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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에 숨은 재인폭포

應觀 2014. 2. 6. 20:59

[박종인의 사람과 길] 날카로운 절벽 사이로… 나타났다, 숨어 있던 폭포가

  • 박종인 여행문화 전문기자

     

  • 입춘이 지났는데 이리 춥다. 시시각각 북상하는 조류인플루엔자에 어디 맘 놓고 갈 곳도 없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름하여 연천 기경(奇景).

    탐욕스러운 사내들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재인폭포다. 한탄강 협곡에 숨어 있는 은밀한 풍경이며 삭막한 겨울에도 눈을 즐겁게 해주는 폭포다.

    협곡에 숨은 재인폭포

    연천은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점에 있다. 3번 국도 통일로를 따라 전곡읍내를 지나 우회전해 궁평삼거리까지 간다. 거기에서 좌회전하면 여행이 시작된다. 문득 풍경이 달라진다.

    (위부터) 재인폭포와 주상절리(柱狀節理) / 벽면에 뚫린 작은 동굴 안에 쌓아놓은 돌탑

    우선 재인폭포다. 폭포는 한탄강에 있다. 철원, 연천, 포천 일대를 흐르는 한탄강은 화산활동이 만든 협곡이다. 용암이 흘러가며 깎아놓은 협곡을 따라 강줄기가 형성됐고, 가끔은 그 강줄기가 푹 꺼지며 폭포가 됐다. 그래서 재인폭포는 보이지 않는다. '내려가야' 볼 수 있다.
    주차장 오른쪽 산책로 끝이 전망대다. 바닥을 강화유리로 만든 전망대 왼쪽 아래에 폭포가 있다. 얼어붙은 물줄기 양편으로 날카롭게 각이 진 바위들이 자기들 세상을 이뤘다. 주상절리(柱狀節理)다. 공기 중으로 나온 마그마가 급하게 식어 줄어들면서 사각, 육각형 기둥처럼 굳은 지형이다.

    아래로 내려가면 절벽면에 뚫린 작은 동굴들 안에 쌓아놓은 돌탑들이 보인다. 지표 아래에 있는 폭포도 신기하거니와 비현실적인 풍광은 더 신기하다. 아래까지 내려가는 철계단은 미끄럽다는 이유로 자물쇠를 걸어놓았다. 세금 엄청나게 들여서 만든 계단을 잘 관리할 생각은 않고 문을 잠가 버렸으니 이 무슨 낭비인지 모르겠다.

    전설은 이러하다. 조선 시대에 이곳 줄타기 재인의 부인을 탐한 원님이 폭포 위에 줄을 걸고 재인에게 줄을 타라고 했다. 원님이 줄을 끊어 재인은 떨어져 죽었고, 수청 드는 척한 부인은 원님 코를 물어 잘라버리고 자살했다. 그리하여 이곳 지명이 '코문리'가 되었고 지금 고문리로 바뀌었다는 이야기. 혹은 오만방자한 재인이 마을 사람과 아내를 걸고 폭포 위 줄타기 내기를 했는데, 거의 다 건널 때쯤 아내를 빼앗기게 된 마을 사람이 줄을 끊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두 이야기 모두 불쌍하게도 여자들이 등장한다.

    안개 속 고구려 고분

    신답리 고분

    궁평삼거리에서 재인폭포로 가는 도로변 풍경 또한 낯설다. 오른편은 한탄강 협곡, 왼편은 군 훈련장인데 안개라도 끼면 멀리 산봉우리와 앞 들판 나목(裸木)들이 만드는 낭만을 즐겨보시라.

    이 길섶에 있는 신답리 고분에도 들러본다. 남쪽에 몇 없는 고구려 고분인데, 긴 세월 방치돼 석실(石室)에 썼던 현무암도 밖으로 나와 있는 크고 작은 고분 2기가 잔디밭에 나란히 앉아 있다. 화산 시대 폭포를 보고 고구려 고분을 찾으면 기분이 묘하니, 이 또한 기경이다.

    터널 속에 빛나는 얼음기둥

    연천 고대산 중턱에 있는 ‘역고드름’ 터널.
    떨어져내린 물방울이 종유석처럼 기둥으로 솟아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슬라이드쇼를 볼 수 있습니다)

    신탄리역으로 북상한다. 신탄리에 도착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풍경이 기다린다. 국어사전에 없는, '역고드름' 터널이다.

    역에서 3.5㎞ 더 가면 오른편 고대산 중턱에 일제강점기에 만들다 만 터널이 하나 있다. 그 안은 지금 얼음 세상이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종유석처럼 땅에서 자라나 얼음기둥이 됐다. 지름이 10㎝는 넘을 투명한 기둥들이 어둠 속에서 꼿꼿하게 도열해 있다. 터널은 폭 15m에 깊이 40m 정도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종유석처럼
    땅에서 자라나 얼음기둥이 됐다.

    천장에서는 시멘트가 녹아서 젖꼭지처럼 자라나 있다. 석회석이 녹아 만들어지는 현상이 종유석이니 이 터널 천장은 원리적으로는 진짜 종유석이다. 2월 중순까지 기둥들은 착하게 서 있다가 봄바람을 타고 흔적 없이 사라진다. 시간이 되면 포천에 있는 비둘기낭폭포도 가본다. 재인폭포를 3분의 1 정도로 축소한 폭포다. 재인폭포에서 차량으로 40분 거리다.

    여행 마무리는 전곡에 있는 한탄강 관광지에서 한다. 잘 정비해놓은 강변 산책로도 좋고 그 앞에 있는 전곡리 선사 유적지도 좋다. 중간에 배가 고프면 언제든 이곳에 있는 식당에 들러서 배를 채우면 된다. 목적지들끼리 거리가 멀지 않아서 방문 순서를 바꿔도 상관없다.

     

    여행 수첩

    여행코스(서울 기준)
    통일로 3번 국도를 타고 곧장 북상. 의정부, 동두천을 지나 연천 전곡읍까지 번잡한 도시가 이어진다. 전곡역을 지나서 고가도로가 보이면 오른쪽 옆길로 빠져서 우회전→3.5㎞ 앞 궁평삼거리에서 재인폭포유원지 쪽 좌회전→5분 거리 오른편에 신답리 고분→고분에서 나와 우회전, 고문리 삼거리에서 이정표 따라 또 우회전해 10분 거리 재인폭포→폭포에서 나와 아까 삼거리에서 곧장 직진 78번 지방도→3번 국도와 만나면 통현 삼거리에서 철원-연천 방면 우회전, 신탄리역을 지나 3.5㎞ 더 가면 철원-연천 경계표지판 직전 오른편에 역고드름 이정표. 비포장 논길로 600m.

    * 대중교통으로 재인폭포만 가려면 전곡시내버스터미널에서 고문리행 56번 버스. 신탄리 역고드름은 경원선 신탄리역에서 하차 후 걷거나 택시로 이동.

    먹을 곳
    전곡읍 보정가든. 말끔하게 정리된 한탄강 관광지 안에 있다. 두부 요리 전문점. 두부구이 보리밥 6000원. 2인분 이상은 즉석에서 구워 먹고 1인분은 주방에서 구워 나온다. 깔끔하고 담백하다. 펜션도 겸한다. (031)832-0063

    묵을 곳
    호텔 조선왕가. 고종 황제의 영손(令孫)인 황족 이근이 살던 서울 명륜동 고택을 옮겨와 개장한 호텔 및 레스토랑. (031)834-8383. 재인폭포에서 10분 거리다.

    기타 문의: 연천군청 문화관광과 (031)839-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