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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문학산책] 편집증 시아버님, 분열증 지아비

應觀 2015. 10. 1. 10:09

박해현의 문학산책] 편집증 시아버님, 분열증 지아비

  • 여럿 앞에서 아들 흉본 英祖와 연쇄살인자 사도세자 실상을
    죄스럽지만 기록해야 했다는 혜경궁 홍씨 서사적 心理 해부
    시대·언어 초월한 '한중록'이 널리 읽혀 넋이라도 위로받길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사진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사건은 임오년(1762년)에 일어났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임오화변(壬午禍變)'이라고 했다. 영조 시대엔 '뒤주'란 말조차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 조정에선 '일물(一物)'이라고 에둘러 불렀다. 영조는 일부러 모른 척했다. 영조는 '일물'을 거론한 신하를 잡아들여 "너희가 말한 일물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다. 신하가 "전하, 진정 일물을 모르시오"라고 했더니 영조는 그제야 "임금을 공격한 대역죄인"이라며 사형시켰다고 한다.

혜경궁 홍씨는 아들 정조가 집권한 뒤 예순 살이 지나서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다. 10여 년 사이 정조를 잃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서너 차례 국한문 혼용으로 집필한 끝에 탈고했다. 후대 사람들이 필사본을 모아 홍씨의 한 맺힌 삶을 담아 '한중록(恨中錄)'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종실록엔 '한중만록(閒中漫錄)' '읍혈록(泣血錄)'이라 적혀 있다. 2010년 '한중록'을 현대어로 옮기고 해제를 붙인 정병설 서울대 교수는 "'恨中錄'은 조선시대에 책 이름 짓는 일반적 방법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閒中錄'이나 '閑中錄'으로 줄여 부르는 것도 무방할 것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정 교수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서술 부분의 문학성을 높이 쳤다. "동시대는 물론 현대에서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심리 해부의 대서사"라고 한 것이다. 개봉 보름 만에 관객 4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사도'는 '한중록'의 일화를 거의 그대로 각색했다. 영화는 사도세자가 비단에 용을 그려 침실에 걸어뒀다는 기록과는 달리 부채에 그린 것으로 묘사했지만 상영 시간 내내 '한중록'의 사건과 인물 묘사를 최대한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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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서 시아버지와 지아비를 모두 변호하면서도 비판했다. 사도세자가 천성은 착하지만 화병에 걸렸기에 영조가 종묘사직을 위해 '대처분(大處分)'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애통은 애통이고 의리(義理)는 의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중록'을 자세히 읽으면 홍씨의 본심이 드러난다. 영조는 편집증 증세를 보였고, 사도세자는 분열증을 앓았다는 것이다. 영조는 불길한 말을 주고받으면 양치질하고 귀를 씻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누나 화협옹주도 미워해 귀 씻은 물을 그녀의 거처가 있는 쪽으로 버렸다. 사도세자를 밤늦게 불러 "밥 먹었느냐"고 물은 뒤 그대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사도세자는 누나를 만나 "우리 남매는 귀 씻을 물이로다"라고 한탄했다.

홍씨는 시아버지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겨 등극한 뒤 이인좌의 난도 겪어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생각하시다가 이것이 거의 병환이 되신 듯싶으나"라고 안타까워했다. 홍씨는 영조가 아들의 결점을 굳이 여러 사람 앞에서 뱉어내길 즐겼다고 적었다. "아드님이 혹 못 미더워도 아버님께서 갈수록 사랑을 드리우시면 될 것인데, 아무 까닭도 없이 저절로 구르고 굴러 일이 그리까지 되었으니"라고 원망한 것이다. 홍씨는 "두 분의 부덕을 드러내는 듯 죄스러운 마음이 들되 실상을 아니 기록하지 못하니, 종이를 대하여 가슴이 막힐 뿐이로다"고 조심스러워했다. 그런데 어쩌면 그토록 상세하게 잘 묘사했는지 감탄이 나온다. 오래 삭인 분노와 포한의 깊이가 살아 있다.

홍씨는 남편이 착한 사람이었다고 적었지만 실제 사도세자는 연쇄살인마였다. 화병이 도지면 내관과 나인을 함부로 죽였다. '한중록'은 사도세자가 아들을 둘이나 낳은 첩이 외출을 막는다고 해서 때려죽였다고 전한다. 홍씨는 남편이 던진 바둑판에 왼쪽 눈을 맞아 실명할 뻔했다. 그녀는 "그때 이것저것 뭐라 할 것 없이 여러 가지로 애쓰던 말이야 어찌 다 형용하리오"라고 말을 아꼈다. 그래도 남편이 내관의 머리를 벤 참상은 자세히 묘사했다.

2004년 영국 여성 작가 마거릿 드래블이 '한중록' 영역본을 읽고 소설 '붉은 왕세자빈(The Red Queen)'을 써서 출간했다. 소설의 제1부는 홍씨의 혼령이 영국 독자를 향해 저간의 사정을 들려주는 고백체로 꾸며졌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드래블은 홍씨의 입을 빌려 "사도세자의 이름이 서양인들에겐 사드(Sade)와 비슷해 기억하기 좋다"고 우스개를 던지기도 했다. 드래블의 소설은 남성 중심 사회의 폭력에 낀 여성의 희생을 그린 페미니즘 문학으로 평가됐다.

'한중록'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또 현대소설처럼 인간의 복잡한 심층 심리를 보여준다. 시대와 언어를 초월한 문학성을 지니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빈틈을 채워 '역사 뒤집어 읽기'도 제공한다. 물론 홍씨의 서술이 때로는 다른 사료와 어긋나기도 한다. 홍씨의 편견도 적지 않다. 그만큼 개인의 언어로 쓰인 서사라는 점에서 현대소설처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 '사도'는 '한중록'의 여러 해석 중 하나일 뿐이다. 영화 덕분에 '한중록'이 더 많이 읽히길 바란다. 그래야 시대를 앞선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한 홍씨의 넋이 조금은 위안을 받지 않을까.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