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舍利弗當知 我以佛眼觀 見六道衆生 貧窮無福慧 入生死險道
사리불당지 아이불안관 견육도중생 빈궁무복혜 입생사험도
相續苦不斷 深著於五欲 如모牛愛尾 以貪愛自蔽 盲瞑無所見
상속고부단 심착어오욕 여모우애미 이탐애자폐 맹명무소견
不求大勢佛 及與斷苦法 深入諸邪見 以苦欲捨苦 爲是衆生故
불구대세불 급여단고법 심입제사견 이고욕사고 위시중생고
而起大悲心
이기대비심
舍利弗當知 我以佛眼觀하니
사리불아 마땅히 알아라. 나는 부처의 눈으로써 관찰한다.
見六道衆生이 貧窮無福慧서
육도중생이 빈궁해가지고서 복혜가 없음을 보아서, 복과 지혜가 없다 말이요. 이 빈궁하다고 하는 것이 물론, 물질적인 복도 복이지만은 지혜가 중요한거죠. 지혜없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야. 부처님 눈에는 그러찮아요. 貧窮無福慧라고 했잖아요. 가난해가지고서 복도 지혜도 없다. 그러니까 지혜있으면 복이 따라오게 돼있어.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도 지혜를 첫째 갈고 닦으면은 그 다음부터 서서히 복이 오게 돼있어요. 왜냐? 지혜가 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복이 되는 것을 아니까 그럼 복되는 일을 하지. 저절로 복되는 일을 하게 되고 또 지혜가 있으면은 자기가 좀 이제 무슨 뭐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해있다 하더라도 그걸 그렇게 어렵게 생각을 안하게 돼있어.‘아! 이건 당연한 이치고 내가 지어놓은 복이구나. 또 내가 그런 인연을 못 지었구나’라고 이렇게 현명하게 받아들일 줄 알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아. 또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그게 가난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절대, 그러고 또 지혜가 있으면은 그 물질적인 복도 돌아오는 그 길을 알아. 빤히 알아. 눈에 보이니까 그러면 그 길을 가게되면은 저절로 세월만 가면은 복도 돌아오게 돼있어. 그게 안되면 그건 잘못 된거죠. 당연히 그래 돼있습니다. 그래서 貧窮無福慧야. 육도중생들이 그렇다 이 말이요.
入生死險道하야 相續苦不斷하며
생활이라고, 生死라고 했지만은 우리 삶의 험한 길에 들어가가지고서 계속해서 그 고통이 끊어지지 아니하며
그렇죠. 어리석은 사람은 끊임없이 그게 반복됩니다. 요는 지혜가 제일 중요해요. 그 캄캄한 밤 아무 무슨 뭐 등불도 없고 저기 저 심지어 무슨 달빛도 별빛도 없는 그런 그 길을 간다고 하면은, 손에 뭐 후레쉬도 없고, 간다면 밤새도록 캄캄한 길을 갈거 아닙니까? 相續苦不斷이지. 그래서 지혜를 빛에 광명에다가 비유하는 것이 뭐 무수히 많죠. 어디든지 뭐 경전마다 지혜를 광명에다 비유하죠.
그 광명은 다시말해서 빛은 그 어둠을 밝혀주는 그런 그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지혜는 우리 어리석음을 밝혀주는 것이다. 그 불이 있으면은 길 잘 찾아가지요. 아무데나 부딪히지도 않고 넘어지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고 그렇게 갈 수가 있잖습니까?
深著於五欲할새
깊이 오욕에 집착할새, 오욕은 안, 이, 비, 설, 신 이 다섯 가지가 뭐든지 자기 이제 편할대로 하고자 하는 거지. 거기에 이제 집착하대
如犛牛愛尾하다
愛尾하여 그랬거든, 犛牛라고 하는 게 이게 검은 소. 소같긴 한데 꼬리가 아주 긴 짐승이라는 뜻입니다. 소같이 생겼다해서 모우라 그래요. 인도에 있는 아마 물소인가봐. 그 소가 꼬리를 상당히 애착하는가 봐요. 그 모우라고 하는 소가 꼬리를 사랑하여, 하듯이, 해서
以貪愛自蔽라 盲瞑無所見이라
貪과 愛 탐욕하고 애착하는 것으로써 스스로를 이제 막아버린다. 차단해버린다. 그래서 그래 뭐 앞을 탁 잡혀 가리고 있으니까 캄캄해가지고 아무것도 보는 바가 없다.
그랬어요. 이게 지혜를 뜻하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으면은, 어리석으면은 그런거에요. 캄캄해가지고 아무것도 못 보면 어떡해? 뒤로 넘어지고 자빠지고 상처나고 뿌러지고 뭐 다치고 하는 거 그것밖에 남은 게 없어요. 길을 가는데, 그 불이 있어야지. 불이 있으면 절대 어떤 험한 길도 다치지 않고 갈 수가 있죠.
그러니까 인생사는 사실은 험해요. 그런데 험한 길이지만은 지혜가 있으면은 오히려 이 사바세계가 살 만한거야. 괜찮다고요. 저 윈드서핑인가 하는 사람들을 보면은 파도가 쎄면 쎌수록 타는 재미가 더 있거든요. 그 세상사가 힘들고 변화가 많을수록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 파도타기가 더 재미있는거야. 세상 파도타기가 훨씬 더 재밌는 거라. 그런 그 우여곡절이 없으면은 밋밋해서 별로 재미가 없어. 심심해. 인생사가, 근데 인생사가 우여곡절이 많을수록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없는 사람은 그냥 이리 다치고 저리 뿌러지고 막 그냥 깨지고 피투성이 상처투성이가 되지만은, 지혜로운 사람은 이 사바세계 많고 많은 변화무쌍한 이 모습과 우여곡절이 오히려 아주 재밌는거죠. 훨씬 더 재밌는거요.
그와 같습니다. 그러니 세상 탓할게 아니에요. 절대 세상 탓할게 아니고 나에게 지혜가 있느냐? 없느냐? 그 우리는 이제 내가 타고난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지혜를 빌리는 거죠. 좀, 이렇게 공부를 하면서 부처님 지혜를 자꾸 이제 내 지혜로 이끌어 오는 거요. 불교공부란 그거에요. 다른 거 없습니다. 다른 거 없어요. 혼자 뭐 끊임없이 앉아가지고 파 봐야 그게 잘 안나와요. 그래서 이 성인의 가르침을 우리가 자꾸 접하게 되는 거지요.
不求大勢佛과 及與斷苦法
大勢佛 아주 큰~ 세력이 있는 부처님. 부처님인데 우리가 부처님에 의지하고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면은 거긴 뭐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가 거기에 있는데, 不求大勢佛 큰 세력이 있는 부처님과 그리고 고통을 끊어버리는 法. 불법이죠. 이 가르침이죠. 이 가르침을 구하지 아니해.
그 답답하면 부처님에게로 쫓아가던지 아니면 예배당이라도 쫓아가던지 뭐 그렇게 해야 될텐데 그것마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斷苦法이라고 했잖아요. 고통을 끊어주는 법이다. 불법이, 뭘로 고통 끊어주느냐? 무슨 돈을 한 짐 갖다주느냐? 그게 아니라 지혜를 가르쳐준다. 스스로 지혜를 터득함으로해서, 불법을 공부하면 지혜가 밝아지고 그 지혜가 내 인생이 되고 인격이 되면은 저절로 고통을 해결하는 그런 그 이치를 알게 된다.
그런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深入諸邪見하여
깊이 여러 가지 삿된 소견에만 들어가. 깊이 들어가가지고 잘못 된 거 자기 그 아주 조그만한 좁은 소견에 딱 맞는 그런 아주, 달콤한 소리 들으면 그냥 홀딱해가지고 그게 삿된 것인지? 바른 것인지? 전혀 판단도 못하고 한번 의심도 해보지도 않고 그만 푹 빠져버리는 거지. 深入諸邪見이라. 삿된 견해에 깊이 들어가서, 이거 제일 경계해야 되요. 우리 불자들은, 불교 안 믿는 것보다 불교 믿는 사람들이 삿된 견해에 들어갈 그 소질이 더 많거든요.
以苦欲捨苦야
고통으로써 고통을 버릴려고 한다 이말이여. 고통으로써 고통을 버릴려고 한다. 삿된 소견에 들어가버리면은 고통으로써 고통을 버릴려고 하거든, 그러니까 맞지 않는 일이죠.
부처님은 호위호식하면서 최고의 호화판 인생을 살아봤고 태자시절에, 그 다음에 이제 최고의 고통스러운 고행도 해봤고 그래서 나중에는 그런 그 아주 향락의 삶도 옳지 않다. 고통의 삶도 옳지 않다. 그래서 정상적인 명상으로 딱 이렇게 처녀가 갖다주는 우유죽을 탁 먹고 시원한 강물에 목욕 척 하고 그리고는 시원한 보리수 나무밑에 척 앉아가지고, 그때는 그런데 그늘밑에 앉지 않았어요. 땡볕에 앉았고 가시덩쿨속에 일부러 들어가가지고 몸을 그냥 이렇게 상처를 내면서 그 고통을 가지고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 줄 알았어. 잘못 안 거지.
그래서 나중에 그런 거 다 버리고 시원한 나무그늘 밑에 척 앉아가지고 참선하니 얼마나 잘됩니까? 저절로 되죠. 그거, 고통속에서 하다가 그래서 정상적인 깨달음을 얻고는 중도(中道)를 선언하게 된거죠. 깨달음을 얻고나서는‘향락의 삶도 바람직한 삶이 아니다. 고행의 삶도 바람직한 삶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 그 순리에 맞는 모든 이치에 맞는 중도의 삶을 살 줄 알아라.’하는 것 그것을 이제 선언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삿된 견해에 들어가면요. 이거 참 불자들 주변에 불교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참 꼭 이제 가르쳐줘야 할 일인데, 소견이 발라야 된다. 소견이 삿되면은 고통으로써 고통을 버리고자 한다. 할새
爲是衆生故로 而起大悲心하니라
그런 중생들을 위한 까닭으로 大悲의 마음을 일으키니라. 그러니까 결국은 사람을 부처님으로 또 사람의 지극히 고귀한 가치를 제대로 또 1톤이나 되는 다이야몬드소라고 이렇게까지 우리가 이해됐을때, 그러면은 우리가 할 일은 뭐냐? 대비심을 일으키는 거요. 대비심을 일으키는 거라고
그렇게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걸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 정말 그런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또 도와주고, 물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고 또 지혜로써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또 가르쳐주고 그게 이제 起大悲心이라. 중생을 위한 까닭으로 대비심을 일으키느니라.
106 我始坐道場 觀樹亦經行 於三七日中 思惟如是事 我所得智慧
아시좌도량 관수역경행 어삼칠일중 사유여시사 아소득지혜
微妙最第一 衆生諸根鈍 著樂癡所盲 如斯之等類 云何而可度
미묘최제일 중생제근둔 착락치소맹 여사지등류 운하이가도
我始坐道場하야
내가 비로소 도량에 앉아서, 처음에 도량에 앉았다 그랬잖아요. 이게 6년고행 끝내고 나서 마지막 이제 오늘 지금 7일째 되고 내일 아침에 이제 성도하는 날이라. 이게 아주 마침 이제 잘 맞춰졌네요. 내가 비로소 도량에 앉아서, 그 보리수밑에 앉아서 이 말이요.
그러니까 처녀가 끓여다주는 그 맛난 우유죽을 먹고 목욕 싹 하고 시원한 그런 보리수밑에 앉아가지고서
觀樹亦經行
그냥 뭐 다리만 아프게 오래만 앉아있기만 한게 아니라 숲을 척 나무를 바라보기도 하고 또한 徑行도 해. 다리 아프면 나무밑을 슬슬 거닐기도 하지 뭐. 꼭 그 뭐 앉아있어야 되는 줄 알고 하~ 가부좌틀고 다리가 뿌러지는 지 관절염이 오는지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렇게 어리석게 한다고요. 그 부처님은 경행했다고 하잖아요. 경행이 다니는 거요. 나무밑에 왔다 갔다 하는거요. 나무를 쓱 바라보기도 하고, 얼마나 여유롭고 편안합니까? 亦經行하며
於三七日中에 思惟如是事호대
그 다음에 三七日 21일간 이제 이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말이요. 성도후에 여기는, 思惟如是事라. 이치에 대해서 말하자면 깨달았고 깨달음에 대한 내용과 이 깨달음을 어떻게 회향할 것인가? 이런 것을 전부 이제 생각한거요. 그래 21일간『화엄경』을 21일간 설했다라고 하는, 그래 삼칠일기도 하는 것도 이런데서 나온 거요. 그 일주일간 용맹정진하는 것도, 우리가 보통 일주일을 기한으로 잡든지 아니면 삼칠일 잡든지 일주일을 단위를 끊어서 하는 것도 다 불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삼칠일 가운데서 이와같은 일을 사유하대
我所得智慧는 微妙最第一이라
내가 얻은 바 지혜는, 내가 깨달은 이 지혜는 미묘해서 제일이야. 이 이상 덮을 게 없어. 이 세상에서 최고건마는
衆生諸根鈍하여 著樂癡所盲이라
중생들이 모두들 근기가 둔해가지고서 根鈍해서, 著樂 즐거움에 집착해가지고서 그 어리석음이 눈 먼거와 같다. 눈 먼 바가 되었다. 어리석음에 눈 먼 바가 되었다.
이건 이제 방편설을 설하게 되는 내력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내가 왜 방편설을 설하게 됐는가? 사실 방편설 안 설해야 되는데 어쩔수없이 중생들을, 그 근기를 성숙시키기 위해서 방편설을 설하게 되었다. 이렇게 봉사가 되어서 캄캄한 데 내가 어찌 그걸 그냥 두나? 또 거기나 무턱대고 최상승법만 무조건‘사람이 부처님이다.’이 최상승법만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나? 그게 먹혀들면 좋지만은 먹혀들지 않으니까 그래서 보면은
如斯之等類를 云何而可度어뇨
이와같은 等의 일들을 어떻게해야 이 사람들을 제도할 것인가? 저렇게 캄캄한 데“너는 1톤짜리 다이야몬드야!”이렇게 말해도 그게 먹혀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고
107 爾時諸梵王 及諸天帝釋 護世四天王 及大自在天 幷餘諸天衆
이시제범왕 급제천제석 호세사천왕 급대자재천 병여제천중
眷屬百千萬 恭敬合掌禮 請我轉法輪
권속백천만 공경합장례 청아전법륜
爾時諸梵王과 及諸天帝釋과 護世四天王과 及大自在天과 幷餘諸天衆의 眷屬百千萬이
여기 거 보세요. 그때에 梵王 범천왕과 그리고 天帝釋 제석천왕과 그리고 세상을 보호하는 사천왕과 그리고 대자재천왕 大自在天과 그리고 나머지 모든 天衆들이 또 그 권속들까지 백천만이나 돼. 백천만이나 되는 그런 이들이 그러니까 이건 뭐 꼭 그런 천신들이 그렇게 했다라기 보다는, 말하자면 세상의 아주 가장 지성인들 정말“부처님 열반에 들면 안됩니다. 어떻게 하더라도 차원을 낮춰서 저 유치원생들 부터라도 가르치는 그런 입장을 취해서 차츰차츰 성숙시켜서 최상승법『법화경』을 설하시면 될 것이 아닙니까?”하는 그런 그 요청을 이제 하게 됐다 하는 그런 내용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와가지고
恭敬合掌禮하고 請我轉法輪거늘
공경하고 합장하고 예배하면서 나에게 청했다 이말이야. 나에게 법륜 굴리기를 청하거늘,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법을 좀 어떻게 하더라도 좀 굴려주십시오. 轉法輪 좋은 말이여. 전법륜, 법륜 굴리기를 청하거늘
108 我卽自思惟 若但讚佛乘 衆生沒在苦 不能信是法 破法不信故
아즉자사유 약단찬불승 중생몰재고 불능신시법 파법불신고
墜於三惡道 我寧不說法 疾入於涅槃 尋念過去佛 所行方便力
추어삼악도 아녕불설법 질입어열반 심념과거불 소행방편력
我今所得道 亦應說三乘
아금소득도 역응설삼승
我卽自思惟하대 若但讚佛乘이면
내가 바로 그 자리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대 만약 다만 佛乘만 찬탄하면‘당신은 부처님’금년에 최고의 멘트‘당신은 부처님’으하하하 지난해 최고의 멘트가‘당신은 부처님’이라대.‘당신은 부처님’이 소리만 하면은, 그 말이여.‘若但讚佛乘이며’만약에 다만 불승만 찬탄하면은‘당신은 부처님’그 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니나 잘해봐라.”그런거야. 안 먹혀든다 그 말이여. 다 여기는 근기가 성숙돼서 그런 내용 다 알아들으니까 이제 그런 말을 해도 먹혀들지만은, 그래서 若但讚佛乘이야. 만약에 다만 불승만 찬탄하면, 아~ 이런 소리가 집에 가서 쓰고 싶지 않아요? 도대체, 하하하하 얼마나 쓰고 싶어요. 하나하나 한 구절 한 구절. 불승이며
衆生沒在苦야
중생들이 고통에 빠져 있게 된다 이 말이여. 그“니나 잘 해봐라.”하고 도대체 들은 척도 안한다 이거여. 그래 고통속에 그대로 살아간다 이거지.
不能信是法일새
능히 이 법을 믿지 아니할새. 이 봐요. 다 돼있잖아. 내가 뭐 엉뚱한 소리 하나요. 부처님께 배운 소리 백분의 일도 다 못해. 사실은, 대개 아주 선진화된 앞선 소리 하는 것 같지만은, 사실은 이 경전에서 부처님이 말씀한 소리 백분의 일도 표현 못하고 있는 거에요. 다 이렇게 나오잖아요. ‘不能信是法일새’능히 이 법을 믿지 아니할새
破法不信故로
법을 파괴해서 믿지 아니한 고로, 안 믿으면 좋지만은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에이 저 사람 외도야. 엉터리 소리야. 불교 아무것도 아니야. 너무 이상한 소리나 해. 구름잡는 소리나 해.”하고 이렇게해서 불교를 아주 온전하게 보지 않는거요. 그래서 그걸 破法이라 그래. 법을 파괴해서 믿지 아니한 까닭으로
墜於三惡道리니
삼악도에 떨어지리니‘정말 1톤이나 되는 다이야몬드 소가 바로 그 자신이다.’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해도“아니야. 뭐 나는 하찮은 존재야.”하고 저기 뭐 인간의 종으로, 하찮은 인간으로 그렇게 사는 거지. 墜於三惡道리니
我寧不說法하고 疾入於涅槃이라하다가
그래서 내가 차라리 설법하지 말고 그만 열반에 들어버릴련다.“에이 뭐 저런 중생들, 무지몽매한 중생들 내가 답답하게 언제 가르키겠노. 나 그만 입 다물고 있다가 그만 죽어버릴란다.”이 소리요. 용어를 아주 고급스러운 열반으로 써놔서 그렇지 우리식으로 표현하면“에이 나 그만 이대로 있다가 그만 마 죽고말지.”이렇게까지 생각했다는 거요.
내가 차라리 不說法하고, 차라리 녕(寧)자 써 놨잖아. 我寧 안녕할 녕자가 차라리 녕자요. 내가 차라리 설법하지 말고 빨리 그것도 빨리 열반에, 빨리 열반에 든단 소리가 뭐요? 자살한단 소리요 뭐요? 아이 깨놓고 이야기하면 그런 뜻도 담겨있잖아요. 그대로 그냥 천수를 누리다가 돌아가시지 말 안하더라도 疾入於涅槃이라 했잖아. 빨리 질(疾)자요. 이게, 병 질자도 되지만은 빨리 질자라. 빨리 열반에 들려고 하다가
尋念過去佛에 所行方便力하고
마침내 과거 부처님, 과거 깨달은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가? 이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 그래서 所行方便力이라. 그들이 행한 바 방편의 힘을 생각하고
我今所得道도 亦應說三乘이로다
내가 지금에 얻은 바 道도, 그 과거 방편력으로 과거 부처님이 방편으로 전부 최상의『법화경』의 도리는 제쳐놓고 저『아함경』부터, 아주 소승경전부터 유치원생들 가르치는 수준으로 차츰차츰 이렇게 가르쳐왔다라고 하는 이 이야기에요. 그래서 나도 또한 그들을 따라서 三乘 삼승의 가르침을 설할 것이다. 이렇게 이제 생각을 하게 됐다 이 말이죠.
109 作是思惟時 十方佛皆現 梵音慰喩我 善哉釋迦文 第一之導師
작시사유시 시방불개현 범음위유아 선재석가문 제일지도사
得是無上法 隨諸一切佛 而用方便力
득시무상법 수제일체불 이용방편력
作是思惟時에 十方佛皆現하사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할 때에 시방 부처님이 다 나타나가지고, 과거의 시방 부처님이 다 나타나가지고“옳소! 옳소! 좋습니다! 좋습니다!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셨습니까?”하고
梵音慰喩我라 善哉釋迦文
범음으로 아주 그윽한 소리로 나를 아주 위로하고 깨우쳐서, 석가모니도‘선재 선재’소리 들었어. 하하하하 우리만 부처님으로부터 듣는 게 아니고“하~ 선재 선재라 석가모니여!”이렇게 한 거지.
第一之導師여 得是無上法하고 隨諸一切佛하야 而用方便力이로다
제일가는 도사시여! 이 無上法 최상가는 법을 얻고도 모든 과거 부처님의 행적을 따라가지고서 방편력을 쓰는구나. 그 참~ 답답하거든요. 유치원생들 가르칠라고 해봐. 얼마나 답답해. 그 얼마나 이제 부처님의 그런 마음을 딱 먹었으니까, 얼마나 과거 부처님과 온갖 천신들과 주변의 지식인들 훌륭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텐데 그들이 얼마나 마음을 놓았겠어요.‘아 저 분이 열반에 안 들고 그래도 중생을 제도할려고 마음을 먹었구나.’그렇게 해가지고 이제 할 수 없이 이제 과거 부처님이 방편력을 썼듯이 당신도 그렇게 하게됐다 하는 거에요.
110 我等亦皆得 最妙第一法 爲諸衆生類 分別說三乘
아등역개득 최묘제일법 위제중생류 분별설삼승
我等亦皆得最妙第一法이언만은 爲諸衆生類하야 分別說三乘호라
우리들도 또한 다 최고가는 제일법을 얻었건만은 여러 중생의 종류들을 위해서 分別해서 나눠가지고 쪼개가지고 삼승을 설하는도다. 설한다. 이 말이여.
그러니까 나처럼 뭐‘사람이 부처님이다. 사람이 부처님이다.’자꾸 이렇게 쉽고 하긴 하지만은 그래도 아주 미세하게 아주 그 분별해서 그 근기와 그 사람의 성향에 맞춰서 세세하게 그렇게 밟아가면서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불교에는 그런 다양한 가르침 많고 많은 학설들이 있는 거죠. 그래서 그걸 이제 한테 묶은게‘팔만대장경’아닙니까? 팔만대장경은 한 없이 근기따라서 이런저런 그 가르침을 펼쳐놓다 보니까 그렇게 많은 가르침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딱 간단하게 한 마디로 하면‘당신은 부처님’이 한 마디야. 그냥, 최고 제일 이제 너무 수준이 높아서 그렇지. 수준이 높아서 그렇지만은 결론은 그거에요.
111 小智樂小法 不自信作佛 是故以方便 分別說諸果 雖復說三乘
소지락소법 부자신작불 시고이방편 분별설제과 수부설삼승
但爲敎菩薩
단위교보살
小智樂小法하야 不自信作佛일새
작은 지혜를 가진 사람은 소법을 좋아해. 즐겨해. 스스로 부처가 된다는 것을 믿지 안해. 자신이 부처란 건 안 믿는다 이 말이여.“아이고 나는 뭐 그런 거 필요없다고, 부처되는 거 필요없다고. 다이야몬드 1톤짜리 다이야몬드 뭐하게 뭐 조그만한 거 그 뭐죠 이제 반지나 할 정도 있으면 되지 뭐할라고 그 1톤짜리 다이야몬드.”이러고 있는거야. 사람 마음이 작으면 그렇게 된 다고요. 참 우리가 그런 상황에 있다손치면은 얼마나 갑갑하고 답답하겠어요. 아 1톤짜리 다이야몬드를 나두고“아 나 그거 필요없다고 조그만한 거 그저 반지 하나 할 정도만 달라고”하면은 참~ 속 터지지 속 터져. 이게 그런 이야기에요. 비유하자면은‘不自信作佛일새’
是故以方便으로 分別說諸果호니
그런 까닭에 방편으로써 분별해서 여러 果를 설하니, 여러 결과 諸果 分別說諸果 분별해서 여러 가지 결과를 설해놨다.‘심중소구소망(心中所求所望)’온갖 마음에 구하는 바 일체것이 다 이루어진다라고 하는 그런 그 온갖 방편설을 다 펼쳐놨죠.
그래서 기도라는 게 있나하고 내가『대장경』에 찾아보니 기도라는 말이 옛날에는 없었어. 중간에 만든 불교요. 기도불교, 호국불교도 중간에 만든 불교요. 호국불교, 그 중간에 만든 우리가 필요해서 우리 그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진 그런 불교가 많아요. 그것도 필요하죠. 시대에 따라서 사람의 성향이 다르고 요구가 다르니까 그것을 만들어서 자꾸 이제 불교를 내 놓는거죠.
그런데 여기에는 이제 방편으로써 분별해서 이렇게 여러 가지 결과를 설한다 라고 하는 이 원칙에 이제 따라가는 거지. 저절로 또 그렇게 되고요. 시대가 바뀌면은 그 시대의 사람의 성향에 맞게 그런 그 가르침이 존재하게 됩니다.
雖復說三乘이나 但爲敎菩薩이니라
비록 다시 三乘을 설하나 다만 보살을 교화하기 위한 것이니라.
112 舍利弗當知 我聞聖師子 深淨微妙音 稱南無諸佛 復作如是念
사리불당지 아문성사자 심정미묘음 칭나무제불 부작여시념
我出濁惡世 如諸佛所說 我亦隨順行
아출탁악세 여제불소설 아역수순행
舍利弗當知하라 我聞聖師子의 深淨微妙音하사옵고 稱南無諸佛하며
사리불아 마땅히 알아라. 내가 들으니 聖師子 성사자는 부처님, 깨달은 분 이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聖師子 성스러운 사자의 깊고 청정한 미묘음을 듣사옵고 듣고 한 번 南無諸佛 南無佛 뭐 같은 사람입니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많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여러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라고 이렇게 하며
復作如是念하대 我出濁惡世호니
또한 다시 이와같은 생각을 하대 내가 濁惡世 탁악한 세상에, 탁하고 악한 세상에 나왔으니
如諸佛所說하야 我亦隨順行하리라
모든 부처님이 설한 바와 같아서 나도 또한 이 세상에 나왔으니 어떡해. 저 악한 세상 중생들을 따라서 나도 같이 더불어 살아야지 어떡해 하겠나 이런 뜻입니다.‘我亦隨順行하리라.’나도 또한 수순해서 살리라.
113 思惟是事已 卽趣波羅奈 諸法寂滅相 不可以言宣 以方便力故
사유시사이 즉취바라나 제법적멸상 불가이언선 이방편력고
爲五比丘說 是名轉法輪 便有涅槃音 及以阿羅漢 法僧差別名
위오비구설 시명전법륜 변유열반음 급이아라한 법승차별명
思惟是事已하고 卽趣波羅奈하야
이와같은 일을 사유하고 나서 波羅奈시 녹야원이죠. 베나레스 거기에 이제 나아가지고 그러니까 거기까지 갔잖아요. 거기가서 오비구를 만나서 처음으로 입을 떼기 시작했죠.
諸法寂滅相을 不可以言宣이언만은 以方便力故로 爲五比丘說호니
제법의 적멸한 모습을 가이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지만은 그렇지만은 방편의 힘을 쓴 까닭으로 五比丘를 위해서 설했다.
맨 처음에 같이 공부한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이, 이 사람들은 뭐 출가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부왕(父王) 정반왕이 자기 태자 보호하라고 다섯 명을 그 경호로 딸려 보낸 사람들이 이 오비구입니다. 이 사람들 뭐 출가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에요. 아이 왕자가 출가했으니까 그 경호원이 있어야 될 게 아니야. 처음에는 혼자했지만은 나중에 출가했단 사실을 알고는 다섯 명을 뽑아가지고서“네가 같이 출가하고 같이 수행하고 경호도 해라.”그렇게해서 보낸 사람들이 이 다섯 명이야.
그래가지고 6년간 고행 같이 했는데, 어느 날 싯다르타 태자는 척 가서 말이야 처녀가 끓여주는 우유죽도 막 먹고 또 저기가서 목욕하고, 가시 찔리고 고행하고 아 흙먼지 뒤짚어 쓰고 하는 게 자기들 수행인데 아 그거 다 깨끗이 그 강물에 가서 씻어버리고 깨끗한 몸으로 또 시원한데, 그 앉아있으면 안 되거든요. 고행하는 사람이, 근데 시원한 보리수밑에 척 이렇게 그것도 길상초란 풀을 떡 뜯어가지고 뭐 바위나 모래위나 아무데나 앉지. 풀을 떡 뜯어가지고는 편안한 자리 만들려고, 거기 딱 앉아가지고 있으니까 이 다섯 명이 놀라가지고는‘이 저 사람 변했다. 타락했다. 완전히 이제 수행을 포기한 사람이다.’이렇게 생각하고 이제 떠나버렸죠.
그래 먼저 바라나시 베나레스에 가서 어쩌다보니 거기 있었어. 그리고나서는 이제 부처님은 일주일후에 깨달았고 그리고 삼칠일이 걸렸고 그리고나서 사유하는데 삼칠일이 걸리고 그리고나서 베나레스로 갔어요. 그 이제 은혜가 깊은 사람들이 다섯 비구죠. 왜냐하면 자기 때문에 고생했고 마음에도 없는 출가를 했고 그리고 또 나중에는 이제 이 사람들도 열심히 수행했는데, 제일 생각나는 게 그 사람들이라. 근데 그 사람들은 아직도 고행의 삶이야말로 가치있는 삶이라고 하는 생각에 젖어있는 삶이야. 사람들이라. 그래서 그걸 마음을 돌이켜 줘야되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그 사람들을 찾아 간거야.
또 또 한 가지 베나레스라고 하는 도시는 모든 종교의 지도자들이 다 모이는 도시야. 그래 거기서 한 번 자기의 깨달음을 선포를 하고 자기가 깨달은 진리를 선포를 해서 거기서 인정을 받아야 돼. 그래야 인도 사회에서 종교 지도자로써 말하자면은 큰 소리를 칠 수 있고 제자들을 가르칠 수가 있지. 거기가서 그 기존의 성자들하고 어떤 사상적인 어떤 그 대결이나 사상적인 논란에서 져버리거나 잘못돼버리면은 이거는 이제 명함도 못 내는 거죠. 인도 사회에서, 그래서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은,
오비구를 만나러 간 것도 하나의 그 목적이 되고 또 베나레스라는 그 도시에 가서 그 기존의 모든 성자들, 모든 수행자들하고 그 전부 이렇게 서로 깨달음에 대해서, 사상에 대해서 이렇게 토론을 해서 말하자면 거기서 진정한 진리를 깨달았다라고 하는 그런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이제 종교 지도자로써의 행세를 할 수가 있는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그 오비구는 아약교진여라고 들어봤죠? 아섭 바시 그 다음에 발제, 마하남 또 십육가섭 그렇게 다섯 명이고 그 다음에 야사라고 하는 그 야사 아주 그 부잣집 아들이 이제 청년들하고 놀러갔다가 부처님 제자가 된 그런 그 사람 그까지 합하면 육비구죠.
그래서 방편을 쓴 고로 오비구를 위해서 설하시니
是名轉法輪이라
이것이 이름이 전법륜이다. 법륜을 굴린 것이다.
便有涅槃音과 及以阿羅漢과 法僧差別名호라
곧 열반의 소리와, 열반이라고 하는 말도 생겼고 그리고 아라한이라는 말도 그때 생겼고 그 다음에 법이니 승이니 하는 차별된 이름이 있게 되었다.
그렇죠. 부처님이 있었죠. 그 다음에 부처님이 열반을 증득했고 그 다음에 이제 중간에 공부한 사람들은 아라한이다 라고 할 수가 있고 법이다. 가르침을 법이다라고 하고 따르는 제자들은 승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이름들이 그때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말입니다.
오늘 뭐 성도재일을 앞두고 부처님 그 생애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나마 다 소개가 되네요.
114 從久遠劫來 讚示涅槃法 生死苦永盡 我常如是說
종구원겁래 찬시열반법 생사고영진 아상여시설
從久遠劫來로 讚示涅槃法하대
옛날 아주 오랜 세월전으로부터 옴으로 열반의 도리를 찬탄해서 보이대
生死苦永盡이라하야
생사의 고통을 영원히 없앤다 라고 이렇게 이제 꼰거요. 워낙 고통스러운 삶을 사니까“생사가 없다. 온갖 고통 다 떠날 것이다.”라고 이렇게 열반을 하나 딱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이제 해서
我常如是說호라
나는 항상 이와같은 이야기를, 열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열반은 이제 불어서 끄다. 활활타는 불이 다 이제 꺼지고 재가 싸늘하게 식어버린거와 같이 우리 사람의 마음도 뭐 고통도 뭐 즐거움도 일체의식까지도 다 싸늘하게 식은 재와같이 그렇게 된다. 그렇게 되도록 어떻게하든 맘을 가라앉히고 가라앉히고 가라앉혀라. 이렇게 가르치는게 열반법이에요.
그게 이제 일시적으로는 가능하지만은 또 어떤 경계를 만나면은 또 마음이 들끓거든요. 그래 마음이 들고 일어나버리면은 또 이제 그게 열반은 무효가 되는것입니다. 뭐 완전하게 증득한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유여열반(有餘涅槃), 무여열반(無餘涅槃) 그래요. 살아있을때 아무리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어도 그거는 아직도 불완전 열반이야. 완전하지 못한 열반이야. 그래 무여열반이라고 하는 거. 죽어야 이제 완전하다 이래요. 그래서 죽음을 갖다가 무여열반 그래요. 남음이 없는 열반이다. 그 죽기전에는 유여열반이야. 남음이 있는 열반. 아직도 불완전하 열반이다. 이렇게 표현을 한다고요.
그래 그거는 아무리 마음을 식은 재처럼 가라앉히고 가라앉힌다 하더라도 이거는 답이 없습니다. 솔직하게, 그렇게 가라앉히고 있는 동안 좋죠. 일단, 그렇지만 그게 완전한게 아니거든요. 죽어야 완전하지. 그야말로 죽어야 무여열반이 되는 거지.‘我常如是說호라’내가 항상 이와같은 이야기를 했다.
115 舍利弗當知 我見佛子等 志求佛道者 無量千萬億 咸以恭敬心
사리불당지 아견불자등 지구불도자 무량천만억 함이공경심
皆來至佛所 曾從諸佛聞 方便所說法 我卽作是念 如來所以出
개래지불소 증종제불문 방편소설법 아즉작시념 여래소이출
爲說佛慧故 今正是其時
위설불혜고 금정시기시
舍利弗當知하라 我見佛子等의 志求佛道者가 無量千萬億이
사리불아 마땅히 알아라. 내가 보니 불자들의 마음에 불도를 구하는 사람들이 무량백천억이 됐다 이 말이여.
咸以恭敬心으로 皆來至佛所라
모두들 공경하는 마음으로써 모두 내한테 와. 모두 내한테 와서 이르니
曾從諸佛聞 方便所說法이라
일찍이 모든 깨달은 사람으로부터 방편으로 설한 바 법을 들었으니라.
我卽作是念하대 如來所以出은
내가 곧 이러한 생각을 하대. 여래가 이 세상에 오신 뜻은
爲說佛慧故라
부처의 지혜, 내가 깨달은 그 궁극적인 지혜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거여. 이게 목적이다 이거요. 열반이야기 하려고 온게 아니다 이거야. 내가 깨달은 부처의 지혜를 설해주기 위해서 이 땅에 왔다.
今正是其時로다
근데 지금『법화경』을 설한 이 때가 바로 그 때다 이 말이요. 지금까지『법화경』을 설하기 전까지는 전부 방편설이다. 이 말입니다. 方便說 그저 고통스러운 사람들 어쩌면 일시적이나마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까? 그 방법만 이야기한거에요. 나머지 모든 소승의 가르침들은 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이야기가 돼요.‘今正是其時라’지금이야 바로 그때다 이 말이요. 부처의 지혜를 가르쳐줄 그런 때다.
116 舍利弗當知 鈍根小智人 著相橋慢者 不能信是法 今我喜無畏
사리불당지 둔근소지인 착상교만자 불능신시법 금아희무외
於諸菩薩中 正直捨方便 但說無上道
어제보살중 정직사방편 단설무상도
舍利弗當知하라 鈍根小智人과 著相橋慢者는 不能信是法일새
사리불아 마땅히 알아라. 둔한 근기와 지혜가 작은 사람과 相에, 상에 집착한 교만한 사람들은 능히 이 법을 믿지를 못할새. 이 법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의 지혜‘사람이 부처님이다.’‘당신은 부처님’하는 그것을 믿지를 못할새
今我喜無畏하야 於諸菩薩中에
지금에 내가 無畏 기뻐하고 두려움이 없어서 이제는 인제 기쁜 마음으로 두려움이 없다 이거에요. 그래서 모든 보살들 가운데서
正直捨方便하고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그래 방편을 쓰는 것은 사실은 엄격하게 따지면은 정직하지 못한거죠. 어머니가 우는 아이 달랠려고 듣도 보던 못한 호랑이가“밖에 호랑이 왔다.”라고 하는 것은, 냉정하게 우리가 이야기하면 정직하지 못한 거잖아요. 아 오지도 않는 호랑이가 왔다니까 부모가 정직하지 못한 거지. 그 방편이 아무리 좋다하더라도 그거는 정직하지 못하다고 하는 사실이 이런데서 들어난 거요. 목적이 아무리 좋다하더라도, 그런 뜻도 사실은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기는 정직하게 방편을 버리고 했잖아. 이제는 더 이상 겁낼게 없다. 그리고는
但說無上道호라
다만 無上道를 설한다. 최상가는 도를 내가 설한다. 이제는, 이제는 나도 죽을날 며칠 안 남았는데 이때 바른 말 안하고 언제 바른 말 하겠느냐? 이게『법화경』이 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무상도를 설한다.
117 菩薩聞是法 疑網皆已除 千二百羅漢 悉亦當作佛
보살문시법 의망개이제 천이백나한 실역당작불
菩薩聞是法하고 疑網皆已除라
보살들이 이 법을 듣고서는 의심의 그물이 다 이제 제해져서. 다 이미 제해져서.
千二百羅漢도
그래서 천이백 아라한들도, 천이백 늘 따라다니는 상수제자들이죠.‘천이백오십인이’그렇게 돼 있잖습니까? 천이백 아라한들도
悉亦當作佛이니라
다 또한 마땅히 부처를 짓는다. 그 전에는 부처된다는 소리 한 번도 못했어요. 그저 기껏해야 아라한이다.“니는 뭐 잘해봐야 아라한이다.”그랬지만은『법화경』에 와서 부처다라고, 부처가 된다라고 처음에는 그래 이야기하다가 나중에 저「상불경보살품」에 가면은 바로 부처다라고 막 그렇게 이야기해. 내용은 바로 부처다 이 말이여. 부처가 된단 뜻이 아닙니다. 바로 부처다 이 말이여. 그렇게 이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법화경』의 정신입니다.
참 그래서 이『법화경』을 공부를 해야 불교의 그 경전중에서 완전한 공부를 한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법화경』은 부처님 교설(敎說)의 완성이다. 부처님 교설이 많은데 그 중에 완성판이, 완결판이『법화경』이다. 이렇게 이제 말합니다. 그 틀림없어요.
여기 이제 그동안 쭈욱 오늘 이제 내력을 보면은, 부처님이 처음에 고행하다가 저 보리수아래 앉아가지고 삼칠일동안 어떻게 하고 뭐 방편을 설하게 된 그런 내력들을 쭈욱 이야기를 했잖습니까? 그래 여기와서는 전부 천이백 아라한들이 아라한중에서 대표인데, 그 사람들에게 한 번도 부처된다는 소리는 안 했는데 여기는‘悉亦皆當作佛이라’모두들 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까지 돼 있습니다. 이게 아주 그래서 참『법화경』이 경중의 왕이다라고 이야기 할 만 하고 또 그 만한 이제 가치도 있고 그런 그 내용입니다.
그래서 불자가 되어서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을 믿고 불교를 믿고하면서 만약에『법화경』을 공부못했다. 그러면은 참 헛수고다. 허 참 안타깝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뭐 꼭『법화경』이 여기서만 공부되는 것도 아니고 책으로도 다 나와있고 하지만 이렇게 완전히 속에 감춰져있는 뜻까지 다 들춰내서 이렇게 하는 그 이야기를 반드시 이제 들어야, 이 속에 숨어있는 뜻을 우리가 다 알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여러 가지 인연과 매체를 통해가지고 그 이러한 이치를 좀 듣고 보고 읽고 알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그 길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걸 주위 사람들에게 또 많이 권해야 돼. 많이 권해가지고 뭐 여기에 안와도 얼마든지 그런 길이 있으니까 이런 이치를 알도록 하는 이것도 하나의 자비심이고 이것도 하나의 관세음보살 역할을 하는 거에요. 관세음보살이 자비가 너무 커서 뭐 하~ 별별 인간의 그 잡다한 소원들을 다 들어주는 그런 그 일을 하지만은 우리는 우선 그거는 못한다손 치더라도 이런 그 법으로써의 안내. 법을 나눠주는 그런 어떤 그 관세음보살의 한 백분의 일 정도 되는 그런 역할만이라도 우리가 일단은 해야된다고 하는 거죠. 그래야 이제『법화경』공부한 그런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또 보람이 있는 것이구요. 또 그렇게 회향하는 것이고, 공부한 것을 그렇게 회향을 해야 또 제대로 하는 거죠법화
오늘은『법화경』63쪽 118번부터 할 차례입니다.『법화경』이 이 근래에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 사찰마다‘법화경 산림’을 많이 합니다. 부산도 많이 하는 곳이 있고 또 서울도 하고 곳곳에서‘법화경 산림’을 많이 해요. 아주 좋은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제『법화경』은 뭐 다른 경도 마찬가지고 또 어떤 종교도 마찬가지지만은, 불교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실천해야 그게 믿는 사람에게도 소득이 있고 가정에도 소득이 있고 이 세상에도 소득이 있지. 바로 알고 바로 알지 못하고 바로 믿지 못하고 바로 실천하지 못하면은 궁극적으로 자신에게도 손해고 가정에도 손해고 세상에도 손해를 봅니다.
그래서 늘 정법불교, 정법불교를 강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죠. 바른 가르침 그게 이제 불교 안에서도 무수히 많이 이야기 되고 있지만은, 정법이 참으로 중요합니다.『법화경』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래요. 보면은, 그 동안에『법화경』공부한다고 그러면은, 종래에는 좀 이상하게 볼 정도로 그『법화경』공부하는 사람들이 좀 삿되게 어떤 행동하고 삿되게 생각하는 그런 이들이 더러 있었어요. 보면, 그래서 정상적인 사람도『법화경』공부하면은 이상하게 볼 정도로 그렇게 분위기가 한 때 그런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덜 하죠. 그게,
그래서 이제『법화경』은 다른 경전보다도 특히 삿될 우려가 좀 있다. 그런 점이 있어요. 사실은, 그래서 이걸 이제 제대로 이해를 해서 제대로 공부를 하면은 정말‘『법화경』이 곧 내가 되고 내가 곧『법화경』이 되고’하는 그런 그 입장이 됩니다. 요즘『법화경』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고 또 따라서 이왕이면 이제 하는 김에 바르게 하면은 자신에게도 이익이고 가정에도 이익이고 또 세상에도 큰 이익을 베풀 수 있다. 이렇게 이제 말씀 드립니다.
『법화경』은 좀 더 깊이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 일단『법화경』을 지니고 다녀. 또 지니고 다니면서 이렇게 한 줄씩 읽어. 또 읽고 또 외워. 마음에 드는 구절은 외우는 거야. 그리고 또 서사, 사경. 오늘도 또 사경을 많이 해오신 신도님이 있었는데“참 사경 많이 하신 분들이 아주 존경스럽고 또 고맙게 생각이 들어요.”그 사경하면은 읽는 것보다 10배 정성이 더 들어야 되고 또 그만치 마음에 깊이 이제 내 의식속에 그게 이제 젖어드는 거에요. 그 젖어드는 게 읽는 것도 좋지만은 읽는 것보다 더 효과가 크다. 그래서 이제 사경을 많이 권하고 또 사경은 마음을 탁 여기다 모아서 할 수 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정성이 더 들고 공덕이 더 많다 그런 표현도 합니다.
그리고 또 법회하는 장소에 소개를 해주고 인도해주고 안내해주고 알려주고 또 오늘 아침에도 뭐 TV에 법회가 나온다고 어디 또 전화가 왔더라고, 그래서 전화라도 혼자 보기 뭐하면 전화도 해서“지금 좋은 법회가 있으니까 TV를 틀어보라든지.”이런 것도 해설이야. 서사, 해설 가운데 해설에 해당되는, 그게 법문이야. 자기가 직접 못하면 하는 곳으로 안내해주고 이왕 자기가 한 구절이라도 해줄 수 있으면 그것도 또 좋은 일이죠. 해야 돼. 또, 결국은 다 해야되요. 승속을 가리지 않거든요.『법화경』에서는 특히, 그래서 그걸 오종법사(五種法師)라. 지니고 다니기만 해도 법사야. 또 법회에 온 사람도 전부 법사야. 법문하는 사람만 법사가 아니라 법회동참한 사람도 법사라고 이미, 책을 다 지니고 다니잖아. 읽잖아. 따라서, 또 한 두 구절 외우거든요. 또“오늘 어디갔다왔나?”하면“『법화경』공부하는 데 갔다 왔다.”하면 그것도 이미 벌써 설명이야. 그래서 오종법사의 한 서넛 너덧 법사는 다 해당이 되요. 그 오종법사를 다 실행하는 사람도 물론 있고
그래서 이제 참『법화경』은 공부할수록 그 위대한 경전이고 부처님의 최상승 법문이다. 다만 그것을 바르게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여기『법화경』을 보면은 이치를 설명한 것도 많지만은,『법화경』이 얼마나 좋고 얼마나 공덕이 되고 정말 훌륭한 경전인가 이런 것들을 상당히 많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저기 보면 공덕품,「분별공덕품」「수희공덕품」「법사공덕품」공덕품이 세 개나 있어. 이런 걸로 봐서 특히 이제 우리 삶에 큰 힘이 된다. 그런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지난 시간에 이어서 부처님 법이, 특히『법화경』의 가르침이 아주 희유하다. 참으로 귀하다.‘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이다’라고 하는 것을 찬탄하는 내용입니다.
118 如三世諸佛 說法之儀式 我今亦如是 說無分別法
여삼세제불 설법지의식 아금역여시 설무분별법
如三世諸佛의 說法之儀式하야
삼세제불의 설법의식과 같이 과거, 현재, 미래 깨달은 사람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석가모니 한 분뿐이 아니에요. 석가모니 전에도 계셨고 석가모니 이후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삼세제불하면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 깨달으신 분, 진리를 깨달으신 분들 그런 분들은 정말 진리를 제대로 깨달았다라고 한다면은 그들의 설법의식이 똑같다. 설법하는 의식, 설법하는 순서라든지, 설법하는 법도라든지 또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라든지 이런 것들이‘如’같아서 그 말이죠. 三世諸佛의 說法하는 儀式이 한결같아서
我今亦如是하야 說無分別法호라
내가 지금, 나도 지금 또한 이와같이 무분별법을 설하니라. 그랬어요. 무분별법을 설한다. 줄 그어야 돼. 無分別法 분별이 없는 법을 설한다. 요것도 다른 말로 하면은‘차별이 없는 법’을 설한다. 그래 삼세제불도 차별이 없는 법을 설하고 나도 그와같이 또한 차별이 없는 법을 설한다. 그랬어요. 이건 이제‘평등한 법’이다. 만인에게 평등한 이치, 만인에게 분별이 없는 이치, 만인에게 차별이 없는 이치 그건 뭔가? 일승법(一乘法)이다. 이런 말입니다.‘만인이 다 부처님이다’하는 것입니다. 만인이 똑같이 부처님이다.
뭐 잘나고 못나고 동양인이다 서양인이다 흑인이다 백인이다 뭐 황인이다 아프리카 사람이다 무슨 뭐 저기 서양사람이다 유럽사람이다 그런 분별이 없다. 이 말이요. 無分別法 그런 차별이 없다. 공히 사람이다. 사람이면 그대로 너무 지극히 고귀한 그런 그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일러서 부처님이라고 하고 그것을 일러서 하나님이라 하고 그것을 일러서 신이라고 한다. 그러면 본래로 우리는 하나님이고 본래로 우리는 부처님인거요. 그것은 불자만 그런 것이 아니고 기독교인도 똑같고 이슬람교인들도 똑같고,
저기 계속 기독교인하고 이슬람인하고 이슬람교하고 계속 그냥 그렇게 싸우고 있잖아요. 지금 뭐 1000명이 넘잖아요. 참~ 기독교국가 이슬람교가 어찌 그렇게 악독한지. 일방적으로 백분의 일도 안되요. 화력이라든지 전쟁 군사능력이 백분의 일도 안되는 거야. 근데 그 자기들은 다섯 명인가 죽었고 이 쪽은 1000명이 죽었어. 지금, 그런 전쟁을 막 벌이는 거에요. 야~ 참 불가사의해. 불가사의해.
어쨌든 그런 사람도 부처님이야. 그 본성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선악을 떠나서 이야기하는 거에요. 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은‘잘난 사람만 부처고 못난 사람은 부처아니다.’이런 법 없어. 세상에‘좀 착한 일 했을 때 부처고 악한 일하면은 부처 아니다.’이런 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건 보통 일반불교에서는 그런 이야기해요. 방편불교에서는 그런 이야기합니다. 이 법당말고 다른 법당가면 곳곳에서 그렇게 이야기 다 합니다.‘착한 일하면 부처고 악한 일하면 중생이다.’이『법화경』에서는 그런 게 아니야.『법화경』에서는 선악을 초월해서, 무차별법이라고 했잖아요. 무분별법, 무차별법 이 말은 결국은 선악의 차별도 없고 흑백의 차별도 없고 그러니까 뭐 팔레스타인인이나 이스라엘인이나 똑같이 부처님이다 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해당되는 이치 그게 무분별법이야.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이슬람교인이든 뭐 마호메트든 뭐 저기 저 별별 종교 많죠. 흰두교든 뭐 어떤 종교를 믿든 아무 관계없이 이『법화경』은 전체를 꿰뚫어 봤기 때문에, 그래서 이『법화경』이 위대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전체를 꿰뚫어보고 거기에 공히 해당되는 그런 그 숭고한 우리 인간의 가치, 불성(佛性) 뭐 거의 불성이라고 하든지 마음이라고 하든지 그게 이제 평등해야 돼. 그게 이제 무분별이고 무차별이고 평등하고 일불승이고 사람이 곧 부처님이다 하는 그 능력입니다. 이게 이제 이해가 참 어려울 거에요.
왜 착한 건 부처고 선한 게, 악한 것은 마구니거나 중생이거나 이렇게 알고 있고 그래야 내 생각에도 맞는 것 같은데, 왜 악한 것 착한 것하고 한꺼번에 다같이 부처라고 하는가? 이게 아마 이해가 잘 안될거요. 그래서 여기「방편품」의 처음에도 저 앞에 보면‘5000명이 퇴석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이런 말이 있었잖아요. 그게 이해가 안된다는 뜻입니다. 불교공부 많이 했어도, 아 선과 악을 똑같이 뭉뚱그려가지고 그 능력, 웃을 줄 알고 울 줄 알고 화낼 줄 알고 기뻐할 줄 아는 그 아주 위대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 능력 거기만 자꾸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또 그게 이해가 돼야 그 다음에 밖으로 무슨 관세음보살처럼 참~ 그런 선한 일을 하는 것은 그건 저절로 따라오게 돼있습니다. 사실은, 그런 일은 안 가르쳐도 따라오게 돼있어요.
불교 모르고 무슨 기독교 모른 사람도 선한 일 잘한 사람 얼마나 많습니까? 천성적으로 다 선하게 돼있어요. 사람은, 어떤 상황따라서 그래서 그렇지. 그래서『법화경』은 중요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런 방편불교에서 말하는‘권선징악(勸善懲惡)’선을 권장하고 악을 반대하는 그런 가르침 이야기 할 겨를이 없는 거에요. 이것은, 그래서 무분별법을 이야기한다. 물론 불교안에서 방편불교가 많지만은 여기서 삼세제불의 설법의식이 똑같고 나도 또한 똑같은 그 통일돼있는 한 가지 가르침. 그것은 무분별법 분별이 없는 이치에요. 또 차별이 없는 이치, 평등한 이치, 일승의 이치, 불승의 이치‘사람이 곧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그 이치를 설한다. 그랬습니다. 이 참 중요한 거에요.
에 이제 전14품중에서 이「방편품」이 끝나가는데, 이「방편품」은 안목이라고 그러죠. 왼쪽 눈이라면은 후14품에「여래수량품」은 오른쪽 눈이다. 두 개의 눈이 있다라고 하면은 그렇게 이제 표현할 수가 있다 그랬습니다.
기억나시겠지만은 저 앞에서, 이「방편품」저 앞에서 어린 아이가 장난삼아 모래를 모아놓고“이것이 불탑이다.”라고 해놓고 절을 하고 그렇게 장난을 치더라도 그것으로‘개이성불도(皆已成佛道)라.’다 이미 불도를 이루어 마쳤다. 그랬잖습니까? 망상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뭐 법당에 혹시 가져갈 게 없을까 하는 그런 그 마음으로 법당에 와서 부처님 앞에서 손을 한 번 척 드는 그것만으로도 皆已成佛道라. 이런 기가막힌 정말 기상천외한 그 가르침을 우리가 이『법화경』을 통해서 봤습니다. 대단한 이야기거든요. 이거, 아무나 아무 경전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또 아무나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일입니다.
다 삼아승지하는 세월을 그~ 갈고 닦고 갈고 닦고 난행, 고행을 하고 용맹정진을 하고 무릎이 그냥 피가 나도록 천 배, 만 배, 수억만 배를 하고 뭐 이렇게 수행하는 세월을 수십 년, 수백 년을 쌓아야만 비로소 부처가 된다. 이렇게만 가르치는 거에요. 지금까지, 그건 이제 방편불교야. 물론 그런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도 물론 있어요. 그러나『법화경』에서는 우리 봤다싶이 손 한 번 번쩍 드는 것만으로도 이미 불도를 이루어 마쳤다. 손 한 번 드는 그 사실, 아이들이 오줌을 눠가지고 모래 뭉치는 그 사실, 그 능력이 어디서 나왔냐? 불성에서 나왔다. 불성에서 나왔다. 망상심으로 무슨 훔쳐갈 게 없나 하는 그런 마음으로 법당에 와서 손 한 번 번쩍 드는 것만으로도 皆已成佛道라 했잖아요. 그럼 그 행동이 어디서 나왔느냐? 이거요. 바로 불성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사람의 근본성품에 대한 이해가 우리는 너무 잘못 알고 있어요. 조금 밖에 모르고 있는 거야. 이게 이제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자꾸 이해시키고 일깨워주고, 거기에는 어마어마한 활화산이 묻혀있는 것이고 어마어마한 보물이 거기에 묻혀있기 때문에 그것을 자꾸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거기에 눈을 탁 뜨게 되는 거지. 거기에 눈을 뜨게 되.
어떤 사람들은, 봉사활동 잘 하는 사람들은 자비심에, 불교의 자비심, 지혜와 자비거든요. 자비심에 눈을 뜨는 거야. 아~ 이렇게 이렇게 어려운 사람돕고 불쌍한 사람 돕고 하는 그런 일에 눈을 탁 뜨는 사람들도 있어. 자비심의 눈을 뜨는 거기에 눈을 딱 뜨게 되면 그만, 예를 들어서 꽃꽂이에 눈을 딱 뜨면은 그만 거기에 그냥 온 정신을 다 거기갖다 정성을 다 바치고 다 빼앗끼는 거요. 집안에 어떤 일이 있어도 꽃꽂이 공부하러 가야되는 거야. 꽃만 좋아하는 거라. 정말 거기에 눈을 떠버리면 그렇게 돼버려요. 자비심에 눈 뜬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거요. 또, 그렇게 살아. 정말 헌식적으로 보살이 돼서, 관세음보살이 돼서 사는 거라.
우리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자꾸 부르는 대, 결국은 그것이 자비심에 눈을 뜨도록 하는 한 방법이죠. 그래 많이 부르고 기도하다 보면 어느 날 자비심에 눈을 떠가지고 자기가 관세음보살이 되는거야.『법화경』에 나중에「관세음보살보문품」이 뒤에 이제 나와요. 나오는데 그렇게 자비심에 눈을 뜨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이 부처님인데, 부처님이 고생하고 있다. 부처님이 앓고 있다.그러면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그래서 거기에서 자비심이 눈을 탁 뜨게 되는거요. 그래서 관세음보살이 곧바로 되는거요. 오늘 내가 이제 그런 사람에 대한 사례를 이제 뒤에 이야기를 할려고 합니다.
이제 그 다음에
119 諸佛興出世 懸遠値遇難 正使出于世 說是法復難 無量無數劫
제불흥출세 현원치우난 정사출우세 설시법부난 무량무수겁
聞是法亦難 能聽是法者 斯人亦復難
문시법역난 능청시법자 사인역부난
諸佛興出世는 懸遠値遇難이며
모든 부처님이 出興 나오신 것은 아주 아득하고 멀고 멀어서 만나기가 어렵다. 여기서 이제 難 難 難 밑에 줄로 어려울 난자가 네 개 있죠. 그래서 요것을 이제 사난장(四難章) 해요. 어려울 난자가 네 개 있다고 해서.
처음에 석가모니 부처님같이 그렇게 깨달은, 진짜 우리가 본래로부터 부처님이지만은 본래로 부처님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고 그것을 우리들에게 이렇게 들어내어서 알려 줄 수 있는 그런 석가모니 부처님같은 그런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기는 어렵다. 이런 말입니다. 아직도 부처에 눈을 못뜬 우리같은 부처는 천지지. 곳곳이 부처야. 그냥, 이리가도 부처고 저리가도 부처고 부딪히는 게 전부 부처지. 그렇지만은 석가모니 부처님같이 그런 부처에 눈을 뜬 부처는 만나기 어렵다. 첫째 어려움
그 다음에
正使出于世라도 說是法復難이며
그랬어요. 正使 곧바로 세상에 부처님이 출세했다하더라도 이 법을 설하기 이『묘법연화경』이러한 도리, 무분별법, 무차별법, 평등한 법, 사람이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이러한 법. 是法이 그 법이에요. 이러한 법을 설하는 것은 다시 또 어렵다. 그랬습니다.
그『법화경』은 부처님이 성도하셔가지고 49년간 설법하셨는데 마지막 8년동안 이『법화경』의 이치를 설했지. 그 전에는 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중간에 부처님에게 귀의했다가 뭐 승속을 막론하고 수행자나 무슨 뭐 출가한 승려나 귀의해서 수십 년간 있었어도『법화경』공부 못한거로 돼있어요. 그 마지막 부처님 열반에 들기 8년이전까지는『법화경』공부 못했다.『법화경』법문을 못 들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법을 설하기가 다시 또 어렵다.
그 부처님이 오시기가 어렵고 두 번째는 부처님이『법화경』을 설하기가 어렵다. 이 말입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無量無數劫에 聞是法亦難이며
여러분들 불교에 입문해가지고 불교에 인연맺어가지고 저 어려서 할머니 손에 매달려서 절에 다닌 때부터 지금 손자를 데리고 절에 오기까지 수십 년, 수십 년 세월 그게 無量無數劫이야. 그런데『법화경』몇 번이나 만났어요?『법화경』법문을 얼마나 들었냐고요? 그러니까 이 법을 듣기가 또한 어렵다. 그렇게 된거요. 이 법을 듣기가 또한 어렵다.
대단한 거 아닙니까? 오늘 이 이야기 듣고 이 구절 공부한 것만 해도 여러분들은 부처님하고 인연맺은 보람이 있는 것이고‘아! 비로소 내가 참 부처님하고 인연맺어가지고 불교에 인연맺어서 비로소 이제사 할 일을 하는구나.’이런 안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순간입니다. 聞是法亦難했잖아요. 이 법을 듣는다고 하는 사실이 또한 어렵다.
그렇죠. 근래『법화경』설하고 있지만은 곳곳에서 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지만은 정말 요로한 대목을 꼬집어가지고, 無分別法이 도대체 무슨 법인가? 이게, 이게 도대체 무슨 법인가? 이것을 확 들어내가지고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주는 그런 기회가 쉽지 않습니다. 없어요. 잘, 곳곳에 법회가 많고 무슨 절이 많고 하지만은 정말 이러한 도리를 듣기가 쉬운게 아니에요.‘聞是法亦難이여’이러한 법을 듣기가 또한 어렵다.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이거, 여기 뭐 늘 다니면서 뭐 우리야 맨날 듣는 거 아닙니까? 싫증나고 뭐 할 정도로, 좀 뭐 딴 스님이 와가지고 다른 법문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이런 정도로 뭐 신물이 나있지만은, 이게 어려운 거요. 어려운 것에 눈을 못 떠서 그래. 아직‘참~ 다행한 것이구나! 참으로 이 소중한 것이구나!’하는 것에 대한 그런 감동이 안 와서 그런 거에요. 정말 어려운 거요.
그 다음에 네 번째
能聽是法者도 斯人亦復難이라
내가 아무리 이런 말을 하고 여러분들이 들어도 여기에 聞하고 聽하고 여기서는 뜻이 같에요. 능히 이 법을 듣는 사람이라하더라도 여기서 斯人亦復難라 그랬어요. 이 사람, 이건 그 사람. 그 사람은 또한 다시 어렵다. 그렇습니다. 진짜 법화행자, 진짜 법화행자.
뭐 듣고 한 번 쑥 가면 의례적이고 정기적으로 하는 법회니까 뭐 가서 얼굴이나 내밀고 참석이나 하고 회비나 주고오면 되지 하는 그런 식으로 간 사람은 斯人에 해당안돼. 이 사람에 해당안돼. 정말 감동을 하고‘아 이건 내 살림살이로 만들어야 되겠다. 내 인생의 정말 소중한 가치로써 삼아야 되겠다. 아 이『법화경』공부가 정말 내 인생의 소중한 가치구나!’이렇게 생각하는 그 사람. 이걸 법화행자 그래요. 이런 사람 斯人 이 사람. 이 사람은 또한 다시 어렵다. 그랬습니다. 이 사람은 또한 다시 어렵다.
엊그저께 서울에서 어떤 신도님이 왔는데 이 한문으로 된『법화경』을 열 번째 써가지고, 첫 번째 쓴 것은 딸주고 두 번째 쓴 것은 아들주고 그 다음에 며느리주고 누구주고 어느 동생주고 언니주고 이렇게 해가지고 열 번째 써가지고 내한테 가져왔어요. 고 열 번째 쓴 것은 내한테 줄려고 마음을 먹고 썼고 내 병이 낫도록 기도문을 탁~ 지어가지고 그렇게 왔어. 열 번째! 한문으로 된 경을 열 번을 써가지고 왔더라고 그것도 화선지에다 이렇게 길게. 아이고 놀랬어! 정말, 정말 감동받았어요. 열 번째 써가지고 얼마? 열 번 쓰는데 얼마걸렸냐? 하니까 5년 6개월 걸렸대. 5년 6개월. 나를 만나기 전부터 두 번이나 썼어. 벌써, 그래 두 번쓰고 나서 이제 인터넷을 통해서 이제 염화실을 통해서 이제 나를 만나가지고
나를 만나기 전에 두 번이나『법화경』을 쓸 정도니까 불교에 대해서는 거의 뭐 왕보살이야. 그런 정도라. 그러다가 염화실을 통해서 가만히 법문을 들어보니까 들어보니까‘참 법문을 바르게 한다. 또 정법으로써 한다. 불교에 대한 그런 그 정말 그 바닥을 다 들어내서 한다.’라고 하는 그런 그 느낌이 온 거라. 그래서 살살 염화실에 들어와가지고 법문듣고 뭐 글 올려놓은거 보고 그러다가 근래에 아주 내가 서울에 올라가면 꼭 이제 내 법문하는데 와서 듣고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앞으로 보살행하겠다.”딱 그렇게 내한테 이제 약속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어떻게 하더라도 하여튼 이『법화경』의 이치를 여러 사람들에게 많이 전하는 그런 보살행을 할려고, 그 사람은 이미『법화경』이 자기 살림이 돼가지고 자비심에 눈을 뜬 사람이라. 그게 이제 이것을 알면은‘얼마나 널리 펴느냐.’하는 이 일이 남았거든‘얼마나 널리 펴느냐.’이치를 가르쳐 주는 것. 이게 이제 자비심에 눈을 뜨는 일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 뭐 많은 관세음보살님이 살아계시지만은 내가 한 사람, 그 중에서도 한 사람 관세음보살님을 이야기하라면은 대만에 있는 증엄스님이라고 하는 비구니스님이 있어요. 그 스님 나는 첫 손가락, 내가 아는 사람으로써 뭐 내가 모르는 사람은 내가 말할 순 없고 또 그보다도 더 나은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은, 그 스님이 정말 살아있는 관세음보살님의 아주 대표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 대만불교가 우리가 알기로는, 지금은 뭐 서양에도 불교가 들어가가지고 뭐 그 프랑스에 불교가 상당하잖아요. 굉장한 거요. 미국도 불교가 뭐 우리나라불교가 미국에 조금 들어가있지만은, 한 뭐 우리나라 사찰 한 50개 사찰정도 될까? 그런데 중국불교는 뭐 수백 개 사찰, 티벳트불교도 수백 개 사찰, 월남불교가 그 사람들이 피난을 가가지고 수백 개 사찰이 있고 일본불교도 수백 개 사찰이 있고 그래요. 우리나라불교가 제일 약해요. 미국에서 한 5~60개 사찰뿐이 안되니까.
그런데 이제 그 모든 세계불교 현황을 우리가 이렇게 살펴봤을 때, 뭐 자세히는 모릅니다만은 그래도 요즘 이런저런 정보가 다 노출이 돼있으니까 볼때, 대만불교가 제일 신심이 있어요. 대만불교가, 작은 나라인데도 인도가 한 2000만 조그만한 국토 그런데도 제일 신심있는 불교가 대만불교다. 이렇게 생각이 들어요. 일본은 뭐 전체가 불교국가다 하지요. 전체가 불교국가라고 해요. 사실은, 왜냐하면 전체 분위기가 불교적이긴 해. 그러나 신심의 열기는 대만만 못해.
그 대만은 그 중에서도 이제 스님들을 꼽는데, 그 모두 이제 공산당하고 국민당하고 싸우다가 피난왔잖아요. 대만에은 피난와가지고 비로소 이제 불교가 자리잡은거라. 그 본래는 불교 있다해도 아주 미미했는데 본토에서 피난와가지고 그렇게 이제 자리잡았는데, 그래 이제 대만불교를 여러분들 잘 아시는 그 성운스님 불광산사 그걸 우리는 첫 손가락 꼽아요. 우리나라에도 포교당이 와 있고 미국에도 큰~ 대학도 있어요. 미국에 큰 대학도 세우고 미국에 LA에 큰~ 절을 지었는데 범어사 몇 배되는 큰 절을 지어놨어요. 거기 이제 서광산가? 서래산가? 그렇게 하고 거기다 이제 대학도 세우고 그런 정도로 포교를 많이 했습니다. 불광사는, 성운스님. 아직도 살아계신 그런 스님이 있고
그 다음에 이제 법고산에 유각스님이라는 이가 있어. 그 이가 성운스님 못지않는 그런 스님이고 또 중대선사에 성엄스님이 있어. 성엄스님이 이제 법고산에 있고 유각스님이 중대선사라고 또 아주 스님들만을 주로 공부시키고 이 중대선사는 내가 사진으로만 봤는데, 우리 범어사 학인들이 갔다왔어요. 사진을 보니까 크~~~은 빌딩 한 채를 짓고 그 안에다가 모든 불교관계를 다 이제 집어 넣어놔 버렸어요. 어마어마한 빌딩을 지었어. 큰 빌딩 수십 층 한 30층인가 되는 그런 빌딩을, 그 안에다가 부처님도 세우고 무슨 뭐 병원도 하고 뭣도 하고 교육기관, 강원이다 학교다 일체것을 다 했어. 그래 어마어마한 그런 빌딩을 세워가지고 그렇게 이제 포교를 한 그런 그 스님이 또 있어요. 유각스님이라고
그래 다섯 개 단체를 꼽는데, 그 다음에 이제 공덕‘자제공덕회’라고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살아있는 관세음보살님이라고 말하는 증엄스님이 있고 그 다음 내가 이제 또 한 번도 만난적도 없고, 다 만난적도 없고 뭐 내용도 잘 모르지만 이제 그 정보를 통해서 이제 내가 알고있는 건데, 내가 그 스님을 그 말하자면은 그 흉내를 내고 있는 스님이 있어요. 정공스님이라고 정공스님. 맑을 정(淨)자, 빌 공(空)자. 그 스님은 어떤 단체를 이끄는고 하니?‘불타교육기금회’라고 하는 그런 그 단체를 해가지고, 내가 그 전에 다른 사찰에도 있을 때 그 스님이, 그 스님은 이제 불교경전을 온갖 불교책을 많이 출판해가지고 어디든지 보내주는 거라. 세계 어느 곳이든지 다 보내줘.
우리나라도 뭐 얼마든지,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몰라요. 컨테이너로 한 박스씩 보내가지고는, 주소만 알고 거기에 읽을 사람이 있다고 하는 그런 그 정보만 들으면 막 보내주는 거라. 그래서 내가 그 책을 많이 읽었어요. 많이 받았고 다른 사람한테도 많이 나눠주고 했는데,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참 법공양이 제일이다 하는 것을 경전을 통해서 이제 늘 듣고 이제 그래서 나도 이제 그 스님이 참 제대로 하는 분이다.
뭐 증엄스님도 훌륭하고 성운스님도 훌륭하고 성엄스님, 유각스님 다 훌륭한 그런 그 대만의 아주 뛰어난, 거기 스님들은요. 한 스님이 하는 포교활동만 하더라도 우리 조계종 전체하고 맞먹습니다. 조계종, 한 사람이 하는 것만해도 우리 조계종 전체, 한국불교 전체하고 맞먹을 정도에요. 전 세계적이니까, 중국사람들이 전세계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한 사람이 하는 활동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불교하고 거의 맞먹어요.
그 정공스님하면은 이제 책을 가지고, 불교책을 가지고 전 세계에다가 다 보내는 거요. 그 출판을 해가지고, 그러니까 딴 출판사에서 불교책을 출판하지요. 그러면 그걸 돈을 많이 주고 출판권을 사 버려. 자기가 사가지고 그것을 수천 권, 수만 권을 찍어가지고 외국에다 막 보내줘버려. 그것이 출판하는 것이 한문으로 된 것하고 영어로 된 것하고 두 종류로 나와요. 우리나라에도 영어로 된 것도 많이 나오는데, 내가 그래서 이제 그 스님 그 본받는다고 그래 내가 이제 법공양일을 내 나름대로 힘 닿는데로 하는거요. 그래서 저기다가 이제 많이 가져가서 법공양하라고 요즘에 저리 해놨는데, 저걸 그전부터 했는데 누가 또 열심히 보조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내 마음이 그냥 얼른얼른 그렇게 이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거라.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이제 해야되는 거라. 이 인덕이 없어놓으니까.
그래 이제 저 법공양을 저렇게 갖다놨으니까 여러분들이 내 심부름을 하는거에요. 갖다가 줄 사람 갖다주고 하면 그건 이제 부처님의 심부름을 하는 것이고 또 가까이로썬 내 심부름을 하는 거라. 그게 이제 대만의 정공스님‘불타교육기금회’를 이끌어 가고있는 정공스님이 하는 거라. 누가 가보고 왔는데 조그만한 그런 그 사무실 하나 놓고 창고가 있고 그렇더래요. 그 아주 구차해보이는데 거기서 전 세계적으로 불서를 다 보내는 거라. 대단해요.
지금 살아있는 관세음보살님 증엄스님 그 사람 斯人 말하자면『법화경』이 인격이 돼가지고 정말 그 관세음보살로 살아가고 있는 증엄스님은 비구니스님이야. 그런데 이 스님이 이제 73센가 그 정도밖에, 그 정도 됐어요. 근데 이 스님은 지금 우선 그 범위만 가지고 이야기하면은, 첫째 우리 여기 저 부산대학같은 병원이 여섯 개가 있어. 여섯 개. 종합병원, 병원이 여섯 개가 각 도시에 있어요. 놀랬죠? 우리나라 불교 전체 TV채널이 하나야. 그래 맨날 화주해가지고 그 화주하는 것만 24시간 나오는 거야. 그래가지고 겨우 요 운영하는데, 그 스님은 혼자 TV채널 2개를 가지고 있어. 대애TV라고 큰 대(大)자, 사랑 애(愛)자 대자대비라는 뜻이지. 혼자 불교TV 채널 2개를 가지고 있어. 그 우리나라불교 다 해도 그 스님 하나 못 당해. 지금 동국대학교서 종합병원 엊그제사 겨우 개원을 했는데, 그 스님 혼자 그런 병원 여섯 개를 가지고 있어. 놀라운 일이여. 놀라운 일.
또 전번에 그 중국에‘사스’또 지진 저 스나미지진 온갖 그런 전 세계에 그 저기 저 재난이 일어났을 때 그 나라 구호단체보다도 제일 먼저 가는 것이 이 자재공덕회 구호단체야. 국가에서 하는 것은 뭐 질서 밟고 명령 떨어지고 뭘 준비해주고 그렇게 하지. 이 사람들 제깍 가 버려. 바로, 누구 명령도 없이 바로 가버려. 그러고 제일 먼저 그 어느 세계에서 재난이 일어나더라도 제일 먼저 오는 단체가 이 스님이 이끌어가는 자재공덕회 단체가 오는 거라. 그 푸른 옷을 입었어요. 그 푸른 옷의 천사라고 돼있어. 전 세계적으로 그렇게 알려져 있어.
그게 이제 특히 우리나라같은데서는 기독교 성향이 많기 때문에 저기 저 보도하는 그런 그 뉴스나 이런 매체들은 그것을 잘 보도를 안 해서 그렇지. 그런 나라에서는 보도를 바로바로 하는 거야. 보도를 제대로 안 해요. 그런데 그만치 보도를 해. 그러면 사람이 몇 명이 있어가지고 그렇게 하느냐? 60개 나라에 500만명이 회원으로 있어. 60개 나라에 500만명이 회원이야. 자재공덕회 그러면 그 스님이 무슨 힘으로 그렇게 했느냐?
여기 저 내가 이야기를 하지.
이 스님은 어떤 신도가, 처음에 이제 출발이 그래요. 어떤 신도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병원에 갔어요. 가서 위문을 하고 나오다가 피가 흘러있는 것을 봤어. 피가 흘러있는 것을 보고는“이게 어떻게 돼서 이러냐?”하고 수위, 그 지키는 수위한테 물었더니 그 원주민, 대만의 그러니까 1966년인가 그래요. 1966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40년전 일이라. 40 한 4~5년전 일인거라. 그러니까 그때 대만이, 우리나라도 그렇지만은 그때 그 상황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 위에 원주민이 여덟 시간 걸려가지고, 아이를 가져가지고 병원에 와서 낳기 위해서 여덟 시간 걸려서 산에서 내려와가지고 병원에 왔는데, 원주민이 무슨 아나? 아무것도 모르지. 돈이 있어야 되고 보증이 있어야 되고 뭐가 있어야 되고 뭐가 있어야 되고, 그걸 이제 조건을 제시하니까 또 병원에는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그걸 이제 모든 준비가 하나도 안 돼가지고 그래서 도로 그 아이를, 곧 출산해야 하는데 피를 흘리면서 그렇게 나간 그 피라고 하더라는 거라.
그래서 거기서 이 스님이 팽 돌아가버렸어. 완전히, 돌아가가지고는‘아! 사람을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한 생명이 어찌 한 생명이냐? 그게 두 생명인데, 어떻게 저것은 돈이 없어서 그렇다. 이 생각을 한 거야. 그래 이 스님이 평소에 이제『법화경』공부를 많이 했어.『법화경』공부를 어떤 스님한테 한 것도 아니야. 처사한테 했어요. 어떤 처사한테, 여기보면 처사 이름도 다 나오고, 어디서 어떤 처사한테 했다고 하는 그런 내용도 다 나와. 그래서『법화경』공부를 하면 저절로 관세음보살이, 자비사상이 여기에 나오니까 그래서 이제 거기서『법화경』이 몸에 밴 거여.
그리고 이 스님은 그런 활동하기 전에『법화경』강의도 또 했어.『법화경』강의를,『법화경』강의하면서 상당히 그 자기마음에 젖어든 그런 일이라서, 그때『법화경』강의할 때 제자들이 몇이 모인거야. 제자들이 몇이 모여. 여기보면 그때 모였던 제자들 이름도 있고 그랬어요. 그래서 이제 이 스님이 하는 말이 그래요. 그때부터 구호활동을 벌려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해가지고 이제‘불교자재공덕회’‘불교극난자재공덕회’이렇게‘불교극난자재공덕회’그렇게 처음에 했는데, 그 다음에‘자재공덕회’라고 그렇게 했어요.
이 스님이 하는 말이 내가 제일 감동받은 게“천하에 내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천하에 내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바로 관세음보살님 말씀이야. 마음이라. 이 스님은 자기 속에서 나온 소리야 그게. 그 다음에 또“천하에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완전히 관세음보살 마음이 돼버린 거요. 또“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그래서 이게‘보천삼무(普天三無)’온 천하에 세 가지 없는 것. 천하에 사랑하지 못할 사람 없고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 없고 내가 믿지 못할 사람 없다. 그 어떤 독한 놈도 어떤 나쁜 놈도 내가 다 믿고, 어떤 나쁜 놈도 다 사랑하고, 어떤 나쁜 놈도 다 용서하겠다. 이 뜻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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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관세음보살이 아니고야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래가지고 이 스님이 이제 그 그야말로 자비행을 실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그렇게 해가지고, 이제 활연이라는 곳에다 맨 처음에 병원을 세워가지고 가난한 사람하고 연세높은 사람하고는 무료로 치료해 줘. 지금도 그렇게 해. 그 스님이 세운 병원 여섯 개에서는 지금도 고대로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무조건 무료라. 아무 보증서고 없이 무료로 해. 치료해주고 어떤 병이고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다 무료로 해주고 그래서 돈이 없어서 치료 못 받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이게 그 스님 원력이라. 아! 대단하잖아요.
그러니까 무려 여섯 개 병원, 종합병원 여섯 개를 세웠다니까 대만에다가, 그게 저 그 사이트에 들어가면요. 병원 여섯 개가 착착 이렇게 그림이 떠. 그림이 여섯 개가 착착 그림이 떠. 이거는 어디 병원, 이건 어디 병원하고 종합병원 여섯 개가 계속 그렇게 뜨는 거요. 내가 가보지 않았어도, 지금은 환하게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고있는 그런 세상 아닙니까? 그렇게 내 그거보고는 참, 그래 종합대학이 있고 방송국이 있고 라디오방송국이 있고 뭐 중 ․ 고등학교는 말 할 것도 없고 그리고 또 거기 간호사들이 필요하잖아요. 간호대학도 세우고 이젠 뭐 단체가 커 놓으니까 그런거 할려면 일도 없는거여.
거 이제 자기 그 그전부터 어머니가 해준 절이 있어. 어머니가 해준 절이있는데, 거기에 스님들이 160명인가 사는데 그러면 먹고 사는 것하고 구호기금하고 관계는 어떻게 하느냐? 이제 빵도 만들고 장갑도 만들고 무슨 인형도 만들고 거기서 이제 자급자족을 하는거야. 그래가지고 생활은 그걸로 해. 스님들이 생활은, 지금도 그걸로 하고 구호기금은 10원도 안써. 전~부 병원으로 다, 병원운영에 구호단체로 다 보내요. 생활비하고 그 구호기금하고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투명하게 그렇게 관리를 하는거라.
그러니까 이 신도들이 대만신도들이 그걸 보고 그만 감동하는 거요. 절에다 시주 좀 몇 푼하면은,‘저 시주 제대로 쓰는가? 불사에 쓰라고 했는데 이 제대로 쓰는가?’솔직하게 그렇게 의문을 한다고요. 그만치 안 믿어지는 거야. 또 솔직하게 그게 제대로 안 쓰는 스님도 많고 제대로, 그 원래 그렇게 그 저저 뭐야? 서까래 사달라고 하면은 서까래만 사야 되요. 만약에 서까래가 남는다 그러면 그리고 돈이 남았잖아요. 그러면 그거 허락을 받아야 돼. 시주 한 사람인데나 아니면 대중들에게 허락을 받아서 써야 돼. 그게 이제 호용죄라고 해서, 우리나라는 보통 우리 저저 회계에도 그게 이제 그 관을 바꾸면 그 항을 바꾸면은 그것도 법에 걸리잖아요. 그게 불교법에 본래 그게 정해져 있어.
그래 이 사람들은요. 구호금하고 자기 생활하는 거하고는 지금도 철두철미하게 나눠가지고 하는 거라. 지금도 그 사람들은 160명 되는 스님들은, 그 정사정사야.‘정사정사(靜思精舍)’고요할 정(靜)자, 생각 사(思)자 절이라고 하는 정사(精舍). 정사정사에 그런 스님들이 사는데, 거기서는 일체 자급자족해서 생활합니다. 일체 자급자족. 대단한 그 정신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사실을 정확하게 신도들이 다 알다보니까 신심이 나는 거야. 그냥, 있는대로 갖다주고 싶어하는 거라. 그런데 이 스님은 한 가지 독특한 일은 하루에 돈, 예를 들어서 10원을 모아라. 그래 신도들에게 30명이 처음에 신도단체가 됐대요. 지금 500만이지만은, 그 30명이 신도단체가 됐는데 그 하루에 10원을 모아라 그래. 그러니까 조금 사는 사람들이“하루에 10원 모아서 그거 뭐합니까? 한달에 돈 100만원 갖다 드릴께요.”이렇게 했대요. 그러니까“나는 그건 반대다. 그러면은 당신이 하루에 100만원을 갖다준건 좋다 말이야. 그렇지만 당신은 자비심을 한 달에 한 번밖에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데 하루에 10원을 모으는 사람은 매일 자비심을 일으켜서 30일, 한 달, 30일을 계속 자비심을 일으키는 사람이다.”야~ 대단하죠. 이거 꼭 기억하세요.
그래서 하루에 10원씩 모아도 30일 이 사람은 계속 자비심을 일으키는 거야. 자기 모으는 동안은 그래도 그 마음으로 모으니까, 근데 한 달에 100만원 딱 한 번 내는 사람은 한 달에 한 번밖에 자비심을 안 일으키는 거야. 그 마음의 가치, 정성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돈의 액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거지. 야~ 대단하지요. 그거 참 놀랬어요. 그거, 그거 읽고는 감동 안 받을 사람 누가있어요? 모두 고개 끄덕끄덕하네. 맞잖아? 그거. 그게 중요해요. 꾸준히 하는 거.
공부도 그래요. 공부도 하루 24시간 하면 그 다음 지쳐가지고 일주일 놀아버리면 아무 소용 없어. 하하하하 하루에 1시간 하더라도 매일 해야 돼. 매일, 매일 해야 되는 거라. 일체 일이 그렇게 돌아가요. 그래서 증엄스님은 그런 스님이라. 그래『법화경』을 공부를 했어요.『법화경』공부를 많이하고『법화경』사경을 하고 일본『법화경』을 대만어로 번역하기도 하고, 경력에 보면 그래요. 그래『법화경』강의도 많이 하고 그래서『법화경』으로 무장이 돼있어.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이 툭 튀어 나와버렸어. 완전히 경에서 문자에서 실지 인물이 튀어 나와버린거라.
그래 그 스님이 그렇게 아주 그 올곧은 정신으로 그렇게 시종일관 그 사진보면은요.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생겼어. 선풍도골(仙風道骨)이라고 그렇게 표현해놨는데, 빼빼마르고 까무잡잡하고 그런 아주 어딘가 무서움이 있어 보이고 그런 그 사진이 또 떠요. 보면은, 그래서 이 스님은『법화경』을 읽고 모든 사람이 부처님이구나. 부처님이 저렇게 돈이 없어서 목숨이 저렇게 두 사람이 한꺼번에 죽어가는 그 모습을 보고는 그만 충격을 받아가지고‘돈이 없어서 치료못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되겠다.’이걸 그 마음 깊이 새기고는 그 병원을 세우기 시작했어. 주로 첫째 병원세우기 시작해가지고 그 다음에 사섭법에 근거해서‘자비희사’자(慈)는 자비의 실천이고 또 그 다음에 뭐 교육사업, 문화사업 이 사대사업을 이제 크게 이제 펼쳐가지고 지금은 뭐 어머어마하게 해요.
그리고 또 또 한 가지 충격받은 것은 신도 수녀들하고 한 번은 대화를 했는데, 그 불교이론은 뭐 기독교보다 훨씬 그 높잖아요. 참 깊이가 있고 그런건 다 아는데, 수녀들이 그 마지막으로“스님 뭐 그렇게 좋은 불교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세상에 불교가 한 일이 뭐가 있느냐?”이러드라는 거요.‘세상에 불교가 한 일이 뭐가 있느냐?’자기들은 교리는 못하다 하자. 온갖 의료사업, 온갖 교육사업, 온갖 자선사업 우리가 우리 수녀들이 다하고 있는거 알지 않느냐? 병원도 아주 상당한 가 봐요. 그러니까 그만 이 스님이 거기에 질려버린거야. 그래 크게 또 충격을 받았어.
그 당시 그 사람들 수녀들이 하고 있는 사회사업하고 불교에서 하고 있는 사회사업하고 딱 이렇게 비교를 해보니까 이게 엄청난 차이거든, 큰일났다 싶은거야. 할 말이 없는거지.“불교가 교리가 그렇게 좋다면 세상에 한 일이 뭐가 있느냐?”이래버렸어요. 수녀들이, 여기에 글이 다 나와있어요. 책에, 세상에 한 일이 뭐가 있느냐? 그래서 이 스님이 이제 그 수녀들하고 헤어져가지고는 고민을 한 거야. 가만히 생각해보니까‘불교신도들도 사실은 이게 묶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개인 개인으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엄청 많이 있는 걸 자기는 알고 있는데, 이게 이제 개인 개인이 하고 사찰 사찰별로 조금씩 조금씩 하다보니까 이게 힘이 안 생기고 그만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고 그래 큰 힘을 발휘하지를 못해서 그렇지 잠재된 능력은 너희만 못하겠는가? 얼마든지 오히려 불교 훨씬 더 세다.’그걸 또 이 스님이 거기서 깨달은 거여.
그래서 아! 이렇게 흩어져 있는 불교 그런 그 자비심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비심을 묶어야 되겠다. 묶으면 힘이 배로 증가한다. 그러니까 한 사람하고 두 사람 묶으면 힘이 둘이 되는 게 아니라 셋이 된다야. 그렇게 생각을 해가지고‘불교극난극복자재공덕회’라고 하는 그런 모임을 처음에 했는데, 30명이 모였더래요. 30명이 그렇게 해가지고 그때부터 이제 하기 시작한 거야. 그 하나하나 모으니까 정말 기하급수적으로 그렇게 이제 모이게 되고 지금 500만이 됐는데, 40몇년동안에 500만이 됐는데 그때 이제 죽통. 대만에 대가 또 많잖아요. 대가 이따만씩 하잖아. 그 대를 하나씩 잘라가지고 통을 하나 해가지고 나눠줬어. 나눠줘가지고 요 통에다가“하루에 10원씩 담아라. 하루에 10원씩 담아라. 뭐 이 단체 오고 안오고 상관없다. 10원씩 담아서 한 달이 되거든 한 번씩 가져오너라.”그랬어요.
그걸 이제 뭐라 하느냐? 죽통이라고 하는 저금통을 만들어서는 나눠줬는데, 그때를 죽통세월이라 그래.‘죽통세월’지금은 그렇게 안하지. 지금은 그렇게 안하고 뭐 자동이체로 척척 보내지만은, 그때는 그렇게 했어요. 그때는 자동이체 제도도 없고 하니까 죽통에다 그렇게 10원씩 모아가지고 거기 돈으로 그때 5원인가 그랬어요. 5원인가 하여튼 아주 작은 돈이라. 누구든지 모을 수 있는 정도의 돈이야. 지금은 우리 돈으로 치면 한 100원쯤 될라나? 음 100원이나 하더라도 한 달에 3만원이네. 큰 돈이네.
그렇게해서 그 때하던 그 일을, 그 때 세월을 죽통세월이라 그렇게 딱 나와있어요. 참 멋지잖아요. 그렇게 해가지고 그런 큰~ 자선단체가 생기기 시작했고 TV채널 2개나 있지만은 거기에 화주안해. 화주광고 못해. 광고 안 보내고 전부 기본적으로 500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하루에 10원씩, 10원씩 모으는 그 돈으로 운영해나가는 거야. 그리고 뭐 지금 저 물론 봉사한 사람들이 많고 하지만은 그래도 월급주고 하는 사람들도 많고 아주 기본 월급밖에 안 주고 그래도 거기와서 서로 그냥 일할려고 하는 사람이 줄을 서있고 그렇대요.
저기 저 다른 나라에서 그 단체, 대만에 와가지고 일을 하겠다고 내가 봉사 좀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와 있고 왔는데, 거기 이제 순서가 안 돼가지고 도로 돌아간 그런 사례들도 있고 그래. 멀리서 왔다고 덮어놓고 끼워주지도 안해. 순서대로 고대로 착착. 거기와서 하는 것만 보고는 돌아갔다. 저기 어디 뭐 상당히 먼 나라에서 일부러 봉사하기 위해서 무턱대고 신심이 나가지고 온 거야. 왔는데 이제 자기 그 들어갈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되니까 도로 돌아갔다 하는 그런 이야기 있고 그래요.
그 이제 저 정말 경전이 그냥 경전으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인연이 딱 맞아 떨어져가지고 어떤 사람이‘아! 이거구나’하고 눈을 팍 뜨기 시작하면 금방 그야말로 부처도 되고 금방 관세음보살이 되는거야. 거기는 그 스님은 여기 이제『법화경』을,『법화경』하나만 공부했다고 돼있지. 뭐 딴 이야기는 없어요. 딴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없어요. 그 스님 일생을 보면, 그래『법화경』을 그래 공부를 많이 했대.
그래서 그‘관세음보살을 우리가 부르면은 영험이 있다.’이런 식으로만 돼있지.‘아!『법화경』사상이 이게 인불사상이고 사람이 부처님인데 내가 바로 그 병고로 죽어가는 그 부처님을 내가 도와줘야지.’하는 그런 어떤 그 인격이 되게 하는 것. 이게「보문품」이라. 그게「관세음보살보문품」이야. 관세음보살을 우리가 염하고 기도하는 본래의 뜻은, 바로 관세음보살이 되라는 뜻이라. 관세음보살로 행동해라.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 어려운 사람이라도 그~ 가서 구제하고자 하는, 뭐 화재난데 가서 뭐 물에 떠내려가는데 가서 어떤 어려움에도 다 가서 구제해주려고 하는 그런 마음. 그걸 여기 어떤 사람인들 내가 사랑하지 못하랴. 이 스님이 그렇게 했듯이, 그런 분이 바로 이『법화경』을 통해서 살아있는 관세음보살로 툭 튀어나와버려서 실지로 이 시대에 어떤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를 잘 활용해가지고 보다 더 널리, 보다 더 적극적으로 구호활동을 잘 펴는 그런 거지. 실제 관세음보살님이 바로 대만의 증엄스님입니다.
우리는 대만 한 번, 불광선사 성운스님 그 정도로 알고 있지만은 실지로 이제 전 세계 구호사업을 제일 잘 펼치는 이가 증엄스님이고 그 스님은 항상『법화경』정신이 그 무장이 돼있어요. 그게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불자들도 또 사찰에서도 요즘 이제 자선활동 많이 하는데, 그냥 자선활동만 하는 거야. 이 스님처럼『법화경』이 무장이 돼있어가지고『법화경』사상에 의해서 베푸는 거야. 그래 돼야 된다고요.
밥 한 그릇주고 요즘 급식활동 많이 하죠? 곳곳에서, 많이 해요. 급식활동 참 좋은 일이라. 그런데『법화경』사상으로, 그 마음으로 밥을 한 그릇 주더라도 줘야 돼요. 이게 빠져버리면 다른 종교에서 하는 거나 저기 뭐 보건복지부에서 하는 거나 하나도 다를 바 없어요. 그럼 불교에서 하는 건 별 의미가 없는 거지. 불교에서 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거라. 그 불교에서 하는 것은 이『법화경』사상‘아! 당신은 부처님이야.’내가 얼른 정말 속속들이 그런 마음은 안가지만은 그래도 겉으로라도 부처님이라는 의식으로 생각을 하고 부처님께 공양올리는 마음으로 그렇게 공양올려야 그게 급식활동이 제대로 되는 것이고 불교에서 급식운동을 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 斯人 그 사람, 이 사람 또한 어렵다. 참 어려워요. 저도『법화경』강의를 무수히 하지만은, 스님들에게도 하고 신도들에게도 하고 곳곳에서 하지만은 정말 그 사람되기가 이렇게 어려운 거요. 그래 마지막에 있지 않습니까? 사난(四難)중에서, 부처님 만나기 나오시기가 어렵고 또 나오시더라도『법화경』설하기가 어렵고『법화경』을 설사 설한다 하더라도 듣기 어렵고 설사『법화경』을 듣고 내가 이렇게 입으로 무수히 말하지만은 그 사람 되기가 또한 어렵다. 그~ 근사하잖아요.‘斯人亦復難이라.’그 사람 되기가 또한 어렵다.
그래 그 사람 지금 현재 지구상에 정말 확실하게 그 사람이라고 할만한 최고 대표주자는 증엄스님이다. 비구니스님이고, 이 스님은 처음에 어떻게 중될라고 하는데 중되는 인연이 박해가지고 스승을 삼아 줄 사람도 없었어. 그랬는데 이제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그냥 후다닥 그냥 그렇게 어떤 저기 인순법사 제자가 돼가지고 그래서 이제 다행히 이제 짧은 시간에 계를 받게 됐어요. 그 전에 마음의 준비는 많이 하고 있었지만은, 그렇게 그런 우여곡절도 있었드라구요.
그래서 이제 참『법화경』을 잘 만났고 이 스님이, 그래서 그『법화경』을 통해서 그런 스님 하나 이 세상에 만들어 낸 거여. 아~ 참 대단하죠.
120 譬如優曇華 一切皆愛樂 天人所希有 時時乃一出 聞法歡喜讚
비여우담화 일체개애락 천인소희유 시시내일출 문법환희찬
乃至發一言 卽爲已供養 一切三世佛 是人甚希有 過於優曇華
내지발일언 즉위이공양 일체삼세불 시인심희유 과어우담화
譬如優曇華를 一切皆愛樂은
우담화 나오네. 오늘 헤. 비유하건대 우담화 우담바라꽃을 모든 사람들이 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天人所希有라 時時乃一出일새니라
천신도 사람들도 다 희유하다고 여기는 바다. 그런데 때에 맞춰서 한 번 나타났다.
聞法歡喜讚하대
법을 듣고 법문을 듣고서 환희해서 찬탄하대. 예를 들어서 증엄스님 이야기가‘아! 정말 감동이 된다. 아니면『법화경』내용이 감동이 된다.’이렇게 해서 찬탄하대
乃至發一言이면
한 마디만 한다 하더라도“야 그거 참 그러네요.”하고 고개를 한 번만 끄덕거린다 하더라도
卽爲已供養 一切三世佛이라
이미 일체삼세불을 공양하는 것이다. 요『법화경』한 구절만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고‘아 그거 참 우리가 실천을 못해서 그렇지 좋기는 참 좋다.’이렇게만 해도 이미 일체삼세불을 공양하는 것이야. 진짜 불공하는 게 된다 이 말이여. 供養一切三世佛 내가‘聞法歡喜讚하대’여긴 이제 별을 세 개를 쳐 놨네. 한 마디만 하더라도 일체삼세불을 공양하는 것이니라.
是人甚希有는 過於優曇華니라
이 사람이 매우 희유한 것은, 정말 뭐 듣고 정말 마음속에 깊이 감동하는 것 그건 쉽지 않거든요. 그것은 우담화꽃이 핀 것보다도 더 지나간다. 이렇게 찬탄해놨습니다. 근데 어찌『법화경』공부 안 하겠어요.
‘聞法歡喜讚이라’법문을 듣고 환희해서 찬탄하대 한 마디만 하더라도 이미 일체삼세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대단히 희유하다. 甚希有하다. 우담화꽃이 3000년만에 한 번 핀다는데 그것보다도 더 지나간다.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121 汝等勿有疑 我爲諸法王 普告諸大衆 但以一乘道 敎化諸菩薩
여등물유의 아위제법왕 보고제대중 단이일승도 교화제보살
無聲聞弟子
무성문제자
汝等勿有疑어다 我爲諸法王하야 普告諸大衆하노니 但以一乘道로
그대들은 의심하지 말지어다. 내가 모든 법의 왕이 되어서 널리 여러 대중들에게 고하노니 다만 일승의 가르침으로써, 一乘 인불사상이죠. 부처님, 사람이 부처님이다 하는 그런 그 가르침으로써
敎化諸菩薩이요
모든 보살들을 교화할것이요.『법화경』공부하는 대상은 전부 보살입니다. 그건 성문도 아니고 연각도 아니여. 그래서
無聲聞弟子니라
성문제자가 없다. 차원이 그렇게 높다는 거요.
122 汝等舍利弗 聲聞及菩薩 當知是妙法 諸佛之秘要
여등사리불 성문급보살 당지시묘법 제불지비요
汝等舍利弗과 聲聞及菩薩이
그래 사리불과 성문과 그리고 보살들이여
當知是妙法은 諸佛之秘要니라
내가 묘법이라고 써가지고 자꾸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물론‘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이렇게도 돼있고 또‘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 실상묘법연화경(實相妙法蓮華經)’그래서 妙法이라고 하는 두 글자가 모든 부처님의 그 오묘한 진리를 다 포함하고 있는 글자가 묘법이거든요. 當知是妙法 여기서는 이제『묘법연화경』이죠.『묘법연화경』이지 않습니까? 그것을 이제 연꽃으로 표현하는 거야. 묘법, 묘법하면은 이건 너무 추상적이고 손에 잘 안 잡히는 거야. 그러면은 이제 사람들의 성향에 맞춰서 이해하기 쉽도록하기 위해서 연꽃에다가 비유를 딱 한거라. 그래서『묘법연화경』연꽃경이다. 이렇게 하는거지.
그 연꽃을 늘 이야기하지만은 ???이라. 더러운 데서 피어야 꽃이 잘 자라. 온갖 지지고 볶고 하는 이 세속의 생활속에서 제대로 지혜가 거기서 들어나도록 하는 거. 그걸 이제 연꽃으로 비유하잖아요. 진흙탕속에서 아름다운 꽃이 핀다. 그리고 향기는 아름답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꽃하고 그 꽃씨, 열매. 열매하고 동시에 있다. 부처와 중생이 항상 함께한다 이겁니다.
우리 지금 겉으로는 어떻든간에 그대로 알짜배기는 부처님이다. 부처님이다. 속은 고스란히 부처님이다. 그러니까 부처님으로 보라는 것. 이게 연꽃이 그런 의미를 잘 들어내고 있다. 연꽃속에는 꽃이 피든 안 피든 그 안에 씨가 그대로 있어. 덜 핀 꽃도 벌리고 보면 그 안에 씨가 있다구요. 연씨가 거기에 있는거요. 연밥이지. 그게, 연하면 그걸 말하는 거에요. 꽃을 말할 때 연화라고 해야 그걸 구체적으로 말하는 거에요. 蓮華, 연하면은 그 안에 연씨를 두고 연이라고 해요. 그리고 본래는 그 씨를 더 중요시여기는 것입니다. 옛날에 그것 씨는 약도되고 그 양식도 되고 여러 가지로 효용가치가 높은거죠. 꽃은 별로 효용가치가, 안 썼어요. 요즘 사람들이 꽃을 좋아해서 그렇지. 그래 씨는 부처고 꽃은 중생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거지요. 그게 이제 동시에 있다는 거요.
그래서 마땅히 알아라. 이 妙法 참 무상심심미묘법이『묘법연화경』은 諸佛의 秘要라. 비밀한 것이고 요긴한 것이다. 부처님만이 가지고 있는 거여. 부처님만 알고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秘要죠. 이런 도리를 누가 알겠어요? 그러니까 비밀할 비(秘)자하고 요긴할 요(要)자를 쓰는거요. 모든 깨달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비밀한 것이고 요긴한 것이다. 부처님끼리만 알고있는 이치다.
123 以五濁惡世 但樂著諸欲 如是等衆生 終不求佛道 當來世惡人
이오탁악세 단락착제욕 여시등중생 종불구불도 당내세악인
聞佛說一乘 迷惑不信受 破法墮惡道 有慙愧淸淨 志求佛道者
문불설일승 미혹불신수 파법타악도 유참괴청정 지구불도자
當爲如是等 廣讚一乘道
당위여시등 광찬일승도
以五濁惡世 但樂著諸欲일새
근데 이 오탁악세에, 오탁악세에 태어난 우리들은 전부 세상의 욕심, 세속적인 그런 가치관, 세속적 가치관 재 색 식 명 수. 재물 그 다음에 사람, 명예 그~ 무한 욕심, 무한 발전 끝도없는 그런 그 세속적인 그 재산축적, 명예축적 그래가지고 결국은 이제 큰 집으로 들어가는 것만 남아있지.
그거 참 국세청이라는 자리가 좋은 자리더만은, 결국은 이제 그 쪽으로 마지막 코스는 전부 큰 집이야. 대통령이 돼도 그렇고 사장이 돼도 그렇고 뭐 안 그러면 큰~ 자살이거나, 큰 집이거나 주로 그렇게 되네. 그게 이제 무한정 달리는 거야. 차좋고 길좋다고 무한정 200km, 300km 막 밟으면 어디 가겠어요? 우리가 산업사회에서 좋은 점이 많아요. 산업을 통해서 생활에 편리한 점 얼마나 잘 만들었습니까? 이 마이크같은 것도 이 세상에 지금 이렇게 산업사회가 발달했으니까 이런 게 생기고 뭐 인터넷이라든지 뭐 TV라든지 이런것들도 전부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문명의 이기거든요. 참 좋은거에요. 자동차같은 거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무한질주를 하는거야. 계속 끊임없이 그렇게 그걸 이제 천천히 가도 좋고 한참 쉬었다 가도 몇 년 쉬었다 가도 좋은데, 아니야. 매년 매년 발전해야 되고 매달 매달 발전해야 되고 매일 매일 발전해야 된다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거야. 좀 쉬어야 되는데 쉬었다가 갈 줄 알아야 되는데 그걸 안해가지고 지금 저렇게 그 무너지고 있잖습니까? 무한정 발전하니까 그만 푹 썩는거지. 어느 허리가 푹 꺾어지고 지금 경제가 그런 상황이 돼 있잖아요. 끝까지 발전하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런 거 없어요.
그 이제 사람욕심은 한없이 발전하고 빨리 빨리 발전했으면 좋겠지만은 그게 그렇게 되는게 아니거든요. 곡식도 겉자라면은 썩어버리잖아요. 겉자르면 반드시 썩거든, 농사 지어본 사람은 알죠. 겉자라면 그거 아주 위험천만이야. 정상적으로 그 잘 자라지. 너무 안 자라도 그렇지만은, 정상적으로 이렇게 잘 자라야 그게 잘 자라는 거지. 싹 자라면은 그건 틀림없이 썩게 돼있어. 이 경제도 그런거요.
그런데 사람욕심은 그게 아닌거야. 뭐 썩는 거 생각안하고 많이 자랐으면 싶고 한 순간도 하루도 쉬지않고 계속 주식은 올라갔으면 싶고 계속 매일 매일 올라갔으면 싶은 거라. 매일 매일 올라가서 그 어디까지 가. 그러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거라. 그런 이치를 우리가 좀 알고‘아! 쉴때도 있고 아 쉬는 게 또 내일을 위해서 필요한 거다.’이 생각도 할 줄 알고 그래야되는데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제 지금 사회에서 참~ 옛날 그 사람들하고 생각이 다른게 소비촉진, 소비촉진 그러잖아요. 소비촉진, 내수촉진, 외수촉진 빨리 많이 써라. 이 말이거든, 빨리 많이 써라. 옛날에는 근검절약이 미덕이라 우리 그래 배웠어요. 근검절약이 미덕이다. 근검절약은 악덕이야. 촉진해야 돼. 빨리써야 돼. 많이써야 돼. 막 그냥 물도 팍팍 써 버리고 차도 그냥 2~3년 만에 폐차하고 새거처분하고 2~3년만에, 그래 그게 미덕이야.
아 이 감당이 안돼요. 나는, 도대체 이게 내 생각하고는 안 맞는거야. 안 맞고 우리가 그동안 배워온거하고는 영 반대로 가고 있으니까 혼란스러워 죽겠어요. 사실은, 솔직하게. 촉진 촉진 소비촉진 많이써야 장사가 잘 되고 장사가 잘 되야 공장이 막 돌아가고 공장이 막 돌아가야 인력이 거기에 많이 충당돼가지고 월급도 직접 받고 노는 사람이 없고, 그 빤하잖아요. 그렇게 돼가는거. 언제까지 그렇게 한단 말인가? 그러면 많이 만들었으니까 물건이 쌓여서 안 사가잖아? 안 사가면 안 되잖아요. 안 사가면 공장이 설 수 밖에 없는 거요. 그러니까 소비를 촉진해야 돼.
그냥 뭐 휴지도 팍팍 그냥 해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쓰고 그냥 버리고 치약도 한 3분의 1쯤 쓰면 던져버리고 새로 사고 칫솔도 한 이틀쓰고 던져버리고 새로 사고 차도 한 1년쯤만에 한 번 쓱 또 바꿔버리고, 그 차는 그냥 폐기처분해버려요. 1년만타고는, 폐기처분해야 새 차를 만드니까. 그거 중고품시장에 팔 거 없어. 폐기처분해야 돼. 그래야 새로만드니까. 그래 공장이 돌아가고 그래 월급받고, 아! 이렇게 돼버렸어요. 세상이, 어떻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솔직하게 어떻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근검절약이 미덕이라 하는 건 이젠 끝났어요. 지금 세상은, 그 아파트도 한 사람이 두 채씩 가져버려. 두 채씩 세 채, 두 채 가지고 안 되겠다. 한 사람이 한 세 채씩 가져. 한 집에 식구가 다섯 명이라면 삼오십오 열다섯 채 가져야겠네. 그래 계속 팍팍 짓지. 그래야 일하는 사람들도 월급 많이 받고 잘 돌아가지. 밥도 한 세 숟가락 먹다가 버려버리고 새로 해. 그러면 잘 돌아간다. 일단, 잘 돌아가. 그 끝이 어디여? 그러면, 야~ 이 참 보통 문제가 아니에요. 이게,
예 이제 전부 잘못 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참 잘못 가고 있는거에요. 그러니까 결국은 자원고갈, 자연파괴. 자원고갈이 된다. 고갈이 안 되고 되고 그게 문제는, 자원이 고갈되든 안 되든 그게 문제가 아니고 그 적당히 쓰고 더 이상 불필요한 건 쓰지말고 그리고 아껴놓고 그리고 또 천천히 살고 그리고 시간을 많이 가지고 살아라. 책이나 좀 읽고, 시간을 많이 가지면 좋잖아요. 빨리 벌라고 하지말고 시간을 많이 갖는 거야. 빨리 쓰고 빨리 많이 벌어가지고 뭐 잔뜩 할려고 하지말고 그 그런 시간들을 내가 이제 많이 갖고 책도 읽고 참선도 하고 기도도 하고 이러면서 정신적으로 시간을 풍요롭게 가지는 그런 방향으로 나가야 이게 사람이 정상으로 사는 거지. 큰일났어요. 이거 참 세상이, 내가 참 혼자 어떻게 어떻게 잡을 수도 없고 내 혼자 말릴 수도 없어. 그건,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
소비촉진이라고 얼마나 말을 많이 합니까? 요즘, 아이 그 참 듣기 거북스러워요. 소비촉진 소비촉진 그 소비촉진할라면 그냥 참 그 세상이 그렇게 돼버려가지고 근검절약이라는 말이 쏙 들어가버렸어요. 찾아 볼 수가 없어요. 그건 악덕이야. 근검절약하면 악덕이야. 누구 잡을려고, 누구 망칠려고 근검절약하느냐고 이렇게 되는거지.“남의 공장 뭐 문 닫을 일 있어”하고 그러는 거야.
五濁惡世에 다만 모든 欲, 여러 가지 욕심에 樂著 즐기고 탐착했을새
如是等衆生은 終不求佛道하며
이와같은 중생은, 이와같은 사람들은 불도를 마침내 구하지 않는다. 세속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은 정말 정신이 풍요롭고 지혜롭고 하는 그런 어떤 그 불도에는 마음이 없다 이거죠.
當來世惡人이 聞佛說一乘하고
當來世 악한 사람들이 부처님으로부터 일승 설한 것을 듣고,‘사람이 부처님이다.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위로하고 구제해주자.’하는 그런 말을 듣고는
迷惑不信受하야 破法墮惡道하리니
미혹해서 믿고 받아들이지 아니해. 그래서 법을 깨뜨리고 악도에 떨어진다.“그 엉터리 소리다.”이렇게 하는 거지.
有慙愧淸淨은 志求佛道者어든
부끄러움을 알아가지고 청정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아는 청정한 사람들은 마음에 불도를 구하는 사람이 있었어.
當爲如是等하야 廣讚一乘道호라
마땅히 이러한 이들을 위해서 널리 일승도를 찬탄한다. 그 가운데 부끄러움을 알고 청정한 사람이 있거든, 부끄러움을 아는 청정한 사람이 있어. 그래서 불도를 열심히 구해. 이러한 사람을 위해서 廣讚一乘道여. 일불승도를 널리 찬탄한다.
124 舍利弗當知 諸佛法如是 以萬億方便 隨宜而說法 其不習學者
사리불당지 제불법여시 이만억방편 수의이설법 기불습학자
不能曉了此
불능효료차
舍利弗當知하라 諸佛法如是하야
사리불아 마땅히 알아라. 모든 부처님 법이 이와같아서
以萬億方便으로 隨宜而說法이라
하~ 어떻게 하더라도 부처님의 이런 올곧은 법속에 들어오도록 많고 많은 방편으로써 편의를 따라서 설법한다.
그래 뭐를 예를 들어서 바위에 가서 절하고 빌면“그래 그것도 맞다.”하고 이렇게 일단은 그렇게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주고 감싸주는 거지. 그래서 차츰차츰 근기를 성숙해서 정말 올곧은 부처님의 지혜에 눈 뜨게 해주기 위해서‘隨宜而說法이야’편의를 따라서, 그 사람 수준에 맞춰서 설법을 해준다. 그래가지고 수많은 방편불교가 생기게 되는 거죠.
其不習學者는 不能曉了此니라
그러한 이치를 배우지 아니한 사람은, 이러한 이치를 부처님의『법화경』이치에‘왜『법화경』이 이러한 차원에 있는가?’이걸 능히 알지를 못한다 이거여. 그동안 방편불교를 우리가 많이 공부해왔는데, 그거하고『법화경』하고 영 다르다 이거여. 전반적으로 그것을 알다보니까‘아 그렇구나!’하고 전체가 돌아가지요.
125 汝等旣已知 諸佛世之師 隨宜方便事 無復諸疑惑 心生大歡喜
여등기이지 제불세지사 수의방편사 무부제의혹 심생대환희
自知當作佛
자지당작불
汝等旣已知 諸佛世之師의 隨宜方便事하고
그대들은 이미 모든 부처님 또 세상의 스승인 그런 이들이 편의에 따른 방편의 일을 알고, 안다 말이여.
그러니까 여기에 지금 5000명이 다 나가버렸죠. 여기는 이제 알맹이만 남은거라. 지엽은 다 떨어져나가고 열매만, 정말 충실한 열매만 탁 남아있는거지. 열매만 딱 남아있으니까, 여기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실들을 이미 다 알아. 그리고 무엇은‘아 그것은 방편이야. 사람을 끌어들이기위한 임시방편이다.’임시방편이다하는 것을 알고는
예를 들어서 지금 고3짜리 아이가 있는데,“『법화경』아~ 이건 사람이 부처님이란 뜻이야. 그리고 부처님처럼 그렇게 위해줘야되고 가서 감싸주고 다독거려줘야 된다.”이렇게 말하면 안 통하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되냐?“아! 법화경 이거 사경하면은 금방 뭐 좋은 학교에 가고 공부 잘 하고 마음도 탁 바로잡아가지고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이런 영험이 있다고”『법화경』을 그래 또 설명해준다고, 그래 설명해줘.
아주 좋아『법화경』이 그러니까 어떤 사람에게도 다 해당돼. 설명하기에따라서 그러면 이제 그 사람들에게는 딱 될것 아뇨. 사실이고 또 그게 가능하고『법화경』사경 열 번 해온 사람인데, 그 뭐 한 번 경험담 이야기하라고 하니까 하~ 말로 못 하겠다는 거라. 뭐 자기 마음 먹은게 안 이루어진게 없더래. 마음 먹은게 안 이루어지는게 없더라는 거라.
그 전에 젊을때 정말 뭐 특히 집안 가족들하고 관계가, 지금은 전체가 그냥 뭐 나긋나긋해지고 부드러워지고 사경하고 있으면 차 탁 타가지고 거사가 차 탁 타가지고 소리없이 딱 옆에 놓고 가고, 그렇게 됐다는 거라. 전부 그렇게 돌아가드라는 거요. 그렇게 부드러워질수가 없다 그러기에, 정말 한 성질하는 처사인데 그렇게 부드러워질수가 없다 그러기에,“내가 보기에는 보살님이 부드러워졌는데요.”그랬지.“『법화경』을 통해서 보살님이 부드러워진것 같다고”자기가 부드러워지면 세상이 전부 부드럽게 보이잖아요. 자기가 먼저 변하는 거죠. 자기가 변하면 따라서 이제 여러 사람 같이 변할 수가 있지.
隨宜方便事 참 그래요. 방편을 따라서, 편의를 따라서 방편사를 이야기했다하는 사실을 다 알고, 그러니까 이『법화경』공부 한 사람들은 배척하면 안돼. 다 감싸주고 이해해주고, 아 그 증엄스님처럼‘용서 못해줄 사람 없다. 믿지 못 할 사람 없다. 사랑하지 못 할 사람 없다.’어떤 무당짓을 하더라도“그때는 그렇게 하는 거야.”그렇게 하고 감싸주고 그래서 차츰차츰 인도해주는 정법으로 인도해주는 것. 기다려주고 그렇게 감싸주고 폭넓게 이해해주는 그런 그 마음이 이『법화경』에서는 이제 마련이 돼야 됩니다. 거기에 이제 눈을 떠야 되는 거죠.
無復諸疑惑이라
다시는 더 이상 의혹이 없다 이거여. 아 부처님 설법이 이런 말도 있고 저런 말도 있고 뭐 어디가서 빌라하더니 왜 지금은 뭐 지가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느냐고? 그렇게 상반되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거기에 전혀 문제가 없고 의혹이 없다. 無復諸疑惑이야.
관세음보살 부르면 모든 소원 이루어진다. 그렇게했다가‘아 니가 관세음보살이잖냐. 니가 그 사람들의 어려움을 가서 그렇게 보살펴 줘야지.’이걸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거기에 아무 상반되는 그런 그 생각을 갖지않고 다 이해를 한다 하는 것입니다.
心生大歡喜하야 自知當作佛이니라
마음에 크게 환희심을 내가지고서 스스로 마땅히 틀림없이 내가 부처다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서 作佛이라고 이런 말 자꾸 쓰지마는, 사실은 그대로가 부처님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건 뭐 누차 여기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이야기니까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시대는 그대로 마음은 부처님으로 살고 몸은 진시황처럼 사는거요. 진시황 저 큰 버스 못 타봤어. 아스팔트길 못 다녀봤다구요. 우리는 시대가 아주 복 많은 시대에 살기 때문에, 그 시대의 덕택에 시절인연의 덕으로써 우리도 전부 진시황보다 100배 더 잘살아. 100배, 진시황보다 100배를 더 잘살어. 보통 서민도 그래요. 보통 서민도 진시황보다 100배 더 잘살아요. 시대가 그렇게 만들어줘서 그래. 개인이 복이 있는게 아니고 우리가 이 시대에 사니까, 덩달아서 부자집에 살면은 개도 쌀밥 먹으니까 부자집 개는 개도 쌀밥 먹듯이 우리가 이 부자시대에 사니까 저런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이 추운 날 지하철 타면 훈훈하고 버스타도 훈훈하고 뭐 길 울퉁불퉁할까봐 아스팔트 싹 다 깔아놓고 높은 층에 올라가면 힘들다고 딱 스위치누르면 착 올려주고, 시대가 그렇게 부자시대가 됐기 때문에 우리 모두 덩달아서 부자로 사는 거에요.
이걸 느껴야 돼. 이걸 느껴야지. 그걸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그걸 느끼고‘야 정말 진시황보다 100배는 더 잘사는구나.’이걸 느껴야 된다고, 보통 서민 이야기입니다. 뭐 서민이고 부자고 별 차이 없잖아요. 큰 차이 없잖아요. 사실
이『법화경』내에서도 정말 이「방편품」이 백미라고 할 수가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제가 보기에는「방편품」이 정말, 이것만 가지고도「방편품」만 가지고도 잘 거기다가 풀고 해석하고 또 자기소견 붙이고 또 증엄스님같은 그런 이야기 또 넣고 그러면 큰~ 책이 한 권 될 수가 있습니다. 누가 한 번 그거 만들어봐요. 이‘방편경’해가지고,‘방편품경’해도 좋고, 우리「보문품」을『관음경』하잖아요.「보문품」하나만 떼가지고 하듯이, 얼마든지 이게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건 정말 뭐 부처님으로써 더 이상 할 것이 없을 정도로 높은 차원의 말씀을 다 하신 것입니다.
『법화경』28품중에서 오늘은 제3품「비유품」이 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끔 법문을 하시다가“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써 잘 알아듣느니라.”그런 말을 했어요. 우리가 법만 이야기하면 또 법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진리를 깨달으시고 그 깨달으신 내용을 설명하시는 것인데, 그것은 순수히 우리의 마음세계에서 있을 수 있는 일들 그런 것이에요.
또 마음으로 경험하고 또 마음에서부터 모든 것을 지어나가고 그래서 어떤 평화나 행복이나 이런 것들도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누리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현상설명이 아니라, 예를 들어서 안경을 설명한다하면은 안경 딱 내놓고 이것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것이고 그렇게 말할 수가 있지만은 그런 어떤 현상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설사 현상을 설명한다하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구조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존재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지 그 이상의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비유가 불교에는 많이 나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면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어떤 정신세계, 우리 마음의 세계에 대한 이치를 환희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비유를 자주 드는데,『법화경』에는 이제 법화7유라고 해서 일곱가지 비유를 아주 유명한 비유로 듭니다. 여기「비유품」이 있지만은, 저 뒤에가면「약초유품」이렇게 해서 그것도 일종의 비유품이에요. 여기서 이제 비유는 화성유라고 어.. 삼계화택유라고 해서 화택유(火宅喩)그래요. 불 화(火)자, 집 택(宅)자. 화택유 이것을 이제 여기서 이제 비유로 드는데
세상을 보는 안목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은, 보통 우리 사람들의 안목으로 보면은 사실 사바세계라고 하는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계가‘반고반락(半苦半樂)’이라. 이렇게 해요. 반은 고통이고 또 반은 살만한 그런 곳이다. 그래서 이제 고통의 순간이 있었지만은 그 고통의 순간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나고 나면은 그래도 숨 돌리고 그런데로 달콤한 시간도 있고 편안한 시간도 있고 그런데로 즐거운 시간도 있고 그렇습니다.
또 그런가하면은 때로는 즐겁고 달콤하고 편안한 그런 가운데서도 또 걱정근심이 나한테 따라다니고 그 걱정근심이 현실화되면은 아주 고통스럽고 괴로운 그런 그 어떤 상황을 맛보게 되고, 이것의 연속이에요. 계속 그것이 반복해가는 거야. 그런데 거기에서 우리가 부처님의 지혜를 빌어서 내 지혜로 만들어서 그런 어떤 그 상황들을 잘 소화를 하면은, 잘 이해하고 잘 소화를 하면은 그런 고통들이 반감 내지 완전소멸이 가능합니다. 완전소멸이 가능해.
따라서 고통이 반감됨과 아울러 달콤하고 즐겁고 고소한 그런 사바세계의 어떤 그런 그 맛도 역시 반감이 되요. 그것도 반감됩니다. 같이 반감되버려요. 그럼 이제‘불고불락(不苦不樂)’고통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그건 아주 편안함. 나는 편안함이라 이렇게 표현하는데, 아주 편안한 그런 어떤 그 삶이 말하자면 불교에서 바라는 삶이라.
이를테면은 꿈속에서,(마이크가 고장이 나서 고치는 와중에) 저렇게 잘 할라고 하다보면 더 이제 못 쓰게 만드는 것 이게 중생들이 하는 짓이 대개 그래. 잘 할라고 했는데, 뜻은 좋았는데 이게 뭐 어리석으니까 잘 몰라가지고 이치를 몰라가지고 그만 버려놓는 거지. 작품을 버려놓고 인생을 버려놓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버려놓고 잘할라고 했어. 처음에는, 그런데 상대에게도 그게 잘하는 것이냐? 아니야. 그게, 그게 아니거든요. 그래“이치를 알아라.”고 부처님이 늘 말씀하시는 게 그거야. 이치를 알면은 거기에 딱 맞게 그 할 수가 있습니다. 딱 맞으면 그게 잘 된거거든요.
그래서 이제 우리는 일상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그 고통과 즐거움의 연속인데,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꿈 속의 일이다 이렇게 봐요. 그래서 꿈을 깨버리면은 편안해요. 즐거운게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꿈을 아주 심하게 꾸다가 잠 깨버리잖아요. 그럼 휴~ 하고 한숨을 쉬면서 정말 아주 따뜻한 이부자리밑에 그대로 손끝도 하나 까딱하지 않는 편안한 잠자리 그걸 느끼게되요. 그럼 그건 즐거운게 아니야. 편안함이지. 그냥, 그래 꿈속에서 고통스러운 것을 깨거나 꿈속에서 즐거운 것을 깨도, 크게 뭐 횡재를 해가지고 즐거웠던 것을 설사 그 꿈꾸다 깨도 역시 그것은 편안함입니다. 편안함이지 그건 뭐 다른거 아니야.
그래서 부처님은 뭐 꿈깨는 이야기는 불교에서 수없이 많지만은 그래 이제‘꿈을 깨는 것이 말하자면 제일 바람직한 삶이다.’라고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들 생각하고는 많이 다르죠. 우리는 달콤한 꿈을 꾸고 싶은데 부처님은“그 꿈 깨라!”달콤한 꿈도 꿀 수 있지만은 따라서 아주 고통스럽고 괴로운 꿈도 꾸게 된다. 그래 꿈을 깨버린 상태는 이제 고통스러운 꿈도 없고 달콤한 꿈도 없는 거야. 그래 꿈깬 자리는 그냥 편안한 자리야. 어떻게 보면 그게 불교에요. 그 자리가 불교야.
우리는 자꾸 달콤한 꿈 꿀려고 하지. 그리고 뭐 아주 마음속에 희망하는 바가 많습니다. 희망하는 바가 많은데 대개 사람들의 희망은 달콤한 꿈이야.‘뭐 소득이 많았으면 싶고 뭐 좋은 사람 만났으면 싶고 일이 아주 잘 풀렸으면 싶고 뭐 마음에 바라는 가정의 모든 일들이 술술 잘 풀렸으면 싶고 그런 이제 꿈을 꾸는 거지요.’그래봤자 그 모든 마음에 소구소망(所求所望)이 다 해결돼도 역시 꿈임에는 틀림없어.
이게 이제 우리하고 부처님하고 그 견해차이라. 그래서 부처님은 여러 가지 그 중생들의 그 마음에 맞춰서 이런저런 견해를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 이제「비유품」이것은 화택비유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고통스럽다. 불타는 집속에서 거기서 이리저리,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아니 불이 난 것을 알아도 거기서 이제 아이들이 그만 불장난하면서 노는 것과 같은 그런 그 상황이다. 이렇게 이제 이야기를 해요. 여기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가 안 나오지만 중간에 가면‘화택의 비유’가 나옵니다.
우리 사바세계의 삶의 현실을 아주 리얼하게 잘 그리고 있어요. 우리가 미쳐 느끼지 못했던것 까지도 아주 부처님은 속속들이, 그 분의 영혼 참~ 맑거든요. 거기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그런 밝은 지혜가 있기 때문에 사물을 보고 세상사를 보는데 우리가 보듯이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커텐 하나 쳐놓고 보는 것같이 그래 봐요. 그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지만은
부처님은 속속들이 환하게 명경지수처럼 그렇게 밝게 보고, 가을날이 비온 뒤에 확 개이면은 저~ 멀리 앞 산까지 그 나무샊갈 나뭇잎 하나하나까지 분별할 수 있는 그런 그 투명한 영혼을 가지고 투명한 안목을 가지고 세상살이를 보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것하고는 많이 달라요.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면은 중생들이 사는 삶은 큰~ 저택이 있는데, 큰 저택에 불이 났다 말이여. 근게 거기는 사람들이 한 500명 살아. 아이들이 특히, 그런데 그 아이들은 불이 나니까 그 불장난꺼리로 삼고 불장난하는 거야. 그리고 있으면은 결국 타죽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타죽을 것을 생각하지 않는거야. 그리고 그냥 장난이 좋아서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뛰는 거라.
그래 그건 낡고 험한 집이라. 아주 뭐 형편없이 낡은 집이 돼놔서 그냥 불이 났는데 거기다가 서까래가 떨어지고 그 속에는 온갖 살쾡이나 뱀이나 독사나 온갖 그 독충, 짐승도 그 속에서 들끓고 있다. 이런 그 이야기들을 뒤에 가면 아주 재미있게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어요. 그게 우리들의 마음과 이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그런 현상들인데, 근래 한국사회 뭐 한국뿐만아니라 뭐 어느 나라든지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비슷비슷할 것입니다만은 그 여러 가지 그 참 좋지아니한 뉴스를 보면은 꼭 그 이「비유품」에, 부처님 말씀에는 화택의 비유하고 똑 같아요.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거라. 그런 현실을 그래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 비유를「비유품」에서 이야기하려고 하지요.
그 이야기에 들어가기전에 앞에 이제『법화경』의 안목이라고 하는 소위「방편품」이 있었습니다. 정말「방편품」이것은 정말 아주 훌륭한 한 권의 경전이에요.「방편품」하나만 가지고 또 훌륭한 한 권의 경전 역할을 하고『법화경』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다 이야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그렇게 이제 뜻이 아주 깊고 그리고 풍부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듣고 사리불이 깨달음이 있어가지고 아주 환희용약하지요.
1. 爾時舍利弗 踊躍歡喜 卽起合掌 瞻仰尊顔 而白佛言 今從世尊
이시사리불 용약환희 즉기합장 첨앙존안 이백불언 금종세존
聞此法音 心懷踊躍 得未曾有
문차법음 심회용약 득미증유
爾時舍利弗이 踊躍歡喜하야
그때 사리불이 뛸 듯이 기뻐했다. 우리가 대개 기쁘면은 펑펑 울거나 뭐 몸부림을 치거나 펄쩍펄쩍 뛰거나 그렇게 하지요. 아주 순수한 사람일수록 그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 아주 더 강렬하지요. 그렇게 이제 사리불이 그렇게 기뻐하는데, 그것은 이제 자신이 앞에 설법을 듣고 깨달음이 있었다.
『금강경』혹시 기억나시죠?『금강경』에는 수보리가 부처님 설법을 듣고 중간에 깨달음이 있어서 펑펑 웁니다. 울어요. 눈물흘리면서‘체루비읍(涕淚悲泣)이라’눈물을 그냥 펑펑 쏟으면서 감동해서 운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금강경』에 나오고 또『능엄경』같은데서는 이제 아난존자가 깨달음을 성취해서 거기에 이제 자신의 깨달음에 대한 내용을 촥 이렇게 시로써 읊는 그런 내용도 있고, 이 대승경전에는 보면은 그 중간에 처음에 부처님 법문이 촥 나오고 그 다음에 그 법문이 어느정도 이제 절정에 달하면은 그 법문을 들은 제자들이 깨달음이 있고 감동이 있어가지고 그 감동을 표현하는 그런식으로 거의 그런식으로 이제 엮어져 있습니다.
여기 이 쯤에 와서 여기『법화경』에는 사리불이 踊躍歡喜라. 뛸 듯이 기뻐해서 그리고 가만히 있을 수 없죠.
卽起合掌하고 瞻仰尊顔하며
곧 일어나가지고 부처님께 합장을 하고서 尊顔 부처님의 얼굴을 존안이라고 하지요. 존안을 瞻仰 척 이렇게 우러러 보며
而白佛言하니라
부처님에게 고해 말씀하사대
얼마나 기쁘겠어요? 저한테도 가끔 전화로 이제 뭐 법문듣고 자신의 어떤 그 감동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고, 요즘 뭐 전화가 있으니까 집에 앉아서 그렇게 감동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찾아오는 분들도 있어요. 찾아와서 자신의 감동을 이야기하고 뭐 책을 읽었든지 TV에서 법문을 들었든지 아니면 인터넷에서 법문을 들었든지“아! 그것이 나는 그렇게 효과가 있는 줄을 몰랐어요.”보통 이렇게 법문하는 자리에서 법문듣고 물론 뭐 스님들도 그렇고 이제 뭐 감동하는 이들이 간혹 있습니다만은 그런데 인터넷상에서 법문듣고 감동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 감동하기가 조건이 더 좋은 가봐.
자기만의 공간, 자기가 가장 편안한 시간 그리고 자기가 언제든지 듣고 싶은 그런 그 시간과 공간을 딱 마련해놓고 딱 켜가지고 딱 들으니까, 이런 데서 이렇게 모여서 들때 옆에 사람 그 뭐 의식하고 또 뭐 법회식순 의식하고 또 신심으로 왔는데 그 시간에는 또 웬지 마음이 모여지지 않을 수도 있고, 이런저런 장애요소들도 있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집에서 인터넷으로 공부를 하면은 그런 모든 문제가 싹 해결돼있어.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시간 커피 한 잔 탁 옆에 타놓고 들어가면서 편안하게 뭐 누워도 좋고 앉아도 좋고 엎드려도 좋고 아무 상관없어요. 누구도 의식할 필요없이 그대로 들을 수 있어. 그래서 감동이 더 깊어요. 훨씬 감동이 깊어. 내 그걸 이해를 하겠드라구요.
그래가지고 정말 아주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고 그래서 감동받은 그런 분들도 간혹 이제 알려옵니다. 여기 사리불처럼요. 그 이제 한 말이 그렇습니다. 부처님께 고해 말씀하사대
今從世尊하와 聞此法音하고
지금 세존으로부터 이 법음을 이 법문하는 소리를 듣고, 그 앞에 이제「방편품」까지 내용입니다. 그래서
心懷踊躍하야 得未曾有니다
마음에 뛸 듯이 기뻐함을 품고 未曾有 그동안 있지 않았던, 생전 처음듣는 그런 아주 기쁨. 법희선열을 이렇게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야기죠. 요런 정도의 이야기는 저도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이야기를 많이 해요.
왜 그런가?
2 所以者何 我昔從佛 聞如是法 見諸菩薩 受記作佛 而我等
소이자하 아석종불 문여시법 견제보살 수기작불 이아등
不預斯事 甚自感傷 失於如來 無量知見
불예사사 심자감상 실어여래 무량지견
所以者何오 我昔從佛하야 聞如是法호니
까닭이 무엇인가? 내가 옛날 부처님으로부터 이와같은 법을 들었으니
見諸菩薩은 受記作佛이어니와
여기 이제 중요한 말이 나와요. 앞에「방편품」에서 최상승법문을 하는 그런 이야기를 듣기는 들어서 그런데 여러 보살들에게 부처가 될 것이라고 하는, 諸菩薩은 受記作佛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사리불같은 사람은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 줄 알았어. 그랬는데 그러나 우리들은 그래서
而我等은 不預斯事라
我等은 이 일에 斯事 이 일에 참여하지 못한다라고, 우리는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얘기했다 이거여. 똑같은 사람인데 뭐 보살이 다르고 무슨 뭐 아라한이 다르고, 다른 게 아니거든요. 그러나 이제 공부하는 그런 어떤 연륜이라고 할까? 또 마음자세라고 할까? 또 신심의 상태라고 할까? 또 불교안에도 다양한 무슨꺼리가 있는데 거기에 대한 관심사, 관심의 대상 뭐 기도가 좋던지 무슨 기도중에도 지장보살이 좋은지 뭐 관세음보살이 좋은지 삼신이 좋은지 아라한이 좋은지 각자 관심의 대상따라서 그렇게 이제 차이가 나요. 그런 차이가 있다구요.
그런 차이가 있어서, 사람이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평등한 점이 물론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불평등한게 이게 당현한 거라. 사람은 본래로 불평등하다. 이런 소리 처음 듣죠? 평등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은, 사실은 알고보면 불평등한게 그게 당연한거라. 얼굴 다 틀리잖아요. 그게 불평등이지 뭐여. 나이 다 틀리잖아요. 그게 불평등이야. 일체가 불평등입니다. 이게, 평등하지 않는 거요.
그 불교에 대한 관심사도 전부 달라. 그래서 여 사리불같은 사람도 저런 보살지위에 있는 사람들하고 자기는 다르다. 그래서 이 일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거여. 그런데 같은 사람이다보니까 뭐라고?
甚自感傷하야
심히 매우 스스로, 感傷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슬프고 소외감이 들어서 마음이 상했다 이런 뜻입니다. 마음이 아팠다 이 말이여. 안 그러겠어요? 같은 자리에 있는데, 누구는 수기주고 누구는 해당 안되고 그래가지고서 똑같은 사람으로서 아주 슬프고 소외감이 들고 그래서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지. 그런 상황이었었다 하는 것입니다.
失於如來無量知見이니라
그래서 여래의 무량지견. 여래의 한량없는 지혜죠. 한량없는 지혜를, 失 잃어버렸구나. 우리는 거기에 해당 안되는구나. 부처님의 그 한량없는 지혜의 경지는 우리하고는 그냥 별 볼일 없는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다는 거요. 얼마나 마음 아프겠어요. 똑같은 형제인데 맏아들만 뭐 재산 많이 물려주고 둘째부터는 소용없다 이래버리면은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게,
그러니까 이 사리불이 그동안 참 속을 많이 썩였나봐요. 여기 이야기 대로라면은, 아니 다른 사람들인데는“너는 부처가 될거야. 너는 부처가 될거야.”하고 이렇게 칭찬하고 수기를 줘가지고서‘뭐 앞으로 잘할거다. 100점 맞을 것이다.’이 정도 수기가 아냐. 이거는, 아! 부처가 될거라고 이렇게 수기를 했거든요. 그렇게 했는데, 사리불이 누구입니까? 인도사회에서 최고로 지혜롭고 제일 지식인이고 제일 빼어난 사람이라.
그 내가 아까 좀 소개하지만은 이 사리불은 얼마나 지혜가 있었던지 불교역사상에 최고 훌륭한 절‘기원정사’기원정사를 건립하는데 사리불이 설계하고 감리하고 자재구입하고 공사감독하고 일체를 다 맡아서 총 감독을 한 사람이 사리불입니다. 이렇게 법에도 뛰어나지만은 세상일에도 그렇게 밝았어요. 무슨 뭐 자기가 건설회사 다닌 적도 없는데도 그런 그 위대한 사찰을 짓는데 감리감독을 다 하신 분이 사리불이라. 대단한 분이요. 그런 분인데도 불구하고 이제 부처님 지혜의 입장에 있어서는 영 거리가 멀었더라 이거지. 그러니 얼마나 자존심 상했겠어요. 자존심 상했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오늘 비로소 털어놓는 거지. 그것도「방편품」듣고나서「방편품」듣고 나니까 이게 아무것도 아니거든, 그 경지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그런 경지더라.
뭐라고? 부처님 앞에 와서 손 한 번 번쩍 들어도 皆已成佛道라. 다 이미 불도를 이루어 마쳤다. 얼마나 편안합니까? 또 망상과 온갖 욕심이 부글부글 끓는 그런 그 마음상태로써 부처님 앞에 절 한 번 해도 그걸로 이미 불도를 이루어 마쳤다. 이렇게 했으니까, 사리불이야 뭐 말할 것도 없죠. 사리불은 수 억만번 성불하고도 남는 그런 정도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비로소 꿈을 깬 거여. 중생으로써의 꿈을 깬 거라. 그래서 여기에 이제 이런 자기의 그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3 世尊 我常獨處山林樹下 若坐若行 每作是念 我等同入法性
세존 아상독처산림수하 약좌약행 매작시념 아등동입법성
云何如來 以小乘法 而見濟度 是我等咎 非世尊也
운하여래 이소승법 이견제도 시아등구 비세존야
世尊하 我常獨處山林樹下하야 若坐若行에
세존이시여! 내가 항상 獨處 저기 산이나 숲 속에 저기 나무 밑에서 홀로 독처에 홀로 있으면서 앉거나 걸어다님에
그 이제 불교는 그래서 이제 숲의 종교라. 그리고 기독교는 사막의 종교라.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사막에서 탄생한 종교, 불교는 숲 속에서 탄생한 종교 그래요. 부처님은 항상 그 숲에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하고 여기도 보면은 항상 山林樹下에서 앉거나 行하는 걸어다님에
每作是念하대
매양 이러한 생각을 하대. 이러한 생각을 했다. 무슨 생각이 왔노?
我等同入法性이어늘
우리들도 법의 성품, 진리의 성품에는 다 해당된다 이거여. 사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유정, 무정이 다~ 진리의 성품속에 다 해당되는데
云何如來가 以小乘法으로 而見濟度아
어째서 여래께서는 소승법으로써,‘저기 뭐 기도하면 잘 된단다. 무슨 뭐 칠성당에 빌면은 명이 길어진단다.’요런 소승법을 가지고‘법당에 불 밝히면 무슨 뭐 지혜가 난단다.’하는 요런 소승법으로써 우리를 제도했느냐? 제도를 보였는가? 이런 말이여.
우리에게는 맨날 기도만 하라하고 기도해서 무슨 뭐 마음에 있는 소원성취하라하고 아『법화경』같은 이런 좋은 법문은 왜 안해주느냐? 이 말이야. 따지고보면 그 이야기에요. 이게, 우리가 뭐 수준이 그것뿐이냐고 우리 다 알만치 알고 배울만치 배웠고 날만치 났다 이거여. 근데 왜 우리에게는 맨날 기도만 하라 하냐? 맨날 성지순례만 하면 복 받는 줄 알고, 그런 것만 가지고 저가 하급 아주 수준낮은 거 그것만가지고 내 가르쳤느냐? 이렇게 따지는 거에요. 이게, 사리불이 그 얘기라. 소승법이라는게 그거거든요.
야! 대단한 대목입니다. 이게,‘我等도 同入法性이라’우리도 다 법의 성품, 진리의 성품에 다 해당된다 이거여. 아 석가모니가 해당되면 나도 해당되고 말이야. 보살이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이 해당되면 우리도 다 해당되지 뭐가 다르냐 이거지. 이제 사람의 관심사에 따라서 차이가 있었지 있기는, 그것도 이제 말하자면 수요에 따라서 공급이 이루어지는 거야. 수요에 따라서 허허허 수요에 따라서 공급이 이루어지다보니까, 우리가 그걸 필요로 하니까 자꾸 그걸 공급하는 거야.
다짜고짜 와가지고“무슨 이러이러한 일이 있는데 무슨 기도하면 좋습니까?”하고 그렇게 물어오니까 어떻해. 그 상품을 내 줄 수밖에 없는거야. 그렇게 안하고 탁 비우고 비우고나서 자기 생각은 비우고 와가지고“아 나는 부처님한테 관심이 좀 있는데 무슨 공부를 어떻게 뭘 공부를 해야 이게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까이 할 수가 있느냐?”고 이렇게 이제 물어오면은 이제 제대로 가르쳐 줄 수가 있죠.
그래서 그런 관계들은 뭐 여기서 구구히 설명할 필요없고, 여기에 이제 말이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전부 법의 성품에 다 들어있는데, 다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다 부처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인데‘云何如來는’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소승법으로 우리를 제도했느냐? 따지는 거에요. 부처님한테 아주 그냥 원망을 늘어놓는 거야. 사실은 따지고보면, 이렇게 부처님한테 원망 늘어놓을 줄 알아야 되. 부처님한테 원망해. 왜 내한테는 소승법만 가지고 가르쳤느냐고, 그런 좋은 다이야몬드를 놔두고 맨날 구리나 동이나 말이야 흙덩이같은 거 우리에게 던져주느냐? 이런 뜻입니다. 사실 깨놓고 이야기하면
그러면서 하는 말이라.
是我等咎라 非世尊也로소이다
이것은 우리들의 허물이지 세존의 허물은 아닙니다.
아까 내가 이야기했죠.“무슨 기도하면 좋습니까?”하니까 뭐 거기에 맞는 상품 던져줬지. 그게 주지스님 허물입니까? 어디, 아 와서 그런 상품 달라는데 주문한 상품 줄 수밖에 없지. 그래서 그 말이야. 이것은 我等의 咎라. 우리들의 허물이라 세존의 허물이 아닙니다.
4 所以者何 若我等 待說所因 成就阿縟多羅三藐三菩提者 必以大乘
소이자하 약아등 대설소인 성취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필이대승
而得度脫 然 我等不解方便 隨宜所設 初聞佛法 遇便信受 思惟取證
이득도탈 연 아등불해방편 수의소설 초문불법 우변신수 사유취증
所以者何오
까닭이 무엇인고? 이 아주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해요. 경전은요. 논리에 조금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래 까닭이 왜 그런고 하면은
若我等이 待說所因하야
만약에 우리들이 所因 원인되는 바, 깨달음의 원인, 씨앗 제대로 된 씨앗을 기다려가지고, 그러니까 지 상품 먼저 내놓을게 아니라 네가 필요로한 것을 말할 것이 아니라 기다려가지고 정말 좋은 씨앗이 되는 것을 이야기해주도록 기다려서 待說所因 참 중요한 말이여.
만약에 우리들이 기다려 본다. 待자 무엇을? 씨앗이 될 만한, 정말 부처가 될 수있는 씨앗이 될만한 것을 설명해주는 것을 기다려서 그런 뒤에
成就阿縟多羅三藐三菩提者인댄
성취한다 말이여. 무엇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진댄 최상의 깨달음, 최상의 깨달음 꿈을 확 깨버리는 그런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게 된다면은
必以大乘으로 而得度脫이어늘
반드시 대승으로, 큰 법가지고 최상의 법 가지고서 度脫을 얻게 한다. 반드시 큰 법을 가지고서 정말 훌륭한 법을 가지고서 제도, 度脫은 제도입니다. 제도함을 얻게된다. 하거늘
然이나 我等不解方便과 隨宜所設하고
그러나 우리들은 몰랐다.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을? 方便과 隨宜所設을, 편의를 따라서 설한 것. 그러니까 사람들의 근기에 맞추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 그거여. 사람근기 맞춰서 하다보니까 항상 방편법문 있지도 않는 방편법문 지어내서 하는 이야기 그래서 자꾸 지어내서 하는 그런 그 이야기가 많이 생겨요. 99%는 거품이야. 그래 따지고보면 99%가 방편이야. 거기서 꿈을 깨버리면 편안해요. 아무것도 없어. 그렇게 안달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 거요. 그런 꿈 깨버리면, 그래서 방편과 수의소설을 알지 못해서. 우리들은 그동안 방편, 부처님이 방편으로 하는구나.
그 이제 어린아이가 울면은 호랑이 한 번도 본적도 없지만은 어디서 들어온 이야기로 그것도 부모들로부터 들어온 이야기로“밖에 호랑이 왔다.”이렇게 하는 거야. 그래 어린아이는 모르니까 不解 방편을 모르니까 그만 호랑이 온 줄 알고는 그냥 울음을 덜컥 그쳐버리잖아요. 그게 일단은 좋기는 좋은데 그게 이제 너무 지나치다보면은 그만 그것만 가지고 살림살이를 삼는 그런 경우가 불교안에 너무 많습니다. 참 그 문제에요.
방편으로 수의소설, 편의를 따라서 설한 바를 알지 못하고
初聞佛法하고 遇便信受라
처음에 부처님의 법을 듣고는 뭐 어떤 법도 부처님이 설한 것이라면 무조건‘遇便信受야’만나자마자 곧바로 믿고 받아들여. 아 호랑이 왔다 그러면 아이고 호랑이 왔는갑다고 그냥 울음 딱 그쳐버려. 그게 遇便信受여 이게. 어디가서 무슨 기도하면 된단다하면“아이고 좋구나!”하고 그냥 거기에 껌뻑 넘어가가지고, 뭐 아비라기도한다 좋단다 그러면 거기에 그만 껌벅 넘어가가지고 그것만 하고 있는거야. 그리고 그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은 불교가 아니라고까지 봐 버려.
遇便信受라는 게 그것입니다. 만나자마자 곧바로 믿고 받아들여버려. 부처님이 말했으니까, 큰스님이 말했으니까 또 큰스님이 말했으니까 까지는 괜찮은데 스님이 말했으니까. 스님이 말하면 무조건 법인 줄 아는거야. 그 참 큰일이요 그게. 제대로 불교를 아는 스님도 있지만은 모르는 스님이 태반이니까 그래 또 무슨 꿍꿍이 속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도 전혀 신도들은 모르는 거야. 그런데 그만 스님이야 하는 그것 때문에 가짜스님인지, 무슨 뭐 땡땡이중인지 아니면은 이제 막 중 됐는지, 며칠 되지도 않는 스님인지, 아니면 하다못해 군대 기피할려고 찾아와서 임시로 중이 됬는지 전혀 모르고 스님복장만 딱 입고 있으면 그만 遇便信受야.
만나자마자 바로 그말하면“아 그 스님이 말했다고”내한테 와서 하소연하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그거라.“아 그 스님이 이야기했다고, 그 스님이 이야기했다고”내가 다니는 절에서 스님이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그래서 그것만 믿고, 어제도 어떤 청년이 왔는데 자기가 직접 들은 이야기도 아니야. 거기에 있는 스님이, 그 절에 있는 스님이 어떤 스님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전해주드라고 그 한 번 건너뛴 말까지도 그만 遇便信受하더라고“아 그 스님이 그렇다는데요. 그 스님이 그렇다는데요.”지금 내가 바로 그 절하고 스님 이름을 들먹거리면은 문제가 될 것같아서 말을안하는데, 개인적으로 알고 싶으면 개인적으로 말씀드리지.
그래 내가 봤느냐? 그랬거든, 내가 봤느냐?“아니요. 그 스님 상좌가 그런 이야기 하대요.”그러드라구요. 그렇게 된다구요. 아 참 사람이 어리석기로 말하면 끝없이 어리석어. 끝없이 어리석어. 遇便信受 이것도 우리가 주의해야 되. 그래서
思惟取證하노이다
그것을 생각해가지고 取證 뭐 그냥 받아들여버린다. 취해서 자기것으로 삼는다 이말이여. 그런 어떤 방편을
그 전에 강원도의 어떤 젊은 청년들이 삼을 시내에 갔다 팔려고 한 짐씩 짊어지고 시내를 가는데, 가는데 큰 고개가 하나 있어. 그래 고개넘어 재 넘어서 이제 짊어지고 가는 길에 구리가 한 무더기 있어. 그래서 두 사람중에 한 사람은 그 삼을 얼른 버려버리고 구리를 짊어졌어. 그 한 사람은 가만히 이렇게 생각하는 거야.‘아 그동안 뭐 구리가 값은 더 나가겠지만은 그동안 짊어지고 온 공이 아까운거야.’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 높은 언덕을 올라와가지고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시내에 갔다 팔 판인데, 그 공이 아까와가지고 그만 그대로 삼을 지고 가는거야.
그래서 나중에는 이제 은을 만나도 그대로 삼을 지고가고, 구리로 바꿔 진 사람은 은 만나면 얼른 버려버리고 은을 짊어지고 그 다음에 또 가다보니 금이 한 무더기 있는데, 은을 짊어진 사람은 은을 얼른 버려버리고 금을 한 짐 짊어졌어. 근데 삼을 짊어지고 간 사람은 의리때문인지 뭐 하여튼 뭐때문인지 계속 삼을 짊어지고 가는거야. 그래서 부처님이 그걸 담마기금(擔麻棄金)이라. 삼을 짊어지고 금을 버렸다. 삼을 짊어지고 금을 버리는 경우다.
경전에서 이걸 그렇게 부처님이 중생들의 어떤 집착과 어리석음 그것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담마기금이다. 그리고‘전공이가석(前功而可惜)이라’그래요. 앞에 지고 온 그 공이 아깝다. 그런 사람은 발전없습니다. 발전없어요. 그러니까 얼른얼른 떠날 줄 알고 버릴 줄 알고 가뿐가뿐하게 옮길 줄 알아야 되. 그래야 발전이 있습니다. 모든 분야에 모든 분야에 그래서 담마기금이니, 전공이가석하다 하는 그런 말 아주 그 불교공부하는데, 불교공부의 차원이 뭐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 방편이 있다보니까 이제 그렇게 되는 거에요.
여기서는 이제 우리 일상생활에 이끌어서 이야기할라니 그렇지만은, 내용인즉슨 삼승과 일승의 문제. 저 앞에서 물론 있었습니다만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방편설 또 성문, 연각, 보살이라고하는 그 삼승을 이렇게 받아들여서 있었다. 그래서 말하자면은 같이 법성에 들어있었지만은 소승법으로써 우리를 제도했습니까? 하지만은 그것은 우리의 허물이요. 세존의 허물은 아닙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 원인을 이야기해주기를 기다려서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해야 되는데 그랬으니까 반드시 더 대승으로써 대승법으로써 우리를 제도했겠지만은, 우리는 方便을 이해못해서 隨宜所說을 이해못해서 그래서 그만 방편이야기 하는 것에 그만 덥썩 받아들여져서‘遇便信受야’덥썩 받아들여가지고는 고걸 그냥 붙들고 수 십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우리 불교인들, 어디서 그 옆집 사람한테 배웠거나 친구에게 들었거나‘아~ 이게 좋은 일이란다.’하면은 그걸 가지고 수 십년 발전도 없이 그렇게 불교를 믿어온 사람들이 많아요. 한 번도 제대로 된 불교에 눈 뜨지 못하고 그냥 일생을 마쳐버리는 사람들도 또 있어.
참 부처님이 이렇게 많은 그 방편을 개설해놓는데, 그 방편은 우리가 떠나야 할 방편이지 거기에 목숨을, 목을 매라고 하는 방편은 결코 아닙니다.
5 世尊 我從昔來 終日竟夜 每自剋責 而今從佛 聞所未聞未曾有法
세존 아종석래 종일경야 매자극책 이금종불 문소미문미증유법
斷諸疑悔 身意泰然 快得安穩 今日乃知眞是佛子 從佛口生
단제의회 신의태연 쾌득안은 금일내지진시불자 종불구생
從法化生 得佛法分
종법화생 득불법분
世尊하 我從昔來로 終日竟夜토록 每自剋責이더니
세존이시여! 우리가 옛날부터 하루가 다하고 밤이 끝나도록 매양 스스로 책망했다. 剋責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심히 책망했더니
而今從佛하사 聞所未聞未曾有法하사옵고
지금 부처님으로부터, 앞에서「방편품」에 있었던 최상승의 법문입니다. 정말 밤낮으로 참 여기에 몸담고 이렇게 살아오면서 대승법을 배우지는 못하고 항상 소승법으로 이렇게 살아왔는데, 그걸 가지고 항상 책망했어. 자책했어.
그렇게 살아오다가 오늘 이『법화경』설하는 법회에 와서 지금의 부처님에게 들었다. 무엇을? 未聞 듣지 못했던 거 未曾有 그동안 있지 않았던 거, 일찍이 있지 않던 그런 법을 듣고 그리고는
斷諸疑悔커는
모든 의문과 뉘우침을 다 끊어버렸어. 속이 시원하게 그래서 뭐라고?
身意泰然이라
내가 편안함이라고 했죠. 몸과 마음이 편안해져서, 태연해져서‘아! 이제 살았다.’큰 고개를 하나 넘어가가지고 이제 정말 편안해진 그런 그 상태 또는 꿈에서 아주 악몽으로 시달리다가 꿈이 깨가지고 아주 편안해진 상태 그래 身意泰然이야. 참 좋은 말이죠. 身意泰然해서
快得安穩이야
이건 아주 유쾌하게 편안함을 安穩함을 얻어. 身意泰然 快得安穩 가뿐하게 快得安穩이라. 가뿐하게 편안함을 얻었다. 안온함을 얻었다. 그리고 이제 중요한 말입니다.
今日乃知眞是佛子라
금일에사 참으로 이 진짜 불자라고 하는 것을 이제사 알았다. 그러면은『법화경』공부 못한 사람들은 불자 아니에요. 불자라도 가짜불자야. 요 보십시오. 사리불이 여기와서‘아 내가 진짜 불자다.’라고 하는 사실을 알았다. 이건 내 말이 아니에요.『법화경』말이지.
『법화경』공부 안하면은 제대로 불교를 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불자라고 할 수도 없어요. 여기와서 비로소 사리불도 진짜 불자가 됐어. 그 전에도 불자는 불자지 그렇지만은 이제 불자도 불자 나름이지. 어느정도 불자냐? 무게가 몇 근 나가는 불자냐? 그게 그 사람의 관심사와 정신수준과 불교에 대한 이해와 신심과 이런데 따라서 이제 불자의 차원도 천차만별입니다. 쉽게 한 100단계로 나눌 수 있어. 100단계
사리불도 이제와서 아 眞是佛子라고 하는 사실을 이제 알았다.
從佛口生하며 從法化生하야 得佛法分하노이다
참 좋은 말이여. 부처님 입으로부터 태어난, 태어났고 법의 교화로부터 태어났다. 비로소 불법, 진정한 불법의 分을 얻었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從佛口生 부처님 입으로부터 태어났다 하는 이걸 이제, 부처님 설법듣고 발심한 제자 이렇게 번역을 해요. 부처님 설법듣고 발심한 제자. 부처님 설법듣고 비로소, 입이라고 하는게 뭐 입속에서 나오나요. 사람이, 말하자면은 부처님 설법이 입으로부터 나왔고 그 설법을 듣고는 마음이 감동해서, 발심했으니까 그래서 부처님 입으로부터 태어난 제자 또 敎化 법의 교화로부터 태어난 제자 그리고 불법의 분을 비로소 얻었다.
이렇게 이제 당신의 그, 사리불이 앞에까지의 설법을 듣고 너무 감동해서 자신의 현재의 위치를 이렇게 이제 몇 가지로 표현을 했습니다. 참 어떻게 보면은 사리불 일생에 있어서 아주 그 극적인 순간이고 참 감동적이고 인생의 어떤 그 전환점이라고 할 수가 있고 그동안 불교에 대한 이해를 확 바꿔논 그런 순간이다. 이렇게 이제 표현할 수가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 불자들도 이『법화경』인연을 통해서 우리들 인생이 확 바뀌어야 되고 불교에 대한 관점이 확 바뀌어야 되고 또 인생에 대한 관점도 물론 이제 바뀌어야 되고, 뭐 바뀌어졌을겁니다. 벌써, 바뀌어졌을거에요. 틀림없이, 그래서 이걸 이제 우리가 내가 설명하는게 뭐 100분의 1인들 이 속의 깊은 뜻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자꾸 읽고 쓰고‘得佛法分이요.’요 글자 넉 자가지고 한 100번, 200번 써보면은 뭔가 그 가슴에 와 닿는게 있어. 와 닿는다고요. 그게 천지차이입니다. 그래서 자꾸 읽고 쓰고 읽고 쓰고 이렇게 함으로해서 말하자면은 진정한 그런 그 부처님의 가르침의 의미를 마음에 담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설명하는 것이 다가 아니에요. 다는 뭐에요. 100분의 1도 될까 말까 하지요. 그러니까 각자의 몫이죠.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얼마나 감동적으로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느냐는 것은 그 다음 각자의 몫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좀더 부연하고 시적으로 아름답게 다시 이제 뜻을 표현하는 그런 내용이 이제 중송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6 爾時舍利弗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이시사리불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爾時舍利弗이 欲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니라
그때에 사라불이 이 뜻을 거듭 펴고자 게송으로써 설해 말했다.
참『법화경』이 잘 짜여진 것이 산문으로 쫙 이렇게 설명하고 그 다음에 운문으로 시 형식을 통해서 또 그것을 좀더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래서 외울라면은 요 게송만 외우는게 오히려 더 효과적이고 빨라요. 외우기도 좋고
7 我聞是法音 得所未曾有 心懷大歡喜 疑網皆已除
아문시법음 득소미증유 심회대환희 의망개이제
我聞是法音하사옵고 得所未曾有하야
내가 이 법음을, 법의 말씀을 듣고 일찍이 있지 않던 처음있는 일을 얻었어.
心懷大歡喜하야 疑網皆已除호이다
마음에 큰 기쁨을 품어서, 큰 기쁨을 품어서 의심의 그물이 다 제해졌습니다. 의심의 그물. 그동안 이제‘왜 부처님은 우리도 똑같은 사람인데 왜 소승법만 자꾸 가르치는가? 왜 자꾸 기도만 권하는가? 왜 소원성취만 말하는가?’그런 것 설사 소원성취를 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일종의 좋은 꿈에 불과해. 좋은 꿈, 좋은 꿈이라구요. 좋은 꿈에 불과하지. 그 무슨 말인고하니, 좋은 꿈이든 나쁜 꿈이든 꿈이다 이거야. 꿈이다는 거지. 꿈 쫓아가라는게 아니여. 부처님은, 꿈 깨라고 하는게 부처님이야. 부처님 설법이라구요.
그래서 왜 그런 가르침만 자꾸 우리에게 가르쳤는가? 그건 이제 우리 수준이 방편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그래서 그런 의심의 그물이 다 이제 제거돼버린거죠.
8 昔來蒙佛敎 不失於大乘 佛音甚希有 能除衆生惱 我已得漏盡
석래몽불교 불실어대승 불음심희유 능제중생뇌 아이득누진
聞亦除憂惱
문역제우뇌
昔來蒙佛敎하사 不失於大乘이라
옛날로부터 옴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입어서 일찍이 대승을 잃어버리지 아니했음이라. 대승의 그 分은 있다 이거여. 그래서
佛音甚希有하사 能除衆生惱하시니
부처님의 음성이, 설법하는 음성이 매우 희유하사 능히 중생의 번뇌를 제거하시니, 중생의 번뇌를 제거하시니
이겁니다. 바로 能除衆生惱 중생의 고통과 번거로움과 아픔과 온갖 그 쓸데없는 분별망상과 그래서 생각이 좀 깨끗해지고 청소가 확 돼버린 그런 상태 能除衆生惱 뇌(惱)자 이게 뇌로울 뇌자, 괴로울 뇌자, 번뇌 뇌자 뭐 아플 뇌자 뭐 뜻이 많아요. 이 뇌자가, 그래서 중생들의 이러한 번뇌를 다 제거하시니
我已得漏盡이라
나는 이미 漏盡을 얻었다. 漏盡 누가 다함을 얻었다. 새나가는 것이 다했다. 이제 더 이상 안 샌다 이 말이여. 그러면은 사리불이 한 말인데, 사리불은 새는 게 이제 그동안에 계속 새 나가는데 이제는 새는게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새고 있다는 뜻이라. 사리불 수준에 못 이르렀으면, 새고 있는 것이 뭡니까?
우리는 어리석기 때문에 잘한다고 하면서 더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는 거야. 그래 복을 짓는다고 했는데 복을 까먹는 것을 더 많이하고 온거야. 차라리 복 지을라고 안가고 가만히 있었으면 더 나을텐데 복 지러가가지고, 지는 복 지었다고 하는데 그 나머지 다른 행동들이 복을 훨씬 더 까먹고 온거야. 기도하러 가가지고 자리 때문에 한참 다투고 화내고 시비하고 오면은, 기도는 10이라면은 다투고 화내고 기분나쁜거 한 50쯤 돼버리면 -40이잖아. 참 중생들 하는 일이 그래요.
그래서 여기보면 그게 이제 새나간다 이거야. 뭐든지 다 새나가. 이치를 모르니까 새나간다고 그런데 사리불은 그런 일이 없어. 漏盡 새나가는 것이 다 끝났다. 이것만 해도 알아도요. 참 어려운 일이죠. 우리가 하는 일이 잘 할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잘못 된 경우.
그 저 참선하는데도 보면은 노인이 80먹은 노인이 역수(逆水) 흐르는 물을 거슬려서 쪼각배를 운전하고 가는데 1미터를 올라갈 수 있어. 계속 스스로 노를 저으면 1미터 올라갈 수 있어. 그러면 10미터가 미끄러져. 그래 1미터 올라가면 10미터가 미끄러지고 1미터 올라가면 10미터 미끄러져. 한 일이 그렇다고 해놨어요. 그래서 이제 그것도 이제 요는 눈을 뜨지 못해서 그래. 꿈을 깨지 못해서. 간단한건데 그것도
聞亦除憂惱니다
법문을 듣고는 또한 憂惱 근심과 괴로움이 다 제거했습니다.
9 我處於山谷 或在樹林下 若坐若經行 常思惟是事 嗚呼深自責
아처어산곡 혹재수림하 약좌약경행 상사유시사 오호심자책
云何而自欺
운하이자기
我處於山谷커나 或在樹林下하야 若坐若經行에
내가 山谷 저 산곡에 처하거나 수풀속에 있어서 앉아있거나 經行함에, 경행이 이제 참 좋지요. 숲속에 앉기만, 다리아프면 앉을 수도 있지만은 서서히 아주 하나도 숨 차지않게 천천히 이렇게 걸으면은 아주 그 사색하기가 참 좋지요. 화두들기도 좋고 염불하기도 좋고 경외우기도 좋고
그래서 고봉스님같은 이들은 3년을 용맹정진하는데 식사할때만 잠깐 앉았다 그래요. 그리고 나머지 24시간을 전부 경행했다는 것입니다. 참선하는데, 참선은 앉는걸로 알고 있잖아요. 아니야 그 스님은 앉는 것은 식사할때만 앉았다 그랬어요. 그 외에는 전부 경행했다. 걸어다녔다 그러죠. 도량을 그냥 법당을 뺑뺑 돌거나 도량을 왔다갔다하거나, 이 경행 참 좋은 거에요. 그래서
常思惟是事하고 嗚呼深自責하대 云何而自欺어뇨
항상 이러한 일을 생각하고 오호라! 슬퍼하면서 깊이 스스로 자책. 스스로 자책하대 어찌하여 내 스스로 나를 속였는가?
10 我等亦佛子 同入無漏法 不能於未來 演說無上道 金色三十二
아등역불자 동입무루법 불능어미래 연설무상도 금색삼십이
十力諸解脫 同共一法中 而不得此事 八十種妙好 十八不共法
십력제해탈 동공일법중 이부득차사 팔십종묘호 십팔불공법
如是等功德 而我皆已失
여시등공덕 이아개이실
我等亦佛子라 同入無漏法이언만은
우리들도 또한 불자라 말이야. 똑같은 불자라. 다 무루법에 들어갈 수 있건만은, 본래 샘이 없는 그 도리. 그 도리에 다 같이 들어갈 수 있건만은
不能於未來에 演說無上道하며
능히 미래에, 능히 미래에 무상도를 연설하지도 못하며
金色三十二와
요건 부처님의 모습, 외모죠. 황금색으로 된 부처님의 32상과
十力諸解脫이
요것도 부처님의 내심, 부처님의 깨달은 그 표현을 열 가지 힘이라 이렇게 표현을 해요. 그리고 해탈, 해탈이
同共一法中이어늘 而不得此事라
다 이 한 법가운데, 하나의 도리 가운데 다 들어있는데 이 일을, 이러한 도리를 얻지를 못했으며
八十種妙好와
부처님을 표현할 때 32상 80종호 그렇게 말하거든요. 그 생긴 모습을 표현할 때 그렇게 합니다. 뭐 그런 형상이 꼭 소중해서라기 보다는, 말하자면 부처로서의 어떤 격을 이야기하는데 그것도 우리도 다 가능하다 이 말입니다.
十八不共法인
열 여덟가지 특별한 법 이런 말입니다. 열 여덟가지 특별한 法인
如是等功德을 而我皆已失이라
이와같은 등 공덕을 나는 다 이미 잃어버리고 살았다. 그 좋은 것을 부처의 경지, 그 좋은 것을 나는 다 이미 잃어버리고 살았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 여기 32상, 80종호, 십력, 해탈 그 다음에 18불공법 이러한 등등은 결국은 우리 마음안에 있는 무량한 공덕과 무량한 신통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요. 그럼 소승법을 가지고는 우리 마음속에 이미 내재해있는 무량한 공덕과 무량한 신통, 지혜와 자비를 소승법으로써는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대승법이라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못드러내다 대승법을 만났을 때 비로소 그게 표현이 된다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여기 이제 사리불 이야기는“내가 그것을 다 잃어버렸다.”나도 그것을 가지고 있는데, 소승법을 가지고 그동안 공부했으니까 다 잃어버린 것이 됐다.
11 我獨經行時 見佛在大衆 名聞滿十方 廣饒益衆生 自惟失此利
아독경행시 견불재대중 명문만시방 광요익중생 자유실차리
我爲自欺誑
아위자기광
我獨經行時에 見佛在大衆호니
내가 홀로 경행할 때 숲속에서 이리저리 포행할 때에 부처님이 대중가운데 있는 것을 보니
名聞滿十方이라
名聞 이름이 하~ 이름이 시방세계에 가득해. 하~ 석가모니부처님, 세존, 여래하면 뭐 모르는 사람이 없어. 3살먹은 아이들도 다 알 정도로 소문이 가득한 그런 분이다. 그리고 그 분은 어떤 분이냐?
廣饒益衆生이시어늘
널리 중생들을 饒益하게 한다. 요익 또는 이익, 이익이란 말은 조금 세속적인데 요익이란 한 말이 훨씬 불교적이죠. 뭐 똑같은 뜻입니다. 괜찮아요. 이익이라고 해도, 널리 중생들을 이익하게 한다.
결국은 이제 불교는 인간의 소중함에 눈을 뜨는 것 그건 이제 자비고 인간의 위대함, 인간이 본래로 부처고 따라서 여기서 소개한 32상, 80종호, 만행, 만덕 온갖 것을 다 지니고 있다고 하는 이 소중한 인간존재에 대해서 눈을 뜨고 그리고는 그러한 이치를 여러 사람들에게 깨우쳐 주는 것. 그거에요. 그거는 이제 자비행이고 눈을 뜨는 것은 지혜고 그 지혜에 눈을 떠야 되고 자비에 눈을 떠야 되.
이『법화경』은 나중에 이제「보문품」을 통해서「묘음보살품」과「관세음보살보문품」을 통해서 자비에 눈을 뜨도록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근데 앞 부분은 전부 지혜에 눈을 뜨도록 하는 이야기에요. 인간의 그 위대성, 인간의 위대성을 이야기하는 그런 내용으로 거의 돼 있습니다. 그래서
自惟失此利하니
스스로 생각해보니 이러한 이치를 잃어버렸어. 여기 이제 惟자는 이제 자신만이 오직 이러한 이익을 잃어버렸다. 오직 유자로 봐야 되겠네요. 생각 유자보다도, 스스로 오직 이러한 이익을 잃어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런 이익에 동참했는데, 내 자신만 오직 이러한 이익을 잃어버렸으니
我爲自欺誑이라
나는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이 돼버렸다. 내가 왜 이꼴이 됐는가? 사리불같은 사람이 그런 그「방편품」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자책을 하는 그런 입장입니다.
12 我常於日夜 每思惟是事 欲以問世尊 爲失爲不失 我常見世尊
아상어일야 매사유시사 욕이문세존 위실위불실 아상견세존
稱讚諸菩薩 以是於日夜 籌量如此事
칭찬제보살 이시어일야 주량여차사
我常於日夜에 每思惟是事하고
나는 항상 낮이나 밤이나 늘 이러한 일을, 이 일을 이 문제에 대해서 사유하고
欲以問世尊은 爲失爲不失가
세존에게 묻고저 하는 것은 정말 내가 이걸 잃어버린 것인가? 나는 해당이 안되는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도 해당 되는 것인가? 이것을 이제 늘 생각했었다.
그래요. 그럼 우리들 입장으로 이제 이끌어다가 생각하면은『법화경』에서 말하는 불교의 최상승 법, 최고의 이치를 맨날 기도만 하고 다니는 우리에게도 해당이 됩니까? 아니면 우리에게 해당이 안 됩니까? 이 말이여.
我常見世尊이 稱讚諸菩薩하사옵고
내가 항상 보니 세존은, 항상 여러 보살들만 칭찬해. 여기 諸菩薩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대중을 의미하는 것이고 사리불, 목건련 뭐 수보리, 가섭, 아난 그 제도권안에 들어와서 부처님 제자로써 형식을 제대로 갖춘 사람들과 여기 제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대중과 그 차이에요.
오히려 제도권안에 들어가버리면은 일반대중들보다 말하자면은 안 좋은 점이 많아. 그래 이제 자기는 제도권안에서, 승려로서 뭐 지켜야 할 것도 많고 그런 입장에서 일반대중들을 보니까 부처님은 항상 일반대중들을 칭찬을 해. 稱讚諸菩薩이야. 내가 세존을 보니 항상 칭찬을, 보살들을 칭찬해. 그래서
以是於日夜에 籌量如此事라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이와같은 일‘어떻게 저 보살들을 칭찬하고 우리에게는 맨날 소승법가지고 이야기했는가?’이것을 籌量 헤아려 보았다. 그러다가
13 今聞佛音聲 隨宜而說法 無漏難思議 令衆至道場 我本著邪見
금문불음성 수의이설법 무루난사의 영중지도량 아본착사견
爲諸梵志師 世尊知我心 拔邪說涅槃 我悉除邪見 於空法得證
위제범지사 세존지아심 발사설열반 아실제사견 어공법득증
爾時心自謂 得至於滅度 而今乃自覺 非是實滅度
이시심자위 득지어멸도 이금내자각 비시실멸도
今聞佛音聲의隨宜而說法하니
지금에사 부처님 음성, 편의를 따라서 설법한 것이다.‘아 우리에게 방편으로 방편으로 이야기해준 것이구나!’편의를 따라서, 우리가 가서“무슨 기도하면 좋습니까?”하고 물으니까 지장기도 해라. 뭐 관음기도 해라고 했지 부처님은 뭐 본래 그런 뜻이 아니다 이거여. 隨宜而說法‘아 부처님이 우리에게 편의를 따라서, 우리 입장에 맞춰서 그렇게 설법했구나!’하는 것을 듣게 된 거죠. 그래서
無漏難思議니라 令衆至道場이니다
샘이 없는 빠져나가지 아니한 그런 이치는 정말 불가사의하다. 지금 대중들은 도량에 이르렀으리다. 도량이 뭡니까? 깨달음의 장소. 불교의 최고의 경지를 이해할 수 있는 그 장소에 우리 대중들도 이미 이르렀습니다. 보살들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우리도 이제 참여했다 이거여.‘令衆至道場이라’대중들로 하여금 도량에 이르게 했습니다.
我本著邪見하야 爲諸梵志師로니
나는 본래 삿된 소견에 집착해서 모든 梵志들의 스승이 되었더니. 여기 이제 자기 과거 이야기를 하네요. 我本著邪見 나는 본래 삿된 소견에 집착해서, 그래 불교에 있어서도요. 그런 소소한 작은 그런 헛된 꿈에 집착해가지고 불교를 믿고 사는 사람들은 사견에 집착한 사리불하고 조금도 다를 바 없어요. 그것도 삿된 소견이야. 어떻게보면, 불교안에서도 삿된 소견이야.
여기 이제 범지라고 하는 것은 본래 불교에 들어오지 않고 다른 종교를 믿었잖아요. 다른 종교에서 스승노릇을 했어요. 그래서 제자들이 500명이나 있었어. 사리불 제자가 500명이지. 부처님 만나기전에도 그렇게 아주 그 훌륭한 종교 지도자로서 역할을 하고 살았다. 이 말이여.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까? 역사도 그렇구요. 실지로,
그래서 마승이라고 하는 비구를 만났죠. 그 길을 가는데 어떤 점잖은 그 스님이 한 분 걸어가지. 스님인지도 몰랐지. 아주 그 품위있고 고상하고 아주 인격이 뛰어나보이는 그런 사람을 만났어. 만나서“당신은 누구냐? 어째서 노란색 옷을 입고 있느냐?”그랬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마승비구가 자기 그 내력을“아 나는 싯다르타 태자가 성도해가지고 그 분이 깨달음을 얻는데, 그 분 밑에 제자가 돼가지고 이제 그 분의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입니다.”그랬어요. 그러니까 사리불이 아주 지식욕이 왕성한 사람이라. 지식욕이 아주 왕성해.
그래서“아 그래요. 그러면 그 스승이 무엇을 가르칩니까?”그러니까 이 마승비구가“아 나는 초보자가 돼가지고 이제 거기 입문한지 얼마 안됬어요. 그래서 나는 잘 모릅니다.”잘 모릅니다라고 이렇게 이야기했어요.“아 그래도 조금이라도 들은 게 있을것 아니냐?”고 막 그냥 물고 늘었졌어. 사리불이, 워낙 지식욕이 왕성한 사람이니까.“아 그래도 조금이라도 들은 게 있을 것 아닙니까? 한 번 이야기 해 보세요.”
여러분들 그런 추궁 많이 듣죠? 절에 다녔다. 어디 법문하는데 갔다 왔다. 그러면“오늘 법문 뭐 하드노?”“아 이 뭐 다 잊어버렸다.”“뭐 하나도 남아있는게 있을 것 아니냐?”고 그렇게 추궁하잖아요.“한 마디만 전해주면 안되냐고?”
그래서 사리불이 그런 사람이라. 그래가지고는 마승비구가 할 수 없이 한 마디를 소개해.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라고 하면서 한 마디를 소개하는데‘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 제법종연멸(諸法從緣滅) 아불대사문(我佛大沙門) 상작여시설(常作如是說)’모든 것은, 이 세상에 사람이나 뭐 이 식물이나 동물이나 온갖 것이 전부 인연으로 생겼고 또 이 모든 것은 역시 인연으로 사라진다. 그 법회시간이 됐으니까 법회가 생겼지. 그 다음에 법회시간 끝나면은 다 사라지는 거야. 텅 비어. 그게 모든 존재가 그렇습니다. 이 법회가 하나의 우리 인격체, 하나의 육신, 하나의 물건, 하나의 꽃꽂이, 하나의 책 전부다 해당돼요. 일체가 다 어떤 사람과 사람이 만남도 그렇고, 사람과 사람이 만남도 인연이 있으면 만나고 인연이 끝나면 헤어지니까. 우리 육신도 인연이 있는동안 70년 80년 90년 앞으로는 뭐 의학이 발달해서 100살 뭐 이렇게 살다가 그래도 인연이 다 끝나면 이제 없어지고 말 잖아요.
我佛大沙門 우리 부처님 큰스님께서는, 사문이라 그랬어. 그때는 똑같은 스님이야. 부처님이 뭐 조금 큰스님이라 그런 뜻이라. 我佛大沙門 큰스님께서는 常作如是說 항상 이 인연의 도리, 연기의 도리를 설명하십니다. 그랬어요. 그 얘기만 하나 해 준거야. 그것 누가 못 해주겠어요?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다 할 줄 알지. 그 얘기는
아 불교는 인연을 참 소중하게 여겨. 뭐든지 인연이 그렇게 됐다고 하는 거야. 돈 떼이면 떼일 인연이 돼서 떼였다. 이렇게 가르친다고, 그 참 기가막히기도 하지. 그래도 인연인걸 어떡합니까? 많은 조건이 그렇게 돼있어요. 그럴 수 밖에 없도록 돼있는거야. 그 조건을 우리가 일일이 낱낱이 살피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단 그것뿐이야. 이 꽃은 왜 여기 이 법당에 와서 이렇게 빛을 발하는가? 여러 사람이 이렇게 바라봐 줄 수 있는가? 다 그 나름대로 인연이 돼서 여기까지 온 거야.
그 이치를 이제 이야기해주니까 그 사람이 사리불이 눈을 번쩍 떴어. 그때 목건련도 있었어요. 눈을 번쩍뜬거야. 이야! 기가 막힌다.“그럼 세상이 생긴것도 인연으로 생겼겠네.”이런 거야.“아 그럼 인연으로 생겼지.”
그 당시 이제 뭐 다른 종교에서는 뭐 하느님이“지구가 있으라.”하니 있다. 어느날 이제 뭐“물이 있으라.”하니 물이 있고“불이 있으라.”하니 불이 있고 무슨“동물이 있으라.”하니 동물이 있고, 그렇게 생겼다. 세상에 그런 엉터리가 어디있어요. 얼토당토않지.
그 사리불도 그 나름대로 이 세상이 생긴 것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이론이 있었어. 그건 이제 범지니까, 여기 보면 범지니까 그들 나름대로의 학설이 있었지만은‘아 인연으로 생겼다.’그러니까 아주 눈이 확 뜨인거지. 그래서 그럼“날 좀 데리고 그 사람, 그 스승한테 데려가다오.”그랬어요. 그래 가서 부처님 앞에 인도를 했죠. 인도를 해가지고 법문을 들어보니까 정말 그동안 알고있던 것이 엉터리거든, 여기‘사견에 집착했다’그랬잖아요.
나는 일찍이 사견에 집착했다. 나는 본래 사견에 집착해서 범지의 스승이 되었다. 다른 종교의 스승노릇을 했었는데, 그래가지고 그냥 개종을 해버린거요. 요즘 뭐 프랑스에서는 뭐 개종하는게 유행이라고 개종을 그렇게 많이 한다는데, 그래서 달라이라마가“하 개종좀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만류를 할 정도여. 그런 정도라. 신문에도 나고 그랬어요.
世尊知我心하시고 拔邪說涅槃이어시늘
세존께서 나의 마음을 훤히 아시고 삿된 소견을 뽑아버리고 拔邪 삿된 소견을 뽑아버리고 열반을 설했다. 그 어떤 편안한 경지를 설했다 이거여.
그 처음에 그거 들으니까 아주 좋거든, 그 인연도리만 우리가 알아도 편안해져요. 열반이 되. 돈을 떼여도 열반이 되고 돈이 들어와도 열반이 되. 크게 기뻐하지 안해.‘이거 왜 들어왔는가? 이게 언제 나갈건가?’크게 기뻐 안한다 이거여. 그래 나가도 크게, 떼여도 크게 섭섭하지 안해. 열반이 된다고요. 인연도리만 제대로 알면은, 사랑하던 사람이 그렇게 집착하고 사랑하던 사람이 떠나도 그 인연을 알면은 그렇게 가슴아프지 안해. 멍들지 않는다고요. 멍들지 않는 것. 그게 열반이라. 편안함.
그러니까 사리불이 기분 좋거든‘야 이거 참 마음 편안하는데는 최고구나!’이렇게 알았는데, 아니야 그거는 사실은, 거기까지는 뭐 그런대로 소득이 있죠. 큰 소득이 있는 택이지. 그것도 그런데 불교는 그것이 다가 아니거든요. 그 사람 마음 편하게 해주는게 다가 아니야.‘拔邪說涅槃이여’삿된 것을 뽑아주고 열반을 설하시거늘
我悉除邪見하야 於空法得證커는
내가 다 삿된 소견을 제거하고 제거해서 空法에, 공한 도리에서 증득함을 얻고는
그래 연기도리, 인연의 도리는 결국은 공이 밑바탕이 돼있습니다. 공법이 밑바탕이 돼있어요. 공이 밑바탕이 돼있으니까 여기 이제 뽑으면 뽑혀지는 거야. 여기에 공간이 있으니까 책상을 갔다 놓았죠. 또 이것을 옮겨갈 수도 있어. 공간이 밑바탕이라구요. 사실, 그 본래는 사람하고 사람하고 만난적이 없죠. 그거는 공법이야. 본래 만난적이 없다가 만났잖아. 그러면 만난적이 없는데로 돌아가는 거야. 결국은 그 만난적이 없는게 밑바탕이라. 그래 공법에서 증득함을 얻었다. 공법이 그거에요.
우리가 본래 태어난적이 없잖아요. 태어난적이 없는게 그게 밑바탕이라. 그 어쩌다 다행히 부모인연이 있어서 이 세상에 와가지고 또 불법까지 만나가지고 거기다 또『법화경』까지 만나가지고 이렇게 이제 우리가 법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법락을 누리고 있지만은 따지고 보면 공법이야. 이게 영원한 것도 아니고 인연이 다 하면 이것도 다 사라지는 거야. 그렇게 아니까 상당히 편안하긴 하죠. 공법으로써 증득함을 얻고는
爾時心自謂 得至於滅度러니
그때에 마음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아 내가 제도를 다 얻었구나. 아 제도를 얻었구나. 이렇게 이제 생각하게 됐다.
사리불이 사실은 자기 속에 있는 그 어떤 심정 그리고 부처님을 만나고, 부처님을 만나서 내가 이러이러한 경지까지 오게 된 거 이런것을 여기에서 다 털어놓게 된 대목입니다. 이런 대목이 잘 없어요. 보면은, 스님들도 자기 이야기 잘 안하거든요. 과거를 묻지 마라라고 하는게 바로 스님들의 소리라. 그래서 성을 몰라요. 성을 몰라. 성명을 몰라. 10년을 같이 살아도 그 스님이 성이 뭔지? 성명이 뭔지? 몰라. 그거 서로 안 묻습니다. 과거에 대해서 안 물어요. 알려고도 안해. 서로 뭐 알고 파내봐야 좋을것 없으니까 허허.
그런데 여기는 이제 자기의 어떤 그 과거의 어떤 그 공부의 어떤 그 진척에 대한 내용을 이렇게 이제 설명하고 있네요.
14 若得作佛時 具三十二相 天人夜叉衆 龍神等恭敬 是時乃可謂
약득작불시 구삼십이상 천인야차중 용신등공경 시시내가위
永盡滅無餘
영진멸무여
若得作佛時에 具三十二相하며 天人夜叉衆과
만약 부처가 되었을 때에 32상을 갖추며 또 천과 인과 야차대중과
龍神等恭敬하야사 是時乃可謂 永盡滅無餘니다
그런 존경을 받고 32상을 갖추고 뭐 형식적으로 그렇게 이제 여러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天 人 夜叉 龍 神 등이 전부 공경하고, 그 쯤되어야 그때사 可謂永盡滅無餘이다. 영원히 멸진해서 남음이 없는것이니다.
15 佛於大衆中 說我當作佛 聞如是法音 疑悔悉已除
불어대중중 설아당작불 문여시법음 의회실이제
佛於大衆中에 說我當作佛하시니
부처님이 대중 가운데서 우리들에게 마땅히 我當作佛 마땅히 부처가 된다라고 말했으니 我當作佛 참 我當作佛, 皆已成佛道 손을 한 번 번쩍 들어도 그 인연으로 전부 불도를 이미 이뤘다. 절 한 번해도“나무불”부처님께 귀의합니다. 한 마디만 해도 이미 불도를 이루어 마쳤다. 이 말을 들었다 이거여. 앞에서 들었잖아요.「방편품」에서
그러니까 佛於大衆中에 說我當作佛 이게 중요한 말이죠. 부처님이 여러 사람앞에서 우리들에게‘모두가 부처가 된다.’라고 이렇게 했다. 모두가 부처가 된다라고 하는게 아니라 모두가 이미 부처다. 이런 말이에요. 뜻은 그 뜻입니다. 그렇게 하셨으니
聞如是法音하고 疑悔悉已除니다
이와같은 법음을 듣고는 모든 그동안 생각하고 있던 그리고 의심하고 있던 그리고 또 후회하고 자책하고 하던 그런 것들이 다 제거되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 문제 때문에‘왜 보살하고 우리하고 차별하는가? 왜 대승법을 놔두고 소승법으로 우리를 가르쳤는가?’이런 것들이 정말 인생을 여기다가 올인했는데,‘아니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차별하고 소승법을 가지고 그동안 내가 먼저 죽었으면 어쩔뻔 했느냐?’이거여. 그게 그거에요. 의심하고 후회하고 뉘우치고 스스로 또 자책도 하고 근데 그런것이 오늘날 다 사라졌습니다. 아니야 너도 부처야. 알고보면 뭐 열반으로써 편안하게 사는 정도가 아니고 사실은 완전한 부처로서 삶이 보장돼있다. 이런 내용입니다.
16 初聞佛所說 心中大驚疑 將非魔作佛 惱亂我心耶 佛以種種緣
초문불소설 심중대경의 장비마작불 뇌란아심야 불이종종연
譬喩巧言說 其心安如海 我聞疑網斷
비유교언설 기심안여해 아문의망단
初聞佛所說하고 心中大驚疑하대
처음에 부처님이 설한 바를 듣고 마음 가운데 크게 놀라고 의심했으대, 그러니까 5000명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잖아요.
저 앞에서 그리고나서 부처님이 정말 손 한 번 들어도 부처다. 손 한 번 드는것이 이제 조건이 아니죠. 사실은, 늘 말씀드리지만은 손 한 번 들어도 부처다. 어린아이들이 모래를 싸놓고 불탑이다 한 것으로 皆已成佛道 이렇게 했지만은, 그건 조건이 아니에요. 아 모래 쌓아놓고 불탑이라 하는 거 그거 누가 못해. 그거가지고 무슨 조건이 됩니까? 조건없이 부처다. 조건없이 본래로 부처다라고 하는 그런 인간의 지극히 고귀한 그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법화경』이고『법화경』에서 그런 이야기를「방편품」에서 했고
그래놓으니까 뭐여 心中大驚疑여. 놀라지. 깜짝 놀라지. 손 한 번 들어도 부처다. 모래 쌓아놓고 불탑이라고 해도 그것도 부처다. 아니 그건 조건이 아니고 그건 형식적인 것이고 본래로, 그것 안해도 부처님을 비방하고 욕하고 헐뜯고 불교를 해쳐도 그래도 부처다. 이 말이요. 조건이 없어요. 그런 것 전혀 조건이 안돼. 놀랄만하죠. 大驚疑 놀라고 의심할만하지. 저건 뭐 혹시 마구니가 아닌가? 이『법화경』이 진짠가?
지금도 이『법화경』을 그렇게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밝은 세상에도 소승불교, 근본불교, 원시불교만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법화경』이 이해가 안돼요. 참 신기하죠. 전혀 이해를 못해요. 그래가지고 이런 경전을 나중에 뭐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거다. 나중에 만들었든 언제 만들었든간에 진리면, 참다운 이치일것 같으면 그게 중요한 거죠.
무슨 소설같은 옛날 설화나 그 이야기하고 있으면, 그 뭐 저저『논어』『맹자』보다도 못 하고 그 저기 저『노자』『장자』보다도 못 하면은 그건 크게 우리가 관심쓸 일이 아닌것입니다. 이 쪽에 사람들의 지식은요.『장자』『노자』환해요.『대학』『중용』얼마나 깊이 있는 이야기인데,『주역』같은거 얼마나 깊이 있는 이야기인데, 그런 사람들 그런 지식이 있는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보다 더 깨우치고 설득시키고 매료시킬려면은 소승불교가지고는 안 됩니다.『아함경』가지고는 안되는 거요. 그래서 이 쪽에서는『아함경』을 읽지를 안해. 읽히지가 안해.
요즘 뭐 남방에 가서 불교공부 해온 사람들이 자꾸 소개하긴 하지만은, 본래 북방불교도 아함부가 다 있었어요. 그런데『노자』『장자』를 읽은 사람들에게 그게 재미가 있을 까닭이 있습니까? 재미없어요. 그거, 나도 그거 읽느라고 고행하듯이 참고 읽긴 읽었지만은, 어떻게 생겼는가 싶어서 읽지만은 별로 재미 없어요.
그래서 그런 상식이 있던 사람들이 놀라죠. 心中大驚疑라. 크게 놀라고 의심하대
將非魔作佛하야 惱亂我心耶하더니
여 보십시오. 장차 마구니가 부처를, 부처모습을 가장하고 나와가지고 내 마음을 惱亂시키는 거. 어지럽게 하는가? 어지럽게 하는 것은 아닌가? 將非 장차 마구니가 부처의 모습을 지어가지고서 우리들의 마음을, 我心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아닌가? 이렇게까지 생각했다 이겁니다.
아 그렇지 않겠어요? 모래 쌓아놓고 불탑이다 하는 그런 장난친거 가지고 다 이미 부처를 이루어 마쳤다. 皆已成佛道라. 아 이렇게 했는데 이게 정말 의심할만 한거요. 그거 지금도 그게 이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실지로, 여기 분명히 그리 해놨네요.‘將非魔作佛하야 惱亂我心耶아’장차 마구니가 부처모습을 해가지고서 우리들의 마음을 뇌란케 한 것은 아닌가? 라고 그랬었는데
佛以種種緣과 譬喩巧言說하시니 其心安如海라
부처님의 가지가지 인연과 비유와 능숙하게 말씀으로써 비유로써 말씀하시니 그 마음이 편안하기가 바다와 같으니라.
거 「방편품」에서 이제 아주 뭐 이해를 잘 시켰죠. 其心安如海라.
我聞疑網斷호이다
내가 그 설법소리를 듣고 의망이 끊어졌습니다. 의심의 그물이 다 끊어져버렸습니다.
참 아주 사리불이 여기와서 그 법화경방편품을 다듣고 자신의 깨달음에 대해서 이렇게 아주 아주 세세하게 그리고 정말 우리들의 마음에 와닿도록 자기 심정을 이렇게 토로한 거. 이것이 아주 아주 빛나는 대목이고 또 산문에서 조금 이야기하고는 시로써 이제 게송으로써 훨씬 더 장황하게 이렇게 이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묘법연화경』「비유품」69쪽 17번부터 할 차례입니다. 저 뒤에 이제『법화경』에 대한 이치를 다 설명하고 뒤에 가면은『법화경』이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경전이다. 그래서 이제 온갖 어두움이 있지만은 그 어두움을 태양이 떠서 그 어두움을 다 깨뜨리듯이,『법화경』은 일체중생의 어리석음의 어두움을 깨뜨리는 그런 그 태양과 같은 경전이다. 이런 표현이 있어요.
그 다음에 또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저렇게 떠서 반짝이지만은 그중에 달이 가장 크고 밝듯이 마치 모든 별중에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달과같이 수많은 경전가운데서 이『법화경』이야말로 달처럼 가장 크게 빛나는 그런 별이다. 이런 표현도 있어요. 그 뭐 여러 가지『법화경』의 위대함을 설명한 내용은 뒤에 가면 많이 만납니다. 그래서 한 마디로『법화경』은 그 많고 많은 경전가운데서 왕이다. 그 경중지왕(經中之王)이다. 이런 한 마디 말로 이제 표현이 됩니다.
그렇게 표현될만치 이 경전에는 그만치 심오한 이치가 있고 또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정말 최고의 어떤 그 교훈이 있고 삶의 실천덕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제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치를 깨닫게 해주고 또 사람의,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올바른 이치를 이제 깨닫게 해주고 사람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그런 내용이 가장 돋보이죠. 그러므로 이제 사람을 부처님으로 이해하고 받들어 섬겨야 한다. 그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럼 이제『법화경』을 인연으로 맺은 사람들은 한 마디로 법화행자(法華行者) 이렇게도 표현하는데 법화행자는 모두가, 저 뒤에 가면 3대보살 또 보현보살까지 합하면 4대보살이 이제 뒤에 나오는데 약왕보살처럼 묘음보살처럼 관세음보살처럼 또 보현보살처럼 이렇게 살라. 그렇게 살아야 한다. 법화이치를 제대로 가슴에 담고 그것이 자기 인격화가 되면은 저절로 삶이 표현된다. 이렇게 이제 구성이 돼 있어요. 그래서 이 뒤에 가면 약왕보살, 묘음보살, 관세음보살 또 보현보살 이런 분들의 품이 나옵니다. 나와서 자비로써 법을 펴는 그런 그 실천을 구체적으로 어떤 인격, 인물을 들어서 보여주는 그런 내용으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앞 부분은 세상과 우리 인생에 대한 올바른 가치를 이해시키는 그런 내용으로 돼있고 오늘「비유품」은 부처님의 많고 많은 가르침중에서 어떤 가르침들이 있는가? 그걸 이제 분별해보자. 분별해봤을때 이 일불승(一佛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게 어떤 위치에 있는가? 이 이야기를 이제 나중에 비유를 들어서, 아직은「비유품」이지만은 비유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나중에 비유가 나올때 그런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할려고 하고 여기는 이제 그런 그 사정이야기를 합니다.
지난 시간에 보면은 그 마음이 편안하기가 바다와 같다. 그래서 우리들이, 사리불 자신이 하는 소리죠. 내가 듣자마자 이『법화경』이치를 듣자마자 의심이 그물이 다 끊어졌습니다. 의혹의 그물이 다 끊어져서 그 마음이 아주 바다와같이 편안해졌습니다 라고 하는 그런 그 이야기가 지난 시간에 있었습니다.
오늘은
17 佛說過去世 無量滅度佛 安住方便中 亦皆說是法 現在未來佛
불설과거세 무량멸도불 안주방편중 역개설시법 현재미래불
其數無有量 亦以諸方便 演說如是法 如今者世尊 從生及出家
기수무유량 역이제방편 연설여시법 여금자세존 종생급출가
得道轉法輪 亦以方便說 世尊說實道 波旬無此事
득도전법륜 역이방편설 세존설실도 파순무차사
佛說過去世에 無量滅度佛이
부처님이 설하시기를 과거세에, 우리 인생은 이제 현재만 사는 것이 아니고 어제가 있어서 오늘이 있고 또 오늘이 있어서 미래, 내일이 있듯이, 한 삶을 100년이라 치더라도 우리의 한 삶이전에 또 과거생이 있었고 또 우리 한 생이후에 또 내생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 또 이런 문제는 우리 불자들은 누구보다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계시죠. 그래서 이제 이런 이야기가 경전에는 자주 나옵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과거세에, 그러니까 석가모니부처님만 부처님이 아니라 한량없는 열반에 드신 부처님. 이런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대승불교에서는 첫째는 석가모니부처님 그 다음에 모든 깨달은 사람들 그리고 나아가서 다 깨달을 소지를 가진, 불성을 가진 존재, 모든 사람. 이렇게까지 이제 부처님이라고 하는 의미를 확대해서 생각합니다.
그 소승불교에서는 석가모니부처님 3000년전에 인도에서 태어나서 80세를 살다가 열반에 드신 그 역사적인 부처님만 인정해요. 그렇지만 좀더 큰 눈으로 보면은 사실은 깨달은 사람들은 다 부처님이고 또 깨달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불성을 갖춘 사람은 모두다 부처님이다. 그 우리가 반대할 수 없는 이론이죠. 그래서‘당신은 부처님. 사람이 부처님’이런 말이 타당한 것입니다. 하나도 그건 틀린 말이 아니에요. 이치를 알고보면은
그래서 이제 이런 말이 우리는 크게 의문스럽지 않아야 됩니다. 無量滅度佛 한량없이 과거세에 한량없이 열반에 드신 그런 부처님.
安住方便中하사 亦皆說是法이다
방편가운데 안주해서 또한 모두다 이 법을 설했다. 그랬어요.
방편중에 안주해가지고 이러한 법을 설했다. 그 말은 이제 무슨 말인고 하면은, 사람들의 수준과 성향과 욕심과 근기가 각양각색이다 보니까 부처님은 한 사람도 놓치고 싶지 않는 거에요. 한 사람도 놓치고 싶지 않다보니까 그 사람의 성향과 욕심과 수준과 어떤 그 인연에 맞는 고런 그 맞춤법문을 하신거야. 이렇게 그 사실은 사람 많이 모아놓고 하는 법문 안했어요. 부처님은, 실질적으로 순전히 맞춤법문밖에 안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어서 사람이 오면은 그 사람 앉혀놓고 이야기 하는거요. 그럼 이제 옆에 제자들이 있으면 다행히 그 제자들이 거기서 동참해서 그 사람에 해당되는 법문이지만은 같이 듣는거야. 그럼 이제 그 사람에게 딱 맞는 법문을 했는데 옆에 사람도 듣고 소득이 있고 그래서 그걸 귀담아 듣고 외우고 또 딴 사람에게 전해주고, 이렇게 했어요. 사실은, 석가모니부처님의 한 생애동안 설법하신 형식을 보면은 그렇습니다. 순전히 맞춤법문입니다. 지금은 뭐 시대가 또 다르고하니까, 맞춤법문도 있습니다만은 이렇게 이제 많이 대중을 모아놓고 하지요. 그 옛날에는 사실은 그러다보니까 결국은 방편의 말씀이 많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방편의 말씀.
엊그제에도 뭐 나한테 원주실을 통해가지고, 그 왜 좀 그 영가를 접한 사람들이 자꾸 내한테 찾아오는지 내 알 수가 없어. 근래 두 사람이나 만났는데, 내가 그거 제일 모르는 부분이 그 부분인데『법화경』들고 오면은 그 이야기가 되겠더만은 그런 부분을 들고 오니까 내가 뭐 영가를 보나 어짜나 뭐. 말 들어보니까 이제“누가 뭐라고 하지요?”하니까 그렇다는 거야. 그래 뭐 사경이나 열심히 하라고 그래 자나깨나 사경이니까 열심히 하라고 그렇게 가르쳐서, 그 결국은 제도해서 보내는 것입니다. 제도해서, 그 쫓아내는 법은 없어요. 영가를 쫓아내는 법은 없습니다. 그건 불법이 아니죠. 부처님 법은 어떤 사람도 다 이해시키고 깨닫게 해주고 그래서 이제 가게해 주는 자기 갈 데로 좋게 이제 가도록 해주는 거지. 절대 쫓아내는 것은 없습니다.
그 뭐 진언같은 거 알아듣지도 못하는 진언같은 거 외우면서 불 꺼놓고 팥을 뿌리면서 아주 그냥 공포분위기를 조성해도 내용을 보면은 그것은 이제 발심하고 또 깨닫고 이렇게 해서 좋은 데로 가십시오. 그런 의미로 돼있는데, 뜻을 잘 몰라가지고 불 꺼놓고 팥 뿌리고 해서 공포분위기 조성해서 쫓아내는 식으로 하거든요. 그거 몰라서 그러는 거에요. 내용은 그거 아닙니다. 그 내가 일본까지 가가지고 그 진언공부를 얼마나 고생스럽게 많이했는데, 그 할때 쓰는 진언이 있거든요.“옴 아아암악”이렇게 네 글자라구요. 그 구병시식할 때 합니다.
절대 영가를 공포분위기 조성해서 쫓아내고 떨어뜨리는 게 아니고 어떻게 하더라도 경전을 읽던지, 사경을 해가지고 그 사람의 어떤 그 영혼을 깨우쳐가지고 스스로 깨달아가지고‘아 나도 내 갈 길 가야 되겠다.’이렇게 느껴서 가야 그게 옳은 것이지 쫓아내면 그게 도망 잘 안갑니다. 안 가고 또 또 와요. 그러니까 그렇게 사경을 해서 아니면 독경을 해서 제도해줘라. 내가 늘 그렇게, 아 약방문은 나는 딱 한 가지에요. 그렇게 하는데
부처님은 늘 그랬어요. 그렇게 방편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방편을, 맞춤법문이다보니까 그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을 하다보니까 방편이 많을 수 밖에 없죠. 그래서 불교에는 방편이 너무 많아요. 그 참 그런 방편들을 어느정도 쓰다가 버려야 되는데, 그걸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전해주고 해가지고 거품이 거품을 낳고 거품이 거품을 낳아가지고, 불교도 사실은 거품이 많이 빠져야됩니다. 진실한 불교가 들어나야 되는데
그래 부처님도 할 수 없이 그래서 할 수 없이‘安住方便中하야’방편가운데 안주해서 이 법을, 또한 다 같이 이 법을 설했다.
그런데『법화경』에 와서는 그런 모든 방편을 방편이라고 들어내버리고, 그것은 내가 어쩔 수 없어서 하는 말이야. 거짓말이었어. 요것이 진실이야. 일불승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부처의 삶을 살아가도록 돼있는 그 길이야말로 말하자면은 진실한 법이야. 그 외에는 전부 방편이다 하는 그런 이야기를 요『법화경』에서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경전에는 그런 말이 없어요. 다른 경전에는 방편을 설하면은 그냥 그대로 방편이라고 말 안하고 하는 거야.
그 우는 아이에게 그“호랑이 왔다. 나 이거 거짓말인데 니한테 방편으로 하는 소리야.”이렇게 하지 안잖아요. 아주 틀림없이 온 것같이 해야되거든, 틀림없는 것같이 한다고 그런데 이 어머니는 평생에 호랑이를 본 적도 없어. 그런데 꼭 본 것같이, 밖에 와 있는것 같이 이야기를 하면은 아이가 울음 딱 그친다구요. 부처님 말씀은 그렇게 하는 거라. 그러니까 우리 중생들이 깜빡 넘어가지.
그래 어디 뭐 이상한 돌 이래 보고는‘아 저게 불상이다.’하면은 그만 막 그냥 우격다짐으로 저 관세음보살이 화현한 것이라고 자꾸 그러면 중생들 그냥 넘어가버리는 거야.“하~ 거 기도해서 영험 얼마나 많이 봤는데, 기도해라.”고 이런 식으로 하거든, 그래 이제 부처님이 일찍이 그렇게 했어. 왜냐하면은 그 근기를 제도하기위해선 할 수 없이 그렇게 방편을 썼어.
그러나『법화경』은 열반을 앞두고 부처님이 평생 교화하시고 마지막 열반을 앞두고 진실을 말할 수 밖에 없는 거라. 당신이 살아온 모든 삶을 다 고백하고, 그동안 방편이었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 앞에 고백하고서 그래 나중에 그런 말을 해요.“내가 그동안 방편으로 쓴 것을 너희들은 나보고 거짓말쟁이라고 하겠니?”이렇게 물어요. 그러니까 사리불이 펄쩍뛰면서“부처님 거짓말은 아닙니다. 방편입니다.”이렇게 말해요. 그래 방편과 거짓말은 그렇게 차이가 나는 거죠. 다른 거죠. 좋은 의도로 정말 그 사람을 자비로써 깨우치기 위해서 하는 것은 방편에 해당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정말 거짓말이죠. 거짓말도 많습니다. 방편을 빙자해서 거짓말도 많이 해요.
그러니까 이제 이런 경전을, 대승경전을 잘 공부해서 여러분들이 눈이 밝아져야 돼. 각자 눈이 밝아져야지.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도 없고 따라다니면서 깨우칠 수도 없고 그러니까 각자 눈이 밝아져가지고 그 판단할 수 있는 그런 그 판단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중요하지. 그래야 자기 인생이 첫째 미혹하지를 않고 다른 사람을 바르게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現在未來佛이 其數無有量하대
현재미래 부처님이 그 숫자가 한량이 없다. 현재 부처님도 한량이 없고 미래 부처님도 한량이 없다.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소승불교에서 석가모니만을 부처님이라 하면 어떻게 한량이 없다라고 말할 수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이것이 모든 깨달은 사람들이고 그 다음에는 모든 사람들이여. 더 널리 생각하면 모든 사람들입니다.
亦以諸方便으로 演說如是法이라
또 그들도 과거 부처님이나 현재 부처님이나 미래 부처님들도 또 또한 모든 방편으로써 이와같은 그동안 우리 불교안에서 불법속에서 행해졌던 그와같은 법들을 연설했다.
그 우리가 살아온 길을 아주 적나라하게 이『법화경』에서는 다 이야기합니다. 부족함이 없지요. 그러니까 경전중에 왕이라고 자신있게 표현할 수가 있는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늘 말씀드리지만은 한 가지 경전을 가지고 평생 읽고 쓰고 해석하고 의지할 만한 경전은『법화경』이다. 두께도 상당하잖아요.『법화경』한 권이면 일생 숙제로 충분한거라. 일생 숙제로 충분해요.
如今者世尊이 從生及出家하사 得道轉法輪하사대
예컨대 지금 세존께서 태어나서 부터 그리고 출가하사 도들 얻고, 태어났고 그리고 출가를 했죠. 출가해서 6년간 고행했죠. 그리고는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달았죠. 得道라는게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거 그것입니다. 도를 얻고 그리고는 어떻게 했죠? 법을 폈죠. 법륜을 굴렸다. 轉法輪
요즘 불교 라디오에서 법륜 굴리기운동 하는 거 아시죠? 참 좋은 표현이에요. 법륜 굴리기운동. 여기도 고대로 해석하면 轉法輪 법륜 굴리기운동이라. 부처님이 이제 당신은 인생에 대해서 깨달았으니까, 도를 얻었으니까 그리고는 그 이치를 깨달음의 이치를 중생들에게 나눠줘야지. 혼자가지고 열반에 들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돈 잔뜩 벌어가지고 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고 또 자기 식구만 잘 먹고 잘 살아도 안되. 불우한 사람들에게 조금 나눠쓸 줄 아는 그것이 이제 말하자며는 부처님이 도를 얻어가지고 得道 돈을 벌어가지고, 도나 돈이나 비슷하네요. 그래가지고 여러 사람에게 나눠준다. 轉法輪이야. 여러 사람에게 법륜을 굴린다.
딱 이치가 똑같잖아요. 그래 부처님이 가지신 것은 돈이 아니라 도였어요. 법이고 이치였어. 사실은 돈도 넉넉해가지고 빈민구제사업도 했으면 좋겠지만은 그럴 겨를이 어디있습니까? 부처님은 도 통하기도 바쁘고 또 진리의 말씀 전하기도 바쁜데 그리고 그것이 최고의 가치야. 사실은, 그게 제일 좋은 가치라구요. 그러니까 법륜을 굴리고, 그 법륜을 굴리다보니까 아까 이야기로 맞춤법문을 할 수 밖에 없죠.
‘아 어디가 도사가 있단다.’소문이 날꺼 아뇨? 그리고 또 덕화가 있으니까 저절로 사람들에게 그 부처님의 덕이 펼쳐지는 거라. 그래서 이제 한 사람씩 찾아와가지고 고민을 이야기하고 뭐 귀신이 들렸다든지 아니면 무슨 뭐 어떤 그 친구간에 문제가 있다든지, 가정의 문제가 있다든지 아니면 사업상의 문제가 있다든지 어떤 문제도 들고오는거야. 부처님한테, 그러면 할 수없이 그 사람 문제에 맞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거야.
亦以方便說하시니
또한 방편으로써 말씀하시니, 그렇습니다. 그동안은 그렇게 했다 이거여. 결론은 속뜻은 그렇게 했는데『법화경』에 와서, 내가 이제 머지않아서 열반에 든다. 마지막 진실을 말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개인의 문제에 따라서 방편으로 이야기하던거 싹 거둬치우고 정말 내 마음속에 있는 속뜻을 이야기할때가 비로소 됐으니까 이제는 진실한 말을 하겠다. 이런 내용이『법화경』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런 사정들을 쭈욱 이야기하는 과정이죠. 하시니
世尊說實道요 波旬無此事니라
세존은 진실한 도를 설하며. 그 방편으로 계속 설해오다가 이제와서는 세존도 진실한 도로, 實道라는 게 그것입니다. 진실한 법이에요. 방편하고 반대입니다. 진실한 도를 설하며 그래서 이제 방편과 실도 이걸 이야기할 때 그 실도는 하늘에 있는 달이라면은 방편은 달을 가르치는 손가락이다. 이렇게도 말하고 또 진실한 법 實道는 저 언덕, 내가 이루고자 하는 저 언덕이라면은 방편은 저 언덕에 건너가기 위한 수단. 뗏목이나 아니면은 배 뭐 이런 것으로 이제 비유를 합니다. 뗏목을 타고 저 언덕을 건너간다. 이렇게 할때 뗏목은 방편이고 말하자면은 저 언덕은 실다운 도, 이렇게 이제 할 수가 있어요.
그‘波旬은 無此事라’그랬습니다. 마왕 파순해서 이제 外道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불교이외에 또 진실하지 못한 어떤 그 진리라고, 진실하지 못한 것을 진리라고 하는, 주장하는 그런 이들을 통칭 파순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원래는 마왕 파순 또는 외도 이런 뜻이죠. 그런 이들은 이러한 일이 없다. 그래요.
여기서 이제 실도와 방편을 나눠놓고 간단하게 이제 차이점을 짚고 넘어가면은, 사람에 대한 진실한 도는 뭔가?‘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고 사람이 그대로 하나님이다.’하는 것이 실도에요. 진실한 도. 그런데 다른 종교같은데는‘사람이 하나님의 종이다.’라고 합니다. 사람을 종이라고 그렇게 보는 거에요. 그래서 막 파는 거야. 그 옛날 아프리카 사람들 잡아다가 막 팔고 그리고 하도 도망가니까, 도망가니까 그 옛날 뿌리에 나온 장면이죠.
옛날 뿌리 하~주 히트쳤죠. 한 30년쯤 전인가요? 40년쯤 전인가? 그 저기 미국에서 연속극으로 나오던게 우리나라에도 나와가지고 아주 대히트친 연속극인데, 그 흑인의 역사를 뿌리라고 하는 그 영화에다가 영화로 만들었거든요. 그 배경이 종으로 돈주고 사왔으니까, 인간을 종으로 생각하니까 그건 이교도야. 그건 잘못된 사고라고요. 하도 흑인이 도망가니까 도끼로 발을 착 자르는거야. 도망못가게 발을 잘라버려. 한 쪽 발을 잘라버려. 그렇게하고는 들어와서 거실에 와서『성경』을 싹 보고 있는거야. 편안한 마음으로, 그 잘못된 소견 잘못된 소견은 사람을 그렇게 보는 거야. 그 아무 양심의 가책이 없는 거야. 저건 종이고 발못 잘라도 괜찮고 돈주고 샀으니까 물건이다. 사람을 그렇게 보는 안목은 이게 파순이야. 그 이교도라고
불교는 말하자면 다른 종교와 차이점이 뭐 세상에 얼마나 잘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그건 그만두고라도 사람을 보는 안목이 그게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불교는 사람을 보는 안목이 첫째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는 거죠.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는, 종으로 보거나 그런 게 없습니다. 그런 차이가 있어요. 그거 알아야 돼. 우리가 불교에 얼마나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 이건 놔두고라도 아~ 불교의 안목은 그런 것이고 波旬 여기서말하는 다른 종교, 그러니까 올바르지 못한 성인의 가르침은 인간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 그렇게 봐야돼요.
고려청자의 안목이 없는 사람은 개밥그릇으로 보지만은, 고려청자의 안목이 있는 사람은 몇 억짜리 고려청자로 보고 농안에다 모실줄 아는 거야. 똑같은 그릇 하나를 두고 안목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달라집니다. 사람취급을, 그렇게 달라져. 도망가는 흑인을 발목을 탁 잘라놓고 거실에와서 편안한 마음으로『성경』을 읽고 있는거야. 그 장면이 나왔거든요. 사람을 보는 안목이 그렇게 차이가 있습니다. 결코 이『법화경』이나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은 그런게 아닙니다.
그리고 불교안에도요. 죄업많은 중생이라는 그런 표현들이 있는데, 엊그저께 어떤 사람이 와가지고 뭐 내가 죄가 많아서 그런가보다하고 자꾸 죄타령을 하더라구요. 그게 불교가 잘못 가르쳐서 그런거야. 그것도 방편으로 하는 말이라고 죄업많은 중생이라고 이렇게 사람을 몰아붙이는 것은, 그건 잘못 가르친 것입니다. 방편불교입니다. 절대 그런게 아니에요. 죄업많은 중생이 아니라. 죄업많은 중생이라고 몰아붙이면은, 저 다른 종교하고 똑같어.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스스로 그런 생각하는게 아니에요.
전부 살아가는 모습이 다른 것은 각자 자기 인연이야. 각자 자기 인연따라서 이렇게 살고 저렇게 살고 사는 모습이지. 결코 죄업이 많아서 그런거 아니에요. 인연이 달라서 그런거지. 인연이 달라서. 전부 인연소치야. 인연소치지 결코 죄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불교에요. 모르고 가르쳤거나 아니면 방편으로 그 사람에게 해당되는 어떤 그 문제가 있어서 방편으로 잠깐 말했거나 그런 것입니다. 꼭 확실하게 알아야 되요.
그 여기보면 이제 世尊說實道요. 세존께서는 실다운 도, 진실한 도를 정말 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가르치고 波旬無此事라. 파순은 종이라고 가르친다. 세존은 모든 사람은 부처님이라고 가르치고 파순은, 그렇지 아니한 종교는 전부 죄업많은 중생이라고 가르친다. 요렇게 이제 자꾸 그걸 배대시켜서 확실하게 머리에 또는 가슴에 이걸 이제 박아놔야돼요. 그래서 우리들 각자가 자기의 삶이 어떻든, 자기의 삶이 어떻든간에 그 인간의 삶 그 자체에 대해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돼. 자기 소신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야 되고 그래서 그것을 다른 사람도 인정해줘야 되. 다른 사람도 그렇게 이해하고 배려해줘야 되.
그 참 사람의 견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엄청나기 때문에 세상에 어지간히 공부했다는 사람, 성인이라고 뭐 추앙을 받는 사람도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제대로 꿰뚫어보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의 가치에 대해서 그러니까 정말 세상은 주의, 주장도 많고 이론도 많기 때문에 내가 바른 안목을 가져서 그걸 판단해야 된다하는 그런 뜻입니다. 참 위험천만이죠. 세상에 워낙 많은 주장이 있으니까 뭐 우리는 무조건 따라가는 그런 그 속성이 있어요. 그 어쩔수 없이 따라가지만은 자기판단, 자기의 올바른 판단이 무엇보다도 요구됩니다. 그게 중요해요.
18 此是我定知 非是魔作佛 我墮疑網故 謂是魔所爲
차시아정지 비시마작불 아타의망고 위시마소위
此是我定知 非是魔作佛이어늘
그래서 비로소 나는, 사리불이 하는 말입니다. 사리불이 이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거니까 결정코 魔가 부처를 지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마구니가 부처를 지은 것이 그러니까 가장으로 부처로 가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결정코 알았다. 그 말이요. 왜냐? 말하자면 저 앞에서 이런 이야기 있었죠. 皆已成佛道 부처님 앞에 와서 손만 한 번 번쩍 들어도 그것만으로 다 이미 부처를 이루어 마쳤다. 皆已成佛道「방편품」에 내가 계속 하여튼『법화경』처음부터 끝까지「방편품」의 그 어떤 종지를 이야기를 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하는 말이 皆已成佛道 다 이미 부처를 이루어 마쳤다.
아니 손 한 번 드는데 다 이미 부처를 이루어 마쳤다라고 하는 뜻이 뭐냐 이거요. 그런 소리는 마구니나 한다. 그래가지고 어디서 내가 법문하는 것을 TV로 듣고는 저기 어디있는 보살님이 계속 이제 전화를 하는 거라. 전화를 해가지고 내가, 나중에 내가 전화 받다 받다 힘이 딸려가지고“내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할 수 없이 그랬어요. 그러고는 전화 끊었어요. 그래가지고 전화에다 입력을 해놨어.‘말보살’이렇게 적어놨어.
뭐 이름도 안 밝히고 어디 절에 다닌다는 것도 안 밝히고, 하여튼 뭐 불교를 알기는 많이 알어. 근데 내가 그 이야기하는 거, 나는『법화경』사상이거든 주로.『법화경』사상,『임제록』사상, 조사어록 중심으로 그렇게 이제 하는데,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라. 당신이 수십년동안 불교공부를 했는데 자기 생각하고 다른 거라. 그 다르니까 자꾸 이제 따지는 거라. 그래 다음부터 조심하겠다고 그냥 끊기는 끊었지만은, 어떻게 할 길이 없어요. 아무리 설명해줘도, 그러니까 소견이 잘 들어야지 잘못 들으면 고것에 집착하거든요. 탁 집착해가지고 요거는 내 생각, 내 사상 이렇게 해가지고는 뭐 도대체 바늘 틈도 안 들어가. 그러면 뭐 잘못했다고 빌 수 밖에 없지. 딴 방법이 없어.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들 皆已成佛道 손 한 번 들어도 다 이미 부처를 이루어 마쳤다. 어린 아이들이 오줌을 싸가지고 모래를 뭉쳐가지고“이거 부처님 탑이야.”이렇게 하는 것도 다 이미 부처를 이루어 마쳤다. 이게 무슨 뜻이냐? 그게 모슨 공(功)이고 무슨 수행입니까? 그까짓게, 그건 본래로‘사람은 고귀한 부처님이다.’하는 그 뜻을 그렇게 표현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말 하니까‘魔作佛이라’마가 부처가 돼가지고, 저 저 어쩌다가 저기 나이든 비구모습을 해가지고, 마구니가 나이든 비구모습을 해가지고 저렇게 당치도 않는 말을 한다.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데, 자기는 이미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定知 결정코 알게 되었습니다.
봐요. 얼마나 그 그것이 마음속에 그 이해하기 어려운가. 하느님이나 부처님은 저 높이 놔두고 우리는 조그마하게 해가지고 막 죄많은 중생, 뭐 내가 압니까 하고 이렇게 해버리면 편할지는 몰라. 마음이, 편할지. 그건 결코 편한것도 아닌데 그게 사실은. 대다수 사람들은 이제 그런 식으로 그런 식으로 이제 생각을 하는 거죠. 어린아이때나 우리가 어머니 보호를 받지. 일곱, 여덟살만 되면 어머니가 뭐라고 챙겨주면 귀찮아. 어디 따라오는 것도 귀찮다고, 그래 돼야 우리의 영혼도, 정신세계도 그런 식으로 발전이 돼야 정상적인 거죠.
그러니까 마구니, 그런 말을 해도 마구니가 부처가 되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결정코 알았거늘
我墮疑網故로 謂是魔所爲니다
내가, 사리불입니다. 사리불 자신이 하는 소리입니다. 내가 의혹의 그물에 옛날에 떨어졌었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마구니가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여겼었더라 이 말이여. 과거에,
19 聞佛柔軟音 深遠甚微妙 演暢淸淨法 我心大歡喜 疑悔永已盡
문불유연음 심원심미묘 연창청정법 아심대환희 의회영이진
安住實智中 我定當作佛 爲天人所敬 轉無上法輪 敎化諸菩薩
안주실지중 아정당작불 위천인소경 전무상법륜 교화제보살
聞佛柔軟音이 深遠甚微妙하사
柔軟 부처님의 유연한 소리. 아주 진실하고 아주 부드럽고 그리고 깊이있고 큰~ 종이 울리는듯 한 그런 그 음성. 그것이 깊고 멀고 그리고 지극히 미묘하사. 부처님 음성을 이렇게 이제 표현합니다.
원래 이제 진실이 담겨있고 진리의 말씀이고 아주 간절하고 그러니까 柔軟音 深遠甚微妙 지극히 깊고 멀다 이 말이야. 그리고 지극히 미묘하사
演暢淸淨法하사옵고
청정한 법을 演暢 말씀하신다 이거야. 아주 훌륭한 법을 설하신 것을 듣고 듣사옵고
我心大歡喜하며
내 마음은 크게 환희했다. 내 마음은 크게 기뻤다. 그리고는 무슨 말이 그렇게 기뻤겠어요?‘사람은 본래로 부처님이다. 당신은 부처님’손 한 번 드는 것만으로도 皆已成佛道라. 다 이미 부처를 이루어 마쳤다라고 하는 이 사실에 마음이 환희돼버린거지. 아 종이 아니구나. 인간은 종이 아니구나. 죄업많은 중생이 아니구나. 그대로 당당한 모습, 당당한 부처구나. 어디 부처가 춥고 더운 거 알더냐? 내가 춥고 더운 거 알지않냐? 어디 부처가 욕한다고 찡그리고 화낼 줄 알더냐? 내야말로 찡그릴 줄 알고 내야말로 화낼 줄 알지 않느냐? 어느 부처가 찡그릴 줄 알고 화낼 줄 아느냐 이거야.
불쌍한 사람보면 참~ 불쌍해하고, 저 법당에 모셔논 부처님 그럴 줄 몰라. 정말 생생하게 살아있는 부처님은 나구나 라고 하는 이 사실. 이 사실에 대한 이해가 있으니까 我心大歡喜여. 크게 환희하여
疑悔永已盡하야
의혹과 뉘우침이 영원히 다 해가지고서
그래서『법화경』저 앞에서 5000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한 마디를 늘 상기해야돼요.‘사람이 부처님이다. 개이성불도다. 손 한 번 드는 것만으로도 이미 부처를 이루어 마쳤다.’라고하는 이 사실이 마음에 와 닿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이 설법하는 자리에서 5000명이 일어나 나간거요. 그게 이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렇게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걸 이제 우리는 어떻게하더라도‘아 이건 진실한 법인데 내가 아직 마음이 좁아가지고 저 대쪽처럼 아주 마음이 좁아가지고 그런 큰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불안해 하는구나.’그런 말 하면 불안해 하거든요. 그래 생각해야되요.
그래서 사리불도 의심과 뉘우침이 다 이미 벗어나서
安住實智中호이다
안주했다. 實智 실다운 지혜, 실다운 지혜, 진실한 지혜가운데 안주했다. 편안히 머물게 되었다.
그게 이제 실다운 지혜입니다. 이『법화경』의 정신이야 말로 실다운 지혜에요. 저 뒤에 나가면 이제“너도 부처다. 너도 부처다.”하다가 나중에는 500명을 한꺼번에 똑같은 불명주면서 한꺼번에“부처다.”라고 하고 나중에는 2000명까지“부처다.”라고 하고 나중에는 그 다음에 또 천악무도한 제바달다“너도 부처다.”하고 용딸 여덟살 먹은 용녀도“너도 부처다.”이렇게하고 그 다음에 또 이제 만나는 사람마다 전부 상불경보살은 전부“너도 부처다. 너도 부처다.”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님으로 하는 식으로『법화경』이 돼 있지 않습니까? 이건 뭐 여러번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해서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그래서『법화경』은‘일문일자(一文一字)가 시진불(是眞佛)이라.’한 문장, 한 글자 이것이 그대로 참 부처다. 이런 표현이 있어요. 일문일자가 시진불이라. 그래서 뭐 이 글자많은『법화경』전체읽기 힘드니까‘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이것만 읽어도 된다. 그래가지고 그것만 읽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그 이치를, 내가 지금 이야기한 그 이치를 알고 읽으면 괜찮은데‘나무묘법연화경’이거 읽으면 무슨 뭐 영험이라도 있는갑다. 이 생각을 또 떠올리는거야. 무슨 죄업이라도 소멸되는가보다. 아프던 병이라도 낫는가보다. 일심(一心)으로 하면 되지. 일심으로 하면, 일념으로 하면은 그런것도 다 돼요.
하지만은 원래『법화경』의 정신은 스스로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깨우쳐라. 그리고 다른 사람도 부처라고 하는 사실로 이해를 하고 받들어 섬겨라. 이 정신입니다. 그래서 아무리『법화경』뜯어봐도 그 이야기요. 安住實智中이라. 실다운 지혜가운데 안주했다. 안주했습니다.
我定當作佛하야 爲天人所敬하며
내가 마땅히 결정코 마땅히 부처가 되어서 인천, 天人의 천상과 사람에게 존경하는 바가 되며. 천상과 사람에게 존경하는 바가 되며
轉無上法輪하야 敎化諸菩薩이니라
無上法輪 최상의 법의 바퀴를 굴려서 모든 보살들을 교화함이니라.
20 爾時 佛告舍利弗 吾今於天人沙門婆羅門等大衆中說 我昔曾於
이시 불고사리불 오금어천인사문바라문등대중중설 아석증어
二萬億佛所 爲無上道故 常敎化汝 汝亦長夜 隨我受學 我以方便
이만억불소 위무상도고 상교화여 여역장야 수아수학 아이방편
引導汝故 生我法中
인도여고 생아법중
爾時에 佛告舍利弗하사대 吾今於天人沙門婆羅門等大衆中說하노라
그때에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告하사대, 天 人 沙門 사문은 이제 스님들, 출가한 이들 바라문등 여러 대중가운데에 설하노라.
我昔曾於二萬億佛所에
내가 옛날 일찍이 이만 억 부처님 처소에서, 여 보십시오. 석가모니부처님도 내가 옛날 이만 억 부처님 처소에서 그랬잖아요. 그 이제 수많은 깨달은 이들 또 수많은 사람들 뭐 이런 뜻으로 우리가 이해해도 좋습니다.
爲無上道故로
無上道를 위한 까닭에, 최상의 도를 위한 까닭에, 최상의 도라는게 말하자면은 깨달음의 지혜. 부처님이 터득하신 최고의 지혜 또 우리가 이런 공부를 해서 마지막에 도달해야 할 그 최상의 지혜를 無上道 또는 佛慧 부처의 지혜 이렇게 표현합니다.
常敎化汝어늘 汝亦長夜에는 隨我受學일새 我以方便으로 引導汝故로
항상 그대를 교화했거늘, 항상 그대를 교화했거늘 長夜 긴 밤가운데서 나를 따라서 受學했을새 내가 할 수없이 방편으로써 그대를 인도한 까닭에
生我法中이니라
나의 법가운데, 불법가운데 태어났다. 이게 어찌보면 사리불보고 하는 말 같지만은 우리보고 하는 소리같에요.
수많은 세월동안 본래 부처님은 그야말로 부처님이 터득하신 무상도를 위해서 우리를 교화했지만은 우리는 이 삶이라고 하는 인생이라고 하는 긴 밤 長夜‘인생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그런 말이 있죠. 이게 참 부처님의 지혜의 등불이 꼭 필요합니다. 밤이라고 그랬잖아요. 長夜 그것도 아주 긴긴 밤 그대들은 또한 긴긴 밤에, 그 밤을 헤매면서 나를 따라서 수학해서 아직 이제 눈을 뜨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할 수없이 어두움에 허덕이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 맞는 어떤 그 맞춤법문으로써‘我以方便으로’나는 방편으로써 그대를 인도했다. 그래서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나의 법중에 태어나게 되었다.
21 舍利弗 我昔敎汝志願佛道 汝今悉忘 而便自謂已得滅度
사리불 아석교여지원불도 여금실망 이변자위이득멸도
我今還欲令汝 億念本願所行道故 爲諸聲聞 說是大乘經 名妙法蓮華
아금환욕령여 억념본원소행도고 위제성문 설시대승경 명묘법연화
敎菩薩法 佛所護念
교보살법 불소호념
舍利弗아 我昔敎汝志願佛道어늘
사리불아 내가 옛날에 너로 하여금 불도에 뜻과 원을 가지도록 했거늘, 佛道 이게 깨달음이죠. 했거늘
汝今悉忘하고
그대는 지금 다 잊어버리고, 자꾸 잊어버리니까 또 할게 있고 그렇죠. 그것도 좋은 거에요. 사실은, 뭐 우리만 그러는게 아니라 보십시오. 사리불같은 천하의 그 천재, 인도사회에서 제일 천재거든요. 이 분이, 사리불도 내가 항상 그대에게 그대를 가르쳐서 불도에 뜻과 원을 가지도록 했는데 그대는 지금 망실했다 이거여. 다 잊어버리고
而便自謂已得滅度라할새
스스로는‘아 나는 이미 공부 다 했어. 또 제도를 다 받았어. 깨달음을 다 얻었어.’라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 말이여. 스스로 곧 스스로 이미 멸도를 얻었다라고 여겼을새. 滅度라고 하는 거 여기는 깨달음입니다. 불도를 다 얻었다. 부처님이 알고있는대로 다 얻었다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죠. 그동안은,『법화경』만나기 전까지는 그게 아니에요.
我今還欲令汝로 億念本願所行道故로
내가 지금에 또한 그대로 하여금 본래 원하는, 본래 원하는 원해서 행할바의 그 도를 기억하게 한 까닭에, 기억하고자 하는 까닭에
그 무슨말인고 하면은, 이 本願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아서 부처의 삶으로 살도록 그래서 우리는 成佛 成佛이라는 말을 쉽게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부처님 제자가 됐으니까 부처님같이 되는게 본래의 소원이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기억해라. 네가 날 닮으려고 왔지 않느냐. 그런데 그걸 잊어버리고는 그동안 조그만한 그런 그 열반, 조그만한 그런 그 이해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본래의 소원을 기억하도록 하기위해서
爲諸聲聞하사 說是大乘經하니 名妙法蓮華라
여러 성문들을 위해서 이 대승경을 설한다. 그 대승경을 설하는데 이름이 묘법연화라 했죠. 이름이 妙法蓮華라.
敎菩薩法이며 佛所護念이라
그리고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야. 최고 수준, 불교안에서 최고 수준을 보살이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최고 수준의 이런 사람들을 가르치는 법이야. 이건, 그리고 부처님이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아주 아끼고 애착하는 그런 가르침이다. 이런 말입니다.『법화경』이, 늘『법화경』이야기할 때는 그래요. 敎菩薩法 佛所護念 요 여덟자가 꼭 따라다녀요.
그러니까 그동안 성문들에게 70년동안 가르친 것은 사실은 진실한 법이 아니었고 이제 비로소 너희들을 위해서 너희들이 본래 나를 봤을때 나처럼 되고자 했었으니까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이제사 비로소 진짜 좋은 경전을 설하는데 그것이 대승경이고 이름은『묘법연화경』이다. 그것은 보살들을 가르치는 법이다. 최고의 수준에 이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법이다. 그리고 부처님이 마음속에 아주 아끼고 애착하는, 정말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그런 법이다. 꼭 요건 외워야 되요.‘敎菩薩法이며 佛所護念’敎菩薩法 佛所護念
“『법화경』은 어떤 경이냐?”누가 가족들이 묻거든“敎菩薩法이며 佛所護念이다.”그래요. 문자 한 번 쓰는거야.“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이렇게 하거든 그때사 장광설을 설해 놓는 거지. 길게 설명 하는 것. 그때, 그러면 법회가 이루어지는 거죠.
내가 오늘 이것 때문에 서두에『법화경』은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같아서 지난 밤의 그 어두운 캄캄한 그 어두움도 태양이 떠서 다 몰아가듯이 우리 삶에 있어서 어둡고 어리석고 잘 몰랐던 거, 사람을 잘못 이해했던 거 또 세상의 모든 이치를 잘못 이해했던 것을 전부 어둠에다 비유하는 거죠. 어둠에다, 그 태양이 떠서 어둠이 물러가듯이『법화경』가르침을 우리가 제대로 공부하면은, 우리 마음속에 그런 어리석음과 어둠이 다 깨끗이 사라지고 환하게 밝아진다 이런 뜻이에요.
그리고 저 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많고 많은 별들. 얼마나 많습니까? 밤하늘에, 그 가운데 달이 탁 뜨면 얼마나 큽니까? 아~ 아주 밝죠. 비교해보십시오. 그 수많은 별들하고 달 크기하고 이『법화경』하고 딴 경하고 차이가 그렇다고 했어요. 다른 경하고『법화경』하고 차이가 그렇대요. 그 저기『법화경』이 뭔지 잘 모르겠거든, 달만 생각해도 되. 달하고 무수히 떠있는 작은 별들, 작은 별들하고 비교해서“『법화경』이 어떤 경이냐?”그러면은“무수히 떠있는 별들중에서 드릇이 빛나는 달과 같은, 보름달과 같은 경이다.”이렇게 말해요. 그렇게 비교가 된다. 사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지금『법화경』을 인제 참 여러 번 그 강의를 했어요. 법회를 많이 했는데 덕택에 내가 참『법화경』공부 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와서 이렇게 한 시간 강의를 위해서 나는 열 시간 꼭 준비하는 사람이니까 그래 이제 그 강의를 위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까 그렇게 했는데, 무려 열 번 이상 했어요. 그리고 또 예약이 돼있는게 저기 울산에서 비구니스님이 하는 관자재병원에 거기 이제 법화경강의 한 달에 한 번씩 가서 하기로 예약이 돼 있고, 불교TV에서 매주 수요일 4월달부터 하기로 돼있어요. 매주 수요일. 짝짝짝짝짝
그러면 불교TV에도 나올거야. 그때를 위해서 요즘 교재도 열심히 만들고 있어요. 날짜가 좀 촉박해가지고 교재 만드니라고 애를 먹고 있는데, 그 이제 내가 이만치라도 좀 건강이 회복이 됐으니까 열심히 운동해가지고 4월달부터는 매주 올라가서 이제 서울 중생들 좀 깨우칠려고.『법화경』이 이제 알아주드라고, 이제사 알아주는거라. 나는 한 20년전부터 이『법화경』에 그 정진을 했는데 근래사 이제 알아줘. 참 그 좋은 현상이라.
근데 바로 들어내놓고 알고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 다른 스님들 설법하는 걸 다 들어보거든요. 테이프 구해서도 듣고 불교TV를 통해서도 듣고 들어보면, 좀 깊이 좀 책임감 있게 공부를 해가지고 좀 이렇게 좀 제대로 좀 해줬으면, 얼마나 좋은 기회에요. 그게 책임감 어떤 그 사명감 이런 걸 가졌으면 좋겠더라구요. 그게 이제 나는 저 나름대로 이제 그 어떤 그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평생 공부했으니까 책임이 얼마나 무겁습니까? 공부한 책임이 있는거야. 이게, 난 그냥 공부만 하면 마음이 가벼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야. 또 하면 한 만치 책임감이 느껴져. 그래서 이제 가서 할라고 허락을 했어요.
여기 보십시오. 그『법화경』을 그렇게『법화경』안에서 표현을 했고 여기서도 그동안 사리불같은 이 아라한들이, 말하자면 불교를 공부하노라고 했지만은 본래의 소원을 다 잊어버렸어. 부처의 삶을 사는 것을 잊어버렸다. 이런 말이거든요. 그래서 네가 내한테 귀의했을때는 부처의 삶을 살기위해서 날 좋아서 왔잖냐? 그게 본래의 소원아니냐? 本願所行道 본래 원하던 바 그 행하고자 하는 그 도, 그걸 이제 다시 기억하게 하기 위한 까닭에 성문들을 위해서 대승경을 이제 설하는데 그것이『묘법연화경』이다. 그리고 그것은 보살들을 가르치는 법이고 부처님이 아주 마음에 아끼고 애착하는 그런 법이다. 그랬습니다.
22 舍利弗 汝於未來世 過無量無邊不可思議劫 供養若干千萬億佛
사리불 여어미래세 과무량무변불가사의겁 공양약간천만억불
奉持正法 具足菩薩所行之道 當得作佛 號曰華光如來 應供 正徧知
봉지정법 구족보살소행지도 당득작불 호왈화광여래 응공 정변지
明行足 善逝 世間解 無上士 調御丈夫 天人師 佛世尊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
舍利弗아 汝於未來世에 過無量無邊不可思議劫하야
사리불아 그대는 미래세에 무량무변불가사의겁을 지나서, 한량없는 세월을 앞으로 지나가지고
供養若干千萬億佛하고 奉持正法하며 具足菩薩所行之道하야
공양하게 된다. 어떤 사람을? 어느정도 若干 천만 억 부처님을 공양하고 바른 법을 받들어 가지며 보살의 행할 바 도를 구족해서
當得作佛하리니
마땅히 부처를 지을 것이리니
號曰
이름을
華光如來應供正徧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
華光如來應供正徧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이라고 할 것이다. 그랬습니다.
이제『법화경』이 일명『수기경』인데,『수기경』. 왜 일명『수기경』이냐? 수기하는 내용이 많아. 수기라고 하는 것은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보증하는 이야기야.‘너도 부처다.’라는 것을 보증하는 건데, 여기 이제 그 첫 1호에요. 뒤에는 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수기하게 되는데, 1호가 사리불이라. 그 여기 사리불이 수기받는 내용이잖아요. 여기는 구색을 아주 잘 갖춥니다. 미래에 無量 不可思議한 세월을 지나서 그리고 若干 千萬億 부처님께 供養하고 正法을 奉持하고 또 菩薩이 行할 바 道를 具足하고 그래서 그때가서 마땅히 부처를 지으리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해놨어요.
그 이제 생전처음으로 부처님이 제자에게“네가 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하는데 아주 파격적으로 할 수가 없는 거라. 진실하게 할 수가 없는 거라. 요건 이제 구색을 갖추느라고 이렇게 했는데 그래서 차츰차츰 요게 이제 쉬워져. 저기 그 다음에 4대성문 나오고 그 다음에 뭐 별별 사람들 나오고 뭐 야수다라도 나오고 또 제바달다도 뒤에 나오지만 그 다음에 부처님 이모 마하파사파제비구니도 나오고 뭐 등등 나와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500명을 한꺼번에 수기를 해버리고 2000명을 한꺼번에 수기해버리고 천악무도한 악인도 수기해버리고 용녀도 수기해버리고 그리고 상불경보살은 만나는 사람마다 전부 부처님이라고 전부 수기해버리고, 그렇게 했지만은 사실은 앞에서 다 한거야.
「방편품」에서 皆已成佛道라. 부처님 앞에서 손 한 번 드는 것만으로도 다 이미 부처를 이루어 마쳤다라고 했기 때문에, 이런 형식적인 수기는 정말 형식이라구요. 그냥 구색갖추기 위한 소리라. 그러나 이제 이런 형식을 우리가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법화경』의 수기가 무수히 많아. 한 3분의 1은 수기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보면 알지만은, 여러분들은 이미 수기 받아 마쳤어요. 사실은, 부처라고 하는 그런 그 말하자면 보증입니다.
23 國名離垢 其土平正 淸淨嚴飾 安穩豊樂 天人熾盛 琉璃爲地
국명이구 기토평정 청정엄식 안온풍락 천인치성 유리위지
有八交道 黃金爲繩 以界其側 其傍 各有七寶行樹 常有華果
유팔교도 황금위승 이계기측 기방 각유칠보행수 상유화과
華光如來 亦以三乘 敎化衆生
화광여래 역이삼승 교화중생
國名離垢요 其土平正하야 淸淨嚴飾하며
나라 이름은 離垢고 그 땅은 평정하고 아주 훌륭하게 잘 장엄이 돼있고
安穩豊樂하고 天人熾盛하며 琉璃爲地라
편안하고 풍부하고 뭐든지 그리고 즐거워. 아주 훌륭한 사람, 선한 사람, 잘난 사람, 착한 사람이 많이 살고 유리로써 땅이 되고, 땅은 흙으로 돼야 할텐데 왜 유리로 됐을까요? 이건 다 상징적인 소리야. 부처의 세상, 부처의 안목 그랬을때 모든 사람은 전부 부처님으로 보이는데, 무슨 뭐 땅이 번쩍거리는 칠보가운데 하나인 유리로 보인다. 이거야 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죠. 어떤 것도 다 아름답게 보이는 거죠.
有八交道어든
여덟 갈래의 길이 있다. 여 우리 부산도 여덟 갈래의 길이 있는 교차로는 별로 없어요. 뭐 사거리 아니면 육거리 정도 있지. 뭐 팔거리 정도 있는데는, 여기 상당히 이 때만 해도 인도가 도시에는 아주 번화한 도시가 있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걸 보고 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黃金爲繩하야 以界其側하며
황금줄로써 끈을 만들어가지고 노끈을 만들어가지고 말하자면 그 경계 우리가 도로하고 인도하고, 차도하고 인도하고 나눌때 뭐 이렇게 세워놓은 것도 있죠. 여기는 황금으로써 끈을 만들어가지고 그런 줄을 쳐놨다 이거여. 그래서 이제 사람이 다니는 길, 차가 다니는 길 이런 걸 나눠놨다.
其傍에 各有七寶行樹하야
그 가에는 모두 칠보로 된 금, 은, 유리, 자거, 마노, 호박, 진주 이런 일곱가지 보배로 된 가로수가 있어. 가로수는 이제, 行樹는 가로수입니다. 가로수가 있으며
常有華果하며 華光如來가 亦以三乘으로 敎化衆生하리라
항상 꽃과 과일이 있어 화광여래가 항상 삼승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리라. 왜 또 잘 나가다 三乘法이야? 삼승법은 방편입니다. 진실한 법이 아니거든요.
그 이제 사리불이 그동안 무수한 세월동안을 삼승법으로써 살아왔으니까 아마 거기다 맞춘다고 이렇게 이제 했을거요. 그 다음에 이제 보면 알지.
24 舍利弗 彼佛出時 雖非惡世 以本願故 說三乘法 其劫名大寶莊嚴
사리불 피불출시 수비악세 이본원고 설삼승법 기겁명대보장엄
何故 名曰大寶莊嚴 其國中 以菩薩 爲大寶故
하고 명왈대보장엄 기국중 이보살 위대보고
舍利弗아 彼佛出時에
사리불아 저 부처님이 출세했을때에, 사리불이 부처가 됐을 그 부처요. 그 부처님이 출세했을때에
雖非惡世나 以本願故로 說三乘法하리라
비록 악세는 아니지만은 본원을 쓰는 고로, 본래의 소원 때문에 삼승법을 설하노리라.
이게 이제 뭔 소리인고 하니? 그동안 석가모니 나도 나 석가모니도 그동안 계속 삼승법을 설했다. 왜냐? 중생을 안 놓칠려고 사람 하나하나를 안 놓치기위해서 그래서 맞춤법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꾸자꾸 근기를 성숙시키고 이끌어 와가지고 지금 내가 나이 70이 넘었고 또 40여년을 교화를 했기 때문에 알아들을만 하니까 그래서 내가‘사람은 본래 부처다.’라고 하는 뜻으로, 손만 한 번 번쩍 들어도 皆已成佛道라. 모래를 뭉쳐가지고 불탑이라고 장난을 쳐도 아이들이 그렇게 노래를 해도 그것도 皆已成佛道라.
그것은 부처되는데 조건이 아니다. 그래 본래 부처라고 하는 데는 조건이 없다. 조건으로 된 부처는 이거는 유위불(有爲佛)이야. 조작이 있는 부처라. 가짜 부처다. 그런 이야기를 조사 스님들한테 오면은, 선불교에 오면은 그냥 뭐 식은줄 먹듯이 그렇게 아주 훤히 압니다.‘조작된 부처는 이 세상에 없다. 점차적으로 된 부처도 이 세상에 없다.’‘무점차불(無漸次佛) 무조작불(無造作佛)’이런 표현을 거침없이 하거든요. 조사 스님들은, 사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보라는 거요.
무슨 삼아승지겁 닦아서 언제, 하루도 지루하고 긴데 삼아승지겁을 닦아서 어쩌자는 말이요. 죽어서 태어날지 안 태어날지 알 수도 없는데, 축생이 될지 사람이 될지 알 수도 없는데 바로 이 순간 여기에서 우리가 최상승법을 듣고, 말하자면 불법의 그 밑바닥까지 해치워야죠. 오늘 이렇게 인연됐는데 다음 시간에 인연될지 안될지 그 아무도 보장못하는 거요. 그럼 인연된 이 순간이 가~장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라. 그렇다면 가장 값지고 소중한 법을 펴야 되는 거야. 나눠줘야 되는 거야. 아낌없이 나눠 줘버려야 돼. 다음에 오면 줄게 하고 아껴놨는데 그 사람 마음 번해버려. 안와. 그런 일을 얼마나 많이 봅니까? 우리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마음에 있으면은 언제든지 고백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은 해버려. 주고 싶은게 있으면 언제든지 줘버려. 빨리 줘버려. 그래야 후회를 안해. 안주고 후회하는게 그게 안 좋은거야. 주고나서 후회하는 것은 괜찮아. 주고나서 후회하는 것은 좀 며칠 지나면 가벼워지는데 안 주고나서 후회하면 그건 오래 간다고요. 못쓰는 거라. 그거는,
그러니까 그 사리불도 삼승법으로써 설했다. 사람 하나하나 안 놓치기 위해서 맞춤법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其劫名大寶莊嚴이라
그 겁의 이름은 이거는 대보장엄이라고 얘기 하는데 우리 연호가 있잖아요? 연호(年號) 뭐 옛날에 강희가 있고 건륭이 있고 뭐 그런 연호가 있습니다. 그와같이 이제 그겁에 있을때니까 겁의 이름, 세월에 대한 이름 지금 대한민국 몇 년 이렇게 할 수가 있어요. 우리가 안 써서 그렇지. 대보장엄이라고 하는 그 겁의 이름이 있고
何故로 名曰大寶莊嚴고
何故로 이름이 대보장엄이냐? 좋죠. 큰 보배로 장엄됐다. 이런 뜻이니까
其國中에는 以菩薩로 爲大寶故니라
보십시오. 그 나라가운데 보살로써 큰 보배를 삼기 때문에 그래서 그 세월의 이름을, 그때 연호를 대보장엄이라고 한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뭐 무슨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한 100개, 200개 따와서 그래서 보물이 아니라 훌륭한 사람, 아주 인격이 뛰어난 사람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써 그 나라는 보배로 삼아. 보살로써 보배를 삼기 때문에, 큰 보배로 삼기 때문에 그래서 大寶莊嚴이라고 한다. 참 이런 세상이 돼야 되는데, 그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을 위대하게 생각하는 그런 그 세상. 그게 이제 참 가장 이상적인 세상이죠.
내가 뭐 듣기 싫을 정도로 말씀드리지만은, 서울시를 전부 황금으로 재개발해서 한 500층짜리 빌딩을 전부 세워서 한 사람이 그걸 한 동씩 가지고 있게 설사 한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생명의 가치하고 바꿀 수가 없는 거요. 서울시를 전부 황금으로 재개발해서 뭐 아파트 한 채주는 게 아니고 한 동을 다 줘버려. 그냥, 500층짜리 아파트를 한 동을 다 줘버린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생명하고 바꿀 수가 없는거죠.
아니 다이야몬드로 이 세상을 다 바꿨다한들 그 사람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아닌거요. 그냥 사람에 대한 가치 이건 정~말 우리가 깊이 이해하고 늘 우리가 이것을 중심으로 모든 가정이나 사회나 정치나 온갖 행정이나 전부 사람의 그 가치에다가 초점을 맞춰서 이걸 펼쳐나가야 됩니다. 그 사람가치를 돈 가치보다 못하게 하니까 그냥 돈을 위해서는 그렇게 사정없이 사람의 목숨을 그렇게, 아 천재지변으로 우리가 어쩔수 없이 당하는거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은 어리석어가지고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그 소중한 사람을 해친다고 하는 것은 이건 참 어리석어도 보통 어리석은 것이 아니고 또 한 가지는 사람을 종으로 취급하는 서양사상의 영향이라.
그러니까 흑인을, 도망간다고 종을 도끼로 발을 잘라놓고도 편안하게『성경』보고 앉아있는거. 이 사상이요. 이게 들어와가지고는 물질우위의 어떤 그 좋지 아니한 그 사상이 퍼져가지고 그게 만연돼서 우리 피에도 전부 그게 젖어있어요. 그런 정신이, 그것 참 큰 문제죠. 그러니까 그냥 뭐 석유뺏기 위해서 무슨 뭐 국가이익을 위해서 사정없이 남의 나라 침범해가지고 그냥 내가 좀 지켜줄게 하고는 그냥 눌러 앉아있는 거야. 그냥, 몇십 년을 눌러 앉아가지고는 그냥 좋은 거 다 빼가고
그 참 보살로써 큰 보배를 삼는 이런 그 세상이 정말 아쉽죠.
25 彼諸菩薩 無量無邊不可思議 算數譬喩 所不能及 非佛智力
피제보살 무량무변불가사의 산수비유 소불능급 비불지력
無能知者
무능지자
彼諸菩薩이 無量無邊不可思議라
저 모든 보살이 그렇게 숫자가 많다 이거죠.
算數譬喩로 所不能及이요
산수나 비유로써 도저히 다 헤아려 낼 수가 없다.
非佛智力이면 無能知者라
그 보살같은 사람이 예를 들어서 제대로 된 보살이 한 만 명만 있어도 대단할텐데, 여기는 算數譬喩로써 다 헤아릴 수 없어. 無量無邊이야. 부처님의 지혜의 힘이 아니면 능히 알 수가 없는 정도로 많더라.
26 若欲行時 寶華承足 此諸菩薩 非初發意 皆久植德本 於無量百千
약욕행시 보화승족 차제보살 비초발의 개구식덕본 어무량백천
萬億佛所 淨修梵行 恒爲諸佛之所稱歎 常修佛慧 具大神通
만억불소 정수범행 항위제불지소칭탄 상수불혜 구대신통
善知一切諸法之門 質直無僞 志念堅固 如是菩薩 充滿其國
선지일체제법지문 질직무의 지념견고 여시보살 충만기국
若欲行時어든 寶華承足하며
만약에 걸어다니고저 할때는 보배로 된 꽃이 발을 척척 받쳐줘.
此諸菩薩은 非初發意라 皆久植德本하야
此諸菩薩은 초발심 보살이 아니다 이거여. 말하자면 오랫동안 덕의 근본을 심은 사람들이다. 오랫동안 덕의 근본을 심은 사람들이다.
於無量百千萬億佛所에 淨修梵行하야
그래서 無量百千萬億 부처님 처소에서, 梵行 청정한 행위죠. 좋은 행 뭐 경을 읽고 경을 쓰고 경을 외우고 경을 이야기하고 하는 그런 행을 범행이라고 합시다. 그런 행을 청정하게 닦아가지고서
恒爲諸佛之所稱歎하며
항상 모든 부처님이 칭탄하는 바가 된다.
왜 불교에 온갖 좋은 선행이 많은데, 뭐 경을 읽고 경을 쓰고 하는게 범행이라고 내가 말하느냐? 모든 부처님이 칭찬하는 바는 부처님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은 칭찬이야. 부처님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칭찬한다고요. 부처님은 당신의 깨달으신 모든 존재의 실상에 대한 이치를 널리 펴는게 당신의 꿈이야. 그러면 그것을 우리가 배우고 학습하고 또 여러 사람들에게 전하고 또 인생의 가치를 이해를 하고 그 가치에 맞게 우리가 살아가는 것. 그것이 부처님이 좋아하는 바라. 그래서 諸佛之所稱歎이야.
그 부처님 경전이 아니면 어디서 그것을 알 길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경이라고 말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淨修梵行 이것은 경을 쓰고 읽고 이야기하고 하는 그런 그 일이다. 그리고
常修佛慧하야
항상 부처의 지혜를 닦아. 부처님의 지혜, 부처님이 깨달은 그 지혜 우리 모두에게 다 그 씨앗은 가지고 있어요. 씨앗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런 경전, 대승경전을 통해서 자꾸 이렇게 연마하다보면은 우리도 부처님의 지혜하고 똑같은 것이 안에서 나와버려. 저절로, 부처님이 주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얻어오는 건 절대 아니야. 내 자신속에 있는데 그것이 확 꽃을 피우는 거요. 그게 常修佛慧입니다. 항상 부처님 지혜를 닦아서
具大神通하고 善知一切諸法之門하며 質直無僞하야
큰 신통을 갖추고 일체 모든 이치에 대한 문을 잘 알아. 善知 잘 알아가지고서 거짓이 없다. 質直해서 거짓이 없다. 아주 순박하고 곧고 정직하고 소박하고 그래서 아무 조작이 없고 거짓이 없는 그런 사람이 돼서
志念堅固한 如是菩薩이 充滿其國하리니
뜻과 생각이 아주 견고해가지고서 이와같은 견고한 이와같은 보살들이 그 나라에 가득찬다 이 말이여. 이와같은 보살들이, 참 그런 세상이 있었으면 참 좋겠어요. 그럼 저절로 우리 모두도 다 그런 분위기에서 그런 보살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런 분위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말하자면 여기의『법화경』에서 많은 분들에게 수기를 주는데 그 1호라. 제1호 수기를 사리불이 이제 받으니까 1호 수기를 아주 그릴 수 있는데까지 최고로 그린 거에요. 말하자면 부처의 어떤 그 지혜가, 말하자면 자기의 살림살이 자기 인격이 되면은 여기에 그런 그 환경을 이야기해놨지만은, 그런 환경은 저절로 갖춰집니다. 사실은, 그런 환경에 우리가 들어가가지고 그렇게 동화가 되는 것도 좋지만은 내 자신이 그런 인격이 되면은 내가 누리고 내가 보는 것 이것이 전부 그렇게 보여요. 그 좋지 아니한 것도 좋게 보이는 거, 이게 중요한 거죠. 뭐 다른 환경에 가서 내가 거기에 같이 조화를 이루는 것도 바람직하지요.
그보다는 내가 주체가 되가지고 내가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리고 결코 집안이라든지 또 어떤 단체라든지 어느 절이라든지 어느 사회라든지 세상 정치라든지 이런 것을 자꾸 탓할 게 아닙니다. 나도 간혹 그런 것을 탓하는 습관이 있는데, 전~부 내 책임이고 내가 제대로 돼가지고 내 영향으로 세상을 정화해 나가는 그런 그 책임감,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지. 내 이 뭐 집안꼴 어떻다. 절꼴이 어떻다. 뭐 그 단체는 인연 때문에 안 갈수도 없고 회비 내놓은 것 때문에 아까와서 안 나갈수 없고 근데 보기는 싫고 뭐 어쩌고...
그렇게 할 게 아니에요. 절대 그렇게 할 게 아니고 전부 책임을 나한테 돌리고 내가 어떻게 하더라도 분위기를 이렇게 바꿔 나가야지. 항상 그래야 되. 항상 자기 중심으로 내가 분위기를 바꿔 나가야지. 사실 알고보면은 크게 잘못도 없어. 그동안 내가 잘못 보았어 그저. 내가 잘못 보았을 뿐이야. 그러니까‘내가 분위기를 바꿔야 되겠다.’이 생각만 가지면 전부 좋게 보여요. 다 이해가 되고 다 용서가 되고
내가 그 전에 증엄스님 이야기를 하면서 그랬죠. 참 그 가슴 저미는 아주 그, 그 스님의 소원이고 또 희망이고 또 그 스님의 정신이고 그건 뭐 과거의 어떤 부처님도 어떤 훌륭한 보살도 말하지 못한 삼무(三無) 普天三無라해서‘이 세상에 내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어떤 사람도 어떤 사람도 내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내 돈을 떼먹고 멀리 도망간 사람도 그래도 끝까지 나는 믿는다. 언젠가 내가 과거생에 빚을 졌거나 아니면 또 언젠가 갚을 인연이 되면 갚게 되겠지. 그래서 끝까지 믿어 주는 거. 이 세상에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이 세상에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 다 용서하고 내가 다 사랑하고 내가 다 믿어주고 내가 다 용서해주고, 어떤 악을 져질렀어도 끝까지 내가 용서해준다.
그건 거짓말이라도 참 그 마음이 그렇게 안되면 그렇게 거짓말을 지어낼 수 없어요. 거짓말일 수도 없지만은, 그런 스님이 세상에 산다니까. 실지로 그렇게 관세음보살의 행을 하고 관세음보살보다 더 해요. 훨씬 더 하고 있어요. 그게 참 그 분의 정신도 밑바탕에 이제 이『법화경』이 저변에 그 분의 그런 정신으로 무장이 돼 있습니다. 젊어서『법화경』을 아주 독실히 읽고 그랬어요. 한 달에 이『법화경』한 번을 사경을 했대. 한 번을, 한 달에 이『법화경』을 한 번을 그러니까 얼마나 정진을 많이 했겠어요.
하루에 10시간 내지 12시간 정도 썼겠지. 그래도 다 쓰기가, 한 달에 한 번 다 쓰기가 어렵죠. 그만치 이제 아주 야무지게 법화사상이 무장이 돼있어서 오늘날 그런 분이 됐습니다.
27 舍利弗 華光佛壽 十二小劫 除爲王子 未作佛時 其國人民 壽八小劫
사리불 화광불수 십이소겁 제위왕자 미작불시 기국인민 수팔소겁
舍利弗아 華光佛壽는 十二小劫이니 除爲王子하야
사리불아 화광부처님의 수명은 십이소겁이고 왕자가 되었을때는 제한다 그랬지. 이 분도 그 부처가 되는 어떤 그 과정이 왕자로 태어나가지고 왕위를 계승하지 않고 출가해서 부처가 되는 그런 식으로 돼있습니다. 꼭 석가모니 삶의 길하고 똑 같아요. 그래서 왕자가 되었을 때는 제한다.
未作佛時며 其國人民의 壽八小劫이니라
왕자가 돼가지고 부처를 짓기 이전은 제한다. 그 나라의 인민의 수명은 팔소겁이다. 이 小劫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작은 횟수가 한 100년, 그 800년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아무리 작게 쳐도 800년이라고 할 수가 있고 또 겁이라고 하는 말을 길게 치면은 수억만 년이야.
28 華光如來 過十二小劫 授堅滿菩薩阿縟多羅三藐三菩提記 告諸比丘
화광여래 과십이소겁 수견만보살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 고제비구
是堅滿菩薩 次當作佛 號曰華足安行多陀阿伽度阿羅詞三藐三佛陀
시견만보살 차당작불 호왈화족안행다타아가도아라하삼먁삼불타
其佛國土 亦復如是
기불국토 역부여시
華光如來가 過十二小劫하야 授堅滿菩薩阿縟多羅三藐三菩提記하시고
화광여래가 십이소겁을 지나고나서 견만보살에게 수기를 한다. 그러니까 사리불이 부처가 되고 부처가 돼서 다시 견만보살에게 또 오늘날처럼 수기하는 이야기에요. 堅滿菩薩에게 수기 阿縟多羅三藐三菩提記를 주시고, 수기하고 記자 수기하고
告諸比丘하대 是堅滿菩薩이 次當作佛하면
여러 비구들에게 告하대, 이건 이제 앞으로 미래 미래 수많은 세월이 지나 사리불이 부처가 돼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 비구에게 고하대 이 견만보살은 앞으로 마땅히 부처를 지으면은
號曰華足安行多陀阿伽度阿羅詞三藐三佛陀라하리니
호를 화족 안행 다타 아가타 아라하 삼먁 삼불타라 할 것이다. 그랬어요. 華足安行 요게 개인 불명이고 多陀阿伽度는 여래 阿羅詞는 응공 三藐三佛陀는 정변지 그렇습니다. 화족 안행 여래 응공 정변지라고 할 것이다.
其佛國土도 亦復如是니라
사리불하고 똑같다 이 말이여. 사리불 불국토 앞에서 설명했죠. 뭐 유리로써 땅이 되고 그 땅은 평정하고 아주 청정하게 잘 꾸며져 있고 安穩豊樂하고 천인이 치성하고 또 여덟거리 팔거리가 있고 황금으로써 길거리를 경계를 삼았고 뭐 이런 등등 이야기. 그런 등등 이야기를 사리불 시대하고 이 사리불이 부처가 돼서 견만보살에게 수기했을때 견만보살이 부처가 됐을때하고 똑같다. 이랬어요.
이게 같을 수가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사실은, 그러니까 이런 것은 다 형식이라니까 그래 형식이라는게 뒤에 나오면은, 뒤에 가면은 자꾸 밝혀집니다. 나중에는 500명을 전부 보명여래라고 똑같이 준다니까. 나중에는 2000명을 똑같이 줘버려. 나중에는 그런 소리마저 없어. 그런 소리마저 없고 전부 그냥 다 줘버려. 그 결국은 그 속뜻이 뭐냐? 저 앞에「방편품」에서 있었듯이‘모든 사람은 본래로 그 본성은 부처다. 아주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부처다.’라고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29 舍利弗 是華光佛 滅度之後 正法住世 三十二小劫 像法住世
사리불 시화광불 멸도지후 정법주세 삼십이소겁 상법주세
亦三十二小劫
역삼십이소겁
舍利弗아 是華光佛滅度之後에
사리불아 이 화광여래가 멸도한 후에
正法住世는 三十二小劫이요 像法住世도 亦三十二小劫이니라
正法은 뭔고 하니? 바른 법. 불법이 정상적으로 제대로 지속이 되는 세월 그 다음은 像法은? 유사한 그런 그 불법. 조금은 이제 변색이 됐는데 그래도 비슷하게 그렇게 세상에 이제 불법이 전해지는 세상. 그 다음에 정법, 상법 그 다음에 말법이 있어요. 세 가지를 따지면은, 말법은 이제 뭐 여러 가지로 잘못된 경우도 있고 또 잘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 막 뒤섞여 있는거죠. 뒤섞여 있는데 잘못된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정법, 상법, 말법 이 세 가지를 대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사실은 뭐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지 꼭 뭐 들어맞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따질 일도 사실은 아니에요. 무슨 32소겁이라니 이게 얼마나 길고 긴 세월입니까?
이렇게 해서 아까 그 게송에서는 사리불이 그동안 법문을 듣고「방편품」에서 기가막힌 법문을 듣고 마음이 환희 밝아져가지고 자기 마음에 느낀 바를 부처님게 설명을 하는데 과거부처님, 현재부처님, 미래부처님 전부 방편으로써 어쩔수 없이 그렇게 맞춤법문을 해왔지만은, 중생을 놓치지 않을려고 그렇게 해왔지만은 그러나 부처님은 실법으로써 하는 것이다. 실다운 법으로써 최종적으로『법화경』에서 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하는 그런 이야기를 이제 하니까. 부처님이 이제“저 사람이 이제 불교공부 끝났다. 완전하다.”이렇게 인가하는 그 의미로 사리불이 수기를 받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그 수기에 대한 그런 그 중송인데, 중송은 다음 시간에 다시 한번 사리불의 수기가 아주 역사적인 거니까 다음 시간에 하기로 하고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법화경』「비유품」72쪽에 30번부터 할 차례입니다. 이 내용은『법화경』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이야기되는 수기에 대한 내용의 일부분인데, 많은 사람들이 수기를 받습니다. 수기라고 하는 것은 글 형식으로는‘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그 보증을 하는 형식으로 돼있는데, 나는 거기서 이제 그 속에 숨은 뜻을 확실하게 드러내서 이미‘우리는 본래 부처다.’라고 하는 그런 그 내용을 밝히고 또 그것을 이제 수기하고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이『법화경』이, 그리고 부처님께서 그것을 보증하는 일이다. 미래에 되는 것이 아니고‘이미 우리는 본래로 조금도 손색없는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사실을 보증하는 일이다. 저는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끊임없이 그렇게 해석을 하는데, 그게 이제 수기죠.
『법화경』에는 지금 이제 사리불이 수기를 받는 것으로 시작을 해서 그 다음에 4대성문이라고 해서 수보리, 목건련, 가전연 이런 등의 이제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는 그런 그 부처님의 제자들이 수기를 받고 그 다음에 뭐 라후라의 어머니 야수다라도 수기를 받고 마하파사파제비구니. 부처님을 이제 키운 그 양모(養母) 양모죠. 양모도 수기를 받고 그 다음에 이제「오백제자수기품」있어요. 거기가면 이제 500명의 아라한들이 똑같이 보명여래라고 하는 하나의 이름으로 수기를 받고 그 다음에「수학무학인기품」그것도 전부 수기품이거든요. 그래서 거기가면 2000명이 보상여래라고 하는 하나의 이름으로 수기를 받고 그 다음 이제「상불경보살품」에 가면은 상불경보살의 말씀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을 다 한꺼번에 수기하는 그런 그 내용으로 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기 가면은 용녀(龍女) 팔세용녀. 여덟 살먹은 이제 용녀가 수기를 받는다. 그런 이야기도 있거든요. 그것은 이제 축생도 수기를 받는,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런 그 보증을 하는 그런 이야기고 또 이 세상에서 가장 이제 극악무도한 소위 제바달다, 부처님을 이제 수 차례 살해할려고 했던 그런 그 극악무도한 그런 사람까지도 부처님이다 라고 수기를 받는 그런 내용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법화경』이 전부 뭐 수기내용이다. 이렇게 봐도 틀리지 안해요. 그래서 일명『법화경』을『수기경』이렇게 이제 말하는데, 보아왔듯이 우리가 이제 그런 내용이 앞에는 수기한다고 하는 말은 빌리지 않았지만은 사실은 더욱 더 확실하게‘우리들이 본래로 부처님이다.’라는 사실을 보증하고 인정하는 그런 내용이『법화경』저기 저 앞에「방편품」에서 있었잖습니까?
뭐 부처님 앞에서 손을 한 번 드는 것만으로도 皆已成佛道라. 그랬잖아요. 다 이미 불도를 이루어 마쳤다. 이렇게 했어요. 부처님 앞에 절 한 번 하는 것도, 또 꽃 하나 올리는 것도, 또 뭐 모래를 쌓아놓고 장난삼아“이것이 불탑이다.”라고 한 그 인연으로도 皆已成佛道라. 다 이미 불도를 이루어 마쳤다. 이런 표현이 있는데, 그게 결국은 무슨 뜻이냐? 이거죠.
그건 뭐 무슨 수행이라고 할 것도 없고 참선이라고 할 것도 없고 기도라 할 것도 없고 무슨 경을 보았다고 할 것도 없는 거죠. 부처님 앞에 손 한 번 들고 꽃 한 송이 올린 것. 그것도 보면은 산란심으로, 그랬어요. 산란심이란 말은 우리가 이제 망상이 부글부글 끓는 그 상태. 현재 우리들의 온갖 오욕과 탐진치 삼독과 이러한 모든 것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그러한 상태에서, 말하자면 꽃을 한 송이 올리고 절 한 번 한 그 사실이거든요. 그게 산란심으로 라고 한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산란심으로 말하자면 절 한 번하고 꽃 한 송이 올리고 손 한 번 번쩍 들고 아니면‘南無佛’이렇게 이제 한 마디 한 그것으로써 皆已成佛道라. 다 이미 불도를 이루어 마쳤다 라고 하는 그러한 내용을 우리는「방편품」에서 익히 보아왔고 나는 뭐『법화경』이야기 할 때 끊임없이 그 이야기를 일관되어있는 것으로 나는 파악을 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건 이제 왜 우리가 망상이 부글부글 끓고 온갖 탐진치 삼독과 시기, 질투와 음해, 모략 이런 것을 하는 그런 그 정말 중생으로써 좋지 아니한 속성은 다 가지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부처라고 하는가? 이걸 이제 우리가 이해해야 되거든요.
그『법화경』은 지혜와 자비의 말씀이지 않습니까? 불교가 한 마디로 이야기할 때‘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이다.’이러거든요. 그럼 이제『법화경』이 위대하다고 항상 이야기하고 저 뒤에 이제「약왕보살본사품」에 가면 뭐 끊임없이 하여튼『법화경』을 칭찬해놨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불교는 끊임없이 이제 지혜와 자비의 말씀으로 돼있고 그 지혜와 자비의 말씀을 한 권의 경전에다가 어떤 그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서 설명한 것이 또『법화경』이야. 그래서 이『법화경』은 팔만대장경을 이 한 권에다 다 담았다. 그리고 이제 담아도 그냥 뭐 아무거나 담는 것이 아니고 가장~ 훌륭한 거, 가장 최상승, 가장 그 수준이 높은 내용들로만 담았다. 그리고 또 이제 지혜의 입장으로도 그렇고 자비의 입장으로도 가장~ 아주 관세음보살의 아주 정말 뭐 간곡한 그런 그 자비 그것을 또『법화경』「보문품」에서 다 담았지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팔만대장경중에서 이『법화경』이 가장~ 요긴한 것만 뽑아 뽑아 뽑아가지고 다 담아서 하나의 경전으로 이룩했다. 그런 내용이거든요. 그래서 이제 이 보다 더 뛰어난 경전은 없다. 그래서 저「약왕보살본사품」에 가면은 그 동안에 있어왔던 많은 경전과 그 다음에『법화경』과의 그 차이를 비교한다면은 달에다 이제 비교를 해요. 밤하늘에 무수히 떠있는 저 많고 많은 반짝이는 별들과 달과의 차이다. 그 동안에 많고 많은 경전은 저 작은 별들이라면은 이『법화경』은 뚜렷이 밝은 보름달과 같은 그런 그 차원이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법화경』에서 저 뒤에 가면 우리가 다 볼건데, 그런 내용이거든요. 사실 그렇게 비교할 정도로 이『법화경』은 위대한 경전이에요. 내용 우리가 알고 보면은
뭐 제가 평생 공부해서 연구를 한다고 했지만은 사실은 뭐 100분의 1 알까 말까 할 정도거든. 볼 때마다 다르고 또 이제 내가 미처 몰랐던 거. 과거 사람들 물론 연구한 거 내가 다 본다구요. 천태스님이 연구한 것에서부터 그 후대 학자들 연구한 것 다 보고, 한 것을 보고 또 이제 거기서 미진한 것을 또 우리가 보면서 또 이제 깨우치고 개발해내고 찾아내고, 읽다보면은 미처 생각못했던 거 발견해 내거든요. 그렇게 하는데
이『법화경』만한 경전이 없다 하는 것을, 나는 아주 정말 아주 절실하게 느끼고 아주 힘차게 강조를 하거든요. 공부하면 할수록 그렇게 느껴져요. 사실은, 내용이 충실하다는 것을
그래 이제 그걸 간단하게 표현하면 지혜와 자비인데, 그 지혜라고 하는 것은 결국 뭔고 하면‘인간의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뜨는 거’이게 지혜입니다. 우리가 이제 지혜를 이제 빛에다 비유를 하잖아요. 광명에다 비교를 하거든요. 그래서 부처님이 뭐 동방으로 만팔천 국토를 방광을 해서 비췄다 라고 하는 것도 지혜를 상징하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밝은 광명으로써 무엇을 보자는 것인가? 무엇을 보자는 것인가?‘인간이 본래로 갖추고 있는 그 고귀한, 우리가 미처 중생의 입장으로는 미처 몰랐던 그런 그 인간 개개인의 아주 소중하고 고귀하고 지극히 오묘한 그리고 불가사의한 그런 내면을 그 지혜광명으로써 속속들이 비춰서 알았다.’하는 것입니다.
그 우리는 미처 모르죠. 부처님이 그것을 아시고 우리에게 일러주니까 부처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아! 그런가보다. 그런가보다.’하고 이제 짐작해가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 인간의 그런 아주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불가사의한 그런 그 고귀한 모습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것. 이게 지혜입니다. 그러면은 이제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그런 고귀한 그 인간의 가치인데 그런 인간의 가치를 알았다면은‘인간을 존중하는 것’그게 자비로써 그런 인간들에게 말하자면은 할 수 있는 그런 그 봉사, 할 수 있는 희생, 할 수 있는 그런 그 베푸는 마음, 자비심 이것을 다 하게 하는 거죠. 다 해야 옳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게 저 뒤에 가면은「관세음보살보문품」이 그런 그 표현을 잘 하고 있지않습니까? 그런식으로 아주 제대로 짜여져 있어요. 그래서 이 앞부분에는 끊임없이 인간의 고귀한 모습에 대한 그런 그 이해고 또 찬탄이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 결국은‘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다.’이렇게 이제 결론 내리는 거죠. 그래 뭐 나는“당신은 부처님”또“사람이 부처님이다.”이걸 이제 경전과 어록과 또 근대 선지식들이 하신 말씀과 이걸 총동원을 해가지고 그렇게 이제 압축을 해서 그런 표현을 이제 씁니다.
그 이제 여기서 사리불이 이제 부처님이 될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내용을 지난 시간에 보았어요. 근데 여기서는 중송입니다. 거듭 이제 한 번 더 이야기를 하는 거죠. 이렇게 이제 사리불은 산문도 있고 게송도 있고 이렇게 아주 구색을 갖출데로 갖췄지만은, 나중에 가면은 500명을 똑같이 이런 구색 갖추지 아니하고 500명을 똑같이 보명여래가 되리라. 내가 이제 그걸‘엉터리수기’그리고 또‘싸구려수기’이렇게 이제 표현을 하거든요. 뿐만아니라 나중에 가면 2000명을 보상여래가 되리라. 더 싸구려에요. 이거는, 500명에서 2000명으로 늘어났으니까. 그와같이 엉터리수기를 주거든요. 그게 아주 깊은 뜻이 있어요. 사실은
사람이 본래로 그대로 다 부처님이기 때문에 뭐 사리불에게 주든지, 목련에게 주든지, 가섭존자에게 주든지 그런 형식을 갖춘 거 이건 다 형식이고 사실은 이런 형식 필요없이 그대로 부처님이다 하는 그런 그 의미를 거기서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법화경』수기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그 500명, 2000명 싸구려수기 엉터리수기를 꼭 이야기 하거든요. 그런데 싸구려가 아니고 엉터리가 아니라. 그 속에는 정말 공히 누구에게나 똑같은 동등한 부처의 성품이 있기 때문에 그대로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그것을 보증하는데, 그런 그 엉터리수기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 우리에게 좀 납득이 되거든요. 우리에게 그게 이해가 되는거야. 싸구려수기는 그게 이해가 안되는거라.
여기 사리불같이 근사하게만 수기를 줘놓으면은‘아 꼭 이런 절차를 밟아야 되는가보다.’또 이런 생각을 하는거야. 그 생각을 좀 더 발전시키면은 그게 이제‘삼아승지겁이 지난 뒤에사 비로소 성불한다.’하는 그 이야기로 또 연결이 된다구요. 3일도 보장못하는데 삼아승지겁. 3일도 보장못하고 3년도 보장못하는데 삼아승지겁이라고 하는 不可說 不可說 佛刹微塵數세월을 어떻게 보장합니까? 그런 식으로 이제 이야기가 발전된다구요.
그러니까 이제 여기『법화경』에서는 그런 것을 확 그냥 뭉그려 트려버리고 정말 아주 혁명적인 놀라운 그런 그 어떤 그 특별한 가르침을 여기서,『법화경』에서 이제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법화경』이 모든 경전가운데서 왕이다. 이래요.
이『법화경』은 사실 양도 적지 안해요. 그 일생동안 우리가 공부하기에는『법화경』같이 좋은 게 없는 거라. 왜냐하면은 대소승의 그 불교용어라든지 교리들이 다 망라돼있어.『금강경』같은 것은 그게 망라돼있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해요. 전부 이제 空도리 이야기를 이제 위주로 하거든요. 거의 空도리 이야기를 위주로 하고 용어가 그렇게 많이 동원되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합니다.『금강경』은
반야 600백부 경전도 그렇게 많지만은 내용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런데 이『법화경』은 대소승이야기가 다 나와. 용어도 다 나와. 그래가지고 종합적으로 이제 딱 귀결시키거든요. 그래서 그걸 이제‘회삼귀일(會三歸一)’삼승을 묶어서 모아서 일승으로 귀결시킨다. 요렇게 딱 되지않습니까?『법화경』의 대지(大旨)가 會三歸一이잖아요.
그래서 이제『법화경』은 상당히 양도 어느정도 상당히 되고 그래서 평생 이거 읽고 독송하고 쓰고 또 그 속에 있는 내용들을 뭐 비유도 좀 많아요? 이야기도 참 많거든요. 그런 이야기들을 전해주기도 좋고, 비유를 하나 딱 들어가지고 그 이야기를 가지고 전법활동, 포교활동 하는데도 써 먹기도 아주 좋습니다. 뭐 거지 이야기도 있구요. 무슨 별별 이야기가 많아요. 인간의 고귀함을 밝히는 그런 비유라. 전부가 그 얘기에요. 비유가 뭐 법화칠유(法華七喩)라고 해서 일곱 가지 비유가 있지만은, 그런 내용들이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이건 정말 불교와 인연이 되고 부처님과 인연이 됐다면은 뭐 평생이거 하나 제대로 공부하고 그저『법화경』속에서 그저 먹고 자고 읽고 그저 늘 여기서 내 삶이 전부 여기서 이제 이루어진다 해도 하나도 손해볼 것이 아니고 정말 훌륭한 인생을 산다. 이렇게까지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내가 이제 자꾸『법화경』을 이제 높이 이야기하는 이유는『법화경』공부하면 할수록 자꾸 이제 그렇게 보이니까 어쩔 수 없는거죠. 사람은 자기가 보는대로 아는대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으니까.
뭐 이제 사리불이 수기를 받았는데 重頌 거듭 게송으로 이야기한 부분을 보겠습니다.
30 爾時世尊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이시세존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爾時世尊이 欲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니라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고자하사 게송을 설해 말씀하사대
31 舍利弗來世 成佛普智尊 號名曰華光 當度無量衆 供養無數佛
사리불래세 성불보지존 호명왈화광 당도무량중 공양무수불
具足菩薩行 十力等功德 證於無上道
구족보살행 십력등공덕 증어무상도
舍利弗來世에
여기서 來世라고 이렇게 표현했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우리들의 귀에 익숙한 앞으로 성불할 것이다. 이런 식이죠. 표현이, 그래야 사람들이 충격을 덜 받거든요. 5000명이 자리에서 물러났잖습니까? 왜 물러났겠어요? 망상 부글부글 끓고 탐진치 삼독이 있는 그대로 부처라고 하는 소리를 용납못해서 5000명이 물러난 거야. 그런 뜻을 미리서 보여준거죠.
成佛普智尊하면 號名曰華光이라
성불해서 그 지혜가 넓은, 아주 넓은 지혜를 가진 그런 그 어른이 되실것 같으면은, 화광여래 응공 정변지가 될 것이다 그랬잖아요? 華光如來가 될 것이다.
當度無量衆하야 供養無數佛하며
화광여래가 되면은 마땅히 한량없는 중생들을, 한량없는 대중들을 제도해서 무수한 부처님을 공양하며
그랬습니다. 이 無量한 대중들이나 無數한 부처님이나 이게 본래 사람사람이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무수한 부처님이란 말이 해석이 됩니다.‘不可說 不可說 佛刹微塵數부처님’우리가 얼마나 익숙하게 들어왔습니까?‘無量佛’뭐가 그렇게 무량불이냐 말이여? 경전에 뭐 천불, 만불, 삼천불 이야기해도 그 숫자 얼마 안되거든요. 사람 전체를 두고 이야기 안 하면은 無數佛, 無量佛, 不可說 不可說 佛刹微塵數佛 이라고 하는 낱말이 해석이 안된다고 내가 늘 그러지 않습니까?
具足菩薩行과 十力等功德하야
보살행과 十力等功德을 구족해서, 보살행을 구족한다.
그러니까 행위는 보살행이에요. 부처가 됐을때, 지혜와 자비를 제대로 갖추었을때 표현은 보살행으로 표현이 됩니다. 표현은요. 그래서 여기서 보살행을 구족하고 또 十力 열 가지 힘. 부처님이 갖춘 그런 열 가지 힘 등 그런 공덕들을 이제 갖춘다 했어요. 그래 이제 부처와 보살에 대한 이해를 이런데는 꼭 그렇게 하셔야 됩니다. 지혜와 자비를 제대로 체득했을때 그것을 부처의 경지라고 하고 그것이 표현되는, 앞으로 회향되는, 사람들에게 회향되는 것은 보살행이라 이렇게 표현하는거에요. 그래서
證於無上道하리니
無上道를 증득하리니
32 過無量劫已 劫名大寶嚴 世界名離垢 淸淨無瑕穢 以瑠璃爲地
과무량겁이 겁명대보엄 세계명이구 청정무하예 이유리위지
金繩界其道 七寶雜色樹 常有華果實
금승계기도 칠보잡색수 상유화과실
過無量劫已하야 劫名大寶嚴이요 世界名離垢하야
한량없는 세월이 지난 뒤에 劫의 이름은 大寶嚴 큰~ 보배로 장엄한 것이요. 세계의 이름은 離垢다.
淸淨無瑕穢하야 以瑠璃爲地하고 金繩界其道하며
청정해서 때가 없어서, 깨끗하다 이 말이죠. 유리로써 땅이 되고 금줄로써 그 길을 경계를 삼았고
七寶雜色樹에 常有華果實하며
칠보로 여러 가지 색깔로 된 나무에 항상 꽃과 과실이 있어.
33 彼國諸菩薩 志念常堅固 神通波羅蜜 皆已悉具足 於無數佛所
피국제보살 지념상견고 신통바라밀 개이실구족 어무수불소
善學菩薩道 如是等大士 華光佛所化 佛爲王子時 棄國捨世榮
선학보살도 여시등대사 화광불소화 불위왕자시 기국사세영
於最末後身 出家成佛道
어최말후신 출가성불도
彼國諸菩薩은 志念常堅固하고
그런데 그 나라의 여러 보살들은 생각이 항상, 뜻이 항상 견고해.
뭐 우리들처럼 잠깐 신심 그냥 말뚝신심냈다가 며칠 안 있으면 안 보이고 뭐 또 이렇게 아이들 뭐 학교는 간다하면, 열심히 그저 무릎이 닳도록 절하다가 이제 합격 딱 됐다하면‘내 몰라라 언제 내가 절에 다녔드냐?’이런 식으로, 그런 식으로 이제 우리가 작심삼일식으로 불교를 믿는 그런 예들이 많아요. 뭐 여기 오신 분말고 많습니다. 딴데
여기 이제 여기 보살들은 志念이 常堅固했다 그래. 뜻과 생각이 항상 견고하다. 이런 데서 우리가 좀 나태할 때 좀 이제 추스르는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죠.
神通波羅蜜이 皆已悉具足하며
신통으로써 저 언덕에 건너가는 그 것이 다 이미 구족했다.
여기서 신통이라는 게 유리겔라같이 무슨 뭐 초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방거사가 말씀하신 바요.‘신통병묘용(神通幷妙用)이요. 운수급반시(運水及搬紫)라.’신통묘용이 결국 뭐냐? 運水及搬紫라. 運水 물을 길어오고 나무를 해오는 거다. 요즘 같으면 가스 불킬줄 알고 수도꼭지 틀줄 아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그 말씀이 이 세상에 나오고 온갖 눈 밝은 선사들이 그냥 박수 박수 박수 박수갈채를 끊임없이 쏟아 붓는거요. 하~ 정말 그렇다. 무슨 초능력 그 억지로 하는 그게 초능력 그게 무슨 사람들 삶에 도움이 되느냐 이거여. 정말 사람사람들이 본래로 갖추고 있는, 추우면 추운줄 알고 더우면 더운줄 알고 물이 필요하면 수도꼭지 틀줄 알고 불이 필요하면은 가스불 킬줄 아는 그거. 바로 그것이 신통아니고 뭐냐 이거여.
날씨 추우면은 옷 하나 더 입을 줄 알고 더우면은 옷을 벗을 줄 아는 그 능력이 신통이야. 그렇게 우리가 이해해야 됩니다. 그 특별한 거, 이상한 그런 아주 사사해져가지고 결국 이상한 걸 좋아하는 스님들을 내가 더러 봤거든요. 보니까 나중에 안 보이더라구요. 절에 이상한 것을 찾아서 온 스님들이 있었어. 그래가지고 와보니까 아니거든, 와보니까 그 다음에 얼마있으면, 몇 년 있으면 안 보여. 그만, 어디갔는지?
그 그렇게 이상한 거, 특별한 거 그것찾는 사람들은 결국은 이상해져요. 그러니까 그런 거 조심해야되요. 지극히 평범한 것. 진리는 뭡니까? 보편타당한 거. 보편타당한 거. 그게 진리 아닙니까?
神通波羅蜜이 皆已悉具足하며
於無數佛所에 善學菩薩道하나니
무수한 부처님의 처소에서 보살도를 잘 배우나니
이 菩薩道가 결국은 중요합니다.『화엄경』그 많고 많은『화엄경』그 중에서도 이제 선재동자가 구법행을 하는「입법계품」그 내용은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하는데 한 분, 한 분 친견하면서 묻는 말이“어떻게 하면 보살도를 갖출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보살행을 할 수가 있습니까? 무엇이 보살행입니까?”이것만 물어요. 53명 선지식 만나면서, 수백 년의 세월이 흐리면서 가서 묻는다는게 꼭‘보살도가 무엇이냐?’이렇게 묻습니다. 결국은 우리가 개개인이 부처가 됐다하더라도 결국은 이제 우리가 표현해야 할 것은 보살도입니다. 표현해야 할 것은, 그게 보살도에요.
가정에서부터 이웃으로, 이웃도 이제 그 인연을 확대해나가 차츰차츰 인연을 확대해나가는 거에요. 이 보살도를 행하는데, 그래서 善學菩薩道라. 보살도를 배운다. 이게 이제 참 그『화엄경』도 이제 그『법화경』만치 높은 그런 경전인데 거기에 이제 결론은 보살도로써 회향하는 걸로 그렇게 돼있습니다.
如是等大士는
이와같은 等大士는, 여기서 큰선비했는데 이것도 이제 보살을 번역하면 大士에요. 큰선비가 되는, 이와같은 등 큰선비들 보살들은
華光佛所化라
화광부처님께서 교화한 바다. 華光佛이 뭡니까? 사리불이 부처가 됐을때 아닙니까? 사리불존자가 부처가 됐을때 그 이름이 화광불이야. 그들이 화광불이 교화한 사람이다 이 말이여.
佛爲王子時에 棄國捨世榮하고
부처님이 왕자가 되었을때에, 꼭 이제 석가모니불 행적하고 비슷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래 결국은 이거는 하나의 이야기죠. 가정입니다. 가정. 왜 이렇게 석가모니불이 왕자로써 출가했는데 사리불이 다음생에서 꼭 왕자로써 출가해야된다는 그런 법은 없잖아요. 아 왕자 아니고 거지로써 출가했어도 부처가 될 수가 있는 것이고 평민으로 출가해서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지.
그 옛날에 훌륭한 스님들 행적을 이렇게 적어놓은데 보면, 뭐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효성이 지극하고 이런걸 이제 해놓은게 많아요. 보면은, 말 안듣고 나쁜짓 잘하고 엉뚱한짓 잘하던 애들도 얼마든지 성불할 수가 있고 부처가 될 수가 있는 거지. 왜 꼭 그렇게 이제 행적을 적어야 되냐고요. 뭐 사실대로 적었겠지만은 허허 그래도 그런거 읽을 때 그럼 우리같은 사람은 어쩌란 말이냐? 별로 그렇지도 못했는데 하하
이제 큰스님되고 도승이 되어서 열반하면 다 그렇게 쓰게 돼있는 모양이죠. 나도 이제 나중에 더 훌륭한 스님이 되면은 행적을 적을때 그렇게 쓸거야. 틀림없이 아마
부처님이 왕자가 되었을때, 여보십시오. 석가모니처럼 왕자가 되었을때 나라를 버리고 세상의 영화를 다 버리고, 그랬잖습니까? 석가모니부처님이 왕자니까 바로 이제 부왕이 돌아가시면은 그 왕의 대를 이어서 왕이 될거라. 그리고 세상의 영화를 다 버렸죠. 그 어여쁜 부인도 있었죠. 정말 아들도 있었죠. 또 계절따라서 가서 쉬는, 놀이하고 쉬는 그 궁전을 따로 지어놨잖아요. 그래 계절따라서 거기가서 쉬면 돼. 휴양소를 그렇게 따로 지었어. 그런 세상의 영화를 다 이제 버리고
於最末後身에 出家成佛道니라
마지막 몸에, 마지막에 가서 뭐 이런 뜻입니다. 출가해서 불도를 이루니라.
34 華光佛住世 壽十二小劫 其國人民衆 壽命八小劫 佛滅度之後
화광불주세 수십이소겁 기국인민중 수명팔소겁 불멸도지후
正法住於世 三十二小劫 廣度諸衆生
정법주어세 삼십이소겁 광도제중생
華光佛住世는 壽十二小劫이요
그 화광부처님이 세상에 머무는 것은 그 수명이 십이소겁이다 그랬어요.
이제 小劫할 때 일겁을 100년으로 쳐도 12소겁이니까 1200년 산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네요. 근데 그건 내가 가장 줄여서 이야기한 것이고 뭐 일겁을 무슨 뭐 수십만 년으로 보는 그런 그 설명도 또 있습니다.
其國人民衆은 壽命八小劫이라
그 나라의 인민 대중들은 그 사람들도 팔소겁이나 된다.
佛滅度之後에 正法住於世는 三十二小劫이니 廣度諸衆生하리라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정법이 세상에 머무는 것은, 정법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 당시때 당시의 법이 그대로 바르게 정확하게 세상에 머무는 것 그렇게 이제 표현할 때 正法 이렇게 말하고, 그 다음에 약간 닮았다. 비슷하다고 할 때는 이제 상법 그렇게 해요. 사람 인(人)변에다가 코끼리 상(象)하는 像法.
정법이 세상에 머무는 것은 삼십이소겁이고 그래서 이제 널리 중생들을 제도하리라.
35 正法滅盡已 像法三十二 舍利廣流布 天人普供養 華光佛所爲
정법멸진이 상법삼십이 사리광유포 천인보공양 화광불소위
其事皆如是 其兩足聖尊 最勝無倫匹 彼卽是汝身 宜應自欣慶
기사개여시 기양족성존 최승무륜필 피즉시여신 의응자흔경
正法滅盡已에 像法三十二라
정법이 다 이제 지나가고 나서, 삼십이소겁이 지나가고 나서 상법이라고 요 나오네요. 닮은 법 이런 말이여. 닮은 법도 역시 이제 삼십이겁이 될 것이다.
舍利廣流布하야 天人普供養이니
그 부처님의 사리를 널리 유포해서, 이것도 역시 석가모니 행적하고 똑같잖아요. 사리가 이제 뭐 여덟 말이 나왔다나? 얼마나 나왔다나? 뭐 엄청나게 나와가지고 그때 이제 사리 때문에, 인도에 그때 이제 작은 나라가 많이 있었잖아요. 그래 전쟁까지 했답니다. 서로 뺏어갈라고 각 소국에서 왕들이 부처님 사리를 갖다가 모실려고, 그 전쟁까지 할 것은 아니죠. 없으면 그 뿐이지. 전쟁하면 인명이 소멸되잖아요. 인명을 다치게 되잖아. 인명을 다치면서까지 부처님 사리를 빼앗으러 왔다. 그건 이제 아마 부처님 사리를 그렇게 이제 소중하게 여겼고 또 그만치 부처님을 존경했다. 이런 뜻으로 봐야겠죠.
그래서 천인들이 널리 공양함이니
華光佛所爲가 其事皆如是라
화광불의 그 하는 바 그 事가 다 이와 같으니라.
其兩足聖尊이 最勝無倫匹이니
부처님을 兩足尊 그러잖아요. 兩足尊 복덕과 지혜가 구족됐다. 또는 지혜와 자비가 구족됐다. 성스러운 어른이 가장 수승해서 가장 뛰어나서 짝할 이가 없으니, 짝할 이가 없으니
彼卽是汝身이라
그때 그 화광부처님 그 위대한 부처님이 곧 너의 몸이다. 사리불보고 하는 소리입니다. 사리불 너가 그런 사람일것이다.
宜應自欣慶이니라
마땅히 스스로 기뻐할지니라.
이렇게까지 앞에서 산문있었고 그 다음에 여기서는 게송으로까지 이렇게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줍니다.
36 爾時四部衆 比丘比丘尼 優婆塞優婆夷 天龍夜叉 乾闥婆阿修羅
이시사부중 비구비구니 우바새우바이 천룡야차 건달바아수라
迦樓羅緊那羅 摩喉羅加等大衆 見舍利弗 於佛前 受阿縟多羅
가루라긴나라 마후라가등대중 견사리불 어불전 수아뇩다라
三藐三菩提記 心大歡喜 踊躍無量
삼먁삼보리기 심대환희 용약무량
爾時四部衆인 比丘比丘尼와 優婆塞優婆夷와 天龍夜叉와 乾闥婆阿修羅와 迦樓羅緊那羅와 摩喉羅加等大衆이 見舍利弗이 於佛前에 受阿縟多羅三藐三菩提記하고
그때 사부대중인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천룡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등 대중들이, 사리불이 부처님 앞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기받는 것을 보고
그 말입니다.‘아~ 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보증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이제 대중들이 다 보았잖아요. 그러니까 얼마나 좋겠어요? 같이 있는 동료가 성불한다고 하는 수기를 받았으니까
그래서
心大歡喜하야 踊躍無量하며
마음이 크게 환희해서 뛸듯이 한량없이 뛰었다. 이렇게했는데 정말 뛸듯이 기뻐하였다. 그래서 그 기쁨을 표현한게 여기 이렇게 나와요.
37 各各脫身所著上衣 以供養佛 釋提桓因 梵天王等 與無數天子
각각탈신소착상의 이공양불 석제환인 범천왕등 여무수천자
亦以天妙衣 天曼陀羅華 摩詞曼陀羅華等 供養於佛 所散天衣
역이천묘의 천만다라화 마하만다라화등 공양어불 소산천의
住虛空中 而自廻轉 諸天伎樂 百千萬種 於虛空中 一時俱作
주허공중 이자회전 제천기악 백천만종 어허공중 일시구작
雨衆天華
우중천화
各各脫身所著上衣하야
몸에 입고 있던 상의를 전부 벗어.
참 그때 인도에 천이 귀하고 옷이 귀했어요. 그 천주고 옷주는게 그게 제일 아주 큰 공양이라. 그래서
以供養佛하며
부처님께 공양했다 이 말입니다. 그래 저 티벳 사람들이 천을 목에 감아주는 것도 거기서 온 것 같아요. 옛날에 천이 워낙 귀할 때 천 한 조각 주는게 최대의 공양이야. 지금도 티벳 사람들은 그 천을 준다구요. 천을 목에다 걸어요. 뭐 가탄가 뭐라고 해가지고 천을 목에 걸어주면, 많이 보셨죠? 영화에서나 어디? 천을 이렇게 걸어줍니다.
부처님께 공양하며
釋提桓因과 梵天王等은 與無數天子로 亦以天妙衣와
또 석제환인과 범천왕들도 無數天子로 더불어 또한 아주 뛰어난 妙衣 최고급옷
天曼陀羅華와 摩詞曼陀羅華等으로
아주 훌륭한, 天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훌륭한 이런 뜻으로 보는 게 제일 좋습니다. 무슨 어느 하늘에서 왔다 말이요. 그러니까 하늘이라고 괜히 생각할 게 아니라 가장 고급옷. 고급옷과 아주 최고의 曼陀羅華와 摩詞曼陀羅華等으로, 여러 가지 꽃이죠.
부처님한테 꽃을 올릴 때도 아주 그 중에서 제일 좋은 꽃으로 공양하잖아요. 그래서
供養於佛하니
부처님께 공양하니
所散天衣는 住虛空中하야
그러니까 훌륭한 옷을 올렸는데 그 옷이 虛空中에, 허공에 빙빙 떠다닌거야.
而自廻轉이라 諸天伎樂은 百千萬種이
스스로 저절로 빙빙 돌고 여러 하늘들의 그 풍악이 백천만 종이나 되는데
於虛空中에 一時俱作하며
허공가운데서 그래가지고 함께 연주가 되더라 이 말이여. 좋은 음악이 그냥 뭐 무수한 음악이 허공가운데서 一時에 함께 연주가 되며
雨衆天華하며
온갖 하늘 꽃들을 비내리듯이 하더라.
이렇게 이제 그 釋提桓因 諸天들이 모든 天子들이 이렇게 사리불이 성불한다고 하는 수기를 받는 그 경사스러운 문제에 대해서, 일에 대해서 공양을 베푸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을때‘사람사람이 본래로 아주 고귀한 부처님이다.’그 내용을 들어다보면은‘사람외에 달리 뭐 더 고귀한 부처가 없다.’내가 늘 그러거든요. 어디있는 부처님이 웃을줄 알고 울줄 알고 화낼줄 알고 욕할줄 아는 부처님 봤느냐 말이여. 여기에 당당하게 이렇게 살아있는 우리들만이 그 일을 할 줄 아는거야. 욕도 하고 말이야. 웃기도 하고 칭찬도 할줄 알고 웃을줄도 알고 시기질투도 할줄 알고, 바로 그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바로 부처인거요. 그 능력이
그래 선악하고 관계없다니까. 그 보통 일반불교에서는, 일반불교에서는 좋은일 많이하고 착한 마음만 갖고 이빨은 잘 닦고하는 그런 사람이 부처님이다 이렇게 하고 악한 일하는 것은 부처가 아니다. 중생이다. 이렇게 표현해요. 이게 이제 일반불교입니다. 보통, 아주 저급한 불교죠. 저급한 불교인데 법화경불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 안합니다.
또 선불교에서도 그런 이야기 안해요. 선불교에서도 우리가 잘 아는 육조스님도‘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하라’그랬잖아요. 그 첫 법문이거든요. 육조스님 깨닫고 나서 첫 법문입니다. 그 도명존자가 가사 뺏으러 오니까, 가사를 뺏으러오니까 그 사람에게다가‘不思善 不思惡하라.’첫 법문. 선에도 불법이 있는 게 아니고 악에도 불법이 있는게 아니다 그랬죠. 그래서 선도 악도 생각하지 마라 그랬어요. 사람들은 전부 선악에 치우쳐 있는거야. 선한 것은 佛法이고 악한 것은 非佛法이다. 중생법이다 이렇게만 아는거라.
그러니까 거기에 치우쳐가지고 진리에 제대로 눈을 못 뜨는거야. 인간의 정말 위대한 본성에 눈을 못 뜨는 것입니다. 거기에 치우쳐가지고, 인간의 고귀한 본성에 정말 눈을 뜰려면은‘그 사람이 선하다 악하다’여기에 팔리면 안되요. 거기에 팔리면 안됩니다. 악한 일을 하더라도 할줄 아는 그것이 바로 위대한 능력이거든요. 그 능력을 가지고 부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 그 능력을 잘 살필줄 알아야 돼요. 그 능력을, 그 능력을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중심이에요. 우리들의 중심이라. 그 능력을 잘 살필줄 아는
참선이라는 거 별거 아니거든요. 그 능력 아는 것입니다. 그 능력에 집중하는 거요. 그 능력을 주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하는 그 주체, 그 주체에 마음을 주시하는 것. 그게 최고 공부에요. 여기서는 끊임없이 그게 소중하다. 내가 늘 그러잖아요. 그것이 우리의 주체고 그것이 가장 소중하고 그것을 부처라고 한다. 이렇게만 말했는데, 그걸 주시해야 돼. 그걸 봐야돼.
바로 손에 잡히면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은 손에 잡히기까지는 그걸 주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시하는 거. 그게 내 중심이거든요. 우리는 주변에만 자꾸 팔려. 중심은 놔두고 주변에만 자꾸 팔리는 거라. 주변에 그냥 바깥 경계라 그러는데, 바깥 경계인 그 주변에만 자꾸 이제 마음이 가는거야. 내 중심에는 우리가 관심이 별로 없어.
그래『임제록』에서‘수처작주(隨處作主)’여러분 들어보셨죠? 隨處作主 어디에있든지, 어떤 상황에있든지 자기 중심에 마음을 써라 이 말이거든요. 作主 지을 작자 주인 주자. 그게 내 주인이잖아요. 내 주인이 그게 중심이라. 우리는 전부 주변에만 눈을 팔고 살아. 그래서 이 주변이 내 삶이 아니고 진정한 내 주인공은 내 중심이다. 그 중심은 정~말 손색없는 부처다. 정말 조금도 손색없는 부처다.‘어느 부처가 웃을줄 알고 울줄 알더냐? 찡그릴줄 알더냐? 고개 끄덕거릴줄 알더냐? 정말 고개 끄덕거릴줄도 알고 찡그릴줄도 아는 그 당사자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능력있는 부처고 가장 소중한 부처고’내 이제 그런 표현을 늘 하지않습니까?
그래서 거기에 우리가 눈을 뜨는 사실이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하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게 이제 지혜라는 거죠.
38 而作是言 佛昔於波羅奈 初轉法輪 今乃復轉無上最大法輪
이작시언 불석어바라나 초전법륜 금내부전무상최대법륜
而作是言하사대 佛昔於波羅奈에 初轉法輪하시고
꽃을 이제 비 내리듯이 내리면서 이러한 말을 하대. 부처님이 옛날에 바라나에서, 이건 석가모니부처님입니다. 諸天子가 이제 말하기를, 부처님이 옛날‘설법(說法) 바라나(波羅奈), 성도(成道) 마갈타(摩竭陀), 입멸(入滅) 구시라(拘尸那)’이렇게 이제 우리 공양할 때 외우는 겁니다. 공양할 때 꼭 그거 부처님의 일생을 기억하면서 공양을 하라고 해가지고 그 공양할 때 우리 스님들이 공양할 때 외우는 게 그런게 있어요.
그 여기보면 바라나, 설법 바라나, 베나레스 요즘 말하면 베나레스인데 거기에서 이제 처음에 이제 설법을 하셨잖습니까? 初轉法輪 옛날에 부처님이 그 성도하시고 성도 마갈타, 마갈타에서 성도를 하시고 베나레스, 바라나에 와가지고 이제 初轉法輪이야. 법륜을 굴리시고, 오비구를 앉혀놓고 법문을 해잖습니까?
이게 지금은, 옛날이라는 그 석(昔)자하고 지금 금(今)자에 우리가 관심을 많이 좀 쏟아야 돼요. 昔於波羅奈하는 옛 석자
今乃復轉無上最大法輪이로소이다
요게 이제 아주 짧은 글이지만은 참 중요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성도해서 옛날에 바라나시에서 처음에 이제 법문을 했는데 그건‘고집멸도(苦集滅道)’사제법문을 했죠. 그 이제 성문들을 위해서 사제법문을 설하고 연각을 위해서 십이인연법문을 설하고 그 다음에 보살들을 위해서 육바라밀법문을 설했다. 요게 이제 공식이에요. 아주 불교의 공식입니다. 성문들을 위해서 사제법문 苦集滅道 사제법문을 설하고 그 다음에 한 차원 높여가지고 연각들을 위해서 십이인연, 인연의 도리를 깨달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십이인연을 설하고 그 다음에 보살들은 보살행이 이제 중요하니까 육바라밀, 보살행을 보살들을 위해서 설했다.
그런데 이『법화경』자리는 뭐냐? 그 다음에 今 해놨잖아요. 無上最大法輪을 굴렸다. 이렇게하는데, 지금 무상 최고높은 최대의 법륜을 굴린 거. 이게 뭐냐? 그건 이제 부처의 삶. 성문, 연각, 보살의 길이 아니고 부처의 삶으로 귀결시키는, 부처의 삶으로 회향하는 그런 법문을 설했다. 그러니까‘모든 사람이 부처님이다.’하는 이런 이야기를 이『법화경』에서 하게 되었다 하는 그런 내용이 요 짧은 글귀속에 숨어있습니다.
처음에 바라나시에서 처음에 법륜을 굴려가지고 차츰차츰차츰 수준을 높이다가 이『법화경』열반에 들때, 죽음에 당도해가지고서 이제 더 이상 나아갈 때 없고 부처님도 더 이상 세상에 살 수가 없어. 나이도 많고 죽을때가 다다랐으니까 그러니까 최상의 법문을 설할 수 밖에 없다. 그 최상의 법문은 뭐냐? 일불승(一佛乘) 도리다.『법화경』도리다. 그것은 곧‘사람이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그 사실을 깊이 깨우치게 하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길 줄 아는 그런 그 보살행으로 회향해야 된다라고 하는, 그게 이제 결국은 이제 이『법화경』가르침이죠.
39 爾時諸天子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이시제천자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爾時諸天子가 欲重宣此義하야 而說偈言하니라
이 시에 諸天子들이 이 뜻을 거듭펴려고 게송으로써 이야기합니다. 게송이 좀더 자세히 됐어요.
40 昔於波羅奈 轉四諦法輪 分別說諸法 五衆之生滅 今復轉最妙
석어바라나 전사제법륜 분별설제법 오중지생멸 금부전최묘
無上大法輪 是法甚深奧 少有能信者
무상대법륜 시법심심오 소유능신자
昔於波羅奈에
옛날 바라나에서, 베나레스 많이 가보셨죠? 거기 가면 이제 그 부처님 처음 법륜을 굴린데 이제 初轉法輪 기념하기 위해서 탑도 이제 높이 쌓아놓고 옛날에 큰~ 절이 있었던 터가 있고 그래요. 거기에는 의례히 또 간지스강, 恒河강. 항하강 이제 배타고 그 저기 저 화장하고 뭐 거기서 성수에 목욕하고 하는 걸 그걸 보는 코스가 딱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것들 보고하는 바라나, 베나레스입니다.
옛날에 베나레스에서
轉四諦法輪하사 分別說諸法의 五衆之生滅이러니
사제법륜을 굴리고, 사제법륜이에요. 여기에, 苦集滅道 사제법륜을 굴려서 분별해서 諸法의 五衆의 생명 오온(五蘊). 오중이라고 하는 것은 오온이 생멸하는 것을 분별해서 설하시니, 고집멸도입니다. 그것을 설하시니
今復轉最妙인 無上大法輪하시니
지금에는 다시 가장 미묘한, 가장 미묘한 無上大法輪을 굴리시니.『법화경』을 굴리시니 이 말이여.『법화경』법문을 하시니
是法甚深奧하야 少有能信者니다
이 법이 매우 깊고 깊어서 능히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少자는 아주 조그마하다 이 말입니다. 능히 믿을 줄 아는 사람이 너무 적습니다.
그래요. 그러니까 저 앞에서 5000명이 자리에서 일어났죠. 아무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다.’어떻게하더라도‘사람이 본래로 갖추고 있는 그 오묘불가사의한 그 본성에 눈을 뜨라. 그 본성은 정말 부처님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것이다.’라고 이걸 내가 수억만 번을 내가 이야기해도, 나도 사실은 이게 확 다가서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조금도 만분의 일의 어떤 그 여지도 없이 탁 믿어진다. 이건 사실은 그 잘 안돼요. 요게 그런 표현 아닙니까? 少有能信者 능히 믿는 사람이 적다.
자꾸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조금씩 젖어 들어요. 젖어 들고 자다 일어나서도“아 그건 틀림없다.”라고 이렇게 주장은 하고 그렇게 믿고 그래서 사람들을 또 이제 우리가 무시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자꾸 이제 그런 입장에서 받들고 어떻게 하더라도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어떤 사람도, 어떤 사람도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받드는 그런 그 마음이 차츰차츰 생겨요.
그리고 이제 근래에 내가 또 참 소중한 선지식을 만났는데, 그 분이 그야말로 늘 몇 번 전해드렸지만은 어떻습니까?‘이 세상에 내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온 천하에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 온 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이런 정말 팔만대장경에도 없는 그런 그 말을 마음으로부터, 자기의 어떤 온 몸으로부터 우러나는 그런 표현을 한 스님 증엄스님. 참 훌륭한 선지식, 보살이에요.
그 분 내가 이야기를 이『법화경』끝날때까지 계속할 건데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이나 지장보살님이나 육조스님이나 임제, 황벽 그런 못지않는 내 어떤 그 불교적 사상에 큰 영향을 준 스님이거든요. 정말 그 분의 자비는 숨이 막힐 정도입니다. 교회가 없어서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못보고 있는 교인들을 위해서 교회를 지어준 사람이에요. 숨 막히는 자비 아닙니까? 스님이 기독교인들을 위해서 교회를 지어준 사람이라니까. 불교의 어떤 그 궁극적 목표는 말하자면 거기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 정도돼야 돼요. 우리 모두가, 우리 모두가 그런 마음을 쓸 줄 알아야 돼요. 결국은, 대단하잖아요.
경전에 관세음보살이 그런 일 했다는 소리 못 들었어요. 근데 이 시대에는 그런 스님이 있어. 참 대단하잖아요. 기독교인들 예배보라고 교회를 지어줘. 참 숨막히는 자비죠. 그건, 그러니까 이 세상에 온 천하에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 온 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그가 무엇을 하던지 무엇을 했던지 나는 다 감싸주고 용서한다 하는 거죠.
그 이제 사람사람이 부처 뭐 기독교를 믿든지 불교를 믿든지 거기에 아무 상관없이 그의 본성은 부처님이다. 기독교를 믿든지 유교를 믿든지 뭐 흰두교를 믿든지 회교를 믿든지 그의 본성은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이걸 발견한거야. 그걸 발견했으니까 그가 겉으로야 뭘 하든지간에 그 속에 정말 무궁무진한 가격의 다이야몬드가 반짝이고 있는 것을 그 스님은 보니까 그냥 그 분이 좋도록 해주는 거야. 그 분이 좋게. 그 사람들이 좋도록 해주는거요.
그러니까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참 드물죠. 少有能信者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深奧 甚深奧 이 법은 매우 심오해서, 매우 심오해서 능히 믿는 사람은 참 드물다. 아주 적다. 사실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제대로 그런 그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본 사람은 그런 행동이 나옵니다.
41 我等從昔來 數聞世尊說 未曾聞如是 深妙之上法 世尊說是法
아등종석래 삭문세존설 미증문여시 심묘지상법 세존설시법
我等皆隋喜 大智舍利弗 今得受尊記 我等亦如是 必當得作佛
아등개수희 대지사리불 금득수존기 아등역여시 필당득작불
於一切世間 最尊無有上
어일체세간 최존무유상
我等從昔來로 數聞世尊說이나 未曾聞如是 深妙之上法이니다
우리들이 옛날부터 자주자주 세존이 하시는 말씀을 듣기는 들었으나 이와같은, 이『법화경』과 같은 깊고 오묘한 최상의 법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랬어요.
그 동안 부처님에게 70년세월을 그러니까 부처님이 성도하시고 49년설법이라면은 40년동안, 40년동안 뭐 무수히 많은 설법을 들었지만은 이『법화경』의 가르침같은 이런 설법은 못 들었다. 이런 말입니다. 이『법화경』설법이라는게 한 마디로 요약하면은, 사람의 소중한 가치 거기에 눈뜨고 그 다음에 관세음보살과 같은 저「보문품」에 나오는 관세음보살과 같은 그런 자비행으로 회향하는 그런 가르침은 미처 듣지 못했습니다.
世尊說是法하시니 我等皆隋喜니다
세존께서 이러한 법을 설하시니 우리들은 다 따라서 기뻐합니다.
大智舍利弗이 今得受尊記하시니
큰~ 지혜를 가지신 사리불께서 지금 수기를 尊記를 받고, 얻어서 받고. 존기라고 하는게 佛記죠. 부처님이 된다고 하는 그런 높은 수기를 받으시니
我等亦如是하야 必當得作佛하와
우리도, 아 사리불이 받는데 우리도 반드시 받을 것 아닙니까? 이런 말입니다. 我等亦如是 우리들도 또한 이와 같아서 반드시 마땅히 부처를 지을 것입니다. 뭐 사리불이 되는데 우리라고 못할 까닭이 뭐 있습니까? 탁 믿는거요.‘아 사리불도 수기 받는 거 보니까 우리들도 충분히 받겠구나. 사리불보다 못한 게 뭐 있나? 항상 같은 입장인데’이렇게 생각해. 그게 참 잘 생각한 거거든요.
그래서 결국은 요렇게 요렇게 자꾸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열게 접근하도록 이렇게 이야기를 해가서 그야말로 마음이 열리고 열려가지고‘아~ 정말 뭐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구나!’하는 그런 것을 확실히 믿을 수 있도록 저기 상불경보살까지 가면은 그렇게 이야기가 되지요. 제바달다까지도 결국은 부처님이라고 인가를 하니까 보통 사람들이야 더 말할나위 있겠나 이렇게 발전해갑니다.
於一切世間에 最尊無有上이니다
세간에 있어서 가장 높고 이 보다 더 높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법화경』의 가르침이야말로 정말 뭐 이 세상에서 더 이상 갈 수 없는 그런 그 최상의 가르침이다.
42 佛道叵思議 方便隨宜說 我所有福業 今世若過世 及見佛功德
불도파사의 방편수의설 아소유복업 금세약과세 급견불공덕
盡廻向佛道
진회향불도
佛道叵思議라 方便隨宜說이시니
부처님의 도라고 하는 것은, 불가라고 하는 파(叵)자입니다. 불가 파자에요. 불가사의라. 佛道는 不可思議라. 그래서 방편으로 편의를 따라서 설했다. 그래가지고 온갖 이야기가 많아가지고 이게 뭐 가닥을 잡을 길이 없는거죠.
왜냐하면 근기에 맞춰서, 고 작은 근기를 깨우쳐가지고 조금 끌어올리고 조금 끌어올리고 이렇게 하다보니까 별의별 이야기가 많은 거야. 거짓말도 있고 없는 말도 있고 내 이야기도 있고 남의 이야기도 있고 지어낸 이야기도 있고 뭐 거의가 지어낸 이야기죠. 그래가지고 어떻게하더라도 눈을 열어줄려고, 그게 이제 부처님의 자비죠. 그것도, 그런 이치를 가르쳐주기위해서 그런 자비한 방편으로써 그렇게 합니다.
자비방편으로써 편의를 따라서 설하시니
그게 이제 참 예를 들어서 무슨 부처님 앞에서 인등키면은, 인등키면은 지혜가 나고 머리가 좋아진다. 그것도 뭐 좋은 방편이죠. 또 그런 그물에 걸릴 중생들도 많으니까 어쨌든 그걸로 인해서 차츰차츰 정말 불교의 진실에, 정법에 눈을 뜨는 하나의 사다리 역할만 해준다면 그건 좋은 방편이다. 이렇게 이제 보는 거죠.
我所有福業과 今世若過世에 及見佛功德을 盡廻向佛道하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福業과 지금 세상이나 또는 과거 세상에, 옛날 부처님을 친견한 그 공덕을 모두 불도에다가 회향합니다.
佛道 부처의 길. 불도라는 게 뭡니까? 부처의 길, 부처의 삶의 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부 이게 뭡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복 福業하고 금세에 닦은 거나 과거세에 닦은 거나 그 부처님을 또 불교를 만난 그 공덕, 부처님을 본 그 공덕을 모두 불도에 회향합니다. 이렇게 했어요. 이게 이제 무슨 뜻인고 하면은?
우리가 불교하고 인연맺은 것이 얼마나 여러 종류입니까? 뭐 부모가 돌아가셔서 49재를 지내기위해서 부처님하고 인연이 됐고 아이들이 학교가는데 혹시라도 뭐 시험이라도 더 잘칠까해서 기도를 한 번 했던게 인연이 됐고 선망부모를 천도한다고 천도하면 뭐 사업도 잘되고 뭐 후손도 좋단다 하는 그 말 듣고서 이제 천도하는데 예를 들어서 한 번 인연을 걸었고 등등 얼마나 여러 가지요. 아니면 뭐 옛날에 그런 이야기도 있었어요. 보면은,
그 저기 군에 가면은 그때는 또 잘 사고도 많이 나고, 전쟁도 한참하던 때 기피자가 많았어요. 6.25직후에, 분위기가 아직 전쟁분위기일때 그때 기피하기위해서 절에 들어왔다.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스님들 또 그런 사람들도 있었고 솔직하게, 어쨌든 그러한 인연으로 들어왔던간에 부처님하고 인연이 된, 아니면 뭐 절에 뭐 가져갈게 없을까? 하는 그런 엉큼한 마음으로 부처님하고 인연이 되었든, 아니면은 뭐 부처님한테 초키는 초공양에 무슨 종업원으로 일을 했든, 아니면 목탁깎는데 나무를 베주는 사람이 되었든, 어떤 작은 인연이 되었더라도 결국은 盡廻向佛道 이게 중요한 거요. 전부 불도로 회향한다.
불도로 회향하는 길로 전부 이렇게 그야말로 많고 많은 강물이 전부 바다를 향해서 모여들듯이 우리들이 부처님하고 작은 인연, 큰 인연, 좋은 인연, 나쁜 인연 뭐 무슨 인연이 되었든지간에 그런 그 인연들로해서 전부 결국은 부처의 삶으로 회향합니다. 이렇게 됐지않습니까?
참 내용이 아주 훌륭한 게송입니다. 이게 이제 석제환인과 제천자들이 게송을 설한 것으로 그렇게 돼있죠.‘諸天子 欲重宣此義하사’천자들이 한 게송인데, 요 그 게송이 모든 우리 불자들의 마음이죠. 그대로, 불자들의 마음을 대신해서 이제 표현을 했고 또 부처님이 처음 성도해서 바라나에서 법륜굴리고 뭐 그러다가 결국은 이렇게『법화경』까지 이르러서 이런 훌륭한 법문을 하게 됐는데, 참 이걸 정말 믿고 받아 들이는 사람은 너무너무 적습니다. 워낙 법이 크니까.
그래서 저 앞에서 5000명이나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는 그런 예도 있었다. 그러면서 결국은 우리가 이러한 모든 작은 인연들도 전부 부처의 삶으로 모두 회향한다 하는 이런 내용이 요 게송 전체속에 압축돼있습니다.
43 爾時舍利弗 白佛言 世尊 我今無復疑悔 親於佛前 得受
이시사리불 백불언 세존 아금무부의회 친어불전 득수
阿縟多羅三藐三菩提記
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
爾時舍利弗이 白佛言하사대
그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고해 말하대
世尊이시여 我今無復疑悔호니
세존이시여 내가 지금 다시는 더 이상 의심하고 뉘우침이 없으니, 없습니다.
親於佛前에 得受阿縟多羅三藐三菩提記니다
친히 부처님 앞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기를 받았습니다.
44 是諸千二百心自在者 昔住學地 佛常敎化 言我法 能離生老病死
시제천이백심자재자 석주학지 불상교화 언아법 능리생로병사
究竟涅槃
구경열반
是諸千二百心自在者는
여기에 있는 이, 1255인이잖아요? 보통『금강경』에 1250인으로 더불어 이렇게했는데, 늘 부처님을 항상 따라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게 기본 부처님 제자들이에요. 그 사람들, 마음이 자재한 사람들은
昔住學地에 佛常敎化하사
옛날에 學地에 있을때, 學地 한참 배우고 있을때 이 말입니다. 부처님이 항상 우리를 가르치사
言我法은 能離生老病死하고 究竟涅槃이라하시거늘
말씀하사대 내 법은 능히 生老病死의 그런 고통을 떠나고 究竟에 열반한다 라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거여.
이 사리불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리불이 부처님 옛날에 늘 그랬지 않습니까? 생노병사를 떠나고 구경열반에 이른다. 구경열반에 이른다라고 이렇게 했거든요.
45 是學無學人 亦各自已離我見 及有無見等 謂得涅槃 而今於世尊前
시학무학인 역각자이리아견 급우무견등 위득열반 이금어세존전
聞所未聞 皆墮疑惑
문소미문 개타의혹
是學無學人도
그래서 學無學인들도, 갓 배우는 사람 無學人 다 배운 사람 그런 말입니다. 學과 無學의 사람들도
亦各自已離我見과 及有無見等으로
또한 각각 스스로 그래서 나라고 하는 고집 그리고 有無見 있다 없다 나는 남자다 여자다 뭐 선이다 악이다 하는 그런 그 소견을 다 떠났으니라. 이미 떠났으니라.
謂得涅槃이러니
그래서 말하기를 열반을 얻었다 라고 하더니, 열반을 얻다라고 하더니
而今於世尊前에 聞所未聞하고 皆墮疑惑이니다
지금의 세존앞에서, 옛날에는 우리가 그런 수준이었는데 지금 세존앞에서 미처 듣지 못했던 가르침을 듣고 다 의혹에 떨어졌었습니다. 이런 말이죠.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은?『법화경』이전 불교하고『법화경』불교하고 그 차이점을 이야기하는데『법화경』이전 불교는, 그러니까 보통불교는 생노병사의 고통을 떠나서 涅槃 아무 번뇌도 없고 고통도 없고 편안한 그런 자리. 그래서 有餘涅槃하면 번뇌가 없는 그 자리라고 이야기를 하고 無餘涅槃은 죽어버린 상태를 무여열반이라고 그래요. 그래 완전히 편안할려면 죽어야 편안하지. 안 그렇겠어요. 그래서 무여열반이라는 말은 죽음을 뜻합니다. 아무것도 남는게 없는 열반. 그 아무리 도를 통했다하더라도 이 몸뚱이 가지고 있으니까 열반의 입장에서 보면은 그게 온전한 열반이 아니에요. 그래서 有餘涅槃 아직도 남아있는, 몸뚱이가 남아있는 열반이다 이거여. 도인도 계속 배고프고 뭐 춥고 그렇죠. 이 몸 거둬줘야되니까 그 아직도 문제가 있잖아요. 그래서 무여열반하면 죽어버린 뒤를 무여열반이라고
소승교리에서는 그런 말들이 많아요. 그런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완전한 가르침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뭐 있다 없다 하는 고런 그 나의 그 소견에 집착해있다가 그것만 떠나버려. 상대적인 그것만 떠나버리면은 그런대로 편안하다 이거여. 그런대로 열반을 얻었다. 謂得涅槃 열반을 얻은 것이다 라고 그렇게 우리가 알고 살았다 이 겁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지금와서는 지금와서는 그게 문제가 아니고 네 한 사람 편안하게 사는 거, 있다 없다라고 하는 소견 떠나는 거, 너다 나다하는 그런 그 집착 떠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거 그대로 둬. 내가 있고 네가 있는데 그대로 두고 살자 이거지. 그대로 두고 본래로 우리는 부처님이라고 하는 이 사실에 눈을 떠라 이겁니다. 차원이 다르죠.‘
그래 그 전에는『법화경』이전에는 너다 나다 하는 그런 그 분별집착을 떠나는 것을 위주로 해서, 너다 나다 하는 분별이 없으면 편안할 거 아닙니까? 편안하죠. 선도 악도 떠나버리면 편안하죠. 열반이지 그야말로. 그런데 그건 아주 소극적인 불교라. 소극적인 불교 그러니까 보다 더 적극적인 불교는 여기『법화경』에서 말하는 너다 나다 있다 없다 그거 그대로 둬. 현재 눈에 보이는 거 그냥 두고 모든 사람을,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는 그런 차원으로 살자 이겁니다. 그게 이제 聞所未聞이야. 듣지 못했던 것을 듣고
이상하다 이거여. 번뇌망상이 있는 그대로 부처님으로 본다. 그 의문이 있죠? 온갖 탐진치 삼독과 번뇌망상이 있는 그대로 부처님으로 본다라고 하니까 이게 아주 그 정말 못 듣던 소리고 정말 궁금한 이야기야. 뭐가 어떻게 된 심판인지 모르겠는거야. 번뇌가 떠나고 선하기만 하고 악한 것은 전혀 없고 이래야 정말 성인의 길인줄 알았는데,『법화경』에 와선 그게 아니거든요. 부처의 삶을 여기선 숭상하는 것이지. 뭐 너다 나다 있다 없다 이런 데 떠나는 거 그거 문제삼지 마라 이겁니다.
그러면 이제 그게 어떻게 이제 또다른 불교가 되느냐? 그러면 뭐 나쁜짓도 하고 하는 거 이런 것들도 문제 안 삼는데, 그런것하고 상당히 우리가 납득이 안되는 그런 그 문제가 남아요. 이렇게 이해하면은 그런것이 이제 쉽게 풀립니다.‘우리 본성은 본래로 부처다. 우리 중심, 중심자리는 본래로 부처다. 그것을 우리가 예의주시하라.’
예를 들어서 어떤 도둑이, 도둑이 어떤 스님한테 돈이 있는 줄 알고 밖에 와서 서성거려. 틈만 노리는 거라. 그래서 이제 스님이 알고는 그날 들어온 佛事金 그걸 이제 알고 왔으니까, 그걸 전부 이제 문을 열고 보따리에 싸가지고 던져줬어. 도둑이 가만히보니까 보따리가 하나 툭 떨어지거든, 나는 지금 그걸 훔칠려고 지금 노리고있는데 아니 그거에다 돈을 한 보따리를 싸가지고 창문을 열더니 스님이 툭 던져주거든, 그래 열어보니까 전부 돈이라. 자기가 훔칠려고 했던 돈이 보따리에 툭 떨어졌다구요. 그래 스님 가져가라고 던져준거야. 그러니까 그 도둑이 하도 이상해가지고 그걸 들고 방에 들어왔어.
들어와가지고“이게 어떻게 된 심판이냐? 스님 어떻게 돼서 이렇게 도둑을 도둑질못하게 해야되고 도둑을 잡아서 경찰에 신고를 하던지 해야되는데 스님 어떻게 도둑질을 이렇게 쉽게 하도록 하느냐?”그래 물었어요. 그러니까“네가 도둑질하는 거 나는 못하게 안한다. 불교는 도둑질하는 거, 도둑질못하게 하는 게 아니다.”이런 이야기 처음 듣죠? 도둑질하지 말라는 소리는 많이 들었어도, 도둑질하는 것을 못하게 하는
잘 들으세요. 여기 이제『법화경』을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라. 불교는 도둑질하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도둑질해도 괜찮고 뭘 해도 괜찮은데 도둑질하는 그 놈을 좀 주시해라. 도둑질하는 그 놈을 주시해라. 중심이거든요. 내 중심. 네가 뭘 하든지 하는 그 놈을 잘 살펴라. 그게 불교다 그랬어요. 나는 그것밖에 모른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거 나는 불교라고 생각 안한다. 도둑질하는 그 놈을, 도둑질하라 마라 그게 아니고 도둑질하는 그 놈을 주시해라. 잘 한 번 살펴봐라. 그랬어요. 그럼 도둑질도 잘 될거라. 그랬어요. 아주 네 하는 일도 잘 될거다 그랬어.
그래서 이 도둑이 인제 돈을 좀 가지고 집으로 갔어. 가가지고 도둑질도 잘 되고 뭐 뭐든지 네 소원이 잘된다니까 가가지고는 이제 그때부터 그 생각을 하는 거야.‘내가 도둑질한다. 이제 오늘은 어느 아파트에 가가지고 어느 집을 털어야지.’하고 딱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하는 것을 내가 주시하는 거야. 계속 주시를 하는 거라. 내 행동을 계속 주시하는 거야. 중심을 주시하는 거. 그건 이제 나머지는 주변이잖아요. 내 행동은 주변이라. 행동하게 하는 그 자체는 중심이야. 내 중심이라구요. 그게 주인이야. 隨處作主할 때 주인이야. 그 주인을 이렇게 보는 거라. 우리가 하면서도 볼 수 있잖아요. 내가 하는 행동 볼 수 있잖아요. 얼마든지 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계속 보니까 이게 뭐가 안되는 거야. 도둑질도 안되고 아무것도 안돼.
그 도둑이 자기 도둑질하는 것을 이렇게 내려다보고 있으니 이게 도둑질될 턱이 있나 그게. 될 턱이 있겠어요 그거. 또 하나의 자기가 도둑질하고 있는 자기를 이렇게 보고 감시하고 있는거야. 감시하고 계속 이렇게 감시하고 있으니 그 놈의 도둑질할려고 하는 내가 도둑질될 턱이 없는거야 그게. 그래가지고 3일후에 이제 와가지고“스님 그 한 번도 내 3일동안 도둑질할려고 계획세웠던 일 하나도 안 됐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심판입니까?”하고 왔어. 그래서 이제“그래 그거다. 바로 그거다. 그것만 네가 제대로 꿰뚫어보면은 천하가 다 네것이 될것이다. 천하가 다 네꺼될건데 이집 저집 가가지고 돈 몇 푼 털어서 뭐하겠느냐?”
그래서 이 도둑이 그때사 정말 귀가 열렸어요. 스님이 하는 말에 귀가 열리고는 정말 훌륭한 이제 수행자가 돼서 계속 이제 마음찾는 일, 마음찾는 일에 재미를 붙여가지고는 그걸 뭐 찾고나니까 아무것도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거야. 그보다 더 보물이 없고 그보다 더 훌륭한 게 없는거라. 이 세상에 제일 보물, 제일 훌륭한 것을 얻어버린거야. 이 사람이, 그 참 도둑질을 잘 했지. 이 사람이 와가지고, 그 도둑질할려과 왔다가 그런 큰 소득을 얻은거라.
여기서 우리가 눈 떠야 할 게 그겁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하지 않는다. 그 우리가 도둑질아니다 하더라도 도둑질 비슷한 거 많잖아요. 우리하는 짓 중에, 얼마나 많습니까? 근데 그 하지말라하면 어떡해. 참 갈등많아요. 불교 잘못가르쳐놓으면은 불자들이 갈등하기 참 많은거야. 갈등할 일이 너무 많아. 무슨 뭐 살생하지 말라. 뭐 하지마라. 뭐 하지마라. 얼마나 하지말라는 거 많습니까? 그게 이제 저급한 불교에서 그러거든요. 아주 낮은, 수준낮은 불교에서는 그렇게 합니다.
그래 수준높은 불교 정말 제대로 된 불교는 우리가 行住坐臥 語黙動靜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이 엄청 많다. 그런데 그것을 뭐 이것 저것 가리지말고 무엇을하던지 하는 그 사람을 주시하라. 도둑질하더라도 네 도둑질하는 것을 살펴봐라 이거여. 그 결국은 마음찾는 일 아닙니까? 간단하게 우리가 들어온대로 표현하면, 마음찾는 일인거여. 내 중심을 주시하는 일이죠. 내 중심을 주시해서 내 중심이 정말 손에 딱 잡히니까 그걸 견성(見性)이라 하는 거지. 정말 마음의 위대함을 알게되니까 알게되니까 더 이상 뭐 아무런 문제가 없는거지. 아무런 문제가 없어져 버리는 거야.
그땐 천하를 다 얻은거지. 굶어도 천하를 얻은 것이요. 먹어도 천하를 얻은 것이고 일체문제가 다 거의 해결되버리고 그래서 육조스님도 그 가난한, 가난한 촌백성으로 그렇게 살다가 깨닫고 나서 그런말 했잖아요. 더이상 무엇을 봐라랴.‘하기자성(何其自性) 본자구족(本自具足)’더 이상 무엇을 봐라랴. 내 마음속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거늘, 내 자신속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거늘 내가 더 이상 무엇을 봐라랴. 이렇게 그 표현했다구요. 本自具足이라고, 何其自性 本自具足 멋지잖아요? 더 이상 무엇을 봐라랴. 내 자신속에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거늘, 그렇게 느낀 것입니다. 그렇게 표현을 했는데
그 도둑도 그 도둑도 정말 그 자성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 도둑질하는 그 놈을 예의주시하라고 해 놓으니까 순진해가지고 말 그대로 들은거야. 그대로 주시해보는 거. 내가 하는 행위를 그냥 보니까 어느날 그게 뚜렷이 나타나버린 거죠. 그것도 우리는 주시하지 안하고 그냥 경계에 끌려다니는 거야. 경계 그 나와버리고, 경계 조금 앉아서 참선하면은 그때는 조금 잡힌듯 하다가 그냥 온갖 경계 일어서기도전에 앉아가지고 뭐 그냥 여기저기 조선팔도 다 돌아다니잖아요.
그게 이제 주변으로 놀아난다. 이러는 거요. 주변으로 놀아난다. 중심에 있지않고 주변으로 놀아난다. 그 중심과 주변 그걸 잘 우리가 분별해서 이해를 하면은‘아 불교공부가 이런 것이구나.’하고 싶게 알 수 있습니다. 알고보면 쉬워요.
여기이제 듣지 못하던 것을 듣고서 모두 의혹에 떨어졌습니다.
46 善哉世尊 願爲四衆 說其因緣 令離疑惑
선재세존 원위사중 설기인연 영리의회
善哉世尊하 願爲四衆하사 說其因緣하사 令離疑惑케하소서
선재라 시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사부대중을 위하사 그 인연을 좀 설명해서 하여금 의혹이 떠나도록, 의혹이 없도록 좀 해주십시오 라고 이렇게 이제 부탁을 합니다.
그 이제 사리불이 그동안 공부해온 것하고 지금『법화경』에서 정말 그동안 못들었던 거 이거‘모든 사람은 본래로 부처다.’라고 하는 이 사실이 도대체가 마음에 썩 다가서지 않는다. 사부대중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을 좀 더 자세하게 인연을 설해가지고서 우리들 마음속에 의혹이 없도록 좀 해주십시오.
그래 아까 이야기하고 연관시켜서 본다면은 그동안 나쁜짓하지말고 뭐 온갖것 있죠? 무슨 탐심도 내지말고 진심도 내지말고 치심도 내지말고 전부 이제 뭐 거짓말도 하지말고 살생도 하지말고 하지말란 소리 많거든요. 그게 상당히 도덕적이고 누구에게나 납득이 되는 좋은 성인의 말씀이잖아요. 그런데『법화경』에 와서는 그게 아냐. 그런거 하지 말라는 소리 아니고 하는 그 놈을 예의주시해라. 하는 그 놈의 가치. 그 자체의 무궁무진한 그런 가치.
저기 금정산 덩어리보다도 훨씬 더 큰 수억만 배 다이야몬드와 같은 그와같은 소중한 가치에 눈을 떠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회삼귀일이죠. 일이라는게 일불승아닙니까? 모든 사람이 부처님의 그런 그 존재다고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래 이게 이제 아까 그 천왕의 게송에도 있었지만은 少有能信者 정말 이것을 이러한 이치를 능히 믿는 사람은 너무 적습니다. 참 드뭅니다. 이게 정말 맞는 말이에요. 그렇다고‘아이고 그렇게 드물다는 데 내가 되겠나?’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끊임없이 쓰고 읽고 쓰고 읽고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인터넷에 들어가가지고 또 듣고 또 듣고 또 읽고 쓰고 읽고 쓰고 그렇게 하면은 어느날 지혜의 눈이 활짝 열리게 돼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에요.
우리 불자님들은 그 불교의 경전이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아주 많은 경전이 있어서 공부할꺼리가 대단히 많습니다. 우선은 이제 한글로 번역되거나 한글로 설명을 잘한 그런 것들부터 한 권씩 한 권씩 이렇게 읽고 읽으면서 이제 마음에 드는 구절들은 이제 메모도 하고 노트에 이렇게 여러번 반복해서 써보기도 하고 소리를 내서 읽어보기도 하고, 처음에 소리내서 읽기가 경전같은거 읽기가 좀 쑥스럽죠. 속으로 뭐 혼자‘이와같이 내가 들었다.’이런 식으로 혼자 쭉 중얼거리다가 그 익숙해지면은 자기도 모르게 밖으로 소리가 나옵니다.
그 참 사람의 행위 소위 그 업(業)이라고 하는 것이 참 정말 불가사의한데 그게 또 좋은 점이죠. 한 번 읽어보고 두 번 읽어보고, 처음에는 소리내기가 쑥스럽다가도 나중에는 누가 듣든 말든 상관없이 내 흥에 겨워서 소리내서 막 읽게됩니다. 그래서 소리내서 읽으면은 내 소리를 내가 또 듣거든요.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게 이제 우리들의 어떤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는가? 복잡한 이야기는 그만 두더라도, 하여튼 그렇게 해보면은 내가 낸 소리를 내가 들으면은 그건 그것대로 또 상당히 흥이 나요. 자기 노래를 자기가 들으면서 흥에 겨우듯이 경전 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쓰는 것도 그래요. 내가 특히 이제 경전공부는 이『법화경』에서 저 뒤에 가면 밝혔듯이 오종법사(五種法師) 다섯 가지 법사를 이야기합니다. 그게 이제 읽고 그 다음에, 첫째는 가지고 다니는 거. 경전만 가지고 다녀도 이제 오종법사중에 한 법사가 돼요. 그 다음에 이제 독(讀) 가지고 다니게 되면은 한 구절이라도 읽게 돼요. 읽고 그 다음에 읽다보면은 외우게 되죠. 송(誦) 그 다음에 이제 사경하는 거. 서사(書寫) 그리고 이제 경전에 있는 이야기 하나라도 딴 사람에게 전해주는 일은 그 해설(解說)이라 그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受持 讀 誦 書寫 解說 이렇게 이제 다섯 가지를 오종법사라고 이『법화경』에서 분명히 밝혔어요. 그 다른 경전에서도 그런 말 많이합니다만은, 오종법사라고 이렇게 분명히 밝힌 것은『법화경』뿐이에요.『금강경』에도 수지 독송 서사 해설하면 공덕이 얼마나 많다. 무량하다라고 하는 그런 내용들을 불자님들이 많이 접했을 것입니다만은, 특히 이제『법화경』에서는 그것을 오종법사다.
지니고 다니기만 해도 법사에요. 법사가 뭐 꼭 법문만 해서 법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불교경전은『천수경』에서부터 뭐『금강경』곳곳에서 출판된 그런 포켓용이 많잖아요. 그 작은 핸드백에 넣고 다니기 좋은 그런 그 경전들이 많습니다.『법화경』도 아주 작은 경전이 있어요. 가지고 다니기 좋은
그래서 하여튼 불자는 그 핸드백속에 작은 경전 하나, 자기가 좋아하는『금강경』도 좋고『천수경』도 좋고 뭐 저기 저「관세음보살보문품」도 좋고『법화경』이면 더 좋고, 어쨌든 경전 하나씩은 지니고 다닙니다. 이걸 습관화하세요. 그것만으로도 법사가 되고 그것만으로도 공덕이 됩니다. 가지고 다니는 것만해도
그래 이제 그러다 보면 이제 잠깐 짜투리 시간 있잖아요. 심심한 시간. 누구를 가서 약속했는데 얼른 안나와서 잠깐 이제 기다리게된다든지 그럴때 책 꺼내가지고 1분만이라도 좋아. 1분동안 한 구절만 읽어도 얼마나 좋습니까? 그 작은 아주 짧은 시간을 그렇게 경전 한 구절로 때운다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 한 구절만 가지고 입에 자꾸 이제 읊조리는 거야. 혼자서‘여시아문(如是我聞)’그것만으로도 좋아요.“여시아문 여시아문 여시아문 여시아문”그것만으로도 아주 좋은 그 하나의 수행입니다.
쓰는 것도 그렇습니다. 쓰는 것도 처음에는 뭐 그야말로 참 쓰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죠. 그렇지만 이제 한 번 써보고 두 번 써보고 그렇게 자꾸 써보다 보면은, 처음에 이제 같은걸 반복해서 쓰는거야.‘관세음보살’한 백 번 써본다든지.‘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한 백 번을 이렇게 써본다든지. 그러면 백 번 쓰면 익숙해지거든요. 그러면 그『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하는 그것만 익숙해지면은 그 다음부터는 뭐 다른 글자도 역시 익숙해집니다. 그 안에 획이 다 들어있으니까.『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하는 그 한 구절속에 다른 한자의 글자 획수가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그 방법에서 멀리 가 있지 않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그 쓰는 것들도 그렇게 익숙하게, 뭐 잘 쓰는 것도 좋지만은 아주 서툰 솜씨라도 그저 한 번 써보고 두 번 써보고 자꾸 써보는 그런 습관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도 모르게 그 아주 익숙하게 써지게 되고 또 한 구절씩 써놓고 이렇게 감상도 하고 음미도 해보고 하면은‘아 이 참 뜻이 깊구나! 스님도 설명못한 뜻이 이 속에 이러이러한 뜻이 있구나!’하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뭐『법화경』을 내가 강설하지만은 내가 미처 깨닫지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그런 내용들이 뭐 무수히 많죠. 그건 이제 각자의 인생을 살면서 자기 인생에서 느끼고 깨달으신 그런 것을 가지고 서로 연결시키고 맞춰서 보면은 정말 그 아주 참 기가막힌 그런 지침이 경전속에 있구나 하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됩니다.
제가 이제 콩나물법문을 해가지고 유명하게됐는데‘콩나물법문’그 못들은 분을 위해서 이야기 한 번 더 드리면은, 우리가 콩나물을 키울때 물을 주잖아요. 그러면 물이 다 새나가버립니다. 다 새나가버려요. 그래도 그 물을 아침에 주고 저녁에 주고 하루 주고 이틀 주고 하다보면 어느새 거기에 움이 트고 나중에 차츰차츰 자라가지고 나중에는 이만치 자라지 않습니까? 뽑아 먹을만치 그렇게 자라게 돼요.
그 물이 다 새나가버리는데 어디서 자라겠어요? 참 신기하잖습니까? 그와같이 우리가 염불을 하는 일, 경전을 읽는 일 또 이렇게 사경을 하는 일 이런 것들도 몇 번 써봐도 아무 뭐 표도 없고 늘지도 않는다. 깝깝하거든요. 도대체 늘지를 않는다. 이렇게 생각이 들지만은, 물 그 한 번 주고 두 번 주고 이틀 주고 삼일 줘도 도대체 이게 움틀 생각을 안하고 자랄 생각을 안하는것 같은데 어느새 서서히 자라고 있듯이 우리가 읽는, 경전을 읽는 일, 경전을 쓰는 일도 이게 도대체 늘줄 모르는 것 같은데도 어느새 자기도 모른 사이에 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 헛일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어디에 그게 축적이 돼도 축적이 되고 쌓이게 되고 늘게 돼있다는 것 그걸 믿어야 돼요. 콩나물 자라는 거 믿을 줄 아는 사람은, 우리가 경전을 읽고 쓰고 하는 것이 아무리 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게 틀림없이 어디에선가 나도 모른 사이에, 뭐 쓰다보니까 더 못할 수도 있어요. 그전보다 더 못할수도 있는 거야. 그게 이제 더 못하는 게 정상이야. 더 못하다가 더 잘될려고 그렇게 뒷걸음질 한 번 치는거야.
권투하는 사람들이 힘차게 때릴려고 하면은 팔을 꼭 뒤로 빼더라구요. 뒤로 싹 빼가지고 때리면 그게 이제 쎄게 맞는거야. 그와같이 잘 되다가도 더 못써지고 잘 안되는 것은 더 그 틀림없이 그거는 이제 더 잘될 그런 그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하는 그런 그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꼭 그렇게 믿으시고 하나 하나, 인생은 사실 살아보면 길어요. 그러니까 꾸준히 그저 뭐 세월아 가거라 하고 하는 거요. 하루 이틀 사이에 바짝 뭐가 발전되고 눈부시게 보이고 하는 그거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뭐 마라톤하듯이, 나는 늘 그래요.“인생은 마라톤이다.”그저 보통 숨을 쉬면서 그냥 달릴 뿐이야. 그냥, 불교공부도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이제 드립니다.
오늘은 76쪽 47번부터 할 차례입니다. 저 위에서 이제 그 사리불이 자신이 그동안 공부한, 사리불이 아니라 여러 천자들이 자신들이 이제 부처님의 그 말씀을 듣고 거기에 대한 소감을 쭈욱 이제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사리불이 또 부처님께 또 자신이 공부한 소감을 또 이렇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리고 나니까 이제 부처님이 거기에 대한 답으로써
47 爾時 佛告舍利弗 我先不言 諸佛世尊 以種種因緣 譬喩言辭
이시 불고사리불 아선불언 제불세존 이종종인연 비유언사
方便說法 皆爲阿縟多羅三藐三菩提耶 是諸所說 皆爲化菩薩故
방편설법 개위아뇩다라삼먁삼보리야 시제소설 개위화보살고
然舍利弗 今當復以譬喩 更明此義 諸有智者 以譬喩得解
연사리불 금당부이비유 갱명차위 제유지자 이비유득해
爾時에 佛告舍利弗하사대
그때에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告하사대. 해석이 그래요.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세요. 그때에 爾時에‘佛告舍利弗하사대’부처님이, 사리불은 사람이름이니까, 사리불에게 告하사대. 告한다고 하는 것은 말씀하사대 이말이요.
我先不言
내가 먼저 말하지 아니했던가. 왜 不言을 이제, 말하지 아니했던가 하는 것은 저 뒤에 와서 새깁니다만은, 먼저해도 좋아요. 내가 먼저 이런 말을 하지 않했느냐? 무슨말인고 하니
諸佛世尊이 以種種因緣과 譬喩言辭로
諸佛世尊께서는 갖가지 인연들. 우리 불교 믿기시작하면 因緣이라고 하는 낱말부터 배워요. 그 참 인연도리라는 게 참 묘하거든요. 그리고 부처님께서 발견하신 그 내용중에 가장 아주 그 훌륭한 그런 그 내용중에 하나가 이 인연도리입니다. 연기의 도리.
그 딴 종교에서는 세상이 맨 처음에 어떻게 생겼느냐? 뭐 하나님이“있으라.” 하니 있게 되었다. 그런 엉터리로 이야기를 해도 그 믿고 사는 사람들 많아요. 있으라 하니 있게 되었다. 어느날 해가 있으라 하니 해가 있게 되었고 땅이 있으라 하니 땅이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어떤 종교는 또 이제 전부 이제 뭐 어떤 신이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비슷비슷해요. 다
그런데 불교는 모든 존재 이 우주부터 인연의 도리로 됐다. 연기의 법칙으로 되었다. 그럼 이제 우리가 현대과학에서 이 그 지구가 처음에 생기고 그 다음에 생물이 생기고 그 다음에 사람이 생기고 한 그런 그 과정을 보더라도 전부, 예를 들어서 폭발할 인연이 되어서 지구가 폭발한거요. 옛날에 많은 그런 그 지금도 끊임없이 이 큰~ 우주공간안에서는 끊임없이 별들이 부딪히고 또 폭발하고 그러면서 또 결합을 하고 그러면 하나씩 하나씩 모이고 모여서 지구같은 이제 별이 생기잖아요.
그랬을때 별이 생겨서 처음에는 이제 불덩어리같은 그런 그 부딪히면서 서로 만나면서 불이 나거든요. 뭐 남녀만 만나서 불이 나는게 아니라 먼지와 먼지가 만나도 불이 나. 처음에, 그러면서 거기에 인력이 또 생겨. 그 주변에 있는 먼지가 하나씩 하나씩 계속 끊임없이 모이기 시작하는 거. 그 전부 인연이야. 그게, 연기라구요. 인연의 법칙이라 그게. 그래서 이제 나중에 지구만한 크기로 커지고 그래서 이제 부딪히면서 또 흡입하면서, 흡입할 때 부딪히거든요. 그러면서 또 깨지기도 하면서 열이 난다구요. 그래서 그 열이 나중에 식기 시작하잖아. 세월이 오래 가서 식기시작.
시간이 가면은, 시간도 이제 시절인연이라 그런것입니다. 시간이 가는 것도 시절인연이에요. 시절인연이 경과함으로 해서, 예를 들어서 이 지구가 서서히 식기 시작하지않습니까? 전부 인연도리로 설명합니다. 불교는, 그래서 기가막힌 발견이라고 그렇게 보는거요. 그러니까 현대과학이 발전할수록 불교의 이론에 접근하고 있다. 차츰차츰 접근하고 있다.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모든 존재를‘그 본질은 공이다.’라고 보는 것도 지금 현대물리학에서도 다 이미 알아낸 일이고요. 그걸 3000년전에 부처님은 이미 다 설파를 했다 하는데대해서 정말 이제 똑똑한 사람들, 그 유럽 사람들 얼마나 그 자기들 지식과 또 어떤 그 문명의 발전에 얼마나 높고 높은 자존심을 가졌는지 말도 못하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불교를 요즘 얼마나 좋아합니까? 불교이론이 너무나도 과학적인데 이렇게 이 시대에 말하자면은, 우리는 인류의 그 소위 5,6000년의 역사를 경과하면서 쌓아간 어떤 그런 그 과학적인 발견과 이론인데, 아 부처님은 3000년전에 그런 말씀을 경전에서 다 했거든요. 뭐 요즘 사람들처럼 실험은 하지 안했어요. 실험은 하지 안했지만은 다 말씀으로 팔만대장경안에 했으니까 그러니까 그것을 알게된 유럽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들의 그 현대문명을 이끌어간 그런 그 과학발전에, 콧대높은 그런 그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불교이론앞에는 그만 머리를 숙이는 거요.
우리가 그렇게 된 상황들을 널리 깊이 이해를 하지 못해서 그렇지 가끔 뭐 보도에 의하고 또 그 서적같은데 보면은 그런 경향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기 이제 種種因緣이라고 하는 것은 확실하게 인연도리를 이야기하는데, 심지어 이 지구가 처음 생긴것도 인연이고 그래서 식고 나서는 거기에 이제 말하자면 수증기가 생기게 되고 그래서 이제 수증기가 생기면 습기가 있게 되고 습기가 많아지면 물이 생기게 되고 물이 생기면 그 다음에 거기에 뭐가 미생물이 생기게 되고 미생물이 이제 시간이 경과하면은 그야말로 식물같은게 생기게 되고 꼼지락거리는 벌레가 생기게 되고 그게 자꾸 인연세월이 경과함으로해서 시절인연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시절인연이 플러스가 되거든요. 시절인연이 플러스가 되니까 그 봄에 싹도 트잖아요.
싹만 가지고 되는게 아니야. 거기 시절인연이 플러스가 되야 그게 싹이 트고 잎이 피는 거여. 요즘 잎이 피는 걸 다 보지 않습니까? 그 참 묘한 거여. 나무가 살아있다고 잎이 피는게 아니여. 거기 시절인연이 거기에 만나져야, 인연이 만나져야 이제 잎이 피는거여. 그게 시절인연이거든요. 그 또 시절인연이 또 되면은 잎이 지기도하고, 그 인연으로 파악한 참 부처님의 아주 뛰어난 견해가 참 놀랍다고 지금 찬사가 보통이 아닙니다. 지금
그래서 이『법화경』에서도 여러번 나오지만은 種種因緣 가지가지 인연들 뭐 지구가 생긴 인연, 사람이 생긴 인연, 우리가 뭐 불법을 만나게 된 인연 모든게 다 인연이다. 지금 뭐 경제시장이 어렵게 돌아가는 것도 다 그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인연이 다 있습니다. 그걸 이제 현명한 사람들은 알고 있죠. 그리고 또 그 인연도리뿐만아니라 비유와 말씀, 言辭로써
方便說法은 皆爲阿縟多羅三藐三菩提耶아
방편으로 설법하신 것은 다 이것을 위해서다. 무엇을 위해선고하니? 阿縟多羅三藐三菩提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지 아니했더냐 이 말이여. 그것을 위한 거라고 말하지 아니했더냐. 不言을 거기다 갖다 새기는 거죠. 그러니까 阿縟多羅三藐三菩提 자주 말씀드리지만은 최상의 깨달음, 최상의 깨달음이라고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최상의 그 깨달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히 내가 가르치고 있는 불교 최상의 가르침이다 이런 말입니다.
내가 그 사리불아 그전에 그런 이야기 실컷했는데, 이 사리불은 참 똑똑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아 저것은 자기보다도 더 수준높은 보살경지에 간 사람들이나 해당되는 것이고 우리에겐 해당되는게 아니다.’하는 그런 그 조그만한 좁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가지고 귀담아 듣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내가 이렇게 열을 내서 말씀을 드려도 귀담아 듣지 못하고 엉뚱하게 집에가서 일하다가 그게 터지는 거여.“아 이거 참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이게 바로 내가 오늘 저지른 이 실수하고 딱 맞아 떨어졌구나.”어느 날 딴데가서 그걸 깨닫게 된다고
사리불도 마찬가지야. 과거에 부처님 수없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와서『법화경』공부하는데 와가지고 비로소 사리불이 깨닫게 되는겁니다. 그래 여기 그런 내용들이에요.
사리불아 내가 먼저 諸佛世尊이 種種因緣과 譬喩言辭로써 方便으로 說法한 것은 전부 모든 사람들이 다 阿縟多羅三藐三菩提 최상의 깨달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했던가?
是諸所說이 皆爲化菩薩故니라
이 모든 설한 것들이, 설한 바가 다 보살들을 교화하기 위한 까닭이니라.
그래 우리 모두 보살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菩薩 여러분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설한 거에요. 그 이제『법화경』은 말하자면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가장 수준높은 경전을 가르치니까 이『법화경』을 인연으로해서 불교에 처음 들어왔던지, 오늘 불교에 처음왔던지 뭐 10년만에『법화경』을 공부하게 되던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법화경』과 인연이 된 사람들은 모두가 다 보살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다 최고수준의 엉겹결에, 불교안에서 최고수준에 이른 사람들이에요.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게,
뭐 이 일이 무슨 이력서에 경력을 조사해가지고“네는『법화경』공부할 자격이 있다. 없다.”이렇게 보는 것이 아니고, 그건 아무 소용없는 거에요. 이게 인연이 돼야『법화경』을 공부하게 되는 것이고『법화경』을 공부하게 된 그 인연은 오늘 불교에 처음 입문한 사람도 다 보살이야.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가르치기, 교화하기 위해서 내가 설한 것이다. 이런 말이여.
然舍利弗아 今當復以譬喩로 更明此義호리니
그러나 사리불아, 그거 내용은 사실 그래요. 여기까지야. 부처님이 일생동안 우리들에게 가르친 전말의 그런 그 내용은 여기까지인데, 그 말가지고 얼른 알아들을 사람이 없다 이거지. 그러니까 알아들을 사람은 다 알아들었지만은 좀 더 많은 대중들에게 이해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가 비유를 하나 들겠다.
지금에 마땅히 다시 비유로써 이 도리, 이 뜻을 다시 밝히리라.
諸有智者는 以譬喩得解니라
이게 유명한 말이요. 모든 지혜있는 사람들은 비유로써 이해를 얻느니라. 得解 이해를 얻는다 그 말이여. 모든 지혜있는 사람들은 비유로써 지혜를 얻느니라.
뭐 이 책은 우리가 친절하게 음을 다 달아놔서 조금만 이렇게 정신차려서 강의를 들으면은 그게 글 새기는 순서, 글 새기는 것까지도 다 알아듣게되고 결국 익숙해질겁니다. 한문에도 익숙해질거에요. 그래 우리 불자들은 조금만 이제 정신차리고 절에 다니면은 아주 소득이 많아. 일거양득(一擧兩得)이 불교공부도 하고 복도 짓고 그 다음에 한문도 터득하게 되는거여. 얼마나 좋아요. 어느 종교에서 한문가르치는 종교가 어딨어? 없어요.
근데 이게 우리나라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옛날부터 중국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중국하고 맞붙어있으니까 그 영향을 받아가지고 한문을 먼저 도입하고 나중에 이제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를 했어. 그렇지만 그게 선조들이 공부한 한문이 쉽게 그냥 없어지나요? 그 지금까지 이렇게 내려온거야. 일본도 마찬가지고 일본도 마찬가지고, 저 남쪽으로 월남이라든지 뭐 인도네시아라든지 말레이시아라든지 중국밑으로 있는 그런 나라 태국이라든지 이런데도 마찬가지야. 우리만 그렇게 한문영향 받은게 아니에요. 중국 주변국가들은 다 그렇습니다. 그 발음이 좀 달라서 그렇지. 음이 달라서 그렇지 거의 다 한문을 쓰고 있거든요.
그래서 어쩔수없이 우리는 한문으로 된 경전을 선조들이 다 공부해왔고 지금 이 세대까지 한문으로 된 경전을 이렇게 공부하게 되는데 또 좋은점이 많아요. 덕택에 한문알게 되잖아요. 한문알게 돼. 중국여행가서 어지간한 한문 다 읽는다고요. 조금만 정신차리고 공부를 하면은, 그 아주 그 소득이 많습니다. 그 덮어놓고 이게 복된다 하니까 가가지고 그냥 냅다 관세음보살만 부르면서 10년, 20년세월 그렇게 보낼게 아니고 불교안에 과연 어떤 상품들이 있는가? 백화점에 들어갔으면은 그 쭈욱 한 번 구경삼아 돌아봐야 될거 아뇨. 뭐 백화점 새로 생겼다고 내가 선전하는 것이 아니고 아 좀 구경부터 해야될거 아뇨.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것, 자기가 필요한 물건 그거 딱 거기가서 꼭 집어서 사면 되는 거라.
마찬가지로 불교도 불교에 입문하면은 불교에 그 저기 상품들이 어떤게 있는가 쭈욱 살펴봐야 될거 아뇨. 이게 10년이 가도 안 살피고 20년이 가도 안 살펴본다. 그만, 참 갑갑해죽겠어. 참 답답한 사람들 많아요. 아 1, 2년 같으면 내가 말도 안해. 10년, 20년 다니면서 불교안에 어떤 상품이 있는가를 좀 눈여겨보고 살펴보고 정말 뭐가 나한테 유익하고 가정에 어떤것이 좋고 내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좋은 영향을 미칠꺼리가 있느냐? 백화점에 가면 우리식구 뭐 사다줄거 선물 사다줄거 그거 눈여겨 잘 보잖습니까? 불교안에도 다 있어요. 다
그래 좀 그렇게 눈을 크게 뜨고 여러 가지로 자기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말 자기발전에 도움이 되는 그런 그 가르침들에 눈을 떠서 공부를 하면은 정말 아주 그 아주 간절하게 드린 정성과 그 노력으로 뭐 얼마나 참 지혜있고 지식도 많이 쌓이고 참 훌륭한 그런 불자가 될 수 있었을텐데 시간을 그렇게 이제 뭐 그야말로 전혀 헛소비는 아니지만은 그러나 좀 이제 발전이 더디다 하는것입니다. 발전이 너무 더디다. 그래서 이제 안타까워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래 지혜로써, 지혜있는 사람들은 비유로써 이혜를 얻는다. 여기서부터 이제 비유에요. 여러분들이 다 잘아는 화택비유입니다.‘화택비유(火宅譬喩) 삼계화택(三界火宅)’이 세상은 불난집과 같다.‘불난집에서 무슨 그 어린아이들처럼 장난이나 하고 있을게 아니라 부처님의 그 올곧은 가르침을 귀담아 듣고 정말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눈뜨도록 하라.’하는 그런 내용이에요.
여기는 이제 그야말로 어리석은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비유를 아주 자상하게 하고 또 이 사바세계 이 세상의 고통과 많은 문제점들에 대해서 아주 그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48 舍利弗 若國邑聚落 有大長者 其年衰邁 財富無量 多有田宅
사리불 약국읍취락 유대장자 기년쇠매 재부무량 다유전택
及諸僮僕
급제동복
舍利弗아 若國邑聚落에 有大長者하니
사리불아 만약 國邑 나라의 어떤 읍과 어느 그 마을에 聚落에, 어느 마을에 대장자가 있다고 하자.
其年衰邁하대 財富無量하고 多有田宅과 及諸僮僕하며
그의 나이는 衰邁해. 아주 늙었다 이 말입니다. 늙었으대 그런데 재산과 그 부가 한량이 없어. 집도 한 두 채 있는 것도 아니고 논밭도 무수히 많아. 그렇게 많이 전택과 그리고 이제 종들도 무수히 많다.
인도의 지금부터 2500년 내지 2000년 이전의 사회사정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우리가 감안하고 들어야지요.
49 其家廣大 唯有一門 多諸人衆 一百二百 乃至五百人 止住其中
기가광대 유유일문 다제인중 일백이백 내지오백인 지주기중
堂閣朽故 牆壁隤落 柱根腐敗 梁棟傾危 周帀俱時 欻然火起
당각후고 장벽퇴락 주근부패 양동경위 주잡구시 훌연화기
焚燒舍宅
분소사택
其家廣大하대 唯有一門하고
그 집은 광대해. 아주 넓어. 근데 이건 비유니까, 오직 한 문만 있었다. 뒷문도 있고 옆문도 있고 앞문도 있고 그런것이 아니고 오직 앞문 하나만 있었다. 그런데
多諸人衆하대
많이 人衆이 많아. 사람무리들이 그 속에 많이 살아. 워낙 집이 넓고 큰~ 부자집이니까. 집이 뭐 그 안에 수백 채가 있다 이거지.
一百二百으로 乃至五百人이 止住其中이러니
일백, 이백 내지 오백명이 그 가운데, 그 집속에 살고 있었는데
堂閣朽故하고
堂閣 집 당(堂)자입니다. 집하고 전각들이 다 이지러지고 오래돼서, 그게 이제 연고 고(故)자를 쓴 것은 다 이제 연고가 생겼다. 이런 말은 전부 이제 기울어지고 뭐 틈이 가고 넘어지고 그저 정말 뭐 집이 허물어질 그런 상황이다 그말여. 朽故하고
牆壁隤落하며
집을 이제 받치고 있는 담이라든지 뭐 벽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전부 隤落이라. 무너지고 자빠지고 그런 상황이다.
柱根腐敗하고 梁棟傾危라
기둥과 기둥뿌리는 전부 오래돼가지고 부패했어. 기둥과 서까래나 이런 것들이 전부 이제 기울어지고 위험하게 그렇게 된 상황이다. 그런데
周帀俱時에 欻然火起커늘
두루두루 동시에 俱時에, 俱時라고 하는 건 동시에 훌연히 훌훌 홀연히해도 돼요. 홀연히 그 불이 타. 일어났어. 불이 일어나가지고서
焚燒舍宅커늘
舍宅을 焚燒하는 거요. 집을 막 태우기 시작하고 있다.
50 長者諸子 若十二十 或至三十 在此宅中
장자제자 약십이십 혹지삼십 재차택중
長者諸子도 若十二十으로 或至三十히 在此宅中하니라
장자의 여러 아들들도 20명 내지 30명이, 아들들도 또 이렇게 30명이나 되요. 또 많아.
이거 다 숫자가 또 이제 그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저 안에 또 500명이나 되는 사람이 있었다.’하는 것도 또 5자란 숫자를 많이써요. 그게 왜 그런 이야기가 돼 있는고 하면은, 부처님의 그 가르침이 차츰차츰 발전해가지고 대승불교에 와가지고서 이런 대승경전으로까지 발전을 해서 이『법화경』이 한 500년경에,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한 500년경에 이게 결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5자를 잘 써요. 그래서 뭐 후오백년해가지고 500년씩 500년씩 끊어서 한 단위로 계산하는 그런 그 말세론도 있기도하고 그렇죠.
그래서 30명이나 되는 그 아들들이 그 집에 있었다.
51 長者 見是大火從四面起 卽大驚怖
장자 견시대화종사면기 즉대경포
長者가 見是大火從四面起하고 卽大驚怖하야
장자가 이 큰 불이 사면으로 쫓아 일어나는 것을 보고 곧 驚怖 아주 크게 놀랬다 이 말이요.
아버지 입장에서 얼마나 놀래겠어. 아들이 30명이나 되는, 그것도 어린 아들이 30명이나 되는 숫자가 그 안에서 장난치고 놀고있으니까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요.
52 而作是念 我雖能於此所燒之門 安隱得出 而諸子等 於火宅內 樂著
이작시념 아수능어차소소지문 안은득출 이제자등 어화택내 낙착
嬉戱 不覺不知 不驚不怖 火來逼身 苦痛切已 心不厭患 無求出意
희희 불각부지 불경불포 화래핍신 고통절이 심불염환 무구출의
而作是念하대 我雖能於此所燒之門에 安隱得出이나
이런 생각을 하대. 내가 비록 능히 이 불타고 있는 이 문에서, 나야 뭐 어른이고 또 어디든지 나갈 수있고 담을 뛰어서 나갈 수도 있고 그래서 편안하게 나갈 수가 있어. 그런데 그러나
而諸子等이 於火宅內에 樂著嬉戱하야
여러 아들등이 火宅내에서 아주 즐겁게 집착해가지고 희희낙거리고 논다. 장난치고 노는 것을 嬉戱라고 그래요. 즐거움에 집착해서 嬉戱 놀이를 하면서 그렇게 즐기면서
不覺不知하고 不驚不怖하며
뭐 불이 났으면 얼마나 절실하고 급박하겠습니까? 그런 것 전혀 모르는 거야.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 못하고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아니해. 어린 아이들은 불나면 불장난하기 좋아서 더 아주 신나하고 재밌어하는거야.
그러니까 광경을 큰~ 마을같은 그런 그 한 저택, 거대한 저택 그 안에 마당도 물론 많고 못도 있고 뭐 별별 나무도 있고 집도 수백 채나 되고 그런데 쭈욱 담이 둘러쳐져가지고 집에 문이 한 쪽으로만 딱 나있다. 이렇게 이제 한 번 상상을 해 보세요. 그래서 이제 그 안에서 이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이제 놀래.
火來逼身하야 苦痛切已라도
불이 막 나가지고서 몸을 핍박해. 핍박해서 고통이 切已야. 고통이 아주 절실하고 심하다 이 말입니다. 그렇더라도
心不厭患하고 無求出意로다
마음에는 厭患 마음에는 불을 싫어하거나 근심스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거기서 이제 求出할 생각도 없더라. 이런 말입니다. 나갈 생각도 없어.
53 舍利弗 是長者作是思惟 我身手有力 當以衣裓 若以几案
사리불 시장자작시사유 아신수유력 당이의극 약이궤안
從舍出之 復更思惟 是舍唯有一門 而復狹小
종사출지 부갱사유 시사유유일문 이부협소
舍利弗아 長者作是思惟하대 我身手有力이라
사리불아 이 장자가 이러한 생각을 다시하대. 나는 몸에 힘이 있다. 어른이니까 몸과 손에 힘이 있음이라.
當以衣裓이나 若以几案으로
마땅히 옷, 이 衣裓이라 하는 것은 큰 바구니입니다. 궤로 짠 아주 그 옷담는 큰 바누니라. 그거나 아니면 저기 아주 그 책상같은 거, 서랍같은 거. 큰 책상서랍같은 거 이런 것으로써
從舍出之호리라
그런 걸 이제 아이들을 거기다 담아가지고 나갈 수도 있다 이거여. 그래봤자 몇이 못 담잖아요. 한 번 하나에 그 한 사람이나 두 사람밖에 더 담겠어요? 그런 생각도 했다. 또다시 이런 생각도 하는 거야.
復更思惟하대 是舍唯有一門하고 而復狹小어늘
다시 또 이런 생각을 하대. 이 집에는 오직 이 한 문만 있고 협소야. 집이 이제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가기가 아주 협소해. 너무 좁아.
諸子幼稚하야
여러 아들들은 幼稚야. 정말 유치원생과 같은 그런 그 어린아이들 그저 너댓 살 되고 대여섯 살 밖에 안되는 그 정도의 그 어린아이들이라.
未有所識하고
아는 바가 있지 아니해. 천지도 모른다 이거여. 참 기가막힐 거여.
집에 불이 나가지고 타고 있고 나중에 한꺼번에 다 타게되면 결국 오도가도 못하고 그 안에서 타 죽을텐데, 그 불장난을 오히려 좋다고 아이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니 아버지로써 그 얼마나 기가막히겠어요? 내가 우리 어머니한테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쎄게 얻어맞은 적이 있는데, 정말 얻어맞은 적이 있어. 이걸보니 그 생각이 나네.
6.25때 젊은 사람들은 모를거요. 6.25가 뭔지? 그 전쟁이 나가지고 그 비행기가 함포사격을 막 하는 거야. 사격을 하는데 총알이 우리 엄지 손가락만해. 그게 이제 그때 뭐 초가집이나 기와집 할것없이 앉아있으면 그냥 집에다 쏘면은, 그 말하자면은 지붕을 뚫고 방에 풍 풍 풍 풍 막 그냥 그 쏟아지는 거야. 그것도 일렬로 좌~악 가면서 쏟아지는 거라. 그 이제 나는 그때 재밌어가지고서 그게 마을을 폭격하고, 저쯤가면은 마을 끝에 가면은 밭이 많아요. 밭과 논이 많이 있는데 그 쯤가면 그 총알껍질을 쏟아붓는 지역이야.
그래 마을을 여기서부터, 이게 마을이라면 여기서부터 폭격을 해서 촤악 촥 지나가면 저쯤가서 확 쏟아부어요. 그걸, 총알껍질을 쏟아부어. 그걸 주으러 가려고 우리 친구들하고 그걸. 뭐 그거 떨어지면 맞아죽는지 아닌지 생각 안하는 거야. 여기 애들하고 똑같아. 그걸 맞으면은, 그 총알하고 훨씬 달라요. 총알은 작지만은 그 작은것에 맞아도 죽는데 이거는 상당히 굵은 총알이야. 굵은 포야. 그런데 그 껍질 주으러 거기 가가지고 그냥 한아름 주어가지고는 그것도 이리 조립을 하면요. 권총같이 된다고요. 조립을 해가지고 권총이라 해가지고“빵 빵”이제 쏘는 흉내도 내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거 주으러 가가지고 실컷 주어서 재밌다고 좋다고 그걸 들고 오니까, 이제 피난을 가는데 보따리에 다 싸놓고는 아를 찾는데 아가 없는거야.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겠어요?
계속 함포사격 그 비행기는 이제 사격을 하고 계속 집을 뚫고 막 내려오는 거야. 그 줄 이렇게 서가지고 말하자면 폭격을 하는데 거기에 만약에 그 선에 있기만 하면 이건 뭐 꼼짝없이 가는 거야. 아무소리도 못하고 가는 거야. 그건, 그게 계속 오면서 비행기가 왱왱하면서 함포사격을 하는데 보따리 다 싸놓고 피난갈려고 아를 찾아보니까 없는거야. 그 나중에 재밌어가지고 그걸 한 보따리 들고 이제 좋다고 집에 들어오니까 허허허 어떻게 됐겠어요 그거? 정말 정말 그때 하여튼 쎄게 한 번 맞았네.
등짝을 얼마나 힘차게 뚜드려패는지... 허허 여기 얘들하고 똑같았어요. 정말 대여섯 살 밖에 안되면은 아무것도 그건 뭐 포사격 그 들어온지 모르는 거야. 지한테 안 맞았으니까. 옆으로 쑤욱 지나가니까 재밌다고 보는 거야. 그게, 그래 여기는 총알껍질이 수루룩 쏟아지고 그 가서 또 안오나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거야. 하늘쳐다보면서 그걸 기다리고 있는거야. 그 쑤루룩 쏟아지면 얼른 가서 주어가지고, 뜨끈뜨끈해요. 아직도 만져보면은, 그걸 주어가지고는 재밌다고 조립을 해가지고 총알처럼 총처럼 그렇게 장난치고 논다구요.
나이 어리면 그래. 그래가지고 그 아까운거야. 내한테는 정말 아까운건데 한 아름 안고 왔는데, 그렇게 힘차게 얻어 맞고 사정없이 그 내팽겨치고 버리고는 그때사 이제 이고지고 이제 끌려가지고 이제 피난을 그때 간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인민군들이 거의 뭐 우리보다 불과 몇 살 더 먹지 않았어요. 그래 이제 어린아이들이라. 그런 애들이 그 동네 주둔해가지고 있으면서 우리가 가면은 이제 또 이것 저것 총 만지는 것도 가르쳐주고 그래요. 그 뭐 인민군인지 무슨 국군인지 모르는 거야. 우리는, 그냥 재밌기만 하는 거지. 그래서 총 내놓고 총 쏘는 법도 가르쳐주고“이건 총이다.”하고 총알은 어떻다 하고 가르쳐주는 게 그게 좋아서 거기가서 노는 거야. 또 거기가서 놀다가 왔다가 또 야단이야.
여기보니까‘諸子幼稚해서’그야말로 유치해가지고서 未有所識이야.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어. 그게 뭐 총알을 맞으면 죽는지 뭐 사는지도 몰라.
戀著戱處라가
戱處 장난치는 곳에 戀著 아주 사랑스럽고 좋아가지고
그거 뭐 그 끌려가면서도 총알 쏟아 붓는데 자꾸 고개가 돌아가더리니까.‘거기가서 저 주어야 되는데...’하고‘저 껍질주어야 되.’그게 戀著戱處야. 장난치고 놀 그곳을 戀著하는 거야. 사랑해서 좋아해가지고서 집착하다가
或當墮落하야
혹은 집이 그냥 떨어져 나간다 이거여. 불타다가 떨어져 나가잖어. 或 마땅히 墮落함을 당해서, 집이 떨어짐을 당하거나 서까래가 떨어지거나 뭐 지붕이 떨어지거나 그런걸 당해가지고서
爲火所燒리니
불에 타는 바가 될 것이리니
그렇죠. 총알 쏟아 붓는데 거기가서 그 총알껍질 줍는다고 하다가 그만 거기에 총에 맞게 되거든요. 거기에 이제 불에 타는 바가 되리니
我當爲說怖畏之事하대
내가 마땅히 그들을 위해서 두려운 일을, 怖畏한 그런 아주 두려운 일이다. 이 불난것은 집에 불난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다 라고 하는 것을 내가 설명하대
此舍已燒하니 宜時疾出하야 無令爲火之所燒害리라하야
이 집은 이미 타고있다 말이야. 적당한 때, 지금이 아주 도망가기 좋을 때다. 적당한 때에 疾出 빨리 집에서 벗어나서 하여금 불에 타서 그 손해를 입는 害를 입는 바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 라고 그렇게 해서
作是念已하고
이런 생각을 하고‘아 그래야 되겠다. 얼른 내가 불이 위급한 것을 설명하고 나서 애들이 이제 그 불에 타면은 죽는다. 큰일난다. 이렇게 해가지고 설명을 해가지고 내가 애들을 데리고 나가야 되겠다.’그렇게 하고는
如所思惟하야 具告諸子하대 汝等速出하라
사유한 바와 같이해서 여러 아들들에게 함께 告하대. 아들들 모아놓고 그 이야기를 해.“너희들은 빨리 나가라.”하니라.
55 父雖憐愍 善言誘喩 而諸子等 樂著嬉戱 不肯信受 不驚不畏
부수연민 선언유유 이제자등 낙착희희 불긍신수 불경불외
了無出心 亦復不知何者是火 何者爲舍 云何爲失 但東西走戱
요무출심 역부부지하자시화 하자위사 운하위실 단동서주의
視父而已
시부이이
父雖憐愍하야 善言誘喩하나
아버지는 비록 憐愍히 여겨가지고 좋은 말로써 달래고 달랬으나, 달래고 깨우친다 이 말이요. 誘喩라고 하는 거. 달래기도 하고 깨우치기도 하고 설명도 하고 뭐 온갖 말을 다해.‘불 지금 났는데 여기 조금있으면 이제 우리 오도가도 못하고 불에 다 타 죽는다. 큰일난다.’이런 생각 이런 설명을 자꾸 하는 거여. 善言으로 誘喩라.
而諸子等은 樂著嬉戱하야
그래도 애들은 그저 그 설명 귀에 들어오나? 설명 안들어 오는거여. 냅다 그냥 주먹으로 등짝을 쳐야, 쳐도 될까 말까 그래도 그래도 그 총알껍질 떨어지는 데로 자꾸 고개를 돌리면서‘저기가서 주워야 되는데...’그러는게 아이들의 생각이라. 樂著嬉戱해서
不肯信受하며 不驚不畏하야
기꺼이 믿고 받아 들이지를 아니해. 不肯信受 기꺼이 믿고 받아 들이지를 아니하며 놀래지도 아니하고 두려워하지도 아니해. 전혀 두렵지 않다니까. 옆으로 그냥 아 방에 있는데 방 그저 천장을 뚫고 그냥 총알이 쏴악 쏟아진다니까요. 그래도 우리는 하나도 두려운 걸 몰랐어. 어린게 좋기는 좋아. 그런것보면은
了無出心하며
마침내 나갈 마음이 없다 이 말이여. 피난 갈 마음이 전혀 없어. 그저 총알껍질 주으러 가는 것만 계속 생각하고 있는 거지.
亦復不知何者是火며 何者爲舍며 云何爲失고하고
여 보십시오. 또한 다시 알지를 못한다. 무엇을 알지 못하는고 하면, 무엇이 불이냐? 불이라는게 뭐냐 이거여. 무엇이 집이냐? 어떤게 손실이냐? 뭐 집이 타고 사람이 죽고 하는 거 그걸 모르는 거요. 그런것들도 알지 못해서
但東西走戱하야 視父而已러라
다만 동으로 서로 달리면서 장난만 치는 거여. 장난치고 놀아서 아버지를 물끄러미 아버지가 좋은 말로“지금 불이 났는데 큰일났다. 얼른 나가자. 여기 타면 어쩌려고 그러냐?”하는 소리를 해도 아버지를 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視父而已라. 이건 이제 아버지를 쳐다보기만 할 따름이다.
참 얼마나 아버지 속 타겠어요? 그러니까 죽어라고 그냥 막 있는 힘 다해서 등짝을 내려 칠 수 밖에 없는 거지.
56 爾時長者 卽作是念 此舍已爲大火所燒 我及諸子 若不時出
이시장자 즉작시념 차사이위대화소소 아급제자 약불시출
必爲所焚 我今當設方便 令諸子等 得免斯害
필위소분 아금당설방편 영제자등 득면사해
爾時長者가 卽作是念하대 此舍已爲大火所燒하니
그때 장자가 곧 이런 생각을 하대. 이 집은 이미 큰~ 불에 타는 바가 되고 있으니
我及諸子가 若不時出이면 必爲所焚하리니
나와 그리고 여러 아들들이 만약 이 때에 때맞춰서 나가지 아니 할것 같으면 반드시 여기서 다 불에 타 죽고 말 것이다. 내가 지금 저 아이들두고 아버지만 나갈 수가 없죠 또. 그러니까 다 타 죽게 되는 거지.
我今當設方便하야 令諸子等으로 得免斯害호리라
내가 지금에 마땅히 방편을 베풀어서 여러 諸子들로 하여금, 여러 아들들로 하여금 이 손해를, 이 말하자면 사람이 죽고 아버지와 아들이 다 죽게되는 불에 타죽게되는 이것을 여기에 害라고 그래요. 이 피해를 이런 큰 피해를 면하도록 내가 해야되겠다. 방편을 베풀어서, 이런 말입니다. 이게 중요한 거에요. 方便 마땅히 내가 방편을 베풀어서 여러 아들들로 하여금 마땅히 이 피해를, 이 피해를 면하도록 해야 하겠다. 하고
57 父知諸子 先心各有所好 種種珍玩奇異之物 情必樂著 而告之言
부지제자 선심각유소호 종종진완기이지물 정필낙착 이고지언
汝等所可玩好 希有難得 汝若不取 後必憂悔
여등소가완호 희유난득 여약불취 후필우회
父知諸子가 先心各有所好인
아버지가 알고 있다 이거여. 무엇을 알고 있는고 하니? 이 여러 아들들은 먼저 마음에, 애들 생각은 말이야. 애들 마음은 各有所好인 각각 애들이 좋아한,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바인
種種珍玩奇異之物하고
아주 가지가지 아주 가지고 노는 그런 그 아주 장난감. 장난감 그런 그 희한한 그런 그 장난감. 어른이 보기에는 그 아무것도 아니죠. 그냥, 그런데 아이들에게 그게 장난감으로 아주 좋은거요. 총알껍질 그거 모아가지고 그 이래 만들고 저래 만들고 해가지고 한 장난치기가 그 얼마나 재밌고 좋은데 그런 奇異之物이 바로 그 말입니다. 珍玩奇異之物을 생각하고
情必樂著이라
정을 가지고 이제 정에 붙여가지고 반드시 樂著한다 하고 이렇게 거기에 집착하고 있다. 애들은 그걸 좋아하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아버지가 생각한거요. 저 앞에서는 아무리 불이 위험하다. 뭐 설득하고 달래고 설명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 애들 수준에 안맞아. 그러니까 애들 수준에 맞는 걸로 해야된다고요. 그래서
而告之言하대
아이들에게 말하는 거야.
汝等所可玩好는 希有難得이라
너희들이 좋아하는 바 장난감은 참 희유해서 얻기 어려움이라.
汝若不取하면 後必憂悔하리라
너희들이 만약에 그것을 지금 갖지를 아니 할것 같으면은 뒤에 반드시 근심하고 후회할 것이다. 이렇게 이제 먼저 떡 말해놓고는
58 如此種種羊車鹿車牛車 今在門外 可以遊戱 汝等於此火宅
여차종종양거녹거우거 금재문외 가이유희 여등어차화택
宜速出來 隨汝所欲 皆當與汝
의속출래 수여소욕 개당여여
如此種種羊車鹿車牛車가 今在門外하니
이와같은 가지가지 羊車鹿車牛車가 저 뒤에 우리 대문 있지 않냐? 대문 그 밖에는 너희가 좋아하는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 이 삼승(三乘)이에요. 세 가지 수레를 문 밖에다 내가 놔뒀어. 이 집안에서 끌면 좋겠지만은 그 문 밖에 나가면 탄탄대로가 막 어디까지 펼쳐져 있으니까 거기서 그것들을 타고 놀면은 장난하기가 딱 좋다. 그러니까 글로 나가서 우리가 그거 가지고 장난치고 놀자.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요.
요즘 애들도 그 자동차, 장난감 자동차 좋아하잖아요. 어찌 이렇게 잘 맞는지? 요즘 저 그 아이들의 성향하고 참, 깨달은 사람들의 지혜라고 하는 것은 참 무서울 정도로 대단해요. 보십시오. 장난감도 차로 만들었잖아요. 차. 그때도 이 생각을 한거요. 그때 아이들도 아마 차를 좋아했나봐. 수레. 요즘 애들도 자동차 좋아하거든
지금 문 밖에 있다 이거여.
可以遊戱라 汝等於此火宅에 宜速出來니
그 나가서 그걸 가지고 우리가 遊戱하자. 장난치고 놀자. 汝等은 이 화택에서 마땅히 빨리 여기서 이제 나갈지니
隨汝所欲하야 皆當與汝하리라
너희들의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서, 너희들의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서 다 마땅히 너희들에게 주겠다.
너가 제일 좋아하는거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 저 밖에, 문 밖에, 대문 밖에 나가면 있다. 그걸 가지고 우리가 우리 장난치면서 놀자 이 말이여.
59 爾時諸子 聞父所說珍玩之物 適其願故 心各勇銳 互相推排
이시제자 문부소설진완지물 적기원고 심각용예 호상퇴배
競共馳走 爭出火宅
경공치주 쟁출화택
爾時諸子가 聞父所說珍玩之物이 適其願故로
그때 여러 아들들이 아버지가 말한 바 珍玩之物 아주 그 기기묘묘한 물건이 그 자기들이 원하는 바, 소원한 바에 딱 맞는 것을 듣고는 들음으로
心各勇銳하야 互相推排하며
마음이 각각 벌떡 마음이 일어난거여. 뭐 집에서 불장난하고 노는 것보다 좋~은 수레가 저기 문 밖에 있다니까 그만 거기에서, 勇銳라고 하는 말이 그냥 마음이 각각 다 포기해버리고 그냥 그 생각만 하게 되는 거야. 갑자기 그냥 퍼뜩 생각이 그 쪽으로 기울어져가지고서
互相推排하며
즉 서로서로 밀고 먼저 나가서 아이들이 그 羊車, 鹿車, 牛車를 차지할려고 이렇게 된다니까. 아이들 마음은 그렇거든요. 그때부터 그냥 서로 밀치면서 서로 나갈려고, 나가서 먼저 그 수레를 차지할려고 그렇게 하며
競共馳走하야 爭出火宅하니라
다투면서 같이 그냥 달려서 그쪽으로 향해서 이제 나가는 거라. 그래서 火宅을 나갈려고 다툴 정도로 서로 경쟁하고 다툴 정도로 그렇게 하더라.
요 互相推排니, 競共馳走니. 競자니 또 爭자 이런 것들이 애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서로서로 거기에 말하자면은 마음이 그 빼앗겨가지고 옆도 뒤도 안돌아보고 자기 친구들이고 형제들이고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쪽으로 사람의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 그런 그 어떤 그 심리상태를 이렇게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그렇죠 뭐.
우리가 좋아하는게 뭐겠어요?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뭐 그냥 물불 안가리고 무슨 뭐 안면 안가리고 심지어 형제, 자매, 부모까지도 안가리잖아요. 지금 세상의 그 인심이라는게 그렇게 돼있지 않습니까?
여 애들도 보십시오. 互相推排란게 뭐요? 서로 밀치고 넘어뜨려 버리고 밟고 그냥 나간다는 거지. 지금 그러잖아요. 허 재벌들 그 보십시오. 돈이 많으니까 계속 끊임없이 그냥 신문에 재산싸움가지고, 그게 전부 이렇게 표현된거요. 競共馳走여. 다투면서 가. 다툴 경(競) 경주할 때 서로 앞질러 갈려고 하는 그런 그 어떤 상태. 爭出火宅이여. 다퉈서 화택을 나가더라.
어쨌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런 그 수레가 있다고 방편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60 是時長者 見諸子等 安穩得出 皆於四衢道中 露地而坐 無復障礙
시시장자 견제자등 안온득출 개어사구도중 노지이좌 무부장애
其心泰然 歡喜踊躍
기심태연 환희용약
是時長者가 見諸子等이 安穩得出하야
그때 장자가 보니까 여러 아들들이 편안하게 하나도 불에 타지않고 문 밖으로 다 나왔어. 安穩得出이야. 安穩하게 편안하게 벗어남을 얻은것을 이제 얻어서
皆於四衢道中에 露地而坐하야
네 거리 길에, 그 인제 밖에 나가면 큰 대로가 있으니까 네 거리 길에 거기에 다 나와있어. 그 쫓아 나오느라고 숨도 가쁘고 힘들었겠죠. 그 露地에 그냥 땅바닥에 떡 모두 앉아 있는 것을 이제 보아서 보고 보니
無復障礙하고 其心泰然하야
더 이상 아이들이 장애가 하나도 없어. 그 마음이 태연해서 그래 그걸 보고는 그 마음이 너무나도 편안하고 태연해서, 아이고 아이들이 금방 불에 타 죽을뻔 했는데 정말 그 다행히 내 거짓말 내가 방편으로 한 그 거짓말 이야기를 듣고, 그나마 거짓말이지만 그나마 나와가지고 저렇게 있으니 얼마나 아버지 마음이 놓이겠습니까? 그 마음이 泰然해서
歡喜踊躍이러라
아주 뛸듯이 환희했다.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안 그랬겠어요? 아버지가 아들들이 그렇게 하나도 불에 안타고 다치지도 않고 밖으로 다 나왔으니, 자기가 거짓말했던 것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너무 기쁘고 안도하는 마음이 충만할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래 歡喜踊躍이야. 너무나도 뛸뜻이 기뻐하였다.
61 時諸子等 各白父言 父先所許玩好之具 羊車鹿車牛車 願時賜與
시제자등 각백부언 부선소허완호지구 양거녹거우거 원시사여
時諸子等이 各白父言하대
그때 제자등이, 다 나왔으니까 일단 다 나왔어요. 그러니까 그때 여러 아들들이 서로 그냥 3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그냥“아버지 왜 우리한테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이런 것들을 줄려고 했는데 왜 안줍니까? 빨리 주세요. 주세요.”
父先所許玩好之具인 羊車鹿車牛車를 願時賜與하소서
아버지께서 먼저 우리에게 허락한 바 아주 그 장난감, 좋은 장난감인 羊車鹿車牛車를 원컨대 이때에 지금 빨리 우리에게 주십시오. 賜與 줄 사(賜)자지. 주십시오. 이렇게 아이들이 조릅니다.
그래 이제 딱 아주 요즘 우리들의 마음하고 하나도 다를 바 없이 그대로 그려놨습니다.
62 舍利弗 爾時長者 各賜諸子 等一大車
사리불 이시장자 각사제자 등일대거
舍利弗아 爾時長者가 各賜諸子에 等一大車하시니
사리불아 그때 장자가 각각 여러 아들들에게 평등하게 큰~ 수레를 줬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양이 끄는 수레 뭐 사슴이 끄는 수레, 작은 소가 끄는 수레 이런걸 줄려고 애들에게 이야기는 했지만은 그게 아니고 평등하게 하나의 큰~ 수레를 줬다 이 말이여. 큰 수레에 대한 이제 大車十二德이라고 그 다음부터 열두 가지 큰 수레에 대한 덕을 이제 여기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제 큰 수레가 뭔고 하니?‘일불승(一佛乘)’회삼귀일(會三歸一)할 때 羊車, 鹿車, 牛車는 三乘 성문, 연각, 보살을 말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이제 그 세 가지 수레를 말하자면은 모두 모아서 하나의 수레. 큰~ 수레라고 했는데 그건 이제 一佛乘 부처의 삶으로 귀결시키는 그런 그 가르침으로 이제 이『법화경』에서 돌아오게 되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여기서 상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뒤에 그것도 설명이 나오긴 나옵니다.
그런데 그 큰 수레는 열두 가지 덕으로 이야기했는데 그게 열두 가지 덕은 바로 부처님의 덕이고 또 그 부처님의 덕은 우리 마음속에 이미 우리가 발견하지는 못했지만은, 발견하지 못했어도 갖추고 있는 우리 마음의 덕이에요.
여긴 수레니깐 일단 수레를 봅시다.
63 其車高廣 衆寶莊校 周帀欄楯 四面懸鈴 又於其上 張設幰蓋
기거고광 중보장교 주잡난순 사면현령 우어기상 장설헌개
亦以珍奇雜寶 而嚴飾之 寶繩交絡 垂諸華瓔 重敷婉筵 安置丹枕
역이진기잡보 이엄식지 보승교락 수제화영 중부완연 안치단침
駕以白牛 膚色充潔 形體姝好 有大筋力 行步平正 其疾如風
가이백우 부색충결 형체주호 유대근력 행보평정 기질여풍
又多僕從 而侍衛之
우다복종이시위지
其車高廣하야 衆寶莊校하며
그 수레는 高廣 높고 아주 넓어. 아주 큰 수레야. 그 다음에 여러 가지 보물로써 꾸몄으며 두 번째에요. 세 번째는
周帀欄楯에
두루두루 돌아가면서 난간이 있어. 그 왜 큰~ 수만 톤 되는 저기 저 여객선 호화여객선 상상해보면 알 수가 있어요. 돌아가면서 전부 나와서 구경할 수 있는, 그 말하자면 객실말고도 밖으로 그런 난간들이 있지 않습니까? 수레도 그런 식으로 꾸몄다 이겁니다. 그리고
四面懸鈴하고 又於其上에 張設幰蓋하대
사면에는 이제 방울을 달았어. 그리고 움직일때마다 그 방울소리가 음악소리가 좔좔 나와. 또 그 위에는 이거는 이제 휘장, 휘장을 이렇게 햇빛이 가리도록 그런 휘장을, 幰蓋는 휘장이죠. 휘장을 베풀어서 펴서
亦以珍奇雜寶로 而嚴飾之하며
또한 아주 진귀한 아주 아름답고 값지고 하는 그런 그 보물로 된 여러 가지 그 보물로써 꾸며서 곳곳에 그 수레를 다 그걸로 꾸몄더라. 그리고 또
寶繩交絡하고
보배끈으로써 보배끈으로써 여기저기 드리워서, 交絡은 이리 걸치고 저리 걸치고 사람들이 이제 밖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줄을 만들어가지고 줄을 만들어가지고 여기저기 걸쳐놓고
垂諸華瓔하며
여러 가지 꽃과 옥돌. 아리따운 그런 그 옥으로써, 빛나는 옥으로써 드리웠으며 華는 여기서 빛날 화자에요. 빛나는 옥돌로써 드리웠으며
重敷婉筵하고
거듭 거듭 婉筵을 폈다. 펼쳤다. 婉筵은 깔개, 좋은 카펫트나 이런 것을 가지고 그 밑에는 바닥에 수레 위에는 사람들이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고 하는데 아주 아름다운 그런 그 카펫을 깔아놨고
安置丹枕하며
그 뿐만아니라 丹忱 아주 그 붉은 수레, 붉은색으로 된 아주 좋은 베개를 거기다가 안치해두고 그렇게 자리는 그 수레안에는 그렇게 됐고 그 다음에 아홉 번짼데
駕以白牛하니
흰 소를 가지고, 하얀 소를 가지고 이제 막 멍에를 했다. 흰 소가 끌도록, 흰 소는 저기 설산에서 비니초라고 하는 향기나는 그런 그 풀만 먹는 그런 그 소다.『능엄경』에는 그런 표현도 있어요. 하얀 소인데 아주 그 향기가 유명한 그런 그 비니초를 먹고 자란 그런 그 소로써 멍에를 했고 그 소는
膚色充潔하며 形體姝好하고
피부색이 아주 充潔해. 힘차보이고 또 아주 곱고 아주 충실하게 그렇게 아주 그런 그 멋진 소다 이 말이여. 소 피부도 그렇게 좋은 피부를 가졌다. 그런데 소가 그 얼굴형이 있거든요. 다, 잘 생기고 못 생기고 다 있다구요. 형체는 아주 예쁘고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그런 모습으로 됐고 그것뿐만아니라
有大筋力하며 行步平正하고
큰 근력이 있다. 힘이 아주 뭐 아무리 그 수레가 크다하더라도 그것을 가뿐하게 끌 수 있는 그런 근력을 가지고 있고 걸어가는 그 行步가 뭐 기우뚱 기우뚱하는게 아니고 아주 평탄하게 정말 이건 뭐 미끄러지듯이 간다 이거야. 사람이 뭐 수레를 탔는지 안탔는지 모를 정도로 행보가 평정하다. 걸어가는 모습이 아주 평탄하고 바르게 걸어가고
其疾如風하며 又多僕從하야
그 빠르기가 바람과 같다 이 말이여. 그 다음에 이제 그것뿐만아니라 그것을 이제 주위에 그 수레를 에워싸고 따르는 호위병들이 그냥 뭐 엄청 많은 호위병들이 주변에 이제 그 수레를 따르고 따르면서
而侍衛之러라
옆에 이제 시봉을 하고 에워싸고 그렇게 호위를 하고 있더라.
이렇게 이제 열두 가지로 나눠요. 大車十二德이라고 해가지고 여기까지가 큰 수레의 열두 가지 덕을 이제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64 所以者何 是大長者 財富無量 種種諸藏 悉皆充溢 而作是念
소이자하 시대장자 재부무량 종종제장 실개충일 이작시념
我財物無極 不應以下劣小車 與諸子等
아재물무극 불응이하열소거 여제자등
所以者何오 是大長者가
까닭이 무엇이냐? 이 대장자가 어째서 그렇게 훌륭한 흰 소가 끌고 크~고 그리고 그렇게 고급스럽게 아름다운 보배로써 장식을 한 그런 그 수레를 아이들에게 주게 되느냐? 이 말이요.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되느냐? 이 대장자가
財富無量하야 種種諸藏이 悉皆充溢이라
재산과 그 부유함이 한량없어. 곳곳에 있는 창고, 보배창고가 가득가득 차 있어. 이 집에는, 창고도 뭐 무수히 많은데 창고마다 보배가 가득가득 차 있어. 그런 사람으로써
而作是念하대 我財物無極하니
이런 생각을 하대‘내가 재물이 한량이 없어.’
不應以下劣小車로 與諸子等이로다
내 아들들에게 저 아주 하열한 아주 조그만한 작은 그런 그 수레로써 여러 아들들에게 줄 것이 아니다 이 말이여.
그 왜 아주 거부장자가 티코를 아들들에게 사줄 택이 있나요? 말도 아니지. 그런 이치에요. 그러니까 이 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하며 왜 그런 시시한 수레로써 아들들에게 주겠어? 그러나 그 아들들은 작은 수레를 이야기해야, 걔들 수준에 맞는 수레를 이야기해야 귀담아 듣지 처음부터 이렇게 비행기 한 대씩 사주겠다 그러면 말도 아니라고 안 듣는다구요. 불난집에서 계속 장난이나 치고 노는거야. 애들 수준이 그러니까 하는 수 없는거지.
그래서 이제 다 나왔으니까 일단은 나왔으니까
65 今此幼童 皆是吾子 愛無偏黨 我有如是七寶大車 其數無量
금차유동 개시오자 애무편당 아유여시칠보대거 기수무량
應當等心 各各與之 不宜差別
응당등심 각각여지 불의차별
今此幼童이 皆是吾子라 愛無偏黨이니
지금 어린 아이들이 다 내 아들들이다 이 말이여. 그 사랑이 아이들에게, 내가 베푸는 그 사랑이 치우친게 없어. 뭐 누구 뭐 누구는 더 사랑하고 누구는 덜 사랑하고 자기 자식한테 그런 사람이 없죠. 우리가 흔히 표현하듯이‘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게 없다.’그런 말 우리가 하듯이, 전부 자기 아들인데 뭐 누구 아들은 곱고 뭐 어느 자식은 덜 사랑스럽고 할 까닭이 없는거죠. 부모 입장에서
我有如是七寶大車하야 其數無量이라
내가 나에게는 이와같은 칠보로 꾸민 큰 수레가 있어. 그리고 그 숫자도 한량이 없어. 그러니까
應當等心으로 各各與之요 不宜差別이로다
응당히 평등한 마음으로 각각 그들에게 줄 것이요. 마땅히 차별할 것이 아니다.
어떤 아이들에게 작은 수레주고 어느 아들에게는 큰 수레주고 그렇게 차별할 일이 아니다 이 말이여.
66 所以者何 以我此物 周級一國 猶尙不匱 何況諸子
소이자하 이아차물 주급일국 유상불궤 하황제자
所以者何오 以我此物로 周級一國이라도
까닭이 무엇이냐? 내가 이 물건으로써 온 나라, 온 지구상에 있는 6,70억이나 되는 인구를 다 준다 하더라도
猶尙不匱어든 何況諸子리오
모자라지 않는다 이 말이여. 없지 않다 이 말이지.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부족하지 않다. 60억 인구를 다 준다 하더라도 남는다 이거여. 그런데 하물며 내 아들들이겠는가 이 말이여.
저기 아프리카 사람들까지도 다 줄 수 있는 판인데 내 아들 30명되는거 그거 안주고 뭐하겠냐 이거지. 말도 아닌 소리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참~ 비유가 뛰어나신 거죠. 그래서 이제 법화칠유(法華七喩)라고해서 일곱 가지 비유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 화택비유가 아주 유명한 비유에요.
67 是時諸子 各乘大車 得未曾有 非本所望
시시제자 각승대거 득미증유 비본소망
是時諸子가 各乘大車하고 得未曾有하야
그때 여러 아들들이 각각 큰 수레를 타고 일찍이 있지 아니하던 것을 얻고, 뭐 아버지는 작은 수레를 준다고 말은 했는데 나오니까 어마어마하게 크고 정말 아름다운 보배로써 자꾸 이런 수레를 하나씩 주니까 未曾有를 얻었죠. 정말 상상도 하지 않던 그런 것을 얻어서
非本所望이러라
본래 소망하던 바가 아니더라 이 말이여.
본래 소망하던 것은 작은 수레.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 그런 것이었는데 정작 얻은 것은 상상도 하지 않던 너무나도 아름답고 값지고 크~고 소도 그냥 하얗고 튼실하게 생겼고 또 거기다 종들도 수십 명이, 수레 하나에 수십 명씩 에워싸가지고 보호를 하고 있고 그래 뭐 얼마나 아이들이 좋겠습니까? 그렇더라 이 말이여. 그런 비유를 이제 부처님이 한 것입니다.
68 舍利弗 於汝意云何 是長者 等與諸子珍寶大車 寧有虛妄不
사리불 어여의운하 시장자 등여제자진보대거 영유허망부
舍利弗아 於汝意云何오
사리불아 너의 뜻에 어떠하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말이여.
是長者가 等與諸子珍寶大車가
이 장자가 여러 아들들에게 평등하게 珍寶大車를 준 것이, 그 아~주 훌륭한 그런 큰 수레. 보배로 잘 꾸민 큰 수레를 준 것이
寧有虛妄不아
그랬어요. 어찌 허망한 것이 있겠는가? 내가 이걸 거짓말했다고 너는 생각하느냐? 이런 말입니다. 사리불에게 묻는 거요.
그 아버지가 작은 수레를 준다고 애들을 유혹해서 밖에 내 놓고는 그 다음에는 그 작은 수레보다 몇천 배, 몇만 배 더 값지고 보배로 꾸민 좋은 수레를 줬는데, 결과적으로는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했는데 그렇지만 아버지는 거짓말한 택이니까 아버지가 거짓말을 했다고 너는 생각하겠는가? 이런 말이요. 그건 뭐야? 그럴 경우같으면 우리는 뭐 어떻게 우리가 말하겠어요. 요즘 같은 표현으로“아이고 뭐 그런 거짓말이라면 백 번, 천 번 더 하십시오.”이렇게 되겠지.“계속 거짓말 하십시오”그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69 舍利弗言 不也世尊 是長者 但令諸子 得免火難 全其軀命
사리불언 불야세존 시장자 단령제자 득면화난 전기구명
非爲虛妄 何以故 若全身命 便爲已得玩好之具 況復方便
비위허망 하이고 약전신명 변위이득완호지구 황부방편
於彼火宅 而拔濟之
어피화택 이발제지
舍利弗言하대 不也世尊하 是長者가 但令諸子로
사리불이 말하기를“아닙니다.”위에 虛妄이라는 뜻이 거짓말이라는 뜻이거든요.“그건 거짓말이 아닙니다.”뭐 그런 거짓말은 백 번, 천 번 더 하십시오 이 말이죠. 세존이시여 이 장자가 다만 여러 아들들로 하여금
得免火難하야 全其軀命이라도 非爲虛妄이니
火의 難에서 면하는 것을 얻어서 그 軀命을, 몸과 목숨을 온전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말하자면 아무것도 안 줘도 좋다 이거여. 왜냐? 불난 집에서 아이들을 거짓말을 해가지고 유혹해서 저 밖에 구출해 낸것만으로도 거짓말이 아니다 이거여. 안 그렇겠어요? 사실, 그 수레 안줘도 좋다 이거여. 아무 수레 안줘도 좋아. 밖에서 꺼낸 것만 가지고도 아주 뭐 큰~ 아주 소득이다. 아이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허망한 거짓말이 아님이니
何以故오 若全身命이라도
무슨 까닭이냐 하면은 만약에 身命을, 몸과 목숨을 보전할지라도
便爲已得玩好之具어든 況復方便으로
이미 곧 이미 아주 좋은 도구를, 장난감을, 보물을 얻은 것이 되거든 되거늘 어찌 하물며 방편으로
於彼火宅에 而拔濟之리오
저 火宅에서 불난 집에서 拔濟함을, 拔濟 그냥 뽑아내서 제도를 건져냈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화택에서 아이들을 유혹을 해가지고 거기서 벗어나게 한 것이겠는가?
70 世尊 若是長者 乃至不與最小一車 猶不虛妄 何以故 是長者
세존 약시장자 내지불여최소일거 유불허망 하이고 시장자
先作是意 我以方便 令子得出
선작시의 아이방편 영자득출
世尊하 若是長者가 乃至不與最小一車라도 猶不虛妄이니
세존이시여, 만약 이 장자가 最小한 작은 수레를 하나 주지 않더라도, 그것을 설사 주지 않더라도, 아무리 시시한 장난감 하나를 설사 안준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것은 거짓말이 아님이니
何以故오 是長者가 先作是意하대
왜 그러냐? 이 장자가 먼저 이런 생각을 하대
我以方便으로 令子得出하리라할새
내가 방편으로써, 이 아들들을 방편으로써 내가 화택에서 벗어남을 얻도록 하겠다 라고 하는 아버지의 그 자비스러운 마음이 거기에 포함되 있기 때문에‘거짓말이 뭡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건 거짓말이 아닙니다.’이런 이야기입니다.
71 以是因緣 無虛妄也 何況長者 自知財富無量 欲饒益諸子 等與大車
이시인연 무허망야 하황장자 자지재부무량 욕요익제자 등여대거
以是因緣으로 無虛妄也하니
이러한 인연으로 우리가 볼때 허망함이 없을뿐만아니라, 전혀 허망은 아니다 이거여. 거짓말이 아니다 이거여. 그러니까 거짓말하고 방편하고는 천지차이로 다르다 하는 것입니다.
여기는 어린아이가 울때“밖에서 호랑이가 왔다.”라고 하는 것은 그건 거짓말이라고 안 하잖아요. 그 아이가 커서, 그말을 듣고 성장한 아이가 커서 또 자기 어린아이에게 울면 또 역시 그말을 쓰는 거요. 그래도 그건 거짓말이 아니야. 누가 그거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어. 어린아이 울음을 그치도록 하기위한 방편이지. 그건 거짓말이 아니다 이거여. 요 요 화택비유가 그런 뜻입니다. 정말 아주 이 비유가 명쾌하고 그 뜻이 풍부하죠.
何況長者가 自知財富無量하고
어찌 하물며 장자가 스스로 재물이 한량없음을 스스로 알고서
欲饒益諸子하야 等與大車이릿가
여러 아들들을 요익하게 하고자 해서, 아들들을 풍부하게 큰~ 이익을 주고자 해서 평등하게 평등하게 큰 수레를 준 것이겠습니까? 이런 말이요.
그러니까
72 佛告舍利弗 善哉善哉 如汝所言
불고사리불 선재선재 여여소언
佛告舍利弗하사대 善哉善哉라 如汝所言하니라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고하사대,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의 말한 바와 같으니라. 그랬습니다.
아직은 부처님께서 이제 많은 경전을 설했는데, 불교경전이 앞서도 말씀드렸지만은 무수히 많은데 그 경전은 모두가 우리 중생들의 고통을 면하게 하고 그 지혜의 눈을 떠서 캄캄한 그 어리석음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인생을 참으로 의미있고 보람되고 현명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가르친 내용이 말하자면 팔만대장경이고 또 우리에게는 지금 이『법화경』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사람을 행복하게 살도록 또 세계는 평화롭게 되도록 하는 그런 그 간절한 마음에서 이 깨달으신 성인들은 또 부처님은 이런 그 간절한 마음으로 있는 지혜, 없는 지혜를 다 동원해서 별별 이야기를 다 한것이 우리 팔만대장경이여. 불교에 있는 여러 가지 말씀이라.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그런 그 방편에서 어린아이들은 이제 그런 말을 듣고 예를 들어서 성장을 했잖아요. 불과 몇 년 안지나면은 그 문 밖에 호랑이가 왔다는 소리가 필요없게 되는거라. 동생이 생기고 그 다음에 지가 또 성장해가지고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를 가고 그러면은‘밖에 호랑이가 왔다.’라는 그 말을 그냥 알아. 그때쯤 되도, 초등학생만 되도 안다구요.
쪼금 이제 철든 아이는 그 밑에 자기 동생이 울면은 역시 부모가 하던 말을 또 쓸지 몰라. 그 정도로 성장해 가요. 그 방편을 벌리는 거야. 이게, 그 방편을 자기가 마음대로 쓸 줄까지 알아. 마음대로 쓸 줄까지. 방편에 울음을 그치는 정도가 아니고 방편을 자기가 쓸 줄까지도 알게 돼. 몇 년안이면, 그런데 우리 불자들은 왜 그렇게 성장하지 않느냐? 이 말이여. 내가 하는 말이
처음에는 우리 불교에서 펼쳐논 그 그물과 같은 많고 많은 방편그물에 걸려가지고 전부 부처님 앞으로 왔어. 부처님 앞으로 온 것까지는 좋아요. 그 어떤 방편으로, 무당이‘절에 가면 좋다.’하는 소리를 듣고 왔던지. 뭐‘절에 가서 대웅전에 가지말고 저 칠성각에 가서 명을 빌며는 명이 길어지고 병도 낫는다.’고 하는 그런 말을 들어서 와도 좋아. 아주 다 좋다구요. 그렇지만은 그런 그 방편을 통해서 절에 다니다가 차츰차츰 이제 지혜의 눈이 떠지고 부처님의 진위, 부처님의 참뜻이 무엇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이해가 가기 시작하면은 이제 말하자면은 좀 더 차원이 다른, 차원이 다른 불교인이 돼야 되고 또 따라서 그런 그 부처님의 그 지혜를 공부함으로해서 인생의 철도 조금씩 들어가는 그런 차원으로 우리가 우리의 지혜가 또는 우리의 의식이 그 마음이 성장해야 되는 거요. 성장. 의식이 끊임없이 성장해야 됩니다.
이제 그런데 이제 이런 것을 보면서 이제 우리가 이제, 그런 사람들이 물론 대다수죠. 다 그렇게 성장해가는 것이 대다수입니다. 성장하지 못한 이웃 도반들에게 그런 것들을 조근조근 밥도 한 끼 사주고 차비도 대주고 회비도 일 년치 내줘가면서 그러면서 이제 눈을 뜨게 해주는, 정말 지혜의 눈을 뜨게 해주는 그런 노력이 필요한거요.
경전에 보면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한 사람을 교화하기 위해서 내가 한 생을 바쳤다. 과거 어느 때는 한 사람 교화하기 위해서 자기 일생을 다 바쳤다고 하는 말도 있어요. 야~ 대단하잖아요. 그게 설사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라 하더라도 한 사람 교화를 위해서 자기 일생을 다 바쳤다. 그런데 그 한 사람 교화할라고 공 좀 들이는거 그것도 안하고 입만 그저 써가지고 몇 마디 하는 걸로 그 사람을 교화한다. 이건 말도 아닌거요.
공을 많이 들여야 됩니다. 한 생을 바쳤다는데, 부처님은 한 사람 교화를 위해서. 그것도 여러 사람이 아니고 한 사람 교화를 위해서 한 생을 바쳤다는 거요. 그 공덕으로 부처님이 됐다는 거 아닙니까? 그 공덕으로, 한 사람 교화를 위해서 자기 일생을 다 바친 그 공덕으로, 교화는 한 사람 했지만은 자기 일생을 통째로 바쳤다고 하는 이 사실이 중요한거요. 너무너무 아주 부처님의 참 중생을 생각하는 그 자비와 정성이 거기에 담겨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열심히 읽고 또 사경하고 있으면은 첫째 가정부터 교화를 받습니다. 가정의 모든 사람들이“야 신기하다.”그래 이제『법화경』사경하고 서울에 어떤 그 보살님인데, 처음에는 사경할 때 집안 식구들 눈치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몰래 없을때, 식구들 없을때 혼자 사경을 조금씩 하다가 그게 이제 차츰차츰 사경을 많이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집안 식구도 알게되고 그래도 안하는 척하고 하고 그러다 어쩌다가는 이제 집안 식구가 있어도 하고 그러면서 이제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벌떡 일어나서 할 일 다하고 얼른 뛰어와서 사경하고, 책상 이렇게 놔두고
그렇게 했는데 어느날 집안 식구가, 그것도 집안의 거사님이 물도 떠다주고 커피도 타다주고 사경하는데 종이도 사다주고 이것 저것 심부름을 자연스럽게 세월이 가니까 그래 되더라고 하는, 참『법화경』사경 공덕이 기가막히다고 그 나한테 토로를 하는거요. 그걸 털어놓더라구요.
그렇게 됩니다. 그 참 신기하죠. 그 이제 그 집안 가족들 이해시킨 거. 그건 꼭 제도라고 할 것까진 없어요. 가족들이 납득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수긍하게 되고 그래서 어느 집안에 한 사람이 사경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든든하게 생각하고“아 우리집에 뭐 부처님 경전을 읽고 있고 쓰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그러면 그만 집안 모든 가족들이 다 든든한거야. 어디 나가서 일해도 마음이 든든하고, 그런 영험은 제깍 나타납니다.
전번에 공부마치고‘묘법(妙法)’이라고 하는 제가 쓴 글씨 가져가라고 한 말을 분명하게 못 해가지고 못 가져가신 분이 많은데 오늘 생각난 김에 미리 말씀드립니다. 공부끝나고 저 내방에 와서 제가 선물하는‘妙法’이라고 하는 글씨를 받아가세요. 안 받으신 분들, 미리 생각날 때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스님들 숫자하고 비슷해졌네요. 이제사, 스님들도 지금 이 숫자정도로 와서『법화경』공부를 잘 하고 계십니다. 저기 사진 보이죠? 신도님들은 뭐 100번 양보한다 하더라도 10배는 더 와야 되는데 10배는, 왜냐? 스님들 숫자보다 1000배가 많거든요. 1000배는 많은데 100보 양보해서 10배정도는 와야 조금 이제 모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저렇게‘『법화경』이 왕이다.『법화경』이 경전의 왕이다.’하는 이 파란 이 일지경(一紙經) 이것을 이제 이번에 만들었는데, 이『법화경』은 이렇게 대단한 경입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저렇게 많이와서 공부하시는 거죠. 이왕 일지경 이렇게 찍었으니까 이걸 한 번 살펴보고 우리 공부하는 교재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한글로 글자도 크게 했으니까 우리 큰 소리로 같이 천천히 한 번 읽읍시다. 설명 나중에 내가 드릴테니까
‘수왕화보살이여, 마치 모든 시내와 개천과 강들의 모든 물 가운데는 바다가 제일이듯이 이『법화경』도 그와 같아서 모든 여래가 말씀하신 경 가운데 가장 깊고 크니라. 또 토산, 흑산, 소철위산, 대철위산과 열 보산(寶山)등 모든 산 가운데는 수미산(須彌山)이 제일이듯이 이『법화경』도 그와 같아서 모든 경전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니라. 또 모든 별 가운데는 달이 가장 제일이듯이 이『법화경』도 그와 같아서 천만 억 모든 경전 가운데 가장 밝게 비추느니라. 또 해가 능히 모든 어두움을 없애듯이 이 경도 또한 그와 같아서 온갖 좋지 못한 어두움을 능히 깨뜨느니라.
부처님이 모든 법의 왕이듯이 이 경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든 경 가운데 왕이 되느니라.
수왕화여 이 경은 능히 모든 중생을 구원하는 것이며, 이 경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괴로움을 여의게 하며, 이 경은 모든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여 그 소원을 만족케 하느니라. 마치 시원한 못이 일체 모든 목마른 이를 만족케 함과 같으며, 추운 이가 불을 얻음과 같으며, 헐벗은 이가 옷을 얻은 것 같으며, 장사하는 사람이 물주를 만남과 같으며, 아들이 어머니를 만남과 같으며, 물을 건너는 이가 배를 만남과 같으며, 병이 난 이가 의사를 만남과 같으며, 어두울 적에 등불을 얻음과 같으며, 가난한 이가 보물을 얻음과 같으며, 백성이 임금을 만남과 같으며, 장사하는 사람이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으며, 횃불이 어두움을 없앰과 같으니라.
이『법화경』도 또한 그와 같아서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고통과 모든 병을 여의게 하며 능히 모든 중생들의 생사(生死)의 속박을 풀어주느니라.’
이 내용은『법화경』「약왕보살본사품」에 있습니다. 저 뒤에 가면「약왕보살본사품」이 있는데,「약왕보살본사품」「묘음보살품」「관세음보살품」이 세품은 불교의 자비를 아주 진하게 표현하고 있는 그런 부분입니다. 그리고『법화경』은 그 외 내용들은 지혜를 일깨워주는, 우리들에게 지혜의 눈을 뜨게 하는 그런 내용이고 요 세품은 자비에 눈을 뜨게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법화경』은 영험록도 많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은,『법화경』이 그전에 내가 그런 옛날 영험이야기를 했죠. 부모님을 천도하기 위해서『법화경』사경을 해야겠는데, 사경할려고 돈을 모아가지고 종이를 살려고 시장에 가서 좋은 종이를 한 짐을 사다놓고 내일은 이제 이 종이를 가지고 경을 잘 쓰는 사람에게 가서 논 문서를 하나 얹어가지고 같이 이제“우리 부모를 위해서 사경을 좀 해주십시오.”라고 그렇게 부탁할려고 그렇게 종이를 사 놓았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글씨를 아무나 쓸 수 있는 그런 처지가 아니거든요. 문맹자가 너무 많았잖습니까? 그래서 이제 대개, 책에 보면은 자기가 쓰거나 남을 시켜 쓰거나 그런 말이 있어요. 그래서 남을 시켜서 쓰는 일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만치 문맹률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 집에 효자도 그렇게 이제 종이를 사다놨는데, 그날 저녁 꿈에 돌아가신 부모님들이 나타나서“나는 네가『법화경』을 사경하기 위해서 돈을 모아가지고 시장에 가서 좋은 종이를 저렇게 사다가 집에 갔다놓고 그렇게 기뻐하는 그 모습을 보고, 그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해지고 감동이돼서 그 인연으로 나는 이미 천상에 태어났노라.”이렇게 이제 현몽을 했답니다. 그런 정도로 경을 쓸려고 종이만 사다놔도 그렇게 이제 영험이 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돼있습니다.
그리고 스님들이 공부하는『치문』에 보면은, 어떤 스님이 늘 토굴에 사는데 밖에 나가서 좋은 방석위에 앉아가지고『법화경』을 늘 읽었어요. 늘『법화경』을 읽었는데, 꿩이 늘 와서 듣더랍니다. 그 꿩이 뭐 말을 알아 듣겠습니까? 하지만 그 스님이『법화경』을 감동을 해서 읽는 그 마음, 그 감동은 충분히 전해집니다. 무슨 베토벤 교향곡이 무슨 이야기가 있어서 감동합니까? 그 이야기 한 마디도 없어요. 그냥 곡이야. 소리야. 소리인데 우리가 그 듣고 감동하지 않습니까? 그런 예들이 너무 많습니다.
음악 정말 좋은 음악은 그 아무 스토리 없거든요. 거문고니 뭐 피아노니 사실 사람이 그 가사를 붙여서 소리를 내서 읽는 그것은 정말 음악중에서도 제일 하질의 음악인데, 정말 상품 음악은 그런 그 악기가 낸 그 소리 거기에서 우리가 감동을 많이 받고 뭐 눈물도 흘리고 그냥 그러지 않습니까? 그 소리만 듣고도, 이야기가 한 마디도 없다구요.
마찬가지로 꿩도 사람이 경을 읽었지만은 그 스님이 경을 읽는 그 마음이 그 꿩의 정신세계에 전해지는거요. 이게, 감동하는 거죠. 그거 아주 그 꿩이 어떻게 알았나? 하지만은 천만의 말씀이요. 피아노 소리 무슨 뭐 악기 소리 듣고 사람이 감동하는데, 사람이 읽는 그 소리와 그 소리속에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그걸 이제 꿩은 그걸 들은 거죠. 와서 들은 거야. 그러다가 명이 다해서 그『법화경』을 들은 인연으로 아랫마을에 가서 사람의 몸으로 이제 태어났어요. 그런 그 여러 가지 징표가 있어서 그래 결국은 그 아들을 세 살땐가 바로 데려다가 상좌를 삼았는데, 뭐 경을 한 번도 가르친 적도 없는데『법화경』을 펴놓으니까 줄줄 읽더라 하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게 뭐 전설의 고향이 됐든, 뭐가 됐든 간에 그런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그 의미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 의미는 우리가 충분히 감동하다 할 말이요. 그런 그 영험이 있는 경전이고 좀 뜻을 알고 읽으면은 더 좋지만은 모르고 읽어도 역시 그런 것입니다. 그건 모르고 들은 거거든요. 뜻을 모르고, 그 짐승이 뜻도 모르고 들었는데 그렇다는 것입니다. 근데 뜻을 알고 우리가 거기다가 마음을 기울여서 그게 읽고 쓰고 한다면 뭐 오죽하겠습니까?
마참 여기 저‘문수사경반’사경에 대한 이야기가 있네요. 이걸 저 요즘 사경을 하는 모임이 있는데, 요걸 읽어보시고 사경하는 법도 뭐 개인이 하던지 아니면 그 단체가 와서 같이 하던지간에 사경을 우리가 잘 알고 하는 것이 또 필요할것 같습니다. 꼭 이게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근래 또 직접 살아있는 관세음보살.『법화경』을 공부를 해서 가장 큰 영험. 과거에 무슨 뭐 종이를 사다놨는데 부모가 천도됐다. 꿩이 사람몸을 받았다. 이건 다 지나간 이야기고 실지로『법화경』공부를 해서 관세음보살이 된 스님이 있습니다. 지금 살아있어요. 73세 된 대만에 있는 비구니스님이신데, 이 스님은 정말 훌륭한 관세음보살이여. 관세음보살 설명 그 어디에도 그 스님의 마음을 그대로 그 정도로 표현한 데는 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그렇게 살고있습니다.
그 스님은 일찍이『법화경』을 공부를 했어요. 그래 이제 그때 한 5,60년 전이니까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고, 대만불교라고 하는 게 전부 중국에서 대만 그, 원래는 불교가 없었고 중국에서 전부 저 장개석따라 전부 본토에서 피난온 사람들입니다. 피난온 사람들이 스님들도 피난와가지고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비로소 대만에 불교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온종일 공부할 강원이 있거나 그 가르칠만한 스님이 그렇게 쉽게 있거나 그렇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침 어떤 거사님이,『법화경』을 잘 아는 거사님을 만났어요. 이 스님이 처녀때, 스님도 되기 전이라. 처녀때 그런 거사를 만나가지고『법화경』을 공부를 했어.
그래『법화경』을 공부하면서『법화경』안에는 전체 불교가 사실은 무르녹아있거든요. 이게 이제 아주 후대에, 말하자면 부처님 열반 500년경에 결집된 경이기 때문에 불교 전체적인 것이 이 속에 다 아우러져있습니다. 그래서 그 스님이 열심히『법화경』공부를 했어요. 그리고는『법화경』사경을 얼머나 열심히 했는지 하루에 한 세네 시간밖에 안 자고 이 많은 것을 한 달에 한 권씩 사경했다 그래요. 한 달에 한 권씩.
지금 내가 알고있는 그 신도님보니까 6개월에 한 권씩은 했어요. 근데 뭐 가정생활 다 하면서 이제 했는데, 6개월에 한 권씩은 했답니다. 그래가지고 열 번을 무려 5년간 열 번을 써가지고 내한테 마지막으로 열 번째 쓴 걸 가져온 그런 신도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스님은 한 달에 이걸 한 권씩 썼어요. 이거 얼마나 열심히 썼으면 그렇겠습니까? 그니까 잠을 한 세 시간이나 네 시간 밖에 안잔거요. 그렇게 열심히 써가지고『법화경』에 그렇게 이제 빠져 있었어요. 그래가지고 법화사상으로써 철두철미하게 자기 그 인생의 철학으로 무장이 돼 있어요. 그래가지고 인순법사를 만나서 불명을 받고 거기 이제 계를 받아가지고 비로소 비구니 스님이 돼가지고는 살게 됐는데, 지금도 이제 활동을 전세계적으로 제일 큰 활동을 하고 있는 분인데
그 분은 정말 관세음보살 정신을 그대로 실현하시는 분이라. 그래서 나는 과거 영험록에 나오는 그런 전설의 고향같은 그런 영험이야기 내가 거의 잘 안하거든요. 어쩌다가 한 번씩 할까 말까인데, 그런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니까 나도 첫째‘그런가보다’이렇게만 생각하죠. 그런데 그 스님은 정말『법화경』을 통해서 살아있는 관세음보살이 돼버렸어. 내가 몇 번 소개도 했습니다만은 그 스님 이력, 그 스님의 약력을 이제 소개하는데 딱 석 줄.
‘온 천하에 내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그 관세음보살 마음 그대로‘온 천하에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 온 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나는 이제 그 스님의 자기소개를 고렇게 석 줄로 딱 한게 이 세상의 어떤 경보다도 감동을 준다. 그게 전부『법화경』의 엑기스야.『법화경』사상에서 나온거거든. 저기 뒤에「관세음보살보문품」보면은, 관세음보살은 사람이 죄가 있거나 없거나 간에‘즉득해탈(卽得解脫)’바로 그 고통에서 풀어주고 갇힌 데서 풀어내준다. 죄가 있던 없던 간에 무조건 풀어 내준다 이거여. 우리 상식으론 이제 죄 있어서 갇힌 사람을 왜 풀어 내주느냐? 그건 옳지 않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죠. 그러나 관세음보살의 자비의 마음은 그게 아니에요. 자비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거죠.
그래서 이제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나는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 나도 이제 그 스님의 약력을 이렇게 내 감동을 받고는, 그 참 도움이 많이 돼요. 살다보면 이래저래 마음에 안드는 사람 많죠 뭐. 얼마나 많습니까? 마음에 안드는, 내가 마음이 나빠서도 안 들기도하고 상대가 마음이 나빠서 안 들기도하고 그렇습니다. 꼭 뭐 상대 책임이 아니에요. 내 책임도 50%나 있어요. 어쨌든 그렇더라도 참 그 스님은‘천하에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라고 했는데, 나도 그 정도 용서하자. 그 정도는 용서하자. 그리고 받아들이자. 그러니까 마음이 싹 풀려버려요.
‘천하에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라고 그 스님은 지금, 전설의 고향이 아니에요. 지금 현존하고 있는 살아있는 이 시대 살고있는 스님이야. 그 스님은 그렇게 사는데, 내한테 조금 기분나쁘게 했다고 또 내가 좀 마음이 어떻게 삐뚤렸다고 그 그렇게 좋지 않게 받아 들일수가 있겠나? 그래 그 스님 법문, 자기 소개가 결국은 큰 법문인데 그 법문을 통해서 사람이 많이 되간다니까. 내가, 솔직하게
그래 그건 완전히 정말「보문품」보다도 그 스님은 더 관세음보살다운 그런 분입니다. 또 역사를 이야기하자면 뭐 길지만은, 그래서 이제 제일 주력하는 사업이 그 스님, 대만 천하에 2000만 인구에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가는 사람은 없게 하자는 거. 그 스님 원력이여. 그래서 아주 큰 대형병원을 여섯 개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 스님이라. 그래서 주로 이제 주력하는 것이 아픈 사람들, 아픈 사람들을 위주로 하고 또 굶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도 생각해주는 그 다음에 교육. 돈이 없어서 교육 못 받는 사람도 이제 혜택을 많이 주는, 세계에서 기독교, 천주교, 불교 뭐 어떤 재벌가들의 자선단체보다도 이 스님이 운영하는 자선단체가 세계에서 제일 큽니다. 제일 잘하고 제일 잘하고
거기에는 봉사자들이 와가지고, 우리는 뭐 큰 절에서 오늘 봉사한다고 김치담군다고 그러면은 빈 손으로 달랑달랑 와요. 여기서부터 차 기다려가지고 절차타고 올라가는 거라. 그래가지고 거기가서 절밥 다먹고 절에서 주는 장갑끼고 절에서 주는 칼 뭐 도구 전부 가지고 그저 큰 소리 땅땅치고 몇 시간 일하고는 아주 자랑하고“크~ 내가 범어사가서 말이야. 김치 담궜는데 내가 이렇게 봉사했노라고”자랑자랑 하는데
그 봉사단체의 규칙은 자기 도시락 싸가 그리고 자기 장갑, 오늘 칼로써 배추를 썰어야 된다하면 칼 가져가. 자기차 타고가. 일체 거기에 소비되는 모든 것들은 자기가 부담하는 것으로 하는 거. 그렇게 봉사할려면 하고 그렇지 아니한 사람은 오지 말래. 그 규칙이 그래 돼있어요. 봉사자들이 지켜야 할 규칙사항이 그렇게. 그게 진짜 봉사지. 그렇게 하는데도 무려 전세계에 회원이 500만명이야. 60개국에서 500만명의 단체를 가지고 있어. 이 관세음보살 아닙니까?
그래서 그 분은‘천수천안(千手千眼)’500명만하면은 천수천안이다. 처음 30명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500만명이 됐어. 그래서 이제 지금은 500만명이다. 500만명의 관세음보살이 현존하는 거야. 그 스님 한 분의 원력으로, 그러니 그 말이 실감이 가지요.
‘천하에 내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천하에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 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다 용서하는 거요. 근데 그게 어렵겠다 싶지만은,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해 볼때 간단한 문제라.‘대성자모(大聖慈母)’그러죠? 큰~ 성인이시고 자비스러운 어머니 그런다고요. 관세음보살을, 대성자모 그러는데 우리 어머니들은 그런 마음 다 가지고 있어. 세상에는 나가서 아주 나쁜짓을 하고 사람을 많이 죽이고 이러한 자식도, 천하 사람이 전부 손가락질 하고 전부 죽여야 된다고 하지만은 어머니는 용서하는 거야. 어머니는 용서한다고
그러니까 여기 관세음보살 우리『법화경』공부하는데 보면은‘약유죄(若有罪)나 무죄(無罪)나’죄가 있건 죄가 없건간에 용서해준다 이거여. 이게 어머니의 마음이고 관세음보살의 마음이라. 참 대단하지요. 그걸 그대로 실천하고 있으니까. 그 정말 간단해요. 이해하기로 하면은, 세상 사람이 다 죽여야 된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용서해주고 싶은거야. 어머니는 살리고 싶은거야. 그래서 대성자모 그러죠. 큰 성인이신 자비스러운 어머니다. 그런 표현을 하는데
말하자면 다른 영험은 뭐 그렇다손치고 옛날 이야기니까. 물론 다 맞는 이야기고 있었던 이야기겠죠. 하지만은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보고 직접 만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고 그 분의 혜택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받고 하는 그런 그 현존, 현재 살아있는 관세음보살을 탄생시킨 경전이 바로『법화경』이다 이거여. 그『법화경』은 그와같이 영험이 있습니다. 그 영험이라는게 가만히 있는데 뭐 꿈에 나타나서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라‘내가 변화해서 세상을 변하게 만드는’그게 영험이에요.‘『법화경』정신을 통해서 내가 변하고 내가 변화함으로 여러 사람들도 변화하게 하는’그게 제일 과학적인 영험입니다. 영험 제대로 이해하면요. 이건 과학이에요. 제대로 이해를 못하면 이게 미신이 되지만은 제대로 이해하면 지극히 과학적인 것이다. 이렇게 이제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법화경』공부는 82쪽 저 밑에 두 번째 73번부터 할 차례입니다. 여기 이제 무슨 내용인고 하면은 품이 이제「비유품」인데, 소위 화택비유(火宅譬喩) 유명하죠? 이건『법화경』공부 안한 사람도 알 수 있는 많이 들어본 그런 비유입니다. 삼계화택(三界火宅)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불이 타고있는 집과 같다. 그런데 그 급박한 생각을 못하죠. 그렇게 위급한 어떤 상황을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그냥 그런대로 이제 살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삽니다.
그 이제 마음의 어떤 그 상태에 따라서 또 영혼과 정신의 그 어떤 상태에 따라서 같은 상황도 그 느끼는 것이 전혀 달라요. 전혀 다르다는 거라. 내 가끔 이 부처님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는 어릴때 막 고기를 잡아서 패대기를 치고 그냥 그 온갖 살아있는 그런 것들, 곤충을 이렇게 다리를 찢기도하고 그 메뚜기 그거 뭐 먹을게 있다고 그걸 내 잡아가지고 불에 구워서 먹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석가모니는 어땠냐? 같은 어린애인데도, 같은 어린애인데도 그 사람은 사문유관(四門遊觀)할 때 저기 농사짓는데 이렇게 한 번 이제 신하들 데리고 놀러 나갔잖아요. 사대문을 이렇게 나와가지고 그 쟁기에, 농사짓는걸 보니까 쟁기에 벌레가 죽고 그 짤려가지고 파당거리는 그것을 또 새가 날아와서 쪼와서 물고 가고, 그거를 보고서 그렇게 가슴아파한 거요. 너무 가슴아파한 거요.
그 보십시오. 내 어린모습하고 석가모니 어린모습하고 똑같이 어린애인데 같은 현상을 보고서 느끼는 것이 그렇게 다른 거야. 그 사람이 평등하다고 하고 똑같다고 하지만은 이렇게 천지차이라. 사람이 차별된것은, 불평등하고 차별한 것이 이게 원칙인거요. 이 사바세계는 불평등하고 차별해. 그걸 우리가 알고 있어야 돼. 그 왜 차별하느냐? 원래 차별하는 세상이야. 그게 맞는 거라구요. 불평등한게 맞는 거야. 그 평등, 평등 자꾸 평등할만치 해놓지도 않고 평등만 주장하는 거 그거 안 맞는거라.
그 노사분규같은 것들도 그 오해가 많아요. 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은 오해가 많다고, 불평등한게 원칙입니다. 그거 알아야 되요. 맏이는 더 유산 많이 주고 둘째는 적게 주는 게 그게 맞는 거야. 왜 적게 주느냐고 하고 그래가지고 그냥 싸워가지고 형제가 갈라서고 반목을 하고 평생 안보고 부모제사에도 참석 안하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불평등한게 맞는거야.
밑에 사람을 많이 주면은, 아 밑에 사람이니까 많이 주는게 맞지. 위에 사람은 형이니까 좀 적게 줘도 되잖아. 이게 불평등한게 맞는 거야. 뭐 그래 모순된 소리를 하냐고 하지만은, 그렇게 해석하고 살아야지. 그렇게 해석하고, 그 우리 사바세계 일면을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불난 집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불났으니까 오히려 장난치고 놀기 좋고 불장난하기 좋다라고 느낀 사람도 있고 그러니까 막 그냥 고개를 잡아서 패대기를 치고 하는 것이 내 삶이라면은, 말하자면 석가모니 같은 이들은 자기가 직접 하는 건 뭐 말할 것도 없고 상상도 못하고 그 저 쟁기에 갈려서 죽고 새가 날아와서 그걸 집어가고 하는 것. 그게 그렇게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거야. 그때부터 가슴에 멍이 들었어. 그래가지고 세상에 아픈 사람도 보지요. 늙은 사람도 보지요. 그래가지고 끊임없이 가슴에 멍이 드는 거야.‘하~ 인생에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하면 해결할 것인가? 해결할 수 있는가? 해결하는 길은 무엇일까?’이걸 고민한거죠.
그래서 관점에 따라서 또 사람에 따라서 그렇게 이제 차이가 납니다. 여기에 이제 부처님이 이 세상을 화택이다 라고 표현한 것을 우리가 그런 예비지식을 가지고 이제 들어야.‘아 나는 뭐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부처님은 그래도 막 불에 타죽을 그런 어떤 상황이 벌어진 집에 장난치고 사는 것과 같은 것이구나.’이렇게 이해를 해야 되겠죠. 이게 이제 우리 상식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안됩니다. 이해가, 안되요. 부처님 상식에서 사바세계를 볼 때 화택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저 앞에서 비유는 끝났어요. 그래 여기서는 합비(合譬)라 그렇게 해요. 비유하고 법하고 합해서 이야기한다. 그래 맞추는 거죠. 보면
73 舍利弗 如來亦復如是 則爲一切世間之父
사리불 여래역부여시 즉위일체세간지부
舍利弗아 如來亦復如是하야
사리불아 여래도 또한 다시 앞에서 비유를 들었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이런 뜻입니다.
則爲一切世間之父어든
곧 일체세간의 아버지다 이 말이여. 세상의 아버지야.
그러니까 아버지나 어머니는 아무리 못난 자식, 나쁜 자식이라도 그를 살리고 싶고 용서하고 싶듯이 그 정말 관세음보살의 마음이나 부처님 마음이 되면은 모든 사람들을 전부 자기 자식처럼 그렇게 생각이 드는 거죠. 그래서 一切世間의 아버지어든
74 於諸怖畏 衰惱憂患 無明暗蔽 永盡無餘
어제포외 쇠뇌우환 무명암폐 영진무여
於諸怖畏와 衰惱憂患과 無明暗蔽에
모든 두려움과 怖畏 두려움과 衰惱 쇠퇴해지고 자꾸자꾸 이제 말하자면 기울어지는 거죠. 쇠(衰)는 그 다음에 괴로운 것, 근심스러운 것 患亂 이런 것과 캄캄하고 이런 것이 우리를 가리고 있는 거죠. 그래서 그런 것들이
永盡無餘하고
다 없어져. 영원히 다 없어져서 남음이 없다 이거여. 부처님은, 그래서
75 而悉成就無量知見力無所畏 有大神力 及智慧力 具足方便
이실성취무량지견역무소외 유대신력 급지혜력 구족방편
智慧婆羅蜜 大慈大悲 常無懈倦 恒求善事 利益一切
지혜바라밀 대자대비 상무해권 항구선사 이익일체
而悉成就無量知見力無所畏하며
다 성취했다. 무엇을? 한량없는 지혜를 성취해서 그리고 力이라고 하는 것은 열 가지 힘 그래요.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정신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힘 이런 것을 성취했고 無所畏 두려워하는 바가 하나도 없는 그러한 내용도 성취했으며 또
有大神力과 及智慧力하며 具足方便智慧婆羅蜜하야
大神力의 힘이 있고 지혜의 힘이 있으며 또 방편지혜바라밀을 구족해서
大慈大悲로 常無懈倦하고
항상 그런 자비심을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항상 게으름이 없어. 중생제도를 하기위해서 그 피곤하고 힘들고 하지만은, 그것을 피곤해 생각하지 아니하고 힘들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게으름을 한 번도 중생제도에, 말하자면 게으른 생각을 내 본적이 없다. 常無懈倦하고
恒求善事하야 利益一切하려하사
항상 좋은 일만을 구해서 一切를 이익하게 한다. 일체중생들을 전부다 이익하게‘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까? 모든 사람들이 이로울까?’이것만 생각하는 거야. 착한 사람만 이롭게 해야지. 착한 사람만 행복하게 해야지. 천만에 그거는 알량한 우리의 소견이라. 나다 너다 라고 하는 이런 분별, 그런 차별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생각이라.
여 一切라고 하는 말 속에는 일체중생, 일체사람이라는 뜻인데 여기에는 죄있는 사람도 들어가고 죄없는 사람도 들어가고 착한 사람도 들어있고 악한 사람도 들어있고 저기 큰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도 이 속에 포함되고 아주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까지도 이 속에 포함됩니다. 일체를 이익케 하느니라.
76 而生三界朽故火宅 爲度衆生 生老病死 憂悲苦惱 愚癡闇蔽
이생삼계후고화택 위도중생 생로병사 우비고뇌 우치암폐
三毒之火 敎化令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독지화 교화영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而生三界朽故火宅하야
三界 이 세상 朽故 아주 썩고 기울어지고 연고가 있고 그리고 불난 이런 집에 태어나서
爲度衆生의 生老病死와 憂悲苦惱와 愚癡闇蔽인 三毒之火하야
그러니까 중생들의 生老病死 그리고 憂悲苦惱 그리고 愚癡 어리석고 어두움인 이런 그 三毒의 불을 제도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그 불에 타고 있는 이들을 건지기 위해서
敎化令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케하니라
교화한다 말이요. 무엇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최상의 깨달음, 부처의 지혜에 눈을 뜨게 하는 것 이게 최상의 깨달음이거든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최상의 지혜를 얻도록 교화한다. 이게 부처님이 하시는 일이라.
77 見諸衆生 爲生老病死憂悲苦惱之所燒煮 亦以五欲財利故
견제중생 위생로병사우비고뇌지소소자 역이오욕재리고
受種種苦 又以貪著追求故 現受衆苦 後受地獄畜生餓鬼之苦
수종종고 우이탐착추구고 현수중고 후수지옥축생아귀지고
若生天上 及在人間 貧窮困苦 愛別離苦 怨憎會苦
약재천상 급재인간 빈궁곤고 애별리고 원증회고
如是等種種諸苦衆生 沒在其中 歡喜遊戱 不覺不知 不驚不怖
여시등종종제고중생 몰재기중 환희유희 불각부지 불경불포
亦不生厭 不求解脫 於此三界火宅 東西馳走 雖遭大苦 不以爲患
역불생염 불구해탈 어차삼계화택 동서치주수조대고 불이위환
見諸衆生이 爲生老病死憂悲苦惱之所燒煮하며
모든 중생들이 生老病死 憂悲苦惱의 거기에 불타고 있는 것을 보며
亦以五欲財利故하며 受種種苦하며
또한 다섯 가지 욕망과 재물과 이익을 쓴 故로, 그것을 위한 故로 그런것 때문에 가지가지 고통을 받는 것도 또한 본다.
가만히 보니까 중생들이 生老病死 憂悲苦惱 거기에 불이 타고 있고 五欲 안, 이, 비, 설, 신 이것으로써 온갖 눈을 좋은 거 볼려고 하고 귀는 좋은 수리 들을려고 하고 일체가 다 몸은 부드러운 것 걸치려고 하고 더운 것, 추운 것 싫을려고 하고 五蘊으로써 하고자 하는 그런 것. 그걸 위해서 끊임없이 그렇게 우리가 예를 들어서 부자가 됐는데도 항상 배고프죠. 항상 헐떡거리는 거라.
지금 50년전하고 지금하고 비교하면은 세상의 그 경제적 발전이 1000배가 넘어요. 1000배, 50년전하고 지금하고 경제발전이 1000배가 넘습니다. 100배 넘게 더 잘살아요. 어떤 건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도 있습니다. 무역수지같은 거 예를 들어서 수출같은 거는요 4000배. 4000배나 더 많이 해요. 하여튼 뭐 100보 양보한다하더라도 1000배를 더 잘삽니다. 그래도 지금 그때도 배고프고 그때도 모자란 거 많고 그때도 부족한게 많은데, 지금도 배고프고 지금도 모자란게 많고 지금도 어려움이 많고 그래요. 이거 끝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욕심이 있는 한 끝이 없어요. 욕심이 있는 한 끝이 없습니다. 그 저기 저 선진국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잘 사는데 그럼 그 사람들은 뭐 항상 만족하고 아무 불만이 없고 그래야 될거 아니요. 안그렇잖아요. 오히려 더하잖아. 한국 사람이 제일 선망하는 국가가 미국아닙니까? 거기가 더 한 거요 더. 거기 사람들 더 배고파. 마음의 배가 더 고파. 더 해야할게 더 많아.
그래 이게 불교적 관점과 세속의 관점이 차이가 이렇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걸 이제 중화를 시켜야돼. 중화를 잘 시켜서 중도적으로 우리 불자들은 살아야됩니다. 그게 이제 불교에서 배운 지혜에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어도 된다. 뭐 산중에 사는 사람도 최소한의 먹을 것은 필요한데, 지금 이 세상에 아이들 키우고 뭐 남 사는 거 만치 살려면은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갖추고 살아야 되는게 맞아요. 그건 갖추고 살아야 되는 거야.
그런데 불자는 지금 내가 말씀드린‘우리 욕심이 있는 한은 끝없이 배고프고 끝없이 부족하다.’란 이 사실도 또한 알고 살아야 돼. 그래서 그것을 잘 중화시켜서 중도적으로 우리가 조화를 이루면서 살 줄 아는 것. 열심히 일도 하고 열심히 돈도 벌면서 그러면서도 또한 우리 욕심이 이게 다가 아니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정말 마음이 편하고‘지족(知足)이 제일부(第一富)라.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제일의 부자다.’라고 하는 이러한 도리도 알고 살아야 돼. 그걸 중도(中道)라고 하는 거요. 그걸 중도라고, 중도적인 삶이라고 하는게 그렇게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 병신되게 살라고 하는 게 불교가 아니에요. 돈도 열심히 벌지만은 그렇다고 그게 다가 아니라고 하는 사실도 잘 알고 살아. 그래서 그야말로 헌신짝처럼 미련없이 버릴 수도 있는 그런 어떤 그 크고 넓은 그 마음자세도 갖추고 그러면서 또 한편 돈도 벌고, 그러면 그런 사람이 돈 버는 것은 달라요. 자세가 다른 거라. 거기에 목을 매지 않는다고, 이게 아니구나 싶을 때 탁 놓을 줄 알아. 그런데 그런 어떤 철학이 없는 사람은 아니구나 싶은데도 기어이 거기 매달려가지고 끝까지 이제 패가망신하고 완전히 망칠때까지 그걸 붙들고 늘어지는 거야. 그 차이가 있습니다. 이거 꼭 배워둬야 돼요. 완전히 망칠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거라.
근데 불교좀 공부한 사람은‘에이 이게 뭐 다가 아닌데 뭐 이까짓거 뭐라고 그냥 최소한 뭐 굶지 아니하고 헐벗지 아니하면 되고 정 뭐 옷 없으면 저기 누가 갔다 버린거라도 주워 입지.’하는 최소한도 그런 각오가 딱 돼있는 사람은 그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망하질 않습니다.
그래 이제 아까 부처님의 어릴때하고 내 어릴때하고 차이를 이야기했듯이, 세상을 보는 눈도 사람따라서 천차만별이거든요. 그래서 이런 대승경전을 공부하면서 부처님의 그 지혜를 조금이라도 억만 분의 일이라도 내 것으로, 내 살림살이로, 내 인격으로 만든다면 그런 어떤 사고, 그러 어떤 그 사상과 견해도 갖추고 있을 필요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이 부처님은 그러한 모든 그 우리가 그 앓고 있는 문제들을 전부 다 보고 다 안다 이거여. 그래서 五欲과 財物과 利益을 위한 까닭으로 가지가지 고통을 받으며
又以貪著追求故로
貪着하고 追求하는 까닭으로, 끝없이 탐착하고 끝없이 추구하잖아요. 아무리 많아도 또 탐착하고 아무리 많아도 또 추구하고 그렇게 하는 까닭으로
現受衆苦하고 後受地獄畜生餓鬼之苦하며
눈 앞에서 여러 가지 눈 앞에서 환하게 여러 가지 고통을 받고 뒤에는 가서 地獄의 고통, 畜生의 고통, 餓鬼의 그런 고통을 또 받으며
若生天上커나 及在人間에 貧窮困苦와
만약에 천상에 태어나거나 혹 인간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貧窮困苦해. 그러니까 잘 살아도 천상이라고 하는 곳은 아주 보통 평균수준이상으로 살아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야. 困苦 천상에 태어나도, 여기 이제 인간에 태어나도 하는 것은 보통 평균수준이고 그런 뜻입니다. 天上은 평균수준보다 더 잘살아도, 이런 말이야.
예를 들어서 무슨 저기 24평 아파트가 평균수준이라면은 34평에 살아도, 이런 말이라. 그래도 괴롭게 생각하는 거요. 貧窮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困苦 고뇌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 그런 고통과 그 다음에 그 뿐인가?
愛別離苦와 怨憎會苦인
애착이 가는 사람들하고 이별하는 고통 또 미운 사람‘아 저거하고 안 봤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그 한참 안보더니 어떻게 우리 아파트에 이사를 왔어. 하이고 죽겄어.’怨憎會苦 그 참 큰 고통이거든 그렇다고 또 그 어려운 이사를 말이야 손해까지 봐가면서 이사를 할 수도 없고, 이런 것도 있다구요. 살다보면은, 愛別離苦있고 怨憎會苦있고
如是等種種諸苦衆生이 沒在其中하야
이와같은 등 가지가지 여러 고통의 중생들이 그 가운데 전부 빠져있다. 우리 현실 이 사바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속에 전부 빠져있어서 그러면서 또 그게 좋다고
歡喜遊戱하며
불 속에서 아이들이 장난치는 것을 이렇게, 우리가 이게 이 세상에서‘아이고 뭐 살만하지 뭐’금방 잊어버리고 이렇게 사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 있으면서, 우리가 다 그런 속에 있잖아요. 그러면서 또 歡喜遊戱하며
不覺不知하고 不驚不怖하며 亦不生厭하고 不求解脫하며
깨닫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두려워도 아니해. 두려워도 아니하고 또 싫어하지도 아니해. 싫어한 생각도 내지를 아니하고 거기서 벗어날려고도 구하지를 아니해.
별의별 고통이 있는데도 그것을 그냥 무뎌가지고 벗어날려고 하질 않는다 이거여. 그러니까 부처님은 영혼이 아주 해맑은 분이고 아주 여린 분이니까 그런 어떤 그 벌레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서도 자기의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가슴에 멍이들어서‘어떻게 하면 저런 삶과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이런 생각을 한거요. 그러니까 그 영혼이 천지차이거든, 같은 영혼을 가지고도
於此三界火宅에 東西馳走하야
이 삼계화택에서 동으로 서로 내달리면서 날뛰고 논다 이거야.
雖遭大苦나 不以爲患이라
비록 큰 고통을 만나기는 했으나 그것을 근심이라고 여기지 아니해. 환란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해.
그 누가 대개 한 번 아프면은‘아 이거 생사해탈 얼른 해야지. 뭔가 지혜의 눈을 한 번 떠야지.’하는‘더 이상 아프기전에 지혜의 눈을 떠야지.’하는 그런 각오를 하나씩 해야되는데, 그 한 번씩 대개 아프고 나면은 고런 소득이 있어야 돼요. 그런데 아플때만 그러다가 나으면 그만 잊어버린다. 외국에 여행갔을땐‘돌아가면 틀림없이 내가 영어 할끼다.’이렇게 계획세우는 거야. 인천공항에 내리면 그때부터 잊어버린다. 조금 멀리가는 사람은 거기서 이제 영어학습하는 책 몇 권 사가지고 갔다놓고는 그냥 잊어버리고 또 어떤 사람은 그 한 페이지, 첫 페이지 이렇게 열심히 보다 잊어버린 사람도 있고 별별 사람들, 다 경험이 있는 모양이야? 웃는 거 보니까
그와같이 우리가 아플때는‘하 내가 이번에 이 병을 낫고나면 누구한테 잘못한것도 가서 사과하고 누구한테 빚진것도 얼른 갚고 또 참 마음도 넓게 쓰고 잘해야지. 남편한테 잘하고 자식들에게 잘하고 아내한테 잘하고 이웃에도 잘하고 해야지. 절에도 가서 그때 시주할려고 했던 거 마저 해야지.’이 생각하는데 그만 병 낫고나면은 다 잊어버립니다. 다 잊어버려.
참 부처님 그래 잘 알지. 이 보십시오.‘東西馳走해서’이리저리 날뛰면서‘雖遭大苦나’비록 큰 고통을 만나나‘不以爲患이여’환란으로 여기질 아니해 그만.
78 舍利弗 佛見此已 便作是念 我爲衆生之父 應拔其苦難 與無量無邊
사리불 불견차이 변작시념 아위중생지부 응발기고난 여무량무변
佛智慧樂 令其遊戱
불지혜락 영기유희
舍利弗아 佛見此已하시고
사리불아 부처님이 이러한 것을 보고 나서는, 이러한 상황을 중생들의 이러한 상황을 보고 나서는
便作是念호대 我爲衆生之父라
곧 이러한 생각을 하대. 나는 중생의 아버지다 말이여.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어요.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런데 마음을 이렇게 바꾸어가고 이렇게 훌륭한 성인이 되니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요.
내가 아까 이야기한 대만의 그 스님도, 증엄스님이지 증엄스님. 증엄스님도 뭐 옛날에 처음에 태어나서, 그런 생각은 했더라구요. 자기 하신 말씀에보니까. 그 모든 사람들이 다 바구니들고 시장에 가서 장을 봐오잖아요.‘야 저 바구니들고 나도 시장에 가서 장을 봐오면은 그런 그 보통 아낙네가 돼야 된다 말인가?’이런 고민은 했어. 그리고는 중이 됐어. 그리고는
그리고 지금은 그 바구니에 대한 자기 어릴때 생각을 또 하는거야.‘나는 세상 사람들을 다 담는 큰~ 바구니를 장만했다.’그게 자기 마음이다 이거야. 자기 마음. 어릴때 출가하기 전에는 세상의 그 아낙네들처럼 가서 장을 봐가지고 그 장 본 물건을 담아오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지금은 온 천하 사람들을 내 이 큰~ 바구니. 마음의 바구니, 자비의 바구니에다가 다 담게됐노라고 이렇게 말을 해놨어요. 자기 법문에
참 근사한 사람아닙니까? 그 불교가 그렇게 사람을 만들어요. 특히『법화경』그 스님 다른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없어.『법화경』을 그렇게 지독하게 공부했더라구요. 번역도 하고 그랬어요.
일본에『법화경』불교가 대단하잖아요. 일본은 70%, 80%까지가『법화경』불교입니다. 그래서『법화경』해석이 좋은게 여러 수백 가지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 스님도 그때에 벌써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분이라 그래노니까 일어를 잘 알아가지고, 총명한 아가씨였어. 그래가지고 일어를 다 공부를 해가지고 일본어로 된 좋은 번역본을 중국어로 번역을 한 그런 경우도 있고 하더라구요.
이런 생각을 하대. 나는 세상의 아버지다. 중생의 아버지다.
應拔其苦難하고 與無量無邊佛智慧樂하야
응당히 꼭 당연히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다 뽑아주고 뽑아내고 한량없고 가이없는 佛智慧의 즐거움을 주어서. 與자는 뭐 요즘 무슨 증여한다. 증여세할 때‘여’자 이 여자써요. 준다 이 말이여. 줄 여(與)자여. 더불 여자도 되지만 준다는 뜻입니다. 한량없고 가이없는 부처님의 지혜의 즐거움을 주어서
令其遊戱호리라
그들로 하여금 遊戱 거기서 佛智慧 부처의 지혜의 즐거움을 가지고 즐겁게 놀도록 내가 해주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요.
그러니까 당신은 부처가 됐으니까‘하~ 이 경지 이런 밝은 지혜의 눈을 가진 모든 사람이 다 그런 조건을 가지고 있어. 불성(佛性)이라고 하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모두 이것만 일깨워줄 것만 같으면 전부 나같이 될텐데 왜 그렇게 못하는가?’이게 안타까워가지고 그렇게 되도록 해주는거야. 그렇게 하겠다. 나는 아버지가 돼서 아들들에게 자식들에게 전부 그렇게 하는게 당연한거다. 이런 말이지.
79 舍利弗 如來復作是念 若我但以神力及智慧力 捨於方便 爲諸衆生
사리불 여래부작시념 약아단이신력급지혜력 사어방편 위제중생
讚如來知見力無所畏者 衆生不能以爲得度 所以者何 是諸衆生
찬여래지견력무소외자 중생불능이위득도 소이자하 시제중생
未免生老病死 憂悲苦惱 而爲三界火宅所燒 何由能解佛之智慧
미면생로병사 우비고뇌 이위삼계화택소소 하유능해불지지혜
舍利弗아 如來復作是念하대
사리불아 여래가 다시 또 이러한 생각을 하대
若我但以神力及智慧力으로 捨於方便하고 爲諸衆生하야
내가 만약에 내가 다만 神力과, 아주 뛰어난 신통력과 지혜의 힘으로써 방편을 버리고 중생들을 위해서
讚如來知見力無所畏者면
여래가 가지고 있는 그 知見. 지혜란 뜻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견과 힘과, 여래의 힘과 또 여래의 無所畏 여래가 두려워하는 바가 없는 그런 것들을 만약에 찬탄한다면은,“아 부처는 이런 거야. 부처의 능력은 이런 것이야.”라고 그것만 찬탄한다면은
衆生不能以爲得度리라
중생이 능히 이것으로써 제도를 얻지 못하리라. 그 말이요. 그것만 가지고 계속 부처님 경지만 가지고 찬탄하면은 제도를 못하는 거요.
그러니까 내가 이제 그 증엄스님 이야기도 할때 늘 염려스러운게 있어요.‘그~ 나는 감동하는데 그 스님 이야기가 혹시 먹혀들지 아니하고 거기에 오히려 반감을 일으키면 어쩌나?’하는 그런 염려가 내 늘 들어. 이사하게, 들면서도 나는 감동을 하니까 하고 싶어서 하는 거요. 하고 싶어서 하지만은 그렇게 이제 반감이 들 수도 있다 이거여. 반감이 들면 오히려 안한이만 못하지.
여기 부처님도 그걸 염려한 거야.“아 부처의 경지는 이런거야. 부처의 지혜는 이런거야.”力과 無所畏 이런 것만 가지고 자꾸 부처의 경지만 이야기하면 중생들이‘아이구 그건 뭐 부처의 이야기지. 우리는 제도를, 그건 우리에게는 해당이 안된다.’이 생각을 하는 거죠. 이것으로써는 제도를 얻지 못하리라.
所以者何오 是諸衆生이 未免生老病死와 憂悲苦惱하고
까닭이 무엇인고? 모든 중생이 生老病死와 憂悲苦惱를 면치못하고
而爲三界火宅所燒어니
삼계화택에서 타고 있는 바가 되거니. 고통속에서 빠져있다 이거여.
何由能解佛之智慧리오
무슨 까닭으로써 능히 부처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참 정말 부처님의 마음이, 배려하는 그 마음이 넓어요. 중생을 배려하는게 그리고 부처님 지혜만 이야기하면은, 우리는 지금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뭐 불교 성불이니 무슨 수행이니 무슨 그 사경이니 무슨 경전공부니 무슨 뭐『법화경』이 아무리 좋다한들, 아 지금 먹고 살기 바쁘고 한데 뭘 그런 걸 이야기하느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이겁니다. 사실 그렇거든
그러나 공부하러 온 사람들은 벌써 그런 수준은 넘어섰어. 그러니까 이제 어느정도는 수준이 올라섰으니까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다 뭐 실천은 못해도 먹혀들기는 한다 말이야. 안 그러면 이거 참 불교라고 하는 것이 이야기하기가 곤란한 종교에요. 곤란한 종교라.
그래서 부처님도 꾀를 낸 거요. 말하자면 방편을 쓴 것입니다. 부처님 지혜만 가지고 당신 수준의 이야기만 하면은 절대 안된다 하는 것을 아주 철저히 알았어요. 왜냐? 중생들 수준보니까 지금 먹고 살기도 바쁜데, 여기에는 그 먹고 사는 이야기보다는 고통, 고통받는 것이 첫째 문제니까 그 고통을 해결해주는 방법부터 이야기해줘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겁니다. 그래서
80 舍利弗 如彼長者 雖復身手有力 而不用之 但以慇懃方便 勉濟諸子
사리불 여피장자 수부신수유력 이불용지 단이은근방편 면제제자
火宅之難然後 各與珍寶大車 如來 亦復如是 雖有力無所畏
화택지난연후 각여진보대거 여래 역부여시 수유력무소외
而不用之 但以智慧方便 於三界火宅 拔濟衆生
이불용지 단이지혜방편 어삼계화택 발제중생
爲說三乘 聲聞辟支佛佛乘 而作是言
위설삼승 성문벽지불불승 이작시언
舍利弗아 如彼長者가 雖復身手有力이나
사리불아 저 장자가, 저 장자가 비록 몸과 손에 힘이 있긴하지만은
而不用之하고 但以慇懃方便으로
그것을 쓰지를 않고 그 힘을 쓰지 않고 다만 이 은근한 방편으로써, 은근한 방편으로써
勉濟諸子火宅之難然後에 各與珍寶大車인달하니라
모든 아들들이 화택의 難에서, 화택의 환란에서 면하게 힘써 면하게 한 연후에사 각각 큰~ 수레 그것도 온갖 보배로써 잘 꾸민 그렇게 훌륭한 수레를 준 것과 같이, 저 앞에서 그런 이야기 먼저 있었어요.
如來도 亦復如是하야 雖有力無所畏나 而不用之하니라
그래도 또한 다시 그와같아서 비록 힘과 無所畏가 있기는 있지만은 그것을 쓰지를 않고, 그런 신통력을 쓰지를 않고
但以智慧方便으로 於三界火宅에 拔濟衆生하야
다만 지혜방편력으로써 삼계화택에서 중생들을 일단 拔濟 뽑아서 건저 내가지고서 그러기 위해서 이제
爲說三乘인 聲聞辟支佛佛乘하리라하고 而作是言하대
삼승을 위하야 삼승을 설하는 성문, 벽지불, 불승을 설하리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이런 생각을 하대
여기에서 성문, 벽지불, 불승했는데 이 佛乘에는 문제가 있는 용어다 그랬어요. 여긴 보살승(菩薩乘)이라고 들어가야 딱 맞는데 두 번 그런 대목이 있어요. 요 밑에도 또 금방 나옵니다. 성문, 벽지불, 보살 이런 수준의 불교를 가르쳐야 되겠다라고 하고 이런 생각을 하대
81 汝等 莫得樂住三界火宅 勿貪麤弊 色聲香味觸也 若貪著生愛
여등 막득락주삼계화택 물탐추폐 색성향미촉야 약탐착생애
則爲所燒
즉위소소
汝等은 莫得樂住三界火宅하고
汝等은 즐겁게 三界火宅에 머물지 말고, 지금 불나고 있는 이 집에 머물지 말고
勿貪麤弊인 色聲香味觸也하라
麤弊인 저 色聲香味觸 이런 것에 탐하지 말고 말라.
若貪著生愛면 則爲所燒리라
만약에 그것을 이제 色聲香味觸 이런 것에 탐착하고 애착을 낼 것 같으면은 곧 불타는 바가 되리라.
그러니까 너무 어떤 명예, 물질 그 여기 이제 나와있네요. 眼耳鼻舌身 色聲香味觸 그러니까 안이비설신을 대상은 색성향미촉이거든요. 그것만 어떻게든지 그저 해볼라고 잘해볼라고 그~ 뭐 수술을 여러 수백 번하고 色 요건 또 그것도 있지만은 내색(內色)에는 그게 해당되고 그 다음에 외색(外色)은 뭐 집이니 온갖 것 물질이니 온갖 우리가 수용하고 있는 모든 물질이 전부 색에 해당됩니다. 내색은 우리 육신중에, 육신의 사대(四大)중에 내사대(內四大)라고 해가지고 육신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또 聲 香 소리도 좋은 소리, 칭찬하는 소리. 뭐 비난하고 충고하는 소리는 안들을려고 하고 아주 칭찬하고 아주 잘했다고 하는 그런 소리나 들을려고 향기도 좋은 향기만 맡을려고 맛도 좋은 맛 나는 것. 촉감도 아주 몸에 아주 촉감이 좋은 것 그리고 또 뭐 더운 거는 뭐 도저히 못견딘다 해가지고 저 에어컨 펑펑 틀어놓고, 이게 전부 觸에 해당되는거요. 내 몸에 말하자면 거슬리지 않도록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 지금 어지간히 그렇게 돼있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제 貪着하고 生愛 애착을 내지요.
그래서 그런데 그만 빠져버리면 그 외에 것에 눈을 돌리지 못합니다. 그게 큰 문제에요. 사람이, 물론 뭐 먹고 자고 기본적으로 의식주는 필요하죠. 그러나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식주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면은,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됐다면은 보다 더 다른 차원의 인생에 눈을 떠야 되요. 그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경공부를 하고 절에도 다니고 사경도 하고 또 뭐 불교적인 것이 아니면은 다른 문화적인 것에 눈을 뜨잖아요. 문화적인 거 그것도 역시 종교적인 차원하고 비슷하거든요. 그건 의식주하고 또 다르다구요. 의식주가 해결된 뒤라.
그 어떤 사람들은 어떤 예술에 심취한 사람은요. 정말 지지리 못사는데도 예술에 심취한 사람들이 또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상당히 존경스러운거요. 어떻게보면, 이제 그런 마음으로 이제 불교공부도 하고 하면은 이제 상당한 위치에 오를 수 있죠. 그래서
82 汝速出三界 當得三乘聲聞辟支佛佛乘 我今爲汝 保任此事
여속출삼계 당득삼승성문벽지불불승 아금위여 보임차사
終不虛也 汝等但當勤修精進 如來以是方便 誘進衆生
종불허야 여등단당근수정진 여래이시방편 유진중생
汝速出三界하야 當得三乘聲聞辟支佛佛乘이어다
汝等은 속히 삼계에서 벗어나서 마땅히 三乘 삼승인 聲聞 그리고 辟支佛 그다음에 佛乘 요것도 菩薩乘이라 해야 옳습니다. 뒤에 보살승이라고 나와요. 앞에가 계속 보살승이 나왔는데 여기 두 곳에 이렇게 불승이라고 돼있습니다. 아마 보살승이라고 할 것을 이렇게 했나봐요. 불승을 얻으며 얻을지어다. 마땅히 이런 삼승을 얻을지어다.
我今爲汝하야 保任此事하노니 終不虛也니라
내가 지금에 그대를 위해서 이 일을 책임지고 보증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그 말입니다. 여기서 保任此事라고 하는 말은 마침내 허망한 것이 아니다. 이건 내가 책임진다 말이여. 결코 허망한 것이 아니다. 이런 말입니다. 믿고 공부만 하면 된다 이거여.
뭐 한참 經공부하고 절에 다니다‘이건 무슨 소득이 있을까?’그거 그렇게 의심들때가 있거든요. 사경도하면 영험있다는데 좀 하다가 의심들고 뭐 잘 안써지고 꾀가 나거든요. 그러면 그만 그때부터는 이제 의심이 들고 하기 싫어지는 거라. 그 부처님도 그 생각이 들어서 保任此事 이 일에대해서 내가 책임진다. 보증하고 책임진다 이 말입니다.‘終不虛也니라’결코 허망한 게 아니다 이 말여. 종교적인 이 일.
참 내가 그전에 저 신륵사에 좀 살 때 거기에 어떤 그 절에 오는 어떤 거사님하고 북한서 이제 나왔는데, 여주니까 북한 사람들 더러 있드라구요. 어떻게 하면 그 사람에게 불교를 이해시킬까하고 몇 달을 그 이야기를 해도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거야. 보고 듣고 먹고 의식주 이것 이외에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거라.“그 불교 그 마음, 마음하는데 그것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고, 몇 달을 이야기했어요. 사람은 좋아가지고 절에 잘와서 절에서 스님들하고 이야기도 잘 나누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이해가 안되는가봐? 이런게
내 참 그 늘~ 참 내 자신의 법력도 안타깝고 그 분의 어떤 그 마음도 안타깝고 그런 생각을 해서 못잊고 있습니다. 우리가‘줄탁동시(啐啄同時)’그런 말 있어요. 그 저기 저 병아리가 그 알을 깨고 나올때 안에서 이제 다 이제 그 부화가 다 됐어요. 그럼 안에서 꼬로록 소리가 나요. 그게 啐이야. 그러면 어머니는 그 소리를 가만히 귀기울여 듣고 있어야 되요. 그거 놓쳐버리면 큰일나요. 놓쳐버리면 그 안에서 죽어버리는 거야. 꼬로록 소리가 날 때 이미 병아리가 완전히 병아리가 다 됐다는 뜻이라. 그럴때 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탁 찌어져야돼. 그래서 공기를 넣어줘야돼. 그래 啐啄同時란 말이거든, 동시에 이뤄져야 된다. 그런 말입니다.
그 모르죠? 잘. 꼬로록 소리 나자마자 바로 찌어줘야돼. 이제 그래야 공기를 삽입시켜줘야 거기 공기를 마시고 이제 살아나는 거요. 그러면 딱 공기만 넣어주면 지가 깨고 나가. 일일이 안 깨도 돼요. 공기만 넣어주면은 그냥 그때부터는, 만약에 그 시간 놓쳐버리면 거기서 이제 숨 못쉬고 죽어버리고 또 그 시간이 안됐는데 쪼으면 어떻게 돼? 덜 영글었는데 이건 그냥 완전히, 그거 나와서 아무쪽에 쓸모없이 그냥 죽는거잖아. 그래 생명이라는 게 이렇게 신비한 것입니다. 신비하고 또 그만치 귀중한 거야. 알고보면은
그 啐啄同時라고 이게 이제 가르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연대가 맞아야 된다. 그래 특히 이제 선가(禪家)에서,선가에서 참선을 깊이 한 사람과 선지식이 그것을 잘 살펴가지고 그래 이제 한 마디 딱 던져주면 그때 탁 눈을 뜨는거죠.
그 전에 어떤 스님이 열심히 좌선하고 있어. 좌선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까 영글었거든, 그래 그 앞에 가가지고 기왓장을 가지고 서서히 이렇게 갈았어. 소리를 자꾸 내니까 시끄럽잖아요. 그 스승인데 저걸 자꾸 가는거야. 기왓장을 자꾸 가니까 이제 제자가 공부하는데 방해를 하니까“스님 거 뭐하고 있습니까?”“아 이거 갈아서 내가 거울만들려고”“아 기왓장갈아서 거울된다는거 나 생전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그러자 옳다 됐다하고“나는 좌선해서 성불, 부처된다는 거 듣도 보도 못했다.”이러거든, 그 말 한 마디에 탁 깨친거요. 그게 이제 그 스님이 영글어있을때 해야지 영글지도 안았는데 그런 소리하면은 이게 완전히 패장이 되버리는 거라.
그러니까 병아리가 병아리 다 되기도 전에 그냥 쪼아버리면 그냥 물되가지고 스르륵 흘러버리고 마는 그대로 썩어버리고 만다고, 참 세상에 그런 신비스럽고 묘한 일들이 참 많습니다. 이런 것도 우리가 불교공부하니까 그런것까지 아는거죠.
保任하노니 終不虛也니라. 이거 믿으세요. 이 일을 내가 책임지고 보증하니 결코 헛된 일이 아니다.
汝等但當勤修精進이니
汝等은 다만 마땅히 부지런히 닦고 정진할지니. 그러니까 불교공부하고 사경하고 경읽고 하는 거 이거 정말 의식주에만 관심있는 사람들은 이게 이해가 안되는거라.‘그거 뭐할려고 하는고?’참 그 어떻게 할 길이 없어요. 스스로 그게 이제 정신이 이렇게 열려야지.
如來以是方便으로 誘進衆生호라
여래는 그래서 방편을 써가지고서 衆生들을 유혹한다 이거여. 중생들을 유혹해서 나아가게 하노라.
83 復作是言 汝等當知 此三乘法 皆是聖所稱歎 自在無繫 無所依求
부작시언 여등당지 차삼승법 개시성소칭탄 자재무계 무소의구
乘是三乘 以無漏根力覺道禪定解脫三昧等 而自娛樂 便得無量
승시삼승 이무루근역각도선정해탈삼매등 이자오락 변득무량
安穩快樂
안온쾌락
復作是言하대 汝等當知하라 此三乘法은 皆是聖所稱歎이며
또 이런 말을 하대. 汝等은 마땅히 알아라. 이 삼승법은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이죠. 삼승법은 다 성인들이 모두 稱歎하는 바다.
사실 삼승법을 칭찬하는 게 아니거든요. 아닌데‘칭찬하는 바다.’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自在無繫라 無所依求니
자유자재해서 속박함이 없다. 얽힘이 없다. 더 이상은 이제 의지해서 구할 바가 없다. 삼승법만 구하면은 성문, 연각, 보살만되면 더 이상 구할 바 없단 말이여. 그걸로 끝이다. 졸업이다. 이렇게 말한거요.
乘是三乘하야 以無漏根力覺道禪定解脫三昧等으로 而自娛樂하면
이 삼승을 올라타서, 세 가지 수레에 올라타서 無漏 샘이 없는 출세간 법입니다. 샘이 없는 것. 그 다음에 根 오근, 力은 오력, 覺은 칠각지, 道는 팔정도 그 다음에 禪定, 解脫, 三昧等으로 스스로 이것을 가지고 즐긴다.
해탈과 삼매와 선정, 팔정도, 칠각지, 오력, 오근 뭐 거기다『법화경』읽는거, 사경하는거 또 절에 와서 절하는거. 그 법당에 와있기만 해도 즐겁잖아요. 이건 전부 의식주하고는 관계가 없는거야. 의식주하고는 관계가 없는 이런 아주 기가막힌 즐거운 세상. 정말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궁극적으로 우리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그런 그 길이 있다구요. 이것으로써 즐기도록 즐기게 될 것 같으면
便得無量安穩快樂하리라
곧 샘이 없는 無量 한량없는 편안하고 즐겁고 快樂 즐거운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三乘 이야기에요. 아직은 중간이죠. 중간, 방편으로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거야. 내가 여러 수천 번 이야기하지만은, 어린아이 우는 아이를 달랠려면은“호랑이 왔다.”라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거죠. 호랑이한테 큰일난다 말이야. 이렇게 하는거죠. 그와 마찬가지로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은 일단 괴로움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이야기를 해가지고 거기서 고통에서 벗어나게 그렇게 이제 말하자면, 고통은 문제로 삼지 않도록 눈을 높여주는 거죠. 고통은 문제삼지 않도록 눈을 높여 주는거라.
고통은 다 있어요. 있는데 그것을 문제 삼느냐? 안삼느냐? 그 차이입니다. 고통이 없어진게 아니에요. 다 고통있습니다. 몸뚱이 가지고 있는데 고통 없을리가 있습니까? 그런데 고통을 문제 안삼아. 보다 더 높은 차원에 사는 사람은 고통 그거 문제 안삼는 다구요. 뭐 저기 잘못먹고 잘못입고 하는 거 전혀 문제 안삼아. 차원이 다르니까 차원이 다르니까. 그렇게 아셔야돼요. 우리 불자들은 거기에 긍지와 자부를 가지셔야 됩니다.“아이구 난 떨어진 옷 아무 상관없다. 나는 뭐 전세방에 살아도 아무 상관없다. 사람이 어디 그게 다냐.”보다 더 높은 차원의 가치 거기에 눈을 뜨면은 그 사실은 크게 그게 구애될 바가 없습니다.
불자들은 불교공부를 조금만 이제 하면은 거기에 대한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얼마나 큰 재산입니까? 100평 아파트에 살아도 내 허기지고 배고픈데, 전세방에 살아도 아무렇지도 않아.‘아 이『법화경』이 좋은데 오히려 뭐 그까짓거 뭐’얼마나 큰 재산입니까? 이건 뭐 수천억 재산 아니에요. 수천억 재산이야 이게. 그 다음에 의식주 최소한의 그냥 먹고 입고 잘때만 있으면 끝이야. 그 다음에 나는 더 이상 구할 필요없다야. 그 사람에게는 수천억 재산보다도 더 큰거야 이게. 불교공부가, 그런 길이 있습니다.
잘 살면서『법화경』공부 잘하면 그건 더 좋지. 더 좋지만은 그건 이야기할건 없는 거요.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한 단락이 끝나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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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강의 제21강-1 (妙法蓮華經 3.비유품 84-87)|* 법화경 녹취(금요법회)
화풍정|조회 189|추천 1|2010.10.23. 00:37http://cafe.daum.net/yumhwasil/8NuM/55
노보살님께서 인생 최말년에 이렇게 법화회상에 동참을 하셔서 혼자 궁지렁 궁지렁해도 그래도 이 자리에 저 말석에 동참한 그 공덕과 그 인연은 아주 지중할것입니다. 혹시 뭐 다른 소리가 들리더라도 우리 법화행자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세요. 다 여러분들도 끝내는 저 노보살님처럼 늙게 돼있습니다.
계절이 아주 너무 좋은 정말 춘3월 호시절입니다. 참 온갖 초목들이 세상을 채워가지고 아무리 기운이 없던 사람도 기운이 생기게 돼있고 나이든 늙은이도 상당히 젊어지는듯한 그런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참 좋은 계절이에요. 이럴때 무엇을 하는게 가장 가치있는 시간을 보낼 것인가? 가장 값지게 내 인생을 쓸 것인가? 그 하루에 내 인생은 다시는 오지않는 정말 천금과도 같은 시간입니다. 뭐 설사 계절이 좋든 좋지않든 날씨가 어떻든 관계없이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이란 천금과 같은 순간이죠.
우리는 그래도 날짜가 그래도 한 좀 있다고 무심하게 그 지냅니다만은 내가 가끔 말씀드리죠. 어제 돌아가신 분은 오늘을 살기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을 드렸겠습니까? 그래도 결국 오늘이라는 이 순간을 살지못하고 갑니다. 그런걸 생각하면은 참으로 오늘 우리 하루가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가를 절실히 느낄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인의 가르침을 자꾸 이렇게 가까이 접하고 또 특히 최고의 대승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법화경』같은 것을 공부하면 할수록 우리 인생의 무게가 더 무거워지고 가치가 더 나갑니다. 속이 비었을때는, 뭐 사람의 가치를 있다 없다 매기는 것이 좀 그렇지만은 방편으로 우리가 가치를 매긴다면은 이러한 내용을 모를때와 알때의 그 가치는 틀림없이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은 하루하루를 우리가 이렇게 공부해간다고 하는 거 또 크게 깊이 이해는 못한다하더라도 이런 그 부처님의 최고의 경전 대승경전을 우리가 가까이 할 수 있다고 하는, 가까이 하는 이 순간만이라도 자꾸 축적이되면 쌓아가면 그만치 내 인생의 가치가 더 나가고 훨씬 그 고귀해진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은 돈을 많이쌓아서 가치가 있다기 보다는 정말 이러한 훌륭한 성인의 가르침을 내 영혼속에 착착 쌓아감으로해서 진정 이제 우리 인생의 그 가치가 더 나가는 거죠. 그래서 정말 하루하루를 그리고 한 시간 한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야 할 줄로 압니다.
오늘은『법화경』85쪽 84번부터 할 차례인데, 우리 불교에서 보면은 그‘사성육범(四聖六凡)’이라고 하는 말을 듣습니다. 네 가지 성인의 경지하고 여섯 가지 범부의 경지. 사람을 그렇게 열 가지로 분류를 해요. 열 가지를 분류를 하는데 그렇게 차등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공부를 많이 하면 그만치 가치가 나간다 그 말입니다.
여기는 돈이 많이 있다. 아니면 벼슬이 높다. 그거가지고 가치있다고 매기지를 않고 그 사성육범중에 제일 높은데 있는 이를 부처님 그 다음에 보살 그 다음에 연각 그 다음에 성문 이 네 부류의 사람을 네 성인의 경지 이렇게 말합니다. 부처님, 보살, 연각, 성문 그래 성문, 연각, 보살, 불 이렇게도 치지요. 그 다음에 여섯 가지 범부의 경계. 범부의 경계는 이제 지옥 밑에서부터 치면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 그래 인도, 천도, 아수라. 아수라는 전체 다 먹힌다고 해서 아수라를 범부중에서는 제일 나중에 쳐요. 그럼 여섯 범부가 되지요.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
그 인도는 우리가 보통 그 아무 불교적인 상식도 없고 또 그렇다고 해서 크게 무슨 악행을 하거나 그런 일도 없이 그냥 평범하게 사람으로써 살아가는 그 삶을 人道 사람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그 밑을 내려오면 이제 우리가 사람이지만은 우리하는 행위에 따라서 성인도 될 수가 있는 반면에 또 저 앞에 그대로 사람 몸가지고 지옥행을 하는 거에요. 축생행도 하고 아귀가 되기도 하고 뭐 별별거 다 됩니다. 여기 이제 세분하면은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고 해서 한 순간의 우리의 마음속에 삼천 종류의 그런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가 한 순간 부처가 될 수도 있고 무슨 보살이 될 수도 있고 성문이 될 수도 있고 범부가, 연각이 될 수도 있고 또 천상에 태어난 사람처럼 천신같은, 하늘의 신같은 그런 그 삶도 가능하고 지옥의 삶도 가능하고 축생의 삶도 가능하고 그렇습니다. 아귀의 삶도 가능하지요. 우리는 아귀를 자주 왔다 갔다 하지요. 보통, 아귀 또 아수라도 가끔 왔다 갔다 합니다. 아수라장 그게 전부 아수라라는 뜻이잖아요.
아귀(餓鬼)는 이제 자기 분에 맞지 않는 것 그것에 대해서 너무 배고파하는 것. 그것을 이제 아귀라 그래요. 배고프다 이 말요. 그러니까 벼슬도 자기 분도 아닌데 그 벼슬을 자기가 누리고 싶어하면 그건 그 사람은 이제 아귀라. 또 이제 재보선 선거가 생겨 나와가지고는 또 이제 벼슬에 배고픈 아귀들이 많이 등장을 해서 야단법석을 떨지않습니까? 불교는 그런 것을 아귀라 그래요. 자기 분에 안맞는 것. 벼슬도 마찬가지고 돈도 마찬가지고, 자기 돈도 자기가 뭐 말하자면 돈을 많이 가질 수 있는 그런 그 원인을 지어놓으면은 저절로 들어와요. 내가 생각안해도 내가 지어놨기 때문에 절로 들어옵니다.
봄에 곡식을 많이 뿌려놓은 사람은 가을에 저절로 추수가 되게 돼있어요. 그 돈도 애쓴다고 그 욕심낸다고 돌아오는 게 아닙니다. 되도록 만들어 놔야 돼요. 되도록, 그러면은 아무리 물리쳐도 들어오고 또 나갈것도 아무리 붙잡아도 나가게 돼있는것은 원인이 나가도록 만들어져있는 것은 나가게 돼있는거요. 그게, 그걸 알아야 돼. 그런 이치를 알자고 불교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뭐 다른 종교에도 그런 말이 있지만은 큰~ 바위 물에 빠진 잠겨져있는 바위보고 물위로 떠라 떠라 떠라 기도한다고 그 큰~ 바위덩어리가 물위로 떠집니까? 그게, 그 그렇게 되는게 아니에요. 빈다고 되는게 아니라. 빌어서 됐으면 싶은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놓은 방편이라. 또 그런 사람들이 많아. 그런 근기가 많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그런 방편을 만들어 놓는거요.
그래서 일본절에 가면은, 보면은 아주 저 세전이라 그래놨어. 노름 세자. 불전함 우리는 그래도 불전함, 복전함 이렇게 써놨어요. 부처님 앞에 놓는 그 돈통있죠? 복전함, 희사함, 불전함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래도 그런 정도로 써놨는데 아예 일본은 세전이라 해놨어. 세전 노름 세자. 아주 글자 저저 복잡하다구요. 획수도 많어. 노름 세자는 뭔고 하면은 10원 던지면 만 원, 10원 희사하면 만 원, 십만 원, 백만 원 그렇게 이제 돌아오도록, 말하면 빈다 이 뜻입니다. 그래 이제 부처님한테 그렇게 이제 그 10원 던지면 최소한도 만 원, 십만 원, 백만 원 돌아올 것 생각하고 시주하지 않습니까? 이제 그런 상식이 옛날에는 아주 팽배했어요. 솔직하게, 지금도 그런 상식에 떨어져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일 같으면 왜 스님들이 혼자 다하지 신도들 하라고 내주겠어요? 안내줘 절대. 스님들끼리 다 해버리지. 안 그래요? 아니 10원 넣는데 만 원이 되고 십만 원이 된다면 내 혼자 하지. 다른 사람 안줍니다 절대. 근데 왜 하라고 내놓겠어요? 말도 아니잖아. 그거는, 전부 이것은 아주 철두철미한 과학이고 철두철미한 연기의 법칙이고 인과의 법칙입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런 이치를 잘 알면은 편안해져. 마음이 편안해져. 자기 위치가 어떻든, 자기 사는 꼴이 어떻든 아무 상관없이 마음이 아주 편안해.‘아 이것이 내 분이구나.’뭐 떠나도 마음이 편안하고 돌아와도 마음이 편안해.‘아 돌아올때가 되어서 돌아왔구나. 떠날때가 되어서 떠났구나.’그 다음에 얼마 안 있어서 마음이 편안해져. 떠나도 곧 마음이 편안해지고 돌아와도 곧 마음이 편안해지고, 사람이든 물건이든 돈이든 벼슬이든 무엇이든지 가고 옴에 대해서 금방은 충격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있어요. 그러나 불자는 불교를 공부한 사람은 금방 돌이켜 생각할 줄 알아. 금방 돌이켜 생각할 줄 알아. 그래서 돌이켜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거라. 치료를 잘해. 자가치료를 잘합니다. 인과의 법칙을 알기 때문에
들어온 귀가 있어서 아주 그 부처님 말씀에 이렇다는데 그 들어보면 상당히 이치에 맞는거야. 이치에 맞으니까‘아 이치가 그런데 뭐’그렇게 알면은‘옳은 생각이다.’이렇게 알면은 그냥 우리가 마음이 편안해지는거라. 참 그게 이치가 있는 거지. 그러니까 우리가 공부 열심히하면 그 우리인격이 현재 여러분들의 신분이 어떻든 뭐 무슨 뭐 전셋집에 살던지, 자기집에 살던지, 어디에 살던지 그거 아무 상관없이 인격이 높아가고 고급스러워지고 아주 그 가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건 부처님이나 성인들은 틀림없이 압니다. 그 가치를
그래서 우리가 자부심, 긍지를 가지고 살아야죠. 사실이 그렇고
오늘 공부보면
84 舍利弗 若有衆生 內有智性 從佛世尊 聞法信受 慇懃精進
사리불 약유중생 내유지성 종불세존 문법신수 은근정진
欲速出三界 自求涅槃 是名聲聞乘 如彼諸子 爲求羊車 出於火宅
욕속출삼계 자구열반 시명성문승 여피제자 위구양거 출어화택
舍利弗아 若有衆生이 內有智性하야
사리불아 若有衆生이 안으로 지혜의 성품이 있어서
從佛世尊하야 聞法信受하고
부처님 세존으로부터 뭐 이 경전은 부처님으로부터 우리가 공부하게 되는 것이고 부처님으로부터 듣는 것이고 부처님으로부터 책을 읽어도 부처님 법으로 인해서 우리가 그 좋은 가르침을 읽게 되는 것이니까. 일체가 다 佛世尊으로부터 법을 듣고 믿고 받아들이고
慇懃精進하며
금방 불같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슬슬 관심이 있어지기 시작하는 거야. 슬슬 재미가 있어지기 시작해. 뭐 사경도 그 한두 자 쓸때 처음에 쓸때는 참 정말 서툴고 짜증나지요. 서툰것이 써놓고 보면은 짜증나지요. 그래도 자꾸 참고 쓰다 보면은 그게 이제 상당히 익숙해지고 글씨도 좋아지는 거라.
은근히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흔히 그러잖아. 은근히 슬슬 아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진이 된다 이 말이여. 慇懃精進하며
欲速出三界하야 自求涅槃하면 是名聲聞乘이니라
삼계를 벗어나고자 속히 삼계를 벗어나고자 해서 스스로 열반을 구하는 사람은 요게 아주 불교공부에서 소극적인 삶을 사는 사람을‘열반을 구한다.’그래요. 열반은 아주 소극적인 단계입니다. 자기 혼자 편안한 단계를 열반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앞서 말씀드렸듯이 모든 것이 인연의 이치다. 그래서 이제 그것도 이제 우리 들어서 알게 됐다 이거여. 봐서 깨달은 것은 그 다음 단계에요. 스스로 보고 와서 깨닫는 것은 그 다음 단계인데 부처님 설법을 듣고 아는 것. 그건 이제 성문이라. 성인중에서 제일 낮은, 사성중에서 제일 낮은 단계를 성문승 그렇게 합니다.
如彼諸子가 爲求羊車하야 出於火宅하며
요거는 이제 여기「비유품」이니까 저기 화택비유를 우리가 공부했잖아요. 화택에서 들었던 비유중에 저 여러 아들들이 羊車 양이 끄는 수레를 구하기 위해서 화택에서 쫓아나온 것과 같다. 뭐 양이 끄는 수레가 있다 하니까 애들이 양이 끄는 수레 나는 좋아한다 해가지고 그것 갖기 위해서 저기 동구밖으로 쫓아 나갔다 이 말이여. 어쨌든 불타는 집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니까. 큰 소득이 있죠. 자기 혼자 나왔지만은, 자기 혼자 나왔지만은 나온 것은 사실이니까 상당히 소득이 있는 거야. 그 비유하고 딱딱 맞추는 것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85 若有衆生 從佛世尊 聞法信受 慇懃精進 求自然慧 樂獨善寂
약유중생 종불세존 문법신수 은근정진 구자연혜 낙독선적
深知諸法因緣 是名辟支佛乘 如彼諸子 爲求鹿車 出於火宅
심지제법인연 시명벽지불승 여피제자 위구녹거 출어화택
若有衆生이 從佛世尊하야 聞法信受하고 慇懃精進하야 求自然慧하며
만약에 또 어떤 중생이 부처님 세존으로부터 법을 듣고 믿어 받아들이고 또 은근히 정진해서 自然慧를 구해. 저절로 내 마음속에 절로 생기는 지혜야. 그게 自然慧입니다. 지혜는 자기속에서 생기는 거요.
그리고 또 이 自然慧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보면은 자연 현상을 잘 관찰해가지고‘저렇게 봄되니까 잎이 피구나. 여름되니 무성하구나. 가을되니까 변색해서 결국은 낙엽으로 지고 겨울되니까 저렇게 나무만이 남는구나.’이러한 어떤 그 자연의 현상에서 터득한 인간의 지혜.‘아 그와같이 인생사도 그리고 인간관계도 그리고 사람이 하는 일도, 사업도 모두가 저 자연의 이치와 똑같구나.’
그늘에 있는 것은 덜 자라고 양지쪽에 있는 것은 더 자라고 또 거름이 많은 땅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풀이 무성하고 척박한 땅에는 무성하지가 못하고 아주 빼빼마르게 형편없이 자르고, 그와같이 자기의 어떤 그 물질적인 것이라든지 아니면 공부하는 거라든지 그 다음에 무슨 벼슬을 좋아하니 벼슬이라든지 예술에 관심있는 사람은 그 예술분야라든지 거기에 그만치 거름을 많이 줘야 돼. 거름을 많이 줄거같으면, 예를 들어서 식물에 시물에다 거름을 많이 주면 무성하게 자라는 거와 마찬가지로 예술분야 뭐 예를 들어서 내가 글씨를 잘 쓰고 싶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 그러면 거기에다 거름을 잔뜩 주는 거야. 그림 그리는 일에다가 거름을 잔뜩 주는 거야. 그러면 그 일이 저절로 풍성해지는 거요. 자기 하고자 하는 일이 풍성해집니다. 그런 이치를 터득하는 거요. 그게 自然慧라. 누가 주는게 아니라고
참 그 구절 구절이요. 이치가 아주 기가막힙니다. 이런걸 전부 그냥 불교알자고 한다기 보다는 인생사 알자고 하는 것이고 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정말 교훈이 되고 지침이 되는 그런 말들을 얼마든지 여기서 건질수가 있습니다. 불교공부는 그래서 우리가 하는 거에요. 그냥 불경은 불경대라고 내 삶은 내 삶대로 하면 소득이 영 적죠. 그래가지고는 불경공부할 사람들이 없습니다. 불교공부할 사람들이 없어요.
그래서 이제 自然慧를 구하며
樂獨善寂하야
혼자 있기를 좋아해. 그리고 고요한 것을 좋아해. 善자도 좋아한다 할 선자입니다. 혼자있는 것을 즐기고 樂獨 또 고요한 것을 좋아해서
深知諸法因緣하면
모든 법의 인연도리를 깊이 아는 사람은 深知諸法因緣 諸法因緣 모든 일이라고 하는 것은 諸法‘모든 일은 인연으로 되어간다.’라고 하는 사실을 알아도 조금 아는게 아니라 深知 깊이 안다 이 말이여. 깊이있게 아는, 이게 중요해요. 우리가 뭐 인연, 인연 들어서 참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잘 알고 있는 이야기고 모른 사람이 없어요. 그러나 얼마만치 가슴에 절절이 사무치도록 아느냐? 하는 것은 개인따라서 차이가 있는 거요. 그래서 여기서 深知라고 해놓은 것입니다. 깊이 안다 이거여. 가슴에 사무치도록 깊이 아는 사람은
是名辟支佛乘
그러니까 聲聞乘 나왔죠? 그 다음에 辟支佛乘이니. 여기 이제 비유 火宅譬喩에다가 여기다가 맞춰볼것 같으면은
如彼諸子가 爲求鹿車하야 出於火宅하며
저 여러 아들들이 鹿車 사슴이 끄는 수레를 구하기 위해서 火宅에서 불난집에서 뛰어 나오는 것과 같으며, 같다 이 말이여.
고래 착착 맞춰놨습니다. 얼마나 아주 이 비유가 재밌고 딱딱 잘맞아 떨어집니까? 양거, 녹거 그 다음에 우거에요. 牛車 소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 그래 아이들 이제 불타는 집에서 나오도록 유혹할 때 그랬잖아요. 애들보고“저 밖에 가면은, 길 밖에 나가면은 양이 끄는 수레가 있고 사슴이 끄는 수레가 있고 소가 끄는 수레가 있다. 너희들이 그 전에 나보고 그런 수레 사달라고 했지않냐? 내가 이번에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그런 수레를 저 길거리에다가, 집밖에 길거리에다가 잔뜩 사다놨다. 그러니까 얼른 가서 그거 가지고 놀자.”이렇게 아이들에게 이제 거짓말로 유혹을 해가지고 불타는 집에서 나오도록 그렇게 아버지가 작전을 꾸몄죠.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에
86 若有衆生 從佛世尊 聞法信受 勤修精進 求一切智 佛智 自然智
약유중생 종불세존 문법신수 근수정진 구일체지 불지 자연지
無師智 如來知見 力無所畏 愍念安樂無量衆生 利益天人
무사지 여래지견 역무소외 민념안락무량중생 이익천인
度脫一切 是名大乘菩薩 求此乘故 名爲摩詞薩 如彼諸子 爲求牛車
도탈일체 시명대승보살 구차승고 명위마하살 여피제자 위구우거
出於火宅
출어화택
若有衆生이 從佛世尊하야 聞法信受하고
만약에 어떤 중생이 佛世尊으로부터, 從자는 ~부터합니다. 항상 어디로부터, 부처님 세존으로부터 법을 듣고 믿고 받아들이고
勤修精進하야
은근히 여기는 勤修 근수네요. 부지런히 닦아서 정진하야
求一切智와 佛智와 自然智와 無師智와 如來知見과 力無所畏하야
一切智와 佛智와 自然智와 無師智와 如來知見과 힘과 無所畏를 구해서
여기는 아주 많죠. 보살승인데, 一切智 모든 것을 다 꿰뚫어 아는 지혜 그 다음에 부처님의 지혜 그 다음에 自然智 저 앞에 있었던 自然智 그것도 뭐 다같이 이제 一切智에 포함됩니다. 無師智 이거는 스승없이 얻는 지혜. 우리가 지금 경전을 통해서 또 내가 경전강의하는 걸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하나씩 둘씩 이제 삶의 지혜를 얻어 듣습니다. 그런데 진짜 좋은 지혜, 진짜 궁극적인 지혜는 無師智야. 스승이 없는 지혜야. 부처님도 스승이 못돼. 그때는, 여러분들 마음속에 다 원만히 갖춰져 있는 그런 지혜입니다. 그런 지혜를 無師智라고 그래요. 이거 참 좋은 지혜에요.
그 불교는 궁극적으로 사람 개개인에게 정말 훌륭한 그런 지혜가 있다고 하는 것을 깨우쳐 주는 것이 불교입니다. 주는게 아니에요. 절대 부처님이 주는 것도 아니고, 부처님이 주는 것 같았으면 라후라같은 자기 사랑하는 아들에게 맨 먼저 줬을텐데 라후라에게 뭐 줬다는 이야기 한 마디도 없습니다. 경전에, 줄 수 있는게 아니거든요. 전부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것이 불교입니다. 그래 얼마나 좋습니까? 사실은
그리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그 모든 풍부한 내용을 모든 사람들이 갖추고 있다. 그렇게 갖추고 있는 그 사람이야말로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 이 세상에서 지극히 고귀한 존재다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걸 깨닫게 해주는 거에요.
그러니까 사람같이 소중한게 없고 사람같이 가치있는게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사람이면서 사람에 대한 것을 우리가 제대로 깊이있게 알지 못해요. 사실은, 그래 이런 성인의 가르침을 통해서 자꾸 자꾸 사람에 대해서 이제 배우고 이해해가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냥 뭐 태어나가지고 이런 성인의 가르침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은요. 뭐 사람으로서 살아가지만 정말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있는가에 대해서 잘 몰라요.
예를 들어서 어디서 아주 뭐 좋은 아주 기계가 하나 생겼다. 근데 그 기계가 얼마나 유용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그 기계인가? 그런 물건인가를 우리가 배우지 아니하면 모르거든요. 배우지 아니하면 모릅니다. 핸드폰 요즘 뭐 얼마나 기능이 다양합니까? 젊은 애들 잘 아는 애들은 그거 한 50%정도 활용해요. 그래도 50%정도밖에 활용못합니다. 아무리 잘아는 애도, 그런데 우리같이 나이든 사람들은 그거 기껏해야 뭐 전화걸고 받고 하는 것. 그 안에 조금 한다면 뭐 전화 저장하는 거 그 다음에 문자 보내는 거 기껏해야 그 정도 거든요. 그 정도면 한 10분의 1정도, 그죠? 그 가치를 활용할까 말까입니다.
혹 어떤 사람들은 그 안에 게임기같은 정도 심심하면 사용하는 정도고 그와같이 사람에 대해서도 우리가 제대로 이 성인의 가르침을 통해서 배우고 익히고 알게 되면은, 사람의 그 무궁무진한 가치를 우리가 알게 되고 거기에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無師智란 말이 정말 맞는 말이에요. 자기 안에 있다 이거여. 어떤 스승도, 스승으로부터 얻어지는 그런 지혜가 아니고 스승없이 아는 지혜.
그 다음에 如來知見 이건 부처님이 가지신 지혜도 역시 얻게 되고 그리고 힘, 부처님의 힘 그리고 부처님은 그 무엇에도 두려워하는 바가 없다 해서 無所畏 두려워하는 바가 없는 것. 이러한 것을 구해가지고서
愍念安樂無量衆生하며
무량한 중생들을, 한량없는 중생들을, 한량없는 중생들을 愍念이 여기고 安樂해 한다 이 말이여. 아주 그 어여삐 여겨. 자기는 이미 보살지위에 올랐어. 이와같은 一切智 佛智 自然智 無師智 如來知見 力 無所畏 이런것을 전부 다 갖췄어. 전부 자기속에 있는 것이니까 다 얻어냈어. 그래가지고는 그렇지 못한 한량없는 중생들을 愍念히 여겨, 불쌍하게 여기는 거여. 불쌍하게 생각하고 그리고 그들을 안락하게 해주기 위해서, 해주며
또
利益天人하야
천인들의 이익하게 하기 위해서. 天人 천신과 모든 사람들을 이익하게 하도록
그러니까 이게 불교는 궁극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사람들을 이익하게 해주는 것이 이제 열매입니다. 그게 결과에요. 내가 첫째 훌륭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잘 개발해놓고 그 개발한 것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에게 그것이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거. 그래서
度脫一切하면 是名大乘菩薩이니
일체 사람들을 전부 度脫 해탈케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이름이 大乘菩薩이니
求此乘故로 名爲摩詞薩이라
이러한 가르침, 이러한 가르침을 구하는 까닭으로 이름을 摩訶薩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 菩薩 摩訶薩 그러죠. 그걸 이 사람은 이제 보살승이기 때문에 비유해서 그 이야기를 하자면,
如彼諸子가 爲求牛車하야出於火宅하니라
저 여러 아들들이 牛車 소가 끄는 수레를 구하기 위해서 火宅에서 벗어난 것과 같으니라.
그랬습니다. 그렇지만은 羊車 鹿車 牛車는 三乘이죠. 그 위에 佛乘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궁극적인 것은 부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처의 삶. 그 부처의 삶을 산 사람이 석가모니 같은 이죠. 석가모니 같은 이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그런 그 훌륭한 능력이 있음을 깨닫고 그리고 49년, 50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동안을 중생들에게 그것을 깨우쳐주기 위해서 불철주야(不撤晝夜) 하루도 편안히 잠자지 아니하고 늘~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전부 그 낱낱이 그 어리석음을 일깨워서 지혜의 눈을 뜨도록 하는 그런 삶을 사셨거든요. 그게 이제 모델이에요. 제일 인생을 잘 산 사람의 모델이 부처님입니다.
87 舍利弗 如彼長者 見諸子等 安穩得出火宅 到無畏處 自惟財富無量
사리불 여피장자 견제자등 안온득출화택 도무외처 자유재부무량
等以大車 而賜諸子
등이대거 이사제자
舍利弗아 如彼長者가 見諸子等이 安穩得出火宅하야 到無畏處하고
사리불아 저 장자가 여러 아들들이 安穩하게 火宅에서 나와가지고, 편안하게 火宅에서 나와가지고서 無畏處 두려움이 없는 곳에 이름을 보고
그러니까 아들들이 이제 처음에는 羊車 鹿車 牛車가 있다는 말로 아이들을 전부 불타는 집에서 꺼냈죠. 거기에 다 나왔더라 이거여. 나왔으니까 아들은 이제 전부 이제 그런 그 수레를 달라고 하는 그런 상황인데, 어쨌든 아버지 입장에서 보니까 羊車 鹿車 牛車야 어찌됐든간에 아이들이 불에타지 아니하고 불타는 집에서 무사히 구출된것만해도 얼마나 감지덕지하고 좋은일입니까? 정말 기쁜 일이죠.
아 자기 자식이 어린아이가 불타는 자기 집이 불타는데 거기서 뭐 어디 하나 다친데 없이 안전하게 집 밖으로 나왔다면 그까짓 집이야 다 타던지 말던지. 통장이야 타던지 말던지. 금은보화야 타던지 말던지. 아 자기 자식들이 전부 안전하게 다 밖으로 나왔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그것을 보고는
그런데 사실은 또 재산이 그것뿐이 아니야. 이 사람이, 그 불탄 집 그거는 아주 헌 집이야. 형편없는 집이라. 저~ 서까래가 저 앞에서 봤지만은 또 이제 게송에서 비유를 다시 한 번 듭니다. 재차 복습하라고 게송으로써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앞에서 안들은 사람들은 뒤에 이제 듣게 되는데
自惟財富無量일새
財富가 한량없어. 그 집은 이미 아주 형편없는 그런 낡은 집이야. 집은 크지만은 낡은 집이라. 그래서 여기보면 自知 스스로 안다 이 말이여. 어떤데서는 오직 유, 생각할 유(惟)자로 된 책도 있죠? 스스로 생각하기를 재부가 무량해. 財富가 그 재산이 한량이 없어. 얼만지 도저히 셀 수가 없어. 그런 사실을 스스로 알고 또 惟자는, 스스로 생각했을새
그래서
等以大車로 而賜諸子하나니
평등하게 큰~ 수레로써 여러 아들들에게 전부 그것을 큰~ 수레로써 주나니
뭐 소가 끄는 수레 시시하다 이거여. 양이 끄는 수레도 시시해. 여기 大車라고 하는 것은 저기 설산에 대비구거라고, 소가 그냥 뭐 저기 금정산만한 끄는 거야. 수레는 뭐 어마어마하게 크고 그리고 그 수레는 온갖 금은보화로 한량없이 잘 꾸며져 있고, 그런 수레로 비유가 되잖습니까? 그거는 불승이다. 부처의 삶이다 하는 것입니다. 큰~ 수레로써 평등하게 여러 아들들에게 주나니
법화경 강의 제21강-2 (妙法蓮華經 3.비유품 88-105)|* 법화경 녹취(금요법회)
화풍정|조회 198|추천 1|2010.10.27. 10:00http://cafe.daum.net/yumhwasil/8NuM/56
88 如來亦復如是 爲一切衆生之父 若見無量億千衆生 以佛敎門
여래역부여시 위일체중생지부 약견무량억천중생 이불교문
出三界苦怖畏險道 得涅槃樂
출삼계고포외험도 득열반락
如來亦復如是하야 爲一切衆生之父라
여래도 또한 다시 이와같아서 일체중생의 아버지라.
그러잖아요. 사생자부(四生慈父) 그러죠? 시아본사(是我本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우리가 그러잖아요. 四生慈父야. 일체중생의 아버지가 되니라.
若見無量億千衆生이 以佛敎門으로
만약에 無量億千衆生이 부처님의 가르침의 문으로써
出三界苦怖畏險道하야 得涅槃樂하고
三界苦에서, 三界의 苦인 아주 두렵고 두려운 험한 길에서 벗어나서 涅槃의 樂을 얻은 것을 보고는, 견(見)자. 涅槃樂 얻은 것을 보고는
그러니까 삼계의 고통에서 이제 벗어나긴 벗어났다 이 말이여. 그래서 열반락을 얻기는 얻었어. 개인적으로 열반락을 얻기는 얻었어.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야. 불교는 자기 혼자 편안하자고 하는 것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기의 능력이 되면은 자기 문제는 벌써 이래 저래 다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됐다 이 말이여. 그렇게 된 것을 이제 보고는
89 如來爾時 便作是念 我有無量無邊智慧力無畏等諸佛法藏 是諸衆生
여래이시 변작시념 아유무량무변지혜력무외등제불법장 시제중생
皆是我子 等與大乘 不令有人 獨得滅度 皆以如來滅度 而滅度之
개시아자 등여대승 불령유인 독득멸도 개이여래멸도 이멸도지
如來爾時에 便作是念하대
그때에 여래가 그때에 곧 이러한 생각을 하대
我有無量無邊智慧力無畏等諸佛法藏하고
我有 나에게는 이러이러한 것이 있다. 한량없고 가이없는 지혜와 힘과 無畏 두려움이 없는 등 모든 부처님이 다 가지고 있던 그런 그 법의 창고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이여. 나는, 가지고 있고
是諸衆生은 皆是我子라 等與大乘이요
이 여러 중생들은 전부 내 아들이여. 중생들은 전부 내 아들이고 나는 그 중생들의 아버지다 이 말이여. 그래서 평등하게 大乘을 줌이요.
大乘法 一佛乘 一佛乘의 가르침. 자기는 부처가 되놓고서는 다른 사람에게는 성문이나 연각이나 보살이나 그것만 가르친다면 부처님은 인색한 사람이 되버려. 그런 부처는 부처도 아니야. 이미 인색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부처님은 당신이 깨달으신 경지 그 경지를 여러 사람에게 똑같이 주고자 하는게 이게 당연한 일이라. 당연한 귀결이라구요. 불교를 이렇게 알면 그냥 전체적으로 다~ 전반적으로 꿰뚫어서 알 수 있습니다.
평등하게 대승을 줌이요.
不令有人으로 獨得滅度니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홀로 滅度를 얻게 하지 아니함이니
이건 이제 홀로 멸도를 얻는다고 하는 것은 홀로 자기 혼자만 열반을 얻게 하는 게 아니다 이 말이여. 자기 혼자만 열반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님이니
皆以如來滅度로 而滅度之호리라
다 여래가 제도된 그 경지로써, 여래가 성취한 그 법으로써 사람들을 멸도하겠다. 제도하겠다.
그러니까 여래가 성취한 그것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성취하게 하겠다. 이게 이제 佛乘입니다. 一佛乘이고 그러니까 이제『법화경』을 회삼승귀일승(會三乘歸一乘)이잖아요. 삼승을 모아가지고 일승의 이치로 귀결시키는 가르침이 바로『법화경』인데,『법화경』이 종합적인 이제 불교의 종합적인 진리서라. 모든 것을 전부 그동안 설하신 모든 불교의 가르침을 종합해가지고 그것을 결론내리는 거. 결론은 이것이다 이렇게 한 가르침이 이제『법화경』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그동안 여러 가지 가르침을 삼승이라고 하고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 그런 내용들만 그동안 무수히 가르쳤고 그다음『법화경』불교에 와서는 그것을 전부 이렇게 모아가지고 회통을 시켜가지고 일불승으로 돌아가게 하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會三歸一 會三乘歸一乘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 누가“『법화경』전체 그 뜻이 뭐냐?”하면은“會三歸一이야.”이래버려. 알아듣든 못알아듣든지“會三歸一이야.”유식하면 알아들을거고 무식하면 뭐 못알아들을거고“會三歸一이 뭐고?”하면은 그때 이제 또 설명을 하는 거에요. 궁금해하면은, 낚시밥을 하나 척 던지는 거라. 처음부터 자세히 설명하면 그거 저 가치없이 여기니까, 그 대승법 함부로 가르쳐 주는게 아니다. 하하하하하
저 앞에 5000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잖아요. 그 5000명은 이런 법문 못 들은거요. 그러니까 이게 보통 가치있는 경전이 아니라구요.『법화경』그래 한국 사람들은 이제사『법화경』『법화경』야단법석이야. 지금, 일본 사람들은요. 거의 80%가『법화경』불교입니다. 성덕태자라고 우리나라 신라쯤되는데 그 분이『법화경』을 받아들여가지고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할 정도거든요. 태자의 입장에서 불교를 그렇게 좋아해가지고 당신이 그냥『법화경』을 가르치고 그랬어요. 성인 부처님 이상으로 모십니다. 그분들을, 그렇게 해놓으니까 국민들이 다 따라가지요.
그래서 그 영향으로 전부『법화경』불교로 돼있습니다. 물론 밀교도 성하고 선불교도 성해요. 그렇지만 그 밑바닥에는 전부『법화경』사상을 깔고 있습니다. 그래서『법화경』은 일본에서는 상식으로 돼있어요. 우리나라는 어찌하야 이제사 이렇게 그『법화경』『법화경』하는지? 그것도 정법으로 바로 받아들여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또 문제라. 이렇게 붐을 타는것까지는 일단 좋은데 또 한편 염려스러운것이 그『법화경』은 또 공덕만 자꾸 일변도로, 그건 사람유혹하느라고 하는 방편인줄 모르고 자꾸 그쪽에만 치우쳐가지고 뭐 우리 중생들은 공덕있다 하면 그냥 넘어지는데 아주 선수니까. 우리 불자들이,
불자들 잘 넘어지잖아요.‘어디 영험있다.’하면 그냥 무슨 이상한 바위갔다놓고‘관세음보살 누워있다.’그러면 그만 껌뻑 넘어간다. 그래가지고 거기에 큰~ 대본산같은 사찰이 생겨버렸어. 우리나라 불자들 수준이, 물론 여기있는 사람들은 아니지만은, 불자들 수준이 그정도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정법을 제대로 정확하게 제대로 배우기만 하면은 이『법화경』이 참 그럴수없이 좋은 경전입니다. 이거 한 권만 공부하면 이 속에 소승법도 있고 뭐 대승법도 있고 다 있습니다. 보십시오. 성문, 연각, 보살 다 있잖아요. 그리고 불승은 뭐 말할것도 없고
저 앞에, 저 뒤에 넘어가면은 이제 다라니 밀교계통의「다리니품」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다라니에 관한 것도 공부할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뭐 얼마든지 뭐 입맛대로 있습니다. 평생 이거 한 권만 꿰뚫으면은 불교공부 다하고 정말 제대로 공부한 것이 됩니다. 불교공부를 제대로 한 것이 된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어요.
그래 이제 내가 이렇게 설명해주는 것은 100분의 1정도 밖에 표현이 안되고 스스로 공부해서 요 경전안에 숨어있는 그 구석구석에 다이야몬드가 꽉꽉 박혀있는데 그걸 이제 여러분들이 이제 눈을 뜨셔서 찾아내서 자기살림으로 삼아야 되겠죠.
여래의 수준으로 중생들을 그 이끌어 올리는 거 이게 불승이다. 모두다 부처의 삶을 살도록 하는 거 이게 부처님의 큰 목적이고『법화경』의 목적이다. 그래서 會三歸一이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90 是諸衆生 脫三界者 悉與諸佛禪定解脫等娛樂之具 皆是一相一種
시제중생 탈삼계자 실여제불선정해탈등오락지구 개시일상일종
聖所稱歎 能生淨妙第一之樂
성소칭탄 능생정묘제일지락
是諸衆生의 脫三界者에
이 모든 중생의 삼계에서 벗어난 자에게
悉與諸佛禪定解脫等娛樂之具하나니
다 준다. 무엇을? 諸佛의 禪定과 解脫等 부처님의 그 오락거리. 부처님의 오락거리는 선정이고 해탈이야. 부처님의 선정과 해탈등 오락의 도구 이래 해놨잖아. 오락의 도구를 悉與 다 주나니
皆是一相一種이라
그것을 결국은 하나의 모습이요. 하나의 종이다. 일불승이다 이 말입니다. 一相이라는 말이나 결국엔 佛乘이라는 말이나 一種이라는 말이나 一佛乘이란 말이나 전부 같은 뜻입니다. 一相一種이라. 어느 부처님도 결국은 같은 모습이고 같은 종이다.
聖所稱歎이며 能生淨妙第一之樂이니라
성인들이 칭찬하는 바며, 칭찬하고 찬탄하는 바다. 능히 淨妙 아주 청정하고 아주 미묘한 그리고 第一이라는 즐거움을 내게 하는 것이니라. 能生淨妙第一之樂이니라.
그렇죠. 이 세상에 어떤 즐거움, 어떤 그런 우수한 삶을 이야기하더라도 부처의 삶, 부처님이 누리는 어떤 해탈과 선정과 이러한 즐거움. 그 즐거움의 맛이라고 하는 것은 기가막히거든요. 경전읽는게 뭐 그리 맛있나? 재밌나? 하지만은 그래 이제 경전을 안 읽어본 비불자들은 몰라. 근데 경전 한 구절 한 구절 쓰고 한 구절 한 구절 읽어보면 그 맛이 깨가 쏟아지는데, 신심없는 사람은 그걸 모릅니다. 전혀 못느껴요. 그걸, 그게 뭐 그리 재밌나? 하지만은 사실 우리가 여기에 신심을 좀 가지고 거기에 뭔가 하나 한 구절 한 구절에 눈을 뜨면은 그게 그렇게 정말 깨가 쏟아지듯이 이 속에도 그런 즐거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세속적인 즐거움하고는 비교가 안되요.
91 舍利弗 如彼長者 初以三車 誘引諸子然後 但與大車 寶物莊嚴
사리불 여피장자 초이삼거 유인제자연후 단여대거 보물장엄
安穩第一 然彼長者 無虛妄之咎 如來 亦復如是 無有虛妄
안온제일 연피장자 무허망지구 여래 역부여시 무유허망
舍利弗아 如彼長者가 初以三車로 誘引諸子然後에
사리불아 예컨대 저 장자는 처음에 삼거로써, 세 가지 수레. 羊車 鹿車 牛車로써 여러 아들들을 유인한 연후에, 그랬죠. 아이들을 유혹했죠. 유인했습니다. 그런 연후에
但與大車의 寶物莊嚴이 安穩第一하나
큰~ 수레의 보물과 보물로 장엄한 것과 그리고는 워낙 커서 편안해. 이게 뭐 바람처럼 달리지만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달리는 거야. 그래 편안하기가 제일이다. 이 말이야. 安穩第一이다. 그런 그 제일인것을 주나니. 다만 그것만 준다 이거여.
아니 그런 수레만 해도 뭐 부지기순데 왜 자기 아들들에게 시시한 수레를 줍니까? 아니죠. 그거는 최고 좋은거 주는거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거 다줘도 뭐 더 주고 싶은게 아버지의 마음인데, 그래서 다만 大車 큰 수레인 寶物莊嚴이 安穩第一인것을 주나니
然彼長者는 無虛妄之咎하야
그러나 저 장자는 그렇게했지만은 저 장자는 거짓말의 허물이 없듯이 그 말입니다. 거짓말하는 허물이 없듯이.
사실은 거짓말이 아닙니까? 엄격하게 따지면 아니 양이 끄는 수레 준다고 해놓고는 나중에 큰~ 수레 대비구거가 끄는 그런 수레를 줬으니 어쨌든 1000배, 10000배 더 좋은 것을 줬다 하더라도 결국은 이제 물품의 차이가 있으니까 그래서 이제“내가 거짓말한 것이냐?”라고 그렇게 이제 묻는 대목이 있어요. 그러면은 이제“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그것을 결코 거짓말이 아니라 방편입니다.”저 앞에서 있었죠.
그 거짓말한 허망이 없듯이, 거짓말한 허물이 없듯이
如來도 亦復如是하야 無有虛妄이니
여래도 또한 다시 이와같아서 결코 허망한 것이 아니니라. 거짓말한 것이 아니니라. 결코 거짓말이 없느니라.
92 初說三乘 引導衆生然後 但以大乘 而度脫之 何以故
초설삼승 인도중생연후 단이대승 이도탈지 하이고
如來有無量智慧 力無所畏諸法之藏 能與一切衆生大乘之法
여래유무량지혜 역무소외제법지장 능여일체중생대승지법
但不盡能受 舍利弗 以是因緣 當知諸佛 方便力故 於一佛乘
단부진능수 사리불 이시인연 당지 제불 방편력고 어일불승
分別說三
분별삼승
初說三乘하야 引導衆生然後에
처음에 삼승을 설하여, 삼승을 설해서 중생들을 인도한 연후에
그렇습니다. 처음에 이제『아함경』이야기, 무슨 뭐 방등부이야기, 무슨 뭐 금강반야부 이야기 등등 그 차원낮은 경전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게 이제 부처님의 한 생으로 치면은 어떻습니까? 그 깨달아서 설법하기 이전은 놔두고 설법하기 시작해서 49년을 설법하시고 열반하셨으까 그걸 50년으로 치면은 차츰차츰 수준을 높여가지고 처음에서부터 차츰차츰 수준을 높여가지고 최정상에 열반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이제 정말 마음먹고 설하듯이 설한 것이 이제『법화경』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게『법화경』이 최고의 그 경지에 오른 상태의 경전입니다. 그 처음에는 그걸 준다 하면 이제 중생들이 안 믿으니까. 처음에 수준낮은거부터 저 유치원생들에게 가르치는 그런 아주 아주 낮은 수준의 불교부터 이제 차츰차츰 수준을 끌어올린게 되거든요.
그걸 이제 경전 발달사적인 그런 입장에서 보면은 500년으로 칩니다. 500년.『법화경』이 부처님 열반 500년이후에 결집이 됐거든요. 그만치 불교가 발전해 온거에요. 그걸 이제 부처님의 설법연한으로 치면 50년 또 불교 발전사적인 입장에서 보면은 그게 500년. 그렇게 딱 맞아 떨어져요. 그리고 이제『금강경』에도 있지만은 第五五百年이라고 해서 500년씩 500년씩 단위를 묶은 것이 묶어서 이야기하는게 불교안에는 참 많습니다. 그게 다 이유가 있어요. 부처님이 50년 설법하셨고 그리고 대승불교는 500년됐을때 절정을 이루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경전 발달사적인 입장에서는 그렇게 이제 부처님 열반하시고 500년동안 차츰차츰 발달해왔다. 이렇게 보는거요. 발달해와가지고 비로소『법화경』같은 경전이 생겼다.『화엄경』도 물론 그 무렵에 생겼구요.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두 가지로 그렇게 이해를 해야되요.
初說三乘하여 중생들을 인도한 연후에
但以大乘으로 而度脫之시니
다만 대승으로써, 다만 대승으로 그 궁극에 와서는 대승만가지고 오로지 대승만가지고 가르쳐야 되는거요. 그 부처님은 그렇게 했으니 했지만은 우리는 지금 그럴 겨를이 없어. 그저 무조건 처음에 절에 오늘 들어온 사람도『법화경』,어제 들어온 사람도『법화경』뭐 10년된 사람도『법화경』무조건『법화경』으로 가르쳐야 됩니다. 내가 보니 그래요.
그 사람이 뭐 오늘 절에 오다가 내일 온다는 보장도 없고 오늘 여기『법화경』공부하러 오다가 다음 시간에 또 온다는 보장도 없어. 이게, 그러니까 만났을때 무조건 왕창 다 줘버려. 부처님의 최고 법문인 대승법문의 인연이라도 내려줘야 된다고, 계속와서 계속 공부하면 그건 뭐 말할나위도 없고 한 번만 하더라도 이 사람이 이사를 갔다든지 아니면 무슨 뭐 집안의 아주 급한 일이 있어서 못오게 됐다든지 그러면 언젠가 이제 부처님 생각하면은‘하~ 그거 뭐『법화경』이 최고 좋은 경전이라는데’이 생각을 떠올려서『법화경』공부를 하게되는 인연이 된다구요. 그 인연도 최고 좋은 이런 대승경전을 가지고 인연을 맺어주는게 바람직합니다.
그럼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 다시 말해서 불교가 발달해온 그 과정대로 처음부터 소승경전을 설해가지고 뭐 초기불교가 어쩌느니 뭐 부처님이 설한 경전은 초기경전이니, 부처님을 믿으면서 왜 부처님이 설한 초기경전을 공부하지 않느냐 어쩌느냐 지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있어요. 그 들을게 없어요. 그게, 그 언제 그거 공부하고 나중에『법화경』, 그거 몇 십년 공부하고 나서『법화경』공부한다는 보장이 있으면 몰라도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내 마음도 순간순간 변하는데 그걸 어떻게 보장합니까? 만났을때 왕창 주는 거야. 그냥
그래서 이 대승『법화경』이걸 가지고 우리가 공부한다고 하는 것이 그럴 수 없이 다행이다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절대 소승경전가지고 한 번도 설한적이 없어요. 소승경전을 설하지 않거든요.
보십시오.‘但以大乘으로’내가 거기에 별표를 세 개나 해놨네. 별을 세 개나 쳐놨어. 중요한 말이거든요. 다만 대승으로 度脫해야 된다.‘대승으로써 사람들을 가르쳐야 한다.’이 말입니다. 대승으로써 사람들을 가르치니
何以故오 如來有無量智慧와 力無所畏諸法之藏하야
왜 그러냐? 여래는 한량없는 지혜와 힘과 無所畏 두려움이 없는 바 그런 모든 법의 창고가 있어서 諸法之藏 모든 법의 창고가 있어서
能與一切衆生大乘之法이언만은 但不盡能受니라
능히 일체중생에게 대승의 법으로써 준다. 일체중생에게 대승의 법으로써 준다 이거여. 그런데 다만 능히 다 능히 받아들이지 못할뿐이다. 중생들이, 최고 대승법으로써 주긴 줬는데 부처님은, 다만 문제되는 것은 다 능히 받아들이지 못함이니라.
舍利弗아 以是因緣으로 當知諸佛의 方便力故로
사리불아 이 인연으로 마땅히 알아라. 모든 부처님이 방편의 힘을 쓴 까닭에 그래서 부처님이 방편으로써
於一佛乘에 分別說三이니라
일불승에서 一佛乘 부처의 삶에서 나누어가지고 분별해서 三을 설했다.
나눠가지고 조각을 내가지고 이것을“아나 이거 하나 먹어라. 이거 하나 먹어라.”하고 그 사람 근기에 맞게 초기경전인 온갖 저 아함부경전 이야기도하고 무슨 뭐 방등부경전 이야기도하고 반야부경전 이야기도하고 그래서 많이 실은 나눴어. 여기서 삼이라고 했지만은 여러 뭐 수만 조각입니다. 그렇게 나눠가지고서 삼승을 설하게 됐다.
그 성문이야기가 많으니까 그러니까 거기에는 별별 이야기가 많아요. 성문 가르치는, 그리고 아주 까다로워요. 교리가, 그 구사론같은거 얼마나 까다로운지 말도 못해요. 구사론(俱舍論)이니 유식론(唯識論)이니 하는 그런 것들이 괜히 뭐 복잡하고 골치만 썩지 아무 소득도 없는 거야. 사실은, 그 뭐 뭔 소린지? 어디로 간다는 소린지? 그래 이제 이 불교를 대승에서 이제 쪼개가지고 쪼개고 쪼개가지고 근기맞춰서 이야기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거에요. 分別해서 三을 說함이니라.
‘불교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돼있구나.’조망하는데, 그러니까 저 산 높이 올라가가지고 이제 전체를 내려다보는데 비행기타고 가면서 이렇게 이제 마을내려다보면서‘어 여기는 어디고 저기는 어디고’하는 것을 환하게 이렇게 내려다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법화경』같은게 없어.『법화경』그렇게 돼있어요. 그런 것을 그냥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환하게 위에서 조망하는 그런 그 역할을 해요. 그런데 다른 경전은 전부 밑에 있다보니까 바라볼 수가 없어.『법화경』은 위에 있다보니까 밑을 내다볼 수 있지. 다른 경전은 낮다보니까 그 전체를 볼 수가 없는 거지. 그런 사실을 우리가『법화경』공부할 때 알고 있어야 되요.
그래서 요즘은 라디오나 TV같은데서 별별 불교가르침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그런 것을 이제 접할 때 그런 것을 환히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이 스스로에게 갖춰져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저거는 소승교야. 저거는 무슨 뭐 대승시교야. 저것은 대승종교야. 이거는『법화경』에 치면 저건 성문에 해당돼. 저건 연각에 해당돼.’그런 것을 환히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법화경』이 그런 점에서도 또 아주 뛰어난 아주 좋은 경전이지요.
그 다음에 이제 이 비유를
93 佛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불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佛이 欲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니라
부처님이 이 뜻을 거듭 펴려고 거듭 이야기할려고 복습시킬려고 그런 말입니다. 게송으로써 설해 말씀하사대
저 앞에 있었던 이야기지만은 또 이제 우리가 아침 먹었지만은 또 점심 또 먹어야하듯이 그래 쫌 있으면 점심 또 먹어야 되고, 오늘 먹었는데 오늘 세 끼 먹었는데 내일 또 세 끼 먹어야 되고 그와같이 계속 반복하는데 그게 묘가 있습니다.
94 譬如長者 有一大宅 其宅久故 而復頓弊
비여장자 유일대택 기택구고 이부돈폐
譬如長者가 有一大宅커든
비유하건데 장자가 큰~ 하나의 큰 집이 있으대, 있거든
其宅久故하고 而復頓弊하며
그 집은 久故야. 오래되고 연고가 있어. 故자는, 이럴때 故자는 연고 고자입니다. 아주 낡았다 이런 뜻이죠. 그래서 다시 몰록 넘어질려고 해. 몰록 넘어질려고 하며
95 堂舍高危 柱根摧朽 梁棟傾斜 基陛隤毁 牆壁圮坼 泥塗阤落
당사고위 주근최후 양동경사 기폐퇴훼 장벽비탁 니도치락
覆苫亂墜 椽梠差脫 周障屈曲 雜穢充徧 有五百人 止住其中
부점난추 연려차탈 주장굴곡 잡예충변 유오백인 지주기중
堂舍高危하고 柱根摧朽하며
집과 堂舍들은, 집들은 높고 또 위태로워. 柱根 기둥과 기둥뿌리들이 전부 이제 꺾이고 이지러지며 썩었으며
梁棟傾斜하고 基陛隤毁하여
기둥들이 기둥과 서까래와 기둥들이 기울어지고 있어. 기울어지고 그 기단 基陛라고 하는 것은 저 축대같은 거 이런 것들이 전부 隤毁여. 아주 그 무너지고 또 허물어져.
牆壁圮坼하고 泥塗阤落하며
장벽도 이제 벽이 그야말로 장벽이죠. 담과 벽같은 거 이런 것은 무너지고 터져. 터져 자빠져. 그리고 집이 하도 낡아가지고 좀 곳곳이 무너지고 터지고 그런거지. 이 坼자가 터질 탁자입니다. 진흙으로 발라논 것이 헐리고 또 떨어져. 헐릴 치(阤)자입니다. 헐리고 떨어지며
覆苫亂墜하고 椽梠差脫하며
覆苫은 이엉입니다. 이렇게 덮어논 그 집 위에다 이제 지붕덮어 놓은거 전부 覆苫이라 그래요. 전부 기와장으로 덮었던지 아니면은 풀로 덮었던지 볏짚으로 덮었던지간에 그런 덮어놓은것이 亂墜야. 아주 어지럽게 떨어져. 지저분하게 그렇게 떨어지고 그 서까래들 또 현판들 평고대 그 건물상의 명칭들인데 그런 것이 전부 어긋나고 뭐 벗어지고 그냥 그렇게 하는거요.
周障屈曲하고 雜穢充徧하며
골목 골목들은 꾸불꾸불해 또. 돌아가면서 골목들은 꾸불꾸불한것은, 꾸불꾸불한데 거기는 온갖 섞이고 더러운 것들이 가득해 또. 가득하고 곳곳에 널려 있어. 거기에 이제
有五百人이 止住其中커든
오백인이 그 안에 살고 있더라. 살고 있거든
여기보면 이제 짐승이름들이 저기 산문에는 전혀 없었던건데 게송에 이렇게 많이 나와요.『법화경』의 어려운 난자들이 여기 다 몰려있습니다. 생전에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짐승이름, 글자들이거든요.
96 鴟梟鵰鷲 烏鵲鳩鴿 蚖蛇蝮蠍 蜈蚣蚰蜒 守宮百足 鼬貍鼷鼠
치효조취 오작구합 원사복갈 오공유연 수궁백족 유리혜서
諸惡蟲輩 交橫馳走
제악충배 교횡치주
鴟梟鵰鷲와 烏鵲鳩鴿과
鴟는 소리개 그 다음에 梟는 올빼미, 鵰는 부엉이, 鷲는 이제 그 독수리 그 다음에 까마귀, 까치, 비둘기, 뻐꾸기 그 다음에
蚖蛇蝮蠍과 蜈蚣蚰蜒과
이제 뱀, 독사, 살무사, 전갈 그 다음에 蜈蚣은 이제 지네 또 蚰는 노래기 또 蜒은 그리마, 땅지네 그것과
守宮百足과 鼬貍鼷鼠와
이건 이제 도마뱀입니다. 그런것하고 그 다음에 이거는 살쾡이, 족제비, 쥐 이런 것입니다. 鼬貍鼷鼠 鼬는 살쾡이고 貍는 이제 족제비고 鼷鼠는 쥐고 그런것과
諸惡蟲輩가 交橫馳走하며
여러 가지 아주 악한 좋지 아니한 그 벌레 무리들이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뛴다. 交橫馳走 그냥 일로 가고 절로 가고 서로서로 일로 뛰었다 절로 뛰었다 하는 것을 交橫馳走라 그래요.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뛰며
거기다가 또
97 屎尿臭處 不淨流溢 蜣蜋諸蟲 而集其上 狐狼野干 咀嚼踐踏
시뇨취처 부정유일 강랑제충 이집기상 호랑야간 저작천답
嚌齧死屍 骨肉狼藉
제설사시 골육낭자
屎尿臭處에 不淨流溢하고
똥과 오줌 이런 아주 냄새나는 곳에 그 더러운 것이 철철 흘러 넘치기도 해. 이런거 참 우리 번뇌에게다 비유한것입니다.
아까 저기 저 소래기, 올빼미니, 부엉이니, 까치, 비둘기, 뻐꾸기 이런 것들도 전부 우리 인간의 번뇌를 그렇게 비유한 것이고 또 뱀, 독사, 살무사 이런 것은 이제 역시 진심(瞋心) 진심내는 그런 번뇌에다 비유한 것이고 뭐 저기 저 지네, 노리개 그리마 이런 것들은 또 어리석음에 비유한 것이고 여기 이제‘더러움이 넘쳐난다.’하는 것은 이제 의심, 사람이 의심하는 마음을 이렇게‘屎尿臭處에 不淨이 流溢이라.’이렇게 이제 비유한거에요.
여 이제 이런것을 이제 들었어도 낱낱이 그런 배대는 안해놨지만, 경에는 안해놨지만은 다 그 상징하는 바 뜻이 있습니다.
蜣蜋諸蟲이 而集其上하며
蜣蜋은 말똥구리 뭐 버마재비같은 것을 蜣蜋이라 그래요. 蜣蜋의 여러 벌레들이 그 위에 전부 모여가지고 꾸물대고 있다 이거죠.
뭐 요즘 도시생활하면서 이런거 보기 어렵지만은 옛날 시골에서는 이런것을 가끔 볼 수가 있습니다. 소가 가다가 똥을 잔뜩 싸노면은 그게 오래되면 거기서 벌레가 생겨가지고 막 그냥 벌레가 들끓고 그래요. 그 다음에
狐狼野干이 咀嚼踐踏하고
이거는 탐(貪)에 해당돼네. 탐욕 인간의 탐욕이라. 狐狼 호랑이 그대로 野干 여우 이런 것들이 막 그냥 서로 벌레를 주워먹고 씹고 또 짓밟고 그렇게 하는 모습입니다. 咀嚼踐踏하며
嚌齧死屍하야 骨肉狼藉커든
씹고 막 그냥 썰고 그리고 그 저기 죽은 시체를 씹고 썰고 그렇게 한다 이거죠. 그리고 살이 그냥 낭자해하거든
98 由是群狗 競來搏撮 飢羸慞惶 處處求食 鬪諍摣掣 啀喍嘷吠
유시군구 경래박촬 기리장황 처처구식 투쟁자철 애재호폐
由是群狗가 競來搏撮하고
이로 말미암아 여러 개들이, 그래놓으니까 여러 개들이 좋다고 그냥 다퉈서 와가지고는 搏撮하는 거라. 막 이리 취하고 저리 치고 그냥 걷어가고 그냥 물고 흔들고 그래 하는거야. 그러면서
飢羸慞惶하야 處處求食하며
飢羸라고 하는 것은 또 개들이 또 병에 걸려가지고 주리고 앓고 파리하고 그래가지고 영 두려워하는 그런 모습들 그런 것들이 또 많고, 곳곳에서 먹을것을 구하는 거야. 그 다음에
鬪諍摣掣하고 啀喍嘷吠어든
다투고 싸우고 물고 뜯고 하는거죠. 鬪諍하면서, 摣掣 후려갈기고 취하고 끌고 하는거요. 그렇게해서 啀喍는 물고 개가 무는 소리. 물고 吠 이제 싸우고 喍 싸우고 嘷吠 짐승이 막 그냥 무슨 이~ 하는 우우우~ 하는 소리, 짖는 소리 이런게 啀喍嘷吠입니다. 하거든
99 其舍恐怖 變狀如是 處處皆有 魑魅魍魎
기사공포 변상여시 처처개유 이매망량
其舍恐怖하야 變狀如是라
그 집은 두렵고 두려워서 그 참 참상이 이와같더라. 그런데다가
處處皆有 魑魅魍魎하며
곳곳에 다, 악한 귀신들 이런 것을 魑魅魍魎라 그래요. 악한 귀신들도 거기에 또 이제 버글버글 끓어. 그런게 있어서 있고
100 夜叉惡鬼 食噉人肉 毒蟲之屬 諸惡禽獸 孚乳産生 各自藏護
야차악귀 식담인육 독충지속 제악금수 부유산생 각자장호
夜叉惡鬼가 食噉人肉하며
야차와 악귀가 사람의 고기를 막 그냥 뜯어먹고 夜叉 귀신들이 그렇게 한다 이거여. 또
毒蟲之屬과 諸惡禽獸는
독충의 그 권속들과 여러 악한 그런 그 새와 짐승들은
孚乳産生하야
알을 까기도 하고 알을 키우기도 하고 이렇게 한다 이거여.
별별 상황이 다 벌어지는 거요. 그게 이제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그 비참한 모습, 아주 부정적인 입장으로 세상을 바라볼때 그 세상의 사람들이 하고있는 그런 살아가는 꼬락서니를 이렇게 표현한것입니다. 이게, 이게 전부 인간의 살아가는 꼬락서니를 이렇게 그 내용 속속들이 들여다보면은, 그 서로 속이고 물고 뜯고 뭐 화내고 복수하고 서로 의심하고 그런 그 어떤 그 인간의 더러운 현상들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이게 전부가
참 경전도 하여튼 이런것보면은 어떻게 이렇게 인간세상을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참 너무 아주 신랄하게 표현한다 싶을 정도로 이런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各自藏護어든
각자 알을 까고 새끼를 낳아가지고 各自藏護라. 서로 그것도 알을 보호한다고 각각 스스로 이제 감추기도 하고 보호하거든
그런데 이제 그렇게 하고 있으면 보호가 되나?
101 夜叉競來 爭取食之 食之旣飽 惡心轉熾 鬪諍之聲 甚可怖畏
야차경래 쟁취식지 식지기포 악심전치 투쟁지성 심가포외
夜叉競來하야 爭取食之하며
야차가 다투어와서는 그냥 또 물어가고 그냥 죽이고 물고 가고 근다 말이요. 爭取食之라. 쟁취해가지고 그것을 먹으며
食之旣飽하야는 惡心轉熾하야
먹고 나서 이미 배불러서는 악한 마음이 더욱더 치성해가지고서
鬪諍之聲이 甚可怖畏하며
서로 이제 물고 뜯는거지. 야차들끼리, 서로 이제 투쟁하는 소리가 심히 가이 두렵고 두려우며
102 鳩槃茶鬼 蹲踞土埵 或時離地 一尺二尺 往返遊行 縱逸嬉戱
구반다귀 준거토타 혹시이지 일척이척 왕반유행 종일희희
捉狗兩足 撲令失聲 以脚加頸 怖狗自樂
착구양족 박령실성 이각가경 포구자락
鳩槃茶鬼가 蹲踞土埵하대
구반다 귀신이, 구반다 귀신은 턱 이제 흙더미 위에 걸터앉아가지고
或時離地를 一尺二尺하며
혹 이제 땅에서 펄쩍펄쩍 뛰는데 한 자도 뛰어오르고 두 자도 뛰어오르고, 구반다 귀신이라고 하는 그런 귀신이 있다 말이요. 하고
往返遊行하야 縱逸嬉戱하대
왔다 갔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좋을텐데 왔다 갔다 이제 돌아다니면서 막 방자하고 돌아다니면서 막 희히닥거리고 구반다 귀신이 그러대
捉狗兩足하야
또 개다리를 양다리를 잡고는 그걸 그냥 찢어버리는 거야. 개다리를, 이제 구반다 귀신은 개보다 훨씬 더 무서운 거니까 개 두 다리를 잡고는 양쪽으로 막 찢는거야.
撲令失聲하고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고 찢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 개가 얼마나 아파가지고 그냥 죽을듯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인간세상에 그런거 많지요. 지금 뭐 신문지상에 집어내라면 이거 다 집어낼 수 있습니다. 하루 신문만 갖다놓고 여기에 맞춰서 해도 다 맞출 수 있어요. 사실은, 하루에 일어나는 그 보도만 가지고도 이런 현상들을 다 맞출 수 있어요. 참 옛날인데도 이랬었나봐요.
以脚加頸하야 怖狗自樂하며
다리로써 목에다 떡 걸고, 그런 모습을 한 번 생각해 봐요. 구반다 귀신이 다리를 가지고 목에다 척 걸치고 있고 하는 그런 모습. 그 개가 두려워하는 것을 가지고는, 개를 두렵게 만들어놓고는 그것을 좋다고 그렇게 自樂하며
인간세상에 그런 모습 있잖아요. 그~ 남 그냥 망하게 하고 그냥 많이 훔치고 탈취 많이 해놓고는 저기끼리는 하~ 좋다고 오늘 한 건 했다고 그냥 한 잔 먹자하고 막 히히닥거리고 하는 그런 모습들 영화에 많이 나오죠. 그런거, 실지로 그런거 있어요. 얼마든지, 큰건 한 건 했다고 사람을 그렇게 망쳐놓고 사람을 그렇게 원통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들어 놓고는 그게 저그는 좋다고 히히닥거리고 오늘 큰거 한 건 했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이게 그거요. 그런 모습을 그려놓은거요. 그걸 좋다고 즐기는 거지.
103 復有諸鬼 其身長大 裸形黑瘦 常住其中 發大惡聲 叫呼求食
부유제귀 기신장대 나형흑수 상주기중 발대악성 규호구식
復有諸鬼는 其身長大하야
또 다시 여러 귀신들은 그 몸이 장대해. 커가지고 또
裸形黑瘦가 常住其中하대
裸形은 귀신들이 옷 입었겠어요? 裸形이야. 裸形黑瘦여. 시커멓고 보기는 좋을 턱이 있습니까? 시커멓고 빼빼 마르고 하거든, 그 가운데 항상 住하대
發大惡聲하야 叫呼求食하며
아~ 듣기도 싫은 그런 좋지못한 그런 소리를 크게 고함을 치면서 막 소리소리 지르면서 求食 자기들이 먹을 것을 구하며
104 復有諸鬼 其咽如鍼 復有諸鬼 首如牛頭 或食人肉 或復噉狗
부유제귀 기인여침 부유제귀 수여우두 혹식인육 혹부담구
頭髮髼亂 殘害兇險 飢渴所逼 叫喚馳走
두발봉난 잔해흉험 기갈소핍 규환치주
復有諸鬼는 其咽如鍼하며
다시 또 여러 귀신들은 그 목구멍이, 목구멍이 마치 바늘구멍같이 그렇게 작다 이 말이여.
그 저기 그 뭐야 아수라 아귀가 그렇다고 하지요. 아귀 귀신이 그렇다고 하는 거지요. 그래서 항상 먹을 것은 있는데 넘어가질 못하고 많이 먹지를 못하고 그래서 늘 목마르고 목에 불이나고 그런다고 하지요.
復有諸鬼는 首如牛頭하대
또 다시 여러 귀신들은 머리는 꼭 소머리같이 생겼고
或食人肉하고 或復噉狗하며
사람고기를 먹는거여. 或食人肉 사람고기를 먹고 혹 또 개를 잡아먹기도 해.
頭髮髼亂하야 殘害兇險하며
머리털은 막 형편없이 그냥 헝클어져가지고 그냥 髼亂한다고 그러죠. 두발이 아주 아주 형편없이 헝클어져있어서 남을 해하는 모습으로 아주 그 해꼬지하기가 좋게 殘害하기가 좋도록 그렇게 돼있어. 너무 凶險해. 흉하고 험하게 생겼더라 이 말이요.
그런 사람들 세상에 많아요. 전세계적으로 치면은
飢渴所逼으로 叫喚馳走하며
거기다 이제 또 아무리 저 많이 가졌어도 항상 목마르고 항상 배고프고 그러지. 그래 끊임없이 빼앗고 끊임없이 도둑질하고 끊임없이 뭐 사기쳐가지고 남의 것을 탈취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 뭐 요즘 그 은행에 돈도 못 맡기겠대. 그놈의 어떻게 어떻게 해킹인가 뭔가 해가지고는 자기가 그저저 돈 주인인것처럼 그렇게 빼내가고, 전부 확인들 하세요. 그거 어떻게 됐는가? (하하하) 그 신문에 요즘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은요. 어떻게 하면 남의 돈을 그냥 빼앗을까? 훔칠까? 그냥 사기쳐서 내것으로 만들까? 어느 동네에는 그냥 그 저기 저 새마을금고가 전직원이, 아니 그 저 최고책임자부터 그 밑에 수위까지 전체가 다 도둑놈이 돼가지고는 다같이 짜고 그렇게 했드만, 세상에 이런 험한 세상이라. 그래 여기 이렇게 그려놓은게 정말 엉터리나 지나친 표현이 아니라구요.
새마을금고 전직원이 짜고하는데 그걸 어떻게 할거요. 그거는, 예를 들어서 1년간 예치 딱 하잖아요. 그럼 1년간 이 사람이 돈 안찾아가거든 그럼 그돈 딱 빼내는 거야. 예치시켜놓고 그걸 딱 빼돌려가지고 자기걸로 착복하는 거야. 이리저리 휘돌려가지고는
참 세상에 믿을 사람 없어요. 그 어떻게 해야 저저 마음놓고 살지 내가 알 수가 없어. 도대체, 그래가지고 손해본 사람들 뭐 전부 이제 그 공단에서 다 이제 주기는 했지만은, 아 전직원이 그렇게 짜고하니 한두 사람이 짜고 하는것도 아니고 전직원이 전체 그 금고 이사장부터 짜고 했으니
그 오늘 참 이런 그 내용들이 하나도 거짓말이 아니고 그대로다 지금. 어떻게하면 그저 뭐 인과니 뭐 남 뭐 불행하고 남이 그저 정말 저기 마음아프고 뭐 그런거 뭐 전혀 생각지도 안하는 거야. 어떻게 하더라도 정말 조심스럽게 스스로 단속잘하면서 살아야지. 달리 뭐 길이 없어. 아주 조심하고 단속 단속 또 단속 그렇게 하면서 살아야 되겠더라고
‘飢渴所逼으로’목마르고 배고프고 목마른 것을 핍박한 바로써‘叫喚馳走라.’아주 서로 막 그냥 부르짖고 울고 불고 하면서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고 하며
105 夜叉餓鬼 諸惡鳥獸 飢急四向 窺看牕牖 如是諸難 恐畏無量
야차아귀 제악조수 기급사향 규간창유 여시제난 공외무량
夜叉餓鬼와 諸惡鳥獸가
야차와 아귀와 여러 가지 나쁜 새와 짐승들이
飢急四向하야 窺看牕牖커든
그 주려가지고 막 급하게 이리뛰고 저리뛰고 사방으로 그냥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며 또 어떤 것들은 또 문틈으로 틈만있으면 이렇게 노리고 엿보고 있거든
如是諸難이 恐畏無量이라
이와같은 모든 難들이, 그야말로 如是諸難이 두렵고 두려운 것이 한량이 없더라.
이 세상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정말 뭐 우리 인간세상 어떤 정치사정, 세계정치 이런 것들을 우리가 모르고 살아서 그렇지 사실 낱낱이 살펴보면 너무 아주 리얼하고 사실적으로 이렇게 묘사를 참 잘해놨다 싶습니다. 마음 좀 어둡고 불행 속은 좀 편친 안해요. 내면이, 설사 우리 인간사회에 있다손 치더라도 이런 것을 우리가 보고 또 들춰내서 이야기한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야. 그렇지만 또 그것이 항상 이웃에 일어나는 일이고 신문지상과 인터넷이라든지 그 다음 뭐 텔레비전 뉴스라든지 크게 자나깨나 그런 내용뿐이니까, 뭐 대통령이고 뭐고 저 밑에 뭐 무슨 수위고 할 것도 없어. 똑같애. 아이고 참말로
恐畏無量해. 두렵고 두려운게 한량이 없어. 어떻게 하더라도 몸조심하고 단도리잘하고 단속잘하고 그저 그렇게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 상황을 여기 이제 해놨고 그 다음에 2차상황은 불이 일어나는 상황인데, 거기다 불까지 났다. 이러한 상황에 불까지 났다하는 내용이 이제 다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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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염화실이라고 하는 잡지를 하나 만들었는데 이것은 불교TV 무상사에서『법화경』강의를 하면서 거기에 이제 이런저런 스케치를 한 사람이 있어서『법화경』의 그 전체 줄거리와 또 그날의 특징적인 사실들 이런것들을 잘 기록을 해서, 글솜씨도 아주 아름답고 해서 그래 이게 염화실 카페에 올라있는데 그대로 지나쳐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그래서 이제 책자를 만들어서 무상사에 가서『법화경』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엊그저께 다 이제 돌려가지고 당신들이 공부하는 그런 그 현장의 모습을 다시 이렇게 글로 재현했노라라고 다 이제 나눠서 보게 됐고 또 여유있게 찍어서 우리 금요법회도 보게 됐습니다.
자세치는 않지만은 그래도 전체 스토리는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도록 그렇게 돼있기 때문에 기왕 우리가『법화경』공부를하니까『법화경』공부하는데 다소 참고가 될 줄 믿습니다. 제가 올라가서 하는 일들이 또 여러분들도 같이 알면은『법화경』공부에 더 신심이 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해요. 틀림없이 아마 신심에 도움을 줄겁니다.
거기는『법화경』공부하는데 청중이 여기모인 청중의 한 10배는 될거요. 그렇게 뭐 무슨 식당으로, 2층으로 뭐 본 법당말고도 그렇게 많이 모입니다.『법화경』열기가 아주 대단해요. 그래서 뭐‘무상사생기고 처음이다.’라고 모두 그러고 거기 사장이 내려와서“스님 뭐 2년도 좋고 3년도 좋고 계속 좀 해주십시오.”하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ARS 그 전화도 그전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온다고 (하하하) 그런 이야기도 사장이 내려와서 해요. 그 이야기도 거기에 올라있을지 모르겠네요. 아니면 다음호에 올라올지...
어쨌든 그렇습니다. 그 한 번씩 여가에 그 가볍게 읽어보십시오. 아마 여러분들 꼬리말단 분이 있으면은, 댓글단 사람 글도 간혹 몇사람 소개했습니다. 이제 인터넷이라든지 뭐 이런것은 다 너무나도 일반화됐기 때문에 그 의례히 다 하는것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불교계도 바야흐로 그런 세상이 됐다하는 것도 이렇게 보이고 이왕이면 늘 좀 한 걸음 앞서가고 또 발전된 오늘의 현실을 우리가 다같이 공유하면은 그것도 이제 뒤따라온 사람도 빨리 쫓아가게되고 또 앞에 간 사람은 선두에 서서 하는 그런 역할도 되고 그렇습니다.
오늘은 마침 5월 15일에 금요법회가 돼서 여러 가지가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법화경』공부는 지난시간에 이어서 90쪽 그 106번부터 할 차례이지요. 이것은『법화경』의 28품중에서 세 번째「비유품」이라고 해서 화택의 비유를 이야기하고, 먼저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이제 게송으로써 좀더 자세하게 부연하는 중간입니다.
성인들이 세상을 보기에, 성인이 세상을 보기에는 세상이 그렇게 편안한 곳도 아니고 아름다운 곳도 아니고 살기좋은 곳도 아니다. 모든 그런 그 중생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그냥 가슴에 상처로 남고 흔적으로 남는 것이 주로 보이죠. 우리같이 무딘 사람들은 상처 좀 받아도 조금 지나면 그래도 아물기도 하고 또 내 상처가 아니라도 남의 상처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잠깐 충격받고 넘어가고 그러는데, 이 성인들의 영혼은 보통 사람들의 영혼하고 달라서 그야말로 아주 여리고 자비심과 연민심이 아주 많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잘잘못이라든지 그 다음에 고통받는 문제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상당히 가슴아파하고 마음아파해요.
그 사람관계도 보면은 뭐 백 가지 좋다가 한 가지 나쁘면은 틀어져버리죠. 그게 이제 우리 중생들의 그 삶이고 또 안좋은 것이 설사 있다하더라도 또 그 나름대로 좋은것이 일부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사바세계는‘반고반락(半苦半樂)’이다. 반은 고통스럽지만은 그래도 한 반 정도는 숨쉬고 살만한 그런 내용들이다. 이렇게 이제 보는 거죠. 그렇지만 성인들은 그 좋은 면들은 크게 보질않고 중생들이 고통받고 그 어떻게 잘못되고 힘들고 어려운 것. 이런 것들이 마음에 많이 남아 있는거죠. 그래서 이제 그런것들을 여기서는 상당히 크게 부각시키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제 왜 그렇게 음모를 하고 막 속이고 거짓말하고 그래서 사람들을 억울하게 만들고 요즘 또 뭐 인터넷이라든지 또 이제 그 휴대폰 이런 것들 전자개통, 카드 이런 것이 발달을 해서 편리한 점이 있지만 또 그것을 이용해서 사기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또 많습니까? 뭣도 모르고 거기 사기에 걸려 들어가지고는 그 손해도 크게 이제 보게되고 없는 돈 그렇게 손실을 보고는 가슴을 치고, 그런 상황들 이런 것들을 불난집이라고 하는 불타고 있는 집이라고 하는 이런 비유를 통해서 중생의 그 좋지아니한 성향들, 좋지아니한 성향들 때문에 당하는 사람들, 그 고통을 받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현상을 여 불타는 집에서 다 이제 비유로써 그리고 있어요.
106 是朽故宅 屬于一人 其人近出 未久之間 於後宅舍 忽然火起
시후고택 속우일인 기인근출 미구지간 어후택사 홀연화기
四面一時 其炎俱熾 棟梁椽柱 爆聲震裂 摧折墮落 牆壁崩倒
사면일시 기염구치 동량연주 폭성진열 최절타락 장벽붕도
是朽故宅이 屬于一人터니
이 아주 오래되고 낡고 그 막 그냥 기울어져가는 그런 그 집이 한 사람에게 속해있다. 그 집의 장자 아버지 한 사람에게 속해있다.
이것은 이제 이 사바세계가 석가모니 한 분이라고 하는 그 위대한 성인 한 사람에게 속해있다. 중생들이 고통받고 그 어리석어서 남을 사기치고 속이고 남 그저 가슴아프게 하는 거. 그게 그저 좋은 일인줄로 그렇게 알고 있는 정말 어리석은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전부 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이 다 가르쳐야 되고 빨리빨리 사람들에게 가르쳐가지고 그 가르침이 널리널리 퍼져 나가야 되는데, 이게 한 사람한테 속해있으니 얼마나 그 소임이 큽니까? 그런것을 비유를 하는거죠.
한 사람에게 속해있으니
其人近出하야 未久之間에
그런데 그 사람이 곧 가까이 집을 나가있었어. 그런데 집에 불난 사실을 알고는 未久之間에 돌아왔다 말이야.
於後宅舍에 忽然火起하야
얼마 아니가서 사택에서 홀연히 불이 일어났어.
四面一時에 其炎俱熾하대
그래서 사면에서 일시에 그 불꽃이 함께 치성하대. 바로 활활 타오른다 이거죠.
옛날에 보면 목조건물로 지어가지고 다 낡아빠지고 건조하고 그런 상황에서 불이 났다. 이렇게 우리가 상상을 해보면은, 그 불꽃이 함께 치성하게 타오르대
棟梁椽柱에 爆聲震裂하야
기둥과 뭐 대들보, 서까래, 기둥 이런 것들에 아주 막 타면서 땅땅 터지기도 하고 넘어지면서도 소리나기도 하고, 그 남대문 타는 거 우리가 봤죠. 그런 식으로 그냥 찢어지는 그런 소리가 나고
摧折墮落하고 牆壁崩倒하며
막 꺾이고 짜개지고 떨어지고 막 무너지고 한다 이 말이요. 담도 그냥 넘어져 자빠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 오래된 집이니까
107 諸鬼神等 揚聲大叫 雕鷲諸鳥 鳩槃茶等 周慞惶怖 不能自出
제귀신등 양성대규 조취제조 구반다등 주장황포 불능자출
諸鬼神等은 揚聲大叫하고
온갖 귀신, 짐승 이런것들은 많아가지고 온갖 귀신들은 소리를 드날리면서 크~게 고래고래 막 살려달라고 고함을 치기도 하고
雕鷲諸鳥와
부엉이, 독수리 등 여러 새들도 그 묵은지 오래된 집이라서 이런것들도 많이 산다 이 말이여.
이런것들이 전부 인간의 잘못된, 남을 해칠려고 하고 자기이익을 위해서 남을 해칠려고 하고 그러면서도 그게 어리석은 짓인줄도 모르는 그런 그 인간에다가 이걸 비유한 말입니다. 이게 무슨 죄없은 부엉이, 독수리를 왜 들먹거렸겠어요? 이런것을 비유 그런 그 인간의 잘못된 생각들에 비유를 한거죠. 그런 새와
鳩槃茶等은
구반다는 귀신이라는 건데 막 그냥 다리가 길어가지고 다리를 목위에다가 척 걸쳐놓고 아주 괴상망측하고 흉측하게 생긴 그런 그 귀신들.
차라리 그런 귀신이라면 낫겠지만 인간이 그런 내면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에게 그런 해꼬지를 한다고 하는 것 이게 이제 못참을 일이죠. 사실은, 동물이야 그게 아무리 흉측해본들 우리가 피해버리면 되지만은 인간이 그런 흉측한 짓을 그렇게 해가지고 정말 얼토당토않게 그런데 걸려들기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을 직접 꼬집지는 못하고 이렇게 비유로써 표현을 합니다. 참『법화경』이 대단한 경전이에요.
그래서
周慞惶怖하야 不能自出하며
두루두루 아주 두렵고 겁나고 아주 두려운 그런 일들만 이제 꽉 차 있어. 능히 스스로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하며
108 惡獸毒蟲 藏竄孔穴 毗舍闍鬼 亦住其中 薄福德故 爲火所逼
악수독충 장찬공혈 비사사귀 역주기중 박복덕고 위화소핍
共相殘害 飮血噉肉 野干之屬 並已前死 諸大惡獸 競來食噉
공상잔해 음혈담육 야간지속 병이전사 제대악수 경래식담
臭烟蓬발 四面充塞
취연봉발 사면충색
惡獸毒蟲이 藏竄孔穴하며
짐승과 독한 벌레들이 또 구멍속에서 딱 이렇게 숨는거여.
그 뭐 담이라든지 벽이라든지 기타 뭐 헌짚속이라든지 이런데 몸을 이렇게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활동하면은 차라리 괜찮을텐데, 차~ 구멍속에 숨어있다가 뭐 먹을거리가 앞으로 지나가면 얼른 뛰어나와가지고 날름하고 잡아먹기도 하고 물고 뜯기도 하고 하는거요. 세상에 사기치고 도둑질하고 남 해꼬지하는 사람들 전부 시침 딱 떼고 아무렇지도 않은것처럼 세상에 활보를 합니다. 그게 표시가 있으면 조심이라도 하겠지만은 이 놈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시침 딱 떼버리면, 저 나쁜놈인지 좋은놈인지 사기꾼인지 뭐 강도인지 무슨 납치범인지 뭐 알 수가 없는 거요. 이게 도대체
그런 현상을 이렇게‘藏竄孔穴이라’표현한겁니다. 참 이 저『법화경』의 경이 문학적으로도 너무 아주 뛰어나고 깊이가 있고 그래요. 그 시침 딱 떼고 그길로 아주 활보하니까 그 놈 그 시커먼 마음속을 아무도 알 사람이 없는거지. 그러니까 저 惡獸와 毒蟲들이 구멍속에서 딱 이렇게 움크리고 있다가 무슨 뭐 해꼬지할것인지 지나가기만하면 얼른 뛰어나와서 그냥 뭐 목이고 몸뚱이고 다리고 할것없이 사정없이 물어뜯고 한다 이 말이여.
세상이 그렇잖아요? 지금, 무슨 정치계나 뭐 경제계나 산업계통이나 심지어 교육계, 종교계 뭐 까지 그런 부분들이 사실 너무 많지않습니까? 우리나라 신문이나 무슨 라디오나 TV나 뉴스라는게 하루종일 그 이야기이지 무슨 딴거있나요? 상하(上下)를 막론하고, 上下를 막론하고 저 밑에 있는 사람은 밑에 있는 사람대로, 제일 위에 있는 사람은 제일 위에 있는 사람대로 그 아들, 딸, 형 뭐 마누라 할것없이 참말로... 내 누구보고 하는 소리는 아니에요. 하하하하하
그래 속은 그렇게 시꺼머가지고 겉은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이거여. 부정하게 무슨 권력 이용해서 착취하는게 다 이게 惡獸毒蟲이 藏竄孔穴이여. 구멍속에 딱 이렇게, 자기 그런 표현안하고 시침 딱 떼고 무슨 뭐 민주니 개혁이니 자유니 평등이니 무슨 뭐 무슨 저저 선진이니 좋은 낱말이라고 하는 낱말은 어디서 다 그렇게 끌어대가지고 계속 그런거 노래부르다가 나중에 알고보니 속은 惡獸毒蟲이 藏竄孔穴여. 그래놓고 당한 사람은 서민들만 당하지. 죽자고 고생하고 노력해도 그 고생한 댓가가 반도 안 돌아가는 거라. 그렇게 높은 데서 부정으로 다 흘러가버리니까 서민들이 노력한 것에 반의 댓가도 돌아오지 않는거야. 이게, 장사하는 사람도 그렇고 뭘해도 다 댓가가 반도 안 돌아와요. 이게
그게 이제 참 모든 것이 위에서부터 그 정직하게 아~ 그저 정직하게 검소하고 정직하게 그렇게 하면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만가지고도 넘쳐납니다. 넘쳐나요.
毗舍闍鬼가 亦住其中하니
毗舍闍鬼라고 하는 것도 귀신이름이여. 또 그 가운데 이제 머물러있다. 여 귀신들 뭐 하나하나 우리 인간의 그 어떤 심성에다가 전부 이제 배대를 다 해놨어요.
薄福德故로 爲火所逼하야
복덕이 얇은 까닭으로 불에 핍박한 바가 되며, 불의 핍박한 바 된다.
세상의 전부 이제 그런 부정적인 모습을 불이라고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죠. 불에 타는 바가 되고
共相殘害하고 飮血噉肉하며
함께 서로서로 殘害하는 거여. 서로 깎고 해꼬지하고 피해를 주고 피를 빨아먹고 고기를 씹어먹고, 아주 표현 잘 해놨네요. 그렇죠. 피 빨아먹고 고기 씹어 먹는거지.
하며
野干之屬이 並已前死어든
여우들의 무리들이 아울러 앞에서 이미 죽어 자빠지기도하고 또 지기들끼리 물고 뜯고 해가지고도 그렇게 이제 자빠지고 그저 계속 그러잖아요.
諸大惡獸가 競來食噉하며
모두 큰 아주 악한 그런 짐승들이 다투어 와가지고 서로서로 막 쫓아 와가지고서 그 물고 먹고 그렇게 한다 이거여.
인간사회라는게, 전세계가 다 그렇지요. 우리나라만 그런게 아니라 전세계가 또 강대국은 약소국을 그런식으로 이제 큰 짐승이 작은 짐승 물고 뜯고 잡아먹듯이 나라와 나라사이에도 그렇고
하며
臭烟蓬발이 四面充塞하며
臭烟 아주 독한 그런 연기 또 연기가 아주 무럭무럭 그냥 독한 연기가 그냥 뿜어 대는것을 봉발이라고 그래요. 뿜어대는 것이 사면에 가득찼으며
109 蜈蚣蚰蜒 毒蛇之類 爲火所燒 爭走出穴 鳩槃茶鬼 隨取而食
오공유연 독사지류 위화소소 쟁주출혈 구반다귀 수취이식
蜈蚣蚰蜒과 毒蛇之類는
이건 이제 지네 蚰는 노리개, 노래기 무슨 그리마 이런 거에요. 蜈蚣은 지네고 蚰는 노래기고 또 蜒은 그리마고 그리고 毒蛇 이런 종류들은
爲火所燒하야 爭走出穴커든
또 이리저리 지가 남 해치다가 또 큰 재앙에 또 타버리기도 하고 당하기도 하고 그러는 거죠. 다투어 나와서, 그 뜨거우니까 구멍에서 이제 그 도망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鳩槃茶鬼가 隨取而食하며
얼른 나와서, 뜨거운 구멍속에서 쫓아 나오니까 그걸 또 이제 살기위해서 쫓아나온 놈을 덥썩 좋다고 물어뜯어가지고 먹어버리는 거야.
하며. 그 불쌍한 애들 어떻게 데리고 가가지고 그 뭐 구걸시키고 해가지고 아주 고생고생 구걸한 그걸 착취해가지고 그 애는 얼마 주지도않고, 안 줘요. 뭐 겨우겨우 그저 먹고, 먹을정도만 하는거라. 그래 도망못가게 해놀라고, 그런 일들이 곳곳에 비일비재하지요. 사실은
110 又諸餓鬼 頭上火然 飢渴熱惱 周慞悶走
우제아귀 두상화연 기갈열뇌 주장민주
又諸餓鬼는 頭上火然커든
또 여러 악한 귀신들은 머리 위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그런 어떤 모습도 있다 이거여.
飢渴熱惱로 周慞悶走하며
아주 목은 마르고 뜨거운 열기로써 아주 뭐 답답하고 깝깝해가지고 막 그냥 이리저리 날뛰고 돌아다니며
111 其宅如是 甚可怖畏 毒害火災 衆難非一
기택여시 심가포외 독해화재 중난비일
其宅如是히 甚可怖畏라
그 집의 상황이 이와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이와 같아서 심히 가히 두렵고 두려우니라.
그러니까 참 늘 경계하고 조심하고 그 경계하고 조심하는 그 마음을 한시도 놓치면 안되요. 틈만 났다하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옛날에 우리 어릴때는 그렇게까지는 안됐어요. 요즘은 참 그 조심하면서 살아야돼. 절대 마음놓고 살 그런 시대가 아니라. 그러니까 세상이 그렇게 甚可怖畏여. 심히 가히 두렵고 두려운 세상이다.
그 세상이 참 마음놓고 편안하게 비록 뭐 좁은 집에서 좀 부족하게 먹고 절약하면서 살더라도 서로가 이제 사회풍토가 그저 편안하고 아무리 밤거리라도 또 그 뭐 학교에 어린 아이들은 부모가 따라가지 아니하면 겁이 나서 도저히 마음이 안놓여서 꼭 그 교문앞까지 데려다주고 기다렸다가 데리고 와야하는 이런 세상이 돼버렸으니, 정말 두렵고 두려운 세상이 되버린 거야. 마음이 안놓이잖아. 계속 납치해가고 납치해가고 공갈전화하고 그래가지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 그 어린 불쌍한 생명을 갖다가 사정없이 해치기도 하고, 아~ 어떻게 그래 되버렸는지 알수가 없어요. 참
그런 상황들을요. 이렇게 그려놨는데 참 어쩌면 이렇게도 참 여실(如實)하게 말세의 인간상황을 그려놨는지.
毒害火災로 衆難非一이러라
아주 독하고 해로운 그런 그 火災로써 아주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이 난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 하나가 아니더라.
112 是時宅主 在門外立 聞有人言 汝諸子等 先因遊戱 來入此宅
시시택주 재문외립 문유인언 여제자등 선인유희 내입차택
稚小無知 歡娛樂著
치소무지 환오락착
是時宅主가 在門外立이러니
그때 宅主가 어디 잠깐 나갔었다 그랬죠. 未久之間에 어디 가까이 집을 나갔다가 불이 타가지고 그런 상황이 된것을 이제 집주인이 문 밖에서 서있었다 말이여. 그러니까
聞有人言하대 汝諸子等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니까 당신의 여러 아들들이
先因遊戱하야 來入此宅이나
먼저 그 아이들이 뛰놀고 하는 것을 좋아해가지고서, 그것으로 인해서 집안에서 뛰어놀고 있다 말이여. 저렇게 불나가지고 있고 그 속에는 온갖 악귀, 독충 뭐 이런 짐승, 나쁜 짐승들이 그런 것들이 들끓는 그 속에 애들이 있다 이 말이야.
稚小無知하야
어리고 작아가지고 無知해. 그런 상황들을 도대체 모르고 뭐 짐승들이 나와가지고 지 잡아먹을건지 뭔지도 모르는 거야. 사탕 몇 개주고 애들 차 태워주고 끌고가면 그거 뭐 그냥 끌려가는 거라. 稚小無知야. 애들은 모르잖아요.
歡娛樂著이라하야늘
아주 뭐 좋아해가지고, 그저 그 지 입에 맞는 무슨 그런 그 사탕이나 좋은거 주면은 뭐 그걸로 꼬잖아요. 그러면 거기에 집착을하거늘
113 長者聞已 警入火宅 方宜救濟 令無燒害 告喩諸子 說衆患難
장자문이 경입화택 방의구제 영무소해 고유제자 설중환난
惡鬼毒蟲 災火蔓延 衆苦次第 相續不絶 毒蛇蚖蝮 及諸夜叉
악귀독충 재화만연 중고차제 상속부절 독사원복 급제야차
鳩槃茶鬼 野干狐拘 鵰鷲鴟梟 百足之屬 飢渴惱急 甚可怖畏
구반다귀 야간호구 조취치효 백족지속 기갈뇌급 심가포외
此苦難處 況復大火
차고난처 황부대화
長者聞已에 警入火宅하니라
장자가 이제 그런 상황이라고 하는 소리를 이제 옆집에서 누가 해줬어요. 그래 장자가 그 설명을 들으매 놀라서 그 불난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게 다 지금 부처님이 중생들을 생각한 그런 상황이고 그래서 이제 부처님은 중생들을 지혜의 가르침으로 이끌어서 모두 그런 어떤 상황에서 빠져 나오도록하는 그런 그 이야기죠.
方宜救濟하야 令無燒害호리라하고
마땅한 방편으로써, 방편에 마땅함으로써 救濟를 해가지고서 그들을 아무것도 타거나 뭐 상처받고하는 그런 그 손해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되겠다. 이렇게하고는
告喩諸子하야 說衆患難하대
여러 아들들에게 알리는 거여. 그리고 이제“아 여기는 불도 타고 말이야. 나쁜 짐승들도 많고 독충, 독사 뭐 소래기 무슨 뭐 그런 온갖 나쁜 짐승, 벌레들도 많다.”이런 이야기를 온갖 衆患難을 설명하대
惡鬼毒蟲과 災火蔓延하며 衆苦次第로 相續不絶하며
惡鬼毒蟲과 災火가 蔓延하며 온갖 고통들이 순서대로 차례대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뭐 불만꺼지면 다인줄 아느냐? 그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무슨 나쁜 짐승이 한 마리가 뭐 지나갔다하면 계속 끝도 없이 쫓아온다 이거여.
毒蛇蚖蝮과 及諸夜叉와
독사와 무슨 蚖蝮 이것도 살무사, 능구렁이 이런것들과 여러 야차
鳩槃茶鬼와 野干狐拘와
그 다음에 구반다 귀신과 野干 여우죠. 그리고 狐拘 뭐 야호, 개 이런것들과
鵰鷲鴟梟와 百足之屬이
이건 부엉이, 소래기, 올빼미 뭐 이런것. 백 가지의 발이 있는 그런 그 물건들이
飢渴惱急으로 甚可怖畏어든
아주 거기다 또 이것들이 본래 성질도 사나운데다가 또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고 하니까 더 성질이 사나워져가지고 급하다 이거야. 급하므로 그 사정없이 날뛰니까 얼마나 두렵고 두렵습니까? 매우 가히 怖畏 두렵거늘
此苦難處에 況復大火리요
이 고난한 곳에 하물며 다시 큰 불이 난것이리요.
114 諸子無知 雖聞父誨 猶故樂著 嬉戱不已
제자무지 수문부회 유고락착 희희불이
諸子無知하야 雖聞父誨나
여러 아들들은 無知해가지고서 비록 아버지가 가르침을,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기는 들었으나
猶故樂著하야
아버지는 뭐 혼자 이야기하라 하고 나는 내대로 논다 하고, 애들 뭐 즐겁게 노는데 요즘 뭐 그 저저 컴퓨터, 게임기 빠지면은 아버지가 뭐라하든, 아버지가 밖에서 들어왔든 나왔든 뭐 손님이 왔든 사정없이 지 그것만 빠져가지고 노는 거야. 猶故樂著이라. 아버지가 뭐라해도 귀에 안들어가는 거라.
오히려 짐짓 즐겁게 집착을 해서
嬉戱不已어늘
아주 뭐 거기에 재미를 느껴가지고 그만둘 줄을 모르더라.
115 是時長者 而作是念 諸子如此 益我愁惱 今此舍宅 無一可樂
시시장자 이작시념 제자여차 익아수뇌 금차사택 무일가락
而諸子等 耽湎嬉戱 不受我敎 將爲火害
이제자등 탐면희희 불수아교 장위화해
是時長者가 而作是念하대
그때 장자가 이러한 생각을 했다.
諸子如此하니 益我愁惱로다
우리 여러 아들들이 이와 같은 상황이니 그대로두면 나의 그 근심을 더욱더 증폭시키는 일이다.
今此舍宅이 無一可樂이어늘
이 집에는 하나도 즐거울 것이 없거늘
而諸子等이 耽湎嬉戱하고
諸子等이 거기에 빠져가지고 耽하고 빠져가지고 즐겁게 희희닥거리고 놀고
不受我敎하니 將爲火害로다
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를 안해. 그러니 장차 불의 손해에, 피해에 당하게 된다. 불의 피해를 당하게 된다.
116 卽便思惟 設諸方便 告諸子等 我有種種 珍玩之具 妙寶好車
즉변사유 설제방편 고제자등 아유종종 진완지구 묘보호거
羊車鹿車 大牛之車 今在門外 汝等出來 吾爲汝等 造作此車
양거녹거 대우지거 금재문외 여등출래 오위여등 조작차거
隨意所樂 可以遊戱
수의소락 가이유희
卽便思惟하대 設諸方便호리라하고
곧 생각하기를 여러 가지 방편을 내가 베풀어야 되겠다. 그대로 바로 일러줘가지고는 도저히 안되겠다. 아들 들을라고 안하니까. 그래서 방편이 나오게 된거에요. 불교의 방편이 나오게 된게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중생들은 근기가 하열하기 때문에 바로 아주 수준높은 소리, 성인의 진실한 말씀을 이야기하면 안되니까. 뭐 어린아이들에게 사탕을 주어서 유괴할 때 꼬듯이 그렇게 중생을 유괴를 하는거요. 전부 방편을가지고 이제 전부 어지간한 불자들은 거의 사탕 때문에 유괴당해서 끌려가고 있는거지. 사실은 알고보면은
告諸子等하대 我有種種珍玩之具에 妙寶好車인
여러 아들들에게 이야기하대 나에게 가지가지 아주 좋은 그런 그 장난감에 아주 아름답고 보배로 장식한 그런 그 수레가 있다. 그런게 그 수레는
羊車鹿車와 大牛之車가
羊車 鹿車 牛車다. 大牛가 아니에요. 사실은, 牛車지. 그런데 大牛는 뒤에 나오죠. 물론 큰 소가 끄는 수레를 주긴 주는데, 어쨌든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 그런걸 평소에 애들이 장난감으로 좋아하잖아요. 요즘 또 자동차, 비행기 뭐 배 이런거 장난감 얼마나 아이들이 좋아합니까? 어쩌면 그런걸 탁 이렇게 부처님 말씀이 이 시대에 아이들의 성향까지도 다 이렇게 살펴가지고『법화경』을 설해놓은것 같에요.
다른 장난감도 얼마든지 있을수 있는데 어쩌면 그렇게 요즘 아이들도 좋아하는 그 자동차 무슨 뭐 탈거리 그런걸 가지고 이렇게 비유를 들었을까? 아들을 유혹을 했을까? 참 신기합니다. 이『법화경』은요. 우리가 공부하면 할수록 참으로 신기한 대목들이 많아요.
今在門外하니 汝等出來하라
지금 문 밖에 있으니 너희들은 빨리 나오너라 말이야.
吾爲汝等하야 造作此車호니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이 수레를 만들어 놨다. 그러니까
隨意所樂하야 可以遊戱니라
너희들 마음대로 즐길대로 즐겨서 가이 마음껏 遊戱하고 뛰어놀지니라.
그렇게하니까
117 諸子聞說 如此諸車 卽時奔競 馳走而出 到於空地 離諸苦難
제자문설 여차제거 즉시분경 치주이출 도어공지 이제고난
長者見子 得出火宅 住於四衢 坐師子座 而自慶言 我今快樂
장자견자 득출화택 주어사구 좌사자좌 이자경언 아금쾌락
諸子聞說 如此諸車하고
제자가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수레가 있다는 사실을 여러 아들들이 다 들었어요.‘야! 그 우리가 평소에 갖고 싶었던 수레다.’그래가지고는
卽時奔競하야 馳走而出일새
곧 바로 그 얘기를 듣자마자 그냥 다투어서 문밖에 나가가지고 그 수레를 서로 차지할려고 그렇게 뛰어나가는 거요. 막 그냥 달리면서 뛰어나갈새
到於空地하야 離諸苦難하니라
그 空地에 이르러서, 텅 빈 땅에 이르러서 여러 가지 고난을 다 떠났거늘.
空地라고 하는것도 이게 이제 빈 땅이라고 이렇게 돼있지만은 사실은 어떻게 의미하면은 空도리, 연기의 도리. 연기로 존재하기 때문에 근본은 공한것이다. 근본은 공한것인데 이렇게 얽히고 설켜가지고서 이렇게 우리들이 살고 누리는 이러한 현실이 존재한다.
이 이치알면요. 뭐 그렇게 아등바등 그렇게 끌어 모을려고도 안하고 그~ 억지로 되도 않는 무슨 뇌물써가지고 무슨 국회의원자리 해가지고, 오늘 아침에도 무슨 셋이 떨어졌드만... 그런 일도 안하고 그래요. 그 空地라는게 이게 자기 자신 관리하는데는 참~ 좋은 이치입니다. 그『반야심경』이라든지『금강경』이라든지 전부 空도리거든요. 공의 철학을 우리에게 숙지시키는 내용이『반야심경』이니『금강경』이니 하는 것입니다. 이 空地라는 거. 빈 마당이라고 그렇게 돼있지만은 속뜻은 그거에요. 세상은 전부 공하다. 뭐 잠깐 가져봤자 그거 뭐 다 떠나기 마련인것이고 높이 올라가면 내려오고 올라갔을때 그 뭐 권력행사해서 이것저것 걷어먹어봐야 그 다음에 큰 집에 가기 바쁘고 말이야.
전부 공아닙니까? 그것이 공도리에요. 전부가, 그런 사실을 사전에 알면은 그 부정하게 그리 안하지.‘내가 뭐 그렇게 굶어 죽기야 하겠나? 또 그 국민을 위해서 내가 봉사하다가 나중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었다하면 그것은 세상에 그런 영광이 어딨냐?’아 이렇게 생각할 줄 알아야지. 아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다가 굶어죽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거여? 어느 국민이 그런 그 저저저 임금을 굶어 죽이겠어요? 그런 임금을 굶어 죽이는 백성이 없어.
그런데 굶어 죽을까봐 그~ 저 부정하게 그냥 끌어모으고 끌어모으고 그런지. 나는 그거는 크게 문제 된다고 보기에는 그 보는게 아니라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아까 이야기했지만은 그 보통 서민들이 노력한데 반의 반 그 공 그 소득도 안 돌아온다니까. 그 전부 그렇게 노력안하고 착취해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반이 안 돌아오는거요. 그게 문제에요. 그 여파, 서민들에게 끼치는 그 여파가 크기 때문에 그게 크게 잘못된거죠.
그래서 이제 자기 자신 관리하는데는 이 공도리가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뭐라고? 離諸苦難이라잖아. 자기의 고통과 자기의 어려움을 떠나는 데는 空이라고 하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만치 좋은게 없어요. 이게 최고 좋은 약입니다. 그래서 공의 이치를 설하는『금강경』이 소의경전으로 돼있는거죠. 소의경전으로 돼있는거야.
그래서 이러한 이치로써 일단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정신차리게 해서 평정을 찾게되면은 그 다음에는 이제 순리대로 살 수 있는거지. 자기 分따라서 살게되고, 순리대로 살게되고 순리대로 분따라서 살 줄 아는 그 사람이 현명한 삶을 사는거여. 그래 공지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 離諸苦難을 하는 것은 자기 개인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은 공하다. 공에서 출발해서 잠깐 인연의 힘에 의해서 이렇게 있다가 결국 공으로 돌아간다. 근본도 공이요. 결론도 공이다. 이렇게 알면은 크게 인생에 대해서 그렇게 실수없이 잘못됨이없이 그렇게 이제 살 수가 있습니다.
뭐 자기것 나간들 들어온들, 들어와도 뭐 그렇게 도취할 까닭도 없고 나가도 그렇게 뭐 잠좀 못 이룰 정도로 그렇게 섭섭하게 생각할 까닭이 없는거요. 왜? 다 인연따라서 그렇게 돌아가는거니까.
우리 불자들은 그런 이치를 마음에 크게 심사숙고하지는 안했다하더라도 자꾸 귀동냥이라도 많이 해놔가지고 그게 그래도 간혹 한 번씩 약효를 발휘한다니까. 그게 어딘데 큰~ 소득 아닙니까? 자꾸 귀동냥이라도 많이 하는거요. 그래놓으면 이제 한 번도 입에도 안 담았는데 아 옆에 친구가 어려움을 딱 당했다하면은 자기도 모르게 법문이 술술술 나온다.“아 그거 공이야. 아 인연도리로 왔다 갔다 하는건데 너무 그렇게 괴로워마라고”가르치지도 않은데 언제 법문까지 할 줄 알어. 그래 귀동냥 많이 할 필요가 있다니까.
그 참 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하나하나 마음속에 그렇게 들어서 심어지는 그 힘도 대단해요. 그 물은 다 새나가는데 콩나물은 자라는 거 보면 참 신기하죠? 허허 그런 이치라.
長者見子 得出火宅하야
장자가 그 말을 듣고는, 이제 空地에 떡 나와있잖아요. 그리고 고통에서 다 이제 벗어난거지. 장자가 아들들이 火宅에서 나온 것을 딱 보고
住於四衢하고 坐師子座하야
네 거리에 딱 이렇게 머물러 있는 거야. 그래서 師子座에 앉아가지고서
而自慶言하대 我今快樂이로다
아주 경사스러워서, 아이들이 뭐 어쨌든 밖으로 다 나와가지고 그 고통에서부터 벗어났으니까 아무 뭐 다친데도 없고 어려움도 없고 그렇게 해가지고, 납치됐다가 풀려난거와 마찬가지지. 그때 부모가 얼마나 경사스럽겠어요? 而自慶言이여. 스스로 경사스러워서 말을 하대 나는 지금 즐겁다 말이여. 快樂하다. 너무 너무 즐겁고 환희롭다.
그 예를 들어서 어린 아이가 납치당했다가 그 어떻게 풀려나면 얼마나 부모가 기쁘겠어요? 이루 말할 수가 없는거죠 뭐. 아이 낳을때보다 더 기쁘다 뭐. 실지로 그래요. 얼마나 노심초사하면서 마음 태웠겠어요?
118 此諸子等 生育甚難 愚小無知 而入險宅 多諸毒蟲 魑魅可畏
차제자등 생육심난 우소무지 이입험택 다제독충 이매가외
大火猛焰 四面俱起 而此諸子 貪着嬉戱 我已救之 令得脫難
대화맹염 사면구기 이차제자 탐착희희 아이구지 영득탈난
是故諸人 我今快樂
시고제인 아금쾌락
此諸子等이 生育甚難이어늘
이 여러 아들들이 낳아서 키우는데 심히 어렵거늘 그런데
愚小無知하야 而入險宅하니
어리석고 어려서 無知해. 그래서 험한 집에 들어가서 있었다 말이여.
多諸毒蟲하고 魑魅可畏며
독충들이 많고 아주 이건 이제 뭐 귀신들이여. 그것들이 너무 두려운 그런 상황이다.
大火猛焰이 四面俱起어늘
큰 불이 아주 맹렬하게 타올라 사면에서 함께 일어나거늘
而此諸子는 貪着嬉戱일새
이 여러 아들들은 탐착하고 아주 즐거우라고 그렇게 했을새
我已救之하야 令得脫難케호니
내가 이미 그들들 구원해서 하여금 그들로 하여금 고난에서부터 벗어나도록 했으니
是故諸人아 我今快樂이로다
이런 까닭에 여러 사람들이여! 나는 너무너무 기쁘다. 잔치 벌려야 되겠다. 매일매일 축제다. 그만 그것만으로도 我今快樂이로다.
그~ 얼마나 부모된 입장에서 기쁘겠어요? 부처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우리 중생들을 어리석어서 고통받고 있고 어리석어서 나쁜짓하고 있고 어리석어서 나쁜짓하는 거요. 어리석어서 나쁜짓하고 그리고는 또 고통받고 그러면 나쁜짓하는 것을 우리는 이게 미운 뜻으로 이야기하지만은 그건 이제 불심은 아니에요. 그거는
진짜 불심은 측은한 마음으로 연민의 마음으로 그 대상이 누가 됐든지‘아이고 그거 높은 자리에 있다가 꺼드럭 꺼드럭 거리더니 잘됐다. 꼬시하다.’이게 아니에요. 불심이 아니에요. 그런 사람까지도 연민의 정으로써‘하~ 어쩌면 저렇게 어리석을까? 저렇게 어리석어가지고 크게 눈 앞에 그저 벼슬이나 무슨 정치나 권력이나 여기에만 눈 어두워가지고 세상, 인생의 이치를 몰랐으니 얼마나 그 참 불쌍하고 안타까운 노릇이냐?’이렇게 보는게 관세음보살의 마음이고 불심이에요. 진짜 불심이 있다면 그렇게 이제 봐줘야 됩니다. 연민의 마음으로 봐줘야 되요.
절대 아주 무슨 뭐 달다 꼬시다 이렇게 하면은 그건 우리 불심아닙니다. 불자의 마음 아니에요. 그래 이제 그런 어리석음에서 다 벗어났으니까 아버지된 입장에서는 아주 즐겁다. 이 말이여.
119 爾時諸子 知父安坐 皆詣父所 而白父言 願賜我等 三種寶車
이시제자 지부안좌 개예부소 이백부언 원사아등 삼종보거
如前所許 諸子出來 當以三車 隨汝所欲 今正是時 惟垂給與
여전소허 제자출래 당이삼거 수여소욕 금정시시 유수급여
爾時諸子가 知父安坐하고
그때 여러 아들들이 아버지가 편안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러니까 아이들은 수레준다니까 뛰어나왔는데 아버지는 저 불속에서 뛰어나온것만으로 좋아가지고 너무 너무 좋아가지고 그만 편안히 앉아가지고 내 할 일 다했다고 이렇게 앉아있는 거지. 그래서 아이들이
皆詣父所하야 而白父言하대
다 아버지가 있는 처소에 나아가서 아버지께 고해 말하대
願賜我等의 三種寶車를
원컨대 우리들에게 주십시오. 세 가지 보배로 만든 수레를 주십시오.
如前所許하소서 諸子出來하면
앞에서 말하였던 것처럼 허락하십시오. 주십시오. 여러 아이들이 밖으로 나오기만 할 것같으면
當以三車로 隨汝所欲이라하시더니
마땅히 세 가지 수레로써 너희들의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서 다 준다라고 하더니
今正是時라 惟垂給與하소서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때다. 오직 給與함을 드리우소서.
“제발 주십시오. 지금 줄 때입니다. 얼른 주세요. 아버지 주세요.”하고 막 그냥 매달리면서 조르는 거라. 그 왜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얼머나 귀엽고 좋겠나?“소가 끄는 수레 준다고 했으니 얼른 주십시오.”하고 애들이 조르는데
120 長者大富 庫藏衆多 金銀琉璃 硨磲瑪瑙 以衆寶物 造諸大車
장자대부 고장중다 금은유리 자거마노 이중보물 조제대거
莊校嚴飾 周匝欄楯 四面懸鈴 金繩交絡 眞珠羅網 張施其上
장교엄식 주잡난순 사면현령 금승교락 진주라망 장시기상
金華諸瓔 處處垂下 衆綵雜飾 周匝圍繞 柔軟繒纊 以爲茵褥
금화제영 처처수하 중채잡식 주잡위요 유연증광 이위인욕
上妙細氈 價値千億
상묘세전 가치천억
長者大富하야 庫藏衆多하야
장자는 큰~ 부자야. 창고에는 衆多. 庫藏인 창고에는 아주 여러 가지 많고 많은
金銀琉璃와 硨磲瑪瑙어든
金銀琉璃 硨磲瑪瑙 칠보죠. 어 이런것이 꽉 차있어. 그리고
以衆寶物로 造諸大車하니
여러 가지 또 보물로써 큰 수레를 만들어 놨어. 아이들은 그저 상상도 못하던 그런 수레를 만들었으니
莊校嚴飾하고 周匝欄楯에
아주 돌아가면서 뭐 여러 가지 보물로써 장식을 잘하고 휘장을 치고 꾸미고 그렇게 하는거요. 돌아가면서 난간이 있어. 아주 큰 누각에 난간이 있는것같은 그런 식이죠. 돌아가면서 난간이 있고
四面懸鈴하고 金繩交絡하며
사면에는 그냥 방울을 달아가지고 방울소리가, 아주 아름다운 방울소리가 그냥 나고 금으로 만든 그 밧줄. 금으로 만든 밧줄이 여기저기 걸쳐져가지고서 그쪽으로 뭐 떨어지지 않도록 그렇게 이제 줄을 쳐놨죠. 그렇게하고 거기다 또
眞珠羅網으로 張施其上하며
진주로 짠 그런 그 그물을 위에다 탁 덮었어. 그 수레위에다가 아주 아름답게 순전히 진주로만 짠 그런 그 그물을 그 위에다 수레위에다 착 이렇게 펼쳤드라 이 말이여. 그리고
金華諸瓔이 處處垂下하며
금빛나는 금으로 만든 그런 여러 가지 보배들 그런 것들이 그만 곳곳에 드리워져 있어. 금으로 만든 꽃과 여러 가지 구슬들이 곳곳에 드리워져 있어.
그 수레를 지금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게 大車十二德이라고 해서 큰~ 수레의 열두 가지 덕을 이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衆綵雜飾이 周匝圍繞하고
온갖 그런 그 오색비단, 여러 가지 그 비단과 뭐 한 가지 색이면 또 그 저기 재미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雜飾이여. 온갖 여러 가지 비단으로써 여러 가지로 잘 꾸며가지고 두루두루 이리 둘러치고 저리 둘러쳐서
柔軟繒纊으로 以爲茵褥하며
아주 비단이 얼마나 매끄럽고 매끄럽습니까? 부드럽고 솜처럼 푹신푹신해. 그것으로써 밑에 요입니다. 茵褥이라고 하는 것은 깔개를 해가지고서 거기서 뭐 눕고 앉고 뭐 서고 그렇게 이제 깔아놨다.
上妙細氈이 價値千億이라
아주 최상의 카펫이여. 細氈이라고 아주 보드라운 카펫이 천억이나 나가는 그런 가치가 있는 그런 그 카펫을 착 깔아놓고
이제 이런 것들도 그 지역 인도나 뭐 저기 파키스탄이나 이런데 그 사람들이 그 가정에서 정말 값지고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것들이 표현이 잘 되었잖아요. 뭐 딸을 하나 낳으면 그때 낳은 후에부터 카펫을 짜기 시작해가지고 20년동안 짜가지고 세상에 최고로 좋은 카펫을 짜가지고 시집갈 때 보물로 같이 이제 보낸다고 지금 그런 풍속이 있죠. 그런 등등 이야기도 밑에 깔려 있습니다.
121 鮮白淨潔 以覆其上 有大白牛 肥壯多力 形體姝好 以駕寶車
선백정결 이부기상 유대백우 비장다력 형체주호 이가보거
多諸儐從 而侍衛之 以是妙車 等賜諸子
다제빈종 이시위지 이시묘거 등사제자
鮮白淨潔로 以覆其上하며
아주 깨끗하고 희고 청정하고 맑은 것으로써 그 위에 이제 덮고
有大白牛하대 肥壯多力하며
크고 흰 색깔이 하~ 얀 살이 아주 비등비등 찌고 그래 아주 살이 씩씩하고 젊고 힘이 좋은 그런 큰~ 흰 소가 있어가지고서
形體姝好에 以駕寶車하며
아주 잘 생겼어. 姝好라고 하는 것은 아주 예쁘게 잘 생겼어. 형체가, 그래서 그런 소가 寶車를 멍에하는 거야. 수레를 끈다. 보배로 된 수레를 끌며
多諸儐從하야 而侍衛之어든
거기다가 또 시위하면서 따르는 종들도 많아. 하인들이 그저 그 수레를 많이 에워싸면서 혹시 뭐 떨어질게 있을까? 잘못될까? 그걸 이제 주위에 따르는 거죠. 하면서 시위를 하거든
以是妙車로 等賜諸子하신대
이와 같은 아름다운 수레로써 평등하게 여러 아들들에게 다 한 대씩 주는거요. 그만
한 대의 가치만 해도 수억만 금이 나가는 그런 그 어마어마한 그런 수레인데 그걸 전부 아들들에게 다 줘버려. 500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다 줘버려.
122 諸子是時 歡喜踊躍 乘是寶車 遊於四方 嬉戲快樂 自在無礙
제자시시 환희용약 승시보거 유어사방 희희쾌락 자재무애
諸子是時에 歡喜踊躍하야
여러 아들들이 그때에 너무너무 즐겁고 환희심이 나는 거죠.
이건 이제 다 뒤에다 서로 배대하는 이야기가 있지만은 羊車, 鹿車, 牛車는 성문, 연각, 보살의 가르침이 우리들 근기에는 맞다고해서 일차적으로 방편으로 가르쳤지만은 결국 그거는 존재하지 않는것이고 실지로 부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佛乘 一佛乘사상‘모든 사람이 근본적으로 부처’라고 하는 사실에 눈을 띄워주는 그런 그 가르침이 부처님이 최후로 우리 중생들에게 일러주고자 하는 내용이다 이 말이여. 그걸 이제 이렇게 비유한거에요.
羊車, 鹿車, 牛車를 준다고 해놓고는 그건 없고 간데 온데 없고 大白牛車 큰~ 소가 끄는 수레가 있는데 그 수레는 여러 가지로 아주 호화찬란하게 보물로 장식이 잘 돼있더라 라고 하는 그런 그 수레이야기인데 이것은 결국 뭡니까? 우리의 본성은 그 속속들이 알고 보면은 전부 부처의 속성을, 온갖 넓고 큰 사무량심(四無量心)과 열 가지 힘과 뭐 석가모니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그런 모든 위대한 인격으로써의 조건을 우리도 다 갖추고 있는데 그것을 이제 거기에 눈을 뜨고 밖으로 드러내서 활용할줄 아는것. 뭐 이것만 우리에게 문제라면 문제거든요. 그래서 그런 내용을 비유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어떤 특정인의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다 갖추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모든 아들들 오백명이 됐든 오만명이 됐든 똑같이 그 수레를 나누어줬다 라고 하는 내용은 모든 사람은 다 부처님의 능력과 부처님의 무한한 생명과 부처님의 무한한 지혜 광명을 다 지니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을 일깨워 주는거죠. 그 이야기입니다.
諸子是時에 歡喜踊躍하고
乘是寶車하고 遊於四方하며
이 보배로 된 수레에 올라타서 四方으로 노닌다.
부처가 됐다. 당당하게 나는 부처다. 이렇게해서 아무것으로도 겁날것도 없고 당당하게 생긴모습 그대로 우리 마음속에는 여기에서 설명한 그 아주 휘황찬란한 보물수레보다도 몇천 배, 만 배로 우리의 마음의 보배는 그렇게 참 불가사의하고 심심미묘한 것이니까. 이 뭐 보배수레로 휘황찬란하게 설명했지만은, 이까짓거 우리 마음의 보배에다 대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실은 알고보면은, 그렇게 알아야 됩니다.
아~ 수레가 대단하다고 그래서 장식한 거 뭐 한 자 뜯어보면서 집에 무슨 농에 요런 보물이 하나씩 하나씩 착착 쌓이는 것처럼 그렇게 느낄 일이 아니라 정말 우리 마음의 보배는 그것보다도 천 배, 만 배 더 수승하고 정말 불가사의한 그런 것이 내재해 있다. 이걸 이제 우리가 마음 속에 새겨야 되는거죠. 이것을 사방에 노니면서
嬉戲快樂하야 自在無礙하더라
아주 즐겁게 노닐면서 快樂해 해. 아주 자재무애하게 아무것으로도 걸림이 없더라.
그 다음에 이제 합비라고 해서, 합비는 이제 비유고 비유 사이에 내가 법을 이제 사이사이에 배대를 해서 맞춰가지고 그 부처님께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그 내용을 사이사이에 설명했어요. 경전에서는 여기서부터 합비라. 비유하고 법하고 합해가지고 나타내는거여. 그게 이제
123 告舍利弗 我亦如是 衆聖中尊 世間之父
고사리불 아역여시 중성중존 세간지부
告舍利弗하노니 我亦如是하야
사리불에게 고하노니 나도 또한 이와 같아서. 그 불난 집의 長者 아버지와 같아서
衆聖中尊이며 世間之父라
온갖 성인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사람이다 말이야. 그래 聖中聖이잖아요? 부처님이, 聖中聖 성인 가운데 성인이라. 이 세상의 아버지다 말이야.
124 一切衆生 皆是吾子 深著世樂 無有慧心 三界無安 猶如火宅
일체중생 개시오자 심착세락 무유혜심 삼계무안 유여화택
衆苦充滿 甚可怖畏
중고충만 심가포외
一切衆生이 皆是吾子어늘
일체중생은 전부 내 자식이라. 전부 내 자식처럼 나는 그렇게 하나하나 애착과 사랑을 가지고 그렇게 생각한다 이거죠.
深著世樂하야 無有慧心하며
그런데 우리 아들들이, 자식들이 그만 세상의 樂에 너무 깊이 집착해 있어. 그래서 지혜의 마음이 너무 없다. 이게 중요한 거죠. 우리가 참 끊임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으나 정말 우리들의 마음에서 지혜의 광명은 언제 발할지 이제 그게 문제에요. 世樂에 집착을 해가지고서 지혜의 마음이 없으며
三界無安이 猶如火宅하며
삼계가 편안하지 아니한 것이 마치 불난 집과 같다.
衆苦充滿하니 甚可怖畏라
여러 가지 고통이 가득 차서 심히 가히 두렵고 두렵다 말이여.
이 세상이 그렇잖아요. 성인이 세상을 보는 것은 훨씬 더 합니다. 훨씬 더 그렇게 그 가슴 아프게 봐요. 세상을, 어리석은 사람들일수록 세상을 그 말하자면은 살만한 곳으로 그렇게 보고 정신없이 그 좋아서 날뛰는 것은 아주 단순한 단세포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그렇게 단순하게 좋게만 보는 거죠. 그 고통같은 거 그런거 염려 안하는 거여. 그래가지고 당장 눈 앞의 것만 생각하고 그렇게 사는 거지.
125 常有生老病死憂患 如是等火 熾然不息
상유생로병사우환 여시등화 치연불식
常有生老病死憂患하야
항상 生老病死憂患이 있어.
生老病死 나한테 없으면 왜 나한테 없겠어요? 다 있는데 째깍째깍 째깍째깍 우리의 그 수명이 똑 똑 똑 똑 똑 이렇게 순간 순간 잘라져 떨어져 나가건만은, 이 순간도 한 토막 한 토막 착착 잘라져 나가. 우리의 수명의 길이는 한계가 있는데 한 토막 한 토막씩 일 초 일 초마다 잘라져 나가는 거야. 한 번 잘라져 나간 그 시간은 다시는 붙지가 안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태연자연하게 아무 그냥 탈없이 무심하게 이렇게 사는 거지.
그래 생 노 병 사 우 환이 항상 있어서
如是等火가 熾然不息하니라
이와 같은 시간의 불이라고 하는 것이 아주 활활 타면서 쉬지를 않는다 이 말이지.
성인이 보는 것하고 우리가 어리석어서 무심하게 인생무상을 그냥‘무상한 갑다.’그저 그렇게 한 번 느끼고 말고 아주 가까운 사람이 또 무상을 겪으면은 잠깐 이제 두려운 생각이 나도 뭐 한 밤 자고 나면 또 잊어버리고 아무렇지도 안해. 누구 가까운 사람이 돌아갔다라고 하는 소식들으면 그 순간 잠깐‘아이구 인생이 참 무상하다. 왜 그리 빨리 갔는고?’이러고는 몇 번 지나면 그냥 또 금방 까먹어버린다.
126 如來已離 三界火宅 寂然閑居 安處林野 今此三界 皆是我有
여래이리 삼계화택 적연한거 안처임야 금차삼계 개시아유
其中衆生 悉是吾子 而今此處 多諸患難 唯我一人 能爲救護
기중중생 실시오자 이금차처 다제환란 유아일인 능위구호
如來已離 三界火宅하고
여래는 이미 삼계화택을 다 떠났고
寂然閑居하야 安處林野호니
고요하게 한가하게 居해서 林野에 편안하게 處했으니
今此三界가 皆是我有요
이 세상이 三界 욕계, 색계, 무색계 이 세상을 말하는 거죠. 이 세상이 전부 나의 소유야.
이게 뭐 등기가 누구 앞으로 돼있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전부 부처님은 자비심으로 보기 때문에 이 지구 땅덩어리를 당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지구속에 사는 우리 중생들을 전부 당신의 사랑스러운 자식이라고 그렇게 보는거요. 그래서 성인의 마음이 그거하고 우리하고 차이점이 바로 그거죠.
其中衆生은 悉是吾子어늘
전부 내 아들이다. 내 자식이다.
而今此處에 多諸患難이라
지금 여기 온갖 환란이 들끓고 있어.
唯我一人이 能爲救護니라
오직 나 한 사람이 능히 救護할 사람이다 이 말이여.
내 제자들이 많이 있지만 그 사람들은 전부 성문, 연각, 아라한이야. 그저 자기 그 열반 얻어가지고 지 혼자 편안한 것까지는 그런대로 됐지만은, 다른 사람들을 전부 구호활동으로 나서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 내 혼자 나서서 겨우 이런 일을 하고 있다. 능히 救護니라. 救護함이 되느니라.
127 雖復敎詔 而不信受 於諸欲染 貪著深故
수부교소 이불신수 어제욕염 탐착심고
雖復敎詔나 而不信受는
비록 다시 가르치고 또 가르치나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것은
於諸欲染에 貪著深故일새니라
온갖 욕심과 그 욕심의 물들림에 탐착하는 마음이 깊은 까닭이니라. 그래서
128 以是方便 爲說三乘 令諸衆生 知三界苦 開示演說 出世間道
이시방편 위설삼승 영제중생 지삼계고 개시연설 출세간도
以是方便으로 爲說三乘하야
방편으로써 위하여 三乘을 설해서
작은 수준 낮은 이야기를 한거죠. 수준낮은 이야기 그러니까 초등학교 과정, 중등학교 과정, 고등학교 과정 이렇게 이제 그 과정을 이야기를 하는거요. 그런데 사실은 대학과정이 말하자면 부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마지막 최후의 가르침인데, 아 이 당장에 대학과정을 가르치면은 이게 씨가 먹히지가 않죠. 이해를 못하니까 그래서 할 수없이 이제 초등학교 과정 聲聞 무슨 사성제(四聖諦)니, 팔정도(八正道)니 뭐 37조도품(助道品)이니 그런걸 이야기를 하고 또 이제 중등과정은 이제 인연(因緣)이다 연기(緣起)다 공(空)이다 무아(無我)다 하는 그런거 가르치는 거여. 그런거만 배워도 상당해요. 사실은, 그것만 배워도
근데 그것은 불교의 본의는 아니다 이거지. 부처님의 본래의 뜻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그 말하자면 보살승(菩薩乘)을 또 그 위에다가 해가지고 보살승은 이제 남을 배려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거요. 그래서 성문, 연각은 二乘까지는 자기, 자기만 이롭게 하는거요. 자리행(自利行)이라. 그 다음에 보살이 되면 이타(利他)야. 남을 이롭게 하는거. 그 다음에 부처는 자리와 이타가 완전무결하게 구족된거여. 나도 깨닫고 남도 깨닫게하는 그런 그 自利利他가 완전 구족한 것을 부처의 경지라고 하고, 보살은 利他를 위주로 해요. 利他行이 어려운 거요. 사실은,
여기 우리 모두 자기를 위한 공부는 잘하죠. 자기를 위한 참선도 잘해요. 자기를 위한 기도도 잘해요. 하도 답답하니까 성철스님이“남을 위해 기도합시다.”이렇게까지 가르치는 거야. 남을 위해 기도해도요. 기도 백 날 해봐야 남을 위해서 밥 한 그릇 주는것만 가치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자신만 이로운 거야. 남을 위해서 위한다고 기도해도 구체적으로 남을 위해서 밥 한 그릇 주는게 그게 더 공덕이 커요. 사실은
객관적으로 보라고‘하~ 남을 위해서 기도한다. 기도한다.’하고 어떤 사람은, 그런 사람이 백일 기도를 하고 있다 칩시다. 어떤 사람은 이거 보고는 배고픈 사람 밥 한 그릇 척 대접하고 잊어버리고 지나가는 거야. 객관적으로 볼때 그 사람이 공덕이 더 크고 행동이 더 훌륭한 거요. 남을 위해서 기도 백일하고 있는 것 보다도, 그래서 남을 위하는 보살행이 어렵다는 거요. 그래 보살행이 고등학교 과정이야. 聲聞 緣覺 남을 위해서 기도를 하든,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든 그러니까 기도 백날하고 참선 수십 년 한 사람이 남을 위해서 사실은 단돈 만 원 쓰기가 어려운거요. 맨날 자기만 위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그게 업이 됐기 때문에 남을 위하는 게 그래 어려운 거요. 그래 보살행, 보살행 하는게 바로 그겁니다. 어려운 거요. 그게
자기를 위한 것은 잘해요. 모두들, 아주 잘해요. 그러나 남을 위하는게 이게 이제 훨씬 더 수준높은 과정이고 훨씬 더 공덕도 많고 훌륭한 행위인데 그게 납득이 잘 안되니까 그래 이제 나중에 이제 聲聞다음에 緣覺, 緣覺 다음에 菩薩, 菩薩이 있고 그 다음에 菩薩위에 부처잖아요. 그래 聲聞, 緣覺, 菩薩을 三乘이라 부르고 그 다음에 佛乘을 一佛乘 이렇게 해서 부처의 삶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 이제 불승은 남을 위하고 자기를 위하는 데 전부 그 가운데 갖춰지는 거죠. 보살행의 첫째 조건이 뭡니까? 보시죠. 布施 베푸는 거. 그래서 三乘은 그것을 방편으로 말한거요. 방편으로 그 임시방편이죠. 임시방편으로 三乘을 설해서
令諸衆生으로 知三界苦케하고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삼계의 고통을 알게하고
開示演說 出世間道어든
開示하고 演說해서, 出世間道를 개시하고 연설했다.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 세상에 들어가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구제를 해야지. 세상에서 벗어나면 어쩌잔 말이요 그래. 그래 그걸 일단 이야기해야“하이고 내한테 딱 들어맞다.”해가지고 일단 거기에 혹 하는거지요. 그래서 출세간도를, 세상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개시하고 연설해주는 거에요. 그게 이제 방편이라. 그래서 이제 고통을 일단은 벗어나게 하는 거니까 그러니 그거는 정말 임시방편이지. 정말 부처님 마음은 아니거든요. 뭐 그렇게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만 이로워도 여러 사람에게 여러 사람에게 다 그렇게 되면 그것도 그런대로는 쓸만하지 않겠나? 이렇게 보는 거죠.
그런데 이제 초등학교 과정보다 더 밑에 과정이 또 있어요. 그건 이제 인천인과교(人天因果敎)라. 이렇게 하는데, 좋은 일하고 무슨 공덕지으면은 좋은 과보 받는다.‘사람으로 태어난다. 천상에 태어난다. 좋은 과보 받는다.’하는 거 이거는 이제 불교는 아니고 그래 세상의 가르침에도 있고 다른 종교에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건 이제 人天因果敎라 이렇게 합니다. 불교안에서 그 이야기 많이 하죠. 사실은, 아주 많이 합니다. 그거는 누구도 할 수 있어요. 세상에 이 안에 사는 사람은 그 이야기 다 할 줄 알아요. 불교 몰라도 할 줄 알고 다른 종교 믿는 사람도 할 줄 알고‘착한 일하면은 좋은 과보 받는다.’하는거
그래 불교는 이제 四聖諦, 八正道, 37祖道品 이런것에서부터 또 거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가면은 이제 因緣이다. 緣起다. 空이다. 無我다. 텅 비어서 공한것이다. 그런 이치를 이제 이야기하고 거기서 이제 한 단계 더 올라가면은 남을 배려하는 거, 남을 위해서 돕는 거, 봉사활동하는 거, 남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거, 헌신하는 거, 실지로 남을 위해서 하는 거. 자기 가족만을 위한 건 남이 아니에요. 그거는 자기 피붙이니까 그건 뭐 다른 짐승들도 다 하는데
미안한 말씀이지만 사실은 자기 가족만을 위한 것은 뭐 저기 저 다른 동물들 더 잘해요. 오히려 사람보다 더 잘합니다. 새 그거 새끼 낳아놓고 물어 나르는것 보세요. 얼마나 열심히 물어 나르는가? 거기 혹시 다른 거 딴 짐승이나 뱀이나 고양이나 옆에서 얼씬대봐요. 아~ 경계할라고 그거 자식보호할라고 새끼보호할라고 얼마나 짹짹거리고 야단법석을 떤다구요. 그렇게 아낀다구요. 자기 자식을, 사람보다 더 잘합니다. 그런건 오히려
자기 가족만을 위하는 것은 그거는 봉사가 아닙니다. 그거는 그 저기 저 희생이 아니고 그건 그저 자기 가족을 위한 것이죠. 어디까지나 자기를 위하는 것중에 하나야. 자기 어떤 그 육신의 일부니까, 자기 육신의 일부니까 자기 육신위하는 거지. 그래 진짜 위하는 것은 나하고 관계없는 사람 그 이제 요즘 뭐 급식활동도 많이 하고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그렇죠. 오래된 불자가 절을 돕는 것도 결국은 자기 피붙이위하는 거하고 별로 다를바 없어요. 불교 이외에다가 가서 봉사할줄 알아야 돼. 불교인이,
저 길가는 사람에게, 독거 노인들, 무의탁 노인들 무슨 뭐 소년 소녀 가장들 뭐 고통받는 사람들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리 세상이 발전해도 그게 늘 있는거요. 지구촌 전체로 따지면 더 말할것도 없이 많고 얼마나 많은지 말도 못하고
그래서 내가 가끔 말씀드리지만은 그 증엄보살은 교회가 없는 기독교인을 위해서 교회를 지어준 스님이여. 그게 이제 진짜 불심이거든요. 그래 보통 우리 불자들은 그게 이해가 안되는 거야.“아니 어떻게 스님이 교회인들을, 교인들을 위해서 그 교회를 지어주냐 말이야.”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할거 아니야. 그래 사람 소견이 이렇게 차이가 있는 거야. 그 스님은 진짜 불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네 종교, 내 종교 분별없이 그게 필요한 사람은 그게 필요한 사람은 교회도 지어주고
야~ 대단하잖아요. 이런건 우리가 귀로 한 번 듣기만 하는 것으로도 큰 공덕입니다. 스님이 교인들을 위해서 교회를 지어줬다 하는 이 사실 듣기만 해도 이건 큰~ 충격이여. 일종의 지진이 일어난거라. 우리 의식속에, 야~ 그게 진짜 불심이구나. 그게 보살심이구나. 그게 실지로 봉사구나 하는 것. 진짜 알짜배기 봉사는 그런 봉사여.
언제나 우리는 그런 마음을 쓸 수 있을까? 그런 큰~ 마음, 그런 진정한 보살의 마음을 쓸 수 있을까? 하는게 우리의 숙제라. 그 이제 자기만을 위해서 기도하던지, 남을 위해서 기도하던지, 자기 공부를 위해서 참선하던지 뭘하던지 하는 것은 그거는 어디까지나 소승이고 自利行이야. 자기만 이롭게 하는 거. 이제 일차적으로 우리가 그런 보살행이 안나오니까 일단은 이제 자꾸 이런 걸 이제 나만을 위해서라도, 내 가족만을 위해서라도 자꾸 대승경전을 접하다보면은 이런 소리도 듣게되고 차츰차츰 마음이 커지는 거야. 자꾸 커져가지고 아주 저 태평양 바다처럼 마음이 커지면은 뭐 그 증엄보살보다도 훨씬 더 큰~ 위대한 보살행을 할 수가 있는거지. 테레사수녀같은 사람들도 그 하나님의 존재에대해서는 상당히 죽을때까지 의심했어요. 그렇지만은 봉사활동은 그렇게 잘해가지고 성인대접 받잖아요.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정신은
그래도 여기 화택이야기같이 부정적인 것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는 그런 아름다운 그런 그 일들도 실제로 이제 많이 있어서 그래서 또 한뭉텅이 살만한 그런 내용들이 있죠.
그래서 삼승을 위해서 설해서 여러 중생들로 하여금 三界苦를 알게하고 세상에서, 세간에서 벗어나는 길을 開示해서 演說한다.
129 是諸子等 若心決定 具足三明 及六神通 有得緣覺 不退菩薩
시제자등 약심결정 구족삼명 급육신통 유득연각 불퇴보살
是諸子等이 若心決定하면
이 모든 아들들은 만약에 마음에 결정, 딱 이렇게 결정할 것 같으면
具足三明과 及六神通하야
三明과 그리고 六通을 具足해서
有得緣覺과 不退菩薩하리라
緣覺과 不退菩薩을 얻게 되리라. 물러서지 않는 보살을 이제 얻게 된다.
연각만 하더라도 이제 성문보다는 훨씬 단계가 높아요. 요건 공이니, 무아니, 연기니 하는 것을 아는 그 단계라고 해서 緣覺 인연의 도리를 깨달은 사람. 이래서 연각이라고 이렇게 하는 거요. 그리고 不退菩薩은 아주 초급보살이야. 초급보살이니까 더 이상 보살행에서 물러서지는 않는거라. 계속 보살행을 더 잘했으면 더 잘했지 이제 물러서지는 않을 정도로 된 초급보살 그걸 불퇴보살이라고 그렇게 하는 거요. 그런 단계에 오르게 한다.
오늘 좋은 날인데 그 내용은 그 좋은 내용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해놓고 보니까 별로 좋은 내용이 아니네요. 그 삼계화택이야기 그 삼계화택속에서 온갖 짐승들 뭐 독충들 또 큰 그런 벌레들 이런 것들이 들끓고 그게 전부 세상이라고, 세상의 현실이라고 그렇게 했고 또 다행이 또 이제 큰~ 수레, 좋은 수레 우리 마음의 보물을 표현한 큰 수레를 이제 이야기했고 그 다음에 여기『법화경』이 會三歸一이니까 三乘을 모아가지고 一乘 一佛乘으로 돌아가게 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래서 三乘과 一乘의 관계는 여기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이야기를 많이 아니할 수가 없어요.
이걸 이제 실천을 하느냐? 못 하느냐? 보살행을 이야기하면‘아이고 나는 보살행이야기를 들을때마다 영 송구스럽고 내가 못하기 때문에 뭐 영 뭐 앉아있는 자리가 무슨 바늘방석같고’이런 생각 느끼죠. 그런 걸 느껴야 돼요. 그래가지고 이제 지금은 못하더라도 언젠가 이제 그것이 씨앗이 되어가지고 아주 용기를 확 내가지고 시원스럽게‘까짓거 뭐 집에가서 먹을 것 있고 없고 그까짓거 상관없이 세상에 한 번 내가 크게 한 번 인심쓰자. 마음 한 번 쓰자하고’이런 큰 마음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내가 어떻게 하느냐?’하는 것 크게 갈등하지 마세요. 갈등하지 말고 일단 이치는 그런 것이다. 이치는 그렇고 나는 아직은 나니까 너무 갈등하지 말고 그대로 책장 넘어가버리세요. 넘어가버리면 다른 이야기가 또 나오니까 허허허허허 그렇게 하는거에요. 이런 이야기들을때마다 나 자신을 비춰서 생각해보면은 내 자신이 그렇지 못하니까 영 말하고도 부끄럽고 미안하고, 증엄스님 이야기할때마다 부끄러운 거요. 나는,
‘그 스님은 똑같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처님 법만나서 그렇게 훌륭하게 사는데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인가?’싶어가지고 부끄럽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는거지. 그렇다고 거기에만 이제 주저 앉아있을수만 없는거요. 그건 그렇고 또 어느날 우리도 마음이 툭~ 터지면 이제 그 이상으로 잘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이제 큰 마음을 가지시고 너무 불편해하지 마세요. 오늘 마음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들 많이 한것 같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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