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크메니스탄 여행기 (2) - Merv
투르크메니스탄 여행기 (2) - Merv | |
투르크메니스탄 여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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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선의 세계 배낭여행기(http://cafe.daum.net/elsonpark/) | |
2006년 7월 16일, 일요일, Mary, Hotel
Yrsgal
(오늘의 경비 US$94: 숙박료 US$40, 점심 44,000, 맥주 50,000, Merv 관광 US$50, 환율 US$1=23,400 manat)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커피를 끓여서 어제 저녁 식사 때 먹다가 남은 빵을 아침으로 들고 7시에 호텔 로비로 내려오니 어제 국경에서 나를 태우고 이 호텔까지 데려온 택시기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깜작 놀라서 무슨 일인가 하고 호텔매니저에게 물어보았더니 택시기사가 나를 아침 6시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나를 Merv에 데려가려고 기다리고 있다며 어제 약속을 했느냐고 묻는다. 그런 적이 없다고 했더니 호텔 매니저가 그 친구한테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것 같았고 택시기사를 얼른 돌아서서 나가버렸다.
참 이상한 친구였다. 말이 잘 안 통하기는 했지만 어제 그런 약속은 비슷한 얘기도 안 했다. 나를 오늘 Ashgabat에 데려주겠다고 제의 한 것을 거절한 것밖에 없었다. Merv 관광 제의를 했었더라면 한번 고려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안 했다가 아침 일찍 나타나서 나를 차지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어제 호텔을 통해서 Merv 관광을 예약해 놓은 상태니 그 친구와는 갈 수 없는 것이다. 그 친구와 가는 것이 훨씬 쌌을지도 모른다. 서로 잡으려고 하는 것을 보니 외국인 한 사람을 잡으면 제법 큰 돈벌이가 되는 모양이다.
아침 7시에 호텔을 떠나서 영어를 하는 호텔 직원과 운전기사와 함께 Merv로 향했다. 제법 먼 것으로 생각했는데 30분 만에 도착했다. Merv까지 가는 동안에 경찰 검문소를 두 번 지났는데 그때마다 운전사는 차 속도를 줄이고 안전대를 맨다. 검문소를 지나자마자 속도를 높이고 안전대를 풀러버린다. 어제 국경에서 Mary로 택시로 올 때 앞자리에 앉아서 안전대를 매고 있었더니 맬 필요 없다며 검문소를 지날 때만 매라고 하던 운전기사 말이 생각났다. 나는 내 보호를 위해서 매는 것인데 (총알택시라) 불편한 것을 왜 매고 있느냐는 식이다. 사람들 인식을 바꾸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미국에서 안전대 매는 것이 법으로 된 다음 한참 동안은 안전대를 매는 것을 피했다.
Merv에 도착해서 한 30분을 기다리니 관광 가이드가 나타났다. 나는 나와 같이 온 영어를 하는 호텔 직원이 가이드인줄 알았는데 가이드는 따로 있었다. 가이드의 영어는 호텔 직원보다 못 했는데 Merv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13세기 몽골군이 쳐들어왔을 때 Merv의 인구는 2백만이었단다. 론리에는 백만이었다고 나와 있는데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200만이나 100만이나 대도시였던 것만은 틀림없다. 몽골군은 2백만 중에 백75만을 학살하고 돌아갔단다. 몽골군이 들이닥치기 전에 50만은 피난을 가고 백50만은 남았다가 항복을 했는데 모두 죽였다. 얼마 후에 피난 갔던 50만 중 25만이 돌아왔는데 떠났던 몽골군이 다시 나타나서 25만을 모두 죽였단다. 그래서 백75만이 학살되었단다. 그리고 몽골군은 Merv를 완전한 폐허지로 만들고 떠났단다. 당시 몽골군은 한 도시를 공격했을 때 모든 사람을 죽이고 도시를 완전한 폐허지로 만드는 것이 상습적인 전법이었던 것 같다.
인구 200만이나 되는 큰 도시를 어떻게 완전한 폐허지로 만들 수 있었을까 궁금했는데 가이드 설명이 우선 태울 것은 다 태우고 남은 것은 중국으로부터 배워서 가지고 온 Catapult라는 무기를 이용해서 부셨단다. 당시 Merv의 건축물은 대부분 흙벽돌로 지은 건물이었기 때문에 Catapult로 부시는 것이 가능했단다. 딱 한 건물만 부시지 못했다는데 그 이유는 그 건축물이 흙벽돌이 아니고 돌로 지었기 때문이란다. 그 건물은 아직도 남아있다.
투르크메니스탄 사람들은 몽골을 나쁘게 생각한다. 우리가 일본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몽골군이 Merv를 폐허로 만들지 않았더라면 지금 Merv는 우즈베키스탄의 Bukhara와 Samarkand에 못지않는 유명한 실크로드 도시로 남아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몽골군은 Bukhara와 Samarkand도 Merv와 마찬가지로 폐허로 만들었지만 나중에 재건되었다는데 Merv는 왜 재건이 안 되고 폐허로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Turkmen족은 원래 유목민이었는데 때로는 실크로드를 지나는 상인들을 약탈도 하고 사람들을 납치해 다가 노예로 팔기도 했단다. 가뭄이 들어서 목축이 시원치 않을 때 특히 심하게 했단다. 중앙아시아에는 가축을 살고 파는 가축시장이 많다. 옛날에는 가축시장과 함께 노예시장도 많았다는데 제일 큰 노예시장이 지금 우즈베키스탄의 Khiva와 Bukhara에 있었단다. 주로 페르시아 사람들과 러시아 사람들을 납치해서 팔았다는데 이들을 납치해오는 사람들은 주로 Turkmen족이었단다.
납치해온 페르시아 사람들은 투르크메니스탄 남쪽에 있는 지금의 이란 사람들이었고 러시아 사람들은 러시아에서 투르크메니스탄 북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해온 러시아 사람들과 군인들이었단다. 나중에 러시아는 소위 남진정책을 시작했을 때 Turkmen족이 러시아 사람들을 납치해서 노예로 팔아먹는 것을 구실로 삼아서 중앙아시아를 공략했단다.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저지하려는 영국은 중앙아시아 나라들은 설득해서 수천 명의 러시아 노예를 풀어주게 하고 영국군이 그들을 호송해서 러시아까지 데려와서 인계했는데 당시 (19세기 중반)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었었단다.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남한과 북한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 같이 간 호텔 직원 친구가 한국은 일본을 좋아 안 한다고 들었는데 사실이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가 며칠 전에 들었는데 한국이 일본에 폭탄을 떨어트렸다고 한다. 북한이 미사일 테스트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국이 했다는 것만 기억할 뿐 남한인지 북한인지는 모르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남한이던 북한이던 중요한 문제가 안 되는 것이다.
Merv에는 역사적으로 시간을 달리해서 생겨난 성이 여럿 있는데 제일 처음에 세운 성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이 기원전 6세기경에 세운 성이라는데 규모가 약 20 헥타르로 별로 큰 규모는 아니었단다. 다음에 세운 성은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성이라는데 규모가 다리우스 성의 20배였단다. 알렉산더 대왕 군대의 규모가 얼마나 컸나를 짐작할 수 있다. 세 번째 성은 천여 년이 지난 후 Seljuk Turk제국이 세운 성인데 알렉산더 대왕의 성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한다. 그리고는 몽골군이 들여 닥쳤던 것이다. 몽골군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는 중앙아시아에서 만큼 만행을 부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몽골군이 중앙아시아에 쳐들어와서 폐허로 만들고 그 여세를 몰아서 러시아와 동유럽까지 침공하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단다. 징기스칸이 몽골을 통일한 다음에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는 나라들과 무역을 하기 위해서 중앙아시아의 한 나라에 협상단을 파견했는데 그 나라 왕이 협상에 응하는 척하다가 협상단 단원 400여명을 모두 죽여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몽골은 사과를 요청하는 사신을 보냈었는데 중앙아시아 나라 왕은 그들마저 다 죽여 버렸단다. 이에 징기스칸은 보복을 결심하고 대군을 보내서 중앙아시아를 정벌하고 내친 김에 러시아도 정벌하고 유럽까지 침공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몽골 제국은 지금은 초라한 후진국으로 남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Merv 성에는 21m 높이의 불탑을 발굴했다는데 불교가 이렇게 먼 곳까지 퍼져왔던 것이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폭파해 버린 세계에서 제일 큰 불상이 있다는 아프가니스탄의 Bamiyan은 이곳에서 별로 멀지 않다. 중앙아시아는 지금은 오지로 알려졌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세계의 중심에 있었던 적이 많았다. 다리우스 왕과 알렉산더 대왕 같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중앙아시아를 넘나들고 불교가 들어왔을 때 한반도는 역사의 문턱에도 이르지 못했던 미개한 지역이었다.
Merv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함께 갔던 호텔 직원이 내가 내일 가려는 Ashgabat까지 가는 밤기차가 있단다. 밤 11시에 떠나서 아침 7시에 Ashgabat 도착이란다. 원래 내일 아침에 합승택시로 가려했는데 밤기차로 가면 이 나라에서 5일밖에 없는 빡빡한 일정에 시간도 벌고 오늘 밤 호텔 숙박료 US$40을 안 내도 되니 일석이조다. 왜 일찍 기차를 생각을 안 했을까? 그러나 호텔 직원과 함께 기차역에 가보니 표가 매진되고 없단다. 기차표는 카자흐스탄에서도 사는데 애를 먹었는데 이곳도 마찬가지다. 기차는 국가보조로 운영되어 버스나 합승택시보다 요금이 훨씬 싸니 보통 3일 전에 다 팔린단다. 결국 원래 계획대로 내일 아침 합승 택시로 떠날 수밖에 없다.
오늘 Merv에 같이 간 택시 운전사가 내일 Ashgabat까지 US$20에 데려다 주겠다는 것을 거절했다. 합승택시를 타면 US$3이면 갈 수 있는데 US$20씩 쓸 필요가 없다. 혼자 타고 가는 택시나 다섯이서 타고 가는 합승택시나 무슨 차이가 있으랴. 그러다가 나중에 생각을 고쳐서 US$20에 가기로 하고 내일 7시에 호텔로 오라고 했다. 이 나라에서는 좀 편하게 여행하고 싶다.
Merv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통역으로 나와 함께 간 젊은 호텔직원과 택시기사가 내 수입과 한국 물가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 내가 은퇴하기 전에 (미국에서) 한 달 월급이 얼마였냐고 물어서 1만 불 정도였다고 했더니 놀랜다. 내 아들과 딸의 수입은 나보다 훨씬 더 많다고 했더니 더 놀랜다. 이번 여행에 얼마나 쓰느냐고 물어서 약 1만 불 쓴다고 했더니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쓸 수 있느냐고 놀랜다. 그러면서 호텔직원 친구가 자기 월급은 40불인데 자기는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나는 자기네 나라에 와서 돈을 쓰면 서로 좋을 것이라고 한다. 그럴 듯한 얘기다. 이 나라에 와서 살면 웬만한 돈만 가져와도 큰 부자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운전기사는 자기가 운전하고 있는 중고 토요타 차를 약 3천불이면 살 수 있단다. 젊은 친구는 자기 나라 사람들은 수입이 적어서 외국 여행은 꿈도 못 꾸고 자기 나라 안에서만 산다고 한다. 조금 전까지도 자기네 대통령이 나라를 부자 나라로 만들었다며 투르크메니스탄 독재자 칭찬을 했는데 이제는 가난한 나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 외국 여행자들이 투르크메니스탄 오는 것을 꺼려하는 것 같다.
2백만 인구의 대도시 Merv는 징기스칸군에 의해서 폐허로 변해버렸다
기원 전 6세기경에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이 세웠고 그 후에 알렉산더 대왕이 어 크게 만들었다는 Erk Kala 성
성 내부는 징기스칸 군대에 파괴되어서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
성벽은 거의 납작해 졌다
물 저장소가 (cistern) 보인다, Mary 근처를 지나가는 Murgarb 강에서 물을 끌어왔었다 한다
Merv에서 제일 유명한 건물 Sultan Sanjar 묘지, 몽골군이 허물지 못한 단 하나의 건물이란다
Merv의 지배자였던 Sultan Sanjar의 석관
한 아랍인의 저택, 몽골군에 파괴되어 벽만 남았다.
벽에 뚫린 구멍은 몽골군이 Catapult로 이 저택을 부실 때 생긴 것이란다
저택 내부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주말이라 Mary 중앙광장에서 열린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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