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여행/역사를 찾아서

석파정(인왕산둘레길)20210127

應觀 2021. 1. 28. 10:28
인왕산 독서카페 20210127 #theta360 - Spherical Image - RICOH THETA
돈까스식당 #theta360 - Spherical Image - RICOH THETA

인왕산 둘레길 전망대에서 남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높은데 올라 보면 서울과 경기지역에 너무 인구 밀집도가 높다.교통이 좋아 좀 떨어진 한적한 곳에 살아도 좋으련만 무에 그리 좋은지 몰려산다.
고종임금이 하루 묵었던 곳에서 부암동을 내려다 보고 찍은 사진이다
경복궁3번출구로 나와 청와대를 거쳐 윤동주문학관과 창의문을 지나 그 아름답기로 유명한 석파정에 도착했다. 유니온 제약회사 회장의 개인 소유이다. 나이와 유공자 혜택없이 석파정입장료는  5000원이고 미술관은 별도란다. 코로나로 인해 그런지 한가하다. 바로 옆집은 조중훈회장의 집이라고 지선배님이 이야기 해 처음 알았다. 주변에 집이 없고 계곡에 물이 흐를때를 상상해 보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상상이간다.
고종임금이 하루 유숙하고 갔던 방이다,대원군이  이집을 갖고 싶어 안동김씨 세도정치에 대표인 김홍근에게 팔라고 해도 거부하자 아들 고종을 모시고 와 하룻밤을 지낸다 .임금이 자고 난 방은 그 누구도 들어갈 수가 없는지라 할 수 없이 대원군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며 석파정이라고 명명했다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이 창의문 밖에 지은 삼계동 정자(三溪洞 亭子)는 당시 한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로 유명했다. 조선 시대에 삼계동이라 불리며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이지만 지금은 터널을 오가는 차량과 주위의 빼곡한 주택들에 가려 찾는 이가 드물다. 황현은 그의 저서 《매천야록》에서 "김흥근은 북문 밖 삼계동에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경관이 서울에서 가장 빼어난 곳이었다"라고 말하며 별장에 얽힌 이야기를 기록했다. 처음에는 대원군이 김흥근에게 별장을 팔라고 했으나 그가 듣지 않았다. 그러자 대원군은 아들 고종에게 이곳을 다녀오라 권한다. 고종이 다녀간 후 김흥근은 '임금이 와서 놀다 간 곳에 감히 신하가 살 수 없다'며 다시는 이 별장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별장은 대원군 소유가 되었다. 김흥근의 별장을 빼앗은 대원군은 이름을 석파정(石坡亭)으로 바꾸고 한양 제일의 정원으로 가꾸었다. '석파'란 정자 앞산이 모두 바위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대원군은 자신의 아호를 석파라 할 정도로 이 정자를 좋아했다. 정자 소유를 포기한 김흥근은 당시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대표하던 인물이다. 김흥근은 1825년(순조 25년) 30세의 나이로 문과에 올라 검열(檢閱, 정9품)로 벼슬을 시작했다. 이후 여러 직위를 거쳐 1848년(헌종 14년) 예조판서를 역임하고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했다. 그러나 권세를 믿고 방자한 행동을 일삼다 대간의 탄핵을 받고 전라도 광양에 유배당하는 곡절도 겪는다. 1848년 7월 25일, 그의 탄핵 상소가 들어오자 헌종은 마치 기다린 듯 "너희들이 이제야 비로소 알았는가? 처지가 숭현(崇顯)하고 은총이 융중(隆重)한 자로서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실로 조정의 불행이다"라며 반기었다. 안동 김씨 세도 정치의 횡포에 시달려온 임금의 속 깊은 분노가 그 구절에 담겨 있다. 그의 유배는 곧 헌종의 어머니 신정왕후 조씨를 그늘로 한 풍양 조씨들이 세력을 떨침을 의미했다. 그러나 헌종이 죽고 철종이 즉위하자 김흥근은 곧 한성부판윤에 복직한다(1849년 12월 26일). 그리고 이조판서와 좌의정을 거쳐 1852년(철종 3년) 1월 56세의 나이로 영의정에 올랐다. 하지만 정세가 심히 복잡하고 혼란해 3월에 영의정 자리에서 물러나 판중추부사로 좌천되었다. 1862년 민중 봉기가 지속되자 김흥근은 삼정(국가 재정의 근간을 이루는 전세, 군포, 환곡을 뜻함)을 다스리는 국정 최고 책임자로 우뚝 섰다. 그러나 고종이 즉위하고 대원군이 정권을 장악하자 김흥근은 명예직인 돈녕부사로 밀려나 은거하다가 1870년(고종 7년) 75세 나이로 숨졌다. 석파정 소유가 서로 바뀌던 순간은 두 사람 사이 권좌의 교체를 의미한 것이다.

 

석파정을 둘러보고 인왕산둘레길을 걸었다 .예군인초소가 았던 자리에 카페도서관을 꾸며 놓았는데 군인 초소라 그런지 조망이 좋은 위치이다.앉아서 서울전경을 내려다 보며 상념에 젖었다. 사직단을 거쳐 인사동을 거쳐 종로3가 이디야커피집에 차한잔 나누고 귀가했다. 퇴근시간이라 경로석도 앉을 자리없이 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