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여행/여주 여강길

여주 여강길 4코스20210315

應觀 2021. 3. 16. 08:36

여주역. 관광안내소에 들러 4코스를 물어보고 5일장터로 출발했다.
세종대왕릉역 앞에 설치한 조형물 앞에서 촬영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장은 큰데 사람이 많지 않다. 옛날 장터 분위기가 하나도 나질 않는다
점심시간은 이르지만 먹고 출발하는게 좋을 듯 싶어 식당을 찾는데 사람들이 속속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가보니 주변에 사는 단골들이 이용하는 식당으로 가격대비 맛이 좋다.특히 여주쌀로 밥을 짛어 밥맛이 아주 좋다. 역시 음식 맛은 오랜기간 경험으로 손끝에서 나는지 나이든 주인아주머니가  만든 음식이라 그런가 보다.
우암 송시열 선생을 모신 사당이다. 정자에서 보면 황포돗대가 떠다니는 남한강이 한눈에 펼쳐지는 곳으로 역대 여러 임금이 편액을 내리기도 했다.주변이 공사중이라 어수선하다
1785년(정조 9) 왕명에 의하여 송시열(宋時烈)을 제향하기 위하여 여주의 남한강변에 세웠다. 그 해에 사액되었는데 이 때는 송시열에 대한 존칭인 대로(大老)의 명칭을 붙여 ‘대로사’라고 하였다.앞서 송시열은 여주에 머물 때마다 이 곳에서 영릉(寧陵: 효종의 능)을 바라보고 통곡하며, 또 후진들에게 북벌의 대의를 주장하였다고 한다. 후일 정조가 영릉에 행차하다가 이 말을 전해듣고 수행한 김양행(金亮行)에게 이 사우를 세우게 하였으며, 또 친히 비문을 지었다.여기에는 남인을 등용함으로써 노론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던 정조가 노론이 받드는 송시열을 높이고, 그의 문집을 왕명으로 간행하게 하는 등의 특별배려를 베풂으로써 노론의 불만을 달래려고 한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었다. 특징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0호. 건물구조는 강당과 사묘, 관리인이 거주하는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어 비교적 간단한 규모이다. 출입문인 장인문이 서쪽으로 나 있으며, 사묘 또한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사우로부터 서쪽 방향에 있는 효종의 영릉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과 사우에 대한 훼철를 단행할 때 전국에 송시열을 제향하던 서원 및 사우가 44개소나 되던 것이 모두 헐렸으나 오직 이 대로사만은 ‘강한사’로 이름을 바꾸어 남게 되었다.서적이나 기타 목판 등이 산실되고, 겨우 외모만 갖추고 있을 뿐이다. 정조 때 사액시 대제학인 김종수(金鍾秀)가 쓴 ‘대로사(大老祠)’의 현판이 현재 사묘 안에 보관되어 있다.
매주월요일은 각왕릉을 비롯해 박물관등이 다 휴무이다. 효종릉과 세동대왕릉도 휴무라 입구에서 둘러만 보고 다음행선지로 이동했다. 세종대왕릉에 도착하니판교행 전철이 도착해 인증을 하지 못하고 승차했다. 23km, 30000보 걸었다. 양재역에 하차해 인근 에 쭈꾸미로 유명한 집에 들러 저녁을 먹고 헤여졌다. 이층으로된 넓은 식당인데 앉을 자리 없을 정도로 꽉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