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클래식모임

오페라와 뮤지컬

應觀 2024. 1. 23. 10:08
오페라와 뮤지컬은 모두 음악, 연기, 무용이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 무대예술입니다. 그런데 오페라는 왠지 뮤지컬보다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클래식 전용 극장에서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전문 성악가가 노래하는 공연이다 보니 아무래도 격식을 차리는 모습이죠. 반면 뮤지컬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연극적인 구성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서 더 대중적이고 친숙하게 다가오지요.
재미있게도 오페라뮤지컬 제작에 영감을 주기도 한답니다. 오페라를 소재로 한 뮤지컬 두 편을 소개해 보려 해요. 하나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록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렌트'입니다. 다른 하나는 실존 인물이었던 한국 최초의 테너 이인선의 삶을 모티프로 한 창작 뮤지컬 '일 테노레'입니다. 둘 다 다음 달 25일까지 공연해요.
뮤지컬 '렌트'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공감을 얻는 청춘들의 방황하는 젊음과 흔들리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배경으로 푸치니의 1896년 오페라 '라 보엠'이 깔리는 거죠.
먼저 원작인 '라 보엠' 이야기를 알아볼까요. '라 보엠'은 이탈리아어로 '보헤미아 사람들'이란 뜻인데요, 보헤미아는 원래는 지역 이름이지만 제목에서는 이곳에 많이 살던 유랑민이 지닌 자유롭고 예술적인 성향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쓴 거예요. 때는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화려한 파리 거리의 불빛 아래 사람들이 들떠 있어요. 그런데 무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다락방은 춥기만 하네요. 가난한 시인 로돌프는 이웃집에 살고 있는 미미를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져요. 안타깝게도 미미는 폐병에 걸려 죽음을 앞뒀습니다. 하지만 로돌프는 그런 미미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죠. 두 사람은 이별을 하고 다시 만나지만 결국 미미는 로돌프의 품에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라 보엠'의 매력은 파리 뒷골목의 젊은 예술가들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점이에요. '나비부인' '토스카'와 함께 푸치니의 3대 오페라로 손꼽힐 정도로 사랑받고 있어요.
오페라 '라 보엠'으로부터 100년 뒤, 뮤지컬 '렌트'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번엔 뉴욕 뒷골목의 허름한 아파트 다락방으로 장소를 옮깁니다. 이곳에도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고 있네요. 하지만 그들은 희망찬 내일을 꿈꾸며 우정과 사랑을 노래한답니다. 주인공은 작곡가 로저예요. 그 앞에 '라 보엠'의 여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미미가 나타납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 속에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요. 여기까지는 오페라와 이야기가 같죠? 뮤지컬 '렌트'에서 미미는 죽지 않고 로저의 품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두 사람은 영원히 사랑하면서 각자의 꿈을 이루었을까요.
'렌트'는 초연부터 지금까지 30여 년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흥행 중이에요. 작품성까지 인정받으며 토니상에서 작품상, 연출상, 극본상을 비롯해 퓰리처상까지 받았죠. 뉴욕 뒷골목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노래하는 희망의 가치는 어느 시대든 변치 않는 소중한 메시지임을 모두가 인정한 것이죠.
뮤지컬 '일 테노레'(IL TENORE)로 가볼게요. 제목은 이탈리아어로 '테너(tenor)'를 의미해요. 테너는 오페라에서 가장 높은 음역을 내는 남성 성악가죠. 우리나라 최초의 테너는 누구일까요? 이인선이랍니다. 그리고 뮤지컬 '일 테노레'는 실존 인물이자 한국 오페라의 선구자였던 이인선을 모티프로 한 윤이선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어요. 여기에 독립운동을 이끄는 당찬 여대생 서진연, 그리고 그녀의 동지이면서 남몰래 사랑을 느끼고 있는 이수한이라는 인물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펼쳐 나가죠.
뮤지컬의 모티프가 된 이인선(1907~1960)은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에요. 의사이자 테너 가수였죠. 그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연세대 의대의 전신) 졸업 후, 황해도에서 병원을 개업한 전문의였어요. 그런데 오페라 공부를 하려고 1934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요. 3년 후인 1937년 귀국한 그는 당시 유명 공연장이었던 경성 부민관을 비롯해 일본 도쿄의 히비야공회당, 중국 칭다오 등에서 독창회를 연달아 열어요. 그는 '동양 제일의 테너'로 불리게 됩니다.
1938년 조선일보도 이인선을 인터뷰했어요. 당시 기사는 그에 대해 "낮이면 의사, 밤이면 가인(노래 부르는 사람), 그러나 조금도 이 두 개의 일에 피곤하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다"고 언급해요. 이후 1946년 이인선은 서울에서 동생 이유선과 제자들과 함께 조선오페라협회를 조직하고,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해요.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이었습니다.

 

'일 테노레'는 조선 최초의 오페라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이들은 항일운동 모임인 '문학회'에서 준비하는 연극이 일본 총독부의 검열에 부딪혀 무산되자, 대신 '오페라'를 만들기로 했어요. 뮤지컬 속에서 주인공들은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오페라를 공연해요. 오스트리아에 맞서 베네치아 사람이 독립운동을 하는 이야기였어요. 주인공들은 이 공연을 통해 일본에서 독립을 꿈꾸는 우리의 애국심을 깨우려 하죠. 특히 오페라의 아리아처럼 현악기를 중심으로 편성된 18인조 오케스트라 연주로 편곡된 음악들이 무척 아름답습니다."가네, 멀어지네, 빛바랜 희망이 됐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했을 조선 최초의 테너가 되려던 꿈, 또 우리만의 나라를 만들자는 독립의 꿈에 도전하고 노력했던 사람들의 삶이 뮤지컬 속에서 감동적으로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