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청 현관으로 짛은지 얼마 않되어 보인다.
시청 주변도 몰라보게 발전했다
무봉리 들머리를 찾다가 화성시청옆에 위치한 묘가 있어 가보니 청풍김씨 신빈 묘이다.
후대의 평이 아주 좋아 관심을 가지고 묘 주변을 살피고 인사 드렸다.
본관은 청풍이며, 아버지는 김원이고 어머니는 삭녕고씨이다. 원래 내자시의 여종이었으나, 1418년(세종 즉위년) 13세의 나이로 원경왕후에게 발탁되어 소헌왕후의 궁인이 되었다. 훗날 세종의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었고, 1427년(세종 9년) 장남 계양군을 출산하였다. 그 후 정2품 소의를 거쳐 1439년(세종 21년) 종1품 귀인에 진봉되었다. 당시 세종이 도승지 김돈에게 "김씨의 출신이 천하지만 13세부터 궁중에 들어와 행실이 바르기에 빈이나 귀인으로 삼고자 하는데 어떠하냐" 고 묻자 김돈이 신개 등과 의논해 귀인으로 승격시켰다.이후 정1품 신빈(愼嬪)에 책봉되었다.
그녀는 천성이 부드럽고 매사에 조심스러워 소헌왕후에게도 사랑을 받았으며, 소헌왕후는 그녀에게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유모 역할을 맡기기도 하였다.[2] 또한 그녀는 평소에 불교를 신봉했었는데, 세종이 죽고나서는 아예 여승이 되어 살았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사망한 막내아들 담양군을 위한 경문 인쇄 비용으로 조정에서 쌀 500석을 하사받았으며, 1452년(단종 즉위년)에는 단종이 그녀의 아들 의창군의 청원에 의해 그녀에게 머리를 기르도록 명령하였지만 이를 거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464년(세조 10년) 음력 9월 4일 59세를 일기로 죽었으며, 세조는 쌀, 콩등 모두 70석(石)을 부의로 내렸다. 그녀의 묘 《화성 남양리 신빈김씨 묘역》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에 있다. 묘 주위에는 세조 11년(1465)에 세운 묘갈(墓碣:무덤 앞에 별다른 장식없이 세우는 작은 비석)과 묘비, 불을 밝히기 위한 장명등(長明燈), 문인석 1쌍, 제물을 올리고 제사를 올리기 위한 상석(床石)이 있으며 묘 주위는 돌담으로 둘러 싸여 있다. 1994년 경기도의 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오른손은 가슴 부위로 올리고 왼손은 수평으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 모습을 하고 결가부좌로 앉아 있다. 안정적인 신체비례와 당당한 체구, 머리와 경계가 없는 낮은 육계, 뚜렷한 이목구비, 양감 있는 가슴과 배가 특징이다. 얼굴은 이마가 넓고 턱 부분이 둥글고 갸름한 편이며 반개한 눈에 오똑한 콧날, 외곽선이 뚜렷한 입술로 부드러우면서도 위엄있는 표정이다. 착의법은 안에 편삼을 입고 그 위에 변형편단우견으로 대의를 걸친 변형통견식이다. 옷주름은 사실적인데 특히 대의가 왼쪽 어깨로 넘어가면서 형성된 좁은 잔주름은 이 불상의 특징으로 특히 13세기 여래상에 나타나는 표현이다. 또한 무릎 아래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자락과 왼쪽 무릎 위로 대의자락이 흘러내리면서 나뭇잎처럼 접힌 옷자락도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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