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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사정(烏鳥私情)

應觀 2022. 1. 16. 06:45
까마귀의 사사로운 정. 까마귀가 자라면 그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이듯 부모를 모시는 지극한 효성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진(晉)나라 무양(武陽) 사람 이밀(李密)은 원래 촉한(蜀漢)에서 벼슬을 한 사람이다. 그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네 살 때 어머니도 개가하여 조모 유씨(劉氏) 손에 자랐으므로 조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였다. 진나라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은 이밀을 태자선마(太子洗馬)에 임명했는데, 이때 이밀의 조모 유씨는 90세가 넘은 노구로 병석에 있었다. 이밀은 조모를 봉양해야 하므로 명을 따를 수 없다는 내용의 〈진정표(陳情表)〉를 올렸는데, 무제는 이 글을 읽고 이밀의 효심에 감동하여 관직에 임명하려던 뜻을 거둔 것은 물론, 이밀이 조모를 잘 봉양할 수 있도록 노비와 식량까지 하사하였다. 〈진정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신하 밀은 말씀드립니다. 신이 죄가 깊고 어려움이 많아 일찍이 우환과 상사를 만나,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걸을 만한 나이인 네 살에 외삼촌이 어머니의 뜻을 빼앗으니(재가를 시키니), 외할머니 유씨가 신의 외롭고 약함을 불쌍히 여겨 몸소 어루만지고 길렀습니다. 신이 어려서 질병이 많아 아홉 살이 되도록 움직이지 못하고, 외롭고 약하고 괴롭게 지내면서 성년에 이르렀습니다. 작은아버지나 큰아버지도 없고, 형제도 없었으며, 가문이 쇠하고 복도 없어 만년에야 자식을 두었으니, 밖으로는 상복을 입어 주거나 억지로라도 가까이 지낼 친척도 없고, 안으로는 문에서 맞이해 줄 아이 종도 없이 외롭디 외롭게 홀로 서 있어 형체(몸)와 그림자가 서로 위로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조모 유씨가 일찍이 질병에 걸려, 항상 침상의 요에 누워 있어 신이 탕약을 모셔 일찍이 버리고 떠난 적이 없습니다.

성스러운 왕조를 받듦에 이르러 교화를 듬뿍 입게 되어, 전 태수인 신하 규가 신을 효렴으로 천거했으며, 후에 자사인 신하 영이 신을 수재로 천거했습니다만, 신이 조모를 공양할 사람이 없어 사양하고 명을 좇지 아니하였더니, 밝은 조칙이 특별히 내려와 신을 낭중으로 배수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국가의 은혜를 입어, 신을 선마에 제수하였으며, 외람되게도 미천한 것으로써 동궁을 보좌하도록 하였으니, 신이 목숨을 바쳐도 능히 보답을 올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신이 표를 갖추어 알려 사양하고 직책에나아가지 아니하였더니, 조서가 간절하고 준엄하여 신이 회피하고 오만하게 굴음을 꾸짖었습니다. 군과 현의 지방장관들이 재촉하여 신을 부임길에 오르도록 독촉하고, 주(州)의 관리가 문까지 임하여 (재촉함이) 급하기가 유성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 다급했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성스러운 왕조가 효로써 천하를 다스려, 무릇 연로한 사람에 있어서 오히려 가엽게 여겨 무육(撫育, 어루만지고 기름)하는 은혜를 입는다고 하는데, 신은 외롭고 힘듦이 특히 더욱 심합니다. 신은 또한 거짓 왕조(촉한)에서 조금 일을 하여 낭서에서 두루 관직을 거쳤으며, 본시 관직의 현달을 꾀하여 청명이나 절조를 숭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신은 망국의 미천한 포로로서 지극히 작고 지극히 천한데, 과분하게 발탁을 입어 총애로 내린 명령이 두텁기만 한데 어찌 감히 머뭇거리며 희구함이 있겠습니까? 다만 조모 유씨가 해가 서산에 가까워져 희미해지는 것처럼 숨이 곧 끊어질 듯하니, 목숨이 위태로워 아침에 저녁 일을 알 수 없습니다.

신은 조모가 없었더라면 오늘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며, 조모는 신이 없으면 여생을 마칠 수 없을 것이니, 조모와 손자 두 사람이 서로 목숨을 의지하는 까닭에 구차스럽게 폐하고 멀리 갈 수가 없습니다. 신 밀은 올해 44세이고 조모 유씨는 96세이니, 신이 폐하께 절의를 다할 날은 길고, 유씨를 봉양할 날은 짧습니다. 까마귀가 먹이를 물어다 늙은 어미에게 먹여 은혜를 갚듯이, 조모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봉양하게 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신의 고충은 촉(蜀) 땅의 인사들뿐 아니라 양주(梁州)와 익주(益州)의 장관들까지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천지가 실로 함께 살펴보고 있는 바입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어리석은 정성을 가엾게 여겨 신의 작은 뜻을 들어주십시오. 조모 유씨가 요행히 여생을 끝까지 보존하게 된다면 신은 살아서는 마땅히 목숨을 바칠 것이요, 죽어서는 결초보은할 것입니다. 신은 두려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절하며 표를 올려 아룁니다.

‘오조사정’은 까마귀가 자라면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이듯이 부모님을 모시는 효성을 말한다. 〈진정표〉는 이를 읽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읽고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는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 읽고 울지 않으면 우애를 모르는 자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한유(韓愈)의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과 더불어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명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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