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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佛敎聖地 서울

應觀 2019. 3. 6. 22:16

         

韓國의 佛敎聖地 서울
  



대웅(大雄)이란 큰 장부(大丈夫)라는 뜻의 석가모니부처님의 다른 호칭이며 큰 힘이 있어 사마(煩惱魔. 音魔. 邪魔. 自在天魔)를 항복시킨다는 뜻에서 붙여진 부처님의 덕호에서 유래한 것으로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대부분의 석가여래상은 대각을 얻기 직전 마왕 파순(魔王波旬)을 항복시키는 순간을 형상화한 항마촉지인을 하고 불상배치는 보통 네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석가모니불 좌우에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성자인 가섭과 다문제일(多聞第一)의 아난이 시립하고 있는 모습이다.
 둘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부처의 반야지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불지를 향한 수행과 원이 광대함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협시로 봉안한 형태로 이 삼존불은 지혜와 행원 없이는 부처를 이룰 수 없다는 것과 지혜를 갖추고 행원을 성취할 때 가장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세째는 좌우에 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봉안하고 다시 좌우에 가섭과 아난이 시립하는 경우이다. 제화갈라는 연등불로부터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아 91겁 뒤에 성불할 것을 수기한 연등 부처님이다. 미륵보살은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으며 수도하였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은 뒤에 도솔천에 올라가 현재 천인들을 위해 설법하고 계신다고 한다.
 네째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할 때는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신다.
차례
  1. 성북    삼각산 봉국사 (三角山 奉國寺 2004. 5. 16.) 石造藥師如佛 P 6
  2. 성북    삼각산 적조사 (三角山 寂照寺 2006. 1. 21.) ............. P 7
  3. 성북    삼각산 만법사 (三角山 萬法寺 2008. 1. 18.) ............. P 8
  4. 성북    삼각산 길상사 (三角山 吉祥寺 2006. 1. 21.) 磨崖佛  P 9
  5. 성북    삼각산 정법사 (三角山 正法寺 2006. 1. 21.) ............. P 10
  6. 성북    삼각산 경국사 (三角山 慶國寺 2006. 2. 1.) ............... P 11
  7. 성북    삼각산 왕영사 (三角山 旺迎寺 2005. 4. 11.) ............. P 10
  8. 성북    삼각산 영불사 (三角山 靈佛寺 2005. 4. 11.)
  9. 성북    삼각산 청학사 (三角山 靑鶴寺 2005. 4. 11.)
 10. 성북    삼각산 청학사 불화 (三角山 靑鶴寺 佛畵 2001. 3. 5.)P 12
 11. 성북    정릉동 불화 (城北 貞陵洞 佛畵 2012. 1. 10.)
 12. 성북    삼각산 영취사 (三角山 靈聚寺 2005. 4. 11.) .............. P 13
 13. 성북    정릉동 마애삼존불 (貞陵洞 磨崖三尊佛 2011. 10. 27.)P 14
 14. 성북    정릉동 마애약사불 (城北 貞陵洞 磨崖藥師佛 2011. 1. 8.)
 15. 성북    삼각산 흥천사 (三角山 興天寺 2006. 7. 9.) ............... P 15
 16. 성북    한용운 심우장 (韓龍雲 尋牛莊 2008. 2. 19.) ............. P 16
 ∴. 성북    간송 미술관 (城北 澗松美術館 2009. 5. 20.) ............. P 17
 17. 성북    삼각산 내원사 (三角山 內院寺 2007. 12. 23.) ........... P 18
 18. 성북    안암산 보타사 (安岩山 寶唾寺 2004. 11. 27.) 磨崖觀音菩薩坐像
 19. 성북    안암산 개운사 (安岩山 開運寺 2004. 10. 27.) ........... P 20
 20. 성북    낙  산 보문사 (洛  山 普門寺 2004. 11. 27.) ........... P 21
 21. 성북    낙  산 미타사 (洛  山  彌陀寺 2006. 7. 9.) ............. P 22 
 22. 성북    진각종 월곡정사 (眞覺宗 月谷精舍 2006. 2. 1.) 本部 P 23
 23. 강북    삼각산 미아사 (三角山 彌阿寺 2008. 3. 11.) .............. P 24
 24. 강북    삼각산 도선사 (三角山 道詵寺 2004. 5. 31.) 磨崖觀音菩薩像 P 25
 25. 강북    북한산 마애관세음보살 (北漢山 磨崖觀世音菩薩 11. 11. 12.)
 26. 강북    우이동 금봉암터 마애불좌상 (金鳳庵祉 磨崖佛坐像 11. 11. 17.)
 27. 강북    우이동 마애불좌상 (牛耳洞 磨崖佛坐像) ..................... P 29
 28. 강북    삼각산 영산법화사 (三角山 靈山法華寺 11. 11. 17.) .P 30
 29. 강북    북한산 백운암 마애약사여래좌상
            (北漢山 白雲庵 磨崖藥師如來坐像 2011. 11. 3.) ........ P 31
 30. 강북    북한산 인수봉 선각마애불좌상 / 그림
            (北漢山 仁壽峰 線刻磨崖佛坐像 / 畵 2011. 11. 3.) ... P 32
 31. 강북    북한산 화계사 (三角山 華溪寺 2004. 2. 14.) ............. P 33
 32. 강북    수유동 마애불좌상 (水踰洞 磨崖佛坐像 2011. 2. 26.).P 34
 33. 강북    삼각산 삼성암 (三角山 三聖庵 2004. 11. 14.) ........... P 35
 34. 강북    삼각산 법안사 (三角山 法安寺 2008. 1. 5.) ............... P 36
 35. 강북    삼각산 용덕사 (三角山 龍德寺 2008. 1. 5.) 磨崖佛立像P 37
 36. 강북    삼각산 백련사 (三角山 白蓮寺 2008. 2. 13.) ............. P 38
 37. 강북    삼각산 본원정사 (三角山 本願精舍 2008. 2. 26.) 磨崖三尊佛像
 38. 강북    삼각산 보광사 (三角山 普光寺 2008. 3. 6.) ............... P 40
 39. 도봉    도봉산 원통사 (道峰山 圓通寺 2007. 12. 30.) ........... P 41
 40. 도봉    방학동 청룡사터 마애불좌상 (靑龍寺祉 磨崖佛坐像 11. 11. 17.)
 41. 도봉    도봉산 천축사 (道峰山 天竺寺 2008. 2. 8.) ............... P 43
 42. 도봉    도봉산 만월암 (道峰山 滿月庵 2008. 2. 8.) 石佛坐像 .P 44
 43. 도봉    도봉산 도봉사 (道峰山 道峰寺 2008. 1. 20.) ............. P 45
 44. 도봉    도봉산 석굴암 (道峰山 石窟庵 2008. 2. 8.) ............... P 46
 45. 도봉    도봉산 관음암 (道峰山 觀音庵 2009. 6. 4.) 五百羅漢石佛坐像
 46. 노원    불암산 학도암 (佛岩山 鶴到庵 2008. 1. 22.) 磨崖觀音菩薩像P 48
 47. 노원    불암산 경수사 (佛岩山 景水寺 2011. 2. 12.) 磨崖佛立像 ... P 49
 48. 노원    상계약수터 마애불입상 (上溪藥水 磨崖佛立像 2012. 2. 24.)
 49. 노원    수락산 염불암 (水落山 念佛庵 2010. 10. 13.) 磨崖藥師如來坐像
 50. 노원    수락산 수암사 (水落山 水巖寺 2008. 2. 16.) 彌勒佛立像 P 52
 51. 노원    수락산 학림사 (水落山 鶴林寺 2004. 5. 27.) 石造藥師佛座像
 52. 노원    수락산 용굴암 (水落山 龍窟庵 2004. 5. 27.) ............. P 54
 53. 구기    삼각산 문수사 (三角山 文殊寺 2005. 4. 11.) ............. P 55
 54. 종로    삼각산 일선사 (三角山 一禪寺 2005. 4. 11.) ............. P 56
 55. 종로    북한산 왜색 마애불입상 (北漢山 倭色 磨崖佛立像 2012. 2. 26.)
 56. 종로    북한산 원통사터 마애불좌상 (圓通寺祉 磨崖佛像 2011. 12. 15.)
 57. 구기    삼각산 승가사 (三角山 僧伽寺 2005. 2. 12.) ............. P 59
 ∴.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상 (僧伽寺 石造僧伽大師像) 磨崖釋迦如來像
 58. 구기    삼각산 금선사 (三角山 金仙寺 2006. 6. 6.) 木精窟 ... P 60
 59. 은평    봉  산 사현사 (烽山 沙峴寺 2006. 5. 31.) 石造如來坐像 P 61
 60. 은평    삼각산 삼천사 (三角山 三千寺 2005. 2. 12.) 磨崖如來像.P 62
 61. 은평    태화산 수국사 (太華山 守國寺 2006. 5. 31.) .............. P 63
 62. 은평    삼각산 진관사 (三角山 津寬寺 2004. 5. 16.) .............. P 64
 63. 은평    진관동 석조보살입상 (津寬洞 石造菩薩立像 2013. 7. 25.) 慈氏閣
 64. 서대문  삼각산 옥천암 (三角山 玉泉庵 2006. 6. 6.) 磨崖觀音菩薩像 P 66
 65. 서대문  금화산 봉원사 (金華山 奉元寺 2006. 5. 31.) ............. P 67
 66. 서대문  백련산 백련사 (白蓮山 白蓮寺 2006. 5. 31.) ............. P 68
 67. 서대문  인왕산 환희사 (仁王山 歡喜寺 2011. 9. 6.) 88野佛 .. P 69
 68. 종로    인왕산 석굴암 (仁旺山 石窟庵 2008. 1. 24.) ............. P 70
 69. 종로    인왕산 석굴암 미륵존불 (仁王山 石窟庵 彌勒尊佛). P 70
 70. 종로    인왕산 인왕사 (仁旺山 仁旺寺 2006. 5. 31.) ............. P 71
 ∴. 종로    인왕산 선바위 (仁旺山 禪  岩 2006. 5. 31.) ............. P 72
 ∴. 종로    인왕산 국사당 (仁旺山 國師堂 2006. 5. 31.) ............. P 73
 71. 종로    홍제동 마애관음보살 (弘濟洞 磨崖觀音菩薩 2011. 9. 6.)
 72. 종로    삼각산 조계사 (三角山 曹溪寺 2006. 2. 26.) ............. P 75
 73. 종로    삼각산 대각사 (三角山 大覺寺 2006. 2. 26.) ............. P 76
 74. 종로    삼각산 원각사지 (三角山 圓覺寺址 2006. 2. 26.) ..... P 77
 75. 종로    삼각산 소림사 (三角山 少林寺 2006. 6. 6.) ............... P 78
 76. 종로    북악산 칠보사 (北岳山 七寶寺 2006. 3. 4.) ................ P 79
 ∴. 종로    한  양 중심석 (漢陽 中心石 2012. 4. 29.) .................. P 80
 77. 종로    인사동 삼층석탑 (人寺洞 三層石塔) ............................. P 81
 78. 종로    공간사옥 삼층탑 (鐘路 空間社屋 三層塔 13. 10. 13.).P 82
 79. 종로    서울 역사박물관 5층탑 (徐蔚 歷史博物館 五層塔 13. 10. 25.)
 80. 세종로  석조여래좌상 (世宗路 石彫如來坐像 靑瓦臺) ............ P 84
 81. 세종로   경복궁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世宗路   景福宮 山淸 泛鶴里 三層石塔) .................................... P 85
 82. 종로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鐘路    昌慶宮內 八角七層石塔 2009. 5. 20.) ........................... P 86
 83. 종로    낙  산 안양암 (洛  山 安養庵 2006. 2. 26.) 石龕磨崖觀音菩薩像
 84. 종로    낙  산 묘각사 (洛  山 妙覺寺 2006. 2. 26.) .............. P 88
 85. 종로    낙  산 감로암 (洛  山 甘露庵 2006. 7. 9.) ................ P 89
 86. 종로    낙  산 청룡사 (洛  山 靑龍寺 2008. 1. 21.) .............. P 90
 87. 동대문  천장산 연화사 (天藏山 蓮花寺 2006. 7. 9.) ................ P 91
 88. 성동    종남산 미타사 (終南山 彌陀寺 2006. 2. 4.) ................ P 92
 89. 성동    종남산 청련사 (終南山 靑蓮寺 2006. 7. 9.) 廢寺 ....... P 93
 90. 청량리  천장산 청량사 (天藏山 淸凉寺 2006. 2. 26.) .............. P 94
 ∴. 용산    국립 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2008. 6. 19.) ........ P 95
 91. 방화    개화산 미타사 (開花山 彌陀寺 2005. 4. 3.) 彌勒佛立像P 101
 92. 방화    개화산 약사사 (開花山 藥師寺 06. 3. 3.) 石藥師佛 ..... P 102
 93. 강서    봉제산 연화사 (鳳啼山 蓮花寺 2012. 1. 11.) .............. P 103
 94. 관악    관악산 관음사 (冠岳山 觀音寺 2008. 1. 2.) 石佛 ....... P 104
 95. 관악    관악산 자운암 (冠岳山 慈雲庵 08. 1. 25.) 磨崖彌勒佛 P 105
 96. 관악    관악산 약수사 (冠岳山 藥水寺 2008. 1. 3.) ................ P 106
 97. 관악    낙성대 삼층석탑 (落星垈 三層石塔 11. 3. 18.) 安國祠.P 107
 98. 관악    봉천동 마애미륵불 (奉天洞 磨崖彌勒佛 08. 1. 25.) . P 108
 99. 동작    서달산 달마사 (西達山 達摩寺 2008. 1. 10.) 磨崖佛像.P 109
100. 동작    달마산 지장사 (達磨山 地藏寺 2008. 1. 9.) ............... P 110
101. 동작    달마산 미륵암 (達磨山 彌勒庵 2008. 1. 14.) 彌勒佛 . P 111
102. 동작    삼성산 사자암 (三聖山 獅子庵 2008. 1. 13.) ............. P 112
103. 서초    우면산 관문사 (牛眠山 觀門寺 2008. 1. 2.) ............... P 113
104. 서초    형촌 마을 미륵불 (西草 荊村 彌勒佛 2013. 9. 17.) . P 114
105. 서초    우면산 대성사 (牛眠山 大聖寺 2008. 1. 2.) ............... P 115
106. 서초    원지동 석불입상 (石佛立像/石塔 2008. 1. 2.) ............ P 116
107. 서초    불교 제중원 오층석탑 및 표석, 석등
            (佛敎濟衆院 五層石塔 標石, 石燈 2013. 9. 17.) ......... P 117
108. 강남    대모산 불국사 (大母山 佛國寺 2009. 8. 7.) ............... P 118
109. 강남    수도산 봉은사 (修道山 奉恩寺 2008. 1. 17.) ............. P 119
110. 광진    아차산 영화사 (峨嵯山 永華寺 2008. 2. 5.) ............... P 120
111. 광진    아차산 화양사 (峨嵯山 華陽寺 2012. 3. 22.) ............. P 121
112. 광진    광장동 상부암 석불입상
    (首爾    廣津區 廣壯洞 上浮庵 石佛立像 2010. 5. 14.) .......... P 122
113. 광진    한강 수상법당 (漢江 水上法堂 2012. 1. 14.) ............. P 123
114. 성동    동국대학교 박불관 보협인 석탑
    (城東    東國大學校 博物館 寶匧印 石塔 2008. 6. 19.) .......... P 124
   - 성동   동국대학교 납석 삼존불비상 (蠟石 三尊佛碑像 08. 6. 19.)
115.  마포   절두산 순교성지 (麻浦 切頭山 殉敎聖地 12. 1. 11.) ..P 128
   -. 마포   절두산 순교공원 오층탑 (切頭山 殉敎公園 五層塔)  P 130
116. 금천    시흥동 탑골 삼층석탑 (始興洞 탑谷 三層石搭) ......... P 131
                                                  2013. 8. 23. 정리


  
성북 삼각산 봉국사 (三角山 奉國寺 2004. 5. 16.) 石造藥師如來座佛
 위 치 : 서울 성북구 정릉2동 637번지 (02)919-0211
 개 요 : 조선 태조4년(1395) 무학대사가 전각을 지어 약사여래를 봉안하고 약사사(藥師寺)로 창건하였다. 무학스님은 나옹스님의 제자로 태조 이성계로부터 각별한 대우를 받고, 조선이 개국되면서

한양으로 수도를 결정하는데도 지대한 영향을 행사하고 묘엄존자(妙嚴尊者)라는 호를 받고 왕사(王師)가 되었던 분으로 한양에 건립한 비보사찰(裨補寺刹)중 한곳으로 지금의 이름인 봉국사로 불리게 된 것은 조선 중엽의 일로서 1699년 현종이 태조의 두 번째 왕비인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의 묘소를 능묘로 복원한 후, 신덕왕후의 명복을 비는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약사사를 지정하고, 나라를 받는다는 뜻에서 봉국사라 고쳐 불렀다.
※ 만월보전(滿月寶殿) : 풍만한 상호와 부드러운 미소가 인상적인 석조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이 봉안돼 있다. 이 약사여래불은 새롭게 불사를 하기 위해 옮기려 하자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아,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보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뒤로 3점의 후불탱화와 신중탱화 지장탱화를 봉안했고 진실한 마음을 갖고 친견하면, 그 공덕과 영험이 항상 나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 광응전 : 칠성탱화와 산신탱화가 봉안돼 있다. 계단을 오르면 산 중턱에 터를 잡고 있다.
☞ : 
    



성북 삼각산 적조사 (三角山 寂照寺 2006. 1. 21) 藥師如來坐像


 위 치 :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2동 593번지   (02)924-5362
 개 요 : 조선 헌종 15년(1849) 혜암성혜(慧庵性慧)스님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절을 염불관선(念佛觀禪)의 도량으로 삼았는데 성혜스님은 동사열전(東師列傳)에 백파(白坡)스님의 제자로 혜암이라는 스님이 등장하고 있어 생존연대를 추정할 때 그를 동일인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그 뒤 폐허로 있던것을 1958년 경산희진(京山喜璡)스님이        


자그마한 한국식 정원 같이 가람을 복원하여 대웅전, 동국선원,

그리고 관음전까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배치되어 풍수의

 이법에 맞게 지어졌다.
 당시 관자재보살의 강림도량으로 알려진 초기 적조사는 암자에

 속하며 설악산 신흥사의 열반당으로, 죽음을 앞둔 노스님들이

 머무는 장소였으나, 후대 한국불교의 정신적 지주였던

경산 대종사의 수행 장소로 경산스님의 수행처이고,

경산스님의 열반처이다.
※ 경산희진(京山喜璡 : 1917-1979) : 위법망구(爲法亡軀)로 조계종 기틀 세운 大禪師 경산(京山)스님은 정화불사의 원력보살이자 교단화합을 위해 헌신했던 불교의 큰 기둥으로 기억되는 인물로 총무원장을 세 번씩이나 맡았을 만큼 종단행정에 밝았고 수행력과 경륜, 지계행을 두루 갖춰 내외의 신임이 두터웠다.
 1979년, 그러니까 그가 입적(入寂)에 들던 해에 세 번째로 총무원장에 취임하게 된 것도 애종심(愛宗心)의 발로에서 비롯됐다. 사실상?원로?급의 반열에 있던 터라 실무직인 원장직에 취임할 형편이 아니었는데도 조계사와 개운사로 갈려 다투는 종단의 불화사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어 그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주위의 권유를 물리치지 못했기 때문으로 결국 노구에 종단불화 해소를 위해 노심초사하다가 순직했다.
 유점사에서 득도한 후 금강산 마하연과 오대산 상원사, 금정산 범어사, 덕숭산 정혜사, 통도사 극락암 등 유수의 선원에서 참선정진을 하였다.
 ☞ : 북악 스카이웨이로 아리랑 고개에서 멀지않다.
성북 삼각산 만법사 (三角山 萬法寺)
 위 치 :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2동 산75-6번지  02-926-0052



 개 요 : 만법사는 아주 작은 사찰이라 사(寺)라고 하기보다는 암(庵)이 어울리나 서울에 있는 사찰 대부분은 암자라 하지 않고 사(寺)자를 주로 쓰는데 만법사도 이렇게 이름을 지었는지 모른다.
 가옥 사이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대규모의 사찰도 일주문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시멘트로 지어진 일주문이 나오고 들어서니 정면에 대웅전이 나타난다. 그리고 우측에는 삼성각이다. 살펴보니 절은 2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부는 좁지만 대웅전과 삼성각이 있고 아래는 요사가 있다. 요사는 현대식과 전통이 어우러진 형식이다.
 절터는 넓지 않다. 그러나 기맥과 산세는 나타난다. 대웅전과 삼성각을 두르는 산세가  느껴진다. 다만 지금은 많은 변화가 있어 담이 둘러쳐져 있고 뒤쪽으로는 20층이 넘는 아파트가 주산처럼 버티고 있다.
 삼성각 옆으로 난 몇그루의 소나무가 과거 이곳이 산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산세가 어떠했는지는 소나무 밑으로 보이는 바위가 증명하고 있다. 강한 산세를 지니고 있었으나 이제는 인작(人作)으로 인해 모든 것이 변했다.
“이제 우측도 개발한답니다.”보살이 하는 말이 심상하지 않다.
☞ :




성북 삼각산 길상사 (三角山 吉祥寺 2006. 1. 21.) 磨崖佛


 위 치 : 서울시 성북구 성북2동 02-3672-5945




 개 요 : 길상(吉祥)이라는 말은 이름, 地名등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佛敎에서는 부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坐禪)할 때 왼쪽 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놓고 오른쪽 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놓고 앉는 것을 길상좌(吉祥坐)라고 하고 그 반대를 항마좌(降魔坐)라고 한다.
 인도신화에서는 비슈누신(神)의 아내를 길상(吉祥)이라 하여 그리스신화의 미(美)의 여신 비너스(Venus)와 비교되기도 하는 길상(吉祥)의 의미가 이리도 상서(祥瑞)롭다.
 이절의 기증자인 김영한 보살의 법명이 길상화(吉祥華) 이기 때문으로 원래 대원각이라는 유명한 요정(料亭)이 있던 자리였으나 소유주 김영한 菩薩이 法定스님과 협의하여 1,000억원 相當의 토지와 건물을(垈地 7천餘坪과 建物 40餘棟) 기증하여 1995.12월 曹溪宗 松廣寺의 末寺로 開院하여 절이 되기는 하였으나 대부분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절이라기보다는 반가(班家)에 들어온 느낌을 받게 된다.
 吉祥寺를 獻上한 김영한 보살은 가난한 집에서 出生, 男便과의 死別, 15歲에 漢城에서  妓生의 길을 選擇, 有名한 妓生이 되고, 日本留學을 마친 詩人 白石(본명 백기행 白夔行, 평북출신)과 사랑과 이별, 料亭運營으로 富를 蓄積하였는데 妓生 眞香은 詩, 書, 畵, 舞, 樂等의 六藝에 능하였다 하며 1995년에 白石文學賞을 制定하고, 白石의 生日에는 禁食을 하였다고 한다.
  1997년12월 吉祥寺 開院式에서 法頂스님은 김영한 菩薩에게 吉祥華라는 法名과 念珠 한 벌을 목에 걸어주셨다 하며 보살은 1999년 11月 境內를 마지막으로 散策하신 후 돌아가셨으며, “나 죽으면 火葬하여 吉祥寺에 눈 오는 날 뿌려주세요 ”라는 遺言대로 遺骸는 눈내리던 12月 境內에 뿌려졌다.
☞ :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 하차. 6번 출구이용-> 마을버스 491번 길상사
성북 삼각산 정법사 (三角山 正法寺 2006. 1. 21.)
 위 치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2동 330-76  (02)762-9570 ,0774



 개 요 : 보광당대선사(寶光堂大禪師) 께서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로 잘 알려진 고성 건봉사(乾鳳寺)의 서울포교당으로 가회동에 설립하였다가 가회동은 수행처로 적합한 분위기가 아니었으므로 1959년 지봉당 석산(智峯堂 石山) 스님께서 이곳 복천암으로 이전하여 복원하고 정법사로 개명하였다.
  복천암(福泉庵)은 조선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당시 대웅전은 서대문 신학대학에 있던 황태자궁을 그대로 옮겨 세웠음) 현 대원각터가 청암장이란 후궁들의 거처로 복천암은 국운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원찰이었으며 현재 정법사에 봉안되어 있는 범종과 열반도(涅槃圖)가 1922년에 제작된 것으로 이들이 복전암의 유물 이라는 점을 추측 할 수 있다.
 정법사 부근의 요정 대원각이 전일에 후궁 터였다는 점에서 복전암이 후궁들의 기도처였던 것은 아닐까 추측된다. 정법사는 대웅전․팔상전․사천왕문․산신각․요사3동 등 7채의 건물 외에 미륵불상이 세워져 있다. 대웅전은 정법사가 이전해 올 당시 서대문 신학대학에 있던 황태자궁을 이전해 온 것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지장․관음 등의 불상과 1918년에 그려진 열반도․후불탱화․
현왕탱화 등이 있다. 1969년에 건립된 팔상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청동으로 만든 천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 : 한성대입구(삼선교)에서 성북동길로 들어선 다음 성북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계속 직진하면 우측으로 길상사(옛 대원각)가 보이고, 길상사를 지나면 사거리가 하나 나온다.(왼쪽 길은 삼청각, 삼청터널로 향하는 길이며, 우측 길은 북악산길이다.) 이 사거리에서 직진하면 바로 독일대사관저가 있고, 그 뒤쪽으로 정법사가 자리하고 있다.

성북 삼각산 경국사 (三角山 慶國寺 2006. 2. 1.)
 위 치 :서울 성북구 정릉3동 753    02-914-2828



 개 요 : 고려 충숙왕 12년(1325) 자정율사(慈淨律師)가 청암사(靑巖寺)로 창건하여 1330년경 부암운묵(浮菴雲黙; 無寄)이 머물면서 천태종의 교풍을 크게 떨쳤으며, 공민왕 1년(1352) 금강산 법기도량(法起道場)을 참배하고 남하한 인도  지공스님(指空)이 주석하였고 조선 중종 1년(1507) 억불정책으로 퇴락 된 채 빈 절로 남아 있다가, 1546년 명종의 즉위로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섭정을 하게 되자, 왕실의 시주로 건물을 전면 중수하고 낙성식과 함께 국태민안을 위한 호국대법회를 열었다. 그때 부처님의 가호로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항상 있기를 기원하며 경국사라 이름을 바꿨다.
 그 뒤 숙종 19년(1693) 승성(昇誠)이 건물을 중수하고 천태성전(天台聖殿)을 신축했으며, 낙암의눌(落巖義訥 ; 能虛도호), 천봉태흘(天峰泰屹), 한국 불교 계맥(戒脈)의 중흥주인 대은낭오(大隱朗旿)가 관음전을 신축했다.
 고종 1년(1864) 왕의 등위축재(登位祝齋)를 열었고, 1868년 호국대법회의 개설, 고종 15년(1878) 치능(致能)이 1915년 석찰(錫察)이 중수, 1921년 단청과 탱화의 대가인 보경보현(寶鏡普賢)이 주지에 취임한 뒤 1979년까지 퇴락된 건물을 중수, 후임으로 주지 이지관(李智冠)이 취임하여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이승만이 대통령 시절 자주 찾았던 곳이며, 부통령 시절에 방한했던 미국의 닉슨(Nixon, R.M.)이 이 절에 참배하기도 했다.
 극락보전극락보전에는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하여 목각탱화, 신중탱화, 팔상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 : 지하철 4호선 돈암역에서 경국사를 경유하는 시내버스143, 162번, 을 타고 정릉4동 사무소 앞에서 하차하면 길 건너에 경국사가 있다.

성북 정릉동 불화 (城北 貞陵洞 佛畵)
 위 치 : 성북 정릉동 북한산 심곡사 서쪽
 개 요 :

     성북 정릉동 불화







성북 삼각산 청학사 불화 (三角山 靑鶴寺 佛畵 2001. 3. 5.)
 위 치 : 성북 정릉동 북한산 청학사 서쪽
 개 요 :












성북 북한산 영취사 (北漢山 靈鷲寺 2005. 4. 11.)
 위 치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3동 산1번지  02-911-0005



 개 요 : 고려 때 신품사현(神品四賢)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서예가(書藝家)로, 이곳의 문수암(文殊庵)이라는 암자를 지었으며 이후 양양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고성(固城) 문수사와 함께 우리나라 문수보살 3대 성지로 널리 알려졌다.
■ 영취사 5층석탑 (靈鷲寺 五層石塔) : 고려 말에서 조선 초 무렵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5층석탑으로, 영취사 대웅전 계단 아래쪽 마당에 있다. 여러 장의 돌을 쌓아올려 대석을 만든 뒤 그 위에 기단과 탑신을 세웠는데, 기단 아랫부분은 후대에 탑을 세우면서 쌓은 것이다. 기단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하층기단은 넓고 높은 편이다. 장대석을 여러 장 이어 결구하였으나 여러 군데 손상이 있으며, 사이 사이에 잡석을 끼워 놓았다. 상층기단은 하층에 비하여 높이가 낮은 편이며, 탑신에 비하여 폭이 약간 좁다.
 기단 위에는 5층의 탑신과 옥개석이 올려져 있는데, 맨 위층의 옥개석과 상륜부분은 없어져 새로 만든 것이다. 1층 탑신은 2층 이상의 탑신에 비하여 높고 가장자리에 희미하게 우주(隅柱)를 모각하였으며, 한 면에 감실(龕室)을 설치해 놓았다. 옥개석은 두툼한 편이고 아래에는 층급 받침이 얕게 새겨져 있다.
☞ : 정릉 청수장-뷱한산 동부관리사무소전 좌측길-성덕교-삼봉사-영추사.
 가는 길은 좋은 편이며 소요시간은 1시간정도.



성북 정릉동 마애삼존불 (城北 貞陵洞 磨崖三尊佛 2011. 10. 27.)
 위 치 : 서울시 성북구 정릉3동 산 87-1 어린이 숲 유치원
 






성북 정릉동 마애약사불 (城北 貞陵洞 磨崖藥師佛 2011. 1. 8.)
 위 치 : 서울시 성북구 정릉3동 국민대학교 뒤 심곡사 뒤 등산로
 개 요 :




성북 삼각산 흥천사 (三角山 興天寺 2006. 7. 9.)
 위 치 :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595

     흥천사 북극전과 산신각



 개 요 : 조선 태조 6년(1397) 태조의 현비(顯妃)인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 의 능인 정릉(貞陵)을 수호하는 원찰(願刹)로 창건되어 정릉의 조포사(제사에 쓰는 두부를 만드는 절)로 지금의 중구 정동에 있었으며, 국가적 행사가 자주 열렸고 건물도 170여 칸이나 되는 대가람으로 조계종의 본산(本山)이었다.
 대개는 왕의 능이라 하더라도 성 밖에 두는 것이 상례이나 태조는 궁궐에서 가까운 곳에 왕비의 능을 마련하고, 왕비의 명복을 위해 능의 동쪽에 당대의 최대의 가람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각종 국가 공사를 시행하였던 김사행(金師幸), 김주(金湊) 등에 명하여 흥천사를 창건하고 태조7년 절 북쪽에 사리전(舍利殿)을 지어 석가여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안치한 조성에 정성을 기울였다.
 이태조의 사후 태종은 신덕왕후의 능을 도성 밖으로 옮기고, 조선왕조의 유학 장려로 왕실의 지원이 줄어들면서 흥천사는 쇠락하여 연산군 10년(1504) 화재로 사리전만이 화재를 피하였지만 복구되지 않고 폐허로 방치되었던 흥천사는 중종 5년(1510) 3월 중학(中學)의 유생들이 이단(異端)을 쓸어버린다고 밤에  불을 질러 보물, 불경과 통도사에서 전해오는 우리나라 유일의 석가여래의 사리를 안치한 사리전 마저 불에 타 폐사되었다.
 현종 10년(1669) 석문(石門)밖 합취정(合翠亭)터로 옮기고 신흥사(新興寺)라고 개칭하고 정조 18년 (1794) 승려 성민(聖敏), 경신(敬信)이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고 철종 4년(1853) 구봉계장(九峰啓壯)이 극락보전은 중수하고 고종 2년(1865) 흥선대원군의 지원으로 각도에서 시주를 받아 절을 중창하였다. 이때 흥선대원군은 흥천사(興天寺)라는 이름으로 복원하도록 하고, 휘호를 내려 지금도 만세루에 그 현판이 걸려 있다.
성북 만해 한용운 심우장 (城北 萬海 韓龍雲 尋牛莊 2008. 2. 19.)
 위 치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2-1, 2 (심우장길 16)



 개 요 : 3.1운동 때 33인 중 불교계의 대표인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이 1933년에 짓고 만년을 보낸 곳으로 한용운 선생은 한일합방이 체결되자 중국에 망명하여 방랑 하다가 1913년에 귀국하여 불교 학원에서 교편을 잡고, 불교대전, 조선불교유신론을 펴냈으며 1916년 월간 유심을 발간하는 등  3.1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심우장을 짓게된 경위는 3.1운동으로 3년 동안의 옥고 끝에 출옥한 한용운선생이 성북동골짜기 셋방에서 빈한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 때 金碧山 스님이 자기가 초당을 지으려고 송림 속에 사둔 52평을 드리겠으니 몇 간 집을 지어 보라고 권유하였으나 집 지을 1,000원 정도의 돈이 없어 주저하다가 부인 유씨(兪氏)의 소지금 약간과 조선일보사 방응모(方應謨)사장과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건평 17.8평 규모의 집을 일제의 총독부와 등진 곳에 북향으로 집을 짓고 尋牛莊이라 이름짓고 광복 1년 전인 1944년에 중풍으로 운명할 때까지 살았으며 한용운 선생이 서재로 쓰던 방에는 위창 오세창(吳世昌)이 쓴 심우장(尋牛莊)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심우장(尋牛莊) 이라는 이름은 한용운 선생의 아호 중에 만해, 오세인(五歲人), 성북학인(城北學人), 목부(牧夫), 실우(失牛) 등이 있는데 그 중의 목부는 소를 키운다는 뜻으로 마음 속의 소를 키움은 모든 사람들이 가야할 왕생(往生)의 그 길을 멈출 수 없음을 나타내는 뜻을 갖고 있으며 심우장이란 불교의 무상대도(無常大道)를 깨우치기 위해 공부하는 집, 공부하는 인생을 의미 한 것으로 그의 수양의 경지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집을 지을 당시 소나무 숲에 지어진 이 집은 매우 한적하였으며 지금도 당시에 손수 심은 향나무 한 그루가 높이 자라고 있고 1965년 한일 협정이 체결되며 심우장의 건너편 대교단지(大敎團地)에는 일본 대사관저가 자리잡고있다.



성북 간송 미술관 (城北 澗松美術館 2009. 5. 20.)
 위 치 :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97-1   02-762-0442



 개 요 : 간송미술관은 전형필(全鎣弼)선생이 1929년부터 우리나라 전적․서화․도자기․불상 등의 미술품 및 국학자료를 수집하여, 1936년 지금의 미술관 건물인 보화각(保華閣)을 지어 보관해왔다. 대다수 국보급들로 우리나라 제일의 고서화 소장처로 한국민족미술연구소를 발족한 이래 1971년 10월부터 매년 5월과 10월에 각 2주씩 소장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다.  
※ 석조 미륵불입상(石造如來坐像) : 높이 2.1m의 불상은 돌기둥 같은 체구의 장대한 화강석 미륵불로서 요철있게 표현하여 질박하면서도 박력있게 나타내었는데 이런 모습은 고려 석불에 나타나는 특유한 특징이다.
※ 석조 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舍那佛坐像) : 높이 1.5m의 화강석으로 된 이 불상은 고려시대 중기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충청북도 어느 절터에서 간송미술관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삼층석탑(三層石塔) : 높이 2.2m의 화강석 3층 석탑으로 근래에 만든 기단 위에 올려져 있는 이 탑은 조각한 장식이 매우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탑신부의 짜임새가 간결하고도 바르고 아담한 이 탑은 아담하고 보기드문 작은 탑으로서 고려시대 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석조 팔각부도(石造八角浮屠) : 전형적인 신라시대의 팔각 원당형의 화강암 승탑이다. 높이 1.6m인 이 부도는 하대석 중대석 탑신과 옥개석으로 이루어졌다. 전체적으로 아주 간결하고 바르고 아름다우며 육중한 기품을 풍기고 있는 이 석조 팔각부도는 탑파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 지하철 4호선 한성대 입구역 하차 10분 도보


성북 북한산 내원사 (北漢山 內院寺 2007. 12. 23.)
 위 치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산1번지 (02)941-2012



 개 요 : 고려 현종 19년(1028)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했다고 하나 1028년은 지눌스님의 생존연대(1158˜1210)와 크게 떨어져 있어 신빙성이 없고 내원사라는 이름은 1969년 이재현(李再現) 스님이 대웅전을 새로 지을 때 건물에서 내원사라는 이름이 나왔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다.
 1824년에서 1834년 사이에 김정호가 제작한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수도 서울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린 도성도(都城圖)로써 도성의 주요 도로와 시설, 성 밖의 마을과 산, 절까지도 자세하게 나타낸 것으로 이 지도를 보면 정릉 위쪽에 화계사와 내원암이 나타나 있는데, 현재 내원암이 자리한 곳과 같은 위치이다.
 이로 볼 때 내원사는 내원암(內院庵)으로 불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사찰에는 관음보살의 영험과 신주(神呪)를 새긴 백의대사불도(白衣大士佛圖)라는 목판이 전하는데 목판의 간기(刊記)를 보면 함풍구년 기미삼월일 판재 삼각산 내원암(咸豊九年己未三月日 板在三角山內院庵)이라 적고 있어 1조선 철종 9년(1085)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수선전도나 백의대사불도 목판은 모두 1820년대에서 1859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 시기에 내원사는 법등을 잇고 있었던 것인데 그 후 사찰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폐사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원사의 범종루 동쪽에 있는 약수터 바위에는 시주자의 이름과 1961년 9월 석불암(石佛庵)에서 만들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이때에는 석불암으로 불려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며 1981년 성묵(性黙) 스님이, 1996년는 정수 스님이 범종루와 요사를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 북한산국립공원 정릉지구 매표소 지나 300m 가면 국립공원관리공단 북한산관리사무소 담장을 따라 오른쪽 길을 800m 올라가면 내원사.

성북 안암산 보타사 (安岩山 寶唾寺 2004. 10. 27.)
 위 치 : 서울 성북구 안암동5가 157 (02-926-4069)



 개 요 : 보타사는 개운사의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사찰로써 내력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대웅전 뒤쪽 바위에 마애불(磨崖佛)이 있는데 서울에 있는 4개의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마애불 중에 하나로 원래 백불(白佛)이 아니고, 근래 하얀 색으로 칠해졌으며 머리 좌우(양쪽 귀부분)에는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긴 장식이 달려있는 관을 쓰고 있는데 불상의 관(冠)치고는 매우 특이하여 얼핏보면 불상으로 보이지 않고, 무당(巫堂)들이 모시는 무속신(巫俗神)의 분위기를 풍기는데, 아마도 무속신앙(巫俗信仰)이나 기타 여러 세속적인 것에 영향을 받아 저런 독특한 모습이 나왔을 것으로 판단된다.

  관세음보살 수호신장 원패(圓牌)
 마애불의 어깨부분 좌우에는 조그만 구멍이 패어있는데 보호각(保護閣)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보호각은 오래전에 없어져버렸으나, 바위가 불상의 보호자 역할을 하여 잘 보존되고 있으며, 불상 오른쪽 아래에는 제작 당시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있으며 이는 서울 홍지동(弘智洞) 보도각 백불(白佛)과 조성 시기, 얼굴모양, 전체적인 모습, 수인(手印), 빨간 입술도 똑같고, 입술 주변과 턱에 검은 점도 같은 곳에 비슷하며, 둘 다 완벽한 백불(白佛)이고,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한 것도 같고... 거의 머리장식만 빼고는 모두 비슷한 두 불상간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는 것으로(안암동 보타사에서 홍지동 백불까지 10km도 안됨)봐서 아마도 이들간의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원패(圓牌) : 관세음보살님의 수호신장님 나무금강회상불보살 (가운데) 도리회상성현중(오른쪽) 옹호회상영기등중(왼쪽)
☞ : 6호선 2번 출구 개운사에서 1km
성북 안암산 개운사 (安岩山 開運寺 2004. 10. 27.)
 위 치 : 서울 성북구 안암동5가 157 (02-926-4069)



 개 요 : 조선 태조4년(1396)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지금의 고려대학교 이공대학 부근에 영도사(永導寺)라 창건했다.
 즉 무학대사가 도성 동쪽 5리쯤에 영도사를 창건한 이후 정조3년(1779) 정조의 후빈이었던 홍빈이 죽자 명인원이라는 묘자리를 다른 곳도 아닌 영도사(永導寺) 자리에 쓰게 되면서 반강제적으로 왼쪽 등성이 몇 리쯤으로 옮기게 되어 지금의 자리로 절을 이전하여 이름을 개운사(開運寺)로 고쳤다고 하며(혹은 고종이 왕위에 오르고 영도사를 개운사라는 이름으로 개칭, 이재황(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고종의 이름) 소년은 한양 영도사의 벽담당 도문 스님 처소에서 주로 양육되고 있었다.
 소년은 언젠가 영도사에 가서 노닐다가 절의 벽 한 모퉁이에 이름을 써놓았는데, 뒷날 왕위에 오른 다음 영도사라는 절 이름을 바꾸어 개운사로 고쳤으며 이는 임금의 친필 글씨인데다 벽담스님을 존숭하는 뜻에서 취한 조치이다.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열었다는 뜻이다." 라고 하여 이름이 바뀐 계기가 고종의 소년시절에 마련되었음을 알려주며 고종의 즉위 이후(1863) 언젠가 개운사로 사찰명을 바꾸었다고한다.
 개운사는 20세기 한국 불교의 개혁을 주도한 사찰로 이름이 높은데, 1926년 근대 불교의 대석학이었던 박한영 스님이 머물면서 강원을 이끌어 나갔던 일이 그 시초였다고 할 수 있으며 1973년대 부속암자인 대원암에 탄허(呑虛)스님이 머물면서 역경(譯經) 사업에 종사하였다.
  부속암자로는 대원암, 보타사 등이 있다.
☞ : 6호선 2번 출구


성북 낙 산 보문사 (洛 山 普門寺 2004. 10. 27.)
 위 치 :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 3가 168번지 02-928-3797



 개 요 : 고려 16대 예종10년(1115) 담진국사(曇眞國師)에 의해 창건되어 보문사라고 명명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숙종 18년(1692) 중건되었다. 10여 동의 당우(堂宇)로 형성된 대가람으로서 탑골에 있다 하여 탑골승방으로 더 알려져 있고, 여승의 수도처인 강원으로 경전을 공부하는 요람이 되었으며 선불장의 건립으로 선원까지 개원하여 명실상부한 비구니 종찰로서 200여명이 넘는 대중이 상주하였다.
 1972년에는 뒷산의 암벽을 뚫어 경주 석굴암을 본떠 석굴암을 제작하였는데 23개월 동안 진행되었으며, 湖南地方의 화강석과 경기석등 총 2,400톤의 화강석이 사용되었다.
 전체적인 것은 경주 석굴암의 것을 그대로 따랐으나, 다른 점은 경주 석굴암 정면에는 문이 하나인데 비해서 여기는 세 개의 문으로 되어있으며, 공간상의 문제로 팔부신장(八部神將)이 생략되었다.
 石窟庵 內部 聖賢의 配置는, 本尊佛을 기준으로 左로부터 제석천왕- 문수보살- 다문제일아난존자- 밀행제일라후라존자- 지계제일우팔리존자- 천안제일아나율존자- 논의제일가전련존자- 십일면관세음보살- 설법제일부루나존자- 해공제일수보리존자- 두타제일가섭존자- 신통제일목건련존자- 지혜제일사리불존자- 보현보살- 대범천왕 順이며, 위 감실 안의 坐像은 左로부터 다보탑-선의보살- 바수밀보살-동자보살-정취보살-외도보살 -비구보살-미륵보살-장자보살-석가탑 順이다. 그리고 외부 (立像은 左로부터 나라연금강-다문천왕-증장천왕-광목천왕-지국천왕-밀적금강 順이다.
 ※ 선불장이란 부처를 뽑는다(選佛)라는 뜻으로 일종의 선방(禪房)으로서 시방세계(十方世界)에서 같은 뜻을 가지고 모여든 선객(禪客)들이 낱낱이 무위(無爲)를 배우는 곳이다.
성북 낙 산 미타사 (洛 山 彌陀寺 2006. 7. 9.)
 위 치 : 서울 성북구 보문동 3가 3-51



 개 요 : 고려 초 광종 원년(950) 혜거국사(惠居國師)가 창건하고, 충숙왕 원년(1314) 혜감국사(慧鑑國師)가 중건했다고 하는데 고려 때 고승(高僧)인 혜거국사와 혜감국사의 비문(碑文)에는 이 절을 개창, 중창한 사실이 나타나지 않는다.
 한편 고려 문종 원년(1047) 대웅전 뒤 단하각(丹霞閣) 왼쪽 언덕 위에 석탑을 쌓자 이 근처를 탑골(塔洞)이라고 부르면서 미타사를 탑골 승방(塔洞僧房)이라고 칭하였다.
 조선시대에 탑골 승방은 옥수동의 두뭇개 승방, 석관동의 돌곶이 승방, 숭인동의 새절 승방(청룡사)과 함께 여승들이 거처하는 성밖의 네 이사 중의 하나로 꼽았다.
 조선 세조 3년(1457)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에 의하여 중수(重修)되고 순조 원년(1801)에 4차 중수, 헌종 2년(1836) 운처 당인선사(雲剔堂仁禪師)가 5차 중수, 1969년 송계주(宋季珠) 주지스님이 중창했다.
 절의 대웅전은 지하와 지상 1․2층의 목조 기와로 지어져 2층을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총무당은 조선조 말기의 전형적인 관아 건물로, 장대석(長臺石)으로 기단을 돌렸다. 중앙 어간(御間) 창방에는 '총무당(總武堂)'이라는 현판이 있고, 앞면의 여덟 개 기둥에도 각각  주련(柱聯)이 붙어 있다.
 탑골 승방(僧房)이라고 불리우는 이 절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도량답게 단아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조계종 소속 사찰로 보문사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본래 이 절은 지금의 경동고등학교 자리에 있었는데 일제 때에 그 자리가 강제 헌납되어 현재의 위치로 절을 옮겼다.
☞ :

성북 월곡정사 (月谷精舍 2006. 2. 1.) 眞覺宗本部
 위 치 : 서울특별시 성북구 하월곡동 22번지



 개 요 : 신라 선덕여왕 때 고승 명랑(明郞)이 용궁에서 신인비법(神印秘法)을 얻어 창설한 밀교(密敎)의 종파인 신인종(神印宗)에 연원을 두고 있다. 그 후 경주 ·포항 ·대구 등지에 심인당(心印堂)을 설립, 49년 12월 심인불교라 하였다가, 53년 8월 총인회(總印會)를 대구에 설치하고 교명을 대한불교진각종으로 변경하였다. 육자진언(六字眞言)을 염송하는 밀교종파(密敎宗派)로서, 법신(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체(體)가 되는 육대(六大)와 법신불의 상(相)이 되는 사만(四曼), 법신불의 용(用)이 되는 삼밀(三密)로 일체에 큰 자비를 베풀고 현세정화와 즉신성불(卽身成佛)함을 종지(宗旨)로 삼고 있다.
전통 종교인 불교를 육자진언(六字眞言)을 통해 불법의 도리를 깨달은 종조 회당손규상 대종사의 원력에 의해 불법의 심수(心髓)인 정통밀교의 법맥을 심인(心印)으로 전수한 종조 회당대종사의 자증교설(自證敎說)을 종지로 하여 교법을 세우고 종문(宗門)을 열어 1947년 6월 14일 진각종문을 열었다.
 ◇ 항마염송(降魔念誦) : 진언을 크게 소리내어 하는 염송, 소리를 맞추어 같이 염송하는 방법으로 번뇌를 막고 선정에 드는 법이다.
◇ 삼마지염송(三摩地念誦法) : 혀를 위 천정에 붙이고 뜻으로 진언자를 관하는 염송법이다.
◇ 연화염송(蓮花念誦) : 진언을 자기 귀에 들리도록 역력 분명하게 소리내어 번뇌와 수마를 없이 하여 선정에 드는 법이다.
◇ 금강염송(金剛念誦) : 입을 다물고 혀만 놀리어 진언을 염송한다.
☞ :  지하철 6호선 월곡역3번출구 동덕여대 방향


강북 삼각산 미아사 (三角山 彌阿寺 2008. 3. 11.)
 위 치 : 서울시 강북구 미아7동 852-125   (02)980-0286
 개 요 : 신라 진덕여왕 8년(654 癸丑年 七月 十五日) 원효스님께서 창건하여 조선 영조 18년 3월20일에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불교를 핍박하던 시기라서 박문수(朴文秀)어사가 사찰 재건복구를 허락하지 않아 300여년 동안 빈터(寺址)로 내려오다 이조말엽 위정시대에 과거 미아사가 인연(因緣)이된 수도승(修道僧)의 원력으로 미아사가 복원 되었다.
 원래 미타사로 800여년을 호명(呼名) 하다가 무학대사가 미타사를 중수(重修)중에 아미타불 넉자중에 불자(佛字)는 차치하고 아미타 3자를 놓고 해석하시되 미타보다는 미아가 수승하다 하여 미아사로 하였다. 
 그 후로 절 이름(寺名)을 따라 미아리 고개, 불당골(佛堂谷) 이라는 명칭이 생기고 미아리라 불리게 되었데 지명풀이를 하면 넓은 언덕이란 뜻인데, 고려 말기 이곳의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을 그려 미아(彌阿)로 명명됐다고 전하고 불당골의 원효대사가 창건한 미아사에서 유래했다는 얘기가 있는가 하면, 병자호란 때 되놈(胡人)들이 넘어왔다 해서 되너미고개라고 하는데 이 고개를 일명 미아리고개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미아라는 말을 한자 뜻 그대로 풀면 언덕에서 쉬어간다는 뜻인데, 누군가 이곳에서 쉬어갔다는 것일까?
※ 무너미 근처의 마을 : 18세기 중엽에 그린 것으로 추측되는 사산금표도(四山禁標圖)에는 호유현(胡踰峴)이라 씌어있고, 같은 시기에 겸재(謙齋) 정선(鄭敾)이 그린「도성대지도(都城大地圖)」와 고산자 김정호가 그린 수선전도(首善全圖)에는 적유현(狄逾峴), 적유현(狄踰峴)으로 기록되어있다. 이는 우리말 되너미를 한자음으로 고친 것이라 생각된다.
 원래 성북구의 돈암동이란 동명은 되너미고개(돈암현. 敦岩峴)에서 기원된 것인데 미아동 역시 이 고개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면 되너미고개에서 두개의 동명이 생긴 셈이다.
강북 삼각산 도선사 (三角山 道詵寺 2004. 5. 31.)
 위 치 : 서울 강북구 우이동 산 264  02-993-3161/3




 개 요 : 신라 말 경문왕 2년(862)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이곳의 산세가 1천 년 뒤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불법을 다시 일으킬 곳이라 보고 절을 세운 다음, 큰 암석을 손으로 갈라서 마애관음보살상을 조각하였다고 하는데... 이 석불은 영험(靈驗)이 있어 축수객이 끊이지 않으며 북한산성을 쌓을 때 승병들이 도선사에서 방번(防番)을 섯다고 하며 조선 고종 24년(1887) 임준(任準)이 5층탑을 건립하고 그 속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奉安)하였다.
 대웅전 옆 뜰에는 보리수가 있는데 200여 년 전에 인도에서 온 고승이 심었다고 한다.
※ 도선국사의 마애불 조성 전설
 도선사의 주산(主山)인 삼각산은 옛날에 백제 온조왕(溫祚王)의 수도로 건립되었고, 조선왕조 5백년의 역사가 전개되었던 유서 깊은 곳으로 이 산에 최초로 사찰을 창건한 개산조(開山祖)는 1,100여년전의 라말려초의 유명한 도승이었던 도선국사로 신라의 국운이 쇠퇴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할 무렵인 흥덕왕 원년(興德王·826) 전남 영암에서 속성은 김씨로 태어나 15세때 화엄사로 출가하여 스무살에 동리산에 계시던 혜철(蕙哲)선사에게서 불도를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23세에 천도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백계산에 옥룡사(玉龍寺)를 창건하고 안주하자 사방에서 운수납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한다.
 스님의 명성을 들은 헌강왕은 스님을 대궐로 모시고 법문을 듣곤 하였는데, 효공왕 2년 스님이 입적하자 왕은 요공국사(了空國師)의 칭호를 추증하였다.
■ 대방중창기(大方重創記)에 의하면 불법과 천문, 지리의 심오한 이치를 통달한 도선국사가 명산 승지를 두루 답사하다가 삼각산에 이르러 산세가 절묘하고 풍경이 청수한 이곳에서 천년후 말세 불법이 재흥하리라 예견하고, 스님은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7일 기도에 들어갔다. 사흘이 지났는데, 갑자기 돌풍이 일고 모래바람이 휘몰아치고 호랑이들이 스님을 에워싸고 포효하며 어지럽게 날뛰었는데 이는 기도를 방해하려는 산신의 소행이었으나 스님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기도에만 정진하다가 기도를 마친 스님은 일갈지하에 장풍을 날려 신통력으로 거대한 바위를 둘로 가르자 이에 놀란 산신은 스님의 위력에 굴복하고 물러나니 스님이 몸소 가른 바위의 한쪽면에다 20여척에 달하는 관세음보살상을 주장자로 새겨 마애불을 조성하고 초당을 지어 절을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오늘날 아무리 살펴봐도 정을 사용하여 쫗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로 남아있고 이곳이 지금의 석불전(石佛殿)이다.



               도선사를 둘러싸고 보호하는 삼각산
※ 지봉선사(智峯)의 얼굴전설 : 도선사 서북쪽에 솟아 있는 지봉(智峯)은 그 밑 부분에 스님의 얼굴이 부각되어 있다고 하는데, 조선 후기 이 절에는 급수(汲水)로 공덕을 쌓은 지봉선사가 있었는데 어느 날 흥선대원군이 왔다가 지봉스님이 떠서 올리는 시원한 생물을 마시고 스님을 보니 범상치 않아 법담을 청해 듣고 감명을 받아 훗날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스님에게 판서직을 내렸다 한다. 선사가 입적한 뒤 어느 날 조선사신이 청나라에 갔다가 뜻하지 않은 대신의 초대를 받게 되었다. 그 대신이 말하기를 ‘부인이 꿈에 조선 스님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잉태를 했는데 태어난 아들의 손바닥에 지봉(智峯)이라는 글씨가 써있으니 조선 땅에 지봉이라는 승려가 있는가 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스님이 열반하면서 조선 땅에 불법이 전성할 때 내 얼굴이 지봉 밑에 나타나리라 했는데 오늘날 이 절이 융성하니 과연 스님의 얼굴이 지봉 밑 부분에 부각된다는 것이다.



강북 북한산 마애관세음보살상
(北漢山 磨崖觀世音菩薩像 2011. 11. 12.)
 위 치 : 서울 강북구 우이동 산 68-1



 개 요 : 신수터 민불

  강북 북한산 마애관세음보살상
    (北漢山 磨崖觀世音菩薩像)
 ☞ : 우이동 종점에서 도선사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지장암입구, 우측으로 지장암(地藏庵) 표지판과 계곡에 설치된 보에 걸린 다리를 건너면 지장암이며 지장암을 막지나서 왼쪽으로(약간 언덕) 산으로 이어진 길을 잠시 간다. 길이 약간 높아지면서 왼쪽으로 1000여 평은 될 만한 공터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폐가 같은 건물이 보인다. 이 공터로 갈 길을 잡는다. 공터 끝에 석탑이 있고, 이 부지 끝이 계곡과 만나는 지점인데, 오른쪽으로난 계단길을 따라 심어진 회양목을 따라 잠시 오르면 경사진 계단과 그 위 바위에 정병(淨甁)을 든 마애관세음보살이 길손을 맞는다. 명문에 관세음보살이라고 쓰고 불기2991년 10월이라 했으니 1964년에 제작한 것이다.





강북 우이동 금봉암터 마애불좌상
(牛耳洞 金鳳庵祉 磨崖佛坐像 2011. 11. 17.)
 위 치 : 강북구 우이동 지장암 능선 중간



 개 요 : 한 분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 석가모니불이며, 다른 한 분은 부채를 들고 있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다.
☞ : 우이동 버스 종점(109, 142)에서 도선사 방향으로 600~700m 쯤 걸으면 우측으로 지장암(地藏庵) 표지판과 우이계곡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면 지장암이며 지장암을 막지나서 왼쪽으로(약간 언덕) 산으로 이어진 길을 잠시 간다. 길이 약간 높아지면서 왼쪽으로 1000여 평은 될 만한 공터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폐가 같은 건물이 보인다. 이 공터로 갈 길을 잡는다. 공터 끝에 석탑이 있고, 이 부지 끝이 계곡과 만나는 지점인데, 오른쪽으로난 계단길을 따라 심어진 회양목을 따라 잠시 오르면 경사진 계단과 그 위 바위에 정병(淨甁)을 든 마애관세음보살이 맞는다.
 그곳에서 계곡으로 오르지 말고 계단에서 내려와 마애불 옆 왼쪽 능선으로 방향을 잡으면 지장암 능선의 시작 지점으로 철망으로 막은 울타리가 있으나 잘보면 한컨이 뚫여져 있다.영봉(靈峰)으로 이어지는 길인데 능선길은 편한 흙길로 이어지고 능선 시점(始點)에서 10여분 쯤 오르면 좌측 능선 아래로 바위들이 나타나고 길 옆 작은 바위들이 뫃여있는(4-5조각) 돌 가운데에 거의 지워진 붉은 페인트 글씨 '금봉암’이 보이는데 (이것을 먼져 확인해야..) 여기에서 70-80여m 오르면 삼거리 길이 나오고 한쪽은 하얀 마사토로 아래 계곡으로 이어지는데 그길을 따라 계곡 밑으로 내려가 오른쪽 위를 올려다보면 축대를 쌓아놓은것이 보이고 그 산모퉁이를 왼쪽으로 돌아가면 오른쪽 큰 바위 하단에 바로있다.
 아니면 삼거리에서 조금더 (약 10m) 더 오르면 왼쪽 바위가 많은 쪽 희미한 오솔길로 접어들어 모퉁이 30여m 앞 바위를 돌면 마애불이다.
강북 우이동 마애불좌상 (牛耳洞 磨崖佛坐像)
 위 치 : 강북구 우이동 지장암 능선



 개 요 : 올라왔던 능선의 오른쪽으로 올랐던 첫날에 큰 바위 밑에도 촛불을 켜고 기도를 드린 흔적이 보이고 기도처인듯한 바위에 마애불을 조성했다.
 수인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시무외인같다. 얼굴과 상체는 양각이며 하체는 선각으로 처리하였고, 회분으로 얼굴과 몸통위를 칠했다.
☞ :


강북 삼각산 영산법화사 (三角山 靈山法華寺 2011. 11. 17.)
 위 치 : 서울 강북구 우이동 산 68-1   02- 900- 2207



 개 요 : 영산법화사는 개창 조사祖師 이법화李法華 큰스님께서 불기 2512년(1968) 태세 무신 4월 12일 말법만년미증유대만다라본존末法萬年未曾有大曼陀羅本尊을 서울 우이동 삼각산 도량 암벽에 각자刻字하신 날을 개창일로 하여 지금에 이르고, 묘법연화경의 말씀을 통해 세계평화를 시현하자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본 교단의 개창 조사(祖師)이신 이법화(李法華) 큰 스님은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신 전생 선연(善緣)으로 입산수도 하여 작승(作僧)하셨던 숙세(宿世)의 인연공덕(因緣功德)이 있어 차생(此生)에서 법화경(法華經)에 귀의하신 것이 27세 되던 가을 이었는데
 스님은 세존의 출세의 본회(本懷)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며, 일대사 인연(因緣)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며, 일체 중생의 즉신성불(卽身成彿)의 경이며, 말법악세(末法惡世)를 구원하는 경임을 깨닫고 크게 서원을 세우시어, 1961년 9월 우이동에 삼각산도량을 개설하시고, 1966년 10월 13일 일본산 묘법사(妙法寺)의 개산주(開山主) 후지이 닛다스(등정일달)스님으로부터 부처님 사리 1과(果)를 증정 받으셨다. 1970년 10월 13일 태국 폰셍나껀 스님으로부터 부처님 사리 10과(果)를 증정 받으셨다. 1977년 7월 6일 조사 큰스님께서 열반하시고, 김행산(金行山) 스님께서 2대 법주로 취임하셔서 큰 스님의 뜻을 받들어, 세계평화불사리탑 건립을 위해 온 힘을 기울여 불기 2530년 장흥에 원당(願堂)을 건립하셨으며, 후학(後學)을 위해 불서(佛書) 출판 등 근본도량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더욱 정진하고 계십니다.
☞ : 우이동 입구에서 도선사 방향으로 약 6분 정도 오르면 우이분소가 나온다. 여기서 우측 다리를 건너 약20분 오르면 영산법화사이다.
 

강북 북한산 백운암 마애약사여래좌상
(北漢山 白雲庵 磨崖藥師如來坐像 2011. 11. 3.)
 위 치 : 강북구 우이동 인수봉밑 백운암 대웅전 뒤
 개 요 :







☞ :
 잠시 산길을 올라 육모정고개에서 북쪽 능선길이 상장능선이다. 이 길이 도봉산 주능선, 우이능선을 지나 우이령 고갯마루를 건너 상장봉에 오르고 이어서 솔고개, 노고산으로 이어 가는 한북정맥(漢北正脈)의 핵심구간이다.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 선생(1712~1781)은 조선조 영조 때 실학자인데, 이 땅의 산줄기를 산경표(山經表)라는 산의 족보로 정리 하면서 1대간(大幹), 1정간(正幹), 9정맥(正脈)으로 구분하였다. 이제는 산길을 걷는 이라면 백두대간, 한북정맥, 낙동정맥… 이렇게 산줄기를 구분한다.
 세종실록지리지나 이중환 선생의 택리지(擇里志)를 비롯하여 우리 조상들의 산(山)이라는 개념은 물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은 스스로 물길을 나누는 마루가 되는데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으니, 그 속에서 살 만한 곳을 찾아서 사는(卜居論) 것이 산을 보는 관점이었다. 산경(山經)이라는 말의 어감에서 느끼듯이 삶과 떨어져서 산을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산과 산 사이 그 품에서 나고, 그 곳에서 자식을 낳고, 기르고, 그 사이 물길로, 산길로, 고갯길로 섞이며 살았던 것이다. 다행히 1913년 최남선 선생의 조선광문회에서 산경표를 찾아 영인본을 발행함으로써 우리 선조들의 산족보를 널리 알릴 수 있었던 점은 다행이다.
강북 북한산 인수봉 선각마애불좌상 / 그림
(北漢山 仁壽峰 線刻磨崖佛坐像 / 畵 2011. 11. 3.)
 위 치 : 강북구 우이동 인수봉 남쪽 하늘길 입구 변소금지 오름길 부근





 개 요 : 북한산 암벽등반 코스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수봉에 미륵부처님을 선각(線刻)한 마애불은 서울 우이동 도선사 안양암에서 출발하는 북한산 등산로 하루재 코스에서 1시간 여 떨어져 있는 인수봉 남측 중간지점에 새겨져 있다.
 이 마애불은 세로 2~2.5m, 가로 1.5~2m 규모이고, 바로 옆에 ‘彌勒(미륵)’이란 글씨가 함께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볼 때 미륵부처님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 신대현 사찰문화연구원은 “마애불의 형상과 조각기법으로 볼 때 100년 이상 된 것은 아닌 듯 하고 준 전문가에 의해 근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마애불 인근에 햇볕을 가렸던 차양막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미륵부처님 앞에서 종교 활동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불교유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 : 우이동 종점에서 우이령 방향으로 그린파크 앞을 지나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길에서 좌측 우이령길로 십여분 걸어 오크밸리라는 카페 앞에서 좌측으로 영봉 2.4km, 육모정 1.2km 표지판을 따라 오르면 영봉(靈峰)
 에서 인수암을 약간 못미칭 곳에서 등산길이 아닌 암벽타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10여분 올라 인수봉 암벽 뿌리 부분에 다다르면 왼쪽으로 암벽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
 그곳으로 5분여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마애불화가 보이고 2-3분 오르면 선각불이 보인다. 그길로 5분여 오르면 영봉으로, 왼쪽으로 내려가면 백운대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가면 백운대를 돌아 육모정 고개로 우이동으로 하산길이거나 산을 넘어 양주 밤골로 가게된다.
■ 필히 분필을 가져가 선을따라 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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