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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여행기 (2) - Tehran / Qom

應觀 2013. 7. 28. 17:51
이란 여행기 (2) - Tehran / Qom

이란 비자를 받은 얘기를 드리겠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이란 여행을 한 2006년에도 미국 여권을 가지고 이란 관광 비자를 받는 다는 것은 매우 힘들 때였습니다. 저는 터키 여행을 끝낸 다음에 투르크메니스탄으로 가야 하는데 육로로 가는 길은 이란을 통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란 관광 비자를 받는 방법을 인터넷에 들어가서 혹시 미국 여권을 가지고 이란 관광 비자를 받은 사람이 있나 질문을 던져 봤는데 불가능 하다는 답변만 받았습니다.

그중에 터키에서 이란 관광 비자를 받는 것은 이스탄불보다 이란 국경지역에 있는 Erzurum이란 도시가 더 유리하다는 글을 읽고 Erzurum으로 갔습니다.

다음은 2006년 5월 18일 터키 여행기에 나오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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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목적지인 에르주룸에 (Erzurum) 내리니 오후 3시다. 이곳을 들리는 이유는 이곳에 이란 영사관이 있는데 이란 비자를 내기가 쉽다고 Lonely Planet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단 미국과 영국 국적의 여행자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는 단서가 있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자는 생각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Lonely Planet을 다시 읽어보니 금요일은 영사관이 휴일이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내일이 금요일이다. 회교국가에서는 금요일이 기독교 국가의 일요일이나 마찬가지인데 깜박한 것이다.

내일 영사관에 못 가면 토요일에나 갈 수 있는데 혹시 그 날도 닫으면 낭패다.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카라박 영사관을 이틀씩이나 갔다가 허탕치고 포기해버린 생각이 난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이란영사관으로 달려갔다. 오후 4시까지만 일을 본다고 Lonely Planet에 쓰여 있는데 영사관에 당도하니 3시 반이다. 혹시나 닫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을 조였는데 다행이 아직 열려 있었다. 그러나 들어가 보니 일하는 사람이 아무도 안 보인다. 다시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는데 다행히 사람이 나온다. 보통 영사관을 방문하면 우선 영사관 직원과 상대하게 마련인데 이 영사관에는 직원도 없는 모양으로 나온 사람이 영사다. 나에게는 잘된 일이다.

일이 제대로 되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여권을 소지한 한국인인데 이란 비자를 내러 왔다고 하니 처음에는 어림도 없는 얘기라는 표정을 짓더니 태도를 바꾸어서 신청서나 내보란다.

안될 것 같으면 신청서는 왜 내라나. 그러나 내봐서 손해날 것은 없겠다고 생각해서 신청서를 쓰기 시작했다. 쓰는 동안 영사의 태도가 점점 호의적으로 바뀐다. 비자허가는 이란 외무부에서 하는데 2주 후에 자기에게 전화를 하면 허가가 났는지 가르쳐주겠단다. 허가가 났으면 정식 비자 신청을 다시 해야 되는데 이스탄불에 있는 영사관에 가서 해도 되느냐고 물으니 된단다. 자기가 이스탄불 영사관에 있는 자기 친구에게 연락을 취하겠다고 한다.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비자를 내줄 것 같은 눈치다. 허가 결정은 본국 외무부에서 하지만 현지 영사가 추천만 하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www.iranianvisa.com이란 인터넷 여행사에 $40을 내고 이란비자를 신청한지가 2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심사 중이라는 얘기만 듣고 있는데 이곳 영사관 도움으로 비자를 받게 될 것 같다. 에르주룸에 온 보람이 있게 되는 모양이다. 이란 비자가 나오면 터키여행을 끝난 후 이란 여행을 하고 이란에서 투르크메니스탄 (Turkmenistan) 경유비자를 (transit visa) 얻어서 투르크메니스탄 여행을 할 수 있게 되면 모든 일이 원래 계획대로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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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월 6일 이스탄불에서 이란 관광 비자를 받았을 때의 받은 감동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됩니다. 저의 이란 사람들에 관한 좋은 감정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란 여행지도


박일선의 세계 배낭여행기(http://cafe.daum.net/elsonpark/)

2006년 6월 27일, 화요일, Tehran, Hostel Mashhad
(오늘의 경비 $16: 숙박료 60,000, 점심 20,000, 저녁 13,000, 택시 10,000, 버스 40,000, 지하철 1,000, 환율 US$1=9,000 Iranian rial)
오늘 Tabriz를 떠나서 Masuleh로 갈 계획이었는데 계획을 바꿔서 Teheran으로 갔다. 어제 관광안내소에 갔을 때 직원 Nasser 얘기가 Teheran으로 먼저 가서 다음 갈 나라 투르크메 니스탄 통과비자 비자 신청을 해 놓고 (투르크메니스탄은 관광 비자를 내는 것이 너무 힘들 어서 보통 쉽게 낼 수 있는 통과비자로 (transit visa) 4일 동안에 구경하고 출국한다) 비자 가 나올 때까지 3일 정도 기다리는 동안에 Teheran에서 Masuleh를 갔다 오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라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럴 듯 한 얘기 같아서 계획을 바꾼 것이다.
아침 7시 반쯤 숙소 앞 길가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서 Nasser가 가르쳐 준대로 "테르미 날" 하면서 10,000 리알 지폐 하나를 보이니 두말 않고 타란다. 버스 터미널까지 가는 택시 요금은 Nasser는 10,000 리알이라 하고 숙소 주인은 5,000 리알이라 했는데 5,000 리알이 맞는것 같다. 택시 운전사가 두말않고 타라는 것을 보니 10,000 리알은 후한 요금이것 같다.

Teheran 행 버스를 찾아서 올랐으나 곧 떠날 것 같던 버스가 떠날 생각을 안 한다. 버스 차장 같은 친구에게 출발시간을 물어봐도 정확한 답변을 안 하고 계속 호객만 한다. 출발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터키 버스와는 딴판이다. Teheran 행 버스가 이 버스 말고도 또 있는 것일까? 그러나 있어도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럭저럭 8시 반이 되어서야 버스가 떠났는데 이번에는 버스 터미널 주위를 빙빙 돌면서 계속 호객을 한다. 버스만 봐도 이란은 터키에도 못 미치는 후진국이다. 그러나 이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한참 만에 버스 터미널을 벗어나서 Teheran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는 오래된 볼보 모델 버스였는데 좌석은 아직도 편안하고 에어컨은 쌩쌩 잘 나왔다. 에어컨이 너무 강해서 버스 안에 있는 온도계의 온도가 14도까지 떨어진다. 옷을 더 꺼내서 입어야 할 정도로 추웠다. 이럴 때 꺼내 입을 옷이 없으면 정말 낭패다. 남미 여행 때 여러 번 혼이 나서 이제는 이럴 때를 대비해서 입을 옷을 항상 조그만 가방에 넣고 다닌다. Teheran에 도착할 때까지 전광판에 나오는 외부 온도는 38도까지 올라갔지만 버스 안 온도는 24를 넘지 않았다. 터키에서는 버스 에어컨을 트는데 아주 인색했는데 이곳은 전혀 다르다. 아무래도 휘발유 때문인 것 같다. 이란은 석유 생산국이고 터키는 석유는 안 나는 나라다. 이란 여행하는 동안 버스 에어컨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의자가 편하고 버스 안이 시원해서 두어 시간 낮잠을 잘 잤다. 버스에서 낮잠 자기는 처음인 것 같다. 버스 안에서 인도 영화를 보여준다. 작년 인도여행 생각이 났다.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터키 국경에서 Tabriz로 올 때와 마찬가지로 황량한 사막 경치다. 가끔 푸른 벌판이 나오는데 틀림없이 지하수 때문인 것 같다.
Teheran에 오후 6시 반쯤 도착했는데 버스 기사에게 부탁도 안 했는데 어느 지하철역 근처 에서 내려준다. 그래도 지하철역이 1km는 족히 되어 보였다. 짐을 지고 걸으면 아직도 더운 시간이라 땀범벅이 될 것 같아서 택시를 타려고 했더니 택시 운전사가 걸어가란다. 할 수 없이 걸어갔는데 땀범벅은 되지 않았다. 걸어가는 도중에 인상이 좋은 대학생 한 명을 만나 서 영어로 얘기를 나누면서 같이 걸어갔다. 이 대학생은 30년 전에 이란과 한국이 비슷한 시기에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한국은 성공하고 이란은 실패했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 다고 한다. 학교에서 일본 기업의 성공사례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나는 이제는 일본 기업 의 성공사례보다는 한국 기업의 성공사례를 공부하는 것이 더 배울 것이 많을 것이라고 얘기 해 주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성공사례에 관한 자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Khomeni Square 지하철역에서 내리니 어둑어둑해진다. 내 시계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고 두어 번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론리에 소개된 Hostel Mashhad를 찾았다. 허술한 건물의 2층과 3층을 차지한 호스텔인데 방도 작아도 에어컨은 잘 나온다. 어제 묵었던 숙소도 그랬는데 이곳도 여권을 숙소 사무실에서 보관시킨다. 여권을 내주는 것이 좀 찜찜했지만 아마 경찰에서 요구하는 규정인 모양이다.
어제와 오늘 쓴 비용을 보니 물가가 론리에 나오는 금액의 배다. 숙박료, 버스표, 음식 값 모두 그렇다. 지난 2년 동안에 물가가 그렇게 올랐단 말인가? 그래도 터키나 그리스에 비하면 아주 싸다. 오늘 10시간 달린 버스 값이 약 US$4인데 터키에서는 US$16은 되었을 것이다.

Tabriz에서 Teheran 가는 길은 황량한 사막인데 옛날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가 지나갔던 길인지도 모른다

가끔 푸른 벌판이 나오는데 지하수를 이용한 것이 틀림없다

버스로 10시간을 달려서 Teheran에 도착했다.

2006년 6월 28일, 수요일, Kashan, Sayyah Hotel
(오늘의 경비 $28: 숙박료 160,000, 택시 30,000, 2,000, 4,000, 2,000, 2,000, 버스 12,000, 10,000, 지하철 1,000, 복사 2,000, 식료품 26,000, 환율 $1=9,000)
나는 Teheran 관광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서 오늘 아침에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 가서 비자 신청이나 하고 Qom을 거쳐서 Kashan으로 가기로 했다. 어제 생각했던 Caspian Sea 근처에 있는 휴양도시 Masuleh로 가는 것도 포기한 셈이다.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이 몇 시에 여는지 몰라서 아침 8시까지 가기로 정하고 아침 일찍 아직도 자고 있는 숙소 직원을 깨워서 어제 밤에 맡기어 놓은 여권을 찾고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찾아가는 길을 이란어로 적어 달라고 해서 아침 7시에 숙소를 나섰다. 직원으로부터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까지 택시 요금이 30,000 리알이라는 것도 알아두었다. 택시 요금은 어느 나라나 버스 요금에 비하면 매우 비싸다. 어제 Tabriz에서 테헤란까지 10시간 동안 탄 버스 요금이 40,000 리알 이었는데 시내에서 움직이는 택시 요금이 30,000 리알이라니, 너무 비싸다. 그래야 3천 원 밖에 안 되는 돈이기는 하지만.
길가에 나가서 지나가는 택시를 세우고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주소가 적힌 종이쪽지를 택시기사에게 보이고 혹시나 해서 20,000 리알 지폐를 함께 보였더니 주소를 한참 읽어보 더니 40,000 리알을 주어야 간단다. 너무 비싸다 했더니 두말 않고 가버린다. 두 번째 택시는 숙소 직원이 말한 대로 30,000 리알을 주겠다고 했더니 금방 타란다. 숙소 직원 말이 맞았던 것이다. 대사관으로 가는 길은 매우 멀었다. 택시 기사가 대사관을 찾느라고 매우 애를 썼다. 아마 서울에서 택시 기사에게 카자흐스탄 대사관 주소를 주고 가자고 하면 마찬가지일 것이 다. 두 번이나 차안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세우고 물어보고 한 번은 차를 세우고 나가서 물어 보고 해서 간신히 찾아갔다. 운전사가 너무나 애를 쓰고 시간도 많이 소비해서 10,000 리알 을 더 주었더니 매우 고마워했다. 아마 돈보다도 사람간의 정일 것이다. 숙소 직원으로부터 이란어로 쓴 종이쪽지를 받아오지 않았더라면 큰 고생을 할 뻔했다.
아침 7시인데 벌써 덥다. 택시 안에서 햇볕이 내려 쪼이는 앞자리에 잘못 앉아서 아침인데도 땀을 흘리면서 갔다. 신호등에 걸려서 기다리는 동안에 차문을 열고 나가서 뒷좌석으로 옮겨 타려고 하니 기사가 위험하다고 못하게한다. Teheran 주위는 황무지이다. 이런데 왜 도시를 세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테헤란 자체는 오아시스인 모양이다. 테헤란 북쪽에는 높 은 산이 있는데 아직도 눈이 조금 남아있었다. 겨울에는 스키를 타는 산이란다. 전체 도시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경사가 완만하게 져있는데 북쪽은 부촌이고 그곳에 투르크메니스탄 대사 관이 있어서 테헤란의 부촌 구경 할 수 있었다. 나무가 우거진 길거리는 매우 깨끗하고 공기 도 내가 어제 밤을 보냈던 숙소가 있는 남쪽보다 깨끗한 것 같았다. Teheran은 매연이 많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정말 한참 다니니까 매연 때문인지 콧속이 매큼해진다. LA에 살 때 많 이 당했던 경험이다.
아침 8시에 대사관에 도착하니 아직도 안 열었다. 경비를 보는 경찰이 9시에 연다고 알려 준다. 아침을 안 먹어서 근처에 음식점이 있느냐고 물으니 근처에는 없고 가려면 택시를 타고 가야한단다. 부촌이라 음식점도 없는가 보다. 할 수 없이 대사관 계단에 배낭을 놓고 그 위에 앉아서 책을 보면서 기다렸다. 9시 15분되니까 비자 창구 창문이 열린다. 나보다 나중에 온 이란 사람 둘이 먼저 일을 보려고 창구로 다가가는데 여권을 한 묵음씩 들고 있다. 여행사 사람들이 틀림없다. 이 사람들이 일을 다 볼 때까지 기다리자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내가 제일 먼저 왔다고 양해를 구하고 영사에게 통과 비자를 내려 왔다하니 당장 우즈베키스탄 비자가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투르크메니스탄 통과 비자를 받으려면 우즈베키스탄 비자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즈베키스탄 비자를 미리 내 가지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비자를 있다고 하니 여권을 보자 한다. 여권을 보여 주었더니 미국 여권인데 이란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느냐고 묻는다. 이란 비자를 내는데 문제가 없었느냐고 묻는 것인지 이란에 입국해서 문제가 없었느냐고 묻는 것인지 확실치 않았지만 없었다고 하니 좀 예상 밖이라는 눈치다. 혹시 앞으로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지 좀 걱정이 되는데 별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여권과 투르크메니스탄 비자 복사를 해 오라는데 복사하는 곳이 근처에 안 보인다. 부촌이라 그런지 주위에는 거대한 저택들만 보인다. 한참을 걸어가서야 복사하는 곳이 있어서 복사를 해 가지고 와서 신청을 했다. 앞으로 여권 사본은 꼭 가지고 다녀야겠다. 비자는 투르크메니 스탄 국경 도시인 Mashhad에 있는 영사관에서 받고 싶다고 했더니 10일 후에 그곳에서 비자 신청을 하고 발급을 받으란다. 지금 하는 것은 정식 비자 신청이 아니고 투르크메니스 탄 외무부에 내 여권과 우즈베키스탄 비자 사본을 보내서 본국의 허가를 받는 신청을 하는 것이란다. 일단 투르크메니스탄 외무부의 허가가 나오고 Mashhad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영사관에 정식 비자 신청을 하면 그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고 2, 3일 기다려야 나온단다. 세상 급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여행객에게 불편이 되거나 말거나 자기네 식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도 영사 인상이 참 좋고 친절하게 대해준다.
대사관 일이 끝나고 지하철역을 찾아가려 하는데 그게 또 쉽지 않다. 영사에게 물어보니 모 른단다. 아마 지하철을 타지 않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설명을 해주는데 너무 복잡하다. 어느 친절한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힘들게 지하철역을 찾아서 지하철에 올랐다.

Teheran을 떠나기 전에 딱 한 군데 구경을 하고 싶은 곳이 있었다. 옛 미국대사관 건물을 가 보고 싶은 것이다. 1970년대에 이란 데모군중이 미국대사관을 점거하고 대사관 직원들을 납 치할 때 미국에서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면서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던 곳이 다. 미국대사관 건물 근처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출구로 나오니 바로 앞에 있었다. 다른 사람 들의 눈치를 봐가면서 빨리 사진을 몇 장을 찍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들어왔다. 혹시나 감시 원이 숨어서 지키고 있다가 나타나지 않을까 해서 겁이 좀 났다. 옛날 데모 장면이 다시 살아 나는 기분을 느꼈다. 성난 데모 군중이 대사관의 높은 담을 넘어서 들어왔을 때 대사관 직원 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마 죽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내가 사진 찍는 것을 보고 젊은이 두어 명이 웃으며 지나간다.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버스 정거장에 도착하여서 Kashan까지 직접 갈까, Qom을 들려서 갈까 하다가 Qom을 들러 가기로 결정을 하고 Qom 버스에 올랐다. Qom으로 가는 동안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와 이란에 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이란 젊은이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 젊은이는 이란 정부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다. 제일 큰 불만은 이란 정부가 현대화의 길을 걷지 않고 너무 회교만 고집하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 의 이란 젊은이들이 같은 생각일 것이다. 이란 정부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회교를 믿도록 하겠다는 엉뚱한 꿈까지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 재미있는 얘기는 이란이 석유 산유국 인 것이 이란에게는 큰 불행이라고 한다. 석유 산업 외에는 다른 산업은 전혀 발전하지 못하 고 있는 이유가 산유국이기 때문이란다. 이란에 석유가 없었더라면 한국처럼 다른 산업을 일 으켰을 수도 있었는데 석유로 쉽게 외화를 벌어드릴 수 있으니 나태해저서 다른 산업을 일으 킬 의욕을 상실했다 한다.
이란 회교의 본산지라는 Qom에 내려서는 고생만 하고 구경도 제대로 못했다. 너무 더워서 정신을 제대로 가다듬을 수 없었다. 버스에서 만난 젊은이 도움으로 Qom의 제일의 볼거리 라는 Masumeh 회교사원에 합승 택시를 타고 찾아갔으나 회교 교인이 아니면 들어 갈 수 없 단다. 들어갈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고 밖에서 사진이나 몇 장 찍고 가려고 했는데 높은 담 때 문에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었다. 고생 고생하면서 간신히 Kashan 가는 버스를 찾아서 오르니 너무나 더운데서 헤매서 정신이 어찔어찔했다.
잠깐 달려서 Kashan에 도착했다. 도대체 이런 사막 한 가운데 Qom이나 Kashan 같은 도시가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란을 들어온 후에 보이는 이란 땅은 모두 사람이 살 수 없어 보이는 황량한 땅뿐이다. 땅도 산도 공기도 모두 황색이다. 아마 앞으로 볼 이란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란의 국토는 대부분이 사막이고 가끔 푸른 오아시스의 지역이 있는 모양이다. 벌써 북 인도나 네팔의 푸르고 시원한 산 생각이 간절히 난다.
Kashan에는 수십 년 되어 보이는 소나무 숲이 많았다. 사막 한 가운데 소나무 숲이 있다니, 좀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이 조성한 소나무 숲인데 왜 하필 소나무 숲을 만들었을까? 소나무 숲이 끝나는 곳에는 끝없이 넓은 사막이 시작된다. 버스 정거장에 내리니 너무나 더워서 금방 정신이 어찔어찔 해진다. 빨리 호텔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쉬고 싶은 생각뿐이다. 택시를 잡아타니 기사가 Sayyah 호텔로 가느냐고 묻는다.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 호텔인 모양이다. Sayyah 호텔보다 좀 싼 호텔로 가고 싶었지만 기사가 제대로 찾을 것 같지도 않고 이곳에서는 좀 좋은 곳에서 쉬고 싶어서 기사에게 Sayyah 호텔로 가자고 했다.

호텔에 당도하니 매니저가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 호텔도 그럴 듯 하다. 욕실이 붙어있는 방은 250,000 리알이고 그렇지 않은 방은 160,000 리알이라고 해서 욕실이 없는 방을 택했다. 방은 널찍하고 에어컨이 있고 텔레비전과 조그만 책상과 의자도 있고 세면대도 있다. 욕실은 바로 방문 밖에 있다. 그만하면 쉬어 갈 만 하다. 이란에 들어와서 방 값이 40,000 리알, 60,000 리알, 160,000 리알로 계속 오른다. 160,000 리알이래야 우리 돈으로 만 6천 원 정도이고 터키나 그리스보다는 훨씬 싸다. 이란에서는 너무 더워서 좀 편하게 여행을 해야지 돈 좀 아끼려고 하다가는 병나게 생겼다.
호텔 매니저에게 부탁해서 내일 근처에 있는 Abyaneh라는 마을 구경 가기 위해서 택시를 왕복 120,000 리알에 예약했다. 영어를 하는 호텔 매니저가 있으니 일들이 척척 잘 풀린다.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은 나무가 우거진 테헤란 북쪽 산 밑 부촌에 있었다

"U.S. Den of Espionage"로 불리는 전 미국대사관 건물,

정문에는 반미 현수막과 문구가 보인다

전 미국대사관 담벼락에 그려진 반미 벽화

전 미국대사관 경내를 둘러싸고 있는 담,

1970년대 성난 군중이 이 담을 둘러싸고 데모를 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테헤란 남쪽 110Km 지점에 있는 이란 회교 본거지

Qom의 Masumeh 회교사원에는 회교 교인이나 들어갈 수 있다

Kashan의 소나무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