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산악회를 따라 2월29일 무박으로 충무앞 욕지도와 연화도를 다녀왔다. 맑고 푸른 바다와 하늘 그리고 삶의현장과 자연이 한데 어울어진 아름다운 풍광에 흠뻑 매료되었다. 부처님이 함께하는 섬 섬이름대로 욕지는 욕심을 탐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뜻하고 연화는 불경에 나오는 극락을 뜻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유래를 인터넷에 찾아 확실히 올려야 하는데 그냥 생각는대로 올린점 양해 바랍니다. 불자인 저는 부처님진신사리가 봉안된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어서 환희심이 났읍니다 느림보와 함께한 초봄에 환상의 섬 욕지와 연화섬을 다녀와 오랬동안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결심한 무박여행이라 몸은 고달펐지만 자연속에 빠져 피곤한 줄 모르고 무난하게 일정을 소화했다.
모두 쌍계사 조실인 고산 스님의 원력이다. 스님이 이 작은 섬에 사찰과 암자를 들이고 불상과 탑을 세운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조 연산군은 폭군으로 악명이 높지만 불교탄압도 그에 못지않았다. 삼각산에서 수도하던 한 사내가 세 비구니와 함께 연화도로 도망쳐온 건 그때였다. 사내가 스님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다. 세 비구니와 함께했고 섬사람들이 연화도인이라 불렀다고 하니 사내는 아무튼 섬에서도 구도자적 태도를 견지했던 모양이다. 도망자 연화도인은 이 섬에서 남은 생을 보냈다가 어느 날 입적했다. 세 명의 비구니와 섬사람들은 도인의 유언을 기려 시신을 수장했는데 그 자리에서 놀랍게도 연꽃이 피어올랐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연화도인이 입적한 지 70여 년 뒤 사명대사가 연화도에 찾아든다. 사명대사의 여동생인 임채운, 사명대사가 출가하기 전 약혼녀였던 황현옥, 사명대사를 짝사랑했던 심설정도 따라왔다. 섬사람들은 이들을 연화도인의 후신으로 믿었다. 이 모두가 구전이므로 사실보다는 설화에 가깝다. 그런데도 1974년 발간한 전남 순천의 승주향토지에 연화도인과 사명대사를 비롯한 그 밖의 사람들 이야기가 실명으로 기록돼 있다니 이거야말로 난데없다. 순천이라면 통영 연화도하고는 한참 떨어진 거리 아닌가. 사명대사의 세 여인이 임진왜란을 예측하고 이순신 장군을 만나 거북선 건조법, 해상지리법, 천풍기상법을 전수했다는 이야기를 뭐라 이해해야 할지도 난감하다. 그렇지만 이처럼 믿기 어려운 기록에도 불구하고 불교 탄압의 역사가 이 먼 남쪽 섬에도 깃들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연화도만이 아니다. 욕지도, 두미도와 세존도, 미륵도…… 통영 앞바다의 여러 섬에 농후한 불교적 색채는 새 삶을 개척하려 섬에 온 유민들이 뭍에서 이룰 수 없었던 불국토, 그 꿈의 조각들 아닐까. 연화봉 정상에서 만나는 비경은 뭐니 뭐니 해도 용머리 바위이다. 아니나 다를까, 도반들이 눈길이 모두 거기에 쏠려 있다. 열도처럼 늘어선 섬들이 용의 머리와 등뼈처럼 꿈틀대면서 바다로 나아가는 기세이다. 용이 바다에 입수하는 자세이므로 우리가 선 곳은 용의 등어리에 해당한다고 상상해선지 얼굴들이 하나같이 즐거워 보였다. 용머리 비경은 내리막길에서 잠시 모습을 감췄다가 보덕암에서 다시 등장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때부터 어쩐지 내 눈엔 용머리 바위가 올비의 도마뱀처럼 보였다. 꼬리를 물에 담근 채 바다도마뱀이 막 뭍으로 올라오는 자세였다. 파충류 특유의 서늘한 온도가 내게로 다가드는 느낌이더니 그 갈라진 혓바닥이 내 귀를 간지럽혔다. 도마뱀이 내게 무슨 말인가 전했지만 안타깝게도 내 귀는 도마뱀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위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보덕암에서 되돌아 나와 두 갈래 길에서 도반들과 합류했다. 연화사로 가는 길과 벼랑길을 끼고 용머리 쪽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주저 없이 저 절로 갔다. 연화도에 유람 온 사람들은 대개 연화봉에 올라 용머리 앞에 있는 출렁다리를 건너서는 동두마을까지 다녀오는 게 순서다.
섬의 크기에 비해 그리 작지 않은 절이었다. 연화사를 지은 고산스님의 꿈이 컸다는 방증이다. 본래 섬사람들이 다 매달려도 이루지 못할 크기의 불사였는지 연화도는 지금도 불사를 진행 중이다. 보덕암에 와서 철야정진하는 외부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소식이니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었다. 연화도 사람들은 가난한 편이다. 몇 년 전 연화도에서 하루 묵었던 나는 그걸 알고 있다. “어족이 고갈돼 지금은 고기잡이배들이 거의 없어졌어요. 작년이 저 세상 같다니까요.” 어느 밤중, 연화도의 포장마차에서 내가 들은 탄식이었다. 종교는 때때로 현실의 크기와 반비례한다. 삶이 힘들수록 기대와 희망은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다. 연화도에 와서 불국토를 꿈꾸다 가는 사람이 많을수록 섬은 풍요로워질 것이니, 고산스님의 불사를 꼭 나쁘게만 평가할 일도 아니다. 연화도는 오후 5시가 막배이다. 그러나 서울까지 가는 시간을 감안하면 최소한 오후 3시 30분에 출발하는 배를 타야 한다. 연화도에 도착해서 그 때까지의 유람시간은 3시간 30분.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이 섬에 와서 얻어 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욕지도를 다녀온 배가 기적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착한 양처럼 우리는 배표를 끊고 선착장에 줄을 서고 있었다. 배에 오르기 전 나는 잠시 보덕암에서 들었던 도마뱀의 말소리를 떠올렸다. 터무니없는 착각이라 해도 그 말소리에 내가 벗어나고자 하는 결핍의 비밀이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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