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종교와 나

꼭 알아두어야 할 불교 단어 및 교리 문제

應觀 2014. 8. 18. 08:44

꼭 알아두어야 할 불교 단어 및 교리 문제

1. 삼법인이란?

2. 4성제란 무엇인가?

3. 6바라밀을 말하라.

4. 보살이란 어떤 의미인가?

5. 12인연을 말하라.

6. 정토3부경이란 어던 경전인가?

7. 정토교의 발생지는 어디로 보고 있나?

8. 대승불교가 흥기한 이유를 말하라.

9. 소승불교란 어떤 불교를 말하는가?

10. 화엄경의 주불은 누구이며 그 사상은?

11. 한국에 불교는 언제 전해졌나?

12. 4물이란 무엇을 가르키나?

13. 초전법륜은 어디서 누구를 대상으로 설하였나?

14. 제1결집이 행해지게 된 이유는?

15. 3밀은 무엇인가?

16. 법화경의 대의를 설명하라.

17. 천태의 五時八敎설을 설명하시오

18. 진제와 속제에 대하여 기술하라.

19. 아비달마 불교란 어떤 의미인가?

20. 중국선불교에 있어서 초조는 누구인가?

21. 6식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22. 천재란 무엇을 가리키나?

23. 108번뇌란 무엇인가?

24. 해탈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25. 열반이란 어떤 의미인가?

26. 인과응보에 대하여 설명하라.

27. 6도에 대하여 설명하라.

28. 반야에 대하여 설명하라.

29. 회향이란 어떤 의미인가?

30. 아함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31. 만다라란 무엇인가?

32. 4부대중이란?

33. 범부란?

34. 화두란?

35. 화엄경이란 어떤 경전인가? (10번과 중복)

36. 법화경이란 어떤 경전인가? (16번과 중복)

37. 대일경이란 어떤 경전인가?

38. 아뢰야식에 대하여 설명하라.

39. 삼매란 무엇이며 어떤 삼매가 있나?

40. 불타란 어떤 의미인가?

41. 불교에서 말하는 “색”이란 무엇인가?

42. 불교에서 말하는 “공”이란 무엇인가?

43. “무”란 어떤 의미인가?

44. 중도란 무엇인가?

45. 연기법이란 무엇인가?

46. 지방입상(指方立相)의 의미는?

47. 극락세계의 3인성은 누구인가?

48. 불교교단의 최초 성립은?( 13번과 중복 )

49. 불교역사에 있어 최초의 사원명은?

50. 49일제란 무엇인가? (中有, 中陰이란?)

51. 시다림이란 무엇인가?

52. 독경을 하는 이유는? (看經이란?)

53. 3신불에 대하여 설명하라.(法身, 報身, 應身)

54. 마하반야란 어떤 의미인가? ( 28번과 중복 )

55. 성문과 연각이란? (辟支佛, 獨覺이란?)

56. 아뇩다라삼먁삼보리란?

57. 4대란 무엇인가?

58. 5온이란 무엇인가?

59. 세속오계란 무엇인가?

60. 소승불교는 언제 생겼는가? ( 9번과 중복 )

61. 붇다(Buddha)란 어떤 의미인가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62. 석가모니란 어떤 의미인가? (40번 참조)

63. 10대 제자의 이름을 쓰고 그들이 가진 특징 을 설명하라.

64. 3학이란 무엇인가?

65. 유류와 무류에 대하여 설명하라.

66. 석존당시 인도사회의 4성계급이란?

67. 열반이란? ( 25번과 중복 )

68. 아육왕은 어떤 왕이며 불교와 어떠한 인연

이 있나?

69. 부파불교가 발생한 원인은? ( 9번과 중복 )

70. 대승불교의 발생에 대해 기술하라. (8번과 중복)

71. 격의(格義)불교란 어떤 불교인가?

72. 의해(義解)불교란 어떤 불교인가?

73. 실천(實踐)불교란 어떤 불교인가?

74. 오가칠종(五家七宗)에 대해 기술하라.

75. 인간의 육체는어떻게 구성되었나?(57번과 중복)

76. 사원에서 4물을 치는 이유는 무엇인가?(12번과 중복)

77. 부처님의 상호는 몇 상 몇 호이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78. 수미산이란?

79. 사천왕이란? ( 78번과 중복 )

80. 한국의 삼보사찰이란?

81. 여래10호에 관하여 하나하나 설명하라.

82. 아뢰야식이란 무엇인가? ( 38번과 중복 )

83. 미륵보살에 대해 설명하라.

84. 세친에 대하여 기술하라.

85. 유마거사에 대하여 기술하라.

86. 업(業)이란 무엇인가?

87. 무상(無常)이란 무엇인가?

88. 자비(慈悲)이란 무엇인가?

89. 정정취에 대해 설명하라. (三定聚란?)

90. 참회에 대해 설명하라.

91. 신심이란 무엇인가?

92. 중엄신이란 무엇인가?

93. 기원정사란 어떠한 곳인가?

94. 극락세계의 주불과 그 세계는 어디에 있나?

95. 승만부인은 어떠한 사람인가?

96. 3논종이란 어떤 종파인가?

97. 제석천이란? ( 78번 수미산 참조 )

98. 불교에서는 죄를 어떻게 정의하나?

99. 불교는 우주의 성립과 종말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나?

100. 부처님의 전도선언을 기술하라.

101. 유여의열반과 무여의열반.

102. 유정(有情)과 무정(無情).

103. 다라니란?

104. 삼계란?

105. 팔정도란?

106. 팔상성도란? 八相作佛이란?

107. 부처님의 手印에 대해 설명하라.

108. 삼유(三有)란? (1찰라란?)

109. 독화살의 비유?

110. 十難이란(十四難)? 十難無記 十四無記란?

111. 천태삼대부란?

112. 옴마니반메훔이란?

113. 우리나라의 5대 보궁은?

114. 등신(等神)이란?

115. 이판사판(理判事判)이란?

116. 야단법석(野壇法席)이란?

117. 아수라(阿修羅)란?

118. 아비규환(阿鼻叫喚)이란?

119. 빈자의 一燈은?

120. 불교를 빛낸 사람들(인도편)

: ①마명, ②용수, ③제바, ④무착, ⑤진나

121. 불교를 빛낸 사람들(중국편)

: ①도안, ②혜원, ③법현, ④구마라집,

⑤달마, ⑥지의, ⑦현장, ⑧의정

122. 불교를 빛낸 사람들(한국편)

: ①자장, ②원효, ③지의, ④혜초, ⑤체관,

⑥의천, ⑦일연, ⑧휴정, ⑨유정, ⑩만해

123. 緣起하는 것은 왜 無自性인가?

124. 내 자식이 내 분신이 아니라는 이유는?

125. Winston King의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립 적 비교에 대하여 논하라.

126. 圓妙國師 了世와 白蓮社 敎團(結社) (天台宗統紀 p95~)

127. 유식(唯識), 무경(無境)에 대해 설명하시 오.(김사업교수)

128. 五俱意識이란?

129. 우리나라 寺院建立에 대하여 개술하시오. 130. 우리나라 佛像에 대하여 아는 바를 쓰시오. 131. 우리나라 塔에 대해 아는 바를 쓰시오. 132. 一念三千에 대하여 기술하시오.(十如是) (三世間) (천태불교입문 p180) 133. 圓融三諦와 一心三觀을 논하시오.

134. 法華七喩에 관하여 논하시오.(法華佛敎)

135. 四句偈에 관하여 아는 대로 기술하라.

136. 十善業道란? (十善戒란?)

137. 無財七施란?

138. 環境菩薩을 현대적인 시대의 意識에서 記述하라.(비교종교론 : 최종석교수)

139. 법구비유경

140. 네 부인 - 잡아함경

141. 業과 十二緣起(포교실습)

142. 만(卍)자에 대하여

143. 의천 대각국사

144. 옴(aum/om/唵)에 대하여...

145. 종교전쟁

146. 삼종외도

147. 부처와 독사

1. 삼법인이란? < 불교사전, 불교학 개론 강의실 p.89 >

삼법인(三法印)과 사성제(四聖諦)는 초기불교의 철학사상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三法印이란 불교의 근본 교의(敎義)를 셋으로 표시한 것인데, 印은 인신(印信), 표장(標章)이란 뜻으로 일정불변하는 진리라는 표치(標致)이다.

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온갖 物․心의 현상은 모두 생멸 변화하여 상항(常恒)불변하는 것이 아니거늘, 사람들은 이를 항상하는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므로 이 그릇된 견해를 없애기 위 하여 無常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諸行은 모든 현상세계를 말한다. 諸行無常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한 곳에 머무 르지 않고 끊임없이 자꾸자꾸 변해간다고 하는 의미이다. 佛敎에서 無常의 원리 는 바로 변화를 根本으로 하고 있다.

나.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만유의 모든 법은 인연으로 생긴 것이어서 실로 自我인 실체가 없거늘, 사람들 은 ‘我’에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를 일으키므로 이를 없애기 위하여 ‘無我’라는 말 하는 것이다. 諸法은 ‘모든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고 無我는 ‘내가 없다’, ‘주체가 없다’ 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니다’, ‘진실한 나의 모습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다.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生死에 윤회하는 고통을 벗어난 이상경(理想境)인 열반적정의 진상을 말하며, 열 반은 범어 nirvana의 음역이며, “불어 끈다”라는 의미이고, 적정은 의미를 옳긴 말이다. 즉 불어 끈 상태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꺼 버리고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를 완성한 경지를 말한다. 진실을 추구하는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을 거치면 서 인격의 완성, 이것이 바로 현실적인 의미의 열반이라 할 것이다.

이 三法印으로써 부처님 말씀과 마군(魔軍)의 말을 판정한는 印으로 함이다.

또 여기에 일체개고를 다시 넣어 四法印이라 하기도 한다.

2. 사성제(四聖諦)란 무엇인가? < 불교사전 및 기타 >

사성제는 부처님께서 성도후 녹야원(綠野苑)에서 초전법륜(初轉法輪)시 八正道와 함께 5비구에게 說하신 내용으로 고․집․멸․도(苦․集․滅․道)의 4가지 성스러 운 진리를 일컫는 말이다.

제(諦)는 불변여실(不變如實)의 진상(眞相)이라는 뜻이다.

가. 고성제(苦聖諦)

현실의 相을 나타낸 것이니 현실의 인생은 苦라고 관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 세계의 인식이다. 다음과 같은 八苦가 있다.

1) 태어나고(生), 2) 늙고(老), 3) 병들고(病), 4) 죽으며(死), 5) 원망하고 증오 하지만 만나야 하고(怨憎會苦), 6) 사랑하지만 이별하여야 하고(愛別離苦)

7) 구하여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하고(求不得苦), 8) 나와 이 세상 모든 존재의 괴 로움(五取薀苦) (또는 五蘊盛苦)

나. 집성제(集聖諦)

苦의 이유근거(理由根據) 혹은 原因이라고도 하니, 苦의 원인은 번뇌(煩惱)인데, 특히 愛慾과 業을 말한다. 즉, 고통이 생기는 원인을 설명한 것이 집성제인데, 그 원인으로 설명된 것이 五蘊(58번참조)과 12인연이다.

다. 멸성제(滅聖諦)

깨달음의 목표, 곧 이상(理想)의 열반으로, 괴로운 현실세계와 상대가 되는 이상 적인 세계의 설정이 멸성제이다.

라. 도성제(道聖諦)

열반(涅槃)에 이르는 방법으로 곧 실천하는 수단으로서 이상세계에 도달하는 방 법을 제시한 것이 도성제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이 八正道이다.( 105번 참조 )

위의 四聖諦는 苦․集․滅․道의 순으로 차례로 알게 되는 것이며 한꺼번에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3. 육바라밀다(六波羅密多)를 말하라.

바라밀(波羅密 : 波羅密多 : Paramita - 完成의 의미) Paramita는 도피안(到彼岸) 으로 의역되어서 저 언덕에 도달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피안(彼岸)은 불교적 수 행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경지, 즉 부처님의 세계이다. 다시 말하면 波羅 密은 ①저 언덕에 도달한다는 뜻과 ②完成이라는 2가지 뜻이 있다.

波羅密多(Sad-Paramita)는 생사의 고해를 건너 이상경(理想境)인 열반의 저 언덕 에 이르는 6가지 방편, 보살이 수행하는 바라밀법의 6종류이다.

이 6바라밀은 보살의 실천 덕목이며 이 6가지를 完成해야 한다.

가. 보시바라밀(布施波羅密)

이 보시의 완성은 남에게 주되 보상이나 조건이나 이유가 없다. 보시바라밀을 실천해서 부처가 되는데 부처가 되기 위한 방법이 아니고 보시 자체가 그 목적 이며 다음과 같다.

1) 財施;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주는 것

2) 法施; 다른이에게 부처님의 법을 말하여 선근(善根)을 자라게 하는 것.

3) 무외시(無畏施) ; 스스로 戒를지켜 남을 침해하지 않고 다른 이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 주는 것.

나. 지계바라밀(持戒波羅密)

계율을 잘 지키고 아주 수준 높은 윤리적삶이 지계의 완성이다. 벌칙이 무서워 서 계율을 지키는 것은 자율적이 아니고 타율적이며, 타율적으로 계율을 지킴은 지계는 되나 持戒의 完成은 아니다.

다. 인욕바라밀(忍辱波羅密)

가지가지의 치욕에도 복수하는 마음이 없이 참고 인내하는 것이 인욕의 완성이 다. 나 보다 강한 자에게 인내하는 것은 쉬우나, 나보다 약한 자에게도 참아져야 하고 모욕이나 치욕에도 다 견뎌내야 인욕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라. 정진바라밀(精進波羅密)

몸과 마음을 깨우쳐서 용맹스럽게 수행하고 노력하는 것이 정진의 완성이다. 누가 본다거나 상을 주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어야 바라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精은 純一無雜을 의미하고 進은 勇猛精進을 뜻한다.

마. 선정바라밀(禪定波羅密)

마음을 한곳에 모아 고요한 경지에 드는 일로, 선과 악을 생각하지 않고 是와 非에 관계치 않으며 有와 無에도 간섭치 않아서 마음을 안락자재한 경계에 소요 케하는 것이 선정의 완성이다. 사전적 의미는 진정한 이치를 思?하고 생각을 고 요히 하여 산란치 않게 하는 것이 禪이라 했다.

禪定이라는 말은 jhana(禪那)에서 온 禪과 定은 한문으로 번역한 말이니 범어 와 한문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바. 반야바라밀( 般若波羅密多, 智慧波羅密)

존재하는 모든 일체 법은 空이라고 이해되고 파악됨이 지혜이다. 空은 비었다 거나 없다는 말이 아니고, 自性이 없고 실체가 없다는 것이 空이다. 이러한 空이 터득되는 것이 지혜(智慧)의 完成이다. 이 반야바라밀이 앞서야 앞의 5가지 바라 밀이 따라오므로 6바라밀 중 반야바라밀이 가장 중심바라밀이다.

(般若, 斑若 : 범어는 prajna이며, 팔리어 panna의 음역으로 혜(慧)․지혜․明. 慧明․極智등으로 의역한다. 28번 참조)

4. 보살이란 어떤 의미인가? <바웃드하佛敎p.198>

보살(菩薩 : 菩提薩埵, Bodhi - Sattva)은 그 뜻을 정의해보면,

깨달은사람 존재한다

가. 부처의 지혜를 가진 ‘살아있는 사람’

나. 항상 부처의 지혜를 구하고 있으며 이를 반드시 얻게 될 ‘살아있는 사람’

다. 지․덕․행(知․德․行)과 모든 면에서 뛰어나고 현재는 비록 부처가 아니지만 장래에 成佛이 확정되어 있는 ‘후보자’를 말한다. 菩薩은 구마라집(Kumarajiva) 이 번역한 말이고, 현장스님은 “有情”이라고 한역했다.

보살이라는 말은 초기불교의 ‘자타카’에서 오로지 붓다의 전생에 대해서만 이 말 을 써 왔으나, 후대를 오면서 보살이란 말은 당초의 개념에서 일탈(逸脫)되어 여 러 부파에서 폭넓은 의미로 쓰여 오며, 또 나이 많은 여신도를 높여 부를 때 쓰 이기도 하며, 三乘의 하나이자 十界의 하나이기도 하다.

5. 12因緣(12緣起)를 말하라. < 불교학강의실-2, p98 >

연기(緣起)란 pratitya-Samutpãda의 의역(意譯)이고 쁘라띠뜨야는 ‘모여서, 의지 하여, 의존하여’라는 뜻이며 사무뜨빠다는 ‘발생, 일어 난다’는 뜻이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이 세계를 크게 둘로 나누는데, 하나는 깨달음의 세계(悟 界: 四聖-성문․연각․보살․불)이고, 또 하나는 헤맴의 세계(迷界 : 六道-천상․ 인간․수라․축생․아귀․지옥)로 나눈다.

12緣起는 三界(욕계․색계․무색계)에 대한 미(迷)의 因果를 12가지를 나눈 것이 며, 괴로운 현상들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는지를 순차적으로 기술한 것이다. 12緣起는 12가지 요소로 되어 있는 緣起說인데, 태어남의 원인은 무수히 쌓아온 無明과 갈애(渴愛)때문이라 한다.

→ ①무명(無明 : 迷의 근본인 無知․渴愛)

→②행(行 : 무지로부터 마음의 의식작용을 일으키는 동작, 행위)

→③식(識 : 의식작용)

→④명색(名色 : 이름만 있고 형상이 없는 마음과 형체가 있는 물질)

→⑤육처(六處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 5개의 감각기관과 의(意)의 심적인 →⑥촉(觸 : 사물에 접촉함) ╚ 감지능력 등 여섯 가지의 감각영역들)

→⑦수(受 : 外界로부터 받아들이는 苦․樂의 감각인데, 바라는 방향으로 강한 돌진을 유발하고, 고통은 피하거나 끊으려는 강한 돌진을 낳는다.)

→⑧애(愛 : 갈망으로 욕망의 일종인데 약한 단계이다)

→⑨취(取 : 붙잡음인데 욕망의 일종으로 강한 단계이다)

→⑩유(有 : 業의 다른 이름, 다음 세상의 결과를 불러 올 業)

→⑪생(生 : 이 몸을 받아 남) 『를 포함한다.)

→⑫노사(老死 : 늙음과 죽음, 이는 우리가 받는 비탄과 불행과 악 등의 모든 고뇌

6. 淨土三部經이란 어떤 경전인가? < 불교경전의 이해 p215-226, 정토불교의 세계 p17 >

7. 淨土敎의 發生地는 어느 곳으로 보는가?

정토사상(淨土思想)은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사상인데, 바로 깨달음의 세 계로 가기가 힘이 드니 극락세계인 淨土까지만 가자는 것이 정토사상이다. 이 정 토사상이 일어나게 되는 시대적․사회적 배경에서 북부인도의 천민들의 삶의 비참 함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행도(易行道:염불수행)

淨土

깨달음으로 가는 것은 쉽다

(깨끗한세계

극락세계)

穢土

궁극적 목적지

(우리가 살고 있는 더러운 세상)

난행도(難行道:自力으로 諸宗의 行을 닦음

바로 가기가 어렵다고 본다)

(깨달음의세계)

< 난이이도(難易二道)의 교판(敎判) >

불교의 극락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고 경유지이고, 또 가야할 곳이 있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은

① 무량수경(無量壽經) : 상하 2권으로 되어 있으며 조위의 강승개가 한역한 경전 이 가장 널리 유통되고 있으며, 석존이 왕사성의 기사굴산에서 아난을 대고중(對 告衆)으로 그 출세의 본 뜻인 타력(他力)의 법문을 설한 것이다.

②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 1권으로 서역의 강량야사가 한역하였으며 석존 때에 마갈타국 왕사성에서 아사세 태자가 제바달다의 사주를 받아 父王인 범비사라를 가두고 부인을 죽이려 한데서 발단, 부처님이 신통으로 이를 막고 제자를 보내며 몸소 나아가 西方淨土를 나타내어 보였다.

③ 아미타경(阿彌陀經) : 1권, 구마라집이 한역하였으며 부처님이 기원정사에서 사 리불을 상대로 아미타불과 그 국토인 극락세계의 공덕장엄을 말씀하시고 아미타 불의 명호를 부르면 극락세계에 왕생한다고 말하고 특별히 往生을 권한 경전.

이 淨土三部經은 정토교의 근본경전으로 정토계의 많은 경전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三部四卷의 경전을 淨土三部經이라고 한다.

이 정토신앙은 중국과 한국에서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시고 念佛을 많이 하 는데 그것이 선(禪)에 부수(付隨)된 신앙으로 되어 있으나, 그 뿌리와 확산 범위 는 대단히 깊고 넓다고 본다.

8. 대승불교가 흥기(興起)한 이유?( 바웃드바 불교 p162 )

70. 대승불교의 발생에 대해 기술하라.

Ⅰ. 대승불교(Mahã yãna Buddism)는 남방불교와 구별되는 부파불교이후의 발전 된 불교의 모습으로서, 한국․중국․일본․태국 등에 전래되어 그 꽃을 피운 북 방불교이다.

Ⅱ. 대승불교 發生의 時代的 背景

부처님35세 80세 근본분열시작 서력기원전후

성도 열반 BC4세기 불멸500년

45년간

100년간

상좌부 (보수경향)

↗ 400년간

↙ AD67년 중국에 불교전래

설법

제자들에 의해

잘 유지됨

20개파로 분열

대중부 (진보경향)

대승불교시작

←-- 원시불교시대 --→

←-- 부파불교시대 --→

←-- 대승불교시대 --→

Ⅲ. 대승불교의 발생원인

1) 佛敎 外的인 要因

가) 기원전 5세기 전후의 인도는 각종 산업이 번창하여 소도시가 건설되고 이 소도시를 중심으로 군소 국가가 난립되고 또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서 전쟁 이나 동란이 발생하였고

나) BC 327년에는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을 비롯하여 여러 외부 민족 이 잇달아 인도를 침입하였으며 이에 따른 학정과 혼란으로 민중의 고난은 극심하였고 이러한 어려운 역경을 탈출하고자 하는 비원 내지 희구가 있었다.

2) 佛敎 內的인 要因

가) 부처님 入滅 후 그 유골(Sarira)을 재가신도들이 8등분 하여 자기 고장으로 가져가서 塔을 쓰고 재가신자들이 그 탑을 관리한다.

나) 부처님 塔에 경배하면서 그 불탑신앙으로부터 대승불교가 시작한다.

다) 대승불교 운동이라고 하는데 부파불교시대의 번쇄(煩碎)한 철학에서 부처님 당시의 佛敎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라) 재가 신자들이 중심이 중심이되어 자기 이외에도 他人의 存在를 발견하였고 이들에 대한 헌신에 의하여 自身을 구제하려는 廻向(29번 참조) 즉 善報를 그대로 他人에게 돌린다는 일종의 質的인 전환이 행하여 졌다.

Ⅳ. 대승불교교단은 龍樹나 제바(提婆 ; Deva) 같은 스님이 空사상을 천명하고, 그 뒤에 무착(無着)과 세친(世親) 같은 분이 나와 唯識사상을 크게 빛나게 한다.

Ⅴ. 대승불교는 발생은 인도에서 했으나, 중국에 서력기원을 전후한 무렵에 불교가 들어온 후 중국적인 모습으로 대승불교는 꽃을 피우게 된다.

Ⅵ. 대승불교의 중심사상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小乘이라 불리는 보수파와는 다 음과 같은 思想的으로 큰 변화가 생기게 된다.

1) 새로운 諸佛의 등장

가) 초기에는 오직 고따마 붓다 만을 부처님으로 추앙했으나 大乘운동과 더 불어 많은 부처가 등장하게 된다.

나) 과거의 七佛, 미래불, 十方世界의 多佛, 또 동방의 아촉불, 서방의 阿彌陀 佛, 동방의 정유리(淨瑠璃)의 藥師如來, 무한한 光明의 비로사나불등 많은 부처가 탄생하게 된다.

2) 새로운 諸 菩薩의 등장

아미타 부처님의 前生인 法藏菩薩, 가장 많이 알려지고 친숙하며 三十三身 十 九說法의 觀音菩薩, 지혜의 문수보살, 보현보살, 세지보살, 허공장보살, 지장보 살등 그 수는 수백에 달한다. 이와 같이 대승경전에 나타난 많은 부처님과 보 살들은 多佛에서 汎佛로 발전하고 一切衆生 悉有佛性( 일체 중생 모두에게 불 성이 있다.)로 까지 발전한다.

3) 空思想과 육바라밀중 특히 반야바라밀이 강조되며,

4) 구제와 자비, 광의로 말하여 利他 또는 이와 관련된 誓願과 廻向이 새롭게 전 개되였고,

5) 현세주의와 동시에 彼岸에 대한 희구가 이루어 졌으며,

6) 믿음이 강조되고,

7) 삼매가 정화되며,

8) 多佛과 함께 장대한 우주관이 도입되고,

9) 자기 마음의 本性에 대한 추구가 이루어 졌으며,

10) 方便 즉 手段이 중시되었고, 일종의 신비화등의 특징을 꼽을 수 있다.

11) 시대별로 經․論을 구분하면 表 1과 같다.

◎ 表 1 : 시대별 經論의 구분표

BC 1C~1C

1C ~ 2C

원시불교

아비달마불교

원시대승

초기대승

중기대승

후기대승

- 아함경

-대기설법

-현실중시

-형이상학의

지양

- 아비달마논장

-분별론,발취론

-발지론→대비바사론

-논사등 7개의 논서

-설일체유부의 교리를 확립한 발지론

-AD 2C경 카니시카 왕의 보호아래 발지 론에 주석을 붙인 대비바사론

-반야사상

-화엄사상

-법화사상

-정토사상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중관사상

-여래장사상

(如來藏思想)

대방등여래장경

암굴라마경

유마경

승만경

대반열반경

-유식사상

-해심밀경

(아뢰야식)

-밀교사상

9. 소승불교란 어떤 불교인가?

60. 소승불교는 언제 생겨났다고 보는가?

69. 부파불교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인가?

Ⅰ. 인도에서 불교 발생 후의 변천과정을 볼 때 불멸 100년경부터는 보수경향의 상좌부와 진보경향의 대중부의 2개의 派로 갈라지는데 이것을 근본분열(根本分 裂)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다시 100년 후 2개의 부파(部派)에서 20개 部派로 지말 분열(枝末分裂)을 하는데, 근본분열이 시작되는 불멸 100년경부터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서력기원 전후 시대까지의 약 400년의 기간을 인도불교사에서 부 파불교(部派佛敎)시대라고 한다. (8번나항 도표 참조)

Ⅱ. 대승불교 쪽에서는 대승과 소승의 호칭이 일반화되어 있으나 소승의 원어인 히나야나(Hinayana)의 Hina에는 小란 의미외에도 “비천한”, “저열한”의미가 있어 이 폄하(貶下)적인 호칭인 “히나야나”는 “마하야나”보다 상당히 늦게 사용되였으 며 대승과 구분한기 위해서만 사용되었으나 기존의 상좌부 불교도들은 소승불교 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상좌부 불교라 했고 대승불교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반론도 등장 하였지만 사상적으로는 소승이 대승불교의 교학적 기초가 되고 있다.

지금도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의 동남아 불교를 우리는 소승불교라고 하는데 남방상좌불교(Theravada-Buddism)라는 표현이 더 맞는 표현이라 생각된다. 남방 상좌불교는 成佛에 목표를 두지 않고 아라한(阿羅漢)에 목표를 두고 있다.

Ⅲ. 部派佛敎의 發生요인을 보면 불멸 후 100년동안의 기간동안 교단이 잘 유지되 었으나 그 이후부터는 ①계율의 해석의 차이가 생겼으며 ②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주장이 대두되고 ③지역이 넓어 지역간 정보교류가 안되었고 ④각자 스승 이 다르다는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Ⅳ. 部派佛敎의 특색을 살펴보면

① 각 부파마다 교리를 체계화시키고 정립한다

②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삼세실유(三世實有) 법체항유(法體恒有) 주장이 대 두되는데 色心의 모든 법은 前世․現世․來世의 三世에 걸쳐 실재한다는 사상이 다.

③ 논장(論藏)의 탄생으로 삼장(三藏)이 성립된다.

④ 법의 연구를 중점적으로 하여서 Abbi-Dharma불교라고도 한다.(19번 참조)

⑤ 체계화된 고도의 철학사상이 발달-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것

⑥ 기세경(起世經)에는 우주 전체의 생성원리의 인과를 설명

⑦ 五位七十五法의 학설

⑧ 후에 대승불교의 사상 체계가 되는 것은 부파불교시대의 경(經)과 율(律)에 대 한 연구로 교법을 체계화해 두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다 한다.

10. 화엄경의 주불은 누구이며 그 사상은?

< 35번 참조, 불보살명호이야기 p. 64, 불교경전의 이해 p166 , 불교사전 >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을 줄여서 화엄경(華嚴經)이라 하는데, 석존이 成道한 그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表明한 경전으로 대승경전 중, 중국에서 한역 된 이래 교학적(敎學的), 사상적(思想的)인 발전에 있어서 법화경과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는 유명한 경전이다.

經의 교주(敎主)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며, 화엄경에 나오는 비로 자나불은 모든 부처의 본체 즉 진리의 몸을 뜻하는데 화엄사상의 입장에서 본다면 비로자나불은 모든 부처의 근본이고 중심으로 간주되는 부처님이시다.

화엄경의 사상(思想)은 중중무진(重重無盡) 법계연기(法界緣起)이다.

법계, 곧 우주만유를 일대연기로 보는 학설이며 법계의 사물이 천차만별하나 피차 서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하나도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 그리 하여 번뇌가 곧 보리이고 생사가 곧 열반이고 만유는 원융무애한 것이다. 그래서 화엄종에서는 일즉일체(一卽一切), 일체즉일(一切卽一)이라 말하며 혹은 한 사물 (事物)은 상식으로 보는 단독한 하나가 아니요, 그대로 전 우주라는 뜻에서 한 사 물을 연기의 법으로 삼고, 이것이 우주성립의 체(體)이며, 힘인 동시에 그 사물은 전 우주로 말미암아 성립된 것이다.

이와 같이 우주의 만물은 각기 하나와 일체가 서로 연유(緣由)하여 있는 중중무 진(重重無盡)한 관계이므로 또 이것을 법계무진연기(法界無盡緣起)라 한다. 이 사 상을 설명한 것이 육상원융(六相圓融) 십현연기(十玄緣起)의 교의(敎義)이다. 이 사 상은 연기론의 극치로서 뢰야연기, 진여연기, 등과 같이 우주연기의 주체를 어떠한 사물이나 어떠한 이체(理體)에 국한하지 않고 낱낱 만유의 당상(當相)에서 말하는 것이 특징이다.

11. 한국에 불교는 언제 전해졌나? < 한국불교사 >

가. 상고시대의 신앙문화 고찰

불교를 받아들이기 전의 우리의 조상들은 그처럼 원시적 자연신 숭배의 테두리 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종교 관념에서 보는 종교다운 종교를 갖고 있지 못하였다. 신비롭게 푸른 창공과 거기에 밤낮으로 출몰하는 해와 달과 그리고 무수한 별들, 구름과 바람과 비와 눈, 산과 바다와 강물과 벌판과 나무와 바위 등, 모든 자연 현상을 신 또는 그 분신으로 믿고 신봉하였었다.

그래서 자연으로부터 받는 모든 재앙, 곧 가뭄과 홍수와 폭풍우와 벼락과 몹쓸 전염병 등을 모두 신의 노여움이나 벌로 보고, 못된 신의 장난으로 믿었기 때문 에 그 귀신들에게 비위를 맞추고 비는 행사를 통해서 자연의 재난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리하여 종교라고 할만한 조직적이고도 체계화된 신앙형태는 갖고 있지 못하였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때문에 중국 대륙으로부터 높은 수준의 문화를 수반한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들어오게 되었다.

종교다운 종교가 없었던 우리나라에 전래된 불교는 외래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오 래지않아 산신당 등 토속신앙과 융합되며 우리의 종교가 되어버렸고 민족의 문화이고 사상이며 모든 애환을 순화하는 정신적인 기둥이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고구려․백제․신라의 3국 시대였는데, 3국의 불교 전래연대가 각기 다르고, 수용형태도 조금씩 달랐다고 할 수가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 12년 →

← 143년 →

-17대 소수림왕

2년6월(372년)

-전진왕부견(前秦王符堅) 이 순도(順道)스님으로 하여금 佛像經文을 보내

왔다.

-소수림왕 4년 阿道스님

이 옴

-다음해 375년 2월에 성문사(省門寺)를 지어서 順道를 머물게 하고 이불란사(伊佛蘭寺)를

지어서 아도(阿道)를 머물게 한다.

-15대 유리왕 원년 9월 (384년)

-인도승 마라난타가 東晋으로부터 오다

-왕의 적극적 수용

-다음해 2월 漢山에

절을 짓고 열사람을 득도시킴

-제23代 법흥왕 14년(527년)

-이차돈의 순교가 있은후 비로소 불교가 최초로 받아들여짐

-불교가 들어오기는 훨씬 이전에 고구려를 통해서 들어왔다는 몇 가지 이설(異說)이 있다

-24대 진흥왕 때 신라불교 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12. 사물이란 무엇을 가르키나? < 천태종 불교의 첫걸음 >

76. 사원에서 사물을 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범종(梵種), 법고(法鼓), 운판(雲版), 목어(木魚) 즉 네 개의 대표적 法具를 사물(四 物)이라하며, 사찰에서 조․석예불, 의식이나 행사때, 대중을 모이게 하거나 때를 알리기 위해서 치며 다음과 같다.

가. 범종(梵種)

범(梵)이란 우주만물이, 진리란 뜻으로 바로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을 범종이라 한 다. 모든 중생이 종소리를 듣는 순간 번뇌가 없어지고 지혜가 생겨 악도(惡道)에 서 벗어나게 되며 최소한 종소리를 듣는 순간만이라도 미명과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으며 지옥중생까지 제도하는데 신앙적 의미가 있다.

사찰에서는 조석으로 타종하는데 아침예불시 28번, 저녁 예불 시는 33번 타종하 는데 그 횟수는 삼계육도(삼계육도)에 관련된 불교의 우주관의 것이 가장 독특하 고 과학적이어서 그 우수성을 완전히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가장 오래 된 상원사종은 가장 아름다우며, 애절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에밀레종은 그 소 리가 너무나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종의 무게가 12만근으로 우리나라 古代의 종중 에 最大의 梵鐘이다.

나. 법고(法鼓)

그 북소리가 장중하고 무거워 부처님의 설법(사자후 : 獅子吼)을 상징한다. 즉 북 소리가 세간에 널리 울려 퍼져 불법의 진리로 중생의 마음을 깨우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또 중생의 번뇌와 마구니를 쳐 부시는 것을 뜻하며, 축생을 제도하 는데 주로 쓰이며

다. 운판(雲版)

청동이나 철로써 구름모양의 넓은 판을 말하며 그 판위에는 보살상이나 ‘옴마니 반메훔’등의 진언을 새기기도 하고 가장자리에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듯 호 위하는 모습을 새기기도 한다. 운판의 소리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조류, 또는 허공 을 헤매는 영혼을 천도(薦度)한다는 의미가 있다.

라. 목어(木魚)

목어는 나무를 깍아 물고기모양을 만들고 그 배부분의 속을 파내어 그 양벽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법구이다. 물고기는 밤에도 눈을 뜨고 있으므로 수행자로 하 여금 잠을 자지 않는 물고기처럼 항상 깨어 있어 부지런히 정진한다는 뜻이 있으 며, 수중고혼과 물속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의미가 있다.

처음에는 길고 곧은 고기 모양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둥글게 변형되었고 둥근 것 이 다시 변형되어 목탁이 되었다.

13. 초전법륜은 어디서 누구를 대상으로 說하셨나?

48. 불교교단의 최초 설립에 대하여 설명하라. < 불교문화사 이재창 학장 >

초전법륜이란 사르나트의 鹿野苑에서 예전에 함께 고행했던 5명을 상대로 한 최 초의 설법으로써 이들 5명이 불교의 출가교단인 僧家(Samgha)가 성립되었으며 여 기에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진리, 법, dharma)을 합하여 三寶가 갖추어지며 최 초로 불교라는 종교가 탄생하게 된 것에 의의가 있다. 만약 부처님이 깨닫기만 했다면 自利는 성취했겠지만 利他는 성취하지 못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깨달은 내용을 ‘四諦’로 說하시고 깨달음에 실천방법으로 ‘八正道’를 제시하 였다. 그리고 이것은 苦와 樂의 두 가지 치우침을 떠난 ‘中道’라고 선언하셨다.

14. 제1결집이 행해지게 된 이유는? < 불교경전의 이해 p.20 >

인도불교역사에서 보면 3~4차례의 결집(結集)이 있었다.

가. 결집의 설립배경

① 부처님 입멸 후 교단이 의지해야 할 교법에 대한 정리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② 부처님은 수기설법을 하였으므로 가르침을 통일, 전승에 적합하도록 편찬 하게 되었다.

③ 시대의 흐름에 따라 법에 대한 해설의 필요를 느꼈다.

나. 제1결집의 내용

제1회 결집은 왕사성(王舍城)에 500비구가 모여 7개월에 걸쳐 결집을 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부처님 80세 열반 후 3개월 이내

② 왕사성 칠엽굴에서

③ 500명의 제자가 모여서

④ 대가섭이 사회자가 되고 우바리존자가 律을, 아난자가 法을 암송

⑤ 책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합송(合誦 : Samgiti) 으로 전해졌다.

다. 제1회 결집이 잇는 후 제3회 결집 때 論이 완성이 되고 성문화되기 시작했다.

라. 佛滅 100년경에 베살리에 700의 비구가 모여 十事를 非法으로 배척하는 제2 결집이 있었고

마. 제3결집은 인도를 처음으로 통일한 아쇼카왕 즉위 18년(불멸 236년)에 非正通 說者 모두를 교단에서 추방하고 천명의 아라한을 모아 9개월에 걸쳐 행하여 졌 으며 1, 2회결집때는 경과 율 2장이 결집되였지만 이때는 논장도 결집되었으며 이후에 비로서 문자화 되었다고 전한다.

15. 3밀은 무엇인가? < 불교사전 >

삼밀(三密)은 진언밀교에서 身․口․意, 三業을 말한다. 통불교에서는 부처님 3업 의 이름만으로 해석하거니와 밀교에서는 불․중생의 두 방면으로 두 가지 해석한 다.

가. 부처님편으로는 부처님 3업의 활동은 매우 미묘하여, 범부로서는 알수 없는 경 계이므로 密이라 한다. 밀교에서는 우주의 본체인 6大를 인격화한 것이 대일볍신 여래이므로, 그 신밀(身密)은 우주의 전체적 활동이며, 어밀(語密)은 우주간의 온 갖 언어․음성의 활동이며, 의밀(意密)은 우주간의 온갖 정신활동을 말한다. 그리 하여 3밀은 각각 서로 섭입(涉入)하여, 찰나의 신밀도 그 당체에 어밀․의밀을 갖 추고 잠간의 의밀에도 그 當念에 신밀․어밀을 갖추고 1句의 언어에도 신밀․의 밀을 갖추었다 한다.

이렇게 한 法의 3밀이 서로 섭입할 뿐만 아니라 낱낱 모든 法의 3밀도 서로 갖 추고 서로 융통하여 끝이 없다 한다.

나. 중생편으로는 부처님과 중생은 그 體에서 일체불이(一切不二)이므로 중생도 부 처님과 같이 미묘한 3법의 활동이 있지마는, 오직 수련(修練)한 이 만이 아는 세 계이고, 범부로서는 알 수 없는 작용이므로 密이라 한다.

16. 法華經의 大義를 설명하라.(불교학개론 강의실2 p. 134)

36. 法華經이란 어떤 경전인가?

법화경(法華經)은 대승경전의 대표경전으로 원전 성립은 AD1~2c경으로 추정되 며 천태종과 법상종의 所依 경전이다. 이 법화경은 몇 가지 번역본이 있는데 석가 모니 부처님께서 인도의 영축산(靈縮山)에서 8년간에 걸쳐 설법하신 경전으로 5호 16국의 후진불교의 대표자로 불리는 구마라집 번역본인 묘법연화경이 널리 읽혀지 고 있다. 이 묘법연화경은 7권 28品으로 되어 있는데 전반 14品을 적문(迹門‘), 후 반 14品을 本門이라 한다.

迹門에는 상주불멸(常住不滅)하는 법신불(法身佛)의 대자대비를 본원(本願)으로 하여 사바세계에 衆生을 제도하기 위해 몸을 나투고 중생성취(衆生成就)하는 것을 밝히는 부분이며, 本門은 세상에 나와서 중생을 인도하고 說法하는 응화신(應化身) 의 근원적(根源的)인 실체(實體)가 구원실성(久遠實性)의 석가모니불임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 두 부분은 연꽃이 피어남에 열매가 있음이요 더러움 가운데 거(居)하되 청정 함이라 그러므로 最上의 대승법(大乘法)은 물들고 더러움을 버려 따로 진리를 구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더러운 진흙에 즉(卽)하여 이루는 것이며, 중생을 떠나 佛을 구함이 아니고 衆生에 卽한 佛의 세계이니 곧 화과(華果)가 同時이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출현하셨으니 중생의 근기에 따 라 法을 설하시되, 구경(究竟)에는 모든 衆生을 누구나 다 一佛乘의 길로 나아가 成佛케 하시니 이것이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 하는 것이다.

법화경은 모든 중생에게 본래 갖추어진 근본불성(根本佛性)에 대한 확신과 애정 에 그 바탕을 두고 있고, 여성은 물론이고 제바달마와 앙골라마 같은 惡人도 남김 없이 성불케 하고자 하는 대원련(大願力)의 경(經)이며, 모든 중생의 불성에 대한 예경(禮敬)과 찬탄(讚嘆)의 위대한 가르침인 것이다.

또한 후에 천태대사 지의(智顗 : 538-597)에 의하여 교학적․사상적으로 조직 정 리되어 천태사상의 발전을 보게 된 유명한 경전이다. 중국불교의 화엄사상과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다.

17. 천태의 五時八敎설을 설명하시오.< 천태학개론 - 이영자 교수 >

Ⅰ. 서론

학문에는 학파가 있는 것과 같이 같은 종교에서도 그 주장하는 敎義, 行事, 作法에 따른 宗派가 있다.

각각의 종파마다 경전을 해석함에 있어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하게 되며, 거기에서 그 경전을 이해하는 思考의 틀인 敎相判釋이 생기게 되고 이를 줄여서 敎判이라 하는데 각종의 교판을 알아보면, 법상종은 규기의 三敎 八宗, 화엄종은 법장의 五敎十宗, 삼론종은 길장의 이장삼륜(二藏三輪), 정토종에서는 도작의 二門判 등이 있다.

天台大師 智顗는 羅什의 묘법연화경이 가장 대승불교의 핵심이라고 보았고, 이에 의해서 敎判을 세운 것이 五時八敎이다.

Ⅱ. 本論

가. 부처님의 설법순서에 따라 시간적으로 5時로 나누었는데 법화경의 신해품이 근거가 되고 있다..

← 45년간 설법 →

①화엄時37일

②아함시12년

③방등시8년

④반야시22년

⑤법화열반시5년

① 華嚴時 : 부처님이 성도한 뒤 최초의 三十七日간 깨달은 내용을 그대로 설 한 것이 화엄경이고 이때가 화엄시이다.

이때 성문에 해당하는 제자들은 벙어리와 귀머거리와 같았다할 정도로 못 알아들었고, 근기가 높은 사람만 구제 받았다.

② 阿含時 : 화엄경을 설한 뒤 화엄경이 얼마나 높은 법인지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서 다음에 12년간에 소승의 아함을 설한 시기.

③ 方等時 : 아함을 설한 뒤 8년 동안 조금 근기를 높여서 <유마경> <승만경>등 의 대승의 경전을 설한 시기.

④ 般若時 : 방등시 뒤에 22년간 <반야경>을 설한 시기.

⑤ 法華涅槃時 : 바야흐로 진실한 佛知見을 여는 때로서 부처님이 최후의 5년 동안 <법화경>을 설한 시기와 하루 낮․밤 동안 <열반경>을 설한 시기인 데, 5시팔교에는 법화경이 최고 가는 경전이고 법화경만이 진실이며 그 전까지 설한 반야까지는 법화경을 설하기 위한 준비운동이고 방편이라는 교상판석이다.

나. 八敎는 化義四敎와 化法四敎로 나누는데 다음과 같다.

1. 化義四敎 : 중생을 敎導하는 形式․方法에 따라 네 가지로 나누었는데 ①돈 교, ② 점교, ③ 비밀교, ④부정교의 네 가지이다.

① 頓敎 : 부처님자신의 깨달음을 그대로 설한 아주 비약적인 가르침으로, 화엄 경이 여기에 속한다.

부처님이 以心傳心으로 傳하신 “염화시중의 미소”가 이에 해당된다.

② 漸敎 : 얕은 가르침으로부터 그 내용이 점점 깊은 가르침으로 나아가며 중생 을 점차적으로 교화하는 것으로, 아함부 경전의 가르침이 여기에 해당한 다.

③ 秘密敎 : 여러 가지의 능력자가 한 자리에 있을 때 이들 서로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듣는 이가 따로 따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법하신 교묘한 敎法이 다.

방등경의 가르침이 여기에 해당되며, 이 敎는 듣는 이들이 제각기 다른 이가 들은 敎法이나 그 뜻을 서로 알자 못하기에 이를 人法俱不知, 同聽 異聞, 互相不知라고도 한다.

④ 不定敎 : 여러 가지의 능력자가 한 자리에 있을 때 각자의 힘에 應해서 나름 대로 체득하는 바의 敎法이 일정치 않은 설법을 말한다.

반야경의 가르침이 여기에 해당된다.

법화경을 초팔제호(超八醍醐)라 하여 頓도 아니며, 漸도 아니고, 오직 방편을 열어 진실을 나타내려고 내려고 한 것이 化義四敎이다.

2. 化法四敎 : 중생의 성질․능력에 應해서 가르친 교리 내용에 따라 구분한 것으 로 근기가 얕은 곳으로부터 높은 곳으로 순차적으로 배열한 것으로 ⑤ 장교, ⑥ 통교, ⑦ 별교, ⑧원교의 네 가지이다.

이 장, 통, 별, 원은 천태불교의 기초적 이론이며 空 ․ 假 ․ 中의 三 諦의 해석에 따라 구분된다.

⑤ 藏敎 : 經, 律, 論 三藏의 가르침을 藏敎라 이름 하였다.

초기의 불교사상인 阿含經에 依해서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니며, 無自性 인 空의 도리가 밝혀지고, 하나하나 분석하는 석공관(析空觀)에 의해서 무여열반에 들게 하는 가르침이다.

⑥ 通敎 : 성문, 연각, 보살 三乘이 함께 받는 가르침이다.

뭉뚱그려 전체적으로 보면서, 전체적으로 空이라 하는 體空觀인데,

근기가 둔한 사람이 이 敎를 얕게 해석하면 藏敎와 같은 결과를 얻게 되 고 영리한 사람이 이 敎를 높게 해석하면 別敎는 물론 圓敎에까지도 들 어 갈 수 있다 했다.

體가 空하다고 하는 般若思想이 通敎의 대표적 사상이다

⑦ 別敎 : 二乘과 함께 하지 않고 다만 보살만을 위한 가르침이고 모든 것을 차 별의 面에서 본다는 歷別의 뜻이 있다.

화엄사상이 이 別敎의 대표적인 사상으로 藏敎나 通敎에서와 같이 空의 세계에 집착하지 않으며 보살의 세계이기에 空에서 假로 내려와 苦集滅 道의 이상세계 전부가 無量하다 하였고, 이 別敎의 가르침이 假에 머물 러 있지 않고 대승의 핵심인 中道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또 뒤의 圓敎와 융통무애한 이치에 이르지 못하고 서로 막혔다는 隔歷 三諦가 별교의 주장이다.

⑧ 圓敎 : 法華思想이 이 圓敎의 대표적 사상으로 圓融三諦의 세계가 바로 이 圓敎의 가르침이다. 圓敎의 보살은 空 ․ 假 ․ 中의 三觀을 一心으로 觀하기 때문에 一心三觀이라고 하며 圓融三觀이라고 한다.

卽 空 ․ 假 ․ 中의 三諦가 서로 떨어 진 것이 아니고 空諦이면서 假 諦 ․ 中諦이고, 假諦이면서 空諦 ․ 中諦이며, 中諦이면서 空諦 ․ 假諦 이기 때문에 무애자재하다는 것이 圓融三諦의 주장이며 圓敎의 가르침이 다.

Ⅲ. 結論

성철스님의 “山은 山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씀에서 산은 산 , 물은 물로 있는 그대로가 無作의 세계이며 그것의 존재는 일단 否定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현재 山과 물로서의 존재를 긍정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否定에서 또 한번 否定을 거처서 현실로 돌아 왔을 때 우리는 諦(진리)라는 말을 쓸 수가 있고,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그런 세계가 바로 圓融三諦의 경지이다.

圓融三諦의 경지는 서양의 기독교 신학에서 최고의 敎義學인 “토마스 아키나스 神學”보다도 더 심오한 철학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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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진제와 속제에 대하여 논하라 < 불교사전 >

眞諦와 俗諦는 眞俗二諦라 하는데 이 때 諦는 諦理이니 변치 않는 진리를 말한 다. 이 두 가지 諦論의 발달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그 근본은 원시불 교로부터 진리의 표준이 되어 있는 四諦, 곧 苦와 集과 滅과 道 중에서 苦와 集은 현재에 나타난 미(迷)한 세계의 사실이라 하여 俗諦라 하고, 진지(眞智)에 의하여 처음으로 알게 되는 진리인 滅을 眞諦라 한다.

苦 ↘

俗諦

集 ↗

四諦-

滅 → 眞諦

이외에도 몇가지 해석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 眞諦 : 진리에 관한 실상, 무차별의 法相에 관한 이치

- 俗諦 : 세간 풍속의 실제 에 따라서 알기 쉽게 설명한 진리

19. 아비달마 불교란 어떤 의미인가? < 불교학개론 강의실, 불교의 이해 p.150 >

아비달마(阿毘達磨 ; Abhi-dharma)라 함은 부파불교시대에 말들어진 불교문헌을 말한다. 아비달마라는 말은 부파불교에서 2가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는 부처 님의 가르침(dharma)에 대하여(abhi) 연구한다 것, 즉 法의 硏究(大法이라고 번역 함)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훌륭한(abhi) 법(dharma)이란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아비달마의 원래의 뜻은 ‘법에 대한 연구’ 즉 ‘불교교리에 대한 연구․해 석’을 의미한다.

‘아비달마’는 부파불교 초기에는 각 부파의 공통적 개념이었지만, 후에는 설일체 유부(說一切有部)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아비달마 논사(論師)라 불렀기 때문에, 특 히 유부의 논서(論書)를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는 것이 주의할 필요가 있다.

◎ 說一切有部의 학설은 간단히 有部라고도 하는데 ‘일체의 존재(法)는 과거․현 재․미래의 三 世에 걸쳐 자성(自性)이 있다(實有)’는 주장에서 유래한 것이다. 구사론에 의하면 法(dharma) 은 “존재”와 “진리”의 2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존 재”는 현실에 사실로써 존재하는 사물을 말 하며 모두가 멸하는 성질을 갖고 있으며 파괴되어 극미(極微)에 이르며 이 극미를 궁극적 존 재라 하여 “승의(勝 義, 第一義)의 존재(有)”라 부른다. 이 극미는 그 자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타에 의존하지 않는다. 유부의 술어로 말하면 실체로 있으며 自性을 가진다. 즉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존재(任持自性)“를 法이라 주장하였다.

◎ 이법에는 유위법(有爲法)과 無爲法두가지가 있다. (불교학개론강의실-2 P. 113)

有爲法은 因과 緣의 화합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기에 요소로서는 실재하지만 生 滅․變化하는 無常한 存在이며 無爲法은 만들어진 것이 아닌 영원한 實在를 말한 다.

여기서 論이라는 말의 원어가 ‘아비다르마’이고, 이 시대의 ‘불교를 아비달마불교’ 라고 칭하는 것이다.

아비달마를 수집해 엮어 놓은 것을 아비달마장(論藏)이라 하는데 이論藏과 원시 불교시대부터 전해 져 온 경장과 율장을 합쳐서 三藏이라 한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논장을 주로 팔리상좌부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 속하는 것 뿐이다.

다시 말해서 부파불교시대에 이르러 경․율․론(經․律․論)의 삼장(三藏)이 성 립되었고 이중에서 논장(論藏)이 바로 ‘아비달마 불교’를 특징 짖게 된 것이다.

이러한 아비달마 불교의 특징은 출가자와 승원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불교라 규 정할 수 있다. 그리하여 교단 자체가 사회대중과 유리되고 교단으로부터 떨어진 대중은 미신화 되어감으로써 불교의 순수성이 상실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따라 아비달마불교에 반발하고 부처님에게로 복귀하려는 운동이 불탑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났는데 이것이 곧 대승불교이다.

이에 따라 부파불교, 즉 아비달마불교는 대승 쪽 사람들에 의해 소승불교라고 불리고 있다. 인도에서 아비달마불교가 존속한 것은 13c초에 이슬람교가 침입하 여 불교가 멸할 때까지였다.

20. 중국 선불교(禪佛敎)에 있어서 初祖는 누구인가 ?(이은윤교수 : 禪學)

다른 종파는 경론을 근거로 하여 자신의 주장을 편 것에 대하여 禪宗은 교외에 따로 전해지 는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禪宗의 종지(宗旨)를 불립문자(不 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 敎外別傳 : 강술이나 언어문자의 수단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직접 전 하는 것.

- 見性成佛 : 悟道, 見性, 또는 自覺이라고도 하는데 본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본성 을 깨닫는 것, 깨달음이 열리는 것을 뜻한다.

- 不立文字 : 교외별전과 같은 뜻

- 直指人心 : 교리를 생각하거나 모든 戒行을 떠나서 직접 사람의 마음을 교화하여 佛果를 이루게 한다는 뜻이다.

衆生이 본래 갖추고 있는 본각진성(本覺眞性)을 깨달아 나타내는 것을 혜(慧)라 하고, 이를 닦아 드러내는 것을 定이라 하며 이 定慧를 일러서 禪이라 한다.

초조(初祖)는 달마대사(達磨大師 : ?~528)이며 이조(二祖)는 신광혜가(神光慧可), 三祖는 완공승찬〔완(山+完)公僧瓚 : ?~606〕, 四祖는 도신(道信 : 580~651), 五 祖가 홍인대사(弘忍大師), 六祖가 혜능대사(慧能大師 : 638~713)이다.

선종은 북종선, 남종선으로 나뉘는데〔이를 남돈북점(南頓北漸)이라한다〕 북종 선(北宗禪)은 홍인대사의 수제자였던 신수대사(神秀大師)에 의하여 창립되었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쇠퇴하였으며, 남종선(南宗禪)은 혜능대사로 부터 번창하기 시작 하여 한국과 일본에 전파되며 오가칠종(五家七宗 : 74번 참조)으로 크게 번창한다.

(三品將軍 : 道明이 바루(발우;鉢盂;바리때)를 들려 했으나 鉢盂가 바위에 들러붙 어 떨어지지 않자 도명이 부복하며 말하기를 “저는 도우러 왔읍니다” 그때 혜능 曰 不思善 不思惡하라)

北宗禪의 神秀大師와 六祖 慧能大師의 다음과 같은 선문답으로 五祖 弘忍大師가 수 제자 神秀大師를 제치고 慧能大師를 六祖로 삼은 일화는 유명하다.

神秀大師 : 身是菩提樹요 (몸은 보리수요)

心如明鏡臺라 (마음은 명경대와 같다)

時時勤拂拭하여 (때때로 열심히 닦아서)

勿使惹塵挨이니라 (먼지가 끼지 않게 하여라)

慧能大師 : 菩提本無樹요 (보리수는 원래 없으며)

明鏡亦非臺라 (맑은 거울도 역시 없다)

本來無一勿인데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何處惹挨리요 (어느 곳에 먼지가 끼겠는가)

21 육식(六識)이란? (六根․六境․十二處․十八界)

眼․耳․鼻․舌․身을 五根이라하며 이들 五根을 통솔하는 기능을 意根(마음)이라 하여 五根과 意根을 합하여 六根이라 한다. 六根이 인식할수 있는 대상을 六境이 라하는데 이 六境이 色․聲․香․味․觸․法(진실)을 말하며 六根이 六境에 접하 여 인식한 것을 六識이라 한다.

六識에 의한 인식작용으로 苦․樂․捨〔三受 :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 겁겁지도 않은 그저 그런 상태(不苦不樂)〕등의 감수작용이 생기는데 이를 受라 한 다.

六處와 六根을 합처서 十二處라 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전체인 일체의 모든 것이 이 十二處로 들어가며 불교에서 가장 기본적인 세계관이다.

또 十二處에 六識을 더하여 十八界라 한다.

22. (일)천제(一闡提)란?

성불하기 어려운 사람을 뜻하며 선근(善根)종자가 다 끊어진 사람, 사정취(邪定 聚)에 속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불법을 비방하는 사람이 이에 속한다. 특히 자기의 존재를 부정하는 허무주의자는 절을 부신 것보다 더 성불할 수 없다(부처님도 구 제하지 못한다 하였다). 그러나 제바달마나 앙굴라마도 참회하고 나중에 성불한다. 또 법화경에는 闡提도 참회하고 열심히 기도정진할 때 성불할 수 있다고 하였다.

23. 108번뇌란 무엇인가? <불교사전 >

1) 百八煩惱는 중생이 갖고 있는 온갖 번뇌를 108가지로 열거한 것을 말하며 원 래의 108이란 많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교리의 심화와 함께 산출법이 생겨 났다. 그 세는 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두 가지가 널리 채택 되고 있다.

2) 6根으로 6塵을 대할 때 저마다 좋고(好), 나쁘고(惡), 그저 그렇고(平等)의 3가 지가 서로 같지 않아서 18번뇌를 일으키고, 또 괴롭고(苦), 즐겁고(樂),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상태(捨)의 3受가 있어 18번뇌를 내니 모두 합하여 36종이 된다.

또 이에 3世(過去世․現在世․未來世〕의 세 종류가 있으니 3곱하여 108번뇌가 된다.

육근(六根)

육진(六塵)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뜻[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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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色]

소리[聲]

향기[香]

맛[味]

감촉[觸]

법[法]

好․惡․平等․苦․樂․捨 (6×6=36)

×

과거․현재․미래(36×3)

108번뇌

6*3+6*3⇒36번뇌×3世(현재․과거․미래) = 108煩惱

3) 그 두 번째의 산출법은 見惑인 88使 + 번뇌와 수혹(修惑)인 10惑 + 10전(纏) = 108이되어 百八번뇌를 얻게 된다는 풀이도 있다.

.24. 해탈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 불교학개론 3/22 권탄준교수 >

해탈(解脫: Vimoksa)이란 괴로운 윤회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하며, 더 적극 적인 의미로는 ‘진실한 자기실현’을 뜻한다. 즉, 번뇌의 속박을 벗어나 자유로운 경 계에 이르는 것인데 열반의 딴 이름으로도 불려지기도 한다. 바라문교에서는 이 해탈을 목표로 선정수행을 한다.

해탈을 하기 위해서는 삼학(三學 : 64번 참조 )을 배워서 열심히 행하여야 한다.

25. 열반이란 무엇인가?<불교윤리 3/23 김사업교수, 불교학개론 5/24 권탄준교수 >

67. 열반이란?

열반(열반 ; nirvana ; 불이 완전히 꺼져 버린 상태)은 괴로움의 불꽃이 완전히 꺼져 버린 상태로,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고, 진리를 궁구하여 미(迷)한 생 사를 초월해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法을 체득한 경지를 말하며 소승불교에서는 열반을 나 혼자 모든 괴로움을 없앤다는 뜻이 있으나, 대승불교에서는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없앤다는 의미가 있으며, 또한 成佛의 의미도 있다.

열반에 무여의 열반과 유여의 열반으로 구분되며 다음과 같다.

가. 무여의열반(無如依涅槃 : 無如涅槃)

육체라는 의지처를 남기지 않는 열반, 몸이 없어지거나 완전히 열반이고 나머지 의지할 곳이 없는 열반이다. 부처님의 입멸을 無如涅槃혹은 大船涅槃(위대하고 완 전한 열반)이라 한다.

나. 유여의열반(有如依涅槃 : 有如涅槃)

보리(菩提 : Bodhi)를 증득한 상태로 남음이 있는 열반, 나머지 의지할 곳이 있 는 열반이다. 정신적으로 진리를 깨달아서 열반의 경지에 이르러도 몸은 無常하 고 쇠퇴해가므로 고통이 있다.

26. 因果應報에 대하여 설명하라. < 불교사전 >

因果應報란 모든 것은 因果의 법칙으로 지배된다는 원리로서 우리의 行爲에 대 해서 善한 業因에는 반드시 善의 果報가 따르고 惡한 業因에는 반드시 惡의 果報 가 따른다. (⇒ 善因善果․惡因惡果)

이와 같이 因果의 이치가 엄연하여 조금도 흩어지지 않는 것을 因果應報라 하는 데 因에 상응한 果報는 現世에서도 받고 혹은 來世에도 받는다 한다(38번 아뢰야 식 참조).

윤회사상과 결부되어 사람으로 태어나 받거나 六道에 윤회하여 받기도 한다.

27. 六道(三惡道, 善道)란? ( 불교입문 p. 113 )

삼계(三界 : 104번 참조)중 욕계(欲界)를 분류한 것으로 지옥․아귀․축생․아수 라․人間․天上으로 정리되어 있다.

① 천상(天上 deva, 提波, 天道 : 天界) : 인간이상의 세계로 欲界六天․色界十八 天․無色界四天(空無邊處天, 識無邊處天, 無所有處天, 非想非非想處天)이다

② 인간(人間 manusya) : 인류를 말한다.

③ 아수라(阿修羅 asura) : 신들의 적인 마신(魔神)의 세계로 싸우기 좋아하는 세 계이다.

④ 축생(畜生 tiryagyoni) : 동물 또는 곤충의 세계.

⑤ 아귀(餓鬼 preta) : 배는 큰데 비하여 목구멍은 바늘귀 만하여 굶주림의 세계.

⑥ 지옥(地獄 naraka) : 땅속에 있는 고통의 세계.

여기에서 인간 이상을 善道라하며, 축생 이하를 三惡道라 하고 모두가 윤회의 세계이다.

28. 반야에 대하여 설명하라.< 불교사전, 3번 6바라밀 참조 >

반야(般若 : prajna)는 혜(慧), 지혜(智慧)로 번역되는데 法의 실다운 이치에 계합 한 최상의 지혜를 말한다. 이 반야를 얻어야만 成佛하며, 반야를 얻은 이는 부처님 이므로 반야는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고 6바라밀 중 마지막 바라밀이다.

또 이는 법의 여실(如實)한 이치에 계합한 평등․절대․無念․무분별 일뿐만 아 니라, 반드시 상대 차별을 관조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색 이다.

29. 회향(廻向: parinama; 방향의 전환)이란 ? < 인도불교사 권기종교수 강의 6/1 >

가. 회향은 方向을 돌린다는 의미이다.

사찰에서 불사를 하여 회향식을 한다거나 기도가 끝이 났을 때 회향식을 하는데 이것은 끝이 났다는 말이 아니고, 복은 내가 갖고 그 복을 일체중생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회향이다.

나.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법당을 지을 때 그 법당의 주인은 돈을 낸 사람이 주인이 되는데, 회향한다는 말은 주인으로서의 권한 행사를 포기하고 이 법당에 오는 모든 이에게 사용권리를 돌려 주는 것도 회향이다.

다. 백일기도 회향도 내가 정진한 공덕은 나의 공덕이지만은 나와 같은 위치에 있 는 모든 이에게 공덕을 돌리는 것이 회향이다.

라. 사전적 의미 : 회전취향(廻轉趣向)의 뜻이며 자기가 닦은 선근공덕(善根功德)을 다른 衆生이나 도는 자기의 佛果에 돌려 향하게 함을 의미한다.

30. 아함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 불교사전 >

아함(阿含: Agama)은 전승되어 온 가르침이라는 의미로 전(傳)․교(敎)․법귀(法 歸)라 번역된다.

1) 전(傳)은 차례차례 이어 받는 의미로 3世諸佛의 傳說하는 것이라는 뜻이 있고

2) 교(敎)는 法이라는 뜻이고

3) 법귀(法歸)는 만선(萬善)이 귀취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소승교의 總名, 4아함, 또 阿含時를 가르킨다.

阿含經은 아함부에 속하는 소승경을 총칭해서 아함경이라고 하는데, 南傳과 北 傳이 있다. 아함경이란 원시불교 경전 가운데 한문으로 된 경전을 총칭하는 것인 데 장아함경(長阿含經), 중아함경(中阿含經), 잡아함경(雜阿含經), 증일아함경(增壹 阿含經)의 4종류의 아함으로 되어 있고, 원시불교 경전 가운데 팔리어로 된 경전 을 Nikaya라 부르는데 ‘니카야’란 ‘部’를 의미하는 말인데 長部, 中部, 相應部, 增 支部, 小部 등으로 5Nikaya가 있다.

31. 만다라란 무엇인가? < 불교사전, 불보살명호이야기 p.63 >

만다라(曼茶羅 : Mandala)는 만다라(滿茶羅)․만타라(曼陀羅)라 한다. 구역(舊譯) 에서는 단(壇)․도장(道場), 신역(新譯)에서는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 번역한다.

단(壇)은 평탄하다는 뜻으로 본디는 인도의 옛 풍습으로 일정한 땅을 구획하여 평탄하게 단을 만들어 여러 불․보살을 모시고 예배․공양하던 것이므로 단(壇)이 라 번역한다.

윤원구족은 뜻 번역으로 낱낱 살(輻)이 속바퀴(穀)로 모여 둥근 수레바퀴(圓輪)를 이루는 것과 같이 모든 법을 죄다 원만하게 갖추어 결함이 없다는 뜻이다.

밀교에서는 주로 뒤의 뜻으로 쓴다.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다. 넓은 뜻으로 만다 라에는 만덕장업(萬德莊嚴)․능생(能生)․적집(積集)의 세 가지 뜻이 있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만다라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고, 좁은 뜻으로는 한 곳에 여러 불․보살을 줄지어 모신 것을 말한다.

여기에 금강계 만다라․태장계 만다라가 있다. 이것은 현도(現圖) 만다라로서 아 사리(阿闍梨) 소전(所傳)의 만다라와 4종 만다라 등이 있으며 또 극락정토의 모양 을 그린 정토변상(變相)을 세속에서 정토 만다라라고 한다.

만다라에 대한 국어사전의 설명으로 모든 부처와 보살의 만덕원만(萬德圓滿)한 경계, 또는 그러한 경계를 그려낸 그림인데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은 대일여래 라고도 부르는데, 대일여래 부처님을 중심으로 우주의 세계를 그러넣은 것이 만다 라(Mandala)이다. 금강계 만다라(金剛界 曼茶羅)는 전체를 아홉으로 나누어 중앙에 대일여래를 모시고 주위 팔방에 1천4백50분의 부처님을 배치하고 있다. 태장계 만 다라(胎藏界 曼茶羅)는 전체를 12개로 나누어 중앙에 대일여래를 모시고 4백54분 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티베트 만다라는 양재동의 구룡사에 장엄되어 있다.

32. 사부대중이란?(칠부대중이란?) < 바웃드하 불교 p.22 & p168 >

불교교단은 대략 설립당초부터 남여출가자인 비구(比丘: bhiksn-걸식하는사람)와 비구니(比丘尼: bhikkuni), 그들에게 봉사하는 남녀 재가신자인 우바새(優婆塞 : upãsaka)와 우바이(優婆夷 : upãsikã)로 이른바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부대중에 미성년자 세 그룹(1,2,3)을 포함하여 七部(大)衆이라 하며 다음과 같다.

승가

(僧家)

출가자(出家者)

비구(比丘 : 남자출가 수행자)

비구니(比丘尼 : 여성출가 수행자)

사부대중

(四部大衆)

재가자(在家者)

우바새(優婆塞: 재가남자신도: 일명 처사

우바이(優婆夷: 재가여자신도: 일명 보살

1) 사미(沙彌): samanera, 20세 미만의 남자 출가승.

2) 사미니(沙彌尼): samaneri, 20세 미만의 여자 출가승.

3) 식차마나(式叉摩那): sikkhamana, 머리를 깍지 않고 심부름하며 비구니의 구족 계를 받기 직전의 여자출가승.

33. 범부란? < 불교사전 >

범부(凡夫) ↔ 성자(聖者)

지혜가 얕고 우둔한 중생. 불교에서는 대승․소승을 막론하고 見道이전으로 올바 른 이치를 깨닫지 못한 이를 다 凡夫라 한다. 그 가운데 4善根位를 內凡이라 하고, 3賢位를 外凡이라 하며 外凡 이하는 底下의 범부라 한다.

34. 화두란? < 불교사전>

화두(話頭)는 선종에서 공안(公案) 또는 고칙(古則)등의 1節이나 1則을 가르쳐 화 두라 한다. 종장(宗匠)의 말에서 이루어진 참선자가 연구하여할 문제로 頭는 어조 사이다.

화두란 여래의 體의 가장자리를 가장 가깝게 제시한 진리의 자리로서 수행자가 참구하여야 할 절대적인 근본자리를 화두라 한다.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근본당처 를 의심하는데에 있다. 무명이전의 근본당처를 體라고 한다. 화두는 公案이라고도 하는데 관공서의 공문서와 같이 확실하다는 의미라 한다.

일반적으로 無자화두, 是甚磨(이뭐꼬), 板齒生毛 등이 한국 선종에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화두의 종류는 1,700여 종류가 된다고 한다.

35. 화엄경이란 어떤 경전인가? < 무비편찬 화엄경 참조, 10번 참조 >

가. 화엄경의 출현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으신 후 3,7일(21일)동안 그 깨달음 경지를 향유하 고 음미하여 검토하였다고 한다. 깨달음의 경지에서 3.7일 동안 노니선(?) 그 자 체가 깨달음의 모든 것이며 그것은 곧 화엄경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 입멸 후 600년경에 龍樹보살이 세상에 나오시어 큰 바다속 용궁에 가서 여러 가지 대승경전을 열람하고 불가사의한 해탈의 기르침인 화엄경 40품을 가지 고 돌아와 대불사의론(大不思議論) 10만 게송을 지어 이 경을 해석하여 이것이 최초로 화엄경이 세상에 전해진 까닭이다.

나. 화엄경의 종류

화엄경은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는데 실차난타(實叉難陀 : 652~710)가 번 역한 80권본이 현재에 많이 독송되고 있다.

다. 화엄경의 구성과 내용

화엄경을 말할 때 으레 7處 9會 39品이라고 한다. 설법한 장소가 7곳이며 설법 회수는 9번이고, 전혀 다른 내용으로 분류될 수 잇는 부분이 39품이다. 보현행원 품은 화염경의 결론이며, 불교전체의 결론인데 언제부터인가 따로 떨어져 읽혀 왔으나 이것을 합치면 40품이 된다.

화엄경은 예로부터 신․해․행․등(信․解․行․言登 )의 4가지로 분류하여 보는 것이 하나의 통례이다.

1) 信은 인간이 이르러 갈 수 있는 최고의 결과인 부처님의 세계를 보여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환희심을 내고 신심을 내게 하는 부분이다.

2) 解는 결과를 보고 환희심과 신심이 나면 그 결과의 원인을 수행하고 결과를 얻으려는 수숭한 이해가 나게 되는 부분이다.

3) 行은 수행하는 길과 방법을 잘 알고 그 방법에 의지하여 나가면 수행이 모두 원만성취 되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4) 言登은 선재동자라는 구체적인 인물이 깨달음을 이루고 부처님의 萬行萬德을 성 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라. 부처님의 깨달음은 인류사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사 건을 남김없이 통째로 표현한 화엄경은 또한 인류가 남긴 최대의 걸작이다. 무 한한 시간으로서의 무한한 우주의 실상이 여기에다 있다. 거대한 허공의 일도 작 은 먼지의 일도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았다. 수 억 년 전의 일도 수 억 년 후 의 일도 지금 이렇게 함께 있듯이 이 화엄경에 다 있다. 화엄경은 곧 모든 시간 온 우주이며, 온 우주 모든 시간은 곧 화엄경이다.

36. 법화경이란 어떤 경전인가? < 16번 중복 >

37. 대일경이란 어떤 경전인가?

대일경(大日經)이란 대비로자나불(大毘盧遮那佛), 신변가지경(神變加持經)을 말하 는데, 진언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이다. 예전부터 학자들이 마하 비로자나(摩訶 毘 盧遮那)를 大日이라 번역했는데, 이것은 여래의 덕성이 태양과 비슷하므로 태양의 日에 大자를 더하여 大日이라 한다.

이 경전의 명칭이 뜻하는 바와 같이 대일여래(大日如來 : 비로자나불)가 체험한 성불의 경지와 大日如來가 나타내 보여주는 신변가지를 설하고 있다.

38. 아뢰야식에 대하여 설명하라.

82. 아뢰야식(阿賴耶識)이란 무엇인가?

아뢰야식(阿賴耶識 : Alaya vijnana ; 있는 곳이라는 뜻)은 장식(藏識) 혹은 일체 종자식(一切種子識)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종래의 아비달마 불교에서는 안식(眼 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六識밖에 설 하지 않았는데, 유가행파(瑜伽行波)의 유식설(唯識說)에서는 이들 六識보다 더 깊 은 곳에서 생사윤회를 계속하는 한 언제나 활동을 전개하는 근본적인 마음이 있다 고 생각하였고, 이것을 제8식이라 하고, 아뢰야식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衆生들이 善業(또는 惡業)을 행할 때 阿賴耶識에 그 업과 같은 성질의 종자로 저 장 되었다가 조건이 맞으면 좋은(또는 나쁜) 과보로 싹트게 된다.

이 아뢰야식은 신체 속에 잠재하여 신체를 생리적으로 유지해가는 근원적인 마음 이다.

이 아뢰야식의 작용을 우리들은 인식할 수 없으나, 신체의 구석구석까지 퍼져 있 으며, 깨어 있든 잠자든 언제나 마음의 깊은 곳에서 활동을 계속하여 이생에서 자 기 자신에게 善果 또는 惡果를 갖아오며 死後에도 없어지지 않고 아뢰야식에 저 장된 업보에 따라 육도(六道)로 윤회케 한다.

惡果의 종자가 싹트지 않게 하려면 十二緣起의 뜻을 교리적으로 조직화한 사제 (四諦)의 이치를 깨달은 見道의 무분별지(무루지)에서 나오는 수행을 행할 때 나쁜 종자가 아뢰야식에서 녹기 시작하며 마지막 번뇌 종자가 녹아 없어지는 순간에 涅 槃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39. 삼매(三昧)란 무엇이며 삼매의 종류를 기술해 보라. (천태불교입문 p. 226, 불교 사전)

三昧란 三學(64번 참조)의 定과 같으며 산스크리트어 삼마디(Samadhi)의 음역이 고 불교의 목적지인 열반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배워서 행하여야 할 꼭 필요한 일이다.

삼매는 등지(等地)라고도 번역되는데 等은 마음이 들뜨고 가라앉음을 벗어나 평등 하고 편안 한 것이며 持란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머무르게 한다는 뜻이다. 곧 마 음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서 산란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지의(智顗)의 「마하지관」에는 卷 2上에서부터 卷 2下에 걸쳐서 사종삼매(四種三 昧)를 설하였는데 그 개요는 다음과 같다.

가. 상좌(常坐)삼매 : 좌선을 중심을 하는 行法을 말하며 참선염불(參禪念佛), 또 정지적명상(靜止的冥想)이라고도 한다. 이는「문수설반야경」에 의하면 常坐의 一行만을 닦음으로 一行三昧라고도 한다.

나. 상행(常行)삼매 : 행도를 중심으로 하는 行法을 말하며 걸음마다, 생각마다 소 리마다 미타(彌陀)가 있으며 시방(十方)의 諸佛의 수도자의 앞에 와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되므로 船舟三昧, 佛立三昧(불립은 반주의 번역이다)이라고도 한다.

다. 半行半坐三昧 : 반행반좌삼매는 坐禪과 常行을 겸하여 行하는 三昧로서 방등 경(方等經)에 따르는 것을 方等三昧, 法華經에 다르는 것을 法華三昧라 한다.

라. 非行非坐三昧 : 上記 세가지 이외의 三昧를 말한다. 각의삼매(覺意三昧)또는 수자의삼매(隨自意三昧)라고도 불리는데 신체의 행위 중 行․住․坐․臥․食․ 語의 하나하나에 대하여 삼매 발득의 方法이라 할 수 있다.

마. 부처님께서

화엄경을 말씀하실 때에는 해인(海印) 三昧에 드셨고

법화경을 말씀하실 때에는 무량의처(無量義處) 三昧에 드셨고

열반경을 말씀하실 때에는 부동(不動) 三昧에 드셨고

무량수경을 말씀하실 때에는 대적정미타(大寂靜彌陀) 三昧에 드셨고

반야경을 말씀하실 때에는 등지왕(等持王)三昧에 드셨는데

이와 같이 三昧는 무수한 삼매가 있다.

* 禪(dhyãna)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생각하는 것인데

定(Samãdhi)과 명상이 주가 된 禪과 합쳐져 성정이라고 한다.

40. 불타란 어떤 의미인가? < 불교사전 >

61. Buddha란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불타(佛陀 : Buddha)는 각자(覺者)라 번역하며 佛이라 약칭한다. 迷妄을 여의고 스스로 모든 법의 진리를 깨닫고 또 다른 중생을 교도하여 깨닫게 하는 自覺, 覺 他의 二行을 원만히 성취한 이를 말한다.

이 말은 처음 보리수 아래서 성도한 석존에 대한 칭호로 쓴 것이나, 처음의 佛陀 는 석존뿐이었으나, 대승불교의 흥기와 함께 과거에도 일곱 부처님이 있었고 현세 와 미래의 三世佛이 있게 되고,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사상과 함께 그 수가 한 량없게 되었다.

이것은 처음은 역사적 인물이란 것이 점점 理想化되어 유형․무형 온갖 방면으로 도 원만한 인격적 존재가 되었다.

41. 불교에서 말하는 色이란 무엇인가? < 불교사전 >

범어 rupa를 色이라 번역하였는데 오온(58번 참조)의 하나이다. 또 12處 中에서는 色處, 十八界 中에서는 色界, 五境․六境 中에서는 色境이라고 한다.

오온(五蘊)은 무릇 생멸하고 변화하는 것을 종류대로 모아서 色․受․想․行․識 의 5종으로 구별한 것인데 여기서 色은 물질(地․水․火․風)을 말하며, 형상이 있 어 일정한 공간을 점유한 물질적․감각적 존재의 총칭이며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육체를 말한다.

42. 불교에서 말하는 空이란 무엇인가? < 불교학 개론 강의실, 불교사전 >

범어 Sunya를 空이라 번역하였고, 순야(舜若)라 음역하였다. 空이란 一切法은 因 果를 따라 생겨난 것이므로 거기에는 我體․本體․實體라 할 만한 것이 없으므로 空이라 한 것이다. 空 사상은 최초의 대승론사인 용수(龍樹 : Nagarjuna, 150~250 년경)에 의해 정립되는데, 空이란 처음에 무아(無我)라고 했던 것이 대승불교에서 는 空이라 하여 그 의미를 사상적으로 더욱 심오하게 표현했다.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 즉 원래의 순수한 마음 그대로의 상태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더럽고 깨끗함, 선과 악, 길고 짧음, 잘나고 못남과 같은 상대의미를 초월 한 것이 空이다. 空은 비어있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空은 실체가 없고 자성(自性)이 없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空의 종류는 매우 많으나 이를 크게 나누면, 실답지 않은 자아(自我)에 실재(實在)라고 인정하 는 미집(迷執)을 부정하도록 가르치는 아공(我空)과, 나와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에 대하여 항상 있는 것이라고 인정하는 迷執을 부정하도록 가르치는 법공(法空)의 두 가지가 있다.

色不異空, 空不異色 할때 여기서 色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존 재하는 모든 것은 空이며, 그 空은 곧 모든 존재하는 것이 된다.

43. 無란 어떤 의미인가?

“無”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有에 대한 모순개념이다. 불교에서는 有․ 無의 2변이라 하여 일방적으로 어느 한 것으로 치우치는 극단적 사고방식은 잘못 이라 한다. 또 선종에서는 無라는 말을 깨달음의 세계로 표현하고 있다.

44. 중도란 무엇인가? < 불교사전, 불교의 첫걸음 >

정립(定立)․반정립(反定立)의 두 극단을 종합한 뜻으로 2변(邊)의 치우친 삿된 것을 여읜, 중정(中正)한 道라는 말이다. 이 말은 대․소승을 통하여 널리 쓰이며, 그 뜻도 얕고 깊은 것이 각기 다르나, 이 말로써 그 핵심의 요긴한 뜻을 나타내는 것은 일치한다. 예를 들면 소승에서는 외도․범부들의 고행과 낙행을 여읜 진정한 행법(行法), 곧 부처님이 말씀한 정도(定道)나, 유무(有無) 단상(斷常)의 2변을 여읜 비유비무(非有非無)․비단비상(非斷非常)의 이치를 중도라 하고, 법상종에서는 有 에도 치우치지 않고 空에도 치우치지 않는 비유비공을 중도라 하고, 삼론종에서는 불생불멸(不生不滅)로 부단불상(不斷不常)의 팔불(八佛)에 의하여 나타나는 불가득 (不可得)의 법을 중도라 하고, 천태종은 실상(實相)을, 화엄종은 법계(法界)를 중도 라 한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定道의 이치를 말하며, 천태종에서는 이를 실상(實相) 의 진리라고 한다.

45. 연기법이란 무엇인가? < 불교학개론 강의실 2 p 167 >

모든 제법은 因과 緣이 얽혀서 만들어지며 모든 선악 행동과 여러 가지 노력에는 반드시 거기에 맞는 결과가 따르는 것이며, 因과 緣이 서로가 상의상관성(相依相關 性)을 띠고 있으며, 모든 존재 속에는 이러한 법칙성이 있다는 것이다. 석가여래가 이것을 깨달아 부처님이 되신 것이며, 이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것이 12지연기(十 二支緣起)이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러한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일어났다 가 그러한 조건들이 소멸하면 그것도 함께 소멸한다.

- 緣起의 定形句 - ( 잡아함경 권15 )

此有故彼有 -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此無故彼無 -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으며,

此起故彼起 -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나고,

此滅故彼滅 - 이것이 멸함으로 저것이 멸한다.

이러한 緣起法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연기와 반대되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46. 지방입상(指方立相)의 의미는? < 불교사전 >

동․서․남․북의 방위를 지정하여 정․예․대․소(凈․穢․大․少)의 여러가지 모양을 세우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정토인 극락세계를 서방이라 지정하고, 극락세 계의 땅 위, 땅 밑, 허공 등의 모양을 자세히 말하는 것이다.

47. 극락세계의 삼성인(三聖人)은 누구인가?

極樂(Sukhavati)은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등으로 번역하고 극락세계(極樂世界), 또는 극락국토(極樂國土)라고도 부른다.

이 사바세계에서 四方으로 십만 억 佛土를 지나간 것에 있는 아미타불의 淨土이 다. 法華經에서는 영산정토(靈山淨土), 華嚴經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無量壽 經에서는 佛國淨土라 설시(說示)하였다.

이와 같은 극락세계에는 아미타불이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을 대동하고 항상 설법하고 계시는데 이 세 분은 극락세계의 三聖人이라 부른다.

48. 불교교단의 최초 설립에 대하여 설명하라. (13번 참조)

49. 불교역사에 있어 최초의 사원명은? 인도의 불교 四大 聖地는

석존께서 성도한지 바로 뒤에 가란타장자(迦蘭陀長者)가 부처님께서 귀의하여 죽 림원(竹林園)을 바치고, 마가다국의 범비사라왕이 그곳에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위 하여 큰 절을 지었다. 이것이 죽림정사(竹林精舍)인데 불교최초의 가람이다. 여기 서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유명한 영축산(靈鷲山)이 있다.

※, 인도의 불교 四大 聖地는 다음과 같다.

① 부처님의 탄생지 - 룸비니동산

마야부인은 아이를 낳기 위해 친정나라로 가는 도중에 룸비니동산에서 꽃을 꺽으 려고 일어서는데 마야부인의 우협으로 탄생하였다.

② 부처님의 성도지 - 붇다가야

부처님은 삐삐라 나무 밑에서 도를 이루셨다.

③ 초전법륜지 - 녹야원

샤르나트의 녹야원에서 최초로 불법의 수레바퀴를 굴린다는 뜻의 설법을 하셨다.

④ 부처님 입멸지 - 쿠시나가라

열반경에 부처님이 쿠시나가라에 당도하시어 사라수 나무 밑에서 北頭西面(오른 쪽 옆구리가 밑으로 간다)으로 누워서 열반에 드신다.

초전법륜(初轉法輪)은 부처님 성도 후 부처님과 한때 같이 수행을 했던 5비구를 찾아가 샤르나트의 녹야원에서 설법하셨다. 최초 설법 지와 성도 지를 부처님 탄 생지나 입멸지보다 더 성지로 친다. 초전법륜지가 중요한 이유는 부처님께서 처 음으로 설법을 하셔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5비구가 최초의 불제자가 되어 출가 교단인 승가(僧家)가 성립되고, 이때부터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가 成立되어, 최초로 불교라는 종교가 탄생하게 된 것에 의의가 있다.

만약 부처님이 깨닫기만 했다면 自利는 성취했겠지만 利他는 성취하지 못 하였을 것이며 부처님의 깨달음은 학문으로만 전승되었을 것이고 불교라는 종교는 없었을 것이다.

50. 49일재란 무엇인가? (中有, 中陰이란?) < 불교사전 >

四十九齋란 七七齋라고도 하는데, 사람이 죽은지 49일만에 지내는 法事이다.

이 49일 동안을 中有, 中陰이라 하니, 죽은 뒤에 다음 生을 받을 때까지의 동안을 말한다. 이 동안에 다음 생을 받을 緣이 정하여 진다고 한다. 7일 마다 경을 읽고, 부처님께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는 것은 죽은 이로 하여금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위하는 것이다.

* 齋란? (천태종의 불교의 첫걸음)

가. 우리의 몸과 입과 마음을 깨끗이 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죽은 영혼이 나 산 사람에게 그 공덕을 널리 회향하여 베풀어 줌으로서 시방의 모든 제 불 보살과 천룡팔부(天龍八部) 등 善神들의 가피를 입도록 하는 의식이다.

나. 절에서 하는 일체의 불사를 통틀어서 부르기도 한다.

51. 시다림이란 무엇인가? < 불교첫걸음 >

시다림(尸茶林 : Sitavana)은 죽은 사람을 위하여 왕생극락하도록 스님들이 염불 하고 설법하는 의식이다. 본래의 뜻은 범어로 시체를 내다버리는 묘지란 뜻이 있 다. 시다림 의식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① 사성례(四聖禮 : 먼저 극락세계에 계신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대 해중선보살(大海衆善菩薩)에 예배하는 순서)

② 천수경 독경

③ 축원을 드림

④ 반야심경을 독송

⑤ 무상게(생사의 세계를 떠난 적멸의 경지가 참으로 즐겁다는 법문)

⑥ 장엄염불(극락세계와 아미타불의 48원을 찬탄하는 내용의 염불)

⑦ 법성게(의상조사께서 화엄경의 대의를 줄여 놓은 법문)

52. 독경을 하는 이유는? (看經이란?) < 닦는 마음, 밝은 마음 p.228 >

독경(讀經)이란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을 말하며, 독송(讀誦) 또는 풍경(諷綆)이라고 도 하고 간경(看經)은 禪家에서 소리 없이 눈으로만 보는 것을 말한다. 소리 내어 읽는 것은 자기 독경한 소리를 자기가 들음으로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 다.

경전(經典)을 독경(讀經)하는 이유는 읽는 그 자체가 마음을 닦는 길이기 때문이 다. 마음을 닦는 것은 석가여래를 닮아간다는 뜻이다. 경을 자주 읽어서 석가여래 의 지혜를 닮아가고, 인품을 닮아가고, 자비를 닮아가고, 또 석가여래 부처님처럼 복을 짓자는 것이다. 독경을 함으로서 우리의 업장이 녹아내리고 지혜가 솟아나고, 부처님의 광명에 마음이 닦여져 차츰 밝아지는 것이 경을 읽는 뜻이다.

53. 三身佛에 대하여 설명하라. (法身, 報身, 應身)< 불교입문 p. 79 >

부처님의 본질에 대한 생각으로 “부처님은 진리(法)를 본질로 하고 있다”라는 것 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 일부 제자들은 부처님은 입멸한 후에도 존 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人格的인 존재인가? 色身인가? 法身인가? 등의 의문이 전개되었다.

法身, 報身, 應身의 三身說은 이와 같은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法身은 법은 영겁토록 변치 않는 만유의 본체로 신은 적취(積聚)의 뜻으로 본체 에 인격적 의의(意義)를 붙여 법신이라 하니, 빛깔도 형상도 없는 이불(理佛) 이 다.

報身은 因에 따라서 나타난 불신으로 아미타불과 같다. 곧 보살위(菩薩位)의 곤란 한 수행을 견디고, 정진 노력한 결과로 얻은 영구성이 있는 有形의 불신이다.

應身은 보신불을 보지 못하는 이를 제도하기 위하여 나타나는 불신으로 역사적 존재를 인정하는 석가모니와 같다.

54. 마하반야란 어떤 의미인가?

마하(摩訶 : Maha)는 大라고 번역되어 ‘크다’는 의미가 있다. 반야(般若: prajna)는 慧․明․智慧러 번역되는데 법의 실다운 이치에 계합한 최상의 치혜. 이 반야를 얻어야만 성불하며, 반야를 얻은 이는 부처님이므로 반야는 모든 부처님의 스승, 또는 어머니라 일컬으며, 또 이는 법의 여실한 이치에 계합한 평등․절대․무념(無 念)․무분별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상대 차별을 관조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즉 摩訶般若란 “큰 지혜”라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55. 성문과 연각이란 어떤 의미인가? (辟支佛, 獨覺이란?)< 묘법연화경, 불교사전 >

성문(聲聞) :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에 의하여 세상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가지려는 사람이다. 이들은 생․노․병․사의 인생이 무상(無常)하고 영원한 실체가 없는 무아(無我)인 줄을 알고 庫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반에 이르는 법을 구함으로 부처님은 사제법을 설하였던 것이다.

연각(緣覺) : 벽지불(辟支佛)이라고도 하는데, 12인연의 도리를 관하여 깨닫기 때문에 연각이라 하며 스승 없이 혼자 깨닫기 때문에 독각(獨覺)이라 고도 한다.

십계에서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을 미계(迷界)라 하고 성문, 연각, 보살, 불을 오계(悟界)라 한다.

그러나 大乘에서는 위의 두 가지가 모두 배타적이며 혼자만 해탈하는 것을 목적 으로 한 出家聖者라 하여 기피하고 폄하(貶下)하였다.

56.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란? < 불교사전 >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 三藐三菩提) 범어의 Anuttra-Samyak-Sambodhi로 아뇩다라(아누다라)는 無上을 뜻하며 삼먁삼보리(三藐三菩提)는 정각(正覺) 또는 정등정각(正等正覺)을 뜻하므로 無上正等正覺(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으로 번역되며 佛果의 지혜를 말한다.

凡夫가 不覺인데 대하여 미(迷)계를 여의고 覺知가 원만하여 일체의 진상을 모두 아는 부처님의 무상보리(無上菩提)를 뜻한다.

57. 사대(四大)란? < 불교의 첫걸음 >

물질을 구성하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대원소를 말한다. 즉 인간의 몸도 지․수․화․풍의 사대로 이루어졌다. 사람의 죽으면 머리털․발톱․이빨․ 가죽․살․힘줄은 흙(地)으로 돌아가고, 침․콧물․피․고름․가래․눈물․오줌․ 진액 등은 물(水)로 돌아가고, 따뜻한 체온은 불(火)로 돌아가며, 움직이고 활동하 는 힘은 바람(風)으로 돌아간다.

특히 인간의 육체등 유정의 일체를 위의 四大要素와 五蘊의 色․受․想․行․識 의 다섯 종류로서 분류할 수 있다.

58. 오온이란 무엇인가? < 불교윤리 3/23, 3/30 김사업교수, 불교학개론 5/10 >

오온(五蘊 : panca-skandha)은 오취온(五取蘊), 오음(五陰), 오취(五取)라고도 하 며, 중요한 갈래, 부분, 모임이라는 의미인데 蘊은 취(聚)의 뜻으로 같은 종류를 수 집해서 분류한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육체와 마음을 5가지로 구분해서 오온이라 하는데, 무릇 생멸하고 변 화하는 것을 종류대로 모아서 5종류로 구분한 것이 五蘊이다. 광의로는 나와 이 세상 모든 존재가 오온이고 내 몸으로 볼 때는 이 육체와 마음을 오온이라고 한 다. ‘색온’은 물질을 뜻하고 나머지 ‘네 개의 온’은 마음을 뜻하며 이 다섯개의 모임 을 五蘊이라 한다.

1). 색온(色蘊 : 色이라는 모임)

스스로 변화하고 또 다른 것을 장애하는 물체로 나를 기준→ 나의 몸이며, 일체 를 다 포함 시 → 물질(책상, 책 등) 모두가 色이다. 이 세상 물질적인 요소 전부 를 통 털어서 색온이라 한다.

2). 수온(受蘊 : 受라는 모임)

苦․樂․不苦․不樂․좋다․싫다는 것을 느끼는 마음의 작용(느낌)이 감각기관 을 통하여 외부의 사물을 인식하는 작용이나 그 작용에 의해서 머릿속에 떠오르 는 것을 지각(知覺)이라 한다. 느낌이나 지각(감각)을 受라고 한다.

3). 상온(想蘊 : 想이라는 모임)

외계의 사물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상상하여 보는 마음의 작용이 상념 이다. 知覺에 대한 의미지화가 想이다. 보지 않아도 머리 속에 떠올릴 수 있는 기 능작용이 있는데 이것이 표상작용이다.

4). 행온(行蘊 : 行이라는 모임)

좋은 것을 잡으려고 하고 싫은 것은 피하려고 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미지화에 따른 적극적 대응으로 의지작용이 行이다.

5). 식온(識蘊 : 識이라는 모임)

희다․검다 등과 무엇이라고 또렷하게 아는 것으로 의식하고 분별할 것으로 확 실한 인식을 말한다.

59. 세속오계(世俗五戒)란 무엇인가? < 국어사전 >

신라 진평왕 때 圓光法師가 花郞에게 준, 僧家의 戒나 律과는 다른, 다섯 가지 교훈으로 다음과 같다.,

① 사군이충(事君以忠) : 임금을 충성으로 섬기며

② 사친이효(事親以孝) : 부모는 효도로써 섬긴다.

③ 교우이신(交友以信) : 친구는 믿음으로써 사귀며,

④ 임전무퇴(臨戰無退) : 전투에 임하여 퇴하는 일이 없고,

⑤ 살생유택(殺生有擇) : 살생을 하되 가려서 한다.

위 五戒를 신조로 하여 화랑도가 크게 발전하여 삼국통일의 기조를 이룩하게 되 었다.

60. 소승불교는 언제 태어났다고 보는가? < 9번 중복 >

61. Buddha란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라(40번 중복)

62. 석가모니란? 의미와 그의 일생을 간략히 기술하라.(40번 참조)

범어 Sakya - muni의 음역으로Sakya족의 聖者라는 뜻이다. BC 623년 가비라의 城主 정반왕의 태자로 ①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 이름을 고타마 싯달타(喬答摩 悉 達多)라 했고, 16세 때 아수다라와 결혼하여 라후라를 낳았으며, 生․老․病․死 의 苦를 보고 무상을 느끼는 바가 커 29세에 출가하여 哲人․宗敎人 등 여러 先覺 者들 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나 만족을 얻을 수 없었고 그 후 수년간 苦行을 하였 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心身만 쇠약해 졌다.

그 후 네란자라 강가의 ②붓다가야(buddhagaya)의 보리수 나무아래에서 동쪽을 향하여 正坐하고 용맹정진을 계속하여 大覺成道하니 이때가 출가 후 6년만인 35세 (BC589)였으며

사르나트의 녹야원(鹿野苑)에서 초전법륜을 행하였고, 80세를 一期로 ④쿠시나 가라 교외에서 入滅하셨다. 상기 文章 中 밑줄 친 곳을 부처님의 四大聖地(49번 참 조)라 한다. (호칭은 81번 참조)

63. 10대제자의 이름을 쓰고 그들이 가진 특징을 설명하라. < 불교의 첫걸음 >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특징이 있는 열 사람을 十大 弟子라 하는데 다음과 같다.

① 사리불(舍利佛, 舍利子, Sariputra) : 智慧第一, (부처님보다 먼저 入滅)

② 목건련(目犍連, maudgalyayana) : 神通第一

③ 마하가섭(摩訶迦葉, Maha-kasyapa) : 頭陀第一 (修行第一)

④ 아나율(阿那律, Aniruddha) : 天眼第一 (장님이 되다. 부처님의 사촌)

⑤ 수보리(須菩堤, Subhuti) : 解空第一

⑥부루나(富褸那, Purana) : 說法第一, (부처님과 생일이 같고 法明如來로 受記 받 음)

⑦ 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 Maha-katyayana) : 論議第一

⑧ 우바리(優婆離, Upali) : 持戒第一 (노예계급의 이발사 출신)

⑨ 라후라(羅睺羅, Rahura) : 密行第一 (부처님의 아들)

⑩ 아난다(阿難陀, Ananda) : 多聞第一(부처님의 사촌,제바달다의 친동생, 제1결집 때 경 송출)

64. 삼학이란 무엇인가? < 불교의 첫걸음 >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배워서 행하여야 할 세 가지 꼭 필요한 일이 있다. 이것을 三學이라 하는데 계․정․혜(戒․定․慧)이다.

① 계학(戒學) : 불자가 지켜야 하는 규칙이나 규범으로 여기에 신도5계, 사미5계, 사미 10계,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 대승10선계, 331계, 3정취계 등이 있다.

② 정학(定學) : 음역하여 三昧라고도 하며 마음을 고요히 하고 안정해서 欲과 惡 의 번뇌를 끊고 하나의 대상에다 마음을 집중시켜 흐트러지지 않는 정신 작용 및 그 상태를 말하는 불교의 실천도이다.

定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명상이 주가 된 선(禪)과 합쳐서 禪定이라고도 한다. 또 골똘히 명상하는 것을 관(觀)이라고도 하는데 觀은 ‘禪’이나 ‘定’ ‘止’와 더불어 체득되기에 止觀이라 붙여 쓰는 경우가 많다.

③ 혜학(慧學) : 반야 즉 지혜라고 하며 진실의 세계를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 마 음의 밝기를 말한다. 지식은 나쁜 곳과, 좋은 곳 다 쓰지만 불행하게 만드는데 쓰이면 지혜가 아니다.

慧는 깨달음에 인도하는 지혜 또는 괴로움의 멸각, 즉 열반에 인도하는 수단 으로서의 지(智)를 뜻한다.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 법을 받아 들여 자기 마음속에 생각하고 반 추해서 올바르게 깨닫고 그 가르침에 따라 戒를 지키며 실천 수행할 때 고요 한 물에서 안정된 사물을 비추어 볼 수 있듯이 최후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 다.

65. 유루와 무루에 대하여 설명하라. < 불교학 개론 강의실 p.118 >

漏는 누설(漏泄)이란 의미로 번뇌를 말한다. 번뇌가 있는 것을 有漏라 하며 물듬 (染), 더러움(染汚), 말다툼(諍)은 모두 번뇌를 의미하고 잘못된 견해를 나타내는 곳 이므로 見處라고도 한다. 한편 번뇌가 없는 것을 무루(無漏)라 한다.

有部에서는 번뇌를 수증(隨增)하는 것을 有漏法, 그렇지 않은 것을 無漏法이라 한 다. 四聖諦에서는 迷惑의 결과인 苦諦와 集諦의 제법은 有漏法에 속하고 깨달음의 결과와 원인인 滅諦와 道諦의 諸法은 無漏法에 속한다.

또 번뇌가 있는 육체를 有漏身이라 하고 번뇌가 있는 경계, 미혹의 세계를 유루 의 길이라 하며, 본뇌가 없는 청정한 佛身을 無漏身이라 하고 번뇌가 없는 청정한 경계(깨달음의 세계)를 無漏의 길이라 한다. 번뇌를 수반하여 三界의 輪廻를 야기 시키는 業을 有漏業이라 하고 도를 닦아 생기는 業은 無漏業이다.

관음정진을 하며 보시를 하는 등의 선업을 쌓아도 그 공덕에 대한 바램이 있으면 번뇌가 묻어 있어 有漏善이 되며, 좋은 일을 한다는 意識 조차없는 觀空人의 자세 로 無漏行을 실천하여 無漏善을 쌓아 갈 때 해탈․열반할 수 있다.

또한 無漏智는 有漏, 卽 번뇌를 끊을 수 없는 知慧를 말하며 無漏智는 眞理를 더 욱 자라게 하고 모든 번뇌의 허물을 여윈, 청정한 知慧를 말한다.

66. 석존 당시 인도사회의 4성계급이란 무엇인가?

인도의 인더스 문명 (B.C 3000~2000C)을 남긴 원주민들은 드라비다인과 문다 인이 중심을 이룬 것으로 추정되나 B.C 13세기경 코카사스 북쪽에 있던 아리아인 들이 북인도 쪽으로부터 점령하여 全 印度를 지배하게 되며 원주민을 노예로 삼아, 釋尊 당시의 사성계급(四姓階級)은 사제자(司祭者)․왕족(王族)․서민(庶民)․노예(奴隸)의 네 계급(Varna)으로 확실히 구분되었으며 다음과 같다.

가. 司祭者(브라흐마나) : 부족민의 승리와 복지를 기원하는 제사가 존중되어 司祭 의 地位는 神과 같은 존재로 높았다.

나. 王族(크샤트리아) : 정치적 사무를 처리하고 병사를 통솔하였다.

다. 庶民(바이샤) : 목축․농업․공업 등의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

라. 奴隸(수드라) : 원주민이나 그들과 혼인한 자들

또 원시경전에는 위의 네 계급 외에 도살인(찬다라), 오물청소인(푸드샤)의 2종을 더하여 6種을 들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인도에는 도시가 발달하고 전제군주가 탄생하며 王權이 강화되어 司祭者보다 높은 신분으로 군림하게 되며 奴隸출신도 금은보화와 곡식이 많으면 왕족이나 바라문 또는 서민으로부터 경의를 받게 되어 과거의 계급제도를 부분적으로 붕괴시키게 되었으나 당시 부처님은 만민평등사상 을 주장하였는데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언이었다.

67. 열반이란? < 25번 참조 >

68. 아육왕은 어떤 왕이며 불교와 어떠한 인연이 있나? < 불교사전 >

B.C. 317년 「찬드라굽타」는 거의 인도 전토에 걸쳐 통일국가를 건설하고 「마 우라」왕조를 건설하였다. 그의 손자인 阿育王은 B.C. 268년 또는 270~232년까지 재위하며 통일건설의 위업을 더욱 확충, 인도사상 최대의 제국이 되었다.

그는 남아 있던 동남쪽 해안의 칼링가(Kalinga)국을 평정하여 포로 15만, 전사 10 만, 또 이것의 몇 배에 달하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한다. 이 비참한 결과에 대 해 깊이 뉘우치며 불교에 귀의한 후 많은 불교유적을 참배하였고 법대관(法大官)을 설치하여 法의 신장에 힘쓰며 다른 종교도 관대하게 보호하였다.

※. 불교에 대한 주요업적은 다음과 같다.

가. 불교의 전도사를 帝國의 변방과 그리스나 에집트 등 여러 나라에 파견.

나. 왕자인 마힌다(Mahinda)를 스리랑카에 파견하였는데 그 후 이 곳은 보수파인 상좌부 불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다. 많은 사원과 기념탑이나 석주(石柱)를 건립하였다. 『 (불멸236년)

라. 非正統說者 모두를 교단에서 추방하고 천명의 아라한을 모아 제3결집을 하도 록 하였다.

69. 부파불교가 발생한 원인은? < 9번 참조 >

70. 대승불교의 발생에 대하여 기술하라. < 8번 중복 >

71. 격의불교란 어떤 불교인가? < 중국불교사 p.59, 천태학개론 p.31 >

격의(格義)라는 말은 어떤 바깥의 모양에다 그 속의 뜻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인 도에는 있으나 중국에 없는 것이 중국 땅에 들어오니, 중국 사람들이 번역을 못한 다.

불교경전이 초기에 중국에서 번역되어 질 때에는, 중국에서 사용하던 용어 속에 다가 불교의 뜻을 집어넣어서 의미를 전달하려고 한다. 이것은 불교 본래의 뜻 그 대로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는 데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중국에 전래된 범어 불전을 漢字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중국 고유의 사유방식으로 해석하여 원전의 원의를 변용시켰다는 점에서, 중국식 불교를 格義佛敎라고 한다. 또 불교의 보급과 도교의 발흥에 의한 도․불 양교의 우열논쟁사이에서 더욱 우 월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중국의 사고방식에 따라 위작한 경전을 위경(僞經)이라고 도 한다.

72. 義解(글 뜻을 밝힌 풀이)불교란 어떤 불교인가?

義解란 의리(義理)를 해석하는 것으로 의의(意義)나 의지(義旨)를 잘 이해하려는 불교를 말한다.

73. 실천(實踐)불교란 어떤 불교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敎義的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45년 동안 우 리 중생에게 몸소 가르치신 것처럼 그 가르침의 法을 직접 실천함이 바른 佛子들 의 행위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74. 5가7종에 대해 기술하라. < 불교사전 >

중국의 선종(禪宗)은 初祖 달마로부터 五祖 홍인(弘忍)에 이르러 南宗과 北宗으로 나누이는데, 北宗은 분파가 생기지 않았으나 南宗의 혜능(慧能)의 문하(門下)에서 는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 임제종(臨濟宗), 위앙종(潙仰 宗)을 五家라 하고, 또 인제로부터 나누인 양기(楊岐)와 황룡(黃龍)의 2종을 더하여 7종이라고 한다.

75. 인간의 육체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 57번 四大와 참조 >

色 : 물질(地․水․火․風) - 육체

受 : 느낌

五蘊

想 : 상념

- 정신

(오온)

行 : 의지

識 : 분별

불교에서는 육체와 정신을 다섯 가지로 구분해서 五蘊이라고 하고, 육체는 地(딱 딱한 성질의 물질)․水(흐르는 물질)․火(열기)․風(힘, 작용)의 四大로 되어 있다 고 한다.

76. 사원에서 사물을 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12번 四物과 중복)

77. 부처님의 상호는 몇 상 몇 호이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 불교사전 >

부처님의 상호는 32相 80종호(種好)라고 하여, 32相은 부처님 몸에 갖춘 32大丈夫 相으로 이 상을 갖춘 이는 세속에 있으면 전륜왕(轉輪王)이 되고 출가하면 부처님 이 된다고 한다.

(1) 발바닥이 판판하고, (2) 손바닥에는 수레바퀴 같은 무늬가 있으며,․․․ ․․․(31) 두 눈썹사이에는 흰 털이 나고, (32) 정수리에는 살 상투가 있다는 32종류의 相을 말한다.

80종호(種好)는 부처님의 몸에 갖추어진 미묘한 표지로서 32相을 다시 세밀하 게 나누어 놓은 것인데, (1) 손톱이 좁고 길고 엷고 광택이 있고․․․․․(80) 손, 발과 가슴 앞에 길상스럽고 환희한 덕상을 구족하여 그 무늬가 비단 같고 빛은 주홍 같은 것 등의 80종류를 말한다.

78. 수미산이란? < 불교사전 >

불교의 우주관으로 볼 때 수미산(須彌山)은 四洲의 세계 동승신주(東勝身州), 서 우화주(西牛貨州), 남섬부주(南贍浮洲), 북구노주(北俱盧州)의 중앙에 위치하며 金 輪위에 우뚝 솟은 산이다.

둘레에 7山 (지축산․첨목산․선견산․마이산․상비산․지변산․지쌍산)과 八海 가 있고 또 그 밖으로 鐵圍山이 병풍처럼 둘러 있어 이 산은 물속에 잠긴 것 이 8만 유순이고, 물 위에 드러난 것이 8만 유순이며, 수미산 꼭대기에는 도리천이 있는데, 이 도리천에는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선견성(善見城)이 있 고 산의 중턱은 사왕천의 주처(住處)라 한다.

이 도리천의 중앙에 있는 善見城에는 帝釋天이 있어 이곳의 王인 帝釋天王은 帝 釋天과 도리천의 32天을 통솔하며 佛法과 佛法에 귀의하는 사람을 보호하며 아수 라 군대를 정벌하고 있다. 善見城에서 동서남북으로 아주 먼거리에 각각 8개의 城이 있다. 그 32개의 성과 帝釋天王이 다스리는 帝釋天을 포함하여 三十三天이라 하며 위의 表와 같다.

도리천 위로 欲界의 第三天인 야마천(夜摩天)이 있고, 그 위에 欲界의 第四天인 도솔천(兜率天)이 있다. 즉 도리천보다 2단계 위의 하늘 이 도솔천이다. 도솔천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살의 상태로 대기중에 계시다가 마야부인 태 속으로 들어 오신 하늘이다.

도솔천도 영원히 있는 곳은 아니고 잠시 머무는 하늘이다. 도솔천에서의 수명이 인간의 해로 계산해 보면 56억7천만년이다. 56억7천만년 동안은 괴로움도 슬픔 도 아픔도 없는데 그 기간이 지나면 인간으로 태어난다든지 한다.

청정천

-

- 주봉천

위덕염륜천

-

- 주산정천

위덕안천

-

- 선견성천

상행천

-

- 발사지천

주륜천

-

- 주구타천

중분천

-

- 잡전천

지혜행전

-

善見城 帝釋天

(제석천왕상주, 33천다스림)

- 주환희원천

영조천

-

- 광명천

속행천

-

- 바리야다수원천

염마사라천

-

- 험안천

월행천

-

- 주잡험안천

위덕륜천

-

- 주마니장천

가음희락천

-

- 선행지천

미세행천

-

- 금전천

여의지천

-

- 만영처천

잡장엄천

-

- 주유연지천

< 도리천(忉利天)내의 三十三千의 천상세계 >

79. 사천왕이란? < 예불하는 마음에 자비를, 불보살명호이야기 >

사찰에 들어오는 山門 중 일주문(一柱門) 다음에 두 번째 문이 사천왕문(四天王 門 : 天王門)이다.

四天王은 불법을 수호하는 神인데 본래는 인도 전통종교에서 신앙되던 신들의 왕이었는데, 부처님께 귀의해서 불국정토의 외곽을 지키는 네 분의 수호신이 되었 다. 네 분 모두 악귀를 밝고 있는데 사천왕의 발밑에 깔린 악귀들은 하나같이 웃 는 얼굴이다. 항복을 함으로써 참된 진리를 만나게 되었다는 기쁨 때문일까?

가. 지국천왕(持國天王)

수미산 동쪽 중턱의 황금타(黃芩埵)에 있는 天宮에 살고 있으며 동쪽을 수호하 는 神이다. 선한 이에게는 복을, 악한 이에게는 벌을 주면서 늘 인간을 보살핀다. 온몸에 푸른 빛을 띠고 있고, 왼손에는 칼을, 오른손은 주먹을 쥐고 허리에 대고 있거나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형상이기도 하다.

나. 광목천왕(廣目天王)

광목천왕은 수미산 중턱 백은타(白銀埵)에 살고 있으며 서쪽을 관장하는 천왕이 다. 늘 눈을 부릅뜨고 있어서 광목천왕이라고 하는데, 또 사천왕중 저 홀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것은 웅변으로 온각 나쁜 형상을 물리친다. 오른순에는 삼지창 을 왼손에는 보탑을 받들고 있다.

다. 증장천왕(增長天王)

증장천왕은 수미산 남쪽 유리타(琉璃埵)에 살고 있으며 노란 눈이 특징이 다. 오른손에는 용을 쥐고, 왼손에는 여의주를 쥐고 있으며, 갑옷으로 단단 히 무장하고 있다.

라. 다문천왕(多聞天王)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은 수미산 북쪽 수정타(水精埵)에 살고 있으며 부처님 도량을 지키며 부처님 설법을 듣는다고 해서 다문이라 한다. 왼순에 비파를 오른 손은 비파 줄을 퉁기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80. 한국의 삼보사찰이란?

불․법․승 삼보를 상징하는 대표적 절을 삼보사찰(三寶寺刹)이라 하며 다음과 같다.

가. 불보사찰(佛寶寺刹) : 통도사(通度寺)

- 부처님의 진실사리를 금강계단에 안치하였다. 통도사는 이 금강계단을 법단 뒤 쪽에 배치하여 절의 中心으로 삼고 법단에는 불상을 안치하지 않았다.

(자장율사(122-1 참조)는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의 게시를 받고 불사리와 부처님 친착가사 한 벌을 가지고 643년 귀국했다. 사리는 삼분하여 황룡사와 울산 태 화사에 두고 나머지는 646년 통도사를 창건하여 가사와 함께 안치했다.〕

나. 법보사찰(法寶寺刹) : 해인사(海印寺)

-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을 목판에 새긴 고려대장경을 봉안하여 法寶寺刹이라 한다.

다. 승보사찰(僧寶寺刹) : 송광사(松廣寺)

- 16國師를 비롯하여 근세의 걸출한 고승(高僧)을 배출한 전남 승주군 조계산 송 광사는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의 도량으로 삼은 수선도량(修禪道 場)으로서 그 기능을 다해오고 있다.

81. 부처님의 호칭과 여래십호(如來十號)에 관하여 하나하나 설명하라.

< 불교사전, 불교입문 p.58, 묘법연화경 >

어릴 때의 이름의 구담싯달타(瞿曇;:석존의 姓, Siddhartta:)와, 후에는 如來十號외 에 佛陀, 瞿曇佛 陀(Guattama Buddha-覺者)․釋尊․의 존칭으로 불렸다.

부처님 생전에 스스로를 여래(Tathagata의 번역어 : 이와 같이 왔다는 뜻)라 불렀 다하나 그 진위는 분명치 않다.

율장에는 제자들은 世尊(Bhagavat), 또는 釋迦世尊이라 부르도록 되어 있다. 또 세인들은 釋迦(Sakya:그가 속한 종족이름), 「샤카무니」(釋迦牟尼, Muni:聖者의 뜻)로, 바라문 등 제자 이외의 사람들은 「고타마」(Guatama : 瞿曇) 또는 「사문 고타마」라 불렀다.

한편 붓다(佛陀)라는 말은 교주에 대하여 쓸 때에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삼붓다(正覺者)라는 칭호를 썼고 여기에 덧붙여 바르게라는 부사 를 붙여 삼먁삼붓다(正等覺, 正邊智)로 불렀고 그 위에 無上(아뇩다라)이라고 하는 최상급의 형용사를 덧붙여 야욕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 無上正等覺) 라 부르기도 했다.

부처님의 칭호의 가장 主가 되는 것들은 나중에 如來十號라는 이름으로 정의되 는데 다음과 같다.

1) 여래(如來) : 如實한 진리에 수순하여 이 세상에 와서 진리를 보여주는 사람.

2) 응공(應供) : 온갖 번뇌를 끊어서 人間․天上의 衆生들로부터 공양을 받을만한 德이 있는 사람.

3) 정변지(正邊知) : 일체의 지혜를 갖추어 온갖 우주 현상에 대하여 모두 안다는 뜻.

4) 명행족(明行足) : 三學의 각족(脚足) 무상정변지를 얻었다는 뜻.

5) 선서(善逝) : 因으로부터 果에 가기를 잘하여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

6) 세간해(世間解) : 부처님은 능히 세상의 온갖 일을 다 아신다는 뜻.

7) 무상사(無上士) : Anuttara번역으로 일체 衆生中에 가장 높아 위가 없는 大士.

8) 조어장부(調御丈夫) :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을 조복(調和制伏) 制御하고 정도를 잃치 않게 하는 사람.

9) 천인사(天人師) : 인간과 하늘의 큰 스승.

10) 불․세존(佛․世尊) : 知者 또는 깨달은 사람.

(10번의 佛과 世尊을 나누어서 11號라고도 하나 응공이하가 열이 된다. 굳이 10을 쓰는 것은 10이 원만수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82. 아뢰야식(阿賴耶識)이란 무엇인가?(38번 참조)

83. 미륵보살에 대해 설명하라. < 불교사전 >

彌勒菩薩은 범어로는 Maitreya이다. 미륵은 姓이고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 Ajita) 이다. 彌勒菩薩은 대승보살로서 인도 바라내국의 바라문집에 태어나 석존 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천 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있다.

석존 입멸 후 56억 7천만년을 지나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華林圓안의 龍華樹 아래 서 成道하여 3회의 설법으로 석존의 교화에서 빠진 300억의 衆生을 제도한다.

고로 이 미륵보살은 부처님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에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고,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龍華樹 아래서 성도하여 3회의 설법으로 중생 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때 제도를 받는 중생들은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에 석가모 니 부처님의 교화에서 누락된 중생들과 그 이후에 사바세계에서 살다간 모든 중생 들이 이에 해당한다.

성불하기 이전까지를 「미륵보살」, 成佛한 後를 彌勒佛이라 한다.

84. 세친에 대하여 기술하라. < 인도불교사 p120, 불교학개론 강의실 2 p110, 125, 146 >

세친(世親:Vasubandhu)은 북인도 건타라 국의 바라문족 출신으로, 그의 형은 무 착(無着)이고 그의 아우는 사자각이라 한다. 처음에는 형과 함께 소승의 설일체유 부에 출가하여 유부의 교학을 배웠으나 후에는 경량부로 옮겨 대중부의 교리도 고 찰하였다.

그는 유부교학을 표준으로 삼아 이것을 교묘히 체계화하면서도 경량부가 대중부 의 설을 도입하여 “이치(理致)에 뛰어남을 根本으로 삼는다(理長爲宗)”라고 하는 입장에서 번잡한 유부의 교리를 비평적으로 정리하였다.

이것이 바로 구사론(俱舍論)인데 이 구사론은 단지 부파의 교리뿐 아니라 불교학 전반에 걸친 정수를 조리 있게 전하고 있으므로 현재까지도 모든 불교학자들의 필 독서가 되고 있다. 우리가 배우는 불교기본 교리는 전부 구사론에 의한 것이다.

만년에는 大乘의 唯識說을 연구하여 유식의 핵심사상을「唯識二十論」으로 요약 하고 이어서「唯識三十說」로 응집했다. 그 외에도 「十支經論」, 「攝大乘論釋」 등이 있으며 千部論師 라고도 칭한다. 「유식이십론」은 인식론적인 입장에서 유 식을 논하여 경량부적인 성향이 강하며「유식삼십송」은「아뢰야식(阿賴耶識)」,「三自性」,「식전변(識轉變)」등 유식중심사상을 논하고 있다.

85. 유마거사에 대하여 기술하라. < 불교사전 >

유마(維摩 : Vimalakirti)거사는 부처님의 속제자(俗弟子)로 유마힐(維摩詰)이라 음 역되는데, 인도 비야리국의 장자로서 속가에 있으면서 보살행업을 닦는 이 이다.

維摩經은 유마거가가 병중에 있을 때 문수보살이 여러 성문(聲聞)과 보살들을 데 리고 문병하러 갔다.

그때에 유마는 여러 가지 신통을 보이어 불가사의한 해탈상을 나타내고, 서로 문답하여 무주(無主)의 근본으로부터 일체법이 성립되는 것과, 삼라만상을 들어 모두 불이(不二)의 일법(一法)중에 돌려보내는 법문을 보였다. 최후에 유마는 잠자코 있어 말없는 것으로써 불가언불가설(不可言不可說)의 뜻을 표현하였는데, 그 내용은 불국․방편․제자․보살․문질․부사의․관중생․불도․입불이문․향적보살행․견아촉불․법공양․촉루의 14품으로 되었다.

86. 業이란 무엇인가? < 정토불교의 세계 p.37, 불교학개론강의실-2 p191 >

業이란 Karman의 번역이며 羯磨라 음역하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 행한 모든 행위는 물론, 내가 태어난 후부터 조금 전까지 행 한 모든 행위들, 즉 몸(身)으로 행하고 입(口)으로 말하고 머리(意)로 생각한 선악 의 모든 행위들은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몸속에 사진의 필름처럼 남아 일종의 잠재세력을 형성하여 우리에게 걸 맞는 결과를 가져 오는 데, 이것을 業因에 의한 業果라 한다.

업은 우리들의 지능, 성격, 습관, 체질 등을 형성하여 개개인의 현재의 삶(상태)를 결정하고 또한 새로운 선․악행위를 추가함에 따라 끊임없이 善이나 惡으로 변해 간다.

衆生들이 善業 또는 惡業을 행할 때 8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 ; Alaya ; 있는 곳 이라는 뜻)에 본인이 행한 업과 같은 성질의 종자로 저장되었다가 조건이 맞으면 좋은(또는 나쁜) 과보로 싹트게 된다.

이 아뢰야식의 작용을 우리들은 인식할 수 없으나 아뢰야식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태어나서부터 본인이 행한 업과 같은 성질의 종자로 저장하는 활동을 계속하며 이생에서 자기 자신에게 善果(또는 惡果)를 갖어오며, 死後에도 없어지지 않고 아뢰야식에 저장된 업보에 따라 육도(六道)로 윤회케 한다.

善果를 쌓기 위하여 十善業道(136번 참조)를 닦아야 하며 다음과 같다.

1). 身業 - 不殺生, 不偸盜, 不邪淫.

2). 口業 - 不妄語, 不惡口, 不兩舌, 不綺語.

3). 意業 - 無貪, 無瞋, 正見.

87. 無常이란 무엇인가? < 불교학개론강의실-1 p67 >

온갖 物․心의 현상은 모두 生滅變化하여 상항(常恒), 不變하는 것이 아니거늘, 사람들은 이를 恒常하는 존재인 것으로 생각하므로 이 그릇된 견해를 없애기 위하 여 無常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덧없다” “일체는 무상하다”라는 뜻으로 인간이 生者必滅이며 生老病死를 거치지 않을 수 없듯이 이 우주 세계의 모든 존재도 한 결같이 나고․머물고․변화하고․사라지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된다.

나를 중심으로 한 모든 현상이 덧없음을 지적한 것이며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 현 재의 환경에 집착할 필요가 없음을 가르치는 교훈이다. “ 一切가 無常하다 ”

88. 자비(慈悲)란 무엇인가? < 불교사전 >

자(慈)는 중생에게 낙(樂)을 주는 것인데, 불쌍히 여긴다.”는 뜻으로 이 말의 원어 는 팔리어 metta이며, 벗(mitra)에서 나온 관념으로 진실한 우정을 말한다.

비(悲)는 중생에게 고(苦)를 없애주는 것을 말하며, 연민”을 뜻하는데 원어는 karuna로서 동정․공감․함께 슬퍼함을 뜻 한다

부처님은 남에 대한 태도로서 慈悲의 정신을 강조하여, 인간 뿐 아니라 살아 잇 는 모든 생물에까지 慈悲를 베푸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慈는 “불쌍히 여긴다.”는 뜻으로 이 말의 원어는 팔리어 mettadlsep, 벗에서 나온 관념으로 진실한 우정을 말한다.

悲는 “연민”을 뜻하는데 원어는 karuna로서 동정․공감․함께 슬퍼함을 뜻한다.

89. 정정취에 대해 설명하라 (三定聚란?) < 정토불교의 세계 p105 >

정정취(正定聚)는 三定聚 중의 하나로서 정정취와 부정취와 사정취를 삼정취라 하는데 이것은 중생의 근기를 세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① 正定聚 : 成佛이 결정되어 있는 사람. 극락세계에 태어나면 이미 정정취에 들어 간 것이다. 正定에 들어있는 무리라는 말이다.

② 不定聚 : 아직 성불여부가 정해져 있지 않는 사람으로 수행을 하면 정정취로 올라 갈 수도 있고, 나쁜 마음으로 사정취로 빠질 수 있는 사람

③ 邪定聚 : 나쁜 물에 빠져서 성불할 수 없는 사람이며, 일천제(一闡提:22번 참조)

는 사정취에 속한다.

극락세계는 正定聚의 사람들만 있는 곳이고, 우리들 중생세계는 삼정취 중 不定 聚에 속한다.

90. 참회에 대해 설명하라.

참회(懺悔)의 懺은 범어Ksama의 음역인 참마(懺摩)의 준말이며 悔는 그 번역. 범 어와 한문을 아울러 쓴 말이다. 스스로 범한 죄를 뉘우쳐 용서를 비는 일을 말하 며 불교도덕을 실천하는데 중요한 일종의 행사이다. 참회는 그 방법과 성질에 따 라, 그 종류에 따라 포살(布薩)․자자(自恣)․三種懺法․三品懺悔 등이 있다.

釋尊께서는 제자들이 죄를 그 全部를 참회케 하거나,悔過를 행하게 하였으며, 정 기적으로는 보름마다 布薩과, 안거의 최종일에는 自恣가 행하여 질정도로 참회를 중요시 하였다.

참회 시에는 道場을 장엄하고 향을 땅에 뿌리며 壇을 설치하는 등의 방법을 썼으 나 현재의 우리들은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지극히 진심으로 참회하여야 할 것이 다.

법화경에는 闡提도 참회하고 열심히 기도 정진할 때 성불할 수 있다고 하였듯이 지극 정성으로 참회할 때 부처님께서는 모두 다 들어 주실 것이다.

91. 신심이란 무엇인가?

신심(信心)은 종교를 믿는 마음인데, 덧없는(疑) 것을 여윈 청정한 마음이며 佛․ 法․僧의 三寶와 因果의 이치를 믿는 것으로 불교를 믿는 기초가 된다

불교에서는 信心이 확고해야 된다고 한다.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도 신심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92. 중음신(中陰神)이란 무엇인가?

중음(中陰)이란 중유(中有)라고도 하며, 사람이 죽은 뒤에 다음 생을 받아 날 때 까지의 칠칠일(七七日)까지를 중음이라 한다. 극히 선하거나, 극히 악한 업을 지은 사람은 죽으면서 곧 다음 생을 받으므로 중음이 없으나, 보통으로는 이 중음으로 있을 동안에 다음 생의 과보가 결정된다 한다.

93. 기원정사란 어떠한 곳인가? < 불교경전의 이해 강의 9/29, 불교사전 >

불교 최초의 사찰인 죽림정사(竹林精舍)와 더불어 당시의 또 하나의 절이 있었는 데, 바로 기원정사(祇園精舍)이다. 기원정사는 코살라국의 도읍지인 사위성에 잇는 절로 부처님과 스님 네가 설법하고 수도하기 위하여 수달타라는 백만장자가 기수 급 고독원에 지어서 부처님께 바친 절이다.

부처님께서는 45년 설법 중 24년 동안 雨期를 이곳에서 보내시면서 24安居를 하 셨다고 한다. 7층의 가람으로 자못 장려하였는데, 당나라 玄獎이 7세기에 이 곳을 순례하던 때는 벌써 황폐화되었다고 전한다.

94. 극락세계의 주불과 그 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극락(極樂 : Suhãmati ; Sukhãvati)는 수하마제(須訶摩提)․수마제(須摩提)․수하 제(須訶提)․소하박제(蘇訶?提)라 음역하고 안양(安養)․안락(安樂)․안온(安穩)․ 묘락(妙樂)․일체락(一切樂)․낙무량(樂無量)․낙유(樂有)라 번역한다.

극락세계․극락정토․극락국토라고도 부른다. 이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토(佛土)를 지나간 곳에 있다는 아미타불의 정토이다.

아미타불의 전신인 법장(法藏)비구의 이상(理想)을 실현한 국토로서 아미타불이 지금도 있어 항상 설법하며, 모든 일이 원만구족하여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은 없 는 자유롭고 안락한 이상향(理想鄕)이다.

95. 승만부인은 어떠한 사람인가? < 불교사전 >

승만부인(勝鬘夫人)은 인도사위국 바사닉왕의 딸로 아유타국왕의 부인인데, 승만 경의 중심인물이다.

승만경은 사위국 바사익왕의 딸로서 아유타국으로 시집간 승만부인이 석존께 대 하여 자기의 사상을 여쭈고 부처님이 이를 기쁘게 받아들인 것을 경의 내용으로 한다.

96. 삼론종(三論宗)이란 어떤 종파인가? < 불교사전 >

인도대승불교의 중관계(中觀系) 유가계(瑜伽系)중의 중관계에서 시작되어 중국에 서 크게 번성한 종파이다.

용수가 지은 <중론>․<십이문론>과 뎨바가 지은 <백론>의 3부를 주요 경전으 로 하고 성립한 종지(宗旨)로서 이를 相承한 것을 말하면 문수․마명․용수에 까 지 이르러 2파로 갈라진다.

97. 제석천이란? < 불교사전 > (78번 수미산 참조)

도리천의 중앙에 있는 善見城에는 帝釋天이 있어 이곳의 王인 帝釋天王은 帝釋天 과 도리천의 32天을 통솔하며 佛法과 佛法에 귀의하는 사람을 보호하며 아수라 군 대를 정벌하고 있다.

98. 불교에서는 죄를 어떻게 정의하나? < 불교사전 >

道理를 거슬러서 금단의 윤리적 실천 規法을 어김으로 말미암아 苦 의 報를 부 르는 나쁜 행위로서 허물 또는 죄악이라 일컫는다.

신체․언어․의지(身․口․意)의 세 가지 행위가 罪惡을 야기하므로 罪業이라고 도 하는데(86번 業 참조), 깊은 信心으로 참회를 하여 업장(業障)을 소멸해야 한다.

99. 불교는 우주의 성립과 종말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 불교윤리학 - 김사업 교수 >

불교의 우주론에 대해 설한 책이 구사론이다. 구사론에 의하면 이 우주는 중생들 의 業에 의해 만들어 졌는데 중생들의 업의 힘에 의해 허공에 미풍이 불어 풍륜 (風輪)이 생기고, 수륜(水輪)이 생기고, 금륜(金輪)이 생기는데, 그 금륜위에 수미산 이 있고 4개의 큰 대륙이 있다. 이러한 수미산 세계는 형성 소멸의 4가지의 과정 을 거치는데 이것을 성(成)․주(駐)․괴(壞)․공(空)이라 하여 12억 8천만년을 단위 로 하나의 수미산 세계가 생겨나고 살아지고 한다.

100. 부처님의 전도선언을 기술하라.

(성도 전의 一期는 62번 참조)

부처님의 成道후 같이 고행했던 다섯 비구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이들로부터의 호 응이 자신의 깨달음에 대한 자신감과 傳道意志를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初轉法輪은 부처님의 전도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부처님으로 하여금 이전의 망설임(成道후 교화를 할까 말까하는 망설임)응 보다 확실히 불식(拂拭)시키고, 보다 효과적인 전도방법을 모 색하게 되였고 이들이 가르침에 따라 진리를 증득하게 되자 부처님은 이들로 하여 금 여러 곳으로 가서 진리의 가르침을 전하게 하였다. 이때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서 적극적인 전도를 당부하고 있다.

“ 이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나아가라! 그러나 같은 길을 두 사람이 함께 가 지는 말아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道理에 맡고 言說이 정돈된 가 르침을 펴라.”〔부본행(佛本行 集經)〕

바로 이것을 傳道宣言이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세상에 퍼지게 되고 중생을 괴로움으로부터 건지는 교화활동이 시작되었다.

부처님의 깨달음이 하나의 학문으로만 끝날 번 하였으나 부처님의 初轉法輪과 傳 道宣言이 불교가 탄생하게 된 큰 Moment가 되었다.

101. 십법계(十法界)이란?

미계(迷界)와 오계(悟界)를 총괄하여 十種으로 구분한 것으로 迷界(지옥, 아귀, 축 생, 아수라, 인간 : 六道 또는 六凡, 27번 참조)의 번뇌하는 물질의 세계의 6종과 悟界(성문, 연각, 보살, 부처)의 깨달음의 세계 4종을 합쳐 十法界라 한다.

102.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에 대하여 설명하라.

有情이란 Sattva의 번역으로 감정의 움직임이 있는 동물을 말하는데 중생(衆生)을 뜻하기도 한다. 無情은 정신작용이 없는 것을 말하며 草木, 돌, 山川, 大地, 바다가 그 예이다. 그러나 成唯識論?記 권1에는 衆生이라 함은 有情․無情을 모두 포함한 다 했다.

103. 다라니란? ( 31번과 혼동치 말 것 )

다라니(dharani: 陀羅尼)는 정신을 통일하게 한다는 뜻에서 總持라고 번역된다.

만드라는 비교적 짧은 음절로 이루어진 주문이고 다라니는 비교적 긴 음절로 이 루어진 주문이나, 보통 짧은 음절 긴 음절을 모두 합하여 다라니라고 한다. 정신 을 집중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것, 또 그 결과로서 얻게 되는 정신집중의 상태를 가르키는 말이다. 각종의 善法을 능히 지니므로 能持라고 하 기도 하고, 여러 가지 악법을 능히 막아주므로 능차(能遮)라고도 한다.

104. 삼계(三界)란? ( 三有란? )( 불교입문 p114 )

옛날의 인도 사람들이 생각했던 윤회의 세계는 수직으로 배치된 세계였다. 아래 로 내려가면 무한한 지옥이 펼쳐지고, 위로 올라가도 무한한 천계가 있다고 하였 다. 다시 말하여 衆生이 生死에 流轉하는 迷의 세계 卽有情의 경계를 셋으로 나누 어 三界라 하였는데 生死輪廻하는 迷惑의 生存界( : 有 )의 분류이므로 三有生死라 고도 하고 단순히 三有라고도 한다. 六道 즉 윤회의 세계를 수행력에 의해 세 가 지로 나누었는데 다음과 같다.

가. 욕계(欲界 : Kama-dhatu : 欲有 )는 욕망의 세계로서 六道(27번 참조)가 있다. 欲界의 天上을 六欲天이라 하는데 ①사왕천 ②도리천(33천) ③야마천 ④도솔천 ⑤화락천 ⑥타화자재천이 있다

나. 색계(色界 : rupa-dhatu : 色有 )는 욕계와 같은 탐욕은 없으나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는 형상을 가진 신들이 사는 세계이며 탐욕이 없는 세계이므로 이곳은 선(禪)수행이 가능한 세계이며 初禪天의 梵天으로부터 大自在天까지 있다.

다. 무색계(無色界 : arupya-dhatu : 無色有 )는 형상은 없고 순 정신적인 존재의 세계로 정(定) 卽 三昧를 닦는 곳이다. 무색계는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 識無 邊處天, 無所有處天, 非想非非想處天까지 네 단계가 있다.

105. 팔정도(八正道)란? ( 불교입문 p 138 ) ( 불교학개론 강의실 2 p 97 )

八正道는 ‘8성도(八聖道)’라고도 한다. 여덟개 항목으로 된 성자가 밟아야 할 길 이란 뜻이다.

여덟개 항목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① 정견(正見 : 올바른 견해) - 四諦를 관찰할 것

② 정사(正思 : 올바른 마음자세) - 출리(出離)를 원하고 분노와 혐오를 갖지 않으 며 탐착을 갖지 않는 것

③ 정어(正語 : 올바른 말) - 거짓․중상․비방․천한 말을 쓰지 않는 것

④ 정업(正業 : 올바른 행위) - 살생․도둑질․음행을 하지 않는 것

⑤ 정명(正命 : 올바른 생활) - 교단의 규율에 따르며 여러 가지 사악한 생활방식 에서 떠날 것

⑥ 정정진(正精進 : 올바른 노력) - 이미 생긴 악은 끊고 악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며 선이 생기도록 하여 그것을 증대시키는 노력하는 것(四精勸)

⑦ 정념(正念 : 올바른 생각) - 이 몸은 부정하며, 감각(受)은 괴로움이며, 마음은 무상이며, 제법은 무아라고 볼 것. 그러므로 몸은 정결하고 인생은 즐겁고 마음은 항상 변함이 없고 내(我)가 있다고 생각하는 네 가 지의 잘못된 생각(四顚倒)을 없앤다.

⑧ 정정(正定 : 올바른 선정) - 네 단계의 명상(四禪)

이 배열은 먼저 ① 四諦의 가르침을 이해한 뒤 ②~④ 마음과 언어 행위(身口 意 三業)를 바르게 지키고 ⑤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⑥악을 막고 선이 생기도록 계속하며 ⑦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직관, 억념(憶念)하고 ⑧ 마음의 안정을 향해 주력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 뜻에서 八正道는 범부가 아닌 수행을 쌓은 성자의 길이라 할 수 있다.

106. 팔상성도(八相成圖)란? 八相作佛이란? ( 바웃드바 불교 p186 )

팔상성도란 부처님의 8가지 특징적인 일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으로 다음과 같다.

① 도솔내의상(兜率來儀相)

석가모니 부처님이 도솔천에 계시다가 힌 코끼리를 타고 내려오셔서 마야부인 이 잠 속에서 꿈을 꾸는데 부인의 배속에 들어가는 장면의 그림이다.

②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마야부인의 오른쪽 겨드랑이에서 아이가 나오고 시녀들이 양쪽에서 부축하여 어린이를 받는 그림이다.

③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청년 시타르타 태자가 동쪽으로 놀이 나가다가 노인을 만나고, 남쪽에서는 병 든 사람을 만나고, 서쪽 문에서는 송장을 만나고, 북쪽 문에서는 출가 수행자를 만나는 그림이다.

이 사문유관의 이야기는 인간의 생노병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불교의 출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④ 유성(카피라성)출가상(踰城出家相)

城門을 야음을 이용해 빠져나오는 출가하시는 장면이다.

⑤ 설산(히말라야산)수도상(雪山修道相)

부처님의 활동 무대가 갠지스강 중류이다. 부처님 수도시 히말라야 산속에서 수도하시는 장면으로 고행하시는 모습이다.

⑥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나무 밑에서 마군으로부터 항복받는 장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는 것을 방해 하기 위해서 괴롭히는 것을 물리치고 항복(聖道를 가리킴) 받는 그림이다.

⑦ 녹원정법상(鹿苑轉法相)

녹야원에서 다섯 제자에게 최초로 설법하시는 장면이다.

⑧ 쌍림열반상(双林涅槃相)

쿠시나가라 교외의 사라수 나무 밑에 누우셨는데 사라수가 두갈 레로 뻗어 올 라 갔기 때문에 쌍수라고 한다. 그 나무 밑에서 열반에 드신 모습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부처님 생애의 중요한 장면을 八相이라고 하고, 그 그림이 八相圖이다. 전통사 찰의 영산전에는 중요한 장면의 그림인 八相圖가 있다. 6.25 전쟁후에 八相圖를 미처 복구하지 못한 사찰도 많다.

107. 부처님의 手印은?

불상의 손모양을 手印․印契․印象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비로자나불은 오직 한가지 왼손에다가 오른손 둘째손가락 인지를 넣어 감싸고 있는 손모양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늘을 가르키고 땅을 가르키는 天上天下唯我獨尊을 이야기한 것이 첫 번째 印象 으로, 초파일날 童子像을 목욕시키는 灌浴에서 볼 수가 있다.

우리나라에 제일 많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印象은 항마촉지인이다. 마군이 깨달음 을 방해하기 위해서 별짓을 다 했는데 결국은 항복을 받는 장면으로, 왼손은 무릎 에 얹어 놓으시고 오른손은 땅을 가르킨다. 이 인상을 降魔觸地印이라고 하며 成 道하시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석굴암이 대표적인 항마촉지인이 불상 이다.

인도에 가장 많은 수인은 두 손을 합해져 있는 모습이고 부처님이 설교하시는 장 면으로 說法印이라고 한다.

양쪽 무릎에 두 손을 다 놓고 있으면 禪定印이다.

아미타 부처님의 印契는 9가지 종류가 있다.

108. 三有란? (1찰라란?)

① 범어trayo-bhava의 번역으로 욕유(欲有 : 欲界)․색유(色有 : 色界)․무색유(無 色有 : 無色界)의 三界와 같은 의미의 三有(三界)와, ② 또 一生을 셋으로 나눈 생유(生有 : 태어나는 일찰나)․본유(本有 : 生으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동안의 금 생)․사유(死有 : 죽을 때의 일찰라)를 뜻하기도 한다. 有는 유정(有情)으로서의 존재 또는 생존을 뜻한다. (三界와 三有①은 104번 참조 )

( 一晝夜 = 30모호율다 * 30속박 * 60달찰라 * 120찰라 = 6.480.000찰라 이고,

1찰라를 계산하면, 24시간 * 60분 * 60초 ÷ 6.480.000찰라 = 0,01333.......초. )

109. 독화살의 비유? ( 불교입문 p 86 )

회의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본체론에 대해 ‘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의심스럽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이러한 주장도 잘못이 라고 설하였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면 ‘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모든것은 의 심스럽다.’고 하는 것과 같은 단정적인 판단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정하지 않 는다.’거나, ‘의심스럽다’는 판단은 자기에게 하나의 입장이나 표준이 있어, 그 입장 에서 보아 ‘인정하지 않는다’, ‘의심스럽다’고 하는 판단을 내린 것이기 때문에 그 회의설은 올바른 것이 못된다. 올바른 회의설이라면 모든 것을 의심하기 때문에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는 것이므로 판단 중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회 의설의 모순이 있는 것이다. 아함속의 전유경(箭喩經)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사위성의 기원정사에 있을 때, 말룽카풋타라는 한 바라문 청년이 찾 아왔다. 그는 당시 문제가 되고 있던 본체론적인 여러 가지 철학에 흥미를 가지 고 그 해결을 위해 당시 철학자와 종교가를 찾아 다녔다. 그렇지만 아무도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이에 석가모니라면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불교교단에 출가하여 비구 가 되었다. 그러나 주위의 비구들은 철학적인 문제를 논하는 일 없이 묵묵히 수행 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말룽카풋타는 불만으로 가득 차 만일 철학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단을 버리고 세속생활로 되돌아갈 생각으로, 어느 날 저녁 석가모니를 찾아가 해답을 구했다.

석가모니는 그에게 “내가 너에게 본체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하면서 출가하라 고 약속한 적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청년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석가모 니는 독화살의 비유를 들어 설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독을 바른 화살에 맞았다고 하자. 그의 친구나 친척들은 그를 바로 의사에게 데리고 가 치료를 받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화살을 맞은 사람은 자기를 쏜 이가 사성계급 가운데 어느 계급에 속하는 사람인지, 이름은 무엇이고, 신장은 얼마나 되며, 피부색은 어떻고, 출신지는 어디며, 독화살을 쏜 활과 화살, 화살에 붙은 깃, 화살촉과 활줄 등의 종류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판명되지 않으면 이 독화살을 결코 빼지 않겠다고 우긴다면, 그것들이 판명되기 전에 독은 전신에 퍼져 그 사람은 죽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먼저 독화살을 뽑고 응급치료를 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 계가 무한이든 유한이든 현실적인 인생에는 생노병사가 있고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있다. 그것을 이 세상에서 어떻게 극복하느냐, 나는 그것만을 가르치는 것이다.

내가 그런 문제에 대답하지 않는 것은 그 답을 하는 일이 수행의 목적이 아니며 그 답으로서 고뇌를 극복하고 정각과 열반으로 인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말룽카풋타가 본체에 관한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불도 의 수행에 들어갈 마음이 없다고 우긴다면, 본체론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 문에 수행에 들어갈 기회도 없을 것이며, 윤회를 벗어나 고뇌로부터 해탈을 얻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자 말룽카풋타는 자신의 생각 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고뇌의 해결을 위해 성실히 불도의 수행을 닦았다고 한다. ( 110번 十難 참조 )

110. 십난(十難)또는십사난(十四難)이란? 十難無記 十四無記란? (불교학강의실 2 P80)

현실중시의 기본적 입장에는 쉽게 회피하기 어려운 난문제가 있다. 그것은 소위,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관한 것으로서, 이것은 석가모니 당시의 인도에서도 육십 이견(六十二見)이라 불릴 정도로 다채롭게 제기되었으며, 그 후로도 끊임없이 제기 된 전 인류 공통의 테마이기도 한다. 팔리 5부와 한역 4아함으로 된 초기불교 경 전은 이 문제에 대해 다음의 14(혹은10)가지로 정리하고, 이것을 14개의 난문제라 하여 十四難 혹은 十難이라 표현하고 있다.

A. (1) 세계는 상주(常住 : 시간적으로 무한 것)인가,

(2) 세계는 무상(無常 : 시간적으로 유한 것)인가,

(3) 세계는 상주이면서 무상인가

(4) 세계는 상주도 아니고 무상도 아닌가

B. (5) 세계는 유변(有邊 : 공간적으로 유한 것)인가,

(6) 세계는 무변(無邊 : 공간적으로 무한 것)인가,

(7) 세계는 유변이면서 무변인가,

(8) 세계는 유변도 아니고 무변도 아닌가,

C. (9) 신체와 영혼은 동일한가,

(10) 신체와 영혼은 다른가,

D. 여래(如來 : 진리의 달성자)는 사후에

(11) 유(有 : 존재하는 것)인가,

(12) 무(無 :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13) 유이면서 무인가,

(14)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가,

‘십난’이란 이 가운데 (3), (4), (7), (8)을 제외한 경우를 말한다.

위 十難(14難)은 모두 형이상학적으로 관계가 되므로 독화살의 비유를 들며 부처 님은 대답 하지 않았는데 이를 십난무기(十難無記)라 하며 十四無記라고도 한다.

111. 천태삼대부(天台三大部)는?

천태삼대부는 법화문구(法華文句)․법화현의(法華玄義)․마하지관(摩訶止觀)으로 天台智者大師(智顗)가 강설한 것을 제자인 관정(觀頂)이 기록한 것이며 智顗의 후 기 강설 초기(38~48세 : 575~585)에 해당되며, 法華文句․ 法華玄義는 천태종의 교상(敎相)을 밝혔고 摩訶止觀에는 실천적 관심문(觀心門)을 밝힌 것으로 다음과 같다.

가. 법화문귀(法華文句)

「法華文句」10권은『法華經』28품의 문자구절을 해석한 것이다. 「法華玄義」 가 개론이라면 이것은 주석서이다. 그리고 각 구절을 네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해석하였는데 이것을 사종석(四種釋)이라 한다.

나. 법화현의(法華玄義)

法華玄義는 천태학의 이론적 방면인 敎相이 논술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석명 (釋名)․변체(辨體)․명종(明宗)․논용(論用)․판교(判敎)의 5강목으로 나뉘어 있 다.

제1 釋名에서는 묘법연화경의 5절을 해석하여 묘(妙)로 그 안목으로 하고

제2 辨體에서는 철학적 원리로서의 실상을 논하며

제3 明宗은 실천적 원리도서의 因果를 설하고

제4 論用은 실천의 계제를 지시하여 수도에 의한 인격의 진전을 논하며

최후의 判敎는 교판상석을 설하여 법화의 지위를 논하였다.

다. 마하지관(摩訶止觀)에는 천태종의 실천적 수행론이 집대성되어 있다.

止觀의 止는 사마타(samatha)로써 선정(禪定)이며 觀은 비파샤나(vipasyana)로 써 지혜를 뜻한다. 이 止와 觀을 함께 닦는 것 천태의 행법인데 이를 원돈(圓頓) 지관이라고도 부르고 摩訶止觀이라고도 부른다. 마하지관에 나타난 천태의 行法 에는 4종삼매(39번 참조)가 그것이다.

지의(智顗)의 작품 중에서 가장 원숙하고 체계적인 논서로 평가되며 智顗 스스 로의 종교체험과 종교 실천으로 일관되어 있다는 점을 더욱 주목해야 한다.

112. 옴마니반메훔〔唵(암)嘛呢叭(팔)口彌吽(흠)〕이란?

범어 om mani padme hum “오! 연화상의 미니주여” 라고 기원하는 뜻이며 라 마신자가 부르는 주문으로서 연화수보살(蓮華手菩薩)께 귀의하여 극락에 왕생하기 를 바라면서 부르면 죽은 후에 六道에 유전하는 제약을 벗어나는 공덕을 얻는다고 한다.

113. 우리나라의 5대 보궁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전각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하며 부처 님이 항상 寂滅의 法을 법계에서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므로 적멸보궁에는 佛像을 안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 온 부처님 사리와 정골을 나눠서 봉안 한 5대 적멸보궁이 이 있다. ①양산 통도사, ②오대산 중대의 상원사, ③설악산 봉 정암, ④태백산 정암사, ⑤사자산 법흥사의 적멸보궁이 바로 聖地로 꼽히는 5대보 궁이다.

114. 등신(等神)이란?

等身佛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쇠․돌․풀․나무․흙과 같은 것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말한다. 그러나 等身佛하면 일면 진신상(眞身像), 육신상(肉身像)이란 뜻으 로 修道가 최고에 달하여 成佛의 경지를 이룬, 해탈한 스님이 죽은 후 육신 그대 로 불상이 된 모습을 뜻한다.

높은 道力으로 돌아가신 禪僧들중에서 좌탈입망한 선승의 시신을 큰 옹기 항아리 에 넣고 밀봉한 후 3년 또는 5년 후에 개봉하고 이 때 미이라가 된 禪僧만을 꺼내 그 肉身 위에 금물을 입혀 불상처럼 모시게 된다. 이것이 等身佛이다.

그런데 이 말도 아주 비하되어 혼이 빠진 사람, 사람 됨됨이가 좀 모자라는 사람 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불교적인 차원에서 그 참뜻을 깊이 새겨 보면 좋은 의 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115. 이판사판(理判事判)이란?

이판사판이란 말의 유래는 ‘理判’이란 말 뜻은 俗世를 떠나 道를 닦는 일을 의미 하며, ‘事判’이란 절의 모든 재물과 사무를 맡아서 처리하는 일을 의미한다. 그리하 여 사찰에 계시는 스님들은 불경의 연구와 참선에만 전심전력하여 이판을 추구하 는 스님 즉 이판승(理判僧)또는 이판중(理判衆)과 사찰의 운영 및 경리, 사무 등 사 판을 맡아 보는 스님 즉 사판승(事判僧)또는 사판중(事判衆)으로 나뉘어 있다.

옛 스님들이 理判僧 아니면 事判僧으로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理判事 判이란 佛家의 말이 세속적인 말로 轉用되어 진퇴양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체 념하다시피 하거나 자포자기 하다시피 할 때, 또 죽기 아니면 살기로 사생결단을 내려야 하거나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분명히 가려야 할 때 쓰여 지게 되었다.

116. 야단법석(野壇法席)이란?

신라 때 스님들이 높은 山中에서 道만 닦고 계시다가 가끔 농촌으로 내려 올 때 가 있다. 농부들은 농촌 들 녘을 지나가는 스님에게 설법을 청해 듣는다. 그때 농 부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여서 짚단으로 급히 임시 설법할 자리를 만들어 드렸고 이 자리가 野壇法席이다. 야단법석은 스님으로부터 설법을 듣기 위해 농부들이 들판 에 임시로 만든 자리를 말한다.

野壇法席이란 말은 오랜 세월 후에 이 뜻이 변하여 ‘여러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서로 몹시 다투고, 떠들고, 소란스럽게 시끄러운 판’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117. 아수라장(阿修羅場)이란?

아수라는 ‘수라’라고도 하는데 범어 ‘asura’의 음역이다. 고대의 인도에서부터 아 수라는 ‘전쟁과 투장’을 일삼는 일종의 귀신으로 여겨지던 존재다. 더욱이 제석천 (인드라신)과 싸우는 투쟁적인 ‘못된 신’으로 간주되었다. 이로부터 아수라장이니 아수라의 싸움이니 하는 용어가 생겨났다.

이 가운데 阿修羅界는 시기심이 강하고 싸움을 일삼는 공격적인 사람이 죽은 뒤 업장에 따라 떨어진다는 세계이다. 사움이 그칠 사이가 없고 정법을 멀리하는 세 계이다. <십지경>에 의하면 수미산 북쪽의 큰 바다 아래에 있으며 괴로움과 즐거 움이 반씩인 상태라고 한다.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 가운데에도 아수라가 속한다. 팔부중(八部衆)에는 하늘 (天)․용(龍)․야차(夜叉)․건달바(乾闥婆)․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 (緊那羅)․마후라가(摩睺羅伽) 등이 있다.

전쟁과 투쟁에 앞장서는 신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이제는 불교에 순종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수호신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이채롭다. 그러나 세간에서는 여전히 ‘싸 움’의 상징이다.

118. 아비규환(阿鼻叫喚)이란?

심한 고통 속에 울부짖는 참상, 그와 같은 처절한 고통의 모습을 일컬어 ‘아비규 환’이라고 한다. 아비규환이란 八熱地獄 中에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을 합친 말이다. 두 지옥이 합하였으니 그곳의 고통은 얼마나 극심한 것인가. 아비지옥은 범어 ‘avici’의 번역으로 흔히 ‘무간(無間)지옥’이라고 한다. 남섬부주 아래 2만 유순되는 곳에 있는 혹독한 지옥으로 쉴 틈 없이 괴로움을 받는다고 해서 무간지옥이라고 한다.

①삼보의 재물을 훔치거나 파괴하는 행위, ②삼보를 비방하거나 업신여김, ③승가 를 욕하고 부린다거나, ④부모를 죽이거나 승가의 화합을 깨드리는 등의 죄를 범 하거나, ⑤인과의 도리를 믿지 않고 열 가지 악행을 일삼는 행위 등이 五逆罪에 해당한다. 무간지옥은 바로 오역죄를 지은 이들이 그 죄과를 받는 곳으로 형벌이 실로 극심하다고 한다.

또 叫喚地獄은 罪人들이 물이 끓는 큰 가마 솟이나 뜨거운 쇠 집 속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견디다 못하여 울부짖는다 한다. 殺生․도둑질․음행․술 많이 먹는 이가 들어가게 되는 地獄이다.

119. 貧者의 一燈

등을 다는 의미는 자기 마음속의 무명을 없애기 위하여 다는 것이다. 아사세왕수 결경(阿闍世王授決經)에 보면 마가다국의 아사세왕이 부처님을 청하여 공양을 올리 고 나서 부처님이 기원정사로 돌아가실 때 왕궁의 문에서 기원정사까지 마유고(麻 油高)로 수많은 등불을 밝혔는데 어느 가난한 노파가 항상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 려는 마음은 지극하였으나 가난하여 못해 오다가 왕이 이러한 공덕을 짓는 것을 보고 감격하여 이 노파가 부처님 전에 등을 달기 위하여 온 마을에 하루 종일 동 냥 하였으나 한 푼밖에 모으지 못했다.

그 한 푼으로 먹을 것이 급했으나 그것을 참고 한 푼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등을 사정하여 등을 사 달았다.

이 노파는 등불을 밝히면서 이 적은 기름으로는 半夜도 못가겠구나 생각하면서도 서원하기를 「제가 만약 후세에 도를 얻게 된다면 이 불은 밤새까지 꺼지지 않으 리!」하고 절을 한 뒤 물러났다. 왕이 밝힌 등은 새벽에 거의 꺼져 갔으나 이 노파 가 밝힌 등은 유독 밝음이 더하였다. 기름도 조금도 줄지 않았다. 부처님이 목근련 제자에게 「날이 밝았으니 아직 꺼지지 않은 등을 끄라」고 하셨다. 신통력이 최 고였든 목근련이 등을 끄는데 이 노파의 등만은 꺼지지 않았다.

그때 신통력이 최고였던 목근련 弟子가 손으로도, 장삼으로도 그 貧女의 등불을 끄려 했지만 꺼지지 않았고 나중에는 신통력으로 바람을 일으켜서 끄려 했어도 더 욱 밝아지는 불빛은 하늘에까지 비추었다.

이를 목격한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목근련아! 어떻게 노력해도 그 불은 못 끈 다. 미국의 무시무시한 토네이도 바람도 저 등불은 못 끈다. 또 온 바다의 물을 다 부어도 저 등불은 못 끈다. 저 불은 當來佛의 光明功德이다. 너의 신통력으로는 끌 수 없느니라. 이 노파는 30겁 후에 부처가 되어 수미등광여래(須彌燈光如來)라고 하리라’하고 수기(授記)하셨다.

현우경(賢愚經)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에서는 이 노파의 이름을 難陀라 하였고 내용은 비슷하다. 〔 동령( 動鈴 ) → 동녕 → 동냥 〕

120. 불교를 빛낸 人物들 ( 인도편 )

120-1. 마명(馬鳴, Aśvaghosa)

1~2세기경 이물이다. <마명보살전>등 중국자료에 의하면 중인도마가다 지방의 바라문 가정에서 태어났다. 웅변가로서 처음에는 불교를 배격하고 불교의 승려들 과 논쟁해서 가는 곳마다 그들을 침묵시켰다. 그 때 캐시미르에서 온 협존자(脇尊 者, Părśva ; 일설에는 그의 제자라고 함)와 논쟁해서 패배하고 약속에 의해 그의 제자가 되어 출가했다.

토라빠라라고 하는 불교음악을 작사․편곡해서 파탈리푸트라에서 스스로 종과 북 으로 연주했는데, 이것을 듣고 일시에 500명의 왕자가 불교의 깊은 이치를 깨닫고 출가했기 때문에 국왕은 크게 놀랐다고 한다. 백성들이 이 음악을 듣고 모두 출가 할 것을 염려하여 이후로는 이곳의 연주를 금했다. 마명은 시인이고 음악가였으며, 게다가 신앙심이 깊고 계행이 바른 대단히 우수한 불교학자 이었다.

저서로는 < 불소행찬 > 외에 < 단정한 난다 >, < 세속보리심수습교계서(世俗菩提 心修習敎誡書) >, < 승의보리심수습차제서(勝義菩提心修習次第書) >, < 금강침론 (金剛針論) > 등이 있다. < 대승기신론 >도 그의 저작이라고 하나 훨씬 후대의 작 품이다.

120-2. 용수(龍樹, Nãgãrjuna)

약 150~250년경 사람이다. 나가는 용(龍)이란 뜻이고 아르주나는 고대 인도의 전 설적인 영웅의 이름으로 중국에서는 의미와 무관하게 수(樹)라고 음사했다. 中觀學 派의 시조이며 대승불교가 그로부터 發興하였으므로 후세에는 제2의 釋迦, 八宗의 祖師등으로 불리고 있다.

< 용수보살전 >에 의하면 그는 남인도 출신으로 어려서 4베다․천문․지리 등 모든 학문에 능통했다. 어느 때 욕락(欲樂)을 즐기기 위해 세 명의 친구들과 은신 술을 배워 왕궁으로 들어가 미녀들을 농락했다. 이것이 발각되어 친구들은 살해되 고 그는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그때 용수는 애욕은 고통의 근원이며 화의 뿌리 라는 것을 깨닫고 출가를 결심했다고 한다.

출가해서 90일간 소승 삼장(三藏)을 배우고 다른 경전들도 배웠다. 그러나 만족하 지 못하고 그 후 히말라야(雪山)의 불탑에서 老 比丘로부터 대승경전을 공부했다. 그 뒤 여러 나라를 편력하며 불교와 외도의 논사들을 격파했다. 또 바다 속의 용 궁에 들어가 대승경전을 얻고 90일간에 그 본질을 체득했다고도 한다.

그의 불후의 명저인 < 中論 >의 내용을 살펴보면, 불교의 근본사상을 연기로 보 고, 이 연기를 통해 일체의 존재는 스스로의 성품이 없으므로(無自性), 독립된 실체 는 없다고 한다. 깊이 체득한 경지를 공(空)이라 부르고 또한 중도(中道)라고 부른 다. 또 세속제(世俗諦)와 진제(眞諦 : 第一義諦)의 두 입장을 세워 이것을 관통하는 것을 공성(空性)이라고 보았다.

저서로는 < 中論 >4권외에 < 十二門論 >과 < 大智度論 >, < 空七十論 >, 중관사 상의 요점을 모은 < 육십송여리론(六十頌如理論) >, 논리학파들의 논란을 깨고 空 사상을 밝힌 < 회쟁론(廻諍論) >, 논리학파의 과실을 서술한 < 광파론(廣破論) >, 왕의 도덕규범을 설한 < 寶行王正論 >과 < 龍樹菩薩勸戒王頌) >, 보살의 수행방법 을 설한 < 十住毘婆沙論 >등이 있다.

120-3. 제바(提婆, Āryadeva)

170~270경의 사람으로 초기 중관학파의 論師이다. 그는 남인도 출신으로 박식하 고 변재(辯才)에 뛰어났고 가나제바(迦那提婆)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가나’는 ‘애꾸 눈’이라는 뜻이다. 그 후 어떤 여인이 그를 사랑하자 자신의 눈 하나를 도려내 그 것은 불결한 고깃덩이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한다. 그 후 남인도 각지를 편력한 후 용수를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제바는 숲 속으로 들어가 <百論>, <四百論>을 저술해 삿된 견해를 논파했다.

특히 百論에서는 대승불교의 空과 無我說에 대하여 용수의 中論說만 채택하고 다 른 철학과 宗敎를 배척하고 있는데 인도의 3세기 무렵 제 학파의 학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제바와의 논쟁에서 패한 것을 한탄하던 흉악하고 미혹한 외도의 칼에 찔려 괴로 운 고통 속에서도 그 외도를 불쌍히 여겨 ‘육체와 이름은 근심의 원인이니 이것을 멀리하게’라고 말했고 달려온 제자에게는 ‘모든 존재는 친함도, 원한도, 적도, 해도 없다’라고 法文을 남기고 入寂했다. 저서로는 <百論>, <四百論>외에 <百字論> 이 있다.<百論>은 용수의 <中論> <十二門論>과 함께 三論이라 한다.

120-4. 무착(無着, Asaṅga)

310~390. 무착(無着, 無着)․무장애(無障礙)라고 번역하고 아승가(阿僧伽)라고 음 사(音寫)한다. 또 유식불교(唯識佛敎)의 대성자이다.

<바수반두法師傳>에 의하면 3형제가 있었는데, 첫째가 무착이고 둘째가 불교 역 사상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세친(世親)이다. 처음에는 소승 설일체유부에 출가해서 소승의 공관(空觀)을 수행했지만 무착은 일광삼매(日光三昧)를 배워 대승의 교의를 모두 이해하고 많은 주석서를 지었다. 만년에는 소승불교에 빠져 있던 아우 세친 을 대승으로 인도했다고 한다. 티벳 전승에서도 그가 도솔천에서 미륵으로부터 가 르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무상유식(無相唯識)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주저인 <섭대승론>은 彌勒( 83- ② 참조 )의 <해심밀경>과 <대승아비달마경>등에 기초해서 唯識의 교리로 大乘의 체계를 세운 것이다. 이 책은 첫 3장에서 아뢰야식․삼성(三性)․유식관을 정의하 고, 다음 5장에서는 수행실천으로서 육바라밀․십지(十地)․계율․선정․지혜를 서 술하고 있으며, 마지막 2장에서는 무주소열반(無住所涅槃)․불(佛)의 삼신(三身)에 대해서 설하고 있다.

이 책의 원전은 없지만 한역으로 진제역․현제역 등 4종의 번역이 있으며 티벳역 도 존재한다. <섭대승론>은 唯識의 교리를 대성시킨 책으로서 주요시되고 있다.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은 한역본에서는 미륵의 저작으로 되어 있지만, 티벳 전 승에는 무착의 저술로 되어 있다. <아비달마집론>,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20 권, <금강반야경론(金剛般若經論)> 2권, <육문교수습정론(六門敎授習定論)> 1권, <순중론(順中論)>3권이 그의 저작으로 되어 있다.

120-5. 진나(陳那, Dignãga)

480~540. 진나(陳那)라고 음사하고 역룡(域龍)이라 번역한다. 불교논리학의 확립 자이며 유식학파의 사상가이다. <구사론>의 주석과 <관소연론(觀所緣論)>등 100여 편의 소논문을 썼지만 이들은 단편적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집대성한 <집량론(集量 論)>을 쓰기로 결심했다. 또 <집량론>의 자주(自註)를 써서 모든 외도들을 조복시 키고 불교를 널리 홍포했다.

그는 새로운 논리학을 대성시킴으로써 인도논리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식의 근거로서는 현량(現量)과 비량(比量)의 2량(二量)을 인정한다. 그의 唯識觀은 “一切 는 識뿐이다.”라는 입장이다. 唯識 관계 저작에는 <취인가설론(取因假設論)>, <무 상사진론(無相思塵論, 觀所緣論)>, <해권론(解捲論, 掌中論)>, <입유가론(入瑜伽論)> 이 있다.

121. 불교를 빛낸 人物들 ( 중국편 )

121-1. 도안(道安)

312-385. 중국 승려로 동진․전진시대에 초기 중국불교 발전의 기반을 마련한 지 도적인 학승이다. 20세에 그의 스승인 불도징(佛圖澄)으로부터 具足戒를 받고 그의 제자가 되었으며 문필가로 잘 알려진 습착치(習鑿齒) 같은 사람도 道安과 깊은 교 류를 가졌다.

그는 양양에서 15년을 살았는데 건원 15년(379) 전진의 부견은 강북을 통일한 뒤 도안의 명성을 듣고 10만의 대군을 보내 양양을 공략하여 도안과 습착지를 장안으 로 데려왔다. 그 뒤 7년간 장안에 머물면서 교화․저술활동을 하였는데 그의 僧徒 는 항상 수천 명이 되었다.

경전이 서분․정종분․유통분의 세 분과로 구성된다는 주장은 도안에 의해서 시 작되었다고 한다. 출가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이므로 석(釋)씨 로 성을 삼아야 한다고 하며 스스로를 석도안이라 불렀다. 건원 21년(385)72세로 입적했다.

121-2. 혜원(慧遠)

334-416. 여산(廬山)의 혜원으로 속성은 고(賈)씨이다. 도안 문하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 그는 산서(山西)태생으로 어려서부터 유교와 노장을 배워 이름을 날렸는 데 21세때 도안이 <반야경>을 강의하는 것을 듣고 감격해서 불문에 귀의했다. 불 법의 포교에 주력하여 원흥 원년(402) 유유민(劉遺民) 등 123명의 동지들과 함게 결사를 하고 염불을 행하였다. 이 결사를 세상에서 백련사(白蓮社)라 한다.

법정․법령 등을 서역에 보내서 범본을 구해 오도록 했다. 불타발다라(佛馱跋陀 羅)가 번역한 60권 <화엄경>은 그들이 가져온 범본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혜원의 진면목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이다. 당 시 환현이 사문으로 하여금 왕자에게 예경하도록 한 데 대한 반론을 저술한 것이 다.

121-3. 법현(法顯)

335?-421? 산서성 평양의 무양 태생이다. 그는 출가행위의 기준이 되는 ‘율(律)’에 대한 전적(典籍)이 불완전한 것을 개탄하였다. 60세 무렵(399) 장안을 떠나 율의 원 전을 구하려 서방으로 갔다.

법현은 장안을 출발해서 돈황을 지나 천산북로를 따라 코탄에 도달하고 5년에 걸 려서 중앙인도에 도착한 뒤 쉬라바스티(舍衛城)의 기원정사를 방문했다. 붓다가 야․베나레스의 녹야원 등 부처님의 유적을 순례한 후에 다시 파탈리푸트라에 머 물면서 3년간(405-408) 공부했다.

여기서 배로 실론(현재의 스리랑카)에 건너가 2년간(410-412)머물렀고 그뒤 귀로에 올라 백여 명이 타는 상선에 탔는데, 여기서 광동으로 향하는 상선에 편승했지만 표류해서 산동성에 상륙했다. 건강(지금의 남경)에 도착한 후 <법현전(고승법현 전․불국기․역유천축기전)>을 저술했는데 당시의 인도나 중앙아시아의 사정을 아 는데 비할 바 없는 문헌으로 중요시된다. 그의 관심은 소위 소승으로 중국불교사 에서 고립된 존재로 남아 있었다.

121-4.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iva)

344-413 또는 350-409. 현장 이전의 구역(舊譯)시대를 대표하는 최대의 번역가이 다. 구마라집을 줄여 라집이라고도 하며 동수(童壽)라고 번역한다.

아버지는 인도스님으로 구자국(龜慈國)에 와서 국왕의 고문이 되고 왕의 누이동생 과 결혼해서 구마라집을 얻었다. 그의 명성은 서역분만 아니라 중국에가지 알려져 있었다. 이때에 전진의 부견은 도안에게서 라집의 고명(高名)을 듣고 장군 여광(呂 光)을 보내어 구자국을 공격했고 라집은 붙잡혀 오게 되었다. 그러나 중도에 부견 의 멸망이 알려지자 여광은 양주의 고장(姑藏)에서 후량이라는 나라를 세웠고(386) 라집도 15년 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후진의제 2대인 요흥은 후량을 토벌하여 라집을 장안으로 맞이했다(401). 그때 나 이 58세였다. 라집은 그때가지 번역된 경전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교정함과 동시에 구탈을 벗고 중국인들에게도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역어를 사용하여 舊譯의 대표자 이며 玄奘을 新譯의 대표자라 한다.

<승만경>번역에는 100명, <대품반야경>에서는 500명이 번역에 참가했다고 한다. 또 <유마경>번역에는 1,200명, <법화경> <사익범천소문경(思益梵天所問經)>번역에 는 2,000명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12년간 역경에 종사하고 70세에 입적했다. 그 밖 에 역출한 경전은 <중론> <십이문론> <대지도론> <십주비바사론> <성실론> <백 론> <아미타경> 등이 있다.

121-5. 달마(達摩)

?-528? 그의 梵名은 Bodhi-dharma이고 菩提達磨라 음역했고 達磨는 그의 약칭이 며, 중국 선종의 初祖이다. 그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 국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대승에 뜻을 두고 명상했으며 외국에 포교하기 위해서 남중국에 왔다. 당나라 代 宗은 원각대사(圓覺大師)라 시호(諡號)했다.

달마와 양무제와의 회견은 후대의 문헌에서야 비로소 등장하기 때문에 사실인지 는 알 수 없지만 유명한 逸話이다. 그때 무제가 묻고 달마가 대답한 내용은 다음 과 같다.

“절대적인 진리의 궁극은 어떠한 것입니까(如何是聖諦第一義)”

“텅비어서 성스러움도 없습니다(廓然無聖)”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對朕者誰)”

“알지 못합니다(不識)”

또 武帝는 묻기를 “朕은 절을 세우고 經을 刊行하며 승려들을 권장하오. 그러니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오?”

달마가 대답하기를 “無功德이오.” 武帝는 달마대사의 言行을 알아듣지 못했고 두 사람의 기연(機緣)이 맞지 않았다. 그 후 낙양의 동남쪽 50km 정도 떨어진 숭산의 소림사에서 면벽하고 9년 동안 좌선했다는 일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선종 계 통에서는 혜가 스님이 달마로부터 법을 배우기 위해 한쪽 팔을 잘라 바쳤다는 이 야기도 전하고 있다. 아무튼 달마로부터 혜가(慧可)에게 전해진 선(禪)의 가르침이 당나라시대 특히 7세기경에 선종으로 꽃피웠고, 여러 뛰어난 선승들을 배출해 한 국․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121-6. 지의(智顗)

538-597. 성은 진(陳)씨 자는 덕안(德安), 天台宗의 開祖이며, 흔히 天台智者大師 라고 한다. 지의는 양나라 말기의 난세를 만나서 18세 때 출가한 후 여러 곳에서 공부했는데 특히 광주의 대소산에서 혜사(慧思)에게 사사받고(560년) ‘법화삼매(法 華三昧)’에 몰두하였다.

혜사가 남악에 은퇴한 이듬해(569년) 지의는 금릉의 와관사로 가서 <법화경>을 비롯하여 <대지도론>등을 강의하고 선(禪)을 가르쳤다. 후세에 이르러 이 해를 천 태종의 기원으로 삼는다. 그리고 천태산에 들어가서 불롱을 근거지로 삼았다. 천 태대사라는 칭호와 종파명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50세(587년)때 강의한 <법화경> 필록을 <法華文句>라고 하는데 현재가지 천태종 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593년과 이듬해 옥천사에서 강의한 필록이 <法華玄義>와 <摩訶止觀>으로 앞에서 말한 <法華文句>와 합쳐 ‘천태삼대부(天台三大部)’라 일컫는다. 지의는 597년 10월 진왕 광의 전송을 받으며 천태산을 출발했으나 도중에 병이 들어 11월 아미타불을 염하면서 여산에서 입적했다.

그의 일생은 <법화경>을 중심으로 대승경전 특히 <대지도론>의 말씀을 안배하고 선과 아미타신앙을 가미한 종합 불교체계의 확립에 바쳐졌으며, 이것을 위해 오시 팔교(五時八敎)라는 교판상석을 행하였다.

121-7. 현장(玄奘) ( 불교문화사 p. 79 )

600(또는 602)-664. 중국 당나라 때의 대여행가․대번역가․삼장법사(三藏法師)이 다. 현장이 특히 열심히 공부한 것은 <구사론> 등의 아비달마 논서와 <섭대승론 (攝大乘論)>등의 유식학파의 논서였다.

여러 스승에게서 배우는 동안 이들 논서에 대한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이 동일하 지 않음을 발견하고 29세(27세라고도 함) 때 몰래 인도를 향하여 출발, 4년 뒤에 마가다국에 도착했다.

부처님의 유적을 참배한 후 당시 불교연구의 중심지인 나란다에 정착해서 4년간 공부했고 주로 계현(戒賢)밑에서 유식학을 배우고 아울러 <구사론><대비바사론>등 과 같은 아비달마 및 인명(因明;논리학)을 연구했다. 그 후 3년간 인도 각지를 여행 하고 645년 1월 장안으로 돌아왔다. 출국할 때는 비밀출국이었으나 돌아올때는 환 영인파가 수십만이 몰려 걷기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그가 가지고 온 불상과 불사 리와 657부의 범본은 장안의 홍복사에 소장되었고, 그 해 3월 번역을 시작했다.

현장의 번역사업을 위해 번경원(飜經院)이 설치되었다. 그 뒤 약 20년간 번역사업 에 종사하여 <대반야경>600권, <유가사지론>100권, <배디바사론>200권, <구사 론> <성유식론> <섭대승론>등 75부 1335권에 달하는 많은 경론을 번역하였다. 또 한 여행 견문기로서 <대당서역기>12권을 저술하여 태종에게 진상했는데, 당시 인 도와 중앙아시아를 아는 귀중한 자료이며 일반에게 잘 알려진 <서유기>의 모태이 기도 하며 그의 번역은 原典의 낱말이나 구절을 그대로 충실히 번역 (逐語譯)하였 고 原典도 인도불교의 후기에 성립된 것이어서 新譯의 대표자라 칭하여 지며, 구 마라집을 舊譯의 대표자라 한다. 이 大唐西域記로는 法顯의 佛國記와 혜초(慧超)의 往五天竺國傳과 함께 東洋의 三大旅行記라 하며 64세 때 병으로 입적했다.

121-8. 의정(義淨)

635-713. 당나라의 역경삼장이다. 속성은 장(張)씨이며 자는 문명(文明)이다. ‘율’의 원전은 이미 5세기 초부터 번역되어 있었지만 결여된 점이 많아 불만을 느낀 의정 은 법현과 현장의 예를 따라 14(또는 15)세 때 인도유학의 뜻을 품었다고 한다. 20 세에 수계를 받았고, 36세(671) 때 드디어 혼자 출발하게 되었다. 광주에서 남해항 로의 배를 탔다.

타무리페에 상륙, 불적을 참배하고 베나레스 지방에서 나란다사로 가서 10년간 불교연구에 몰두했다. 수마트라의 슈리비쟈야국에서 7년간 머물면서 <남해기귀내 법전(南海寄歸內法傳) > 4권과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 2권을 집필해서 본국으로 보냈다. 전자는 인도와 남해의 풍물․사정 등을 기록한 것이고, 후자는 당나라 초기에서 의정 때까지 50년에 걸쳐 중국에서 인도로 건너가 구법한 승려 60명의 전기를 쓴 것으로 둘 다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그리고 약 400부의 범본과 300개의 사리 등을 가지고 695(혹은 698)년 낙양에 돌아왔다. 이 때 측천무 후는 의정을 성문밖에서 맞이하고 불수기사에 머물면서 번역사업에 종사하게 했 다. 706년 장안의 대천복사에 飜經院이 설치되어 의정이 입적할 때까지 역경에 종 사했다.

많은 조수를 거느리고 56부 230권을 번역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설일체유부의 ‘율(律)’에 관한 것이고, 그 외 ‘유식’, ‘진언밀교’에 속하는 것 등이 있다. 분량도 현 장의 6분의 1밖에 안되고 후세에 미친 영향도 적었지만, 설일체유부 승려들의 생 활규범을 실제로 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의정은 인도불교 연구에 귀중한 자 료를 제공해 준 것이다.

122. 불교를 빛낸 人物들 ( 한국편 )

122-1. 자장(慈藏)

590(진평왕 12) - 658(태종무열왕 5). 신라시대의 고승으로 속성은 김씨, 무림(茂 林)의 아들이다. 무림은 진골 출신으로 신라 17관 등 중제3위에 해당하는 소판(蘇 判)의 관직에 있었다. 그는 원녕사(元寧寺)를 지어 고골관(枯骨觀, 白骨觀)을 닦았 다. 그때 조정의 재상자리가 비어 여러 차례 부름을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왕도 도 어쩔 수 없이 출가를 허락하였다.

선덕여왕 5년(636) 제자 숭실 등 10여 명을 데리고 당나라 청량산 문수보살상 앞 에서 기도하였다. 선덕여왕의 청에 의해 643년 경장 일부와 불구 등을 가지고 돌 아와 분황사에 머물렀다. 그 뒤 대국통을 삼아 승려들의 일체 規法을 맡게 하였다. 645년 황룡사 9층탑을 세우고 주지가 되었으며 <보살계본>을 강의하기도 했다. 또 통도사를 세우고 금강계단을 설치하여 가사와 사리를 모시고 사부대중을 교화 했다.

저서로는 <아미타경소>, <아미타경의기>, <십송율목차기(十誦律木叉記)>, <사분율 갈마사기(四分律羯磨私記)>, <관행법(觀行法)> 등이 있으나 모두 전하지 않는다.

122-2. 원효(元曉)

617(진평왕 39)~686(신문왕 6). 신라시대의 고승으로 성은 설(薛)씨이다. 진덕여왕 2년(648) 황룡사에서 스님이 되어 각종 불전을 섭렵하고 수도에 정진했다. 34세 때 의상과 함께 당시의 풍조에 따라 당나라로 유학길에 올랐다. 육도로 가다가 도중 에 고구려 병사에게 잡혀서 되돌아오고 10년 뒤 다시 의상과 함께 해로로 들어가 려 했으나 여행 도중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크게 깨친 바가 있었다. 즉 마음이 일어나므로 모든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현상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 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와 저술과 대중교화에 몰두하였다.

그 뒤 태종무열왕의 둘째 딸로 남편을 백제와의 싸움에서 여의고 과부가 된 요석 공주와의 사이에서 아들 설총을 낳는다. 그는 스스로 계를 파했다 하여 복성거사 (卜性居士) 또는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칭하며 속인행세를 했다. 어느 때 광대들 이 큰 표주박을 가지고 춤추는 놀이를 구경하고 그것을 본 따 무애(無礙)박을 만들 어 천촌만락을 노래하고 춤추며 돌아다니며 대중을 교화했다. 당시 왕실 중심의 귀족화된 불교를 민중불교로 바꾸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종파주의적으로 달리던 불교이론을 고차원적인 입장에서 융화시키려고 노력하였는데, 이것을 화쟁사상(和 諍思想)이라 한다. 이것은 그의 일심사상(一心思想)․무애사상(無礙思想)과 함께 원 효사상을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저서로는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이 대표작이다. 특히 <대승기신론소>는 중국의 석학자 들마저 찬탄과 경이를 보인 저작으로 ‘해동소(海東疏)’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중국․한국․일본에서 널리 읽혔다. 그 외 <법화경종요>1권, <대혜도경 종요>1권, <열반경종요>1권, <무량수경종요>1권, <이장의> <화엄경소>3권, <기신 론별기>1권, <십문화쟁론>단편 등이 있다. 대략 100여종 240여권으로 알려져 있으 나 현존하는 것은 19부 22권에 지나지 않는다.

122-3. 의상(義湘)

625(진평왕 7)~702(성덕왕 1). 신라 시대의 고승으로 우리나라 화엄종의 開祖이 다. 성은 김씨(송고승전에서는 박씨)다. 진덕왕 4년 (650) 원효와 함께 당나라에 가 려고 요동까지 갔으나 첩자로 오인 받아 븥잡혀 되돌아왔고, 10년 뒤 두 번쩨 시 도에서 원효는 도중에 돌아가고 의상 혼자만 당나라로 들어갔다.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로 가서 지엄(智儼 ; 중국 화엄종의 제2조) 문하에서 현수(賢首)와 같이 화엄을 공부했다.

우리나라 불교의식에서 빠지지 않는 <법성게>가 바로 <화엄일승법계도>의 내용 이다. 의상은 670년(문무왕 10) 귀국하였다. 귀국 동기는 <삼국유사>에서는 당나라 의 신라 침략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 하고, <성고승전>에서는 화엄대교(華嚴大敎)를 펴기 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뒤 676년 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浮石寺)를 창 건하고 화엄을 강술하여 우리나라 화엄의 시조가 되었다. 의상의 교화활동 중 가 장 큰 업적은 제자들의 양성이었다. 그에게는 3,000명 이상의 제자가 있었다고 한 다.

저술로는 <화업일승법계도> <백화도량발원문> 각 1권, <십문간법관(十門看法觀)> 1권, <입법계품초기(入法界品鈔記)> <소아미타의기(小阿彌陀義記)> 1권 및 최근에 발견된 <일승발원문(一乘發願文)>이 있다.

122-4. 혜초(慧超)

704(성덕왕 3)~787(원성왕 3). 신라의 고승이다. 20세쯤 당나라 광주에 가서 인 도 승려인 금강지(金剛砥)의 제자가 된 후 그의 권유로 인도로 求法을 떠나게 된 다. 금강지는 남인도 출신으로 제자인 불공(不空)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와서 중국 밀교의 초조가 된 사람이다. 求法을 떠난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723년경으로 추 정되고 있다.

인도 동해안에 도착, 불교의 유적을 순례하고 캐시미르(kashmir)․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일대까지 답사하였다. 다시 장안으로 돌아온 것은 10년만인 30세 전후 였다. 이 10년 동안의 여행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여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 國傳)>을 저술하였으나 전하지 않다가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P. 펠리오가 중 국 甘肅城 돈황(敦煌)의 천불동석굴에서 발견, 중국의 羅玉振이 출판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그 당시의 인도의 佛敎界의 정황과 풍속 등을 알게 되는 歷史的으로 중요 한 가치가 있는 자료로 東洋의 三大旅行記중의 하나이다.

그는 불공의 6대 제자 2인자로 유촉을 받았으며 그에 대해서는 ‘신라인’이라고 분 명히 밝히고 있다. 다라서 중국 밀교의 법맥은 금강지에서 불공으로 그리고 다시 혜초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살아 있었을 때 신라로 귀국한 흔적은 없다. 이미 신라에는 명랑(明朗)을 중 심으로 하는 신인종(神印宗)이 성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혜초가 공부한 것은 그와 별도의 밀교였을 것으로 보인다. 금강지․불공 등과의 관계로 보아 정통 밀교였을 것이다. 787년 84세에 입적하였다.

122-5. 체관(諦觀)

생몰연대 미상. 고려 광종 때의 고승(高僧)이다. 우리나라의 천태학을 중국에 전한 고승이며,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를 저술하여 그 이름을 중국․일본 등에 떨쳤 다. 중국 오월왕은 사신에게 서신과 50가지 예불을 가지고 고려로 건너가 천태관 계의 서적을 구해 오도록 하였다.

체관은 이때 고려 조정에서 답례로 파견한 외교적 사명을 띤 천태학자였다. 광종 11년(960)중국에 간 체관은 나계사(螺溪寺)의 의적(義寂)을 찾아가 강의를 듣고 한 번에 심복(心服)하여 義寂을 스승으로 삼았다. 10년 동안 함께 천태학을 연구하여 자신의 유일한 저술인<천태사교의>를 지었으나 상자 속에 감추고 아무에게도 말 하지 않았다. 그는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어느 날 앉은 채 입적하였다. 입적한 뒤 그가 쓰던 상자에서 빛이 나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열어 보니 <천태사 교의>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뒤에 천태학의 기본 교과서가 되어 중국․한국․일본에서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이로써 중국에는 천태학이 다시 부흥했으나 고려에서는 전맥이 끊겨 의천(義天)이 중국으로 가서 천태학을 배우고 돌아와 천태종을 세웠다고 한 다. 오늘날에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더 많은 판본이 인출되고 그의 오시팔교(五 時八敎)사상에 대한 찬반양론의 논문이 다수 나오고 있다.

122-6. 의천(義天)

1055(문종 9)~1101(숙종 6). 성은 왕(王)씨이며 이름은 후(煦)다. 자는 의천(義天), 호는 우세(祐世), 시호는 대각국사(大覺國師)로 고려의 천태종을 창종한 고승이다.

아버지는 고려 제11대 왕인 문종이며 어머니는 인예왕후 이씨(仁睿王后 李氏)이 다. 문종은 국법에 다라 왕자 한명을 출가시켜야 했는데 그 때 지원한 사람이 11 세인 넷째 왕자인 후였다. 화엄종의 고승인 경덕국사(景德國師, 爛圓)를 은사로 출가했다. 그 뒤 송나라 정원(淨源)법사와 교우를 가졌고 그로 인해 송나라로 유학 가길 희망했지만 허락되질 않자 문종이 죽은 뒤 1085년(선종 2)왕과 어머니에게 편 지를 남기고 유학길에 올랐다. 송나라 철종은 수도 변경에 있는 계성사에 머물게 하면서 당시 화엄의 대가였던 유성(有誠)법사와 교유할 수 있도록 천거해 주었다. 두 사람은 화엄과 천태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인도 승려 천길상(天吉祥)을 만나 인도에 대한 사정과 학문을 배웠다.

그 뒤에도 여러 고승들과 교우를 가지면서 공부하였고 본국에서 선종이 모후의 간절한 뜻을 받들어 의천의 귀국을 청하는 글을 송나라 왕에게 보냈다. 귀국하기 전 천태산 지의(智顗)의 탑 앞에서 고려에 돌아가 천태교학을 선양하겠다고 서원하 기를 “옛날 諦觀이 敎觀을 전하였으니 지금은 대를 이을 사람이 끊어져 제가 法을 위하여 몸을 돌보지 않고 찾아와서 大道를 求하나이다.”라고 기원했다.

1086년 5월 불교전적 3,000여권을 가지고 귀국하여 흥왕사에 있으면서 교장도감 (敎藏都監)을 두게 하고 속장경 4,740여 권을 간행하였으니 이것이 ‘고려속장경’이 다. 1097년 국청사가 완성되어 그곳에서 천태교학을 강의하였고 이로써 천태종이 성립했다. 한국의 天台宗은 신라 때 설립되어 元曉등을 거쳐 고려 光宗대 諦觀, 智 宗으로 法統을 이어 왔으나 약 100년간 그 맥이 끊긴 상태였다. 또한 그의 업적으 로는 주전론을 펴서 화폐를 유통케 했고 <화엄경>등을 번역하여 강의한 것이 300 여권이나 된다.

저서로는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3권, <신집원종문류(新集圓宗文 類)> 22권, <석원사림(釋苑詞林)> 25권, <간정성유식론단과(刊定成唯識論單科)> 3 권, <천태사교의주(天台四敎儀註)> 3권 등이 있는데 <신편제종교장총록> 3권, <신 집원종문류>, <석원사림>의 일부와 <간정성유식론단과>의 서문만이 전하고 있다.

122-7. 일연(一然)

1206(희종 2)~1289(충렬왕 15). 고려 후기의 고승으로 성은 김씨다. 처음 법명은 견명(見明)이었으나 뒤에 일연으로 바꾸었다. 시호는 보각국사(普覺國師)이다.

9세 때 광주의 무량사로 가서 공부하기 시작했고, 14세 때 설악산 진전사(陳田寺) 로 출가하여 고승 대웅(大雄)의 제자가 되어 구족계를 받고 1227년 승과인 선불장

( 選佛場)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니 22세였다.

이 해 나라에서 三重大師의 승계(僧階)를 내렸고 1246년 다시 禪師를 더하였다. 54세때 大禪師의 승계를 제수 받았고, 72세(충렬왕 3)때부터는 왕의 명에 따라 청 도 운문사에서 76세까지 주석하면서 선풍을 진작했다. 이 때 <삼국유사>를 집필하 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몇 차례에 걸친 왕의 만류도 뿌리치고 낡은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고향으 로 돌아갔다. 당시 누구나 찬탄해 마지않던 유명한 일화이다. 이듬해 1284년 노모 가 돌아가시자 조정에서 경북 군위군 화산의 인각사를 수리하고 토지 100여 경(頃) 을 주어 주재시켰다.

100여 편의 저서를 남겼으나 지금은 <삼국유사>와 <중편조동오위>가 전할 뿐이 고 <선문염송사원>과 <대장수지록>은 해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나 확인 되 지 않고 있다. 84세로 입적했다.

122-8. 휴정(休靜)

1520(중종 15)~1604(선조 37).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승군장(僧軍將)을 지냈다. 완 산 최씨로 이름은 여신(汝信),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법명이 휴정이다. 벌호로 백화도인․서산대사 등이 있다.

평안도 안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세창(世昌)이며 어머니는 김씨다. 9세에 어머니를, 1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안주 목사를 따라 서울에 와 성균관에서 3년간 공부하여 과거를 보았으나 실패하였다. 친구들과 같이 지리산에 들어가 여러 사찰을 전전하 던 중에 영관(靈觀)의 설법을 듣고 불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행자가 된지 6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깨친 바가 있어 은장도로 머리를 밀고 불문에 출가했다.

1549년(명종 4) 승과에 급제하였고, 대선(大選)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 事)가 되었다. 그러나 37세에 홀연히 승직이 승려의 본분이 아님을 자각하고 모든 직책을 버리고 금강산․지리산․태백산․오대산 등 팔도에 드날렸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국 사찰에 격문을 돌려서 승려들이 구국 에 앞장서도록 했다. 의승군을 통솔하였고, 명나라 군사와 함께 평양성을 탈환하였 다. 선조는 그에게 팔도선교총섭(八道禪敎總攝)이라는 직함을 내렸으나 나이가 많 음을 이유로 제자 유정에게 물려주고 묘향산으로 돌아갔다. 선조는 國一都大禪師 禪敎都總攝 扶宗樹敎 普濟登階尊者라는 호를 내렸다. 세수 88세(선조 37)로 묘향 산 원적암에서 가부좌한 채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문집인 <청허당집> <선가귀감> <삼가귀감(三家龜鑑)> <선교석(禪敎 釋)> <선교결(禪敎訣)> <심법요(心法要)> <설선의(說禪儀)> <운수단(雲水壇)> <제 산단의문(諸山壇儀文)> 등이 있다.

122-9. 유정(惟政)

1544(중종 39)~1610(광해군 2). 조선 중기의 고승이다. 경상남도 밀양 출신으로 법명은 유정, 속명은 응규(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 (松雲), 별호는 종봉(種峯)이다.

15세(명동 13)때 어머니를 여의고 16세 때 아버지로 여의자 김천 직지사로 출가하 여 신묵(信黙)의 제자가 되었다. 3년 뒤 승과에 합격하여 많은 유생들과 교유하였 고, 당시의 재상인 노수신(盧守愼)에게서 <노자> <장자> 등을 배웠다. 그 뒤 직지 사 주지를 지냈고, 1585년(선조 8) 선종계 사람들의 열망에 의하여 봉은사 주지로 천거되었으나 사양하고, 묘향산 보현사의 휴정(서산대사)를 찾아가서 선리(禪理)를 참구하였다. 1586년 옥천산 상동암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유점사에 있으면서 스승인 휴정의 격문을 받 고 의승병을 모아 휴정과 합류, 의승도대장(義僧都大將)이 되었다. 선조는 그의 전 공을 포상하여 선교양종판사를 제수하였다. 그 뒤 전후 네 차례에 걸쳐 적진에 들 어가 가토(如藤淸正)와 회담을 가져 논리적이 담판으로 척파하였다.

또 2차 담판 후 <토적보민사소(討賊保民事疏)>와 1595년 장편의 을미상소를 통해 국방을 튼튼히 할 수 있는 방안을 건의하였다. 선조는 그의 공로를 크게 인정하여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의 벼슬을 내렸다. 1604년 2월 일본과의 강화를 위한 사신에 임명되어 1604년 8월에 일본으로 가서 8개월 동안 노력하여 성공적인 외교성과를 거두었고, 전란 때 잡혀간 3천여 명의 동포와 1605년 4월에 귀국하였다. 그 뒤 병 을 얻어 해인사에서 요양하다가 앉은 채 입적하였다. 제자들이 다비하여 홍제암 옆에 부도와 비를 세웠다.

저서로 문집인 <사명대사집> 7권과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 1권 등이 있다. 시 호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이다

122-10. 만해(萬海)

1879(고종 16)~1944. 승려․시인․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청주로 충남 홍성에서 한응준(韓應俊)과 방(方)씨의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정옥(貞玉), 아명 은 유천(裕天), 계명은 봉완(奉琓), 법명은 용운(龍雲), 만해는 그의 법호이다.

14세 때 고향에서 결혼하였으며, 의병에 참가하였다가 실패하여 19세 때 고향을 떠났다. 그 뒤 절과 세속을 방황하다가 27세 때 설악산 백담사에서 연곡(蓮谷)을 은사로 정식 승려가 되었다. 30세 되던 해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약 6개월 동안 새 로운 문물과 학문을 몸소 경험하였다.

1910년에는 <승려취처문제건의서(僧侶娶妻問題建議書)>를 당국에 제출하고 <조선 불교유신론>(1913년 간행)을 저술하였다. 36세 때 <불교대전>과 함께 <채근담>주 해본을 저술하였다. 39세 때 어느 날 밤 백담사에서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 다. 40세가 되던 해에 월간 ‘유심(惟心)’이라는 불교잡지를 간행하였다. 불교의 포 교와 민족정신의 고취를 목적으로 간행된 것이다.

1919년 41세 때 백용성(白龍城)과 불교계를 대표해 3․1운동을 주동하고 일경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조선독립이유서(朝鮮獨立理由書)’를 기초, 제출하였다. 3년간 옥살이를 하고 44세에 출옥하였다. 45세 때 불교대중화운동에 헌신하고자 조선불 교청년회를 창설하고 그 총재에 취임하였으며 未 발표소설 <죽음>을 탈고하였다. 47세 때 오세암에서 선서(禪書)인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와 시집 <님의 침묵> 을 탈고하여 이듬해에 간행하였다.

60세 때 그가 직접 지도해 오던 불교계의 비밀결사단인 만당사건(卍黨事件)으로 고초를 겪었으며 해방을 눈앞에 둔 1945년 5월 9일 세속 65세로 심우장에서 중풍 으로 입적했다.

123. 緣起하는 것은 왜 無自性인가?

自性이란 諸法 그 자체가 변하지도 않고 고칠 수도 없는 存在性을 뜻한다.

그러나 이세계의 우주 만법이 단독의 힘으로 생겨나 발전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緣起法에 의하여 因과 綠의 결합으로 생멸한다.

卽 모든 조건들이 얽히고설키어 어떠한 조건을 이루면서 현상이 일어난다(無始 無終).

그러나 自性이 있다는 말은 諸法그 自體에 변하지 않는 存在가 있다는 뜻으로 불 교의 가장 기초적인 敎義인 諸行無常과 諸法無我에 배치되므로 緣起하는 것에는 自性이 있을 수 없다.

124. 내 자식이 내 분신이 아니라는 이유는?

모든 중생의 생멸은 因緣法則 卽 緣起法에 의하여 일어난다. 나의 자식이 태어 날 때도 나의 자식 본인의 아뢰야식에 있는 『因 (hetu)』이 부모의 『緣 (pratyaya)』을 맞나 태어나는 것 이다.

故로 부모의 몸을 빌어 태어나 父母와 子息간의 緣은 있지만 자식 본인의 前生의 業과 現世의 업에 따라 살아가게 되므로 비록 자식이라 해도 내 分身이 아니라 할 수 있다.

惑 子息이 父母의 分身이라면 형제간의 성격이 않은 것만 보아도 分身이 아니라 하겠다.

125. Winston King의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립적 비교에 대하여 논하라.

윈스톤 킹은 기독교 신학자이나 자기 나름대로 객관성 있게 불교와 기독교를 다음과 같이 6가지로 나누어 비교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1 . 궁극적 실제(Ultimate Reality)

가. Ch: 마지막 최고의 궁극적 실체는 인격신(Personal God )인데 인격신은 창조신 이고 유일신이다.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한 후에도 그것들을 유지시키고 역사에 개 입하고 개인의 운명까지 개입하는 것이 기독교의 인격신이다. 모순점은 유일신앙 에서 어떻게 아들이 있느냐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무조건 믿으라고 말하나 이슬 람은 예수를 신의 아들이라 하지 않고 예언자로 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불교의 三神說에 영향을 받아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 일체설이 동원된다. 聖父-하느님(法身佛), 聖子-예수(報身佛), 聖靈(聖身)-일꾼 (應身佛)은 모두 동격이라는 이론이다.

나. Bu: 불교는 신을 믿는 것이 아니고 六根으로부터 출발하므로 인격신이라기보다 도 비인격적 과정(Impersonal process)으로 본다. 법이란 것은 대상화되는 것이 아 니며 모든 사물은 사라지고 없어지며 끊임없이 변한다. 변한다고 하는 그 법이 그 사물에 의존해 서 있다. 그 사물 자체가 그 법은 아니다. 마음이나 영혼은 나에게 의지하여 있을 뿐 그것 자체가 나를 떠나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법도 책상 자체나 어떤 물건 자체가 법이 아니다.

그래서 형상화 시켜 믿게하기 위하여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 비로자나 부처님이시 다.

신앙은 말로만 되는것이 아니고 대상이 있어야 한다. 법 자체가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믿지 않으니까 그래서 삼신불 사상이 나타나고 기독교의 삼위일체설도 삼신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2. 세계사의 의미

가. Ch: 세계의 모든 역사를 포함한 모든 것이 신의 섭리에 의하여 어떠한 목적을 향해 가고 있으며 이것이 1,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깨어지는데 그 원인은 세계 대전은 신이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다. 선택된 사람은 미리 구원되기로 약속 되어있기 때문에 노력을 얼마하지 않아도 되는, 미리 정해져 있 다고 하는 예정 조화설을 설명 할 수가 없으나 불교에서는 ‘業說’로 간단히 설명된 다.

그리스도는 시간의 흐름이 직선으로 흐르는 유목문화의 신앙이나 불교는 정주하 면서 우주의 순환에 대한 관찰과 인과를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으며 밖에 서 찾으려 하지는 않았다.

나. Bu: 연기법적인 因果律에 의해서 끊임없이 진행되어져 간다고 보고 있다. 세계 사 의미 속에서 볼 때 세계대전을 共業이라 한다. 개개인의 삶의 의미 속에서 하 나의 개체이나 서로 서로 연계되어 있고 연계된 개체들은 누가 조정하는 것이 아 니라 因果律에 의해 진행 되어 간다. 그러나 우주적인 눈으로 크게 볼 때는 不生 不滅 不垢不淨이라 할수 있다.

3. 인간성에 대하여

가. Ch: 개성(personality)을 존중하고 개인의 유일성을 존중한다. 태어나는 것, 또 살다가 천당이나 지옥에 가는 것도 신의 의지이며 죽더라도 한 개인은 영혼이 있 기 때문에 영원히 있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썩으나 영혼은 심판을 받고 종말 때에 모든 생명이 다 부 활 한다.

나. Bu: 부처님의 인간관은 오취온(五取蘊)으로 본다. 色受想行識으로 이루어져 있 다는 인간관은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고 심리학이 발달할수록 증명이 자주 되고 잡 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허공의 가설이 아니라 眼, 耳, 鼻, 舌, 身, 意 의 六根으로부터 시작하여 영혼과 오취온이 연기법적으로 맺어졌을 때 영혼이 인정된 다.

4. 구원에 대하여

가. Ch: 자신의 구원은 모두 신의 은총에 의해 구원된다. 신과 인간과의 약속을 인 간이 파기했기에 모두가 죄인이고 인간은 모두가 피동적으로 구원되어지는 자이 다. 그 모든 죄를 예수가 대신 해서 지고 갔으며 속죄양같이 스스로 책임지고 본 인으로부터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뒤집어 씌어서 외부적인 것에 의탁하 려 하는 책임성이 없는 행위이다.

나. Bu: 불교는 자기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깨닫는다고 하는 자력적인 신앙에서 출 발한다. 불교에서는 구원보다는 구제라는 말을 쓰는데 아미타부처님은 우리 중생 들을 극락 왕생케 하는 가피력이 있어 구제하나 이는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가능 하다. 업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으나 희석시킴으로써 구제를 받을 수 있다.

5. 수행방법

가. Ch: 예배, 기도, 찬송, 회개, 감사기도 같은 것이 기독교의 종교 생활의 주를 이 룬다.

나. Bu: 자기자신의 내부에 있는 나쁜 것을 자주 내버려 나중에 완전한 소멸을 얻 어야 한다. 그 최후에는 열반(涅槃)에 이를 수 있다.

6. 윤리

가. Ch: 구체적이고 활동적이고 개성이 있어 정의, 사랑, 진실을 강조한다.

나. Bu: 세속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고 감정을 배제한 평정을 강조한다.

모든 개체들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기독교는 중심이 인간이다. 인간중심적인 과학기술 발달은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의 고갈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불교적인 연기법은 그 자체가 환경운동이다. 환경에 대해 무신경하게 발달해온 서구문명의 주인공들은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서로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불교적인 연계의 사고(Inter-connectedness)로 변환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환경운동의 좋은 예이다.

126. 圓妙國師 了世와 白蓮社 敎團(結社)(天台宗統紀 p95~)

1. 고려의 大覺國師 義天( 1055-1101 )이 한국의 天台宗을 開創한지 開京의 國淸寺 가 그 근본도량이 되었으나 그의 四世 法孫인 了世에 의하여 萬德山의 白蓮社가 그 문을 연 뒤부터는 萬德山이 天台의 中心地가 되었다.

2. 그러면 了世스님은 누구이신가?

의종 17년(1163)부터 고종 32년(1245)까지 83세를 享壽하셨고 승려생활은 70년을 하셨다. 속세의 성은 徐씨이며 이름은 了世이다. 字는 安貧이고 시호가 圓妙國師이다. 일생을 참회수행으로 보냈기에 徐懺悔라는 별명도 있다.

그의 나이 12세때에 出家하여 25세때 僧科에 합격하였고 天台宗旨에 뜻을 두고 수련을 쌓아 큰 덕망을 얻었으며 전국의 유명한 사찰을 찾아 순례의 길을 나섰 고 가는곳마다 그의 가르침을 청하는 자가 많았다.

3. 了世스님이 45세 되든해(1208)에 天台의 妙解로서 永明延壽의 120病을 벗어 날 수있는 自覺을 얻게된다.

이와 같은 自覺은 了世스님과 오랜동안 같이지냈고 定慧結社 운동을 활발히 진행하였든 보조국사 知訥의 曹溪禪으로부터 天台宗으로 복귀하는 전환점이 되였고 후에 了世스님이 전개 하게되는 白蓮社 結社運動의 근본입장이 되기 도 하였다.

4. 了世스님은 月生山 약사사에서 천태종 중흥을 자각한 후부터 천태학을 열심 히 강의하는 하였으며 69세 되든 해인 1232년(고종 19년)에 처음으로 萬德寺에 서 普賢道場을 개설하고 전통적인 법화삼매 참법의 일종인 108참회를 시작하 였는데 108참회 일과 속에는 매일 10만 번의 아미타불의 염송이 들어 있었다.

5. 了世스님의 결사운동이 보현도량의 개설을 계기로 그 체제가 정비되고 白蓮社 라는 結社의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결사운동의 실천내용은 天台止觀, 法華三昧懺悔, 淨土求生등 세 가지로 요약되 는데 정토신앙이 채택된 이유는 지눌스님의 頓悟漸修사상은 根機가 높은 자를 대상으로 하는 自力위주임에 비해 정토신앙은 근기가 낮은 凡夫들을 위한 부처 님의 慈悲說에서 출발된 他力信仰이기 때문이다.(결국은 唯心淨土요 約心觀佛 이다.)

6. 1236년에는 후에 白蓮社 제 四世 祖師가 되었던 천책(天頙)이 白蓮結社文을 찬술하여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어 법화 참회를 수행하게 된 사람이 수천에 이 르고 그밖에 멀리서 이 운동과 좋은 인연을 맺은 자의 수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 도로 많았다.

고종도 이 보현도량에 특별한 관심을 갖어 1237년(고종24) 了世스님에게 禪師 法階와 세찬을 내렸다.

7. 1245년(고종32) 4월 了世스님은 그의 상수제자였던 天因에게 後事를 맡기고, 그 해 7월 7일 서쪽을 향해 앉아서 조용히 入寂하였다.

8. 요세스님의 저술로는 권수를 알 수 없는 “三大部節要”가 있는데 이는 智者 스 님의 법화현의, 법화문구, 마하지관등의 三大部가 너무 방대하므로 중요한 사상 을 간추려 만든 책이다.

9. 그 후의 白蓮社는 靜明國師 天因(1205~1248), 圓睆國師, 眞靜國師 天頙 등으로 이어 왔으나 차차 황폐하여 진 것을 조선조의 세종때 行乎大師에 의하여 중창되 었으나 崇儒排佛정책으로 天台宗이란 이름이 없어지고 백련사도 다시 황폐해졌 다.

10. 그러한 백련사를 비록 法系는 달랐지만 西山大師의 후예인 醉如大師 三愚 (1622~1684)가 다시 일으켰는데 이미 天台 도량으로서의 白蓮社라고는 할 수가 없었으나, 天台宗의 불씨를 유지하여 왔다고 하겠다.

127. 유식(唯識), 무경(無境)에 대해 설명하시오.(김사업교수)

답) 唯識은 “我空 法有”의 “空”사상을 내 마음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차원에서 觀하는 것이 唯識이다.

唯識은 교학적인 것보다 禪定으로 누적되어 온 것을 大乘에 들어오면서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또한 唯識에서는 六識외에 제7 末那識과 제8 阿賴耶識이 추가되어 우리의 마음을 설명하고 있다.

무경(無境)은 實體的인 認識對象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만 보인다는 意味이며 “空”을 唯識에서는 無境으로 표현한다.

즉, 空 = 無自性 = 無境이다. ( 離一切諸相, 卽名諸佛 )

128. 五俱意識이란?

답) 前五識( 眼 ․ 耳 ․ 鼻 ․ 舌 ․ 身識 )과 함께 작용하는 의식을 五俱意識이라 하며 五俱意識이 작용하지 않을 때를 五位無心이라 하며 다음과 같다.

1) 깊은 잠에 빠졌을 때,

2) 기절했을 때 ( 식물인간 포함 ),

3) 깊은 禪定에 들었을 때

129. 우리나라 寺院建立에 대하여 개술하시오.(이재창 학장님)

Ⅰ. 序論

寺院의 유래를 살펴보면 최초의 사원을 부처님 생존시의 竹林精寺를 꼽을 수 있으며 곧이어 祇園精寺도 만들어진다. 불교문화는 BC 2세기경부터 Silk-load라는 교통로가 열리면서 중국에 전래되었고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며 또 일본까지 전래된다.

Ⅱ. 일반사원과 달리 石窟寺院도 만들어지는데 석굴사원은 스님들이 더위를 피하여 쾌적한 환경에서 수행․수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B C 2세기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인도에 1,200개 중국의 돈황에는 492개의 석굴이 존재하며, 그곳에서 우 리나라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곳으로 유명하며 雲崗石窟과 龍門石窟이 있고 군위의 팔공산 제2석굴과 경주의 골굴암이 있으나 토함산의 石窟庵은 돌을 깍아 인공으로 축조한 석굴로 그 규모는 작으나 그 독특한 건축구조와 빼어난 조 각과 보존환경의 절묘함은 불교문화권에서도 으뜸이다.

Ⅲ. 우리나라의 사찰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에 창건한 省門寺와 保佛蘭寺가 최초이며 백제에는 무왕이 부여에 王興寺를 짓고, 신라에는 법흥왕 때 기공되어 진흥왕 때 기공한 흥륜사를 비롯하여 황룡사, 사천왕사, 감은사 등이 세워진다. 고 려 때에는 송악을 수도로 결정한 후에, 도시계획 시 먼저 10개의 절을 풍수지리설 에 依하여 먼저 배치하고 도시계획을 시작하였다. 또 조선조 때는 排佛崇儒政策이 였지만 태조 때 무악대사를 위하여 釋王寺를 지었고 세조 때는 탑골공원에 원각사 를, 정조 때는 사도세자의 능침사찰인 용주사를 지었다. 以上의 절은 모두 護國의 목적으로 國家에서 建立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Ⅳ. 그 외에 이름 있는 스님들이 많은 절을 지었으며, 고려 때에는 국가가 개인의 집을 사찰로 만드는 것을 법으로 금지할 정도로 일반 신도들이 主体가 되어 지은 절도 많았다.

Ⅴ. 가람의 배치형태를 살펴보면 大部分이 七堂伽藍 형식으로 도면과 같이 廻廊으 로 둘러

↑ 北

쌓여있고 강당, 금당 등이 모두 연결되어 있었으나 戰亂 등으로 소실 된 후에는 복원 능력이 없어 회랑은 거의가 없어지고 금당도 강당과 합쳐져서 法堂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이외에도 황룡사와

미륵사와 같이 특이한 배치도 있다.

또한 法堂과 塔의 면적비인 堂塔平面比를 살펴보면 황룡사와 미

륵사가 1: 06인 것에 비하여 후세로 내려오며 1: 04등으로 적어졌 다.

강당

금당

일주문

↓ 南

Ⅵ. 결론

선조들이 이룩해 놓은 빛나는 유산을 더욱 더 잘 가꾸고 보존하여 후대에 물려 주어야 할 것이다.

130. 우리나라 佛像에 대하여 아는 바를 쓰시오.(이재창 학장님)

Ⅰ. 서론

부처님 입멸 후 500년경까지는 인도에서는 부처님의 舍利를 모신 塔이 예경의 대 상이 되었고 불상의 필요성이 없었다. 그 후 사찰이 늘어나면서 부처님의 舍利가 부족하여 塔을 세울 수가 없어 절을 세울 수가 없었고 ВС 4세기경 희랍의 알렉산 더 대왕의 침입으로 희랍의 神像의 영향을 받아 간다라에서 불상을 조각하기 시작 하여 예경의 대상이 차츰 불상 쪽으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간다 라 지역의 불상이 중국을 거쳐 전래되었다. (마후라에서는 희랍의 영향을 받지 않 고 불상이 만들어짐.)

Ⅱ. 역사적으로 실제 계셨던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이셨지만 불교사상이 小乘에서 大乘으로 발전하며 많은 부처님과 보살이 나타난다.

Ⅲ. 불상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가. 三身佛

1) 法身佛로서의 비로자나佛

2) 報身佛로서의 노사나佛

3) 應身佛로서의 석가모니佛

나. 三世佛

1) 과거의 燃燈佛(錠光如來)

2) 현재의 석가모니불

3) 미래의 미륵불(송광사에 三世佛을 모시고 있음)

다. 과거칠불 (6. 25때 소실되기 전의 월정사에 과거七佛이 모셔져 있었음)

라. 53佛(북한의 유점사의 탑에 53불을 모셨고 松光寺의 佛祖殿에도 53佛을 모시고 있음)

마. 그 외에는 천불, 삼천불을 모신 전각도 있다.

본존

전각의 명칭

석가 삼존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대웅전

미타 삼존

미타불

관음보살

세지보살

미타전

미륵 삼존

미륵불

천광보살

신광보살

미륵전, 용화전

약사 삼존

약사여래불

일광보살

월광보살

약사전

Ⅳ. 전각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 이 외에도 七佛보전, 천불전, 삼천불전이 있음. 현재는 이 공식이 많이 와해된 상태이며 19세기까지는 잘 지켜졌다.

Ⅴ. 보살을 모신 전각은 다음과 같다.

․문수전 : 문수보살을 모신 전각

․관음전 : 관음 ”

․지장전 : 지장 ”

․나한전 : 나한 ” (안성 칠장사는 나한이 예경의 대상임)

Ⅵ. 불상의 자세

․坐像 : 앉아 계신 부처님의 상으로 가장 많다.

․立像 : 서 계신 상으로 보살상이 대부분이다.

․臥像 : 부처님 열반 때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남방불교에 많다.

․半跏像 : 의자에 앉아 한 발을 가부좌, 한 발은 땅에 닿은 상태로 미륵보살의 사 유반가상이 유명하며 보살상이 많다.

Ⅶ. 磨崖佛像

마애불상도 다른 불상과 같이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래되었으 며 경주 남산과 서산의 보건사지의 마애불상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Ⅷ. 결론

우리의 고유문화가 길들여져 있는 빛나는 유산을 잘 가꾸고 보존하여 물려주어 야 할 것이다.

131. 우리나라 塔에 대해 아는 바를 쓰시오.(이재창 학장님)

Ⅰ塔의 기원

원래 탑이란 塔婆(탑파:)를 줄인 것으로 무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탑이 본격 적으로 조성된 것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게 된 때부터이다. 인도말로 stupa라고 하는 佛塔은 부처님의 신성한 몸이 봉안되어 있는 성스러운 조형물로 생각해서 예 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Ⅱ. 부처님을 대신하는 불탑

부처님께서 入滅하시자 부처님을 모시던 제자들에 의해 다비(茶卑)를 하였는데 身骨이나 靈骨로 의역되는 舍利(sarira)가 부처님 몸에서 8섬4말이나 나왔다고 한 다.

이 사리를 당시 8나라의 왕들이 모셔가서 八大塔을 세웠는데, 이 불탑은 부처님 의 신체일부가 들어가 있는 묘로서 그 제자들에게는 부처님께서 살았을 때와 똑같 은 예경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지금은 예경의 대상 면에서 볼 때 불상으로 그 자 리를 빼앗겨 버린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Ⅲ. 塔의 변천과정 및 특징

ВС 2~3세기경에 전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은 불교발전을 위하여 8대탑을 허물 어서 인도전역에 신앙적인 구심점이 되는 탑을 방방곡곡에 세운다. 아쇼카왕 시대 에 세워진 탑은 복발형(覆鉢形)이다. 발우(鉢盂)를 뒤집어 놓은 모형의 탑이라는 의미이다.

1) 인도 탑의 특징은 복발형이다.

2) 중국 탑의 특징은 樓閣式이다. 중국에는 전탑이 제일 많은데, 전각으로 된 누각 식 탑도 있다.

3) 일본식 탑의 특징은 누각식 이지만은 목탑이 특징이다. 일본에는 목탑이 제일 많다.

Ⅳ. 한국 탑의 특징

한국 탑의 특징도 목탑이다. 절의 중심구조물은 법당과 탑인데, 목탑이 우리 탑의 특징이다. 일반 목조 건축물과 목탑의 다른 점은, 탑에는 그 안에 사리가 모셔져 있어야 한다. 외형적으로는 일반 목조 건축물은 직사각형이고, 탑은 정사각형이다.

또 구조물 상부에 상륜이 있느냐 없느냐 인데, 상륜은 刹柱가 밑에서부터 올라가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목탑은 법주사 팔상전이다. 황룡사의 9층탑도 목탑이었는데, 지장스님이 호국적인 목적으로 세운 탑이다. 이 탑은 한 변의 길이가 29.1m인 정 방형 누각식 탑으로, 상륜 꼭대기까지의 높이가 210尺(70m정도)이었다.

Ⅴ. 한국 탑의 종류

1) 木塔 : 법주사 팔상전

2) 塼塔 : 轉石(전석)이라고 하는 흙을 빚어서 구운 것으로 (타일종류) 쌓은 탑 인 데 여주 신륵사에 전탑이 남아 있다. 경북 안동지방에 전탑이 유명하고, 의성, 성 주, 경주에도 전탑이 있다. 경주 분황사 전탑은 모조 전탑인데, 안상암을 벽돌같 이 다듬어서 세운 탑이다.

3) 石塔 : 한국에는 석탑이 제일 많아서, ‘석탑의 나라’라고까지 얘기한다.

한국 탑의 97~98%는 석탑이다. 우리의 석탑은 화강석이 압도적으로 많아 서 화강석으로 조성된 탑을 그냥 석탑이라고 부른다. 화강석이 아닌 재료로 탑을 조성했을 때에는 돌의 재료 이름을 붙여서 수미노 탑과 같이 앞에 돌 이름을 붙 여 부르고 있다.

Ⅵ. 한국탑의 양식 변천 과정

한국 불교 초기에는 木塔이 먼저 만들어진다.

1) 신라

木塔에서 → 塼塔 → 石塔으로 변천한다.

분황사 9층탑은 목탑으로 선덕여왕 당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호국적인 목적 으로 세운 탑이다.

2) 백제

木塔 → 石塔으로 바로 이어진다.

석탑을 만든 초기에는 목탑을 만들던 솜씨로 재료는 석재를 사용하더라도 그 모 양은 목탑의 모양이었다. 백제는 목탑에서 미륵사지 석탑으로 옮겨왔다가 定林寺 址석탑으로, 전형적인 석탑의 모양으로 자리매김한다.

한국의 석탑은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탑의 층수 는 탑신부만 계산한다. 한국 탑의 층수와 각수를 보면 공식 비슷한 것이 있는데, 층수는 홀수(3층, 5층, 7층, 9층)로, 각은 짝수 (4각, 8각, 12각, 16각, 20각)로 나간다.

층수가 9층쯤 되고 각이 8각 정도가 되면 多角多層(다각다층)의 탑이라고 한다. 浮屠(부도)도 탑의 종류로 분류하는데,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면 佛塔이 되고, 스 님의 사리를 모시면 부도가 된다. 이 부도는 선종이 들어오면서 세워지는데, 부도 의 역사는 선종의 역사와 같다. 쌍봉사의 철감국사 부도가 가장 걸작품으로 치고 있다.

7. 堂塔平面比(당탑평면비)

법당

←회랑

적어진다

더 적어진다

절의 중심건물이 되는 것이 법당과 탑인데, 법당의 면적과 탑의 면적을 비율로 표시한 것을 당탑평면비라고 한다.

법당의 넓이를 1로 보고 탑의 넓이가(면적이) 얼마나 되느냐이다. 세월이 가면서 당탑평면비가 줄어드는데, 연대가 내려오는 것과 탑의 양식이 변천하는 것이 서로 합치가 되고 있다. 이것으로 탑의 건립연대를 추정할 수가 있다.

8. 結論

사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탑을 이제는 그 의미와 조상의 숨결을 느껴가면서 예경을 다해야 할 것 같다.

132. 一念三千에 대하여 기술하시오.(十如是) (三世間) (천태불교입문 p180)

天台圓敎의 철학이 一念三千說이며 우리의 일념 속에 삼천의 세계 즉 무한의 세 계가 갖추어져 있다는 천태사상의 世界論으로 천태불교의 클라이막스라 하겠다.

1. 여기에서 一念은 범부의 순간적인 마음, 卽 느끼고(受), 생각하고(想), 작용하고 (行), 분별하는(識) 마음을 가르키며,

2. 三千은 十界 x 十界互具 x 十如是 x 三世間 = 三千으로 구성된다.

3. 十界란 개오(開悟)의 세계인 四聖(佛․보살․연각․성문)과 미혹한 세계인 六凡 (六道 ; 천상․인간․수라․아귀․축생․지옥)의 열 개의 세계이며,

4, 十界互具란 十界속에 각각 十界가 갖추어져 있다는 思想이다.

佛界내지 地獄界의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九界를 자기 중에 本具하므로 十界하 나 하나는 그대로 완전한 소우주를 이룬다.

다른 말로 설명하자면 부처님도 지옥 중생의 성품도 갖추고 있고 반대로 지옥 중생도 부처님의 성품도 있다는 것이다.

천상이 따로 있고, 아수라가 따로 있고, 동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천태대사가 보는 입장이다.

5. 또 十界互具의 각각의 界는 모두 十如是를 갖고 있는데 그 十如是는 諸法實相 의 認識論理에 기초가 되는 것으로 다음과 같다.

1) 如是相 ; 十界중생의 외형적인 모습.

2) 如是性 ; 十界각각의 독자적인 성격.

3) 如是體 ; 바탕과 모양이 일체가 된 구체적인 물체.

4) 如是力 ; 물체로부터 나오는 행위의 원동력.

5) 如是作 ; 원동력에 의하여 나타나는 작용.

6) 如是因 ; 十界중생의 행위 결과를 나타내는 원인.

7) 如是緣 ; 십계중생의 행위원인을 도와 십계업생의 행위 결과를 갖게하는 助緣.

8) 如是果 ; 십계중생의 행위원인과 助緣에 의해 갖게 되는 결과.

9) 如是報 ; 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報果.

10)如是本末究竟等 ; 첫 번째의 如是相으로부터 如是報까지가 다 같다고 하는 것 이다. 卽 위의 열가지 如是가 모든 사물에 다 같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6. 三世間은 용수의 대지도론에 있는 것을 천태대사가 그대로 따온 것으로 다음 과 같다.

가. 인간의 주체를 말하는 ․色․受․想․行․識의 五陰(蘊)世間

나. 우리가 살고 있는 국토의 國土世間(器世間)

다. 거기에 거주하는 주체적인 衆生世間(有情世間)이다.

7. 三千은

十界․十界互具 = 100界

100界․十如是 = 1000界

1000界․三世間 = 3000界가 되는데,

이 三千世界는 만물의 총칭으로 무한의 세계를 뜻한다.

8. 우리가 티끌만큼이라도 마음이 있으면 순간의 一念에도 무한의 진리를 나타내 며 그 무한의 세계가 그대로 미혹한 세계도 되고 깨달음의 세계도 되며 나아가 우리의 삶 속에서 부처의 세계가 실현 될 수도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133. 원융삼제(圓融三諦)와 一心三觀을 논하시오.

※원융삼제(圓融三諦)

1. 序論

가. 천태불교의 교리는 철저한 現象卽實在論으로서 만물에 절대의 가치를 인정 하는 諸法卽實相의 사상을 천명하려 한 것이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표시한 것이 바로 圓融三諦論이다.

나. 圓融三諦란 세 가지의 진리가 서로 통하여 조화를 이룬다는 말이다. 세 가지 진리란 空․假․中이다.

2. 本論

가. 空이란 모든 것의 존재를 부정하고 이런 입장에서 모든 것을 동일한 것으로 본다.

나. 假란 空에 의하여 일단 부정되어 존재하는 것을 다시 假라고 하여 긍정하는 것으로 이 假에 집착하면 다시 현실의 전면적인 긍정이 생겨난다.

다. 그러나 空과 假가 상호 부정함으로서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할 필요 가 있다. 다시 말하면 假에 의하여 空을 부정하는 것과 같이 空에 의하여 假를 부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호 부정을 中이라 한다.

라. 그러나 이 中은 공과 가를 아주 멀리 떠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들을 포함 하 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中에대한 空의 입장, 空에대한 假의 입장, 또 假 에 대한 中의 입장이 같은 것이다.

3. 結論

가. 이와 같이 세 가지 존재의 자각이 혼연하여 무애 자재하고 또 어디에도 치우 치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이 圓融三諦의 경지이다.

나. 원융삼제는 결코 首尾 양단의 사상이 아니라 세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우 면서도 세간을 정화하는 보살행의 諦觀이다.

다. 원융삼제는 一境三諦, 不次第三諦, 不縱不橫三諦, 不思議三諦라고도 하는데 이 것을 관측하는 주체측의 활동이 一心三觀이다.

※ 一心三觀

우리들의 한 마음에서 사물을 세 가지 측면에서 볼수 있어야만 집착이 없어진다 는 것이다. 보여 지는 세계, 인식되어지는 세계를 원융삼제라 하고 인식하는 주체 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 一心三觀이며,三觀이란 空觀․假觀․中 觀이다.

1. 空觀

가. 분필을 예로 들 때 분필의 재료가 어떠한 연기로 만들어 졌지만 언제인가는 닳거나 부서져 없어진다. 고로 空이라 한다.

나. 모두가 없어진 후에 보는 입장이 諸行無常이고 또 현재는 실물을 보고 있지 만 언제인가는 없어져서 못쓰게 된다고 보는 것을 現實→理想으로 표현할 수 있 으며 이를 空觀이라 한다.

2. 假觀

위에서 空이라 부정했지만 이것을 다시 假라고 하여 긍정하는 것(理想→現實)을 可觀이라 한다.

3. 中觀

허무에 빠져서도 않되고 세속에 빠져서도 않된다는 것이 中道 第一主義 諦觀이 라 理想卽現實, 現實卽理想이 된다.

4. 천태의 일심삼관은 이러한 삼관을 일심의 삼면으로 동시에 이루는 것인데, 동시 에 이루어지지 않고 空觀에서 假觀으로, 可觀에서 中觀으로 단계적으로 행하는 경우를 次第三觀이라 하고 그 所觀의 對境을 격력삼제(隔歷三諦)라 한다.

5. 그러나 실천적으로 이 一心三觀을 체득할 수 있다고 상정하고 이것을 실행하는 행궤가 「마하지관」의 四種三昧․십승관법이다.

134. 法華七喩에 관하여 논하시오.(法華佛敎, 이영자교수)

釋迦世尊께서 45년 동안 五時敎를 說하신 가운데 마지막으로 靈鷲山에서 8년간에 걸쳐 설법하신 가장 뜻 깊고 완벽한 無上甚深微妙法인 妙法蓮華經은 일반적으로 法華經이라고 간략하게 불려지는 經典이다. 이 法華經은 그 내용이 28품으로 나누 어져 있다, 제 1序品에서 제14 安樂行品까지를 迹門法華라 하고, 제15 從地涌出品 에서 제28 普賢菩薩卷髮品까지를 本文法華라고 한다.

이러한 28품 중에서 제3 譬喩品, 제4 信解品, 제5 藥草喩品, 제7 化城喩品, 제8 五 百弟子授記品, 제14 安樂行品, 제16 如來壽量品에서 각각 比喩說話 부문이 나온다. 이것을 法華七喩라 한다.

1. 화택삼거유(火宅三車喩)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지혜 있는 사람은 이 比喩를 듣고 알 수가 있으리라. 어 떤 나라 성읍에 큰 장자가 있다고 하자. 그는 나이가 많아 늙었는데 재물은 한량 없어서 토지와 주택과 하인들이 많았으며, 그 집은 넓고 크되 문은 오직 하나뿐이 고, 사람은 일백, 이백 또는 오백 명이 살았느니라. 집과 누각은 낡고, 담과 벽은 무너져 떨어지고, 기둥뿌리는 썩고 들보는 기울어 위태로운데, 별안간 주위에서 한 꺼번에 불이나 집을 태우느니라. 그 때에, 장자의 아들들이 열 또는 스물, 혹은 서른 명이 집안에 살았느니라.

장자는 큰불이 사면에서 일어나 번짐을 보고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되, “나는 비록 이 불타는 집에서 나왔으나, 아들들은 불타는 집안에서 놀이에 정신이 팔려 이를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고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아니하며, 불길이 몸에 닿아서 고 통이 극심해 질 텐데도 싫어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나올 뜻도 없구나!” 하였느니 라.

장자는 아들들을 구해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애써 보았지만, 아들들 은 불이 무엇인지 어떤 위험이 있는 지도 모르고 오직 희희낙락 뛰노는 데만 정신 이 팔려있다.

아버지는 한 가지 방편을 생각하고, 아들들이 평소에 희망하던 장난감인 양이 끄 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가 있으니 속히 나와서 갖지 않으면 후 회하리라. 하니 아들들이 재빨리 뛰어 나왔으므로 무사히 불길에서 나왔으니 아버 지는 안심이 되었다. 그때 아들들이 각각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까 주시겠다고 하신 장난감을 주시옵소서” 하였다. 이에 장자는 아들들에게 큰 소가 끄는 수레 를 각각 하나씩 주었다.

여기에서 火宅比喩는 三界가 불타는 집과 같다. 衆生의 마음이 欲界, 色界, 無色 界에 펼쳐져 있으므로 불타는 집과 같다고 하며 부처님께서는 衆生들을 그 집에서 나오게 하여 一佛僧 大力白牛車를 타고 大乘 菩薩道를 실천해서 부처님의 아뇩다 라삼먁삼보리를 얻어 成佛하라는 比喩이다.

또 삼거(三車)는 三乘의 방편이며 다음과 같다.

1) 羊車-양이 끄는 수레 : 성문의 가르침.

2) 鹿車-사슴이 끄는 수레 : 연각의 가르침.

3) 牛車-소가 끄는 수레 : 보살의 가르침.

2 장자궁자비유(長子窮子比喩)(信解品)

慧命須菩提와 摩訶迦栴延과 摩訶迦葉과 摩訶目犍蓮이 法華經 說法을 듣기 전까지 는 소승의 깨달음에 만족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에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어 보려는 용기도 가져보지 못하였는데, 성문에게 수기를 주심을 보고 마음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구하지도 아니한 한량 없는 보배를 얻은 느낌이라고 하고, 자기들의 느낌을 長子窮子比喩라고 하는 比喩 說話로 이야기 한 것이다.

世尊이시여 저희가 이제 즐거이 比喩로써 이 뜻을 밝히겠나이다.

어떤 사람이 어렸을 적에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하여 오랜 다른 나라에 머무르기를 십년이나 이십 에서 오십 년이 되었다 하사 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려움은 더하여 지고,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 여러 곳을 다니다 한 고을에 머물러 살되 그 집은 재산이 많고 부유하였다. 그의 아들 은 각처를 유랑하다가 우연히 그 아버지의 집 앞에 이르렀다. 그는 그곳이 자기 집 인줄 몰랐는데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보고 반가워 아들을 데려오게 하였 다.

그 아들은 갑자기 자기를 오라고 하자 자기를 잡아가려는 줄 알고 놀램과 두려움 에 질려 기절한다. 이에 아버지는 方便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행색이 초췌 한 두 사람을 보내어 유인하여 데리고 와 거름을 치고 청소하는 막일을 하도록 하 였다.

그 후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이곳에서 오래오래 있도록 여러 가지를 당부하고 모 든 일을 알아서 잘하도록 가르친다. 그 아들은 점차 그 집에서 모든 일을 능수능 란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자기가 주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러 해가 지난 뒤 주인은 노쇠하여 머지않아 임종에 이를 것을 알고 많은 사람을 불러놓고, 이 아이는 나의 친자식이요, 하고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長子는 부처님을, 窮子는 大乘에서 물러나 그릇된 지혜로 五道를 輪廻 하는 衆生들을 의미한다.

그 아들은 놀라서 기절함은 華嚴經을 說하심에 比喩, 행색이 초췌한 사람을 시켜 막일을 시킴은 阿含經을 說하신 것에 比喩, 長子가 몸소 그 아들에게 여러 가지를 당부하시고 재산 관리를 맡김은 般若經을 設하심에 比喩, 재산상속과 아들임을 밝 힘은 法華經과 涅槃經을 設하심에 比喩한 것이다.

3. 삼초이목(三草二木)(藥草比喩品)

三千大天世界의 山川과 溪谷, 땅에서 난 草木과 숲과 여러 가지 이름의 크고 작 은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다. 하늘에 짙은 구름이 퍼져 비가 내리게 되면 땅위 의 모든 풀이나 나무들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적셔준다. 내리는 비는 평등하여 모든 풀이나 나무를 즐겁게 하여 준다. 풀과 나무의 뿌리, 줄기. 가지, 잎 들은 그 비를 받아서 무성하게 자라난다.

풀과 나무에 있어서는 뿌리가 튼튼할 때 그 줄기가 힘차게 자라고 거기에는 가 지가 생기고 또 잎이 무성해지는 것과 같이, 佛敎에 있어서는 믿음이 있음으로 戒 가 생기고, 戒를 지킴으로 定의 경지에 들어오고, 定에 들어감으로써 慧가 성취된 다고 한다. 이와 같이 뿌리, 줄기, 잎은 불교에서 信, 戒, 定, 慧에 比喩된다.

이는 곧 如來의 法雨는 평등하나 衆生의 근기에 각각 다르므로 받아들이는 정도 가 각기 다르다.

근기는 상중하근기로 나누어지는데 부처님의 法을 이해 할 수 능력은 각자의 業 에 따라 다르다.

4. 화성비유설화(化城比喩說話)

비유컨대, 오백 유순이나 되는 험난하고 힘든 길(惡道)에 많은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다. 거기에는 한 인도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지혜도 있고 사리에 통달하여 寶物城으로 가는 험한 길의 통하고 막힌 데를 잘 알아서 여러 사람을 거느리고 이 험난한 곳을 지나고자 하였다.

인도 받는 사람들이 중간에 게으름이(懈退心)나서 인도자에게 사뢰었다. ‘우리는 극히 지치고’ 또 무서워 더 갈 수 없나이다. 앞길이 멀어 이제 돌아갈까 하나이다. 하니 인도자는 방편을 열어 그 곳에 한 성을 化作하여 지친사람들에게 충분한 휴 식을 취하도록 하여 기운이 회복된 것을 보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사람들을 목적 지인 寶物城까지 무사히 인도하여 데리고 갔다. 이것이 화성의 比喩說話이다.

寶物城은 진실한 涅槃을 比喩한 것이고, 도중에 化作한 성은 방편의 涅槃을 比喩 한 것이다. 곧 一佛乘法을 說 하신 것이다.

5. 의리계주비유(衣裏蘻珠比喩)

어떤 사람이 친한 벗의 집에 찾아갔다가 술대접을 받고 술에 취하여 잠이 들어 버렸다. 그 집주인은 관(官)의 일로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 친구의 초췌한 모습을 불쌍히 여겨 그의 주머니 속에 보배구슬을 넣어 주고 갔다. 가난한 사람은 잠에서 깬 뒤 자기 옷 속에 보배구슬이 있는지도 모르고 이곳저곳을 방황하며 고생스러 운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옛날에 찾아갔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아직도 남루한 친구 를 보고 ‘애달프다’ 이 친구야. 자네가 우리 집에 찾아왔을 때 내가 예전에 너로 하여금 오욕락을 누리게 하고자 그대의 주머니 속에 보배구슬을 주었거늘 아직도 고생하며 살길을 구하니, 어리석구나. 이제 보배구슬을 팔아서 안락한 생활을 하라 고 일러주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佛性을 가지고 있으나, 그 佛性을 찾지 못하고 있음을 比喩한 것이다.

6. 계중명주비유(髻中明珠比喩) (安樂行品)

轉輪聖王이 싸움에 공이 있는 장병에게 여러 가지 賞을 준다.

용맹하여 능히 어려운 일 해 내는 이 있으면 왕이 상투 속의 보배 구슬까지도 꺼 내준다.

이는 여러 사람이 온갖 괴로움을 받으면서 해탈하려고 온갖 마구니와 싸우는 것 을 보고 이 衆生을 위해 갖가지 法을 說하되, 큰 방편으로 여러經을 說하다가 ‘맨 나중에 왕이 상투속의 明珠를 주는 것처럼’ 가장 훌륭한 수행자에게만 法華經을 설하여 주신다.

7. 의자비유(醫子比喩) (如來壽量品)

어떤 훌륭한 良醫가 있었는데 知慧가 뛰어나고 醫藥에 정통하였다. 의사가 자 식들을 두고 먼 나라로 여행을 갔을 때, 아들들이 착오로 독약을 먹고 신음하고 있었다. 이 때에 마침 아버지가 돌아와 좋은 약을 주었다. 독이 심하지 않은 아들 들은 정신을 차리고 건강을 되찾았지만, 독이 심한 아들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 고 약을 먹으려 하지도 않는다. 이에 아버지는 방편으로 ‘나는 이제 늙고 쇠약해서 죽을 때가 되였구나!’ 하고 좋은 약을 여기에 놓아 둘 테니 가져다 먹되 낫지 않을 까 의심하지 마라. 이렇게 타이르고 타국으로 나가서 사람을 시켜 ‘너희 아버지는 죽었다’ 고 알린다.

이 소식을 듣고 독에 취한 자식들이 정신을 차리고 약을 먹어서 건강을 회복한 다. 그 후에 아버지도 돌아오신다.

부처님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入滅을 보이셨을 뿐 아무런 그릇됨이 있는 것이 아니다. 醫子比喩는 부처님의 수명이 구원하고 상주함을 보이신 比喩說 話이다.

135. 四句偈에 관하여 아는 대로 기술하라.(금강반야바라밀경:조용길교수)

金剛經은 金剛般若波羅密經의 略稱으로 다이아몬드처럼 견고하여 능히 일체를 끊 어 없애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空思想을 근본으로 하는 반야부경전 가운데 <반야심경> 다음으로 널리 읽히는 경전이다. 철저한 空思想에 의하여 번뇌와 분별하는 바음을 끊음으로써 반야의 지 혜를 얻어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 四句偈는 여러 가지 偈誦 중 가장 중요한 부분에 속하는 것을 사구게라하 며 이 金剛經의 골수 일뿐만 아니라 불교전체를 대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① 第 五品 如理實見分 中

凡所有相은 皆是虛妄이라 若見 諸相이 非相이면 卽見 如來니라.

「우주의 분별로 건설된 형상이 있는 모든 것들은 모두 근거가 없는 허망한 것이 며, 모든 형상을 고정된 현상인 모양으로 보지 않는 진리를 발견하여 우주의 밝 은 빛은 여래를 볼 수 있다」.

이는 형상이 있는 겉모양은 인연에 따라 잠시 만들어지는 것일 뿐 실제로는 없 는 것이거나 인연이 다하면 모든 것은 다 변하기 때문에 허망한 것이다.

② 第十品 莊嚴淨土分 中

應無所住하야 而生其心이라.

「어는 곳에도 머무르는 바가 없이 청정한 마음을 낼것인바 형상에 집착하지 않 고 소리와 향기와 맛과 촉감과 법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은 채 마음을 내야한다」 는 뜻이다. 6조 혜능스님이 어느 날 이 구절을 듣고 홀연히 깨달았다 하는 특색 있는 표현이다.

청정한 마음이란 텅 빈 마음, 물에 비친 달과 같은 마음, 거울과 같은 마음이며 어디에 머문다는 것(住)은 相이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相이 있으니까 머물게 된 다. 우리의 마음이 그 어떤 것에 집착되어 있다면 지혜를 발휘할 수 없다.

③ 第二十六品 法身非相分 中

若以色見我거나 以音聲求我하면 是人은 行邪道라 不能見如來니라

「만약 형상으로 나를(부처님을) 보려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는다면 이러한 사 람은 잘못된 길을 겆는 것이기에 결코 여래를 보지 못한다」. 이는 색상으로 여 래의 법신을 보려하든지 나무석가모니를 불러서 여래의 법신을 찾는다면 삿된도 를 행하는 사람이라 능히 그진리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④ 第三十二品 應化非眞分 中

一切有爲法이 如夢幻泡影이며 如露亦如電이니 應作如是觀이니라.

「일체의 형상이 있는 것들은 꿈, 헛깨비, 거품, 그림자와 같고 또 이슬, 번개와 같으니 이것이 바로 우주의 진리이다」라는 말씀이다.

이는 부처님께서 有爲法이 꿈과 헛깨비, 거품과 그림자와 이슬과 번개 불에 비유 하신 것은 이것이 가짜임을 알고 우리에게 참된 空으로 들어가도록 하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 四句偈를 受持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하면 그 공덕이 三千 大天世界에 가득찬 七寶로 보시한 공덕 보다고 크다 하였으니 우리도 부지런히 읽고 외워 일심으로 기도하고 수행을 계속하여 중생을 위한 포교에 힘써야 할 것 이다. - 나무 관세음 보살 -

136. 十善業道란? (十善戒란?)

아뢰야식에 좋은 종자를 많이 심고 또 나쁜 종자도 싹트지 않고 녹아 없어지게 하기 위하여 善業을 쌓아야 하는데 이를 위하여 十善業道를 戒의 기본으로 하며 그내용은 五戒중에 不飮酒를 제외한 나머지 넷에 여섯 가지가 추가 되었고 다음과 같다.

⑴ 불살생(不殺生):“살아 있는 뭇 생명을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해치지 않겠 읍니다”라는 뜻으로 나아가 모든 생명의 살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한다는 자비 방 생의 정신이 있음.

⑵ 불투도(不偸盜):“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았지 않고 주어지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겠읍니다”라는 뜻으로 이에는 보시 바라밀의 정신이 담겨져 있으며 허망한 것 에 집착 하지 않는 空性․깨달음을 향한 실천이다.

⑶ 불사음(不邪淫):“부정한 性關係를 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뜻으로 나아가 몸 갖 임을 淸淨히(단정히)하여 부부 상호간의 애정 어린 헌신에 의하여 아름다운 가 정을 만들어 내게 된다.

⑷ 불망어(不妄語):“옳치 않은 말을 하지 않겠으며 바른 말만 하겠습니다” 한번 거 짓말을 하게되면 그 거짓 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반복하여 거짓말을 하게 된다.

⑸ 불양설(不兩舌):“사람들 사이를 헐뜻고 이간질 시켜 시비와 분쟁을 일으키지 않 겠읍니다”“나아가 화합을 도모하는 말을 하겠습니다”

⑹ 불악구(不惡口)“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거칠고 악의에 찬 말을 하지 않겠읍 니다”“나아가 온화한 말을 하겠습니다”

⑺ 불기어(不綺語):“그릇된 목적을 위하여 꾸며대는 비단 같은 말을 하지 않겠읍 니다” 나아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만 하겠습니다”

⑻ 불탐욕(不貪慾):“탐욕을 버리겠습니다” 나아가 “늘 나누는 마음을 같겠습니다” ⑼ 불진에(不䐜恚):“성을 내지않겠습니다” 나아가 “자비심으로 대하겠습니다”

⑽ 불사견(不邪見):“삿된 견해를 버리고 연기의 도리를 잘 알아 집착을 끊고 지혜 로운 마음을 내겠습니다”

이와 같이 十善業道는 수동적으로만 받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남의 동시적인 발전을 위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잘못을 타파해 나아가야 할 실천덕목으로, 신체적 활동으로 나타나는 것 3종, 언어의 표현에 관한 것 4종, 마음의 동기에 관한 것 3종이고, 十善戒라고도 한다.

137. 無財七施란?

雜寶藏經에 無財七施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재물이 없이, 즉 가진 것 없이도 布施할수 있는 일곱 가지 가르침이다.

첫째 ‘눈’안자 眼施인데, 자비스러운 눈을 함으로서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맑고 밝 게 순화시켜 주는 눈으로의 베풂을 말한다.

둘째는 ‘얼굴’안자 顔施인데, 평안하고 온화한 얼굴을 지녀 이웃의 마음을 유순하고 화평하게 하는 얼굴로 베풂이다.

셋째는 言辭施인데,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말과 남의 진심을 헤아려주는 말로 남을 상대해 주는 말로 하는 베풂을 말한다.

넷째는 몸으로 하는 베풂인 身施인데, 이것은 육신으로 남을 도와주는 것뿐 아니라 제 몸가짐을 방정하게 함으로서 그 모범이 되는 것이다.

다섯째 마음심자 心施로서, 언제나 너그럽고, 후하고, 따듯하게 즉 善意로 남을 대 함이다.

여섯째 자리베풂(床座施)으로 남에게 자기의 앉은 자리나 윗자리를 양보함이다.

일곱째 방을 베풂(房舍施)으로 잠자리나 쉴 자리를 구하는 사람에게 이를 제공함을 말한다.

이상의 베풂은 재산의 소유나 능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그 즉시 실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체장애나 전신불수의 경우에도 가능하다 하겠다.

위의 七施 외에 한 가지를 더 추가 한다면 기도의 베풂(念佛施)이다.

남을 위한, 남의 영적이건 육체적이건 간에 平安과 多幸을 위한 기도보다 더 큰 베풂은 없을 것이요, 이야말로 그 지향과 염원 그것만으로 남에게 베풀 수가 있고. 더구나 그 공덕은 자신도 함께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138. 環境菩薩을 현대적인 시대의 意識에서 記述하라(비교종교론 : 최종석교수)

가. 序論

근대의 과학적 진보의 바탕에는 자연을 도구적 성격으로 파악한 서구의 자연관 이 깃들여 있으며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기술 문명을 가져다주었고, 이 과학 기 술문명은 자연환경을 파괴하여 생태계의 위기를 낳게 한 원인이라고 이구동성으 로 그 의견이 모아진다.

종교가 개인에게 제시하는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대답은 다시 일상에서 부딪치 는 문제에 대한 해결의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종교는 사회에 대해 서도 그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보편적 가치와 윤리를 제공함으로 써 종교의 사회통합적 기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기능이 원할하게 이루어질 때 바람직한 종교문화가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나. 本論

1) 불교에서 제시하는 環境的 理想을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모델로서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인 菩薩을 삼았다. 대승보살이 이 시대에 요구되는 環境菩薩로 새롭게 해석 되어진다면, 이 시대의 환경문화가 종교문화로 자리 잡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環境菩薩이 할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종교적인 수행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2) 환경이 훼손된 것은 인간 생존에 필요한 여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야 기된 부작용이라고 본다. 이 관점에 따르면 앞으로 더 나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환경의 중요성을 각성하게 하여, 환경 파괴적인 생산 및 소비를 지양하 게하며 환경 친화적인 기술과 산업을 개발해 가야 한다고 한다.

3) 불교에서는 自我와 세계를 緣起로 인식한다. 곧 수많은 조건들(pratĩtya)이 함 께(sam) 결합하여 일어난다(utpāda)는 상호의존적 발생을 의미한다. 이렇게 일체 현상이 상호의존성에 의해서 성립되었기에, 어느 것 하나 영원불변하는 고정된 것이 있을 수 없고(諸行無常), 연기된 것은 서로서로 존재하려고 힘을 들이고 있 으며(一切皆苦), 그리고 독자적으로 생성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독립된 실체로서 독자적 동일성을 유지하며 존재하는 것이 없다(諸法無 我)는 것이다. 모든 존재들은 서로 상호의존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는 것 이 불교의 기본 교리인 緣起論이다.

4) 이와 같은 이론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야기된 지구환경의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생명체들이 공존 공생해야 하는 21세기의 시대적 가치로 받아들여져야 할 종교적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물질이나 현상도 적절한 조건에서는 나타 났다가 다시 그 조건이 바뀌면 그에 따라서 물질이나 현상도 사라지는데 이것이 바로 緣起法이다.

5) 21세기의 환경문화는 Paradigm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여 인 간이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 없이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다는 유기체적 관계로의 발상이 요청된다.

환경패러다임으로서의 緣起法은 미래의 환경위기를 극복하게 하는 패러다임이 라 할 것이다.

6) 따라서 21세기의 환경문제는 인종과 국가 그리고 종교를 초월하여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여기에 緣起法的 環境패러다임이 기본 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7) 모든 존재 즉 중생이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존재를 뜻하므로 그것을 ‘環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인간성의 상실과 가치관의 전도, 개인주의의 피폐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는 인간성의 회복에 있다. 인간성의 회복은 불교의 緣起法에 따른, 모든 삼라만상이 자신과 유기체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자각 하는데서 시작된다.

즉 생태적으로 온전한 불국토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대승 보살적인 삶인 것이다. 이를 다시 말해서 環境菩薩의 길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8) 菩薩이 완성해야 할 삶의 양식으로서 바라밀(Paramita)의 하나인 布施는 ‘준다’ 는 말이다. 나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고 때가 되면 흘러갈 수 있도록 열어주는 것이 바로 布施라고 말할 수 있다.

다. 結論

디지털 시대의 環境菩薩에게 있어서 깨달음이란 인터넷 네트워크가 하이퍼 링크 로 얽히고 또 얽힌 重重無盡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모든 생명 무생명들이 이와 같은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환경에 대해 무신경하게 발달해온 서구문명의 주인공들은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불교적인 연계의 사고(Inter-connectedness)로 변환 할 것을 주장한다.

139. 법구비유경

옛날 부처님이 라열기국의 기사굴산에 계실 때였습니다.

그때 성안에서 연화라는 이름의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얼굴과 몸매가 아름답기로

나라 안에 견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대신의 자제들이 모두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화는 문득

세상을 버리고 비구니가 될 작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려고 길을 떠났다가

도중에 어떤 샘물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연화는 물을 마시고 손을 씻다가 샘물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이름다운 것을 보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는데,

왜 세상을 버리고 사문이 되겠는가?

젊은 것도 한때인데 마음껏 즐겨야지.'

그때 부처님은 연화가 제도될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부인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 부인의 모습은 우아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어

연화보다 천만 배는 뛰어났습니다.

부인의 모습으로 변한 부처님은

연화가 돌아오고 있는 길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연화는 그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자못 친근감을 느껴 물었습니다.

"어디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남편이나 아이들 그리고 시종들은

어디에 두고 홀로 길을 걷고 계십니까?"

"성안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저기 있는 샘물에 가서

잠시 쉬면서 이야기나 나누는 게 어떨까요?"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두 여인은 샘물가로 가서

서로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 부인은 잠시 연화의 무릎을 베고 누웠는데

이내 자는 듯 숨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얼굴이 문드러지면서 악취가 나고

배가 터져 벌레들이 기어나왔습니다.

또 이빨이 빠지고 머리털이 흩어져

사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모양을 본 연화는 놀랍고도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부인이 어떻게 갑자기 죽을 수 있을까?

이런 부인의 목숨도 무상한 것인데,

어찌 나의 수명을 장담할 수 있을까?

아, 역시 부처님에게 가야겠구나.'

이윽고 부처님이 계시는 곳에 도착한 연화는

절을 하고 나서 좀전에 당한 일을 말하자,

부처님께서 연화에게 말했습니다.

"사람으로 믿지 못할 네 가지 일이 있느니라.

첫째, 젊음은 반드시 늙음으로 돌아가는 것이요,

둘째는 건강한 것도 끝내는 죽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부모 형제와 친척들이 모여

화목하게 산다 해도 결국은 헤어져야 하는 법이며,

넷째는 아무리 재산을 쌓아둔다 해도

마침내는 흩어지고 마는 법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늙으면 몸이 쇠약해지고

젊어도 병들면 몸이 무너져

썩고 허물어져 가나니

죽음도 결국은 그러한 것이리라.

이 몸을 어디에 쓰랴

온갖 더러움이 새어나는 곳이거늘

병이 들면 괴롭고

늙음과 죽음의 근심이 떠나지 않는다네

쾌락만 쫓다가

못된 짓만 하면서

큰 변이 일어날 것을 알지 못하지만

목숨은 무상한 것이라네.

자식도 믿을 바 못 되고

부모형제도 마찬가지리

죽음이 임박하면

아무리 친한 어버이도 의지할 수 없다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연화는

신체란 좀전에 본 부인의 목숨처럼

영원한 것이 아니며

오직 도덕과 열반만이

영원한 안락처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곧 부처님에게 비구니가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칭찬하시자

연화의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져

비구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곧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140. 네 부인

불경인 잡아함경(雜阿含經)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이

기원정사(祇園精舍)에 있을 때 일이다. 때마침 부처님의 생일날 이라

많은 중생이 모인 앞에서 이렇게 설법하였다.

어느 도성에 네 명의 아내를 가진 사나이가 있었다.

첫째 아내는 곁에 두고 먹고 입고 싶은 것 다 거두어 먹이고 입히는

애지중지 하는 아내다.

둘째 아내는 첫 번째 아내만큼은 덜 총애하나 남들과 싸워가며 쟁취한

아내로 남들이 넘보지 못하게끔 아끼는 아내다.

셋 째 아내는 만나면 그렇고 그러나 떨어저 있으면 보고 싶은 사이다.

넷 째 아내는 하녀나 다름없이 남편에게 순종, 일만 하고도 위로의 말

한마디 듣지 못하는 전혀 의중에 없는 존재다.

어느 날 이 사나이가 도성을 떠나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됐다.

이에 첫째 아내를 불러 더불어 가 줄 것을 당부했으나 죽어도 이곳에서

죽지 같이 갈 수없다고 막무가내였다. 무정을 탓하고 둘째 애내를 불러

당부했다. 제일 사랑하는 첫째 아내도 같이 가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따라갈 수 있으랴 며 거절했다. 세 번째 아내는 `당신의 은혜를 입었기로

성밖까지는 배웅하겠으나 그 이상은 따라 갈 수 없다` 고 잘라 말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넷째 아내에게 권했다. `괴롭건 즐겁건 죽건 살건 곁을 떠날

수 없는 몸이니 이 세상 어디이던지 또 아무리 먼 곳이라도 따라 가겠습니다`

라고 했다.

이 사나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넷 째 아내와 더불어 도성을 떠나갔다.

부처님은 설법을 계속했다. `여기에서 도성은 이승이요, 먼 외국은 저승이다.

첫 째 아내는 이승에 살았을 제 지니고 사는 제 몸, 곧 육신이다. 아무리 애

지중지 하는 육신일망정 죽을 때는 이승에서 썩어 문드러져 버린 맹물이다.

둘 째 아내는 재산이다. 아무리 갖은 고생을 다해 모은 재보일지라도

죽을 때 갖고 갈 수는 없다.

셋 째 아내는 부모, 형제, 처자, 친구다. 살았을 때는 서로 의지하고

살지만 죽고 나면 성밖 무덤까지만 배웅하고 열흘도 안 되어 잊어버리는

그런 사이다.

넷 째 아내가 바로 마음이다. 살았을 제 괄시하고 괴롭히고 찢고 발기고

하더라도 끝내 저승까지 동반하는 것은 마음뿐인 것이다.

부처님은 정사에 모인 중생들에게 생일 떡이라면서 이 마음을 각자에게

나누어준다 하였고 중생은 그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하지만 뜻이 무거운

떡을 나누어 들고 돌아갔다. 오늘 초파일, 우리도 나누어 먹고 싶은 부처님의

생일케이크다.

1989. 5. 12.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에서

141. 業과 十二緣起(포교실습)

저는 ‘業’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業’이란 범어 Karman의 意譯이며 音譯으로는 羯磨이고 造作․行爲․意志에 依한 活動이나 生活을 意味합니다.

모두가 잘 아시고 있는 바 이지만 ‘業’은 身․口․意 三業으로 나눌 수 있는데 中阿含經 卷 32에는 그중에서도 意業이 가장 중요하다고 說하여져 있어 불교에서는 動機가 중요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능엄경 卷一(p142)과 卷四(p219)에는 ‘一切가 唯心造’라 하였으니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으로 意業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앞의 三業 外에도 自身의 內心을 남모르게 감추고 아첨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業’을 曲業이라하며, 또 성 냄에 依하여 일어나는 ‘業’을 穢業이라 하고, 탐 내는 것에 依하여 일어나는 ‘業‘을 濁業이라 하여 이들을 합하여 曲穢濁의 三業이라 합니다.

善業이든 惡業이든 모든 ‘業‘은 행동이나 생각을 한 당사자의 第八 阿賴耶識(Alaya-Vijnana)에 種子 형태로 기록되는데 이 기록이라는 말 대신에 “熏習’이라는 用語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雜阿含經 卷一(p485)에는 “一切의 ‘業’은 스스로 지어 스스로 받는다” 또는 “뿌린대로 받는다” 하였으니 모든 ‘業’은 당사자의 阿賴耶識에 계속 熏習되어 이어져 가고 있으며 이렇게 熏習된 種子를 고스란히 저장한 채 過去世에서 現世로, 또 現世에서 來世로 이어져 가는 六道輪廻의 主體가 됩니다.

이세계의 우주만물은 ‘因’과 ‘緣’의 결합으로 생겨나 발전한 것이며 衆生들 各自의 業力에 依하여 前世․現世․來世의 三世에 걸쳐 生死輪廻하는 모습을 열두 項目으로 나눈 것이 十二緣起說인데 다시 附言하면 모든 法이 서로 依存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依하여 된다는 ‘因緣生起’는 모든 사물의 實體를 인정치 않는 無我思想의 理論的 뒷받침이 됩니다.

무슨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業障’이 두텁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과거나 현세에서의 惡業에 依하여 생겨난 果報를 받아 障害가 많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業障을 적게 하며 좀더 좋아진 來世를 맞이하고 나아가 부처님의 지혜를 깨달아 열반까지 이루기 위하여 많은 善業을 쌓아야 하겠지요.

지금까지 理論的으로 說明하다 보니 좀 딱딱해진 느낌이 듭니다마는 善業의 例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신라 때 유명한 宰相이였든 金大成이야기 입니다.

“前世의 大成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가난하였지만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며 열심히 살아, 적은 농토도 마련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흥륜사 化主스님으로부터 흥륜사 창건비용으로 施主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와 상의한 후 많은 돈은 아니지만 갖고 있던 농토와 재산을 팔아 흥륜사에 보시를 하였고 얼마 되지 않아 大成은 죽었습니다.

大成이 죽던 날 金氏 宰相은 하늘로부터 “모량리에 살던 大成이가 너의 집에 태여 난다”는 소리가 들렸고 그 후 그의 부인이 잉태하였으며 아들을 순산하였는데 한쪽 손을 일주일 만에 펴니 大成이란 글씨가 쓰여저 있었습니다.

宰相은 하늘로부터 들은 소리가 생각이 나서 모량리에 가서 수소문해보니 과연 그곳의 大成이는 그 宰相이 하늘로부터 소리를 듣던날 죽은 것이 확인되어 이 모량리의 大成이가 자기의 子息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알게 되었고 宰相은 이 노파를 모시고 와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大成은 前世와 現世의 두 어머니를 모시게 되였으며 후에 재상이 된 다음 前世와 現世의 두 父母를 위하여 석굴암과 불국사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三國遺事에 기록 돠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善業으로 생긴 종자가 어떤 인연이 계기가 되어 싹을 틀때 輪廻의 좋은 방향으로 主體가 되어 좋은 결과를 갖어 왔으며, 金大成은 그의 來世에서도 계속 善業을 쌓아 涅槃하였을 것으로 추측되고도 남음이 있겠습니다.

다음에는 惡業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惡業중에서도 日常生活에서 本人은 自覺치 못한 채 많은 惡業을 짓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의 경우를 들어 죄송합니다마는 제가 운전할 때 일입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차선을 바꾸어야 할 때가 종종 생기지요. 이때 옆의 차선으로 끼어들기를 해야 하는데 깜박이를 켜고 차선을 바꿀려 하면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차를 더욱 바짝 붙여 끼어들기를 방해 합니다.

이 경우 저는 속으로 “에이 생전 운전이나 해 쳐 먹어라”라고 외쳤읍니다.

불교 교리를 배우며 이는 ‘口業’이란 것을 알게 된 후 “잘 먹고 잘 살아라”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비록 욕은 아니라 해도 나의 본 마음은 비방하고 있는 것이므로 ‘意業’에 해당됨을 깨닫고 “南無 觀世音 菩薩”로 바꾸었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얄밉게 운전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합니다. 그때마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바쁜 일이 있겠지”하고 양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저의 本性이 나타나지만 이를 自制하려고 努力하고 있고 觀世音菩薩”을 念誦하며 마음을 달래곤 합니다.

우리의 日常生活에서 口業은 아니라 해도 意業에 해당되는 경우가 생각 보다 많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남이야 못되건 말건 어떻게 하면 나만은 잘될 수 없는가?”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질 만능이 가져온 현대인의 급격한 病態라고는 하지만 그 원인을 생각해보면 “精神的인 宗敎 敎育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가?”라고 생각 합니다.

第二代 ‘大’字 ‘忠’字 宗正스님은 수박 겉핥기식의 믿음은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음을 들었습니다.

이는 불교의 진리를 제대로 깨달아야 하며 正法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다.

오늘 저의 이 말씀이 各自의 惡業을 줄이고 더 많은 善業을 쌓기 爲하여 다같이 反省해보는 契機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들어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成佛하십시오!

142. 절만(卍)자에 대하여...

만자(卍字)는 보통 부처님의 성(聖)스러운 덕(德)과 길상(吉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만(卍)자는 부처님께서 탄생하시기 이전의 인도[India]뿐만 아니라 유럽, 아프리카 등의 여러 고대국가(古代國家)가 있었던 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유래된 고대인들의 길상을 상징하는 표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이 교통과 통신의 발전된 과학적 체계가 없었던 고대시대에 있어 만(卍)자가 이같이 공통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1. 만자(卍字)의 의미

만(卍)자는 길상(吉祥)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菩提樹) 아래서 수행하실 때 풀을 깔고 앉으셨는데 그 풀이 만자 모양의 길상초(吉祥草)였다고 한데서 불교의 상징(象徵)이 되었습니다.

불교에서는 만(卍)자를 부처님의 가슴에 나타나는 덕상(德相)으로 모든 부처님의 가슴에는 만(卍)자의 상(相)이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화엄경(華嚴經) 권 48. 여래십신상해품(如來十身相海品)' 가운데 나오는 말로서 부처님의 훌륭한 모습을 열거하는 97종 가운데 53번째의 특징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만자(卍字)를 어떤 사람은 태양의 상징으로 보기도 했고 흐르는 물의 상징으로 보기도 했으며 또 둥그렇게 선회하는 모양의 모발(毛髮)형상이라고도 했고 또 신령한 빛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2. 만자(卍字)의 이름

이러한 길상의 상징은 만(万)자, 만(萬)자, 혹은 만(卍)자 라고 써서 길상해운(吉祥海運), 길상희선(吉相喜旋)으로도 부릅니다.

만(卍)을 어떻게 읽느냐 하는데 대하여 중국의 번역에 종사하는스님들과 주소가(註疏家)들이 만(萬)이라고 한 이후, 만(萬)자로 부르는 것이 통칭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아것은 중국식 호칭이고 원래 인도에서는 만(卍)을 '슈리밧사' 또는 '난디', '아바타라', '스바스티카'라고 불렀습니다.

중국 화엄종의 제3조인 현수대사 법장(法藏)스님의 제자인 혜원(慧苑)스님은 만자(卍字)에는 대개 다음의 네 가지 형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가. 슈리밧사[Shrivatsa]

'슈리밧사'는 금강석과 같이 견고하고 빛나는 부처님의 슬기로운 마음을 의미합니다. 즉, 중생의 모든 번뇌와 미혹을 능히 파괴해 버릴 만큼 강한 힘을 지닌 지혜(智慧)를 본성(本性)으로 하는 마음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로획[ㅡ]: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표현

세로획[ㅣ]: 시방(十方: 四方,四間方,上下)을 표현하고

좌우의 굽[卍]에 있어서 시계방향의 순문(順門)은 '부처님의 성도(成道)'를 뜻하고 시계반대방향인 역문(逆門)은 부처님의 설법(說法)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것은 용맹을 상징하는 기치(旗幟)라고도 하였는데 만자의 깃발이 가는 모든 곳에 있는 악마의 군대는 반드시 이 깃발 아래에 항복하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결국 만자는 보리심(菩提心)의 상징이며 삼매(三昧)와 반야(般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 난디아바타라[Nandyavatara]

오른쪽으로 선회(旋回)하는 머리카락의 뜻으로 '희선(喜旋)' 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인도의 신(神) 비슈누의 가슴에 있는 선모(旋毛)에서 비롯되었는데, 상서로운 조짐이나 길상을 나타내는 덕(德)의 모임을 뜻합니다.

불교에 있어서는 이를 성도(成道)를 이룬 진정한 나의 모습인 청정의 자성(自性)과 법(法)의 세계(世界)를 의미합니다.

다. 스바스티카[Svastika]

행복이 있음을 상징(有樂)하며 십(十)자의 모양은 불심(佛心)의 공덕(功德), 불심(佛心)의 만덕(萬德)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라. 푸르나가타: 가득 찬 물병(滿甁)

변형이 아주 비약적인 것으로 모든 공덕(功德)의 구족(具足)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만자는 거꾸로 사용하기도 하고 끝이 조금도 더 꺾어져 사용하기도 합니다.

모양은 중심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우만자(右卍字)와 왼쪽으로 도는 좌만자(左卍字)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卍자를 입체적으로 형상화시켜서 세워 놓고 볼 때 앞에서 보면 卍 모양이 되지만 뒤쪽에서 보면 우만(右卍)자 모양으로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도의 옛 조각에는 右卍(우만)자가 많으나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굳이 구별하지는 않습니다.

참고 : 불교학대사전(佛敎學大辭典) [홍법원]

불자신행의 길잡이 [부다가야]

143. 의천(義天) 대각국사(大覺國師)

한국 천태종사에 있어 의천(義天) 대각국사(大覺國師)는 그 분기점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천태종은 고려 숙종 2년(1097)에 대각 국사께서 개경에 창건한 국청사(國淸寺)에서 천태교관을 강의 한 것을 개종(開宗)의 기원으로 삼으나, 천태교의는 이미 그 이전인 삼국시대부터 전래되었다. 그러나 다른 종파에 비해 천태 교학은 아주 쇠미한 상황이었다. 의천은 천태교관의 개강과 천태종 개립의 필요성을 인식한다.

천의 전기에 대해 알 수 있는 기록은 김부식의 영통사(靈通寺) 「대각국사비」와 임존(林存)의 선봉사(僊鳳寺) 「해동천태시조대각국사비」, 그리고 (「흥왕사비문」은 없어지고) 박호의 「흥왕사묘지명」ㆍ『대각국사문집』의 「삼비일문」에 기록되어 있다.

각국사는 고려 제 11대 문종 9년(1055) 9월 28일 인예 왕후 이씨를 어머니로 태어난 왕자였으며, 제 15대 숙종 6년(1101) 10월 5일에 향년 47세 법랍 36년으로 입적했다.

국사의 본래의 이름은 후(煦)이고 자는 의천(義天)인데, 송나라의 철종의 휘가 후였으므로 이름을 피하고 자인 의천을 썼으며, 대각국사는 시호이다.

김부식의 「영통사비」에 '어머니 인예태후 이씨의 꿈에 용이 품에 안겨드는 태몽을 얻고 태기가 있어 을미년 9월 28일에 궁궐에서 태어나시다. 그 때 방안에는 상서로운 향기가 자욱하여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으며, 국사는 어려서부터 뛰어나게 슬기로워서 책을 읽고 글을 지음에 그 정요롭고 민첩하기가 수세에 익힌 바에 틀림없었다.'고 했다.' 그의 총명은 나면서부터 아는 바 생이지지(生而知之)라고 주위에서 추앙될 정도였다.

일찍이 형인 숙종이 국사 생존시에 대각(大覺)의 호를 내렸으나 국사는 이를 사절하는 소를 올려 쓰지 않았다. 15세(또는 13세)에 우세승통(祐世僧統)의 법호와 법계를 받았으므로 이로부터는 이 법호를 썼다. 송나라의 고승들도 모두 이렇게 불렀음을 문집에서 볼 수 있다.

종 이후 고려의 제도정비는 승과의 정립을 가져오고, 따라서 승려의 사회적 신분도 상당히 높은 것이었다. 고려 왕조는 왕자의 출가가 법적으로 승인되고 있었으므로 그의 출가는 경이로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국사의 나이 11세에 이르러 문종은 국법에 따라 한 명을 출가시키고자 4왕자에게 물으니 국사가 선뜻 원을 세웠다. 물론 여러 왕자 중 스스로 출가 의지를 낸 것은 의천의 비범성에 연유한다. 이렇게 해서 문종의 외삼촌이며 당시 왕사로서의 화엄종 고승이었던 경덕국사 난원(爛圓)에게 출가하였으나 스승이 곧 입적하였다.

그 후 그는 스승을 정하지 않고 현수(賢首)의 교관, 돈교, 점교, 대승, 소승, 경율, 논, 장소에 두루 관심을 갖는다. 이 밖에 불교 이외에 도교나 제가백가의 여러 학설에 이르기까지 섭렵하지 않은 바가 없었다. 이것은 그가 특정분야의 교학이나 또 불교만에 편중되지 않는 폭 넓은 지식을 학습하였음을 의미한다.

는 입송(入宋)하기 전부터 천태교관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즉 그는 숙종이 아직 등극하기 전 인예 왕후에게 함께 갔을 때, '천태삼관은 최상의 진승(眞乘)인데 아직 우리나라에 종문을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뜻하는 바가 있습니다.'라고 자신의 의지를 모후에게 밝혔더니, 인예 왕후도 함께 따라 기뻐했다고 한다. 이 때 숙종도 외호 할 것을 발원하였다.

그리고 의천은 입송 후에 중국에 가서 천태종 개립 의지를 발원한다.

천은 정원(淨源)법사의 초청을 받고 송나라에 도착한 후 많은 학승들과 교제하고 교학을 논의하였다. 화엄종, 천태종, 율종, 선종, 범학(梵學) 등 폭 넓은 분야에 걸쳐 교류를 갖는다. 정원법사와는 현수와 천태교판의 같은 점과 차이점, 그리고 양종의 오묘한 의취 등을 문답했다.

이어서 상국사(相國寺)의 원소(圓炤)선사 종본(宗本)을 참방하고, 흥국사(興國寺)의 서천삼장 천길상(天吉詳)을 만나 인도의 일을 상세히 익힌다. 다시 항주에서 화엄 좌주인 정원법사의 강단에 들어가니 법사는 의천의 법기가 비상함을 알고 감탄한다. 이 지역에는 여러 종파의 장로들이 많이 모여 있었으므로 이들과 여러 종문의 교의를 많이 익혔다.

이 항주에서 자변종간(慈辯從諫) 대사에게 천태종의 경론을 강의해 주기를 청하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청강한다. 그리고 법을 전하는 신표로 손 향로와 여의주, 그리고 시를 한 수 받는다. 자변 종간법사는 지례(知禮)의 대표적 제자인 사명삼가(四明三家) 중에서 남병범진(南屛梵臻)의 문하이다. 의천은 또 정원법사로부터 신표로 향로와 불자(拂子)를 받는다.

의천은 천태종 산외파인 고산지원(孤山智圓) 등 50여 인의 고승과 교류를 하고 귀국하는 길에 천태산 지자대사 탑에 참배하고 다음과 같이 발원하였다.

"일찍이 대사께서 오시팔교로써 동쪽으로 흘러온 석존의 말씀을 판단, 해석하였는데 후세 학자들이 모두 이에 의지하였습니다. 저희 조사이신 화엄소주(華嚴疏主:청량 징관)께서도 '현수대사의 오교는 천태대사의 교법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제관법사가 대사의 敎觀을 해외에 유통시켰으나 지금은 끊어졌습니다. 이제 제가 분발하여 도를 묻고 스승을 찾았는 바 전당(錢塘)의 자변(慈辯)대사 강석에서 대사의 교관을 이어 받고 대략을 알았습니다. 이에 제가 고국에 돌아가면 목숨 바쳐 선양하여 대사께서 중생을 위해 가르침을 베푼 노고에 보답하고자 서원 합니다."

의천은 천태대사 탑 아래서 이와 같이 천태종 교관을 기필코 홍포 하겠다는 발원을 하고 귀국하였다. 귀국하여 왕에게 올린 글에서 자은, 현수, 천태 종지, 남산 율종의 신표를 전수 받고 귀국했다고 보고하였다.

국 후 의천은 국청사를 창건하고 천태교관(天台三大部)을 강의하며, 천태종 개종을 위해 국가의 선발 시험에 천태종 승려를 참여시켜 인재를 양성한다. 의천이 귀국한 고려는 천태종을 개립 하기에는 법상종, 화엄종, 선종이라는 기성교단의 교세가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송(宋)나라에 가서 모든 종파의 교학을 섭렵한 의천은 화엄 교학의 우월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징관의 글을 꿈에 예시 받았다'고 영통사 비문에 전하고 종파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히려 징관의 '현수와 천태는 크게 같다'는 사상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었다.

청량 징관의 사상적 배경은 종합불교에 있다. 그는 6조 형계 담연 문하에서 천태교관을 수학한 제자로서 천태교학에 깊이 힘입고 있다. 그의 『화엄경소』는 천태삼관에 의해 『화엄경』을 해석한 것이다. 의천이 입송하기 전에 '천태교관은 최고의 진승'이라고 태후에게 사뢴 것은 이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징관은 현수의 제자이다. 현수의 『기신론의기』는 천태지관을 원용하고 원효의 『기신론소』에 크게 힘입고 있다. 징관은 그러나 화엄에 의해 모든 불교를 통일하려는 종합불교를 지향했다. 그러나 "징관의 『화엄경』 주석은 천태 성악설(性惡說), 일심삼관(一心三觀), 일념삼천(一念三千) 등을 인용하고 있으나 그의 화엄은 교(敎)도 관(觀)도 이미 잃어버렸다."고 『불조통기』의 저자 지반(志磐)에게 비판을 받고 있다. 의천은 징관을 통해 천태교학을 이해하면서도 원효사상에 크게 공감하였다.

천은 고려 천태 교학의 원조를 신라 원효에게서 찾고 있다. 천태종 본산인 국청사를 창건하고 천태 강의를 시작하면서 "수백 년 동안 여러 종파가 경쟁하며 퍼졌으나 오직 천태 일가만이 전통을 잇지 못하였다.

옛날에는 원효 보살이, 나중에는 제관 법사가 법을 드날렸다."고 말한다. 원효는 일찍이 회삼귀일(會三歸一), 즉 삼승의 가르침은 일승에 귀입 한다는 『법화경』을 연구했다. 그의 화쟁사상은 『법화경』의 회삼귀일 사상에 힘입고 있다. 의천은 고려불교를 개혁하려는 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원효에 두고 있다. 의천은 분황사 원효의 제문에서 "해동보살만이 백가의 서로 다른 논쟁을 화합하고 지극히 공정한 논리를 얻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의천의 천태종 개립에는 사상적으로 원효의 화쟁사상이 그 기반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형왕 숙종과 모후 인예태후의 의지가 상당한 촉진제가 되었을 것이다. 인예왕후는 이미 선종 9년(1092) 백주(白洲) 견불사(見佛寺)에서 천태종 예참법을 1만일 동안 시설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국청사 창건도 인예태후의 발원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

청사가 완공 된 후 숙종 2년(1097)에 천태종은 본격적으로 승선(僧選)을 시행하고 숙종 6년(1101)에 승선의 대선(大選)을 시행함으로써 명실공히 제도적인 종단의 면모를 갖춘다.

고려 천태종의 형성에 대하여는 많은 역사적 연구가 있다.

시고려에는 법상종, 화엄종 선종이 있었고 이 종파들은 국사·왕사들이 배출되고 그 중에서 선종은 천태종 개립에 기반이 되었다.

선종에 대한 의천의 의식이 선종 납자들을 천태종으로 이끈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신라 말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선은 고려 초에는 지방 호족들이 비호 아래 교세가 확장되고 있었다. 의천 자신은 화엄가로 출발하였으나 전술한 대로 모든 불교를 폭넓게 받아들였다. 따라서 불교의 본지는 단순한 불교체계만도 아니고, 또한 그것의 실천만을 주장하는 조사선만도 아님을 깊이 인식한다.

의천은 당시에 상당한 교세를 떨치고 있던 조사선에 대하여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원종문류(圓宗文類)』21의 발문에 있는 계주(戒珠)의 「별전심법의(別傳心法議)」에서 「옛날 선은 가르침에 의해 들어갔는데 지금의 선은 가르침을 떠나 선을 말한다. 가르침을 떠남은 그 이름에 집착하는 것이고, 실상을 떠나는 것이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금의 선'이란 바로 중국에서 형성된 문자를 세우지 않고 가르침 밖에 달리 전한다.

불입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의 소위 조사선인 것이다.

모든 교학, 나아가 외도의 학문까지 섭렵하되 불교의 정통성을 확립하려던 의천으로서는 이 조사선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다. 의천의 천태교단에 당시 달마선문의 선승들이 대거 참여하게 된 것은 이상과 같은 의천의 선에 대한 견해가 작용했으리라고 짐작된다. 그의 「선봉사 비문」에는 五山門의 학도 1천 명이 천태 강설장에 들어왔다고 하고, 또 「운문사 원융국사비문」에는 선문의 60 내지 70%가 천태종으로 옮겼다고 한다. 아마도 이들 대부분은 천태교관과 밀접한 교의를 가진 법안종(法眼宗) 계통의 선승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천이 비판한 것은 선승만이 아니다. 『원각경(圓覺經)』을 강의하면서 그는 "교(敎)를 배우는 이는 자기 안의 마음을 버리고 밖의 문자만 구하려 하며, 참선하는 이는 인연을 버리고 오직 마음만을 밝히려 한다. 다 치우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규봉 종밀(圭峰 宗密)의 교선일치(敎禪一致) 사상을 의거하고 있는 것이지만, 종밀은 선종 승려로서 화엄종의 징관의 제자가 되어 제 5조가 되었다. 징관은 화엄에서 선을 흡수하고 종밀은 선에서 화엄으로 개종하여 敎禪一致 사상을 완성시켰다. 의천은 이들의 사상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의 화엄종의 성격으로는 실천성이 강한 선종 사상을 도입할 기반이 없었다. 또한 선종 측에서도 전향하여 화엄 5조가 된 규봉의 사상을 받아들일 수 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의천의 천태종 개립의 사상적, 현실적 당위성이 있다.

천태 지자대사는 선사이다. 북지의 선과 남지의 교학을 융화하여 교관체계를 확립한 것이 천태교학이다. 방대한 천태 삼대부 가운데 『마하지관』은 관문(觀門), 『법화현의』는 교문(敎門)을 상설하고 있다. 또 이 교학은 『법화경』의 일승사상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의천의 『신편제종교장총록』에는 규봉의 교선일치설의 대표적 저술인 『선원제전집도서』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는 그의 사상적 기반이 반드시 종밀의 교선일치 사상일 수가 없음을 시사한다.

천은 숙종 6년(1101) 10월 5일에 몸에 병이 생겨 향년 47세 법납 36세로 입적하였다.

사의 저술로는 불교사상 초유의 장소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3권은 총 1,010부 4,759권과 그 중에서 법화경소와 천태장소가 99부 375권이 있으며, 그 중 천태지관 법문에 관한 저술이 20여 부나 된다. 그리고『신집원종문류(新集圓宗文類)』22권, 『석원사림(釋苑詞林)』250권, 『간정성유식논단과(刊定成唯識論單科)』3권, 『팔사경직석(八師經直釋)』, 『소재경직석(消災經直釋)』 등 10여부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나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는 『신편제종교장총록』3권과 『대각국사문집』, 『대각국사외집(大覺國師外集)』의 낙장본과 『신집원종문유』, 『석원사림』의 잔편과 『간정성유식논단과』의 서문만이 전해오고 있다.

의 문도는 「선봉사비문」에 117명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의 제자로는 덕린(德麟), 익종(翼宗), 경란(景蘭), 연묘(蓮妙) 등이 있고, 선사 익종의 제자에 대선사 교웅(敎雄 : 1076∼1142)이 있으며, 교웅의 제자에 원각국사 덕소(德素 ; 1119∼1174)가 있다. 그의 문하에는 선사, 삼중대사(三重大師) 등 다수의 승선 합격자들이 있고 문인이 1,200명이었다 한다. 따라서 12세기말까지 덕소가 이끌던 천태 교단은 상당한 교세를 펼치며 활동하였으리라고 추정된다.

고려의 천태 교단은 대각국사 의천 이후 원각국사 덕소에 의해 거대한 규모로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 활동 상은 찾을 수 없다.

의천의 생애

각국사는 아버지 문종과 어머니 인예태후(仁睿太后) 이씨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1055(문종 9)태어났다. 이름은 후(煦), 자는 의천(義天), 대각국사는 그의 시호다. 국사의 32세 때에 송의 철종이 즉위하매 그의 이름 후를 피하여 이때부터 이름 대신에 자를 사용했다.

왕은 어느 날 네 왕자를 불러놓고 “누가 능히 출가하여 복전(福田)의 이익을 짓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국사가 일어나 출가의 뜻을 밝히자 부왕은 허락하고 1065년(문종 19)5월 14일에 난원(爛圓)을 내전으로 불러서 머리를 깎게 하고, 스승을 따라 개경의 영통사(靈通寺)에서 살게 하였다. 당시 왕사였던 난원은 화엄종에 속한 66세의 노승이었다. 국사는 이 해 10월에 불일사 계단(戒壇)에서 계를 받았다. 스승 난원은 국사가 출가한 그 다음 해에 입적했다. 국사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학문을 쉬지 않았다고 한다.

정에서는 13세에 우세(祐世)라는 호를 하사하고 승통(僧統)직을 내렸다. 19세에 세자를 대신해서 교장(敎藏)의 수집을 발원하는 글을 지었다. 아마도 교장수집의 원을 세우고 제종장소(諸宗章疏)의 수집에 착수하게 된 것도 국사의 청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국사가 20세 이전에 이미 교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수집에 착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불교학에 대한 남다른 안목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23세 때부터 강의를 했는데, 이로부터 입적할 때까지 24년 동안 한번도 폐한 적이 없었다.

사는 서른 살이 되던 선종 1년(1084) 정월에 내전에 들어가 송나라로 가서 구법 할 뜻을 간곡히 아뢰었다. 둘째형인 선종은 여러 신하들을 모아 의논했지만 모두 반대했다. 이에 국사는 중신들 앞에서 현장의 서역 구법과 의상의 입당구법의 예를 들면서 눈물로 호소했지만, 왕자의 입송(入宋)이 요나라를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염려하는 중신들의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어떤 장애도 국사 구도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이듬해 4월8일 밤에 국사는 왕과 태후에게 편지만 남긴 채 제자 수개(壽介) 등과 함께 정주(貞州:오늘날의 김포)에서 상선을 타고 송나라로 향했다. 반게(半偈)를 듣기 위해 몸을 던지는 자세로 밀항을 감행했던 것이다. 국사가 송나라로 떠났다는 소식에 접한 국왕은 조정의 관료와 국사의 제자 낙진(樂眞)·혜선(慧宣)·도린(道隣) 등을 내어 뒤따르게 했다. 국사는 5월초에 판교진에 도착했고, 7월에는 송의 서울 변경( 京)과 항주(抗州)를 오가면서 고승50여 명을 만나 불법을 묻거나 교류했다. 국사가 직접 만났거나 서신으로 교유했던 송나라의 승려 중에 소속 종파의 확인이 가능한 경우만을 분류해 보면, 정원(淨源)·유성(有誠)등 화엄종 13명, 종간(從諫)등 천태 8명, 선종의 종본(宗本)·요원(了元)·회련(懷璉) 등 5명, 율종의 원조(元照)·택기(擇基) 등 3명, 그리고 법상종 2명, 서천범학(西天梵學)2명, 종파미상 8명 등이었다.

사는 변경의 각엄사에서 화엄종의 고승 유성법사를 제자의 예로 만났고, 상국사의 종본선사를 알현하기도 했다. 종본은 이때 국사를 찬양하여 다음의 게송을 설하기도 했다.

빈칸임 이 세상 그 누가 만리의 높은 파도 타고,

빈칸임불법 위해 몸 잊고 선재를 본받았던가?

빈칸임생각건대 염부재에서는 참으로 희유한 일,

빈칸임마치 우담발화꽃이 불 속에서 핀 것 같네.

변경의 흥국사에는 인도에서 온 천길상(天吉祥)이 있었는데, 국사는 이 절에 약 한 달 가까이 머물며 인도불교에 대해서 배웠다. 그리고 국사는 항주로 향했는데, 주객원외랑(主客員外郞) 양걸(楊傑)이 배행(陪行)했다. 도중에 금산(金山)을 지나면서 요원(了元)선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국사는 항주에서 정원, 종간, 원조를 만났다. 정원(1011∼1088)은 당시에 항주 상부사의 주지로 있었는데, 국사는 아침저녁으로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약 반년을 이곳에서 보냈고, 마침내 정원으로부터 화엄교를 전수 받았다.

이듬해에 정원은 혜인사(慧因寺)으로 옮겼고, 이 절을 화엄종의 중흥 도량으로 발전시켰다. 이곳에 화엄교장(華嚴敎藏)을 설치하고 교장(敎藏) 7,500여 권을 비치했는데, 그 경비를 국사가 지원했다. 훗날 이 절은 국사와의 인연 때문에 고려사(高麗寺)로 이름을 바꾸어 의천의 공덕을 기렸다. 국사가 천태종의 종간(?∼1108)을 만난 것은 항주의 상천축사였다. 종간은 국사에게 수로(手爐)와 여의(如意)를 주면서 홍법전등(弘法轉燈)을 부촉 했다.

그가 국사에게 준 시에는 “훗날 해동에서 두루 펴는 곳마다 지혜의 등불 천만으로 무궁토록 비추소서”라고 했고, 또 귀국 후에는 국사의 천태교법의 홍포를 기뻐하는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국사가 송나라에서 교유한 여러 고승 중에서 가장 의기투합했던 인물은 화엄종의 정원과 천태종의 종간이었고, 국사가 이들로부터 받은 영향은 컸다. 아무튼, 14개월 동안 송나라에서의 구법을 통해 국사는 불교에 대해 국제적인 안목과 종합적인 시각을 키울 수 있었고, 3,000여 권의 불전을 구할 수 있었으며, 고려의 국제적 지위를 높일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여러 화엄전적(華嚴典籍)을 항주의 혜인사에 전하여 중국 화엄교학의 재흥을 돕기도 했다.

사는 송나라의 구법을 마치고 귀국한 바로 그 해인 1084년(선종 1)에 흥왕사의 주지를 맡았다. 문종의 원찰이었던 흥왕사는 2, 800칸의 건물에 1,000명 대중이 상주하던 고려 최대 규모의 사찰이었다. 국사는 곧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해서 교장(敎藏)의 간행에 착수했다. 선종 6년(1089) 10월에는 국청사 건립에 착수했는데, 이는 곧 천태종 개창을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다음 해에는『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摠錄)』을 간행하고, 또 그 다음 해인 선종 8년(1091)에는 남쪽으로 내려가 일서(佚書) 4,000여 권을 구하기도 했다. 국사 38세 때인 선종 9년(1092)에 모후인 인예태후가 돌아가고, 다음해 1094에는 선종이 돌아감으로 해서 많은 어려움이 처하게 되었다. 아마도 국사의 국청사 창건과 이를 토대로 한 천태종 개창을 반대한 법상종 세력의 강한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 같다. 국사는 해인사로 물러났다가 다음해 10월 숙종의 부름을 받고 다시 흥왕사에 주석 했다. 43세 때인 숙종 2년(1097)에 국청사에서 천태 교학을 강의했다. 이로써 국사는 천태종 개창의 오랜 염원을 이룩했던 것이다.

종 6년(1101) 8월 국사의 병이 위독하매 왕이 친히 위문했다. 국사는 셋째형인 숙종에게 제가 원하는 것은 정도(正道)의 중흥이오나 병이 저의 뜻을 빼앗아 갔습니다. 바라옵건데, “지성으로 불교를 외호(外護)하여 여래의 유교(遺敎)에 부흥토록 하시면, 이는 죽어도 썩지 않는 불멸의 공덕이 될 것입니다”라고 아뢰었다. 10월 5일 국사는 입적했다. 47세의 아까운 나이로. 올해로 그가 돌아가신 지 꼭 900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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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상현 교수

* 약력 : 1947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남

경상대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문학박사

단국대학교 교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동국대 신라문화 연구소 조장 역임

현 동국대 사학과 교수 (전공 한국불교사)

* 저서 : 『신라의사상과문화』, 『원효연구』,

『신라화엄사상사연구』, 『역사로 읽는 원효』,

『한국불교사 산책』, 『한국의 차시』 등

144. 옴(aum/om/唵)에 대하여...

※ 참고 : 인도에서의 불교

대략 8세기 경 무슬렘(이슬람) 교도들이 인도에 침투하기 시작했는데, 이들 자체는 배타성이 강했던 까닭에 불교를 배척하기 시작했다. 이 후 이슬람이 13세기에 통일 제국을 이룬 후... 붓다 당시의 흔적을 볼 수 있었던 최초 최대의 불교대학 '나란다(Nalanda) 대학'을 불태워 없애게 된데에서 인도에서의 불교는 그 결정적인 쇄퇴기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인도에서의 불교 위치는 불교 이전의 바라문교가 변화 발전 된 '힌두교'의 수많은 신들 중 '붓다 샤캬무니'를 그들 신들 중 한 신으로 섬기고 있다 하며, 근래에 들어 순수 불교로서의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고 한다.

◑ 1 : 홍법원 발행의 『불교대사전』에 근거하였습니다.

①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의식 전, 후에 암송되는 신성한 음(音)이었다.

원래는 「그렇다」라는 응락을 나타내는 경어(헤브라이의 아멘에 해당함.) 바라문교에서 상용되어, 힌두교, 쟈이나교에서도 이용되고 있다. 이 음은 때때로 요가 수행자의 염상(念想)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힌두교의 교의 학습에서는 '옴'의 음(音)은 a, u, m의 석자로 되고, 각각 만물의 발생, 유지, 종멸(終滅)을 나타낸다고 해석했다. 또 옴은 모든 세계의 시작과 끝으로 여러 가지 신비로운 해석이 되었다. 힌두교의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는 우주의 창조, 유지, 파괴를 담당하는데 이들의 3신의 일체(tri-murti)의 교리에도 대비된다.

② 진언밀교(眞言密敎)에 들어서도 신성한 주어(呪語 : 密語)가 되어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이나 귀명, 공양, 삼신(三身)의 의미를 띤다.

③ 중국에서는 시체를 관에 넣은 후에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발원문의 처음에 옴(唵)이라 외친다.

◑ 2 : 인도(INDIA)의 한국 유학생 Lucky 군이 도움 말씀을 주셨습니다. (옴(aum/om/唵)의 발생지인 인도(INDIA) 현지의 홈페이지에서 발췌)

* Lucky : "AUM" 이라는 단어 대한 여러 사이트를 가 봤는데 사이트 마다 설명이 비슷하면서 도 다르더군요..아래 있는 거 좀 정리하고 이해 돼는 것이지만 좀 복잡해요..그래도 제가 좀 노력을 하겠습니다... *

AUM 라는 단어가 힌두교의 mantra에서(기도할 때 하는 말) 제일 중요하고 힘 있는 말이에요. AUM 은 힌두교의 모든 신들을 대표하는 말이에요. AUM 의 전설 보면 'AUM' 자 에서 세상의 모든 언어 가 생겼다고 합니다.

AUM Upanishad 에서(힌두교 중요한 책) 제일 중요한 단어이면서 모든 힌두교 mantra 에 힘 입니다. Mandukya Upanishad 의하면 과거,현재 와 미래 가 다 AUM 안에 있고... Upanishad를 공부한다는 것은 AUM 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AUM' 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신의 입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모든 오걍의(sound) 기본은 AUM 입니다. AUM 부를 때 효(tongue) A 부터 M 까지 자세 가 사람들이 보통 말할 때 쓰는 자세가 가 다 포함되어 있어요. AUm 자 가 힌두의 새 가지 중요한 신 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A-Vishnu, U-Shiva, M-Brahma)

'AUM' 에는 이런 효과가 있기 때문에 힌두교에서 모든 기도에 AUM 이 있고.. 또 모든 수행자들에게 힘을 주는 단어 입니다. AUM 자를 통해서 영원히 독립 될 수가있습니다.

145. 종교전쟁이요

동양에는 종교로 인한 전쟁은 없는 걸로 알고 있구요(이.팔전쟁은 영토문제가 개입되어 있지요)

서양에선 신교(청교도) 구교(카톨릭)로 나뉘어서 많이 전쟁이 일어났지요

윗분이 말씀하신 30년 전쟁이 있습니다

30년 전쟁은 신교 구교 때문에 독일을 무대로 일어난 전쟁인데요 그당시로선 거의 세게대전에 맞먹는 첫 국제 전쟁이었죠.(당시 사람들 생각으론 유럽이 세상의 전부인데 거의가 참여했으니까요)

그 전쟁의 승전국은 신교를 믿는 나라들이었어요 프랑스만 빼면요(프랑스는 구교면서 독일이 싫어서 신교 편을 들었거든요)

이 전쟁으로 독일은 인구 3분의 1이 죽고 엄청난 피해를 입었구요 스위스나 네덜란드는 이때 독립이 되었습니다

그밖에는 각 나라마다 종교로 인해 내전이 일어난 경우가 있지요

벨기에가 네덜란드에서 떨어져 나온 것도 종교 때문 이구요

네덜란드 안에는 반주가 있습니다 반은 구교, 나머지 반은 신교로 나뉘는 경우도 있다는 거지요

참고적으로 말하면

종교전쟁이 있기 전에는 유럽의 모든 국가가 구교(카톨릭)를 믿었답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해서 크리스트교가 쪼개진 것입니다

100년 전쟁

프랑스를 전장(戰場)으로 하여 여러 차례 휴전과 전쟁을 되풀이하면서,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단속적(斷續的)으로 계속되었다.

【원인】 영국은 1066년 노르만왕조의 성립 이후 프랑스 내부에 영토를 소유하였기 때문에 양국 사이에는 오랫동안 분쟁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1328년 프랑스 카페왕조의 샤를 4세가 남자 후계자가 없이 사망하자, 그의 4촌 형제인 발루아가(家)의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올랐다.

이에 대하여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그의 모친이 카페 왕가 출신(샤를 4세의 누이)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왕위(王位)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양국간에 심각한 대립을 빚게 되었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하여 플랑드르에 수출해오던 양모(羊毛) 공급을 중단하고, 그 보복으로 프랑스의 필리프 6세는 프랑스 내의 영국 영토인 기옌, 지금의 가스코뉴 지방의 몰수를 선언하였으며, 1337년 에드워드 3세는 필리프 6세에게 공식적인 도전장(挑戰狀)을 띄우게 되었다.

원래 플랑드르는 프랑스왕의 종주권(宗主權) 아래에 있었지만, 중세를 통하여 유럽 최대의 모직물 공업지대로서 번창하여, 원료인 양모의 최대 공급국인 영국이 이 지방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기옌 역시 유럽 최대의 포도주 생산지였으므로, 프랑스 왕들은 항상 이 두 지방의 탈환을 바라고 있었다. 따라서 전쟁의 근본적 원인은 이 두 지방의 쟁탈을 목표로 한 것이다.

십자군 전쟁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사이에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전후 8회에 걸쳐 감행한 대원정.

본문

이에 참가한 기사들이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 표시를 했기 때문에 이 원정을 십자군이라 부른다. 십자군에게서 종교적 요인을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와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을 간단히 종교운동이라고 성격 지을 수는 없다.

봉건영주, 특히 하급 기사들은 새로운 영토지배의 야망에서, 상인들은 경제적 이익에 대한 욕망에서, 또한 농민들은 봉건사회의 중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희망에서 저마다 원정에 가담하였다.

그 밖에 여기에는 호기심 ·모험심 ·약탈욕 등 잡다한 동기가 신앙적 정열과 합쳐져 있었다. 대체로 십자군시대의 서유럽은 봉건사회의 기초가 다져지고 상업과 도시의 발달도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어서 노르만인의 남(南)이탈리아 및 시칠리아 정복, 에스파냐의 국토회복운동, 동부 독일의 대식민활동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주변 세계와의 경계를 전진시키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배경에서 십자군도 정치적 ·식민적 운동의 일환이 될 수밖에 없었고, 종교는 이 운동을 성화(聖化)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1. 원인

고대 로마제국이 동서로 양분된 후 시리아는 동로마 통치하의 속주가 되고, 7세기 전반에는 이슬람교도인 아라비아인에게 정복되었을 뿐 아니라, 638년 성도 예루살렘이 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한편 유럽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전파와 더불어 예루살렘을 성도로서 숭앙하는 생각이 점차 높아졌는데, 11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많은 그리스도교도가 개인 또는 집단을 이루어 성지 순례를 떠났다.

그 무렵 동방의 이슬람 세계에서는 셀주크투르크가 세력을 신장시켜 비잔틴제국 영내에까지 진출하고 시리아 ·아르메니아 ·소아시아를 지배하고 다시 콘스탄티노플을 위협하였다. 1092년 셀주크왕조의 통일이 깨어지고 그 영토는 왕족간에 분할되었다.

이 기회에 비잔틴제국 황제 알렉시우스 1세는 비잔틴제국의 재흥을 꾀하여 군사적 원조를 청하는 사절을 로마 교황청으로 보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최초로 십자군을 제창하였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알렉시우스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왜냐 하면 우르바누스 2세는 성직서임권투쟁(聖職敍任權鬪爭)의 와중에 있었는데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 4세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동방원정이라는 어려운 사업을 통하여 유럽에서 교황권을 확립하고, 비잔틴에서의 그리스정교회를 로마교회 산하에 통일하려 했던 것이다

종교전쟁

역사상 종교전쟁은 아주 많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할때

가장 격렬하게 부딪히는 것이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종교 갈등으로 보이지만 실은 서로 다른 문화와 경제체제의 세력 싸움인 것입니다.

역사상 종교전쟁의 예를 몇가지 들면

★이슬람교의 정복포교

7세기 경에 발생한 이슬람교는 전쟁을 통해서 복속시킨 지역에 코란의 가르침을 퍼트렸습니다.

이때 중동의 전체를 이슬람화 시켰고 최대로 유럽에서도 스페인을 정복하고(이후 700년간 지배) 프랑스까지 나갔다가 투르-푸아티에 전쟁에서 격퇴되어 저지당합니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해 중국(당나라)을 탈라스싸움에서 이겨서 아랍이 실크로드의 무역권을 장악합니다.

이 싸움의 결과로 종이가 서양에 전파됩니다.

(당제국의 장수는 고구려인인 고선지 장군)

★십자군 전쟁(11세기~13세기):

유럽의 기독교 연합군(crusaders)가 중동의 이슬람교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습니다.

명분은 기독교 성지聖地인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것인데 사실은 유럽세계가 힘이 커져서 중동으로 뻗어 나가고 싶어 했고, 또 아랍인이 장악하고 있는 무역권을 빼앗는데도 목적이 있었습니다.

200년 동안 7차례에 걸쳐 대규모 원정을 했는데 성공한 것은 처음 2차례뿐이고 뒤로 갈수록 원래 취지를 잃어버리고 우왕좌왕해서 흐지부지 끝납니다.

이전쟁의 결과로 기사계급이 몰락하고 중세시대가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 종교개혁이후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전쟁

루터의 종교개혁이후에 갈라져 나간 개신교(프로테스탄트)와 천주교(카톨릭)간의 전쟁인데

프랑스에서 일어난 위그노 전쟁과 독일에서 일어난 30년 전쟁이 대표적입니다.

이전쟁의 결과로는 개신교가 인정을 받아서 그들을 지원하던 상공업자들이 번창하고 유럽의 자본주의화를 촉진하게 됩니다.

★ 그밖의 종교를 둘러싼 전쟁및 갈등(근현대)

근 현대 들어서는 종교자체로 전쟁을 하기 보다는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얽혀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영국-아일랜드(영국국교vs카톨릭):

영국이 아일랜드를 오랫동안 지배하면서 착취해서 생긴 민족감정과 종교대립이 결합되어 갈등이 계속되었고

아직도 영국영토인 북아일랜드지역에서는 테러와 분쟁이 남아있습니다.

*보스니아내전, 코소보내전(동방정교, 카톨릭,이슬람):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 갈등은 오랜 민족적인 갈등과

각 나라들 간의 경제적 격차에

종교문제가 결합되어 복잡하게 일어난 것입니다.

세르비아계(동방정교), 크로아티아계(카톨릭), 이슬람계

의 3개의 세력이 갈등이 심해져 세르비아계에 의한 인종청소라는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인도-파키스탄(힌두교 vs 이슬람교):

간디의 지도아래 영국에서 독립한 인도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충돌이 심해서 이슬람교는 파키스탄으로 독립합니다.

그 이후에도 대립이 계속되어 1948년부터 몇 차례의 전쟁까지 하게 되고 두 나라는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필리핀(카톨릭vs이슬람반군):

국민 대다수가 카톨릭교도인 필리핀은 소수의 이슬람교도가 반군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146. 삼종외도설(三種外道說)과 비판

1. 부처님 당시의 사상계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처님 당시의 인도의 전반적인 문화, 풍속, 사상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당시 인도의 사상계는 매우 혼란스러웠으며, 그 종교적 갈등을 불교경전에는 62갈래의 다양한 사상(62見)들로, 자이나교 문헌에는 363가지의 다양한 세계관이 있었다고 전한다. 당시의 사상계를 크게 둘로 나누면 전통 바라문(Brahmanism) 사상과, 바라문 사상의 권위주의적인 입장에 반대하여 혁신적이고 자유로운 견해를 피력하는 일반자유사상(沙門)으로 나눌 수 있다.

기원전 1200년경, 인도 서북부의 일각으로 서(西) 트루키스탄으로부터 이주한 인도아리안은 자신들의 역사와 신앙을 신에로의 찬가라고 하는 형식으로 정리하여 이것을 '찬가의 책(Veda)' 즉 '리그베다(Rig Veda)'라고 이름 지었다.

리그베다가 후세 인도 아리안에게 준 영향은 결정적이며, 천지창조의 신화, 카스트의 기원, 신들의 힘 등 그 후의 인도인의 생활양식이나 생활신조는 모두가 이 시기에 결정되고 있었다.

이것을 인도 아리안의 사상활동 제1기라고 한다면, 이 후 기원전 1000년부터 800년경에 걸쳐서 위의 베다 본문 중에서 제사에 관한 사색과 실천을 대성하여 '브라흐마나'가 성립하며, 이어서 똑같이 철학적 부분에 관한 연구를 대성해서 '우파니샤드'가 완성되었다.

원래 유목민족이었던 아리안 족은 인도의 원주민들을 정복하고 농경생활에 정착하였고, 농업의 신장으로 하여금 가내 수공업의 발전과 이로 인한 잉여생산물로서 상공업을 발달시켰으며, 화폐 경제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로써 농경사회의 절대적 권위였던 사제(司祭), 즉 브라만 계급은 그 권위가 실추되기에 이르렀고, 제2의 계급인 왕족과 제3의 계급인 상인들이 제휴함으로써 이 두 계급의 사람들이 그 동안 오직 브라만만이 독점한 정신문화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는 자유로운 사상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등장한 '신흥종교가' 또는 '사상가'를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서 사문(沙門)이라 불렀다.

불교경전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견해들 중 대표적인 여섯 사람의 견해를 소위 육사외도(六師外道)라 소개하고, 이들의 견해가 잘못된 것이라는 입장에서 외도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불교의 주관적인 판단에 기인한 것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 여섯 입장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 전통 바라문 사상 (Brahmanism)

베다(vedaㆍ태陀), 브라흐마나(범서ㆍ梵書), 아라냐카(삼림서ㆍ森林書), 우파니샤드(오의서ㆍ奧義書)라는 문헌을 통해 전개된 종교사상이며 이에서 인도의 사성계급이 생겨나게 된다.

* 브라만(Brahman) : 사제계급, 아리안 족으로서 실질적인 실세였다.

* 크샤트리아(Ksatria) : 왕족, 정치자, 무사출신

* 바이샤(Vaisya) : 평민, 사농공상 종사

* 수드라(Sudra) : 노예, 인도의 원주민

(2) 일반자유사상 : (숙명론과 우연론)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어떤 신의 뜻, 또는 숙명에 의해서가 아니고 우연히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사상계열이다. 이들 일반자유사상들은 인과 법칙을 부정하고 있으며, 육사외도(六師外道)는 일반자유사상에 해당된다.

2. 삼종외도설(三種外道說)

불교도 크게 보면 자유사상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는데 이처럼 다양한 기존의 사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께서 새로운 진리를 찾아 고행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중아함』의 한 경전인 『도경(度經)』에는 당시 종교계의 사상적 혼란이던 전통 브라마니즘과 일반 자유사상을 크게 3種으로 묶어 삼종외도설(三鍾外道說)이라 하고, 또한 그 사상이 올바르지 못함을 2가지로 비판하셨다. (※ 六師外道 : 니간타의 자이니즘과 무인무연론의 5人을 가리킴.)

(1) 존우화작인설(尊祐化作因說) : 신의설(神意說)

바라문(Brahman)이 이에 해당된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의 근본 원인이 신(神)의 뜻이라고 판단하고 인간의 살생(殺生), 투도(偸盜) 등의 행위는 모두 신에 의존한다고 하는 것, 즉 세상만사 인간의 선악의 행은 모두 신(神)의 화작(化作)의 인이라는 유신론적 사상이다.

(2) 숙작인설(宿作因說) : 숙명론, 운명론.

니간타 나타풋타(Nigantha Nataputta)의 자이니즘(과거지향적 업설)로서 모든 것은 과거에 지은 바에 의해 결정되며, 정신을 계박 하고 있는 육체를 극렬한 고행을 통해 분리시킴으로써 생사를 벗어나 해탈할 수 있다고 주장. 그러나 두 요소의 결합이 이미 숙세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음. 삶의 모든 원인이 과거생의 숙명이라고 믿는 숙명론이다. 이 세상의 선악, 길, 흉, 고, 락 등은 모두 전세에 지은 업의 과보라고 한다. 따라서 현세에 있어서 살생, 투도 등은 현세에 있어서의 인간의 행위의 과가 아니라고 한다.

(3) 무인무연론(無因無緣論) : 우연론(偶然論)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어떤 신의 뜻이라든가 숙명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인과(因果)의 법칙을 부정하는 논이다.

* 도덕부정론- 푸라나 카싸파(Purana Kassapa) : 인과응보를 부정하고 선과 악이라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주장.

* 숙명론- 막카리 고살라(Makkhali Gosala) : 극단적인 필연론으로서 사명외도(邪命外道)라 불리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운명에 대하여 결정론의 입장을 취했다.

* 유물론- 아지타 케사캄바린(Ajita Kesakambalin) : 인간도 세계도 오직 물질적 원소일 뿐인 것으로 보아, 도덕을 부정하고 현실적 쾌락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주장.

* 회의론- 산자야 벨라티풋타(Sanjaya Belattiputta) : 모든 것은 의심스럽고 단정을 내릴 수 없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이다.

* 불멸론- 파쿠다 캇차야나(Pakudha Kaccayana) : 7요소설, 인간의 생명이나 특질은 영속한다는 상주론(常住論)을 주장, 물질적 존재들과 영혼으로 구성되었으며 결국은 물질에 의해 지배된다고 함

3. 삼종외도설에 대한 비판

부처님은 『중아함 권3』에 「만일 모든 것이 신의 뜻에 의해 일어난다고 하면, 우리들이 나쁜 업을 짓는 것도 그 때문에 짓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해야 한다, 이것은 해서는 안 된다는 의욕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또 노력이라는 것도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또 만일 모든 것이 과거에 지은 바에 의해 일어난다고 하면, 우리들이 나쁜 업을 짓는 것도 그 때문에 짓는다고 해야 할 것이고, 의욕도 노력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 만일 모든 것이 아무런 원인 없이 일어난다고 하면, 우리들이 나쁜 업을 짓는 것도 그렇게 일어난다고 해야 할 것이고 의욕도 노력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 하여 삼종외도에 대한 독특한 2가지 방법의 비판을 하셨다.

(1)세상의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만약 이 세 가지 잘못된 사상의 흐름이 근본적인 진리요, 궁극적인 진리라고 한다면 현실 삶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진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셨다.

(2) 인간의 잘 살려는 노력과 결과라는 업인과보의 명백한 사실과 모순

인간이 인간답다라고 하는 것은 무언가 창조적인 노력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절대자의 뜻에 의해서 결정된다거나 모든 것이 숙명에 의해서 좌우된다거나 혹은 모든 것이 필연성은 없고, 우연히 일어난다고 가정한다면 누가 애를 써서 좋은 것을 만들고, 가치 있는 것을 창조하는 등 애쓰고 노력하겠느냐 하는 문제다.

이상 살펴본 삼종의 외도사상과 이에 대한 비판은 단순한 불타의 입장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대표적 시대사조에 대한 불타의 적극적인 해답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부처님 당시 사상계의 세 가지 잘못된 흐름은 우리 인간의 창조적인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147. 부처와독사

석존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원정사(祈園精舍)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고 계실 때의 이야기다.

중인도(中印度)의 바라나시국은 범수왕(梵授王)이 다스리고 있었다. 언젠가, 한 사람이 나무를 하러 산속으로 깊이 들어갔더니, 숲 사이에서 갑자기 큰 사자 한 마리가 뛰어나와 무서운 얼굴로 이쪽을 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나무꾼은 도구를 거기에 내동댕이치고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도망을 쳤다.

사자는 (맛있는 먹이를 발견했다. 놓쳐서는 안된다.)하고, 또한 달아나는 나무꾼을 쫓아왔다. 그는 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다리가 움직이는 한, 있는 힘을 다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다가 고만 발을 헛디뎠다. 생각하는 순간 쿵하고 깊은 물 없는 우물 속에 빠져 버렸다. 가까스로 사자의 난을 피했다고 한숨을 쉬려는데, 쿵하고 몸에 세게 부딪히는 것이었다. 무엇이 떨어 졌는 가 했더니, 자기를 쫓아온 사자가 제 몸 위에 덮쳐 있으므로 다시 놀라 몸을 움츠리고 숨을 죽이고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고 덜덜 떨고 있었다.

그때, 이 우물가에서 독사 한 마리가 새앙쥐를 발견하고 그것을 잡으려고 쫓고 있었다. 또 나무 위의 한 마리의 소리개가 그것을 보고 새앙쥐를 가로 채려고 날아 내려왔다. 우물가에서 새앙쥐와 독사와 소리개가 삼파전(三巴戰)을 벌리고 서고 쫓고 쫓기고 하다가 세 놈이 함께 우물속으로 빠졌다. 독사와 소리개는 비좁은 우물 속에서도 여전히 나쁜 마음을 일으켜 잡아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사자는 더욱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네놈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이 우물 안에서는 내가 제일 힘이 세다. 잡아먹기로 마음먹으면, 모두 다 내가 먹어 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가 우물 속에 빠져 어쩔 수가 없는 재난을 당하고 있으니 그런 나쁜 마음 따위는 일으키지 마라.』

하고 큰 소리로 꾸짖으니 독사도 소리개도 꼼짝 못하고 있었다.

이때 한 사냥꾼이 사슴 사냥을 나와 이 우물가를 지나다가 우물 속이 시끄러워 들여다보았더니, 사자니 사람이니 하는 것들이 겹쳐서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우물 안의 나무꾼은,

『제발 살려 주시오.』

하고 크게 외쳤다. 이 소리를 들은 사냥꾼은 사람위에 있는 사자를 먼저 우물에서 끌어 올려 주었다. 그랬더니,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하고, 끌려 올라온 사자는 사냥꾼의 발에다 대고 정성껏 절을 하고 나더니,

『사냥꾼님, 우물 속에 있는 독사는 은혜를 모르는 놈입니다. 그 놈은 구해 주어도 오히려 당신에게 이로울 것이 없으니 구해 주지 마십시오.』

하고 충고하고 사라졌다. 사자의 충고도 있었지마는 사냥꾼은 사람도, 독사도, 새앙쥐도, 소리개도 차례차례 우물에서 구해 내어 주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의 어느 날, 우물에서 구함을 받은 사자는 한 마리의 사슴을 잡아 가지고 전날의 사례로 사냥꾼의 집을 찾아 왔다.

『이것은 약소합니다마는 전날의 사례로 생각해서......』

하고 내어놓고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어느 날, 범수왕(梵授王)은 좌우에 많은 신하와 궁녀들을 거느리고 어느 꽃동산에 놀러 오셨다. 그 꽃동산에서 마음껏 논 왕은 피로를 느끼고 이내 잠이 드셨다. 왕이 잠이 들었으므로 신하와 궁녀들은 갑자기 긴장이 풀려 앉아서 이야기에 꽃은 피우는 사람도 있고, 손에 손을 잡고 동산에서 즐겁게 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은 동산을 나와 멀리로 간 사람도 있고, 옷을 벗거나 목걸이를 땅에 벗어 놓은 채 몰골사납게 땅 위에 쓰러져 자는 등 각기 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우물에 빠져 고생할 때에 사냥꾼에게 구원을 받는 소리개는 이 꽃동산 나무 위에 앉아 있었는데, 궁녀가 목걸이를 벗겨 놓고 자고 있는 사이에 날아 내려가 그 목걸이를 물고 급히 사냥꾼의 집으로 날아가 사례의 선물로 그 목걸이를 사냥꾼에게 주었다. 그런 일이 있은 줄도 모르고 잠이 들었던 궁녀는 왕이 잠에서 깨어 돌아가신다고 하는 바람에 급히 옷을 주워 입고 목걸이를 걸려고 했으나 온데 간데 없으므로 깜짝 놀라,

『임금님, 저는 소중한 목걸이를 도둑맞았습니다.』

하고 하소연 하였다.

『목걸이를 잃어버린 사람이 있다고 하니 모두들 찾아 주어라.』

하고 왕은 명령하였다. 신하들은 이곳저곳 목걸이 있는 곳을 찾았으나 암만해도 보이지 않으므로 그날은 그냥 대궐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신하들이 열심히 목걸이를 찾고 있는 것을 숲에서 바라보고 있던 검은 머리의 독사는 어쩌면 목걸이는 나를 구해 준 저 사냥꾼의 집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사냥꾼의 집에 가서 넌지시 주의해 보고 있었다. 생각했던 대로 목걸이가 있는 것을 본 독사는 자기를 구해 준 은혜도 잊어버리고 단숨에 왕에게로 달려갔다.

『임금님께서 잃어버린 목걸이는 사냥꾼의 집에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직접 보고 왔으므로 알려 드립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괘씸한 사냥꾼이라고 대노하여 당장 사냥꾼을 잡아 들이라고 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사냥꾼은 왕 앞에 끌려나와 땅에 머리를 조아리며, 어쩔줄을 몰라 하였다. 왕은,

『너는 꽃동산 안에서 목걸이를 훔쳤지.』

하고 다그쳐 물었다.

『아닙니다. 저는 목걸이를 훔치지 않았습니다. 실은 소리개가 가져다 주었으므로 저의 집에 있기는 합니다마는 결코 제가 훔친 것은 아닙니다.』

하고 사냥꾼은 목걸이가 제집에 있는 까닭을 자세히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그 목걸이를 돌려 주었다. 그러나 사냥꾼에게 걸린 절도 혐의는 풀리지 아니하였다. 그 때문에 사냥꾼은 꽁꽁 묶여서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이때, 새앙쥐는 은인인 사냥꾼이 묶여있는 것을 보고, 곧 독사의 왕을 찾아가서,

『뱀왕님, 당신의 신하인 저 검은 머리 뱀은 은혜를 모르는 무도한 놈입니다. 자기의 은인을 제 명예를 위하여 오라를 지워 감옥에 넣는 짓을 했습니다. 아무쪼록 당신의 힘으로 처벌해 주십시오.』

하고 호소하였다. 뱀왕은 이 새앙쥐의 말을 듣고, 동족(同族)이 저지른 무도한 행위를 미워하여,

『그놈은, 참으로 고약한 놈이로구나. 네가 은혜를 갚으려거든 사냥꾼에게 이렇게 전해 다오. 나는 이로부터 곧 대궐로 가서 왕을 물터이니 사냥꾼이 주문(呪文)을 외면 내가 문 독이 빠지게 되는 것으로 연극을 하자. 만일, 왕의 아픔이 사냥꾼의 주문으로 낫게 되면 왕은 기뻐서 그를 용서할 것이다. 또 많은 상도 주실 것이다. 너는 빨리 가서 그에게 전해라.』

하고 말하였다. 이 계획을 들은 새앙쥐는 매우 기뻐하면서 그 사연을 옥에 갇혀 있는 은인에게 넌지시 알렸다.

『그것은 참으로 고맙구나.』

하고 사냥꾼도 기뻐하였다. 뱀왕은 약속한대로 왕궁으로 몰래 들어가 왕의 몸을 물고 도망쳤다. 뱀의 독이 온 몸에 퍼져 범수왕(梵授王)은 몹시 괴로워하였다. 명의(名醫)라는 명의는 모조리 불러다가 치료를 받았지마는 아무런 효과도 보지를 못했다. 이제는 이 사실이 온 대궐안에 알려져서 궁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시름에 잠겨 버렸다. 왕이 독사한테 물려 앓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죄수(罪囚) 사냥꾼은 마음 속으로, (드디어 때가 왔구나.)하고,

『여보, 간수님, 왕께서 독사에게 물려 고생하고 계시다는데, 내가 한번 주문을 외어 고쳐 드리리다.』

하고 말하였다. 누구든지 신분의 고하(高下)따위를 생각할 때가 아니므로 간수는 곧 사냥꾼의 신청을 왕에게 아뢰었다. 괴로움에 신음하고 있는 범수왕은,

『죄수라도 괜찮다. 당장 오라를 풀고 데려 오라.』

하고 명을 내렸다.

사냥꾼은 오래간만에 오라에서 풀려 간수의 안내로 왕의 베갯머리로 나아가서 중얼중얼 주문을 외었더니, 그렇게도 심하던 아픔도 씻은 듯이 사라지고 당장 나았다. 명의의 투약(投藥)으로도 낫지 않던 아픔이 사냥꾼의 주문으로 감쪽같이 나았으므로 왕은 크게 기뻐하여 사냥꾼을 용서하는 동시에 많은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이 때의 사냥꾼은 지금의 석가모니이시다.

(毘奈耶破僧事第十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