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여행/느림보

망월사역-포대능선-Y계곡-도봉산역산행20210629느

應觀 2021. 6. 30. 16:42

 

삼국건립시기639년(선덕여왕 8)소재지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경기도 의정부시 도봉산(道峰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해호가 창건한 사찰.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639년(선덕여왕 8) 해호(海浩)가 창건하였다.선덕여왕은 해호를 존경하여 측근에 머물게 하고자 하였으나, 해호는 사양하고 홀로 이 산중에 암자를 지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고 한다. 당시 해호가 머물렀던 동대(東臺)의 옛 산성 이름이 망월성(望月城)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산성 이름을 따서 망월사라 하였다.신라 말기 경순왕의 태자가 이곳에 은거했다고 하며, 1066년(문종 20) 혜거국사(慧炬國師)가 절을 중창하였다. 그 뒤의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14차례의 병화와 전란으로 절이 황폐해졌다가 1691년(숙종 17) 동계(東溪)가 중건하였다.그 뒤 영월(暎月)이 수십 년 동안을 이 절에 머물면서 1779년(정조 3) 선월당(先月堂)을 세웠고, 1800년 선월당을 옛 영산전(靈山殿) 터로 이전하였으며, 1818년(순조 18) 칠성각을 신축하고 1827년 절 전체를 중수하였다.1880년(고종 17) 완송(玩松)이 중건하였고, 1882년 완송이 영산전을 다시 세웠으며, 1884년 인파(仁坡)가 독성각(獨聖閣)을 건립하였다. 1885년 완송이 약사전(藥師殿)을 건립하였고, 1901년(광무 5) 인파가 큰방을 보수하였다. 1906년 회광(晦光)이 선실(禪室)과 설법루(說法樓)를 중수하였고, 1941년 김응운(金應運)이 약사전을 중건하였다.1969년 주지 춘성(春城)이 퇴락한 선실을 철거하고 2층의 석조건물을 지었다. 1972년 주지 도관(道觀)이 본래 있던 염불당과 낙가암(洛迦庵)을 헐고 현대식 건물의 낙가암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이 절의 현존하는 당우로는 상층을 법당으로 사용하고 하층을 선실로 사용하는 석조전(石造殿)을 중심으로 영산전·칠성각·낙가암·범종루 등이 있다.문화재로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된 망월사혜거국사부도를 비롯하여, 1793년에 건립한 태흘(泰屹)의 천봉탑(天峰塔), 1796년에 수관거사(水觀居士)가 명(銘)한 천봉탑비(天峰塔碑)가 있다.이 밖에도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부도 1기와 탑다라니판(塔陀羅尼板) 1매, 청장(淸將)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쓴 망월사 현판, 영산전 전면에 걸려 있는 주련(柱聯) 4매 등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절에서 300m 떨어진 곳에 광법암(廣法庵)이 있다.원래 영산전 앞에 있던 누각이었던 것을 1965년 춘성이 현 위치로 옮겨 광법암이라 하였다. 이 절은 경기 지방의 이름 있는 선원(禪院)으로서 매우 전통이 깊고, 근대의 고승인 만공(滿空)·한암(漢巖)·성월(惺月) 등이 후학들에게 선을 가르쳤으며, 많은 선객(禪客)들이 수도를 하고 있다.

 

십육나한상을 모시는 전각은 '응진전'이라고도 불리고, 여기서처럼 영산전으로도 불리는데, 이런 경우 석가모니불의 좌우 협시보살은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로 구성되어 수기삼존으로 해석된다.

본존불상의 크기는 59㎝가량으로 크지 않지만, 머리와 상체를 강조하고, 하체에는 결가부좌한 다리 사이로 커다란 부채꼴 모양의 옷 주름을 배치하여 형태상의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 수인은 보통 오른손을 들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는데 반해, 여기서는 반대로 들고 있다. 협시 보살상은 화염보주로 장엄된 보관을 제외하고는 일절 장식이 없어 여래형에 가깝다. 또한 얼굴 표현에서 마치 양 볼에 바람을 가득 넣은 듯 부풀려 놓은 것이 이 작가의 특징인 듯하다.

목조의 석가삼존상 외에는 모두 소조로 제작되었는데, 법당의 정면과 좌우 측면 벽면에 일렬로 대칭되게 늘어서 있다. 높이 58.5㎝의 가섭 입상은 영산회상도 불화 속의 도상처럼 지권인과 유사한 수인을 결하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아난은 마치 석가모니와 예불자를 연결해주듯이 합장하면서 얼굴과 몸을 약간 비틀어 표현했다.

높이 35㎝ 내외의 십육나한상은 동굴 동글한 얼굴, 짤막한 체구에서 마치 실제 승려를 보는 듯한 생동감과 개성이 넘치며, 얼굴의 인상이 나한상끼리 서로 매우 유사하여 마치 한 승려가 다양한 표정으로 변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 것이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착의법과 자세에서 많은 변화를 주어 각 상의 개성도 드러내고 있다. 그 외 사자상과 인왕상이 함께 봉안된 것은 명부전 도상의 경우와 비슷한데, 인왕상은 나신이 아니고 갑옷을 차려입고 있으며, 동자상은 원래 4구가 짝을 맞췄던 것 같지만 1구가 결실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