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종교와 나

불기2565년 부처님 오신날20210519

應觀 2021. 5. 20. 23:45

불기 2565년 부처님께서 오신 날이다.

집근처 주택가에 위치한 조계사 소속 사찰 감로사에 들러

부처님께 인사 드렸다.

주지스님이 비구니 스님이신데 둔촌동과 성내동 일대 그 넓은지역을 

연등을 달아 부처님 오신날을 널리 홍포하기 위해 수고를 하신 스님을 

찾아뵙고 인사 드렸다.

 

어머님께서 늘 생전에 다니시던 조계사에 갔는데 발 디딜틈 없이 신도들로

굉장히 붐비었다.
먼 발치에서나마 삼배 드리고 어머님 모신 정릉 여래사로 갔다.

 

여래사는 주지스님이 입적하시고 아들이 물려 받아 운영을 하고 있는데

승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싶다

신도도 줄고 예년보다 연등 숫자도 많이줄었다.

그런데다 공양준비도 전혀되어 있지 않는 등 제반 준비가 미흡하다

부처님께 예불드리고 어머님을 찾아 절을 올렸다

어머님과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어머님의 극락왕생을 부처님전에 빌고 또 빈다

조계사 모습인데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다
스님이 생전에 크게 불사를 해 상당한 규모로 키웠는데 점점 솨락해 가는 모습을 보며 무상함을 실감한다
어머님 모신 정릉 여래사인데 큰스님이 입적하시고 나서 그런지 연등 숫자도 대폭 감소 했을 뿐 아니라 제반 준비도 상당히 미흡하다.

석가족 출신 왕자(석가모니)가 브라만교에 맞서 창시했어요

 

음력으로 4월 8일인 오늘은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올해는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대규모 연등 행렬은 하지 않고 사찰마다 소규모 행사를 연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 시대에 불교가 중국에서 전해졌어요. 문화체육관광부의 2018년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교인 가운데 불교 신자는 761만9332명으로 개신교(967만5761명) 다음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석가모니가 탄생한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선 인구의 80%가 힌두교를 믿고, 불교 신자는 1%가 채 안 된다고 해요. 최근 인도에선 '쿰브 멜라(힌디어로 '주전자 축제')'라는 힌두교 축제에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파가 몰려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하기도 했어요. 인도에서 불교는 왜 생겨났으며 지금은 왜 힘을 못 쓰고 있는 걸까요?

 

'계급 강조' 브라만교에 대항하는 사상가 출현

 

인도의 역사는 기원전 2500~1500년 사이 인더스강 주변에 발달한 인더스 문명과 함께 시작됐어요. 이후 투르키스탄 등지에 머물던 유목민 아리안족이 쳐들어와 점차 세력을 확대했어요. 이들은 농업을 기반으로 소도시를 형성했고, 기원전 7세기엔 군주가 이끄는 여러 도시 국가로 커 나갔어요. 아리안족들은 토착민들을 하층민으로 종속시키고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금도 인도 사회에 남아있는 신분 제도인 카스트 제도를 만들었어요.

 

이들은 또 태양·바람 등 여러 자연신을 숭배하는 브라만교를 믿었어요. 브라만교에 토착 민간 신앙이 더해져 지금의 힌두교가 나온 것입니다. 기원전 6세기, 각종 제사 의식과 계급을 강조하는 브라만교에 반대하는 사상가들이 출현하기 시작했어요. 이 가운데 일부는 교단을 형성하고 제자를 길러낼 만큼 성장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석가모니입니다.

 

생로병사 고통 원인 찾으려 29세에 출가

 

석가모니는 현재 네팔 남부와 인도 국경 부근 히말라야 기슭에서 세력을 떨치던 석가족(族)의 왕자로 태어났어요. 원래 '모니'는 '고요히 명상에 잠긴 성자'라는 뜻의 존칭으로, 석가모니란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의미예요. 그의 실제 성은 고타마, 이름은 싯다르타였어요. 싯다르타는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했고 야소다라라는 여인과 결혼해 자식도 낳았어요. 하지만 성 밖을 나갔다가 생로병사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생이 괴로움과 고통의 연속이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는 이런 괴로움과 고통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하다 29세에 출가를 결심했어요. 화려한 옷을 버리고 누더기를 걸친 뒤 칼로 머리카락도 싹둑 잘라버렸죠.

 

그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여러 스승에게 고행과 명상 수행을 배웠어요. 극심한 고행으로 거의 목숨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지만 진리를 깨닫지 못했어요. 그러던 중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명상을 했는데, 여기서 그는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됐어요.

 

석가모니는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줬어요. 그가 함께 수행했던 5명에게 가장 먼저 전한 가르침은 "인간이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찾으려면 쾌락과 고행이라는 양극단을 떠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추구하는 중도(中道)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이후 석가모니는 45년간 수많은 이에게 가르침을 전했고 8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글로 남기지 않고 제자들에게 말로 전했는데, 이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우리가 아는 불교 경전이 됐어요.

 

10세기 이슬람 세력이 침략했어요

 

석가모니 이후로도 불교는 인도에서 도시와 상공업의 발달을 배경으로 크게 성장했어요. 권력자들이 불교의 최대 후원자가 되기도 했죠. 인도 불교의 정점기는 7세기 하르샤바르다나왕 재위 시대였다고 해요. 당시 중국 현장 스님이 인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한 뒤 쓴 '대당서역기'를 보면 인도 전역에 불교 사원이 1000개가 넘고 수행자가 5만명에 이르렀다고 해요.

 

이렇게 위세를 떨치던 불교는 12~13세기 초 인도 땅에서 거의 소멸해버렸습니다. 그 원인에 대해선 학자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해요. 우선 불교 내부 요인이에요. 불교는 기존 브라만교와 달리 모든 사람이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평등사상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불교 교리 자체가 철학적이고 심오해 일반 민중이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원래 초기 승려들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수행을 하는데, 추후 권력자의 지원을 받아 큰 사원이 지어지고 승려들이 이곳에 집단 거주하게 되면서 일반 민중과 단절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특히 불교가 처음에 브라만교에 대항해 생겨났는데, 차츰 브라만교에서 발전한 힌두교와 여러 면에서 다를 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어요. 예를 들어 초기 불교가 브라만교와 크게 차별화된 점은 각종 의례 행위를 거부한 것인데, 나중에 불교에서도 온갖 의식이 중시됐지요.

 

10세기 이슬람 세력이 인도를 침략해 불교 사원을 파괴하고 승려들을 박해한 것도 한 원인으로 꼽혀요. 이슬람 교리에서는 사원과 불상 모두 우상 숭배이기 때문에 없앤 것입니다. 불교 승려들은 살아남기 위해 네팔·티베트 등지로 피란했고, 결국 인도에서 불교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됐다고 해요.

 

[암베드카르의 신불교 운동]

 

인도에서 불교의 명맥이 거의 끊긴 지 700년이 지난 1950년대 다시 '신(新)불교 부흥운동'이 펼쳐졌어요. 빔 라오 암베드카르(1891~1956)<아래 사진>가 이끈 것이죠. 암베드카르는 카스트 제도 가운데 가장 낮은 불가촉천민이지만 나중에 장관직에까지 오른 인물이에요. 그는 미국과 영국에서 석·박사 공부를 하고 변호사가 된 후 인도로 돌아와 불가촉천민 인권 운동을 펼쳤어요. 그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불교 교리에 따르면 신분 차별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죠. 이에 1956년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하는 행사를 주도했고, 그를 따라 수십만 명이 불교로 개종했다고 해요.

 

감수=김경래·동국대 불교대학 교수 기고자 : 서민영 함민고 역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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