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종교와 나

唯吾知足

應觀 2014. 1. 30. 19:43

 

吾唯知足이 아니라 唯吾知足이라고 읽는 것이 조금 더 나을 것 같습니다. 吾唯知足이라 읽어도 되지만 唯가 앞에 나와서 모종의 깨달음이나 각오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도치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唯吾知足의 唯는 [오로지] 정도로 새기면 될 것 같습니다. 직역하면, [오로지 저는 知足할 뿐입니다], 또는 [저는 지족할 뿐입니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唯吾知足이 처음 보이는 것은 중국 한대의 동전입니다만, 불경이나 불가의 이야기집 어딘가에 있을 기도 한데 불가의 도리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터라 잘 알 수 없습니다.  대신 아래에 묵월이라는 분의 글 일부를 우리말로 옮겨 봅니다. 원본 글은 여기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본문에는 [唯吾知足]이란 표현은 보이지 않고 제목으로 [唯吾知足]를 사용하거나 코멘트에 달아놓은 유사한 내용의 글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번역된 내용이 우리나라에서 책에 실리기도 했는데 인생의 교과서인생에 리허설은 없다그것입니다.

 

=======================
话说圆音寺横梁上一只蜘蛛因听佛祖讲经而有了佛性,一心想修成人形。佛祖有心渡她。便开口对蜘蛛说:“你即已有灵犀,那我来问你,你认为人生最珍贵的东西是什么?”蜘蛛不假思索的回答:“人生最珍贵的东西是得不到。”佛祖笑笑不再理会她了。
전하기를, 원음사 석가래 위에 부처의 경전 강의를 들으며 불성을 조금 이룬 거미가 한 마리 있었는데 깨달음을 얻어 사람이 되기를 늘 소원하였다. 부처의 마음이 움직여 거미에게 물었다. "너 이미 얻은 것이 좀 있는 것 같구나. 내 하나 물어 보마. 인생에 있어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거미는 즉시 대답했다. "가장 귀한 것은 '얻지 못한 것'입니다." 부처는 웃고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就此过了一千年,蜘蛛仍旧天天听禅诵经,盼望有一天能修得人形。突然有一天一滴甘露滴在蛛网上,看着这一滴晶莹剔透的露珠,蜘蛛动了凡心。正当他慢慢接近露珠时,一阵长风把露珠吹走。蜘蛛望风长叹,从此无心相佛,愁容满面。
천 년이 지났는데, 거미는 여전히 독경 소리를 듣으며 언젠가는 사람이 되리라 소망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방울의 감로가 거미줄 위에 떨어졌는데 수정으로 깍은 듯 영롱한 방울이 거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슬슬 다가 가려는데 일진의 바람이 불어 감로 구슬을 날려 버렸다. 거미는 바람을 바라보면서 한 숨을 쉬었고, 무심한 부처 얼굴 같았던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게 되었다.

 

此时佛主又开口问蜘蛛:“你认为人生最珍贵的东西是什么?”  蜘蛛叹了一口气回答:“人生最珍惜的东西是已失去。”佛主笑笑说:“好吧,蛛儿,我就让你到人世去走一遭吧。”
이 때 부처가 다시 거미에게 물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거미는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대답했다.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은 '이미 있던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부처가 웃으며 말하였다. "좋다. 거미야, 인간 세상에 한 번 나가 보아라"

 

百年转眼即逝,佛主再次出现已是蛛儿在人间弥留之时。佛主再次提问:“蛛儿,你认为人生最珍贵的东西是什么?”此时白发满头的蛛儿才恍然领悟:“人生百年就如长风吹走甘露,一切心中欲望之物皆为镜像。最珍贵之物也不过平常之物,而平常之物反倒是最珍贵之物。愿来世我仍能做圆音寺横梁上的一只蜘蛛,天天听禅诵经。唯吾知足。”
백년이 순식간에 지나갔을 때 부처는 아직 인간으로 있는 거미에게 다시 물었다. "거미야, 인간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 너는 알겠느냐?" 이 때 백발 노인이 된 거미는 황연히 깨닫고서 대답하였다. "인생 백년은 바람이 이슬을 날려 버리듯 지나가는 것이며, 마음의 모든 욕망은 다 허상입니다. 가장 귀한 것은 일상이며 일상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내세에도 원음사 석가래 위의 한 마리 거미가 되어 날마다 독경 소리나 듣기를 원합니다. 지족할 따름입니다"

오유지족(吾唯知足)



작품 : 와각(기와에 새김) /일봉



오유지족(吾唯知足)한 삶이란?

"口"를 가운데에 두고 좌우상하에 각각 글자가 모여 1개의 글자를 이루고 있다.
(너와 내가 만족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나는 오직 족함을 안다.'
'나는 현재에 만족할 줄 안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라.(쓸데없는 욕심을 버려라.)'

나는 오직 만족한 줄을 안다.
모름지기 자신의 분수를 알고 적은 것(小欲)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모든 사람이 고루 행복해진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듯,
모든 것이 순리대로 풀려야 하고,
모든 것이 진리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오유지족(吾唯知足)의 일화


첫번째 이야기..
옛날에 한 심부름꾼이 상인과 길을 걷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자 그들은 강가에 앉아 밥을 먹으려 했다.
그때 느닷없이 까마귀떼가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상인은 까마귀 소리가 흉조라며 몹시 언짢아하는데,

심부름꾼은 도리어 씩 웃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상인은 심부름꾼에게 삯을 주며 물었다.
"아까 까마귀들이 울어댈 때 웃는 이유가 무엇인가?"
"까마귀들이 저를 유혹하며 말하기를, 저 상인의 짐 속에 값진 보물이 많으니
그를 죽이고 보물을 가지면 자기들은 시체를 먹겠다고 했습니다."
"아니, 그럴 수가? 그런데 자네는 어떤 이유로 까마귀들의 말을 듣지 않았는가?"
"나는 전생에 탐욕심을 버리지 못해 그 과보로 현생에 가난한 심부름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탐욕심으로 강도질을 한다면 그 과보를 어찌 감당한단 말입니까?
차라리 가난하게 살지언정 무도한 부귀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심부름꾼은 조용히 웃으며 길을 떠났다.

그는 오유지족의 참된 의미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유지족이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 대해 만족하라는 가르침이 담긴 말이다.

두번째 이야기..
1519년 서른네 살 김정국(金正國:1485~1541)은 기묘사화로

선비들이 죽어나갈 때,
동부승지의 자리에서 쫓겨나 시골집으로 낙향을 해
고향에 정자를 짓고 스스로 팔여거사(八餘居士)라 불렀다.

팔여(八餘)란 여덟 가지가 넉넉하다는 뜻인데,
녹봉도 끊긴 그가 “팔여”라고 한 뜻을 몰라 친한 친구가 새 호의 뜻을 묻자,
은퇴한 젊은 정객은 웃으며 말했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뜻한 온돌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하게 맡는다네.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기에 ‘팔여’라 했네."


김정국의 말을 듣고 친구는 팔부족(八不足)으로 화답했습니다.

“세상에는 자네와 반대로 사는 사람도 있더군.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어도 부족하고,
휘황한 난간에 비단 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
울긋불긋한 그림을 실컷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기생과 실컷 놀고도 부족하고,
희귀한 향을 맡고도 부족하다 여기지.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부족함을 걱정하더군.”


석주(昔珠) 스님 作
 
吾唯知足(오유지족)
나는 오직 족(足)함을 알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해,
6년의 고행 끝에 깨달으신 바를
제자들에게 유언처럼 남기신 말씀.

모든 일에 있어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極樂에 있어도 그것을 모른 채
부족하다는 푸념만을 할 것이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땅바닥에 누워서 잠을 자는 상황이라도
즐겁다는 생각에 늘 행복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석주(昔珠)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