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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왕후가 -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저술한 "문화유산답사기"에서

應觀 2021. 9. 23. 19:16

우리 집안이 청풍김가다

유홍준교수의 말을 옮긴다

"난 청풍이 처음인데 청풍이라면 청풍 김씨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네요.

대단한 명문이었죠. 조선 말기의 대신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

립운동가 김규식(金奎植)이 다 청풍 김씨죠."

"명문이고말고요. 대동법을 시행한 김육()도 있죠. 왕비도 둘 배출

했죠. 금곡에 청풍 김씨 묘역이 있고, 몽촌토성 안에도 있죠."

청풍 김씨는 신라 김알지(金闕智)의 후예인 김대유(金大)가 고려 말

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봉해진 뒤

청풍에 세거하면서 집안의 시조가 되었다.

그 자손들이 대대로 번성하여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상신(相臣, 영의정 좌의정·우의정) 8, 대제학(大提學) 3명을 배출했다.

왕비도 2명이나 나왔다. 김육의손녀딸이 현종의 비인 명성왕후(明聖王后)가 되었고, 정조의 비 효의왕후(孝懿王后)도 청풍김씨였다.

나는 일행을 위해 마이크를 잡고 청풍 김씨의 이런 내력을 전해주고

옛날에 청풍에 와서 들은, 현종의 비가 세자빈으로 간택될 때의 이야기

를 들려주었다.

왕비가 처녀일 때 하루는 어머니가 어젯밤 꿈에 조상님이 나타나

일 찾아오는 손님을 극진히 모셔라" 하고 사라졌단다. 이에 처녀는 그

손님이 오기만 기다렸는데 해 질 무렵 허름한 차림의 한 선비가 이어

하룻밤 묵어갈 수 없느냐고 하여 안으로 안내하고 저녁밥을 지어 올랐다.

처녀는 과연 이 선비가 어머니가 꿈에서 들었다는 귀인인지 아닌지 궁금했다. 그렇지만 감히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밥상에 뉘 볍씨 15개를 소복이 얹어 올렸단다.

신비는 뉘를 왜 15개 놓았을까 골똘히 생각해보고는 옳거니, 뉘시오

?'라고 묻는 게로구나하고는 밥상을 물리면서 반찬으로 나온 생선을

네토막 내어 내놓았다. 그러자 처녀는 생선()이 네() 토막인 것

를 보고 어사(御史)임을 알아챘다고 한다.

1. 어사가 바로 세자빈 간택을 나온 분이었다고 한다. 왕비가 그만큼

총명했다는 얘기다. 바로 이분이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왕후로 장희빈을

궁궐밖으로 내쫓은 장본인이며, 임금을 잘 받들어 현종은 끝내 후궁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아버지인 김우명(金佑明)은 딸이 왕비가 되는 덕에 청풍부원군

이 되었고, 춘천에 있는 그의 묘소는 운구하던 도중 명정(銘雄)이 바람에 날아간 곳에 자리 잡았는데 그 묏자리가 명당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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