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종교와 나

법화경 6-2(견보탑품)

應觀 2013. 1. 26. 14:49

 

 

묘법연화경 강좌 제6강-2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9. 09 -

법화경을 설하는 규칙 이라고 해서 弘經三軌(홍경삼궤). 설법삼궤.

세 가지 규칙을 이야기를 합니다. 아주 중요한 말이 나오고, 열반에 드신 석주 큰스님께서 서예를 잘 하시는데 그 스님께서 먹필 글씨를 쓰실 때 마다, 아주 제일 많이 쓰시는 글씨가 있습니다. 그것이 慈ㆍ室ㆍ忍ㆍ衣(자실인의) 그것이 여기에 나오는, 이 대목에 나오는 글입니다. 참 좋은 말이지요.

六 법화경을 설하는 규칙

藥王(약왕)아 若有善男子善女人(약유선남자선여인)이

如來滅後(여래멸후)에 欲爲四衆(욕위사중)하야

說是法華經者(설시법화경자)는 云何應說(운하응설)고

是善男子善女人(시선남자선녀인)은 入如來室(입여래실)하고

着如來衣(착여래의)하며 坐如來座(좌여래좌)라사

爾乃應爲四衆(이내응위사중)하야 廣說斯經(광설사경)이니

如來室者(여래실자)는 一切衆生中(일체중생중)에

大慈悲心是(대자비심시)요 如來衣者(여래의자)는

柔和忍辱心是(유화인욕심시)요 如來座者(여래좌자)는

一切法空是(일체법공시)니 安住是中然後(안주시중연후)에

以不懈怠心(이불해태심)으로

爲諸菩薩及四衆(위제보살급사중)하야

廣說是法華經(광설시법화경)이니라

藥王(약왕)아 若有善男子善女人(약유선남자선여인)이,

만약에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如來滅後(여래멸후)에, 여래가 열반에 든 뒤에 欲爲四衆(욕위사중)하야, 사부대중을 위해서

說是法華經者(설시법화경자)는, 이 법화경을 설하고자 하는 사람은

云何應說(운하응설)고? 어떻게 잘 맞춰서 설해야할 것인가?

법화경을 설하는 규칙이지요.

是善男子善女人(시선남자선여인)은, 이 선남자 선여인은

入如來室(입여래실)하고, 여래 방에 들어가고

着如來衣(착여래의)하며, 여래 옷을 입고

坐如來座(좌여래좌)라사, 여래의 자리에 앉아야

爾乃應爲四衆(이내응위사중)하야, 이에 능히, 응당히 사부대중을 위해서

廣說斯經(광설사경)이니, 이 경을 널리 설하는 것이 된다.

如來室者(여래실자). 여래의 방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一切衆生中(일체중생중)에, 일체중생 가운데 大慈悲心이 是(대자비심시)요.

그러니까 일체중생들을 큰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여래의 방이다 하는 것입니다. 참 이런 표현이 아주 대단하지요.

慈悲(자비)ㆍ忍辱(인욕). 그 다음에

如來衣者(여래의자). 여래 옷을 입고 설해야 된다 라고 하는

그 옷이란 柔和忍辱心是(유화인욕심시)다. 부드럽고 화목하고 그리고 참고 하는 그런 마음, 柔和忍辱心. 그래서 이것을 대 자비심을 慈. 그래서 慈室. 柔和忍辱할 때 忍辱을 옷 衣자. 慈ㆍ室ㆍ忍ㆍ衣라. 이렇게 많이 글을 쓰지요. 그 다음에

如來座者(여래좌자). 여래좌라고 하는 것은, 이것 법화경시험에 꼭 나옵니다. 弘經三軌(홍경삼궤). 여래좌라고 하는 것은, 여래자리라고 하는 것은 뭐냐? 一切法空이 是(일체법공시)다. 일체 법이, 모든 존재가 근본적으로 “空 하다.” 고 하는 이 사실을 꿰뚫어 봐야 된다. 이것이 불교의 어떤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 空ㆍ無我ㆍ緣起(공 무아 연기)라고 하는 것. 이것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요. 그래야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타인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열심히 보살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무아사상ㆍ공사상. 이것이 제대로 무장이 되어 있지 아니 하면, 늘 자기 돌보느라고, 늘 자기 돌보느라고 딴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헌신적으로 보살행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여기서 여래의 자리에 앉아야 된다. 여래의 자리란 뭐냐?

일체존재 모두가 “空 하다.” 고 하는 것이 이것이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安住是中然後(안주시중연후)에, 이러한 가운데 安住한, 편안히 머문 연후에, 慈ㆍ室ㆍ忍ㆍ衣ㆍ空ㆍ坐(자실인의공좌). 두 자로 표현 하려면 자실인의, 공좌.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慈ㆍ室ㆍ忍ㆍ衣ㆍ空ㆍ坐. 이러한 가운데 편안히 머문 연후에 以不懈怠心(이불해태심)으로, 해태하지 않는 마음으로써, 爲諸菩薩及四衆(위제보살급사중)하야, 제 보살과 사부대중들을 위해서 廣說是法華經(광설시법화경)이니라. 널리 법화경을 설할지니라.

그랬습니다. 이것은 참 아주 중요한 대목이지요.

법화경을 설하는 규칙 이것은 아주 기본입니다. 그 외에 저 뒤에 안락행품에 가면 네 가지의 어떤 자세를 갖춰야 된다 해서 身口意(신구의) 3업을 어떻게 해야 되고, 또 어떤 원력을 세워야 말하자면 법화경을 제대로 펼 수가 있다. 불교의 진리를 제대로 펼 수가 있다. 하는 그런 이야기도 뒤에 나옵니다만, 여기는 아주 기본적인 것 세 가지입니다. 그 다음에

七 설법인을 위하여

藥王(약왕)아 我於餘國遣化人(아어여국견화인)하야

爲其集聽法衆중(위기집청법)하며

亦遣化比丘比丘尼(역견화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하야 聽其說法(청기설법)하니

是諸化人(시제화인)이 聞法信受(문법신수)하고

隨順不逆(수순불역)하며 若說法者(약설법자)가

在空閑處(재공한처)어든 我時廣遣天龍鬼神(아시광견천용귀신)과

乾闥婆阿修羅等(건달바아수라등)하야 聽其說法(청기설법)하며

我雖在異國(아수재이국)이나 時時令說法者(시시영설법자)로

得見我身(득견아신)케하며 若於此經(약어차경)에

忘失句逗(망실구두)어든 我還爲說(아환위설)하야

令得具足(영득구족)이니라

藥王(약왕)아 我於餘國遣化人(아어여국견화인)하야, 내가 다른 나라에 변화한 사람. 변화한 사람을 보내가지고서

爲其集聽法衆중(위기집청법)하며, 그들을 위해서 聽法衆. 법을 듣는 대중들을 모으며 亦遣化比丘比丘尼(역견화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 또 변화한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보내서

聽其說法(청기설법)하니, 그가 설법 하는 것을 듣게 하나니

是諸化人(시제화인)이, 이 모든 변화한 사람이

聞法信受(문법신수)하고, 법을 듣고 믿고 받아 지니고

隨順不逆(수순불역)하며, 수순해서 거슬리지 아니하며

若說法者(약설법자)가, 만약에 설법하는 자가

在空閑處(재공한처)어든, 空閑處에 있어서, 아주 텅비고 한적한 그런 곳에 있게 되거든, 我時廣遣天龍鬼神(아시광견천용귀신). 내가 그 때에 널리

天ㆍ龍ㆍ鬼神ㆍ乾闥婆ㆍ阿修羅等(건달바아수라등)을 보내 가지고서,

聽其說法(청기설법)하며, 그의 설법 하는 것을 듣게 하며

我雖在異國(아수재이국)이나, 내가 비록 다른 국토에 있다 하더라도

時時令說法者(시시영설법자)로, 때때로 그로 하여금 설법하게 하므로

得見我身(득견아신)케하며, 내 몸을 보게 한다 이 것이지요.

그러니까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을 때 그러면 혼자 어떻게 법화경을 설하겠습니까? 그것 안 되지요. 그럴 경우. 석가모니부처님이, 당신이 어떤 요술로 변화해서 만든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보내서라도,

그 사람이 이 법화경을 그들에게 설하도록 한다 이 겁니다.

그렇게 이 법화경이 이 세상에 널리 퍼지게 하고, 잠자지 않게 하고, 항상 활동하게 하는 그런 아주 비원. 부처님의 비원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 설법 인을 위하여 제목이 그렇지요.

若於此經(약어차경)에, 만약 이 경전에

忘失句逗(망실구두)어든, 만약에 구절이나 토나 아니면 무슨 글자 뜻이나 글자 새기는 방법이나 이런 것을 잊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저도 자주 잊어버리는데, 그런 것을 잊어버리게 되면, 我還爲說(아환위설)이야, 내가 보내가지고서, 그들에게 보내가지고 그를 위하여 도리어 설하게 해서

令得具足(영득구족). 맞추게 한다 이 겁니다. 모르는 글자는 알게 해주고, 모르는 법수는 기억시켜주고, 또 참고로 이렇게 참고서를 갖다 주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제대로 설법 할 수 있도록 까지 한다. 이렇게 부처님이 법화경에 대한 애착이지요.

법화경에 대한 애착과 또 애착이, 많은 사람들에게 잠자지 않고 널리 전파되기를 위한 그런 마음을 여기다 담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법사는 혼자 있는데,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다 이 겁니다.

그러면 부처님이 변화한 사람, 요술로 만들어 가지고라도 사람을 보내서,

법화경이 설해지도록 한다 까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정말 부처님의 이 법화경에 대한 애착. 그것은 아주 대단합니다.

어떤 경전에도 이런 표현은 없어요. 그리고 간혹 나오지만,

내가 열반을 앞두고 최후로 인류에게 던져주고자 하는 마지막 메시지다. 이런 식으로까지 표현을 하고 있잖습니까? 그러면 정말 저 피를 토하고 저 간을 토하는 듯한, 그런 어떤 느낌으로 이 법화경을 설했다. 이렇게 말 할 수가 있습니다.

八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1 법화경과 불지혜

爾時世尊(이시세존)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欲捨諸懈怠(욕사제해태)인댄 應當聽此經(응당청차경)이니

是經難得聞(시경난득문)이며 信受者亦難(신수자역난)이라

如人渴須水(여인갈수수)穿鑿於高原(천착어고원)하대

猶見乾燥土(유견건조토)知去水尙遠(지거수상원)이나

漸見濕土泥(점견습토니)하면 決定知近水(결정지근수)니라

藥王汝當知(약왕여당지)하라 如是諸人等(여시제인등)

不聞法華經(불문법화경)하면 去佛智甚遠(거불지심원)이나

若聞是深經( 약문시심경)하면 決了聲聞法(결료성문법)하나니

是諸經之王(시제경지왕)이라 聞已諦思惟(문이제사유)하면

當知此人等(당지차인등)은 近於佛智慧(근어불지혜)니라

2 법화경을 설하는 규칙

若人說此經(약인설차경)인댄 應入如來室(응입여래실)하야

著於如來衣(착어여래의)하며 而坐如來座(이좌여래좌)라사

處衆無所畏(처중무소외)하야 廣爲分別說(광위분별설)이니라

大慈悲爲室(대자비위실)하고 柔和忍辱衣(유화인욕의)

諸法空爲座(제법공위좌)하야 處此爲說法(처차위설법)하며

若說此經時(약설차경시)有人惡口罵(유인악구매)하야

加刀杖瓦石(가도장와석)이라도 念佛故應忍(념불고응인)이니라

3 설법인을 위하여

我千萬億土(아천만억토)現淨堅固身(현정견고신)하야

於無量億劫(어무량억겁)爲衆生說法(위중생설법)하며

若我滅度後(약아멸도후)能說此經者(능설차경자)

我遣化四衆(아견화사중)比丘比丘尼(비구비구니)

及淸信士女(급청신사녀)하야 供養於法師(공양어법사)하고

引導諸衆生(인도제중생)하야 集之令聽法(집지령청법)하며

若人欲加惡(약인욕가악)하야 刀杖及瓦石(도장급와석)하면

則遣變化人(즉견변화인)하야 爲之作衛護(위지작위호)하며

若說法之人(약설법지인)獨在空閑處(독재공한처)하야

寂寞無人聲(적막무인성)하고 讀誦此經典(독송차경전)하면

我爾時爲現(아이시위현) 淸淨光明身(청정광명신)하며

若忘失章句(약망실장구)爲說令通利(위설령통리)하며

若人具是德(약인구시덕)하야 或爲四衆說(혹위사중설)하고

空處讀誦經(공처독송경)하면 皆得見我身(개득견아신)하며

若人在空閑(약인재공한)하면 我遣天龍王(아견천룡왕)

夜叉鬼神等(야차귀신등)하야 爲作聽法衆(위작청법중)하며

是人樂說法(시인낙설법)하야 分別無罣礙(분별무괘애)하면

諸佛護念故(제불호념고)로 能令大衆喜(능령대중희)니라

若親近法師(약친근법사)하야 速得菩薩道(속득보살도)인댄

隨順是師學( 수순시사학)이니 得見恒沙佛(득견항사불)이니라

法師品 第十終

제11 견보탑품(見寶塔品)

一 칠보탑이 솟아오르다 라고 했는데요. 이 칠보탑은 우리 인간의 궁극적 차원에서 본 그런 아름다운 내면. 그리고 아주 무궁무진한 어떤 그 능력과 영원한 생명을 가진 그런 우리의 본래인. 영원한 생명으로써의 우리들 자신. 이것을 다보탑이라고 그래요. 구체적으로는 다보탑인데 여기서 보탑이라고 그래요. 불국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이지요.

그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구조물은 다보탑입니다. 정말 다보탑은 보면 어떻게 그렇게 흙을 빚어서 만들어도 그렇게 만들 수 없을 정도로 돌을 잘 깎아가지고 그렇게 아름답게 했습니다. 가장 이 세상에서 탑 중에서는 제일 아름다운 탑이지요.

그리고 그 아름다운 탑이 있는 불국사는 역시 제일 아름다운,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찰입니다. 그것은 이 법화경을 지상에다가 어떤 구조물로 표현해본 것입니다. 그래서 불국사는 밤 낮 없이ㆍ자나 깨나ㆍ오나가나 항상 법화경을 설하고 있는 도량입니다. 그 도량자체가, 도량자체가 이미 법화경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거기서 법화경 소리를 듣고, 이해 못하는 사람은 거기 뭐 100년 1000년 살아도 법화경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지요. 다보탑이 저것이 무슨 왜 다보탑인가? 의심이 없고, 생각이 없는 사람이지요. 다보탑의 의미가 뭔가?

석가탑의 의미가 뭔가? 왜? 또 대웅전 오른쪽에는 석가탑이 있고, 왼쪽에 다보탑이 있는가?

이런 것들을 잘 알면 법화경 한 권이 그냥 다 이해가 되고, 법화경의 종지가 거기에 다 담겨져 있습니다. 법화경 종지가...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迹門ㆍ本門(적문 본문). 법화경은 이렇게 양대 산맥으로 나눈다고 그랬어요. 前 14품을 적문이라고 하고, 後 14품을 본문이라고 이렇게 해서 迹門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우리 역사적인 상황들. 역사적인 현상들. 부처님으로 보더라도 석가모니부처님. 또 석가모니부처님의 어떤 역사적이고 현상적인 것. 그것을 누구나 다 이해 할 수 있는 어떤 흔적과 자취로서의 부처님. 또 우리로 치면 우리도 흔적과 자취로서의 우리. 이런 이야기가 되고요. 그것을 迹人이라고 그래요. 전번에 판서해준 것 기억나시지요? 그 다음에 한 쪽은

本門. 그러지 습니까? 이것은 부처님으로 치면, 석가모니부처님을 부처님이게 한 그 근본자리, 根本(근본)자리. 그것이 本佛(본불)입니다. 본래부처, 本來(본래)부처인 자리. 그것이 궁극적 차원이지요.

그것은 역사적인 차원이 아닙니다. 역사를 초월한 차원이고요.

또 석가모니부처님은 生과 死가 있습니다. 누구 집 자식이고, 몇 년 살다가 어떻게 살았고, 몇 년 살다가 돌아가셨고, 제자는 누구누구 있고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 차원의 석가모니부처님은 그런 모든 것을 탄생시키면서 그 모체가 되는 겁니다.

또 그것을 우리로 이끌어다가 이야기하면,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이렇게 각자 살아 왔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이렇게 살아오게 한 그 주체가 있습니다. 그것이 궁극적 차원입니다. 그것은 生死를 초월한 겁니다.

오고감도 초월했어요. 善惡(선악)도 초월한 겁니다.

석가모니의 本體(본체)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본체도, 우리들의 본래인도 그 모든 선악과 생사를 초월한 그 자리가 우리에게 당연히 있습니다. 것이 나입니다. 진짜의 나 이고 내 주인공이라고요.

겉으로야 이것 뭐 다 비슷비슷한 사람이고, 다 비슷비슷한 인생을 살아가고, 겉만 가지고 이야기하기로 하면 사실은 별 볼일 없지요.

왜냐? 워낙 흔하니까요. 그런데 개개인의 궁극적 차원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정말 지극히 고귀한 것이고 위대한 것이고요. 그런 것입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우리들의 本來人(본래인)이요, 궁극적 차원이고, 법화경에서 말 하는 本門의 내용입니다. 本佛의 내용이고 本人의 내용이고요. 그런데 그것을 하나의 구조물로 형상화. 그 기기묘묘하고 영원무궁한 생명과 무량공덕과 한량없는 지혜와 자비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볼 것인가? 표현하고 표현해 본 것이 다보탑입니다.

多ㆍ寶. 많을 多자. 보배 寶자. 어마어마한 보물을 우리 내면에 간직하고 있다.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그것을 말하자면 어떻게 표현해볼까?

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다보탑. 그 이름 또한 多寶입니다. 多자. 보배 寶자. 우리들의 내면에는 어마어마한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그런 것을 그렇게 구조물로써 형상화 해본 것이지요. 사실은 불국사는 그 도량 자체가 항상 법화경을 설하고 있습니다. 밤 낮 없이 설하고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설하고 있고, 사철 계속, 계속 설하고 있고, 사람이 있든 없든 설하고 있고, 청중이 있고 없고 설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그 도량에서 사는 사람도 사실은 1년 365일 계속 법화경을 독송을 하든지 사경을 하든지 법화경 설법을 열든지 그렇게 해야 옳지요.

그러면 그 도량이 의미하는 것과 도량에 사는 사람이 다 조화를 이뤄서 아주 멋진 하모니를 이룰 수가 있을 텐데, 주인 된 사람이 그런 이치를 알고 살면 만사 제쳐놓고 그것부터 하겠지요. 그 일부터 하겠는데 그것은 제가 주지할 때까지 기다려야 되겠지요. 하하하하하하 허허허

사실은 저는 어릴 때 불국사로 수학여행을 갔어요. 생전 처음 수학여행을 불국사로 갔는데 눈에 보입니까? 아주 어린 안목에 근사하다 크다 하는 것만 보이지 뭐가 보여요?

그 다음에 출가를 할 때도 제가 이 세상에서 제일 크고 훌륭한 사찰이 어딜까? 저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했는데 불국사입니다. 그 때만 해도 불국사가 제일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국보가 제일 많으니까요.

세상에 그렇게 알려져서 불국사로 쫓아갔어요 사실은...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당시 승려생활하고 수행 생활하는 데는 불국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겨우 사미들 가르치는 강원이 있어가지고, 행자도 가르치고 사미도 가르치는 강원이 있어가지고 다행히 공부할 기회는 얻었어요.

천수경도 못 외울 때, 가자마자 공부부터 했으니까요. 강사를 어디서 초청해 왔어요.

그 때 진용스님이라는 스님을 초청해다가 집중으로 강의를 하고 휙 가 버려요. 갔다가 또 한 달 만에 와서 한 일주일간 집중적으로 강의 하고요. 큰 절에 학인은 키워야 되겠고, 제자들도 키워야 되겠는데 가르쳐야 되겠는데 강사를 늘 둘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초빙을 해서 한 달에 일주일씩 그렇게 강의하게 하는 그런 것이 있더라고요. 그래도 그것도 아주 대단하지요. 그래서 그 덕에 천수경도 못 외우고 저는 초발심자경문부터 공부하게 됐어요. 덕택에... 그것이 잘 된 것인지 못 된 것인지 그래서 지금도 천수경 외우려면 좀 더듬더듬 하는데요. 하하하하하하 나중에 강원에 있으면서 천수경도 외우고, 법성게ㆍ약찬계 이런 것을 나중에야 외웠는데요. 어쨌든 그런 인연이었습니다.

그래 아주 어떻게 보면 참 경악하고 제가 ‘전생부터 아주 깊은 인연이 있구나.’ 하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때 누가 초심행자를 쉽게 잘 가르치겠습니까? 잘 안 가르쳐 주거든요. 그런데 그래가지고 바로 사미계 받자마자 범어사 강원에 와가지고... 그 다음에 범어사에서 비구계도 받고 해인사 까지가지고 졸업은 해인사에서... 저는 통방학인입니다. 불국사에서 공부하기 시작해가지고 범어사가가지고 또 은해사 강원가가지고, 그 때는 은해사강원에 정화부대로 갔어요. 정화부대라는 말 못 알아듣지요? 대처승들하고 비구승들하고 싸울 때 강원을 개설해가지고 학인들을 모집해요.

그러면 사람 숫자가 많아요. 젊은 사람 숫자가 많으니까 대처승들하고 싸울 때 숫자가 많으니까, 젊고, 물 불 안 가리는 사람들이 많으면 이기거든요. 그래서 진용스님이 은해사 강원을 개설 했어요.

그래가지고는 거기에 차출 당해서 가서 방부를 들여 가지고 대처승들하고 정말 별의 별 일을 겪어가면서... 모 심는다고 논에다 물을 대놓고 막 서로 물을 갈잖습니까? 물 논을 가는데, 모를 심는데 대처승 측에서 나가서 심고 비구승 측 우리가 나가서 심고, 그 때는 순전히 우리 손으로 했으니까요. 그래서 모 심는 논에서 보살들하고 비구승들 하고 그냥 멱살잡이, 진흙탕 싸움이 벌어진 겁니다. 야~ 우리는 그런 일도 겪었어요. 그냥 스님을 안고 누워버리는데요 그 대처승보살이... 안고 막 물 논에서 뒹굴자 이 겁니다. 누워버리는 겁니다. 이것은 어처구니없는 겁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그리고 우리가 전부 농사 다 지어가면서... 산에 가서 하루에 나무 두 짐씩 해다 나르면서... 그러면서 강원생활 했어요. 지금 같으면... 저것이 어디 상고시대 이야긴가 싶지요?

불국사하고 저는 그런 인연이 있어서 법화경을 공부하면서 다보탑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불국사 이야기를 아주 열심히, 열심히 합니다.

이것이 간접적으로 불국사에서 법화경법회를 1년 365일 계속 열어주십사 하는 그런 뜻이지요 사실은.... 법화경연구도 많이 하고, 법화경행자를 많이 길러내고, 법화경에 대한 참고서도 그냥 전 세계의 어느 사찰보다도 제일 많이 가지고 있고, 그래서 불국사도서관에 가면 특히 법화경 참고서가 그냥 즐비하게 널려있고 아 이러면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우리 상상만 해도 근사하잖아요? 법화경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불국사에만 가면 다 해결된다. 이렇게 되어야 되는 것이지요.

사찰을 세울 때는 옛날부터 다 경전을 근거로 해서, 그 경전을 지상에다 형상화 해본 겁니다. 해인사 같은 데는 화엄경을 형상화 해본 겁니다. 범어사ㆍ해인사ㆍ부석사ㆍ화엄사. 화엄사 같은 데는 그대로 절 이름도 화엄사잖아요. 해인사도 역시 화엄경의 해인삼매를 뜻하는 것이고요. 의상스님이 그렇게 화엄십찰이라고 해서 전국에다가 당신 제자들을 퍼뜨려가지고 화엄 사찰로 건립한 겁니다. 그 동안 작은 사찰이 있었지만 그것을 의상스님이 중국에서 와서는 제자들을 국력을 빌려가지고... 가는 곳마다 좋은 절은 전부 “화엄경을 펼치는 사찰로 해라.” 해가지고 국가의 지원도 많이 받고 거기서 화엄경을 계속 설하고요.

절 이름도 그런 식으로 짓고 했듯이,

불국사도 역시 법화경을 지상에다 건립한 것이지요.

동화사ㆍ법주사ㆍ금산사 같은 데는 법상종사찰입니다. 그것은 교학상으로는 상당히 얕지요. 화엄과 법화는 법성이라면, 금산사ㆍ동화사ㆍ법주사 이런 데는 법상종사찰입니다. 어떤 현상을 중심으로 연구한 그런 경전을 말하자면 밑바탕에 깔고 있는 그런 사찰이지요. 옛날에는 사찰도 그냥 안 지었어요. 다 그렇게 의미 부여를 하고 사찰을 건립하는 사람의 사상을 거기다 투영을 시켜가지고 건물하나 현판하나 문 이름 하나, 요사채를 지어도 요사채 이름 하나 까지도 전부 당신의 사상과 당신이 좋아하는 경전에 근거를 두고 그렇게 지었습니다.

스님들이 혹 토굴을 지어도 그렇게 뜻을 담아서 지으면 좋지요.

‘아 이 사람은 상당히 그래도 뭔가 뿌리가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볼 겁니다. 요즘 모모한 수좌스님들은 자기 토굴 할 때도 토굴은 코딱지만 해도 이름은 아주 근사하게, 옛날 어록에 있는 아주 큰 이름들 갖다가 이름을 짓기도 하는 그런 것을 더러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 참 좋은 현상이지요. 규모가 좀 있는 절이라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냥 덮어놓고 살기 편하게 짓는 것이 아닙니다. 살기 편하게 지어놓고도 거기다, 하다못해 그 전각의 이름이라도 그렇게 붙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중국 오대산 제일 중심에 있는 사찰 큰 건물이 있는데 화엄경 七處九會(칠처구회)를 문마다 다 붙여놨더라고요. 문마다 다 붙여놨어요. 그런 것들도 바람직한 것이지요. 오대산에서 청량국사가 화엄경을 깊이 연구해서 그 영향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오늘 見寶塔品. 여기는 칠보탑이 솟아오르다. 칠보로 장엄한 그런 탑이라고 해서 제가 칠보탑이라고 모양을 했습니다. 칠보탑 이름이 나오고요. 다보라고 하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오지만, 그냥 寶塔(보탑), 寶塔해고 좋습니다. 이것은 아까 말했듯이 우리 궁극의 차원에서 본 우리들 개개인의 자신이고, 또 부처님본래부처의 입장. 궁극적인 부처의 입장. 생사를 초월하고, 거래를 초월하고, 온갖 시비선악을 다 초월해있는, 그것은 부처나 나나, 석가모니나 나나 달마나, 누구나 한결같이 절대 평등한 그런 경지인 세계. 그런 자리. 그것을 寶塔으로 표현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이제 불국사 가시거든 그런 뜻을 가지고 한 번 살펴보십시오.

제11 견보탑품(見寶塔品)

一 칠보탑이 솟아오르다

1 칠보탑의 모양

爾時佛前(이시불전)에 有七寶塔(유칠보탑)하대

高五百由旬(고오백유순)이요

縱廣二百五十由旬(종광이백오십유순)이라

從地涌出(종지용출)하야 住在空中(주재공중)하대

種種寶物(종종보물)로 而莊校之(이장교지)하며

五千欄楯(오천난순)이요 龕室千萬(감실천만)이며

無數幢幡(무수당번)으로 以爲嚴飾(이위엄식)하고

垂寶瓔珞(수보영락)하니 寶鈴萬億(보령만억)으로

而懸其上(이현기상)하며

四面皆出多摩羅跋栴檀之香(사면개출다마라발전단지향)하야

充滿世界(충만세계)하며 其諸幡蓋(기제번개)는

以金銀琉璃硨磲瑪瑙眞珠玫瑰七寶合成(이금은유리차거마노진주

매괴칠보합성)하야 高至四天王宮(고지사천왕궁)하니라

爾時佛前(이시불전)에, 그 때에 부처님 앞에 有七寶塔(유칠보탑)하대,

칠보탑이 있으되 高五百由旬(고오백유순)이요, 높이가 500유순이요,

縱廣二百五十由旬(종광이백오십유순)이라. 縱廣. 가로세로지요.

종광이 250유순이다. 모양도 아주 이상적이지요. 높이가 500유순인데 가로세로가 250유순이니까 그 모양이 아주, 균형이 잘 맞지 않습니까?

그것도 우리가 이런 데서 읽을 수 있습니다.

從地涌出(종지용출). 땅으로부터 涌出해서. 솟아올랐어요. 그래갖고

住在空中(주재공중)하대, 저~ 높이 허공에 우뚝 있더라 이 겁니다.

우리의 궁극적 차원은, 우린 지금 이렇게 현상적인 모습은 아~ 몸에 병도 있고 머리도 둔해서 공부도 잘 못하고 온갖 그런 탐 진 치 삼독도 많고, 웬 꾀도 잘 부리고 무슨 남 음해하고, 시기 질투하는 그런 마음도 많고 하지만, 그것은 현상입니다. 그런데 그 내면에 궁극적 차원은 種種寶物(종종보물)로, 가지가지 보물. 사랑하는 마음도 있고, 지혜의 마음도 있고, 자비로운 온갖, 그런 것으로써 而莊校之(이장교지)라. 잘 꾸며져 있으며

五千欄楯(오천난순)이요. 5000난순. 欄楯이라는 것은 돌아가는 난간을 말하는 것인데요. 말하자면 우리 “마음” 하면 그 속에 기기묘묘한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 龕室이 千萬(감실천만)이라. 그랬습니까? 龕室뭡니까? 법당이 있고, 또 법당의 곳곳에 구멍을 내서 불상을 모실 수 있는 그런 것을 龕室라고 하는데 그것이 우리마음 저 속에 별의별 마음들이 필요에 따라서 다 도사리고 있는 것이지요.

無數幢幡(무수당번)으로, 무수한 당과 번으로써 以爲嚴飾(이위엄식)하고, 장엄을 했고, 垂寶瓔珞(수보영락)하니, 보배영락을 드리웠으니

寶鈴萬億(보령만억)이라. 보배방울이 만이나 되고 억이나 된다.

그래서 而懸其上(이현기상)하며, 그 위에 그것이 달려가지고서

四面에서 皆出多摩羅跋栴檀之香(사면개출다마라발전단지향)하야,

보배로 만든 방울이 만이나 되고 억이나 되니까 그것이 달려가지고 사면에서 皆出多摩羅跋栴檀之香. 그것이 소리도 나지만 또 향기를 뿜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充滿世界(충만세계)라. 이 세계에 가득 하더라. 우리의 내면에 있는 궁극적 우리의 참 얼굴. 無依眞人(무의진인)이라고 임제록 같은 데서는 그렇게 표현하는데, 그것을 우리가 정말 남을 위해서 헌신하고, 정신으로써 원력을 세워서 세상을 살게 되면 얼마든지 이런 아름다운 향기를 우리도 품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 대표가 오늘 날 살아있는 대만의 증엄스님. 자제공덕회의 증엄스님이, 이 표현 이대로 입니다. 그야말로 사면에서 多摩羅跋栴檀 향기를 한껏 풍기는 것이지요. 그것이 어떤 보살의 삶이지요. 보살의 삶향기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의 향기가 보살정신입니다. 보살정신이 투철해서 가는데 마다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면 가는데 마다 좋아하잖아요.

그 사람이 정말 향기로운 사람이지요. 표현이 아주 근사하잖아요?

充滿世界라. 세계에 충만해요. 그래서 증엄스님은 지금 세계에서 증엄스님 칭찬 안 하는 데가 없어요. 곳곳에 증엄스님, 증엄스님 그래요.

우리나라스님들도 얼마나 많이 자제공덕회에 갔다 왔습니까?

갔다와가지고 갔다 온 그런 견문기라든지 들은 이야기들을 쓴 기록들, 책들, 또 인터넷에 올라있는 그런 자료들, 무수히 많습니다.

또 대애 TV라고 해서 인터넷에 들어가면 그 스님 법문 다 들을 수 있고, 항상 들을 수가 있고, 글도 많은 글을 읽을 수가 있고요.

그런 상황이거든요. 그것이 전부 이렇게 보배방울로써 거기에 달아가지고 향기를 내뿜는 그런 모습입니다. 향기가 세계에 충만한 겁니다.

其諸幡蓋(기제번개)는, 그 모든 旛과 蓋는 金ㆍ銀ㆍ琉璃ㆍ硨磲ㆍ瑪瑙ㆍ眞珠ㆍ玫瑰(이금은유리차거마노진주매괴칠보합성)하야, 이런 칠보로써 합성했어. 그래서 高至四天王宮(고지사천왕궁)하니라.

그 높이가 저~ 四天王宮까지 다 이르렀더라.

2 칠보탑에 공양하다

三十三天(삼십삼천)은 雨天曼陀羅華(우천만다라화)하야

供養寶塔(공양보탑)하고 餘諸天龍夜叉(여제천룡야차)와

乾闥婆阿修羅(건달바아수라)와 迦樓羅緊那羅(가루라긴나라)와

摩睺羅伽人非人等千萬億衆(마후라가인비인등천만억중)은

以一切華香瓔珞(이일체화향영락)과 幡蓋伎樂(번개기악)으로

供養寶塔(공양보탑)하며 恭敬尊重讚歎(공경존중찬탄)이러라

三十三天(삼십삼천)은 雨天曼陀羅華(우천만다라화)하야,

천 만다라화를 비 내려서 供養寶塔(공양보탑)하고, 보탑에 공양하고

餘諸天龍夜叉(여제천룡야차)와 나머지 모든 하늘ㆍ龍ㆍ夜叉ㆍ乾闥婆ㆍ阿修羅(건달바아수라)와ㆍ迦樓羅ㆍ緊那羅(가루라긴나라)와ㆍ摩睺羅伽ㆍ人非人等(마후라가인비인등). 千萬億衆(천만억중)은, 1000만억 대중들은

以一切華香ㆍ瓔珞(이일체화향영락)과 幡蓋ㆍ伎樂(번개기악)으로 供養寶塔(공양보탑)하며, 보탑에 공양하며, 恭敬하고 尊重하고 讚歎(공경존중찬탄)하더라.

3 탑에서 찬탄하다

爾時寶塔中(이시보탑중)에 出大音聲(출대음성)하야

歎言善哉善哉(탄언선재선재)라 釋迦牟尼世尊(석가모니세존)이여

能以平等大혜(능이평등대혜)로 敎菩薩法(교보살법)이며

佛所護念(불소호념)이신 妙法華經(묘법화경)으로

爲大衆說(위대중설)하시니 如是如是(여시여시)하야

釋迦牟尼世尊(석가모니세존)의 如所說者(여소설자)는

皆是眞實(개시진실)이니다

爾時寶塔中(이시보탑중)에, 그 때에 보탑가운데서

出大音聲(출대음성)하야, 큰 음성을 내가지고서

歎言善哉善哉(탄언선재선재)라, 말하기를 훌륭하고 훌륭하여라

釋迦牟尼世尊(석가모니세존)이여. 석가모니세존이시여.

能以平等大慧(능이평등대혜)로써, 아주 평등한 큰 지혜로써

平等大慧로써 敎菩薩法(교보살법)이며 佛所護念(불소호념)이신,

보살들을 가르치는 법이며 부처님께서 호렴하는 妙法華經(묘법화경)으로써 爲大衆說(위대중설)하시니, 대중을 위해서 설하시니 如是如是(여시여시)하야,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釋迦牟尼世尊(석가모니세존)이 如所說者(여소설자)는 이와 같이 설하는 것은 皆是眞實(개시진실)이니라. 모두가 진실하고 진실한 것이다. “전부 진리의 말씀이다.” 라고 탑 중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4 대중들이 환희하다

爾時四衆(이시사중)이 見大寶塔(견대보탑)이

住在空中(주재공중)하며 又聞塔中(우문탑중)에

所出音聲(소출음성)하고 皆得法喜(개득법희)하야

怪未曾有(괴미증유)하고 從座而起(종좌이기)하야

恭敬合掌(공경합장)하고 却住一面(각주일면)이러라

爾時四衆(이시사중)이, 그 때에 사부대중들이

見大寶塔(견대보탑)이, 대 보탑이 住在空中(주재공중)하야, 공중에 머물러 있음을 보며, 대중들이 보기도 하고, 또 듣기도 해요, 又聞塔中(우문탑중)에, 또 보탑 중에서 나오는 所出音聲(소출음성)하고, 음성을 듣고

皆得法喜(개득법희)하야, 법의 기쁨을 전부 얻어 가지고서

怪未曾有(괴미증유)하고, 아주 未曾有. 미증유라고 괴이하게 여긴다.

‘야~ 이거 뭐 세상에 이런 일이 있는가?’

말하자면 우리는 그냥 불교를 공부 못 할 때, 아무것도 모를 때, 불교를 공부해도 보통 불교만 공부해가지고는 그냥 보통 우리가 눈에 비치는 이러한 우리들 모습만 이해를 합니다. 더 이상 더 깊은 나를 몰라요. 그런데 법화경을 통해서 우리들의 내면의 위대함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정말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우리인생이, 내 존재가 참으로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정말 찬탄하고 찬탄함을 넘어서 괴이하게까지 여기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從座而起(종좌이기). 자리로부터 일어나서

恭敬合掌(공경합장)하고 却住一面(각주일면)이라. 전부 놀라서 恭敬合掌하고 그냥 멍하니 이렇게 머물고 있더라. 그러니까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이냐? 문제가 큰 것이 발생 했으니 문제해결을 해야겠지요.

그래서 이제 대요설 보살이 묻는 겁니다.

5 대요설(大樂說)보살이 묻다

爾時有菩薩摩訶薩(이시유보살마하살)하니

名大樂說(명대요설)이라 知一切世間(지일체세간)의

天人阿脩羅等心之所疑(천인아수라등심지소의)하고

而白佛言(이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하

以何因緣(이하인연)으로 有此寶塔(유차보탑)이

從地涌出(종지용출)하며 又於其中(우어기중)에

發是音聲(발시음성)이닛고

爾時有菩薩摩訶薩(이시유보살마하살)하니, 그 때에 보살이 있는데

名大樂說(명대요설)이라. 이름이 大樂說이다.

知一切世間(지일체세간)의 天人阿脩羅等心之所疑(천인아수라등심지소의)하고, 일체세간의 천 인 아수라등이 마음에 의심 하는 바를 아시고는,

而白佛言(이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하, 세존이시여

以何因緣(이하인연)으로, 무슨 인연으로서

有此寶塔(유차보탑)이, 이러한 보탑이 있어서

從地涌出(종지용출)하며, 땅으로부터 涌出했으며

又於其中(우어기중)에, 또 그 가운데서 發是音聲(발시음성)이닛고?

이러한 음성이 나옵니까?

다보불을 설명하다 그랬어요. 다보탑이고, 다보불입니다.

그 안에 부처님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있는데 그것을 多寶佛이라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탑이 곧 불이요, 불이 곧 탑이지요 뭐 따지고 보면...

6 다보불(多寶佛)을 설명하다

爾時佛告大樂說菩薩(이시불고대요설보살)하사대

此寶塔中(차보탑중)에 有如來全身(유여래전신)하니

乃往過去(내왕과거)에

東方無量千萬億阿僧祗世界(동방무량천만억아승지세계)에

國名寶淨(국명보정)이요 彼中有佛(피중유불)하니

號曰多寶(호왈다보)라 其佛行菩薩道時(기불행보살도시)에

作大誓願(작대서원)하대 若我成佛滅度之後(약아성불멸도지후)에

於十方國土(어시방국토)에 有說法華經處(유설법화경처)면

我之塔廟(아지탑묘)는 爲聽是經故(위청시경고)로

涌現其前(용현기전)하야 爲作證明(위작증명)하고

讚言善哉(찬언선재)라하리라 彼佛成道已(피불성도이)하고

臨滅度時(임멸도시)하야 於天人大衆中(어천인대중중)에

告諸比丘(고제비구)하사대 我滅度後(아멸도후)에

欲供養我全身者(욕공양아전신자)면

應起一大塔(응기일대탑)이라하니라

其佛以神通願力(기불이신통원력)으로

十方世界在在處處(시방세계재재처처)에

若有說法華經者(약유설법화경자)면 彼之寶塔(피지보탑)이

皆涌出其前(개용출기전)하니 全身(전신)이

在於塔中(재어탑중)하야 讚言善哉善哉(찬언선재선재)라하니라

大樂說(대요설)아 今多寶如來塔(금다보여래탑)이

聞說法華經故(문설법화경고)로 從地涌出(종지용출)하야

讚言善哉善哉(찬언선재선재)라하니라

爾時佛告大樂說菩薩(이시불고대요설보살)하사대,

그 때에 부처님이 大樂說菩薩에게 고 하사대 此寶塔中(차보탑중)에 이 보탑가운데에 有如來全身(유여래전신)있다. 여래전신이 있다.

如來의 全身인 온전한 몸이 있다.

乃往過去(내왕과거)에, 지나간 과거

東方으로 無量千萬億阿僧祗世界(동방무량천만억아승지세계)에 나라가 있었는데 國名寶淨(국명보정)이요, 그 나라 이름은 寶淨이다.

彼中有佛(피중유불)하니, 그 나라에 부처가 있으니

號曰多寶(호왈다보)더라. 其佛行菩薩道時(기불행보살도시)에, 그 부처님이 보살도를 행할 때에 作大誓願(작대서원)하대, 서원을 세우되, 보살도를 행할 때에 큰 誓願을 세웠어요. 뭐라고 세웠는가 하니,

若我成佛滅度之後(약아성불멸도지후)에, 내가 성불하고 나중에 열반에 든 뒤에 於十方國土(어시방국토)에서 有說法華經處(유설법화경처)면,

묘법화경을 설하는 곳이 있을 것 같으면 我之塔廟(아지탑묘)는, 나의 탑묘는, 나의 탑은, 塔廟라고 하는 것이 말하자면 부처님사리를 넣어서 처럼 그렇게 만들기 시작했어요. 사실 묘입니다. 부처님가 탑입니다. 그런데 신앙심에 의해서 여기도 저기도 탑을 세우고 부처님으로 받들지요. 그래 부처님으로 받드는데 사리가 다행히 있어서 사리를 모셔놓고 탑을 세우면 좋고, 만약에 후대에까지 그렇게 사리가 돌아오지 않지 않습니까? 돌아오지 않는데 그 때는 그러면 뭘 하느냐? 경을 넣는 겁니다. 탑 안에다 경을 넣습니다. 불상 안에도 반드시 복장에다 경을 넣지만, 탑 안에도 경을 넣는 겁니다. 그것이 옛날부터 전통입니다.

법화경을 설하는 곳이면 나의 塔廟는 爲聽是經故(위청시경고)로.

이 경전을 듣기위한 까닭으로 涌現其前(용현기전)하야, 그 앞에 우뚝 솟아 나와서 爲作證明(위작증명). 증명을 짓는다. 증명법사 노릇을 할 것이다. 그리고 讚言善哉(찬언선재)라하리라. 찬탄해 말하기를 “선재선재라.” 라고 할 것이다. 彼佛成道已(피불성도이)하고, 그 부처님이 성도하고 나서

臨滅度時(임멸도시). 멸도에 임했을 때에 於天人大衆中(어천인대중중)에 천인 대중 가운데에 告諸比丘(고제비구)하사대, 여러 비구들에게 하사대

我滅度後(아멸도후)에, 내가 멸도한 후에 欲供養我全身者(욕공양아전신자)면, 나의 전신에 공양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으면

應起一大塔(응기일대탑)이라하니라. 마땅히, 응당히 하나의 큰 탑을 세우라. 이렇게 했어요.

其佛以神通願力(기불이신통원력)으로, 그 부처님이 신통과 원력으로써 十方世界의 在在處處(시방세계재재처처)에, 若有說法華經者(약유설법화경자)면, 만약에 법화경을 설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으면 彼之寶塔(피지보탑)이, 보탑이 皆涌出其前(개용출기전)이라. 어디든지 그 탑이 그 앞에 쑥 솟아가지고, 증명을 지을 것이다 이런 말입니다.

全身(전신)이 在於塔中(재어탑중)해서, 부처님의 전신이 이 탑 속에 있어서 讚言善哉善哉(찬언선재선재)라하니라. 찬탄해 말하기를 “선재선재라.” 하니라. 이것은 말하자면 영원한 생명으로써의 다보탑이기 때문에...

-얼른 의심하기를 ‘그전에 열반한 부처님이 어떻게 말도 할 줄 아는가?’ 이런 생각을 할지모르지만, 여기서는 상징적으로 영원한 생명으로써의 부처님. 또 영원한 생명으로써의 우리들. 그것이 다보탑의 본 의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언제든지 말도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겁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은 지금 이 육신이 죽고 살고 하는 것을 초월한 경지니까요.

찬탄해 말하기를 善哉善哉라 하니라. 大樂說(대요설)아 今多寶如來塔(금다보여래탑)이, 지금 다보여래의 탑이 聞說法華經故(문설법화경고)로,

이 법화경 설하는 것을 들은 까닭으로, 그래서 從地涌出(종지용출)이라.

땅으로부터 솟아올라서 讚言善哉善哉(찬언선재선재)라하니라.

찬탄해 말하기를 善哉善哉라 라고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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