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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천 평화누리길 중 `백미` 4곳

應觀 2012. 6. 19. 20:15

연천 평화누리길 중 '백미' 4곳

일병 무렵부터 6개월간 근무한 GOP(일반관측소초)의 이름이 '해운대'였다. 바다는커녕 크고작은 산들뿐인 중부전선 한복판에 갖다붙이기에는 참으로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의 주상절리는 오후 2~3시쯤이 가장 아름답다. 살며시 기울어진 햇빛이 닿으면, 강물은 거울처럼 반짝이며 흘러가고 주상절리 절벽은 그림자를 걷어내고 제 빛깔을 드러낸다.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날이 더워지던 6월이었다. 밤새 야간 당직을 하다 새벽공기를 쐬러 밖으로 나갔다. 어둑한 사방을 가득 채운 촉촉한 공기를 마시며 잠시 졸았던 것일까? 눈을 뜨니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소초 막사가 있는 언덕으로 새벽 구름이 몰려들어, 봉긋한 언덕 주변이 온통 새하얀 구름뿐이었다. 중부전선 산골에 펼쳐진 '해운대'였다. DMZ(비무장지대) 인근에 보물 같은 풍경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때였다.

아마 2년 전 경기도에서 '평화누리길(182.3㎞)'이라는 트레킹코스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김포·고양·파주·연천 4개 지역 DMZ의 남쪽 접경지역을 잇고 이름을 붙인 이 길에는 보물 같은 풍경이 곳곳에 숨어있다. 특히 연천구간은 주상절리, 임진강 등 때묻지 않은 천연의 환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곳이다. 약 62㎞에 달하는 연천 평화누리길은 다시 첫째길·둘째길·셋째길로 나뉜다. 연천 '평화누리길' 중 백미(白眉)에 해당하는 4곳을 소개한다.

학곡리 갈대밭의 생명력

연천 평화누리길은 황포돛배 나루에서 시작해 임진강을 따라 이어진다. '학곡리 갈대밭'은 이 길에서 임진강에 가장 가까이 닿는 부분 중 하나다. 강을 끼고 약 1.2㎞ 정도 갈대밭이 펼쳐진다.

초여름 갈대밭이 무슨 운치가 있겠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서면 대번에 생각이 바뀐다. 가슴팍 높이로 자라난 푸른 갈대는 넘치는 생명력이다. 가을철 누렇게 변한 갈대가 전하는 황혼의 낭만과 원숙함, 쓸쓸함에 못지않은 운치다.

갈대밭 사이로 난 오솔길은 하얀 모래가 눈부신 곳이다. 임진강 상류로부터 쓸려내려온 고운 모래가 한 걸음 한 걸음 밟을 때마다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바람이 없으니 갈대가 몸을 부딪는 소리는 없다. 대신 봄에 부화해 몸집을 불린 개구리들이 갈대밭 사이로 힘껏 울음소리를 퍼뜨린다. 그 울음의 높낮이를 보여주려는 듯 하얀 나비들도 갈대 사이를 넘나들며 나름의 곡선을 만들어낸다.

①수령(樹齡) 570년짜리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숭의전 앞마당은 한가롭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②초여름 경기도 연천 학곡리 갈대밭을 걷다 보면 DMZ의 때묻지 않은 속살과 약동하는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gokorea21@chosun.com

숭의전의 570년 된 나무그늘

숭의전은 첫째길의 끝자락이자 둘째길의 시작점이다. 야트막한 등성이 위에 옛 건물 5채를 고즈넉하게 세운 이곳은 고려의 실질적인 종묘(宗廟)다. 고려 태조를 비롯해 현종, 문종, 원종 등 고려 4왕의 위패를 모신 정전(正殿)이며, 그 왼쪽에 제기를 보관하고 제수를 준비하는 전사청(典祀廳)과 제관들이 제례를 준비하며 머물렀다는 앙암재(仰巖齋)가 자리잡고 있다. 숭의전 오른쪽 배신청(陪臣廳)은 고려시대 국가에 큰 공헌을 한 16공신의 위패를 모신 곳이고, 이안청(移安廳)은 숭의전을 청소하거나 공사할 때 위패를 잠시 모셔두는 곳이다. 조선 태조의 명에 의해 세워진 곳으로, 고려의 흔적을 없애지 않고 상생과 화합의 정신으로 갈등을 해소하려 한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숭의전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길을 따라 늘어선 커다란 나무가 짙은 그늘을 만들어낸다. 나무 밑을 꿰차고 않은 돌에는 시퍼런 이끼가 끼어 있을 정도로 공기가 촉촉한 곳이다. 뻐꾹새 소리를 따라 50m 남짓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야트막한 돌담 위로 빛바랜 단청이 눈에 들어온다. 숭의전 입구에 떡하니 자리잡은 느티나무는 나이가 570살이나 됐다고 한다. 어쩐지 까치발을 하고 걸어야 할 것처럼 숭의전 전체는 짙은 고요에 휩싸여 있다.

임진강에 담긴 동이리 주상절리

‘동이리 주상절리’는 연천 평화누리길 중에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주상절리는 화산이 빚어낸 지형지물로 화산이 폭발하며 나온 용암이 식어서 돌기둥이 된 것을 말한다. 동이리 대대를 지나 임진강 둑길로 들어서면 강 건너편에 거대하게 솟아오른 주상절리 절벽을 볼 수 있다. 중국대륙에서 뻗어나온 선캄브리아기의 화강편마암류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곳으로,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지질 구조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녹음이 짙어지는 6월에는 주상절리를 덮은 녹음이 강까지 내려앉는다. 짙푸른 녹색 풀들이 절벽을 빼곡하게 뒤덮어, 절벽이 비친 강물마저 녹색으로 보인다. 절벽을 담은 강물은 소리없이 흐른다. 다만 절벽 군데군데에서 떨어지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강에 닿으면 정적을 깨뜨릴 뿐이다.

동이리 주상절리에 오면 둑길 대신 강변 자갈길을 따라 걷는 게 좋다. 삐뚤빼뚤 돌들이 솟아있는 자갈밭과 잡풀을 헤치며 걸음이 느려지면, 주상절리 절벽에 새겨진 억겁 세월을 더 오래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웅연계람(熊淵繫纜)을 그렸던 옥계리 산길

1742년 시월 보름, 경기도 관찰사 홍경보는 임진강 상류 우화정에서 배를 탔다. 경기도 순시를 위해 연천으로 가던 길이었다. 배를 타고 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때마침 송(宋)나라 소동파가 후적벽부를 지은 게 임술년(1082년) 시월 보름이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이에 홍경보는 글을 잘 쓰는 연천현감 신유한과 당대의 화가 겸재 정선을 불러 이곳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임진강 한 나루에서 배를 내릴 때의 모습을 담은 ‘웅연계람(熊淵繫纜)’이다.

‘옥계리 산길’에 들어서면 이 웅연계람의 오늘날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길은 원래 군부대가 닦은 전술도로로 지도에도 안 나오는 산길이다. 옥계리 로하스 파크에 있는 산길 입구에서 30분 남짓 길을 따라 올라가면 8부 능선쯤에서 연천군의 북한 쪽 들판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이곳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잠시 숨을 돌리면 들판을 뱀처럼 휘어져 달려가는 임진강을 보게 된다. 겨울이 되면 수백 마리의 두루미들이 찾아온다는 장군리 여울도 눈에 들어온다.

옥계리 산길의 또 다른 매력은 이곳이 천연 그대로의 시골 산길이라는 점이다. 바닥에서는 흙냄새가 물씬 올라오고, 이름 모를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나무 아래로 넝쿨을 드리운 다래꽃에선 청량한 향기가 풍겨온다. 수풀 속에서 야생 돼지감자를 캐거나, 길가에 핀 질경이를 따다가 들기름에 무쳐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풍요를 나눌 줄 아는 시골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여.행.수.첩

교통정보 : 연천 전곡버스터미널에서는 숭의전(58번), 군남홍수조절지(55번) 등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시내버스 운행에 대한 문의는 대양운수(031―832―2194).

동두천역에서 경원선 열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출퇴근시간대엔 1시간에 1대(낮시간대는 약 1시간30분에 1대씩 배차)꼴로 동두천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전곡역(15분 소요)과 연천역(25분)을 거쳐 신탄리역(40분)으로 이어진다.

자가용을 이용해 의정부 쪽에서 오려면 동두천을 거쳐 3번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서울 쪽에서 올 때는 자유로를 타고 오다 문산IC로 나와 37번 국도를 타고 오면 전곡리에 닿는다.

③매콤달콤한 맛이 일품인 가물치 불고기.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gokorea21@chosun.com

맛집 : 한탄강이 지나는 연천에는 민물매운탕집이 많다. 그중에서도 오두막골식당(031―832―4177)에서는 ‘가물치 불고기’라는 별미를 맛볼 수 있다. 갓 잡아올린 가물치와 큼직하게 썬 양파를 달짝지근한 양념에 버무려 불판에 구운 것이다. 노릇하게 익었을 때 양파와 함께 집어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찍어 먹으면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휴가나 외박을 나온 군인들이 찾던 국숫집이 ‘전국구 맛집’으로 발전한 망향비빔국수 본점(031―835―3575)도 연천에 있다. 번호표를 받고 한참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지만 매콤한 비빔장을 넣고 비빈 쫄깃한 국수는 결코 그 기다림을 배신하지 않는다.

거리 : 총 62㎞에 달하는 ‘평화누리길’ 연천 구간을 일주하려면 하루 숙박이 필요하다. 고즈넉한 농촌에서 하루를 보내는 ‘팜 스테이(Farm Stay)’를 추천한다. 북삼리에 있는 ‘나룻배마을(031―833―5005)’과 구미리 ‘새둥지마을(031―835―7345)’에선 농작물가꾸기나 두부만들기 등도 체험해볼 수 있다.

문의 : 연천군청 문화관광과
031-839-2061~5
http://www.iyc21.net

출처 : 한영고16회
글쓴이 : 월혜(月 憓)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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