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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식탁

應觀 2013. 8. 27. 08:29

[맛있는 식탁] 포천

대개 여행을 겸한 맛집 탐방에 나서보면 이상하리만치 남쪽 지방이나 강원도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그 지역에 알려진 명소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소외된 곳이 경기 북부 지역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꽤 괜찮은 집들이 많이 있다. 지난 기사에서 동두천에 가볼 만한 집들을 소개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같은 권역이라 할 수 있는 포천 지역의 가볼 만한 집들을 소개해보기로 한다.

‘포천’이란 지명은 조선 태종 13년(1413)에 생겨난 이름이다. 포천은 원래 백제와 고구려의 영토일 때 고구려에서는 마홀군(馬忽郡)이라 불렀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변경이 있었는데 고려 초에 와서는 포주(抱州)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다시 조선조에 와서 포천(抱川)이라는 오늘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포천하면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춘 산정호수와 억새풀로 유명한 명성산(923m), 광릉산림욕장, 허브아일랜드 등이 찾을 만하다. 환경오염이 심한 도시에서 벗어나 산림의 맑은 공기와 향기 등을 흡수함으로써 피로회복과 신체적·정신적 안정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우리들의 입까지 즐겁게 해 줄만 한 집들이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한탄강댐 건설로 수몰 예정되어 곧 이전하게 될 <지장산막국수>
한탄강댐 건설로 수몰 예정되어 곧 이전하게 될 <지장산막국수>

먼저 <지장산막국수>를 찾아보자. 강원도 막국수 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긴 하지만 50년 전통의 내공 있는 집이다. 팔순을 바라보고 계신 어르신이 카운터를 보면서 반갑게 맞는다. 포천 어룡동에도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곳은 30대 중반의 아들이 아버지를 도와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살짝 거칠게 다가오는 느낌이 좋은 ‘지장산막국수’
살짝 거칠게 다가오는 느낌이 좋은 ‘지장산막국수’

비빔막국수는 그야말로 양념 맛에 먹는다. ‘가능한 한 모든 식재료는 아낌없이 쓴다’가 이집의 모토인 듯 정말 푸짐하게 담겨 나온다. 고소한 참기름 향이 좋고 조금은 달착지근한 사골 육수가 맛있다. 주문 받을 때 “면 사리를 서비스로 드릴까요?” 하면서 묻는다. 따로 곱빼기를 청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여태껏 그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아주 독특한 맛이 전해진다. 살짝 거칠게 다가오는 느낌은 어쩌면 이게 원형에 가까운 막국수였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겉메밀을 일부 포함하여 함께 반죽해서 고유의 맛이 살아있도록 했다. 정말 이 사이에 거뭇한 게 낄 것처럼 입자가 굵다. 반면 물막국수에는 파채가 들어있는 게 독특하다.

메이저 평양 냉면집처럼 송송 썬 둥그런 파 모양이 아니고 파절이 형태의 파채인데 알싸한 파향이 코끝을 스친다. 거기에 거친 입자가 주는 묘한 느낌은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조만간 한탄강댐 완공으로 이 동네가 수몰된다고 하니 머지않아 이 동네도 역사 속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될 것 같다. 9월에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전에 한번 들러보는 게 좋을 듯하다. 그 외에도 광릉산림욕장 근처에 있는 <다인막국수>나 <봉평메밀촌>도 찾을 만하다.

	6000원짜리 상차림으로는 너무도 훌륭한 ‘우거지 정식’
6000원짜리 상차림으로는 너무도 훌륭한 ‘우거지 정식’

소홀읍 고모리에 위치한 <욕쟁이할머니집>을 찾았다. 느닷없이 욕바가지를 뒤집어쓰는 건 아닐까 염려하며 살짝 긴장한 상태로 들어갔다. 다행히 욕은 먹지 않았다. 입구 현판의 글씨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수상 작가이자 아들인 홍승표 화백의 작품이다. 완전 시골스러운 분위기 그대로다. 방 한가운데에는 한약재들로 보이는 약재 봉지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방 한 켠에 붙어있는 시래기 이력서의 그 임무라는 게 재미있다. 옛날 국민교육헌장을 패러디해 놓았다. 어릴 적 이야기이지만 국민교육헌장을 다 외워야만 하교할 수 있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정말 무식하게 암송하고 하교했던 기억이 난다.

	강된장스러운 청국장은 밥에 비벼먹기에 안성맞춤이다.
강된장스러운 청국장은 밥에 비벼먹기에 안성맞춤이다.

곧바로 우거지 정식 상차림이 완성된다. 1인분에 6000원짜리 음식으로서는 너무도 훌륭하다. 찐고추, 배추김치, 밴댕이젓갈, 고들빼기, 깻잎장아찌, 미역줄기, 고추장아찌, 쥐눈이콩, 홍어회무침 등 그야말로 떡 벌어지게 한 상이 차려진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우거지라기보다는 무청 시래기가 맞다. 정확히 한다면 우거지 정식이 아니라 ‘시래기 정식’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밥은 보리밥인데 밥 인심 또한 아주 후하다. 머슴 스타일이라면 모를까 내주는 통 그대로를 다 해치우기에는 너무나 벅차다. 막장에 찍어먹는 양배추 쌈이나 강된장스러운 청국장도 아주 괜찮다. 마지막엔 잔반통을 가지고 와서 확실하게 정리를 해버리는 것도 맘에 든다. 거기에 들기름으로 부친 고소한 두부 반 접시에 막걸리 한잔이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밥상이 된다.

	신선하면서도 달콤한 빵과 커피 맛이 좋은 <두다트>
신선하면서도 달콤한 빵과 커피 맛이 좋은 <두다트>

<욕쟁이할머니집>에서 맛있게 먹었다면 바로 옆에 위치한 <두다트(DUDART)>로 자리를 옮겨보자. 신선하고 맛있는 빵과 양과자를 더해 ‘커피&베이커리 카페’를 표방하는 집인데 빵과 양과자를 비롯하여 커피 맛도 아주 그만이다. 커피는 예가체프, 만델링, 코스타리카, 케냐 등 다양한 드립 커피를 비롯해 각종 에스프레소를 맛볼 수 있다. 모두 각 산지에서 직수입한 생두를 직접 로스팅해 뽑아낸다. 덕분에 더욱 살아있는 커피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

<함병현김치말이국수>도 빼놓을 수 없다. 식도락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많이 알려진 집이다. 이집의 역사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는 곰탕과 삼겹살을 팔았는데 후식으로 나가던 김치말이 국수가 인기를 얻으면서 아예 김치말이 국수로 업종을 변경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집이다. 국수 가격이 6000원. 사실 조금 세게 느껴지기는 한다.

	톡 쏘는 청량감으로 더위를 한방에 날려주는 ‘함병현김치말이국수’
톡 쏘는 청량감으로 더위를 한방에 날려주는 ‘함병현김치말이국수’

김치말이 국수와 김치 만두를 주문한다. 김치만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사이드 메뉴로 주문했는데 의외로 맛이 괜찮다. 살짝 매콤하고 칼칼하면서 잡스러운 맛이 별로 느껴지지 않고 담백하다.

김치말이 국수에는 으깬 두부와 새콤한 열무김치가 소복하게 쌓여있다. 또 다른 한쪽에는 편육 한 점과 오이채, 배, 청양 고추 등이 올려져 있다. 뚝배기 그릇에 담겨 나온 배추김치가 아주 먹음직스럽다. 신맛, 단맛이 다 느껴진다. 국물 맛은 조금 강하면서 톡 쏘는 편이다. 이 집의 김치말이용 국물은 보통 무와 배추를 이용해서 맛을 낸다. 실제 국수에는 열무김치가 들어있지만 열무김치 국물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여름과 겨울엔 그 육수 만드는 법과 숙성 기간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여름엔 일주일, 겨울엔 두 달 정도 숙성해 손님상에 내놓으며 국물은 사골육수와 김치 국물을 1대1로 혼합해서 사용한다. 아무튼 시원하고 새콤하면서 톡 쏘며 면발이 쫄깃하다. 한 여름 더위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하다. 지면을 통해 다 소개할 순 없었지만 <동이손만두>, <파주골순두부촌>, <이동갈비촌> 등도 한번 가볼 만하다.

	김인규(아포리아) 맛집블로거
김인규(아포리아) 맛집블로거

<지장산막국수> 포천시 관인면 중 1리 934 (031) 533-1801
<욕쟁이할머니집> 포천시 소홀읍 고모 3리 231-2 (031) 542-3667
<두다트> 포천시 소홀읍 고모리 190 (031) 541-0190
<함병현김치말이국수> 포천시 내촌면 내리 248-7 (031) 534-0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