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종교와 나

내달 `세계 간화선무차법회` 여는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應觀 2015. 4. 17.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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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다 오세요. 제가 다 먹여살릴 겁니다. 허허허."

두 귀를 의심했다. 반사적으로 "네?"라고 되묻자 그는 "자기의 참모습을 찾는 일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한가요"라며 두 눈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야말로 호방한 기세였다. 40·50대 중년의 삶이 위태롭다는 투정과 엄살은 곧 무색해졌다. 최근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만난 조계종 종정(宗正·최고 정신적 스승) 예하 진제 스님(81)은 "허상으로, 즉 허세로 살아가기에 중생이다. 세상사는 유행과도 같다"며 "사람들이 빈한(貧寒)하게 사는 것은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 수행을 통해 마음을 닦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불교계 큰 어른이자 대표 선지식의 사자후(獅子吼)다. 스님은 다음달 16일 밤 서울 광화문에서 세계 간화선 무차(無遮) 법회를 연다. 무차란 막힘이 없다는 뜻으로 차별을 두지 않고 종교와 국경, 성, 나이, 계층에 상관없이 문호를 개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올해 광복 70년을 맞아 이웃 종교 지도자들과 세계 고승 300여 명도 함께한다. 조계종 종정 스님이 광화문 광장에서 법문을 펼치는 것은 1700년 한국 불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스님은 "온 인류가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을 일깨우고자 한다. 내 종교만 옳다고 주장하고 강요해서는 절대로 갈등과 분열과 전쟁이 사라질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지만 정작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드뭅니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먼저 마음을 편안히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부유하다고 해서,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해서, 또 명예가 높다고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행복을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아무리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행복의 기본 조건은 지족(知足)입니다. 즉 만족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혹은 크게 소리쳐서 "나는 행복하다" "나는 만족한다"라고 해서 행복하진 않습니다. 그 행복함은 마음이므로 마음을 어떻게 해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자기 뜻대로 안 되거든요. 자기 생각대로, 자기 의지대로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수행이 필요한 이유고 수행을 통해 지혜를 증장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느냐. '간화선', 즉 '참선'이 가장 훌륭한 수행법이기에 산승은 항상 이를 권합니다. 일상생활하는 그 가운데 마음에 우러나오는 간절한 의심으로 꾸준히 화두를 챙기고 의심해 나간다면 설사 이번 생에 깨달음은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차츰 그리고 더더욱 마음 편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에 다다라서도 옷 갈아입듯 자유롭고 편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속에 '화'가 일어날 때는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자기만을 생각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분노하고 화를 내고 무관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고 마침내는 자기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부처님 말씀 그대로 우주법계 전체가 서로 더불어 이루어져 있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만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이 '돈돈돈' 하는데 돈은 무엇인가요.

▷돈은 생활의 일부일 뿐입니다. 많이 차지하려고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중도를 지켜야 하는 것이죠. 남는 것은 불우이웃을 도와야 합니다. 베풀지 않으면 복이 오지 않습니다.

―불교에서 '허상'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허세'라는 말로 이해해도 됩니까.

▷그렇습니다. 허상으로, 즉 허세로 살아가기에 중생인 것입니다. 성인은 모든 허세를 탈피한 사람이죠. 모든 인류가 하나이고 한 몸인데, 허세를 부리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수행에 몰두하면 모든 인류가 하나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고 시비가 있을 수 없어요. 나만이 잘나고 못난 게 아니라 자연히 세계가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전 세계가 갈수록 참선을 좋아하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타인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는 것도 허세인가요.

▷세상의 애정은 끝이 없습니다. 지구라는 곳에 중생의 몸을 받아 온 존재들이 지금껏 익힌 것이 사랑뿐입니다. 그걸 좇아서 살아 온 것이죠. 결국 '나'라는 허송세월에 빠지는 것인데 이는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예하에게 사랑은 무엇인가요.

▷정이 있는 것, 정이 없는 것까지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죠.

―현대인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립니다. 예하는 죽음의 문제에 있어 "이집에서 저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세상의 모든 지식을 습득하고 백과사전을 다 읽는다 해도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생사는 원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나온 생을 알지 못하고 다음 생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인연 있는 분들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오랫동안 맺어왔던 정의 끈이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태어난 어떠한 것도 죽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하고 수행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죽음이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참나'를 바로 볼 때 이 두려움은 해소됩니다.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온 국민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지난해 예하는 "안타깝지만 미움과 원망의 마음도 내려놓자"고 하셨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분노를 표출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후유증이 오래갈 것 같습니다. 산승이 그렇게 말한 것은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은 우리에게 반복되는 고통의 씨앗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참사 이후로 온 국민이 간절히 바랐던 것은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지도층이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다면 국민은 희망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 희망이라는 것은 죽은 분들이 살아올 것 같은 감동이 아니라 더 이상 이 같은 비극이 없을 것이라는 희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사고는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물질이나 출세보다 생명과 정신의 가치를 인식하도록 사회 의식을 바꾸는 노력이 진지하게 있어야 합니다.

―40·50대 중년의 삶이 고달픕니다. 100세까지 산다고 하는데 노후에 대한 경제적 불안감도 상당하고요. 어떤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까요.

▷절로 다 오세요. 제가 다 먹여살릴 것입니다. 허허허. 자기 참모습을 찾는 일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한가요. 이 공기 좋은 곳에서 세상 욕심 다 없애고 한번 해볼 만한 일이지요.

―불교계가 다음달 광화문과 조계사 등지에서 세계평화 기원대회를 연다고 하는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유사 이래 이런 대법회는 처음입니다. 5월 15일부터 18일까지인데, 16일 행사에는 종교 지도자와 세계 고승 300여 명이 옵니다. 그분들이 16일 오전 현충원을 방문하고 휴전선 인근에서 남북평화 축원을 한 뒤 저녁에는 광화문에서 열리는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에 참석합니다. 무차 법회가 시작하기 직전에 동대문에서 광화문까지 제등행렬(提燈行列)도 열려 시민들이 참여하기 좋을 겁니다. 이제 한 종교로서 평화를 이루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모든 종교가 화합해 평화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 종교를 강요하기보다는 먼저 상대방 종교를 존중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내 종교만 옳다고 주장하고 강요해서는 절대로 갈등과 분열과 전쟁이 사라질 수 없습니다. 간화선 무차대회에서도 세계 여러 종교지도자들이 참석해 평화선언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또 올해는 광복 70주년이기도 하지만 분단 70주년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17일에는 조계사에서 6·25전쟁에 참전한 북한군과 중공군에 대해서도 위령재를 지내지요. 지금까지 65년 동안 아군과 적군 천도재를 지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입니다.

―간화선 무차대회 장소가 광화문이어서 대중적 관심이 큽니다만.

▷부처님 당시부터 중국, 고려, 조선 때도 무차법회가 있었지요. 신분 등 어떠한 분별도 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법회를 통해 부처님의 덕과 지혜와 자비를 나누는 법요식입니다. 이번에는 광복 70년이라는 의미가 있어 더 확대하는 것입니다. 법문을 하고, 즉석에서 질문도 받는 법담 자리가 펼쳐질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의 '광화'란 뜻이 무차와 같습니다. 서경에 따르면 광화란 "차별 없는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는 의미인데 이는 "차별 없는 불이(不二)의 자비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겠다"는 무차법회 의미와 상통하는 것이죠.

―팔공산에도 봄이 완연합니다. 온 국민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음에 새겨 살아갈 수 있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봄이 옴에 산에도 들에도 꽃이 피는데, 진리의 눈이 열려 이러한 호시절을 바로 볼 때 만인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간화선 참선수행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차츰 봄의 참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일파유조수부득(一把柳條收不得)하여,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로다.

한 주먹 버들가지 잡아 얻지 못하여, 봄바람에 옥난간 벽에다 걸어 둠이로다. ■ 서른세 살에 깨달음 얻어…한국 불교계 대표 선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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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청년, 세상에 사는 것도 좋지만, 이번 생은 태어나지 않은 셈 치고 중 노릇을 해보지 않겠는가?"

"중 노릇을 하면 어떠한 좋은 점들이 있습니까?"

"범부가 위대한 부처가 되는 법이 있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4년 겨울, 경남 남해 작은 마을에서 스무 살을 맞이한 한 청년은 가까운 암자를 찾는다.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석우 선사가 주석하던 해관암이다. 석우 선사는 당당하고 풍채 좋은 청년에게 대뜸 출가를 권한다. '범부가 위대한 부처가 된다'는 말에 이상하게 마음이 쏠린 청년은 부모에게 허락을 구한 뒤 곧바로 해인사에서 머리를 깎는다. 그리고 13년간 올곧은 수행 끝에 향곡 선사에게서 깨달음을 공식 인정받는다. 부처님에서부터 한 줄기 내려오는 정통 법맥을 이어받은 79대 적손이 된 것이다. 속세 나이 서른셋이던 1967년 일이었다. '진제'라는 법명도 향곡 선사에게 받은 이름이다.

현재 대구 팔공총림 동화사 방장을 맡고 있으며, 부산에는 스님이 1971년 창건한 해운정사가 있다. 2012년 3월 제13대 조계종 종정에 올랐다. 때때로 일반인에게 '부모에게 이 몸 받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