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북스팀, 출판사 30곳에 물었다, 출간 10년 넘게 매년 1만부 이상 팔린 책]
'10년+1만부 클럽' 총 160종 달해…
1976년 출간된 '광장' 최고령 회원, 동화책 '강아지똥'은 100만부 돌파
출판인 가장 탐내는 스테디셀러는 유홍준 '답사기'와
조세희 '난쏘공'
류현진은 메이저리그를 지배하는 투수가 아니다. 하지만 좀처럼 무너지지 않고 꾸준하다. 돈 매팅리 다저스
감독은 그에게 '한결같다(consistent)'는 형용사를 붙이며'과소평가돼 있다(underrated)'고 했다.
출판사 사장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책 시장에도 '효자'는 따로 있다고. 베스트셀러 순위에 나타나지 않지만 세월을 견디는 저류(底流) 같은 책이 있다고. 바로
스테디셀러다. 타올랐다 소멸하는 베스트셀러와 달리 한결같으면서 과소평가된 책. 본지는 주요 출판사 30여곳을 통해 10년 넘게 해마다 1만부
이상 판매됐고 지금도 싱싱하게 '살아 있는' 책의 목록을 뽑았다. '10년+1만부 클럽'이다.
◇'광장'부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까지
가장 오래된 스테디셀러는 문학과지성이 1976년 펴낸 최인훈 소설 '광장'(발표는 1960년). 누적
65만부가 판매됐다. 조세희가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1978), 이문열 평역으로 출간돼 1800만부 팔렸고 올해 전자책으로도
나온 '삼국지'(1988), 조정래의 '태백산백'(1986), 김훈의 '칼의 노래'(2001) 등도 '10년+1만부 클럽' 회원이었다. 창비는
"기록이 정확하지 않지만 황석영 소설도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2001), '앵무새 죽이기'(2002) 등 외국
소설도 있었다.
시집은 극소수였다. 그래도 극강의 스테디셀러는 1998년부터 총 123만부가 판매된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평단은 외면하지만 독자는 꾸준한 성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김용택의 '시가 내게로 왔다'(2003·누적 60만부),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1989·26만부)도 뒷심이 좋다.
- 출간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이 팔리는 스테디셀러들. 맨 윗줄 ‘총, 균, 쇠’부터 맨 아랫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까지 우리 사회의 단단한 독서 지형을 보여준다. /이덕훈 기자
문학 바깥에서는 해마다 5만부씩 나간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과학 교양서 '이기적 유전자'(1993)를 비롯해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1994),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2000),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1994), 켄 블랜차드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2003) 등이 스테디셀러였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꾸준히 팔리기는 하지만 '연간 1만부' 허들을 넘지는 못했다.
◇사연 있는
스테디셀러
교보문고를 통해 올해 1~8월 스테디셀러 판매 순위를 뽑아 교차 검증했다. 출간 10년이 넘은 책 중에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1998),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2000),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1989)가
1~3위에 올라 있다〈표 참조〉.
이번 조사에서는 한국에서 유독 인기 있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알랭 드 보통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동안 책 700종을 펴낸 까치에서 '10년+1만부 클럽' 회원은 드 보통뿐이었다. 2002년 출간돼 드 보통 붐의 진원지가
된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박종만 사장은 "번역본 제목을 '왜 나는…'으로 할지 '나는 왜…'로 할지 당시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열린책들에서 '10년+1만부 클럽'에 오른 책은 베르베르가 쓴 '나무'(2003)와 '상상력 사전'(1996)밖에 없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최근에 부활했을 뿐 1만부 밑으로 주춤한 해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출판사는 '베르베르님'이 먹여 살리는
셈이다.
◇어린이 책은 구간(舊刊) 천하
160종으로 확인된 '10년+1만부 클럽'에서 3분의 1은 어린이
책으로 나타났다. 시공사와 사계절의 경우 스테디셀러는 아동서에서만 나왔다. 2011년 100만부를 돌파한 권정생의 동화 '강아지똥'을 펴낸
길벗어린이 관계자는 "그림책은 구간 중심으로 팔려 신간 진입이 힘든 시장"이라고 했다.
"커다란 커어다란 사과가 쿵!" 땅에
떨어지며 출발해 여러 동물이 파먹은 사과 아래서 비를 피하는 장면으로 닫히는 다다 히로시의 '사과가 쿵!'(1996)을 비롯해 베르너
홀츠바르트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1993), 마이클 로젠의 '곰 사냥을 떠나자'(1994), 최숙희의 '열두 띠 동물
까꿍놀이'(1998),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책 먹는 여우'(2001), 앤서니 브라운의 '미술관에 간 윌리'(2000) '돼지책'(2001),
'지각대장 존'(1996)…. 아이에게 읽히지 않고 초등학교에 보내기가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인기있는 그림책들이다.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2002), 미하엘 엔데의 '모모'(1999), 권윤덕의 '만희네 집'(1995) 등 초등학생용 동화도 여럿
포함됐다.
◇출판사 사장이 탐내는 책
출판사 사장·편집장 등 20명에게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가장
탐나는(훌륭한) 스테디셀러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최다 득표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난쏘공'(이상 3표). '그리스인 조르바' '총, 균,
쇠' '태백산맥'은 나란히 2표를 받았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1993년 전남 강진·해남 땅을 시작으로
제주까지 전국을 훑더니 올해는 일본편도 나왔다.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는 "전문가와 대중 사이의 간극을 좁혀준 책"이라며 "시리즈물은 고정 독자
1만명이 넘으면 누적·확산 효과로 스테디셀러가 되기에 유리하다"고 했다.
'난쏘공'은 도시빈민과 공장 노동자, 철거민 가족을 전면에
세운 첫 한국소설.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시대정신과 작품 형식의 완벽한 조화 같은 것이 고전을 만들어내는데, '난쏘공'이 그런 작품"이라고
말했다. 정은숙 마음산책 사장은 "'총, 균, 쇠'와 '그리스인 조르바'는 해당 분야 바깥의 독자까지 읽고 있다는 점에서 탐나는 책"이라고
했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전몽각의 '윤미네 집',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등도 훌륭한 스테디셀러로
꼽혔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스테디셀러는 신뢰할 수 있는 도서 목록이자 출판사의 자산"이라면서 "한 사회의 독서
지형과 지적 풍속도를 보여준다"고 했다.
[독자에 꾸준히 사랑받는 책들]
최인훈·광장/조세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문열
평역·삼국지/조정래·태백산맥/김훈·칼의 노래/파울로 코엘료·연금술사/하퍼 리·앵무새 죽이기/류시화·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김용택·시가 내게로 왔다/기형도·입 속의 검은 잎/리처드 도킨스·이기적 유전자/스티븐 코비·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윤기·그리스로마 신화/진중권·미학 오디세이/켄 블랜차드·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재레드 다이아몬드·총, 균, 쇠/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무라카미 하루키·상실의 시대/알랭 드 보통·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베르나르 베르베르·나무
작가 카잔차키스는 자신있게 말한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내켜서 살고있나?
물레 돌리는데 방해라며 손가락 자른 조르바가 추구하는 건
진정한 자유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이럴 줄 알았다면 이 나이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는 게 아니었다. 매번
이름 참 특이하다고 느꼈던 조선일보의 어수웅 기자가 일본에서 안식년을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 내게 연락해 '고전을 다시 읽자'라는 취지라며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글을 써 달라고 할 때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승낙할 일은 절대 아니었다. 지난 며칠 동안 난 이 책을 손에서 놓질
못하고 무척 괴로워했다. 이 느닷없는 '자유'에 대한 망상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리스인 조르바'를 네 번 읽었다. 매번 조르바가
이야기하는 자유의 의미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번처럼 진지하고 심각했던 적은 없었다.
조르바가 이 책의 주인공(카잔차키스)을
처음 만난 날 함께 일하자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주인공은 묻는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조르바는 아주 간단하고도 단호하게 말한다. "자유라는
거지!"
난 올해로 꼭 만 50살이 되었다. '자유'와 같이 철없는 단어는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 내 나이에는 '안정'
'품위' '경륜' 뭐 이런 걸 생각해야 하는 거다. 그러나 조르바는 나처럼 소심하고 비겁한 주인공에게 자꾸 묻는다. 자유롭냐고. 물론 자유롭다며
우기는 주인공에게 조르바는 이렇게 쏘아붙인다. "아니오.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고향 그리스를 떠나 74년 생애를 바람처럼 세계를
떠돌아다닌 '꿈과 여행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이다. 조르바는 작가 카잔차키스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실존인물이다. 카잔차키스는
그와 함께 지냈던 날들을 기억하며 '자유'에 관한 실존적 질문을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자세히 기록했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며 조르바식
자유에 기분이 통쾌해진다. 그러나 도대체 조르바가 이야기하는 자유가 뭔가에 관해 논리적으로 캐묻기 시작하면 조르바는 바로 이렇게 쏘아붙인다.
그따위 어설픈 생각은 '개나 물어가라지!'
자유는 논리나 사고가 아니라 행동이라는 거다. 조르바와 동업한 광산업이 망한 후 주인공은
바닷가에서 조르바로부터 춤을 배운다. 미친 듯 춤을 추며 마침내 자신을 묶고 있던 그 긴 줄에서 풀려나는 해방감을 맛본다. 먼 훗날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전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날아가 버렸을 때 자유는 바로 그 '춤'이라는 행동으로 구체화되었다고 기록한다.
자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으로부터의 자유(free from)'과 '~을 향한 자유(free to)'. 무엇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의 '소극적
자유(free from)'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도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질그릇을 만들기 위해 물레를 돌리는 데 방해가 된다며
자기의 새끼손가락을 잘라버리는 조르바식 자유가 '진정한 자유(free to)'다. 추구하는 바가 분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 아름다운 가치를
위해 자신의 손가락 정도는 자를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감동은 명확하다. 도대체 '내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도대체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난
'교수'를 내켜서 한 게 아니다. 학생들 가르치는 일이 그토록 '내키질 않아' 매번 신경질만 버럭버럭 내면서도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의
달콤함에 지금까지 온 거다.
느닷없이 다가온 '자유'라는 조르바식 질문에 견디다 못해 난 얼마 전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날부터 계속 후회하고 있다. 오늘도 난 일본 나라시의 차가운 방바닥을 뒹굴며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다. '아니, 이런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막막한 자유로움에 '쫄고 있는' 내게 조르바는 또 그런다. 그따위 두려움은 '개나 물어가라지!'
['그리스인 조르바' 140자 트윗독후감]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시각장애인 도서관에
대면 낭독봉사를 시작했는데, 제 낭독을 듣는 분은 81세의 시각장애인 이었다. 그런데도 독서량이 엄청났다. '그리스인 조르바'도 그 분께서
권해주신 것. 기회가 주어진다면 북콘서트에도 함께 참석해 다른 이들의 소감을 듣게 해 드리고 싶다." (페이스북 응모자
김성민)
심두보 노은주, 트윗 응모자 wisestone11, shinejune 등 뽑힌 5분께는 개별 통지해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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