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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사람이 편안히 깃든 슬로시티

應觀 2017. 5. 6. 20:16

자연과 사람이 편안히 깃든 슬로시티

서울에서 북동쪽으로 차를 달리면 금세 남양주시 경계와 맞닥뜨린다. 어느새 원경은 봄을 닮은 연녹색으로 물들고, 곁에서는 햇살 머금은 한강이 유유히 흐른다. 그 풋풋한 풍광에 반해 하릴없이 핸들을 돌리다 보니 마을을 등에 얹은 주황색 달팽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꽁무니에 느긋하게 따라붙은, 모난데 없이 동글동글한 여섯 글자. 남양주 조안면에 위치한 ‘슬로시티 조안’은 출발한지 30분만에 호젓한 모습을 드러낸다. 한강 상수원을 옆구리에 낀 덕분에 70~80년대 개발 붐이 한 발짝 비껴간 곳. 그래서 5천이 채 안되는 사람들이 사계절의 섭리에 맞춰 살아가는 그야말로 한적한 시골. 천혜의 자연은 21세기를 넘기자 그 영롱한 빛을 발했다. 2010년 11월, 조안면이 영국에서 열린 국제슬로시티연맹 이사회에서 슬로시티로 지정된것. 수도권 최초의 슬로시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슬로시티 조안(鳥安)은 ‘새가 편안히 깃든다’는 뜻에 걸맞게 한만한 자태를 뽐낸다. 전원마을, 장수마을, 연꽃마을, 전원일기마을 등 정겨운 이름을 지닌 열두 개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사방이 온통 녹음이요, 청수다.

면면히 이어진 역사와 정신

슬로시티 조안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필시 거대한 위인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나라최고의 실학자이자 개혁가, 다산 정약용이다. 그의 처음과 끝은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에 매여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으며 18년 기나긴 유배 생활 끝에 귀향, 7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줄곧 고향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양주는 생가인 여유당과 그의 묘, 후대에 조성한 실학박물관, 다산문화관, 다산생태공원 등을 한데 모은 이른바 다산유적지를 조성해 정약용의 업적과 실사구시 정신을 기리고 있다. 정약용은 가장 널리 알려진 다산(茶山)외에도 다양한 호를 갖고 있었다. 그가 머무른 집의 당호를 그대로 가져다 쓴 여유당(與猶堂), 어릴 때 앓은 천연두 흉터 때문에 눈썹이 셋으로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삼미자(三眉者), 말년에 다음 시대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지은 사암(俟菴) 등이 있다. 그 중 그의 고향과 관련 있으면서도 스스로도 즐겨 사용한 호가 있었으니 바로 열수(列水)이다. 이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로 합쳐져 한강이 되는 지점인 바로 이곳, 능내리 두물머리의 지명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남양주에서는 ‘다산 정약용‘ 대신 ‘열수 정약용'을 많이 보고 들을 수 있다.
능내리 자전거길 슬로시티 문화관 다산유적지

남양주가 선사하는 ‘느림의 의미’

슬로시티 조안을 빠져나와 기수를 서쪽으로 돌리면 금곡동에는 고종이 잠든 홍릉이, 진접읍에는 세조가 묻힌 광릉이 있으며, 그 사이에는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의 무덤 사릉이 있다. 이들 능은 도시민들의 ‘작은 숲 속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특히 홍릉은 순종이 죽은 뒤 조성된 유릉과 합쳐져 있어 그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거니와, 왕릉으로는 드물게 두 능 사이에 인공 연잎 가득한 연못이 있어 한층 더 운치있다. 여유가 있다면 시간을 좀 더 남양주의 자연경관에 투자하기를 추천한다. 산들소리수목원, 오남호수공원, 팔현계곡, 남양주유기농테마파크 등 여가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이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 특히 가평군과 맞닿아 있는 축령산과 그 산자락에 터를 잡은 축령산자연휴양림, 머지 않은 곳에서 흐르고 있는 수동계곡과 비금계곡은 여름휴가를 보내기에 더없이 훌륭하다. 남양주는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초록빛 보석’이다. 인구 천만의 대도시 서울과 이토록 가까우면서도 이토록 푸르른 지역도 드물다. 지금도 우리를 깨우쳐주는 대학자의 얼이 생생히 살아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릉이 세 곳이나 있다. 남양주는 이 모든 모습들을 통해 빠름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느림은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것들을 챙길 줄 아는 ‘느긋한 풍요로움’ 이라고, 남양주의 느림은 그런 의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