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16일 경북 영덕군 삼화리. 새잎이 나지 않은 헐벗은 가지 위에서 복사꽃이 소담스럽게 피어났다. 봄철 복사꽃들이 가지 위에서 봄바람에 살랑이며 추는 앙증맞은 군무(群舞)도 볼거리지만, 거센 바람에 지는 꽃이 만들어내는 ‘분홍색 바람’ 또한 장관이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을 듣다 보면 봄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들판에선 시냇물이 경쾌하게 달음질치고, 하늘에는 제비떼가 맴을 돈다. 햇살에 익은 꽃은 망울을 터뜨리고, 봄바람에 간지럼을 탄 나무는 새싹을 밀어낸다.
'봄'이란 부제가 붙은 이 곡에 가장 어울릴 만한 곳은 아마도 경북 영덕 일대일 것이다. 이곳은 해마다 봄이 되면 복사꽃들이 들판을 뒤덮어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된다.
◇'무릉도원'으로 변신
영덕 복사꽃은 영덕읍에서 안동 방면으로 뻗은 34번 국도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영덕군청에서 차로 5분 정도를 간 뒤 야트막한 고갯길을 돌아가면,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선 복사꽃 행렬을 만난다. 하늘로 뻗은 가지 위에 탁구공만 한 분홍색 꽃이 나무마다 수십 개씩 피어 있다. 수북하게 꽃을 매단 복사꽃밭은 흡사 분홍색 안개가 덮인 것 같다.
복사꽃은 처음 피어날 때 연한 분홍빛이다. 꽃이 활짝 핀 뒤 2~3일간 분홍빛이 점차 짙어져 절정의 빛깔을 만들고, 다시 2~3일 지나면 꽃이 진다. 꽃잎 5장 사이에 꽃술 10여개를 세워 꽃 모양을 냈지만, 꽃을 감싼 잎이 없어 작은 바람에도 떨어지는 연약한 꽃이다. 향기도 없다. 그래서 속절없다고 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복사꽃이 일주일 정도 지키던 자리를 내줘야만 그곳에 복숭아 열매가 맺힌다. 올해 영덕 복사꽃은 주말쯤 절정을 이룬 뒤 다음 주로 넘어가면 대부분 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덕군 삼화리 삼협마을은 ‘복사꽃 마을’로 불린다. 마을 뒷산에 오르면 복사꽃으로 뒤덮인 산비탈과 오십천 맑은 물이 굽이쳐 흘러가는 들판을 볼 수 있다. 도연명이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수백보 거리에 온통 복숭아나무뿐이었다. 싱싱하고 향기로운 풀밭 위로 복숭아 꽃이 흩날렸다(來岸數百步 中無雜樹 芳草鮮美 落英繽紛)”고 표현한 ‘무릉도원’을 축소해 옮겨 놓은 듯한 풍경이다.
- ▲ 다리가 한두 개 떨어진 대게를 고르면 온전한 것보다 싼값에 살 수 있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영덕 복사꽃에는 주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이곳은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침수 피해를 당했다. 모래와 자갈로 뒤덮인 삶의 터전을 복구하기 위해 주민들은 복숭아를 선택했다. 복숭아는 모래가 섞인 토양에서도 잘 자라고, 일조량이 많고 강우량이 적은 영덕 기후에도 잘 맞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복숭아는 이곳의 대표 작물이 됐다. 35년여간 복숭아 농사를 지어온 이원용(56)씨는 “한때 이곳이 전국 황도 생산량의 30%를 차지했었다”고 말했다.
◇대게와 바람의 마을
34번 국도를 따라 영덕읍까지 간 뒤 포항방면 7번 국도를 타면 강구항으로 갈 수 있다. 11월부터 5월까지 동해에서 잡은 대게가 거래되는 곳으로 영덕 대게의 주산지로 꼽힌다.
- ▲ 빨간색 등대가 세워진 노물리방파제.
강구항에 들어서면 입구부터 커다란 대게 모양의 조형물을 간판에 붙인 대게 음식점들이 보인다. 150여곳이 넘는 음식점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강구항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대게 수족관처럼 느껴진다.
운이 좋으면 오전 8~10시 열리는 ‘대게 경매’를 구경할 수 있다. 열흘 정도 바다에 나갔던 대게잡이 배들이 강구항에 모여 수협공판장 바닥에 대게를 수북이 쏟아내는 풍경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라고 한다. 박달나무처럼 살이 꽉 차 최고의 대게로 꼽힌다는 ‘일등급 박달대게’부터 일반 영덕대게까지 다양하다.
- ▲ 조선시대 한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괴시마을.
강구항에서 해안을 따라 축산 방향으로 올라오는 길은 소박하다. 볕이 좋은 날이면 길가에 나와 햇볕을 쬐는 미역에서 고소한 냄새가 난다. 인도·차도 구분없이 구불구불 이어진 길에는 차와 사람이 산책하듯 천천히 움직이고, 해안가 방파제에는 낚시꾼들이 한가롭게 바다낚시를 즐기고 있다.
강구항에서 15㎞ 정도 걸어가면 해맞이 공원이 나온다. 대게 집게발 모양으로 생긴 창포말 등대가 랜드마크처럼 서 있다. 등대 주위로 난 계단을 따라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 ▲ 노물리 방파제 인근에는 옛날 군부대의 순찰로로 이용됐던 해안 벼랑길이 있다. 다듬어지지 않아 길은 거칠지만 천천히 걷다 보면 동해의 푸른 바다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낙조가 아름다운 마을
해맞이 공원과 대탄·오보 등 작은 어촌마을을 지나면 해안길의 백미(白眉)가 나온다. 노물리 방파제에서 석동횟집까지 해안가 절벽을 따라 2.5㎞ 정도 펼쳐진 산책로다.
동해안 벼랑을 따라 이어진 안전로프가 이곳이 길이라는 걸 알려준다. 모양은 소박하게 생겼지만, 길에 올라서면 찬란한 동반자들이 나타난다. 멀리서 뱃고동이 울리면 갈매기들이 목놓아 박자를 맞춘다. 파도는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바위를 치고, 바람은 짭짤한 바다 냄새를 코끝에 던져놓고 달아난다. 구름에 가렸던 파란 하늘이 드러나면 은회색이던 바다에 파란 물이 들고, 해가 비스듬할 땐 바다에서 육지까지 금빛 융단이 펼쳐진다.
- ▲ 복숭아 농가에서 직접 만든 복숭아병조림.
괴시마을은 옛 정취가 살아있는 한옥마을이다. 영해중·고등학교 인근에 있는 이 마을은 고려말 목은(牧隱) 이색이 태어난 곳이다. 조선시대 영양 남씨의 집성촌이 됐고, 지금도 영양 남씨 괴시파 종택 등 한옥 30여채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마을은 도시 소음이 닿지 않는 곳이다. 황토색 담장 사이로 난 길에는 새소리, 풍경소리만 들린다. 시골집 아궁이에선 저녁 짓기 위해 나무 태우는 냄새가 난다. 해가 저문다.
- ▲ 잘게 썬 가자미를 갖은 채소와 함께 초장에 찍어 먹는 미주구리회.
여·행·수·첩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으로 나와 34번 국도(영덕방면)를 타면 영덕읍 가는 길에 펼쳐진 복숭아밭을 볼 수 있다. 고속버스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영덕시외버스터미널까지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김포공항에서 하루 4차례 운행하는 비행기로 포항공항까지 간 뒤, 차량을 이용(1시간 소요)해 영덕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대게의 고장 영덕답게 강구항 주변에는 150여곳의 대게 음식점들이 몰려 있다. 대게찜뿐 아니라 대게탕·대게회 등을 즐길 수 있는데, 4월에 잡히는 대게가 특히 맛이 좋다고 한다. 대게는 연근해산·러시아산 등 산지와, 박달대게·일반대게 등 등급에 따라 가격대가 천차만별이다. 식당에서 저렴하게 대게를 즐기려면 다리가 한두개 떨어진 대게를 고르면 된다.
강구5일시장 안에 있는 ‘탐라식당(054-733-8778)’은 지역 주민들이 추천한 맛집이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대게를 이용한 찜과 대게탕도 좋지만, 미주구리회(가자미회)에 밥 한 공기를 넣고 쓱쓱 비벼먹는 회덮밥과 옛날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다는 ‘해떼기 밥식해’가 별미다.
◆삼화리 복사꽃마을(054-732-7015) 뒤편 동산에 올라가면 복사꽃이 핀 분홍빛 들판과 오십천을 한 프레임 안에 담을 수 있다. 해안길을 따라 구불구불 펼쳐진 ‘블루로드’를 찍을 때는 해맞이 공원에서 강구항 방면으로 20m쯤 내려온 곳에 있는 공터가 포인트다.
◆영덕관광포털 tour.yd.go.kr, 영덕군청 (054)734-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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