)하대 唯願世尊(유원세존)은

哀愍一切(애민일체)하사 轉於法輪(전어법륜)하야

度脫衆生(도탈중생)하소서 時諸梵天王(시제범천왕)이

一心同聲(일심동성)으로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大聖轉法輪(대성전법륜)하사 顯示諸法相(현시제법상)하시며

度苦惱衆生(도고뇌중생)하야 令得大歡喜(영득대환희)하시니

衆生聞此法(중생문차법)하고 得度若生天(득도약생천)하며

諸惡道減少(제악도감소)하고 忍善者增益(인선자증익)이니다

爾時大通智勝如來(이시대통지승여래)가

黙然許之(묵연허지)하시니라

(4) 남방의 범천이 법을 청하다

又諸比丘(우제비구)야 南方五百萬億國土(남방오백만억국토)에

諸大梵王(제대범왕)이 各自見宮殿(각자견궁전)에

光明照耀(광명조요)하대 昔所未有(석소미유)하고

歡喜踊躍(환희용약)하야 生希有心(생희유심)하며

卽各相詣(즉각상예)하야 共議此事(공의차사)하대

以何因緣(이하인연)으로 我等宮殿(아등궁전)에

有此光曜(유차광요)아하더니 而彼衆中(이피중중)에

有一大梵天王(유일대범천왕)하니 名曰妙法(명왈묘법)이라

爲諸梵衆(위제범중)하야 而說偈言(이설게언)하사대

我等諸宮殿(아등제궁전)에 光明甚威耀(광명심위요)하니

此非無因緣(차비무인연)이라 是相宜求之(시상의구지)로다

過於百千劫(과어백천겁)토록 未曾見是相(미증견시상)호니

爲大德天生( 위대덕천생)인가 爲佛出世間(위불출세간)인가

爾時五百萬億諸梵天王(이시오백만억제범천왕)이

與宮殿俱(여궁전구)하야 各以衣裓(각이의극)으로

盛諸天華(성제천화)하고 共詣北方(공예북방)하야

推尋是相(추심시상)타가 見大通智勝如來(견대통지승여래)이

處于道場菩提樹下(처우도량보리수하)하사

坐師子座(좌사자좌)하시니 諸天龍王(제천용왕)과

乾闥婆緊那羅(건달바긴나라)와

摩睺羅伽人非人等(마후라가인비인등)이 恭敬圍繞(공경위요)하며

及見十六王子(급견십육왕자)가 請佛轉法輪(청불전법륜)하고

時諸梵天王(시제범천왕)이 頭面禮佛(두면예불)하고

繞百千帀(요백천잡)하며 卽以天華(즉이천화)으로

而散佛上(이산불상)하니 所散之華(소산지화)가

如須彌山(여수미산)이라

幷以供養佛菩提樹(병이공양불보리수)하고

華供養已(화공양이)에 各以宮殿(각이궁전)으로

奉上彼佛(봉상피불)하고 而作是言(이작시언)하대

唯見哀愍(유견애민)하사 饒益我等(요익아등)하시며

所獻宮殿(소헌궁전)을 願垂納受(원수납수)하소서

爾時諸梵天王(이시제범천왕)이 卽於佛前(즉어불전)에

一心同聲(일심동성)으로 以偈頌曰(이게송왈)

世尊甚難見(세존심난견)이라 破諸煩惱者(파제번뇌자)삿다

過百三十劫(과백삼십겁)하야 今乃得一見(금내득일견)이라

諸飢渴衆生(제기갈중생)에 以法雨充滿(이법우충만)이로다

昔所未曾見(석소미증견) 無量智慧者(무량지혜자)라

如優曇鉢華(여우담발화)를 今日乃値遇(금일내치우)로소니

我等諸宮殿(아등제궁전)이 蒙光故嚴飾(몽광고엄식)이라

世尊大慈愍(세존대자민)하사 唯願垂納受(유원수납수)하소서

爾時諸梵天王(이시제범천왕)이 偈讚佛已(게찬불이)하고

各作是言(각작시언)하대 唯願世尊(유원세존)은

轉於法輪(전어법륜)하사 令一切世間(영일체세간)과

諸天魔梵(제천마범)과 沙門婆羅門(사문바라문)으로

皆獲安隱(개획안은)하사 而得度脫(이득도탈)케하소서

時諸梵天王(시제범천왕)이 一心同聲(일심동성)으로

以偈頌曰(이게송왈)

唯願天人尊(유원천인존)은 轉無上法輪(전무상법륜)하사

擊于大法鼓(격우대법고)하시고 而吹大法螺(이취대법라)하시며

普雨大法雨(보우대법우)하사 度無量衆生(도무량중생)하실새

我等咸歸請(아등함귀청)하노니 當演深遠音(당연심원음)하소서

爾時大通智勝如來(이시대통지승여래)가

黙然許之(묵연허지)하시니라 西南方(서남방)과

乃至下方(내지하방)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니라

 

(5)상방의 범천이 법을 청하다

爾時上方五百萬億國土(이시상방오백만억국토)에

諸大梵王(제대범왕)이 皆悉自覩所止宮殿(개실자도소지궁전)에

光明威耀(광명위요)하대 昔所未有(석소미유)하고

歡喜踊躍(환희용약)하야 生希有心(생희유심)하며

卽各相詣(즉각상예)하야 共議此事(공의차사)하대

以何因緣(이하인연)으로 我等宮殿(아등궁전)에

有斯光明(유사광명)가한대 時彼衆中(시피중중)에

有一大梵天王(유일대범천왕)하니 名曰尸棄(명왈시기)라

爲諸梵衆(위제범중)하야 而說偈言(이설게언)하사대

今以何因緣(금이하인연)으로 等諸宮殿(아등제궁전)에

威德光明曜(위덕광명요)하대 嚴飾未曾有(엄식미증유)어뇨

如是之妙相(여시지묘상)은 昔所未聞見(석소미문견)이로니

爲大德天生( 위대덕천생)인가 爲佛出世間(위불출세간)인가

爾時五百萬億諸梵天王(이시오백만억제범천왕)이

與宮殿俱(여궁전구)하며 各以衣襋(각이의극)으로

盛諸天華(성제천화)하고 共詣下方(공예하방)하야

推尋是相(추심시상)타가 見大通智勝如來(견대통지승여래)가

處于道場菩提樹下(처우도량보리수하)하사

坐師子座(좌사자좌)하시니 諸天龍王(제천용왕)과

乾闥婆緊那羅(건달바긴나라)와

摩睺羅伽人非人等(마후라가인비인등)이

恭敬圍繞(공경위요)하며

及見十六王子請佛轉法輪(급견십육왕자청불전법륜)하고

卽以天華(즉이천화)로 而散佛上(이산불상)하니

所散之華(소산지화)가 如須彌山(여수미산)이라

幷以供養佛菩提樹(병이공양불보리수)하고

華供養已(화공양이)에 各以宮殿(각이궁전)으로

奉上彼佛(봉상피불)하고 而作是言(이작시언)하대

唯見哀愍(유견애민)하사 饒益我等(요익아등)하시며

所獻宮殿(소헌궁전)을 願垂納處(원수납처)하소서

時諸梵天王(시제범천왕)이 卽於佛前(즉어불전)에

一心同聲(일심동성)으로 以偈頌曰(이게송왈)

善哉見諸佛(선재견제불) 救世之聖尊(구세지성존)호니

能於三界獄(능어삼계옥)에 勉出諸衆生(면출제중생)이로다

普智天人尊(보지천인존)이 哀愍群萌類(애민군맹류)하사

能開甘露門(능개감로문)하야 廣度於一切(광도어일체)삿다

於昔無量劫( 어석무량겁)에 空過無有佛(공과무유불)하며

世尊未出時(세존미출시)에 十方常闇瞑(시방상암명)하야

三惡道增長(삼악도증장)하고 阿修羅亦盛(아수라역성)하며

諸天衆轉減(제천중전감)하야 死多墮惡道(사다타악도)하며

不從佛聞法(부종불문법)하고 常行不善事(상행불선사)하며

色力及智慧(색력급지혜)가 斯等皆減少(사등개감소)라

罪業因緣故(죄업인연고)로 失樂及樂想(실락급낙상)하고

住於邪見法(주어사견법)하며 不識善儀則(불식선의칙)하고

不蒙佛所化(불몽불소화)하며 常墮於惡道(상타어악도)러니

佛爲世間眼(불위세간안)하사 久遠時乃出(구원시내출)하야

哀愍諸衆生(애민제중생)일새 故現於世間(고현어세간)하야

超出成正覺(초출성정각)하시니 我等甚欣慶(아등심흔경)하고

及餘一切衆(급여일체중)도 喜歎未曾有(희탄미증유)이니다

我等諸宮殿(아등제궁전)이 蒙光故嚴飾(몽광고엄식)이라

今以奉世尊(금이봉세존)하노니 唯垂哀納受(유수애납수)하소서

願以此功德(원이차공덕)으로 普及於一切(보급어일체)하야

我等與衆生(아등여중생)이 皆共成佛道(개공성불도)하야지이다

爾時五百萬億諸梵天王(이시오백만억제범천왕)이

偈讚佛已(게찬불이)하시고 各白佛言(각백불언)하사대

唯願世尊(유원세존)은 轉於法輪(전어법륜)하사

多所安隱(다소안은)하시며 多所度脫(다소도탈)케하소서

時諸梵天王(시제범천왕)이 而說偈言(이설게언)하사대

世尊轉法輪(세존전법륜)하실새 擊甘露法鼓(격감로법고)하사

度苦惱衆生(도고뇌중생)하야 開示涅槃道(개시열반도)하시니

唯願受我請(유원수아청)하사 以大微妙音(이대미묘음)으로

哀愍而敷演(애민이부연) 無量劫習法(무량겁습법)하소서

6 대통지승불이 법을 설하다

爾時大通智勝如來(이시대통지승여래)가

受十方諸梵天王(수시방제범천왕)과

及十六王子請(급십육왕자청)하시고 卽時(즉시)에

三轉十二行法輪(삼전십이행법륜)하시니

若沙門婆羅門(약사문바라문)과 若天魔梵(약천마범)과

及餘世間(급여세간)의 所不能轉(소불능전)이니

謂是苦(위시고)며 是苦集(시고집)이며 是苦滅(시고멸)이며

是苦滅道(시고멸도)며

及廣說十二因緣法(급광설십이인연법)하시니

無明緣行(무명연행)하고 行緣識(행연식)하며

識緣名色(식연명색)하고 名色緣六入(명색연육입)하며

六入緣觸(육입연촉)하고 觸緣受(촉연수)하며

受緣愛(수연애)하고 愛緣取(애연취)하며 取緣有(취연유)하고

有緣生(유연생)하며

生緣老死憂悲苦惱(생연노사우비고뇌)하나니라

無明滅則行滅(무명멸즉행멸)하고 行滅則識滅(행멸즉식멸)하고

識滅則名色滅(식멸즉명색멸)하고

名色滅則六入滅(명색멸즉육입멸)하고

六入滅則觸滅(육입멸즉촉멸)하고 觸滅則受滅(촉멸즉수멸)하고

受滅則愛滅(수멸즉애멸)하고 愛滅則取滅(애멸즉취멸)하고

取滅則有滅(취멸즉유멸)하고 有滅則生滅(유멸즉생멸)하고

生滅則老死憂悲苦惱滅(생멸즉노사우비고뇌멸)하나니라

佛於天人大衆之中說是法時(불어천인대중지중설시법시)에

六百萬億那由他人(육백만억나유타인)이

以不受一切法故(이불수일체법고)로 而於諸漏(이어제루)에

心得解脫(심득해탈)하야 皆得深妙禪定(개득심묘선정)과

三明六通(삼명육통)하고 具八解脫(구팔해탈)하며

第二第三(제이제삼)과 第四說法時(제사설법시)에

千萬億恒河沙那由他等衆生(천만억항하사나유타등중생)이

亦以不受一切法故(역이불수일체법고)로 而於諸漏(이어제루)에

心得解脫(심득해탈)하며 從是已後(종시이후)로

諸聲聞衆(제성문중)도 無量無邊不可稱數(무량무변불가칭수)러라

대통지승불비로소 법을 설하는 이야기입니다. 법을 설하는데 석가모니부처님이 그동안 설해온 그 법의 순서. 그것을 이런데서 그냥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요. 지금 아무리 뭐라고, 뭐라고 불교사를 연구해가지고이야기를 해도 여기 법화경에서 밝혀놓은 그 법의 설하는 순서. 또 그 근기에 맞추어서 어떤 법을 설했다 라고 하는 것 보다는 우선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아무리 어떤 뛰어난 학자가 설사 연구한다 하더라도요. 그런 뜻에서 이것은 아주, 아주 틀림없는 당시 교과로써의 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爾時大通智勝如來(이시대통지승여래)가, 그 때에 대통지승여래가

受十方諸梵天王(수시방제범천왕)과 及十六王子請(급십육왕자청)

하시고, 시방의 모든 범천왕과 그리고 또 16왕자의 청을 받아들이고,

卽時(즉시)에 三轉十二行法輪(삼전십이행법륜)하시니,

세 번 三轉十二行法輪을 굴리시니, 하는 것은 이것은 苦集滅道(고집멸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若沙門과 婆羅門(약사문바라문)과 그리고 若天ㆍ魔ㆍ梵(약천마범)과 그리고 及餘世間(급여세간)의, 그 나머지 모든 世間이 所不能轉(소불능전)이라. 그 동안 아무도 설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뭐라고요?

謂是苦(위시고)며, 이를테면 是苦集(시고집)이며 是苦滅(시고멸)이며, 苦 = 괴로운 것이다. 이렇게, 이렇게 뭐가 모여서 괴로움이 생겼다. 고의 원인이지요. 그 다음에 는 소멸해야 된다. ←苦滅.

그 다음에 고를 멸하는데 어떤 방법이 있겠나? 八正道, 苦滅道(고멸도).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네 번이지요?

그리고 또 四聖諦(사성제)지요? 四聖諦를 이런 식으로 설하는데, 三轉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 삼전이 아니고, 말하자면 고가 있다.

그럼 우리가 고를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고를 끊어야 될 것이 아닌가?

그래 勸證轉(권증전) 示相轉(시상전)이라고 해서 아주 어려운 교리적인 말이 나오는데, 고를 드러내서 이야기를 합니다. 다 이야기해요.

그것은 시상전이라고 해서 고의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고를 끊어야 될 것 아니냐? 그냥 두면 안 되지 않느냐? 그러니까 병이 이렇다. 그럼 병을 수술해야 된다. 그 수술하고 나면 이렇다.

아주 건강하게 잘 산다. 이런 식으로 3차원에 걸쳐서 四諦를 설명합니다. 그래서 三轉十二行입니다. 3ㆍ4, 12가 되니까요. 苦ㆍ集ㆍ滅ㆍ道.

그 四聖諦를 3번에 걸쳐서 3차원으로 설명하니까 三轉十二行法輪(삼전십이행법륜)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 사전에 자세히 나옵니다.

及廣說十二因緣法(급광설십이인연법). 그리고 十二因緣法을 널리 설하시니, 無明緣行(무명연행)하고 行緣識(행연식)하며 識緣名色(식연명색)하고, 이것은 무명이 행을 반연하고, 행을 이끌어온다. 그 다음에

名色緣六入(명색연육입)하며 六入緣觸(육입연촉)하고

觸緣受(촉연수)하며 受緣愛(수연애)하고 愛緣取(애연취)하며

取緣有(취연유)하고 有緣生(유연생)하며,

무명→행→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 이렇게 나가잖아 이렇게 나가잖아요. 전부 無明이 있어서 行을 반연하고, 행은 識을 반연하고, 식이 名色을 반연하고, 명색은 六入을 반연하고, 육입은 觸을 반연하고, 촉은 受를 수는 愛를 애는 取를 취는 有를 유는 生을 生緣老死憂悲苦惱(생연노사우비고뇌)하나니라. 생은 노사우비고뇌를 반연하나니라.

그럼 無明滅則行滅(무명멸즉행멸)하고, 이것이 無常偈에 있는 내용 그대로 이고, 또 원각경에도 이와 같은 똑 같은 내용이 보안장에 나오지 않습니까? 無明滅則行滅하고,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고 行滅則識滅(행멸즉식멸)하고, 識滅則名色滅(식멸즉명색멸)하고,

名色滅則六入滅(명색멸즉육입멸)하고,

六入이 滅한 則은觸이 滅(육입멸즉촉멸)하고,

觸이 滅한 則 受가 滅(촉멸즉수멸)하고,

受가 滅한 則은 愛가 滅(수멸즉애멸)하고,

愛가 滅한 則은 取가 滅(애멸즉취멸)하고,

取가 滅한 則은 有가 滅(취멸즉유멸)하고,

有가 滅하면 生이 滅(유멸생멸)하고,

生이 滅하면 뭐라고요? 則老死憂悲苦惱를 滅(생멸즉노사우비고뇌멸)하나니라.

佛於天人大衆之中說是法時(불어천인대중지중설시법시)에,

부처님이 天人大衆에 이 법을 설할 때에 六百萬億那由他人(육백만억나유타인)이 以不受一切法故(이불수일체법고)로, 일체 존재를 받아들이지 아니한 까닭으로 而於諸漏(이어제루)에, 모든 번뇌에서 心得解脫(심득해탈)이라. 그러니까 一切法.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간에 또, 나 외에 어떻게 돌아가든지 간에 그것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 사실은 해탈입니다. 괴롭지를 않은 겁니다. 최소한도 나는 괴롭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것이 또 마음에 드는 사람들은, -이것이 정말 몹쓸 소승법인데요. 이것을 또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들은 그만 세상사 내몰라라 하고 사는 겁니다.

그것은 附佛法外道(부불법외도)라고 하는 것이지요. 불법에 붙어있는 외도다. 그래서 心得解脫. 자기는 편하다 이겁니다.

皆得深妙禪定(개득심묘선정)과, 깊고 미묘한 선정과 三明六通(삼명육통)얻고 또, 具八解脫(구팔해탈)하며, 八解脫을 갖추고 第二第三(제이제삼)과 第四說法時(제사설법시)에, 제2. 제3. 제4 설법할 때도,

千萬億恒河沙那由他等衆生(천만억항하사나유타등중생)이 또한 일체법을 亦以不受一切法故(역이불수일체법고)로, 받아들이지 아니한 까닭으로, 而於諸漏(이어제루)에, 모든 번뇌가 다 하고, 諸漏에, 모든 번뇌에 대해서心得解脫(심득해탈)하며, 마음에 해탈을 얻었고 從是已後(종시이후)로, 이로부터 그 뒤로는 諸聲聞衆(제성문중)도, 모든 성문대중들도

無量無邊해서 不可稱數(무량무변불가칭수)러라. 不可稱數가 되었다.

이것이 석가모니부처님 당시의 그 법이 이렇다 라고 보면 그대로 틀림없습니다. 이것이 무슨 모델이 뭐겠습니까? 아무리 대통지승불 과거 이야기를 해도, 그 때 뭐 실지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상징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이야기를 하면 무조건 그 모델은 석가모니입니다.

석가모니는 처음에 苦集滅道, 四聖諦를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12인연을 이야기했다. 그 다음에 보살에 와서는 6바라밀을 이야기했다. 그것 딱 순서입니다. 그 다음에 십육왕자가 출가하여 사미가 되다 그랬어요.

이것 아주 중요한 내용이어서 생략 할 수가 없네요.

7 십육왕자가 출가하여 사미가 되다

爾時十六王子(이시십육왕자)가

皆以童子出家(개이동자출가)하야 而爲沙彌(이위사미)하대

諸根通利(제근통리)하고 智慧明了(지혜명료)하며

已曾供養百千萬億諸佛(이증공양백천만억제불)하사

淨修梵行(정수범행)하며

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구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려하야

俱白佛言(구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하

是諸無量千萬億大德聲聞(시제무량천만억대덕성문)이

皆已成就(개이성취)호니 世尊亦當爲我等(세존역당위아등)하사

說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설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하소서

我等聞已(아등문이)에 皆共修學(개공수학)호리다

世尊(세존)하 我等志願(아등지원)인 如來知見(여래지견)과

深心所念(심심소념)을 佛自證知(불자증지)리다

爾時轉輪聖王(이시전륜성왕)의 所將衆中(소장중중)에

八萬億人(팔만억인)이 見十六王子出家(견십육왕자출가)하고

亦求出家(역구출가)어늘 王卽聽許(왕즉청허)하니라

爾時彼佛(이시피불)이 受沙彌請(수사미청)하사

過二萬劫已(과이만겁이)하고 乃於四衆之中(내어사중지중)에

說是大乘經(설시대승경)하시니 名妙法蓮華(명묘법연화)라

敎菩薩法(교보살법)이며 佛所護念(불소호념)이러라

說是經已(설시경이)시어늘

十六沙彌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십육사미위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로 皆共受持(개공수지)하야 諷誦通利(풍송통리)러니라

說是經時(설시경시)에 十六菩薩沙彌(십육보살사미)는

皆悉信受(개실신수)하고 聲聞衆中(성문중중)에도

亦有信解(역유신해)하나 其餘衆生(기여중생)의

千萬億種(천만억종)은 皆生疑惑(개생의혹)하니라

佛說是經(불설시경)을 於八千劫(어팔천겁)에

未曾休廢(미증휴폐)하시고 說此經已(설차경이)에

卽入靜室(즉입정실)하야 住於禪定(주어선정)을

八萬四千劫(팔만사천겁)일러니라

爾時十六王子(이시십육왕자)가, 그 때에 十六王子가

皆以童子出家(개이동자출가)하야, 다 동자로서 출가해서

而爲沙彌(이위사미)하대, 사미가 되었다. 열여섯 왕자가 있었는데 전부 사미로 출가한 겁니다. 어린아이들이니까요.

諸根通利(제근통리)해, 아주 영리해요. 智慧가 明了(지혜명료)해.

그리고 已曾供養百千萬億諸佛(이증공양백천만억제불)하사, 그리고 과거에 百千萬億 부처님께 공양했어요. 淨修梵行(정수범행)이야. 그래서 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구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했다. 그래서

俱白佛言(구백불언)하사대, 함께 부처님께 말했다.

世尊(세존)하, 세존이시여, 是諸無量千萬億大德聲聞(시제무량천만억대덕성문)이, 이 모든 100천만억 대덕성문이 皆已成就(개이성취).

다 이미 성취했으니 世尊은 亦當爲我等(세존역당위아등)하사, 세존께서는 또한 마땅히 우리들을 위하사 說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설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을 설하소서. 我等聞已(아등문이)에, 우리들이 듣고 나서 皆共修學(개공수학)호리다. 다 같이 공부 잘 하겠습니다.

世尊(세존)하, 세존이시여 我等의 志願(아등지원)인, 원 인

如來知見(여래지견)과 深心所念(심심소념). 깊은 마음에서 생각하는 바를 佛自證知(불자증지)리다. 부처님이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爾時에 轉輪聖王(이시전륜성왕)의 所將衆中(소장중중)에. 거느린 대중 가운데에 八萬億人(팔만억인)이 見十六王子出家(견십육왕자출가)하고, 16왕자가 출가하는 것을 보고 亦求出家(역구출가)라.

또한 따라서 출가를 구하는 겁니다. 우리도 출가시켜 주십시오.

그러니까 王卽聽許(왕즉청허)라. 왕이 곧 허락을 했어요.

 

爾時彼佛(이시피불)이 受沙彌請(수사미청)하사, 그 때에 저 부처님이 사미들의 청을 받아서 過二萬劫已(과이만겁이)하고, 2만겁이 지날 때 까지 乃於四衆之中(내어사중지중)에, 사부대중 가운데서

說是大乘經(설시대승경)하시니, 대승경전을 설하시니

名妙法蓮華(명묘법연화)라. 결국은 妙法蓮華라. 그것은 敎菩薩法(교보살법)이며 佛所護念(불소호념)이라. 說是經已(설시경이)시어늘,

이 경을 설하시고 나서 十六沙彌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십육사미위아뇩다라삼먁삼보리고)로, 16왕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한 까닭에

皆共受持(개공수지)하야, 전부 다 묘법연화경을 받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諷誦通利(풍송통리)하니라. 외우고 읊고 그리고 통달했다.

說是經時(설시경시)에, 이 경을 설할 때에

十六菩薩沙彌(십육보살사미)는, 16보살사미는, 여기는 벌써 보살이라고 나오지요? 이 한편 속에서도 “16동자” 라고 했다가 “16사미” 라고 했다가 그 다음에 “16보살사미” 벌써 이렇게 됐어요. 왜냐? 법화경을 공부했으니까요. 법화경을 공부했으니까 이제는 “보살사미”입니다. 사미는 사미인데 보살사미입니다. 보살비구”라고 해도 됩니다. 보살비구ㆍ보살사미ㆍ보살비구니. 보살만 보살이 아니라,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잘 아시겠지만 정말 보살행을 염두에 두고 사는 사람을 전부 보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十六菩薩沙彌는 皆悉信受(개실신수)하야, 다 모두 믿고 받아 지니고

聲聞衆中(성문중중)에도, 성문 가운데서도 亦有信解(역유신해)라.

또한 믿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其餘衆生(기여중생)의, 그 나머지 중생의千萬億種(천만억종)은 皆生疑惑(개생의혹)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의혹만 내더라 이런 말입니다. 못 알아들으니까요. 그러니까

千萬億種이 법화경을 못 알아듣는 것이지요. 저 앞에서 5000명이 자리를 박차고 떠나갔다. 五千退席章(오천퇴석장)이 있었지요? 법화경은 그런 겁니다. 글이 어려워서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그대로 부처라고 하니까 이것이 참말로 환장할 노릇인 겁니다. 그 오랫동안 아주 평범한 불교. 아주 저급한 불교만 공부한 사람에게는요.

아~~ 참회해야 되고ㆍ죄업 녹여야 되고ㆍ오랫동안 닦아야 되고ㆍ복 많이 지어야 되고ㆍ정진해야 되고ㆍ이렇게 해야만 된다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가르친 불교공부 하다가 이런 법화경불교 이렇게 보고는 이것이 캄캄한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도 보면 千萬億種은 皆生疑惑이라. 전부 의혹이 됐다. 어째서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냐? 내가 이렇게 못 나고ㆍ무식하고ㆍ머리도 둔하고ㆍ몸에 병도 많고ㆍ나이도 많고ㆍ머리가 둔해 가지고 공부도 도대체 안 되고 하는 이런 존재를 왜? 어째서 부처님이라고 하는가? 참 궁금하다 이 겁니다.

佛說是經(불설시경)을, 부처님이 이 경 설하기를

於八千劫(어팔천겁)에, 8000겁 동안하면서

未曾休廢(미증휴폐)야. 한 번도 일찍이 쉬지 않았다. 저도 힘닿는데 까지 계속 할 겁니다 법화경. 說此經已(설차경이)에, 이 경을 설하고 나서

卽入靜室(즉입정실)하야, 곧 고요한 방에 들어가서 住於禪定(주어선정)을 禪定에 머물기를 八萬四千劫(팔만사천겁)을 하더라.

8만4천겁을 선정에 들었으니까 우리도 그만 선정에 들까요?

오늘 공부는 이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