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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 그 슬픈 역사

應觀 2016. 3. 30. 09:58

 

[선우정 칼럼] 분열, 그 슬픈 역사

나라를 흔들기 전에 분열을 경고해야 한다
선거로 드러날 民心만이 共存의 가치를 회복시켜
다가오는 위기 앞에서 국민을 단결시킬 것이다

선우정 논설위원
선우정 논설위원
다카하시 도루(高橋亨)는 한국 근대사를 공부할 때 피해갈 수 없는 일본 학자다. 1902년 한국에 온 그는 한반도 해방까지 한국을 연구했다. 사상·종교·정치는 물론 설화·속담까지 파고들었다. 그가 남긴 한국학 연구 성과는 방대하다. 제국주의 학문은 이래서 무섭다. 상대를 멸시하면서도 연구하는 것이다.  지배하기 위해서다. 그는 여기에 철저히 봉사한 학자였다.
다카하시가 100년 전 조선의 민족성에 대해 쓴 책 '조선인(朝鮮人)'은 긴 분량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사에 남긴 파장은 길었다. 당시 지배 엘리트는 이 책을 통해 조선관을 형성했다. ' 사대주의는 조선인이 조선반도에 사는 한 영원히 지속될 특성'이란 문구는 지금도 일본 우파의 한국관을 지배하고 있다. 문제는 그가 주장한 민족성론(論)이 해방 후에도 악령처럼 우리를 따라다녔다는 것이다.
다카하시가 꼽은 조선의 열 가지 민족성을 모두 거론할 가치는 없다. 거짓이거나 모순되거나 왜곡한 서술이 많기 때문이다. 당시엔 그랬지만 근대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털어낸 악습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좀처럼 부정하기 어려운 한 가지가 끈질기게 우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가 조선인의 네 번째 민족성으로 거론한 '당파심(黨派心)', 즉 분열적 민족성이다.
다카하시는 '가문·계급·신앙·이익을 근간으로 손쉽게 튼튼한 당파를 만드는 사람들을 조선인 이외에 아직 본 적이 없다'고 썼다. '조선인은 원래 이해(利害)에 따라 움직이는 무리'란 막말도 남겼다. 일제는 이런 시각을 당시 조선 초등학생에게도 가르쳤다. 식민 교육이란 피지배 민족이 스스로 멸시하고 지배 민족에게 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목적에 다가서는 데 다카하시의 당파성 주장은 효과적이었다. 오늘의 친구를 내일 적으로 만드는 민족에게 어떻게 자부심을 느끼겠는가
우리 학자들은 이를 부정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사실 어떤 국가든 권력 투쟁은 일어난다. 투쟁은 정반합을 반복하면서 역사를 발전시킨다. 조선 당폐(黨弊)의 상징처럼 거론되는 사화(士禍) 역시 썩은 기득권을 도려내는 역사 발전 과정에서 일어났다. 비극적이지만 뜻깊은 희생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조선 후기의 붕당(朋黨) 투쟁까지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철학도, 명분도 없다. 패거리 이익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상대를 영원히 지워버리는 독존(獨存)을 추구했다. 그렇게 독존에 성공하면 바로 분열해 다시 싸웠다. 북인(北人)은 대북·소북, 육북·골북·탁북·청북으로  서인(西人)은 공서·청서, 낙당·원당·한당·산당, 노론·소론, 벽파·시파로…. 요즘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정파 분열을 보는 듯하다. 그렇게 분열하다가 나라 전체를 멸망시키는 장면은 왕성하게 분열하던 세포가 순식간에 암 덩어리로 변하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다카하시 이전부터 조선의 당파성은 우리 학자들에 의해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조선 말기의 대문장가 이건창은 저서 '당의통략(黨議通略)'에서 '두 당이 세 당이 되고 네 당이 되어 200여년이  긴 기간 동안 끝내 정론을 세우지 못한 붕당을 들라면 오직 우리 조선이 그렇다'고 했다. 다카하시의 잘못은 17~18세기 시대적 악습을 한국사 전체로 확대하고 민족성으로 비약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분열하지 않으면 다카하시의 주장은 역사 속에 사라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카하시의 악령을 이 땅에 붙잡아 두는 것은 일본이 아니다
우리는 왜 분열했을까. 이건창이 제시한 여덟 가지 이유 중 마지막이 인상적이다. '나라의 태평이 너무 오래됐기 때문'이란 것이다. 붕당은 양대 전란의 폐허에서 시작됐다. 이건창은 "적군이 침략해 오면 졸연히 당해내지 못했고 적군이 물러가면 상하가 모두 편안하게 여겨 처음부터 어려움이 없었던 듯했다"고 비판했다. 조선의 헛된 예송(禮訟) 논쟁은 병자호란 22년 후에 일어났다. 후대는 이를 가혹하게 비판한다. 해방 71년, 전쟁 66년 후 벌어지는 오늘의 헛된 분열을 후대는 어떻게 평가할까. 얼마 전 집권당 지도부는 '옥새 투쟁'에 날밤을 새우다가 '서해 수호의 날' 행사에 불참했다. 북한이 무력시위를 할 때였다. 그런 정당이 어제 상대에게 "안보를 포기했다"고 손가락질했다. 조선 후기의 붕당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한국인은 위기에 뭉치는 민족이라고 한다. 그렇다. 하지만 구한말 위기에서는 뭉치지 못했다.  그리고 나라를 잃었다. 당파적 분열이 임계점을 넘어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분열이 또다시 나라를 흔들기 전에 대통령과 집권당을 향한 분명한 경고가 필요하다. 선거로 드러나는 민심만이 공존(共存)의 가치를 회복시켜 필연적으로 다가올 위기 앞에서 국민을 뭉치게 할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