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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여행기 (11 마지막회) - Mashhad

應觀 2013. 8. 18. 20:58

이란 여행기 (11 마지막회) - Mashhad


이란 여행지도

박일선의 세계 배낭여행기(http://cafe.daum.net/elsonpark/)

2006년 7월 13일, 목요일, Mashhad, Hotel Nasr
(오늘의 경비 US$71: 숙박료 100,000, 점심 40,000, 식료품 5,000, 택시 10,000, 10,000, 8,000, 비자 수수료 US$51, 인터넷 3,000, 신문 2,000, 환율 US$1=9,000 Iranian rial)
아침 8시에 Mashhad에 도착했다. Mashhad는 Qom과 더불어 이란의 최고의 회교 성지이다. Mashhad는 회교를 세운 마호메트의 후손이며 8대 칼리프인 Emam Reza의 묘가 있는 곳이다. Qom에는 Emam Reza의 여동생인 Fatima의 묘가 있는 곳이다. 회교에는 총 12명의 칼리프가 있었는데 11명의 묘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메디나와 이라크에 있고 Emam Reza 만이 이란에 묘가 있다 한다. 왜 아랍인인 Emam Reza와 여동생 Fatima의 묘가 아랍에서 멀리 떨어진 이란에 있는지는 아마 긴 사연이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란 사람은 아랍인이 아니다.) Mashhad는 매년 천 5백만 명 이상의 순례자가 찾는 곳이라 한다.
버스정거장에 내리자마자 택시로 투르크메니스탄 영사관으로 갔다. 거의 2주전 Teheran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영사관에서 비자 수속을 시작했는데 투르크메니스탄 외무부의 허가가 났으면 이곳에서 비자를 받도록 되어있다. Teheran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영사관 직원 얘기가 Mashhad에서 비자를 받으려면 비자 신청을 하고 2, 3일을 기다려야할 것이라니 당장 신청을 해야 한다. 영사관에 도착하니 시간이 일러서 약 30분 기다렸다. 아침 9시가 좀 넘어서 비자 신청 창구가 열린다. 내가 첫 번째로 다가 같더니 영사관 직원이 영어를 못 한다며 러시아어나 이란 말을 하느냐고 묻는다. 비자를 내러 수많은 영사관에 가봤지만 영어 못 한다는 영사는 처음이다. 몇 마디 영어와 비자 내러 온 이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신청을 했다. 뜻밖으로 2, 3일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오늘 11시에 와서 비자를 받아가란다.
비자 신청을 마치고 Kerman에서 예약을 해놓은 호텔에 당도하니 다행히 방이 있다고 하면서 준다. 짐을 풀고 조금 쉬다가 11시에 영사관에 가니 5일간의 투르크메니스탄 통과비자 (transit visa) 스탬프가 찍힌 내 여권을 내주면서 영어 못 한다는 영사가 나에게 "Good luck." 하면서 축하해 준다. 받기 까다롭다는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쉽게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번 여행에 비자 운이 좋은지 제일 받기 힘들다는 이란 비자와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어렵지 않게 받았다. 마지막으로 타지키스탄 비자만 받으면 이번 여행의 비자 문제는 모두 해결된다. 타지키스탄 비자는 우즈베키스탄 수도 Tashkent에서 낼 예정이다.
투르크메니스탄 비자가 나왔으니 이제는 Mashhad 구경이나 하고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떠나면 된다. Mashhad에서 3일 밤 잘 생각을 했는데 비자가 빨리 나와서 2일 밤만 자고 15일 토요일에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떠나야겠다.
예상외로 Mashhad는 다른 이란 도시에 비해서 시원한 것 같다. 대낮에도 섭씨 30도가 안 되는 날씨 같다. 묵는 호텔 방에는 천장에 선풍기만 있고 에어컨은 없다. 아주 더운 곳으로 생각했는데 예상외다. 다른 도시보다 고도가 높은 것일까?
오늘 택시기사와 두 번이나 요금 싱경이를 했다. 첫 번째는 버스정거장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영사관으로 가는데 투르크메니스탄 영사관으로 가자고 하면 모를 것 같아서 투르크메니스탄 영사관 근처에 있는 Razi Hotel의 이름을 종이쪽지에 써서 보이며 이 호텔로 가자고 해서 떠난 것까지는 좋았는데 가는 방향이 투르크메니스탄 영사관이 아니다. 나는 택시를 탈 때는 항상 론리에 나와 있는 도시 지도를 보면서 택시가 맞는 방향으로 가는 가를 체크한다. 택시기사가 바가지를 씌우기 위해서 일부러 먼 거리로 돌아서 가거나 내 말을 잘 못 이해하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가는 방향이 틀려서 두 번씩이나 종이쪽지를 보이며 방향이 틀리다고 얘기를 해도 걱정 말라고 핀잔만 주고 계속 간다.

다 왔다고 어느 호텔 앞에 서는데 보니 Razi Hotel이 아니고 Reza Hotel이다. 종이쪽지를 보이며 내가 Razi Hotel에 가자고 했지 언제 Reza Hotel에 가자고 했느냐고 하니까 그제야 자기 잘못을 알아차리고 차를 돌리더니 얼마 가지 않아서 Razi Hotel에 도착한다. 택시에서 내려서 10,000 리알을 주니 얼굴을 붉히며 20,000 리알을 요구한다. 버스정거장에서 Razi Hotel 까지는 10,000 리알이 적정가격인데 자기의 실수로 먼 거리를 가고는 20,000 리알을 요구하는 것은 엉터리 수작이다. 영어를 하는 호텔 매니저와 얘기하자고 호텔로 들어갔더니 따라 들어온다. 그러나 이럴 때는 자기가 열세인 것이다. 차를 길에 세워놓고 오래 손님과 싱경이를 할 수 없는 것이다. 호텔 매니저 앞에서 다시 한번 언쟁을 했지만 내가 질 태세가 아닌 것을 알고는 포기하고 가버린다.
두 번째는 투르크메니스탄 영사관 일을 마치고 호텔로 가는데 택시기사가 가는 도중에 차안에서 15,000 리알을 요구한다. 호텔에 도착해서 10,000 리알만 주었더니 또 언쟁이 붙었지만 질 내가 아니다. 10,000 리알이면 족한 거리인데 15,000을 달라는 것은 바가지 수작이다. 이 도시는 성지순례 때문에 외지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고 지금이 한창 성지순례 철이다. 택시기사들은 외지 사람들이 이 도시의 지리를 잘 모르는 것을 이용해서 바가지요금을 받는 것 같다. 지금까지 방문한 이란 도시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나는 안 당한다.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찾으러 영사관으로 갈 때는 호텔 매니저가 택시를 불러 주겠단다. 길거리에 택시가 많은데 왜 택시를 부르냐고 물으니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으면 바가지 가격을 부르기 때문이란다. 조금 있다가 택시가 나타났는데 호텔 매니저가 택시운전사 앞에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8,000 리알만 주라고 한다. 나는 택시를 한번 타면 기본요금 비슷하게 10,000 리알을 주었는데 진짜 가격은 그 보다 적은 것이다. 영사관 근처에 내려서 10,000 리알 지폐를 냈더니 정말 2,000 리알 거스름돈을 준다. 호텔은 시원치 않지만 호텔 매니저가 친절하게 도와주니 좋다.
투르크메니스탄 영사관에서 호텔로 돌아올 때는 공짜 차를 얻어 탔다. 이란에서는 택시표시를 안하고 택시영업을 하는 차들이 많아서 길가에서 그냥 손을 들고 서있으면 택시가 와서 선다. 투르크메니스탄 영사관 근처 길가에서 손을 들고 서있는데 차 한 대가 내 앞에 선다. 내가 묵는 호텔 명함을 보이고 아예 10,000 리알 짜리 지폐를 보였더니 타라고 한다. 호텔 근처에 도착해서 다 왔다고 해서 들고 있던 10,000 리알 짜리 지폐를 주었더니 안 받는다. 택시가 아니고 그냥 호의로 태워준 것이었다. 20대 말이나 30대 초의 영어도 제법 하는 청년이었다.
호텔 지하에 있는 음식점에서 케밥 점심을 먹었는데 40,000 리알을 받는다. 다른 도시에서는 20,000 리알을 받는 음식을 이곳은 배를 받는데 이 역시 성지 순례도시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은 오래 있을 곳이 못 된다. 앞으로는 싼 샌드위치나 사 먹으며 지내다 떠나야겠다. 이란 와서 먹는 것은 전혀 즐기질 못하고 떠난다.
Emam Reza 성지 구경을 하러 들어가려 하니 경비원이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어디다 전화를 건다. 조금 있다가 회교 성직자 한 사람이 나온다. 나를 가이드하기 위한 것이었다. 카메라는 못 가지고 들어간다고 해서 성직자 가이드와 함께 짐 맡기는 곳에 가서 카메라와 다른 짐을 맡기고 함께 들어갔는데 밖에서는 안 보이는 안 광장이 매우 넓고 화려하다. 내일 금요일 기도를 위해서 전 광장 바닥을 카펫으로 덥고 있었다. 내일 세 번 기도가 있는데 12시에 오면 구경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이 성직자 가이드와 여러 곳 구경을 했는데 이렇게 화려한 회교 사원은 본 적이 없다. 정말 화려하기 짝이 없다. 매년 천 5백만이 온다는 곳이 과연 다르다. 메카가 전 세계 회교도들에게 제일 성스러운 곳이라면 이곳은 이란 회교도들에게 제일 성스러운 곳이다.
성직자 가이드 말대로 내일 오정 때 다시 와야겠다. 사진을 찍을 도리가 없을까 모르겠다. 어디서 그림엽서라도 살 수 있을까 해서 찾아보았는데 찾지 못 했다. 이곳에 오면 이란 마그넷을 살 줄 알았는데 그 역시 찾을 수가 없다. 이 도시에서 못 사면 더 이상 기회가 없는데 낭패다.

Mashhad 네거리 풍경, 이란 차도 네거리는 대부분 로터리 식으로 되어있고 신호등이 없다

길을 건너는 보행자들에게는 위험한 곳이다

"닌자" 복장으로 길을 걷고 있는 여자 성자 순례자들

Mashhad 최고 성지 Emam Reza의 묘 입구

지금까지 본 회교건물 중 최고로 화려했는데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라 밖에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

돔과 그 옆에 있는 탑이 금 벽돌로 만들었다 한다

2006년 7월 14일, 금요일, Mashhad, Hotel Nasr
(오늘의 경비 US$16: 숙박료 100,000, 점심 18,000, 식료품 12,000, 인터넷 10,000, 신문 2,000, 환율 US$1=9,000 Iranian rial)
Mashhad는 순례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아주 혼잡스럽고 불안스러운 도시다. 길거리에는 잡상인들이 너무 많아서 길을 걷기가 힘들 정도다. 시계 하나를 들고 팔러 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큰 사진 하나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관 선전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잡동사니 같은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한집 건너로 있는데 물건은 조잡하기 짝이 없다. 이란의 공산품 수준은 아마 한국의 40-50년 전 수준인 것 같고 조금 고급스러워 보이는 물건은 모두 외국제다. 싸구려 공산품은 모두 중국산이고 이란 물건은 주로 장신구 종류다. 이 나라는 넓은 땅에 농사나 짖고 목축이나 하고 석유 같은 지하자원이나 팔아먹고 살 운명인 같다.

Emam Reza 광장 구경을 갔다. 오늘은 아예 처음부터 가방을 맡기고 마실 물만 들고 들어갔다. 어제와는 달리 입구에서 다른 이란 사람들처럼 몸수색만 적당히 하고 들여보낸다. 어제처럼 성직자 가이드를 붙이지 않는다. 론리에는 금요일에는 외국인은 전혀 입장을 못 한다고 있는데 틀린 얘기인 것 같다. 들어가서 약 한 시간 동안 이란 사람들이 가는 곳은 대부분 다 가봤다. 외국인이나 회교도 아닌 사람을 가리는 기색은 전혀 없다. 어제 안 가본 곳을 가봤는데 내부가 그렇게 넓을 수가 없다. 그리고 신축하는 것인지 개축하는 것인지 여기저기 건물을 많이 짖고 있다. 규모가 Esfahan의 Emam 광장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 그리고 광장이 하나가 아니고 여기저기 여럿이다. 금으로 덮인 돔과 미너렛이 있는 광장까지 가봤는데 예배를 드리고 있는 순례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순례자들이 정말 많다. 한국의 구정이나 추석 군중같이 밀려다닌다. 이런 와중에 내가 이 도시의 호텔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내가 있는 호텔도 빈방이 없는 것 같다. 손님들은 모두 순례 차 온 사람들 같은데 주로 가족들이다. 그래도 호텔 안은 조용하다. 한국 같으면 술 취한 사람들로 시끄러울 텐데 이란은 금주의 나라라 그런 광경은 있을 수 없다. 차도 많아서 길을 건널 때는 참 위험하다. 차들이 사람들을 전혀 기다리지 않고 고속으로 달리기 때문이다. 사람이 알아서 피해 가라는 얘기다. 이곳 사람들은 고속으로 달리는 차에 숙달이 되어서 그런지 차 사이를 공원 산보하듯이 유유히 잘도 건너간다. 나는 길을 건너다 여러 번 아차 하는 경험을 해서 이제는 꼭 이란 사람들 건널 때 따라서 건넌다.
이곳의 성지 사진을 못 찍어서 섭섭하다. 오늘 광장에서 사진 찍는 사람을 딱 한 사람 봤는데 휴대폰 카메라로 찍고 있었다. 물론 이란 사람이었다. 휴대폰은 가지고 들어가게 하는 모양인데 카메라 기능이 있는 휴대폰인지를 일일이 검사할 수 없는 노릇이니 사진 못 찍게 하기는 힘든 노릇이다. 이럴 때 쓰기 위해서 아주 소형 카메라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 다음 여행할 때는 고려해봐야겠다.
내일은 이란을 떠난다. 19박 20일의 이란 여행을 끝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 달 정도 하려고 생각했는데 더위 때문에 이 정도도 간신히 했다. 볼거리가 생각한 만큼 많지도 않고 중복이 심하다. 모든 면에서 터키만 못한 것 같다. 터키보다 물가가 싸기는 하지만 호텔은 질이 매우 떨어진다. 하루 US$20 정도라야 그럴듯한 방에 들 수 있는데 터키에서도 이스탄불만 아니면 그 정도밖에 안 한다. 음식은 터키에 비해서 너무나 못하다. 경치는 너무나 황량하다. 오아시스 도시만 벗어나면 사막뿐이다. 자연 경치는 별로 없고 주로 회교사원, 무덤, 요새, 궁전, 옛 도시 유적 등인데 너무 중복이 되어서 나중에는 시들해진다.
내일 가는 나라 투르크메니스탄은 4일 밤 자고 떠나야하니 쫓기듯 하는 여행이다. 고생이나 많이 안 했으면 좋겠다. Stan Tours의 David로부터 이메일이 왔는데 투르크메니스탄에서 US$175을 내고 3일 반 동안 차를 쓰란다. 그렇게 할까 하다가 버스를 타고 다니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투르크메니스탄을 여행하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인데 나라고 못할 것 없다. 론리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내가 묵을 투르크메니스탄의 Mary와 Ashbagat 두 도시의 호텔 정보를 얻어 놓았다.
2006년 7월 15일, 토요일, 이란 출국
(오늘의 경비 US$7: 택시 2,000, 20,000, 5,000, Sarakhs 합승택시 30,000, 버스 10,000, 환율 US$1=9,000 Iranian rial)
아침 일찍 일어나서 호텔 앞에서 합승택시를 타고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있는 버스정거장으로 갔다. 투르크메니스탄 국경도시인 Sarakhs 가는 버스를 찾으니 반응이 이상하다. 이 버스정거장이 아니고 다른 곳에서 떠난다는 얘기 같았다. 론리에는 이 버스정거장에서 떠난다고 쓰여 있는데 틀린가 보다. 한 사람에게 더 물어봐도 마찬가지 반응이다. 좀 똑똑하게 생긴 젊은 친구에게 다가가서 Sarakhs 버스 타는 곳을 택시로 가려하는데 택시기사 이해하도록 이란어로 좀 적어 달라고 하니 적어 주더니 나를 데리고 택시기사에게 가서 말로도 얘기를 한다.
택시에 오르기 전에 10,000 리알을 보였더니 10,000 리알 지폐 둘을 (2천 원 정도) 보이면서 20,000 리알을 내란다. 할 수 없이 올라탔더니 거리가 멀어서 한 10km는 가는 것 같았다. 버스정거장도 아니고 길거리 한곳에 내려주며 여기에 기다리면 Sarakhs 버스가 온다고 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한 10여명은 되어서 물어보니 Sarakhs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버스가 안 온다. 가끔 합승택시가 와서 사람 네 명을 태우고는 떠난다. 나도 세 번째로 도착한 합승택시에 올라서 Sarakhs로 떠났다. 가격이 얼마인지 모르고 탔지만 남이 내는 요금을 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경찰 같이 보이는 친구가 제일 좋은 앞자리를 잽싸게 차지한다. 나는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여자 손님 한 사람이 나타나니 앞자리를 차지한 경찰이 뒷자리로 쫓겨 온다. 이란에서는 여자가 특별대우를 받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버스나 합승택시의 좌석도 그런 것 같다. 여자는 모르는 남자 옆에는 앉히지 않는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도 항상 자리바꿈이 일어난다. 남자는 절대 불평 없이 여자에게 자리를 양보해 준다.
합승택시는 일단 출발하자 총알같이 달린다. 오전 7시 15분쯤에 떠났는데 10시 경에 Sarakhs에 도착하였다. 약 190km의 거리였다. Sarakhs 가는 풍경은 대부분 사막 경치였지만 가끔 오아시스 농경지도 나왔다. Sarakhs에 도착하여 택시기사가 국경까지 데려줄 것을 기대했는데 어림도 없다. 어느 네거리에서 세워주면서 국경은 저쪽이라고 내리라고 한다. 저쪽이 얼마나 먼 거리인지 알 도리가 없다. 할 수 없이 내려서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서 다시 탔다. 국경으로 가자고 했더니 한 5분 정도 달려서 도착한다. 5,000 리알을 주었더니 받는다.
출국사무소로 들어가기 전에 어느 환전상에게 쓰다 남은 이란 돈을 미화로 바꿨다. 환율이 9,160 대 1인데 9,200을 처 준다. 정직한 친구다. 별로 남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미화 33불이 나왔는데 20불 짜리 한 장과 10불 짜리 한 장을 준다. 3불은 안 줄 생각인가 하고 잠깐 기다렸더니 1불 짜리 한 장을 더 준다. 더 이상 안 줄 것 같아서 돌아서서 걸어가는데 조금 후에 오더니 2불은 없다면서 대신 투르크메니스탄 돈으로 2불 어치를 준다. 인터넷에서 체크해서 투르크메니스탄 환율이 미화 1불 당 23,600 manat인 것을 알고 있는데 그것도 정확히 계산해서 준다. 환전상들은 대부분 장난을 치는데 이 친구는 안 그런다. 기특한 친구다.
출국하는데 직원이 아주 까다롭게 군다. 나만 데리고 시간을 끈다. 무슨 서류를 들여다보며 이것저것 물어가며 종이에다 한참 동안 쓴다. 떠나는 사람 붙잡고 왜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지 알 수 없다. 드디어 오전 10시 30분에 이란 출국을 하고 나니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이란을 떠나면서 다시 한 번 이란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이란을 나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란은 자기네 살고 싶은 식으로 살겠다는 것인데 다른 나라들이 나무랄 필요 없는 것이다. 1979년 회교혁명이 일어나서 팔레비 왕을 쫓아내고 회교정부가 들어선 다음에 별 문제없이 자기네 식대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미국 부시 대통령의 "Axis of Evil" 얘기가 나온 후부터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이란 사람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이란을 다시 찾아올 것 같지는 않다.

이란을 떠날 때 경치도 이란을 들어올 때 경치처럼 황량한 사막 경치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합승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

미국 서부 경치와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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