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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산행 20150521

應觀 2015. 5. 22. 07:38

 

대남문우측에 있는 문수사의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문수는 문수사리(文殊師利) 또는 문수시리(文殊尸利)의 준말로, 범어 원어는 만주슈리(Manjushri)이다. ‘만주’는 달다[甘], 묘하다, 훌륭하다는 뜻이고, ‘슈리’는 복덕(福德)이 많다, 길상(吉祥)하다는 뜻으로, 합하여 훌륭한 복덕을 지녔다는 뜻이 된다.

문수보살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般若)의 도리를 선양한 이로서, 항상 반야지혜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는 ≪반야경≫을 결집, 편찬한 이로 알려져 있고, 또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요 부모라고 표현되어 왔다. 이는 ≪반야경≫이 지혜를 중심으로 취급한 경전이고, 지혜가 부처를 이루는 근본이 되는 데서 유래된 표현이다.

일설에는 이 문수보살이 석가의 교화(敎化)를 돕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몸을 바꾸어 보살의 지위에 머물고 있으나, 오랜 옛적에 이미 성불하여 용존상불(龍尊上佛)·대신불(大身佛)·신선불(神仙佛)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또 미래에 성불하여 보견여래(普見如來)로 불릴 것이라고 하였다. 또 다른 일설에는, 현재 북방의 상희세계(常喜世界)에 있는 환회장마니보적불이 곧 문수보살로, 이 부처님의 이름을 들으면 사중죄(四重罪)가 없어진다고 하였다.

이 문수보살의 상주처(常住處)는 신라의 고승 자장(慈藏)이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서 기도를 드렸던 중국 산시성(山西省)청량산(淸凉山, 일명 五臺山)으로, 현재 1만 명의 보살과 함께 있다고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강원도의 오대산을 문수보살의 상주도량으로 믿고 신봉한다.

≪화엄경≫ 속에서 문수보살은 보현보살과 함께 비로자나불의 양쪽 협시보살(夾侍菩薩:좌우에서 모시는 보살)이 되어 삼존불의 일원을 이루고 있다. 보현보살이 세상 속에서 실천적 구도자의 모습을 띠고 행동할 때 문수보살은 사람들의 지혜의 좌표가 되었다. 이 두 보살은 항상 서로의 지혜와 실천행을 주시하고 사랑하면서 스스로의 소임을 다한다.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을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이다. 지혜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곧 마음에 아무런 분별심·차별의식·우열관념 등이 없는 한없는 고요 속의 밝음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래 이 문수보살에 대한 신앙이 성행하였다. 우리 나라에 문수신앙을 최초로 이식한 이는 자장이며, 이 밖에도 신라의 경흥대덕(憬興大德)이 문수의 경책을 받은 일이나 연회국사(緣會國師)가 문수보살을 친견한 이야기, 신라의 태자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이 오대산에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한 오방위신앙을 정립시킨 기록이 있다.

또 경순왕이 문수보살의 화신인 줄 모르고 공양 올리기를 꺼린 설화, 문수보살과 함께 수도했던 고려 고승 3인에 얽힌 설화, 세조의 병을 고쳐 준 문수동자의 설화, 문수동자의 경책을 들은 환우화상 이야기, 땡추로 변화한 문수보살, 하동 칠불암의 문수동자 설화 등 많은 이야기가 전래되고 있다. 문수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닦는 기도법으로는 문수팔자법(文殊八字法)이 있는데, 이는 천변·일식·월식·병란 등을 피하는 수행법(修行法)이다.

우리 나라의 문수신앙은 신라의 고승 자장에 의해서 정착되었다. ≪화엄경≫에 의하면 중국의 청량산을 문수보살의 상주처(常住處)라고 하였는데, 이 청량산에서 수행한 자장이 청량산의 태화지(太和池)에 있는 문수보살 석상 앞에서 7일 동안 기도하여 보살로부터 범어로 된 사구게(四句偈)를 받았다. 이어서 한 노승으로부터 범어 게송에 대한 해석을 듣고 부처님의 가사(袈裟)와 발우를 받았으며, 신라에 구층탑을 세워 나라를 편안하게 할 것을 부탁받았다.

이때 그 노승에게서 우리 나라의 오대산이 문수보살의 상주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자장은 643년(선덕여왕 12) 귀국하여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우고 오대산 중대(中臺)에 적멸보궁(寂滅寶宮)을 건립하여 오대산을 문수신앙의 중심 도량으로 만들었다. 그 뒤 강릉 수다사(水多寺), 태백산 석남원(石南院) 등지에서 문수보살과 관련된 이적들을 남겼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고승 보천은 오대산의 중대가 1만의 문수보살이 머무는 도량임을 강조하여, 이후 향화(香華)가 끊이지 않게 하였다. 특히, 조선 세조가 등창병으로 고생할 때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문수동자의 감응을 받아 병이 낫게 된 뒤부터 문수신앙은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문수도량으로는 오대산을 비롯하여 춘천시청평사(淸平寺)를 들 수 있으며, 이 밖에 삼각산 문수암, 김포 문수암, 평창시 문수사, 옥천군 문수사, 서산시 문수사, 구미시(선산) 문수사, 고성군 문수암, 울산시(울주) 문수암, 김제시 문수사, 익산시 문수사, 고창군 문수사 등이 있다.

우리 나라의 사찰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측에 문수보살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고, 대적광전(大寂光殿)에도 비로자나불 좌측에 문수보살을 봉안하며, 특별히 문수신앙이 강한 사찰에는 문수보살상만을 모신 문수전(文殊殿)을 따로 두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