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단월면 산음자연휴양림에 있는 ‘치유의 숲’.
바스락바스락. 발자국마다 낙엽 소리가 났다. 붉게 물든 숲길은 부드럽고 포근했다.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은 한 폭의 그림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다. 숲에서는 까마귀가 나직하게 울고 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는 평화로웠다.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고소하면서도 쌉싸래한 냄새가 났다. 잘 볶은 커피 향 같다. 젖은 낙엽 냄새, ‘만추(晩秋)의 향’이다.낙엽 밟는 소리에는 평소 자연에서 듣기 어려운 고주파가 있어 우울증 치료에 좋다고 한다. 낙엽과 흙의 향은 그 편안함으로 니치 향수로 자주 출시된다. 색채심리전문가들은 대지의 색을 담은 낙엽을 보고 있으면 좋았던 기억과 슬펐던 추억이 동시에 떠오른다고 했다. 이 색과 향과 소리는 첫눈이 오기 전인 지금 이 계절에만 경험할 수 있다.
◇영화인들이 숨겨놓은 ‘설매재’
양평 유명산의 ‘설매재’는 이런 로케이션 헌터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 중 하나다. 영화 ‘관상’과 ‘왕의 남자’ 등 수십편의 작품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영화 ‘관상’에서 기생 연홍(김혜수)이 초야에 숨어 지내는 관상쟁이 김내경(송강호)을 찾아가는 길, “공기 좋네, 경치 좋고”라고 말하는 드넓은 억새 언덕이 바로 이곳, 설매재 고갯길이다.
찾아가는 방법은 조금 어렵다. 먼저 설매재 자연휴양림을 내비게이션에 찍는다. 그 장소에 도착했을 무렵, 차에서 내리지 않고 배너미고개까지 조금 더 올라간다. 그러면 도로 왼쪽에 유명산 ATV오프로드 체험장이 나오고, 그 옆에 하얀 철문 뒤로 산을 향해 길이 나 있다. 차량 차단기가 있지만, 비상업적인 용도로 들어가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여기서부터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억새 언덕 위 김내경의 집이 보인다. 집 마당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근심이 사라진다. 인적이 드물어 억새풀 스치는 소리만 들리는 곳. ‘이런 절경을 영화 관계자들만 알았다니!’ 섭섭한 마음마저 든다.
설매재란, 눈이 많이 내려도 매화가 피어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때는 화전민이 땅을 일구기도 했고, 말을 키우던 마장도 있었다고 한다. 고개를 돌리면 대부산, 어비산이 사방에서 보인다. 눈길 닿는 곳 어디에도 현대 문명의 흔적은 없다. 사극 촬영지로 각광받는 이유다. 주변 경치를 벗 삼아 가을 정취를 즐기다 보니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다
설매재가 있는 이 동네는 ‘용천리 마을’로 불린다. 첫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세종 6년 사료에 실렸다.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따라 백현리, 편전리, 사천리, 갈현리를 합쳐 ‘용천리’라 정했다. 용문산 밑에 있는 사천리 일대라는 뜻이다.30대 초반, 전원생활을 원했던 김 감독은 서판교, 구리, 남양주 등에 있는 전원주택 부지들을 보다가 용천리의 위치와 경치에 끌려 이곳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다른 곳보다 거리상으로는 멀 수 있지만, 주말에 차가 거의 막히지 않아 접근성이 좋았어요. 사람들이 적어 평온을 찾기에도 좋았고요.”
◇예술이 꽃피는 도시, 양평
인구 12만명의 양평은 인구 대비 예술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양평으로 이주해 정착했다고 한다. 양평의 예술가들은 돌덩이에서 이미지를 발견하고, 바람에서도 표정을 읽어냈다. 양평에 산다는 것은 감각을 사는 일이다
예술인 인적 인프라를 가진 양평군은 2011년 양근리 일대 대지 8069㎡에 지상 3층 규모로 양평군립미술관을 개관했다. 입장료 1000원에 조각가 고정수, 근원 시리즈로 유명한 한국화가 이상찬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두 사람 다 양평에서 10년 이상 거주하며 소통한 원로 작가들이다. 이우환, 이응노, 유영국 등의 작품도 종종 전시된다.이곳만으로 아쉽다면 양평 지평면 해바라기 마을에 있는 ‘이재효 갤러리’도 괜찮다. 나무와 돌의 작가로 유명한 그의 작품들로 꾸며진 갤러리는 돌이 모빌처럼 매달린 입구부터 이국적이다. 스페인 남부의 한 저택에 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방탄소년단 RM이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이곳 티켓값에는 음료가 포함돼 있다. 갤러리 2층, 이 작가 작품들로 가득찬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해바라기 마을을 바라보는 풍경도 소담하다. 갤러리 곳곳에서 모과 말리는 풍경도 정겹다.
북한강이 보이는 ‘수수카페’
치유와 영감을 위한 ‘멍 때리기’ 중 가장 으뜸은 ‘물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양평군 양서면에 있는 ‘수수카페’로 가보자. 밥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신다는 김 감독이 양평 일대 카페 중 경치로는 최고로 꼽은 곳이다.
따뜻한 카푸치노를 주문해 강변 앞 소파에 앉았다. 저녁 강바람에 억새가 하늘거린다. 그 사이로 저녁노을로 물든 황금빛 하늘이 환히 열린다. 강바람이 강해지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실내로 들어가지 않는다. 순간 저녁 햇살에 강물이 반짝이는가 싶더니, 태양은 어느새 강물 속으로 숨어 버렸다.
걷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단월면 산음자연휴양림에 있는 ‘치유의 숲’.
바스락바스락. 발자국마다 낙엽 소리가 났다. 붉게 물든 숲길은 부드럽고 포근했다.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은 한 폭의 그림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다. 숲에서는 까마귀가 나직하게 울고 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는 평화로웠다.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고소하면서도 쌉싸래한 냄새가 났다. 잘 볶은 커피 향 같다. 젖은 낙엽 냄새, ‘만추(晩秋)의 향’이다.
낙엽 밟는 소리에는 평소 자연에서 듣기 어려운 고주파가 있어 우울증 치료에 좋다고 한다. 낙엽과 흙의 향은 그 편안함으로 니치 향수로 자주 출시된다. 색채심리전문가들은 대지의 색을 담은 낙엽을 보고 있으면 좋았던 기억과 슬펐던 추억이 동시에 떠오른다고 했다. 이 색과 향과 소리는 첫눈이 오기 전인 지금 이 계절에만 경험할 수 있다.
◇첫사랑의 아련함 ‘구둔역 폐역’
영화 속 주인공 느낌을 조금 더 느끼고 싶다면 양평군 지평면 ‘구둔역 폐역’으로 가보자. 영화 ‘건축학 개론’,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표지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구둔역은 1940년 중앙선에 설치한 역이다. 중앙선은 서울 청량리, 원주, 안동, 경주를 잇는 철도로 일제강점기 물자의 공급과 운반을 위해 일본이 설치했다. 철도 노선 변경으로 2012년 폐역이 됐다.
역 건물에는 손님이 열차를 기다리는 ‘대합실’과 역무원이 일을 보는 ‘역무실’이 있다. 역 건물의 지붕은 책을 엎어 놓은 모양이다. 철도 쪽 대합실 출입구에는 비와 햇빛을 가리는 지붕이 설치돼 있다. 일제강점기 철도 역사(驛舍) 건축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인지 레트로한 느낌이다. 버려진 폐역이 주는 쓸쓸함과 고독함은 첫사랑처럼 아련하다.
현재 역사는 12월 말까지 공사 중이다. 그러나 실망할 것은 없다. 역사 뒤편 철로는 그대로 남아 있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수업 시간 강 교수가 “어디 좋은데 가서 놀다 와. 요새 날씨 좋잖아”라는 말에 승민(이제훈)과 서연(수지)이 양팔을 뻗고 걷던 그 철로다. 영화 속 날짜도 11월 11일. 딱 지금 이맘때다. 철로를 따라 걷다 보면 영화 OST인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흐를 것만 같다. 조금 더 편하게 즐기라고 철로 한가운데 의자도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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