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영화,음악

장 프랑소아 밀레

應觀 2014. 4. 16. 15:31

 

 

자연주의 화가인 프랑스의

 

장 프랑소아 밀레

 

 

 우리들에게도 너무 친숙한 그림으로

 

 옛날 이발소 마다  걸려있어

 이 그림이 명작인지  아닌지 사람들은 구별이 어려웠었다.

 

이 그림에도 애틋한 사연이 있어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가난한 농부의 삶으로 해서 화가의 삶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런지..... 

 

                          

 

1857 년

 저녁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한 농부 부부가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다. 

 

 캐다가 만 감자가 바닥에 흩어져 있고

멀리 보이는 교회당이 정지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장 프랑수아 밀레가 그린

 명화 '만종(晩鍾)'은

프랑스의 자랑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백화점 소유주였던 알프레드 쇼사르가 80만 프랑에

이 작품을 구입 해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후

 

 한 번도 거래된 적이 없었던

 '만종'은

 값을 매긴다는 불가능한 보물이다.


그러나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1860년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조차 없는 가난 한 화가에 불과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화상 아르투르 스테반스가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프랑을 지원한다. 

 

1000프랑으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 만종'이다. 


이렇게 탄생한 만종은 100년 만에

80만 프랑 값어치를 얻었고

 

그로부터 또 10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물이 됐다.

 

 1000프랑을 지원한 것이 국부(國富)를 일구어낸 것이다. 

루브르에 돌아오기 전

'만종'은

 

미국 아메리카 미술협회에 팔렸다. 

 프랑스 측은 국회와 행정부는 물론 모금활동까지 벌여가며

 

'만종'이

미국에 팔리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부자나라 미국을 당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가 자존심이 상한 채 주저앉아 있을 무렵

 

백화점 재벌

알프레드 쇼사르가

 

미국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만종' 을 다시 사들인 것이다.  

 

쇼사르는

이 그림을 개인 자격으로 소유하지 않고

루브르에 기증했다. 


예술의 가치를 알아본

 쇼사르가 없었다면

 

'만종'은 지금쯤 미국 어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이삭줍기'와 더불어 많이 알려진 그림 중 하나다. 

 

그림을 보면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밭 밑에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구니가 감자씨와

밭일도구를 담은 바구니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들어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있다. 

 

 그 시대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죽은 것이다.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만종'이다. 

 

왜 그림 속의 아기가 사라졌을까? 

 

이 그림을 보게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 말자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넣어 그려 출품했다.

 

 그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살바도로 달리는 정말 달랐다. 

밀레의 <만종>을 보면 누구라도 신성한 노동 후의 고요한 정적과 평화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을 보고 꼬마 달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맛보았다. 

 

그 불안감이 얼마나 집요하게 그의 뇌리에 들러붙었는지

달리는 오랫동안 그 까닭을

알아내려 했고, 그에 관한 책을 쓰기까지 했다. 

 

 그는

밀레의 <만종>에

 

그려진 감자자루를 어린아이의 관으로 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수십 년 후,

 이러한 그의 투시력은 환각이 아니라

실제로 정확한 관찰이었음이 밝혀졌다.

 

 루브르 미술관이 자외선 투사작업을 통해

그 감자자루가 초벌그림에서는 실제로 어린아이의 관이었음을 입증한 것이다. 

 

현실 생활에는

서툴렀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삶에 대한 투시력을 갖게 되었다는

 

그의 고백은 진실이었던 것이다.  

      

<이의일/세종정보기술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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