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가족/가족이야기

[스크랩] 충헌공 김구(金構) 묘역

應觀 2017. 4. 8. 18:48

 

서울 송파구 방이동 몽촌토성 안에는 조선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충헌공 김구(金構) 선생(1649~1704)의 신도비와 묘소가 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9호인 신도비 앞에 설치된 안내판은 "충헌 김공 신도비(忠憲 金公 神道碑)"이다.

 

충헌공의 본관은 청풍, 호는 관복재(觀復齋)로, 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낸 징(澄)이다. 1669년(현종 10) 사마시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춘당대문과에 장원하여 전적과 각 조의 낭관을 거쳤다. 사헌부와 사간원에

있을 때 노론과 소론의 격렬한 대립을 완화하기 위한 1만여자에 가까운 시무소(時務疏)를 올려 찬탄을 받

 

았으며, 양 파의 대립을 조정하는 데 힘썼다. 판결사로 있으면서 노산군(단종)의 복위를 극력 주장하여 숙종으로 하여금 단종의 위(位)를 추복하게 하였고, 아울러 단종 비 신씨(愼씨)의 묘를 능으로 추봉하는 데

힘썼다. 형조판서에 이어 육조의 판서를 거쳐 1703년 우의정이 되었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신도비는 1743년(영조 19)에 세워졌다. 비문은 영조 때 영의정 이의현(李宜顯)이 지었고, 글씨는 좌의정과 청백리에 녹선된 둘째 사위 서명균(徐命均)이, 두전(頭篆)은 영의정 유척기(兪拓基)가 썼다. 충헌공과

서명균, 유척기는 당대의 명필가로, 이 신도비를 통해 단아하고 아름다운 필체를 접해 볼 수 있다.  

 

또, 신도비의 지붕돌인 옥개석에 용, 봉황, 암,수막새 등의 문양이 조각되어 있음도 특이하다.

 

   충헌공 김구(金構) 선생 묘. (서울 송파구 방이동, 몽촌토성 내)

 

   충헌공의 신도비 : 신도비 끝 부분에 쓴 명(銘)은 다음과 같다. 명이란 비석 등에다 비문의 주인공에 대한

    공적을 찬양하거나, 내력을 새기는 문구로, 대개 운(韻)을 넣어 넉자가 한 짝이 되어 구(句)를 이루게 한

    다.  명왈(銘曰)... 로 시작한다.

 

          "인물이 태어남에 온전히 구비한 자 드무니

          강한 자는 우둔하고 총며한 자는 옆으로 빠지네.

          타고난 자질이 하나라도 치우치면

          무슨 수로 조화를 도울건가.

          그 중에 우리 공만은 뛰어나게 타고 나

          삼대의 순수함에다 일대의 영걸이어라.

          분명함과 과단성으로 행실은 법도 있고

          슬기는 두루 통했네.

          그것으로 벼슬하여  임금 가까히 모시니

          그 재주 그 덕행 임금님이 알아 주셨네.

          뉘 알았으랴. 그 뜻 펴지 못하고

          중년에 갑자기 꺾일줄을...

          그릇이며 단장 용품 아직 남겨 두고

          관이며 슬갑 길이 던졌어라.

          임금과 뜻이 잘 맞은 사람

          하늘은 어찌하여 그리도 급했을까?

          허나 그 큰 절조는 드높아 함께할 자 없으니

          역사에 이름 남아 천년토록 전해 가리.

          저 무덤을 생각해 보자. 광주의 이 언덕에서.

          내 그 아름다움을 명(銘)하여

          빗돌에다 새겨 바라는 바는

 

          이곳 지나는 뒷 사람이 쳐다보고 허물 말며,

          이 곧은 신하 본 받아 우리 조선 빛낼지라." 

          (使後過者 瞻仰靡0 式維貞臣 光我朝鮮)         

 

  유척기가 쓴 신도비의 두전(頭篆) 글씨 "右議政諡忠憲金公神道碑銘"

 

 

출처 : 담은재
글쓴이 : 담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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