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여행/여행정보

박일선의 동인도 여행기(6) - 동북 소수민족 지역 (N. E. States)

應觀 2017. 9. 10. 21:02

박일선의 동인도 여행기(6) - 동북 소수민족 지역 (N. E. States)  

(elsonpark@gmail.com)(http://cafe.daum.net/elsonpark/) 
Copy of Map 1.jpg

2005년 8월 25일, 목요일, Dibrugath 행 밤기차

 

(오늘의 경비 US $3: 식사 30, 30, 30, 커피 5, 케이크 25, 신문 3, 팁 10, 환율 US $1 = 44 rupee)

 

어제 밤차 옆자리에는 20대 말로 보이는 한국청년이 탔다. 첫 배낭여행인데 40일 예정으로 시작했고 이제 1주일 남았단다. 오래 전부터 배낭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한다고 한다. 직장이 있는 청년 같았는데 물어보지는 않았다. 여행을 하면서 한국 대학생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들이 매우 부러웠다고 한다. Darjeeling에 가는 길이라며 오늘 아침 6시 반에 New Jalpalguri 기차역에서 내렸다.

 

이번 탄 기차 내부는 시장 같다. 복도는 상인들로 꽉 차있다. 시장과 다른 점은 상인은 물건을 가지고 다니며 팔고 손님은 앉아 있다가 사는 것뿐이다. 상인들이 너무 많아서 한번 세어보니 12명이 있었다. 비싼 기차 칸인 에어컨이 되어있는 기차 칸만 다니는 것 같다. 같은 사람들이 잠시 후에 계속 다시 나타난다. 복도가 상인들로 막혀서 서로 피해가느라고 야단들이다. 파는 물건도 다양하다. 음식 외에 장난감, 시계, CD와 CD 플레이어, 카메라, 배터리, 수건, 침대커버, 우비 등 없는 것이 없다. 구두닦이, 좌석 밑바닥을 청소하고 돈을 요구하는 애들, 노래꾼, 종을 치며 돈을 구걸하는 여자 등, 정말 다양했다. 다른 곳 기차는 안 그랬는데 이곳은 왜 이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불평하는 승객은 아무도 없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들이다. 인도는 프라이버시가 없는 나라다. 북적거리며 함께 사는 나라다. 어느 책에서 정치판에 뛰어들어서 성공을 한 사람의 부부가 한방에 10명이 사는 집에서 방이 둘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부인이 외로움으로 병이 나서 다시 옛날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내 옆에 앉은 승객은 지나다니는 상인들을 모두 불러서 물건을 보는데 하나도 사지는 않는다. 지금 옆 좌석에는 노래꾼이 노래를 하고 있어서 복도가 막혀서 상인들이 못 지나다니고 있다.

 

기차에 식사를 주문하러 다니는 웨이터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두 번씩이나 커피 물을 얻어서 커피를 타먹었다. 케이크도 사서 커피와 같이 먹었다. 좀 조용하기만 하면 좋겠는데 보통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 귀마개를 해도 소용없다.

 

오후 5시 40분 인도 “Northeast States"의 중심 도시인 Guwahati에 도착했다. 이 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렸다. 30분을 쉰 다음에 다시 떠났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자 V.S. Naipaul의 “India: A Million Mutinies Now“를 두 번째로 읽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을 것이다. 어쩌면 많이 울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인도의 과거와 현재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인도에 관해서 좋게 쓰려고 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책 제목대로 극도로 혼란한 인도 사회를 잘 그렸다. V.S. Naipaul은 남미에 있는 Guyana에서 인도 이민 가정에 태어나서 영국에서 교육을 받은 후에 줄 곳 영국에 산 사람인데 영국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은 사람이다.

 

인도의 역사는 한국이나 중국과는 달리 단일 민족의 역사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인도를 중국과 같은 단일 민족의 나라로 생각한다. 중국은 한족이 사는 나라지만 인도에는 인도 족은 없다. 인도는 아마 유럽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지명에 불과하다. 인도가 지난 수천 년 동안 한 나라였던 때는 지금의 인도 외에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의 인도는 과거의 소련, 유고슬라비아, 신성 로마제국, 지금의 유럽연합과 비슷하다. 과거에 Maruya, Gupta, Mughal 등의 인도 제국들이 있었지만 한 번도 인도 전역을 과거의 중국과 한국이 했듯이 한 나라로 통치된 적은 없었다. 인도는 영국이 처음으로 한 나라로서 통치를 시작했다. 영국은 인도대륙에 (Indian subcontinent) 산재해 있는 종교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민족도 다른 수많은 나라들을 통치의 편의를 위해서 한 나라로 만들어서 거의 3백년을 통치했다. 영국은 인도를 만들었고 Gandhi도 만들었다. 만일 인도를 영국이 아니고 스페인, 중국, 일본, 러시아가 통치했더라면 Gandhi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Gentleman"의 나라인 영국이 통치했기 때문에 Gandhi가 생겨날 수 있었다. 인도는 Yugoslavia가 Tito 사후에 갈라졌듯이 멀지 않은 장래에 어떤 계기가 생겨서 여러 나라로 갈라져서 동남아 비슷하게 될 가능성이 많은 나라다.

 

인도를 중국과 많이 비교하는데 인도는 중국과는 매우 다른 나라다. 중국은 약할 때는 여러 나라로 갈라지고 강할 때는 한 나라로 통일되어 온 나라다. 중국에도 인도와 같이 소수민족이 많이 있지만 중국 인구의 90% 이상이 한족이다. 인도와는 달리 종교 문제도 없고 언어 문제도 없다. 인도가 한 나라가 되기에는 너무나 장애가 많은 나라다. 지금 유럽연합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나. 미국도 남북전쟁을 겪고 나서 200년이 지나서야 명실 공히 한나라가 되었다. 남미는 인도보다 훨씬 종교, 인종, 문화, 언어에서 동일성이 있는 데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미국 같이 한 나라가 못 되었다. 남미의 George Washington이라 불리는 Simon Bolivar가 남미 합중국 꿈을 이룩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현재의 10여개 국가로 나뉘었다. 인도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옛 영국의 권력 조직이었던 군대와 경찰뿐이다. 그러나 오래 지탱을 못할 것이다.

 

Guwahati에서 사람이 많이 내려서 기차에 빈자리가 많이 생겼다. 무장 경찰 8명이 우리 칸에 탔다. 불안한 이 지역의 치안 때문일 것이다. 게릴라들이 많이 준동하는 지역이다. Northeast States는 인도에서 소수민족이 제일 많이 사는 곳이고 자치권을 요구하는 게릴라 단체들이 무장투쟁을 하고 있다. 그래서 테러 사건이 자주 생기는 곳이다. 인도는 평화로운 곳이 별로 없다. 빨리 9월 말이 되어서 여행을 끝내고 귀국하고 싶다. 중국, 일본, 중미, 남미 여행할 때는 여행이 끝나 가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인도는 그렇지 않다. 조금만 더 참자.

 

 

2005년 8월 26일, 금요일, New Jalpaigari 행 밤기차

 

(오늘의 경비 US $7: 식사 15, 15, 케이크 2개 46, 홍차 3, 3, 식수 20, 콜라 20, 신문 3, 기차표 교환 수수료 169, 환율 US $1 = 44 rupee)

 

아침에 조그만 사건이 일어났다. 오늘 새벽에 내 옆자리에서 자던 군인들이 너무 떠들어서 잠이 깨어서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근처에 있는 조용한 빈 침대로 가서 더 잤다. 사람들 소리에 잠을 깨어보니 아침 6시 반경이다. 조금 있다가 군인 한 사람이 나에게 와서 문제가 생겼다고 따라오란다. 따라가 보니 내가 원래 자던 침대 밑에 놓아두었던 내 배낭이 열려져있다. 순간적으로 “아, 도둑맞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군인이 자기네들이 열었단다. 큰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차장, 경찰, 승객들이 몰려와서 쳐다본다. 그리고 없어진 것이 없나 체크하란다.

 

군인 말이 아침에 보니 내가 없어져서 차장에게 물었더니 내가 내린 것 같다고 했단다. 내가 Dibrugarh까지 간다는 기록을 차장이 가지고 있는데 배낭도 놓고 내가 내렸다니,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내가 혹시 밤중에 침대를 옮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왜 안 했는지 모르겠다. 엉터리 차장이다. 그리고 내 배낭을 철도경찰에게 넘기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떻게 해서 다른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는 나를 발견했는지 궁금했다. 우선 배낭을 체크하니 없어진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CD 가방에 넣어둔 USB 메모리와 현금과 일기장이었는데 모두 다 그래도 있었다. 배낭을 철도경찰에게 넘기려했다면 배낭은 왜 열어서 샅샅이 뒤졌는지 알 수 없다. 종이에 없어진 것이 없다는 내용을 쓰고 서명을 하라고 해서 했다. 군인이 영어를 유창히 한다. 날더러 내가 침대를 옮겼을 때 짐도 옮겼어야 했다고 한다. 군인 왈 “In India there are very few honest people. That's the problem." 하며 짐 조심을 하란다. 자고 있는 동안에 배낭을 어느 역에서 철도경찰에게 넘겼더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다.

 

Dibrugarh에 도착하기 전에 차장과 약 20분 간 대화를 나누었다. 인상이 좋은 40대 남자였다. 영어가 별로 시원치가 않아서 대화가 좀 힘들었다. 인도에는 일제와 독일제 물건이 판을 친단다. 영국제 물건은 별로 안 보인단다. LG 세탁기를 쓰고 있다면서 LG, Samsung, Hyundai는 잘 아는데 그 회사들이 한국 회사인 것은 모르고 있었다. 아마 일본 회사 정도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드디어 Dibrugarh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한 시간 동안 줄을 서서 오늘 밤 10시 반에 떠나는 기차표를 오후 4시에 떠나는 기차표로 바꾸었다. 매표원이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고 친절히 도와준다. 이곳 사람들은 친절하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이곳은 인도의 동쪽 끝 미얀마 국경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인도 중심부에서는 멀리 떨어진 곳이다. 동양인 계통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기차표를 바꾸는 수수료가 169 rupee 들었다. New Jalpaigari까지는 Waiting List 기차표밖에 없다고 해서 Guwahati까지 가는 “Confirmed" 기차표를 샀다. 내일 아침 6시 반에 Guwahati에 도착해서 차장에게 부탁해서 New Jalpaigari까지는 앉아서 가는 좌석을 얻어서 가면 된다. New Jalpaigari에는 오후 5시경 도착이니 숙소를 찾는데 충분히 시간이 있다. 운이 좋으면 New Jalpaigari에서 하루 밤을 묵지 않고 내가 진짜 가고자 하는 Darjeeling까지 갈수 있을지도 모른다.

 

Dibrugarh 날씨는 흐렸다. 곧 비가 올 태세다. 오면서 기차 창밖으로 논과 차밭이 많이 보였다. 인도의 주요 차 산지인 모양이다. 습기가 많아서 모든 것이 척척하다. 옷, 배낭 안의 물건, 책 등 모두 척척하다. 이곳은 8월도 우기인 모양이다. 9월이 되면 좀 달라질까? 짐은 기차역 안에 있는 짐 보관소에 맡기고 Upper Class Waiting Room에 혼자 앉아있다. 비싼 기차표를 가진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대합실이다. 제법 큰 방에 큰 테이블이 하나있고 의자가 17개 정도 있다. 제법 깨끗한 화장실과 샤워장이 붙어있다. 짐을 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샤워를 할 텐데 그렇지 못 하니 못 한다. 혼자 여행하면 이럴 때 불편하다.

 

홍차를 파는 매점에서 뜨거운 물을 얻었다. 물 값으로 5 rupee를 냈더니 안 받는다. 이곳 사람들은 가난하게 보이는 것은 인도의 다른 곳이나 마찬가지인데 매우 친절하고 순박해 보인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니 내 마음도 흐뭇해진다. 동시에 Kolkata에서 만났던 못된 인도 남자 생각이 났다.

 

인터넷 카페에서 만났던 남자였다. 선풍기를 돌아가게 만들어서 나와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내 옆자리에 앉더니 돌아가는 선풍기를 자기에게만 바람이 오도록 고정 시켜버린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 내가 다시 돌아가게 만들어 놓으니 나를 째려본다. 내가 “I want some air, too." 했더니 대꾸도 안한다. 화가 좀 나서 ”You are so rude." 해도 대꾸가 없다. 조금 있다가 발로 선풍기 밑을 툭 차서 자기 쪽으로 바람이 많이 오게 만든다. 나도 가만있지 않고 원래 위치로 돌려놓았더니 “What the hell!" 하고 노려본다. 보통 못된 놈이 아니다. 내가 인터넷을 끝내고 일어나니 1초도 기다리지 않고 자기 쪽으로 선풍기를 고정시켜 놓는다. 인도에는 이렇게 못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다르다. 너무나 친절하고 순박하다.

 

카메라가 이상해졌다. “Power on”을 하니 “Power Off”와 “Format" 두 선택을 강요한다. 배터리를 뱄다가 다시 넣고 해봐도 마찬가지고 메모리 카드를 뺐다가 다시 넣고 해봐도 마찬가지다. Format을 하면 메모리 카드에 있는 사진이 다 없어진다. 결국 어쩔 수 없이 Format을 했다. 방글라데시 국경을 넘으면서 찍은 사진과 다음날 Kolkata에서 찍은 사진 10여 장을 잃어버렸다. 메모리 카드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 알 도리가 없다. 인터넷으로 카메라 회사에 (Olympus) 물어보아야겠다. 10 장이 아니고 100 장이 있을 때 그런 문제가 생겼더라면 정말 낭패였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아찔해 진다. 더 자주 CD에 다운로드를 해야겠다. 그리고 메모리 카드를 다른 것으로 바꿔봐야겠다.

 

오늘 아침에 봤던 군인들이 다시 내가 탄 기차에 오르면서 나를 보고 아는 척을 한다. 밤차에는 항상 타는 모양이다. 경비를 위해서 타는 것이다.

   

인도의 Northeast States 지역 여행은 기차여행으로 때웠다

 

Northeast States는 미얀마 국경 근처 지역인데 치안이 매우 불안한 곳이다

 

농촌 풍경

 

부잣집 같다

 

 

2005년 8월 27일, 토요일, Siliguri, Manila Hotel

 

(오늘의 경비 US $24: 숙박료 300, 식사 30, 10, 120, 홍차 3, 택시 60, 신문 3, 기차표 520, 환율 US $1 = 44 rupee)

 

아침에 기차 안 침대에서 깨어보니 Guwahati 근처였다. 그제 지나갔던 도시다. 철로 가 빈민촌 풍경은 Kolkata에 못지않다. 신문에서는 인도의 경제 규모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고 떠든다. (10년 안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했나?) 인도의 이런 빈민촌들은 치지 않는 모양이다. Guwahati부터 기차 내부는 상인들로 완전히 점령되었다. 그제 Dibrugarh 갈 때도 이 부근에서 그랬다. 복도에 상인 행렬이 끊임없이 지나간다. 한 번이 아니고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를 수없이 반복한다. 좌석 밑 쓰레기를 치우고 돈을 달래는 애들도 몇 분에 한 명씩 지나간다. 한 애는 좌석 밑에 쓰레기가 없으니 몰래 숨겨가고 온 쓰레기를 슬쩍 버리고 청소를 하려다 걸려서 쫓겨났다. 거지 행렬도 끊임없이 지나간다. 여장을 한 고자 남자들도 구걸을 하는데 구걸이 아니고 강요에 가깝다. 인도 사람들은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면 불운이 온다고 믿어서 거절을 안 한단다. 어느 여자가 완전히 벗은 어린애 두 명을 데리고 와서 상인 한명과 말싸움을 벌린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이 타는 냉방 칸에만 상인들이 이렇게 많은 것 같은데 3등 칸 풍경은 어떤지 궁금하다. 기차 차장도 철도 경찰도 이들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들은 Guwahai와 Kolkata를 다니는 사람들일까? 밤에는 기차 안에서 잠을 잘까?

 

Guwahati에서 New Jalpaigari까지 가는 기차표를 차장으로부터 520 rupee에 샀다. 오늘 기차표를 사는 편법 한 가지를 발견한 셈이다. 목적지까지 가는 기차표를 살 수 없을 때는 그전 어느 큰 도시까지 가는 기차표를 산 다음에 그곳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기차표를 따로 기차 안에서 차장으로부터 (TTE라 부른다) 사는 것이다. 이것이 공식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통용되는 방법이고 대부분 이렇게 해결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기차에는 매표 시스템은 모르지만 차장은 아는 빈자리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어제 Dibrugarh에서 Guwahati까지 가는 침대차 기차표를 사서 타고 오늘 차장으로부터 Guwahati에서 내 원래 목적지인 New Jalpaigari까지 가는 기차표를 (의자) 산 것이다.

 

기차 에어컨은 기차가 설 때는 꺼진다. 기차가 금방 떠나면 괜찮은데 오래 섰다가면 기차 안이 한증막이 된다. 기차가 자주 서기 때문에 아주 불편하다.

 

오늘 기차 안에서 Naga 족 사람을 만났다. Siliguri라는 도시에서 조그만 기독교 교회를 운영한단다. 목사인지는 모른다. 교회에는 학교도 있어서 학교를 못 가는 가난한 애들을 모아서 공부를 시킨단다. 인도 동북지역에 사는 Naga 족은 한때 “headhunter”로 알려진 원시 부족이었는데 영국 통치 동안에 대부분 기독교 교인이 되었단다. Naga 족이 사는 지역은 Nagaland라 불리는데 한국 선교사들도 가끔 찾아온단다. Nagaland에는 아직도 전통 문화가 많이 있는 모양인데 Nagaland를 방문하려면 Naga 족 추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단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며칠 구경할만한 곳 같다. 나에게 부탄 사람이냐고 묻는다. 대부분 인도 사람들은 내가 외국 여행객인 것을 알고 일본이나 한국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이사람 같이 외국 여행객들을 별로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나를 네팔 사람이나 부탄 사람으로 생각한다. 내가 자기네와 똑 같이 생겼다면서 자기네나 우리네나 다 먼 옛날에 몽골지역에서 옮겨온 민족이라고 아주 자신 있게 얘기한다. Naga 부족은 인구가 약 300만인데 인도로부터 자치권이나 완전 독립을 원하는“Underground Government"가 있고 한때 게릴라전도 했었다고 한다. Nagaland는 미얀마 국경에 연접해 있어서 게릴라전을 하다가 불리하면 미얀마로 피한단다. 어쩌면 미얀마 정부의 지원을 받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휴전중이라 조용한 편인데 언제 다시 게릴라전이 시작될지 모른단다. Naga 족은 현재 자체의 군대를 보유한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단다.

 

New Jalpaigari 기차역에 내려서 이 사람과 Siliguri까지 택시를 같이 타고 왔다. 오늘 Naga 족을 사람을 만난 것은 큰 수확이다.

   

이 지역은 논이 많은 곳이다

 

Copyright (c) 2004- By 박일선. All Rights Reserved. 이 글과 사진은 상업적으로 이용

하지 않고 수정하지 않고 저작자를 박일선으로 (혹은 Elson Park)

표시하는 조건으로 아무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