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산들바람이 사라졌다. 풍력 계급표 제3단계에 해당하는 산들바람(Gentle breeze)은 '나뭇잎과 가는 가지가 끊임없이 흔들리고
깃발이 가볍게 날리는 바람'이다. 어릴 때 대청 마루에 누우면 으레 산들바람이 찾아와 뺨을 간질였다. 그땐 아무리 찜통 같은 삼복에 지쳤어도
처서(處暑) 지나면 산들바람이 불어 살 만했다. 이젠 기억도 안 난다.
하와이도 산들바람이 없어졌다고 했다. 외신은 최근 '하와이
특색인 산들바람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동 무역풍인 산들바람 관찰 횟수가 70년대 이후 28% 줄었다고 했다.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습기가 많아졌고 관광객은 줄었다.
한국은 도시 인구가 91.04%에 이르는 사실상 '도시 국가'다. 언제부턴지 도심
산들바람이 없어졌다. 아무도 걱정을 안 한다. 기상청도 모르는 체한다. 신문 날씨 코너는 강수 확률과 기온만 표시한다. 바람은 쏙 빼놓는다.
사람들은 바람을 잊고 산다.
요즘 도심은 빌딩풍이 몰아치거나 무풍(無風)지대에 잠긴다. 빌딩풍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휘젓는
강풍이다. 올봄에도 25층 아파트에 이삿짐을 나르던 사다리차가 빌딩풍에 쓰러져 주차장을 덮쳤다. 성균관대 조경학과 조사로는 북한산 중턱에 초속
11.9m 바람이 불 때 서울 강남에는 초속 19m를 웃도는 바람이 불었다. '바람을 안고 걸을 수 없는' 제8단계 큰바람이다. 심할 때는
10단계 노대바람이 되어 빌딩 주변 가로수를 뽑아낸다.
빌딩풍이 안 불면 도심은 나뭇잎 하나 까딱 않는다. 인구와 건물이 밀집된
'열섬(heat island) 현상'이 도심을 가둔다. 포장도로는 대기가 땅과 호흡하는 것을 막는다. 수백만 에어컨 실외기가 열기를 뿜고 자동차
배기가스가 하늘을 덮는다. 직경 몇 ㎞짜리 거대 온실이다. 빌딩 밀도가 10% 높아지면 도심 온도는 0.16도씩 오른다.
사람들
성정(性情)도 닮아간다. 겉으로는 무풍지대 열대야를 견뎌낸다. 속은 부글부글 끓는 '열섬 나라' 주민이 돼간다. 마음속 산들바람은 추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산들바람을 닮은 문화도 사람을 못 모은다. 소비자는 맵짠 문화 상품에 입맛을 버렸다. "초특급 태풍보다 센 대박 상품으로
지축을 흔들어야" 관객이 겨우 느낀다. 영화 소재로 쓰이는 지구 종말과 테러조차 시시해졌다. 자잘한 주제를 낮은 소리로 소곤거리면 알은체를 안
한다. 수십 년 전 전석환이 만든 노래를 누가 기억이나 할까. '산들바람 불고/ 별빛 찬란한/ 무릉도원 강가에/ 버들피리 소리/ 들려올 때면/
그리운 내 사랑은 온다.'
종교도 산들바람을 잃었다. 목회자가 산들바람처럼 말하면 신도가 곁을 떠난다. 일상에 묻은 고민을
다독이고, 소소한 행복을 말하고, 작은 깨달음을 들려주는 목회자는 인기가 없다. 목회자는 일요일 아침 전쟁·핵·세금을 들먹이며 목에 힘을 준다.
관자놀이가 튀도록 목청을 돋워 기도를 해도 신도는 존다.
정치·사회·경제는 더하다. 정치판은 증폭된 갈등에 올라타 상대를 집어삼키는
마지막 12단계 싹쓸바람(Hurricane)만 분다. 그게 아니면 답답한 열섬 온실에 갇혀 어떤 타협의 바람도 불지 않는다. 경제도 뭉근하게
데우고 찬찬히 식혀서 불어주는 산들바람이 없다. 산업 현장엔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주는 산들바람이 없다. 사회는 산들바람 구경 못한 지
오래됐다. 구성원 전체가 정부를 상대로 끓어오르는 파업 투쟁 분위기다.
우리는 드세졌다. 매사에 짜증만 늘었다. 집안에서 쓰는 말과
행동도 거칠다. 싹쓸바람 아니면 무풍이다. 폭언 아니면 무관심이다. 산들바람은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는다. 기후가 성정을 지배한다고 했다.
산들바람처럼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마음을 어디서 배울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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