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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신 장군이…적장이 맡긴 고아를, 교수로 키웠다

應觀 2014. 4. 24. 09:43

 

 

 

 

 

 

 

채명신 장군이…적장이 맡긴 고아를, 교수로 키웠다 

30일 오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제2 병사묘역.

지난달 25일 별세하면서 ‘장성묘역 대신 병사묘역에 묻히기 원한다’는

유언을 남긴 베트남전의 영웅 고(故) 채명신 장군의 삼우제가 치러졌다.

 

부인 문정인 여사와 아들·딸을 비롯한 유족들,

베트남전 참전 노병들이 추모 예배를 하며 고인을 기렸다.

 

이 자리에선 4일장으로 치러진 채 장군의 장례 기간 내내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들을 맞았던 채 장군의 동생 채모(76)씨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나흘간 밤샘하며 쌓인 피로를 걱정해

“삼우제는 직계가족만으로 치를 테니 나오지 말라”는 문정인 여사의

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생 채씨는 채 장군이 60년 넘게 숨겨온 또 다른 미담의 주인공이다.

 채씨는 채 장군이 1951년 초 강원도에서 생포한

조선노동당 제2 비서 겸 북한군 대남유격부대 총사령관(중장)

길원팔이 아들처럼 데리고 다녔던 전쟁고아였다.

당시 육군 중령이던 채 장군은 유격부대 ‘백골병단’을 이끌며

강원도 내에서 암약하던 북한군 색출작전을 펼쳤다.

채 장군에게 생포된 길원팔은 채 장군의 전향 권유를 거부하고

 채 장군이 준 권총으로 자결했다.

 

그러면서 “전쟁 중 부모 잃은 소년을 아들처럼 키워왔다.

저기 밖에 있으니 그 소년을 남조선에 데려가 공부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적장(敵將)이지만 길원팔의 인간됨에 끌린 채 장군은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그 소년을 동생으로 호적에 입적시켰다.

이름도 새로 지어주고 총각 처지에 그를 손수 돌봤다.

소년은 채 장군의 보살핌에 힘입어 서울대에 들어가

서울대 대학원에서 이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울 유명 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

 

채 교수는 10여 년 전 은퇴했다.

두 사람은 채 장군이 숨질 때까지 우애 깊은 형제로 지내왔다고 한다.

채 장군의 자녀들은 그를 삼촌으로,

채 교수의 자녀들은 채 장군을 큰아버지라고 부른다.

 

문정인 여사는 지난달 29일 서울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중앙SUNDAY 기자와

만나 “채 장군이 길원팔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채 교수를 동생으로 맞은 것”

이라며 “채 장군이 생전에 길원팔 칭찬을 많이 했다.

 

적장이긴 하지만 사나이 중의 사나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문 여사는 “채 장군이 채 교수를 (아들이 아닌) 동생으로 입적한 건

채 장군의 나이(당시 25세)가 젊었고

채 교수와의 나이 차도 11세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채 교수가) 형님이 별세하신 데 대해 크게 슬퍼했다.

나흘 내내 빈소를 지켰다”고 말했다.

채 장군은 총각 시절 본인이 손수 소년을 돌보다

그가 고교생이 됐을 무렵 문 여사와 결혼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주변 사람에게 소년을 맡기고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 서울대에 진학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채 장군은 북한군 고위 간부가 데리고 있던

고아 소년을 입적시킨 사실이 문제가 돼

 군 생활이나 진급에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채 장군에겐 친동생 명세씨가 있었다.

하지만 51년 채 장군이 연대장으로 복무하던 5사단의

다른 연대에 소대장으로 배속돼 북한군과 교전을 벌이다 전사했다.

 

이에 따라 채 교수는 형제자매가 없던 채 장군에게 유일한 동생이 됐다.

채 장군 본인도 지난 5월 초 고인의 마지막 언론 인터뷰가 된

 중앙SUNDAY의 ‘이광재가 원로에게 묻다’ 대담 당시 비보도를 전제로

“길원팔이 자결하면서 데리고 있던 10대 남녀 아이를 돌봐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여자아이는 전쟁통에 숨졌으나 남자아이는 아들처럼 키웠다.

사랑으로 키웠다. 대학 교수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채 장군은 당시 “그(채 교수)의 인생이 중요하니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했다.

문 여사도 29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절대 주변에 알리지 않고

지내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며 기사화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본지는 적장이 아들처럼 데리고 다닌 소년을 동생으로 입적시켜

 대한민국 엘리트로 키워낸 채 장군의 선행이 이념 갈등 해소와

 남북 화해의 귀감이 될 것으로 판단해 기사화를 결정했다.

채명신 장군이 김일성의 오른팔로 불렸던

북한군 간부 길원팔이 맡긴 소년을 동생으로 삼은 건

채 장군과 길원팔의 짧고도 극적인 만남 때문이었다.

 

51년 3월 25세 때 북한군 후방에 침투하는 한국군 최초의 유격부대

‘백골병단’을 지휘하던 채 장군(당시 중령)은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의 군량밭이란 마을을 급습했다.

 

 “인민군 거물 길원팔이 숨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직후였다.
채 장군은 그곳을 지키던 북한군들에게 평안도 말씨로 “중앙당에서 나왔다.

조사할 게 있으니 협조해달라”고 말해 안심시킨 뒤 그들을 전원 사살했다.

 

 이어 세포위원장 집에 숨어있던 길원팔을 붙잡았다.

그에게선 김일성 직인이 찍힌 작전훈령과 전선 사령관들에게 보내는

친필 서한 등 특급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채 장군은 방에서 길원팔과 단둘이 마주보고 심문에 들어갔다.

채 장군의 질문에 침묵을 지키던 길원팔은

 “네 놈은 누구냐”고 되물었다.

“대한민국 국군 유격대 사령관 채명신”이라고 답하자

“그 썩어빠진 이승만 괴뢰도당 중 이곳까지 침투할 놈은 없다.

반란군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채 장군은 자서전에서

“길원팔은 조금도 당황하거나 불안한 기색 없이 침착하고 당당했다.

그는 확실히 거물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채 장군은 “당신 같은 사람은 나와 함께 남쪽으로 가면 영웅 대접을 받을 것”

이라며 전향을 권유했다.

 

그러자 길원팔은 “썩어빠진 땅에 왜 가느냐”며 일축했다.

이어 “부탁이 있다.

김일성 동지에게 선물받은 내 총으로 죽고 싶다”고 말했다.

 소년(채 교수)을 거둬달라는 부탁과 함께였다.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한 채 장군은

길원팔의 총에 실탄을 한 발 넣어 건네주고 몸을 돌려 방을 나왔다.

 

잠시 후 총소리가 났고 길원팔은 책상에 머리를 숙인 채 숨졌다.

훗날 “혹시라도 길원팔이 뒷통수를 쏠 것이란 걱정은 안 들었나”는

주변의 질문에 채 장군은

 “늘 하나님이 방패가 되는 걸 믿었기에 두려움이 없었다”고 답했다.

 

채 장군은 양지바른 곳에 길원팔을 묻고

 ‘길원팔지묘(吉元八之墓)’란 묘비를 세운 뒤 부하들과 함께 경례했다.

채 장군은 자서전에서

“적장이었지만 그는 충분히 경례를 받을 만한 장군이었다”고 적었다.

-홍명시 제공-

늙은이의 분노!

 

우린
5인치반 플러피 디스크 XT시대 늙은이다.


모질게 태어나서 8/15, 6/25, 4/19, 5/16, 등등
팔자 사납게 다 겪고, 이제는 어디론지 돌아갈 날이나
기다리고 앉아 있는 뒷방 늙은이다.


니놈들 타고난 팔자 좋아 잘 먹고 잘 살고,
흥청거리는 거야 뭐라겠냐.

 

니놈들 세상 모르고 한심한 발광을 해도
뒷방구석에서 혀나 차고 엎드려 있기는 한다.

그러고 참고 또 참고있는 거다..

그런데 다 산 세상 늙은이 입에서 '이눔들아!' 소리가
절로 나오니 이젠 어쩔수 없이 말 좀 해야겠다.


우린 콩나물 함지박을 머리에 인 어머니 등판

엉덩이에 걸쳐 울지도 못히고 자랐다

울어 봤자 엄마한테 얻어나 맞았다.

그래도 우리는 그 어머님들이 고마워 지금도 눈물이 난다.
하기야 니놈들 그 따위로 길러놓은 우리니 할 말도 없다마는....


우리는 하도 가난 속에 살아서,
잘 나보기는커녕 니놈들 먹여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잘나는 거보다도 니들 먹일 게 더 급했다.
네 할아비 할미들의 소원이 뭐였는 줄 아냐?

 

? 언론자유? 민주주의?


그냥 '새벽종이 울렸다! 잘살아 보세!' 가 꿈이었다.


밤이 있었냐? 낮이 있었냐?

눈뜨면 일이고, 쓸어지면 잠이었다.

라면 끓여 먹을 시간이 없어 날로 먹었다.


니들 원두커피 그것도 골롬??이니,
자마이카, 불루마운틴이니, 그리고 눈깔 감고 냄새 맡고,

혓바닥 굴려가며 처마시는 원두커피가 뭐냐?


박통이 밤새 머리털 꼬매 번 딸라 돈 아까워서
콩 볶아 태워 갈아서 그걸 커피로

마시자 했다.


그런걸 백밤 천밤을 새고 얘기하래도 끝이 없다.
그래 맞다! 박통이 군사독재 했다.

나도 젊어서는 니놈들보다 더 간덩이가
부었어도 벌벌 떨고 살았다. 그래 그것도 맞다!
정치하고 거리가 먼 나도 젊어서 박통 미워했다.

그러니 정치해 보겠다고 나선 놈들이야 오죽하겠냐?
박통! 그러면 치가 떨리고 경끼가 날 게다.


툭하면 니놈들 민주투사라고 나서는데,
니가 뭐해서 민주투사냐?


선량한 어린애들 선동질 해서 길거리에
머리띠 두르고 돌팔매질 시키는 게 민주투사냐?


이놈들아! 김정일이한테 가서 길거리에
머리띠 두르고 돌팔매질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

모르느냐? 이놈들아!
말라붙은 양심 껍질이라도 남은 게 있으면

어디 민주투사라는 말을 입에 담느냐! 빨갱이투사지!

그게 싫으면, 차라리 인민투사라고 해라!

이 발칙한 놈들아!

목소리 커서 큰소리 지르는 눔이 이기는 세상이

민주국가더냐? 이 미x놈들아!


배달민족 치고 통일조국 그거 안 바라는 놈이 어디 있느냐?
한 맺힌 이산가족의 원을 나 몰라라 그러는 놈이

 

어디 있느냐?


그런데 누가 반대해서 민족통일이 안 되는 거냐 !!

니놈들이 싸고 도는 김정일이란 놈 때문에 안 되는 거지!

지금 당장이라도 조국통일이 되려면 김정일이 아가리에
남조선이고 뭐고 다 쑤셔 넣어주면 통일이다.


이놈들아! 니놈들 바라는 통일이라는 게 바로 그거냐?

언필칭, 니놈들은 조국, 민족 그러고 나오는데,
김정일이가 조국이고 민족이냐?

김일성이 김정일이 지금 이북에 있는 니 동포
인민들을 무얼로 만들어 놨냐?


세계에 없는 어릿광대 바보 인민을 만들어 놓은 거는 놔두자!

풀 뿌리 캐러 다니는 거지들로 만들어 놓고도

위대한 수령이란다.

그리고 그런 불법집단이 남한을 먹어 치우려고 든 것이
쓰라린 민족상잔의 육이오란 것이다.


제 민족이 제 민족을 살육하고 때려 부수는
상상도 할 수 없이 어처구니없는 전쟁을

저지른 것이 빨갱이 김일성이다.
이 미친 놈들아! 니놈들 미쳐 날뛰며 미국기 찢는 거 보고

미국 사람들 느낌은 어땠겠느냐?

뭐 주구 뭐 맞는다는 거가 이런 거구나!

그랬을 꺼다.
이런 천하에 배은망덕한 놈들아!


도대체 미국 군인들한테 뭘 그리 뼈저리게 당했냐?

나라를 빼앗아갔느냐? 못 먹고 못살게 했냐?


미국놈이 아니라 미국님이다!

인종이 제대로 되고 착하면

좋은 쪽도, 나쁜 쪽도 제대로 보아야 한다.
니놈들이 미국 때문에 덕을
보았으면 보았지 손해 본 게 뭐냐?

그렇게 저주하는 미국에 새끼들은 왜 보내냐?
니놈들이 김일성 김정일한테 은혜입고 덕 본 건 또 뭐냐?

하도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

 


이놈들아!

기왕에 잘나지 못했으면 못난 짓이나 하지 말아야지!

여학생이 탱크에 치어 죽었다고 유관순보다 더
위대한 열사로 만들고 싶은 거냐?

그야 물론 애들 치어 죽은 거 없었으면 좋았던 불상사다.
이놈들아! 사고 낸 미국 군인이 한국에 놀러와서

제 볼일 보러 싸지르다 사고냈냐?

그 놈들도 저희 나라 정부에서 내린 명령 받고

공무 중에 탱크 몰다가 사고냈다.

물론 과실치사도 사실이지만 탱크소리가 보통 크냐?

애들이 거기서 뭘 했길래 그런 탱크소리가 등뒤에서

나도 모르고 치었으니 당한 책임도 있는 거다.

이놈들아!

촛불 들고 지x발광하는 그 시간에 꽃다운 니놈들

친구가 서해바다에서 김정일이에게 개죽음을 당했다!
이런게 바로 국가 민족을 지키다 죽은 고귀한 죽음이다.

니놈들 그 죽음에 대해서 뭐라고 했냐?

좌우간, 이 놈들아!
김정일이 좋아할 일은 별 개지랄 다했어도,
니놈 인민투사들 이 나라 이민족 위해서

니놈들이도움되는 일한 게 무어냐?

그게 소위 민주화 운동이라고?
그게 빨갱이 운동이지 민주화 운동이냐?

철면피 쓰고 벼락을 맞을 놈들아!
이제 니놈들 말끝마다 미국이 제 실속 차릴라고


주한미군 주둔을 한다고 물러가라고 악 썼는데

이제는 미국이 물러가겠단다.
미국은 옛날 미국이 아니다.


그리고 정말 물러 갈 거란 건 니놈들도 다 알거다.

좌우간 니놈들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뭘 했냐?
뭐가 그리들 잘나고 대단해서 날뛰느냐?


김정일이한테 붙어먹건 무슨 사기질을 하건
한자리하고 싶은 야바위 꾼들이지!

너희 놈들이 어째서?

?

그리 조국을 위한다고 나서는 거냐?

언제부터 니놈들한테 조국이 그리 대단했냐?
교통질서 하나도 제대로 못 지키는 놈들이

조국, 민족을 위한다고 입에 게거품 물고
미친 놈들처럼 날뛰느냐!!

조국 위한다고 나서지 않는 것이 조국을 위하는 길이다.


니놈들 해놓은 공적(?)이 있다면 김정일이나
좋아할 일을 했지, 벌써 니놈들이 저질러 놓은
일이란 조국을 다리 팔 분질러 만들었다는 거나 알아라!

.

니놈들 에비타 아냐?
세계 6대 부국 알젠틴을 에비타가 작살 내 놨다.
니네 나라도 벌써 김비타 노비타가 작살을 다 내놨다.

나는 외국에서 사는 한갑 진갑 다 지난 늙은 할아범이다.

정동영이란 친구 말마따나 뒷방에서
편안하게 쉬어야 하는 할아범이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나라를 뒤엎어
말아 먹겠다고 설치는 세상이니

하도 기가 막혀서 편안하게 쉴 수가 없다.
이 죽일 놈들아! 너희 조국이 어떤 나라인 줄 아냐?

천하에 뻔뻔한 놈들... 빌어먹을
민주투사 소리라도 좀 하지 마라!

너희들이 내뱉는 민주투사 소리를 들으면
열불이 나서 뒷방구석에서 뛰어 나오고 싶어진다.


이 뻔뻔한 놈들아!
우리한테 조국은 내 평생을 바친 귀한 조국이다!

김정일이한테 갔다 바치라고 있는 고생

없는 고생으로 빚어 만든 조국이 아니다.

알겠냐 ?

 

이놈들아,

니놈들이 뭘 알구 있냐 ?

하도 기가 막혀서 편안하게 쉴 수가 없다.
이 죽일 놈들아!

너희 조국이 어떤 나라인 줄 아냐?

건국 이래 민주화 투쟁을 평생 했다는 김영삼,김대중이가

대통령 당선된 뒤 그들의 종말이 무엇이였는지 아냐?
국가부흥 가로막고 나라경제 박살 내고
제새끼 배때기 채운것이 민주투쟁이냐?


또 독재 몰아내자고 운동권에 참여했던
노무현, 이명박이 대통령되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대가로 우리에게 남겨준것이

무엇인지 아냐?
국민의 눈속여 권력 남용해 제형놈과 친,인척의 배때기

불리는데 국고 털어 먹고

국민 소득 2만불을 20년동안
한푼도 못올린것이 진정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결과라고 보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되냐?


이자들은 대한민국 헌법을 종이쪽지로 알고
종북 정책과 이념도 없는 실용중도 노선을 앞 세워

주체성 없는 교육으로 국가 교육기반을

허물어 버린 장본인 임을 잊지말자.!


쓰레기만도 못한 이 뻔뻔한 놈들아!
우리한테 조국은 내 평생을 바친 귀한 조국이다!

글쓴이 : 장학포 : 받은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