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전골 5선
날짜변경선은 사람이 살지 않는 먼 바다에 그어놓았다. 달력도 한 해의 시작과 끝을 겨울에 맞춰놓았다. 처음 달력을 만든 이가 날짜변경선을 그은 것처럼 배려한 건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사람들 활동이 위축되고 왕래도 적다. 전투가 일상이고 직업이었던 고대 로마 군대도 겨울에는 전쟁을 쉬었다. 그러나 바빠진 현대인들은 겨울에도 쉴 틈이 없다.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과 세월 속에 또 한 해가 저물고 새날이 왔다. 크고 작은 술자리가 없을 수 없다. 아쉬움에 한 잔, 기대감에 또 한 잔. 길고 차가운 동지섣달과 정월로 이어지는 겨울밤. 찬 소주가 들어간 위장을 따뜻하게 덮어주고 편안하게 보듬어주는 곱창전골 국물이 간절해진다.
곱창전골은 실한 곱창과 각종 채소, 면 등의 고명이 넉넉하게 들어있다. 얼큰한 국물 한 입 떠먹으면 마음까지 따뜻하고 든든해진다. 공깃밥 한 공기 너끈히 비울 수 있고, 소주 한잔으로 마무리하기에 제격인 실속형 먹을거리이자 중장년층에겐 추억의 메뉴다.
술배 밥배 모두 채워주는 한국인의 겨울 메뉴
일본 후쿠오카 지역의 3대 명물 중 하나가 모츠나베다. 후쿠오카의 모츠나베는 묵직하고 부드러우나 맵고 칼칼한 맛이 부족해 먹을수록 느끼하다. 한국인 입맛으로 보면 모츠나베는 2% 정도 부족한 맛이다. 들어가는 재료나 구성은 비슷하지만 한국식 곱창전골에는 모츠나베에서 제 구실을 못했던 ‘개운하고 칼칼한 맛’이 제대로 살아있다.
육류 부산물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곱창, 대창, 막창은 어느 순간 삼겹살만큼 대중 외식 아이템이 됐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곱창전골은 한국인이 주로 선호하는 ‘탕반’과 ‘부산물’의 개념을 반반씩 섞어놓은 합작품이다. 한국인이라면 얼큰한 국물과 쫄깃한 곱창의 푸짐하고 맛깔스러운 조화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또 곱창 특유의 고소하면서도 씁쓸한 풍미가 국물에 녹아있어 은근한 중독성이 있다.
곱창전골의 가장 큰 강점은 식사와 술안주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해내는 몇 안 되는 국물 메뉴라는 점이다. 곱창전골은 우동사리나 국수와도 잘 어울린다. 진하게 우러나는 육수와 칼칼한 양념 베이스가 면발에 골고루 스며들어 특유의 되직한 맛을 내준다. 전골은 특성상 오랜 시간 자리에 앉아 자박하게 끓여먹는 매력이 있는 음식이다. 한국인의 밥상머리 정서와 부합한다. 곱창전골은 비교적 큰 비용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부담 없는 사람과 연말연시에 가볍고 긴 정담을 나누기엔 곱창전골이 있는 풍경만한 곳이 없다.
01 서울시 서초구 <양대명가>
얼큰하고 깔끔한 국물, 식사 메뉴로도 일품
서울 신사역 부근의 양·대창전문점 <양대명가>의 점심 주력메뉴는 한우곱창전골(1인 1만8000원)이다. 부드러우면서 묵직하게 감기는 국물 맛과 푸짐한 고명으로 저녁 시간에는 양, 대창과 함께 술안주로도 제법 많이 팔린다.
7~8시간가량 사골로 푹 우려낸 육수로 국물이 진한 편이고 마치 일본의 모츠나베처럼 마일드한 맛이 인상적이다. 간이 세거나 짜지 않고 적절히 달고 부드러운 맛이 잘 우러나 이 집의 곱창전골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고객도 제법 맛있게 잘 먹는다. 배추와 팽이버섯, 느타리버섯, 당근, 미나리, 쑥갓, 무 등의 채소가 푸짐하게 들어가고 우동사리도 서비스로 제공, 가격대비 양과 질에 충실한 곱창전골이다.
곱창을 비롯해 각각의 신선한 재료 고유의 맛을 풍부하게 살린 <양대명가> 곱창전골은 술안주로도 탁월하지만 식사메뉴로서의 구성력이 돋보인다. 여섯 가지의 정갈한 한식 반찬과 함께 철원평야 오대쌀로 지은 밥을 제공하기 때문. 차지고 쫀득한 밥맛이 일품이다. 곱창전골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드문 터라 더더욱 접하기 힘든 곱창전골의 풍미를 정성껏, 제대로 구현하는 보기 드문 식당이다.
02 대구시 달서구 <버들식당>
40년 넘게 신선한 소 곱창으로 끓인 전통의 맛
1969년 처음 문을 연 <버들식당>은 곱창전골로 오랜 시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친정어머니에 이어 현재 유희옥 대표가 2대째 운영한다. 본래 이 집 주변에 도축장이 있어 곱창전골 골목을 형성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도축장과 함께 곱창 집들도 없어졌다. 이 집의 대표 곱창전골 메뉴로는 ‘환상의 맛(150g, 1만원)’이 있다. 곱창과 대창, 불고기와 함께 당면, 팽이버섯, 양파 등의 채소가 추가로 들어간다. 냉이 철에는 쑥갓 대신 냉이를 넣어 특유의 향을 더하기도 한다. <버들식당>표 곱창전골은 비교적 칼칼하고 강한 편이다. 곱창과 대창에 기본적으로 기름기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국물은 최대한 얼큰하고 개운하게 끓여낸다. 고소하면서도 칼칼한 매운 맛은 중독성이 있다.
곱창은 매일매일 공급받는다. 공급받은 곱창은 물에 깨끗하게 씻은 후 뒤집어서 소금으로 세척한다. 번거롭고 힘들어도 부분부분 직접 손질하고 작업한다. 기호에 따라 라면이나 우동, 당면사리(각각 1000원)를 추가할 수 있고 전골을 비우고 난 후 밥이 아쉬운 손님은 볶음밥(1000원)을 별도로 주문하기도 한다.
03 서울시 마포구 <청어람>
다양한 채소 넣고 충분히 국물 우려낸 ‘럭셔리 곱창전골’
서울 망원동 곱창전문점 <청어람>은 곱창만큼이나 곱창전골(대 2만5000원 중 2만원 소 1만5000원)을 많이 판매한다.
곱창은 마장동 우시장에서 큼직하고 실한 한우곱창을 구입한다. 일반 곱창전골 집에 비해 곱창의 길이가 길쭉해서 먹음직스럽고 상태도 아주 양호하다. 커다란 세라믹 용기에 곱창전골을 끓이는데 양이 무척 푸짐하다. 매장에서 2차 손질하는데, 이때 기름기를 얼마만큼 깔끔하게 제거하느냐가 중요하다. 업주는 “곱창전골의 포인트는 기름기 많은 곱창을 푸짐하게 넣으면서도 국물 맛은 느끼하지 않아야 한다. 부드러운 곱창과 칼칼하고 개운한 국물 맛 두 가지 요소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양도 양이지만 이 집 곱창전골을 먹어본 손님들이 ‘럭셔리 곱창전골’이라고 부른다. 다양한 채소에서 긴 시간 동안 우러난 전골국물 맛은 깔끔함과 시원함이 압도한다. 그래서 국물을 마시고 나면 풍부한 개운함이 입 안에 남는다. 전골에는 곱창과 우동면, 배추, 느타리버섯, 청경채, 무, 당근, 호박 등을 넣고 육수는 사골육수와 표고버섯을 우려낸 밑 국물을 배합한 후 끓인다.
04 서울시 강남구 <청자골>
육사시미 끝에 우동면과 함께 먹는 마무리 곱창전골
서울시 대치동의 <청자골>은 한우 전문점이다. 한우 가운데에서도 육사시미로 유명하다. 전남 강진에서 당일 직송해 체온이 채 식지 않은 한우 육사시미는 언제 먹어도 차지고 싱싱하다. 이 육사시미 끝에 이 집에서 내는 곱창전골(1인분 1만2000원)을 먹어야 깔끔한 마무리가 완성된다. 고깃집에서 갈비탕이나 된장찌개는 흔히 볼 수 있는 식사메뉴다. 그러나 곱창전골을 판매하는 식당은 드물다. 사실 곱창전골은 잠재력이 있는 좋은 메뉴다. 이 집의 곱창은 비록 뉴질랜드산을 사용하지만 곱창전골만큼은 아주 맛깔스럽다. 주재료인 곱창도 생각보다 매우 신선하다. 곱창전골 전문점을 해도 충분한 수준이다.
보글보글 곱창전골이 끓으면서 코를 자극한다. 먹어보니 달지 않고 적당히 진하면서 담백한 맛을 지녔다. 밥을 살짝 말아먹었다. 곱창전골 국물과 밥의 조화가 훌륭하다. 역시 고깃집의 곱창전골 후식도 매력적이다. 찬으로 나오는 남도의 갓김치도 손맛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이 집 곱창전골은 마지막 우동면으로 화룡점정을 찍는다. 어느 정도 먹고 나면 남은 전골에 우동면을 투하한다. 곱창전골에 끓여먹는 우동 맛은 또 다른 매력을 던져준다.
05 대구시 달서구 <이동근선산곱창>
부위별 다양한 풍미도 맛보는 이색 돼지곱창전골
돼지곱창전골은 사실 소곱창전골보다 훨씬 생소하고 보기 드물다. 냄새 잡는 일이 관건인 데다 충분히 끓이지 않으면 질길 수 있기 때문. 좀 더 세련된 조리 기술이 필요하다.
<이동근선산곱창>은 돼지곱창전골을 판매하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선산돼지곱창전골(200g, 7000원)’이 메인메뉴. 부담 없는 가격에 따끈한 국물과 돼지곱창을 푸짐하게 맛볼 수 있는 콘셉트로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이 엿보인다. 주재료인 돼지곱창 외에도 염통, 울대, 똥보, 살코기 등 네 가지 돼지고기 부위를 더 넣는다. 같은 돼지고기라도 각 부위별 맛과 식감이 다르기 때문에 한데 넣어 끓이면 더욱 풍부한 맛을 낸다. 특히 울대나 똥보는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특징이고, 염통은 고소한 풍미가 인상적이다. 돼지곱창과 함께 겉절이 김치, 길게 자른 대파, 새송이버섯, 양파, 김치 만두가 들어간다. 돼지곱창과 매콤한 김치 속이 들어간 김치만두가 의외로 잘 어울린다.
육수는 돼지 사골을 고아 만들었다. 깊고 구수한 전골 맛을 내주는 일등 공신이다. 고춧가루 등 8가지 재료로 만든 양념장은 잡냄새를 잡아주면서 맵고 얼큰한 맛을 낸다. 이 양념장의 활약 덕분인지 곱창전골에서 예상했던 돼지 냄새나 잡내가 거의 나지 않았다.
<양대명가>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14-14 (02)3448-9292
<버들식당> 대구시 달서구 두류공원로28길 8 (053)656-1991
<청어람> 서울시 마포구 망원로 97 (02)02-332-1411
<청자골>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901-71 (02)935-0609
<이동근선산곱창>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수로 121 (053)631-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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