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품 보고 대자유인 됐으면” 당부
전국 102개 선원 2186명 스님 안거 마쳐

오는 22일 을미년 동안거 해제일을 앞두고 조계종 진제 종정예하가 “세월은 쏜 화살보다 빠르고 손가락을 퉁기는 것보다 빠르니 인생도 또한 그러해 어느 결에 팔십이 되어 병고가 닥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며 “그때는 누구라도 후회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대중 모두는 자신의 상황이 어떠한지 살피고 살펴야 할 것”이라며 지속적인 정진을 당부했다.

진제 종정예하는 동안거 해제 법어를 통해 “수행하는 이들은 세속의 즐거움은 뒤로하고 감상적인 정리(情理)는 멀리해 오직 끝없이 반복되는 이 생사윤회를 벗어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종정예하는 “참선은 좌복에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고 오고하는 일상생활 가운데, 각자의 일을 하는 가운데에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이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고 챙기고 의심하여 하루에도 천번 만번 하다보면 화두가 무르익어 몰록 진의심에 들게 된다”고 당부했다.

한편 종단 전국선원수좌회에서 전국 선원의 정진대중 현황을 정리한 <을미년 동안거 선사방함록>에 따르면 전국 102개 선원(총림 8곳, 비구선원 59곳, 비구니선원 35곳)에서 총 2186명(총림 307명, 비구 1129명, 비구니 750명)의 대중이 안거에 들어 용맹 정진했다.

안거(安居)란 동절기 3개월(음력 10월 보름에서 차년도 정월 보름까지)과 하절기 3개월 (음력 4월 보름에서 7월 보름까지)씩 전국의 스님들이 외부와의 출입을 일체 끊고 참선수행에 전념하는 것으로, 수행자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한 곳에 모여 외출을 삼가고 정진하는 것을 뜻한다.

안거는 산스크리트어 바르사바사(vrsvs)의 역어로, 인도의 우기(雨期)는 대략 4개월가량인데, 그 중 3개월 동안 외출을 금하고 정사(精舍)나 동굴 등에서 수행했다. 우기에는 비 때문에 유행하는 수행이 곤란하고, 또 초목과 벌레 등이 번성해지는 시기이므로 모든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우기 중에는 지거수행(止居修行)을 하도록 규정한 것이 안거의 기원이다.

다음은 진제 종정예하 동안거 해제 법어 전문.


乙未年 冬安居 解制 法語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眞際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신 후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이르시기를,]


大抱沙界非爲有<대포사계비위유>요
細入微塵豈是無<세입미진기시무>리요
昔日靈照親携處<석일영조친휴처>에
明月淸風徧五湖<명월청풍편오호>로다.

크게는 사계(沙界)를 포용함이나, 있음이 아님이요
가늘기는 티끌 속에 들어감이나, 어찌 이 없으리요
옛적에 영조(靈照)가 친히 잡은 곳에
밝은 달, 맑은 바람 오호(五湖)에 두루함이로다.


금일은 또 다시 동안거 해제일이라. 삼동구순(三冬九旬)의 결제(結制)를 시작한지 엊그제 같은데 어언 해제일을 맞이함이라.
이처럼 세월은 쏜 화살보다 빠르고 손가락을 퉁기는 것보다 빠르니 인생도 또한 그러해서 어느 결에 칠십이 되고 팔십이 되어 병고가 닥쳐오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때는 누구라도 후회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해제일인 금일 대중 모두는 다시금 자신의 상황이 어떠한 지를 살피고 살펴야 할 것이로다.

수행하는 이들은 세속의 즐거움은 뒤로하고 감상적인 정리(情理)는 멀리해서 오직 끝없이 반복되는 이 생사윤회를 벗어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중생들은 숙생(宿生)의 습기(習氣)와 업식(業識)이 수미산과 같아서 간화참선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므로 조석(朝夕)으로 대오견성을 발원하고 구경각(究竟覺)에 이를 때 까지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철두철미한 신심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챙기고 의심해야한다.

참선은 좌복에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고 오고하는 일상생활 가운데에, 각자의 일을 하는 가운데에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이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고 챙기고 의심하여 하루에도 천번 만번 하다보면 화두가 무르익어 몰록 진의심에 들게 된다.
이때는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잠깐 앉아 있어도 밤낮이 가고 일주일이 가고 몇 달이 가버려서 시간도 잊고 공간도 잊고 외부 인식도 잊어버리는 가운데 화두만이 성성(惺惺)히 시냇물이 밤낮으로 쉼 없이 흐르는 것처럼 끊어짐이 없이 이어가다 홀연히 보는 찰나에 듣는 찰나에 화두가 타파되어 참성품을 보게 된다.
그러면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천불만조사(千佛萬祖師)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장부가 되어 천하를 횡행(橫行)하는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되는 것이다.

 

석일(昔日)에 용아(龍牙) 선사께서 처음 취미(翠微) 선사를 참배하여 물으시기를,
“어떤 것이 달마(達磨)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시니, 취미 선사께서 답을 하시기를,
“선판(禪板)을 나에게 가져 오너라.”
하셨다.
용아 선사께서 선판을 가져와 취미 선사께 드리니, 취미 선사께서 잡아서 문득 때리니, 용아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도안(道眼)이 밝기는 하나, 아직 조사의 뜻은 없도다.”

또, 임제(臨濟) 선사의 처소(處所)에 가서 물으시기를,
어떤 것이 달마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시니, 임제 선사께서
“포단을 가져 오너라.”
하시니, 용아 선사께서 포단을 가져다 임제 선사께 드리자 받아서 때리니, 용아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때리기는 마음대로 때림이나, 조사의 뜻은 없도다.”
하셨다.

후일(后日)에 용아 선사께서 주지가 되어 회상(會上)을 여신 때에, 어느 수좌(首座)가 있어 묻기를,
“화상(和尙)이 행각(行脚)할 때에 취미 선사와 임제 선사에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셨는데, 두 분의 선사가 도안(道眼)이 밝던가요?“
하니, 용아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도안이 밝기는 하나, 아직 조사의 뜻은 없도다.”
하시다.
이에 설두(雪竇) 선사께서 착어(着語) 하시기를,

龍牙山裏龍無眼<용아산리용무안>하니
死水何曾振古風<사수하증진고풍>가?
禪板蒲團不能用<선판포단불능용>하니
只應分付與盧公<지응분부여노공>하라.

용아산에는 용이 눈이 없음이라.
죽은 물에 어찌 옛 바람을 떨칠가?
선판, 포단을 능히 쓰지 못하니
다못 응당히 노공(盧公: 설두 자신)에 부치라.

대중(大衆)은 세 분의 선사를 아시겠습니까?

시자(侍者)야! 세 분의 선사께 차 한잔씩 드려라.

산승이 28세 때에 묘관음사에서 향곡(香谷) 대선사를 모시고 지냈는데, 견처(見處)가 나서 게송을 지어 바침이라.

這箇拄杖幾人會<자개주장기인회>아?
三世諸佛總不識<삼세제불총불식>이라.
一條拄杖化金龍<일조주장화금룡>하여
應化無邊任自在<응화무변임자재>로다.

이 주장자를 몇 사람이나 알꼬?
삼세 모든 성인도 알지 못함이라.
한 막대기 주장자가 금빛 용이 되어
응화(應化)함이 가없이 자재함이로다.

향곡 선사께서 보시고 즉시 물으시기를,
“너 문득 용 잡아먹는 금시조(金翅鳥)를 만나서는 어찌 하려는고?”
“몸을 굽히고 당황하여 세 걸음 물러갑니다.”
하니,
“옳고, 옳다”
하시다.

석일(昔日)에 마조(馬祖) 선사 회상(會上)에서 마조 선사께서 법상에 오르시어 법문을 하시기를,
“금시조라는 새는 구만리 장천(九萬里 長天)을 날아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두 날개로 바닷물을 내리쳐 바닷물이 사십 리가 쪼개지는 위력을 가진 금시조라. 모든 대중은 문득 금시조를 만나면 어찌 하려는고? 대답을 해보라.”
하니,
등은봉(鄧隱峰) 스님이 가사(袈裟)를 둘러쓰고 법상 밑으로 들어감이로다.

부처님 출세시에 용의 무리들이 모여와서 부처님께 애원하기를,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부처님이시여! 우리 용의 무리들이 금시조에 다 잡아 먹히게 되니, 크나큰 자비로써 우리 용의 무리를 구제하여 주옵소서.”
하니, 부처님께서 가만히 관하시다,
“방편이 있나니.”
하시고는, 부처님 수하신 가사(袈裟) 홀을 풀어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가사 홀을 가지고 있으면 금시조에게 잡혀먹는 일은 없으리니 잘 간직하라.”
하셨다.

불(佛) 위신력이여! 개천개지(蓋天蓋地)로다.

부처님의 위대한 법력이여!
하늘을 덮고, 땅을 덮음이로다.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